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갑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번 사건의 주역들은 한진그룹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에 이어 일가족이 연타를 날린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의 반복되는 사과가 있었다.

재벌의 갑질 사례는 한진그룹을 제외하고도 많고,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너로 예정되어 있는 그들 사회의 악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질로 인한 손실을 당사자가 전부 감당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주주들과 국민, 직원들이 나눠서 진다는 것이다. 조현민 전 전무의 사건이 알려진 4월12일 대한항공 주가는 매도세에 밀려 전일 대비 6.5%나 하락한 3만3550원으로 마감되었고, 지금도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너리스크로 당일 손실을 보고 매도했거나, 보유하고 있는 일반주주와 12.45%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까지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기업의 이미지 추락으로 정신적 고통과 우리사주조합 주식 가치하락까지 겪고 있다. 갑질 당사자는 사과와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고,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도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일로 발생할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온 가족이 ‘갑질’ 논란에 휩싸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외항기를 이용할 때 해외지점 직원들을 동원해 항공기 착륙 게이트를 변경하거나 보안 검색 편의를 요구하는 등 과잉의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벌의 갑질을 불러오는 근본적 배경은 커질 대로 커진 경제력 때문이다. 이를 등에 업고 대대로 경영권 세습과 황제경영을 하며,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해소가 근본적 방편이지만,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과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도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지배구조 개선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의 선출,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법무부가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이슈가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갑질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이다. 즉 기업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본 주주들에 대해 사재로 배상을 하도록 하고, 중대 경제범죄로 처벌을 받았을 경우,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경제·경영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업 자체로 이를 정관에 반드시 규정하도록 하고,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거래소를 통한 강제적 규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계열사를 포함해서 정관에 반드시 명시할 것을 상장 유지조건으로 규정한다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갑질은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3배 정도의 손해 배상 개념이 아니라, 징벌성격의 상한이 없는 배상액 또는 기업 매출액 대비 10%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입증책임 완화를 통해 약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행위를 했을 때 잃는 것이 막대하다는 것을 사전적으로 인식시켜줘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재벌들도 전근대적인 사고를 넘어, 갑질을 당하는 상대방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그 행동이 피해자뿐 아니라, 기업과 주주, 국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하기를 바란다.

<권오인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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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을 쓰고 있다. 피고는 자유한국당과 김성태 원내대표,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이 고의로 저지른 위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이다. 국가배상법에 따른 소송이어서 대한민국도 피고에 포함되었지만, 실제로는 자유한국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소송이다.

물론 이 소송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권자로서 잘못은 따져야 하겠기에, 마지막 방법으로 소장을 제출한다.

이번에 피고인 자유한국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은 주권자들을 배신하는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아무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위헌으로 결정난 국민투표법 개정을 거부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7월 재외국민들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국민투표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2015년 연말까지 개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2015년 연말을 넘겨서도 국민투표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선관위도 2017년 10월에 국민투표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다시 제출했다. 정상적인 국회라면 당연히 국민투표법을 개정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지금까지도 국민투표법 개정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 표결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명백하게 위헌인 법률을 그대로 방치하는 직무유기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투표법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재외국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투표권은 선거권과 함께 국민의 기본적인 참정권에 해당하는 권리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국민투표는 선거와 달리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절차이므로, 국민투표권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권리”이고, 국민의 본질적 지위에서 도출되는 권리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근본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헌법개정도 국민투표 사안이지만, 국가의 중요정책도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헌법 제72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그런데 국민투표법이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제72조에 따른 국민투표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령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을 때도 지금 상황에서는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 헌법에서 정한 절차를 실행할 수 없는 국가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국민투표법 개정을 거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명백한 위법행위이고 위헌행위이다.

이로 인해 주권자인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국회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개헌에 반대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자기 입장을 갖고 헌법개정안에 대해 찬·반 의견을 갖는 것은 그 자신의 권리이다. 그러나 개헌 국민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 위헌으로 판명된 법률을 방치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꼼수이고 반칙이다.

이런 행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앞으로도 이런 반(反)헌법적인 행태가 계속될 것 아닌가? 그래서 소송을 통해서라도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법원도 쉽게 기각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명백한 헌법위반 상태이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국민투표권이 구체적으로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송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송이다. 그러나 승소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는 소송이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소송을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소송을 통해 자유한국당에 책임을 묻고, 그 소속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

한편 지금이라도 원내 정당들에 촉구하고 싶다. 국민투표법 개정을 거부한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책임이지만,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무산된 데에는 모든 정당들에 책임이 있다. 지금은 책임공방만 벌일 때가 아니다. 각 정당들은 앞으로 개헌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일정과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이번에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발표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개헌에 대해 기대를 갖게 되었다. 기본권이 강화되고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개헌안이 통과된다면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가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개헌이 그냥 무산되고 만다면 주권자인 국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기운처럼, 국내정치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의 국회에 기대할 것이 있는지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다. 만약 국회의 직무유기가 계속된다면, 정말 주권자들이 다시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회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의 국회를 매년 6000억원의 세금을 들여가면서 계속 방치해 둘 수는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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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봄날, 국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그린보트가 닻을 올렸다. 그동안 환경재단은 일본의 피스보트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1100명의 한·일 승객을 ‘피스&그린보트’에 태워왔다. 올해부터는 환경재단 단독으로 1600여명을 태운 ‘그린보트’ 항해를 시작했으나 그동안 일본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던 ‘평화’ 부분을 놓지 않았다. 평화란 결국 현 세대가 후손들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줄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끝에 이뤄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여정에서 들른 기항지는 총 세 곳이다. 조선사람 ‘카레이스키’가 거주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윤봉길 의사가 생애 마지막을 보낸 일본 가나자와, 마지막으로 유엔인간정주계획(UN-HABITAT)과 함께 지속가능한 도시(폐기물 관리 분야)로 주목받는 후쿠오카. 이같이 환경재단이 준비한 크루즈 여행은 일반적인 관광 패키지 상품과는 다르다. 그린보트는 문화적인 접근 방식과 전문성을 통해 환경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기항지뿐만 아니라 더 건강한, 더 즐거운, 더 새로운 지구라는 주제에 맞춰 각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고 6박7일간 다채로운 강연을 망망대해에서 제공한다. 승객은 객실로 배달되는 빽빽한 강연 시간표에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행복한 고민에 싸인다.

그린보트에서 주어진 업무 특성상, 다국적 출신 선원들과 줄곧 소통해왔다. 이들은 그동안 카지노와 엔터테인먼트 공연 열기가 가득했던 공간이 승객들이 노트에 필기하고 토론하는 교육의 장으로 바뀐 것에 대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리는 승객을 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그린보트는 대한민국의 아픔으로 남게 된 4·16 세월호 참사를 바다 위에서 기억하고자 했다. 2018년은 그 후 네 번째의 봄을 맞이했고, 승객들은 낭독회와 추모 콘서트를 통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먹먹해하며, 배에서 육지로 동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린보트는 양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서울 1000여개의 학교 중 환경교육을 하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다. 현 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시민단체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고, 그린보트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환경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 취지에 공감한 기업들이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어린 새싹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또한 기업은 임직원을 인솔교사로 파견 보내 임직원과 학생 간에 멘토링이 이뤄졌다.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의 확산은 지속돼야 한다.

