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일 국무회의에서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하고 6일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구조조정으로 고용사정이 나빠진 6개 지역의 위기극복 비용 1조원을 제외하면 2조9000억원이 청년일자리 지원 사업용 예산이다. 지난달 발표한 청년일자리대책을 근간으로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과 창업을 독려하는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정부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내 집행이 가능하고 시급히 추진할 사업을 중심으로 반영했다고 말했다.

청년일자리의 절박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데에도 이론은 없다. 경제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청년만은 4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일 정도로 상황은 엄중하다. 그렇다 해도 지난해 11조원의 추경예산, 올해 429조원이라는 슈퍼 예산 중 일자리 예산 19조2000억원에 이어 또다시 추경을 편성한 것은 미덥지 못하다. 정부는 지난해 추경을 공공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중물’로, 올해 추경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추경은 일자리 정책의 약발이 듣지 않았거나 정부가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정부는 3~4년 내 에코세대가 취업시장에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년 내내 추경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추경예산안 제출로 칼자루는 국회로 넘어갔다. 그나마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지만 벌써부터 정치공세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 답답하다. 국회는 정부의 추경안이 넘어올 때마다 내용에 대한 치열한 논의 대신 신속·적기 투입(여당), 선심성·선거용(야당) 등 정치 공방만 벌여왔다. 이런 모습은 여야 공수가 바뀌더라도 늘 한결같다. 그간의 추경 효과는 어떠했는지, 경기개선 조짐 상황에서 추경이 온당한지, 이번 한번으로 일자리 문제의 가닥이 잡힐 것인지, 민간부문의 고용 증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추가해야 할 것인지 등 어느 것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다. 벌써부터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터여서 겉핥기식 논쟁으로 일관한 채 끝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잇단 추경이 요행히 잘 걷힌 세금 덕에 국채발행 없이 편성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세금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청년의 아픔을 보듬기 위한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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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가 지난 2일 열렸지만 나흘째 내리 파행이다. 여야는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 남북정상회담 등 외교현안, 개헌과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급하다며 임시국회를 열어놓고 개의조차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방송법 처리 없이는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두 법안은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것이다. 이견이 있으면 접점을 찾으면 될 일이지, 새삼 국회를 멈춰 세울 만큼 긴급한 사안이 아니다.

이번 임시국회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의정활동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권리금 보호 범위를 전통시장으로 확대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유통산업발전법, 생계형적합업종법, 건설근로자고용개선법 등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위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들이 쌓여 있다. 이때를 놓치면 지방선거 이후로 늦춰질 판이다. 무엇보다 4월은 한반도에 대변화가 시작되는 격동의 시기이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비핵화, 미국·중국과의 관계 등 외교현안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국회는 지금 불을 밝히고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한 치의 양보 없이 기싸움만 벌이고 있으니 혀를 찰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방송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야당 시절이던 2016년 7월 정권의 방송장악을 막겠다며 야 3당 합의로 발의했던 것이다.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매번 되풀이되는 정권의 방송장악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이런 때일수록 협치를 강조한 여당이 국회의 정상화를 위해 한발짝 양보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은 엊그제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를 강화한 개헌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당리당략에 빠져 걸핏하면 국회를 멈춰 세우는 습성을 보이는 이런 의원들이 더 크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겠다고 하면 어느 시민이 동의하겠는가.

4월 국회 역시 빈손이 돼서는 안된다. 남북도 대화를 이어가는 마당에 국회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는 대화와 협상이다. 그러지 않고 국회를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결장으로 끌고 간다면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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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살인은 미국 고질병입니다. 지난 2월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한 범인이 쏜 총탄에 17명이 사망하며 충격을 줬지만, 그 충격이 무뎌지는 지경이죠. 네 명 이상이 희생되는 ‘총기 난사’가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는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전국총기협회가 워싱턴 정가를 꽉 잡고 있는 게 주요 요인입니다. 총기 보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탓도 있죠. 총기에 익숙한 미국인의 정서도 한 요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미국의 탄생 그 자체입니다. 미국 팽창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죠. 그 탓에 미국 전역에 퍼져있던 원주민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죠. 살인적 폭력이 미국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승자인 백인들이 총을 사랑할 수밖에요. 총기 폭력은 미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이 원죄를 씻지 않고서는 총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딱지 붙이기는 한국 고질병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추악하고 비열한 범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되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시장 때 이미 많은 이가 그의 저열함을 눈치챘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심은 이미 ‘다스’를 향하고 있었죠. 그래도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습니다. 입맛을 다시는 그의 등짝에 붙어있던 ‘현대건설 신화’라는 딱지와 ‘장로’라는 딱지 덕이었죠.

