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서울지역 유치원에서 진행되는 방과후 영어 프로그램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정규 유치원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이 오후에 사교육업체에서 제공하는 영어교육을 받고 있었다. 강사는 전문적인 훈련 없이 업체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파견된 사람이었다. 아이 10여명이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강사의 지시에 집단적으로 영어를 따라 했다. 그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단으로 영어 떼창을 하는 듯했고, 마치 앵무새가 인간의 말을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 과연 노랫말의 뜻이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시간에 아이들이 우리말로 뭔가를 했다면 어땠을까. 이 또래의 아이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다양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풍부한 대화가 가능한 나이다. 누가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따라 하거나 앵무새처럼 반복할 나이는 아니다. 언어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여서 혼자 내버려 둬도 우리말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다.

이 시기에 부모나 또래와의 소통은 아이들의 어휘 발달이나 언어 능력 향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어휘를 사용해서 얼마나 질적으로 풍부한 소통의 기회를 갖느냐 하는 것이 초등학교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하거나 매우 제한적인 표현만을 활용해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은 어떤 면에서 시간 낭비다.

최근 교육부의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 한마디로 영·유아를 둔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자녀의 영어에 대한 생각은 기대와 불안감으로 응축된다. 어차피 영어는 학교나 사회에 나가서 중요한 능력의 하나인데, 이왕이면 잘할 수 있도록 키워주고 싶은 것이 많은 학부모들의 욕심이며 기대다. 더구나 영어를 조기에 배우면 좋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쳐 있는 현실에서, 다른 아이들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하는 소위 ‘전일제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자신의 아이를 보면 왠지 불안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게 믿고 따라가도 되는지, 그런 불안과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주변을 살피고, 남들이 하는 것의 최소한이라도 따라가려고 한다. 이런 학부모들의 불안이나 기대 또는 경쟁의식을 제대로 해소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유아 관련 영어교육 정책은 착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제에 유아기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치원 단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영어교육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유치원 단계의 누리과정이나 초등학교 1~2학년에서 진행되는 영어교육과 일관성이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하다. 더불어,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 학부모들이 갖는 영어교육에 대한 기대나 요구 또는 불안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는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나 부작용 또는 그 양면성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와 함께 전국에 난립해 있는 전일제 어린이 영어학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한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기대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종합적인 영어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실시되는 영어교육이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지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능력을 길러줄 것인지 명확한 지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지표를 제대로 따라간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더 이상 학교나 사회에서 손해를 보거나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럴 때 학부모들은 정부나 학교를 믿고 따를 수 있으며, 조기 영어교육의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병민 | 서울대 교수·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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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여느 해처럼 방송이 해맞이를 보여주며 새해의 시작을 알렸다. 사람들은 서울 남산이나 북한산에서 혹은 한라산과 동해의 해변에서 새해 소망을 기원했다. 서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듯싶다. 가족 가운데 아무도 아프지 않고, 가장은 일자리를 계속 갖고, 자녀 취업하고, 내 집 한 칸 갖는 소박한 꿈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산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소원은 아마도 신년사에서 올해 국정 목표로 밝힌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일 게다.

우리는 서민이나 대통령의 소원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건강 및 주거복지, 일자리 창출과 가계안정 등은 삶의 질을 높여줄 기본 조건이지만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래 쌓인 절망이 해가 바뀐다고 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민들은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고은 시인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이라는 시에서 그랬다. “새해 왔다고…하루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새해도…궂은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그 가운데 안 변하는 심지 하나 들어 있어서 그 슬기 심지로…마침내 우리 세상 훤히 훤히 밝아”라고.

서민의 희망을 열어줄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정치보복’, ‘피로감’, ‘미래’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진행하는 적폐청산의 본질은 정치보복이고, 이를 지속하는 건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겨주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적폐청산’은 세상을 훤히 훤히 밝히려는 국민의 ‘슬기 심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일까? 지난날 기득권 세력이 변화에 저항하며 개혁 지향 정부를 공격하던 ‘개혁 피로감’ 프레임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구태가 ‘미래’의 이름으로 옹호되고, 변화는 ‘무질서’가 되어, 결국 개혁은 ‘쓸데없는 짓’으로 호도되었다. 기막힌 의미(意味)의 전도(顚倒)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경험에서 현재 대면하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함이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원인 파악과 문제 해결의 힘은 올바른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개혁과제라면 더욱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

