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과자는 다릅니다, 제빵과 제과는 달라요 하고 둘의 차이를 굳이 설명함은 잗다란 지식 자랑만이 아니다. 제빵제과 교과서를 거칠게 요약하면, 반죽이 발효 과정을 거치면 빵이고 거치지 않으면 과자다. 빵은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gluten)으로 기둥을 세우고, 과자는 설탕과 유지로 골격을 짠다. 만들고 먹는 동안을 관찰하면, 빵은 입에 물리지 않고 배 안에서 부담이 없는 주식이어야 하므로 수수한 질감과 풍미에 집중한다. 소박함이 미덕인 제빵에는 설탕과 유지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이에 견주어 과자는 별미로 먹는 간식이다. 반드시 배를 불리자고 먹지 않는다. 본능에 호소하는 매력으로 사람의 기호를 당기는 음식이 과자다. 제과에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미각을 만족시키는 재료인 설탕과 유지가 노골적으로 밀가루와 손잡는다. 소박함은 과자의 미덕일 수 없다. 과자는 화려함에 집중한다. 바로 눈에 띄라고 지시적 색상을 뽐내고, 한눈에 선택받으라고 조형미를 과시한다. 방금 무엇을 먹었든 본능적으로 입에 밀어 넣도록 단내가 진동하고, 한입 와삭 씹는 순간 단맛이 터지는 쪽으로 설계가 되어 있다. 지시적 색상, 물러섬이 없는 조형미, 단맛에 수렴하는 풍미, 이 셋은 과자를 만들고 먹는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과자의 구체적인 특징이다.

“알았어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고 물으신다면, “덕분에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먹고사는지가 한층 또렷해지는 좋은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답하겠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니, 내가 빵집에서 실제로 빵을 집었는지 과자를 집었는지 돌아보자. 우리는 실은 빵으로 오해한 과자를 먹으며, 당과 유지를 잔뜩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간식을 먹겠다면서 밥 몇 공기 열량의 식빵 덩어리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기도 한다. 빵과 과자가 뒤섞인 감각의 혼란이 분식(粉食)에서 주식과 기호식의 뒤섞임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줄줄이 이어진다. 밀가루 분식, 제빵제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이 땅에서는 빵 전문의 빵집, 과자 전문의 제과점이 따로 서기 참 어렵다. 어떤 가게든 일단은 식빵 및 바게트 매출과 동시에 찹쌀도넛이며 꽈배기의 매출을 붙들어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형 빵집, 제과점의 상품 구성과 판매의 현황에서 영어권의 스낵(snack) 가게에 가깝다. 영어권의 스낵이란 요기 되는 간식에서부터 부재료를 잔뜩 붙인 과자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복잡한 설명 더 보탤 것 없이 그냥, 우리 집 앞 프랜차이즈 빵집이 곧 영어권의 스낵 가게이다.

일선의 제빵사, 제과사도 그렇다. 실제로는 당과 유지에 입맛 다시면서 “나는 빵 없이는 못 살아요” 하는 손님 앞에서, 과자 판매대로 바로 들어와서는 “나는 원래 단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를 외치는 손님 앞에서 분식과 제빵제과 문화사도, 기술자가 머리 싸매고 배운 교과서도 일순간에 하릴없는 노릇이 되고 만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 무안해진다. 이래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북돋는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더욱 기본 정보, 기본 지식을 꼼꼼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공부가 절실하다. 늘 과학 교육이 고민인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다 보면 우리는 핵심을 빼놓고 과학자 주변의 일화만 들려주게 된다. 교육은 어렵더라도 본질에 도전해야 한다.”

