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즉에 바꿨어야 했던 악폐가 악폐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여성들이 #MeToo를 통해 ‘변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개인의 피해를 말하는 방식이지만 여성들은 ‘몇몇 괴물이 아닌 구조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지난 2월22일(현지시간), UN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한국정부보고서 심의가 있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8개 부처(여성가족부,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인사혁신처, 경찰청) 대표단이 참여했다. 나는 한국정부 심의 대응을 위해 꾸려진 NGO 참가단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많은 CEDAW 위원들이 한국의 여성인권 상황을 우려하며 한국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해 질타했다. 현장에서 느낀 CEDAW 위원들의 분노 포인트는 한국정부의 태도였다. 8개 부처 대표단이라지만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부처는 대체로 사무관급으로 구성되었다.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준비한 답변을 앵무새처럼 읽기만 했다. 

한국의 강간 기준이 국제사회 기준인 ‘동의 부족’보다 엄격한 항거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을 요구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적절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에 법무부 하급 사무관이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무고나 명예훼손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한국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답을 이들이 감히 할 수 있는가? 나는 한국정부의 이런 모습이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자는 여성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의 현실이라고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MeToo는 제대로 된 처벌구조가 없고 성차별이 만연한 한국사회가 만든 현상이다. 여성들이 피해를 말했을 때 분명한 처벌이 약속된 사회라면, 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료로서 존중받는 사회라면 #MeToo가 생겼을 리 없다. 법을 다루는 검사가 범죄인지 몰라서 공개된 장소에서 성추행을 했겠는가? 지켜본 검사들도 범죄인지 몰라서 현행범을 그대로 방치했겠는가?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게 하는 구조와 권력이 문제라는 여성들의 외침에 정부는 당장의 불 끄기에 여념이 없고 보수야당은 #MeToo를 불쏘시개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음모론자들과 선정적 보도를 통해 #MeToo를 상품화하는 일부 언론들은 #MeToo의 의미를 왜곡·훼손하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원천적으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형법개정 권한을 가진 법무부나 국회가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여가부의 피해자보호 대책은 사후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괴물’이나 하급 직원, 여가부 등 작은 권력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변죽만 울리는 방식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이제 청와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성차별적인 고용, 노동,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없이 구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악폐인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모든 부처의 역량을 총망라하는 추진체계를 짜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미 알고 있고 약속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마련하고 인적·물적 자원의 충분한 배치와 명확한 책임과 권한의 분배 등을 통해 확실하게 집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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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이후 주말까지 서울 도심이 태극기로 분분했다. 그로 인해 소셜미디어도 분분했다.

지난 1일 오후 친박 정당 대한애국당과 보수 단체들이 서울역 앞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주최한 집회가 열렸다. 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와 문재인 정권의 반대를 외치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출처:AP연합뉴스

보수 세력 내에서는 연이은 집회의 참가 규모에 고무된 듯하다. 보수 인터넷 언론들은 “태극기 집회가 흥행했지만 기성 언론이 외면했다” “범국민 저항운동이 될지 주목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집회 후 한 보수 월간지 기자는 “집회가 전보다 젊어지고 짜임새가 있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모인 모습을 보면 이렇게 평가하기엔 어려울 듯하다. 이들은 행진을 하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돼 있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대형 촛불 조형물을 부수고 방화했다. 경찰은 폭력 행위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저들은 보수가 아니라 폭력을 즐겨 쓰는 수구단체일 뿐 엄정하고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페이스북 사용자도 “(폭력 집회 운운은) 지난 정권에서 경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명분이 아니냐”며 “폭력 행위를 통제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단체는 집회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집회 도구로 쓰고 길에 버리고 갔다는 증언들이 올라왔다. 3·1절인 이날 성조기를 넘어 일장기까지 등장한 사진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특히 이들이 너도나도 손에 든 태극기의 의미를 물으며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 붙이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트위터 사용자 rnj***는 “태극기 집회라고 부르는 건 태극기에 대한 모독”이라며 “박사모 집회나 극우 집회라고 불러야 맞다”고 지적했다. kby***는 “태극기 명예훼손 집회”라고 표현했다. coc***는 “성조기, 일장기,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드는 집회는 태극기 집회가 아니라 만국기 집회로 불러야 한다”고 썼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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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형들은 졸업식에 가시네요.” 친한 동생의 말이다. 2018년 전기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환한 미소로 학사모를 쓴 사진을 프로필로 바꾼 후 듣게 된 말이다. 필자는 취업전선에서 아직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졸업식에 참석했다. 가족들, 친구 등이 모두 참석하여 축하하였기에 기쁨이 배가 됐다. 그렇지만 학위증 수여 서명에는 빈 공란이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졸업식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 결과, 대졸 예정자의 약 3분의 1이 취업을 이유로 졸업식에 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 ‘취업이 안 돼서 가기 싫다’와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다’가 각각 절반을 차지했다. 취업 실패를 인생 실패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자들의 마음에 못을 박는다.

