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방에서 봄을 영접하려니 영 도리가 아닌 듯해서 남해안으로 내달렸다. 우리 국토의 울타리를 지키는 경계병인 양 건장한 체격의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거제 해금강에 바로 도착했다. 작년에 보았던 백리향의 향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은 것이다. 땅은 아직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년 여름의 땡볕을 간직한 바다는 가벼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철썩이고 있었다.

낚시꾼들이 반질반질 닦아놓은 산길로 접어드니 우람한 육박나무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각나무처럼 껍질이 인생의 수수께끼처럼 벗겨지는 나무이다. 문득 길이 끊기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눈을 부라리는 해안초소가 나타났다. 간밤의 경계근무에 곯아떨어졌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티가 역력한 수도꼭지가 철조망 곁에 서 있지 않겠는가.

나는 수도꼭지를 보면 틀고 싶어진다.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스프링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지하에서부터 올라와 마지막 한 걸음이 부족해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물. 딱딱하게 얼어붙은 이 계절의 추위를 풀어줄 해방군처럼 고요하고 엄숙하게 앉아 있는 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이 낡은 수도꼭지에는 봄을 재촉하는 그런 물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물이 나오기에는 수도꼭지가 너무 고집이 세게 보였다. 과연 물이 나올까? 수도꼭지는 왜 이제야 왔느냐며 원망이라도 하듯 처음에는 잘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더니 이내 차고 깨끗한 물을 시원하게 내뱉었다. 우렁차게 뛰어나온 물은 육상선수처럼 바다를 찾아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콸, 콸, 콸.

어쩌면 육박나무의 뿌리도 건드리고 나왔을 그 물맛을 굳이 표현해야 할까. 봄이 단지 나의 눈두덩이만 두드린 게 아니라 저 발뒤꿈치에까지 골고루 육박해갔다는 건 말할 수 있다. 수피가 얼룩덜룩 군복을 닮기도 한 육박나무. 올해 59번째로 들이닥친 나의 봄을 육박나무 아래에서 만끽했다. 육박나무. 녹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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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도 규제개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규제개혁이 핵심 현안으로 선택되는 이유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 제국에서도 규제개혁을 통해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 독과점 금지나 산업개방 수준의 규제개혁 약발은 잘 먹히지 않는다. 우리의 상황이 이미 그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규제개혁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규제개혁을 요구하는 주체 간의 합의와 협상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규제개혁이 일방적일 경우, ‘밀어붙이기식 일자리 창출 노력’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논리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많지만 고용주는 이윤 확보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정부와 기업의 욕구가 서로 타협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 기업에 부담이 아니라 이득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 기업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외국 규제개혁 정책과 제도에 대한 형식적 모방이 아닌 국내 상황에 맞는 규제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규제총량제, 포괄적 네거티브 시스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신산업이 갑자기 융성되는 것이 아님은 경험이 증명하는 바이다. 규제총량제, 포괄적 네가티브 시스템은 오래전에 도입되었지만 대상과 층위를 맞추기 어려워 한계에 봉착해 있다. 규제샌드박스는 이름이 새로울 뿐이지, 실제로는 벤처창업 활성화 정책과 다를 바 없으며,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외국의 제도를 도입할 경우, 제도의 형식에 현혹되지 말고 그 제도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 시스템과 평가 방식을 면밀히 관찰하여 시행하는 것이 맞다.

셋째, 대기업의 경우 입지 제한, 인건비, 법인세 등 각종 세금 등이 걸림돌이 되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경영이 안될 정도이다. 지금은 이런 모순적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성찰적이며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 특정 집단의 민원 해결을 규제개혁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전 정권에서 7성급 호텔 인허가, 푸드트럭 개조 등은 대표적 규제개혁 실패 사례이다. 정부는 특정 고객의 요구를 규제개혁으로 포장하는 일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다섯째, 혁신적 규제개혁, 창업자유 보장, 신산업 육성 등을 또다시 주창하는 것은 좋으나,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생명공학, 정보통신, 로봇산업,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활용 산업이 출범하였다. 지금부터의 규제개혁은 이런 산업이 크게 성공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하고, 그 결과로 일자리 창출이 최단기간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규제에는 당연히 그 존재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도 이제는 독일처럼, 기업의 규제순응비용을 덜어주는 식의 규제방식을 도입하되, 환경 및 안전 규제는 확실히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규제개혁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비트코인 사태에서 보듯이 경제규제 분야에 있어서도 안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흔히 경제분야는 경쟁의 자유 보장을 위한 규제완화를 개혁으로 인식하지만, 그곳에도 거래 안전의 확보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무작정 규제완화를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모처럼 시작한 규제개혁이 잘되기를 바란다.

