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큰 감옥이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다. ‘수인’은 20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은 11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자지구 사람들은 식수와 전기, 의료 등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고 인구의 80%는 구호물품에 의존하고 있다. 유엔은 2020년이면 가자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생존 위협 앞에, 그리고 수천년 살아온 터전을 이스라엘에 빼앗긴 인간 존엄에 상처를 품고 가자지구 사람들이 역사적 걸음을 내디뎠다. 3월30일, 고향 땅을 향해 대규모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위대한 귀향 행진(Great Return March)’이다. 행진은 팔레스타인 ‘땅의 날(Land Day)’을 맞아 시작됐다. 42년 전 3월30일은 최초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년 이날을 기리며 자유와 해방을 외쳐왔다.

수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이스라엘 접경지역에 천막을 쳤다. 주최 측은 5월15일,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 70주기까지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건국일’이자 팔레스타인 땅이 강탈된 날이다. 이스라엘군의 저격 위험에도 현장은 평화로웠다. 노인들은 고향 마을이 적힌 깃발을 내걸었고 아이들은 천막에서 공부했다. 청년들은 전통춤을 췄고 어머니들은 음식 준비에 바빴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에게 조준 사격과 탱크 포격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1500여명이 다쳤다. 2014년 ‘가자 학살’ 이후 최대 규모의 학살이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10대 때 고향 땅에서 쫓겨났던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위엄으로 죽는 것이 굴욕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범죄의 공범이다. 미국은 이스라엘 국방 예산의 20%를 넘게 지원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킨 높이 8m, 길이 700㎞의 분리장벽 건설 자금을 지원해왔다. 또한 2008년과 2012년, 2014년 3번에 걸쳐 4000여명이 살해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에 동조해왔다. 특히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발표한 것은 ‘세기의 폭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승인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도 책임이 있다. 1948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4호,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판결 등엔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 철수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귀환, 불법 정착촌 건설 중지 등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로비와 협박에 국제사회는 침묵해왔고,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은 용인되어 왔다.

이미 많은 희생을 치러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말한다. “풍요로운 팔레스타인 대지와 가을 추수, 마을 결혼식과 노랫소리, 올리브나무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 이 모든 순간들을 빼앗겼습니다. 이 모든 희생은 우리 삶을 신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물러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이룰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아이들이 돌아갈 그 순간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숨 건 행진은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학살과 불법 점령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지정 및 대사관 이전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김재현 | 나눔문화 사회행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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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봄이 되었다. 남쪽은 온통 꽃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구례의 봄을 떠올렸다. 구례의 봄은 노란빛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간 작은 마을은 산수유로 물들어 있었다. 꽃동산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담장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긴 개울을 뒤덮은 산수유는 눈부셨다. 개울가 어디든 내려서면 꽃그늘이었다. 햇발에 너울대는 꽃에 취해 마을 고샅길을 돌아다니다 찾은 민박집은 개울가에 붙어 있었다. 툇마루에 서면 달물결이 보이고 달빛에 짙어진 꽃송이가 가물댔다.

봄이 한창인데도 민박집은 텅 비어 있었다. 놀러 와서도 바쁜 사람들은 산수유가 늘어선 계곡을 따라 올라가 사진 몇 장 찍고는 관광버스를 타고 휘달리듯 떠나버린다고 했다. 꽃이 머무는 봄은 짧아서 그나마 줄지어 마을로 들어서는 관광버스 행렬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 사람들 다 민박집 한다고 돈 들여 고쳤는데, 손님이 안 와. 그나마 우리 집이 자리가 좋아서 사람이 좀 있지.”

틈틈이 방문을 벌컥 열고 필요한 게 없는지 묻던 주인 할머니는 먹을 걸 가져와서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여기서 좀 떨어진 동네서 살다가 시집왔는데, 고생고생 말도 못해.”