그린보트는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그린보트란 공간에서 음식 낭비 행위에 대해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점은 차치하더라도, 대형 크루즈에서 환경 가치를 설파하는 모순된 상황과 그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그린보트가 안고 가며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단독으로 시작한 그린보트가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그럼에도 탑승객들은 시민단체인 환경재단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간 대형 사업으로 입지를 굳혀온 환경재단은 시간이 흘러도 시민단체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주영 | 환경재단 선임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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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6·25 때 단신 월남한 실향민이지만 고향 얘기는 잘하지 않으신다. 80대 중반의 연세로 남쪽에서 보낸 세월이 북쪽에서 살았던 시간의 네 배가 넘으니 기억과 애착이 차츰 바래서인지도 모른다. 월남할 당시 황해도 연백의 고향에는 어머니와 네 살배기 늦둥이 동생만 있었다니, 오래전에 돌아가셨을 어머니 연세를 떠올리고는 그리움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띄엄띄엄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나도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야기에 어느덧 황해도민의 정서에 동화된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향을 물으면 대뜸 “황해도 연백이오!” 해놓고는 “사실은 파주에 터를 잡고 내내 살았지만…” 운운하며 설명을 붙이곤 한다. 사람들은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내 대답을 농담으로만 듣고 “내가 만주 개장사 시절에 말이야”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실향민의 향수 같은 건 별로 내보이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1994년 무렵 자유로가 개통되어 가족들이 함께 강 건너 북한 땅을 보러 갔을 때는 조금 달랐다. 자유로를 달리다가 오두산 통일전망대쯤에 이르면, 한강이 임진강과 합쳐지고 강 건너편이 김포에서 북한 땅으로 바뀐다. 차에서 내려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적이 별로 없었기에 우리들은 당황했다. 형이 아버지를 진정시킨답시고 다가가 말했다. “아버지, 그쪽이 아닌데요. 북쪽은 저쪽이에요.”

아버지는 잘살지도,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연백평야 중농 집안의 맏아들로 17살 나이에 해주에 유학을 나가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몇 개월 후 인민군이 후퇴하는 와중에 징집을 당했다. 후퇴하는 도중 부대가 깨져서 고향에 돌아오니 전쟁이 스치듯 지나갔는지 평온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다시 해주의 학교를 다니기도 했단다. 1·4 후퇴 때 탈영병 신세가 될 것 같아 연백의 넓디넓은 갯벌을 걷다 쪽배를 타다 하며 강화도로 월남을 했다. 이북 출신인 데다 학교에서 배운 러시아어와 영어 실력이 제법이어서 일명 ‘켈로부대’로 불리는 미군 8240부대에 입대를 했단다. 켈로부대에서는 무시무시한 북파공작원 따위는 아니고 그냥 첩보 분석을 하며 지냈나보다. 부대가 강화 교동도에 있었다는데, 바다 건너편의 고향땅을 보며 가슴이 많이 메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는 다시 국군에 정식 입대를 하여 꼬박 복무기간을 마쳤다니, 인민군, 미군, 한국군을 모두 거친 희귀한 경우다. 아버지는 남쪽에 살던 먼 일가붙이 아저씨의 중매로 역시 개성 인근에 살다 일가족이 함께 월남한 어머니를 만났다. 그러고는 역시 미군과의 인연으로 미군 군속으로 취직해 잡다한 노무와 건축일 등을 배우고는 결국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

이북사람들답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냉면과 만두를 상식하곤 했다. 겨울이 되면 만두를 수백 개씩 빚어 얼려두고 먹었고, 식구가 외식을 하면 냉면을 먹는 일도 잦았다. 내 기억 속의 첫 냉면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 구파발에 있는 한 이북식 냉면집에서 먹었던 것이다. 사실은 냉면보다 함께 사주신 불고기가 훨씬 맛있었지만. 나는 머리가 커서야 이 집안 내력에 허구가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연백 촌구석 출신의 17살 소년이 냉면을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고 무슨 맛을 알았을까. 하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모시고 양평 가는 초입에 자리한 옥천의 냉면을 먹으러 갔을 때, 당신의 설명을 듣고는 그 허구를 믿기로 했다. “해주냉면이란 것도 있단다. 황해도 사람들도 평양 못지않게 냉면을 많이 먹는데, 여기 냉면이 딱 그 맛이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금요일, 전국의 평양냉면 집들마다 손님이 줄을 섰단다. 나도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일산 킨텍스 근처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다. 손님이 많아서 2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정상회담의 내용만큼이나 평양냉면에 쏟는 사람들의 관심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에게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둘러싼 골치 아픈 정치적 분석과 CVID 등의 어려운 용어보다 ‘평양냉면’이라는 정서적 상징이면 충분한 것이다. 평화는 고도의 정치적 협상에 앞서 사람들의 마음에서부터 온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컸는지를 평양냉면 그릇 속에서 새삼 읽는다. 그러나 나는 심드렁해진 아버지의 마음처럼 이제는 통일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통일은 상징화된 이념일 뿐, 거기까지 가는 데 지불해야 할 고통과 혼란을 생각하면 절대선일 수 없다.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전쟁이 더 이상 없다면, 후퇴할 수 없는 평화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부디 우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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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박라연(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는 빛이 가득한 때를 살기도 한다. 흐뭇하고 황홀한 시간을 살기도 한다. 시인은 그 시간을 옷과 구두와 가방을 걸치는 일에 비유한다. 그러나 눈부신 시간은 짧고, 연속적이지 않고, 사라진다. 마치 생화로 만들었으나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처럼. 그렇지만 그 기쁜 순간들 덕택에 우리들은 삶이라는 의복의 낡음을 잠시 가릴 수 있다.

시인은 “세상의 어두운 창고 하나쯤/ 헐어서/ 남향을 찾아줄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남쪽으로 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우리 내면의 공간을 환하게 비추었으면 좋겠다. 금모래 같은 환하고 밝은 시간이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이라도 계속 쏟아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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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의 표준시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한다. 만국지도회의는 1884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經線)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아 경도 15도를 벗어날 때마다 한 시간씩 시차를 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같은 표준시를 사용한다. 하지만 미국·캐나다·러시아와 같이 국토가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 국가에선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쓰고 있다. 표준시는 정치적 목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 이전까지 지역별로 5개의 시간대가 있었지만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베이징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시차를 없앴다.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이후 러시아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찬 손목시계(왼쪽)의 시각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손목시계(오른쪽)의 시각보다 30분 늦었다. 김 부부장이 평양 표준시보다 30분 빠른 한국시간에 시곗바늘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한국의 표준시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제정됐다. 한반도의 중심인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세계 표준시와 8시간30분 차이였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는 동경 135도(9시간 차이)로 변경됐다. 총독부가 일본 도쿄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4년 주권 회복 차원에서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1년 도쿄 표준시로 재변경했다. 북한의 표준시는 남한과 같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아오다 2015년 8월15일부터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다. 남한보다 표준시를 30분 늦춘 것이다. 당시 북한은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표준시까지 빼앗는 범죄행위를 감행했다”며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평양시간’이 등장한 이후 개성공단 출입경과 남북 민간 교류 등에서 일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의집 대기실에 서울과 평양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2개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북한의 표준시를 30분 앞당기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이다. 북한은 5월5일부터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바꾸기로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평양시간을 고침에 대하여’라는 정령을 채택하고, 평양시간을 동경 135도를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9경대시(현재보다 30분 앞당긴 시간)로 고쳐 주체107(2018)년 5월5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평양시간’이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남북은 같은 시간 속에서 동행(同行)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란 먼 길은 혼자가 아닌 함께 가야 다다를 수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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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니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멱감는 한강. 2013년 서울시가 한강자연성회복 기본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시한 한강의 미래상이다. 그러나 한강은 국가하천이기에 박근혜 정부와의 협력은 불가피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관광자원화 계획과의 절충으로 2015년 8월 한강협력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여의도 통합선착장 등 한강협력계획의 4대 핵심사업 추진을 위한 절차를 착착 진행했다. 그러는 동안 서울시의 자연성회복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불균형은 예산 사용만으로도 확인된다.

