“배가 가장 안정적일 때는 정박한 상태인데, 배는 정박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항해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흔들림을 두려워한다면 인생을 너무 아깝게 사는 것이니 흔들리고 부딪치더라도 또 도전하길 바랍니다.”

2017년 12월27일, 문재인 정부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150여명의 청년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정부 대표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건넨 말이다. 그날의 주제는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와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을 정부가 직접 묻고 듣는 것이었다. 앞선 기조발언에서 이 총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며 삶의 자세를 조언했다. 핵심은 ‘노력’과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가 부딪쳐보라고 권유하는 파도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났나. 그 파도에 매번 휩쓸리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시시각각 방방곡곡에서 잔물결 정도로 취급되던 불공정과 불평등이 결국 돛단배 하나 겨우 끌어안고 있는 청년들에게 파도의 크기로 덮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말하는, 부딪치면 잠시 흔들리고 말 파도란 어떤 청년에겐 첫 면접 탈락이라는 취업 실패일 수도, 첫 고시원이라는 주거빈곤의 경험일수도, 첫 소액 대출이라는 부채의 굴레일 수도 있다. 그나마 공정하다 믿었던 공기업의 94%가 채용비리를 저지르고, 전·월세상한제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을의 입장으로 집을 구해야 하고, 대출 규제를 푸는 것이 청년을 향한 최선의 복지인 바다에서는 풍랑을 즐길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억겁의 노력과 끝없는 도전정신이 삶의 필승법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공정한 출발선과 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노력은 결과를 배신한다’. 이러한 삶의 새로운 공식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당사자의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라며 개인에게 떠넘기고 만다. 이런 시대에 불공정과 불평등, 불통이라는 파도 앞에 인생을 한 번 던져보라는 말은 그저 무책임한 언사일 뿐이다.

삶이 벅차 견딜 수 없을 때 토해낸 하소연에 ‘힘내’ ‘넌 할 수 있어’식의 메마른 응원보다는 말없이 건네주는 소주 한 잔,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밥 한 그릇에서 더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청년들에게 메마른 응원을 건넸다.

“가보면 길이 있어요. 미리 가보기도 전에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청년에게 할 말은 좌절하더라도 함께 노력하고 도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삶의 머나먼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맛봐야 하는 것이 무기한 비정규직과 6평짜리 월세방, 2000만원의 부채라면 청년의 좌절과 비관은 기우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다. 마치 인생을 아직 덜 살아봐서 뭘 모른다며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려 했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청년에게 직접 문제와 정책적 대안을 묻고 대답을 들으러 왔다면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협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했다. 이제 청년을 빈곤 포르노 속에서 소비해가며 복지나 정책을 시혜하겠다는 자세는 버리고 생애주기에서 마주해야 할 고질적이고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할 동료로서 마주하자.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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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놓고 무성한 뒷얘기들이 오간다.

