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한 여성 검사가 검찰 조직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후 그녀를 향한 응원과 함께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는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너도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들 속에서도 ‘#미투’조차 말하지 못하는 소녀들이 있다. ‘힘들고 아프다’ ‘나는 피해자다’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 바로 ‘여성할례’에 희생된 소녀들이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사는 디나는 열세 살에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30시간이 넘는 지연분만으로 어렵게 아들을 출산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출산 직후부터 질에서 소변이 새는 ‘방광질 누공’에 시달려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소변 때문에 외출을 할 수도 없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기자 결국 남편마저 떠나버렸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소말리아 월드비전의 여성보건지원사업 담당자인 님코 아덴이 전해준 소말리아 여성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소말리아에는 디나와 같이 여성할례, 조혼, 열악한 분만 환경으로 인한 여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고통이 질병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부족한 의료시설과 경제적 상황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매년 2월6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할례 철폐의 날이다.

‘여성할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FGM(Female Genital Mutilation)는 0~13세 여아의 외부생식기를 성냥 머리 크기만 한 구멍만 남긴 채 절단한 후 봉쇄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여성할례는 신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정신적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시술을 받지 않으면 불결한 여자라는 관념과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의식 때문에 이러한 악습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

특히 소말리아에서는 전체 여성의 98%가 할례를 경험하고 있다.

월드비전은 2007년부터 할례로 고통받는 소말리아 여성들을 위해 병원 치료와 생계 지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소말리아 여성들이 더 이상 여성할례라는 악습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지역 정부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식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월드비전뿐 아니라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은 여성할례라는 위험한 관습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은 관습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길고 지치는 여정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의 소유물이 아닌 여성들 스스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을 누리며 빼앗긴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과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어지길,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불행한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미투’라고 외치는 세상의 모든 소녀들에게 ‘#위드유’로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길고 긴 여정은 언젠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김동주 |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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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항구 도시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로 가는 내내 나는 동행한 내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아이는 사춘기를 지독하게 앓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이에게서 천진한 눈빛으로 툭하면 웃음을 터뜨리던 어릴 적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차창 밖의 겨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아이는 창밖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아이가 내달리는 곳, 그곳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가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는 순간은 또래 아이들이 나타났을 때였다. 버스 안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이는 여학생들도 교복 바지를 입네, 머리 모양은 어떠네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이는 또 입을 꾹 다물었고, 땅끝마을 전망대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기껏 한 말은 배고파였다. 그날 나는 불퉁대는 아이를 땅끝마을 읍내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놔두고 강연을 했다. 도서관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내 아이 또래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데, 남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잘못한 게 많습니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도 많이 했지요. 저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고 일어선 게 아니라 아이는 정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16살의 아이가 잘못 살았다고 반성하는 걸 듣자니 애잔했다. 고작 16년을 살았을 뿐이다, 긴 인생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걸음을 뗀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친 게 아니라면 지금 일탈은 스스로 되돌릴 수 있다. 정말 문제는 어른이 된 뒤에 벌이는 일탈이다. 나는 그리 대답하면서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딸을 생각했다. 아이들은 괜찮다. 그들은 비뚝비뚝 달리면서 제 걸음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만한 어른들의 범죄가 끊이지 않아 신문 들여다보기가 겁나는 요즘, 쑥스러운 듯 일어나 자신을 반성하던 땅끝마을의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는 분명 잘 자랐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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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인정하지는 않지만 나 나름대로의 통찰을 통해 ‘초콜릿 이론’이라는 걸 만들었다. 이 이론은 이제 19살이 된 큰딸이 5살일 때 벌어진 일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큰딸은 유난히 초콜릿을 좋아했다. 이가 썩어서 충치치료를 받은 후라 우리 부부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다.       

딸아이가 유일하게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외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실 때이다. 그날도 외할아버지가 초콜릿 2개를 선물로 주셨는데 마침 그날 사촌 동생인 은진이가 놀러왔다. 3살 은진이도 초콜릿을 발견한 순간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은진이를 달래기 위해 큰딸에게 나누어 먹으라고 이야기하자 영리한 큰딸은 사촌동생이 초콜릿을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하기 시작했다. “은진이가 초콜릿을 먹으면, 이가 썩고 밥맛이 없어져 키도 안 커. 은진이는 초콜릿 먹으면 안돼.”

큰딸은 아내와 내가 평소 초콜릿을 먹지 못하게 했던 이유를 들어 열심히 은진이가 초콜릿을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혼자 다 먹겠다는 이야기이다. 딸아이의 깜찍한 모습에 우리 모두는 웃었지만 개인적으로 큰 통찰을 얻었다.

어른들도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사안에 대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럴싸한 논리를 펼친다.           

처음에는 논리의 정교함에 따라 사람들이 속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초콜릿을 혼자 먹기 위한 논리임을 간파하게 된다. 사람들은 초콜릿에 목매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비록 작은 목소리이지만 힘을 얻는 경우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던지고 올바른 주장을 펼칠 때이다.

최근 교육계는 평교사가 교장이 되는 ‘내부형 공모제’의 확대가 뜨거운 감자이다. 이 정책의 확대를 가장 반대하는 단체는 그동안 정부수립 이래 교장승진을 독점해온 단체이다.          

‘무자격 교장’이라는 그럴싸한 논리로 반대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동안 자신들이 독차지해온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독점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단체가 새로운 제도를 통해 유리해지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초콜릿은 달콤하지만 혼자 다 먹으면 이가 썩기 십상이다. 이가 썩으면 그 악취가 자신과 남에게 풍기게 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그 곁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악취를 풍기는 단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면 더욱 큰 문제이다.

<홍인기 |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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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읽었던 우화로부터 시작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다. 삼형제를 두었는데 형제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를 걱정하던 아버지가 삼형제를 불렀다. 그리고 화살을 각각 한 촉씩 내주었다. 꺾어보라고 했다. 화살 한 촉은 쉽게 부러졌다. 아버지는 다시 화살 묶음을 건네주며 꺾어보라 했다. 어느 형제도 묶여 있는 화살을 꺾지 못했다.

권력자는 홀로 있어도 강하다. 권력은 나누지 않고 독점하면 더 강해진다. 권력자가 아닌 사람은 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힘없는 사람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함을 광장에서 절규로 표현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무심하게 가던 걸음을 계속한다. 힘이 없으면 처참한 꼴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 피해자가 단 한 명이 아니라 심지어 수없이 많은데도 그 많은 피해자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 그렇게 성희롱과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쌓이고 쌓였지만,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돌아갔고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했다. 세상은 피해자에게 침묵을 사실상 강요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피해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요된 침묵 속에서 자신을 탓하던 한 피해자가 용기를 냈다. 먼저 용기를 낸 사람이 가해자를 고발하자, 그 용기에서 용기를 얻은 또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보탰다. 또 다른 피해자의 고발을 들으며 용기를 낸 또 다른 피해자가 목소리를 더했고, 그리하여 드러나지 않은 존재였던 피해자들은 뜻밖의 쓰임새를 지닌 해시태그를 통해 발언권을 얻었고 용기를 서로 교환했다. #MeToo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해시태그를 통해 피해자들은 세상에 홀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침묵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은 봉인되었던 심정을, 그리고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MeToo에 담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본다. 어떤 피해자는 해시태그로 이렇게 말했다. “법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처벌할 수 없다고 하는데 2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병원 앞으로 못 지나가고 멀리 돌아가며, 운전할 때 멀리 그 병원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 중앙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 아무는 상처가 아니다.”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하지만, 피해자에게 성추행·성폭력은 만료가 없는 평생의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또 다른 #MeToo의 목소리도 그러하다. “그 후로도 매체를 통한 성범죄 관련 이슈에 노출될 때면 언제나 공포와 무력감, 분노가 지속적으로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MeToo에는 이런 목소리도 담겨 있다. “어느 날 동료가 부장 A에게 언어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동료는 그 일을 팀 남자 선배에게 토로했으나 오히려 면박만 당했다고 한다. 여자 선배 역시… ‘돈 벌려면 그런 게 중요치 않다’라고 했다… 동료는 내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며 그렇게 말했다.” 가해자 못지않게 방관자도 세상에는 많다. 피해자는 방관자로 인해 2차 피해를 입는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해시태그로 이렇게 요청한다. “도와주세요. 성희롱성 발언을 들은 뒤 그 사실을 알린 대가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고 벌금 70만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는 생각보다 뻔뻔하다.

