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6월 민주항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12월16일 직선제를 쟁취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던 해다.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1노(노태우) 후보를 두고 친구들과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다투고, 후보 슬로건을 외치고, 동네에 1번 찍으라는 돈봉투가 돌고, 누구네 아빠가 선거운동원이라는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애들은 건방지게 그런 얘기 하지 마.” 옆 반 담임은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고 손을 들고 있게 했다. 장학사가 방문하는 날엔 어김없이 담임이 짜준 ‘각본’으로 민주적 학급회의 연기를 했다. 허락된 것을 넘어서면 늘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선거연령이 만 19세인 나라. 공직선거법 제15조는 만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다. 정당법 제22조에선 정당 발기 및 당원 자격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만 가능하다. ‘선거연령 하향 4월 통과 촉구 청소년농성단’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지난 3월22일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 촉구 청소년 삭발식을 시작으로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3월31일 농성 10일째를 맞은 집중행동의 날엔 전국 곳곳에서 400여명이 참여했다. 집회에서 청소년농성단 김윤송 단장은 “참정권이 시급한 이유는 정치가 투표소 도장 찍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행복을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과 권리를 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참정권은 인권이고 생존권이다. 비청소년에겐 있지만 청소년에겐 없는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분리시켰다. 그 분리가 만든 권력 차이가 수많은 폭력을 낳았고 은폐했다”고 외쳤다.

“대든다, 얌전히 해라, 얼굴 예쁜 애는 공부 안 해도 된다, 속옷 착용 강요, 등교할 때마다 치마 길이 자로 재기, 두발규제, 책으로 머리 때리기….” 30일 밤 농성장을 찾은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함께한 ‘청소년과 스쿨 미투 토크’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이은선 상임공동대표가 비판한 학교 현실이다. 학생인권조례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체벌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유무형의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은 보호와 교육을 명분으로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던 제도와 수많은 일상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왜 참정권이 인권일까? 여성이 참정권 쟁취를 위해 목숨을 걸고 왕이 타는 말에 몸을 던지고, 장애인이 참정권을 위해 도로를 점거했던 역사를 기억하자. 참정권 투쟁은 시민의 자격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기준과 권력에 도전한다. 선거 공보물엔 장애인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미래의 희망이라며 어린이를 안고 웃으며, 청소년과 대화하며 나란히 걷는 국회의원 후보들의 이미지가 넘쳐난다. 보호와 대변을 자처하지만, 인권과 정치의 주체 자리는 내주지 않는 것이 차별이다. 그러니 “고등학생이면 선거해도 될 만큼 컸지. 어른인 내가 도와야지.” 같은 인정과 동정의 생각은 치우자. ‘비청소년’의 위치와 권력을 돌아보는 것이 연대의 시작일 것이다. 동료시민인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회에 선거연령 하향과 정당가입 연령제한 폐지 법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4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어 6월에 투표할 수 있도록 국회는 게으름 부리지 말자.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제3세계 대다수 농부들에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트럭 따위는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당나귀보다 조금 나은 차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차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좁은 비포장도로에 현대식 트럭 하나라도 등장하면 짐 싣고 가던 당나귀와 사람들은 모두 비켜서야 한다.”

편집 중인 원고를 보다가 만난 대목이다. 자사 책을 홍보하는 격이 될까봐 제목은 밝히지 못하겠다. 우연일까. 이런 구절을 읽고 있는데 TV에서 당나귀에 사탕수수를 싣고 장에 가는 에티오피아 농부들 이야기가 나온다. <가축>이라는 다큐멘터리다. 열댓 명의 농부들이 당나귀에 100㎏씩 사탕수수를 싣고 4시간을 걸어 장에 간다. 당나귀 대상(隊商)이다. 가파른 산등성이 비포장도로에 대형트럭 하나가 먼지를 피우며 나타나자 그것을 피하며 한 농부 여인이 말한다. “지난해에는 장에 가던 사람들이 트럭에 치여 17명이 한꺼번에 죽었어요….”

가슴이 아프다. 책에서나 보던 이야기가 오늘도 세계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임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가축은 이 가난한 농부들에게 적당한 이동능력뿐 아니라 젖과 고기를 제공하고, 땔감이나 비료로 쓸 수 있는 분뇨까지 남긴다. 이들이 영위하는 삶의 수준에서는 트럭보다 튼튼한 가축 한 마리가 훨씬 쓸모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삶에 최신 기술이 끼어들면 그것은 편리를 내세워 도로와 같은 공공재를 독점하고, 재래 기술에 의존해서 살던 사람들을 도태시킨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로 충분했던 길이 현대식 트럭과 같은 최신 기술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여 포장이 된다. 그와 함께 당나귀는 위험한 낭떠러지 길가로 더욱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꼭 조롱을 한다. 과거에 비해 얼마나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는데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산업혁명기에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들과 무엇이 다르냐.

