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현재 19세로 돼 있는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문재인 정권이 보복정치와 관제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시종 현 정부와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미래세대를 책임지는 사회개혁 정당으로서 선거연령 하향과 사회적 평등권 확대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대신 취학 시기를 7세로 한 살 앞당기자는 조건부여서 유감스럽지만 18세 투표권 부여에 찬성한 것 자체가 진전된 입장이다. 선거연령을 낮추겠다는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어야 하는 논거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선거연령을 19세로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18세는 취업·결혼이 가능하며 병역과 납세 의무도 지는 연령이다. 이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은 미래세대의 의견을 반영하는 의미에서도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100세 노인의 경험은 인정하면서 고3 학생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고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갑자기 민주시민이 되는 게 아닌 만큼 이들의 투표권 행사는 시민교육의 과정이기도 하다. 김 원내대표가 견해를 바꾸어 선거연령 낮추기에 찬성한 것도 이런 흐름과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당 의원들은 그제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연령을 낮추는 데 반대했다. 고3 교실이 정치화한다는 철 지난 주장을 되풀이했다. 지난해 1월 관련 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가 막판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 원내대표는 선거연령 18세 하향에 찬성한다면 즉시 당론을 모아 이를 관철해야 한다. 법안이 제출돼 있는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 6월 지방선거에서부터 시행하면 된다. 학제 개편을 전제로 선거연령을 낮추겠다는 김 원내대표의 주장은 말이 안된다. 한국의 고3 18세들만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로 모자라다는 얘긴데 심각한 모독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권력구조나 선거구제와도 별개의 사안이다. 한국당이나 김 원내대표는 젊은이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시늉하려고 선거연령 하향을 논의하겠다는 심산이라면 당장 접는 게 낫다. 이번에도 선거연령을 갖고 장난친다면 한국당은 미래의 유권자들로부터 영영 외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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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지명철회를 계기로 ‘코피(bloody nose) 전략’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핵시설 등을 제한적으로 정밀 타격하되 동시에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집결시켜 ‘북한이 보복하면 완전히 섬멸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북한의 대응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먹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한 방 쳐 코피를 터뜨리면 전의를 상실할 것이라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빅터 차 석좌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구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우려를 표명했다가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신보도들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담당자들이 빅터 차 석좌에게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대피를 도울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질의하자 그가 군사공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빅터 차는 북한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어서 엄청난 재앙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빅터 차는 워싱턴포스트 지난달 30일자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대북 공격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킬 뿐 위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알려진 것 이상으로 대북 군사공격을 검토해 왔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북 강경파로 손꼽히는 빅터 차도 반대할 정도로 무모한 전략이 미국 수뇌부에서 논의돼 온 것이다. 제한적 정밀 타격인 ‘코피 전략’은 북핵 시설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일시적으로 핵개발을 막을 수 있다 해도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침략을 막는 길은 핵무장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해 핵무장을 더욱 촉진하는 효과를 낸다.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겁을 먹고 얌전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한반도 전역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을 전면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동맹국인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도박을 미국이 구상해 왔다는 점은 섬뜩하다.

한국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대화보다는 군사모험주의에 경도돼 있다. 미국 고위인사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올림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다. 이 엄중한 시기에 주한 미국대사라는 한·미 간 핵심 소통채널의 단절도 방치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설마 코피 전략이 미국의 안보를 더 크게 위협하는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코피 전략을 즉각 폐기하고 대화를 준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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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를 이어 가보겠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분권이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죠. 더불어 논의되는 내각제는 여론조사에서 늘 꼴찌입니다. 촛불혁명의 의미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가장 알맞은 정부 형태임을 보면 이 또한 정치의 아이러니라 할까요.

2013년 체코의 네차스 총리가 사임했습니다. 임기를 마친 게 아니라 논란에 휩싸여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죠. 최측근들이 군 정보국에 이혼 중에 있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라고 명령했고 거액의 뇌물수수 등 전횡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의회 해산, 총선이 이어졌고 야당이 승리하며 정권교체가 재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네차스 정부의 전횡은 박근혜 집단에 비하면 그 규모나 죄질이 동네 길고양이 수준이었지만 말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기가 막힌 지는 참 오래됐었습니다. 정당성에 대한 의심은 대선이 채 치러지기 전에 시작됐죠. 언론 통제 등 권력 남용이 뻔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한탄과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발견되기까지, 박근혜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러고도 박근혜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100만의 인파가 차가운 광장을 뜨겁게 달구고서야 정치권이 간신히 움직였죠. 한국 민주제도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죠.

