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8일 한국을 방문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 일정이 북한압박에 집중돼 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친을 초청해 올림픽 개회식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방한 중에는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고, 서울에서 탈북자들과의 간담회를 연다. CNN은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기간 중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막아내며 김정은을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펜스의 방한은 미국을 대표해 올림픽을 축하하러 오는 게 아니라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려는 정치 이벤트를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웜비어 부친의 개회식 참석은 그 자체로 정치적 시위나 다름없다. ‘어떠한 시위 또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전도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금지된다’는 올림픽 헌장 50조에도 어긋난다. 미국 청년 웜비어를 불법 감금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의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하지만 이를 굳이 올림픽 현장에서 부각하려는 것이 온당한 처사일까.

국제사회는 지난해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전후로 적대행위를 하지 말자는 유엔 결의를 채택했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합동훈련을 중단하기로 것도 이 결의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적대행위는 계속하겠다는 태세다. 주최국인 한국으로서도 불편하고 불쾌하다. 이미 북한은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아왔고, 미국이 부과하는 별도의 독자제재까지 받고 있다. 올림픽 기간에 특별히 더 북한을 압박하고 자극할 이유가 있는가.

미국은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고,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매력공세’에 빠져 대북 제재 고삐가 헐거워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 이상으로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서 보듯 평균적인 한국민의 대북감정도 썩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와 전쟁방지를 위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통해 남북과 북·미가 대화에 나서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지가 있다면 펜스는 올림픽 기간 중 자극적 언행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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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7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결의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국회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4당 원내총무의 합의로 정쟁을 중단했던 전례가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88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대회에 이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다. 대회 17일 동안 70억 세계인의 이목이 평창에 쏠릴 것이다. 개최국으로서 정부와 정치권,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당당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여기에 남과 북이 함께하는 건 금상첨화다. 개회식을 불과 이틀 앞두고 나오는 성공 결의문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보수야당은 연일 평창 올림픽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극단적 종북몰이를 하며 도 넘은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대표부터 원내대표, 대변인을 가리지 않고 ‘평양올림픽’ 운운하며 황당하고 무책임한 선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일부 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까지 총리·장관을 상대로 “북한 대변인이냐”고 다그치는 등 막말 공세에 가세하고 있다. 한손으로 평창 성공을 다짐하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평창 올림픽을 비하하는 모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남북 단일팀의 근거가 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특별법 제85조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하여 남북 단일팀 구성에 관하여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법에 따라 남북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북한과 일본 여자 축구 결승전에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북한 선수단과 함께 북한팀을 응원한 적도 있다. 내가 하면 ‘평화올림픽’이고, 남이 하면 ‘빨갱이 올림픽’이란 식이다. 시대가 바뀌고 시민의 정치적 의식도 성숙한 지금 지구촌 축제에 케케묵은 색깔론을 들이대는 공세가 먹힐 리 없다. 다만 이런 상식 이하의 정치적 구호가 난무하면서 자칫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식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제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92개국 3000명에 이르는 선수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도 평창을 찾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한반도 평화도 조성해야 한다. 국가적 책무이고 민족의 염원이다. 그러자면 힘을 모아야 한다. 야당은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자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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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에 피아노학원 원장 남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서울 시내 대형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다는 장로였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두 딸이 있어 집에 몇 대의 피아노를 두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정식 학원이었다. 90이 넘은 노모와 원장이 늘 집에 있었는데, 그날은 남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자 괜찮다며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연습하는 게 불편해서 일어나려고 하자 자신이 가르쳐주겠다며 뒤에서 불쑥 껴안고 더듬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는 울면서 돌아온 내게 아빠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더 몹쓸 일 겪지 않고 도망쳐 나와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과연 다행이었을까.

