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주간지 ‘타임’은 북유럽의 작은 나라 노르웨이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을 누르고 종합 1위의 성과를 거둔 비결을 소개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 노르웨이는 242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미국의 절반 수준인 109명의 선수를 파견하고도 미국이 따낸 23개 메달보다 많은 총 3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타임은 노르웨이가 거둔 성과의 비결은 천혜의 자원으로 눈이 많고, 무료로 보편적인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재능을 지닌 어린 선수들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13세 미만의 유소년 스포츠팀 선수들에게는 어떠한 점수기록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한 비결이라고 했다.

노르웨이의 마리트 비에르겐은 2018년 동계 올림픽 알펜시아 크로스 컨트리 여자 30km크로스 컨트리 매스 스타트의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유소년 선수들은 스포츠와 경기를 통해 보다 많은 것을 익히고, 자기개발과 함께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운다. 점수기록이 없으므로 오랜 기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12세 이하 유소년에게 챔피언이란 수식어는 따라붙지 않는다. 경쟁이 없으니 스포츠는 당연히 협동심을 배우고, 승부를 떠나 서로를 격려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노르웨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선영이 속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우리가 실망했던 것도 결국은 경기 결과가 아닌 팀 분위기였다.

한국 사회는 삶의 가치로 경쟁과 성공을 꼽는다. 무한경쟁의 치열함 속으로 아이들을 집어넣고, 자신들도 그 치열함 속으로 뛰어드는 우리의 모습은 불나방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경쟁의 피로도를 낮춘, 서로 격려하고 협동하는 문화메달을 목에 걸어보자.

<엄치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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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소년원의 존재 이유는 소년 보호’라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최근 춘천소년원과 전주소년원에서 발생한 보호소년 대장암 발병 및 실명 사례를 통해 소년원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청소년 범죄는 처벌보다는 보호를 통한 재범 방지와 교정·교화의 기능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소년원은 학교라는 근사한 이름만 있을 뿐, 아이들을 군대식 좁은 감방에 가둬놓고 혼을 내고 질서를 잡는 게 전부라고 비판했다. 교육활동을 제대로 할 리 없고, 성장기 청소년을 위해 최소한의 운동도 시키지 않는 수용시설로 왜곡함으로써 소년원이 총체적으로 인생을 망가뜨리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소년원 교사들은 보호소년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교과교육, 직업능력 개발훈련, 재활교육에 임하고 있다. 영어 발음 기호도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주말까지 출근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 하나 끈기 있게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인내심과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다. 공교육이 포기하고 내팽개친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 소년원 학교인 것이다. 따라서 인권연대가 지적했듯이 간판만 학교라고 붙여놓은 것은 아니다.

보호소년의 대부분은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가정폭력과 학대, 경제적 빈곤으로 가출하여 학교를 그만둔 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행을 반복하다 결국 소년원 처분을 받는다. 소년원 퇴원 후에 사회로 나가지만,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변한 게 없다. 따라서 소년원은 아이들이 자립하여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검정고시 합격이나 복학을 위한 교과교육과 제과제빵, 헤어디자인, 자동차 정비, 바리스타, 네일아트 등의 실질적인 직업훈련 교육을 병행한다.

또한 유년시절 부모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인성교육 및 재활교육, 개별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평일에는 매일 담임교사와 함께 1시간 이상 축구와 농구 등 체육활동을 하도록 해 수용생활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건강한 신체를 가꾸도록 돕고 있다.

사회에서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 음주와 흡연, 환각물질 흡입 등으로 몸이 망가졌던 아이들은 소년원에서의 규칙적 생활과 식사, 운동, 외부체험 활동으로 대부분 건강을 회복한다. 보호소년 대장암 발병과 실명 사례는 인권연대 조언대로 소년원 의료시스템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전화위복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연대가 지적한 내용 중 사실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은 ‘수십 명이 부대껴야 하는, 생활실이라 부르는 좁은 감방’이라는 표현이다. 현재 전국 10개의 소년원은 대부분 수용정원을 초과한 과밀수용 상태이다. 한 호실에서 많게는 15~20명의 보호소년이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수용환경은 필연적으로 서열과 군대식 고참 문화를 낳는다. 이 때문에 고참 행위를 하는 일부 학생들을 적발하여 교육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과 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생활지도가 소년원 담임교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지난해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후, 소년법 폐지와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공분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인권 친화적인 수용환경 개선과 같은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위한 토론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이자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비행청소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정과 학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비행청소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퇴원생의 취업과 사회 정착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박봉을 털어 고시원비를 지원해주는 공무원도 있다. 아이들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비행청소년의 삶과 아픔을 대변해주는 소년원 학교의 교사인지, 아니면 비행청소년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내놓는,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관용 없는 엄벌이라는 낙인인지 묻고 싶다.

