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난 지 1년이 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한수원도 2심 소송에 피고참가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보고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체 발전용량 중 월성 1호기를 제외하고, 올해 상반기 중 경제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하여 폐쇄 시기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경제성 평가는 이미 나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경제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상당한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산정됐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했던 것도 경제성이 없는 것은 물론 안전성이 크게 문제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월성 1호기 1심 판결은 ①수명연장에 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적법한 심의 및 의결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자로 등 수명연장을 위한 설비교체에 대한 허가가 과장 전결로 이루어졌으며, ②당시 원자력안전위원장 등 결격사유가 있어 당연퇴직하여야 하는 위원이 월성 1호기 심의, 의결에 관여하였고, ③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를 할 때 평가기준일 당시의 국내외 최신 기술기준이 모두 적용되어야 하나 월성 2·3·4호기에 적용된 R-7 등 기술기준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안전성 평가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경제성 평가가 아니라 법원이 판시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안전성 평가 등의 위법사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들이 월성 1호기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열람을 신청하여 지난 1월 말 허용되었으나, 그동안 적극적 정보공개를 공언했던 한수원은 열람기간도 겨우 3일에 목차만 메모할 수 있게 하고 복사·촬영을 불허하였다. 열람에 참여하였던 전문가들은 월성 1호기 수명연장에 적용한 안전설계기준이 30년 전 내용을 개정 없이 그대로 적용하였고, 기계부품규격도 1971년 규정을 적용하는 등 안전성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안전보조계통의 상당수가 내지진검증이 되어 있지 않아 지진이 발생하면 안전설비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어서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중수로인 월성 1호기 원자로는 20㎏짜리 핵연료 12개가 내장된 6m 길이의 두께 수㎜ 압력관 양단에 2.5m의 종단이음관이 연결된 11m 길이의 수평 배관 380개로 구성되어 있어 지진 충격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이다.  더군다나 사고 시 중앙제어실이 방사선 오염을 막을 수가 없어서 운전원들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의 판결로 이미 확인된 문제점을 정부가 조사해야 하는 이유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이 1심 판결에 불복하여 다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월성 1호기 폐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의 문제점과 위법사항은 국내 다른 핵발전소에도 마찬가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 드러난 규제의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으로 나머지 국내 핵발전소 인허가 과정과 안전규제의 위법사항에 대해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들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고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을 넘어, 재발방지와 사고방지라는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도 너무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김영희 |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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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 굴뚝 위에 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75m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제법 숫자에 밝은 이가 25층 아파트 높이라고 일러줘도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바닥에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 막연했다. 1층부터 아파트 층수를 헤아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본들 눈으로만 닿을 뿐 마음으로는 읽히지 않는 높이, 그곳에서 93일째 농성 중이라는 두 사람을 응원하러 가면서 시의 구절이 떠올랐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새들처럼 하늘로 올라가 둥지도 틀 줄 알아야 한다는, 송경동 시인의 ‘생태학습’.

그리하여 아주 오래전 어느 날 고무공장 노동자가 을밀대에 날아오른 뒤로 수많은 이들이 한강철교에 크레인에 송전탑에 옥상 광고판에 올랐다. 정말 시인의 말대로 그들은 새들처럼 가뿐히 그곳에 오른 것일까. 어둠 속에서 흰 연기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까마득하게 높은 굴뚝을 올려다보며 나는 기껏 이런 생각을 했다. 새벽 찬 공기를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허공으로 솟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 어느 순간 정말 하늘을 높이 나는 새처럼 작은 점이 되었을, 그들의 첫날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우리의 요구는 고용과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승계하라는 겁니다!”

마이크를 쥔 이는 굴뚝 아래에 쳐놓은 천막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는 말하는 게 서투르다면서 쑥스러워했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세상과 맞서 싸운 이들이라면 날 선 눈빛을 하고 있을 법한데, 찾아오는 이들과 눈을 맞추는 그의 눈빛은 온화했다. 사람들이 왔다고 굴뚝 위에서 내내 흔들리던 손전등 빛도 따스했다. 노동악법 철폐와 헬조선 악의 축 해체! 그들의 외침은 억센 구호가 아니라 망망대해 등대의 불빛과 같은 것이구나, 그들의 싸움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두의 꿈이라는 것을 굴뚝 아래서 그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서야 깨닫는다.

그나저나 며칠 전 회삿돈 수십억원을 멋대로 유용해 뇌물로 쓰고도 버젓이 감옥에서 걸어 나온 이를 생각하니 굴뚝에 있는 이들이 내려올 날이 요원할 것만 같아 차갑게 언 손가락이 아렸다. 세상은 언제쯤 굴뚝 위에 있는 저 불빛에 응답할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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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직후 홀연히 떠났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잠시 귀국했다. ‘양비’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양 전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 당 대표를 거치며 짧은 시간 상층 단위에서 정치를 학습했다. 때마침 금권, 패권 정치가 저물 무렵이었다.