우리 어머니들의 고생 연대기는 엇비슷했다. 1막이 끝나면 2막은 굳이 듣지 않아도 줄줄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하여 이제는 자식새끼들 공부 다 가르쳐 시집 장가 보냈으니 걱정 없다는 뻔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 하지만 주인집 할머니는 말끝에 담장 너머 산수유를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봄꽃이 좋으면 맘이 아파. 내가 살던 동네가 여순사건 때 쑥대밭이 되었거든. 어려서 나는 잘 모르지만, 그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내가 고생한 것도 다 그 탓인데, 누구한테 말도 못해.”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픔은 잦아들지 않아,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없이 사그라졌다. 아픔을 감춰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짐작키 어려운 나는 할머니를 따라 산수유만 바라봤다. 꽃나무의 옹이도 보굿도 보려 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면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보낸 동백꽃 배지를 옷에 달면서 산수유 마을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가슴앓이를 세상이 이제 덜어줄 수 있을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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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다행이다. 쓰레기 대란 뉴스를 접한 첫 느낌이 이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은 인생만이 아니다. 날마다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지만 이 비닐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페트병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자 난리가 났다. 일명 쓰레기 대란인데, 우리는 날마다 대란 속에 살아왔다. 비단 재활용 쓰레기만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사고가 나서야 비로소 몸부림을 치며 우왕좌왕한다. 그리고 서로 탓한다. 중국이 수입을 안 해서 그렇다는 둥, 환경부가 알면서도 대책에 게을렀다는 둥 언론에서도 누구 잡을 데 없나 몽둥이를 들이댄다. 이 두더지 잡기는 대한민국의 신풍속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잘것없는 살림인데 터무니없이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가 부끄러워, 어디 가서 엄마가 환경운동 한다는 말 하지 말라고, 아들한테 농담하곤 했다. 환경운동가도 농담으로 때우고 걱정만으로 지나쳤는데 누굴 탓하겠나! 이제 대란으로라도 우리나라가 쓰레기 분리수거 선진국이 아니며 여태 돈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할밖에.

1997년 여름, LA에서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에 참가 중이던 찰스무어는 파도도 없는 바다 위에서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다. 이크, 이게 뭔가, 자잘한 플라스틱 조각으로 뒤덮인 망망대해라니! 태평양 위에 존재하는 거대 쓰레기 섬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가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다. 요트대회 후 그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을 연구하는 해양환경오염 전문가가 되었고, 이 괴상한 쓰레기 더미 이야기를 ‘LA 타임스’에 기고하여 퓰리처상을 받는다.

멋진 한 사내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환경운동가들이 나라로 명명했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1호 시민으로 등록한 바 있다. 세계화는 자원과 상품, 금융의 이동뿐 아니라 쓰레기도 세계를 떠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플라스틱은 죽지 않고 이동할 뿐이라는 무서운 진실도 알려주었다. 유독 물질을 흡수한 미세 플라스틱이 물고기의 몸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른다는 걸, 이런 난리통이 아니면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고.

쓰레기 대란은 마침내 올 게 온 것이다.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이제 대책도 같이 세워야 한다. 얼마전 인터뷰 기사에서 ‘고름 묵힌다고 살 되는 것 아니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쓰레기 문제에서 고름 좀 발라내고 싶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거절하니 TF를 꾸려서 베트남 등 다른 팔 곳을 알아보겠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긴 하다. 재활용업체에 세금으로 보조금을 더 줘서 앞으로는 이런 저항을 근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쓰레기 매립지를 더 넓히고, 지자체와 협상을 잘해서 자유롭게 갖다 버리는 것도 대책일 수 있다. 그런데 반복 가능성 농후한 대증요법이다.