과거 이른바 ‘민주정부’의 안보정책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고, 대북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견제에도 일정한 성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사회경제 분야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야박한 평가라고 타박하더라도 사실이 그렇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이나 서민 삶의 질 개선 등 사회경제 분야의 많은 개혁과제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도 부여된 과제였다. 그러나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재벌의 성은 더 강고해졌고, 재벌 위의 재벌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은 제도화되어 양산되었다. 그 결과 서민들 삶의 질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사회경제 개혁정책들이 좌초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핵심은 개혁을 반대하는 소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함께 개혁 주체들의 빈약한 철학이었다. 그로 인해 정권의 정책 기조가 수시로 바뀌고 정책 내용이 목표를 잃고 변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여 촛불 민심이 요구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넓은 안목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혁은 법과 제도에 의해 추진되기에 기득권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하고, 개혁을 바라는 집단에는 새 정부에 시간을 주는 인내가 요구된다. 개혁 주체 세력에게는 국민을 이리저리 나누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는 확고한 비전, 그리고 적절한 실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진취적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개혁의 방향과 실행이 다 바른 건 아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질 성과가 미약하면 개혁은 좌초하기 십상이다. 정책의 선후를 잘 가늠하고 촘촘하게 설계하여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뜸만 들여서는 밥이 되지 않는다. 슬슬 문재인 정부가 ‘결정 장애’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권의 주체세력이 지난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 트라우마가 하도 강해 개혁을 위한 의사결정이 느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너무 빠른 것도 문제지만 일정한 속도 유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폭넓고 튼튼한 개혁 주체세력의 역량구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의 실현이다.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이끈 국가들의 사회 작동원리는 예외 없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였다. 그리고 번영했던 국가를 멸망과 쇠퇴로 이끈 배경은 ‘나만의 홀로 성장’이란 뒤틀린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였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 실패했다고 평가받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자유경쟁’을 사회 작동원리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작동한 건 나홀로만의 성장이었다. 나홀로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져서 공동체 사회는 붕괴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름이 무엇이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한 만큼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서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사회 작동원리를 토대로 해야 한다. 국정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국민의 삶에 맞추는 개혁 정책의 각론을 개발하고 실행할 역량을 구축하여,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동반성장의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로 구현되기를 주문한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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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만원. 최저임금을 받는 20대 후반 직장인의 2017년 가계부에서 확인한 월급이다. 세 명의 사례를 조합한 것이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세전 월급은 138만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1600만원대다. 아무리 1인 가구라지만 한 달에 125만원으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다. 원룸 월세 및 관리비 40만원, 출퇴근 교통비 10만원, 통신비 10만원, 점심 포함 식비 30만원, 학자금 대출 상환 20만원을 내고 나면 15만원이 남는다. 이마저도 집이 서울이 아니라 경기권이어서 가능한 액수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그야말로 숨만 쉬고 살아도 100만원은 기본으로 필요하니, 경조사가 있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나가서 쓸 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여윳돈이 너무 없다보니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자꾸 손을 벌리게 된다며 민망해한다. 3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했는데도 모아둔 돈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달에 2만원씩 넣던 청약저축마저 찾아 쓰고 난 후에는 저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부터 빚이 없는 게 어디냐고 반문하는 사람까지 저축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올해 오른 최저임금에 기대가 크지만, 벌써부터 각종 꼼수가 난무하는 탓에 걱정이 많다.