<최원훈 법무부 소년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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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40일’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교회도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四旬) 시기’로 지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는 특정한 잘못의 뉘우침보다는 자신을 어떤 면에서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회개는 현재 삶의 태도를 깊이 성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 곧 돌아섬입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또 무엇을 향해 돌아서려고 하는가?” 매년 이때 되새기는 물음입니다.

소비주의는 오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어입니다. 소비주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나 그렇게 부추기는 경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는 우리를 ‘소비자’라는 특정한 유형의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듭니다(웬델 베리, <온삶을 먹다>). 소비주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는 직접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이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러는 동안, 써서 없애는 데 길들여진 우리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모습입니다.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건 쓰고 버리는 쓰레기입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소비 능력이 큰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려면 많이 소유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옆을 바라보는 건 금물,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합니다. 뒤처지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기에게만 몰두해야 합니다. 자연생태계의 훼손도 인간의 풍요와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소비주의는 이렇게 경쟁과 자기몰입과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단절과 고립의 벽이 도처에 생겨납니다.

무언가 문제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도 있지만, 매력적인 모습으로 치장한 소비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회유하고 위협합니다. 무한한 풍요와 편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자신과 사회와 자연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설사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를 본다고 해도 저항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한 수녀님을 찾아가 수녀원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아늑한 집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녀님이 상에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먹을거리는 가능한 한 직접 길러서 마련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랑으로 비칠까, 수줍은 표정 속에서 직접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건강한 자부심이 배어나옵니다. 사람에게 좋기 때문이 아니라 땅을 살리기 위해서 유기농을 한다고 말하는 수녀님에게서 땅을 믿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겸손이 묻어나옵니다. 불편하지만 오줌과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어, 땅에 힘을 북돋아줍니다. 땅은 우리의 모태이니, 땅이 건강해지면 사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계 없이 몸으로 하려다보니, 농사를 크게 짓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덜 쓰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쓰레기가 덜 생겨나고, 마음의 여유를 더 누립니다. 어느 날 슬며시 찾아와 한 식구가 된 도도한 러시안 블루 ‘도도’도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환대의 물줄기가 단절과 고립의 벽을 허물고 흐릅니다.

하루의 어설픈 노동으로 밥값을 대신하고 소비가 일상인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이 없어 불편하지요?” 수녀원 부엌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판 속의 글귀가 대신 답해줍니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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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술 분야의 유명인들이 국악을 활용해 많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돕고 싶다”던 한 유명 드러머는 자신의 연주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한 젊은 여성 국악인을 불러놓고 음탕하게 협업할 요량으로 옷을 벗으라고, 가슴을 보여달라고 한다. 연기를 가르쳐주겠다던 한 유명 배우는 한 여성 연기 지망생을 모텔로 데리고 가 어느 저질 드라마의 대사처럼 “더운데 씻자”고 한다.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던 한 노 시인은 술집 의자에 누워 바지를 벗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주무르며 옆에 있는 어린 여성 문인들에게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한다. 학점을 주겠다며, 유명하게 만들어주겠다며,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며, 음흉한 미끼를 던지는 상층부 남성 문화예술계 권력자들은 국악을, 연극을, 시를 그렇게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그 선생을 존경해서 그 학교 그 과에 입학했다고 고백한 어느 여학생에게 돌아온 것은 차마 말할 수조차 없었던 치떨리는 선생의 희롱과 음욕이었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23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열린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공개 발언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성폭력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것도 한때의 낭만이라고, 창작을 위한 상스러움이라고 말하던 시대는 끝났다. 가해자 행동이 ‘낭만이자 자유’라고 말하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하고, 예술계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자리에 있었던 너와 나, 상습적인 성희롱을, 분위기 살리는 음담패설로 관대하게 웃어넘기려 했던 우리들, 그 민망한 상황을 차라리 회피하고 싶어 했던 동료들, 그 아픈 기억의 고백을 손쉽게 위로하려 했던 누군가들. 우리 모두 이 사태의 우울함과 엄중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모두 상상의 가해자는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 뼈저리게 통감해야 한다. 피해자는 우리의 동료이고, 동지이며, 미래의 벗이기 때문이다.