나는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 일도 당한 적 없는 아이처럼 굴었다. 그날 학원에 입고 갔던 점퍼를 몰래 버리고, 그 집에서 끓이던 청국장 냄새를 지나가는 길에서라도 맡으면 구역질을 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이해가 잘됐다. 그럴수록 나는 내 안에서 점점 나쁜 아이가 되어갔다. 직장에 다니면서 몇 번의 성추행을 더 경험했다. 자신을 아빠처럼 오빠처럼 대하라면서, 아빠이고 오빠라면 근친상간의 범주에 들어갈 짓을 다정과 격려로 포장하는 남자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여자들은 성추행, 성희롱을 일상처럼 경험한다.

그러나 이 고백은 #METOO가 아니다. 나는 #METOO로 인해 이 고백을 시작하지 않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실시하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2003년에 시작되었다. 지난해에는 문단성폭력을 비롯하여 예술계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폭로가 SNS를 기반으로 쏟아졌다. 정부기관에서는 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많은 예술단체들이 자체조사를 약속했고, 교육과 처벌을 다짐했다. 그 일이 불과 얼마 전인데, 마치 처음 있는 일인 것처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즈음 나는 스스로 세상을 떠난 한 젊음의 부고를 들었다. 숨겨진 문단성폭력 피해자였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기 전 SNS를 통해 쏟아졌던 여러 가지 문단성폭력 사례들은 극히 일부만 처벌받고, 대부분은 법적 심리를 다퉈보지도 못했으며, 해석의 여지가 많은 어떤 판례 때문에 ‘꽃뱀’이나 ‘자기망상’으로 도리어 비난받은 증언 피해자들도 있다. 

대부분의 권력형 범죄가 그러하듯 가해자들은 복원되고 피해자들은 다시 숨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거진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을 지켜보는 마음이 나는 매우 불안하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많은 성폭력 사례와 고백과 증언에 대한 언급 없이 새로운 바람, 새로운 경향으로만 미투를 읽는 시선이 어쩐지 자신의 과오는 진작 알아서 용서해버린 가해자의 것과 닮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지난 연말 아픈 마음으로 힘들게 읽었던 책이 있다. <용서의 나라>(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 저/권가비 역/책세상)라는 책이다.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두고 용서,라는 표현 때문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선뜻 읽지 못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읽은 이 책은 용서하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용서받기에 대한 책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용서가 피해자를 어떻게 복원시키고, 회복시키는지의 과정을 아프게 지켜보면서, 나는 가해자조차 제대로 지목하지 못한 이 땅의 피해자들을 떠올렸다. 억울과 수모라는 말로 스스로를 복원시킨 이들, 때로는 신의 이름으로 기꺼이 자신을 용서한 이들, 그리하여 다른 가해자를 조사 처벌하겠다고 시치미 떼고 나선 가해자까지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비로소 한번 더 관심 받는 미투는 삭제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고, 살아남아 그들의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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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서워서 장독대 뒤에 숨었어요.”

검찰의 성폭력 사건 보도 이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10여년 전, 한 단체가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대회’라는 것을 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자리에 섰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대단히 안 좋은 일이고 부모에게도 말하면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너무나 무서웠던 그 어린 소녀는 뒷마당의 장독대로 기어들어가 한참 동안 부들부들 떨었다며 울먹였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고, 함께 울어줘서 곪은 상처가 일부 치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편 착잡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검찰과 법무부가 나서고 대통령까지 강력지시를 내린 것은 이례적인 발빠른 대응이다. 그럼에도 씁쓸했던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마치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없었던 일인 양 새삼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서다.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온갖 비난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적도 있지만, 장독대 뒤에서 울먹였던 소녀의 목소리처럼 가늘게 떨리는 작은 아우성도 있었다.

이전에 국가인권위에서 근무할 때 다뤘던 성희롱 사건 중 제법 많은 비율의 피해자가 소규모 영세사업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은 달랑 한두 명이고 그 외는 모두 남자인 일터에서 그들은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조직화된 대응이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외롭게 목소리를 내도 귀 기울여 주는 이도 별로 없었다. 권리구제의 또 다른 사각지대가 우리 사회 도처에 숨어있는 것이다.

