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부 작은 도시 뒷골목에 ‘사무라이’라는 초밥집이 있다. 무사라면 모름지기 잘 벼른 칼 한 자루쯤 있기 마련, 그 칼로 회를 잘 뜨겠다는 다부진 의지를 보이는 것이려니, 그래서 문 앞에 험악한 일본 무사 그림 하나쯤 걸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1990년대 말 한국 가요계를 휩쓴 가수가 익살스럽게 웃는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그러니까 미국 골목에 무사를 세워놓은 이는 한국 사람이다. 20여년 전 미국 지사에 파견 나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는 이는 젊은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 사진을 가게 곳곳에 붙여놓았다. 가게 안은 다국적 문화가 공존했다. 한쪽에서는 초밥이 만들어지고, 벽에는 한국 가수 사진과 미국 영화 포스터 따위가 걸려 있고, 스피커에서는 비틀스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일하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솜씨 좋게 초밥과 롤을 만들어 내는 이는 한국 사람이다. 중학교 때 미국에 왔다는 그는 초밥 만든 경력만 20년이 된다. 그를 돕는 이는 일본 사람이다. 영어가 서툰 그는 묵묵히 손만 놀린다. 식당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는 멕시코 사람이다. 본래 그 일을 하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부인이 임신해서 일하기 힘들어지자 그가 대신 자리를 메웠다. 식당 안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대개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지 13년 되었다는 이는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하면서 주말에만 이곳으로 출근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청년은 얼마 전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했다. 혼자 뭐든 해보고 싶어 부모로부터 독립한 그는 일주일 내내 식당에서 일한다.

제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서로 마음을 맞춰 일하는 모습이 미국 땅에서는 낯선 게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주창하면서 여전히 이방인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내 눈에는 신기하게 비쳤다. 생각해 보면 삶에서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한 수단이 다를 뿐, 어쨌든 산다는 것은 똑같은 것. 나는 지구인들이 만들어낸 초밥을 먹으면서 우리 모두 똑같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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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서울거리 ‘턱’을 없애주시오”란 유서를 남기고 휠체어 장애인 김순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다섯살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성실함으로 액세서리 공장장이 됐다. 1980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후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문을 받고 물건값을 회수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부지런히 남대문 시장 골목을 누볐다.

그런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턱’이었다. 비장애인은 느끼지 못하는, 그러나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그 어떤 장벽보다 높은 그 작은 턱. 목숨을 끊기 두달 전, 김씨는 교통단속에 걸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공구를 빌리러 성수동에 가던 길에, 거리의 턱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어 경사로가 있는 차도 쪽을 이용했다가 무단횡단으로 단속된 것이다.

그 순간 오랫동안 참고 눌러왔던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터져버린 듯했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 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한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그의 죽음으로부터 34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8년의 평창, 지금 그곳에서는 장애를 극복한 ‘영웅’들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어릴 적 앓았던 류머티즘으로 30살 때 왼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주장 한민수 선수가 의족을 찬 채 성화봉송대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을 등반하자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평창을 찾은 장애인들은 아마 익숙지 않은 친절함과 환대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미소 띤 자원봉사자들이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주위에 대기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인색한 미디어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유일한 때가 4년마다 딱 2주씩 돌아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러나 1984년과 2018년의 한국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봤다. 그들은 서로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신나게 웃고, 막 시작한 연애 때문에 설레고, 승부욕 때문에 손가락 부상을 숨기는, 그저 평범한 청춘이자 근성 있는 운동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빙판 위를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선수들은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누군가의 등에 업혀야만 버스를 탈 수 있는 ‘장애인’으로 돌아갔다. 버스 계단의 턱이 너무 가파른 탓에 업고 오르던 사람이 휘청거리자, 업힌 사람도 업은 사람도 서로 멋쩍어 쿡쿡거리다가 결국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고 만다. “이거, 웃을 일이 아닌데. 정말 웃을 일이 아닌데.” 언덕을 등반해 성화봉송대에 오르고, ‘빙판 위의 메시’가 되어도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 앞에서는 멈춰설 수밖에 없는 2018년의 현실.

그래서 우리가 패럴림픽의 드라마에서 봐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선수들의 투혼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감동만이 아니다. 패럴림픽은 장애가 있어도 저렇게 빛날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일상에서는 그러기 힘든 것인지, 우리가 만든 사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오래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것을 보면 장애를 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물론 장애 극복에 대한 것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장애인의 문제를 그렇게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거죠.”

박 대표는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고속버스에 쇠사슬을 묶고 여러 건의 미신고 집회를 주최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월을 구형받은 상태다. “아름답거나 혹은 동정의 대상이어야 할” 장애인들이 쇠사슬을 묶고 철도와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쇠사슬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세상이 우리 장애인들에게 만들어 놓은 일종의 함축된 ‘형상’이죠. 쇠사슬을 풀기 위해서라도 묶는 거예요. 지금은 그 쇠사슬이 경찰들에게 잘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스스로 잘라내겠다는 표현입니다.”