야근을 밥먹듯 하는 남편에게 아이가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인사한다는 기혼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도 나을 게 없는 선택지다.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라 일상적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리다보니, 쉬는 시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연애는 물론이고 내 집 마련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진 등의 취미 활동을 업으로 삼으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가능성이 낮은 로또 대신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으나, 요새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당장 돈이 없다보니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점도 같았다. 요새 ‘적은 급여와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뜬다는데, 한 달에 200만원이라도 안정적으로만 벌 수 있다면 자기들도 만족하며 살 수 있겠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소설가 위화는 사람들의 이를 뽑는 치과의사를 하다가 소설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개인이 국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매달 똑같은 월급을 받던 사회주의 시절 이야기다. 위화는 하루 종일 ‘손에 강철로 된 집게를 들고 매일 여덟 시간씩 사람들의 치아를 뽑았’고,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해 성공했다. 이후에 그는 “다른 점이 있다면 치과의사는 아주 힘든 가난뱅이고 문화관 직원은 아주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때 중국에서처럼 문화관 직원으로서 글을 쓰든, 사람들의 이를 뽑든 큰 차이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로 살 수 있다면야,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이런 선택은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2년마다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선택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뿐,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불가능을 조금이라도 더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 상태다. 2017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을 통한 성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4% 이상이 “보통 이하”라고 응답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87%는 “정부가 응답자 본인보다 상위 계층의 사람을 우대한다”고 답했다.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이 ‘적게 벌어도 행복’할 기회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원한다면 그 누구라도 야근에 시달리지 않고, 적게 벌어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로, 성공하지 않은 ‘Nobody(아무나)’로 살아도 괜찮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변화했듯 한국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질문에 영화로도 답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돌파한다는 2018년 새해, “세상이 바뀌었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 묻는 77만원세대에 답을 내놓을 때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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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지 한 주가 지났다. 당신의 새해 목표는 안녕하신가? 혹시 ‘내 목표가 뭐였더라’, 가물가물하다면 굳이 목표를 이루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그 목표가 당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절실한 목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벌써부터 포기하기엔 2018년이 너무 많이 남았다.

■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을 위한 동기

일상에서 ‘동기’는 “수험생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할 때처럼 ‘오래 지속되는 동기’를 뜻한다. 반면 뇌과학에서 ‘동기’는 즉각적인 행동의 유발을 뜻한다. 신경조절물질인 도파민은 동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도파민의 분비가 많을수록 신경 네트워크가 움직임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괴사하는 질병인 파킨슨병에 걸리면 움직임을 시작하기 어려워지고, 동작도 느려진다. 반면에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면 충동적이고 성급한 행동을 하기 쉽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도파민은 언제 분비될까? 달리 말해, 뇌는 언제 실천하기 쉬운, 동기를 부여받은 상태가 될까? 도파민은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확인될 때 분비된다. 예를 들어보자.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 다음에 먹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 따라서 먹이가 주어지는 시점이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확인되는 시점이며 도파민도 이때 분비된다. 하지만 종을 울린 다음에 먹이를 주는 훈련을 반복하면, 종소리가 들린 뒤에 먹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종소리가 들린 시점이 종소리를 듣기 전보다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리라고 확인되는 시점이며, 도파민도 이때 분비된다. 이처럼 도파민은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주어질 때 분비되어,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그런데 같은 크기의 보상이라도 나중에 주어질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다. 예컨대 종소리가 들린 지 5초 뒤에 맛있는 간식이 나오고, 노크 소리가 들린 지 10초 뒤에 똑같은 간식이 나오는 경우, 종소리가 들렸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보다 더 많다. 이처럼 도파민은 행동에 미치는 효과가 즉각적이고, 먼 미래에 주어질 보상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

이 사실을 종합해 보면, 먼 미래에 대한 계획과 비장한 각오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각오와 잠시 후의 만족이 목표를 이루는 데 더 유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lt;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gt;라는 책에서 발레리나 강수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지만 발레 연습을 하겠다는 한순간의 선택이 그다음의 몇 시간을 결정한다. 먼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막연하지만 잠시 후 연습을 마쳤을 때의 뿌듯함을 생각하면 연습하기로 결정하기도 수월하다. 

그렇게 작은 선택이 만든 몇 시간과, 몇 시간 뒤의 작은 만족이 모여서 365일 뒤에 차이를 만든다.