불행히도 한국 거리는 온통 딱지투성이입니다. 재벌을 옹호해도, 신자유주의를 추구해도 ‘진보’ 딱지는 민주당 이마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인이면 ‘미국인’으로 떠받들고 흑인은 미국인이어도 ‘깜둥이’로 멸시하죠.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교포’이지만 한국계 중국인은 ‘조선족’입니다. 이 중 최고(?)의 딱지는 역시 ‘빨갱이’죠.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공연한 2018년에도 제1야당은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만들고 앉아있습니다. 누구는 윤상 평양공연 예술단 음악감독을 친북인사들과 엮는 웃지 못할 비난도 했죠. 보수정권 때에는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 “종북 연대”라면서 조롱했고 “북한 지령에 따른다” “차라리 월북하라”며 규탄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빨갱이로 몰아 해산시키며 그 광기의 정점을 찍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빨갱이가 아니냐는 의심에 내내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든 딱지는 이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비극과 비극을 넘나들었죠. 빨갱이 선동에 열을 올리며 이명박, 박근혜는 정부를 노리개로 썼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는 가라앉았죠. 신군부 독재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이는 박종철, 이한열만이 아니었죠. 그 독재 정권의 시작은 광주 학살이었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죠. 1975년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은 사형 확정 후 불과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명박이 수상해도 그냥 찍었듯, 우리는 쉬쉬하며 넘어갔습니다. 나의 안위가 당장 급했지만 그렇게라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조그마한 딱지라도 하나 있어야 했죠. 권력은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딱지만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딴 곳만 쳐다본다는 것을요. 그 시작은 1948년이었습니다.

그해 4월3일, 400여명의 좌익 무장봉기가 제주도를 흔들었고 미 군정과 한국 정부는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이름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였습니다. 3만여명을 학살했고 마을도 불살라버렸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죠. 살아남은 이들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감추고 침묵으로 버텼습니다. 이들의 피를 쏟고 태어난 대한민국 권력은 빨갱이 딱지에 중독됐죠. 그러니 제주의 피는 대한민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딴 곳만 쳐다보는 사이 뻔뻔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오늘까지 왔습니다. 제1야당 대표는 아직도 빨갱이 딱지 덧대기에 바쁩니다. 다행히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죠. 원죄를 씻지 않고서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명명백백히, 숨김없이 밝히는 일이 급합니다. 온전히 씻지 못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 급한 숙제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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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5월 말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이다. 핵심 의제가 비핵화라는 의미는 정상회담에서 다른 의제가 함께 다루어지더라도 비핵화 의제가 깨지면 다른 의제도 진전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일치하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협상을 통하여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비교적 분명해진 것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방식’이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비핵화의 방식에 대하여 중국의 신화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위한 단계적, 동보적 조치에 나선다면 한반도 비핵화가 해결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밝힌 방안이니 가볍게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이 발언 이후 주목을 받게 된 개념이 바로 “단계적” “동보적(동시적)”이라는 개념이다. 북·미  간에 비핵화 문제를 단숨에 일괄타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던 만큼 이 시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왜 단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과거 6자회담을 통하여 북핵 문제를 풀고자 했을 때 도입한 방식이 단계적, 동시적 방안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고, 또 북한에 핵개발의 시간만 벌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각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북한이 왜 단계적, 동시적이라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론적 점검을 하고, 과거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게 어떤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왜 단계적, 동시적이라는 개념이 중요한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제공하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호 신뢰가 전혀 없는 두 조폭이 만나서 마약을 사고파는 거래를 한다고 가정을 해 보자.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이때 두 조폭은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마약의 품질을 검증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상대방이 물건과 돈을 제대로 가져왔는지를 확인하는 단계, 실제로 교환하는 단계, 그리고 거래가 이루어진 후 안전하게 현장을 떠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단계 등을 거치게 된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상호 신뢰가 존재하지 않을 때의 거래는 서로 사기를 당할 것을 우려해 상대방의 진정성과 실천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고, 실제의 거래는 외상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동시적 거래를 해야 돈이 떼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같은 아주 신뢰할 만한 제3자가 중재를 하게 되면 신용카드 거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단계적, 동시적 주고받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은 불신의 관계이고, 북한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핵무기를 미국과 거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만약 북한이 단숨에 핵무기를 다 주어버리고,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평화적 조치를 당장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받겠다고 결정하면, 북한만 무장해제가 된 상태에서 혹여 미국이 딴마음을 먹을 때, 북한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위의 비유와 같이 단계적, 동시적으로 비핵화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미국이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기간 동안 북한이 딴짓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또 다른 불신이 존재한다. 과거의 단계적 비핵화 과정이 틀어진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방안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신뢰 부재의 상태에서는 이론적으로 단계와 동시성을 피할 수는 없다. 지난번 기고에서 필자가 제안한 북·미 군사동맹이 단계와 동시성을 빨리 뛰어넘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지만, 북·중 정상회담으로 인하여 이 카드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거의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북한의 최고 정상이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을 교환할 것을 선언하고, 실무진이 정상의 축복하에 비핵화의 단계를 최대한 빨리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북한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중국이라는 보호막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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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만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만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만㎿ 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만㎢ 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만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만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억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국)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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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극장가에 머물며 ‘장기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어떤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시시한 영화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서 한껏 풀이 죽은 취업준비생 신분의 젊은 처자가 고향 시골집에 내려가 제 손으로 밥을 챙겨 먹는다는 내용이 사실상 그 중심 이야기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식재료가 많지 않고 돈도 없지만 요리할 시간이 넘쳐난다. 여주인공이 주로 제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제 손으로 마련하여 요리를 하고, 남는 시간에 친구들과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시간을 보내는데 영화는 계절과 함께 자연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그 시간에 집중할 뿐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 제공