기술적 편의는 어느 정도의 독점적 공급 체계가 이뤄지고 나면 반드시 이용자보다는 공급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카카오택시 유료화를 보자. 처음에는 무료로 ‘연결’을 제공하다가 모두가 그것을 사용할 정도로 서비스 독점이 이뤄지고 나면 슬그머니 유료화된다. 원래부터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택시 잡기가 어려워진다. 독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독점적 서비스에 너도나도 편승하다 보면 얼마 안 가서 유료 이용자들조차 택시 잡기가 예전과 똑같이 어려워진다. 감히 예측해본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대한의협 협회장에 반사회적 극우인사가 당선되어 시끄러웠던 한 주다. 의사들은 문재인케어와 현행 건강보험 체계에 대한 의료인들의 반발이 이런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고 변명한다. 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대거 바꾸면서도 보험수가는 여전히 꽁꽁 묶어둠으로써 의사는 더 이상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이 때문에 환자들의 선택권도 제한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보험료와 수가 인상 없이 급여 항목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보장성만 강화하였으니, 그나마 수익을 올렸던 비급여 항목에서 적자부분을 더 이상 메울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약과 새로운 처치 기술은 날마다 나오는데 현행 체계에서는 그것을 쓸 수 없어서 의사와 환자 모두가 손해를 입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 문제에 얽힌 이해관계는 너무 복잡하여 나 같은 사람은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은 진료’나 ‘의료 선택권’이라는 이름 아래 환자들의 욕망과 의사들의 기득권을 조장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절대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의료라는 공공재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려면 최고의 의료기술보다는 적정 수준의 값싼 치료 기회를 더 많은 사람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는 첨단 의료장비보다는 매일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목숨에 모든 의료 자원이 투여되기보다는 백 명의 고통을 다소나마 줄이는 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죽게 될 사람이 절대로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들 인간에게 행복이란, 그리고 고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실존적 가치관에까지 들어가야만 해결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최고보다 적정이 나을 때가 많다. 인간은 생각보다 가능성이 큰 존재들이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3월26일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필자는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준비하는 국민헌법자문특위에서 활동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보면 아쉬운 부분들도 많다. 국민헌법자문특위에서 제안했던 내용보다 후퇴한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가 빠졌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만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는 국회 논의과정에서라도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는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 확대에 관한 부분이 명시되지 않았다. 교육, 환경 등의 기본권 영역에서도 미흡한 점들이 있다. 지방분권과 대통령 권한 분산의 측면에서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기본권 강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의미있는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함으로써, 30년 만에 최초로 조문화된 개헌안이 공식문서로 발의되었고, 시한을 둔 개헌논의의 장이 열렸다.

그동안 국회에서 개헌논의는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심지어 각 정당은 당론조차 내지 않았다. 정치에서 있어서는 안될 무책임한 행태들만 반복되었다. 그런 속에서 개헌의 동력은 거의 사그라들던 상황이었다.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꺼져가던 개헌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각 정당들이 당론을 정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이미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무책임하고 격이 떨어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30일 홍준표 대표는 사회주의개헌저지투쟁본부를 구성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어느 부분이 사회주의라는 것인가?

동일한 노동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임금격차가 적은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전부 사회주의라는 것인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독일이 사회주의 국가인가?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되, 부동산 투기나 지나친 소유집중을 막자는 것은 건전한 자본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것이 어떻게 ‘사회주의’일 수 있는가? 보수의 격을 떨어뜨리는 이런 주장을 걸러내지 못하면 보수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해야 할 일은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론을 내놓는 것이다. 막연한 당론이 아니라 조문화된 형태로 당론을 밝혀야 한다. 그럴 능력도 없는 정당이라면, 정당 문을 닫아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도 ‘정치’를 해야 한다. 아무리 상대방이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하더라도, 붙잡고 얘기해서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정치’다. 사회운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정치는 문제를 해결할 때에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개헌에 대한 진정성은 개헌이 되게 하려는 노력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  

개헌이 되게 하려면 여소야대의 의석분포를 현실로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개헌은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타협하지 않고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방법은 야당들을 붙잡고 설득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헌시기를 늦추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 개헌동력이 살아난 것은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기 때문인데, 지방선거 동시 개헌국민투표가 무산되면 또다시 기한 없는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2020년 총선이 다가오고, 정당들 간의 이해관계 계산 때문에 개헌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밀실야합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번 개헌은 국민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논의태도를 가져야 한다. 각 정당들이 당론을 내놓으면, 쟁점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에 들어가야 한다. 몇몇이 하는 밀실협상은 곤란하다. 국회에서는 공개토론을 하고, 방송사, 언론사들은 토론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해야 한다. 정당들끼리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쟁점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열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도 있다. 