젠더폭력은 계급폭력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폭력보다도 근원적이고 원초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정치적 당파의 유불리를 가늠하는 방어적 센서가 아니다. 김어준의 ‘웃긴 변명’대로 작금의 ‘미투(#MeToo) 운동’이 설령 보수진영의 공작으로 이용된다한들, 그 운동이 공작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미투 운동’ 그 자체이다. 김어준의 발언이야말로 젠더폭력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환원하려는 정치적 음모이며, 그가 그동안 세상을 공치사하며, 살아온 정치적 음모론의 졸렬한 연장이자, 성폭력 피해자의 자기 고백에 대한 마초들의 인습적인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망언이다. 이 와중에 보수진영의 공작을 운운하는, 그런 나라 걱정을 하는 진보라면 차라리 분쇄되는 게 낫다. 정치적 진보로 젠더폭력의 현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정당화의 역사가 상층부 진보적 남성 문화예술 권력의 민낯을 은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수요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18학년도 입학식이 있었다. <숲속으로>라는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동명 제목으로 시작된 한국예술종합학교 새내기들의 힘찬 출발의 예식은 동명 뮤지컬의 주제곡을 개사해서 연기과 학생들이 멋지게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예술의 숲속으로 들어가는 새내기들, 그들에게 예술의 숲은 무엇일까? 그 숲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예술의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하는 그들에게 숲은 포근하고, 아늑하며, 상쾌한 산소를 뿜어내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어야 할 텐데. 그런데 그 숲이 예술 새내기들에게 공포의 밀실이자, 어둠의 속이 된다면, 숲은 그들을 집어삼키는 포식자의 소굴이다. 예술의 숲속으로 이제 막 들어가는 그들에게, 이미 그 숲속에서 들어갔다 길을 잃고 발버둥치는 그들에게 숲이 진정 그들의 안식처가 되려면 숲은 생태적 윤리의 미학을 위해 스스로 이렇게 명령해야 한다. “그들의 꿈을 더 이상 짓밟지 마세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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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정호승 시, ‘산산조각’ 중에서).