그 짓거리를 하고도 그렇게 오래 버텼다는 게 한계입니다. 이르면 대선의 정당성이 의심됐을 때, 늦어도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를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헌법은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는 버틸 수 있었고, 버텼기에 국정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수능을 끝낸 학생과 비슷합니다. 시험이 없으면 공부할 맛이 안 나죠. 이미 권력의 정점에 와있고 더 이상 선거 걱정도 없는 정치인, 즉 대통령도 남 눈치 볼 이유가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에는 있습니다. 체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난 구조적 배경은 민-의회-정부-총리,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도였습니다.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석수를 나눕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그 당의 리더가 정부 수반이 됩니다. 여기에 유럽식 선거법을 더하면 다당제 의회가 보통이 되죠. 자연히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당연합을 꾸려 다수를 만들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을 이룬 정당들의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는 필수적이죠. 정부는 의회의 과반을 등에 업고 있으니 일하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정부는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총리도 마찬가지죠. 자리를 잃는 것은 간단합니다. 의회가 불신임안을 처리하면 됩니다. 보통 때라면 힘들지만 민심이 싸늘해지면 사정은 돌변합니다. 야당은 불신임안을 처리하자고 목청을 높이고, 여당 측에서도 눈치를 살피다 등을 돌리는 일이 생기죠. 즉 정부와 총리의 해고 가능성이 실존합니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리라도 내각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좋지만 우리 정당의 행태를 보면 아직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앞뒤가 바뀐 지적일지도 모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살아남은 지금의 정당을 바라보고 하는 소리니까요. 제도를 바꾸면 정당들은 빠르게 탈바꿈할 겁니다. 반대로 정당이 지금 같으면 4년 중임제를 해도 대통령에게 끌려다닐 테니까요.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한 이는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쿠데타로 의원내각제 정부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죠. 박정희가 파괴한 민주주의의 꿈을 되살릴 때가 왔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장한 정당들이 권력을 갖고 제왕이 아니라 인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촛불혁명에 맞는 이유입니다.

2012년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고 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잊지 않았길 바랍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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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산골 리조트 마을 다보스라는 곳에는 매년 1월 말이 되면 세계 주요 정상, 장관, CEO, 사안별 전문가, 그리고 유명 언론인들이 다 모여든다. 이들은 이곳 다보스에서 서로 만나 사업 협상도 하고, 세계의 주요 흐름을 살피기도 하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포럼이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이다.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막연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하여 중국이 책임지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국제질서를 수호해 갈 것을 선언하였고, 그로 인해 세계의 리더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서막이 올랐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하였다.

지난 1월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다보스 포럼은 작년의 시진핑 주석의 기세를 이어 인도의 모디 총리가 지난해 시진핑 주석의 선언과 맥을 같이하는 개막연설을 하였고,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정상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세계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다보스에서는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위기와 이를 지키려는 각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폐막 연설 참석을 깜짝 발표하면서 폐막 연설에서 미국제일주의가 미국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세계에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돌아갔다. 다보스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어지는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응한 수비 연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은 여전히 미국제일주의이지만 수사는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를 의식한 연설이었다.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나름대로 이탈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다보스라면,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을 읽을 수 있는 곳도 다보스다. 거리에서 우연히 한국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피카부’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는 다보스의 소녀들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뻗어 온 한류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역시 만날 수 있었던 곳이 이번의 다보스였다. 북한 문제에 관하여 다보스 포럼 측에서 갖는 관심을 반영하듯 관련 세션도 여러 개 열렸고, 세계의 언론도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나도 관련된 대부분의 세션에 참여하였고 참석자들의 발언을 면밀히 관찰하였는데, 다보스에서 알 수 있는 한반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평창 올림픽 이후의 북한 핵 문제”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세계의 안보 문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과연 이 지역이 안정적으로 잘 관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올림픽이야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국제사회가 한국을 도와주겠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는 그대로 이전의 모습으로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으로 인하여 북한과 미국과 국제사회가 핵 문제와 관련하여 변한 것이 없을 터인데, 잘못하면 우리만 변하지 않는 북한에 호의적인 정권으로 비쳐 미국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세계의 우려는 현실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정은과 최대 압박을 통하여 핵을 포기시키려는 트럼프라는 두 강성 지도자가 다시 맞붙는다면 긴장 수위가 계속 높아져 한반도의 미래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부시 대통령의 2002년 “악의 축” 연설을 상기시키는 북한에 대한 경고를 1월30일 연두교서에 포함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그 연설 이후 실제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바 있다.