다시 김순석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횡단보도로 건널 수 없게 만든 사회가 문제였던 것일까. 박경석 대표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성공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몇달 전부터 평창으로 갈 수 있는 이동수단을 구하려 애를 썼지만, 휠체어 장애인을 태울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는 왜 ‘범법자’가 돼야 했을까. 버스에 쇠사슬을 묶은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쇠사슬을 묶을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가 문제였던 것일까.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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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휴식기를 가졌던 농촌의 들녘이 기지개를 켜면서 농부들의 일손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땅을 뒤집고 논밭 주변을 정리한다. 작년에 사용했던 비닐, 거름포대, 차광막 등을 수거해 폐기하거나 재활용한다. 하지만 일부 농촌의 들녘을 거닐다 보면 밭 주변 덤불 속에 폐비닐이 수년째 방치돼 있고, 비닐포대와 차광막이 밭 주변에 쌓여있다.

농촌은 농산물만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다. 바쁜 도시민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각광받는다. 농촌진흥청이 전국 7대 특별·광역시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조사한 결과 70.4%가 농촌관광 의사를 보였다. 농촌관광이 잘 발달된 독일의 경우 국민의 15%가 매년 휴가철이나 주말에 팜스테이 마을을 이용한다고 한다. 도시민들은 바쁜 도시생활을 접고 잠시나마 조용한 농촌의 산야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를 희망한다.

농부는 논과 밭을 이용해 도시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진정한 농부의 마음은 도시민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농부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요구만 해서는 안된다. 농촌은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하는 자산이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여 국가에서 법으로 농촌을 관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보상해 주고 있다. 농촌을 가꾸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장진호 |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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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探偵)’이란 호칭은 영어 ‘Private Investigator’를 일본에서 자신들의 환경과 제도에 맞게 한자로 번안한 것이다. 한국이 탐정업(민간조사업)의 직업화를 추진함에 있어 ‘정보·단서·증거 등 자료 수집’을 사명으로 할 우리의 ‘민간인’에 대해 일본식 호칭인 ‘탐정’을 써야 옳은가? 더군다나 그런 용어를 대한민국의 법명(가칭 공인탐정법)에까지 그대로 인용해 사용하려 함이 적정한가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전적으로 보더라도 ‘탐정’이라 함은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즉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음습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어감으로, 탐정물이 아닌 현실 속 직업인의 명칭으로는 저질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이에 영어 ‘PI’(약칭)나 이를 일본식으로 번안한 ‘탐정’을 우리의 정서에 맞게 바꾸어 부를 새로운 명칭 발굴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세계적으로 보아 사설탐정(사립탐정)이건 공설탐정(형사)이건, 비공인 탐정이건 공인 탐정이건 어떤 명찰을 달더라도 탐정은 공히 ‘정보나 단서·증거 등 문제 해결에 유용한 자료를 발견·수집·제공하는 일’을 요체로 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즉 탐정은 ‘획득된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취사선택된 자료로 말하는 존재’ 아닌가. 누가 봐도 탐정의 중추적 역할은 의뢰자를 대신하는 ‘자료수집대행’이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를 감안해 탐정을 ‘자료수집대행사(資料蒐集代行士)’로, 탐정업은 ‘자료수집대행업’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어떨까. ‘자료수집대행사’라는 일곱 글자엔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실무적으로 보더라도 ‘자료’란 연구나 조사의 바탕이 되는 정보나 단서·증거 등 기초적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탐정이 지향하는 목적물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요소들이다. 특히 이 명칭은 탐정 또는 민간조사원이란 용어에 비해 문법적으로나 탐정학 또는 법리적으로 거부감을 살 만한 요소를 찾기 어렵다.

혹자는 ‘탐정’이라 불러야 셜록 홈스를 연상시켜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탐정법’은 무엇을 규정하고 있는 법인지 얼른 이해하기 좋으니 법명에 ‘탐정’이라는 용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호칭이 낯설다 하여 이를 가름하지 못할 국민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두 건의 공인탐정법(안) 심의과정에서 탐정의 기능은 살리되 그 명칭은 생활친화적인 우리의 것으로 명명하기를 기대한다.

<김종식 |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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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과히 정갈하지 않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가 곰팡이에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두피에 마늘즙이나 식초를 바른다거나 백열전등으로 지진다거나 하는 민간요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곰팡이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내 기억에 곰팡이는 ‘강한 적’이었다. 지구상에는 약 150만종의 곰팡이가 있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중 식물에 쉽게 침입하는 곰팡이는 27만종, 곤충에는 5만종 정도가 있다고 한다. 반면 포유동물에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의 숫자는 수백 종에 불과하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차이는 왜 생겨났을까? 우선 쉽게 면역계를 그 원인으로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면역계 외에도 포유동물은 곰팡이와 맞설 그럴싸한 나름의 전략을 수립했다. 바로 체온을 올리는 일이었다. 뉴욕 앨버트 아인슈타인 대학 카사드발 교수는 포유류가 섭씨 30~40도 사이에서 체온을 1도씩 올릴 때마다 곰팡이의 침입을 6%씩 저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듯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은 에너지 예산 면에서 보자면 꽤나 소비적이지만 최소한 곰팡이를 퇴치하는 데는 안성맞춤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 곰팡이 퇴치 외에 정온성의 다른 이점은 없을까? 캘리포니아 대학 앨버트 베넷과 오리건 대학 존 루벤은 정온동물과 변온동물의 가장 큰 차이가 지구력에 있다고 보았다. 먹이를 쫓아가는 사자와 물속에서 눈만 내놓고 먹잇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악어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이해될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과 닭 따위의 조류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온동물로 자신을 무장함으로써 살아가는 장소를 추운 곳까지 확장하고 근육을 빠르게 움직여 먹이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온도가 10도 올라갈 때 근육의 움직임이나 효소의 활성이 두 배로 증가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생리학적 법칙이다. 물론 50도를 넘어가면 세포 일꾼인 단백질의 변성이 시작되므로 정온동물의 체온은 40도 근처에서 최적화된다. 근육에는 이동하는 데 쓰이는 가로무늬근도 있지만 소화기관이나 혈관을 움직이는 민무늬근도 있다. 정온성을 가진 생명체는 밤낮 할 것 없이 심장, 간을 포함한 소화기관 및 콩팥의 기능을 완벽하게 유지한다. 심장이 혈액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빠른 속도로 운반하는 동안 콩팥은 질소 노폐물을 몸 밖으로 신속하게 내보낸다. 흡수를 마친 소화기관은 간으로 영양소를 빠짐없이 보낸다. 정온동물 신체 기관의 이런 여러 장점들을 한데 모아보면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정온성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정온성을 선택한 동물은 전체 동물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150만 중에 조류 9000종, 포유동물 4500종을 제외한 나머지 99.9%의 동물은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성을 채택했다.