<전영평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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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인원 202만여 명, 시위횟수 1500회, 구속자 4만7000여 명, 사망자 7500여 명. 우리 민족 최대(最大)·최고(最高)의 전 국민 항쟁, 3·1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이야기다.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신분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온 국민이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맞서 떨쳐 일어난 세계사에 드문 항쟁이었다.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의 출발점이었고 그 결과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무장독립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미독립선언서가 주창한 자주(朝鮮 獨立國), 자유(自由的 精神), 단결(最後의 一人, 最後의 一刻)의 기치는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국민항쟁의 사상적 저수지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또한, 아시아 여러 식민지 약소국의 민족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5·4운동, 베트남·필리핀 독립운동을 추동하였고, 민족자결, 반제국주의, 비폭력 정신은 아시아 반제국주의 운동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3·1독립만세운동이 갖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다. 외세의 극복만을 주장한 운동이 아니었다. 3·1독립만세운동 100년은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과 추구할 가치를 담은 설계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뿐만 아니라 왕정체제를 민주공화정으로 바꿔 ‘백성’이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봉건시대를 마감하고 근대의 시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인류평등과 공존, 세계평화를 주창해 세계시민으로서 추구할 가치도 분명히 했다. 이렇듯 3·1독립만세운동은 역사교과서 일부를 장식하는 유산이 아니라 우리가 가꾸어 후대에게 이어줄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 전문은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3·1독립만세운동에는 33인으로 대표되는 민족지도자, 여러 이유로 독립선언서에 늦게 서명한 사람들, 그리고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진 민초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 미국 등에 거주하던 교포들, 외국인들, 그리고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선교사들의 수고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바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다. 박사는 당시 탑골공원과 시청 앞에서 벌어진 3·1독립만세운동 현장과 제암리 학살사건의 처참한 상황을 사진으로 담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린 분이다. 그 후에도 일제의 부당한 처사와 한국인들의 독립 염원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3·1독립만세운동의 기록자와 홍보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그분을 한국사회는 민족대표 33인에 이어 34번째 민족대표라 부른다.

영국 태생의 캐나다 수의학자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의전 교수로 처음 내한하여 의학교육과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1920년 타의에 의해 고국 캐나다로 돌아갔다. 캐나다에서 세계적인 교육자와 수의학자로 명성을 얻던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정부수립 10주년을 맞이해 국빈으로 한국에 다시 왔다. 다시 방한한 박사는 서울대 등에서 수의학을 가르치며 당시 정치와 기업과 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정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수많은 고학생과 과부,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나 역시 중학교에 들어갈 13살의 나이에 학비가 없어 진학을 포기할 시점에 스코필드 박사를 만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인생의 멘토링까지 받았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 지배를 받던 때에도, 그리고 해방과 전쟁을 겪고 빠른 경제성장을 시작하던 1960년대에도 한국사회를 정의와 남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3·1정신’을 강조했다. 인류애, 선한 의지를 가진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 정의감의 확립,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불의와 부패에 대한 투쟁 등은 3·1독립만세운동을 겪으면서 스코필드 박사가 다듬어온 소중한 가치였다. 스코필드 박사가 추구한 독립과 자유, 희생과 봉사의 3·1정신은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시민사회가 나름의 준비를 하는 듯하다. 이 기회에 한 가지 꼭 요청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소천하실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3·1정신을 가르치고 계승할 수 있는 (가칭) 3·1회관을 짓자고 했다. 1919년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외친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한국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국가 차원에서 3·1정신을 가르치고 계승할 회관이나 센터가 없다.