‘양비’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무게를 만들었다. 2008년 3월 ‘시민 문재인’은 경남 양산 매곡마을로 내려와 “밥벌이가 아니라면 더 깊숙한 골짜기를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랬던 ‘시민 문재인’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낸 것은 정권교체를 도원결의한 친노 그룹의 집단적 결의였다. 그다음 기승전결은 ‘양비’가 엮었다. 한 손엔 ‘노무현의 유산’을 또 한 손엔 <문재인의 운명>을 건네며. 2012년 대선 시작부터 2017년 대선 마무리까지 ‘양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간중간 심호흡이 필요할 때 <1219 끝이 시작이다>와 같은 고해성사를 부추기는 일도 ‘양비’의 몫이었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의 저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양정철 전 비서관은 참모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이 분류한 참모 10계명 중 실제 ‘양비’ 사례를 대입하면 역사적 책무에 충실할 것(정권교체), 전투보다 전쟁을 생각할 것(문 대통령 20대 총선 불출마), 특출한 다른 참모를 인정할 것(임종석), 자리에 연연하지 말 것(외국행) 등이다.

‘양비’의 참모 정치는 귀국길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참모의 철학을 대통령 리더십에 투영하지 않고 직접 제시했다. ‘말과 글’이었다. 따지고 보면 말과 글은 ‘양비’의 DNA다. ‘양비’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국내언론·홍보기획 비서관을 맡아 권력의 언어를 다뤘다. 이전엔 기업에서 자본의 언어가 가진 힘을 알렸다. 학창 시절엔 격문으로, 학보사 기사로 운동의 언어를 구사했다. ‘양비’는 통화와 출판기념회에서 “이젠 말의 힘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진보시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저서도 <세상을 바꾸는 언어>다. 7~8년 전부터 메모한 약 300단어를 추려 평등, 배려, 공존, 독립, 존중의 언어로 정리했다. 특히 권력의 언어에 집중했다.

그간 정치에서 말과 글이란 정치인들의 권력 분배를 위한 자원에 불과했다. 종북, 빨갱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정치권의 거친 언어도 권력의 주인이 시민이 아니라는 확증편향에서 비롯된다.

요즘 툭하면 저급한 언어를 쏟아내는 자유한국당과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비되는 결정적 이유다. ‘양비’는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 정권이다. 우리가 만든 정부니 성공해야 한다는 주권의식이 강한 시민들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고 규정했다. 정치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수준의 시민들과 함께하는지 고민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비’의 화두는 뼈아픈 시행착오 속에서 더 깊게 길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해 제도개혁을 중요하게 여겼던 리더였다. 하지만 급했다. ‘우리가 옳다’는 전제 속에서 시민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사건건 관성과 개혁의 경계를 돌파해야 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 권력의 언어는 통역이 필요하다는 푸념이 나돌곤 했다. 언론담당 ‘양비’는 그때마다 최전선에 있었다. 국회 국정감사 때 수석도 아닌 ‘양비’가 출석했을 정도니. 노 전 대통령과 언어로 맺어진 참모 중에서도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했던 독특한 참모였다. 뾰족하고, 투쟁적이고, 거칠고, 비타협적인 ‘양비’ 이미지는 이때부터 굳어졌다.

정권교체 일등공신이면서도 외국을 떠도는 데는 정치적 이유가 클 것이다. 권력 내 이해관계, 문재인 정부의 차별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등등. 일본에서 ‘양비’가 언어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책을 낸다고 해서 “이번에 귀국하면 다른 문법으로 만나고 싶다”고 미리 요청했다. 요 며칠, 다른 문법으로 접한 ‘양비’는 달라져 있었다. 말과 글로 아파 봤던 참모가 말과 글로 치유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사람이란 존재가 아무리 상처이면서 칼이라고 해도. 스스로 문재인 정부에서 ‘양비’ 이외 다른 직책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다른 문법으로 답한다면 ‘양비’의 정치 재개는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시점이 아닌 ‘언어 민주주의’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때까진 “나는 지나가는 봄”이라고 한 그의 계절엔 바람이 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9개월 전 무심한 혼잣말에도 꽃은 흔들렸다. 심지어 지금은 찬 바람에 내준 한겨울 나뭇가지마다 다른 꽃들로 무성하다.

‘양비’라고 마음이 스산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으로든 피어난다. 어떻게 피어날 준비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쩌겠나. 살아온 길이 그랬고, 살고 있는 지금이 그렇고, 살아야 할 내일이 심상치 않은 운명인 것을.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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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작년 말을 기준으로 65세 이상 국민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2%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하였고 합계출산율은 1.2명 정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이 물경 200조원에 이르지만 상황이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농촌이 점점 비어간다는 사실이다. 농촌 지역사회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전남 고흥군의 경우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38.5%로 초초고령사회에 이르렀고, 광역단위인 전라남도 전체 고령자인구 평균은 21.5%로 초고령지역이 되었다.