단 한 명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될 수 있다. 쉽게 무시되었던 한 명의 목소리에 또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그 두 명에 또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에 또 다른 사람이 같은 편에 서주면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면 더 이상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MeToo 이후 #MeToo와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해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직접적 방관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MeToo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더 이상 자신은 무관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없다. #MeToo는 야만의 세월을 끝내자는 비상경보기이다. 동시에 #MeToo는 우리 모두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MeToo에 가장 적절한 응대는 해일이 오고 있다며 사사로운 피해를 내세워 적 앞에서 분열하면 안된다는 그 똑똑한 정치론자의 대의론도 아니며, 고통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 #MeToo를 정치공작의 소재로만 바라보는 음모론자의 관점도 아니다. #MeToo에 대한 적절한 응대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돕겠다는 결심, 가해자에게 적절하고 단호한 처벌이 이뤄지는지 지켜보겠다는 의지, 다시는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무관자의 위치를 고집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미래를 기약한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을 해시태그로 표현하면 #WithYou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할 때 야만의 세월은 끝이 난다. 그렇기에 #MeToo 옆에는 #idid라는 사과와 참회가 그리고 #WithYou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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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3~4살부터 기획사 연습생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야. 촬영장에서 웃고 울다 지쳐 잠든 모습을 보면 나까지 마음이 이상해져.” 광고업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행현상과 맞물려 ‘키즈모델’ 사업이 호황이라고 한다. 키즈모델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드라마 주인공을 따라하도록, 하나라도 더 많은 ‘좋아요’를 받도록 대중 앞에 놓인다.

물론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한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법적으로도 위배되는 사항이 아니며 아이들이 좋은 연예인으로 성장하게 될 경우 연예계에 전문성과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이른 나이부터 언론과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아이들에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보통 아이들은 생후 36개월부터 자아형성기가 시작된다는 게 학계 내 정설이다. 기획사에 선발되면 아이들은 4세 안팎부터 혹독하게 연기와 모델 자세를 연습한다. 대중 앞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런 ‘훈련’만을 반복하면 자칫 세상을 보는 시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어른들의 상업논리와 SNS를 세상의 틀이라 여긴 채 성장하면 훗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가능성 역시 농후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제라도 연예계 진입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현상을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차원에서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이들을 지나친 상업논리와 외모지상주의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을 정밀히 구축해야 한다. 아이들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정기적인 학교교육과 상담을 통해 단체생활 기회를 보장받고 자신의 장래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피터팬이 가고자 했던, 아름다운 ‘네버랜드(Neverland)’를 앗아가선 안된다.

<변윤재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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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자유는 동료인 자장을 두고 “어려운 일을 잘해내지만 아직 인(仁)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평했다. 자장은 재주가 뛰어나고 포부도 커서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높은 행실에 비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성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주희는 이를 성실하고 측달한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측달(惻달)은 한문에 자주 쓰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어휘 가운데 하나다. 글자로는 매우 슬프다는 뜻이고, 오랜 출전인 &lt;예기&gt;에서도 어버이의 상을 당한 자식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어휘가 사용되어온 맥락을 알수록 슬픔으로만 번역하고 말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측달은 그저 슬픈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측달자애(惻달慈愛), 지성측달(至誠惻달) 등으로 확장되어 자신을 넘어 타인의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이 간절한 바람과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점, 바로 인(仁)의 한 측면을 담은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仁)이란 부드럽다는 뜻이니, ‘불인(不仁)’은 부드럽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아픔과 가려움,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하거나 뜸을 뜨고 침을 놓아도 감각이 없는 상태를 불인이라고 한다.” ‘불인’의 의미를 설명한 <동의보감>의 한 대목이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인(仁)을 ‘마음이 아픔에 마비되지 않음’으로 설명하곤 했다. ‘불인’의 반대편에 측달이 놓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아픔을 지극하게 공감하는 데에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마음이 시작된다.

불인의 끝은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죽음이다. 그러나 측달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병아리 솜털처럼 부드러운 생명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봄이다. 동지가 지난 지 꽤 되었지만, 계절의 변화를 부쩍 느끼는 요즘 주역의 복괘(復卦)를 다시 떠올린다. 온 세상이 음일 때 양 하나가 땅 밑에서 서서히 그러나 뚜렷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얼어붙은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려면 많은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뜻한 도움이 없으면 꽃샘추위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당위만 내세운 섣부른 행위는 오래가기 어렵다. 깊은 공감이야말로 의무를 자발로 만드는 힘이다. 측달과 사랑의 작은 실마리들이 곳곳에서 움터 오르는 봄을 소망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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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서울 워커힐호텔은 ‘판문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이 이곳에서 묵으면서 남측 인사들과 잇달아 회동한 것이다. 26일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27일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영철 부위원장과 북핵 및 남북관계 개선문제를 논의했다.

워커힐호텔은 북한과 인연이 깊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경호에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남한을 방문한 북한 인사들의 숙소로 자주 사용돼왔다. 1990년대 초의 남북총리회담과 2000년대 초의 남북장관급회담, 1985·2000년의 이산가족상봉 등 수많은 남북행사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는 북측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을 관람하는 일정도 즐겼다(홍석률 <분단의 히스토리>). 체제경쟁 차원에서 북한보다 우월한 ‘자유’를 맛보게 해주겠다며 북한 대표단을 고급 요정과 고고클럽으로 끌고다니던 시대였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처음에는 냉혈적이던 그들이 시시각각 녹아나서 떠날 때는 여심에 도취되는 등 매우 재미를 보고 갔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보수진영으로부터 ‘천안함 주범’으로 공격당해 운신의 제약을 받는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 호텔의 애스톤하우스는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이 추진했던 남북 정상회담을 대비해 지은 VIP맨션을 개조한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됐을 경우 김일성 주석 등의 숙소로 사용하려고 만들었으나 회담이 무산되면서 영빈관으로 바뀌었다.