영화가 그린 6·10 민주항쟁이라는 실화는 묵직하고 컸다. 당시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보탠 수많은 이들이 현재를 살고 있기에 ‘그때 그 사람들’이 계속 소환되고 회자되고 있다. 박종철·이한열 열사를 비롯해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에서 부검 영장을 받아낸 검사, 사건을 처음 알리고 추적한 기자, 사건을 조작·은폐한 정황을 밝히는 ‘비둘기(비밀서신)’를 바깥세상에 전한 교도관 등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는 유일한 주요 여성 캐릭터이자, 허구의 인물이다. 박종철·이한열 두 사람을 잇는 장치이면서 고민을 거듭하는 대학생으로 그려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영화 내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연희의 역할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si***는 트위터에 “정의로운 남자, 나쁘지만 이유 있는 남자 등 온갖 남자들 (배역에) 연기파 배우들이 캐스팅된 와중에 주요한 여자 캐릭터는 김태리 달랑 하나”라며 “시대의 비극이자, 연출의 비극”이라고 적었다. 당시 항쟁을 이끌고 참여한 여성들이 많았음에도 제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ha***는 “극에 여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있어도 힘없이 당하는 피해자 가족”이라고 했다. @ch***는 “다른 남성 인물은 ‘옳은 일이어서 한다’고 묘사한 반면, 연희는 삼촌이나 데모하던 오빠에 의해 계몽되는 것처럼 그려져 별로였다”고 지적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1987, 김태리 캐릭터를 둘러싼 심각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칼럼에서 “영화는 여성을 지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천 성고문 사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 종로 기습시위를 주도한 여학생 등 영화의 곳곳에 등장하는 여성의 존재를 짚었다. 또 “연희의 캐릭터는 강렬하지 않지만 이미 완성된 다른 인물에 비해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다. 관객의 감정을 끌고 당대 정서 안으로 들어가는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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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이 직접 청년 일자리를 챙기고 있다지만 여전히 뾰족한 묘안은 없어 보인다. 2018년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2.7%나 증가됐다. 그러나 신규 일자리 창출 정책은 과거 정부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박근혜 전 정부의 청년 실업 대책은 장기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급여가 턱없이 낮고 단기적인 인턴사원 등 비정규직 양산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뿐인가. 일자리 창출은 전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대학 구조 개혁을 무기 삼아 청년 취업을 대학에 떠넘겨 왔다. 대학들은 부실 대학이나 대출 제한 대학을 피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 취업률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통계보다 2배 이상 높다. 취업이 안 돼 졸업을 유보하는 ‘대학 5, 6학년생’, 각종 스펙을 쌓고도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아 인턴을 전전하는 ‘호모인턴스’도 부지기수다. 앞으로 3~4년간은 최악의 취업난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 취업 여건은 더더욱 암담하다. 역대 최다였던 2010~2014년 사이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5~24세 청년 실업률은 10.7%로 전년도보다 0.2% 상승했다. 2000년 10.8%를 기록한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 청년 실업의 증가는 내수 침체를 부추겨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 확대를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재벌 중심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틀을 바꿔 일자리 창출이 용이한 중소·중견 기업을 키우고자 하는 과감한 정책이 없는 한, 그 어떤 대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제조업만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이 강력한 파트너십을 갖고 대학과 일터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청년 벤처 기업 창업 붐’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청년층에 특화된 취업 알선 프로그램 제공도 필요하다. 미국(원스톱 센터)과 영국(직업 센터) 등 주요 선진국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방대한 양의 직업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여 구직자와 기업을 직접 연결해 주는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경제가 어렵고 침체될수록 공격적인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들이 투자해야 경제도 살고 일자리도 창출된다.

<이윤배 |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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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에게 책임지울 수는 없는 법이야.” 아이를 지방의 유수한 자율형 사립학교에 보낸 친구가 변명하듯 한 말이다. 정치적 성향에서 평소 공유하는 점이 크기에 친구는 아이를 평범한 일반고에 보내지 않은 데 대해 뭔가 변명할 필요라도 느꼈나 보다. 공교육이 다 무너진 마당에 그런 결정을 가지고 내가 무슨 비난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잖아도 일반고 교실의 쉬는 시간에 남자애가 여자애를 무릎에 앉힌 채 시시덕거리고 수업시간에는 모두 엎드려 자는 게 흔한 풍경이라는 얘기를 듣는 터였다. 똘똘한 아이를 그런 환경에 버려두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친구의 변명은 어찌 보면 ‘먹고사니즘’의 변형일 수도 있었다. 먹고살려면, 뒤처지지 않으려면, 그나마 어엿하게 살아가려면, 어쨌든 남보다 앞서 좋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 사회의식이나 평등에 대한 태도가 한 걸음 앞선 사람도 이럴진대, 이른바 능력주의(meritocracy)와 경쟁논리가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을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들이 먼저 반대하고,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에 명문대 졸업생들이 분개를 한단다.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무임승차론’이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 대학에, 이 직장에 들어왔는데 능력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대우를 바라는가. 이런 논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어려서부터 비싼 사교육을 받고, 등록금 걱정 없이, 알바에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고 맘 편히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사회적 특혜라고 설명한들 설득력이 없다. ‘시험’이라는 인간에 대한 극히 일면적인 평가가 얼마나 자의적인가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면 이들의 항변이란 게 남보다 더 가지겠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그나마 가진 것을 지키겠다는 방어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무너진 교실에 아이를 도저히 보낼 수 없는 친구처럼 말이다. 결국 상황은 또다시 능력의 문제, 능력을 약간 더 가진 을과 능력이 모자란 을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적’은 어디에 있는가? GDP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대학진학률은 30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어나고 아파트는 해마다 그토록 많이 짓는데, 그 많은 돈과 고학력자들과 집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을들끼리 사는 세상에서 적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손쉽게 대자본이나 보수화된 정치 지형 등을 적으로 들지 못하겠다. 그것들 역시 일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윤을 탐하는 자본이나 복지와 평등에 눈감은 저간의 정치는, 이 사회와 우리들 자신에 대해 수십년간 한 번도 근본적인 반성을 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잘산다는 희망으로 경제적 기준 외에는 모든 것을 도외시한 우리들 자신이 원인인 것이다. 오랜 성장주의의 구호 아래 우리는 자기 자신을 경제적 단위, 생산적 단위로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고등교육을 받고 생산체제에서 자신의 쓸모를 높인 사람은 대우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차별을 감수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수월성’과 ‘측정’이 교육의 대치어가 되어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기보다는 선별하는 곳이 되었다. 교육이 계층 간 장벽을 허문다는 시민사회의 이상은 옛말이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대도시 중산층 이상의 가진 계층만을 골라 통과시키는 보안문 구실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기성 조직에 편입한 사람도 편치가 않다. 자기 능력을 끝없이 보여주고 생산성을 입증하지 않는 한 그는 조만간 치킨집이나 빵집을 열어야 할 처지다.