진짜 해결은 일단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이나 접시,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올 1월 영국 메이 총리는 2042년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환경보호 전략을 발표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이나 추가 비용을 물리고, 마트에서 제공하는 비닐봉지에도 5펜스(약 75원)의 가격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가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도 이런 용감한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을까?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은 쓰레기 대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월드워치 연구소가 발행하는 지구환경보고서의 2010년 제목은 ‘소비의 대전환’이다. 현재와 같은 소비습관으로는 지구가 2개, 3개가 되어도 부족한데 과연 어떻게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재미난 대안을 제시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포장이 잔뜩 된 인스턴트를 구입하거나, 상품을 요모조모 따져볼 수 없을 때는 어김없이 바쁠 때다. 도시인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소비재로 때우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 시행한 근무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개정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여유를 주기를 기대한다. 생산과 상관없는 빈둥거림이 있어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눈에 들어오고, 미세 알갱이가 생선을 통해 내 아이 입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성찰을 비로소 할 수 있고, 그것이 시민운동의 시작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족.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예산을 들이붓고 있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스티로폼 포장재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대체재 개발 등 젊은 인재들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주고 지원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한술 더 뜨자면, 생산자들이 포장재 이런 거품경쟁을 계속하는 건 돈 쓰고 욕 먹는 일이니 다같이 줄이자고 먼저 담합해주는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이런 담합도 죄인가요?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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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고 장자연 성접대 사건, 용산참사 등 5건을 2차 재수사 사건으로 선정하고 1차 재수사 사전조사 사건 중 8건을 본조사 사건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재수사 대상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면 검찰 의도에 깊은 의구심이 생긴다. 검찰 과거사위는 과거 검찰의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그렇다면 검찰권 남용이나 검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위주로 재조사 사건이 선정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과거사위에서 발표한 재조사 사건들은 검찰 과오보다는 경찰의 과오 찾기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명의 검찰 고위 간부가 관련됐지만 제보자 외엔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던 삼성 떡값 검사 사건, 검사 25명의 수수혐의가 드러났지만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 군·경찰·검찰 고위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가 밝혀졌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징계조차 되지 않았던 윤상림 게이트 사건 등, 검찰이 진정 과거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포함됐어야 할 사건은 단 한 건도 선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별장 성접대 의혹 등으로 경찰에서 특수강간죄로 송치했지만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았던 김학의 법무차관 사건은 1차 사전조사 사건에 포함됐다가 본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선정 사건들을 볼 때 검찰은 실제 과거 검찰의 과오를 찾고 반성하기보다는 경찰과의 수사권조정을 앞두고 경찰의 과오 사건을 찾고 이를 근거로 수사권에 대한 협상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간 우리나라 검찰은 세계 유례없는 막강한 사법권력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검찰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적폐수사로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한 검찰이 다시 한번 적폐의 대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지, 지난 정부에서 계속되었던 검찰개혁 실패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동규 | 세종시 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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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 대통령은 헌법 개헌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2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거친 뒤 국회가 개헌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을 받게 되면 국민투표에 부치게 된다.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수 과반수가 찬성하였을 경우 새로운 헌법은 대통령의 공포를 거쳐 시행된다. 이번에 개헌투표를 하게 되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선거를 직선제로 바꾼 국민투표 이후 31년 만의 10번째 헌법 개정이 된다.

오는 6월13일은 시장, 교육감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뽑게 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이제 선거일까지는 70여일이 남아 있다. 개헌 국민투표를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려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최종 법정기한이 5월24일이다. 법정기한까지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그 전에 개헌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개헌에 대한 수많은 의견과 실시 여부에 대해서도 수차례 혼선이 있어 왔다. 이번에도 논의만 무성하고 결정이 늦어진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과 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민투표 실시 여부가 결정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국민투표가 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다면 8장에서 9장(보궐선거 실시 시)에 이르는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를 해야 한다. 투표율도 높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혼란 없고 공정한 선거와 국민투표를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 개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개정안과 정당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한 투표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투표 실시 여부를 조속히 확정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해 줄 것을, 생산적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바란다.

