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 수많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취업난이 가중되는 요즘 전쟁을 하다시피 본인의 구슬을 만든다. 어학, 자격증, 사회봉사, 인턴까지. 그러나 정작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구슬을 만든다.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이 바쁜 학창생활을 보낸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졸업시즌에는 결국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내가 무얼 잘할까, 과연 이 일자리가 내가 원하는 자리였는가. 그리고 모두 대기업과 공무원시험에 열을 올리게 된다. 맞다. 근본적으로는 저 두 일자리가 높은 보수와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본인 적성과 맞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로 입사 초기에 사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근무 연수가 늘어날수록 힘들어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한편 본인의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직장을 선택한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보람을 느끼며 사회인으로서 성장하고 결국 전문가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 구슬을 꿰어 줄 사람이 있는가? 또한 현재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경력단절여성, 청년 재취업과 같은 공공부문 교육사업에서 다양한 학생들의 진로와 스펙 그리고 산업동향에 따른 일자리 분석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없다.

우리의 직업 교육을 돌아보자. 우리는 단지 교육시설과 과정 등 하드웨어 투자만이 능사인 줄 안다. 피교육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관과 애로, 이를 극복하고 직업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가에 대한 투자는 없다. 얼마 전 방문한 호주의 기술전문학교(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는 최상의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관으로 손꼽힌다. 여기서는 학생들의 개별적인 커리어를 관리하여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전문가가 있다. 장기간 학생들과 상담하며, 자격증과 학과성적, 본인의 적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여 적정한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학생이 교과에 대해 적성이 없거나 흥미를 잃을 경우 이를 담당 교수와 의논하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시설이 낡은 점이었다. 학교의 외형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피교육생 즉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일자리위원회를 통한 청년실업 개선과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한 취업 취약계층의 재취업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대부분 교육 시설투자에 집중되어있다. 이에 일자리 전문가의 확충을 제안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주장 외에도 산업의 불균형한 인력배치에 대한 적정한 해소 방안 중 하나라고 본다. 다양한 학생들의 진로를 이해하고 여기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대기업과 공무원으로 쏠려있는 현재의 구직활동의 과녁을 넓힐 수 있으리라 본다.

한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다.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면 전문가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잠재적으로는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재목이 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상담전문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아른거린다. “장기간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하여 과정을 무사히 마쳐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김용현 |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부산캠퍼스 자동차과>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차는 높은 건물이 비죽비죽 솟아있는 혁신도시를 빠져나가 휑하게 비어있는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벼를 베어낸 자리에 가지런히 남아있는 밑동에는 새파랗게 그루풀이 솟아나 있었다. 한겨울에도 땅 밑은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날마다 그 길을 달려 출퇴근한다는 이는 이곳에 좀비들만 산다고 말했다. 굳이 되묻지 않았는데도 그는 자꾸 대명천지에 좀비를 끄집어냈다. 창밖으로는 오래된 간판이 무심하게 걸려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평일 대낮인데도 가게는 대개 문을 열지 않았고,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동네들은 밤에나 어슬렁대는 그림자가 보이죠. 정말 좀비들이 사는 거죠.”

그가 말하는 좀비는 분명 밤마다 텅 비어있는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살지도 죽지도 못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평생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느라 곱은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우두커니 TV 앞에 앉아 졸다 깨는 누군가의 잊힌 어머니, 아버지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도시로 나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 말하는가? 그게 누구든 산 자를 좀비라고 하는 게 거슬려 대꾸할 수 없었다.