이렇게 보면 정온성은 생명체 진화 전 과정에서 극히 예외적인 드라마에 속한다. 그렇다면 일부 동물계에서 정온성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과연 파충류인 공룡의 피는 차갑기만 했을까? 공룡을 연구한 최근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육상 동물이었던 용반목(Sauropod) 공룡은 풀을 먹었다고 한다. 초식동물들이 흔히 겪는 문제는 탄소에 비해 질소의 섭취량이 적다는 점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충분한 양의 질소를 섭취하려면 동물은 상대적으로 탄소가 풍부한 풀을 많이 먹어야 한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풀을 먹은 결과 동물의 몸에는 탄소가 과도하게 축적되었다. 이 축적된 탄소를 처리하기 위해 공룡들이 취한 방식은 두 가지였는데 그 하나는 몸집을 키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탄소를 태워서 열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주도한 리버풀의 존 무어스 대학 윌킨슨 박사는 체중에 비해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은 몸집의 공룡 새끼들이 열을 내면서 탄소를 처리했다면 생존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탄소를 태워 열을 내는 대사 체계가 야행성 포유류에서도 시작되었으리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한다. 우리는 정온성이 포유동물과 조류에 국한해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생애 어느 순간 잠깐이라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생명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어류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참치, 황새치, 악상어가 열을 내면서 빠르게 몸을 움직이고 눈 주변의 근육을 움직여 먹잇감을 정확히 포착한다. 비단뱀도 알을 낳고 부화하는 동안 몸의 열을 내 자신의 분신을 보호하려 든다. 심지어 식물도 생식하는 동안 에너지를 써서 열을 낸다. 바로 수분에 참여할 곤충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손난로’ 전략이다. 딱정벌레는 온도가 40도가 넘는 천남성과 식물들의 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씨를 성숙시키기 위해 연꽃도 열을 낸다.

경칩 지난 절기에 눈이 쌓인 산길을 걷다 마주치는 복수초(福壽草) 노란 꽃이나 변산 바람꽃도 열을 내 눈을 녹이고 안온하게 자리 잡는다. 남들보다 일찍 수분을 마치고 씨를 만들어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보고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루 꼬박 세끼를 먹고 100년을 향해 산다고 하는 인간은 무슨 아름다움을 바라 하루 종일 열을 낼까? 2018년 한국의 봄날, 쑥이며 민들레 앉은뱅이 풀들이 앞 다투어 돋을새김으로 고개를 내민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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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중국에서는 찬성이 100%에 가까운 몰표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헌안 골자는 물론, 시기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반대는 고작 2표에 불과한데 찬성이 2958표로 찬성률이 무려 99.79%를 기록했다는 것. 가히 ‘거수기 투표’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이런 ‘거수기 투표’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최근 광역·기초의원 정수와 광역의원 선거구획정을 담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이제 시·도의회가 기초의원 선거구획정 조례안을 의결하면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법안은 다 갖추는 셈이다. 기초선거구 조례안의 표결 처리에는 당리당략이 아닌 지역의 민심을 우선하고 유권자의 한 표 한 표가 소중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오랫동안 다수당의 논리에 지배되어 왔다. 이번에 서울 지역의 사정만 보더라도 획정위가 제안한 당초 원안에는 4인 선거구가 35개였지만 다수당의 반대로 28개가 줄어 7개로 축소되고 2인 선거구는 오히려 55개로 늘어났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선거구획정위가 마련한 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여기서 ‘존중’을 ‘의결’로 고치지 않는 한 다수당이 독과점한 시·도의회에 선거구획정위가 마련한 획정안의 존중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초의원은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까지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다. 그만큼 다양한 정당들의 의회 진출이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또 현행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의원 비율이 10%에 불과해 늘 지적을 받아 온 ‘비례성’을 보완하여 정당득표율과 실제 의석점유율의 괴리도 줄일 수 있다. ‘국익’을 위해 희생하는 정치권의 결단을 기대하고 또 희망해 본다.

