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 김선우(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민달팽이는 껍데기집이 없는 달팽이다. 찬 이슬과 매서운 바람과 폭우와 거친 눈보라를 피할 곳이 따로 없다. 돌아갈 곳도 끊어버렸다. 지나온 길은 무너뜨렸다. 근심과 슬픔이 오면 온몸으로 맞이한다. 실컷 울고 가던 길 또 간다. 나아갈 길과 다가올 내일을 미리 헤아려 홀로 열어 나간다. 뿔처럼 단단한 의지를 세우고서. 오직 스스로를 의지하면서.

두고 갈 것이 없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버렸으니 참 홀가분하다. 밀고 밀며 가는 이 순간의 꽃핌만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을 횃불처럼 살기 때문에 마음은 늙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생화(生花)로 만든 꽃다발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깨끗한 달 가듯이 먼 데 가는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김선우 시인은 시 ‘고쳐 쓰는 묘비’에서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라고 썼다. 온몸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할 삶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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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라틴어다. ‘통하여(per)’ ‘소리(sona) 난다’는 뜻으로 입 구멍이 있는 가면에서 유래됐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아가 인간의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사회의 행동 규범과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리그 1차전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의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등에선 가면을 쓴 배역들이 등장하곤 한다. 가면은 감추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냄의 수단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내려 오는 산대놀음은 한국의 대표적인 가면극이다. 양반이나 파계승에 대한 조롱, 서민들의 애환 등을 풍자적인 대사와 춤으로 묘사하는 산대놀음의 배역들은 가면을 쓴다. 이들은 가면을 쓰고 부조리한 세상을 까발리고 비판한다. 산대놀음의 배역들에게 가면은 사회적 발언을 위한 ‘페르소나’였을 수도 있다.

북한 응원단이 10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에서 남성 얼굴의 가면을 쓰고 응원한 것을 두고 ‘김일성 가면’이 아니냐는 억측이 나왔다. 인터넷 매체 ‘노컷뉴스’가 북한 응원단이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가요 ‘휘파람’을 부르며 가면을 쓴 사진을 ‘김일성 가면’이란 설명을 달아 보도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통일부는 11일 “북한 응원단이 쓴 가면은 ‘휘파람’을 부를 때 남자 역할 대용으로 사용되는 ‘미남 가면’”이라고 해명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체제존엄’으로 숭배하는 김일성의 얼굴을 오려 응원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북한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보수 야당들은 “북한 응원단이 사용한 남성 가면은 ‘김일성 가면’이다. 북한에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남 가면’을 ‘김일성 가면’이라고 처음 보도한 ‘노컷뉴스’가 기사를 삭제하고 오보에 대한 사과문을 냈는데도 보수 야당들은 ‘색깔론 찰떡 공조’를 과시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에 청신호가 켜지는 와중에 뭐라도 트집을 잡고 싶은 보수야당들의 저열한 공세가 아닐수 없다. ‘거짓의 가면’을 쓰고 남을 비판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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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초기 이민자 시절 영어학교에서 만난 다른 나라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보고 의아해했다. “자동차 생산국에서 자동차도 못 만드는 나라로 왜 살러왔지?” 청각 장애를 가진 큰아이 교육 때문에 이민을 온 나로서는 몇 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후진국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한국의 경제력과 교육 문화의 불균형한 발전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영어 교사는 자기 나라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실례되는 질문’ 혹은 금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대부분 나이나 종교 같은 상식적인 내용을 거론했다. 좀 특이한 것을 찾다가 나는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으면 실례가 된다”고 말했다. 모두들 놀라워하며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 문제 역시 몇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한국 사람들끼리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라고 얼버무렸다.

캐나다 영어 교사가 이 문제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세칭 명문이든 아니든 출신 대학 밝히기를 꺼리게 하는 차별 문화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신 대학 이름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도 토론토·맥길·퀸스·UBC·워털루·웨스턴온타리오 등 명문 소리 듣는 대학이 꽤 많다. 그런데 명문은 명문으로 끝날 뿐이다. 명문은 있으되 명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 나와 우대 받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명문대든 2년제 전문대든 떠받들거나 낮춰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없다. 취업을 할 때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따라 우대 혹은 홀대하는 경향이 없으니 주눅들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더더욱 없다. 딱히 명문을 지망하기보다는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학업 능력에 맞는 대학을 찾아가는 분위기이니,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이 실례가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매체가 대학 순위를 매겨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 지망자도, 학부모도 그런 랭킹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주변 어느 집 자식이 미국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런가 보다’ 하며 축하할 뿐, 크게 부러워한다거나 ‘우리 아이도 꼭 보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학 이름이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냐’의 여부이다.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자기 성향과 능력에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다면, 2년제 칼리지가 세칭 명문대보다 훨씬 좋은 곳일 수 있다. 전공이 맞지 않아 대학 재학 중에 과를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리 큰아이처럼 2년을 다니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일단 졸업은 하지 그러니?”라고 한국 부모답게 권유했더니 “시간과 돈이 아깝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아이는 전공과 대학을 다시 선택해 입학한 이후 전에 없이 행복해하고 있다.