이번에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국민헌법자문특위는 ‘숙의형 시민토론회’를 5차례 열었다.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은 6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개헌의 쟁점들에 대해 토론했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 만족도 조사를 했을 때, 97% 이상의 시민들은 토론이 만족스러웠다고 답했고, 다시 이런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토론에서 시민들은 기본권 강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명했고, 직접민주제 도입과 지방분권에 찬성했다. 개헌의 최대쟁점인 정부 형태에 관한 토론에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였고 상호 경청하는 태도였다. 끝내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을 참고해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들으면 된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개헌이 실제로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이 되게 하는 정치이다. 그런 정치를 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보고 싶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펫숍에서 14만원 주고 샀지.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어떻게 반려가족이 되었냐는 질문에, 친구가 내뱉은 답이다. 비단 그 친구뿐일까. 유기 동물을 입양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물 가족을 맞이하는 방법은 대개 분양이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넘어선 지금, 반려가족은 한국 가정의 한 유형이 되었고 4가구 중 1가구 이상 동물과 함께 산다. 그렇다면 증가한 반려가족만큼 동물 복지와 동물 생명에 대한 인식도 성장했을까?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2014년 8만1000여마리에서 2015년 8만2000여마리, 2016년 8만9000여마리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집계되지 않은 동물을 포함하면 그 수는 10만마리에 육박한다. 반려가족이 늘어날수록 버려지는 동물이 해마다 증가한다는 통계가 물음에 대한 방증이며, 강아지 공장 폐쇄를 외치면서도 구매 수요는 끊이지 않는 현실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원인은 분명하다. 동물 생산·분양의 합법화다. 동물 분양·판매라는 관습은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을 가로막고,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다는 오만한 소유욕이 동물 학대·유기 등의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분명한 해결책이 있다. 동물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입양을 국가 차원에서 강제하는 것이다.

동물 복지 선진국 독일은 어떨까.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 독일 동물보호법 1조 1항이다. 법으로 동물의 존엄성을 명시하고, 독일에서 태어나는 모든 동물은 관리 시스템에 등록해 국가가 관리한다. 등록되지 않은 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처벌받고, 유기 동물이 발견될 경우 시스템으로 주인을 찾아내 엄격하게 처벌한다. 동물 매매와 교배는 법으로 금지하고 보호소를 통해서만 입양을 허락한다. 입양 전, 가족 구성원 전체 동의는 필수이며 일정 기간 3번 이상 보호소를 방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려동물 에티켓과 윤리의식을 배우고, 반려동물 훈련 과정도 이수한다. 국가는 법으로 동물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국민은 철저하게 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22일부터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법 개정도 반려동물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듯하다. 동물 생산판매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했을 뿐, 동물 생산업 자체는 여전히 합법이다. 강아지 공장 내 사육시설(뜬장)을 금지하고 동물 출산 주기를 8개월로 개정했을 뿐, 판매를 위한 교배·사육은 그대로 허락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동물전시업(카페), 동물위탁관리업(훈련소·호텔·유치원), 동물 운송업(택시) 등 4개 서비스업을 신설해 동물 관련 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이다. 동물 학대 신고 강화, 과태료 상향 조정 등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동물을 상업 대상으로 간주하는 골자는 오히려 더 짙어졌다. 진정으로 동물이 인간과 더불어 사는 ‘반려’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국가가 나서 분양 아닌 입양으로 그 인식을 실천해야 한다.

지난주 동네 펫숍은 확장 개업 현수막을 내걸고 전시 동물 수를 4배나 늘렸다. 3일 전 봉사차 유기 보호소에 다녀왔다. 슬픈 눈의 친구들이 잊히질 않는다.

<이미나 | 한글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겨울, 냉기 가득한 방 안. 여자친구 방에서 데이트하는 청춘 남녀. 두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허공으로 허연 입김이 퍼진다. 오랜만에 잠자리를 갖기로 한 둘은 서둘러 옷을 벗는다. 벗고 또 벗어도 양파 껍질처럼 옷이 나온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잔뜩 껴입었기 때문이다. 선 채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덜덜 떤다.

“너무 춥다. 안되겠지?” “춥긴 춥다.” “봄에 하자.” “응.”….

최근 국내 개봉작 <소공녀>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마이크로해비타트(Microhabitat)’로 작은 서식지(집)를 뜻한다. 가사 도우미로 일당 4만5000원을 버는 여주인공은 월세를 내기 위해 벌이가 있을 때마다 1만원씩 모아보지만 그나마도 월세가 인상되면서 냉기 도는 월세방마저 포기하고 만다. 남자친구와도 이별한다. 학자금대출 갚기에 허덕인 남자친구는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00만원이라도 빚을 내보려고 하지만 결국 목돈을 벌기 위해 2년 후를 기약하며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영화는 우중충하지 않다. 코믹하고 통쾌한 반전도 있다. 여주인공은 전기가 안 들어오는 대신 보증금이 없는 월세 10만원짜리 달동네 방까지 알아보다 결단을 내린다. ‘집 없이 살자.’ 여행가방에 최대한 짐을 넣어 대학 시절 함께 밴드활동을 했던 선후배와 동료 집을 찾아나서 하룻밤, 때론 며칠간 머문다.