그 다음날인 1월31일에는 미국의 북한 예방타격을 반대하는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 빅터 차 교수의 임명을 철회하였다. 북한에 대한 강성 메시지를 연거푸 보내고 있다. 우리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그 모멘텀을 유지시키려면 겨우 재개된 남북대화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성사시켜야 한다.

문제는 북한은 항복하는 형식으로 북핵을 포기하는 대화에는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 문제에 항복하면 다른 문제도 끝까지 밀려서 결국에는 정권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자체진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항복이 아닌 북핵 포기의 협상 구도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우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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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지지층이든, 아니든 국정 지지율 ‘60%’ 어름에 시끌벅적하다. 지지층이 염려를 담은 분석이라면, 반대층은 ‘거 봐라’는 투로 예언의 실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한다. 70% 안팎을 비행하던 그간 지지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 지금도 낮은 게 아니다. 이처럼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를 특징짓는 열쇳말의 하나고, 그 때문에 작은 흔들림조차 파문을 그려내는 ‘지지율의 함정’과도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간 ‘지지율 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민이 외교안보 디딤돌이자 이정표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론’이다. 여론을 기준 삼기 가장 어려운 외교에서조차 그의 기준점은 ‘국민’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80분 남짓한 회견 동안 ‘국민’만 64회 되풀이했다. 그다음 많았던 ‘평화’가 15회임을 감안하면 압도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 내내 “국민의 뜻과 요구를 (국정의) 나침반 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100% 믿지 못하듯, 권력의 ‘국민’ 또한 얼마만큼의 진정성으로 이해해야 할지엔 늘 의문부호가 붙는다. 야당의 ‘포퓰리즘’ ‘쇼통’ 공격은 그 약한 틈을 파고든 것이기도 하다.

실상 문재인 정부의 여론관은 정치적·정신적 뿌리라 할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다르다.

“여론조사 속에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에, 또 비전을 달성할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론은 참고자료로 해야지 쫓아가다 보면 장기적 과제를 잊어버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참모들에게 한 당부다. 그에게 여론은 “몇발짝 앞서 나갈까 하는 참고자료”였다. 때로 여론에 한참 앞서 불화를 감수하고 깃발을 들었던 사례는 ‘증세론’ 등 한둘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이’를 꿈꾼 지사(志士)적 정치인이라면, 문 대통령은 국민 여론과의 길항에 더욱 예민한 현실적 권력이다. 노 전 대통령이 때로 토론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문 대통령은 시민의 엄호를 받으며 시민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 노 대통령이 ‘제도’의 깃발을 들고 변혁의 첫 열에서 선다면, 문 대통령은 더디더라도 문화·풍토의 변화를 겨냥한다. 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 때 법과 시스템을 바꾸면 사회가 바뀔줄 알았는데 정작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소용이 없더라.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기본적 풍토의 변화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에게 ‘도대체 노무현 정치와 문재인 정치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문재인 정치는 다수의 세력을 가졌다”였다. 문재인 정부는 다수를 추구한다. 비전을 비슷하게라도 성사시키거나 꺼내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이를 “기반을 넓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 친노·친문 인사는 “노무현 정부 때 낮은 지지율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크다. 지지율이 낮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은 성패를 떠난 꿈을 꾸었지만, 문재인은 꿈 이전에 ‘실패할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권력의 출발점이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벽하지 않으면 손을 안 댄다. 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결도가 없어도 일단 뛰어들어 현안을 해결한다. 그리고 급한 일일수록 국회에 안 맡긴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에 어느 진영도 ‘100% 만족’은 어려울 것 같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처럼 우리 사회 의제들을 차근차근 모두 국정 메뉴에 올리겠지만, 그 결론은 공약대로만은 아닐 수 있다. 정권은 방향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최종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향후 문재인 정부와 진보층의 ‘불화’에 대한 염려는 그래서 나온다.