성폭력은 뿌리 깊은 성별권력체계에서 비롯된 성차별이자 권력의 문제다. 그런데 이번 사안을 보면서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 또한 차별적이고 또 다른 계층 및 권력체계가 작동하는 것 아닌가 싶어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다.

검찰의 성폭력 폭로 이후 불꽃처럼 번져가는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이 강요돼 왔던 침묵을 깨고 생존자로, 주체자로 나섰다는 점에서 운동의 새로운 차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염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여전하고 심지어 꽃뱀으로 몰아가는 작태 또한 드물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목격자와 주변 사람들이 함께하자는 ‘미퍼스트(# Me First)’ 운동이 제안되고,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의 변화는 느리고, 피해자 개인이 감내해야 할 상처와 고통은 직접적이고 가혹하다.

야만적인 성폭력을 근절시켜야 한다는 요구는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가 되었다. 그 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첫 번째 대책은 권리구제 시스템의 정비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대부분의 조직은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문제를 축소·은폐하려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비방 또는 음해하는 것도 불사한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지며 문제를 확대재생산한다. 당장 발생한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 조사와 상담, 징계방안을 마련토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검찰의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 위계적인 조직과 순환보직 같은 인사체계에 얽매인 내부조직원으로서는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시급한 과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의 전면적 개편이다. 지금처럼 30분~1시간 내에 성희롱의 종류 등만 반복해서 알려주는 성희롱 예방교육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엔 미흡하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성폭력이 가부장제의 낡은 관습이며, 그 뿌리가 성차별과 여성혐오와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깨닫고 비판적 시각을 갖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존엄한 존재이며 평등한 존재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정착되지 못할 때 위계적인 권력 조직은 성폭력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젠더와 인권교육을 토대로 감수성을 키우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권력 갑질을 깨닫고 비판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하고도 포괄적인 진실 규명이다. 그 결과는 검찰은 물론 이 정부에 대한 신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정부와 민간 모두가 나서 촘촘하고 치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8년의 침묵을 강제한 풍토, 장독대 뒤에서 숨죽이며 울먹여야 했던 참담한 상황은 이제 혁파되어야 한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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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 가까운 재일 한국인을 북한으로 실어나른 재일교포 북송 사업은 남북 분단 역사의 아픈 기억 중 하나다. 식민 시절 끌고와 착취하던 재일 한국인들을 전쟁이 끝나자 무책임하게 추방하려던 일본과 공업 노동력이 필요한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시작된 이 사업은 남북 체제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 정부는 일본에 북송사업을 준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통보를 보내고, 일본적십자센터 폭파미수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북한은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북송 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했다. 이 와중에 일본은 북한과 공모해 “북한은 낙원”이라는 선전전을 벌였다. 이때 북송에 동원된 배가 만경봉호다.

만경봉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부근의 낮은 언덕 이름이다. 여기에 오르면 대동강과 주변의 만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높이가 45m에 불과하지만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방문하기를 선망하는 성지다. 만경봉호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김일성 주석은 1992년 북한 최고 영예인 김일성 훈장을 수여할 정도였다.

만경봉호가 노후화되자 북한은 총련의 성금으로 1992년 ‘만경봉 92호’를 건조했다. 1992년에 만든 만경봉호라는 뜻이다. 이 배는 북한 원산~일본 니가타를 왕복운항하면서 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돈과 물자를 전달하는 화물선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북한 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다대포항은 아시안게임 내내 북한 응원단을 구경하려는 부산시민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 이후 일본은 물론 한국 입항도 금지되었다.