다행히 차는 마을 끝에 있는 중학교에 닿았다. 학교를 안내하는 선생님은 옛날에는 무척 큰 학교였지만, 이제는 떠날 수 없는 아이들만 남았다고 했다. 그의 말속에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가련함이 묻어 나왔다. 그 또한 차를 타고 오면서 내내 들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별 얘기도 아닌 얘기를 듣겠다고 강당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별처럼 반짝였다. 아이들은 당당하게 묻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수요일 급식이 가장 맛있으니까 꼭 점심을 먹고 가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모두 떠난 자리, 그루터기만 남아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 아이들은 싹을 틔우고, 힘차게 줄기를 뻗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 높은 건물 틈을 메우는 도시의 불빛은 쓸쓸해 보였다. 쫓기듯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긴 그림자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 좀비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좀비 영화에서 좀비들이 맹활약하는 곳은 대개 도시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며칠 전 영화 <1987>을 보았다. 필자에게 있어서 1987년은 아주 특별한 한 해이기도 하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고문당하고 살해된 학생 박종철은 필자가 대학시절 이끌었던 ‘대학문화연구회’의 후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이 다가올 때까지 정보기관과 경찰을 장악하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민주화운동을 질식시켰다.

영화 <1987>의 실제 모델인 안유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오른쪽)과 한재동 전 교도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박종철기념관 5층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과거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이었던 이곳에서 1987년 1월14일 박종철씨가 물고문을 받던 도중 숨졌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1987년 벽두에 터져 나온 박종철 고문살해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잔혹성을 모든 국민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시켰고, 민주인사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정권퇴진운동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그해 6월9일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침내 전두환 정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6·29 항복 선언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로나마 민주시대를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귀하고 안타까운 죽음 덕분이다. 그들의 죽음은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저지르는 극단적인 만행을 잘 보여주었고, 이러한 만행을 생생히 목격한 평범한 시민들의 총궐기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박종철과 이한열 외에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의 국민에게서 잊혀졌고, 외면당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그들은 촉망받는 학생이 아니었고, 경찰이 직접 고문하다가 죽이거나 최루탄을 쏘아 죽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전두환 정권에 의해 타살되었다.

전두환은 무자비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집권한 후 정권을 스스로 미화하는 일에 크게 공을 들였다. 전두환은 취임사에서 국정지표의 하나로 ‘복지사회 실현’을 내세운 후 전두환식 복지사회 실현에 매진하였다. 그는 1981년 4월10일 총리에게 지시하여 전국의 부랑인들을 모두 잡아가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길거리의 부랑인과 노숙인을 깡그리 잡아가두고 나면 대한민국의 길거리는 모두 말쑥한 차림의 선남선녀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복지사회가 제대로 실현된 나라였다.

형제복지원은 3000여명이 수용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부랑인시설이었다. 말이 부랑인시설이지 부랑인이 전혀 아닌 멀쩡한 어린아이들과 사회인들도 수백명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그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기약 없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병사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시로 맞아 죽었으며, 죽지는 않았어도 정신과 육체에 심각한 장애를 얻었다.