필자는 3·1절을 기념하여 열리는 자전거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최근에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의 고배를 마신 울적한 마음과 달리 날씨는 맑고 대회 분위기는 뜨거웠다. 기분 따위는 잠시 내려놓은 채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당당하게 마라톤을 완주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도 마라톤처럼 먼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속도를 내는 평지가 있는가 하면,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끌고 가는 오르막길이 있다.

응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가족들, 지인들 볼 면목이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최대한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달려야지. 힘을 내자 졸업생들.

<박정욱 | 한국외국어대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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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미투 폭로… 문화행사 차질로 시민도 피해자.” 뉴스를 보려고 TV채널을 돌렸다가 화면에 찍힌 자막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앵커의 말이 이어졌다. “전국 각 분야에서 미투 폭로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성추문 폭로로 문화예술 행사도 차질을 빚으면서 성폭력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못 가린다는 탄식이 절로 입에서 새어나왔다. 이제는 고통을 말할 자유도 없구나. 저 앵커와 기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성폭력 피해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시민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말일까? 아무리 새겨들어도 미투 폭로가 가해자 아닌 애먼 시민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출연진 언론인 김어준이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논리. 하지만 너무나 얄팍한 사고방식. 자연스럽게 지난주 소셜미디어 공간을 달궜던 김어준씨의 발언이 떠올랐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미투 운동이 정치적 공작에 이용될 가능성이 예상된다”는 말은, 그가 해명한 대로 미투 운동이 훼손될까 염려한 발언이었다 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발언의 논리는 이러했다. 미투 운동이 우리 편을 겨냥하는 데 이용됨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심지어 우리 편을 음해하려는 가짜 폭로도 예상된다, 이 모든 원망이 미투 운동에 돌아갈 수 있으니 운동 자체를 위해서라도 신중해야 한다, 다 미투를 위한 말이다….

조직을 위하여, 너 자신을 위하여, 애먼 사람에게 돌아갈 피해를 생각하여…. 이 논리들은 ‘당신 자신이 다시 피해를 입을까 염려되어’라는 배려의 얼굴로 다가온다. 바로 그런 걱정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모진 고통의 기억을 발설하지 못하고 혼자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무지하다고 할까. 그럼에도 이런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사고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리주의라는 사고방식이다. 사회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 명제는 언뜻 보면 공동체를 위한 자명한 논리처럼 여겨진다. 사회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구성원이 누리는 행복의 총량을 그 사회의 윤리적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행복과 고통이라는 주관적 경험을 동일한 양적 기준으로 계산하기는 어려운 법. 이런 함정 때문에 존 롤스는 ‘차등의 원칙’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구성원의 행복이 아닌 고통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는 고통받는 이에 대한 보상을 우선함으로써 전체의 행복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침해의 최소화 원칙’으로 구체화되어 현행법에도 일부 채택되고 있다. 공공 목적을 위한 사유재산 침해를 보상하거나 일조권을 보장하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합리적인 해법들조차도 어쩐지 불편하다. 행복은 나눌 수 있지만 고통은 나눌 수가 없고, 당사자의 고통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기껏해야 위로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에서는 ‘너의 고통을 느낀다’는 말을 성립 불가능한 진술로 본다. 고통의 유일무이한 특징 때문이다. 바늘로 찔린 사람의 고통은 그의 찌푸린 표정으로 짐작할 뿐 내가 느끼는 고통은 아닌 것이다.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덩달아 내가 즐거운 행복감에 휩싸이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 유일무이한 고통의 경험이야말로 실존의 증거이고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사실이라 보았다.