만경봉 92호가 6일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140명을 태우고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 도착했다. 16년 만에 남한을 찾은 만경봉 92호는 북한 예술단의 숙소로 사용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 배의 남한 입항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이 생길까 우려하는 미국과 국내 보수세력의 공세가 거셌기 때문이다. 만경봉 92호의 남한 입항이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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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지난 4일 스웨덴과의 연습경기 때 합심 협력해서 잘 싸웠다. 남북이 함께해야 할 이유도 증명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단일팀 구성을 두고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의관으로 무장한 세대들이 맞부딪치는 듯한 전례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문명의 충돌 같았다. 많은 성찰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토론하지 못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천신만고 끝에 평화올림픽을 개최하게 됐을 때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정의만 있다고 믿었다. 바로 남북이 하나 되어 경기를 치름으로써 화해하고 전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국가의 단일팀 요구는 선수들이 오랜 시간 땀으로 일구어 낸 기회를 가로채는 부당한 권력 행사인가? 단일팀 구성이 무산되고, 이 냉기류가 평창 올림픽 북한 참여 열기를 식혀 평화회복에 난관을 조성한다고 해보자. 평창 이후 북·미가 군사적 대결을 할지 모른다. 공동체가 파괴되면 평창 올림픽이 다 무슨 소용인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성취와 행복을 유보하는 게 타당한 것 같다.

그렇지만 가능성 낮아 보이는 전쟁이 설득과 동의 없는 단일팀을 강제할 정당한 근거가 되는가라는 질문에도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평화도 정의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의 출전도 정의다. 두 개의 정의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가?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한국 사회는 지질학적 시간이 다른 단층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2030과 기성세대라는 두 지각이 단층면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성세대의 눈에 2030은 작은 일에만 분노할 뿐, 공동체의 운명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기주의자로 비친다. 2030의 눈에 기성세대는 평화 위협, 통일 문제의 책임을 2030에게 전가하는 무능한 집단이자 절차적 정의의 섬세함을 모르는 무감각한 존재로 보인다. 정말 두 세대는 다른 세계관과 정의관을 갖고 있을까?

‘2017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분석한 통일연구원 박주화 박사는 2030이 기성세대에 비해 통일 필요성을 덜 느끼는 배경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통일을 무조건 긍정해야 하는 의무감을 학습한 기성세대와 달리 2030은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 희생할 의사가 있느냐는, 비교적 속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질문에는 세대 차이가 없었다. 실현 불가능한 통일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위선이 세대 차이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민족 동질성 인식에서도 세대 차이가 없었다. 2030이 단일팀에는 비판적이었지만 그걸 두고 2030만을 나무라는 것도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10년간 남북 단절만 경험한 2030에게는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단일팀에 대한 긍정적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 연례 조사에서도 통일 필요성 의견이 지난 10년간 10% 줄었다. 특정 시기 세대별 비교를 하면 2030이 다른 세대에 비해 감소폭이 다소 크기는 하지만 연도별 비교를 하면 모든 세대에서 하락한다. 통일에 대해 ‘항상 적극적인 기성세대’와 ‘언제나 소극적인 2030’의 극적인 대립은 허구다. 기성세대는 평화의 대의를, 2030은 절차적 정의를 우선시하는 가치의 평행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와 공정성에 관한 다른 관점들은 세대별로 나뉘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가슴에 공존한다. 사람들은 평화 때문에 개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원하지도 않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평화가 깨지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냉정은 특정 세대의 고유한 정서가 아니다. 세대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밀고 당기는 자리 잡기 경쟁을 하며 공생하는 하나의 마음 상태, 우리 내면의 풍경이다.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의와 정의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전체로 수렴되어야 한다. 평화와 나의 삶도 빈틈없이 연결되고 선순환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안고 있는 2030이 단일팀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평화의 진전이 나의 삶을 개선시키는 정도와 발을 맞추지 못할 경우 2030이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결집해 세대 갈등, 나아가 계층 갈등까지 촉발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라에는 평화가 찾아오는데 나에게는 평화가 오지 않는 지체 현상이 심화되면 나의 정의가 너의 불의가 되고, 나의 평화가 너의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때 우리 안의 잠재된 양면성은 사회 밖으로 집단 표출될 것이다. 이것이 단일팀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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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되는 ‘긴박한 재미’에 빨려들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펼치는 첫 경기, 그 현장이 그랬다.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출전 선수가 몇 명인지도 몰랐다. 외국 영화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이 “아주 재미있다”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한국 남녀 대표팀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주는 결단을 내리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 논란이 우리 사회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래저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여자 단일팀의 평가전이 펼쳐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을 이틀 연속 찾은 이유이다.