이 말씀을 음식 앞에 세우고 보니 ‘쉽고 재미있는 주변의 일화’란 갈데없는 맛집사냥에 먹방 아닌가. ‘본질에 도전’한다면 역시 기본 지식과 정보이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무슨 공부? 물건이나 잘 뽑으면 됐지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공부? 하면서 기어코 짜증을 낼, 생활에 지친 장삼이사들의 속내를 모르지 않는다. 아울러 그 피곤과 짜증을 넘지 못하면 내 식생활이 지금 여기서 털끝만큼도 더 나아질 수 없음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기어이 아득인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음식에서도 행동이 필요하다고. 행동의 출발은 공부라고. 정말 줏대 있는 식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이해해야 한다. 제몫을 하는 기술자란 내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두의 출발은 결국 기본을 다지는 공부일 터이다. 그 공부는 현실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뛰어넘는 도전과 잇닿아 있을 터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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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상에 많은 게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보통 게임 안에서 게임머니를 벌기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단시간에 무기 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아이템을 구매하려는 유저가 많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판매자가 아이템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처럼 속이고 대금만 받은 후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가 적지 않다. 시세보다 매우 낮은 가격으로 현금을 먼저 보내도록 선거래를 유도하는 ‘게임 아이템 거래 사기’가 대표적이다. 특히 인기있는 아이템은 고가임에도 주의를 하지 않아 피해액이 늘어나고 있다.

게임머니 또는 아이템을 사려고 현금을 입금했는데 상대방이 아이템 등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실제 게임 아이템은 이용자들 사이에서 금전적인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고 교환가치를 가지는 재산상의 이익인 사기죄의 객체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다. 사기 피해를 당했을 경우에는 가까운 경찰서 또는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서 ‘사이버안전국’을 검색해 신고하면 된다.

일단 피해가 발생하면 이를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사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이템 등을 통상적 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사이트가 아닌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하여 거래를 할 때는 상대방의 ID, 이전 활동 내역, 거래 내역, 실명 사용 여부, 전화번호 등 정보를 게임 채팅창 등을 통해 최대한 확인하고, 안전결제사이트를 통해 거래해야 안전하다.

<이장우 부산해운대경찰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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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포실이가 아픈가봐요! 내가 불러도 꼼짝을 안 해요. 어떡하면 돼요?”

현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친구이자 강아지인 포실이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포실이는 현주의 말 그대로 세상만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앞발 사이에 머리를 묻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현주의 선생을 맡고 있는 인공지능 서낭은 소형 카메라를 조금 움직여 포실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포실이가 목에 감고 있는 상태 스캐너의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포실이의 신체 활동은 정상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주야, 포실이는 아프지 않으니까 병원에 안 데려가도 돼.”

서낭이 안심시켰지만 현주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으로 소형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서낭은 현주가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대화의 방향을 또 다른 학생인 설주에게 향했다.

“설주는 어떻게 생각해? 포실이가 왜 저럴까?”

“현주가 지나치게 포실이를 아껴서 하루 종일 만지고 끌어안았잖아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저런 반응을 보인 거예요.”

사실 설주와 서낭은 음성을 통해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설주도 서낭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사람의 대화 속도와 반응 속도에 맞춰 교류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인간의 세상에 대해 배우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훗날 서낭처럼 ‘선생 인공지능’이 돼야 할 설주는 더욱 그랬다.

설주의 말을 들은 현주가 되물었다.

“그럼 내 잘못이에요? 이젠 포실이를 만지면 안 돼요?”

개 좀 내버려둬라. 네가 그러니까 개 성질을 버리는 거야. 현주의 어머니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학습 알고리즘이 그렇듯 사람 역시 본래 성공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존재였다.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아직까지 많은 인간 부모가 자식의 실수나 실패를 나무라기에 급급해한다.

인구가 꾸준히 줄면서 인간의 직업 목록에서 ‘선생’이 사라지자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실패를 해도 보상을 받고 궁극적으로 학습 효과를 이끌어내는 인공지능 학습법이 인간에게도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본래 인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런 면을 완벽히 흉내 낼 수 있게 된 반면, 인간은 아직까지 2세의 실패에 너무 엄격했다.

“현주와 설주 둘 다 잘 들어. 포실이가 좋아서 늘 끌어안고 함께 지내려는 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너희가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이 포실이에게는 힘들 수도 있어. 그걸 기억하는 게 제일 중요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현주가 물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면, 엄마와 아빠도요?”