<이재우 |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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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1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수가 개편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의 부담금 인하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심리치료 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개편 내용을 보면 심리치료의 주체를 의사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심리학자는 심리치료를 주체적으로 실시할 수 없다. 이러한 결정은 단기적으로 심리치료 내담자의 선택 범위를 제한시킴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심리학자의 설 곳을 앗아감으로써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을 후퇴시킬 것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의사와 심리학자가 훈련받는 배경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마음을 치료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약과 말이 그들이다. 의료계의 전문가는 뇌의 기제에 바탕하여, 특정 약물이 특정 정신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훈련받는다. 반면 심리학자는 언어에 기반한 심리치료(Talking therapy)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일반적으로 상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배운다. 공감과 반영, 그리고 내담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촌철살인의 직면까지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전문가 못지않은 투자와 전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전문가에게만 심리치료를 받도록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더군다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인지행동치료는 심리치료의 한 종류로 심리학의 영역 내에서 주도적으로 연구·개발되었고, 선진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심리학자가 인지행동치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학회 중 하나인 세계인지행동치료학회의 학술대회가 2022년 제주도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것의 유치와 운영을 심리학계가 주도하고 있다.

<조덕현 | 고려대 심리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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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서지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중간만 가라”는 조언을 많이 듣곤 한다. 약자로 살아가기 위한 보신 전략으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때로 이것이 중용(中庸)의 지혜인 양 설파되는 것이 문제다. “적당히 해라. 사람이 중용을 알아야지.” 남들은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끝까지 따지는 이를 향해 던지는 이 한마디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중용의 중은 가운데를 뜻하지만, 그 가운데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가운데를 찾아가는 것이 중용이다. 잔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채우는 게 중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맥주잔이라면 가득 채워야 중용이지만, 소주잔을 가득 채우면 과하다고 할 것이다. 늘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사심 없이 말랑말랑한 유동성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용의 핵심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해야 한다.” 까마득한 옛날, 순 임금이 음악을 통한 교육을 명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이를 실현한 인물로 거론되는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정하고, 공손하면서도 평안하다”는 평을 들었다. “직이온(直而溫)”에서 “공이안(恭而安)”까지, 모두 ‘이(而)’를 사이에 두고 서로 모순되기 쉬운 덕목을 나열하였다. 두 덕목의 중간을 취하라고 하지 않았다. 둘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가지기 어려운 것을 동시에 요구하였으니,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理想)이다. 그러나 이 버릴 수 없는 이상에 중용의 본질이 있다. 공자는 순 임금을 두고 “양 극단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지 않고 동시에 고려하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칭송했다. 바로 중용의 정치이다.

극단의 논리가 횡행하는 세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노사분규의 현장에서든, 미투 운동의 전선에서든, 안일하게 중도를 말하는 것은 상황을 호도하거나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상황마다 얽혀 있는 사정을 쉽사리 재단할 수는 없지만, 때로 무게 차이가 심한 경우에는 한쪽에 치우친 곳을 잡아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일시적인 쏠림이 판 자체의 평형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심을 잡으려는 지속적 움직임을 멈춘 채 고정된 기준을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순간, 누구든 ‘꼰대’가 될 수 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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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안전공사가 2015~2016년 공채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한 이들 때문에 부당하게 탈락한 피해자 12명 중 8명을 구제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관련해 구제자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채용비리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행위임을 감안하면 탈락자 구제는 기회의 공정성을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조치이다. 이번 구제자는 검찰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에서 피해가 특정된 이들이다. 공사는 당초 12명 전원을 합격시키려 했으나 이미 다른 직업을 가진 4명은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 8명만 구제했다. 이들은 하반기부터 공사 신입사원으로 2~3년 늦게 첫발을 내딛게 된다.

조사결과 이들은 모두 합격권이었으나 청탁을 받은 3명을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가 낮춰지면서 탈락했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락자들은 자신이 마땅히 앉아야 할 자리를 엉뚱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실력이 부족했음을 탓하고 자책했을 것이다. 그들이 감내했어야 할 고통과 기회의 상실에 따른 손실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뒤늦게나마 제자리를 찾게 된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채용과정에서 청탁과 로비가 판치는 것은 이미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지난해 정부의 특별점검 결과 1190개 기관·단체 중 946곳에서 4788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다. 강원랜드의 경우 한 해 입사자 90%가 부정합격자로 판명난 상태이다. 그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하나은행에 입사지원서를 낸 지인 자녀를 추천한 문제로 사임한 것은 채용비리에 관용은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융권의 경우 임원이 추천하면 관행처럼 서류전형을 통과시켜줬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특혜임은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은행은 명문대 출신자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합격권에 있던 다른 대학 출신 7명을 떨어뜨리는 등 부정채용 사례가 적발된 상태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권 모두 채용비리로 합격이 뒤바뀐 이들에 대한 구제작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법원 판결이 미뤄질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부당한 탈락자가 공공기관에서만 1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무임승차한 이들을 엄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이익을 받은 이들을 제 위치로 돌려놓는 것 역시 필요하다. 땀 흘리는 청년들에게 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은 사회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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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 평생 경남·부산에서 산 아버지는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고 일상에서 간혹 일본어 단어를 썼다. 내 뇌리에도 남은 자부동, 히야시, 와리깡, 요오지 따위의 명사들은 그야말로 ‘일제의 잔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순화 운동 덕분인지 ‘잔재로서의 일본어’는 우리 언어생활에서 대부분 소멸했다.

오늘날 외국어를 무차별하게 섞어 쓰며 한국의 언어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한국어를 2등 언어로 격하하는 자들은 대개 친미파와 아메리카 유학 출신들이지 ‘친일파’는 아니다. 특히 교육받은 젊은 세대나 여성의 언어에서 식민지 잔재로서의 일본어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모에, 오타쿠, 닝겐 같은 어휘들이 새로운 대중문화 교류나 언어유희의 결과로 조금 들어왔다.)