워커힐호텔은 6·25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한 초대 미8군사령관인 ‘불도그’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을 땄다. 주한미군의 휴양시설로 1963년 개관됐다가 1973년 선경그룹(현 SK)이 인수했다. 보수진영은 이런 역사를 들어 “천안함 사건 주범에게 워커힐호텔을 숙소로 제공하다니 워커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군사정권이 이곳에서 북 고위층을 ‘여심에 도취되게’ 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 묻고 싶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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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잔치는 끝났다. 이방카는 워싱턴으로 돌아갔고 김영철도 평양으로 떠났다. 정성스럽게 모신 손님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의 달콤한 약속과 반가운 미소, 예의를 차린 은근한 압박, 약간의 무례가 남아 있다. 평화, 정상회담, 북·미대화 용의, 한·미 공조, 최대의 압박을 통한 비핵화. 어지러이 흩어진 낱말들이 말해주는 것은 모호하다.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두 집단이 정해진 순서와 규칙도 없이 낱말을 억지로 한 바구니에 담아봤자 의미를 알 수 없다. 하나의 문맥 안에서 질서 있게 자리 잡지 않는 한 낱말과 낱말은 연결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을 것이다.

우주 공간에서 두 개의 우주선을 연결하려면 랑데부-도킹의 2단계를 거쳐야 한다. 랑데부는 두 우주선이 접근해 같은 속도로 나는 걸 말한다. 회전 운동을 하며 총알의 열 배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두 우주선을 같은 속도로 맞추는 건 고난도 작업이다. 두 우주선은 나란히 간격을 유지하며 날다 점차 거리를 좁혀 종이 한 장 차이까지 간격을 줄여야 한다. 도킹 때도 두 도킹 장치가 서로 잘 맞물리도록 위치와 방향을 미세 조정해야 한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우주선이 파괴되거나 다른 우주로 사라져 영영 이별이다.

한국은 북·미라는 우주선을 우주 공간의 한 점에서 도킹시키려 한다. 남북대화와 한·미 공조라는 두 엔진을 장착한 뒤 북·미대화를 유도하면서 랑데부(핵동결)-도킹(비핵화)할 계획이다. 김정은·트럼프가 문재인이라는 내비게이션을 잘 따라가 준다면, 둘이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 손 안에 한국을 잡아둔 뒤 함께 대북 압박에 나서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려 한다. 북한은 핵보유국 입지를 흔들지 않으면서 남쪽과 손잡고 북·미대화에 나서 대북 압박체제를 이완,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세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만난 적도 없는 사이다. 남녀가 만나자 마자 합방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두 사람이 문재인의 길안내만을 믿고 먼 우주로 함께 손잡고 날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두 사람은 설사 협상을 해도 바닥부터 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김정은은 핵 무력의 정점에서, 트럼프는 대북 압박의 정점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북·미 도킹은 우주선 도킹처럼 계산할 수 없다. 북·미 두 세계 사이에는 우주보다 변수가 더 많다. 이런 조건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북·미의 경로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북핵 로드맵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북핵 협상의 마지막 단계를 비핵화로 명기한 로드맵을 작성해 보라. 북한은 협상장을 뛰쳐나갈 것이다. 비핵화를 명기하지 않은 로드맵을 제시해 보라. 미국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다. 로드맵을 작성하는 순간 로드맵은 사라진다. 외부의 관찰이 관찰 대상의 운동에 영향을 미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북핵문제에도 잘 적용된다.

쿠바 미사일 위기 30년이 지난 1992년 아바나에서 미국은 러시아·쿠바와 함께 역사 기록을 위한 회의를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미사일 위기 때 쿠바에 주둔했던 러시아 장군이 놀라운 증언을 했다. 당시 소련군이 단거리·장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때 CIA는 핵탄두 탑재를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단거리 핵미사일 배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쿠바 주둔 소련군이 본국과 통신이 두절될 경우 미군 침공에 맞서 단거리 핵미사일을 독자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에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은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전 케네디 대통령 특별 보좌관 아서 슐레진저 2세). 당시 맥나마라 장관을 제외한 미군 수뇌부는 쿠바 침공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려 깊게 처신했고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불확실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확실한 조건에서 완전한 해법, 만족스러운 해결책에 집착하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 지난 두 차례의 북핵 합의가 깨진 것도 당사자들이 확실한 결과, 최대의 만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합의에 불만을 품은 쪽이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히 합의를 위반하는 행동을 했고 그 결과가 우리 앞에 닥친 전례 없는 위기다. ‘코피전략’의 위험성은 북한을 타격하면 김정은이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있다. 확신은 무모한 행동을 불러온다.

불확실성과 불만족한 상태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늘 위험에 깨어 있고, 서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런 자세를 가져야 진정 문제해결에 다가갈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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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심하게 체한 날이었다. 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다 선배언니를 찾아가 손 좀 따달라고 부탁드렸다. 언니는 옷핀을 구부려 바늘을 손수 제작하고 라이터를 빌려와 소독도 하셨다. 그러더니 내 팔을 붙들고 쓱쓱 쓸어내리기 시작하셨다. 그게 피를 손으로 모으는 동작이라는데 어찌나 어설펐던지, 둘 다 웃음이 나서 바늘을 조준할 수가 없었다. 콕 누르고 “여기 아닌가?” 하며 또 같이 웃고.

안되겠다고, 기다려보라며 언니는 총총 나가셨다. 이윽고 다른 전공 선배오빠가 왕진을 오셨다. 그의 고향인 호남에는 체 내리는 민간요법이 있는데 침술보다도 잘 듣는단다. “체 내리는 게 뭐예요?” 물으니 선배는 ‘일단 엎드려보라’ 하셨다. 등을 동그랗게 구부려 책상에 얹자 그는 빛의 속도로 척추 윗부분을 세게 눌렀다. 오도독 소리가 나면서 얹힌 것이 정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체를 내리고 셋이 둘러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너 지금 온몸이 긴장해 있다고, 왜 그렇게 긴장하며 사냐는 선배의 물음에 머그잔을 쥔 채 울먹하였다. 아파서 옷자락 붙들어도 얼러줄 손은 내 몫이 아니라며 센 척을 했지만, 팔 쓸고 등 눌러준 것은 결국 사람의 손길이었으니까.

곧잘 체하는 체질인 내가 특히 자주 탈 났던 것은 연구조교를 할 무렵이었다. 모교에는 교수연구실마다 조교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중간문을 통해 드나들도록 설계되었다. 나의 지도교수님은 귀가할 때 보통 중간문으로 나오셔서 “나 간다” 알려주셨고, 그러면 조교들끼리 저녁 먹으러 가곤 했다. 하지만 이따금 우리한테 서운하거나 화가 나시면 아무 말씀 없이 연구실 쪽 문으로 퇴근하셨다. 선생님 언제쯤 가실지 기다리다 중간문을 살짝 밀어보면 이미 귀가하신 거다.