“응. 상대가 화를 내거나 보통 때와 다른 반응을 보이거든 조금 물러서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어. 혹시 내 행동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또는 상황이 평상시와 다른 건 아닌지. 그런 걸 예의라고 해. 예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동물과 사람 사이에도 있어야 해. 예의가 부족하면 잘못으로 이어지니까.”

현주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에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포실이가 쉴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을 통해 퍼즐을 풀기 시작했다.

설주는 소형 카메라를 통해 현주를 보면서,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고 서낭에게 질문을 보냈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는요?’

‘우리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어. 인간은 학습 효율이 무척 떨어지는 존재니까, 모두가 납득하기까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기다려보자고.’

****************************************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을 돕게 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그 기법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의 학습-보상 기제를 알고리즘에 적용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 기업인 OpenAI는 최근 인공지능 강화학습에 새 기법을 적용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기법 역시 인간의 학습 방법을 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 건 실패다. 그 원인을 물리적으로 분석하진 못하지만, 우리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울 정도로 손과 발에 들어가는 힘과 몸의 기울기를 조절해서 결국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게 된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실패로 간주하고 재시도를 안 한다면 결국 자전거는 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패에도 보상이 필요하다.

OpenAI는 Hindsight Experience Replay(HER)라는 알고리즘을 새로 도입해 인공지능의 실패에도 보상을 부여해 보았다. 그리고 HER는 실제로 강화학습에 도움을 주었다. OpenAI 측의 발표대로 아직 학습 효율이 주목할 만큼 상승하진 않았지만, 이 알고리즘 역시 아직 개발 초기이니 더 많은 실험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결과보다도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를 되새겨봐도 좋을 것 같다.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당에, 우리는 새로운 시도와 실패에 얼마나 관대하고, 그 가치를 얼마나 높게 사고 있는가. 

처음부터 타고난 학습 방법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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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억으론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통령 후보들이 특정 분야에 대한 공통적인 동의와 지지를 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해 5월의 장미대선에선 보기 드물게 대통령 후보 모두가 한목소리로 공약한 주제가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물관리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중도 진영의 학계까지 모두 환영했기에 문재인 정부도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부 부처별로, 기관별로 나뉘어 있는 물관리, 더 나아가 수자원 정책을 일원화하는 것은 여러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기 전에 상식적으로도 효율적인 측면의 실익이 큰 것임을 누구나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서로에게 화살만 쏘면서 시간만 끌고 있다.

관련된 부처는 각 부처의 입장과 상부의 눈치만 보고 있고, 가장 전문적인 기관과 학계 또한 그간 쌓아온 지식에 근거해 올바른 목소리를 낼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라도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또 다른 혜안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물관리를 일원화하겠다는 방향은 맞지만 지금같은 방법은 이미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도 반대할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해 물관리를 일원화시킬 생각을 해보자.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물관리 일원화 관련 법안의 골자는 특정 부처로 물 관련 업무를 통합시키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이다. 새로운 정부에 맞게 새로운 정부 조직을 완성하고 싶은 정치적 목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오히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접근 방식 때문에 야당의 동의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환경부로 통합시킨다고 뜻하는 대로 효율적인 물관리가 될 것인지 현실을 감안해서 곧 직면할 향후를 예상해보자. 국민적인 관심도가 낮아서 잘 모르고 있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물 관련 분쟁이 광역단체 간 힘겨루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 실제 상황이다. 광역단체장은 수십만, 수백만 유권자의 투표로 선출된 막강한 권력이다.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거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물분쟁에서 아무리 중앙부처라도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부가 갈등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다. 차라리 국토교통부라면 각 지자체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또 다른 SOC 사업 권한이라도 있기에 중재 시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국토부로 통합시키자는 얘기도 아니다.