예로부터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하였는데 시대가 바뀌고 생활방식이 변하고 산업구조가 달라졌을지라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농업은 생명산업으로 모든 산업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산업별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농업 부문이 32.9명으로 어느 산업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농업에 대한 투자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업에 대한 의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농촌지역을 살림으로써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 기반을 든든히 하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한 2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농촌개발과 농업부흥에 제대로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 농업은 네덜란드나 스위스의 농촌처럼 과학영농, 첨단기술 활용의 선진 농업으로 탈바꿈하여 청장년이 돌아오고 아기 울음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새롭게 도약하는 삶의 터전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요즈음 인구에 회자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가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 첨단기술은 다행스럽게도 매우 농업친화적이다. 정보통신 최첨단 과학기술을 농식품 분야별, 생산단계별로 다양하게 결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농업에 대한 투자는 소모적인 것이 아니고 어느 분야 투자 못지않게 효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선진농업국가 구현은 21세기 국가 성장동력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센 물결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 농업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전략적 집약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저출산 극복, 국부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박종복 |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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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여성 시인이 지난해 겨울에 발표한 ‘괴물’이라는 시가, 이른바 ‘미투운동’의 일환으로 알려지면서 문단과 문화계를 넘어 문학 대중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 문학인들이 목도한 현실로, 그리고 많은 문학인들 사이에서는 풍문으로 회자되었던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그동안 순수와 고고(孤高)로 포장되었던 ‘어떤’ 문학(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비판이 일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덮어두었던 또 하나 적폐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우리의 대학이 한국의 문단과 많이 닮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작품 ‘괴물’이 에둘러 가리키는 어떤 인물처럼, 한국의 대학은 온갖 미명(美名)을 두르고 있고 수치로만 본다면 충분히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있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기이하고 추악한 일들이 적잖다.

지난 2016년 문예지에 문단 내 성폭력 실태를 폭로했던 김현 시인이 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 시인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단 성폭력을 말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대학의 풍경들, 이를테면 수천억원의 기금을 적립해두고 있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정리하는 모습 등은 납득할 수 없지만 감추어진 실체는 아니다. 지원금 앞에 교육부의 철저한 을로 전락한 대학 당국, 그 대학본부가 비용의 논리를 들어 촘촘하게 배치한 대학 내의 위계적인 인적 관계들, 계량화된 업적 평가와 연구재단의 연구비에 온전히 포획된 연구자들로 꾸려지는 대학, 게다가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85%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들에서 벌어지는 감추어진, 그러나 내부자들에게는 공공연한 그 괴이한 천태만상들은 문재인 정부가 수행해가고 있는 적폐청산의 과정과 그 너머 어디쯤 건설될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한다.

‘교육 개혁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문단의 패악과 달리 대학의 문제는 대다수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청소년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입시제도, 다수의 국민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주는 부동산 문제,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하는 일자리 문제,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 몰락하는 지역의 문제 등등 대한민국 사회의 난마 같은 문제들이 대학과 관련되어 있다.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 않고는 사회적 병폐들을 치유할 수 없으며 우리의 건강한 미래도 건설될 수 없다. 대학의 문제를 좀 더 거시적이고 공적인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다루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 공공성의 중요함을 분명히 인지하고 대학체제 개편을 통한 교육정상화를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개편안 핵심은 국공립대학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영형 사립대학’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확대함으로써 중등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을 지역균형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고, 지역적으로 필요한 사립대’ 최소 30곳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분권의 실질적인 방안이 바로 이 고등교육개편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교육제도에 대한 발본적인 변화와 개혁 의지를 담고 있는 만큼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거둘 수는 없겠지만, 고통의 감내나 장기적 비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는 당도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은 과거의 지식이 전수되고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곳이다. 대학에서 우리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배우고 도래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대학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가치들을 고민하고 교육하는 시민교육의 장이다. 청소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해가는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를 두루 성찰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만들어가야 할 곳이 대학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일은 적폐청산 이후의 한국 사회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작업과 뗄 수 없다. 대학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건설하는 핵심 기지로서 우리 사회의 공적인 자산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절대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공영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대학의 공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고 실현해가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문주 | 영남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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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평균 70년을 산다면 그중 1년은 감기에 걸려 있다는 통계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햇수로 따지면 매년 약 닷새 좀 넘게, 일수로 따지면 매일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인 20분 남짓 우리가 감기에 골골하고 있는 셈이 된다. 평생 고뿔을 모르고 살았노라 곤댓짓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 년에 한두 차례 감기를 명절 손님처럼 맞는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의 인류가 경험한다는 감기는 바이러스 때문에 발병한다. 우리처럼 온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감기에 취약하다. 날이 차가워진 까닭에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쉽게 감기에 걸릴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계절에 따른 온도 차이가 크지 않은 적도 근처의 사람들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홍콩에서는 작년에 감기 바이러스의 사촌격인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300명이 넘게 죽었다. 아열대 기후의 특징을 보이는 홍콩에서 여름 시즌인 5월에서 8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적도 근처의 사람들도 온대 지방인 미국 사람들 못지않게 감기에 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뉴욕에든 자바섬에든 바이러스는 늘 있는 것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면역력이 떨어진 인간을 골라서 바이러스가 습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온대 지방과 마찬가지로 적도 지역에서도 감기에 취약한 연령층은 U자 그래프를 그린다. 아주 어리거나 나이든 사람들의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쉽게 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면역계는 왜 감기 바이러스에 유독 취약한 것일까? 일주일 정도의 휴식과 따뜻한 콩나물국 말고 다른 처방은 없는 것일까?