한국 매스컴에서 ‘SKY’라는 영어 단어를 자주 접한다. 한국 사람 중에 이 단어를 보고 대학이 아니라 ‘하늘’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어느 은행 면접시험에서 대학을 차별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SKY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특정 대학들을 최고 명문이라 명토 박고 띄워주는 저 단어에 학벌주의, 대학 순위, 줄세우기, 차별대우 같은 의미가 이미 농축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논어 6-18)고 했다.

명문이라는 허울보다 ‘좋아하고’ ‘즐기는’ 공부를 더 권장하고 우대하는 서구사회가, 유교 문화권의 동양보다 공자 말씀에 더 충실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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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피해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온·오프라인에서 ‘역대급’ 광풍이 불고 있다. 8년 만에 용기를 낸 서지현 검사의 발언이 여성들에게 힘을 준 결과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발 미투(#Me Too)는 아니었지만 1983년 여성의전화 핫라인 상담전화를 통해 여성들은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있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 이미 말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 성폭력의 피해를 말하는, 계속 울려대던 전화 소리를 필자는 잊을 수 없다. 또 2003년 최초로, 비공개 공식장소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SPEAK OUT’이라는 형식으로 말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제기한 서지현 검사가 4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러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서지현 검사는 용기 있는 고백 하루 만에 업무능력과 근무태도 등과 관련한 근거 없는 각종 소문이 보도되며 2차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대중들은 성폭력 범죄 사건을 접했을 때 ‘왜 이제야 말하는 걸까’ ‘피해자는 어떤 여성일까’ ‘피해자가 왜 더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라며 개인의 잣대로 평가한다. 서지현 검사의 말하기를 최초 보도한 JTBC 방송마저도, 2차 피해의 문제점을 보도하는 그 순간에 서지현 검사의 ‘조용한 스타일’이라든가 ‘과거 업적’이 어떠한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동료들이 말하는 서지현 검사, 업적을 통해 말하는 서지현 검사를 통해 서지현 검사의 진술이 진실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8년 전에 발생했다는 성폭력 피해에 집중해야 한다. 피해자가 말하는 사실이 무엇인지, 왜 그동안 말하기 힘들었는지를 중심으로 사건화되지 않았던 그간의 고통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팩트’와 그 팩트가 왜 이제 말해지고 있는지 피해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해 들어야 한다.

만약 서지현 검사가 과거 장관상을 받지 않았고 (그 사건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니면 여러 이유로) 형편없는 업적을 수행했다면 강제추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만약 인간관계가 형편없었다면 강제추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니 서지현 검사가 훌륭한 업적을 수행했다는 사실에 안심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자. 훌륭한 업적을 수행하지 않아도, 조용한 스타일이 아니어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말이다. 피해자가 어떠한 사람이든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피해자, 피해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여성의 정조가 더럽혀지고, 순결을 잃은 것으로 조명되어 왔던 오랜 역사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하지만 그 피해를 말하는 순간 자신의 피해가 이해되기는커녕 더러운 여성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말하면 혹 남성 가해자나 조직을 망치기 위한 ‘거짓말’이라며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까지 피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책으로, 더러운 여성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피해를 말하는 의도, 목적을 의심받으면서까지 그 피해를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작동되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가해자의 역차별 논리, 무고죄, 명예훼손 등까지 가세해 피해자들은 정말 힘들었다.

서지현 검사의 ‘말하기’의 불씨가 그 의미를 갖도록 우리는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미투’를 넘어서 전 국민적인 응원과 지지의 ‘위드유(#With You)’, 그리고 ‘나부터 나서서 성폭력을 막자’는 ‘미퍼스트(#Me First)’ 성폭력 방지 운동을 통해 우리는 여성인권을 지켜내야 한다.