그럼에도 오늘날 잔존하는 일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일용직 노동자, 조폭, 주정꾼 같은 남성 하위계층의 일부 장년 세대일 듯하다. 그들이 ‘노가다’ 현장이나 당구장·술집 같은 좀 특별하고 거친 공간에서 데모도, 신삥, 나라시, 맛세 같은 어휘를 쓰는 듯하다. 따라서 저 일어 단어들은 일종의 사회방언(social dialect)이 된 것이다. ‘겐세이’도 비슷하다. 일어 ‘견제(牽制)’의 원래 뉘앙스는 지워지고 깽판, 훼방, 막무가내, 몽니 등의 어의를 갖게 된 것이다.

삼일절 어간에 국회에서 일어난 ‘겐세이 소동’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자유한국당의 ‘친일 본색’을 표현하는 거라고 해석했다. 일리는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오늘날 일부 수구·보수 세력의 정체성과 품격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필자에게 특히 겐세이 소동을 일으킨 이모 의원은 미스터리한 인물로 느껴진다. 아마도 곱게 자라 미국의 유수 대학원을 나오고 이 나라에서 가장 학벌과 교양이 높을 것 같은 지역을 대표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 의원이 어떻게 겐세이 같은 거친 언어를 쓰게 되었을까? (국어학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국당 남자 의원들이 겐세이 소동을 오히려 즐기며 이 의원을 칭찬했다는 보도를 보고 사태가 이해가 됐다.

깽판을 즐기는 거친 하위적 남성성. 겐세이는 한국당과 국회의사당 주변의 사회방언이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당의 정체성과 전략에도 꼭 어울려 보인다. 막무가내식 몽니와 어떤 사안이건 일단 무조건 반대·폄하하고 훼방 놓는 정치 행태.

그 무책임은 일종의 데카당(퇴폐·허무)의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당 대표는 자기만의 용어법과 환상 속의 ‘좌파’, ‘주사파’를 설정하고는 연신 허공에 어퍼컷·잽을 날리고 만족해한다. 폭주하는 막말과 후안무치한 태도에는, 무지와 시대착오에 15% 정도의 지지율이나마 지켜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계산이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향한 비전이나 대안 따위 0.1도 없지만, 상대의 실수와 정치혐오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드디어 북핵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르는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그 대표는 ‘충동적 결정으로 성사된 것’이라며 전쟁 방지를 위한 그 모든 진지한 노력과 미국 등 우방마저 쉽게 폄하한다.

미투 운동에 대한 태도는 더 참담하다. ‘좌파들이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 같은 언동은 세간의 지적대로 미투 운동의 의미 자체에는 아무 관심 없고,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이 경쟁 세력을 ‘차도살인’하는 정략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흑심을 투명하게 표현한다. 피해자들의 아픈 말들이 온 나라를 당혹과 고통에 휩싸이게 했는데 그들만은 희희낙락한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못 느끼는 종류의 인격이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란 애당초 정치학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판타지일 뿐일지 모르지만, 116명의 의원을 보유한 거대 정당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놀음을 정치행위라 착각하는 이런 경우가 다른 데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미완성인 촛불의 시간과 현실정치의 시간 격차가 빚은 진정한 잔존물이다. 이명박·박근혜들과 함께 이미 몰락했는데, 오랜 관성 덕분에 연명한다. 극단의 진영정치에 기대어 있기에 멈추지도 못한다. 자기갱신의 노력이나 시대를 선도하고 대중을 설득하려는 진지한 노력 대신 오로지 겐세이로만 존속한다. 겐세이는 잔존하는 존재의 무의미의 표현이다.

이 사회를 휩쓰는 두 가지 큰 해일 앞에서, 기대와 고통의 교차를 통감하며 시민과 여성들은 ‘헬조선’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촛불에서 정권교체로, 미투로, 또 남북회담으로, 일상과 직장의 폭력과 그리고 창공 위로 가로놓인 군사분계선과 절멸의 위험을 바꾸고 제거하려 분투한다. 진짜 ‘보수’라면 겐세이를 중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동참할 것이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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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 폭로가 정치권으로 옮겨간 뒤, 미투를 둘러싼 정치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사건 당사자들 간의 진실 공방이 뜨겁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폭로할 만한 미투와 그렇지 못한 미투가 있다는 ‘진짜 미투, 가짜 미투 가리기’류의 갑론을박이 포털의 댓글 공간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군다.

공개폭로를 한 피해자들에게는 악의적인 루머 유포나 혐오 표현, 신상 털기로 적극적인 2차 피해를 입히면서, 익명의 폭로자들에게는 “진실이라면 무엇이 두려운가, 얼굴 드러내고 증거 대고 말하라”고 실명 피해 입증을 압박한다.

어느새 피해자의 절대적인 고통의 무게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희석되고, 피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미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단서를 앞세워 가해자 중에 단죄받아 마땅한 진짜 나쁜 남자와 어쩌다 실수한 남자의 등급을 서슴없이 가린다.

이 공방의 와중에서 슬며시 사라져버리는 질문이 있다.