미투 폭로의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느꼈던 다른 고통에 비추어 짐작하거나 공감할 수는 있지만, 당사자가 느꼈을 유일무이한 고통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집단의 행복으로 개인의 고통을 보상할 수는 없다. 집단의 행복이 개인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또 다른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뿐이다.

미투 운동에 따라붙는 이런저런 입방아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전지자 시점이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피해자들을 하나의 사건 내지 사물로 대상화하고 평가한다. 피해자의 말투, 인상, 과거 행적까지 동원하여 허구의 그림을 완성한다. 이 관점은 둘째, 음모론적 시각으로 이어진다. 피해자의 의도와 목적과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따져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사실처럼 확정한다. 가능성으로 따진다면야 우리는 모두 죽을 가능성의 존재다. 그러기 전에 당장의 현실에 대해 한번이라도 함께 눈물을 흘리는 편이 낫지 않은가.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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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풀뿌리 지방의회인 기초지방의회 선거구는 아직도 획정되지 않았다.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국회가 5일 본회의를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하지만, 본래 작년 12월13일까지 끝났어야 하는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은 늦어도 너무 늦어졌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을 기존대로 졸속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초지방의원 선거구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살당공락’의 결과를 초래하는 적폐 중의 적폐이다. 직접 지방행정을 8년간 운영해 본 이재명 시장이 오죽하면, “살인자도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고, 공자님도 공천 못 받으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하겠는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D-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수원 영통구 직녀광장에서 경기도선관위 직원들이 6·13 지방선거를 홍보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기초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흔히 중선거구제라고 불린다.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뽑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2인선거구가 70%를 차지하고, 3인선거구는 얼마 되지 않으며, 4인선거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1등, 2등이 당선되는 2인선거구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못지않은 문제를 낳는다. 2개의 거대정당이 1석씩 나눠 먹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남이나 호남에서는 그 지역의 정치를 지배하는 정당이 2석 모두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의 진입을 쉽게 한다는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결과가 초래된다.

거대 양당의 나눠 먹기가 가장 심한 곳은 서울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을 한꺼번에 투표하기 때문에 정당기호에 따라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1번, 2번 기호를 받는 정당의 후보로 공천만 받으면 2인선거구에서는 당선이 거의 보장된다. 그래서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은 2인선거구에서 아예 후보등록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지역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22명이나 나왔다. 비례대표 무투표 당선자 4명을 합치면 무려 26명의 구의원이 서울에서만 무투표당선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의 경우 총 17명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6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2인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1명씩만 공천하고, 다른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등록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무투표 당선이 아닌 지역이라도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 2인선거구에서는 2개의 거대정당 외에 다른 후보들이 나오더라도 현실적으로 당선되기 어렵다. 20%가 넘는 득표를 한 소수정당 후보, 무소속 청년후보도 낙선한다. 결국 1등, 2등은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2014년 서울시 구의원 선거에서 거대정당 소속이 아닌 당선자는 419명 중에서 4명에 불과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이 3명, 노동당 소속이 1명이었는데 모두가 2인선거구가 아닌 3인선거구였다.