교육에서부터 평등한 일자리와 복지까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국 국립대를 통합한다든지 액수가 얼마건 기본소득제를 전면 실시한다든지 하는,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방안은 무수히 나와 있다. 이런 방안들이 아무리 철없는 이상주의 소리를 들을지언정 또 이런 정도의 변화 없이 그 무엇도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삶을 누리는 존재로 보는 관점, 사회적 격차를 당연하게가 아니고 매우 기이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 주어진 땅과 자연을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주어진 혜택으로 보는 철학 등이 퍼져야 한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조금이나마 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부터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뭔가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할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새해 벽두부터 마음을 어지럽힌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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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2일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사설을 통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홍 대표는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누차 피력한 바 있는데, 지방분권 개헌 열망에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면 그 꿈 일찌감치 접기를 권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사설은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지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홍준표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제동을 걸고 있고, 그것이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서라도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은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보수-진보를 떠나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매일신문은 1월2일에도 사설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지방분권개헌 이슈를 당리당략과 선거 유불리로 접근하고,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라’는 것은 보수-진보를 떠난 요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70%를 훨씬 넘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에 관계없이 찬성여론이 높다.

부산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77%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작년 12월 말에 대구·경북지역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지역의 찬성률이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들을 줄줄이 언급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국회논의를 기다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회가 작년 말에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올해 6월까지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 특위에서 개헌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년 동안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측이 새로운 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특위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다수가 바라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헌법이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준 이유는,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된다.