남자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몇몇 거물 성폭력 가해자가 본보기로 처벌받아 이 사회로부터 잠시라도 배제된다면, 미투는 승리한 것인가? 여성들이 성폭력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열리는가?

문제 제기는 피해자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해결점을 찾으려면 시선은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왜곡된 사회문화구조로 돌려야 한다.

가해자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자기정당화했던 밑바탕에는 세대를 넘어 전수되는 왜곡된 남성성이 있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맨박스(manbox)’의 저자 토니 포터는 남자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한다.

같은 반 여학생들의 외모와 체형을 놓고 품평하면서 성적 대상화의 재미를 공유하는 남학생들만의 카톡방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남학생들은 ‘○선비’라는 조롱을 받으며 또래에서 소외된다. 남자답지 않다는 평가가 두려워 침묵했던 소년들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문제를 못 본 척 넘어가는 방관자들로 성장한다. 남자들 사이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혹은 강해 보이기 위해서, 동창 선배나 직장 상사를 따라, 매매춘에도 나서게 된다. 여자를 때리거나 성폭행하지 않는 나름 선량한 남자들의 관성과 침묵은 나쁜 남자들이 “남들도 다 그러는 거 아니냐”며 자신들의 가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구조를 철옹성으로 쌓게 만든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피해자들에게 향할 것이 아니다. 형이나 남자 선배나 직장 상사나 동성의 친구, 이웃 남자의 성폭력에 왜 나는 저항하지 않았었는가라고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왜곡된 남성성에 대해 되돌아보기보다는 ‘위험요소’인 여자들을 아예 차단하는 펜스룰을 들이대거나 “원래 남자들은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진화론을 펴는 일부 중장년 남자들의 보수적 저항은 예견된 것이라 하더라도 청년세대 남성들의 남성성에 대한 혼돈은 미래를 위해 그 근원을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여성학자 배은경 교수(서울대)는 “의무병역을 해도 그 공을 사회가 자동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 가족을 부양하거나 애인에게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여성을 경쟁자인 동시에 성적인 상대로 생각해야 하는 청년 남성들은 스스로의 남성성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 혼돈은 일베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온·오프라인에서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여성혐오로 나타나기도 한다.

미투는 일시적인 소란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회를 바꾸려는 거대한 흐름이다. ‘본성’으로 치부되어온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전면적인 질문과 해체, 재구성 없이 미투 이후의 세상이 법적 처벌 사례 몇 건으로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곡된 남성성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을 때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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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직속기구인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로부터 정부 개헌안의 토대가 될 헌법 자문안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지 않게 대통령 개헌안을 확정해 국민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는 21일 개헌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가 의결해야 한다는 절차를 감안해 6·13 지방선거 때 개헌하려면 늦어도 이날에는 발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국회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데 대통령은 착착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참 이상한 개헌이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헌법이 규정한 권한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6·13 지방선거 때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니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시민의 뜻을 물어 개헌을 주도해야 할 국회가 개헌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고 있는 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자유한국당 등은 개헌안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당은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 실시를 홀로 반대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면서 당내 의견조차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있다. 4년 연임 대통령제 개선안을 두고도 문 대통령 퇴임 후 민주당이 최대 8년까지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로 몰아붙이고 있다. 과거 자신들이 4년 연임제를 주장하고 지방선거 때 투표하자고 공약한 사실을 잊은 듯하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야당을 압박해서라도 개헌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금처럼 야당이 모두 반대하는 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개헌을 밀어붙이다 개헌안이 부의조차 되지 못하면 모처럼 마련한 개헌의 기회마저 날릴 수 있다. 개헌을 무산시킨 책임을 야당에 지우면 당장 지방선거에서 유리할지 몰라도 문 대통령에게 돌아갈 비난도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한국당이 개헌안을 내놓고 여야가 밀도있게 논의하면 개헌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여야는 개헌에 대해 의견을 모아왔다. 당장 개헌 시기를 결정하기 어렵다면 개헌안의 내용을 합의하는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30년 만에 시민의 권리장전을 새로 쓰는 개헌의 주객을 바꿀 수는 없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최후의 수단이다. 개헌은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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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13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 출석해 검찰개혁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문 총장은 검찰의 권한이 비대하고,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이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검찰 권한의 분산과 통제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5대 핵심 지검에 특별수사를 집중시켜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이고, 조직폭력·마약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 기능을 법무부 산하 별도 기관에 넘기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득권을 내려놓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막강한 권한은 사실상 유지하고, 보여주기식 조치 몇 가지로 ‘개혁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것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권호욱 기자

가장 유감스러운 대목은 공수처 신설을 두고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 부분이다. 문 총장은 “공수처 도입에 대한 국회 논의 결과를 국민의 뜻으로 알고 존중하겠다”면서도 “도입된다면 위헌적 요소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수사작용은 행정부가 맡는 게 헌법의 삼권분립 취지에 부합하는 만큼, 공수처를 행정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수처의 독립적 위상에 대해선 정부와 국회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공수처 도입의 각론을 논의할 단계에 갑자기 원론적 문제를 꺼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 총장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을 두고도 검찰이 ‘병존적’으로 수사권을 보유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를 공수처에 전담토록 하자는 여권 입장과도 거리가 멀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문제 역시 현재의 틀을 대체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개혁을 향한 시민적 열망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총장이 국회에 나와 기득권을 고수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른 배경은 짐작할 만하다. 지난해 말 적폐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검찰은 기력을 되찾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고비마다 권력을 엄호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그들이 다시 칼을 쥐게 되자 스스로를 청산의 목표물로부터 분리해냈다. 법무부조차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공수처의 위상·기능을 대폭 축소한 법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거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시민의 염원인 검찰개혁이 해묵은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에 밀려 또다시 좌초할 판이다.