필자는 울산지청 검사로 재직하면서 1987년 1월17일, 그러니까 대학 동아리 후배 박종철이 전두환에 의해 살해당한 날로부터 3일 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일당을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하였다. 그때로부터 5개월 남짓 뒤 박인근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8178만원을 선고받았지만, 그 뒤 이어진 재판에서 대법원은 전두환 정권의 충견 역할을 자임하여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박인근의 형량은 2년6월로 줄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985년과 1986년에만 각각 90명 정도가 죽었다. 필자는 검찰지휘부의 악랄한 수사방해 때문에 그 진상을 밝힐 수는 없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그 절반 또는 그 이상이 맞아 죽은 것으로 판단한다. 필자가 한참 사건을 수사 중일 때조차 형제복지원에서 폭행치사 사건이 2건 발생했다. 형제복지원 등 부랑인시설은 물론 민간업체가 운영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설의 운영은 위헌적이기는 하지만 내무부훈령이라는 국가의 법령에 따른 것이었고, 운영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였고 국가의 감독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은 그런 시설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설치하였으며 수용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전두환 정권 때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은 전두환식 ‘복지사회 실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 시설들 덕분에 길거리에서 노숙인이나 부랑인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세상은 그 허울이 아름답게 비쳤다. 우리는 전두환 정권 시절 전국의 부랑인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잔혹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의 부랑인시설에 끌려가 희생되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보호를 받아야 했던 사람들 아닐까. 지금이라도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조사와 함께 적절한 보상을 실시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관련 업계 및 정부부처의 관심과 인력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관광과 교통 혜택이 결합된 한정판 카드 및 패스를 선보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장을 축소 구현한 ‘상상 스타디움’을 공개하는 등 새로운 한국 방문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 관광 시장이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 기대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기준 방한 외국인 수는 사상 처음으로 1700만명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19조4000억원의 관광수입과 34조5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를 얻고, 취업유발인원이 37만4000명에 달하는 등 내수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외국인 관광 시장의 확대는 국력 신장으로 직결되는 만큼, 이번 동계올림픽 준비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간 숫자에만 치중했던 관광정책이 이번에 제대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해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얼마나 방문했고, 각 국가별 관광객은 몇 명이고,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갔는지 등 숫자에 주로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31일 강원도 강릉 경포대에서 시민들이 2017년 마지막 일출을 보고 있다. 해가 나면서 해변에 설치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오륜기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단순히 스포츠 올림픽에 그치지 않고 ‘관광 올림픽’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히 관광 콘텐츠의 경쟁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성공적인 관광 올림픽이란 일회성 방문으로 숫자 늘리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관광 콘텐츠 개발을 바탕으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 이번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의 주요 관광자원, 인문자연 자산을 활용하여 ‘대관령 눈꽃축제’ ‘평창 겨울 음악제’ ‘한옥 숙박 체험’ ‘강원 템플스테이’ 등 각양각색의 관광 아이템들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외국인 관광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코스와 더불어 비즈니스, 의료, 레저, 엔터테인먼트 등 문화와 관광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콘텐츠들을 구축한다면 특별하고,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더욱 가까이에서 한류를 느낄 수 있는 한류 체험 상품, 장인의 기술이 돋보이는 무형문화재, 성수동 수제화 거리 등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은 물론, 11대째 내려오는 한옥 가옥,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의 가풍 및 예절 체험,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된장·고추장 등 한국만의 음식문화까지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채롭게 엮어 낸다면 한국을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국내 관광산업은 외형적인 관광 인프라 못지않게, 콘텐츠가 지닌 스토리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이 되어 많은 것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인 관광 가치를 지닌 행사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질적 성장을 위한 관광 콘텐츠들의 개발과 관광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명진 | 코스모진여행사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시민과학은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시민과학자들은 간단한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를 스마트폰을 통해 연구자에게 제공하거나, 웹에 올라온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단순한 컴퓨터게임 참여를 통해 연구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이로 인해 과학자들은 연구의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과학 연구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강수량과 적설량을 측정하거나 대기오염물질이나 미세먼지 농도 측정, 녹조나 적조 모니터링을 통한 수질관리 등 환경생태분야뿐 아니라 위성 개발과 새로운 별이나 우주신호를 찾는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생물도감 작성이나 질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첨단 과학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과학센터란 이름을 단 기관들 거의 모두 과학 프로젝트 참여보다는 대부분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공개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화여대 장이권 교수의 수원청개구리 프로젝트나 녹색연합이 주관한 미세먼지 측정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대표적 시민과학의 예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시민과학의 보급에 많은 인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한국연구재단의 홈페이지에는 시민과학의 핵심어를 찾을 수 없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참여마당은 전시 관람과 교육 프로그램 예약 정도에 그치고 있고, 환경부가 내놓은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보면 위성과 항공기를 통한 입체적 미세먼지 분석만이 나와 있을 뿐 시민과학이 설 자리는 역시 보이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시점이다.

시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앞으로 조류독감, 미세먼지, 녹조 및 적조 경보 시스템, 동식물의 생태관리 등 많은 과학 연구활동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국가는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엄치용 |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95년 전 1월12일 서울(경성) 한가운데서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다. 한용운·안창호 등 많은 애국지사를 탄압한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투척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본은 종전보다 3배나 많은 경찰병력을 증강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신문에서는 경찰이 시내 곳곳에 경계망을 펼쳤지만 범인을 잡지 못한 사실을 보도했다. 일제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은 의열단원 김상옥이었다.