역사와 정의가 사라진 시대, 불의와 억지가 가짜 뉴스와 결탁해버린 시대에 스코필드 박사가 그렇게 강조한 3·1정신을 담아내고 전승할 3·1회관이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 건립되기를 소망한다. 역사를 기억해야 미래가 있다.

특히, 3·1독립만세운동은 대한민국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발전(自由發展)’을 위해 가꿔나가야 할 우리의 정신적 뿌리다. 하나로 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나섰던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꼭 필요하다. 3·1회관 건립은 국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100년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있다. 3·1회관을 건립하는 일에 국회,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동참했으면 한다.

반세기 전 스코필드 박사가 남긴 말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는 가능한 한 탑골공원 가까운 곳에 3·1회관을 건립해야 한다. 풍요한 사회나 복지국가에 앞서 정의의 사회부터 이룩해야 한다. 이것만이 헛되이 안전만을 찾는 현 세계에서 힘을 가져다주는 길이다.”(동아일보 1969·3·1)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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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던 소년원에서는 원생을 대상으로 몇 차례 ‘감수성 훈련’을 실시했다. 며칠 동안 훈련에 참여한 원생들은 다시 태어난 듯 부드러운 눈빛과 얼굴, 자연스럽고 조신한 언행으로 모범적으로 소년원 생활을 했다.

‘감수성 훈련’은 참여자들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자유토론을 통해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인식을 높여 대인관계를 개선하는 훈련이다. 대상 그룹에 따라 인성 계발, 양성평등, 인권존중·조직발전 등 분야별 교육계획에 의해 대상자들의 태도, 가치관, 신념 등의 각종 변화를 시도하면서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의 입장과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요즘 알량한 권력을 내세워 약자 위에 군림한 ‘괴물’들의 성추문과 성희롱, 성추행과 성폭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다. 우리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폐쇄성, 도덕성 결핍, 윤리의식 부족,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등 사회문제는 빈곤한 민주주의의 증거이다. 집단지성의 힘과 거시적 접근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 교육에 고된 행군과 극기훈련, 기 수련 등 편향에서 벗어나 ‘양성평등 감수성 훈련’을 적극 도입하자. 초·중·고 교육과정에 성평등, 성 인권 교육을 생애주기에 걸친 필수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자. 법정의무에 따라 직장마다 하고 있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깊이 있게 손질하여 교육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훈련, 하나의 대안으로 ‘감수성 훈련’을 권장한다.

<노청한 |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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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옛말이 붕우(朋友)입니다. 여기서 ‘붕’은 붕당(朋黨)처럼 뜻[志]으로 함께하는 벗을 말하고, ‘우’는 우정(友情)처럼 마음[情]으로 사귄 벗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붕우가 들어가는 유명한 말이 붕우유신(朋友有信)입니다. 한뜻으로 모였건 마음으로 사귀었건, 벗이란 모름지기 신의(信義)로 맺어져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나 늘 그렇듯,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씁쓸한 일을 안 당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마음인 줄 알았는데 딴마음이었다거나, 정을 나눈다 생각했는데 정만 챙겨 갔다거나, 그쪽 필요할 때는 알은척이고 이쪽 필요할 때는 본척만척이라든가.

‘물이 아니면 건너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믿음과 의리가 바탕이 되어야지 잇속을 따져 사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필요에 따라 물은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간다’는 ‘건너다’를 사람 사이에 쓰면 곤란합니다. 그건 사람을 오로지 인맥의 징검다리로만 이용한다는 말이니까요.

어제 저버린 사람, 그 관계망의 징검돌을 또다시 디뎌야 할 날이 언제고 분명 옵니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끊긴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오도카니 볼멘소리를 하겠지요. 하지만 그는 끝내 모를 겁니다. 디디라 내어준 마음을 짓밟고 지나갔단 사실을. 그리고 필경 알게 될 겁니다. 마음의 징검돌이 한 번은 짓밟힐 수 있어도 두 번을 디디게는 안 해줄 거란 사실을. 믿을 신(信)에서 사람 인(人)을 빼고 나면 말[言]뿐입니다. 깊은 정 없이 이해득실 따라 딴말로 사람 사이 건너다니는 그는 붕(朋)도 우(友)도 아닙니다. 언제든 휴대폰에서 지워버리고 또 지워질 수 있는 오다가다 ‘아는 친구’일 뿐입니다. 그가 어쩌면 나일지도 모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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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결하던 무렵, 하사비스가 앞으로는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실제로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인공지능 분야의 난제다. 알파고를 비롯한 최신 인공지능은 뇌 속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공신경망은 새로운 작업(예: 바둑)을 배우는 동안 이전에 배웠던 작업(예: 체스)을 곧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 망각하는 인공신경망

