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케어’ 설계자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

미국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한국인은 대체로 애국자가 된다. 심각한 영리화·상업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의료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아니, 구멍투성이다. 국민건강보험을 갖췄으나,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대부분 민영병원이다. 공공병상 비율은 10% 수준으로 미국보다도 낮다. 가계가 의료비를 직접부담하는 비율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8배인데, 건강보험 보장률은 OECD 평균(80%)에 크게 못 미치는 60%대 초반에서 10여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보험이 적용되는 부분(급여)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비급여)의 덩치는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는 실손보험과 ‘결합’하면서 의료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케어’)이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치료행위 전부를 건보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비급여 풍선 효과’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3800여개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해 건보 보장률을 현재의 63.4%에서 70%로 높일 방침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영민 기자

‘문재인케어’가 다시 뉴스의 전면에 떠올랐다. 이달 1일부터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다. 때마침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선 ‘울트라 우파’ 최대집 후보가 당선됐다. 다음달 취임하는 최 당선자는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저질의료·불법의료가 판치게 된다며 집단휴진 등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복지부는 의협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유포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시민은 혼란스럽다. ‘문재인케어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만난 이유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김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때 의약분업실행위원회 위원으로 의약분업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후기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냈다. 당시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 공동본부장으로 ‘문재인케어’ 등 공약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졌다.

건강보험 하나로 국민의료 보장
의사진료 가능하도록 보장성 강화

- ‘문재인케어의 설계자’가 보는 문재인케어의 목표는 뭔가.

“첫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서 국민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 보장을 받도록 하는 데 있다. 본인부담 수준을 낮춰서, 필요할 때 조기진단·조기진료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본인부담금만으로도 가계파탄이 일어날 수 있는데,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해서 가계파탄을 확실히 막고자 한다.”

- 문재인케어가 과잉의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의료 이용량은 늘어날 것이다. 늘어나는 건 좋은 측면도, 나쁜 측면도 있다. 기존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과소진료되는 서비스가 있다. 공급자들이 공급을 기피하게 되는…. 그런 부분은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나쁜 측면은 필요보다 더 많은 의료 소비를 하는 건데…. 의학적 정당성이 없는데도 이용량이 늘어나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정부도 모니터링을 하고,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 일정한 조치를 하게 될 것이다.”

-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을 기피하고,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가 집중되지 않을까.

“별개의 과제로 봐야 한다. 각 의료기관의 기능과 상호관계를 정립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 소재 병원으로의 집중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에 좋은 의료인들이 많이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풀리는 문제다.”

- 30조6000억원의 재원으로는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의료계 일부에선 70조~120조원까지 소요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30조6000억원은 복지부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추계를 한 것이다. 실제 드는 액수는 물론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차이가 얼마나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강보험 수가 수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소요 재원 규모가 달라진다. 수가 수준은 정부와 의료계, 국민 대표가 협의해 결정한다. 어느 일방이 결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5년 동안 단계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고 수가 설정도 다시 해나갈 것이므로 최종단계에 가야 어느 정도 소요될지 밝혀질 것이다. 그 결과는 예측보다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늘어난다고만 할 수는 없다. 변동사항이 생기면 당연히 국민들께 다시 말씀드려야 한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건보공단 서울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의사들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 문재인케어는 수가 조정 과정에서 ‘원가 플러스알파’ 식으로 적정 이윤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재정 파탄? 보험료 매년 거둬 써
적립식 국민연금과 혼동해선 안돼

- 2026년 이후에는 누적 적립금이 모두 소진돼 건보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건강보험 준비 적립금이 20조원을 넘었다. 과다하게 쌓여 있는 거다. 많은 시민단체에서 ‘급여를 확대해야지 왜 이렇게 쌓아놓느냐’고 해왔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적립금 중 10조원 정도를 문재인케어 재원에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이 되면 누적 적립금이 모두 소진된다’는 말은 계산상 가능하지만, 재정파탄과는 무관하다. 건강보험 재정을 국민연금 재정 문제와 혼동해선 곤란하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계속 돈을 내다 나중에 때가 되면 타 쓰는 적립 방식이다. 그래서 연금은 고갈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매년 보험료를 거둬 매년 쓰는 구조다. 살림할 때 월급 받아 그 월급으로 생활하는 걸 떠올리면 된다. 이론적으로 당해 연도에 때로는 적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재정파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항목별 마진 폭도 똑같이 맞춰
이윤 따른 선별적 치료행위 막고
본인 부담 상한제로 환자 짐 덜어

- 의사협회의 집단휴진 압박에 대해 비판론이 크다. 하지만 낮은 의료수가를 그동안 비급여로 메워온 측면은 있지 않나.