‘미투’(#MeToo)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어느 서울대 교수에 대한 조교의 고발이 성희롱을 공론의 의제이자 사법 사안으로 만든 후, 권력관계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성토, 개선책 요구가 지속됐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직종의 여성들이, 각급 학교의 여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의 성폭력에 노출되는 사건들이 반복되었고 폭로도 계속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6년 봇물처럼 쏟아졌던 문단, 영화계, 예술계의 성폭력 폭로에 어떤 실효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폭로는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결국 꿈쩍 않던 문화권력의 철옹성들이 썩어빠진 성폭력적 실체를 드러냈다. 참담한 현실이다. 여성혐오를 미화하고 권력지향을 은폐해 온 그들의 예술가적 특권의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성추행을 남성예술가의 기벽, 거창한 고뇌의 부작용 정도로 여기는 관행도 뿌리 뽑아야 한다.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는 대신, 문화예술계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들의 ‘성취’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 미학적 기준과 비평의 관점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예술가 개인의 삶은 별개로 볼 수 없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고 착취하면서 이룬 ‘성취’를 그 행위와 별개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하는 잣대는 이미 윤리적, 정치적으로 비뚤어지고 오염된 것이다. 문제는 커진다. 편향되고 오염된 잣대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은의 시, 이윤택의 극을 ‘좋아하도록’, 거기서 모종의 ‘가치’를 읽어내도록 훈련된 우리 자신의 시각과 사고방식 역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동료의 말에 절망감을 느꼈다. 한 사람의 인격, 인권을 온전히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는 일상의 사실을 간과한다면, 문학도 예술도 혁명도 다 무의미하다.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중심적 예술관, 윤리적 실패를 내포하는 가치를 이상화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의 향유를 통해서 여성혐오에 공모하도록 만드는 미적 가치기준,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극단을 해체하고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자숙을 약속하고 일부는 침묵한다. 하지만 성폭행은 물론 희롱이든 추행이든 성폭력은 범죄다. 수사기관의 공식적 개입을 통한 조사, 문책, 처벌이 필요한 것이다. 속죄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말로 눙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법이 명시하는 절차대로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윤택이 사과성명을 시 쓰듯 작성해서 연극처럼 리허설하고 연기했다는 보도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성범죄 가해자들의 ‘사과’가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을 진정성을 부정하며 그는 가해자에게도 죄의식, 자기혐오가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조롱한 셈이다. 다른 범죄들과 달리 성폭력이 사과로 해결된다는 생각,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이처럼 계속되는 고발과 증언에는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검찰조직의 여성혐오적 문화와 성추행, 성폭력의 관행을 폭로하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 검사가 당한 추행이 은밀한 것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검찰 인사 다수가 있는 장소에서 공공연히 행해졌다는 점, 수차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법무부 내에서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이전 다른 여성들의 외침보다 더 주목받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여성들조차 여성혐오의 폭력적 행태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또 그러한 폭력적 행태를 단죄하는 법적 임무를 부여받은 남성들 사이에서조차 사실은 여성혐오적 성범죄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밝혔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혐오적 남성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탈법적 특권의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그 후 검찰조직 내부의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비판과 처벌, 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 문제에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팀들이 조직되었다. 하지만 법에 따라 범죄를 가리고 처벌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성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집단이었다면, 검찰조직의 자기정화라는 게 가능할까. 검찰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의 법적 권위와 정당성에도 큰 흠결이 생긴다. 성범죄 일반에 대한 검찰의 적절한 수사와 기소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제도와 절차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산산조각 부서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흩어져야 풀어내고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 아픔도 절망도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깨지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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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일 초·중·고 교과서가 학생참여를 강조한 새 교과서로 바뀐다고 밝혔다. 이달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들부터는 국어책 속 지문 등을 외우는 대신 학기마다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게 된다. 또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예시 등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새 교과서는 지난해에 초등학교 1~2학년에 적용됐다. 올해는 초3~4, 중1, 고1을 거쳐 2020년까지는 초·중·고 전 학년에 적용된다. 새 교과서는 쪽수가 이전보다 20%가량 줄어 학습부담이 감소하고,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국어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기존에는 ‘읽기’가 아닌 ‘읽기에 대해’, ‘쓰기’가 아닌 ‘쓰기에 대해’ 공부했지만 이번에는 읽기와 쓰기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타당한 생각이다. 그동안 잘못된 국어교육의 결과는 독서습관의 부재로 드러난다.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이 기간 중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40%에 달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을 보면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간 국어혁신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매학기 책 한 권을 읽고 토의하고 발표하면서 독서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통찰력과 창의성, 자기학습력을 기르는 교육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회나 영어 등 다른 과목의 교육방식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책만 달달 외워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도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못한다면 잘된 어학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새 교과서는 내가 사는 마을과 도시 문제는 물론 국제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21세기 후반 기후예측’과 같은 실생활과 연계된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영어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주지하듯이 현재 초·중등 교육은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여건 아래서 전인교육이나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낼 수는 없다. 새로운 교육이 교육의 정상화로 가는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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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선거구획정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됐다. 국회는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8일 본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헌정특위) 의결이 늦어지며 수포로 돌아갔다. 국회는 5일 본회의를 열어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키로 했으나, 당장 2일 시작되는 광역의원 예비후보 등록 등 선거업무의 혼란은 불가피해졌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일부 예비후보들은 선거구도 모른 채 ‘깜깜이 등록’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막판에 처리를 지연시킨 헌정특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회 헌정특위는 28일 밤 정치개혁소위에서 지방의원 정수 등을 조정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에 따른 안이었다. 문제는 이후였다. 곧바로 열려야 할 전체회의는 한 시간 넘게 미뤄졌다. 한국당 소속 김재경 특위 위원장이 몽니를 부렸다는 말이 나왔다. 10시가 넘어서야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이번에는 한국당 안상수·나경원 의원 등이 일부 선거구 의원 수를 두고 어깃장을 놨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정세균 국회의장은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본회의 산회를 선포했다. 몇 시간째 대기 중이던 의원들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헌정특위는 뒤늦게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버스 떠난 후 손 든 격이 됐다.

선거법에 따르면 광역의원 선거구와 지방의원 총정수는 국회가 선거일 6개월 전까지 확정토록 돼 있다. 그 법정시한이 지난해 12월13일이었으니 이미 70여일이나 넘겼다. 헌정특위가 본격 가동된 1월15일부터 계산해도 40여일을 허송한 것이다. 국회가 선거구획정을 질질 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 때도 선거일에 임박해서야 획정이 이뤄졌다. 주권자를 조금이라도 두려워한다면 매번 이럴 수는 없다.