■ 해낸 것에 대한 보상과 탐구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실행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계획이 틀어지게 마련이라면, 계획대로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도파민을 생각해 보자. 도파민은 강화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화학습이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행동은 더 자주 하면서 능숙해지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행동은 점점 덜 하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도파민은 예상보다 보상이 클 때 분비되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보상이 예상보다 못할 때는 일시적으로 분비를 멈춰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강화학습을 이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 박약을 타박하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데는 익숙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에는 인색하다. 작심삼일에 그칠 수밖에 없는 피드백을 주면서 의지만 타박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잘 줄 수 있을까? 피드백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예상’에 해당하는 기준점을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완벽한 계획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나의 행동이 부족할지 몰라도, 지난 주나 작년의 행동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오늘의 행동이 더 나은 것일 수 있다. 어제보다 모든 측면에서 낫지는 않더라도, 한두 가지 측면에서는 개선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진척이 느껴져야 강화학습이 일어나고, 재미도 있다. 물론 긍정적인 피드백만으로는 부족하다.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는 새로운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절묘하게도, 동물들은 도파민의 분비가 높을 때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행동이 늘어나는 반면, 도파민의 분비가 낮을 때는 이전에 하던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목표를 추진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을 탐색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이런 경험을 이미 해봤다. 청와대 앞을 막자 시내로 나서고,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방이 계속되자 도로를 깨끗하게 치우고, 방송을 왜곡하자 독립 언론으로 맞서고, 다양한 비폭력 시위 방법을 연구하며, 멈추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개선돼 왔다. 그리고 마침내 돌 하나 던지지 않고 대통령을 바꿨다.

■ 흔들리더라도, 꾸준히 함께

나는 3~4주 전부터 이달에 새해 목표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플랭크를 해 왔다. 목표는 1~2일에 한 번이었지만, 못하고 지나가더라도 끈을 놓지는 않으면서 결과를 기록하고, 친구들과 공유해왔다. 처음 시작할 때 1분을 간신히 채웠는데, 어제 12번째로 하면서 2분을 넘겼다. 그러니 멈추는 듯 퇴보하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함께 가자. 혹시 아는가, 작년에 우리가 보았던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지.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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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자료 번역을 부탁해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줄 거냐 하니 ‘우리 사이에’라며 얼버무리더군요. 그리고 또 얼마 전 다른 친구가 교재 편집을 부탁하며 얼마면 되겠냐고 해서 ‘친구끼리!’로 일축하고 그냥 해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친구 사이에 이런 온도차가 나는 걸까요. 당연히 한 친구는 자기 필요할 때만 나타났고 다른 친구는 안부도 물어주며 여러모로 제게 마음과 힘을 써주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빈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많이 씁니다. 빌 공(空) 자(字)의 발음이 ‘공짜’기 때문에 머리숱도 빈다고 놀리는 것이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는 사람도 정작 자기 필요할 때는 ‘우리 사이에’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앞서의 온도차에서 보듯, 거저 얻은 게 사실 알고 보면 그간 자신이 베푼 것들에 대한 신세 갚음에 다름 아닙니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거나 환장하고 덤비는 사람에게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짜 바라기는 무당의 서방’이라고. 무당의 서방이라서 공짜로 얻길 바라느냐는 말입니다. 옛날에 무당은 백정, 광대 등과 더불어 여덟 천민 중 하나였고 신(神)을 받기 위해 몇 달씩 금욕하고 입산하기도 해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무악(巫樂)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백수건달을 사내로 방패 삼아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서방들은 무당이 번 돈으로 빈둥거리며 살았다죠.

자기 위치나 거절 못할 인정을 이용해 재능기부를 강요하거나 ‘우리가 남이냐’며 허투루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공짜는 기부지만 요구하면 갈취입니다. 공짜 좋아하다간 삼켰더니 양잿물이라 밥통까지 토해내야 하거나, 제 자리가 빈자리 될 수도 있습니다. 공(空)자 뒤엔 실(實)이 아닌 허(虛)가 오는 법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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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에서 교육은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자아실현의 과정이며, 공동체를 기준으로 보면 탁월한 인재 육성을 위한 훈련의 장이다. 이를 위해 기대소득이 높은 직장이나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이 인정되고, 사회는 최선의 인재를 얻음으로써 공익이 실현된다. 이런 낙관적인 가설은 현실에서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우선 경쟁의 제반 요건인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교육 환경 등 여러 격차로 인해 출발부터 도착까지 많은 학생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와 학생 등 공동체 구성원은 수많은 불평등을 체험한다. 크게 보면 사회 역시 목적 달성에 실패한다. 교육으로 공동체 운영을 위한 이상적 덕목을 갖춘 인재를 얻어야 함에도 환경 차이로 인해 귀중한 인적 자원이 일부 사장된 데 반해 도덕적 훈련이 부족한 자원 일부가 손쉽게 승리를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불만과 갈등이 가중되는 보다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제도, 특히 대학입시제도는 개인과 사회의 이질적 목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국민들 다수는 대입 전형에 대한 불만 수준이 높다. 수시 전형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등 불공정하다는 것이 입시제도를 경험한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는 도덕적, 지적 훈련이 체계화된 인재를 얻기 어렵다. 물론 사회 역시 이상적 시스템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신 성적을 근간으로 구성되는 현행 수시 전형이 문제가 있어도 객관식 문제를 고집하기는 어렵다. 사회는 미래를 짊어질 인재가 필요한 만큼 교육 투자 이후 나타나는 다수의 바람직한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학교 수업 정상화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교육과정 운영은 양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철저히 파편화된 입시생이나 학부모들이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제도는 발표하면서도 제도가 함의하는 교육적 당위성이나 교육 철학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고민하는 존재도 지극히 적다. 도덕적 기반이 약한 데다 수용자들에 대한 감성적 배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즉각 반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제도가 신뢰를 상실하는 악순환만 반복되었다. 물론 공동체 교육의 이상을 수용한다고 해도 경쟁에 매몰된 개인이 장기적인 안목을 지니기도 어렵다.