영화는 이 여정을 따라간다. 고층빌딩, 아파트, 빌라, 고급주택, 오피스텔 등 다양한 서식지가 등장한다. <소공녀>를 만든 전고운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다. 전 감독은 관련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게 치솟은 서울의 집값에 부조리를 느꼈다” “집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결혼을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를 추동한 것 중 하나가 ‘분노’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20·30대 또래 관객들은 어두운 객석에서 격한 공감에 쓴웃음을 짓다가, 때론 주인공보다 나은 처지에 안도의 숨을 쉰다. 거리로 내몰렸지만 수중의 돈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취향(담배와 위스키 한 잔)을 버리지 않는(즐기는) 주인공의 모습에선 대리만족을 느낀다. ‘유니크한 삶’ ‘기존의 가치에 균열을’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용기’ 등 영화에는 다양한 해석들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서식지(집) 없는 삶이 가능할까. 집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인 동시에 인간관계 맺기의 근거지다. 결혼해 가족을 만들고 자식을 낳으려고 해도 집이 필요하다. 최근 TV에선 집을 근거로 한 관계맺기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발칙한 동거>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집사부일체>의 부제는 ‘동거동락 인생과외’. 이승기, 이상윤, 육성재, 양세형 등이 인생사부 격인 전인권, 윤여정 등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 머물며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해본다. 덮고 자던 이불을 쓰고, 밥 먹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화장실을 공유한다. 집주인의 작은 습관부터 인생철학과 삶의 목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발칙한 동거>는 연예인 2~3명이 동거계약서를 쓰고 함께 며칠간 산다. 연령과 성별, 하는 일 등이 낯설고 이질적인 동거인들은 그야말로 동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들 프로그램은 예능다운 웃음기를 강조하지만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에서 집, 동거를 통한 ‘연결’을 읽을 수 있다.

서식지, 특히나 청년세대의 주거문제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로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광풍에 따른 이익환수제 등 각종 규제가 거론되면서 시끄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128조 ①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과 생활의 바탕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②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청와대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명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을 강조하는 개헌안에서 특히 청년세대의 주거문제가 해결되는 계기가 마련될지 미지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은 강남의 10억~20억원대 아파트가 올려다보이는 한강둔치에서 텐트를 치고 산다. 텐트 불빛이 마치 반딧불이 같다. 자신의 서식지에서 마음놓고 사랑하고 밥 먹고 놀고 고민하고 늙을 수 있는 봄이 올까.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에 하자”던 그들의 약속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김희연 문화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 떼가 퍼드덕대며 날아오른다. 대야에 물을 떠 발을 담그고 발과 종아리를 찬물로 씻을 때의 소리를 내면서. (이 이미지의 연결은 참으로 멋지다.)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새 떼가 날아올라 날아간다. 내 몸과 찔레꽃과 능선 위로 날아간다. 구름을 지나가고 사라진다. 골짜기에서 생겨난 구름도 둥둥 떠서 간다. 새 떼는 날아가서 아주 사라지고, 새 떼가 날아갔다는 움직임의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낙엽처럼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처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와 짐작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새 떼는 피어오른 구름과 같고, 큰 그릇이나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다. 아니 새 떼의 움직임은 봄바람과 같고, 수증기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하얀 입김과 같고, 기침과 같고, 글썽임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불안정한 기류처럼 어떤 일은 발생하고 진행된다. 우리 존재도 이와 같을 것이다. 둥글넓적한 형태로 떠서 다니는, 혹은 무정형으로 떠서 다니는 유동성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이꽃  (0) 2018.04.16
정처없는 건들거림이여  (0) 2018.04.09
새 떼를 쓸다  (0) 2018.04.02
데칼코마니  (0) 2018.03.26
녹색마차  (0) 2018.03.19
칠성무당벌레  (0) 2018.03.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재미없는 질문 하나,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물건 가격은 늘 다른데 매번 손해 보며 파는 것이라며 엄살을 떠는 동네시장 노점 아저씨, 카페에 앉아 귀에 꿀물이 가득 찰 것만 같이 달콤한 말만 주고받는 시작하는 연인들, 약속한 공약의 절반만 지켜도 세상 아름다운 동네가 될 법한 엄청난 크기의 현수막 속 웃고 있는 사람들.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곳은 바로 법정(法庭)이다.