영화 <밀정>에서 짧게나마 김상옥 열사의 무장투쟁이 소개되었다. 사실 그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철물점을 운영했던 자수성가한 청년 CEO였다. 직접 디자인한 말총모자는 크게 유행했고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항하여 일화배척과 국산품장려운동에 앞장섰다. 3·1 운동 이후에는 혁신공보를 만들어 독립운동 소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논설을 발행했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의열단 가입 후 서울로 돌아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것이었다. 의거 후 김상옥 열사는 대범하게도 서울에 계속 머물며 사이토 총독 저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은신처가 다시 발각되어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1월22일 서울 4대 경찰서에서 1000여명의 무장경찰이 은신처를 포위했다. 3시간을 넘는 총격전 끝에 수십명의 일본 경찰을 사살했다. 열사는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상해에서 동지들에게 ‘자결할지언정 포로가 되지는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며 10일간의 독립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가족들은 열사의 몸에서 11발의 총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사의 뜻과 기개를 기리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김윤형 | 서울 성북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새해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마치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 정책추진인 것처럼 비판하지만 사실 최저임금 인상은 대선 당시 모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고, 박근혜 정부의 최근 3년간 평균 인상률을 적용해도 2023년이면 9990원으로 인상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가 목표로 하는 최저임금 1만원은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당장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부담이겠지만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이 양산된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진통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책 운영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은 그 방향에서 옳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소비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선순환하기까지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완대책이 함께 가야 한다.

정규직 임금구조의 개편 없이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켜 주는 모바일 직불카드 전면 도입과 같은 실효성 있고 체감도 높은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영업자의 가장 큰 부담인 임대료 관련 정책과 법령이 조기에 추진, 입법되지 못하고, 최저임금 인상 못지않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경감하고 지원하려 노력한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정무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문제도 노사관계의 측면에서만 본 아쉬움이 있다. 제빵기사가 본사직원이 될 경우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의 갑을관계에 미칠 영향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일자리 창출 정책은 좋다. 그러나 공공부문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 공공부문이 양질의 대국민서비스와 일자리를 담보하는 것은 옳지만 존재하는 비효율과 기득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개혁을 해야 국민의 지지가 지속된다. 공공부문이 혁신과 효율이 배제된 채 단지 안정된 직장이 되고, 그런 공공부문에 젊은 인재가 몰리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 산업이 강조된다. 그러나 누차 강조하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5대 기간산업이 중요하고, 그 비중은 향후 최소한 10년은 대체 불가다.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5대 기간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정책적 노력이 조화되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벤처 지원 정책과 함께 5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대기업의 역할에도 주목하는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와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 따라 몰려다니는 동네축구 하듯 산업부, 중기벤처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모두 4차 산업혁명과 중소기업, 벤처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은 필요하지만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명확한 역할 분담하에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아동수당 도입 좋다. 그러나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출산율 제고에 효과가 있는지, 기존 보육지원 정책과의 통합적 고려를 통해 정책적 효과와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치매안심센터 역시, 지금도 복지기관 간 연계성 부족과 복지서비스의 분절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분절된 서비스와 기관을 추가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 노인복지서비스 및 기관과 연계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 분권 좋다. 그러나 분권이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켜 국가적 수준에서 복지와 삶의 질을 제고하려는 방향을 훼손하지 않게 해야 한다. 분권과 함께 자치의 확대가 고려되어야 한다. 아니면 권력이 중앙 엘리트에서 지방 엘리트로 좀 더 많이 이전되는 것뿐이다. 적폐청산 해야 한다. 적폐청산에 시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미래 비전이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사회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한다. 대·중소기업관계, 갑을관계, 노사관계가 모두 그렇다. 시장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도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백화점식 종합대책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사안의 여러 측면에 대한 종합적 검토, 정책의 조화와 균형은 국정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대통령의 인기와 탁월한 소통, 공감능력만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성과와 정책으로 점수를 내야 하는 시점이다.

<김기식 | 더미래연구소장·전 국회의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여주인공 마이듬 검사(정려원 분)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캔디도, 착하고 아름다워 남자에게 구원받는 신데렐라도 아니었다. “나는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싸운다”며 거침없이 야망을 드러내는 여성이었다. 드라마는 마이듬이 여성·아동 대상 성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배우 정려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열린 2017 KBS 연기대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배우 정려원씨의 수상소감도 마이듬다웠다. “(성범죄는)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강화돼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엔 “너무 떨어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했다”며 인스타그램에 수상소감을 다시 올렸다.