검찰권의 축소와 분산은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시대적 과제다. 문 총장의 국회 발언은 검찰의 자정에 대한 기대가 무망함을 확인케 한다. 국회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검찰개혁 속도를 높여야 한다. 검찰도 꼼수로 개혁을 피해볼 생각은 접고, 환골탈태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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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새벽에 길어올린 한 생각>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출판기념회에선 황지우 시인이 축시를 낭송하고, 가수 장사익·정태춘·박은옥이 축하공연을 했다. 출판기념회는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지만 정작 책의 저자는 없었다. 당시 박 시인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책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1998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서간문집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현직 대통령 부인의 출판기념회여서 정·관계 인사와 문인, 여성계 인사 등 1000여명이 모였다. 이 여사의 출판기념회는 책의 출간을 알리려는 목적보다는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서민들을 돕기 위한 일종의 ‘모금 행사’ 성격이 짙었다. 실제로 이 여사의 인세 수입과 출판기념회 수익금 전액은 불우이웃돕기에 쓰였다.

출판기념회는 저자와 지인들이 집필의 고통과 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행사다. 하지만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여는 출판기념회는 선거자금 모금수단이 된 지 오래다. 올해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기승을 부렸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선거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후보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거나 이른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겐 출판기념회 초대장이 ‘현금 납부 고지서’나 다름없다.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책값으로 수천만원을 내도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부정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더구나 회계장부를 남기거나 신고해야 할 의무조차 없다.

400쪽짜리 책 100권이 만들어질 때마다 30년 된 나무 한 그루씩 사라진다고 한다.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정가보다 수십~수백배 많은 돈을 내고 구입한 함량미달의 책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정치인들에게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책 모독 금지법’ 제정을 위한 입법 청원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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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한국 강릉

10일 오후 1시15분. 셔틀버스에서 내렸다. 30명은 돼보이는 사람들이 강릉올림픽파크로 향하는 건널목에 서 있었다. 고요했다. 둘러보았다. 고요하지 않았다. 수어(手語)가 오가고 있었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보러 온 청각장애인들이었다. 사람이 모이면 소리가 나야 한다는 고정관념. 부끄러워서 길을 재촉했다.

오후 3시30분. 강릉하키센터 관중석이 가득 찼다. 입장객 6058명. 파라아이스하키(para ice hockey·장애인 아이스하키의 공식 명칭) 예선 한·일전에 나설 양국 대표선수들이 입장했다. 차례로 호명될 때마다 큰 박수가 터졌다. ‘빙판 위의 메시’로 불리는 세계적 골잡이 정승환(32)이 소개되자 함성은 더 커졌다.

휘슬이 울렸다. 1피리어드는 잘 풀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구호가 나왔지만 ‘의무방어’처럼 들렸다. 2피리어드. 장동신(42)의 첫 골이 터졌다.

강릉하키센터에서 10일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한국과 일본의 예선경기에서 한일 양국의 관중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운 채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강릉 _ 강윤중 기자

관중석 온도가 급상승했다. 사내 입장권 추첨에서 당첨돼 왔다는 옆자리의 두 여성도 신나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오기 전에 걱정했다. (너무 힘들게 경기하면) 눈물나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 괜히 했다. 스피디하고 긴박감 넘친다.”(김슬기씨·32) “몰입도 최고다. 앞으로 방송에서도 중계를 해줬으면 좋겠다.”(서모씨·32)

 3피리어드. 정승환이 단독으로 치고 들어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관중석에선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대표팀이 파도타기 응원을 보는 건 처음일 터다. 조영재(33)·이해만(46)의 추가 골이 이어졌다. 일본이 한 골 만회했지만 게임 오버. 4-1 승리 후 인사하는 서광석 감독(41)의 얼굴이 환했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서 감독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10여년간 투병하다 작고했다. 모교인 경복고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하던 서 감독이 파라아이스하키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패럴림픽 개막 전(6일)과 예선전 2연승 후(11일) 두 차례 서 감독과 전화 통화를 했다.

- 선수들에게 아이스하키의 의미가 각별할 것 같다.

“비장애인팀도 지도해봤지만 파라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간절함이 더하다. 대표팀에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중도장애인이 많은데, 이들은 선뜻 밖에 나서지 못했다. 밖에서 생활할 때는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선 다르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퍽을 오른쪽으로 보내길 원하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보내길 원하면 왼쪽으로 보낼 수 있다.”

- 선수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국가대표 17명 중 강원도청 소속 13명을 제외하고 4명은 직업이 따로 있다. 이 선수들은 주말에 하루이틀 클럽팀에서 훈련하는 게 전부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는 실업팀이 꽤 있는데, 파라아이스하키는 강원도청 한 팀뿐이다. 대표로 소집되면 훈련수당이 나오기는 한다. 패럴림픽은 1년씩 훈련하니 괜찮지만, 다른 대회는 훈련 일수가 적어 수당이 적다. 정말 좋아해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국가대표가 됐으니 휴직계 내겠다’고 직장에 말하기도 어렵다. 실업팀이 늘었으면 한다.”