 

갈등이나 반전은 물론 이렇다 할 사건조차 거의 없다. 기껏해야 벼락 치는 밤 김태리가 연기하는 혜원이 이제 막 새 식구가 된 강아지 오구를 끌어 안고 잤다는 것 정도? 혹은 비바람에 벼 이삭이 넘어졌고 이모랑 같이 넘어진 벼 이삭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 정도? 그래서 허리가 좀 아팠다는 것 정도? 뭐 그 정도다.

그런데도 그토록 시시하고 밋밋한 영화에서 말할 수 없는 위안을 얻었다는 젊은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작은 숲’의 ‘치유’를 받는 듯 작은 행복감 속에서 넘어지고 찌그러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이도 있고, 부상을 치료하고 다시금 전쟁터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의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나만의 케렌시아’가 따로 없었다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딱히 연출의 공을 높이 사고 싶은 마음은 미안하지만 많지 않다.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그 원작 영화에 비하여 조금 더 속도감 있고(두 편의 연작을 한 편으로 축약했으니 그 속도감은 당연한 거고) 내용이나 캐릭터의 이해도 측면에서 대중적 소구점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딱 그만큼 다른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미학적 매력이랄까 개성도 반감됐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영화에 비해서 보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의 김태리의 연기가 좋았지만 그 잔상이 의외로 오래가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소소하게 지속적인 만족감과 조용한 행복감을 주며 부드럽게 위무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원작 만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의 힘일 것이다.

1. 시골의 발견. 공부 못해서, 스펙 떨어져서 경쟁에서 낙오해도 괜찮다. 세상에는 낙오자가 도피하기 좋은 시골과 자연이라는 넉넉한 공간이 있더라.

2. 무언가를 사기 위해 직장을 구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창조력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3. 시골에서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내가 사장이 되어 내 일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불합격이나 해고당할 위험이 없다.

4. 포기가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포기를 통해 나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다.

5.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되레 장 자크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했듯 ‘인간이 자연의 상태에 가깝게 있으면 능력과 욕망의 차이는 점점 더 적어지고 따라서 행복으로부터 그만큼 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6. 돈보다 시간이 많아지면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보다 본질적인 것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 불완전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7.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며 행복감이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케렌시아’라든가 ‘소확행’, ‘와비사비’, ‘혐핫’ 같은 2018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함께 설명하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영화가 없겠다 싶다.

예컨대 투우장의 소에게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케렌시아가 필요하듯, 나날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인에게 영혼의 안식처이자 창조적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상영하는 극장의 구석진 자리 하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케렌시아가 된다.

또한 하루키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그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라고 했던 ‘소확행’의 자잘한 예들을 모으면 바로 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된다.