<변혜정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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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달라졌다. 아침대화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오늘은 몇이야?” 하는 질문이다. 휴대폰 앱을 켜고 대기질지수(AQI)를 확인한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겨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니까. 올 1월 중순엔 수치가 연일 200을 넘나들었다. 상황이 심각하다.

잠시 수치가 낮아진 날이면 이때를 놓칠세라 청소를 하고 집안공기를 환기시킨다. ‘이런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 때론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 ‘될 대로 되겠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동시에 스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덤덤하게 무시하고 살기엔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치명적이다.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더 위험한 법이다. 몇 해 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이런 결정을 하려면 해당물질의 인체 발암 인과성이 세심히 규명되어야 하는데 몇 가지 대규모 역학조사가 결정적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대기오염은 건강에 확실한 위협이라고 공식 천명된 셈이다.

실외 대기가 나빠질수록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실내로 향한다. 최근 실내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우리 병원 자원봉사단 멤버들과 함께 다녀온 예술의전당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전시에서였다. 관람 후 대화를 나누는데 의외의 작품에 호평이 쏟아졌다. 지라드의 대표작인 그 유명한 ‘인터내셔널 러브하트’도 아니고 ‘목각인형’도 아닌, 뜻밖에도 ‘밀러하우스’라는 집 실내를 재현한 빨간 소파였다.

전시장을 구경하는 도중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곳에 앉아 지라드가 구현한 실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주 보이는 벽 전면에는 모니터를 통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정원의 풍경사진이 천천히 흘러간다. 마치 거실에 앉아 뜰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나무에 눈이 쌓였다가 녹아내리고 봄꽃이 피어 바람에 흩날리고 이내 녹음이 우거진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이렇게 쾌적하고 아늑한 실내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절한가. 실내가 삶의 질에 미치는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이다. 지라드는 실내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발견하고 구현한 디자이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일전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미세먼지 정책토론회가 있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 실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학자,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시민활동가 등 이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패널토의를 진행하였다. 여러 의견과 제안이 오갔고 낯선 기술용어와 법률용어들도 등장했다. 그러다 말미에 객석에서 누군가 “그럼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좋은 해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고 마이크를 쥔 전문가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솔직히 현재로선 마스크가 답입니다.” 결론이 마스크라니….

영화 <아바타> 생각이 났다. 바야흐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어버린 미래, 인류는 자원이 풍부한 행성 판도라를 발견하지만 그곳의 대기는 인간에겐 독성을 지녔기 때문에 특수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서는 밖에 나다닐 수가 없다. 지금 우리들도 모양과 기능만 다를 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만약 지구의 대기가 더 나빠진다면 우리도 그런 특수마스크를 외출할 때마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실외 공기는 마스크로 대처한다고 치고 그럼 실내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스타트업에서 개최한 실내 공기질에 관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내내 활기와 즐거움이 감돌았다. 첫 발표자는 세계보건기구, 미국환경보호국(EPA), 한국환경부 각각의 대기질 지표기준을 비교해가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몇 가지 측정실험결과도 공유했는데 전철역 내부 공기질 수치가 생각보다 좋게 나온 것은 다소 반전이었다. 다음 발표자인 어느 블로거는 ‘미세먼지 속 우리 가족 생존기’라는 주제로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요.” 인터넷에서 덕트와 부직포를 구매하여 스스로 공기정화시스템을 만든 이야기도 나왔다.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인 완성품 사진을 뿌듯해하며 보여주는 대목에선 다들 웃음이 빵 터졌다. 자신의 방만큼은 캘리포니아 공기 수준으로 깨끗하게 다스리고 있다고 자부했던 블로거는 행사 후에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기만발이었다.

이토록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이들을 보고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유난스러움이 어쩐지 미래를 바꾸는 변화의 동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안전하고 건강한 실내를 위한 개인들의 열정은 의미 있다. 지금도 유의하게 진화 중이다.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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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e메일 서비스는 2004년 만우절에 시작되었다. 베타서비스에는 이미 사용자가 된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웹메일보다는 메일을 컴퓨터로 끌고 와서 저장하고 쓰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천성이 게을러, 정리를 잘하지 않아서 주어진 메일 용량의 압박이 있었고 컴퓨터 저장장치에 받아 둔 메일들이 노트북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히려 다시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시작하는 e메일 서비스는 정리할 필요 없고 지울 필요도 없다고 광고했다. 필요하면 찾으면 된다. 나는 그 ‘정신’에 따라 그 이후엔 메일을 지우지 않았고, 광고 메일까지 내 계정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남들은 차고 넘친다는 공짜로 주는 용량을 넘어 매달 돈을 내면서 쓰레기들을 보관하고 있다.