인공신경망이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동안 이전에 배운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인공신경망의 학습이 단위들 간의 연결 세기를 바꿈으로써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공신경망은 신경세포를 모방한 단위들과 이 단위들 간의 연결로 구성된다. 단위들의 연결 세기가 변하면 같은 입력을 받아도 다른 출력이 나오므로, 연결 세기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인공신경망 학습의 핵심이 된다.

인공신경망 속의 두 단위 A와 B 사이의 연결을 생각해 보자. A와 B 사이의 연결 세기를 0.3이라는 임의의 값으로 두고 인공신경망에 바둑을 가르치면, 인공신경망이 바둑에 숙달되는 동안 연결 세기가 1.8 등 다른 값으로 변할 수 있다. 

이제 이 인공신경망에 체스를 가르친다고 해 보자. 바둑과 다른 규칙을 가지는 체스를 잘하려면 같은 인공신경망도 바둑을 둘 때와 다르게 동작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공신경망의 연결 세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만일 A와 B 사이의 연결 세기가 1.1이 되는 것이 체스를 잘 두는 데 더 유리하다면, 이 인공신경망은 체스를 배운 뒤에 바둑은 이전보다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상황이 인공신경망의 모든 연결 세기에 대해 벌어진다. 이래서 바둑만 잘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쉽지만, 바둑도 잘 두고, 체스도 잘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어렵다.

■ 기억의 전달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신경망을 크게 만들어서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연결이 체스를 두는 데 필요한 연결과는 겹치지 않게 하는 방법, 바둑을 잘 두면서 체스도 잘 둘 수 있는 적절한 연결 세기를 찾는 방법 등이 고안되어 왔다. 그중에 신한울 등이 작년에 출간한 ‘순차 학습 시 발생하는 기존 습득 과제 망각에 관한 논문’이 시선을 끌었다.

이 논문에서는 새로운 작업(예: 거리 사진 속의 숫자 읽기)과 이전의 작업(예: 사람이 손으로 쓴 숫자 읽기)을 함께 배우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 이전에 배운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학자’ 부분을 모델에 추가했다.

‘이전 학자’는 이전 작업에 관련된 입력 데이터(예: 사람이 손으로 쓴 숫자)를 가짜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음 학자’가 새로운 작업(예: 거리 사진 속의 숫자 읽기)을 배우는 틈틈이 만들어낸 가짜 입력을 제시한다. ‘다음 학자’가 가짜 입력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 ‘이전 학자’는 이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다음 학자’에게 이전에 배운 작업을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학자’는 새로운 작업을 배우는 틈틈이 이전에 배웠던 작업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이전에 배웠던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전에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해 둘 필요가 없어진다. 이전에 경험한 데이터를 다시 입력받는 게 아니라,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짜 데이터만 입력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 기억을 넘겨받은 현재의 나

과거의 경험을 가진 ‘이전 학자’와 현재를 경험하면서 과거의 기억만 넘겨받는 ‘다음 학자’로 분리하는 이 방식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공신경망에서 단위들 간의 연결 세기에 이전에 배운 내용이 저장되듯, 우리의 기억도 뇌 속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인 시냅스의 세기와 깊이 관련된다. 기억이 유지되려면, 시냅스 세기가 유지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냅스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종류와 양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수시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시냅스 세기를 유지하려면 시냅스에 있던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기억해 두었다가 단백질이 교체될 때 딱 이전에 있던 양만큼만 추가해야 할 텐데, 이 정보는 어디에 저장될까? 단백질이 교체되면서 아무래도 시냅스가 변해갈 텐데 시냅스의 세기는(혹은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달라질까? 