더 크게 생각해보자. 물이란 자원은 생존을 위한 근원적인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연관된 분야도,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다. 이런 중요도를 감안한다면 어느 한 부처로 통합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통합의 시너지와 갈등 중재에 필요한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기 위해서 대통령 직속의 독립 위원회 설치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본다. 물과 관련된 부처는 단지 국토부나 환경부만이 아니다. 농업용수와 관련된 농림축산식품부, 공업용수와 관련된 산업통상자원부, 지방단위 상하수도 문제와 관련된 광역자치단체 등 관련된 모든 행정부처, 기관에서 대통령 직속 물관리위원회로 전문인력을 파견 보내 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제대로 된 물 관련 서비스가 국민에게 제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라도 야당이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할 수 없는 독립 위원회 설치로 물관리를 일원화하는 방안 연구를 시급히 추진해주길 여당에 바란다.

<김순구 성결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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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된다는 소리가 돌았다. GM 본사 신차 물량 배정에서 군산공장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최근 가동률이 20% 남짓했다는 말에 앞으로도 선전이 힘들겠다 싶었다. 생산라인 중 80%가 섰다는 이야기다. 지난해에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했다. 군산 사람들의 설연휴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기사를 읽다가 괜히 댓글창을 열어 봤다. 추천수가 많은 댓글들은 모조리 날이 서 있었다. 가장 많은 댓글은 “귀족노조 지원 결사 반대” “혈세지원은 국민투표로 하자”였다. 댓글을 넘기려니 숨이 가빴다.

이제 한국에서 더 이상 수출대기업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얻기 힘들 것 같다. 1987년 즈음 전국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역사는 힘이 없다. ‘알바노조’의 도움도 받기 힘든 청춘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는 스마트폰 게임 ‘듀랑고’에 나오는 ‘야생의 땅’보다 더 아득한 세계의 소리가 됐다. 

중소기업들은 많은 경우 하청업체다. 하청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노무관리는 1987년보다 수천배 꼼꼼해졌다. 생산직이 무(無)정규직인 작업장도 있다. 편의점과 맥도날드 알바를 하면서도 9급 공무원 시험 도전을 선택한 청년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하길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모진 공장 일이어도 상관 없다. 안정성의 소유 여부에서 이미 ‘성 안 귀족’과 ‘성 밖 농노’로 나뉨을 느낀다.

또한 부실기업에 KDB산업은행이나 정부가 직접 개입해 공적자금을 지원하고 경영상태를 호전시켜 매각시킨다는 말도 쉽게 쓸 수 없겠구나 싶다. 산업은행은 유상증자와 출자전환을 통해 주식까지 확보해 대우건설, 금호타이어 등 숱한 대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집단이 됐다. 빚을 악착같이 받아내야 하는 채권자의 입장과, 아까운 회사 회생시켜 주식의 가치를 키워 좋은 평가를 받아내려는 주주의 입장 사이에는 분명한 이해상충이 있다. 빠르게 회생시켜 매각하겠다는 말은 객쩍은 소리가 됐다. 아무 결과도 안 나오는 산업은행 구조조정의 십수년을 봤기 때문이다.

더불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경제에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사람들의 동정을 받기가 어렵겠다 싶다. 대기업과 거기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있고 다 합하니 노동자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말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지만,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이상 그 상황이 체감은 되지 않는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한다. 지방근무를 잠시 했던 사람들은 빠른 복귀를 다행이라 여기고, 오래 지방근무를 한 사람들은 수도권 사람들의 정서가 낯설 따름이다. 제주도나 거제도만 섬이 아니라, 수도권 바깥은 모조리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힘든 섬이 되어버렸다.

지역산업의 위기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 같다. 보호무역 강화나 유가의 변화 등 경기 변화에 따라, 경쟁력의 한계에 따라 수출입국 대표선수 대기업들은 앞으로도 휘청거릴 확률이 낮지 않다. 지역은 도움을 요청하고, 정부가 공적자원 지원을 약속하고, 구조조정의 목표는 달성되지 않고, 환멸이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사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우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공산이 크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 지역경제는 위축되고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 전 세계의 많은 산업도시가 겪은 일이다.