교육제도는 경쟁 주체의 핵심 불만을 제거하면서 장기적인 교육 목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확산하는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공정성을 호소하는 개인의 불만부터 읽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불신을 방치한 상태에서 어떤 시스템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이와 병행해 미래 인재 육성의 이상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과정 역시 물적 시스템으로 마련해 구성원의 평가를 받도록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lt;니코마코스 윤리학&gt;에서 탁월성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지속적인 훈육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교육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성취욕구와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충족하는 교육제도는 개인과 사회 양자 간 지속적인 검증을 통해 단련되어야 한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등을 돌린, 우애(philia)가 사라진 현 상황에서 제도라는 저울은 최선의 정밀성을 기초로 구성된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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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대학가에도 운동권이 있었다. 학생회는 때가 되면 4·19를 기념하고 6월 항쟁을 기념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선배들, 시민과 노동자를 기리는 집회에서 외쳐진 구호 중에는 “김대중 정권 퇴진” “노무현 정권 퇴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짝을 맞춰 외쳐진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철폐” 같은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하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을 피해 학교로 숨어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은 시설노동자(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해 집회를 벌였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학가에서 외쳐지던 구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1987 > 연희역 김태리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든 것은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 때문이다. <1987>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기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노제에 참여했던 우상호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나란히 영화관을 찾았다. 이한열 역의 강동원씨와 나란히 무대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 항쟁”이라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2017년 촛불 항쟁=문재인 정권’의 등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전 정권이 물려준 외환위기의 유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충실했다.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삶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추락했다. 

‘꾸준한 나빠짐’의 결과 1987년 투쟁이 그토록 열망했던 직선제에 의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은 우리가 상상 못한 스케일로 국토를 망쳐놨고,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 못할 수준으로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더 이상 나빠지는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민의 힘에 의해서 촛불항쟁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 속에는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고, 지금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된 386들이 해결 못한 ‘미완의 과제’들인 것이다. 

영화 <1987>은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1987년 항쟁을 특정 사건과 인물들의 영웅적 스토리로 요약해버리는 데 있다. ‘연희’로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표현되지만, 노동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87년 항쟁이 현재 완성된 듯한 착시현상이다. 영화는 이한열 열사의 노제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는 가운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며 막을 내린다. 6월 항쟁의 결과로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 같다. 이 착시현상은 영화 자체의 태도이자 <1987>을 소비하고 추억하는 386세대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1987>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현실의 어떤 문제도 환기시키지 못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직도 차별에 시달리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성소수자는 아직 ‘반대’되는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1987>을 보고 추억에 빠지기엔 이르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싸움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1987년을 기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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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나의 몸도 나에겐 대륙이다. 좁다면 좁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모르는 게 더 압도적이다. 넓다면 또한 얼마나 넓은 곳이더냐. 나에게 속한 곳이라지만 아직도 못 본 구석이 너무 많다. 나는 여태껏 나의 전모를 한꺼번에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해가 교차하는 날에 지붕 아래 맥없이 앉아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무실 뒤 심학산으로 갔다. 정유년의 마지막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약천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느라 조금 우회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로 꼭대기가 빼곡했다.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지는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은 늘 좋다.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행인들의 발길에 묻히기 마련이다. 산에서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산에 가끔 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싶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 나도 산에서 사는 날이 올까. 그땐 저 나무들도 진짜 식구처럼 여겨질까.