물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개헌 반대’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세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스스로의 대선공약을 어기고 개헌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색깔 덧씌우기’ 등 여러 시도를 하겠지만, 현명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1월부터 본격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작부터 대통령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내용은 여·야당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이고 제한 없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외에도,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같은 내용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논란이 되는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헌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국회 통과 가능성일 것이다.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처음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헌은 이미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지지하고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헌안을 논의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거대한 집단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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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도 벌써 한 주가 지났다. 야심차게 계획한 새해 계획이 한번쯤 흔들리는 순간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필연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불쑥 생기기 마련이고, 미리 계획한 일이 하루쯤 틀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결심이 굳지 못한 사람을 훈계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통계적으로 사흘에 한 번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삶이므로 계획한 일을 사흘에 한번쯤 빼먹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한 주, 한 달, 한 해가 전혀 새로운 일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만 반복되고 있다면 이쪽이 더 걱정되는 일상이라 생각한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삶의 건강한 자유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에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동할 자유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자유를 함께 빼앗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형벌(刑罰)로 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을 받지 아니하며(제12조 제1항), 체포·구속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제3항),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그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제6항)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이 있다. 외국인 범죄자는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구치소 또는 교도소에 구금되므로, 범죄자를 가두는 구금시설과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시설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 만료 등 출입국관리법에 정해진 사유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 중에서 여권이 없거나 또는 교통편이 확보되지 못하여 즉시 출국할 수 없는 경우, 여권이나 교통편을 마련하는 기간 동안 머물게 하여 외국인을 ‘보호’해주는 행정기관이다. 설명만으로 보면 공항 한쪽에 마련된 라운지와 같은 편의시설을 생각하게 되지만 현실은 철창에 갇혀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구치소와 큰 차이가 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입소한 외국인은 노란 철창으로 구획된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 공간에서 10명 이상이 공동생활을 한다. 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생활공간은 CCTV로 감시되고, 외부인과 만날 때는 구치소와 같이 두꺼운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로 대화를 해야 한다.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도 없고,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용공간에 설치된 전화기 한 대가 유일하다. 출입은 제한하지만 보호시설 내에서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생활이 보호되며 인터넷 등 외부와 소통도 자유로운 외국의 보호시설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열악한 시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호’라는 이름의 구금기간에 상한이 없어 장기간 보호소에 구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임에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 있는 기관이 인신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절차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작년 3월에 발표된 법무부의 정보공개 결과를 보더라도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이상 장기 구금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 20명이나 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난민이거나,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국내의 법률관계가 마무리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기간을 떠나 구금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나 구금을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아동들이 보호소에 갇혀 있기도 했다. 열악한 시설에 장기간 가두어 두면서 이를 외국인의 편의를 위한 ‘보호’라고 설명하는 것은 궁색하다. 보호와 구금은 전혀 다르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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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1912~199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백석은 이 시를 스물일곱 살에 발표했다. 숲처럼 짙푸르고 무성한 나이에 썼다. 얼굴에 혈기가 도는 나이에 썼지만, 이 시에는 겨울이 한가득 들어 있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 처마 끝에 명태를 매달아 말리는 것을 시인은 본다. 몸의 등이 길고, 조금 마른 명태를 보고 시인은 명태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초췌하고 핼쑥한 자신의 모습이 명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꼬리지느러미에 얼음이 붙은 명태와 가슴에 고드름이 달린 자신을 같은 처지로 본다. 처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심정 또한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마음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저물어가고, 볕이 노루꼬리처럼 짧게 남아 있긴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 빗대었다. 백석은 이 시를 객지인 함흥에 살 때에 썼다. 타향에서 느꼈을 쓸쓸함과 근심이 드러나 있다. 함흥 살 때의 생활을 기록한 한 산문에서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을 ‘멧새소리’라고 했을까? 멧새소리는 고향에서 듣던 경쾌하고 정겨운 소리였을 것이니, 그 그리운 소리에서 아주 먼 곳 객지에서 느꼈을 시인의 깊은 객수(客愁)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뼈가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가 닥쳐오는 날에는 이 시가 문득 생각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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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객실 청소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의 무분별한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은 물론 본사 사무직 직원까지 동원해 청소업무에 나섰고, 하청업체인 ‘이케이맨파워’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고발당하자 현재 투입 중인 인력을 원청 소속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은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체행동권은 그야말로 노동3권 중에 가장 중심인 권리이다. 단체행동을 전제하지 않은 단체 결성이나 단체교섭은 무력한 것이어서, 이들만으로는 노사관계의 실질적 평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에서 쟁의권을 보장하고, 일부 필수공익사업장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가장 필요한데도 오히려 가장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는 권리가 바로 단체행동권이다. 원청이 손쉽게 원청 노동자를 투입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돌려막기를 하거나 신규채용을 하는 등으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C&amp;M 등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인 정부세종청사, 코레일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청업체 파업에 이처럼 원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과거 간접고용 시 대체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기존의 해석(1988. 노사32281-19968)을 뒤집고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해석(1998. 협력68140-226)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은 반드시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도 “원청회사가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2007두8881)”고 판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용역업체에서 투입인원의 결정, 업무내용과 근무시간, 인건비 등이 원청에 의해 결정되는 데다가 독자적인 노력에 의한 이윤창출과 위험부담도 없는 점을 고려해보면, 원청 역시 노조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청이 하청업체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실질적으로 중단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사용자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 실질적인 지배력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떤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그 ‘노동’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헌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헌법상 권리가 박탈되는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률로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행히도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해 20대 국회에는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원상회복하는 것, 사용자가 실질적 이익은 누리면서 의무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우지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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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청와대에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하셨고, 그 자리에서 직접 “진실과 정의”를 언급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보고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미 ‘2015 한·일합의’가 내용면에서나 절차적으로도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정확한 입장을 밝히셨고, 후속조치 마련도 촉구하셨습니다. 주권 국가의 수장으로 신속하고 단호하지만 품위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정부 부처, 국회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는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요?