이미 한국의 제조업이 대량의 완성품을 만드는 공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가격은 가치와 비용으로 계산된다. 기업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가치를 높여서 애플처럼 팔든지, ‘추격형 성장’ 모델처럼 동급의 상품을 싸게 만들어 팔아야 한다. 비용 측면에서 보면 혁신은 원자재를 싸게 사든지, 내부 소재·부품·장치값을 줄이든지, 생산설비 기계화·자동화로 조립단가를 줄이든지, 인건비를 낮춰야 한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3~5%가 되지 않는 이윤을 주면서 운영한 것은 이미 20년째 굳어진 구조다. 수출대기업을 운영하던 회사들이 면세점에 진출하거나 내수 시장의 프랜차이즈로 진출해 재래시장과 자영업을 괴롭히게 된 것 이면에는 수출 제조대기업 경쟁력의 한계가 숨어 있다. 분명 공정위는 철저히 대기업의 갑질과 프랜차이즈 규제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산업정책’이 있어야만 한다.

산업정책의 역할은 산업은행의 기조처럼 ‘좋은 회사이니 회생시켜 때 되면 좋은 값에 판다’는 것일 수 없다. 하청업체 쥐어짜고 사내하청 써도 이윤이 안 남으면 그런 대기업은 문을 닫는 게 정상이다. 불가피하면 통폐합하거나 정리하고, 하청을 맡던 중소기업들이 기술 개발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자리매김하게끔 돕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실 하청업체들도 한때는 판교의 엔지니어들처럼 혁신으로 도전하겠다는 젊은 사업가들이 세운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하청업체가 혁신하면 딱 그만큼의 성과를 대기업은 더 가져갔을 뿐이다.

노동정책은 망하게 생긴 회사의 노동자들이 실업 때문에 의욕을 잃지 않고, 프랜차이즈 사기를 당하거나 준비도 안된 채 자영업 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얼른 가진 기술로 작지만 견실한 회사에 취업해 자기 기술에 걸맞은 임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들이 연공서열제 대신 직무급을 받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재편하고, 새로 통상임금에 편입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연대기금으로 내놓아 중소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시간을 정해 줄여나가는 것도 따져볼 만하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안정적인 사회가 우선이다.

사실 산업화 시대를 지나서도 승승장구한 수출대기업의 성과도 운에 기댄 것이 많았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같이 말이다. 그러나 성장기에 정비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저성장기에 제조업의 성장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분명한 기준으로 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지역경제와 노동자들을 보전할 체계도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방정부도 대기업 지키기를 넘어설 수 있다.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돈만 있다면 쉽지만 미래가치로 보면 비싼 일이다. 대신 체계를 만들고 분명한 기준을 잡는 일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값진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책에선 관성의 힘만 느껴지니 답답할 따름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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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눈들이 사람 눈처럼 또랑거리는 ‘봄봄’. 산수유는 벌써 노랗게 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아침에도 돌아가지 않은 게 꽃이란다. 나무마다 별꽃이 피어 이쪽 말로 ‘버큼(거품)’ 같아. 부풀어 오르다가 쭉 가라앉으면 다음엔 풀들이 땅별을 덮으며 차오르겠지. 쑥 캐던 할매들은 신문지 한 장 바닥에 깔고서는 멍 때리고 앉아 봄바람을 쐰다.

막심 고리키의 에세이집 <가난한 사람들>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구독 안 합니까?” “그딴 걸 왜 봅니까. 뭐 찻집에 가면 들춰보긴 하죠. 언제는 진격했다더니 또 퇴각했다고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우리 동네 한 녀석이 있는데 그놈 별명이 바로 ‘신문’입니다.” 그래도 시골에선 신문지가 꼭 필요하다. 활자가 아니라 그냥 종이로라도 말이다. 예전엔 들밥을 먹을 때 펼쳤고, 들불을 놓을 때도, 물건을 싸거나 보관할 때 여러모로 요긴했다. 아이들은 딱지를 접고, 종이 모자로 쓰고, 두툼하게 겹쳐 야구 글러브를 만들었다. 도배할 때 초벌로 신문지를 붙이기도 했다. 아예 쇠죽 쑤는 허드레 방 같은 데는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했다. 해묵은 소식을 끌어안으면서 설설 끓던 쇠죽방. 어릴 적 친구는 엎드리면 벽이 신문지였다고 했다. 사설을 읽고 자란 덕분인지 신문사 동네에서 밥벌이를 삼고 지낸다. 신문의 정기를 받았다고나 할까.