나보다 앞서 조교하셨던 선배는 그럴 때면 항의하듯 선생님보다 일찍 간다고 했다. 제자들의 서운함도 좀 아셔야 한다면서 말이다. 한편 후배는 풀릴 때 되면 어련히 풀리실 거라며 대수롭잖게 넘겼다. 선임자의 대담함도, 후임자의 참을성도 갖지 못했던 나는 그때마다 체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저녁이었다. 책상에 엎드려 있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달칵, 문 여는 소리에 이어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날 따라 조교실 쪽으로 나오셨던가보다. 하필 왜 그 순간 엎어져 잤을까 자책하던 중 휴대폰 메시지가 울렸다. “연구실 서랍 열어봐. 두 번째 칸 안쪽에 약상자 있어. 거기서 메디락 꺼내 먹어. 배 아플 때 내가 항상 먹는 약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전 밤늦게 빈 연구실로 잠입하여 오디오 켜고 음악 듣다 노트북 가지러 되돌아오신 선생님께 딱 걸렸고, 그 때문에 화나셨을 것 같았기에 더 그랬다. 약통에서 한 알을 꺼내어 꼴깍 삼키는 순간, “괜찮아” 하는 나지막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메디락은 알고 보니 위가 아니라 장을 위한 약이었지만 이내 체기가 내리며 열이 가셨다. 순간,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은 ‘성탄제’라는 시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던 그 구절.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지인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일렀다. 그런 애틋함은 시에서처럼 너의 혈연, 혹은 향후 네가 만들 가족에게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도교수가 아무리 자상해도 부모일 수 없고 선배들이 아무리 다정해도 친언니 친오빠는 아니니, 그 애착은 필경 너를 실망시키고 공허하게 만들 거라 하였다. 지인의 조언이 물론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손 따준 선배와는 이제 가끔 안부만 주고받고, 체 내려준 선배와도 연락 안 한 지 한참 되었으니까. 선생님마저 지난 한 해 동안 두세 번 뵈었다.

그 애착은 과연 찰나적이었지만, 나를 실망시키거나 공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관계의 밀도가 이제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이제와 영원히 남는다. 핏줄이 아니고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가 아니어도 그렇다. 내 혈액 안에 이 순간 알알이 녹아 흐르는 ‘팔 쓸고 등 눌러준 약손들’과 ‘선생님 서랍 속 메디락’처럼 말이다.

<이소영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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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2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무는 2008년 이 전 대통령 취임 전후 한 인사로부터 금융기관장 취업 청탁과 함께 1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건은) 자리와 관련한 불법자금 수수에 관한 수사”라면서 “(검찰이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조사 없이 수수자(이 전무)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겠느냐”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대통령의 매관매직 혐의라는 초유의 사태에 그저 참담할 뿐이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에서부터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등 이 전 대통령의 비위는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당시 보좌진과 측근의 진술로 받고 있는 혐의의 상당부분은 이미 입증돼 있다.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아들 시형씨 등 가족들이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위를 통해 금융기관장 자리까지 돈으로 판 정황이 나왔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는 종종 있었지만 인사권을 이용해 금품을 챙긴 사례는 없었다. 숱한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시민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작태이다. 여기에 지난 10년간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은 잠실 제2롯데월드 고도제한 해제를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문건까지 지난 26일 공개됐다. 그 대가로 또 무엇을 받았을지 알기조차 두려워진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반성은커녕 반전을 노리고 있다. 사위가 검찰에 불려가던 날 그는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한 뒤 “천안함 폭침의 주범에게 국빈대접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부끄럽다”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을 허용한 정부를 비판했다. 보수세력을 결집해 법의 심판을 모면해보려는 얄팍한 수가 틀림없다. 이르면 다음주 이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변명과 정치보복 타령을 중단하고 시민 앞에 깨끗이 사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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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주당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 착수한 지 5년 만에 여야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정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도록 했다. 아울러 광복절·삼일절 등 법정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지정해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급여를 받고 쉴 수 있도록 하고,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하기로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휴일근로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을 ‘근로일’에서 제외해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다. 사실상 주당 법정 노동시간이 68시간이었던 셈이다. 환노위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법제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저성장시대의 일자리 확충을 위해서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절실하다. 주당 법정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60만~7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환노위가 최대 쟁점이었던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노동계는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휴일근로는 통상임금의 200%(중복할증)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과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계는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회와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이란 큰 산을 넘었다고 안도해서는 안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이나 노동자 어느 한쪽에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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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사상 처음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 심리가 27일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 기소된 지 10개월 만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징역 30년은 현행법상 유기징역 최대 형량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구형한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국기문란을 야기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은 국정농단 사태의 또 다른 ‘주범’ 최순실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한 바 있다. 최씨는 민간인 신분인 만큼, 최고위 공직자였던 박 전 대통령에게는 더 무거운 형량이 구형될 것으로 전망돼왔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정점에 있는 ‘최종 책임자’이자 비선 실세에게 국정운영의 키를 맡겨 국가 위기 사태를 자초한 장본인으로 규정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직무권한을 자신과 최씨의 사익추구 수단으로 남용했다”면서 “국가기관과 공조직을 동원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직업공무원제 등 헌법에 의해 보장된 핵심 가치를 유린했다”고 질타했다. 특히 국가적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고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책임을 최씨와 측근들에게 전가하는 점 등을 들어 엄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재판을 거부해온 박 전 대통령은 결심공판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면 최후진술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별도로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 공판준비기일에도 불출석한 터다. 재임 중에는 국정농단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하더니, 탄핵으로 파면된 후에는 사법방해로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니 기막힐 따름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은 “실수가 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불철주야 노력한 점을 감안해달라”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본다.

최순실씨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지난 13일 최씨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사건도 같은 재판부에서 맡고 있는 만큼, 최씨가 유죄를 받은 혐의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도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혐의가 더 많은 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이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단순히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시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적·사법적 정의를 다시 세우며, 미래의 위정자들에게 교훈을 남기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의 민사소송 대리인 도태우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단체를 ‘애국단체’, 그들의 활동을 ‘애국활동’이라 칭하며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주권자에게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도 된 듯 행동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최악의 국정농단으로도 모자라 법치까지 부정하는 박 전 대통령에게 재판부는 준엄한 심판을 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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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린다면 아동수당법이 의결될 예정이다. 올해 9월부터 6세 미만 아동의 94%가 월 10만원을 받게 된다. 애초 정부 원안은 해당 연령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었으나 예산안 협상에서 야당들의 반대로 일부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최상위 6%는 주지 않는 아동수당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예산 절감이 목적은 아닌 듯하다. 미적용 아동 규모가 매우 작고,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까지 감안하면 재정 효과는 미미하다. 결국 복지담론을 둘러싼 명분 싸움이 낳은 설계로서, 어떤 경우라도 선별 방식을 가미해 보편주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보수야당의 집요함이 낳은 작품이다.

자유한국당은 뜻을 이룬 것일까? 보편복지를 막았다고 자평할지 모르겠으나 지급 대상이 94%라면 상위계층 아동까지 거의 포괄하므로 사실상 보편 수당으로 볼 수 있다. 선별복지라는 의미보다는 공연히 행정비용을 유발한다는 문제만 부각될 뿐이다.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보편·선별 복지 논쟁이 선보인 지 8년이다. 이번 아동수당 도입에서 보듯 복지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복지담론 논의는 정체된 듯하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복지관을 정립하기 바란다. 같은 대상임에도 보육료는 모두에게 지원하면서 아동수당에선 최상위 일부를 제외하는 건 근거를 찾기 어렵다. 진정 선별복지를 추구한다면 가난한 아이에게 집중하는 꼼꼼한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예산 절감도, 선별의 의미도 내세울 수 있다. 반대로 아동수당이 아동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의무교육, 무상보육, 건강보험처럼 모든 아이에게 제공해야 깔끔하다.