여의도 통합선착장을 비롯해 여의나루역 인근에서 한강 수변까지 상업·문화 시설을 2020년까지 들이는 이른바 4대 핵심사업은 총사업비가 1896억4000만원. 반면 이촌지구 시범사업 등 자연성회복 사업에는 지난 5년간 306억원을 들였다. 물론 생태복원 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하란 뜻은 아니다.

또한 자연성회복계획의 기본은 물길 복원이다. 2011년 박원순 시장 출범 이후 한강오염 저감을 위해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시민들이 부담하는 하수도 요금은 두 배가 늘었지만 수질 개선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려면 수량을 늘려야 한다며 팔당댐 수문만 바라보는 안일한 대응은 지난 시대에나 하던 일이다. 정부는 4대강 보 수문을 열어 모니터링을 하고, 올해 말이면 4대강 보의 활용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4대강 보의 원조 격인 서울 한강의 신곡수중보를 열어 물길을 복원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강을 큰 배가 다니는 인공수로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경인 아라뱃길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의 시범사업이다.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바꿔 비극이 시작됐고, 경인 아라뱃길은 이미 실패했으나 한강까지 연결해 만회해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신곡수중보는 사실상 한강하구의 분단선이다. 한강하구 양안을 감싸는 철책은 신곡수중보 인근에서 시작된다. 남북이 평화로 가는 길에 한강하구의 평화·생태적 활용 방안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음 시대를 열어갈 지도자의 몫이다. 서해로 가기 위해 인공수로인 경인운하를 비집고 통과해보려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서울시는 2014년 지방선거 때도 연구용역을 한다며 신곡보 철거에 대한 입장을 보류하더니,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다시 연구용역을 한다며 시민사회의 요구를 뭉개려 들고 있다. 4대강사업이 옳다던 전문가들은 지금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말 신곡보 철거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을 불러 신곡수중보 분야별 집중회의를 추진한 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30년 동안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에 연구용역을 다시 해서 신곡수중보를 철거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반대 측을 설득하고 조율할 몫은 여전히 남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울시의 결단과 의지다. 물론 서울시가 혼자 책임지란 뜻은 아니다. 인천시와 수자원공사는 여전히 한강을 경인운하와 연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경제성도, 환경성도 검증되지 않은 개발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를 우려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여의도 국제무역항 지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여건이 조성되면 대규모 국제무역항을 조성할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한강협력계획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근혜 정부의 절충으로 시작됐다. 그때는 여러 사정으로 사업 추진이 불가피했을 수 있으나, 지금은 서울시의 의지에 따라 철회할 수도 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여의도 한강공원에 인공구조물을 더해 논란을 더하기보다, 신곡수중보를 터서 생태 복원과 평화로 가는 물길을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선상규 | 서울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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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북부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에 초청하겠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9일 밝혔다. 북부 핵실험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북한 핵무력 개발의 핵심시설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한편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결정을 채택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에서 비핵화의 내용이 빈약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시키는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한이 정상회담 다음 날인 지난 28일 대내외 매체를 통해 ‘판문점선언’의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 것도 비핵화 의지를 가늠케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회담에서는 북남관계 문제와 조선반도(한반도) 평화보장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비롯하여 호상(상호)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의견들이 교환됐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선언 전문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가 김 위원장의 사적 약속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의지로 실천할 뜻이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선대 수령의 업적’이라고 해왔고, 지난해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핵무기의 폐기를 뜻하는 비핵화를 주민들에게 공표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를 넘는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확인할 과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 등 비핵화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한 것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30분 차이가 나는 남북의 표준시를 남측에 맞추겠다고 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행정적인 어려움과 비용이 따르는 표준시의 통일을 선제적으로 결정한 것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으로 보인다.

보수세력들은 그럼에도 의구심을 품은 채 폄훼·왜곡하기에 바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남북 위장평화쇼”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 27일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약속했던 비핵화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수준”이라고 논평했지만 아예 사실과도 다르다. 10·4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돼 있을 뿐 ‘비핵화’란 단어가 없다. 6월 지방선거 국면이 본격화되면 한국당의 사실 왜곡과 막말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거대한 전환흐름에서 소외될 것을 자처하는 딱한 모습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판문점선언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장정에 북한은 돌아갈 다리마저 불사르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이제 우리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정쟁으로 실종시키는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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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면서 공은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북·미 두 정상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과 시한을 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폐지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도 핵심 의제다. 북·미 정상회담 시간표는 빨리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생각에는 북한과의 회동이 오는 3~4주 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이 당초 예상한 5월 말~6월 초 개최보다 앞당겨질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장소 후보지가 두 개 나라로 좁혀졌다는 말도 했다. 북·미 양국의 사전협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미 양측의 태도는 긍정적이다. 청와대가 29일 밝힌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는 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은 비핵화의 명분과 의지, 그리고 방안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총지휘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남북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판문점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고무됐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28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고대하고 있으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매우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강경파인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한반도 주변의 위기상황을 해소하는 중요하고 긍정적인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분위기는 좋지만 비핵화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 북·미 양측의 생각이 일치하는지부터 불분명하다. 판문점선언이 담고 있는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핵폐기’(CVID)에 근접해 있지만 북한이 정말 핵탄두 모두를 폐기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특히 비핵화는 신고-핵·미사일 및 관련 시설 폐기-검증-상시 검증 제도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핵화 방법과 시한을 결정하는 일도 난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벽한 로드맵을 결정하지 않으면 타결이 힘들고, 설령 어렵게 타결되더라도 이행과정에서 탈이 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폐지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휴전협정 폐지와 평화협정 체결, 종전 혹은 불가침 선언, 북·미 수교가 필요하다. 휴전협정 폐지와 평화협정 체결은 중국 등 주변국의 지지와 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안의 복잡성이 더하다. 더구나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했을 뿐 북한의 요구 사항을 수용할 것인지 거론한 적이 없다.