단일팀의 평가전 상대는 세계랭킹 5위의 스웨덴이었다. 파워·스피드·테크닉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단일팀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관중들은 단일팀이 초반 2골을 연속 내주자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주장 박종아가 멋지게 첫 골을 성공시키자 3000여명의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로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비록 경기는 1-3으로 패했지만, 2~3피리어드를 무실점으로 버티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경기 후 전문가와 언론의 반응도 남북 선수가 첫 합동훈련으로 손발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안된 점을 감안하면, 경기력과 팀워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라 머리 감독도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면서 “지난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 경기를 했지만, 오늘은 괜찮았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가장 신선하게 느꼈던 장면은 아이스하키는 출전 엔트리 전원이 2~3분 간격으로 무제한으로 선수를 교체한다는 점이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개 주전 선수가 경기를 풀로 뛰는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선수의 출전 시간이 다소 줄겠지만, 평창 올림픽 본선에서 최소 5경기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언론 보도가 맞다고 생각되었다. 남과 북의 젊은 선수들이 첫 만남부터 보여준 훈훈함과 ‘원팀(One team)’이 되기 위한 노력들도 경기장에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단일팀이 꼭 성공적인 결말을 맺었으면 한다. 다행히 단일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면서 국내 첫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이 창단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이는 선수들의 오랜 꿈이자 ‘절실함’ 그 자체다. 단일팀이 성공해야 올림픽 이후 창단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단일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러시아 선수들의 개별적 참가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취재 열기도 엄청나다. 지난 4일 단일팀 평가전은 만원 관중을 넘어 통로까지 서 있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 전날 열린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보다 훨씬 큰 열기를 뿜어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올림픽 기간만큼은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는 등대와도 같다. 또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쇄하고 한국 경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손실을 보는 것을 막아주는 경제적 이득으로도 연결된다. 단기적으로는 평창 올림픽의 흥행과 성공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 해결과 북방 경제의 활로를 뚫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는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공들여 추진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군 출신이 주도한 보수정권이었지만, ‘남북 분산 개최’라는 파격적인 안까지 북한에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은 30년 전의 그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단일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종인 |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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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역대 대회 중 참가 국가와 메달의 수가 가장 많고, 200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만큼 국격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의 경기종목은 얼음 위의 빙상(氷上) 경기와 눈 위에서 치르는 설상(雪上) 경기, 그리고 트랙 위에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경기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 전부가 빙상경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굴스키의 최재우 선수와 스노보드의 이상호,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와 같은 유망주가 있어 전망이 밝다.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최다빈 선수의 활약도 기대된다.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최상의 설질(雪質)과 빙질(氷質)을 유지하는 게 필수다. 이상적인 설상경기장은 자연설과 인공설을 3 대 7의 비율로 섞어야 하는데, 그 작업에는 엄청난 장비와 노력이 들어간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경우 120대의 제설기와 16대의 중장비가 밤낮없이 동원됐다. 아마 사용될 전력량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빙상경기는 종목마다 요구되는 빙질이 다르다. 한국의 메달 텃밭인 ‘쇼트트랙’ 경기장은 빙판 두께 3㎝, 영하 7도 이하가 최적의 환경이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최적의 얼음 두께는 5㎝다. 경기장에 물을 한 번 뿌려 얼리면 0.2㎜라고 하니까, 어림잡아 이 작업을 250번은 반복한다는 말이다.