진실을 찾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성스러운 법정에서 거짓말이 가장 많이 오고 간다니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배우보다 능숙하고, 법률가보다 논리적이며, 어린아이보다 순수한 진짜 같은 거짓말을 나는 법정에서 매일 마주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능수능란한 거짓말에 깜박 속아 넘어가 헛다리를 짚어 처참히 넘어진 적도 많다. 요즘 세간에 ‘위증’이 유행인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거짓말은 언젠가 밝혀지고, 영원히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완연한 햇볕 아래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 오랫동안 외면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독특한 법정이 준비되고 있다. 이달 21일(토)부터 양일간 열리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 번에 읽기 어려울 만큼 긴 이름을 가진 ‘시민평화법정’은 말 그대로 시민이 참여해 만드는 법정이다. 베트남전쟁은 과거 우리나라와 같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던 베트남에서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약 20년 동안 계속되었던 전쟁이다. 냉전시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지원하고 참전한 대리전쟁이자 국제전쟁이었다. 한국도 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지상군을 파병했다.

시민평화법정은 베트남전쟁 시기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용기 있게 마주하고자 한다. 그동안 베트남 곳곳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憎惡)비, 참전했던 군인들의 고백, 미국과 베트남 정부가 기록한 기밀문서 등에서 당시 파병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은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 내용을 확인하거나 이에 대해 책임 있는 사과를 한 사실은 없다. 지난 2월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지만, 그 불행한 역사를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시민들이 만드는 법정이지만 그 짜임새가 결코 헐겁지 않다. 한국 군인에 의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선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조사하고 연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변호사들이 대리인으로 참여한다. 쌍방의 변론을 듣고 판결을 내릴 재판부로는 ‘김영란 법’으로 널리 알려진 김영란 전 대법관,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자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 변호사로 손꼽히는 이석태 변호사, 서울대 법대 최초의 여교수이자 평생 여성인권과 법여성학을 연구해온 양현아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한다. 거짓이 난무하는 법정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워진 역사를 딛고 오로지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열리는 법정이다.

시민평화법정의 판결문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진실이 가지는 힘은 강력하다.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대 헌법재판관 알비 삭스는 인종차별주의자로부터 테러를 당해 한쪽 팔과 눈을 잃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가해자는 결코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밝혀진 ‘진실’은 가해자를 처벌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넘어 한 사회를 바꾸어 내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었다. 슬픈 4월, 용기 있게 지난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시민평화법정을 응원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무릇 미국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제는 공간을 초월하여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을 집중한다. 미국 대통령제마저도 연방헌법상으론 연방제-양원제와 조합된 수평적·수직적 권력분점형이지만, 역사학자 슐레진저와 스탠퍼드 교수 후쿠야마에 따르면 실제론 견제-균형 원리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작동하며 정치적 양극화를 고착화한다.

청와대 발의 개헌안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국회-사법부 권력관계를 일부 재조정했지만, 총리(내각)·사법부·권력기관 인사권 등 대통령 권력을 별반 손질하지 않았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중론이다.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8년으로 연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비례제와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도, 8년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쟁취하려는 진보블록-보수블록이 일상적으로 대척하는 ‘양극적 다당체제’(bipolar pluralism)로 인해 대통령-국회 관계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정녕 제왕적 대통령으로 출발하여 ‘식물대통령’으로 끝나는 역설적인 악순환이 재현될지 모른다.

청와대 설명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회 총리 추천·선출제는 변형된 의원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이고, 대통령제와 배치되며,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정당이 다른 경우 대통령-총리, 대통령-국회 충돌로 국정마비 사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것. 고전적인 정부형태론적 관점에서 보면 올바른 통찰이고, 권력구조 연구들이 우려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일부 국가들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다당체제 속에서 ‘대통령제의 의원내각제화’, 곧 연립정부형 대통령제로 진화하여 대통령-의회 협치를 순항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청와대 논리와는 달리 국회 총리 추천제는 오히려 청와대 중심의 폐쇄적 국정운영 회로를, 국회-내각-대통령을 유기적으로 가교시키는 공치(co-governing, 공동 국정운영) 시스템으로 바꾸는 연결고리이다. 공치 시스템의 정상화는 국회의 정당연합을 전제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핀란드는 외교안보와 군사상 대국인 소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국가의 생존전략을 세워야 하는 지정학적 숙명의 길을 걸었다. 국가적인 리스크에 대응하는 핀란드의 전략적 처방은 분권형 대통령제였다. 즉 외교안보에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외치(외교·국방·안보)를 전담하는 대통령과 의회 선출에 책임을 지며 내치(경제·사회·복지·교육)를 주도하는 총리(내각)로 구성되는 분권의 정부제도다.