가능하다면 미국은 북한의 조건 없는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조치에 상응하는 선제적 조치를 해야 한다. 북·미 간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앞서 워싱턴-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이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민생 관련 대북 제재 일부 해제 등 선행 조치를 시행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의 또 다른 관건은 이행 방식이다. 미국은 북핵·미사일 폐기와 북·미 수교·평화협정 체결 등의 포괄적 일괄타결을 선호하지만 북한은 단계적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간극을 좁히고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비핵화 문제를 담판하는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미국은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을 가늠할 역사적인 사건이다. 특히 7000만 한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중한 접근과 담대한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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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스러운 날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일구어낸 장면마다 가슴 벅찼다. 한반도 평화를 약속하며 두 손 꼭 잡고 서 있는 남북한 정상의 모습에 감동받지 않는 시민이 있으랴. ‘멀다고 말하면 안되겠구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서울에서 평양까지, 아니 분단에서 통일까지, 한 뼘에 불과한 거리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기에 놀랍기까지 했다. 문화와 언어,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며 한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70여년간 갈라져 만나지도 못한 채 반목만 해왔단 말인가. 그 세월이 만들어낸 이질감이란 얼마나 또 허약한 것인지, 한순간에 깨달아 버린 시민들이 평양냉면집 앞에 줄을 섰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물론 평화체제로 바뀌고 남북한 간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된다고 해서 개인의 힘든 일상에 당장의 큰 변화가 오지 않을 수 있다. 굴곡진 현대사의 공간을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 채운다 한들 성평등이 곧바로 실현되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로서 북한여성들에 대한 착취는 심화될지도 모른다. 북한여성들에 대한 남한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자본의 힘을 빌려 저열하게 구현될 우려도 있다. 정상국가란 이미지가 여전히 지배적 남성과 종속적 여성 간 결합에 기초한 가부장적 가족으로 재현되는 현실에서, 민족 간 화해가 바로 여성의 자유로 연결되지 않음을 여성들은 안다. 남성우월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민족은 영구히 남성의 얼굴을 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성평등한 민주사회의 기본 전제다. 전쟁이 발발하면 여성과 아동이 최고의 피해자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냉전체제와 분단사회는 기본적으로 갈등과 반목, 공포와 불신, 적대와 증오를 먹잇감으로 유지된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어야 할 ‘하나의 적’이 늘 상정되어 있어야 하고, 국가안보와 사회 안녕을 흔드는 어떤 것도 바로 그 적과 연결된다. ‘적의 위협이 야기하는 불안’이란 담론은 가족 안정성을 핵심적 가치로 만들고, 여성의 사적 역할을 국가안보와 연결 짓게 한다.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는 재생산의 도구, 모성의 담지자, 가정의 천사는 여성들의 숙명이 된다. 아름다움을 가꾸고 가정 내 역할을 익혀 남성들의 충실한 내조자이자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여성성의 구현이 된다.

이런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국주의적이고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기에 체제변혁적인 페미니스트적 사고는 늘 후순위로 밀리거나 심지어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질 확률이 높다. 확고한 성별 규범에 의문을 품으면, 반사회적인 것, 반체제적인 것, 심지어 반민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여성과 가부장적 질서에 의문을 품는 소수자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희생양이 되기 쉽다. ‘빨갱이’라는 딱지가 ‘페미나치’ ‘종북 게이’ 등으로 변용되어 페미니스트들과 성소수자들을 비하하거나 낙인찍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예증이다.

정전이 종전으로, 마침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실현될 날을 상상하던 그날, 나는 한국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창시자인 이효재 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분단·냉전·군사독재 체제가 결합되어 독특한 한국여성의 위치가 구성되었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사회학자, 여성학자, 여성운동가다.

선생님은 식민지 지배로 야기된 분단구조와 가부장제의 전통 위에 유지되는 자본주의 성장으로, 대한민국 여성은 이중삼중의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고 강조하셨다.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고 사회적 보수성을 강요하는 반공분단체제는 필연적으로 여성(성)에 대한 의식뿐 아니라 남성문화 자체를 왜곡시킨다. 이에 여성은 가족 안의 종속적 역할로 한정되거나, 값싼 임금노동자 혹은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어,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마저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사회 모든 차원에서 성평등 구현 없이 민주사회 건설은 난망하다고 보셨기에, 분단 극복은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니되, 필수조건이라고 하셨다. 분단체제와 성차별적 구조는 상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선생님이 소망하신 바, 평화체제를 구현할 역사적 주체로서 여성이 제대로 자리매김되어야 할 때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활공동체 실현을 위해 남북한 시민들의 변혁적 연대를 일구어낼 때다. 그들이 노래하는 벗, 동지, 우정에 여성이 부재하며, 화해와 용서의 내용에 여성에게 자행된 잔인한 폭력의 과거사가 포함되지 않을 때, 민족공동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평화공동체는 허상이라는 사실 또한 끈질기게 일깨워야 한다. 평화의 대로에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등한 인격체로 나란히 걷게 될 날이 더 멀어지지 않도록.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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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백화점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군의 무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반도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통일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른바 NL 계열의 활동가들이었다. 전단을 나눠주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이들을 나는 매우 냉소적인 태도로 바라보았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전단을 건넸을 때, 나는 통일비용 같은 것을 들먹이며 무턱대고 통일을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도 북한이나 통일 같은 이슈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는 두 버전의 통일이 있다. 하나는 북한을 붕괴시켜 흡수통일을 해야 한다는 보수의 통일론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협정과 연방제를 거쳐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진보의 통일론이다.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것도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애초에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때는 징집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야 할 때 정도다. 그러나 통일이 되고나서도 화약고 같은 동아시아 정세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중론이니, 결국 그마저도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여전히 실향민이나 이산가족들이 남아있다. 특히 북에 가족을 두고 탈북한 이들에게는 더 처절한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생인 나만 해도 통일 혹은 북한에 대한 의무감도, 부채의식도, 노스탤지어도 없다. 북 체제에 대한 선망도 증오도 이해하기 어렵고, 멀쩡한 가족들도 해체되는 마당에 서로 수십년간 다른 삶을 살아온 이산가족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북한이 남한의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과 북한의 존재가 남한 사회의 궁극적인 제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령 국제관계에서 북한의 존재가 남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단순히 북한의 군사행동을 견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북한을 직접 공격하는 옵션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도 남한의 몫이다. 이 좁은 땅에서는 북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남한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남한은 북한과 미국, 중국 사이의 관계에서 종속변수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한 사회에서 북한을 팔아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집단이 있다. 오랫동안 북한의 위협은 남한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전가의 보도였다. 독재도, 학살도, 마녀사냥과 기본권의 제한도 모두 북한의 위협으로 정당화되었다. 민주화가 되고 30년이 지났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자신들의 모든 사익 추구와 과오들을 북한의 위협으로 정당화하며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려 든다. 이 집단은 분단이 만들어내는 암흑에서 기원하는 무지, 공포, 불가항력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이 암흑이 계속되는 한 이들 역시 사라지지 않으며, 한국은 국가로서도, 민주주의로서도 온전할 수 없다.

정말이지 불쑥, 남북만이 아니라 미국까지 참여하는 정상회담과 평화협정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 변화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불안이 전해져온다. 그들은 사람들의 불행과 역사의 슬픔에 기생하며 살아왔다. 

북한이라는 거울에 비추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케인스가 경제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 이자생활자의 질식사를 기원했던 것처럼, 이 반사이익자들 역시 평화의 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시대의 요구다.

나는 여전히 민족에 대해 냉소적이다. 통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북한이 믿을 수 있는 협상 파트너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정상회담을 환영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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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26일 오전 8시45분, 미국 뉴저지주 호보컨시 역으로 기차가 진입하고 있었다. 역내 승강장은 출근길 시민들로 북적였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승강장에 들어선 기차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충돌방지대를 넘어 대합실 벽과 충돌한 후에야 멈췄다. 목격자들은 “기차가 전혀 감속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 사고로 한 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호보컨역의 충돌방지대는 1907년 역사(驛舍)를 처음 지을 당시 설치된 것으로 철근 콘크리트 재질로 되어 있었다. 이는 시속 20㎞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열차를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충돌방지대가 설치되었더라면 기차가 대합실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사고는 미국의 노후 인프라(infrastructure)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미국 전역에 깔려 있는 도로, 항만, 철도, 통신 등 인프라는 가까이는 수십년 전, 멀게는 100여년 전에 건설되었다. 아무리 유지·보수에 신경을 쓰더라도 세월의 힘을 이길 장사는 없다. 문제는 노후 인프라를 개선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작동하는 인프라를 어떤 정치인이 나서서 일신(一新)하려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프라를 지루한 것으로 여긴다. 결국 총체적인 개혁보다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땜질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노후 인프라 문제보다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화려한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현재 미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인프라의 위기는 이러한 선택들이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결과다.