뉴스를 조금만 눈여겨보면 바이러스는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과 식물에도 거침없이 달려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고기, 개구리, 악어도 사는 동안 한번쯤은 바이러스에 시달린다. 지금까지 나열한 생명체는 모두 눈에 보이지만 현미경으로나 보임직한 세균도 바이러스 때문에 흔히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다양한 바이러스 중에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와 조류가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있다. 감기는 이미 얘기했고, 현대판 흑사병이라 불리는 에이즈, 소두(小頭)증을 유발한다는 지카, 해마다 갈마들며 조류 독감과 구제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바이러스는 RNA라는 다소 불안정한 유전 물질의 돌연변이를 통해 끊임없이 변신하며 약물이나 백신에 대해 내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세균은 이런 RNA 바이러스에 상대적으로 강한 내성을 보인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세균은 쉽사리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다른 수단도 있겠지만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감지하고 제거하는, 크리스퍼(CRISPR)라 불리는 세균의 면역 담당 저격수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크리스퍼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줄임말이다. 세균의 유전자 가위니까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자른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를 자를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 생물학의 묘미가 살아 숨 쉰다. 세균의 크리스퍼는 자르고자 하는 바이러스 유전자 표적에 지퍼를 채운 것처럼 착 달라붙는다. 그런 다음 크리스퍼와 팀을 이뤄 일하는 가위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싹둑 잘라버린다. 스스로를 조립하지 못한 바이러스는 이제 더 이상 바이러스가 아니며 온전하게 살아서 세균 밖을 나갈 도리가 없다.

사실 크리스퍼의 단서를 짐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1987년 세균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하던 일본의 연구진들이 크리스퍼의 존재를 눈치챘다. 하지만 그 정체가 밝혀진 것은 21세기에 접어든 뒤였다. 요구르트나 요플레와 같은 발효 유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균을 조사하던 덴마크의 대니스코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체계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내성을 갖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로운 점은 크리스퍼가 과거 세균 집단에 무단 침입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채무기록처럼 꼼꼼히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세균은 자신을 한번 침입한 바이러스를 쉽사리 잊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면역계의 이러한 특성을 두고 적응성 면역이라고 칭한다.

이후 분자생물학자들이 크리스퍼의 파급력을 짐작하게 되면서 변방에 있던 세균의 면역 체계가 일약 유전공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인공적으로 합성하여 정확하고 빠르게 동물이나 식물의 특정 유전자 부위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혈우병과 같은 유전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게 될 것이다. 비계 대신 살코기가 듬뿍 든 ‘슈퍼’돼지를 만들 수도 있다. 곰팡이 감염에 강한 바나나도 곧 선보일 것이다. 크리스퍼는 이미 변화의 장도에 올랐다.