쌓아 둔 것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서 유용하게 쓰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찾고자 하는 단어를 검색하면 그 단어가 포함된 첨부 파일까지 찾아내기 때문에 오래된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14년 쌓인 생각이다 보니,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발전되었는지도 쉽게 보인다. 정보를 찾는 데는 더 유용하다. e메일을 직접 주고받은 경우가 없더라도 단체로 보낸 메일에 포함되어 있으면 검색이 가능하다. e메일 주소가 노출된 단체 메일을 함부로 보내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찾는 입장에서는 편하다. 하지만 오래도록 쌓아둔 메일들 대부분은 접근 불가능한 덩어리로 존재할 뿐이다. 그때그때 부지런히 e메일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지울 것들은 없애버렸으면 또 달리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어떤 기간에 했던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접근할 수도 없는 심연 속에 방치되는 것들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여러 날 계속된 지진의 흔들림 속에서 열린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 한국관을 운영하면서 잠시짬을 내서 방문했던 고궁박물원. 그곳에서 만난 &lt;사고전서&gt;의 철학은 내가 쓰는 메일 시스템과 정반대이다. 이전의 모든 저작을 모으되 편집을 했다. 청나라 건륭제의 뜻에 따라 만든 이 책들은 아름답다. 240년 전에 만든 이 책은 당시에 구할 수 있었던 것 중 최고였던 귀주산 종이를 특별히 구해 비단실로 꿰매 제본하고 주제에 따라 다른 색의 표지를 입혔다. 목차를 담은 100권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이고 고전은 녹색, 역사는 적색, 철학적인 글들은 청색과 백색, 문집은 회색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수백년 된 색이 전혀 바래지 않고 선명했다. 7만9000권이 넘는 3461개의 저작물을 모아 3만6381권에 담았고 이 책들은 다시 습기와 병충해에 강한 나무로 특별히 짠 상자 6144개에 담겨 있다. 책마다 황제의 보물이라는 인장을 찍어두었는데 명실상부한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lt;사고전서&gt;는 수천년에 걸친 저작을 모두 모으려는 시도였지만 어쩔 수 없이 넣고 빼는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책이 만들어질 때, 내용이 한번 걸러진다. 제한된 자원 때문에 수많은 정보와 생각들 중에서 책에 담길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세대를 이어 남길 수 있는 내용은 고르고 골라야 했다. 검색의 시대인 요즘은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거르는 그물이 성기다. 종이도 흔해졌고,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가면 용량은 더 늘어난다. 예전 같으면 혼자만 볼 수 있는 기록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단순한 복사물도 무한히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장부를 나누어 갖겠다는 요즘 크게 관심을 끌었던 블록체인 기술은 모두가 똑같은 장부를 나누어가져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의 데이터가 무수히 많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쉬워졌다고 해도 쓸데없이 똑같은 기록들을 수백만, 수천만개씩 만드는 것은 엄청난 낭비는 아닐까? 분명히 지구가 더 빨리 더워질 것이다.

편집은 의도와 권력이 작용하기 십상이고 현대적 정신은 아마도 편집도 집단지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빼어난 정신이 인간이 만든 지식 중에서 후세에 남길 것들을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닥다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면 구조와 큰 그림을 놓쳐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DNA의 98%가 단백질을 지시하지 않는 정크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반복으로 가득한,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그 부분에도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2%를 전달하기 위해 98%가 필요한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하지만 함정은 의미 있는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끝도 없이 작아져 간다는 데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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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 위원장의 특사임을 밝히고 친서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된다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연내 방북한다면 11년 만에 남북 최고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게 된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현송월 단장(가운데)이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현 단장은 “목감기가 걸렸지만 그래도 체면을 봐서 단원들보다 조금 더 크게 박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물론 문 대통령의 방북에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에만 온기가 돌기 시작할 뿐 북·미간 긴장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가 움직이지 않은 채 남북관계만 속도를 낸다면, 남북관계조차 고무줄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 구도가 구동해야 한반도 평화구도가 견고하게 정착될 수 있음은 북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림픽 축하 리셉션에 불참하고, 반북 캠페인만 벌인 뒤 한국을 떠난 일을 상기한다면 모처럼의 북한 제의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정세와 정부의 입장을 북한에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남북 공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으로서는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넘어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선제 발표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1999년 9월 북한은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대북공조가 원활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2000년은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본질적으로 동일했던 시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초기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벗어나면서 성사됐다. 이런 전례를 돌아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공조를 긴밀하게 유지하되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재인 정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렛대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켰다. 남북관계 회복의 물꼬를 틔운 지금까지의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기된 한·미 훈련의 재개가 첫 장애물일 것이다. 용기와 지혜, 상상력을 발휘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북한은 건군절 열병식을 조용하게 치른 데 이어 권력 2인자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해 올림픽 개최를 축하했다. 이를 ‘매력공세’나 ‘위장 평화공세’로 간주해 버린다면 대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상을 전환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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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동네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동네 외곽에 작고 낡은 교회가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방치된 채 학대받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사정은 더 끔찍했다. 거기 개집은 피자배달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는데 전혀 청소를 하지 않아 분변이 가득했다고 한다. 목줄이 짧아 강아지는 별수 없이 그 분변에 파묻혀 지냈다. 게다가 줄이 조금만 꼬이면 추운 겨울밤을 바깥에서 보내야 했고.