그리고 와비사비가 진정 ‘부족함에서 만족을 얻는 삶의 방식’이고 ‘유행에 뒤처진 낡은 공간이나 물건에서, 혹은 평소 무심히 지나쳤거나 과소평가했던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리틀 포레스트>는 와비사비 라이프의 표본이다. 그리고 이른바 ‘핫 플레이스’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만한 영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더 늦기 전에 극장에 가보자. <리틀 포레스트>가 아직 그곳에 있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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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전 7시였다. 32일간 단식 끝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2015년 8월에도 45일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 10년 동안 단식만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6년 겨울엔 광화문 캠핑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봄이 올 무렵까지 텐트 생활을 했다. 우린 ‘촌민’으로 매일 만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곤 했다.

쌍용차 싸움 10년 동안 스물아홉 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갔다. 어떤 이는 목을 맸고, 어떤 이는 탄불을 피웠다. 어떤 아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난간으로 향했다. 그 피눈물들을 어떻게 눈뜨고 말할 수 있을까. 고공농성도 몇 차례였다. 2012년 가을 끝자락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15만V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철탑에 올라 이듬해 여름 초입까지 171일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베니어합판 몇 개 놓은 위험천만한 고공농성. 2014년 12월13일에는 김정욱과 이창근이 공장 안 70m 굴뚝에 올라가 입김도 얼어붙던 겨울을 나고 101일 만인 이듬해 봄에 내려왔다. 2012년부터 1년 반 동안은 서울 대한문 앞에 스물두 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모시고 분향소를 지켜야 했다. 기름을 껴안고서라도 분향소를 지키겠다던 김정우가 끝내 구속된 해다. 그는 박근혜가 선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전태일 흉상 앞에 서는 것을 온몸을 던져 막았다. 괘씸죄였다.

쌍용차 해고자들만이 걸어온 통한의 길이 아니다. 2009년 지금은 구속된 이명박이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테러진압부대를 보냈던 77일간의 점거파업 현장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 희망고문의 길을 걸어왔다. 쌍용차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광우병에 대한 2200만 노동자 가족들과 소수 자본가들 간의 대리전이었다.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의 격전장이었고, 노사정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고지전이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둘러싼 사회적 진실규명 투쟁이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도 당선되면 맨 먼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2015년, 의원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구속되어 있는 한상균 등이 있던 철탑까지 올라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2015년 총선 당시 김득중이 노동자 후보로 평택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후원회장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현재 구속된 한상균과 77일간의 파업 당시 함께 구속되어 2년을 살다 나온 김혁의 삶과 우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lt;내 안의 보루&gt; 출간 도우미를 조국씨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도 난다. 2014년 고법에서 승소한 ‘회계 조작에 따른 부당해고’가 그해 11월13일 대법원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기만 했어도 모든 문제가 끝날 일이었다. 2015년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적은 임금’ 등을 목표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을 준비하던 박근혜 정부의 정치공작과 외압은 없었을까. 2014년 8월 만들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비선으로 관리했다는 ‘노동시장개혁상황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을까. 고법 판결 후 마힌드라사 자문으로 나선 김앤장의 힘이었을까. 진실은 언제 밝혀지고, 불의는 언제 바로잡히는 것일까.

감옥에 갇힌 한상균이 김득중을 대신해 옥중 단식을 하고 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쌍용차와 같은 죽음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희망버스 차장이 되셨다가 얼마 전 끝내 벌금을 선고받은 문정현 신부님이 쌍용차 김득중의 단식에 연대하기 위해 스스로 구치소 노역장으로 들어가시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모두 김득중이고, 한상균이고, 윤충렬이고, 김정욱이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쌍용차이고, 스물아홉 명의 얼굴 없는 죽음이고, 그 분노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도 이명박도 없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싸늘한 사회가 조금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다시 광장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4월7일 오후 3시, 평택역 앞에서 피눈물의 쌍용차 자동차들을 ‘워낭소리’처럼 끌고 평택 쌍용차 공장 앞까지 김득중의 빈자리를 메우러 함께 간다. 다음엔 무엇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싸늘한 마음에 조금씩 불길이 일고 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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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은 무작정 국도 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는, 그러나 보름이 가까워진 달과 그 달빛을 한 몸에 받은 벚꽃 때문에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이따금 바람이 한차례 불어올 때마다 어린 나비의 날개 같은 벚꽃이 살아 움직이듯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녔다.

 

 

“더러워서, 진짜….”