한편 무상급식 논란 이후 복지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에 발맞추어 보편복지 쪽도 보편주의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기 바란다. 복지국가에서도 선별복지는 필요하다. 아동수당처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게 바람직한 복지도 있고, 국민기초생활보장처럼 일부만 선별하는 제도도 있다. 보편·선별 논의가 선악 이분구도에 기우는 걸 경계하자는 이야기이다. 지난 몇 년 우리 사회 복지논쟁에서 보편복지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주변화되는 ‘불균등 발전’ 경향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양의무자의 부분 폐지 등 일부 개선은 있으나 기존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는 제자리이다. 기초연금의 경우도 올해 25만원으로 오르면 일반 노인은 가처분소득이 늘지만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아무런 혜택이 없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정부라면 보편복지와 함께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에도 충실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보편주의 담론이 개별 제도 너머로 확장돼야 한다. 아동수당의 도입으로, 우리나라도 서구 복지국가가 운영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거의 갖춘 셈이다. 이제는 보편주의도 여러 ‘제도’를 엮은 복지 ‘부문’, 나아가 복지국가 ‘체제’ 수준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보편주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포괄성’, 일정 급여를 보장하는 ‘적정성’을 핵심 축으로 삼는다. 무상보육, 아동수당처럼 단일 프로그램에서도 적용되지만, 본령은 개별 제도를 넘어서는 부문, 체제 수준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법정 연금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세 가지이다. 과거에는 국민연금만 존재했으나 지금은 3층 체계로 발전해 모든 노인이 최소한 법정 연금 하나는 적용받는 포괄성은 확보되었다. 반면 급여 적정성에서는 격차가 크다. 하위계층 노인은 기초연금뿐이지만 중상위 노인은 복수의 연금을 받고, 상위계층은 기초연금을 못 받더라도 퇴직연금을 일시금에서 연금 형태로 전환한다면 법정 연금의 총합이 훨씬 많다. 이에 보편주의 시야를 개별 제도에서 연금 부문으로 확장하면 계층별 급여 적정성을 위해 적극적 차등의 취지에서 하위계층을 위한 보충 기초연금도 모색될 수 있다. 이 보충연금은 제도만 보면 선별이지만 연금 부문에서는 전체 노인의 급여 적정성을 도모하는 보편주의 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시야를 더 넓히면 노인복지의 보편주의는 연금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 주거, 일자리, 지역공동체 등 체제 수준에서 평가될수록 더 실질적이다. 또한 보편주의가 동반하는 적극적 증세 역시 개별 제도를 넘어 여러 복지 효과와 증세 정치를 토대로 체제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근래 헌법에 복지국가를 명시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만큼 복지국가가 미래 비전으로 등장했다. 이제 보편주의도 개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부문, 체제 수준에서 이야기하자. 그래야 여러 제도를 종합하는 복지국가 전략도 나올 수 있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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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전 검사장이 26일 검찰에 출석했다. 서지현 검사가 안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28일 만이다. 서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 이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은 숨가쁘게 전개됐다. 특히 문화예술계로 확산된 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 인간문화재 하용부, 배우 조민기·조재현·한명구, 사진가 배병우,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 등의 사례가 드러났다. 종교계(가톨릭 사제)와 언론계(KBS 기자)의 성폭력도 폭로됐다.

발화(發話)는 시작됐다. 이제는 장벽을 부술 때다. 지난 23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미투 운동 지지 자유발언대회’와 25일 열린 ‘연극·뮤지컬관객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한다) 집회’에서 나온 구호들을 중심으로 미투 한 달을 짚어본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지난 23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미투 운동 지지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우리의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더 이상 괴물들이 두렵지 않다”

“외교통상부 청사 10층의 남자화장실이 여자화장실로 바뀐다고 한다. ‘우먼 파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숫자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맡은 업무의 비중이나 실제 이루어낸 많은 성과들은 성 역할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략) 여성법조인이 늘어나다 보니 새로운 풍속도 생겼다. 대부분 회식의 대미를 장식했던 폭탄주는 와인이나 에스프레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중략) 여성에 대한 배려는 비단 회식 등 일상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법조인이 미래 한국의 법원, 검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유리천장’을 거두는 용기와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법률신문 ‘월요법창-외통부 남자화장실 실종사건’)

이 칼럼의 필자는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다. 글이 실린 것은 2011년 7월18일. 성추행 사건(2010년 10월)으로부터 9개월 후다.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그럴 리 없다. 동료 검사의 상가에서, 법무부 장관이 보는 가운데 여성 검사를 성추행한 이가 안태근이고 ‘여성 법조인들을 위해 유리천장을 거둬주자’는 글을 기고한 이도 안태근이다.

이윤택은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각본을 썼다. 강제로 키스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배우 조민기·조재현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정한 ‘딸바보’의 면모를 과시했다. 남수단에서 선교봉사하던 신자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수원교구 한모 신부는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에 소개될 만큼 존경받는 사제였다.

괴물은 없다. 가해자는 악마가 아니다. 문제는 권력을 남용·악용하는 구조다.

연출가 이윤택, 연출가 오태석, 시인 고은, 배우 조민기, 배우 조재현(왼쪽부터)

■ “너희들이 한 일은 사소하지 않다”

‘I 파멸 U(나는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 손팻말에 적힌 메시지는 선명했다. 23일 저녁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공개발언 대회. 삼삼오오 모여든 젊은 여성들은 분노를 담은 손팻말을 들었다. ‘가해자에게 치욕을, 증언자에게 명예를’ ‘죄인은 오라를 받아라’ ‘우리는 몇몇 괴물이 아닌 구조를 바꾼다’ ‘여자를 함부로 만져도 되는 세상을 끝내자’ ‘여성은 자원이 아니며 영감의 원천도 아니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것이어야’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달라’ ‘눈 감지 말고 탄식만 말고 #MeToo’ ‘너의 시대는 끝났다. Times up’….

차례로 발언에 나선 여성들은 직간접적으로 겪은 성폭력 사례를 증언하고,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표명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의 발언이었다. 그는 “요즘 상담소에 가장 많이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이 누구일 것 같으냐”고 물었다. 답은 의외였다. “가해자들이다. 전화해서 자기방어를 한다. ‘예전에 성폭력을 저지른 것 같은데, 옛날 일이라 법적 책임을 지지는 못하겠고 여성민우회에서 교육을 시켜달라’고 한다.”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도 있는 성폭력을 교육 몇 시간 받으면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탈로 여긴다는 방증이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위드유 집회. 연극·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 500여명은 성폭력 가해자들을 향해 외쳤다. “범죄자는 자숙 말고 자수하라.”

■ “당신들은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예술이라니?”

이윤택의 성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될 수 있었던 데는 연희단거리패 일부 단원들의 동조·방관·묵인이 있었다. 한 여성 단원은 “안마를 거부했더니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쟁반으로 가슴팍을 밀치면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냐. 빨리 들어가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선교봉사 중 신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신자는 “다음날 거기 있던 다른 후배 신부님들한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증언했다. 영국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악의 승리에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동조·방관·묵인한 이도 범죄자다.

■ “명예는 가해자의 것이 아니다”

국내 형법은 거짓뿐 아니라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도 인정한다. 2016년부터 문단 내 미투 운동에 앞장섰던 탁수정씨는 “법은 여성들의 편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법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기 때문에 법으로 걸고 넘어진다”고 말했다. 명예훼손죄나 무고죄가 사실상 가해자들의 무기가 되고 있음을 호소한 것이다.