그래서 올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인선거구를 줄이고, 4인선거구를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들을 제시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시의회, 선거관리위원회의 추천으로 구성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작년 11월 2인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4인선거구를 35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구의원 선거구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힘으로 막으라’는 얘기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 서울시당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개혁안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개혁안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안을 만들어도 서울시의회에서 최종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2인선거구에 매달리는 것은 정치개혁을 파탄으로 이끄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는 한국당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해서 선거법 개혁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한국당의 반(反)개혁적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한국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민주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다른 야당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2인선거구는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구조를 없애고, 거대정당 공천이 곧 당선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것은 공천비리나 공천을 둘러싼 비민주적인 행태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나눠 먹기 구조는 이번에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다.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3월 중순까지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민주당이 소탐대실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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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농촌 노동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식당, 공장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은 빈번하다. 혼인이주 여성의 성폭력이 동반된 가정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특히 이주여성들은 공장, 가정, 학교 등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성폭력 피해에 대처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부담 없이 자국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지원 기관의 설립과 경찰·검찰·법원의 사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이주여성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정책에 따르면 이주여성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두 사람이 진정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진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부 기관이 심사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심사를 처음 혼인신고 이후에도 매년 반복해야 한다.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면 출입국관리소에 같이 안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수년 동안 피해를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터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사장이 싫어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장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지만, 책임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비닐하우스가 이주여성 노동자의 숙소이며, 그마저 사장은 여성 노동자의 숙소를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 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20만~30만원씩 깎는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사장의 온갖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만든 제도가 이주여성을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지속해서 은폐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법과 제도도 사람을 누구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뒤늦게나마 그동안 감추어진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햇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게 한 위대하고 용감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어느 곳에서 눈물 흘리는 피부색 다른 이주여성에게도 울림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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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신용목(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시를 읽으니 밤은 하나의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라는, 꼭 같은 크기의 벽돌 한장 한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로 이해된다. 밤이라는 구조물에서 한장의 벽돌을 누군가 빼가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라는 벽돌이 정확한 크기로 그 결여를 메운다.

모든 대상은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보다 훨씬 입체적일지도 모른다. 가령, 신용목 시인이 시 ‘그림자 섬’에서 “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라고 썼을 때, 이 시구를 읽는 순간 ‘목소리’라는 것이 내 상상 속에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해변처럼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내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는 하얀 모래알들이 쌓인 모래사장이 들어 있고, 파도소리가 들어 있고, 외줄의 무덤덤한 수평선이 들어 있고, 출렁이는 푸른빛이 들어 있다.

우리도 지금 ‘봄’이라는 건물 속에 있다. 3월, 새싹, 약하게 부는 바람, 둥근 빗방울, 얇아진 옷, 흐르는 물, 노란 햇살, 새 학기 등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이룬 ‘봄’이라는 건물 속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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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전후해 부상한 사회적 가치란 ‘사익을 초월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복지, 안전, 봉사, 연대, 협력, 균형, 생태, 윤리, 인권, 공정 등의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의 구현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분야나 배제된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의 추구는 공공과 민간을 망라해 모든 부문의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자원봉사단체나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선도해 왔다. 또한 미국에서는 민간기업이나 부자들의 기부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활동공간이 제한적이고 민간기업의 공익재단 출연효과가 의문시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시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가치도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굿 거버넌스의 제도화와 직결된 문제이다. 더불어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정부, 공공기관, 비영리단체, 민간기업의 자기혁신도 요구된다. 각각의 행위자 모두가 공적 조직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토대로 역동적으로 헌신해야 공공마인드가 배양되기 때문이다.

이윤이 전제된 효율성 개념은 투입을 절감하는 경제성(economy), 투입과 산출의 비율인 능률성(efficiency), 산출이나 결과와 같은 목표달성도인 효과성(effectiveness) 등 세 가지 하위개념(3E)을 포괄한다. 반면에 서비스를 가정하는 공공성 개념에는 형평(equity), 공감(empathy), 생태(ecology) 등과 같은 대안적 가치(Another 3E)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참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특히 공기업이나 사회적기업은 태생적으로 수익과 봉사의 조화를 추구하는 혼합조직이라는 점에서 상반된 가치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민간기업도 사회적 책임성을 표방하며 재벌이라는 용어 속에 농축된 탐욕, 괴물, 유착, 독선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시켜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도 사회적 가치의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정부합동평가에 사회적 가치 지표인 일자리 창출, 저출산 대책, 생활안전 강화, 기초생활 보장, 성평등 실현, 소외계층 문화바우처 제공, 청소년 안전, 노후생활 보장, 사회적 차별 해소, 주민참여 활성화, 국가유공자 예우강화,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반영하였다. 또한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도 일자리 질 개선, 윤리경영, 사회적 약자 배려, 지역사회 공헌, 친환경 경영 등과 같은 지표들을 대거 포함했다.