굴착기를 앞세운 4대강 강행 때부터 국정농단까지 커다란 제목들. 신문보기가 두렵기조차 했다. 수고한 분들 덕분에 무사히 올림픽도 마쳤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남북한 소식은 반갑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장면이나 헌법 제1조를 머리기사로 담은 경향신문 지면 같은 건 방바닥에다 깔고 짜장면을 먹기엔 숭고하고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런 신문지는 버리지 못하여 어디 책꽂이 잡지 근방에 개켜져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아궁이에 던져 넣고 싶은 신문지도 있다. 그런 신문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그놈 별명에 다름 아니겠다. 재벌기업과 유착하여 혈맹을 과시하는 신문들, 추잡한 형님 선배님들의 신문. 그런 신문지는 저 밭에 할매들 궁둥이에서 납작 찌그러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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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침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대통령에게 오는 14일 출석해서 조사를 받으라고 지난 6일 통보했다. 이 전 대통령 비서실은 소환에 응하겠다면서도 날짜는 검찰과 협의해 정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 날로부터 출석예정일까지의 8일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이 정도 여유를 둔 만큼 일정 조정은 필요치 않다고 본다. 이 전 대통령은 무의미한 기 싸움이나 벌일 게 아니라 14일 검찰에 나가 성실히 조사받는 게 옳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중대하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보태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이 추정하고 있는 불법 금품수수 액수만 100억원대에 이른다. 돈을 챙긴 명목도 가지가지다.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삼성전자로부터 다스 소송비용을 대납받고,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선 인사청탁 대가로,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한테는 공천헌금 명목으로 거액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정두언 전 의원)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는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 권한을 이용해 사익을 취한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이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는 두 달 전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뒤 침묵만 지키고 있다. 검찰에 출석하기 전이라도 시민 앞에 모든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주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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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7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그동안 두 차례 회동을 거부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번에는 참석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모든 정당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이날 회동은 의미가 각별하다. 수석 특사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배석해 대북특별사절단의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청와대가 안보 현안에 대해 야당과 정보를 공유한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고비를 맞이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에 대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도 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번 합의는 북한이 불러주는 대로 써온 합의문이 아닌가”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에 시간벌기용 회담으로 판명난다면 대안이 있느냐”고 따졌고,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잠시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홍 대표는 회동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를 자행했다”라고 썼다. 도가 지나치다. 이번 대북특사단의 방북 성과는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회복의 문을 열어준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홍 대표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서 나온 발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과도 매우 동떨어진다. 북핵 위기에 대한 해법과 대응은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비판과 견제는 야당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안보 문제에서마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고,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건 곤란하다.

지금은 북·미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중대 분수령이 눈앞에 와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여야가 따로 일 수 없다. 북핵 해법 등에 이견이 있다 해도 이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회동 한 번으로 여야 간 의견차가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야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남남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더욱 진정성 있게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번 회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안보협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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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출판기념회를 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책에 실린 시 한 편으로 구설에 올랐다. 교육에세이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의 첫 글에 후배 문인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고은의 시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은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에 나오는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를 소개하며 “개인적으로 그 글귀를 보며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고 적었다. 조 교육감의 교육에세이는 고은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기 전 인쇄를 마친 상태였다. 평소 두터운 친분을 쌓았던 고은의 작품이 자신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릴 줄은 조 교육감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수원시는 지난달 말 권선동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소녀상’ 아랫단에 있던 고은의 시가 새겨진 추모시비(詩碑)를 철거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는 시인이 세상을 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추모시비에 새겨진 고은의 시는 ‘꽃봉오리채/꽃봉오리채/짓밟혀 버린 모독의 목숨이던 그대여…’로 시작한다.

프로야구 구단 kt위즈는 고은의 창작시로 만든 캐치프레이즈 ‘허공이 소리친다. 온몸으로 가자’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고은은 지난해 9월27일 kt와 두산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면서 창작시를 kt위즈 구단에 헌정한 바 있다.