울산에 사는 친구가 근사한 연하장을 카톡에 올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감나무와 짧은 신년사였다. 가끔 하늘도 보고 살자. 말도 사진도 작품이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할 때의 3일은 제법 긴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짙은 하늘도 볼 겸 심학산에 다시 올랐다. 해 바뀌고 사흘 만에 가는 무술년 첫 산행.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시선이 짧아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둑해지면 나무들은 웅크린 짐승처럼 변한다. 소나무, 신갈나무 사이로 노간주나무가 서 있다. 말쑥하게 커서 차렷한 모범생 같다. 바늘처럼 뾰쪽한 잎에 찔리면 따끔따끔 아프다. 콩알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렸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코뚜레로 쓰였다는 노간주나무. 큰길로 내려서자 하늘이 꺼진 뒤 ‘쬐끄만’ 등들이 켜졌다.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불판에 둘러앉아 있다. 소는 고기가 되고나서야 코뚜레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모가지에 퉁소를 장착한 듯 새들이 크게 울며 날아갔다. 노간주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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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수가 적폐청산을 원하고 있다. 청산범위는 과거 10년 동안 자행된 국기문란 사건이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촛불이 만든 정부는 박근혜 다음정부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 위의 시대정부다. 산업화·민주화시대에 잉태된 관행들이 시스템·가치·문화의 오작동에 관여한 지 오래다. 낡은 관행은 고용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수도권과 지방,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뒤에 숨어서 조금씩 몸집을 불렸다. 이러한 다층적이고 전방위적인 갈등을 균열구조로 고착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해 왔다. 적폐는 취업면접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고졸청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형제, 맞벌이 부모의 늦은 귀가로 해가 저물어도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기약 없이 월급날만 바라보고 사는 지하단칸방 가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압축성장의 명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공정한 기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최소한의 주거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자라나는 꿈나무의 미래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국가, 중소기업의 아픔을 외면하는 국가가 되었다. 없는 자가 죄인이 되는 세상, 정직하게 사는 자가 손해를 보는 세상,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이 많아야 성공하는 세상, 이런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새로운 규칙을 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물론이고 기업, 언론, 종교, 노조, 학계, 시민단체 모두가 적폐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적폐는 어떻게 광범위한 동맹을 맺고, 공공성약화와 소득양극화를 배설하며 생존할 수 있었을까. 진영논리와 이념대립 그리고 권위주의가 적폐와 공생을 도모했다. 적폐의 근원 중 하나가 정치무관심이다. 낡은 관행이 쌓이고 국기문란 사건이 터지는데, 정치무관심은 좋은 그늘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다. 누군가 6개월 또는 1~2년 후 적폐청산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2가지다.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방식, 즉 사람들의 핏빛 절규와 국가적 참화를 거친 후, 통제 가능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끌어안고 어쩔 수 없이 사회적 합의로 끌려가는 길. 또 하나의 길은 우리 스스로가 성찰적 자세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길이다. 

적폐는 증명하기도 어렵고, 때론 법의 잣대도 피해가는 초법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다. 과거 정부의 국기문란 사건이 법적종결을 맞더라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도를 바꾸어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5년 국민통합과 화해증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했다. 파시즘적 인종 살해의 과거청산을 위해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이들을 사면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우리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누가, 어떤 권위와 방식으로 적폐를 규정하고 해소할 것이며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어떤 관행들이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국민토론을 시작해 보자. 토론결과를 바탕으로 적폐청산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특별법을 제정하자. 용서를 구하면 그 죗값을 집행유예와 벌금 등으로 대신 묻고, 반복되는 실수엔 작은 죄라도 엄중한 형벌을 약속받자. 적폐청산과 통합정치가 따로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적폐청산은 궁극적으로 통합정치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적폐청산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재평가인 동시에,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해야 좋은 미래가 올 수 있다. 촛불이 꺼지고 다시 정치무관심의 시대가 온다면, 적폐는 번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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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범근은 매일 서울 대학로에 나온다. 부동산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한 옛 샘터 사옥 내에 다른 스타트업과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다. 스물한 살의 그는 철저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눈높이에 맞춰 뉴스를 전달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새해 처음 발행된 기자협회보는 ‘독자 누군지도 모르고…그 사이 독자는 언론에 등 돌렸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동안 언론은 독자를 대변한다고 목청껏 부르짖었지만 정작 ‘우리 독자’가 누군지 잘 모른다. ‘독자를 위해서’라는 공허한 구호 뒤에 숨어 언론이 말하고 싶은 주장과 의견만 날랐을 뿐이다. 종이신문을 찍고 뉴스가 전파를 타면 볼 사람들은 다 볼 것이라고 자신했다.” 표현이 심한 감은 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 짬뽕 먹으며 적폐청산이 뭔지, 짜장 비비며 방송파업 왜 하는지
· 이슈들 쉽게 풀어주는 동영상 제작