인프라는 지루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인프라의 특성상 일단 자리를 잡으면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 없이 그 자리를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른 기술 혁신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프라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2016년 호보컨역 기차 사고가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하자 전국 교량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순간적으로 증대했다.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싱크홀 현상이 발생하자 각지의 도로 상태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양면적 성격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인프라의 특성과 문제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를 더욱 잘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십년 전 설치된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는 한국에서도 대두되기 시작했고 점차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인프라 문제는 미국에서와 같이 정치적 무관심의 대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대 대통령은 인프라를 일신하는 작업을 핵심 국정 과제로 삼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보화’라는 구호 아래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반도 대운하’라는 야심찬 기획을 내놓았고, 임기 내내 전국의 주요 하천을 정비하는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권역별로 19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하는 제도적 인프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듯 한국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은 인프라 구축 사업을 자신의 핵심 브랜드로 삼아 왔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국토 규모가 비교적 작고 인프라 사업을 중앙정부가 주도할 수 있다는 한국적인 특성이 깔려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임기 초의 정치적 자본을 가지고 추진해볼 만한 사업인 것이다. 나아가 일단 구축되면 그 자리를 지키는 인프라의 특성은 임기가 끝난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며 해당 정권의 정치적 유산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역대 대통령은 임기 중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을 인프라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프라에 내포된 가정들은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재편성하고 이를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브로드밴드 인터넷 인프라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 중소 규모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구상이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토목·건설 사업자들의 일거리를 보장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인프라의 형태로 물화(物化)된 정책은 임기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쉽게 제거할 수 없게 된다.

인프라 구축 사업은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한국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인프라 사업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구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임기의 첫 1년을 보낸 현 정부는 취임 당시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작년 10월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했다. 인프라 구축이라는 관점으로 위원회 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초연결 지능형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 사물인터넷(IoT) 전용망을 구축하고, 10기가 인터넷망을 상용화하며, 2019년까지 세계 최초로 5세대(G) 통신망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5G라는 구체적인 인프라 사업이 내포하고 있는 가정들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국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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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은 아닐 것이다. 눈 닿는 곳마다 꽃이 안 핀 데가 없고, 햇살 맑지 않은 데가 없고, 나뭇잎들은 갓 씻어놓은 듯이 온통 푸르다. 그야말로 온통 봄햇살에 봄나물에 봄꽃들이다. 책을 볼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그 시간에 이 봄을 즐기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요새 봄은 봄이 아니라 툭하면 재앙이다. 시간이 있어도 밖에 나갈 수 없는 날, 분을 풀듯이 읽어보는 책으로 추리소설은 어떨지.

로렌스 블록이 쓴 <800만가지 죽는 방법(Eight million ways to die)>이라는 소설이 있다. 몸을 파는 여자들이 연쇄적으로 죽고, 사립탐정인 주인공이 그 살인마를 추적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줄거리만으로만 보면 추리소설의 기본 문법을 그대로 좇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제목이 800만가지 죽는 방법일까. 연쇄살인마가 엄청나게 다양한 살인 기술을 구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오산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뉴욕이고 소설은 당시 뉴욕에 살고 있던 800만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800만명의 사람들에게 800만가지의 죽음이 있다는 뜻, 즉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죽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구 전체의 인구를 들어 75억가지 죽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대가 뉴욕이라는 것에 상징성이 있다. 세계의 중심인 그 도시에서는 고급 콜걸들이 잔인하게 살해를 당하고, 소박한 꿈을 꾸는 평범한 부부가 오랜 꿈을 이뤄 마련한 자기 집에서 강도를 당해 죽고, 노숙인들은 쓰레기통에서 주운 겉옷을 가지고 다투다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이고 죽고, 길거리를 걷던 사람은 이유없이 총을 맞아 죽는다. 거리에 버려진 티브이세트가 너무 멀쩡해 그걸 집으로 가지고 왔다가 그 티브이세트 속의 폭탄이 폭발해 죽는 사람도 있다. 그 누구도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총기난사도 있다. 아이들이 이유도 없이 죽는다. 그냥 차를 몰고 돌진해오는 사람도 있다. 쇼핑을 나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그냥 거리에서 죽는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 도시가 미쳤다는 거지.” 소설 속에서 사람들의 죽음은 운명처럼 보인다. 미친 도시에 살고 있는 운명, 미친 시대에 살고 있는 운명. 그러나, 반복되는 폭력, 운명이 되다시피 한 폭력의 배경에는 세계의 자본, 그리고 그 자본과 맞물려 있는 정치가 깔려 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는 그렇다. 뉴욕, 도쿄, 베이징, 어디나 그렇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이 거대한 자본과 정치의 메커니즘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다. 방관자가 되기를 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운명이다.

이 소설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이 무뚝뚝한 사립탐정이 구제불능에 가까운 알코올 중독자인 것 역시 매우 상징적으로 보인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800만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800만 모두가 술을 마시는 건 아니고 또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중독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절망적인 사연이 있다. 소설 내내, 범인을 쫓는 내내, 매튜 스커더가 금주를 위해 들이는 각고의 노력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답답해질 지경이다. 소설 내내 술 대신 커피를 어찌나 많이 마셔대는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커피 마실 생각이 뚝 떨어졌다. 사흘째 술을 마시지 않은 밤, 닷새째 술을 마시지 않은 밤, 또 일주일째, 매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뭐? 뭐가 달라지는데?

금주모임에 갈 때마다 커피 잔만 손에 든 채 한 번도 자기 사연을 말하지 않던 매튜 스커더가 마지막 장면에서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 이름은 매튜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운다. 그가 말없이 우는데 왜 내가 우는 것 같나. 그가 말하지 않은 사연 속에 내 이야기도 묻어 있다고 생각된 모양이다. 미국, 뉴욕, 백인남자, 사립탐정,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 나하고의 공통점이 뭐길래.

서울의 인구는 천만, 그러니까 천만가지의 죽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천만명 중에는 술마시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왈칵 눈물만 쏟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천만가지의 사는 방법들이 있다. 성공한 삶도 있고 실패한 삶도 있겠으나, 그중의 어느 쪽에도 끼지 않고,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일 것이다. 늘 돈 걱정을 하고, 미래 걱정을 하고, 건강 걱정을 하고,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행복하고, 고맙고, 이만하면 괜찮다 싶기도 하고, 그런 삶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초라하지만 누구에게 죄지은 적은 없는 삶이다.      

당연히 그중의 어느 삶도 모욕당해도 괜찮은 삶은 없다. 누군가가 던진 물컵의 물을 뒤집어써도 좋은 사람은 없고, 고용주라는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그의 욕설을 들어도 좋은 사람은 없다. 본인 욕으로 부족해 부모를 거론해 욕을 한 고용주도 있었다. 돈다발을 미리 던져놓고 폭력을 휘둘렀던 재벌도 있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절대로 없다.