이 질문들은 아직 활발히 연구 중인 난제다. 하지만 이 난제들로부터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이전 경험에 대한 기억만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넘어갈 뿐, 뇌를 구성하는 물질(기억하는 주체)은 계속 달라진다는 점이다. 마치 앞서 설명한 인공지능에서 ‘이전 학자’에서 ‘다음 학자’로 기억만이 넘겨지는 것처럼. 그리고 기억은 알게 모르게 변해가며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전 학자’가 만들어낸 가짜 데이터로 과거를 간접 경험하면서, 시냅스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교체되면서,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변해간다.

이렇게 과거의 실제가 아닌 기억만을 넘겨받기 때문에, 기억은 현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역사적 실제에 대한 기억은 중요한 모양이다. 지난 목요일은 3·1절이었다. 인구의 10%를 넘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던 만세운동 덕분에 우리는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고, 식민지이던 와중에도 근현대 정부를 실험하고 연습할 수 있었다.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거의 전 세계가 식민지이던 시절에, 그 많던 식민지들 중에 임시정부를 설립한 나라는 드물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기억은 중요하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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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경제학 우스개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것이 있다. 수학자, 회계사, 경제학자를 불러 놓고 채용시험을 보게 되었다. 

먼저 수학자에게 물었다. “2 더하기 2는 얼마입니까?” “4입니다.” “정말 4가 맞습니까?” “당연히 4입니다.” 수학자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음으로 회계사를 불러서 물었더니 역시 4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를 불러서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 경제학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면접실의 문을 닫아걸고, 창문을 블라인드로 가리고 면접관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귓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몇이기를 바라십니까?”

물론 이 우스개는 경제학자들이 미리 만들어진 결론을 통계 수치를 이용해서 합리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통계는 어떤 일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속이는 데도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부모의 80%가 학생부종합전형을 반대하는데 교사들은 80%가 찬성한다”고 발언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 발언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국민의당 송기석 전 의원이 지난해 6월19일부터 21일까지 16세부터 69세 이하의 성인 남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다. 이 통계자료를 근거로 송 전 의원은 대입제도 개선방향에 교육전문가, 교원, 대학 측의 요구만 반영할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일반 국민의 인식과 요구를 더욱 중요하게 반영하여 수능 정시전형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 조사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조사 대상이 16세에서 69세까지의 광범위한 연령대의 성인 남녀들이었기 때문에 학종 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경험이나 이해 없이 단순한 인상비평 차원의 답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결국 수능 확대라는 결론을 위해서 교육전문가들이자 책임자들인 교사들의 80% 찬성 의견을 무시하고 교육정책을 여론에 의존하자는 포퓰리즘 주장을 한 것이었다. 

중병에 걸린 환자를 의사의 판단이 아닌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치료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다른 통계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교육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대입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항목으로 응답자의 26.7%가 ‘특기·적성’을 꼽았다. 다음으로 인성·봉사활동(25.9%), 수능 성적(24.4%), 고교 내신 성적(13.0%), 글쓰기·논술(4.3%), 면접(2.5%), 동아리활동 등 교내활동(2.5%), 경시대회 등 수상실적(0.5%), 기타(0.5%) 순이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선호한 입시 평가요소 1·2위인 적성과 인성 부분은 학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평가요소이기 때문에 앞서 조 교육감이 언급했던 국민의 80%가 반대했다는 것은 결국 학종이라는 제도를 잘 모르고 응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 교육감이 교사나 교육전문가들의 논의가 아닌 일반 여론조사에 기반을 둬서 입시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통계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조만간 있을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에 기대어 선거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교육대통령이라고도 하는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을 다루는 자리다. 교육을 저잣거리에 내놓고 흥정해 팔지는 않기를 바란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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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순간. D-14일. 대략 두 주 정도 남았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대표하여 헌법개정안을 발의한다. 온라인에서 의견수렴이 한창이다.