“타깃층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태도가 본질이라고 봐요. ‘설마 이것도 모르겠어?’ 싶을 때도 모른다고 전제하고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1997년생이 말했다. 얼얼했다. 그가 태어나기 일곱 해 전부터 나는 기자였다.

국범근(21). 미디어 스타트업 ‘쥐픽쳐스’의 자칭타칭 ‘최고존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휴학 중.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시사 이슈를 다루는 ‘쥐픽쳐스’, 사랑과 성을 다루는 ‘젤리플’ 채널을 운영한다. 모두 ‘십말이초(국범근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을 일컫는 말)’가 타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보면 ‘어린-어른 연착륙 커뮤니티 플랫폼’이란 소개말이 걸려 있다. 쥐픽쳐스의 핵심 상품은 ‘이슈먹방’과 ‘인생은 실전이야’다. 이슈먹방은 “파편적 정보만 돌아다녀 혼란스러운 이슈를 하나로 묶어 배경과 맥락의 이해를 돕는”(국범근 설명) 동영상 콘텐츠다.

‘적폐청산이 뭐야? 국정원 적폐 총정리’ 편에서 국범근은 짬뽕을 먹으며 적폐청산을 설명한다. “적폐? 누적된 폐단! 즉 전부터 있어왔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거야. 만약 어떤 원룸에 개히키코모리 혼모노가 들어와서 방에다 간장 뿌리고 이러면서 1년 가까이 청소를 안 했다고 해보자. 다음 세입자가 그 방에 들어와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청소기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리모델링 수준으로 방을 싹 다 갈아엎어야 되겠지?” 식이다. (※개히키코모리 혼모노에서 ‘개’는 강조 의미의 접두사이며, 히키코모리 혼모노는 은둔형 외톨이로 몰입정도가 심해 주변에 피해를 주는 ‘덕후’를 가리킨다.)

‘쥐픽쳐스’가 만든 ‘6월 항쟁 한 방에 정리! 1987 보기 전에 봐야할 영상’. ‘먹방’ 컨셉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9월 게시한 ‘MBC 파업문제 한방에 정리’ 영상은 쟁반짜장 먹방으로 시작한다. “요즘 무한도전 안 해서 TV 볼 게 없네. 응? 뭐 MBC 파업인가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솔직히 파업은 뭔지 알지? 몰라…? 아 ㅇㅋㅇㅋ… 파업은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걸 이뤄내기 위해서 일부러 한꺼번에 일을 멈추는 거야.” 7분짜리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합친 조회수가 110만을 넘었다. ‘4차 산업혁명 한 번에 이해하기’는 조회수 35만, ‘<1987>보기 전에 6월 항쟁 알고 가자’는 23만을 넘어섰다. ‘인생은 실전이야’는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주지만 실생활에선 필요한 ‘리빙 포인트’를 일러준다. 지난 4일 올린 ‘술 먹기 시작한 친구들에게 필요한 개꿀팁들’은 나흘 만에 36만을 찍었다.

·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다’ 비판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 젊은 미디어 대표의 당찬 신념

“십말이초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에요. 관심을 갖더라도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높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될지 모르겠고, 미디어는 불친절하고…. 연예인 얘기만 좋아하고 연성 뉴스에만 관심 가질 거다, 이런 인식은 편견이에요.”

- 이슈먹방에서 반말을 쓰고 비속어도 나오던데요.

“존댓말 하다보면 뭔가 무게 잡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속어는 의미를 강조할 때만 써요. 항상 맥락을 고려합니다.”