전직 형사였고 현직 사립탐정인 매튜 스커더는 습관처럼 신문의 사건사고란을 읽는다. 그러고는 매일같이 우울해진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나.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놔두고 그냥 그런 일은 다 무시하고 살면 안되겠느냐고 묻는 지인에게 매튜가 하는 말이다. 그럴 수는 없다면서.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맑은 봄날, 먼지가 낀 봄날, 비가 오는 봄날, 그래도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그 세상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존중받는 삶으로 채워진 세상이어야 한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소망이겠나. 그게 왜 소망이 되어야 하겠나.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이 봄에도 벌해야 할 사람과 삶이 너무 많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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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 개편 때면 회자되는 교육정책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0년 전격적으로 단행한 ‘7·30 교육개혁 조치’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과 과외를 금지시켰다. 대입제도의 큰 틀도 바꿨다. 예비고사·본고사를 없애고,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했다. 학력고사 제도는 획일적인 국가표준 대입정책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꽤 있다. 주로 학력고사 세대인 40~50대 학부모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입제도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교육 사다리’가 유지된 대입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되기 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 제도에선 ‘개천에서 난 용’들이 많았다. 사교육이 전면금지돼 저소득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졌던 것이다. 지방에 있는 고교들이 이른바 ‘SKY대’ 합격자 수에 따라 명문고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고사 제도는 숱한 폐단을 낳았다. 고교와 대학의 서열화가 조장됐고, 수험생들은 ‘점수따기 경쟁’으로 내몰렸다. 단순한 암기 위주의 4지선다형 시험은 수험생들의 사고력과 응용력을 측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 수립 이후 대입제도의 큰 틀은 16차례나 바뀌었다. 역대 정권이 사회적 합의 없이 정치적 편향에 따라 대입제도를 바꾼 탓에 수험생은 언제나 ‘실험 대상’이 돼야 했다. 16차례나 바뀐 대입제도 가운데 학력고사 제도를 아직까지 거론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은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반작용일 수 있다. 무엇보다 현행 대입제도가 공정성 논란을 빚게 된 것은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중이 지나치게 확대된 탓이 크다.

지난해 대입에서 내신성적 위주인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은 54.1%, 소논문이나 동아리활동, 수상경력 등 비교과를 중시하는 학종은 32.3%를 차지했다. 게다가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학종 비중은 61.3%에 달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의 잠재된 역량을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학종이 되레 사교육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은 ‘학종 폐지, 정시 확대’의 주된 논거가 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11일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적용될 대입제도 개편시안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기기 전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은 자체 연구를 거쳐 ‘대입제도 개편안’ 보고서를 내놨다. 학종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수능, 내신, 수능+내신 등 세 가지 전형으로 선발 인원을 각각 동일한 비율(1 대 1 대 1)로 조정해 시행하자는 게 골자다.

여당이 내놓은 보고서에 대해 보수성향의 교육단체는 대체로 공감하면서 “현재 20%대로 떨어진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5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성향의 교육단체는 “학종 폐지, 정시 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진영논리마저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대입제도 개편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것보다도 어려운 난제일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대학 등이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대폭 확대한다고 해서 대입제도의 공정성이 확보되리란 보장은 없다. 학종을 폐지하면 일반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 문이 좁아질 수 있다. 정시 비중을 대폭 확대하면 고교 교육의 내실화를 기할 수 없는 데다 수험생을 점수로 줄을 세우는 학력고사 제도의 폐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종과 정시의 비율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특정 전형으로 쏠림이 심화되면 또 다른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로 넘긴 대입제도 개편시안을 조합하면 100개가 넘는 전형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 쟁점은 수시와 정시 비율 조정,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여부, 수시와 정시 통합 등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오는 8월 초까지 단순하고 공정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역대 정부도 똑같은 취지에서 대입제도를 바꿨지만 여론무마용 땜질식 개편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세상에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제도가 없듯이 모든 교육주체를 만족시킬 대입제도 개편의 정답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의 힘’이 통할 수 있는 대입제도의 새 틀을 짜는 일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입제도 개편안을 마련할 이번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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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 앞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문어로 만든 냉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학시절 즐겨 먹었을 스위스식 감자전, 김대중 대통령이 애호했던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의 궁합 민어해삼편수, 정주영 회장의 소떼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목장 누렁소로 만든 한우숯불구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지은 찰진 봉하쌀, 그리고 직접 평양에서 요리사를 모셔와 장만한다는 옥류관 냉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 남북정상회담장을 달뜨게 할 만찬상.

이곳 남도에선 친구들을 만나면 점심때 뭘 먹었냐부터 성큼 묻는다. 딸이 시집을 가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시가는 도대체 뭘 먹고 사니였다. 반찬만 알면 모든 살림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맛난 음식을 가리켜 ‘게미가 있다’라고 했다. ‘게미’란 곰삭은 깊은 맛을 의미한다. 게미 있는 맛은 기름에 튀긴 달달한 음식이나 혀끝에서만 요동치는 음식 맛이 아니다. 봄이면 쑥을 한줌 뜯어 넣고 야들야들한 보리 순을 뜯어설랑 홍어 내장과 함께 끓인 홍어애국을 먹었다. 코가 뻥하니 뚫리고 입안 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맛. 한번 게미 입맛에 빠지면 호남선 열차에 자주 올라타게 될 테다. 북조선 동무들도 헤어날 수 없게 될 이 게미 수렁.

하얀 국물에 둥둥 뜬 수육과 향긋한 파향을 호물호물. 밭에서 막 뜯은 상추, 부추, 쑥갓으로 쌈을 해서 입꼬리가 찢어지게 아그작아그작. 어디 음식점을 가나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 어느새 나도 그중의 한명이 되고 만다. 나는 낙지 요리에 환장하고 오리고기도 즐기는 편. 쇠고기는 남이 사줘도 눈치를 좀 봐야 한다. 선의는 돼지고기까지이며, 쇠고기는 잘못 먹으면 속탈이 무섭지. 돼지고기는 사주면 얻어먹어도 무방하지만 오리고기는 제 발로 찾아다니라는 옛말이 있다. 광주엔 오리탕 골목이 유명하다. 인근 담양에도 맛집이 두어군데 있다. 오리고기보다 미나리나 쑥을 더 먹게 된다. ‘남도의 5미’라는 한정식, 보리밥, 김치, 오리탕, 떡갈비가 담양에 다 있다. 언젠가 평양 동무들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면 내가 한턱 쏴야지. 간첩은 빼고잉.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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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말부터 발생한 재활용품 수거 거부 사태, 일명 ‘폐비닐 대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활용’에 대한 언급이 보통 1일 500건에서 지난 4일에는 4211건으로 급상승했다. 관련 게시글은 충격, 부담, 혼란 등이 대부분이었다.

환경부가 회수선별 및 재활용 사업자들을 만나 폐비닐 등 수거 거부의 급한 불을 껐지만 일부 아파트단지와 재활용업체는 타협점을 찾지 못해 지자체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이물질이 혼입된 폐비닐을 비용을 들여 재활용한 업체들이 판로도 줄어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수거 차량에서 쏟아져 컨베이어벨트로 넘어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골라내고 있다. 이상훈 기자

폐기물은 쓰레기와 자원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매립장에 그냥 묻으면 쓰레기이지만, 재활용할 경우 좋은 자원으로 재탄생한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폐기물 발생량 1억5000만t 중 매립되는 것은 1278만t, 소각되는 것은 880만t이다.