현 여권의 ‘정권 재창출 열망’에서 지지율 정치의 동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정권 뺏겨도 낭패날 일은 없다’던 오만의 낭패감을 절절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수와 더디더라도 문화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시민정치의 완성이 지금 정부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이제 첫 위기의 지점에서 ‘지지율 정치’는 새 좌표를 찾아야할 과제에 직면했다. 그간 고공 지지율은 실상 전 정권 적폐의 반사이익과 촛불혁명의 지지율일뿐 문재인 정부가 증명한 지지율은 아니었다. 부동산 등 난제들에서 ‘국정 능력→지지율→국정 동력’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순환 궤도의 좌표를 제시해야할 시점이다.

긴 호흡에서 문재인의 ‘현실’이 노무현의 ‘꿈’과 만나 꽃피는 접점은 결국 ‘제도’다. 둘 모두 지향점은 여론과 정치적 다수가 일치하는 정치체제의 제도화에 있기 때문이다. 개헌이 그 한 통로일 수 있으며, 협치를 넘는 연정 문제는 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될 질문이다. 모두 ‘권력은 유한하지만, 공동체는 무한하다’는 정치의 궁극적 경구에 다가가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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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유럽에서 열린 작은 회의에 참석하고 왔다. 회의 시작 전 주최 측이 참가자들에게 채식, 육식, 샐러드 중 선호하는 것을 조사하여 그 결과에 따라 음식을 제공했기에, 참가자들은 따로 부탁하거나 고민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회의 기간 내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참가자 스무명 중에서 채식을 선택한 사람은 여섯명이 넘었다. 주로 연구자나 사업가들로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도 채식 선호자가 30%나 된 것이다.

참가자들과 함께 채식 식사를 하던 중에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오찬이 생각났다. 당시에 오찬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어느 여당 의원이 ‘반찬 투정’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관심의 초점은 ‘투정’이었지 음식이 아니었다. 밥과 국과 반찬 몇가지 정도면 특별히 흠잡을 게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투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진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투정’ ‘비난’ ‘진화’로 이어지는 이 장면이 어느 정도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때 음식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음식은 한 가지였고, 고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었다면 밥과 나물만 먹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아무도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않았고 배려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의원 중 어느 누구도 그 음식을 ‘부실’ 이상의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육식주의자라 해도 우리 사회를 대변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의원이 적어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을 것이다.

회의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또 한가지 눈에 띄었던 것은 주최 측이 회의 내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고, 농도가 2000PPM이 넘으면 회의를 중단하고 창을 열어 환기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생각난 것이 있었다. 서울시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대중교통 무료운행 정책이었다. 그런데 대기의 미세먼지보다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사무실, 교실, 지하철, 작업장, 지하상가의 공기질이다. 이산화탄소, 곰팡이 포자, 화학물질 농도가 높은 이 장소들은 특히 겨울철에 창을 잘 열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에 공기질이 더 나빠진다.

청와대의 음식대접과 서울시의 버스, 지하철 무료운행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세심함과 세밀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끊이지 않는 재난과 사고들, 검사들에게까지 널리 퍼져있는 성추행이 모두 세심함의 부족 탓이 크고, 각종 법령과 규제가 있는데도 큰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이유는 세밀함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건물 관리책임자들이 추운 겨울에 전기사용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화재와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리고 건물 사용자들에 대한 세심함이 있었다면, 세밀하게 건물을 살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 이상의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강력한 법령을 제정해서 적용한다고 해도 세밀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제천과 밀양에서 모두 ‘드라이비트’ 공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이것을 금지하고 다른 방식으로 단열을 하도록 하면 전열기 사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미국 드라이비트 회사에서 개발하여 미국 전역에 퍼뜨린 공법을 ‘부실하게’ 적용하는 것이 문제인데, 세밀한 분석 없이 ‘거칠게’ 전면금지로 나아가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세심함과 세밀함의 바탕이 있어야만 재난당한 분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도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각 총사퇴와 정치보복 같은 엉뚱한 말만 튀어나온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심한 배려의 마음으로 고통을 함께하려고 희생자를 찾아가 슬퍼하는 것도 ‘쇼’로만 보일 뿐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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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내가 먼저 공포를 만들면 된다.” 일본만화 <드래곤 헤드>에 나오는 대사다.