<안병국 | 부산 금정구 구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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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경보호부는 작년 7월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올 연말부터 폐플라스틱, 분류하지 않은 폐지, 폐금속 등 고체 폐기물 24종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자 폐지·폐비닐·플라스틱 가격이 폭락하면서 처리에 대혼란이 생기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해 말 ㎏당 130원이던 폐지 가격이 몇 개월 사이 100원가량 폭락하면서 폐지 줍는 노인들은 현재 ㎏당 30원 정도를 고물상에서 받고 있다. 가격 폭락 전에도 하루종일 100㎏을 주워도 고작 1만3000원 벌이였다. 하지만 동일한 양의 폐지를 주워도 지금은 3000원밖에 안된다. 고물상 역시 어렵다. 중간 도매상 재활용업체에 넘기는 마진도 ㎏당 10~20원 사이로, 폐지가 나오는 업체에서 무상으로 수거를 의뢰해도 수거비용이 나오지 않아 수거할 수 없는 실정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함께 취급하던 폐플라스틱 용기 값도 곤두박질치면서 ㎏당 90원에서 20원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공짜로 고물상에 넘겨도 잘 받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활고는 깊어지고 있다. 영세고물상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와 계약을 맺은 재활용품 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폼 등을 거두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큰 혼란이 일었다. 다행히 환경부가 업체 지원대책을 설명하고 아파트와 수거업체 간 재계약을 독려하면서 정상 수거가 결정됐지만, 향후 정부와 지자체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한국환경공단 ‘관세청 재활용가능자원 가격조사의 수입통관실적기준’ 2018년 1월 자료에 따르면, OCC(기계 펄프로 만들어진 종이나 판지: 신문, 잡지와 유사한 인쇄물)는 26만194t에서 28만859t으로 전월대비 10.2%로 증가했다. 그리고 ONP(표백하지 않은 크라프트지: 판지나 물결 모양의 종이, 판지로 만든 것)는 63만325t에서 80만33t으로 전월대비 2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폐지의 가격 또한 전월대비 OCC의 경우 t당 가격은 229달러에서 234달러로 2.2% 상승하였고, ONP는 t당 170달러에서 178달러로 4.7% 상승하였다. 국내 폐지가격 폭락 및 폐지처리 포화상태와 반대로 기업은 해외수입 비중을 늘린 것이다.

중국발 폐자재 수입금지 조치로 국내 폐지가격의 폭락으로 인해 폐지 줍는 노인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도 폐지는 전월보다 높은 가격으로 더욱 많은 양이 수입되었다. 물론 자유경쟁 체제에서 수입량을 늘리는 것은 기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170만 폐지 줍는 노인의 허리는 더욱 휘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국내의 폐자원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시장경제의 자유경쟁도 좋지만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국내의 폐자원을 100% 우선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시장 개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정재안 | 소상공자영업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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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가 바깥세상으로 처음 나간 것은 25살 때였다. 그는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1급 중증 지체 장애여성이다. 집에서 한글을 배워 고전·문학 전집류를 깡그리 읽었고, 읽다보니 생각과 감정이 흘러넘쳐 글을 꾸준히 썼다고 한다. 그녀의 세상과의 소통수단은 라디오와 편지였다. 세상의 첫 나들이도 편지가 맺어준 인연 덕분. 영희씨는 부산의 한 장애여성 공동체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그곳의 언니 두 명이 강원도 동해에 살던 영희씨를 불쑥 찾아왔다.

“작년에 핀 개나리를 올해 보고, 내년에도 또 보고…. 언제까지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나.” 영희씨의 막막한 심정에 공감한 언니들이 다른 세상을 경험토록 하겠다며 영희씨에게 손을 내민 것이었다. 동해에서 부산까지 버스로만 7시간 거리. 자신들도 경증 장애인인 두 언니가 영희씨를 버스·택시에 업어 태우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공동체에서 1주일을 지내며 영희씨는 함께 살기 위해 알아야 할 일상의 돌봄과 책임을 진하게 배웠다. 그러곤 버스에 태워준 뒤 “혼자 가라”는 언니들에게 등 떠밀려 두려우면서도 짜릿한 나 홀로 귀향을 감행한다. 급물살과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세상으로 연결된 다리를 한번 건너본 셈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7년, 영희씨는 독립했다. 36살 때였다. 어머니의 뇌졸중이 결정적 계기였다. 장애인단체에서 만나 생각을 나누던 중증 장애여성 두 명이 함께 살기로 했다. 집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 쉬운 일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랴. 그럼에도 3명의 ‘거북이 시스터즈’는 서울 고덕동에 터를 잡고 삶의 존재를 찾아가는 느리고 고된 행로를 시작한다.