한편 과학자들은 크리스퍼가 본디 바이러스의 대항마로서 진화한 세균의 방어체계라는 점을 잊지 않고 그것을 난공불락의 감기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데도 쓸 수 있으리라 궁리한다. 무작정 살처분에 맡기는 구제역과 조류 바이러스 감염 가축들도 곧 크리스퍼와 한번쯤 만나야 하지 않을까? 영하의 강추위가 한정 없이 길어지는 이 겨울, 나는 작고 작은 것들의 세상을 꿈꾼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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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한 500명의 대학생이 한 학기에 한 권의 고전을 함께 읽는다. 이번 학기의 고전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특강, 전문가 해설과 함께하는 영화 상영이 기획되고, 자발적 세미나와 원문 강독 모임에 전문 인력과 진행 경비가 지원된다. 아우슈비츠는 물론, 캄보디아와 베트남, 제주도와 서대문형무소, 그리고 ‘위안부’ 역사관 등을 찾아서, ‘악의 평범성’이 역사가 되어 버린 현장을 발과 눈으로 확인한다. 책의 내용과 현장 경험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킨 소감문을 시상하고 공유한다. 정규 수업으로 개설하기 힘든 산스크리트, 라틴어 등의 도구언어 학습반과 연 50여 종의 동서양 고전 강독반이 진행된다. 소수라도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전문가를 붙여주는 방식이다.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생이 함께하는 랩을 만들고 학업지원금을 지급하며 차근차근 인문학 후속세대를 키워간다. 글로벌 지역문화 이해와 다양한 융합전공의 기반으로서 인문학이 지닌 가능성을 배가하기 위해 교육과정 개편과 해외 연수, 전문가 특강, 인턴십 등이 다채롭게 진행된다. 인문학 교수들이 교도소와 병원, 지역 문화원과 기업체로 찾아가고 중·고등학생과 지역주민을 대학교로 초청해서, 품격 있는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CORE)’의 일환으로 한 대학교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의 일부다. 전국 19개 대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과 대중화 사업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당초 약속대로 이 사업이 10년 동안 정상적으로 지속되면 인문학의 육성은 물론, 인문적 상상력을 지닌 융합인재와 글로벌 지역전문가의 배출, 나아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 가시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대학재정 지원 사업 개편에 의해 이 사업은 3년차로 중단된다. 지역학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한 학과들은 파행을 막을 길이 막막하다. 인문기반 융합전공에서 진로를 모색하던 학생들은 모처럼의 동력을 잃게 되었다. 미래의 인문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학생들이 학교와 국가를 상대로 가지게 될 허망한 배신감을 생각하면, 처참할 뿐이다. 약속의 파기는 개인 간에도 심각한 문제다. 백년대계를 두고 국가가 한 약속은 더욱 중대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후속 사업이 절실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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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독일에서 공부한 탓인지 서유럽 정치에 관심이 적지 않다. 당장 3월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것인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오성운동은 30%에 육박하는, 단일 정당으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오성운동이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거부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선 우파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주목할 것은 포퓰리즘이 2008년 금융위기라는 ‘대침체’ 이후 서구 정치변동을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현상’,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전진하는 공화국’,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영국의 ‘독립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노르웨이의 ‘진보당’, 그리스의 ‘시리자’, 그리고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이 서구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를 뒤흔들어 왔다.

포퓰리즘을 특징짓는 현상은 두 가지다. 첫째,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균열을 부각시킨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다. 정치의 일차적 목표는 엘리트 기득권에 맞서서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이들은 역설한다. 대중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논리보다 감성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인민주권을 내세우는 게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둘째, 이념 구도를 망라한다. 트럼프 현상이 우파 버전이라면, 포데모스는 좌파 버전이고, 전진하는 공화국은 중도 버전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의 차이다. 두 포퓰리즘은 모두 엘리트 대 국민의 적대를 정치의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우파 포퓰리즘은 이 적대에 국민 안에서의 ‘내집단 대 외집단’의 적대를 더한다. 저널니스트 존 주디스에 따르면, 외집단이란 이민자·난민·이슬람교도 등을 지칭한다.

서구에서 포퓰리즘이 급부상한 데에는 세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 불평등의 구조화다. 금융위기 이후 우파든 좌파든 기성 정치사회는 불평등의 해소에 대체로 무능했다. 둘째, 세계화의 증대다. 세계화 시대가 열리면서 호황의 국면에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높았지만, 대침체 이후 이민과 난민 정책이 예민한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셋째, 정보사회의 진전이다. 적잖은 국민은 신문·방송의 기성 공론장을 패스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통한 정치사회와의 직거래를 활성화시켰다.