단기적인 차원과 장기적 차원을 구분하고 국내 차원과 국제사회에서 할 일을 구분하는 섬세하고 진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2015 한·일합의’는 실질적으로 ‘사망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2015 한·일합의’를 기반으로 한 어떠한 주장이나 추가조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전제부터 잘못된 합의를 ‘수정·보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공식적 파기’ 혹은 ‘재협상’이라는 용어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역사 속에 고사하게 두면 됩니다.

둘째,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단순히 한·일 간 역사문제, 혹은 한·일 간 외교문제라고 생각하는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수많은 지역에서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당한 고통과 상처를 직시하고 반성할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을 공론화함으로써 ‘보편적 인권으로서 여성인권’이라는 국제 규범의 확립, 전시 성폭력과 성노예제에 대한 전 지구적 각성을 주도한 것도 다름 아닌 이 운동이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해 온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럽과 아시아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2015 한·일합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 지적해 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처음부터 한·일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상의 전제에서 볼 때, 시급한 일은 화해치유재단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일 것입니다. 이미 여성가족부 보고서에도 나왔듯, 절차를 어겨가며 너무나도 신속하게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당장 해산되어야 합니다. 부당한 ‘한·일합의’의 상징이기에 해소되어야 마땅함은 물론, 원래 취지에 맞지 않게 더 이상의 운영비가 지출되는 것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0억엔의 경우, 범정부 차원, 국회 차원의 숙의과정을 거쳐 이미 써버린 40여억원부터 채워야 합니다. 일본의 지원금 수령을 거부하신 할머니들이 계시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시민 모금을 통해 이들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한 금액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정부는 10억엔을 복구해 놓은 상태에서 일본 정부가 거부하더라도 돌려 줄 의사를 지속적으로 피력해야 합니다.

외교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미 천명한 ‘투 트랙’ 전략으로 가면 됩니다. 다만 그 전에 잘못된 합의를 통해 그간 수많은 국내외 시민들과 국가 전체에 끼친 고통과 해악에 대한 철저한 내적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자들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국익에 커다란 손실을 입히고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를 한 자들이 징계는커녕 승승장구한다면, 어떻게 일본 정부에 가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여성가족부 또한 화해치유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 10억엔 운용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인사들과, 소위 ‘합의반대론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여한 자들부터 조사하고 징계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은, 지난 30여 년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쌓아 올린 자랑스러운 운동의 역사를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하는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료수집, 아카이브, 분석과 전시, 추모사업과 역사교육을 한국 정부가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제의 심각성을 보편적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환기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시 성폭력과 인신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천명이 필요합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한때 너무도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지만, 이제 국제사회에 당당한 인권국가로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천명하고 실천하는 것, 그 길만이 과거에 얽매여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아베 정권의 후진성과 모순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상대적으로 낙후시킬 수 있는 방안입니다.

그 가슴 벅찬 일들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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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표명키로 했다. 법무부는 7일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 보고서 초안을 통해,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협약 87·98호,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29·105호를 비준하라는 UPR 권고를 ‘검토 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87호와 98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합법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비준 방침을 환영하며, 후속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8개 핵심협약 중 4개는 비준하지 않았다. 187개 회원국 가운데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중국, 마셜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노동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면치 못했고, 국내에서도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이 야기됐다. 가장 심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전교조와 전공노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14년간 합법노조의 지위를 유지해오던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이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전공노 역시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이유로 설립신고를 번번이 거부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고 집권 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협약 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선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비준 이전에도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화가 행정처분에 불과한 만큼 이를 철회하면 일단 법외노조 이전 상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노동계와 협의하고, 국회는 협약 내용과 상치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등의 개정 작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등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 자유설립주의’다. 노조라면 무조건 백안시하던 낡은 인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보수진영도 구태의연한 색깔론 따위로 노동기본권 확대를 막아설 생각은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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