국민헌법 홈페이지엔 28가지 개헌의제가 소개되어 있다. 찬반투표와 댓글달기가 가능하다. 약 25만명의 국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개헌의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찬성표와 댓글을 간단한 셈법으로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국회에서 주로 언급되던 권력구조개편도, 정부안으로 유력해 보이는 지방분권도, 시민사회가 중시하는 생명권 등 기본권도 아니었다. 상단 맨 위쪽을 차지한 개헌의제는 ‘검사로 한정된 영장 신청 주체를 법률로 완화하자’는 내용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촛불민심이 이전에 논의되고 있던 한국 사회의 개혁과제를 새롭게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낡은 체제를 바꾸는 데 무엇이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지 재확인시켜준 결과인지도 모른다.

2016년 말 2017년 초의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밝혔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만 했을까. 만약 검찰이 국정농단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의 심판대에 올렸다면, 촛불이 그렇게 타 올랐을까. 물론 국민헌법 홈페이지의 개헌의제에 대한 관심 정도가 국민전체의 여론으로 대표될 순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필요도 없다. 촛불도 처음에 그랬다. 수천명에서 수만명으로, 수만명이 수십만명이 되고 수백만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기소독점 완화에 대한 세 가지 논거가 추가될 수 있다. 첫째, 기소독점이 가지는 한계다. 현행헌법은 체포·압수·수색을 위한 영장의 신청을 검사만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기소는 법원의 재판절차 개시를 의미한다. 바꿔 말해,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수 없다. 예컨대 최고 권력자의 부정행위도, 토호와 결탁한 지역의 이권개입도, 각종 사회경제적 차별도 기소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둘째, 검찰에 대한 불신이다. 검찰의 권력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률에서 영장신청 주체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검찰의 권력화는 스스로를 정치권력과 경제금권에 노출시켜 허약체질로 만든다. 셋째, 독점 그 자체에 대한 보편적 거부감이다. 이 거부감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독점은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성장을 저해한다. 또 독점은 사회민주적 측면에서도 경쟁이 필요한 주체의 동등한 기회를 박탈한다. 어떤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면, 그는 경제적 자유도 평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경제적 자유가 불평등하다면, 법 앞에 평등하기 어렵다. 독점 앞에 자유와 평등은 동병상련이고 무력화된다. 기소독점뿐만이 아니다. 기본권, 권력구조, 지방분권 등 대부분의 개헌의제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분산시켜 인간의 이질성을 고려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한편에선 현행헌법 그대로 검사의 기소독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영장신청 주체가 확대되면 인권침해가 가중될 우려가 있고, 영장신청 주체를 제한하는 것은 검찰 권한의 보장이 아니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므로 현행헌법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소독점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기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미 심심찮게 봐왔다. 그 때문에 기소독점이 기본권을 보장하기보다 기본권의 중심이 되는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생명권, 사회권, 환경권, 정보권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개헌여론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도, 국회도, 시민사회도 아닌 국민이 원하는 개헌. 다 내주더라도 하나의 개헌안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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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청와대 회동에 참석하기로 했다. 홍 대표는 처음엔 비(非)교섭단체 대표 배제 등의 조건을 걸었고, 청와대가 여기에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제1야당 대표가 불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은 바 있다. 홍 대표는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다자 회동이지만 가서 들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회동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 간 첫 만남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여야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안심할 수 있다. 홍 대표의 대승적 결정을 환영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 당직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은 1박2일 일정으로 5일 북한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향후 북핵 국면이 어디로 향할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여야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때부터 대립해왔고, 그 결과 남남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안보에 여야가 없다는 말도 단지 수사(修辭·레토릭)에 불과할 뿐 골은 더 깊게 파인 느낌이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비핵화 전제 없는 대북특사는 북핵 개발 축하 사절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안보위기 해법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정치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어렵게 조성된 남북대화 분위기를 이어가고 북·미대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 7일 청와대 회동에선 북한에서 막 돌아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특사 방북 결과를 포함해 한반도 외교안보 상황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치권이 외교안보의 큰 방향만 공감한다 하더라도 남남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앞으로 북한과 미국을 비핵화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힘이 될 수 있다.

이제 여야는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안보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국당은 안보에 관해서만이라도 위기를 극복하고 시민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과 여권은 더욱 진정성 있게 야당에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회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안보 협치, 더 나아가 협치 제도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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