친구들과 열차여행 중 대지진 때문에 땅속 암흑천지에 갇히게 된 중학생들은 극도의 공포에 빠진다. 그런데 그중 무서움에 떨던 한 학생이 스스로 유령이 되어 암흑에 갇힌 친구들에게 원인 모를 공포를 만들며 공포를 이겨낸다.

2012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도 이런 부분이 있다. 북한 특수부대 여자 장교와 천방지축 안하무인 남한 왕자가 서로에 대한 편견과 세상의 불신, 방해를 딛고 사랑을 키워간다는 휴먼멜로 드라마인데, 남과 북의 대화국면마다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다국적 군산복합체 지주회사 클럽M’의 회장 존 마이어(한국명 김봉구)는 남과 북의 협상국면마다 자신의 기업이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의 이권이 축소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매번 화해무드를 반전시키려 갖가지 음모로 공포를 조장한다. 마치 자신에 의해 남과 북의 공포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본인의 막대한 이권으로 유지되는 상황, 즉 공포를 자신이 먼저 만들면 통제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극대화됨을 보여준 드라마의 가상적 상황이었다.

요즘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남과 북의 대화가 시작되는 영역은 스포츠와 문화다. 개회식과 폐회식의 단일팀과 한반도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북한 예술단의 남한공연 등이 현실화되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평양올림픽’ ‘북의 갑질’ ‘올림픽을 체제 선전장으로 만들려는 시도’ ‘어렵게 출전하게 된 남한 선수들의 출전기회를 축소시키는 공정하지 못한 굴욕적 협상’ 등 북한을 화두로 한 프레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호기심과 의구심을 넘어 불안과 분노의 요소를 덧붙여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2030세대까지 소환해 확대시키려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편향적인 상상일까?

물론 올림픽 개회식 전날 기존 날짜까지 갑자기 바꿔가며 세계를 향해 열병식을 예고하고, 합의했던 일정을 한밤중에 갑자기 취소하는 등 북한의 속보이는 유치함과 옹졸함에 대해 필자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러나 그들만의 관점에서 편파적으로 보면 세계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는 필사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북한이 느끼는 실재적인 공포를 스스로 무시하는 척하며 반전시키려는 배수진의 전략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전략 또한 보다 진화되고 섬세하며 정교해질 필요가 있는데도 여전히 기존의 프레임을 반복하는 시도들 역시 답답하다. 정치의 대안성이 문화의 상상력을 여전히 뛰어넘지 못한다.

문제는 공포가 아니라 자신감 있는 이해를 통해 자존감을 지켜주는 신뢰의 대화다. 필자는 2002년 <게으른 고양이 딩가>라는 애니메이션 남북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제작진과 함께 북한 평양을 4박5일간 방문했었다.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던 당시의 경험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환영만찬과 환송만찬 등 보통강호텔에서 근사하게 우리에게 마련해준 북한의 성의가 모두 우리 측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되었다는 후문을 듣고, 북한은 참 어렵지만 자신의 입장만큼은 세워보려고 부당한 억지를 부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협상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고, 말도 안되는 계약조건을 요구했다. 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계약에는 갑과 을이 있는데, 지금 남측이 갑이다. 그런데 왜 을이 되는 북측이 갑질을 하려고 하느냐?” 그때 북한의 협상대표격 고위간부가 이렇게 답을 했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한 형이 형편이 어려운 동생 돕는데 갑과 을이 어디 있습네까?” 어이가 없었지만 역지사지해보면 이해도 되어 쓴웃음만 나왔다.

여유 없는 공포를 만드는 습관에 중독된 우리는 아닐까? 언제쯤 우리는 여유로운 자신감으로 그들을 역지사지하며 이해해주고, 옹졸함과 유치함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지적하며 질타할 수 있는 성공한 형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까?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 북한의 같은 세대보다 자유롭고, 영특하며, 재주도 많고, 자신의 주장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키도 더 크다.