선거구획정 지연으로 파생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각 정당의 후보자 선출이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치신인들은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렵게 되고, 주권자는 후보들의 면면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 올바른 선택을 할 기회를 침해당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어기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입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당은 물론 국회 차원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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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9돌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와 건국절 논란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면서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통렬한 지적이다. 올해 3·1절 기념식은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일본 만행의 상징적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에서 거행됐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남녀 독립투사 17인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기도 했다. 장소나 내용이나 역대 대통령 중 일본을 향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일본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해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일 협력을 분리·병행하는 ‘투트랙’ 전략 방침을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 옥사에 마련된 특별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 기념사가 나오자마자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밀실합의가 얼마나 큰 잘못이요, 족쇄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국민들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피해국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나라는 선진국은커녕 정상국가라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내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임을 분명히 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 ‘이승만 미화’가 깔려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제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고, 독립운동가를 평가절하하는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내겠다고 밝힌 것도 의미가 깊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번째인 이번 3·1절 행사에서 여러 가지 쟁점과 논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입장을 내놓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속이 시원했다”는 반응이 많은 걸 보면 그만큼 역사 바로 세우기에 갈증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했다. 내년 100번째 3·1절은 이런 꿈들이 모두 이뤄진 기념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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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패럴림픽이 남았으니 아직 끝이 아니긴 하다. 패럴림픽까지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그리고 아시안게임까지. 대형 국가 스포츠행사 유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가 한국이라 하니 뿌듯해야 하는 건지는 내 소관이 아니고 남 먹는 일 구경하고 참견하는 일이 내 공부이니 올림픽 음식에는 관심을 두었다. 외국의 참가인원이 3000여명, 자원봉사자와 운영인력이 8만3000여명인 인구 대이동이다. 이들이 먹고 쉴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역량 문제다.

이번 올림픽 음식의 첫 번째 논란은 자원봉사자와 운영자들, 즉 ‘내부인’에게 먹이는 음식의 부실 문제였다. 대형 급식의 경험을 가진 식품기업들은 사실 빤하고, 한시적 운영이니 이윤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아 기업들도 나름 고충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외부인’, 그냥 외국 손님이라 할 수 있는 선수촌 급식은 호평을 받았다. 까다로운 IOC의 기준에 맞춰 400여가지의 다양한 음식을 내어놓았다. 외국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한식’이었다는 ‘쌍팔년도스러운’ 멘트가 곁들여지는 것은 필수다.

평창 올림픽의 공식음식인 올림픽 특선은 강원도의 대표 식재료인 감자, 옥수수, 메밀, 평창한우, 황태, 송어 등을 활용한 일종의 퓨전 한식이다. ‘메밀 파스타’나 ‘크림소스 옹심이’ 같은 것들 말이다.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한식을 개발해 우리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뜻까지 뭐라 할 건 없지만 외국인이 먹기 좋은 음식 개발에 왜 이토록 매달릴까. ‘강릉푸드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올림픽 특선은 막상 일회용기에 초라하게 담겨 나왔다. 음식의 최종 완성은 ‘식기’라 떠들던 개발자들의 자존심 따위는 찾기 힘들었다. 조리시설과 세척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막에서 무리하게 치러내는 행사여서 그렇다. ‘평창10선’이란 걸 개발해 지역의 식당에 메뉴 전수교육을 해서 외국 손님을 대접한다고 몇 년 부산스러웠는데 그 결과는 어찌 나오려나 모르겠다.

이런 대형 국가 행사가 벌어지면 국가는 국가 홍보 전략으로 당연히 음식을 꼽는다. 음식이야말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니까 있던 것은 물론 없던 것마저도 복원하려 든다. 그리고 ‘한식의 우수성을 만방에 고하자’는 구호로 수렴된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한국음식문화 5000년사’라는 전시회를 열었다가 시쳇말로 ‘폭망’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돈으로도 10억원이나 들인 행사였다. 지금처럼 미라지 제작 기술이 뛰어난 때가 아니어서 진짜 음식을 파라핀 처리해 전시하다, 늦더위에 파리까지(진짜 파리!) 날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현대의 음식, 즉 식품기업들의 제품 전시회를 여는 동시에 기업의 후원금을 기대하였으나 고사되고 말았다.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제품을 후원금까지 내면서 할 필요가 있느냐며 기업들이 생짜를 놓았고, 결국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페스티벌 몇 번 한다고 제 나라 음식의 우수성이 알려질 리가 있겠는가. 헛소동일 뿐이다. 

애써 개발해 놓은 특선 메뉴와 외국 손님이 올까 싶어 좌식 식탁을 입식 식탁으로 교체하고, 영업 역량을 올림픽에 모았던 강원도의 식당들 웃는 소리가 들려오진 않는다. 그나마 선수촌 근처 삼겹살집과 치킨집들이 특수를 누렸다니 다행이려나. 잔치는 끝났고 그들은 떠났다. 이제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한국의 실존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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