너무 안쓰러웠던 친구는 먹을 것과 핫팩을 넣어주었고, 동사무소를 통해 주인에게 보살핌을 부탁하는 말도 전했다. 친구는 한국의 법도 모르고 한국말에도 부담을 느낀 외국인이었지만 어떻게든 강아지를 살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울먹이며 말했다. 강아지가 죽었다고.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개집에 손을 넣었는데 싸늘한 시신이 있었다고.

그는 내게 교회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했다. 시신이라도 받아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그런데 교회는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고 여러모로 외국인 여성이 혼자 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밤이었다. 날이 밝은 뒤에 가면 어떨까 싶었지만 친구는 강아지 시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아 장례 치러주고 싶다고 했다. 주인이 평소 강아지를 대하는 것으로 볼 때 시신도 함부로 처리할 것 같다고.

그를 따라 교회 공터에 갔을 때 백구 한 마리가 짖어댔다.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움찔하고 있을 때 친구는 차분하게 피자배달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강아지 시신이 사라졌다며 망연자실해했다. 내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주인이 잘 묻어주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한국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다고 들었다고. 평소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날 밤 그와 나는 교회 근처의 종량제 봉투들을 뒤졌다.

강아지 시신을 찾지는 못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속으로 안도했다. 그럴 리 없다는 내 믿음이 확인된 것 같아서. 그러나 내가 틀렸음을 알려주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천안의 어느 쓰레기 집하장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살아 있는 개가 발견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살아 있는 개를 종량제 봉투에 버린 것에 분노했지만 나는 그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한국에서는 개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린다는 친구 말이 맞았다는 것을.

현행법령에 따르면 동물 사체는 일반쓰레기라고 한다. 그러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이 법적으로도 맞고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종량제 봉투에 넣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동물병원에서 죽은 경우인데 감염의 위험 때문이다. 죽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인간 건강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요컨대 죽은 동물은 그냥 버려도 되는 일반쓰레기와 특별 관리가 필요한 위험쓰레기가 있을 뿐이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명, 즉 생명 쓰레기는 우리와 동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생명체, 특히 동물을 산업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농장은 사실상 공장이다. 다만 제품이 살아있는 동물인 것뿐이다. 생산 공정에 대해서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효율’이나 ‘개량’이라는 말에서조차 ‘학살’의 냄새가 난다. 상품은 대부분 먹거리이고 일부가 정서만족을 위한 애완용이다.

그런데 모든 상품의 이면은 쓰레기다. 상품은 가치와 쓸모를 가진 물건인데 생산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되거나 소비과정에서 소모되면 폐기된다. 해당 상품이 심장을 가진 것이라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소비된 뒤 종량제 봉투에 담겨 집하장으로 가는 것과 생산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되어 산 채로 집단 매립되는 것은 다른 원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품관계의 근간에 소유관계가 있다. 근대적 소유권의 핵심은 처분권이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은 내 곁에 있어도 소유한 게 아니다. 반대로 처분권만 있다면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조차 소유할 수가 있다. 내가 사물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것을 쓰거나 양도하거나 내다 버릴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다. 쓰고 버리든 내다 버리든 내 맘이다. 그래서 소유권이란 쓰레기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소유를 도둑질이라고 했던 프루동의 말을 흉내 내자면 소유란 얼마간의 쓰레기다.