- 반말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이에요. 신선하다는 쪽도 있고, 어떤 분들에겐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라고 비판할 수 있는데요. ‘정말 몰랐던 건데 쉽게 설명해주니 좋다’ 이런 반응도 있으니까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죠. 제 역할은 기성세대와 십말이초 사이에 징검다리를 놔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시 얼얼했다.)

‘10대에게 뉴스 읽어주는 남자’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가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범근은 고교 2학년 때 교내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대회에 참가해 2등상을 탔다.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한마디로 “필 받았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유머 영상 위주였다. 구글 뉴스랩 펠로십 1기를 수료한 뒤 2016년 시사콘텐츠 ‘범근뉴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미디어 전문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로부터 4000만원을 투자받았다. 스타트업을 출범시키며 법인 대표가 됐다.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사업자등록증도 있고, 따박따박 사업소득세도 내고, 직원 월급도 주고…얼추 형식은 소꿉놀이하듯 갖췄는데…정작 무슨 콘텐츠를 만들고 팔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영화 <택시운전사>가 돌파구가 됐다. 친구들이 ‘재밌고 감동적이고 많이 울었는데…’ 하면서도 역사적 맥락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과 맥락을 쉽게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나침반을 얻었다. ‘10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

· “법치 가르치지만 실현 막는 학교… 학생들, 세상과 단절됐다 성인 돼”
· “그 공백 교육·미디어가 메워줘야”

국범근은 고3 때도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읽었다. 선생님들은 고3이 공부나 할 것이지 그런 책을 왜 읽느냐고 타박했다. “참 아이러니죠. 저는 공부한다고 이런 책을 읽는 건데…. 그분들이 말하는 공부란, 자유한국당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처럼, 원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난, 일신을 위한 스킬 연마로 돼있는 거죠….”

고2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복이 너무 불편하다는 학생들 원성에 학교 측에서 생활복을 따로 만들어 입도록 했다. 문제는 교내에선 생활복을 입더라도 교문으로 등교할 때는 하복을 입고 들어오라는 원칙이었다. 2학년 때 학급회장이던 그는 대의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대의원회에서도 고치자는 데 의견을 모아 학교 측에 건의했다. 적용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전교회장과 함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교장은 역정을 냈다. 감히 학생들이 교장에게 질문하고 주장하고 도전하느냐는 태도로 찍어 눌렀다. “학교에서 법치를 가르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배우면 뭐해요…. 민주적으로 결정이 됐는데도 실현이 안되잖아요. 그때 학교에 다닌 친구들의 기억 속에 민주주의나 법치가 어떻게 남아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학교는 ‘정치적 무균지대’를 만드는 데 집착해 근대적 시민을 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학교에선 입시공부만 하라면서 세상과 분리, 단절시켜 놓죠. ‘지금은 몰라도 돼. 대학 가면 다 알게 되니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해’ 합니다. 사회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세상과 단절된 채 보냈는데, 성인이 되면 갑자기 책임감을 요구받아요. 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지 못하느냐는 타박도 듣죠. 그 공백이 심각해요. 공백을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교육과 미디어인데, 둘 다 잘 메꿔주지 못하고 있어요.”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국범근은 친절, 맥락, 인과관계 같은 표현을 즐겨 쓴다. “십말이초의 니즈(needs)를 잘 긁어주는 친절한 미디어가 부족해요. 저도 처음엔 영상 분량이 5분 넘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길어서 아무도 안 볼 거다 생각했는데….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자꾸 길어져요. 이슈먹방은 기본이 7분 정도 돼요. 길면 10분 넘어가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봐요. 중요한 건 얼마나 퀄리티 있는 정보를, 얼마나 타당한 인과관계로 묶어내느냐 같아요. 그런 훈련이 된 사람이 좋은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올드미디어 종사자가 물었다. “십말이초는 왜 신문을 안 읽나요?” “굳이 볼 이유가 없어서죠.”

다시 물었다. “젊은 독자를 새로 확보하는 일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까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절함’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해보면…. 십말이초가 기성언론에 특별히 반감이 있어 소비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소비할 겁니다.”

김민아 논설위원이 쓰는 ‘후 스토리’에서 ‘후’는 who(누구)·後(뒤편)·厚(두터움)를 모두  뜻합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슈의 뒤편과 속내를 두루 살필 것입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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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