그러나 매립지 평균 수명이 10년밖에 남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립지 용량을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매립지를 새로 건설하거나, 매립지로 들어가는 폐기물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새로운 매립장 확보는 님비(NIMBY) 현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지속가능한 쓰레기 관리를 위해서는 매립 대상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협소한 국토여건과 주민 반발에 따른 매립부지 확보난 등으로 소각시설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다. 근래 들어와서는 폐자원 에너지화 정책도 추진해왔다. 일부 지자체는 종량제 봉투에서 회수한 필름류를 대상으로 고형연료(SRF) 사업도 시행했지만, 고형연료 발전시설 설치에 대한 민원 발생과 수요처 미확보, 고비용 등으로 오히려 지자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주민들이 보기에는 폐비닐이 주성분인 고형연료가 소각장에서 태우는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고형연료의 품질이 문제였다.

생활계 폐기물은 분리수거된 것 중 물질재활용에서 제외된 저급 폐비닐이 대부분이지만, 사업장계 폐기물은 사업장에서 배출된 폐기물 중 폐플라스틱, 폐섬유, 폐고무, 기타 가연성 폐기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품질이 조악한 편이다.

폐자원 에너지화 촉진시책으로 생활계와 사업장계가 구분 없이 사용된 것이 고형연료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물질재활용 혹은 고형연료로 사용하려 해도 배출 단계에서 깨끗하게 분리배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기존 폐기물 재활용시설들은 플랜트 사업 위주로 보통 수백억원의 설치비가 투입되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초래하였다.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진국의 폐기물 재활용기술을 도입하여 운영하였으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아 고비용을 들여 운영하고 있는 실태이다. 하루빨리 저비용·고효율의 이물질 선별기술 및 재활용시스템이 개발·보급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내 폐기물 형상에 맞는 새로운 이물질 선별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R&D 사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인구 100만명, 50만명, 30만명, 10만명, 5만명 도시 등 지역별 상황에 맞는 한국형 재활용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필자는 선별 후 이물질 때문에 쓰레기로 버려야 했던 재활용 잔재물을 고품질 자원으로 선별하는 한국형 전처리선별시설이 업계에서 개발돼 시범 설치 운영되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물질이 혼입된 폐비닐이 새로운 선별기술을 통해 수분과 이물질을 털어내어 물질재활용업체의 고품질 원료로 납품되고 있었다. 덕분에 회수선별 사업자는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된 잔재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물질재활용업체는 고품질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폐비닐 대란은 긴급대책으로 해결되겠지만 중장기적 대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소비자, 생산자, 재활용 사업자, 지자체와 정부가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쓰레기 발생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의 허리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최주섭 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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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 이런 빤한 문장도 언제까지 가능할까. 우리 동네 아파트 자리만 해도 나 어릴 때는 논밭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논에 물을 가둬놓고 겨울방학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스케이트장도 있었다. 택지 조성하기에 가장 만만한 땅이 들판이다. 싸고 평평하니까. 도시의 아파트 생활자들은 사실 농촌에 기본적으로 부채가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한편 푸른 들판이 아니라 ‘하얀 들판’이 전국에 펼쳐지고 있다.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논이어야 할 땅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와 있거나 비가림막 시설을 한 포도밭 등이 눈에 들어온다. 쌀농사 지어 밥 먹기가 쉽지 않은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보니 논에서 밭으로 많이 전환되곤 하고, 그 자리엔 예외 없이 비닐하우스가 들어선다.

오랜만에 쌀값이 반등했다. 지난해 쌀 한 가마니(80㎏)에 12만원대였는데 올해 17만원대로 올랐다. 쌀값 고공행진을 지적하며 몇몇 경제신문은 ‘쌀 과보호’ 정책 때문에 도시의 서민들은 죽어나간다고 말한다. IMF 이후 쌀값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데 이 말은 뒤집어 보면 그동안 물가상승률 이하로 쌀값이 주저앉아 있었단 뜻이다. 이유야 여럿이다. 한국 농업이 미작 중심 구조로 내달려 왔기도 하려니와 쌀은 핵심 식량이므로 수매제도와 같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었다. 육종 기술과 재배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수확량도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밥 말고 먹을 것들이 지천인 세상이니 쌀 소비량은 많이 줄었다. 한 가마니에 17만원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요즘 누가 쌀을 한 가마니씩이나 먹나. 이미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한 가마니에 미치지 못한 지 오래고, 작년에는 60㎏ 선도 무너져 59㎏ 정도다.

선거구의 의미만 남아 소멸되지 않고 버티는 농촌이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유수한 정치인들의 농촌 선거 슬로건은 ‘쌀값 보장’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다 쌀값을 보장한다고는 했지만 지켜지진 않았다.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까지 올라와 선거 때 ‘당신들’이 약속했던 쌀값을 보장하란 구호를 외치다 보성의 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끝내 숨을 거뒀다. 쌀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갔다. 농민들이 요구하는(그리고 정치인들이 약속한!) 20만원대의 쌀값 보장은 밥공기로 따지면 한 공기당 300원을 보장해 달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오른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17만원선을 유지했던 쌀값이 주저앉은 것은 지난 정권 때의 정책 실패 때문이고, 이제야 값을 회복한 것일 뿐이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는 쌀 생산 감축을 목표로 ‘쌀 생산조정제도’를 공표했다. 논 타작물 전환 지원 사업인데 논에다 쌀 말고 다른 작물을 심으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의미다. 지난 20일이 신청 마지막 날이었지만 감축 목표 면적의 70%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농촌에서 전작이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똑똑이들이 쌀값을 자꾸 보장해 주니 농민들이 계속 쌀농사를 고집한다고는 하지만, 논은 ‘인공습지’이기도 하다. 습지를 밭으로 만들려면 그만큼 인력과 돈이 들어가야 한다. 논에다 콩이나 가축용 조사료를 심으라고 강권하지만 농촌에서의 생존 비법은 사실 이거다. ‘정부가 시키는 일과 반대로 해야 살아남는다.’ 쌀농사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최대 쌀 생산지인 전라도에 딸기 재배가 근래 확 늘었다. 그 여파는 농지 값도 비싸고 날씨도 추운 경기도 북부권의 딸기 농가에 타격을 준다. 쌀에서 과수로 돌아서면 경상도의 복숭아와 충청도의 포도가 싸우는 꼴이 난다. 쌀은 곧 딸기고 포도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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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閱兵)은 원래 부대를 정렬시킨 뒤 전투태세를 점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열병과 분열(分列)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열병은 정렬해 있는 부대의 앞과 뒤를 지휘관이 돌면서 군기 등을 살피는 방법이다. 반면 분열은 정렬해 있던 부대가 지휘관을 지나쳐 행진함으로써 군기를 검열한다. 2015년 9월 중국의 70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처럼 대규모 열병식에서는 이 두 가지를 다 한다. 하지만 대개의 열병식은 지휘관이나 귀빈이 도열한 장병을 사열하는 형태로 거행된다.