한국에서 배우, 특히 여배우가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발언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소신 발언’을 반기지 않는다. 시상식 때마다 천편일률적인 ‘감사합니다’ 시리즈가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이제 그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더 많은 여배우들이 속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이 ‘반성폭력’의 목소리를 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수십 년간 여배우 등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된 이후 벌어진 ‘미 투(MeToo) 운동’의 연장선상이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여배우들이 직장 내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타임스 업’이란 단체를 만들었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것은 타임스 업의 첫 단체행동이었다. 메릴 스트리프는 “사람들은 이제 힘의 불균형을 안다. 그것이 도처에서 (성적) 학대를 초래했다.

이를 바로잡기 원한다”고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공로상 ‘세실 B 드밀’상을 수상하며 “그들(성폭력 가해자들)의 시간은 끝났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외쳤다. 윈프리가 옳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어록을 빌리면 “지금은 2018년이니까”.

<김민아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이 수학문제 풀이를 도와주다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A와 B의 달리기 기록을 비교하여 누가 더 달리기를 잘하는지 대답하는 문제였는데, 평균값은 정확히 다 구해놓고, 그 다음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평균값이 누가 작니? A. 그럼 누가 달리기를 더 잘하는 거니? 그건 모르지.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반복됐다.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하자 문제가 이상한 거라며 저도 볼멘소리로 응수한다. 평균값이 무슨 의미야. 각각 다른 지표를 가늠하는 기준을 만드는 거잖아. 평균이 높은 사람이 잘하는 거겠니, 평균이 낮은 사람이 잘하는 거겠니. 물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A랑 B랑은 달리기 횟수가 다르단 말야. 얼굴이 벌개져서 대드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문제지를 봤다. A는 5번을 달리고, B는 4번을 달렸다. 아이의 주장은 간단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의 수가 다른데, 각자의 평균값을 구하고 평균 속도의 차이를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걸 두고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거였다. A에게 주어졌던 5번째 기회가 B에게도 주어졌다면 결과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데, 그걸 감안하지 않고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건 부당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내가 잠시 주춤하는 듯하자 아이는 자기 생각에 이건 틀린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박할 말은 없는데, 아이하고 기 싸움에 밀리기는 싫어 한마디 했다. 넌 무슨 수학을 인문학적으로 푸니.

아이를 내보내고 나는 혼란스럽다. 세상 모든 평균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평균 점수, 평균 소득, 평균 부채, 평균 수명, 평균 자산…. 어른들 흔히 하시는 중간만 가면 된다고 하는 말씀이 평균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뜻인 줄 알았다. 평균을 넘어서면 잘하는 것 같고, 평균에 못 미치면 불안했다. 평균 지대 안에 있는데 불만이 생기면 그건 나의 욕심이거나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평균의 수치들은 과연 공정하게 계산된 값일까.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계산된 평균을 기준으로 삼고 안달복달했던 건 아닐까, 나에게 유리하게 계산된 평균을 가지고 하니 못하니 다른 사람의 열심을 폄하했던 건 아닐까. 삶은 개별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삶에 대한 평가는 전체와 겨루어 하고 있었다는 자각에 새삼 씁쓸하다.

새해 초부터 최저임금 때문에 시끄럽다. 그간 최저임금이 기본 생계 수준을 보장하지 못하니 생계 가능한 수준의 임금 기준을 마련한 건데 마치 최저임금이 곧 경제를 무너뜨릴 것처럼 사방에서 난리다.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망할 것이고, 물가도 오를 것이고, 고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늘어나는 기업 비용을 수치로 보고 있으면 그들의 불안한 전망은 꽤 설득력 있게 보인다. 불안의 시범사례라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전원을 해고했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적잖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편법이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업에서는 상여금의 퍼센트를 조정하고, 개인사업자들은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식대 지급을 중단하는 식으로 용역직이나 아르바이트의 복지를 제한한다. 그렇다면 그런 편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에도 인건비는 초과되지 않는 방안을 마련했으니 물가는 인상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도 않다. 이미 물가는 오르고 있다. 안으로는 기존의 인건비 맞춘 비용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을 쓰면서, 밖으로는 인상된 최저임금 기준에 따른 인건비 상승비용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수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내 말은 틀린 것 같다. 수는, 삶의 조건에 필요한 어떤 수는,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인건비는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불하는 거라는, 서로 다른 기회 조건이 이룬 성취를 똑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그런 고민의 수. 그런 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경제학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왠지 기업가들은 마이너스의 수, 노동자들은 플러스의 수라고 부를 것만 같다.