이쯤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식의 서사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거북이 시스터즈는 사람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고, 우월·열등함으로 구별하고, 이를 통해 차별과 비하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기존의 정의에 도전해갔다. 다른 장애·비장애 여성들이 합류해 모두 아홉 명이 이틀이 멀다하고 모였다. 고덕동은 아지트가 됐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토론하고 울고 웃으면서 세상이 외면하던 자신들의 몸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급기야 이들은 이듬해인 1998년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워낙 가진 것이 없어 자유로웠고 그 덕분에 기발하고 창조적인 생각들이 분출하자 스스로의 눈부신 능력들에 놀라워하다 이를 다른 장애여성과 나누고 함께하기 위해서”였단다.

지난 20년간 ‘장애여성공감’은 거북이걸음으로 쉬지 않고 나아가며 많은 일들을 해냈다. 잡지 ‘공감’을 발간해 주변의 장애여성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섣불리 말하지 않던 장애여성의 몸과 정체성, 독립, 성적 억압과 욕망, 성폭력 피해 등에 대한 글들은 이 땅에 장애여성의 존재와 목소리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이후 몰려든 장애여성과 캠프를 열고 난장을 벌였으며, 연극팀 ‘춤추는 허리’와 발달장애여성 일곱 명으로 구성된 노래팀 ‘일곱빛깔 무지개’도 만들었다.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연극을 상상해 보시라. 비장애인들 틈에 끼어 ‘정상’의 몸짓을 연기할 것이라 생각하면 이 또한 오산이다. 누워서 하든 휠체어에 앉아서 하든, ‘춤추는 허리’는 끼와 전문성을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유쾌하게 발휘했다. 허리를 돌리며 꿈을 키웠고, 동시에 소위 ‘정상성’에 기댄 기존의 미적 기준을 휘저었다. 그렇게 세상에 균열을 내는 과감한 도전을 해나갔다.

최근 ‘장애여성공감’이 개최한 20주년 행사를 보면서 의존과 독립, 연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세상은 흔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립’의 삶을 강조한다.

영희씨는 독립 후 세월의 급물살 속에서도 느리게 나아가고 그나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매번 사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동해까지 찾아왔던 두 언니, 여성학 공부를 함께했던 비장애 페미니스트 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장애·비장애 여부를 떠나 여러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지지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비장애인이라 해도 온전히 주변사람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본 도쿄대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는 “자립이란 의존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이들이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비로소 자립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도움이 시혜와 굴욕이 되지 않으려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의사가 존중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나? 거북이걸음으로 세상을 바꿔오고, 현재는 각종 인권단체 대표와 활동가로 활약 중인 ‘장애여성공감’의 박김영희 전 대표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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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만난 선배는 그때 이미 한 아이의 아비였다. 일에 대한 능력도 뛰어났지만 조직 생활도 그렇고 뭐든 대충하지 않았다. 작은 불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 동료에게 벌어진 일이라도 그러했다. 2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난 선배는 그새 두 아이의 아비였다. 불의를 참지 않고 변화를 위해 직접 나서는 성격은 더욱 확장되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성년을 앞둔 둘째 아이의 성(性)별을 바꾸기 위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하였다. 자라면서 태어난 바와 다른 성정체성을 자각한 자식의 뜻을 존중하여 법적 신분증명 정정까지 받아낸 선배의 결단도 놀라웠지만, 그 과정에서 선배가 쓴 부모동의서는 그 어떤 글보다 감동적이었다.