-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연장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체코전이 특히 화제다.

“체코전에서 조금 긴장하긴 했는데,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표팀에 운동을 오래 하고 나이 많은 선수들이 여럿이다. 주장 한민수 선수(48)는 패럴림픽 출전이 세 번째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간절함이 크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한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 2012년 4월 노르웨이 하마르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파라아이스하키의 옛 명칭)대표팀이 20시간의 비행 끝에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노르웨이 하마르에 도착한다. 관중석에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덩그러니 펼쳐져 있다. 응원단은 없다. 격렬한 경기 중간 휴식시간에 물 따라주는 사람도 없다. 은메달을 따고 개선해도 공항엔 가족뿐이다.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보여주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6년 전 모습이다.

영화는 하마르 대회에서 준우승하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하게 좇아간다. 미화도, 과장도 없다. 비장애인 여자친구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유만균 선수(44)는 “솔직히 나도 나중에 딸이 장애인 (신랑감) 데려오면 안 좋아할 것 같다”고 한다. 29세 때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종경 선수(45)는 “저 위(하늘나라) 올라가면 말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했다고. 당신들은 한 가지 인생만 살았지만 저는 두 가지 인생(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살아봤다고.”

3년간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촬영한 김경만 감독을 인터뷰했다.

- 선수들의 밝은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과거형으로 물었다. 사고 전, 다리 있을 때… 이런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이 제일 좋다고 했다. 비장애인들은 행복을 위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자꾸 밑으로 떨어진다. 이 선수들은 불행의 밑바닥까지 가봤다. 그래선지 위로 올라가는 일밖에 안 남은 것 같다. 만약에 ‘행복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이들은 행복감수성이 강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하다고 한다.”

- 여자들은 ‘남자들은 왜 우리를 동료로 대하는 게 어려울까’ 생각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맞다. 너무 친절하지도 말고 똑같이 대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함께 지내보고야 알게 됐다. 장애인들의 장애는 모두 다르다. 계단을 못 올라가거나, 높은 데 있는 물건을 잡기 어렵거나, 앞이 안 보이거나…. 그런데 장애인이면 모든 걸 도와주려고 한다. 무릎이 아픈 사람은 무릎과 관련된 것만 도와주면 된다. 저는 선수들과 가까워진 뒤에는 촬영 장비도 들어달라고 했다. 제 팔힘이 더 약하니까….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면 경험이 쌓인다. 옆에 장애인이 있으면 바로 이해된다. 우리나라에선 어렵다. 교육이 분리되고, 직장에서도 장애인을 만나기 힘들고, 집 근처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오는 것도 반대한다. 이번 패럴림픽도 방송 중계가 너무 적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기인데 재활운동으로 여기는 것 같다.”

- 영화에 나온 선수 대부분이 이번 올림픽에도 출전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응원을 들어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마음껏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 다시, 2018년 3월 한국

“다리가 없는 건 최악이다. 학교 가는 30분의 길은 지옥 같았고, 매일 피투성이가 된 내 다리는 후시딘 연고가 마를 날이 없었다. 남들은 내 걸음걸이를 보고 비웃기도 하고 흉내내며 놀리기도 했다. 그런 이들과 싸우는 수가 늘어갔고,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어디론가 숨어야만 했다. 대학에 입학해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시작하기까지 도전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불행했던 아이! 그 한 번의 용기있는 시작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

10일 일본전과 11일 체코전에서 모두 3골을 넣은 정승환이 패럴림픽 개막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다섯 살 때 집 근처 공사장에서 놀다 오른쪽 다리가 쇠파이프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결국 다리 일부를 잃고 의족을 차게 됐다. 고통스러운 유소년 시절을 보내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167㎝, 53㎏의 작은 체구를 강점으로 만들었다. 몸을 키우는 대신 속도를 높여 상대 수비를 가볍게 제친다. ‘로켓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아이스하키선수’로 불리는 이유다.

“국제대회에서 외국인들이 정 선수를 보면 난리가 난다. 인간이 아니라며 감탄한다. 방금 이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저쪽에 가 있으니까.”(김경만 감독)

정승환은 경향신문에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장애인 유소년팀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아이스하키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개봉한 7일 낮. 서울 용산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 갔다. 156석 규모 상영관이 텅 비어 있었다. 영화를 보러온 관객은 나뿐이었다.

축제는 짧다. 열광과 함성으로 가득 찼던 강릉하키센터는 다시 고요해질 것이다. 그래도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17인의 삶은 계속 시끌벅적하기를 바란다. 박진감 넘치는 그들의 경기를 TV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1박2일>이나 <런닝맨>에 출연하고,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 ‘팀 킴’처럼 광고도 찍었으면 좋겠다. 정승환은 패럴림픽 홍보 영상에서 “가장 힘든 건 무관심”이라고 했다.


파라 아이스하키

아이스 슬레지하키(Ice Sledge hockey)로 불리다 2016년 11월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스케이트 대신 썰매를 타고 경기를 펼친다. 선수들이 쓰는 두 개의 스틱 양 끝에는 썰매 추진력을 얻기 위한 스파이크와 퍽을 치는 데 쓰는 블레이드(날)가 달려 있다. 한 경기는 15분씩 3피리어드로 구성되며 필요시 연장전과 슛아웃(승부샷)이 치러진다. 정규 피리어드 사이에는 15분간 휴식한다. 동계패럴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으로 꼽힌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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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