법률가인 서지현 검사조차 JTBC 인터뷰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이나 최교일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위헌법률심판 소송으로 다퉈볼 생각”이라며 역고소까지 각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계속 존치할 필요가 있는가. 검경과 법원도 수사·재판 과정에서 낡은 가해자 중심주의를 버리고 피해자의 치유와 명예 회복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 “이게 나라냐! (촛불은) 안 끝났다”

미투 운동에서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피해자 보호다. 우선 신상털이 등 2차 가해를 막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생존권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대부분 직장 내 약자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비방·회유 대상이 되거나, 조리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부당한 인사처분을 받고 직장을 잃게 된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휴직 중인 서지현 검사의 책상을 치우고 짐을 뺀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노동조합도 조직돼 있지 않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인턴 등 비정규직의 처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교수가 ‘미래’까지 거머쥐고 있는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직장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깊이 고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부처에 서기관급 이상의 ‘성평등 전문관’을 둘 것을 제안했다. 이들 전문관이 여성가족부와의 유기적인 협조 아래 성차별에 기반을 둔 고용차별이나 성폭력의 문제를 조사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안태근의 성폭력을 폭로한 검사가 후일 부장검사·검사장이 되고, 이윤택의 성폭력을 폭로한 신인 배우들이 연극계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다.

지방선거를 100여일 앞둔 각 정당·정파에서는 미투 운동이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미투 운동은 정치적인가. 나와 가족·이웃의 삶,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미투 운동은 정파적인가. 미투가 폭로하고자 하는 폭력의 장본인이 보수 인사냐, 진보 인사냐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 내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한 &lt;여혐민국&gt;의 저자 Yangpa(양파·본명 주한나)의 페이스북 글을 빌리자. “지금 당장 성추행당하는 여자에게, 가해자가 지난 대선에 누구 찍었는지가 중요할 거 같은가.”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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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움에 불탄 신성한 각오와 장차 동아를 짊어지고 나갈 꿋꿋한 역군이요, 사회악에 물들지 않은 백합같이 순결한 청춘이요, 학도이다.”

지난 2월6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을 통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 민주운동 당시 10대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에 맞서 교실을 박차고 나가기 전 낭독한 결의문의 일부이다.

아직 2·28 민주운동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2·28 민주운동은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 민주화운동이다.

지금 세계가 경탄하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헌신으로 이룩되었으며, 그 기나긴 여정의 시발점에 대구 2·28 민주운동이 있다.

1960년 3·15 대통령선거를 보름 앞둔 2월28일 일요일. 야당의 대규모 선거유세가 예정되자 당시 자유당 정권은 많은 시민과 학생 등 청중이 몰리는 것을 방해할 목적으로 각 학교에 일요등교 지시를 내렸다. 토끼 사냥, 영화 관람, 시험 일정 변경을 핑계로 학원을 통제하기 위한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경북고등학교를 비롯한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당시 폭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거리로 나선 학생들은 “횃불을 들어라, 동방의 빛들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1720여명의 학생 중 30여명이 부상당하고 19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하지만 대구 2·28 민주운동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용기는 전국으로 퍼져 3·15의거와 4·19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민주주의의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미래의 꿈나무’인 학생들이 보여준 순수한 열망이 독재라는 어두운 현실에 민주주의라는 희망의 빛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 빛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2·28 민주운동 국가기념식 격상은 매우 뜻이 깊다.

내일, 그 뜻 깊은 기념식이 열린다. 이번 기념식을 주관하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정부기념일 제정 이후 거행되는 첫 번째 기념식인 만큼 당시 민주운동을 재현한 거리 행렬, 2·28기념탑 참배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2·28 민주운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기념식 전체를 뮤지컬 형태로 극(劇)화하여 2·28 민주운동의 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일방적인 기념식 관람을 넘어 무대와 객석, 출연자와 참석자가 상호 소통하고 호흡함으로써 현장성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당시 2·28 민주운동이 학생 주도의 자발적인 민주화운동이었던 점을 상기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당시 시위 참여 8개교 후배 학생들이 기념식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결의문 낭독, 기념공연 등 곳곳에 출연하여 그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이번 기념식을 통해 2·28부터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민주의 횃불’은 국민과 함께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이번 기념식으로 사회변혁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보여주었던 순수한 용기가 자라나는 청소년들로 이어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찬 행진으로 계속되기를 바란다.