하지만 정부가 행사하는 일회성 권유나 묵시적 압력만으로 사회적 가치가 고양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화된 환경과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응하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 헌신과 노력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마인드를 배양하는 범국가적 분위기 형성을 위해 관련 교육이나 토의가 활성화되기를 주문해 본다.

참고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실용적 학습대안으로는 국내외 우수사례의 발굴과 확산을 들 수 있다.

2016년 국회에 발의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서울특별시의 사회적기업 우대조례, 영국의 공공서비스 혁신, 일본의 지역창생 구현, 싱가포르의 중수도 활용, 공공서비스 공동생산, 장애인 고용창출, 공정무역 인증, 공적개발원조 확대 등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추구할 사회적 가치의 방향과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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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치판을 보면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먹자골목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선요리가 있다면서 손님끌기 경쟁을 벌이는 식당이나, 특색 있는 공약을 앞세워 유권자를 끌어모으려는 정당의 행태는 외견상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 사업의 성패가 단골 확보에 달려 있듯 얼마나 튼튼한 지지층을 갖췄느냐에 따라 정당 명운이 엇갈린다.

사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식당을 비유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고유의 맛을 지닌 식당이 손님을 끌듯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정당이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식당=정당’ 프레임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은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신생정당들의 등장이 신장개업과 비슷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신장개업 시각을 적용하면 신생정당들의 행태와 앞날을 분석하는 데, 꽤 유용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 주방장이 공동창업한 ‘바른미래식당’을 보자. 안철수 대표 주방장은 벌써 두 번째 창업이다. 컴퓨터업계에서 요식업계로 이직한 안 주방장은 몸담았던 더불어민주식당의 영업수지가 악화되자, 국민식당을 창업했다. 하지만 진보성향 호남 고객의 호응으로 초반 반짝했던 장사가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자 그는 국민식당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른미래식당을 창업했다.

그런데, 안철수 주방장의 이번 창업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나마 더불어민주식당과 국민식당은 젊은층과 진보성향 고객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메뉴가 엇비슷했다. 그러나 중도보수층을 겨냥한 바른미래식당은 이전에 몸담았던 식당들과 추구하는 맛이 다르고 메뉴도 다르다. 젊은층을 겨냥한 분식을 만들던 주방장이 갑자기 중장년층을 겨냥한 설렁탕과 곰탕을 끓인다니, 그 맛은 어떻겠는가. 아무리 유명한 주방장이라도 메뉴를 바꾸려면 수련이 필요한데, 안철수 주방장은 그마저도 생략했다. 

공동창업주인 유승민 주방장의 손맛도 의심스럽다. 바른식당 때부터 그의 음식은 일부 마니아층의 호응을 얻었을 뿐 대중적이진 않았다. 외골수로 알려진 그가 안철수 주방장의 동업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것은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경영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종업원들과 단골들이 하나둘 떠났고, 그대로라면 바른식당의 파산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주방장과 자신의 맛 궁합이 어떨지 따져볼 겨를은 미처 없었다. 과연 안 주방장이 맛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유 주방장은 알쏭달쏭할 것이다.