그들에게 자랑스럽게 용기를 내라고, 우리가 이미 이겼음을 그리고 더 잘해낼 수 있음을 전제하고, 폭넓은 자신감으로 이해하며 설득하라고 얘기해줘도 될 때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 공포는 여전히 후진적이며 유치하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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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산타크루즈는 봄부터 여름까지 약 6개월간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리는 사막지대다. 바로 그곳에서 아내는 무용가로, 남편은 작곡가로 사는 부부가 있다. 미 서부지역에서는 꽤 알아주는 예술가 커플이다. 그런 그들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첫 비가 내리면 듣는 음악이 있었다. 황병기의 ‘가을’이었다. 마치 축제일의 의식인 듯 지난 3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곡을 들었다고, 무용가 아내가 자기 집에 황병기를 초대해서 얘기했다.

황병기는 그런 음악가였다. 국악이라는 한국인에게조차 낯선 미지의 음악을 전 세계적으로 두고두고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으로 만든 분. 그뿐 아니라 국악을 전대미문의 전위적인 실험 음악으로 안착시킨 진정한 ‘대가’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영광스럽기 그지없다. 지금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황병기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경과 인종, 세대를 넘어 진지하고 성실한 예술가 집단 혹은 예술 애호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진심으로 교감하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계셨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스럽다.

지난달 31일 별세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국악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으로 만들었다. Right Now Music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거장이나 대가로서의 허세가 없었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젊은이들에 대한 몰이해를 무슨 자신만의 특권인 양 휘두르는 옹고집 어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가야금을 연주하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클래식은 물론 재즈나 포크, 심지어 노라조 같은 대중가요를 들으며 음악과 시대를 더 충실하게 가슴으로 껴안으려 한 분이었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자양분을 찾아 늘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진짜 어른. 그리하여 몇 해 전 새해 인사차 인터뷰를 청한 자리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연주자가 매일 연주 안 하면 안돼. 연주가 육체 행위라 그래. 스포츠하고 똑같은 거야. 김연아나 장미란이 한 달만 안 해봐. 못해. 육체 행위는 정직하거든. 그리고 속임수가 안 통해. 정신은 교활해서 거짓말도 하고, 사람도 속이고, 핑계도 대고 그러지. 게으름도 피우고 말이야. 그런 거 보면 육체가 정신보다 훨씬 신성하고, 더 위대한 거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제 정말 코앞에 두고 있는 선수들에게 보내는 이보다 더 울림이 있는 메시지가 있을 수 있을까? 내게는 이런 말처럼 들린다. “평양 올림픽 어쩌구 하는 말들은 신경 쓰지 마. 이념도 이념장사도 결국 교활한 정신의 산물이니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직하고 신성한 육체의 힘을 보여줄 때라고. 육체로 세계를 감동시킬 때.”

서울대 법과대학 출신인 선생께 ‘안태근 성추행 사태’에 대한 한 말씀을 부탁드리면 뭐라고 답하실지도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법과대학 나온 사람이라서 하는 말인데 그걸 원시불능이라고 해. 원래 불가능한 거. 공부 좀 잘해서 그냥 저 잘난 맛에 사는 안하무인이라 다른 사람한테 결코 사과나 용서 구할 일이 있을 수 없어서 종교에 회귀한 척하는 거야. 그런 인간들은 평생 간증이나 하면서 살게 하면 돼.”

대신 자신을 두고두고 괴롭힌 성추행 사건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폭로하는 일생일대의 용기를 낸 서지현 검사에게는 황병기 선생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채근담>의 한 대목을 들려주고 싶다.

“바람이 대나무 밭에 불어. 그럼 대나무가 우수수 울지. 그 바람이 지나고 나면 대나무가 소리를 남기지 않아. 고요해지지. 사람의 마음도 어떤 일이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지나가고 나면 비워져. 완전히. 뭐를 가슴에 남겨둘 필요가 없어.”

그리고 <채근담>에 나오는 이 대목과 꼭 어울리는 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서지현 검사에게 들려주고도 싶다. 세상의 그 어떤 음악보다 차갑고 고결하면서도 신선한 ‘비단길’이나 ‘침향무’ 같은 가야금 산조. 마치 대나무숲 한가운데에서 듣는 청명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교교한 달빛 아래 흐르는 호수의 잔물결 같기도 한 음악, 슬픔으로 공명하며 상처 받은 우리 영혼을 우아하게 위로하는 음악.

“진짜 기쁨은 슬픔에서 나오는 거야. 슬픔을 뱃속에서부터 다 집어넣고 나오는 기쁨. 그게 진짜 기쁨이지. 물론, 슬픔이 슬픔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괜히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너무 걱정도 하지 마. 그냥 현재에 살면 돼. 걱정이나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그건 유령 같은 거라고. 굳이 일부러 상대할 필요 없는 유령. 유령은 유령대로 지들끼리 살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고(웃음).”