<한지혜 | 소설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측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고,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를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회담과 각 분야의 회담들을 열기로 했다. 남북은 9일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이 고위급회담에서 도출한 합의들은 당초 기대를 넘어선다.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넘어 군사당국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확보한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이 개성공단 전면가동 중단 때 차단된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복원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다. 남북이 전방위적으로 대화와 교류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세번째)이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남측 평화의집으로 가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남측 연락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 _ 김기남 기자

물론 남북이 음력설 계기 이산 상봉에 대해 명시적인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회담이 10년 가까운 남북관계의 공백을 뛰어넘어 재개된 데다, 한반도 위기 상황을 맞아 문재인-김정은 시대에 처음 열린 대화의 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산 상봉은 설 이후 얼마든지 다시 추진할 수 있다.

남북이 합의한 북측의 평창 올림픽 대표단 파견은 단순한 체육행사 참가를 넘어 10년 가까이 단절됐던 남북교류를 재개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측이 밝힌 북측 대표단은 고위급 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으로 대규모인 데다 구성도 다양하다. 이들은 1차적으로 평창 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방문하는 것이지만 부가적인 활동도 예상된다. 평창 올림픽 기간에 남북 당국 간 접촉이나 북 대표단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도 가능하다.

이날 남북 회담은 양측 수석대표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공동보도문 초안을 교환할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런 분위기는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모두발언에서 “회담에서 온 겨레에 새해 첫 선물로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자”고 다짐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남측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자 리 위원장이 “미국과 조선의 문제”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등 이견을 노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 진행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비핵화 문제는 북측의 인식과 달리 남측도 당사자인 만큼 향후 지속적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남북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단절의 시대를 마감하는 첫발을 뗐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결단과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남북은 이번 회담 성과가 남북 화해의 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을 정부가 비준할 의사가 있다는 보도를 봤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새해 선물 같아 기뻤지만 유엔의 또 다른 권고가 떠올라 가슴 한편이 묵직해졌다.

지난해 10월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무더기 권고를 하면서 세 가지 핵심 사안을 특별히 콕 집었다. ‘한국기업의 인권 침해 대응’ ‘모든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전면보장’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이에 대해 18개월 이내에 이행여부를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10년이 넘은 묵은 과제다.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로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했다. 일부 종교 세력이 반대하는 바람에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 7가지 항목이 차별금지 사유에서 빠져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가 결국은 폐기됐다.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은 수차례 무산됐다.

‘무산’은 답보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차별과 혐오가 확산되고 인권은 후퇴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인권의 시계는 거꾸로 돌았다. 지난 10년간 편견과 배제와 차별과 혐오가 자행되어도 모른 척하거나, 차별해도 된다는 혐오의 정치가 활개를 쳤다.

시민들의 숙의와 민주적 토론에 의해 만들어진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특정 집단의 노골적 방해로 정식 선포되지 못했다. 도미노처럼 여파는 지방으로 이어져 여러 지역의 인권조례가 잇달아 폐지됐다. 차별금지법·인권교육지원법 등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압박에 못 이겨 법안을 철회하는 일이 속출했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의 김태흠 의원 등은 국가인권위법에 명시된 19개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자는 법안까지 발의했고,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이란 단어를 포기하고 ‘양성평등’을 선택하는 또 다른 차별을 하고 말았다.