요컨대, 불평등, 세계화, 정보사회가 가져온 전환기의 불확실성은 문제 해결에 무력한 기성 정치사회에 대한 실망과 거부를 낳았고, 바로 이 실망과 거부의 공간이 포퓰리즘의 서식처를 이뤘다. 정치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가 통찰했듯, 포퓰리즘 정당은 기존 계급·이념의 균열을 넘어서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적대를 창출했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 집단들을 ‘하나의 국민’이란 이름으로 호명하여 결집시킨다. 포퓰리즘 정치에는 이렇듯 소외되고 배제된 국민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정체성의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 시리자 정부가 보여주듯 포퓰리즘의 득세가 정부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파 포퓰리즘이 내세우는 이·난민 문제나 좌파 포퓰리즘이 주력하는 불평등 해소는 쉬운 과제들이 아니다. 정책의 선택은 세계화된 자본주의로부터 가해지는 구조적 강제와 정부 정책을 구속해온 경로의존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민들은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는 포퓰리스트들에 열광하지만, 그 열광은 이내 환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이 번성하는 이유는 뭘까. 그 까닭은 무엇보다 기성 정치사회의 역량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다는 데 있다. 적잖은 국민이 관료화된 기성 정치가 국민 전체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믿는 한, 포퓰리즘은 제3의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계속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은 정책적 측면에서 ‘대중영합주의’를 함의한다. 주목할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포퓰리즘의 의미와 효과다. 포퓰리즘은 인민주권의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한 식솔이다. 그러나 동시에 제도정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불편한 친구다. 서구에서 1929년 대공황 이후 복지국가가 등장했듯, 2008년 대침체 이후 포퓰리즘이 부상한 것은 서구 정치가 새로운 시대로 가는 문턱에 올라서 있음을, ‘이념 시대’에서 ‘포퓰리즘 시대’로 전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표일 수 있다. 서구 정치변동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를 위해 이 칼럼을 썼음을 밝힌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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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_내_성폭력 1차 파동이 일던 2016년 가을, 한 여성 평론가에게 물었다. “요즘 문단 분위기 어떻습니까?” 매우 신중한 성격인 그녀는 약 5초간 침묵하다가 “문단이란 걸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단호한 말이 나오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어린 고교생 작가 지망생까지 성폭력의 희생자였음이 드러난 때였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없앨 수도 있고 없앨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제도로서의 문단은 등단과 문학상, 문예지와 문학가 단체 등을 아우른 체계를 뜻하고, 비물질적인 측면에서 문단이란 문인들의 네트워크, 또 비평적·예술적 규범과 권위로 이뤄진 무정형의 공동체 같은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문예지를 운영하는 출판사와 그 주변의 작가·비평가가 문단의 중심에 서 왔다. 그리고 이 땅 문단에서는 근대문학의 이념과 제도가 발생하던 20세기 초부터 술자리가 중요했다. 이는 한국 사회 어디에나 있는 그 술자리의 문학판 버전이기도 하다. 거기서 친분과 인맥이 생겨나며, 청탁과 거래가 오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큰 출판사들은 의식적으로 많은 돈을 쓰며 지식인·문인들에게 공짜 술을 샀다. 고담준론이나 지적·예술적 교류가 오간 것도 사실이니, 좋게 보면 술자리는 문학계의 자율성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자리들에서 권력의 네트워크와 권위를 악용한 성폭력도 자행돼온 것이다. 성폭력범은 소수라 해도 이런 문화 자체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이어져왔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2015~2016년의 표절·성폭력 스캔들을 겪고 문단의 제도와 네트워크는 부분 개혁되었지만, 권위와 존경은 근저에서 깨져나가고 있어 안타깝다. 필자가 다니는 대학 문학 동아리의 한 남학생은 모 원로 소설가를 일컬어 ‘고마운 개새○’라 했다. 노회한 상습범이 젊은 영혼에게 충격적 깨달음을 준 것이다. 그는 남성인 자기에게 모호하던 많은 문제가 사태로 인해 분명해지고, ‘여성의 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저렇게 심각했던 1차 파동 때에 문단의 호스트이자 ‘권력’이었던 ‘어른’들은 마치 아무 일 없는 양 하거나 침묵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느 ‘원로’는 다시, ‘작품과 작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된다’거나 ‘예술가들의 업적은 존중하되 그 약점이나 실수는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원로’나 일부 비평가들은 이런 사태로 인해 자신들이 쌓아온 ‘공적’이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많은 피해자들과 젊은 문학인과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가해자 또는 방조자됨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예술적’ ‘공적’의 일부라도 한국문학 교실에서 가르칠 수 있다.

사실 이미 한국문학사는 ‘불구하고’(일본어투라지만 문맥상 양해를)가 되었다. 표절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이 훌륭하다, 일본을 위한 전쟁에 죽으라 선동했음에도 소설은 좋다, 이승만·박정희가 한 모든 일과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모국어의 마술사다, 상습 성추행범이었음에도 뛰어난 예술가며 민족 시인이다. 이런 한국 현대문학사란 도대체 무엇일까? ‘문학이라는 질병’(‘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엘리트들의 체제 순응과 남성 동맹’이라는 부제가 붙은 다카다 리에코의 책 제목에서 빌림)은 또 얼마나 독한 것인가?

이번에 상습범으로 지목된 시인은 1970년대에 이문구·백낙청 등과 함께 야만적 유신독재뿐 아니라, 어용화된 서정주·조연현 등의 문인협회와 싸워 한국문학의 기풍과 정신성을 바꿨었다. 그 싸움과 정신의 중요 구성부분을 ‘민족문학’이라 경칭해왔다. 민족문학은 식민 지배와 내전, 분단을 겪은 가련한 한반도 종족과 민중의 문화 이념이자 운동이었다. 그런데 민족문학은 민주화의 부분 성공과 문단 헤게모니의 교체 이후에 주류·정통의 자리에 놓였다. 바로 거기서 많은 모순과 불행이 배태됐다고 생각한다. 그가 계속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명되었던 것은 민족문학의 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최영미 시인이 경험한 폭력은 1990년대 민족문학의 제도적 구현체와 직간접 관계가 있다. 폭로 이후 SNS에서 2차 가해성 글을 쓴 또 다른 시인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활동가였다 한다. 이념과 운동으로서의 민족문학은 21세기에 들며 자연사하다시피 했는데, 이렇게 또 스스로 면류관을 벗고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진다.