가장 예민한 종목은 ‘컬링’인데, 경기장 실내온도를 12도, 얼음온도를 영하 4도로 유지해야 한다. 전기가 없다면,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일일이 다 맞추고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찰나를 기록하고 승부를 판독하는 데에도 최첨단장비가 필요하다. 수많은 조명과 카메라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모바일과 TV로 그 광경을 생생하게 시청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전기’다. 이뿐 아니라, 선수들의 숙식과 안전을 보장하고, 관람객들에게 세심한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에도 전기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자가 몸담은 한국전력은 지난 3년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력설비 인프라 구축사업을 잘 마무리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중전원 상시 공급체계도 구축했다. 한전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의 많은 부분이 바로 전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국제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묵묵하게 해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최고의 동계올림픽으로 손꼽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을 때다.

<김시호 | 한국전력공사 사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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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는 ‘크리스털 마운틴’이라는 맛있는 커피가 있다고 하지요. 헤밍웨이가 좋아한 커피라고도 합니다. 10년 전 쿠바에 갔을 때 좀 사오려고 했으나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리스털 마운틴’은 일본인들이 만든 상술이었고, 정작 쿠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커피였지요.

여기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허위의 기초 위에 지어진 이상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범죄고, 나가면 처벌한다고 합니다. 보안관찰법이라는 집입니다. 저는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내내 ‘크리스털 마운틴’이 떠올랐습니다.

법무부는 저에 대한 보안관찰 처분을 지난 19년 동안 모두 7차례 갱신했습니다. 2015년 7차 보안관찰 처분 사유는 ①신고의무 불이행 ②관련 조사 불응 ③반성이 없으며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 주장 ④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와 자주 접촉 등 모두 4가지였습니다. 이 중 ①과 ②에 해당하는 신고의무 불이행과 관련 조사 불응은 처분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입니다. ③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양심 및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재범 위험성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보안관찰 처분 사유 중 법원의 판례가 없는 것은 ④뿐입니다.

경찰 동태보고서는 “고문 피해자 치유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주축이 된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진실의힘’은 군사독재 시절 고문으로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분들이 국가에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출연하여 만든 재단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누구보다 깊으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분들로,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진실의힘’을 통해 노력해 온 ‘상처 입은 치유자’들입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니 법적으로 죄가 없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만난 사실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과 만났다’는 혐의로 둔갑시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흰색이 검은색이고 검은색이 흰색’인 세상에서나 가능한 논리입니다. 검찰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경찰 보고서에 기초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저를 기소했고,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33년 전인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재판부는 광주 시민 누구나 아는 31사단이 오치동에 있다는 사실이 군사기밀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에 버젓이 꽂혀 있던, 5·18 진상을 알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의 내용이 국가기밀이라고 했습니다. ‘공지의 사실도 국가기밀’이라는 모순된 논리였지요. ‘A가 A이면 A는 B가 아니다(A=A이면 A≠B)’라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논리학의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는 궤변이었습니다. 인류 이성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법정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알려진 것이 아니다’라는 정신분열병자의 헛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제게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라고 윽박질렀고, 저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3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겪은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검찰은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다시 한 번 펼쳤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이던 1985년 간첩으로 조작되어 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4년 동안 끊임없는 전향공작에 시달렸고, 1999년 출소한 뒤 지금까지 19년째 보안관찰법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보안관찰법은 제 삶을 악몽과도 같았던 과거에 묶어놓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구고, 어디로 놀러갔는지 신고하라고 강요합니다. 제가 가장 화나고 슬픈 지점은, 아픔을 치료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사’로서, 개인의 아픔만이 아니라 사회적 아픔까지 함께 나누고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 가려는 저의 의지마저도 보안관찰법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안관찰법의 핵심은 ‘길들이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아마도 가만히 있지 않은 죄, 권력을 불편하게 한 죄일 것입니다. 보안관찰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란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그 뿌리를 갉아먹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재범의 위험성’은 고문 피해자로 14년의 청춘을 억울한 옥살이로 보낸 제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안기부 등 폭압적 수사기관과 그것을 조종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한 폭력적 국가시스템 쪽에 있는 게 아닐까요?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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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여고생들이 독후감을 발표하는 자리에 있었다. 학생들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나온 학생은 성추행당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은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자로 살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흔히 겪잖아요. 그런데 다들 그런 일이 여자 탓인 것처럼 말해요. 짧은 치마 입지 마라, 늦게 다니지 마라.”