소련 해체와 EU 가입에 따라 개정된 핀란드 신헌법은 대통령-총리 간 대외정책 결정권의 분점·공유를 헌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이런 핀란드 분권형 대통령제는 프랑스 ‘대통령 우위’ 혹은 오스트리아 ‘총리 우위’ 분권형 대통령제와 차별화된 합의제 헌정체제의 제도적 중심축으로서 외교안보-경제민주화-복지국가-국민통합의 정치적 인프라로 작동한다. 핀란드 경험은 4강 패권경쟁 속에서 남북비핵평화·연합·통합-경제민주화-복지국가 대장정을 추동해야 하는 우리의 헌정공학에 의미심장한 벤치마킹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통상 비례제가 유인하는 정당 경쟁·연정 사이클과 긴밀하게 맞물릴 때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탈공산주의 폴란드의 분권형 대통령제는 다당연정과 연계해 민주화 이행을 넘어 민주주의를 공고화했다. 이념블록 경계를 넘나드는 핀란드 정당연합 정치는 대통령-총리-내각-의회 간 수평적 권력분점과 조응하며 외교·EU 정책·입법 과정을 조정한다. 연정이 제도화되지 않는 다수제 국가 프랑스를 제외한 어느 국가에서도 분권형 대통령제의 아킬레스건으로 회자되는 내치·외치 경계 모호성, 소속정당이 다른 대통령-총리 간 충돌로 국정교착과 헌정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수술을 기다리는 제왕적 대통령제, ‘진통제’로는 다스릴 수 없다. 권력구조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사고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정치란 정책·입법 의제의 스몰딜, 빅딜, 패키지딜의 궤적이다. 청와대·민주당이 한국당과 ‘분권형대통령제-연동형비례제’를 맞교환하는 빅딜을 결행할 때 개헌정국 출구는 열릴 수 있다. 혁명이 성공하려면 혁명 하려는 주체세력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절규했던 촛불혁명에 정체성을 둔 청와대의 혁명적인 통 큰 결단이 긴요한 시점이다.

<선학태 | 전 전남대 교수·정치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한의사협회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케어’를 저지하겠다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최대집 제40대 의협 회장 당선자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를 멈춰서라도 문재인케어를 강력히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최 당선자는 정부가 ‘상복부 초음파 건강보험 적용’ 정책을 4월부터 시행하는 것과 관련해 “지금처럼 건강보험 재정증가 없이 시행하려는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는 의료행위의 제한으로 귀결돼 결국 보장성 확대가 아니라 보장성 제한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물론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4월 하순 중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와 같은 대규모 시위, 전일 또는 반일 집단휴진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이겠다는 발상은 의료인답지 못한 태도다.

의료계는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자마자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케어’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상급병실료, MRI, 초음파 검사료, 고가 항암제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2022년까지 급여화해 건강보험 하나로 큰 걱정 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0%)에 크게 못 미치는 건강보험 보장률(63.4%)을 70%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임기 말까지 68%까지 올리겠다고 한 바 있다. 이런 목표를 ‘과속’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료계가 문재인케어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있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이뤄지면 의사 입장에선 간섭을 받지 않았던 진료행위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키지 않는 것이다. 낮은 의료수가를 메워온 비급여 항목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물론 클 것이다. 하지만 의학적 성격의 진료라면 모두 국민건강보험 체계로 들어오는 것이 마땅하다. 이 기본 원칙은 대승적으로 수용하되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면 된다. 정부와 의협은 조속한 시일 내에 ‘의·정 실무협의체’를 재가동해 의사들의 관심사인 의료수가 인상 문제를 대화로 풀어갈 것을 당부한다.

의협을 새로 이끌게 된 최 당선자는 ‘문재인케어 중단’을 선거공약으로 내걸더니 당선되자마자 ‘의료를 멈추겠다’며 국민을 겁박하는 위험한 언동을 하고 있다. 아무리 여러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국민들에게 그저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올드보이’들을 다시 부르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충남지사 후보로 이인제 전 최고위원, 경남지사 후보로는 김태호 전 최고위원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당내에선 김무성 전 대표가 북핵폐기추진특별위원장,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경제파탄대책위원장, 이재오 전 대표는 김무성·김문수 전 의원과 함께 사회주의개헌저지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이들을 “우리 당에서 가장 대여투쟁력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은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대여 투쟁력은 할 말 없으니 갖다 붙인 얘기일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운데). 권호욱 선임기자