정용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했다. 벚나무와 야산에 가려 물류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간다면….’ 걸어서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정용의 마음이 약해진 건 그 거리 때문이었다. 잠깐 수치스럽고, 잠깐 고개를 숙이면, 일당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몇십 킬로미터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몇십 킬로미터라니, 그게 무슨 편의점에 새로 나온 과자 이름인가? 정용은 까닭 없이 자신이 버려진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부터 정용은 일주일에 세 번, 광역시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류창고에서 택배 상하차 알바를 시작했다. 주간과 야간 타임을 고를 수 있었는데, 정용은 오후 6시부터 시작해서 오전 6시에 끝나는 야간 근무를 선택했다. 시청 근처에 있는 정류장에 오후 5시쯤 서 있으면 용역 회사에서 마련한 전세버스가 도착했는데, 그 버스를 타고 출근했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그만큼 물류창고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일반 버스 노선이 닿지 않는, 외진 야산 근처에 있었다. 알바생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나 보지, 뭐. 정용과 달리 주간 타임에서 일하는 진만은 툭,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일은 고됐다. 하룻밤에 택배 상자 3000개를 트럭에 쌓는 일이었다. 일당은 8만원. 2주 연속 일을 나갔더니 그나마 허리 통증은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 퇴근 버스를 타면 현기증이 일고 종아리가 쑤셔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정용은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길은 다 이어져 있는 거니까, 걷다 보면 언젠간 도착하겠지. 정용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용은 물러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제 아침, 정용은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물류창고 담당 팀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 계약한 시간은 오전 6시까지인데, 왜 7시까지 일을 시키느냐, 그렇게 일을 더 시킬 거라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 않느냐, 정용은 때가 잔뜩 묻은 목장갑을 사무실에 반납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40대 초반쯤 보이는 담당 팀장은 컴퓨터 엑셀파일을 정리하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야, 뭐 우리가 대단한 일 시켰냐? 뭐 어려운 일 시켰어? 버스 오기 전에 잠깐 박스 좀 한쪽으로 정리해달라고 한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시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고…. 아, 진짜 요즘 애들은….”

정용은 담당 팀장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데, 그건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말의 태도 때문이었다. 저 인간은 날 언제 봤다고 저렇게 반말을 해댈까? 정용은 지지 않고 더 따지고 싶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자정 무렵 주어진 10분 휴식 시간에 정용은 다시 담당 팀장에게 따져 물었다. “시간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서가 아니고요, 정확히 하자는 거죠.”

“야,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둬! 그만두면 되잖아. 너 아니어도 매일 일하겠다고 오는 애들 천지야. 아, 진짜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왜 이러지?”

정용은 그 말에 바로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지고 물류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용은 후회하진 않았으나, 다리는 아팠다. 이대로 걸어가다 보면 모르긴 몰라도 아침 퇴근 버스보다 더 늦게 도착할 게 뻔해 보였다. 정용은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서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벚꽃에 가려 밤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벚꽃이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4월마다 사람들은 난리를 칠까….’ 정용은 괜스레 나무 밑동을 발로 툭 걷어찼다. 꽃잎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좋겠다, 넌, 정리하지 않아도 돼서. 요즘 애도 아니라서….” 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용이 한 시간 넘게 국도 갓길을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정용은 거의 반사적으로 차선 정중앙까지 뛰어나가 양팔을 흔들었다. 물류창고를 빠져나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차량 불빛이었다.     

저 차만 얻어 탈 수 있다면, 광역시 근처까지 갈 수만 있다면, 정용은 이 밤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추운 겨울날, 자신을 태우러 다가오는 택시를 만난 것처럼, 정용은 최선을 다해 크게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앞까지 다가온 차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를 피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면서까지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정용은 두 손을 든 채 멀거니 멀어져가는 차의 트렁크를 바라보았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벚꽃이 먼지처럼 일어났다가 다시 서서히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그대로 지나칠 것 같았던 차는, 정용과 이삼십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러곤 시동도 끄지 않은 상태로 한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서, 정용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그가 고함처럼 내지르는 말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미쳤어! 네가 멧돼지야! 깜짝 놀랐잖아! 하여간 요즘 새끼들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재빠르게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는 더 빠른 속도로 정용과 멀어졌다. 정용은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라진 국도는, 좀 전보다 훨씬 더 컴컴해진 것 같았다. 벚꽃이 만개해 있어도, 벚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 어둠이 정용은 좀 무서웠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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