“원론적으로 답하겠다. 싸움은 붙이지 마시고…(웃음). 비급여 쪽은 돈이 많이 들어오고 건강보험 쪽은 돈이 적게 들어오니까 ‘코스트 시프트(cost shift)’라고 수입을 이전해서 전체 수지를 맞추는 방식을 써온 게 사실이다. 지금 의사들이 비급여를 급여화하며 원가보다 낮은 수가를 매길 거라고 걱정하는 듯하다. 문재인케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원가+α(플러스 알파)’로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매길 거다. 원가+α 보장 안 하면 병·의원 다 망하고 문재인케어도 안된다. 또 한 가지 원칙은, 항목별로 마진 폭을 균일하게 하는 일이다. 이윤 폭이 다르면 이윤 폭이 큰 치료행위만 하려 하고 작은 쪽은 안 하게 된다. 마진 폭을 균일하게 맞춤으로써 의사들이 의학적 판단대로 진료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한다. 문재인케어라는 동전이 있다고 치자. 그 앞면은 국민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 보장을 받도록 하는 것이고, 뒷면은 의사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의협 쪽에선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 보험이 적용되자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정해진 횟수를 벗어난 검사는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과소진료가 일어날까? 그렇지 않을 거다. 적절한 검사를 못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복지부는 “검사를 몇 회 하든 모두 보험이 적용되며, 불법이 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달라질 뿐”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증상 변화가 없는 상태의 반복 검사나 단순 초음파 등은 환자가 검사비용의 80%를 부담하게 된다.)

김 이사장은 의료계 내부적으로 문재인케어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것이라고 봤다. 문재인케어를 하면 낮은 수가를 올려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지 않는 병원들은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금 의사들이 손해볼 거라고 하는 얘기는 사실 ‘카더라 통신’에서 비롯된 거다. 실제로는 동네 병·의원이나 공공병원 등은 수지를 맞출 수 있게 돼 경영이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대한병원협회가 의협과 달리 문재인케어를 두고 정부와 협의를 계속하는 데 대해 묻자 “병원협회는 경영을 해봤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조사를 보니, 국민 10명 중 6명이 ‘보장 확대는 찬성하지만, 추가 부담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향후 소요 재원이 예상보다 늘어날 경우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지 않나.

“혜택은 보고 싶지만 부담은 적게 하고 싶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건강보험의 경우 일반 조세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달라. 보험료를 내고 쓰는 게 폐쇄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어디로 새나가는 일이 없다. 국민과 잘 논의하면 합당한 부담을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보험료 부과체계도 7월부터 개편된다. 지역 가입자의 약 80%는 보험료가 내려간다. 재산에 대해 매기던 부분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기준 이상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는 보험료를 내게 된다. 지금까지 내야 할 분들이 ‘무임승차’한 것이다.”

- 보험료를 새로 내게 된 사람들은 반발할 것 같다. 보험료는 조세는 아니지만, 광의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통칭 ‘국민부담’을 올리는 일이 어렵다. 그러나 지금보다 과감해질 필요가 있고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설득해야지, 회피해선 안된다. 강력한 복지국가로 가는 핵심 장애요인이 증세불가론, 세금폭탄론이다.”