그럼에도 이 지구에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이 여전히 몇 천만명이니, ‘민족의’ 문학이나 한국어 문학은 또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공동성과 규범이 절실하다. ‘문학이라는 질병’을 넘는 문학인의 네트워크나 문화가 곧 도래할 것이다. 여성들과 젊은 세대가 할 것이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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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30석 규모의 제3당인 바른미래당이 13일 공식 출범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날 합당안을 추인하고 창당을 선언했다. 새 정치와 신보수를 야심차게 내세웠던 양당은 창당 1~2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거대 양당 체제라는 정치 현실에서 제3세력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통합신당은 다시 한번 제3의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기 위한 독자생존의 새 길에 들어서게 됐다.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서 유승민, 박주선 공동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중도·실용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지난 총선·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두 당에 적지 않은 표를 준 것은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한 불신 탓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발표한 ‘잠재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11%로 나타났다. 두 당 지지율의 합(국민의당 4.8%, 바른정당 5.7%)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치다. 통합 과정에서 숱한 잡음과 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당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바른미래당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호남의 ‘합리적 중도’와 영남 ‘개혁적 보수’의 결합을 표방하고 있다. 영호남 중심의 지역주의와 거대 양당 대립 정치를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당의 앞길은 순탄치 않다. 이념과 노선, 정체성 등에서 간극이 큰 점은 최대 걸림돌이다. ‘이종(異種)교배’의 정치실험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양당은 합당 전날까지도 신당 강령에 ‘진보’ ‘햇볕정책’을 담는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합의에 실패했다. 앞으로 대북정책 등 각종 현안에서 불분명한 입장과 본질적인 인식 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과제는 녹록지 않다. 국민의당 출신 의원 중 비례대표 3명은 민주평화당을 지지하는 등 당내 분란의 불씨도 살아있다. 외부 개혁세력 영입을 통해 제3지대 폭을 넓히는 작업은 시급하다. 바른미래당의 안착 여부는 6월 지방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내분과 양당 시각차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의 기대는 일거에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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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가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고 국가기강을 뒤흔든 행태에 대한 엄정한 심판으로 받아들인다. 법원은 최씨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이 중 상당 부분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최씨에게 중형이 선고된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중형 선고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심각히 훼손한 만큼 민간인인 최씨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순실씨가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13일 “최씨의 광범위한 국정개입으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초래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헌법상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밝혔다. 또한 “최씨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고, 다른 이들에 의해 기획된 국정농단이라며 그 책임을 주변인에게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핵심 공소사실인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모금 압박과 관련해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기업체에 출연을 강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측은 직접 챙긴 이득이 없는 만큼 뇌물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범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된 부분이다. 최씨 사건 재판부는 삼성에서 사들인 말의 소유권이 사실상 최씨에게 있었다며,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훈련 비용 거의 전액(72억여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도 인정했다. 이 부회장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가 지난 5일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말 소유권이 삼성에 있었다며 36억여원만 뇌물로 본 것과 배치된다.

국정농단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50여명 중 1심 선고를 남겨놓은 사람은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극소수다. 박 전 대통령 재판도 3월 중 심리가 마무리돼 4월 중에는 선고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구속기간이 연장된 이후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진솔한 반성과 참회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법절차마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최씨와의 공모관계를 명확히 인정한 만큼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법정에 나와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사법부의 책임도 무겁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여러 건이지만, 모든 재판이 유기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특정 재판의 결론이 다른 재판들과 현저히 다를 경우 사법적 혼란이 발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여드레 사이 서울고법의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와 서울중앙지법의 ‘최순실 1심’ 재판부가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판단을 내렸다. 여타 재판부의 결론과 비교해볼 때, 혼란을 야기한 쪽은 전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 국정농단 사건이 주권자들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안겨준 만큼 재판은 그 상처를 올바르게 치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법원 전체가 이를 유념할 때만 사법적·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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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가 폭로 이후 겪는 과정을 보면 한국 사회의 조직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범용의 알고리듬이 있는 것 같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솔루션이 제공되는 알고리듬 말이다.

피해자가 젊은 여성일 경우, 솔루션은 ‘꽃뱀’이다. ‘꽃뱀’이란 솔루션을 써 먹기엔 피해자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취할 수 있는 솔루션은 ‘조직생활 부적응자’다. 조직생활 부적응자라고 몰아가기엔 피해자가 평소 활달하고 업무성취도도 높았을 경우라고 해도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딴 야심이 있어서’거나 ‘인사를 뒤집으려고’ 폭로를 한 교활한 모사꾼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설을 만들면 된다.