나는 선배의 아이가 누구보다 부러웠다. 자신의 존재를 근본부터 회의해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건 세상 그 어떤 고민보다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근원적 고민을 함께 고민해주고 끝내 지지해줄 부모를 만날 확률은 그보다 더 어렵다. 동의서를 읽으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장이 떠올랐다. 한때의 베스트셀러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던 이 문장은 원래는 셰익스피어의 &lt;리어왕&gt;에 나오는 문장이다. 정답은 나일 것 같지만, 아니다. 사실은 남이다. 타인이다. 타인의 시선이, 타인의 통제가 나를 규정하고 통제한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시선에 갇힌 인간이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나도 때때로 타인의 삶에 대해 간섭하고 규정하고 통제하는 오만을 저지르며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lt;굿바이&gt;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일본영화 &lt;오쿠리비토&gt;다. ‘보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영화는 첼리스트의 삶을 접고 장례지도사가 된 주인공이 만나는 다양한 죽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실제로 접하기 힘든 고인을 염습하는 장면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아름답고 경건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영화 속 에피소드 중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고인이 여자인 줄 알았는데, 염습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화장을 해야 하는데, 여자로서 화장을 해야 하는지 남자로서 화장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가족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남자여야 한다, 여자여야 한다를 두고 가족끼리 다투는 중에 아버지가 울며 고백한다. 자식이 여자가 되고자 하는 순간부터 얼굴을 정면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다른 사례도 비슷하다. 알록달록하게 머리를 물들인 채 죽어 누운 자식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며 교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한 사진 속 단정한 모습으로 바꿔달라고 불평하는 어머니가 있다. 나쁜 친구를 만났을 뿐, 그래서 불행하게 사고를 당했을 뿐 원래는 순한 아이였다는 어머니의 불평과 불만 뒤에는 딸이 어떤 갈등과 고민 속에 방황했는지는 끝내 무관심했던 부모의 무책임과 이기심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말하고 싶어하면서 네가 누구인지도 내가 규정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내 얼굴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서야 한다는 모범답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나보다 타인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강요하고 통제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있는 삶은 물론이고 때로는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4월은 4·3으로 시작해 4·16으로 끝난다. 무고한 삶들이 이유도 모르고 무력하게 떠난 날들이다. 동시에 오해받고 통제되고 혹은 감춰진 삶이자 죽음들이다. 그들의 참혹한 아픔을 어루만지고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시선은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삶과 세상을 떠난 모든 죽음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들의 것으로 돌려주고 지켜주는 봄이면 좋겠다. 천지에 흐드러진 꽃조차 자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자기 이름으로 저물지 않던가.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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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주년을 맞은 3일, 희생자를 기리는 사이렌이 제주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날 제주 밖의 시민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제주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현직 대통령 참석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추념식이었다. 4·3 희생자들은 지하에서나마 위로받았을 것이다. 이날 4·3 추념식은 2000년 4·3특별법 제정, 2003년 국가를 대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2014년 국가추념일 지정에 이은 4·3에 대한 또 하나의 재평가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위렵탑에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4·3이 국가폭력이 낳은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또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4·3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치고 토벌대가 강경 진압작전을 해 제주 양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논평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은 해방 직후 불안정한 정치상황에서 제주 시민들이 미 군정과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거부하는 무장투쟁으로 시작됐다. 단독 선거는 남로당뿐 아니라 김구로 대표되는 중도세력까지 반대한 사안이었지만 유독 고립된 제주에서 무자비한 진압이 벌어졌다. 2003년 정부의 4·3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 3월1일 관덕정 앞 발포사건과 1948년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를 거쳐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까지 7년여에 걸쳐 2만5000~3만명가량의 제주도민이 희생됐다. 당시 제주 인구 10분의 1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어린아이와 노인 희생자도 전체의 12%나 되었다. 무장봉기를 주도한 남로당 무장대가 살해한 주민도 있었지만, 군경과 우익단체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한 양민 학살이 대부분이었다. 국가폭력에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것이다.

이후 유족에게 가해진 폭력도 심각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숱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다. 유족들에게 씌워진 ‘폭도의 가족’이라는 굴레는 연좌제로 대물림까지 되었다. 1970년대까지 4·3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가슴과 몸에 한이 새겨진 유가족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제주에는 봄이 없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4·3이었다. 그렇게 70년이 흘렀다.