- 건보공단의 인력·조직이 방만하다는 비판도 있다.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외에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까지 5대 사회보험을 동시에 걷는 역할을 한다. 업무가 방대하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급여/비급여
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건강보험 수가
정부가 정해놓은 의료비로서 환자 본인 부담금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불금을 합한 총액을 뜻한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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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환점으로 해서 급격하게 움직이는 한반도와 주변국의 모습을 나름대로 분석하는 해외언론의 기사나 평론을 읽다보면 적지 않은 변화를 느끼게 된다. 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름 앞에 상투적으로 붙었던 ‘독재자’ 대신에 ‘실권자’나 ‘최고권력자’라는 호칭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 예다. 김 위원장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세계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조차도 ‘노련한 전략가’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이러한 변화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 한반도를 평창을 매개로 해서 남북 정상이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기인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상징(symbolon)’은 ‘악마(diabolos)’의 반대말이다. 전자는 ‘함께 섞다’ 또는 ‘함께 만들다’는 뜻이다. 친구나 연인이 헤어질 때 반지를 반으로 나누어 지녔다가 후에 만났을 때 이를 서로 비교해보는 관습에서 유래했다. 후자는 ‘이간질하다’ 또는 ‘비방하다’는 뜻으로 ‘요한계시록’에서 큰 용, 늙은 뱀이나 사탄으로 묘사된 ‘악마’다. 이런 의미에서 평창은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상징과 갈등·증오를 부추기는 악마와의 싸움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반도의 운명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를 둘러싸고 아직도 설왕설래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에 대해 비판자들은 운전대를 김 위원장에게 이미 넘겨주었다고 힐난한다. 그러나 전쟁 위기의 문턱 앞에서 가까스로 평화로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살려내는 일을 남북 정상 가운데 어느 한쪽의 공적으로만 돌릴 수 없다. ‘2인3각’ 달리기처럼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아니면 너무 더디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같이 넘어질 공산이 크다.

판문점에서 열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과 2007년에 있었던 정상회담과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이번 회담은 앞으로 열리게 될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가능케 할지, 아니면 실패해서 이전보다 더 심한 위기를 몰고 올지를 가르는 중대한 사건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과욕은 항상 자기중심적인 논리에 갇혀 있다. 너를 나와 똑같은 존재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강박감은 남과 북이 하나로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을 잊게 만든다. 남북 사회는 분단 70여년을 지나면서 같아 보이지만 변했고,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점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일을 쉽게 체념하거나, 아니면 저절로 굴러올 대박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같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을 녹여서 다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辨同於異者非銷異爲同也)”라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분단 독일에서도 1970년 3·5월과 1981년, 세 번에 걸친 정상회담이 있었다. 동서냉전이 아직 한창이던 시기였기에 동·서독 정상은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분단의 고통을 서로 덜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독일 통일은 유럽 통일이기에 거시적 안목 속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며 1958년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던 브란트는 “같이 속했던 것은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표명했다. 이로부터 31년이 지난 1989년 11월9일 저녁,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은 그는 이 말을 다시 되새기며 통일된 독일의 책무를 강조했다.

물론 당시 독일과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의 우선적인 해결에만 과도하게 매달려 남북이 이미 일정한 경험을 축적했고, 현 상황에서도 곧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군사적 긴장완화,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적 교류,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과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는 남쪽의 안보상황과 연관되어 있지만 동시에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주변국가의 이해관계와도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요구된다.

제재와 압박을 계속 가하면 머지않아 북이 스스로 핵무장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과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이번 정상회담이 획기적으로 혁파하는 만남이 되리라는 기대는 물론 크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 간의 거리는 아직도 멀다. 따라서 판문점 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중장기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안전한 항법(航法)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접근은 백기투항 직전의 김정은 체제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어 나중에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는 주장이 있다. 군사적인 충돌과 전쟁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렸던 평창 이전의 상황을 지금 다시 되돌아볼 때 남북 간에 대화와 협상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모든 전쟁은 결국 협상으로 끝난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협상하지 않는가”라는 네루의 영감을 주는 질문을 나는 떠올리게 된다.