내 친구가 죽어가는 강아지에 더 접근할 수 없었고 죽은 강아지를 데려올 수도 없었던 것은 강아지가 하나님의 공간에 있는 피조물이어서가 아니라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강아지에게는 주인이 있었고 주인에게는 처분권이 있었다. 반려견을 산 채로 종량제 봉투에 넣은 부녀는 그래도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선택을 했다. 그냥 길에 내다 버린 유기견만 1년에 10만 마리도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문제는 동물에게 주인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교회 강아지의 비극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주인을 만난 것에 있고 더 일반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주인을 만난 것에 있다. 주인을 섬기라는 교회에서 내 친구는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걸 보여주었다. 소유하지 않고 돌보는 사람 말이다. 동물을 필요 이상으로, 심지어는 과시적으로 먹어치우는 사회에서 동물과의 우정은 분명 먼 곳에 있다. 그래도 이미 친구, 아니 친구들이 있기에 적어도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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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열리는 두번째 올림픽인 세계인의 축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지난 9일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작을 화려하게 알린 평창 올림픽 개회식은 이어지는 주말 내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발하게 회자되었다.

개회식 공연의 만듦새는 누리꾼들로부터 대체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에선 고구려 벽화부터 시작해 거북선, 천상열차분야지도, 달항아리 백자까지 다양한 문화재들이 소개됐다. 녹화 영상으로 선보인 사상 최대 오륜기 드론쇼도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개막식이 그저 그런 영상들로 채워졌을 줄 알았는데 ‘사이버펑크’ 등 세련된 이미지들에 놀랐다” “올림픽에 관심 없는 척하다가 다들 개막식을 보고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예산과 준비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개회식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송승환 총감독에게도 관심이 모였다. 이낙연 총리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적은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최고의 올림픽 개막식을 만드셨다”며 치하하는 글을 올렸다. 다만 “적은 예산과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면 사람을 갈아넣었다(혹사시켰다)는 의미”라거나 “적은 예산이라곤 하지만 극찬받았던 지난 런던 올림픽 개막 예산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등의 반응들도 있었다. 개막 공연 중에서도 단연 시선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인면조’ 모형이었다. 인면조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사람 얼굴을 한 전설 속의 새로, 한동안 ‘인면조’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슈가 됐다. SNS에선 낯선 인면조의 모습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팬아트(팬이 그린 창작물) 등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개회식 선수 입장 순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이었다. 외신들은 “극적인 개회식”이었다며 남북 공동 입장을 다루었고,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공동 입장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11년 만의 남북한 선수 공동 입장”이라며 “TV(개회식)를 보며 공동 입장할 때 울컥했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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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때면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렇다 해도 ‘투정부리지 말라’ ‘잘하면 어련히 알아서 뽑을 텐데 무얼 불평하느냐’ ‘좀 더 노력해보고 그런 소리 하라’는 등 듣기는 싫어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공정한 절차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줄 테고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 것 또한 분명했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이라는 지표가 우리네 삶의 고단함을 증명할 때에도 사회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청년이란 딱지만큼은 떼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이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80%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랜드의 합격자 전원이 부정 청탁을 통해 입사했고, 한식진흥원에서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이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4500여명이 지원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2299등인 지원자가 36등으로 합격했다. 심지어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했다. 금융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은행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합격권에 있던 7명의 응시자들을 떨어뜨렸다. 국민은행은 추천인과 요청 사항을 정리한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청년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초월 스펙이 부족했기에 취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초월 스펙은 SKY대학 출신이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었고, 금수저였다. 이렇게 학벌주의와 성차별, 지연과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고도 추악하게 드러났을 때에도 청년은 스스로를 탓하고 검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일자리 하나 물어다줄 인맥 하나 없는 부모님을 만난 내가 잘못이며 잠도 덜 자고 밥도 덜 먹어가며 공부해서 SKY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취업 실패의 원인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내밀해진다. 이것이 채용비리 사건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다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반복적으로 탓하고 학습하기에 이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나, 불합리하게 떨어진 서류 지원자와 점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권에서 굴러 떨어진 응시자를 구제할 수 없다면 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가 백날 들여다보는 청년실업률에 청년고용의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성차별, 연고주의에 따른 불법 채용이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방치하는 조직의 무능이다.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시 응답하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오로지 ‘노력’ 하나로 적자생존하는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말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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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청년, 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