4·3에는 여전히 가려진 부분이 많다. 남로당에 의한 무장봉기나 군경의 양민학살에만 주목해서는 4·3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시작된 4·3에는 남북통일과 평화,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강렬한 염원과 저항정신이 들어있다. 이를 재조명해야 비로소 4·3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최근 학계와 시민사회의 성찰이다. 4·3은 2차 세계대전 후 동서 냉전의 최전선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미국과 소련의 책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 4·3특별법 개정안에는 억울한 희생에 대한 배상과 보상, 불법적 군사재판의 판결 무효화, 4·3 수형인 명예회복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지금도 낡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색깔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반공주의를 절대 선으로 떠받드는 이념의 틀을 넘어야 비로소 사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진정한 국민 통합도 가능하다. 상처는 진상규명 후 가해자가 참회하고 피해자가 용서해야 비로소 치유된다.

70년이 되어도 정의할 수 없는 사건으로 방치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모독하는 일이자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시민들이 4·3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 그 출발을 다짐하는 것이 70번째 4·3을 맞은 오늘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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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들렀던 아직 저개발국가인 부탄이 환경 보호를 위해 범국민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트레킹 루트 곳곳에, “자연은 모든 행복의 원천” “자연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속해 있다” “지구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들어졌지 우리 일부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같은 팻말들이 있었다. 심지어 산골의 초등학교도 옆 개천을 입양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체험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배울 것이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였다. 서울에서 겪는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위도 편서풍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서쪽에 있는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가 우리나라 쪽으로 제트기류 같은 대기흐름을 타고 오게 된다. 그럼에도 서울의 공기가 나쁜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대체로 바람에 의해 희석되거나 쓸려가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가지만, 때로 바람이 약해져서 대기가 그대로 머무르는 경우, 특히 대기 상층에서부터 고기압이 자리 잡아 공기가 상하로 섞이는 현상을 막아버리는 경우에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부분은 중국이 나서서 노력해줘야 한다. 중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과학적 근거를 축적해가면서 협의해 나가야 하겠지만 단기간 내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당장은 우리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국내적으로는 흔히 화력발전 같은 요인을 탓하지만, 미세먼지 분포 지도에서 인구와 활동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 중심부가 거의 항상 나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활주변에서 만들어내는 요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이 요인이 우리는 아직 데이터가 없지만 유럽에서는 30퍼센트를 넘는다고 한다.

생활주변의 미세먼지는 생활 패턴을 ‘미세먼지 저감형’으로 바꿈으로써 줄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가용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든지,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바꾼다든지, 에너지 사용이나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다든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전거나 대중교통 인프라, 친환경차 교체 지원, 에너지세금의 조정 등과 같은 정부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더 맑은 공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자발적 노력을 하는 데 따르는 생활의 불편함은 상당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동참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거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주면 내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으므로 먼저 나서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누구도 저감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맑은 공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또 다들 이를 위해 조금씩은 노력할 의도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세먼지가 많은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게임이론에서 얘기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각 구성원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 주지 않는 한 지속된다.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저감노력을 사회의 각 구성원들과 각 부문이 다 함께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다. 아무래도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 내기 쉬운 위치에 있으므로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우선 가정, 직장, 공장, 자영업체, 농업, 선박(벙커C유) 등 각 구성원 각 부문이 처한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지 구체적인 행동 항목을 전문가들의 토의와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서 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시민의 참여(예를 들어 대중교통 활용, 노후 경유차나 유해 공장 등에 대한 시민 감시, 작은 차 타기 등)가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추진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다들 동참하면 우리 모두가 좀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하고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환경, 기후 관련 여러 단체나 NGO, 특히 각급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기꺼이 참여해준다면 범사회적 노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보다 더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정홍상 | APEC기후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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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열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이 TV로 생중계된다. 대법원이 지난해 상고심 외에 주요 사건의 1·2심 선고도 생중계할 수 있도록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한 이후 첫 사례다. 규칙 개정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순실씨 선고가 있었으나 생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공공의 이익 등을 고려해” 중계방송을 허가했다.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전향적 판단으로 평가한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다만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 비공개로 할 수 있다고 단서를 붙였다.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관심이 높은 사건의 경우 선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사법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도움될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 선고는 단순히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심판을 넘어, 역사적·사법적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에 생중계 결정은 당연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후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할 때’ 피고인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사건 선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이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를 지낸 사람으로서 형사사법절차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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