한 시민단체 회원이 1일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를 상징하는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정타는 가해자가 청구하는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소송이다. 한국에서 “나도 당했다(Me too)”라고 성폭력 사실을 알리며 가해자를 지목한다는 것은 곧바로 피해자가 명예훼손에 피소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지목하는 게 죄가 될 수도 있는가? 한국의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법의 풍경은 그렇다. 혼자 벽을 보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말하면(公然性),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의 요건이 된다. 적반하장을 감당해야 하는 피해자의 억울함은 하늘에 닿는다. 끊임없이 “말하지 말라”고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이 모든 조롱과 음해와 협박을 거치고도 간신히 버텨낸 사람은, 그래서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로 불린다.

과장해서 지어낸 얘기 같은가? 당신이 15년간 다닌 회사에 두 달간 병가를 냈다고 하자. 병가의 와중에 회사로부터 “당신 책상을 치웠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당신과 동료들은 이 조치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해석하겠는가? 아무리 눈치 없는 신입사원이라도 ‘공간이 부족해서 병가 기간 동안 책상을 치웠나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뒤에 통영지청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 검사의 폭로가 공론화된 것이 1월29일. MBC 보도에 따르면 1월22일 작성된 검사 배치표에는 서 검사의 이름이 들어 있었지만 2월5일자로 작성된 배치표에는 이름이 빠져 있었다. 2월5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성희롱, 성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위계 문화가 강한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먼저 달라지고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날이다.

검찰이 정부 수반의 뜻도 못 알아차리는 어리석은 행보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검찰의 서 검사에 대한 조치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재갈을 물려온 알고리듬이 얼마나 끄떡없이 작동할 수 있는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기관’에서 제시해준 역설적인 본보기다. 서 검사를 응원하는 꽃바구니가 전국에서 몰려들어도, 통영지청의 설명대로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휴직 중인 서 검사의 책상을 치우고 짐을 빼는 일은 가능했다.

이 본보기는, 골치 아픈 사내 성폭력 사건을 다뤄야 하는 조직의 장들에게는 엎어져 있는 피해자의 등을 한 번 더 밟고 지나가면서도 없었던 일처럼 만드는 것이 합법적인 규칙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며, 말문을 열려던 피해자들에게는 “그래봐야 입 연 사람만 괴롭다”는 위협의 시그널을 준 것이다. 검찰이 꾸린 성추행 진상조사단이 서 검사에 대한 음해성 소문이 끊이지 않자 근원을 찾아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소문의 근원은 몇 사람의 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조직은 안 바뀌어’ ‘그래도 나는 안 다쳐’라고 가해자들이 자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런 피해자 재갈 물리기의 알고리듬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설계자들은 코드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타난다. 불의한 코드에 의해 상처 입으며 그 본질을 속속들이 알아낸 생존자들이 이제 곳곳에서 입을 열고 있다. 자신의 온몸을 부딪쳐 부패한 시스템의 질서를 허물고 있다. 이 비열한 알고리듬은 해체될 것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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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2016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정위가 두 차례 조사에서 각각 무혐의·심의절차종료 처분으로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결론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직접 브리핑에 나서 “공정위가 (지금껏) 소극적 판단을 한 것은 심각한 문제”,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재조사에 나선 모양새였지만 이전과는 180도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 살균제 관련 공약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2016년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조사 과정에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사건 축소 처리’ 외압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 전 위원장은 전원회의로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을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소회의 주심 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회의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게 했다.

소회의는 3명의 상임·비상임위원이 의사결정을 한다. 반면 전원회의는 9명 위원이 참석하는 공정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논의가 더 심도 있게 이뤄진다. 정 전 위원장은 “(허위·과장 광고를 다루는) 표시광고법은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고, 전원회의에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전원회의 심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2일 브리핑에서 “가습기살균제 TF가 정 전 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직원 1대1 면담으로 확인한 바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 논란의 핵심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외압 없음’ 결론을 내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TF는 공정위 결정에 논란이 일자 사건 전반을 재검토한다는 취지로 만든 태스크포스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소회의-전원회의 안건 변경은 위원장 권한이다. 저도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전환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장 역시 소회의나 전원회의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절반만 맞다. 공정거래법 37조는 전원회의에서 다뤄야할 안건으로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 등을 열거하고 있다.

법에는 소회의에서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때,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를 막을 근거는 명시돼 있지 않다.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은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에 속한다.

법에서 찾을 수 없는 위원장의 권한은 공정위 고시(사건절차규칙)에서 등장한다. 사건절차규칙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안건을 전원회의→소회의 혹은 소회의→전원회의로 바꿀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법률과 행정규칙이 충돌할 땐 법률은 행정규칙에 우선한다. 공정거래법은 전원회의→소회의 안건 변경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고, 고시 역시 위원장이 소회의 안건이 전원회의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명시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정규칙을 만든 공정위가 문제다. ‘법에 없는 권한’, ‘제멋대로 해석’은 공정위가 7년 넘게 가습기살균제 광고 문제를 끌어온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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