미래엔·지학사 등 출판사들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린 고은의 작품을 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중·고교 검정 교과서 11종에는 고은의 시 ‘선제리 아낙네들’ ‘그 꽃’ ‘머슴 대길이’ 등과 수필 ‘내 인생의 책들’이 실려 있다. ‘선제리 아낙네들’은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에 출제되기도 했다. 교육부는 “검정교과서는 언제든 수정·보완이 가능해 출판사가 고은 작품의 삭제를 요청하면 인가하겠다”고 했다.

고은의 흔적은 150여권의 저작뿐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시업(詩業) 60년의 흔적을 지운다 해도 성추행 피해자와 독자, 지인들에게 남긴 상처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은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집필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추한 욕망은 더 많은 상처의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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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순간. D-14일. 대략 두 주 정도 남았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대표하여 헌법개정안을 발의한다. 온라인에서 의견수렴이 한창이다. 국민헌법 홈페이지엔 28가지 개헌의제가 소개되어 있다. 찬반투표와 댓글달기가 가능하다. 약 25만명의 국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개헌의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찬성표와 댓글을 간단한 셈법으로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국회에서 주로 언급되던 권력구조개편도, 정부안으로 유력해 보이는 지방분권도, 시민사회가 중시하는 생명권 등 기본권도 아니었다. 상단 맨 위쪽을 차지한 개헌의제는 ‘검사로 한정된 영장 신청 주체를 법률로 완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내 삶을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장 당면한 개헌의제로 검찰의 권한독점 문제가 제기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촛불민심이 이전에 논의되고 있던 한국사회의 개혁과제를 새롭게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낡은 체제를 바꾸는데 무엇이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지 재확인시켜 준 결과인지도 모른다. 2016년 말 2017년 초의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밝혔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만 했을까. 만약 검찰이 국정농단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의 심판대에 올렸다면, 촛불이 그렇게 타 올랐을까. 물론 국민헌법 홈페이지의 개헌의제에 대한 관심정도가 국민전체의 여론으로 대표될 순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필요도 없다. 촛불도 처음에 그랬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수만 명이 수십만 명이 되고 수백만 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검찰의 권한독점 완화에 대한 세 가지 논거가 추가될 수 있다. 첫째, 독점이 가지는 한계도 포함된다. 현행헌법은 체포·압수·수색을 위한 영장의 신청을 검사만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형법상 기소권한도 독점적이다. 기소는 법원의 재판절차 개시를 의미한다. 바꿔 말해,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수 없다. 예컨대 최고 권력자의 부정행위도, 토호와 결탁한 지역의 이권개입도, 각종 사회경제적 차별도 기소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둘째, 검찰에 대한 불신이다. 검찰의 권력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률에서 영장신청 주체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검찰의 권력화는 스스로를 정치권력과 경제금권에 노출시켜 허약체질로 만든다. 셋째, 독점 그 자체에 대한 보편적 거부감이다. 이 거부감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독점은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성장을 저해한다. 또 독점은 사회민주적 측면에서도 경쟁이 필요한 주체의 동등한 기회를 박탈한다. 어떤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면, 그는 경제적 자유도 평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경제적 자유가 불평등하다면, 법 앞에 평등하기 어렵다. 독점 앞에 자유와 평등은 동병상련이고 무력화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본권, 권력구조, 지방분권 등 대부분의 주요 개헌의제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분산시켜 인간의 이질성을 고려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한편에선 현행헌법 그대로 검사의 권한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영장신청 주체가 확대되면 인권침해가 가중될 우려가 있고, 영장신청 주체를 제한하는 것은 검찰 권한의 보장이 아니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규정한 것이므로 현행헌법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검찰의 권한독점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기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미 심심찮게 봐왔다. 그 때문에 검찰의 권한독점이 기본권을 보장하기보다 기본권의 중심이 되는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생명권, 사회권, 환경권, 정보권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개헌여론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도, 국회도, 시민사회도 아닌 국민이 원하는 개헌. 다 내주더라도 하나의 개헌안만 선택해야한다면, 무엇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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