<피우진 |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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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1948년에 제정된 후 40년 동안 8차례 개정됐다가, 1987년에 9번째로 전부 개정됐다. 그런데 헌법 본문의 맨 앞에서 국가의 기본원리를 천명하는 ‘총강’ 부분(제1조~제9조)은 1987년 헌법에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새로 명시한 것 말고는 제정 이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헌법의 기본구조와 기본권에 관해서도 제정헌법에서 이미 뼈대를 갖추었다. 헌법 총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해 제정헌법 당시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정을 두어왔다. 그럼에도 헌법 개정이 잦았던 이유는 그만큼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집권정부의 필요에 따라 헌법을 손질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왔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이기 때문에 자주 고칠 게 못 된다. 시대가 흘러 국가의 규범으로 선언돼야 할 새로운 가치를 담은 의제가 있는 경우 그때 헌법은 개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렇듯 평균 5년에 한번씩 개정되던 헌법이 1987년 이래 현재까지 30년 동안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1987년 헌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되면서 선거민주주의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도 대통령 탄핵으로 마감될 만큼 순탄치 않았다. 1987년 당시 30대를 맞았던 내 기억에 의하더라도 그동안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험난한 과정을 진저리칠 만큼 겪어온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헌법의 연혁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1987년 헌법개정 이후에는 이전 시기에 비해 우리 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헌정시대를 열어왔다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논의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개헌이 자주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며, 헌법은 국가의 규범적 가치를 담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성격을 갖는 것이니만큼, 지난 30년 사이에 새로 담아야 할 규범적 가치의 의제가 무엇일지는 반드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할 의제는 ‘환경국가원리’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법제와 같은 각국의 근대적 법체계에 환경권이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유엔 인간환경회의’ 개최 이후였다. 이 회의는 113개국 정부대표가 참여한 최초의 국제환경회의였고, 여기에서 7개의 선언문과 26개의 원칙으로 구성된 ‘유엔 인간환경선언(Declaration on the Human Environment·스톡홀름선언)’이 채택돼 지구환경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인간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일은 세계인의 절박한 소망이며 모든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인간환경을 지키고 개선하는 것은 세계 경제사회발전과 평화의 기본적이고 확립적인 목표와 함께 모두 추구해야 할 인류를 위한 필수적인 목표이다”라는 게 이 선언의 내용이다. 우리 헌법은 1980년 제8차 개헌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으로 환경권을 도입했다.(현행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유엔 인간환경회의’ 이후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엔을 중심으로 지구환경보존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 있어왔으나, 환경 문제가 더 나아지진 않았다. 환경권을 도입하고 환경법제를 마련해온 우리나라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도리어 이제는 재앙 수준의 환경위기가 거론되는 분위기가 됐다.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195개 당사국이 모여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협정을 채택했다. 이로써 산업화단계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며, 인간이 기후변화를 초래해서 자칫 이번 세기 안에 전 지구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인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2015년 9월에 유엔 정상회의에서 17개의 발전목표와 169개의 세부 이행 과제인 지속가능발전목표가 포함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의제(The Agenda 2030 for Sustainable Development·SDGs)’가 채택, 발효됐다. 이것은 각국이 공동으로 추진해나갈 목표인데, 핵심가치는 “인권, 평등, 지속가능성”이라는 3가지 기본원칙을 반영하는 “사회발전, 경제성장, 환경보존”이 인류 발전의 포괄적인 공동의 축이 되었다는 데 있다. 특히 지속가능성에 최우선적 방점이 찍혔다 볼 수 있는데, 환경보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시대적 추세여서 각 국가의 국정기조가 되어가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헌법을 개정할 당시에 이러한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는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당시는 세계화가 대세였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정부도 국정원리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SDGs의 세 축 가운데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은 현행 헌법에 반영돼 있으나 지속가능성이라는 환경보존의 가치는 누락돼있다. 현재의 환경권조항은 국민 개인의 주관적 권리이기에 이것만으로는 미세먼지와 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수의 원인으로 비롯되는 환경위기를 대처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현 시기 지속가능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발전, 경제성장과 아울러 환경보존을 위한 국가원리가 환경권조항과는 다른 형태로 천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개헌논의는 사실 성격상으로는 1987년 헌법개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1948년 제정헌법당시부터 헌법 총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의 원리를 현실화하기 위해 87년 6월항쟁과 그 정신을 담은 헌법개정이 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다시 30년 뒤에 대통령 탄핵과 개헌논의를 불러왔다. 이것은 헌법에 천명된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원리에 공동체의 현실이 부합돼가는, 선헌법 후가치화의 과정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는 미래지향적 비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아가 미래세대의 비전으로 공유하고 실현해야 할 가치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다. 이것이 ‘환경국가원리’ 도입의 필요성이 절박하게 요청되는 이유이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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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줌마’란 ‘사랑과 결혼’의 문제에서 해방되거나 제외된 여성, 거칠게 말하자면 ‘남자라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탈성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애 키우고 먹고살기 바빠서 ‘사랑 따윈 몰라’라거나 남편을 ‘그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존재임을 가정해본다. ‘아줌마’를 들먹이는 이유는 어떤 계기에 의해 살펴본 지난 시기 ‘여성문학’이 지나치게 로맨스에 치중된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에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구든, 냉소든 ‘사랑’을 구원의 최종심급으로 둔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속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랑과 결혼’이 여성의 단 하나의 운명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평에서 벗어난 ‘아줌마’의 삶이란 무엇인가?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고 직장에서 또 일하고 늙으신 부모님을 돌보는, 날마다 노동하는 삶이다. 나는 이 섹슈얼리티가 지워진 차원에서의 ‘여성의 노동’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 혹은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저출산’ ‘비혼’ ‘육아시설’ ‘노인돌봄’ 등이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성을 가정한 ‘노동’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맞벌이 가족’을 이상화하고 있는 현 경제체제가 여성을 끊임없이 유급노동시장으로 호출함으로써 돌봄 공백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경제 생산을 중심으로 한 시장체제가 ‘육아, 노인 돌봄과 가사’라는 사회적 재생산 영역을 잠식함으로써 돌봄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례로 그녀는 현재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미국 IT 업계의 ‘냉동 난자’ 무료서비스 등을 들고 있다. “일단 기다렸다가 40대, 50대, 60대에 자녀를 가지는 걸 생각해봐요. 가장 에너지 왕성하고 생산력이 높은 시절은 우리에게 헌신하세요”라는 제안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호출하고 가정을 공동화한다. 또한 돌봄노동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재편함으로써 자본주의 완전 정복을 향해 나아간다. 다양한 형태의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등의 확산은 돌봄노동의 자본주의화를 보여주는 예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도우미로 대신할 수 없는 ‘아내’ ‘엄마’ ‘며느리’의 자리, 물리적 노동은 물론 종합적 능력, 시간, 애정이 필수적인 이 자리의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다시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에 따르면 이 당면한 돌봄문제에 대한 대안에는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대다수 미국 페미니스트와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이다.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이 모델은 여성 고용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가정에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여성에게는 불만족스러운 모델이다. 두 번째는 서유럽 국가가 실천하고 있는 ‘동등한 돌봄제공자’ 모델이다. 이 모델은 여성의 임금노동 현장을 유연화하고 국가가 돌봄수당을 제공함으로써 ‘여성의 육아 역할’을 보장하는 것이다. 차이를 유지하면서 비공식 가사노동을 인정하는 방식이지만 여전히 젠더 불평등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낸시 프레이저가 제안한 제3의 유형은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이다. 이 모델은 모든 사람을 ‘돌봄’의 주체, 즉 여성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여성의 생활패턴을 모든 사람이 규범으로 삼도록 하는 것, 즉 생계부양 노동과 돌봄 노동 양쪽을 하고 있는 현재 여성을 보편자로 상정하는 것’이다. 이 비전은 사회 체제를 남성 중심에서 여성으로 이동함으로써 젠더 불평등을 해결할 뿐 아니라, ‘돌봄 공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며 해방적이다.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여성혐오’에는 다양한 문제적 층위가 놓여 있다. 낸시 프레이저의 말대로 그것은 ‘분배냐 인정이냐’의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 문화적 불평등의 한쪽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데 엉킨 복잡한 함수문제이다. ‘맘충’이라는 말에 여성비하와 전업주부의 무임금 노동 등이 함축되어 있듯, 젠더 불평등의 해결은 동시적으로 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제껏 ‘남성’을 중심으로 두었던 제도를 ‘여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번 ‘개헌 논의’와 더불어 여성주의가 사람들이 지시하는 ‘여성’의 제한된 이쪽 영역에 머물기보다, 경제, 정치, 문화 등의 보다 전면적 차원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횡단에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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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은 지난 2월24일 창립 20주년 행사를 가졌습니다. 출판사들은 크든 작든 잡화품 가게처럼 다양한 책을 내놓게 마련인데 1600여종을 펴낸 소명출판은 한국문학이라는 외길만 걸었습니다. 국문학자가 소명출판에서 책을 펴내는 것이 영광이라는 분위기여서인지 기념식장에는 유명 국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잔칫집이면 즐겁고 유쾌해야 했지만 박성모 대표의 인사말부터가 무거웠습니다. “출판노동자들이 온당한 예우는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평균적인 대우를 받느냐 하면 대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20년을 버틴 이른바 한 출판사 대표라는 위치에 있는 저 자신부터 이 출판노동자로서 온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힘겹게 이끌어왔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축사를 한 분들도 앞으로 50년 이상 같은 길을 꾸준히 걸으며 장수하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우려의 말을 더 쏟아냈습니다. ‘동아시아 인문학의 구축과 연대’라는 소명출판의 지향점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런 출판사가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의 대부분은 이런 책을 읽는 독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사전에 소명출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일본의 30대 평론가인 후지타 나오야의 <신세기 좀비론>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과도기입니다. 모던으로부터 리퀴드 모더니티의 시대로 이행하고, 주요 미디어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게임 등의 뉴미디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윈의 이념이 영향력을 갖던 시대와는 달리 뇌 과학, 금융 공황, 분자생물학 등의 지식과 그로부터 발생된 세계 인식·자기 인식이 영향력을 갖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이행기 속에서의 ‘인간’ 삶이 겪은 변화와 뒤틀림으로부터 21세기의 좀비 표현에 대한 공감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좀비, 세계가 액상화하는 트럼프 시대의 전조이자 인류 해방의 증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자는 이민자나 이슬람교도를 공포의 대상으로서 표상시키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대한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좀비’로 보고 있었습니다. 미국만이 아닙니다. 터키 등으로부터 몰려오는 난민을 막기 위한 ‘버철 펜스’(감시 카메라, 드론, 생체인증 등을 구사한 장벽)를 구축한다는 구상이 EU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제조업인 무기를 팔러 한국을 다녀간 바 있는 트럼프는 인류 평화의 축제인 평창 올림픽 폐막에 때맞추어 북한의 석유·석탄 무역 등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중국 등 외국 해운사와 선박에 대해 무더기로 해상 차단이라는 독자적인 제재를 단행하면서 곧바로 제2단계 조치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2단계가 “매우 거친 내용이고 전 세계에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대북 군사옵션 동원 가능성마저 예고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불안, 공포, 소외감, 고통, 괴로움” 등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단지 트럼프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구조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사유를 조금이라도 하고 있을까요? 보수정치인이야 원래 아무 쓸 짝이 없는 종자들이지만 그런 사유를 통해 장기적인 방안을 연구해야 할 대학은 신자유주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석·박사 연구자나 학생들의 머리에 빨대를 꽂아놓고 빨아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큰일이지 않나요? 법정 최저임금이 좀 올랐다고 청소노동자를 앞장서서 해고하거나 저임금의 시간강사나 연구자를 온갖 핑계로 핍박하는 것이 바로 대학입니다.