부대의 전투태세를 검열하는 열병이 의전용으로 활용된 것은 고대부터다.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가 오왕 합려의 왕궁에서 군기를 세우는 고사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궁녀들을 상대로 제식훈련을 하던 손무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왕의 후궁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부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열병식이 이미 군주를 향한 군대의 충성을 과시하는 용도로 전용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열병식은 중세 때 서양에서 국왕이 다른 나라 국왕에게 도열한 군대를 보여준 데서 출발했다. 장엄한 군기로 전의를 상실케 하면서 상대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는 일석이조의 이벤트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군 의장대 사열은 정상외교에서 빠질 수 없는 의전이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군 의장대를 사열한다. 70년 넘게 서로 총부리를 겨눈 남북의 군통수권자가 함께 국군을 사열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의장대 사열을 반대한다.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의장대가 김 위원장에게 ‘받들어총’ 하는 것은 충성맹세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냉전 시대 미·소 정상들도 상대국 군대를 사열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북한군을 사열했다. 북한군 사열은 받아놓고 남한 군대는 사열하지 말라는 것은 상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할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려 한다. 과거의 적의로 살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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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3·5합의’를 이끌어내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바빴다. 그는 3월7일 페이스북에 “남북회담 합의문을 보니 1938년 뮌헨회담을 연상시킨다. 당시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수데테란트 합병을 승인해주고 유럽 평화를 이룩했다고 했지만, 이는 히틀러의 속임수에 불과했다”고 썼다. 28일에는 “문재인 정권의 위장평화쇼”라고 했다. 홍 대표가 남북 합의를 “속임수”와 “위장평화쇼”라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에게 ‘체임벌린 이미지’를 씌우기 위함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니, 안보를 강조해온 보수 야당으로서는 좌불안석일 터이다. 더욱이 두 회담에서 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등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은 상상조차하기 싫을 법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26일 (출처:경향신문DB)

홍 대표가 언급한 체임벌린과 뮌헨협정은 20세기 국제관계사에서 실패의 대명사로 꼽힌다. 체임벌린은 1938년 9월29일 히틀러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체코 수데테란트를 넘겨주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1년 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협정은 휴지 조각이 됐다. 체임벌린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의 유화정책은 굴욕 외교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다.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세 차례 회담을 노상강도에 비유했다. “처음에 상대는 권총을 뽑아들고 1파운드를 요구했다. 그걸 주니까 또다시 총을 꺼내들고 2파운드를 요구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파운드17실링6펜스를 받고서 나머지는 미래에 대한 호의의 약속이라고 둘러댔다.”

아이러니하게도 회담 결과에 대한 영국 내 반응은 뜨거웠다. 하루 뒤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평화선언 문서를 들고 귀국한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도 공항은 환영 인파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는 총리 관저 현관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했다. 60년 전 디즈레일리 총리의 유명한 “명예와 평화를 가지고 독일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되풀이하라는 누군가의 권유에 충동적으로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었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찾아왔다.” 실수임을 바로 깨달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 악몽이 됐다. 그 후 많은 지도자들은 전쟁의 명분으로 그를 이용했다. 2016년 &lt;협상의 전략&gt;을 쓴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설명했다. “군사개입은 언제나 독재자에게 놀아난 순진한 체임벌린에게 침을 뱉으면서 정당화됐고, 대화와 협상은 가짜평화라는 이름으로 조롱당했다.”

뮌헨회담의 실패는 나약한 평화주의자 체임벌린 탓만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 미숙함과 안이한 정세 판단, 전략 및 팀워크 부재 등 총체적 부실의 결과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뒤집어썼지만 승리는 연합군의 몫이었다. 전쟁을 막을 목적 하나로 히틀러를 세 번이나 만난 그는 죽기 전 말했다. “뮌헨이 없었다면 우리 제국은 1938년에 파괴됐을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 체임벌린의 회동 제의를 받은 히틀러도 당황했다. 체임벌린이 전쟁을 위협하러 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체임벌린과의 만남은 이미 전쟁을 결심하고 있던 히틀러의 마음을 돌렸다. 히틀러는 패배 직전 “1938년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지난해 5월 집권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모든 걸 걸었다. 그 결과물이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다. 문 대통령의 역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공동합의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상회담은 그 이후가 중요하다.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다. 체임벌린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유화정책이 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뮌헨협정을 비롯해 20세기를 만든 6개 회담을 분석해 펴낸 &lt;정상회담&gt;에서 회담은 유화-억제-데탕트-변모 단계로 진행돼왔다고 분석했다. 남북정상회담 과정도 그랬다. 2000년과 2007년은 유화단계였다. 2008년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유화단계는 억제단계가 됐다. 문 정부 출범 후 긴장완화 단계를 거쳐 변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난 시간은 9월13일부터 29일까지 보름 남짓이다. 하지만 그는 8월 말 비밀리에 히틀러를 단독으로 만나는 ‘Z계획’을 짰다. 이 때문에 함께 히틀러를 만나자는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체임벌린은 1940년 11월9일 눈을 감았지만 ‘체임벌린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사후 80년이 다 되도록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문재인의 시간’은 달라져야 한다. 사후 역사가 평가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모토 ‘평화, 새로운 시작’처럼 시작일 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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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북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어서 북·미 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차례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를 몸서리치게 했던 전쟁의 악몽이 가시고 평화의 기운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납니다. 벌써 한반도의 평화가 남한과 북한에 미칠 영향과 변화에 대한 예측이 분분합니다. 북한은 이미 ‘핵’ 대신 경제를 선택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미국과 협상하기 위한 제안이자 북한의 미래 청사진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북, 북·미의 협상으로 만들어질 평화는 더없이 중요하지만, 이것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평화는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평화로 도약하는 디딤돌이어야 합니다. 전쟁의 종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평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성서의 ‘샬롬’이 뜻하는 평화입니다.

정의는 무엇인가? 성서의 정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연의 존중과 보살핌으로 요약됩니다. 성서를 보면, 권력이 국가를 앞세워 정의의 요구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때, 어김없이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불의의 공개와 고발, 정의의 촉구와 구현이 예언자의 일입니다. “이게 나라냐!” 광장에서 터졌던 시민들의 분노는 바로 예언자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렇게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권을 세운 지 1년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불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깊게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삶의 안녕을 파괴했던 과거의 결정과 정책은 법과 행정의 이름으로 오늘도 힘을 발휘합니다. 존엄과 평등, 존중과 보살핌이란 정의의 요구는 돈과 권력, 풍요와 편리라는 현실의 요구 앞에서 번번이 힘을 잃고 맥없이 쓰러집니다. 사람이 삶에서 쫓겨나고, 산과 강이 파헤쳐지고 바다가 메워집니다. 문제의 근원은 현실 논리에 발목을 잡혀 방치되기 일쑵니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은 개인의 내면을 비춰줍니다. 정의의 요구보다 현실의 요구를 앞세우기는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다루기 가장 힘든 것은 어느새 지금의 사회 현실을 빼닮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으로 전쟁의 가능성을 종식하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의가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길게는 십년 넘게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는 해고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정권이 시작했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드 배치로 인한 고통과 억울함을 아직도 그대로 겪고 있는 성주의 주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의 호소와 절규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과 환호에 파묻혀버립니다. 명절이 더 서러운 사람들처럼, 이들에게는 오늘이 더 아프고 서러울 수 있습니다. 정의만이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아름다운 봄은 겨울을 난 굳어진 땅에 꽃을 피우는 어려움 속에서 온다는 것을 표현한 시어라지만, 우리의 4월은 글자 그대로 잔인한 달입니다. 4월, 우리는 제주4·3과 세월호 참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건 바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법과 정책의 수정과 제정도 쉽지 않습니다. 법과 정책만으로 사회의 근원적 변화가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현실의 요구보다 정의의 요구를 기꺼이 앞세우겠다는 개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변화라는 지난한 일이 요구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4월의 아픔을 타성에 빠진 우리 자신을 깨울 죽비로 삼는다면, 흐트러질 때마다 우리를 다잡아줄 서늘한 샘으로 삼는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그때, 고통스러운 4월의 기억은 정의를 키워내는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4월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돌이 된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바꾸는,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4월로 변할 것입니다<에제키엘 예언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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