민주평화식당은 또 어떤가. 국민식당과 바른식당의 합병에 반대해 독자 창업한 이 식당은 진보가치·대북평화정책이라는 맛을 앞세운다. 하지만 고객을 잡아끌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대표 주방장이 없다. 대표 주방장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이 내는 맛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맛의 철학을 바꾸고 단골을 배신했다’며 안철수 주방장의 변심을 비난하지만, 이들도 떳떳하지 않다. 월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식당을 떠나 국민식당으로 옮겼고, 친정 음식이 맛없다며 비난에도 앞장섰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개업한 자유한국식당은 신장개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들은 매출 악화로 경영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나라식당→새누리식당→자유한국식당 등 이름을 바꿔달면서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간판만 바뀌었을 뿐 늘 메뉴는 같았다. 신메뉴 개발이나 맛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은 없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주방장이 끓였던 설렁탕에서 ‘국정농단’이라는 커다란 구더기가 나왔지만, 여태껏 이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홍준표 주방장이 들어선 후 음식은 더 맵고 짜졌다. 그가 주방에서 하는 막말들이 홀 바깥까지 들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노년층 단골마저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바른식당에서 이적한 김성태 보조 주방장은 ‘UAE’ 조미료를 넣었다가 설렁탕을 망친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가끔 주방에서 혼수상태가 되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주변에 호통을 친다는 소문이 돈다.

그럼에도 이들은 6월 지방선거에서 대박을 자신한다. 바른미래식당은 보수층 고객을 끌어와 자유한국식당을 문 닫게 하겠단다. 민주평화식당은 안철수 주방장 배신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자유한국식당 홍준표 주방장은 먹자골목을 장악한 더불어민주식당 음식에 질린 고객들이 자신의 음식을 찾게 돼 있다고 장담한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은 음식을 사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계란 푼 라면을 집에서 끓여 먹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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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성 전 대법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호인단에 합류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한 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3일 ‘전직 대법관의 이재용 상고심 사건 변호는 부적절하다’는 성명을 냈다.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는 법조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익활동에 전념하겠다고 한 차 전 대법관이 약속을 파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차 전 대법관은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했다.

차 전 대법관의 변호사 수임은 부적절하다. 법원의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는 등 국가적인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 총수를 변호하는 데 나선 것은 시민의 시각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 전 대법관의 변호사 선임은 변호사 개업 당시 그가 한 약속과도 어긋난다. 차 전 대법관은 2015년 3월 대한변협에 낸 변호사 개업 신고서가 반려되자 ‘상당 기간 공익법인 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법무법인 태평양 산하 공익법인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재벌 총수 변호에 나섰으니 대한변협의 신고서 반려에 반대하며 그를 옹호했던 김한규 당시 서울변회 회장이 비판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수준의 공익 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법관이었다니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이 부회장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그를 상고심에 투입한 이유는 뻔하다. 법리 논쟁을 위해서라는 것은 명분일 뿐 그의 대법원 내 연고를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1, 2심 때는 빠져 있다가 뒤늦게 변호인단에 들어간 것도 이를 의심할 만하다. 차 전 대법관과 함께 근무했던 현직 대법관이 5명이나 된다. 대법원의 한 부는 소속 대법관 4명 중 3명이 그와 함께 근무했다. 전원합의체로 가도 전관예우 논란은 피할 수 없다. 결국 그의 변호사 선임 자체가 시민들의 법 감정과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퇴임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차 전 대법관이 재벌 변호인단에 합류한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차 전 대법관과 태평양,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결정을 심각하게 재고해 보기를 권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직업 윤리와 정의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법으로 규제할 수밖에 없다. 전직 대법관들의 돈벌이 변호를 막는 입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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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북특사단이 5일 특별기편으로 북한에 파견된다고 청와대가 4일 밝혔다. 특사단은 1박2일간 머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북·미대화 여건 조성,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장관급 인사 2명이 함께 대북 특사로 파견되는 것은 전례없는 일로, 이는 문재인 정부가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청와대가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특별사절단 명단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번 특사의 우선 목표가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북·미관계 중재에 있는 만큼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대표를 맡는 것은 바람직하다. 서훈 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협상 전문가인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대면한 베테랑이어서 특사로 제격이다. 특사단은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전달하고 김 위원장의 견해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 들어 남북대화를 재개하면서 북·미대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북핵 문제에는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방남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했지만 비핵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조건’하에서만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했고, 백악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라는 가장 엄격한 비핵화 요건을 끄집어냈다. 북한이 대화 의지를 내비치자 오히려 문턱을 높이려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대북 불신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불신과 의구심을 돌파하고 북·미대화를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북한은 현재의 국면이 한반도 상황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분수령임을 인식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 특사단 방북이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과거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재확인하고 우선 핵·미사일 실험의 잠정중단 의지를 비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대북 강경 입장인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북·미가 진지한 협상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결코 이번 국면 전환의 계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실험 중단 의사 표명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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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커다란 운동의 물결에 휩싸여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전방위적으로 여성들의 고백과 지지, 동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여간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 답하면서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한국의 ‘미투’ 운동이 할리우드발 ‘#MeToo’ 운동의 후속, 아류 혹은 변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길게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진행된 동등권운동, 반식민지독립운동,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본격화된 진보여성운동 단체들의 형성과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 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2015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성폭력 필리버스터’,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여성운동의 오랜 역사를 먼저 봐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운동이 아니라, ‘관습’과 ‘문화’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던 차별구조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여성들의 역사 속에서 이번 ‘미투 운동’을 맥락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 의해 주도됐으되 세계를 흔든 미투 운동의 원조는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당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입니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부인에 분통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고 했던 할머니의 증언은 반세기 가까이 봉인되었던 끔찍한 성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하며 전 세계 시민들을 무지의 늪에서 일깨웠습니다. 덕분에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 또한 앞다퉈 세상에 나왔지요.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지배체제하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중층적 부정의와 싸우며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변화하던 할머니들의 모습 덕분에 우리 시민의식은 또 얼마나 많이 성장했던가요. 미국의 #MeToo 운동과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고백이 이번 미투 운동의 도화선 혹은 변곡점이 될 수는 있으되 원인이 아닌 이유입니다.