문학전공의 대학졸업자가 문학적 상상력을 활용할 직장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요? 글만 써서 먹고사는 작가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에 영화 잡지를 비롯한 문화잡지들이 대거 사라졌습니다. 김영란법을 핑계로 그나마 남아있던 대기업 사보들도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니 기자나 편집자로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소명출판을 버티게 해준 것에는 학술원이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학술도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죽어가는 이에게 산소호흡기를 꽂아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선정돼 도서관 등에 보급된 책들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이 걸려 쓴 논문들을 대강 얽어서 출판사로 보내면서 책으로 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출판사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는 일입니다. 그러니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을 임팩트가 강한 주제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예시하며 스토리텔링이 강한 책을 빠르게 써내야만 합니다.

그런 원고를 써낼 수 있는 학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날 저는 세상을 뒤흔들 젊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며 강경한 노선으로만 일관하는 트럼프라는 ‘좀비’가 유포하는 공포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가 세우려는 ‘장벽’부터 무너뜨려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공존’을 추구하는 설득력 있는 담론을 되도록 만들어내야 합니다. 현실에 발 딛고 서서 목청껏 외치는 전복의 상상력이 되도록 많이 출현해야 합니다. 그런 상상력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상력이 담긴 책을 열심히 찾아 읽어주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밝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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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총은 이른바 보수성향 교원단체다. 그동안 전교조의 정치성, 과격함에 대해 순수하지 못하다며 비판해왔다. 그런 교총이 달라졌다. 그토록 미워하던 좌파단체처럼 돌변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대규모 집회·시위까지 했다. 까딱하면 삭발과 단식도 하고, 나아가 해직불사 결사투쟁이라도 할 기세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공언한 내부형 공모교장 확대 정책 때문이다. 이는 승진점수 경쟁에 따라 주어지는 기존의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와 관계 없이 경력 15년 이상인 교사가 공모를 통해 교장으로 임용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씌운 ‘자율학교의 15% 이내에서 실시’라는 독소조항 탓에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이번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은 멀쩡한 법을 고쳐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꼼수를 제거하여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교장 자격증 하나 따자고 20년을 고생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니 속이 쓰라릴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내거는 ‘무자격 교장 철폐’라는 구호다. 누가 들으면 교육부가 턱없이 함량 미달인 사람을 학교에 끌어들이려는 줄 알겠다. 내부형 공모교장의 목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 중에서 충분히 교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임용하겠다는 것이지,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임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장 자격증’과 ‘교장 자격’은 다르다. ‘교장 자격증’은 소정의 절차와 정량지표를 충족시키면 발급되는 증서이고, ‘교장 자격’은 교육에 대한 비전이 있고, 교원들이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리더십과 덕망이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교장 자격증’의 이런 저런 지표가 ‘교장 자격’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인지, 다만 경쟁과 줄세우기를 위해 만들어진 숫자에 불과한지다. 답은 뻔하다. ‘교장 자격증’의 지표와 ‘교장 자격’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내부형 공모교장 같은 게 애초에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자격증과 ‘원장’ 자격증이 따로 없듯, ‘교사’ 자격증과 ‘교장’ 자격증이 따로 없는 게 맞다. 그런데 교총은 15년 이상 한눈팔지 않고 교육에만 매진해온 동료 교사들을 엉뚱하게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모욕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되물어본다. ‘교장 자격증’ 소지를 근거로 ‘유자격 교장’을 자처하는 이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20년간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시라면 심지어 ‘반교육적’ 행위라도 감수해야 함을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 교장이 드문 까닭이다.

사실 ‘자격증’ 하나 내걸고 자기들만이 교장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총의 저 투쟁이야말로 알량한 자격증과 진짜 교장의 자격이 무관하고, ‘교장 자격증’ 외에 스스로 교장의 ‘자격’을 입증할 자신감 없음을 자백하는 행위다. 만약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라면, 자격증 소지자는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 그리고 그들 주장대로 전교조 소속 교사를 공모과정에서 너끈히 물리치고 선발될 자신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교육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과 교사로서의 헌신 중 어느 것이 교장 자격에 더 마땅한 것인지에 입각하여 내부형 공모교장 시행령을 원안대로 속히 시행하기 바란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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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옛날에 파렴치한 자가 나오면 조리돌림을 했습니다. 죄인의 등에 북을 묶어 한 포졸은 둥둥 두드리고 다른 포졸은 죄상을 외치며 동네방네 끌고 다닙니다. 극도의 망신과 세인의 경각심을 유도하는 명예형이죠. 포졸이 죄인을 돌리며 그 얼굴을 여러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조리돌림(졸이돌림)이란 말은 쌀 씻을 때 이물질 거르는 조리질과 연결시켜 생긴 듯합니다.-조인회시라고도 합니다. 뭇사람(稠人)에게 돌려 보인다(回示). 조리돌림은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한 사람이 힘겹게 폭로하면 이에 힘입어 나도 겪었다며 속속 증언대에 올라섭니다. 요즘 ‘미투(MeToo)’가 각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예술·교육·스포츠·언론 할 것 없이 지위를 공포로 이용한 성폭력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회적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증언들이 그 증거입니다. 들어보면 너무 극악해 사지가 떨립니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들은 ‘쪽 팔았다’ 여기고 처벌 피해 자숙한다 도망칩니다.

그리고 일각에선 약자의 언어 MeToo를 가져다 ‘HeToo’로 바꿔 강자의 언어로 물타기하고, 피해 여성들의 피 토하는 절규에 공감하기는커녕 생지옥에서 울부짖는 목소리를 포르노로, 기삿거리로 소비하려 들기도 합니다.

‘덩덩 하니 굿만 여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일만 나면 좋은 수가 생긴 줄 알고 공연히 좋아한다는 뜻이죠. ‘미투’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가해자를 만든 사회에 대한 고막 찢는 경보입니다. 가해자의 처벌, 퇴출, 사회적 재발방지라는 그녀들의 울림소리에 위드유(WithYou)로 답해야 옳을 것입니다. 자정(自淨)이란 말, 믿지 않습니다. 잠시 가라앉는대도 고인 물 휘저으면 도로 흙탕물 되니까요. 진흙탕을 씻어내 버리는 건 세차게 흘러드는 새 물뿐입니다. 덩덩 소리는 굿판에서만 나지 않습니다. 처형장에서도 울립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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