지금 한국당 전면에 나선 올드보이들은 거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당 대표·원내대표를 지내거나 총리 후보까지 오른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주역임과 동시에 국정실패의 공동책임자다. 하지만 이제껏 동반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 선봉에 서서 “(촛불) 폭도들을 태극기의 힘으로 몰아내자”는 등 극우·수구적 행태로 일관해왔다. 이들은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20% 미만 보수층을 결집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의 언행으로 대다수 시민들을 완전히 등 돌리게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엔 인물이 넘쳐나고, 야당은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처지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당이 후보로 영입하려던 인사들은 하나같이 손사래치며 고사했다. 보수의 적통을 자처하는 한국당이 이 지경까지 몰린 것은 이 당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가 봐야 떨어질 게 뻔한데 멀쩡한 인물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한국당에선 보수진영을 어떤 철학과 인물로 재건하고 어떤 수권전략으로 외연을 넓혀나갈지에 대한 얘기는 찾을 수 없다. 시대는 눈이 핑핑 돌게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의 영화에 의지하려는 건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무모함에 불과하다. 한국당 지지율 하락은 보수대표의 품격이나 자질과는 담을 쌓은 홍 대표의 막말과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여론의 실망도 한 요인이다. 홍 대표는 1일 “향단이, 바퀴벌레, 암덩어리, 연탄가스, 영감탱이는 막말이 아니라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라고 했다. 대한민국 서민의 수준을 얕잡아보는 궤변이다. 시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2000년대 초반은 포스트구조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공고한 형제애를 발휘할 때였다. 현장을 전혀 모르고 이론으로만 접근하던 나는 성을 파는 행위가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여성들의 권익이 향상된다고 믿었다. 언론보도와 영어로 번역된 일본 및 재미 학자들의 논의만 접하던 나는 한국의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을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여겼고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억압된다고 생각했다. 능동적으로 성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진정한 성적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기도 했다.

한 여성이 미투 운동의 상징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흰 장미를 들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학위 논문을 준비하다 기지촌에서 자원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힘겹게 투쟁하던 반성매매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요시위에 나가면서 생존자들의 삶을 돌보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생을 바친 활동가들을 알게 되었다. 당사자들을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목격하고 난 후에도, ‘진심’을 나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맥락을 이해하며 의미화하는 데는 더 많은 수련이 필요했다.

서구식 지적 허영기를 덜어내고, 알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표현의 자유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논리구조 밖에서 봐야 음란물이 생산되고, 생산하는 구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인간을 특정한 존재로 느끼는 성적 욕망과, 상대방을 비인간화하는 성적 대상화가 연결되어 있으되 다른 의미라는 사실을, 심지어 욕망을 표현할 자유가 누구에게만 허락되는지 알게 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다행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오늘날 불꽃처럼 타오르는 ‘미투 운동’의 저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상대방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 성폭력이 자행되고, 점령지 강간을 예방하고 군인들의 성적 욕망을 풀어야 한다는 모순된 명목으로 여성을 노예화했음을. 남성들 간 교류와 비즈니스를 위해, 때론 전리품으로 여성들이 교환되고 거래되어 왔음을. 공창시설이 사창가, 터키탕, 방석집, 티켓다방, 안마시술소, 유리방, 룸살롱, 룸카페, 단란주점 등으로 변주되며 남성문화의 주요한 토대가 되고 있음을. ‘싫어요’라고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여성을 결박시키고, 총각딱지 떼러 오는 청소년부터 노인, 동네 양아치, 사업가, 교육자, 정치인, 의사, 법조인, 기자, 경찰 할 것 없이 ‘손님’이란 이름으로 가장해 인정사정없이 여성들을 만지고, 멸시하고, 괴롭히고, 때리고, 강간하는 곳이 전국 방방곡곡에 성업 중인 성매매 현장임을.

살아 있는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그저 파편화된 사물 혹은 섹스로 환원되는 조각난 몸들이 온갖 기술의 지원을 받고 상업주의와 결합되어 갖가지 형태로 재현되고 소비되고 유통됨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파된 여성 비하적 성적 이미지가 현실 여성들을 이해하는 창이 되어 왔음을. 집 안의 여성들에게 순결과 정조를 강조하고 다른 여성들에게는 ‘더러운 X’ ‘음탕한 X’ ‘걸레’ ‘창녀’ 등 각종 오명과 낙인을 덮어씌우며, 여성을 이분화하고 혐오해 온 그 유구한 역사가 오늘날 개념녀 대 김치녀, 심지어는 페미니스트 대 메갈로 변주되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주어진 선택지 이상을 상상하거나 요구하는 여성들에게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혹한 처벌이 뒤따랐음을.

그런 문화 속에서 ‘손바닥도 마주쳐야 한다’ ‘여자의 노는 예스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그럴 만한 여자만 당한다’ 등의 각종 강간 신화가 구축되고 정당화되어 왔음을. ‘자기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 ‘몸을 더럽힌’ 여자들이 ‘수치스러워’, ‘집 안 망신시킬까’ 감춰야 했던 그것이 바로 강간이었음을. 그 고통이, 아픔이, 목숨이, 우쭐대며 던지는 농담이나 과시용 자랑거리, 술자리 뒷담화로 소비돼 왔음을. 심지어 고결한 문학이나 예술이란 옷을 걸치고, 진리를 추구한다는 각종 학문의 외피를 입은 채 정당화되어 왔음을.