둘째, 남녀관계와 상관없는 ‘권력형’ 혹은 ‘갑질’ 성폭력의 문제일까요? 그저 “나쁜 손버릇” “자제하지 못한 성욕”, 개인의 “비도덕적 행위” “성추문” 혹은 특정 조직의 “특수문제”일까요? 남성지배사회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합니다.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26주년 기념 집회가 열리고 있다. 1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317차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성별(gender)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동등하되 이분법적으로 나뉜 남성성과 여성성, ‘적절히’ 배분된 역할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입니다. 남성(성)만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은 열등한 것, 부차적인 것, 성적인 것, 심지어 ‘낮은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합니다.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남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성희롱할 수 있는 이유이지요. 물론 그 남성과 여성은 성별 질서뿐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정체성, 장애여부 등 다양한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성별권력 관계에서 파생하지만, 다른 차별구조와 만나 더 심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합니다. ‘성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조직 및 집단 간 차이와 특수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폭로’는 왜 지속될까요? 왜 개별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을까요? 물론 처벌은커녕 지속적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지금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 심지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며 사회적 타살을 감행한 남성들에 대해 쌓였던 개별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가해자를 두둔하고 2차 가해를 일삼던 우리 모두에 대해, 구멍난 법과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일제히 공분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믿을 구석이라곤 유사한 경험을 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지밖에 없기에,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상호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너무 어려서” “뭔지 몰라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과 마주하고 재해석하고,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치유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서지현 검사의 말대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다독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이들의 상처도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생존자들처럼 말이지요.

자, 이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답할 차례입니다.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증거를 요구하지 마세요. 한두 사람, 한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케케묵은 진영논리에 갇힌 ‘물타기’ 대신 일생을 통해 축적된 스스로의 가해 경험부터 성찰해 주세요. 미세한 세포조직처럼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적 의식과 구조를 개혁하는 데 동참해 주세요. 우린 이미 사회변혁 운동으로서 ‘미투 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탔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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