그의 말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대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그들의 할머니가, 어머니가, 언니가 감내한 일이었으니까.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나는 딸에게 쉽게 말했다. 네 몸가짐을 잘하라고.

“그런데 그건 엘리베이터 안에서 배달되는 치킨 냄새가 좋아서 덥석 집어먹고는 치킨 탓을 하는 것과 똑같잖아요.”

그의 말에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치킨을 탈취한 자가 무죄라면 빵을 훔친 장발장은 무죄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치킨이 유죄인 것인가? 떠들썩한 아이들 속에서 나는 내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억들을 마주해야 했다. 여고 시절 점을 봐주겠다면서 아이들의 귀밑머리를 넘겨 귀를 만지고 돌아다닌 미술 선생님과 버스 안에서 엉덩이를 만진 아저씨한테 나잇값을 하라고 소리친 친구한테 도리어 당돌하다고 혀를 찬 어른들과 차 안에서 머리를 기대고는 예전부터 네가 좋았다고 한 상사와 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블루스를 추자고 한 거래처 부장과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의 뻔뻔하고 무례한 얼굴들. 불쾌하고 모멸감이 드는 기억들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닌가 자책했던 기억들과 뒤엉킨 채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어 쉬 풀어헤쳐지지 않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잘못이 아닌 거잖아요. 나는 우리가 무슨 일을 겪더라도 당당하게 말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아보고 깨달은 것을 열여덟 살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그도, 지금 세상과 싸우는 성추행 성폭행 피해자들도 모두 내게는 스승이다. 그들을 지지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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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하겠다. 난 내가 평소 맛있게 먹었던 한우가, 삼겹살이 당연한 줄 알았다. 먹을 줄만 알았지 축산농가들이 평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가축을 키우고 고생하는 줄 몰랐다. 가격 폭락이나 축사 문제로 힘들다는 기사를 봤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사회에 무관심한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이 자리를 빌려 축산농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전한다.

평창 한우버거가 소위 ‘대박’이 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다음 올림픽 때도, 월드컵 때도 우리 축산물이, 우리 축산물로 만든 음식들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까?

현재 상황이라면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축산농가의 최대 화두인 미허가 축사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축산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소고기의 경우 자급률이 40%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떨어져 식량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축산농가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가축분뇨법)에 따라 올해 3월24일까지 적법화를 하지 않는다면 미허가 축사 4만6211곳 중 20.4%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축산을 접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로부터 가축분뇨법을 포함하여 26개 법률의 규제를 받는 축산업 허가 또는 등록을 완료하고, 가축분뇨처리시설을 갖춘 대다수 농가가 위헌의 소지가 많은 개정 법률에 의해 새로이 허가 대상이 된 것이다. ‘축산대란’이라는 말도, ‘축산붕괴’라는 말도 부족하지 않은 수치다.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축산농가들은 지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런 대란을 막고자 노력 중이다. 여의도에서 1만여 농가가 모여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지금도 이 추위에 환경부와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도 벌이고 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근원인 가축분뇨법의 위헌 여부 심판도 지난 2일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변호사로서 필자가 보기에 가축분뇨법은 여러 문제가 있다.

먼저, 개정 법률의 배출시설에 대한 거리 제한은 기본권의 본질적 사항인데도 법률로 규정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법률유보의 원칙 위배이다.