선생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젊은이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했던 것처럼 이제 고인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서 사시게 된 선생께 ‘안녕’이라고 인사드린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의 음악과 말씀을 듣게 되어 인간 후배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슬픔과 기쁨을 그동안 매우 품위 있게 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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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양심수를 지원하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촛불’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촛불은 양심수에게는 단순한 스탬프의 그림이 아니라, 불안과 어둠을 밀어내는 ‘희망과 정의’의 상징이다. 지난 ‘촛불혁명’도 폐쇄사회를 청산하고 보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적폐척결을 둘러싼 현 정권의 대응을 보면, 촛불정신과 동떨어진 무책임한 자세가 드러나고 있다. 국내 원자력학계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내 관계자 간의 연결고리가 인맥 및 학맥으로 굳게 얽혀, 연구항목 및 연구비의 배정까지 핵마피아의 핵심인물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곪을 대로 곪은 상태’가 계속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진행 중인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개발 사업이다.

시민들의 오랜 항의로 지난 국회에서 사업의 문제점들이 명백하게 지적되었지만, 현 정권은 직접 당사자인 과기정통부에 ‘셀프 검증’을 통해 사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해괴망측한 대응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관계자가 오히려 ‘적폐를 조장하는 장본인’이라는 지적조차 나오고 있다. 이 연구·개발 사업은 일부 핵마피아가 관련 정보를 독점한 채, 실효성도 없는 무모한 연구를 장밋빛 낙관론으로 치장하여 지난 20년 동안 약 6800억원의 혈세를 낭비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당사자인 과기정통부에 계속적인 사업 추진 여부의 결정권을 맡기는 현 정권의 안일한 대응은 할 말조차 잃게 만든다.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이라도 이런 황당한 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조차 들 정도이다.

지난해 12월 말 과기정통부는 사업의 지속 여부을 검증하는 ‘재검토위원회’의 구성으로, 찬반 양쪽의 의견을 듣는 방식을 정했다. 한편 반대 측 패널은 참가조건으로, 과기정통부의 셀프 검증체제, 재검토위원회의 적격성 확인 및 공정성·투명성의 부족, 과기정통부와 연구원의 비밀 대책회의 개최 등과 같은 문제점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의 일방적인 거부로 반대 측 패널은 1월11일의 재검토위원회 참가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1월22일 과기정통부 장관과의 중재(?) 면담에서 사업의 검증 전 ‘자체 감사 실시’를 요구했으나, 장관은 관련 공무원들의 ‘성선설(性善說) 주장’으로 넌지시 거부하는 한편, 오히려 반대 측 패널에게 현행 재검토위원회에 참가하여 줄 것만을 강조하였다.

이 연구·개발은 세계 어디서도 과학적으로 실증된 것이 아니며, 그저 온갖 가정 위에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핵마피아의 희망사항만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결과를 무시한 채 약 20년간 국민 혈세를 등쳤고, 또 계속하려는 이유는 첫째 단기적인 성과물이 없어도 장기적 연구라는 핑계를 앞세워 ‘기득권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점, 둘째 투입비용의 증가에 따른 거대한 매몰비용의 손실론을 앞세워 반대론을 견제하면서 핵마피아의 먹거리를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점, 셋째 미국도 자국의 연구비 부족을 메워주는 한국의 개발사업을 거부하지 않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카터 정권 이후, 미국의 재처리·고속로연구 개발비는 축소되는 추세였다. 특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도 1980년대의 미 아르곤국립연구소(ANL)의 연구를 답습한 것으로, 도입 시에도 과학적 근거보다는 ANL의 한인 연구자(퇴직)와 국내 핵마피아의 핵심 인물과의 개인적 친분이 우선적으로 작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현 정권은 건식재처리를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언어조작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면서 약 70년이 지나도 상용화의 가능성조차 없는 고속로의 개발사업을 묵인 및 추진해 온 과기정통부의 인적쇄신은 물론, 특히 청와대 관계자의 비합리적 처사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촛불정신을 외면한 채,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불성실하게 대응한 청와대 관계자는 ‘자질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는 만큼, 엄중히 문책해야 할 것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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