여성들은 이제 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성이 활용되고 강간이 동원되던 방식을. 당신이 아무리 부인하고 외면한다 한들, 성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지탱하는 도구가 성폭력임을 여성들은 이미 알아버렸다. ‘펜스룰’로 반격하고 ‘진영 논리’로 왜곡하고, 특정 집단의 문제로 축소하려 해도 더 이상은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당신의 선택은 자명한 것 아닌가.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보수적인 산업으로 평가되는 농업과 축산업 등에서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농작물 재배 시설의 온도·습도·햇빛 등을 분석해 농작물 재배에 최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스마트팜, 자동으로 가축에 먹이를 공급하는 스마트축사 등이 대표적이다.

ICT 기술이 농·축산업에 도입된 뒤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생산량 증가다. 최적의 생육환경 조성으로 품질과 생산성도 좋아진 것이다. 2016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스마트 팜 도입에 대한 생산성 향상 분석’ 조사 결과를 보면, 시설원예 분야의 스마트팜 도입농가의 생산량은 도입 이전과 비교해 27.9% 증가했다. 축산 분야에서도 생육지표가 개선으로 생산량이 증가했다.

축산 분야의 경우 가축분뇨 처리에도 ICT가 적용되고 있다. ICT 활용으로 가축분뇨의 적기·적정량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환경오염도 줄게 됐다. 기존에는 처리 시스템 미흡으로 가축분뇨가 악취를 발생시키고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토양이나 하천으로 흘러들어 또 다른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환경관리원은 악취감지센서를 개별 축산농가의 축사에 설치하고 있다. 악취감지센서는 암모니아가 기준치 이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파악해 가축분뇨의 수거를 용이하게 한다. 이렇게 수거된 가축분뇨는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에너지나 농작물 비료 등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가축분뇨를 자원으로 재사용 하는 과정에서 ICT의 역할은 크다. 개별 축산농가에 설치된 악취감지센서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가축분뇨를 신속하게 수거할 수 있는 실시간 통신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축산환경관리원 축산악취관제센터에서 시스템으로 구축중에 있다.

축산악취관제센터는 단순히 악취감지센서의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가축분뇨를 신속하게 수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개별 축산농가가 있는 지역적 특성(인구밀도, 지리적 특성, 기후 등)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악취 센서의 데이터와 결합해 축산 농가별 맞춤형 가축분뇨를 처리하는 컨설팅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가축분뇨의 적시·적정 처리가 핵심인 축산환경은 ICT와 어떻게 어느 정도 융합되느냐에 따라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축산과 축산환경에 바라는 소망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가축을 사육할 수 있는 깨끗한 축산과 축산환경’이다.

<한갑원 축산환경관리원 악취관리지원센터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온라인 PC게임 ‘트리오브세이비어’(트오세·사진) 인터넷 게시판에 지난 26일 한 편의 글이 올라왔다.

트오세의 개발사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가 직접 나서서 직원의 ‘사상’을 검증하는 내용이었다. 최근 해당 직원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으로 페미니즘 관련 계정을 팔로하거나 몇 건의 게시글에 공감·공유 버튼을 누른 것 때문에 논란이 된 사람이었다.

김 대표의 글은 자못 비장하다. “사회적 분열과 증오를 야기하는 반사회적인 혐오 논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방지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 직접 ‘문제의 사원’과 인터뷰를 진행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선 이렇게 되묻는다. “여성민우회, 페미디아 같은 계정은 왜 팔로했나요?”

이 같은 사건이 게임업계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게임·문화계에서 일하는 여성이 페미니즘 관련 글이나 현상에 관심을 보이거나 지지하는 의사를 표시했을 때 그들은 비난을 받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번 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회사 대표가 직원의 소셜미디어 활동에 대해 ‘사상검증’이라고 불릴 만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내용을 공식으로 발표했다는 점에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그의 행동은 사상검증이며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했다. 김 대표의 SNS 계정을 역으로 추적해 그가 과거 박근혜 지지 등의 행보를 보인 보수매체 계정을 팔로했던 사실을 알아낸 이도 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재밌는 글이 있어서 (그 계정을) 팔로했었다. 이제 됐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트위터리안은 “‘문제의 행동’을 했을 때 대응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다르다”며 “한 사람은 ‘이제 됐냐’고 넘길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실명까지 공개당하며 ‘내 행동이 실수였다’는 것을 만인 앞에서 시시콜콜 사과·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가 언급한 ‘반사회단체’의 기준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논란에 등장한 한국여성민우회는 “성차별에 강경히 반대하는 것이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다”라는 성명을 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일반 칼럼 > 지금 SNS에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의 품격  (0) 2018.04.13
“페미니즘 계정 팔로 왜?” 직원 ‘사상 검증’ 와글와글  (0) 2018.04.02
태극기 집회  (0) 2018.03.05
국민청원과 올림픽  (0) 2018.02.26
평창과 새해  (0) 2018.02.19
평창 올림픽 개회식  (0) 2018.02.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