두 번째, 기존에 축산업을 합법적으로 영위하고 있던 농가까지 2015년 가축분뇨법 개정으로 가축분뇨법에 따른 허가·신고를 하도록 하여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 법 개정의 기초가 된 정부 연구용역은 대부분 환경 관련 연구기관만 참여했으며, 직접적 이해관계자인 축산농가의 의견은 충분히 듣지도 않았고 기본권 침해가 명백함에도 충분한 설명 절차도 생략했다. 법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문제점이 이 정도니 축산농가들이 억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입법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작용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공익을 위하여 기본권을 부득이하게 제한할 때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해서는 안되고 제한을 하더라도 여러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축산농가들의 수고로움으로 국내산 축산물을 안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헌법이, 그리고 우리 국민이 축산농가들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한경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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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소설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가슴에 와 박혔던 구절은 ‘아버지가 나빴다’ ‘어머니가 나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찰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가르쳐줬어야 했다”고 썼다.

그의 글을 읽고 비슷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윗 세대와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들과 못 배운 것들을 되짚는다. 누구든 다 비슷했겠지만 차별은 늘 있었고, 노골적인 무시와 구조적인 억압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여자애가 고기를 잘 먹는다”고 타박하던 외할머니, 초등학교 5학년 성교육 시간에 “여자들은 통닭과 같다. 누가 먹고 싶어 먹었다면 그 사람을 욕할 수는 없다”던 선생님. 최근 ‘황태자’가 풀려난 대기업의 ‘여비서’ 공개채용 시험을 본 기억도 떠올렸다. 토론 면접에서 나름 선방했다며 안심하고 있던 내게 “말은 조리있게 하는데, 어디 회사 오래 다니겠느냐”고 한 사장님. 어쨌든 시험에 붙었고, 3박4일 직원 연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연수 프로그램이 ‘녹차 끓여내는 법’이라는 걸 보고 어쩐지 허망해졌다.

결국 그 회사에 가지 않았고 기자가 됐다. 업종이 다르고 회사가 달라도 차별은 늘 있었다. 그럭저럭 대응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잘 살았을까? 때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임을 자각했고, 때로는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넘어갔다. “블루스 추자”는 취재원들, ‘이쁜 여자’ 타령하는 남자에게 똑같이 성차별적인 언사를 섞어 능글맞게 대처했던 것은 고육책이었을 뿐이다. 싫어요! 미쳤어요? 왜 성희롱이야! 하면서 맞서지 못한 나같은 이들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성적 괴롭힘의 바탕이 됐다는 죄책감이 크다.

서 검사의 글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것은 성적 괴롭힘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아이를 키워야 하고, 무신경한 남편의 대꾸에 혼자 실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은 여성들에겐 너무나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닥쳐오는 공격을 어떻게 맞받아쳐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양성도, 기후변화도, 인권도, 노동자의 권리도,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그런 화두가 없었다는 이유를 붙이자니 좀 우습다. 성차별도, 인권 침해도, 노동자 착취와 탄압도, 환경 파괴도, 모두 그 시절에 더 심했으면 심했지 지금보다 나았을 리 없으니까. 이제라도 사회 전체가 이런 고민에 맞부딪쳤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좀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5일자와 6일자 신문에 노동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여전히 우리가 배우는 것들엔 살면서 꼭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평등과 정의가 비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배우지 못했던 것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하는 용기,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자신감이었다. 이제라도 서 검사와 용기 있는 이들을 보며 배운다.

초·중·고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에 20만명 넘는 이들이 서명을 했다. 이 소식을 전한 포털 기사에는 이례적으로 여성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다. 온라인 전체가 ‘남초’이다시피 한 상황에서 응원글이 많이 보이니 반갑다. 그런데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학교야말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대다수 여성들이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하는 ‘첫번째 사회’가 아니던가. 그러나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함께 바뀌고 커 나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학교에서의 제도교육을 통해 개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한참 앞서 나갔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환경과 다양성의 가치에 반하는 일들이 고개를 드는 시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옳게 말하고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바뀐다. ‘몇 명’의 목소리가 역사를 바꾼 사례는 얼마나 많았던가. 성평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인간에 대한 예의, 범죄와 폭력에 맞선 저항,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열린 자세 모두 배워야 한다.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모든 정책에 ‘젠더 평등 의식’이 녹아들게 해야 한다.

<구정은 정책사회부장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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