정부와 국회가 혐오세력에 굴복하면 그 결과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조롱과 굴욕을 견뎌야 하고, 존재 자체를 위협당한다. 증오범죄를 걱정하는 여성·장애인·성소수자의 비율이 80~90%가 넘는다는 인권위의 조사(2017)는 혐오와 차별이 어쩌다 겪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지배하며 실존의 뿌리를 뒤흔든다는 뜻이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이 정부가 정말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인지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민주당은 야당, 여당 시절을 불문하고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아 유권자들을 헛갈리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시절 차별금지법이 추진되던 때는 비서실장 등 요직에 있었고, 2012년 대선 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선거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훨씬 후퇴한 입장을 보였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과 586세대의 참모들이 차별과 혐오의 고통과 위험성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집권 이후 보여준 감동적인 정치적 행보는 의심의 여지를 추호도 남기지 않는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 회자되던 ‘나중에’라는 구호를 미뤄 짐작하건대 좀 천천히, 나중에 제정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본질상 인권은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며, 차별 금지와 평등 보장은 인권의 핵심 가치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중으로 미룬 결과가 어떤 인권유린을 낳았는지는 지난 10년간이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유엔은 2007년부터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를 비롯해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자유권위원회 등 각종 유엔기구들이 한목소리를 내왔다. 차별금지가 인권보장의 핵심과제이며 국가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데 그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뜻이다.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명시될 차별 금지 사유들이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빠질 수 없으며 빠져서도 안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차별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회권위원회는 특히 ‘긴급하게’(urgent)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언급했다. 새해는 문재인 정부가 인권국가의 모습을 구체적 정책으로 만들어갈 중요한 시기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 첫걸음을 떼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9일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이 포함된 비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털어놨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원전 수주를 위해 MOU를 체결했으며, 그 내용은 “UAE에 군사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한국군이 가기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금 시각에선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땐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중동국가의 전쟁에 자동개입하는 군사협정을 비밀리에 체결해놓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1월10일 (출처:경향신문DB)

UAE와의 비밀 MOU 체결은 헌법 위반이다. 헌법 60조는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등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로 하자고 했다”고 했다. 분쟁이 상시화된 중동국가에 장병들을 보내는 위험천만한 협정을 국회가 아닌 일개 장관이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협정문을 번역한 외교부가 “국방부가 미쳤다”고 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김 전 장관은 협정의 존재를 끝까지 숨겼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010년 11월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UAE가 공격을 당했을 때 군사적으로 도움을 준다든지 파병한다고 약속했다면 헌법(위반)의 문제”라며 8차례나 질의했지만 김 전 장관은 끝까지 부인했다. 김 전 장관은 국회와 시민을 능멸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 간 협정은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UAE에 군사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다는 뜻이다. UAE에 국제 사기를 쳤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이런 비밀협정 체결이 국방장관의 단독 결정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 수주에서) 이면계약은 없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는 “내가 말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 현 정부가 잘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원전을 수주했는데 불법이 대수냐며 뒷수습은 현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격이다. UAE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다른 4개 중동국과 체결한 협정도 내용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칼둔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방한으로 이번 갈등이 마무리되고 있지만, 진상만은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처리 방향을 9일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당시 합의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면서도 양국 간의 공식 합의였던 만큼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한국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되 기금 처리는 향후 일본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스스로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정부의 발표문은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서 장기적 과제로 다뤄 나가되 이 문제가 여타 한·일관계에까지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는 ‘투트랙’ 기조에 부합한다. 발표문에는 정부가 최종단계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흔적들이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 발표에 성이 차지 않는 시민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당장 정의당은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했다.

하지만 정부의 처리방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기적인 외교 협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2015년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꾀하려 한 것이 오히려 난센스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만큼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자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 성폭력에 관한 보편적 인권 문제”로 규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정부가 모든 노력을 해나가겠다”며 장기 과제로 삼기로 한 점도 역사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과거사 문제가 양국 관계 전반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면서 미래지향적 협력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

이번 발표에 대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토록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채 성마르게 반응할 사안인지 의문스럽다.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의 복원을 희망한다면 한국 정부가 정치적 부담까지 감당해 가면서 ‘합의 유지’ 방침을 밝힌 취지를 대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