정상회담은 기본적으로 정상 간에 인간적인 신뢰를 쌓고 정치적 결단의 진정성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 대통령을 이창호의 신중한 바둑, 김 위원장을 유창혁의 화려한 바둑에 비유한 흥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니체도 <탈도덕적 의미의 진실과 거짓>이라는 유고(遺稿)에서 소나기 속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 ‘이성적’ 인간과 ‘즐거워하는 영웅’으로 ‘직관적’ 인간을 대비했다. 문 대통령이 전자에, 김 위원장이 후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나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원효는 “정에도, 또 이치에 있어서도 서로 바라보며 어긋나지 않는다(於情於理相望不違)”는 중용의 미덕을 지닐 수 있는 인간을 강조했다. 민감한 주제로 인해서 이견과 갈등도 있겠지만 따뜻한 정(情)과 예리한 이(理)의 조화 속에서 남북 정상이 회담을 성과적으로 마무리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65년 전 휴전협정의 조인장이었던 판문점이 화쟁의 상징으로서 우리 겨레를 하루라도 빨리 평화협정을 넘어 통일까지 인도할 수 있기를 멀리서 기원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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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이 해방되었으나 일본인들은 바로 한국 땅을 떠나지 않았고, 그들이 이 땅에 제 마음대로 붙여놓은 이름들도 바로 바뀌지 않았다. 해방 후 1년 동안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만든 땅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살았다. 서울의 이름은 여전히 경성부였고, 가로명들은 여전히 본정, 명치정, 황금정, 죽첨정 등이었다. 서울의 간선도로변에는 메이지상점, 고카네 잡화점, 다케조에 철물점이라 쓰인 간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형 건물 정문에 내걸렸던 일장기들이 사라지기는 했으나, 서울은 일본의 식민지 도시다운 면모를 버리지 못했다.

일본 식민 통치자들이 제멋대로 바꿔놓은 지명(地名)만이라도 원래대로 되돌리자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해방 후 반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1946년 8월15일에야 미 군정청은 수도의 명칭을 경성부에서 서울특별시로 바꾸었다. 이 직후 서울시 산하에 가로명제정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위원회는 먼저 일본인들이 바꿔놓은 이름은 가급적 옛 이름으로 되돌리되, 주요 간선도로에는 한국의 위인들 묘호(廟號)나 시호(諡號), 이름을 붙인다는 원칙을 세웠다. 새 동명과 가로명이 고시된 것은 10월1일이었다. 조선시대에 경복궁 전로(前路), 황토현길 등으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던 군정청 중앙청사 앞길에는 세종로(世宗路)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개국 이래 정치의 중심 무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를 펼쳤던 성군(聖君)의 묘호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껏 세종대로는 서울의 중심 가로이자 대한민국의 ‘국가 상징 가로’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60년 4·19의거로 이승만이 하야하자, 곧바로 이승만 초상 일색인 지폐 도안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한국은행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 여론에 대응했다. 제2공화국 출범 두 달 만인 그해 8월, 세종대왕 초상을 넣은 1000환권 새 지폐가 발행되었다. 세종의 어진(御眞)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으나,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참칭한 이승만을 빼버리면, 그 자리는 당연히 세종의 것이 되어야 했다. 이후 2009년 5만원권 지폐가 새로 발행될 때까지, 세종은 한국 최고액권 화폐의 주인공 자리를 지켰다.

1967년, 서울 거리 곳곳에 애국선열들의 동상을 세워 국민 교육의 자료로 삼자는 취지하에 당대의 실세 김종필 주도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회가 처음 세우기로 결정한 동상은 세종과 이순신이었다. 위원회의 애초 구상은 세종 동상은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에, 을지문덕 동상은 을지로에 세운다는 것이었으나, 군사정권의 ‘정신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려 한 박정희의 뜻에 따라 세종의 자리는 충무공 차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 세종대로 한복판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섰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국인들은 지폐 도안으로, 길 이름으로, 동상으로, 기념관으로, 위인전으로, 기념일로, 그 밖의 기념물들로 세종을 기린다. 중국에서는 신화시대의 요순우탕(堯舜禹湯)이 성군(聖君)이지만, 한국에서는 15세기 실존 인물 세종이 유일한 성군이다. 세종 전에 성군 없고 세종 뒤에 성군 없다. 세종을 기리고 추모하는 정도로 치자면, 세종의 후손들이 다스렸던 조선시대보다 현대가 더하다. 한국의 현대는 세종의 시대다.

그런데 현대의 한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세종을 추모하고, 그의 치적(治積)을 기리며, 그와 같은 통치자가 다시 나오길 바라면서도 막상 그의 치세(治世)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세종 개인이 걸출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치세를 만든 원동력은 민본주의 정치 철학과 ‘우문정치(右文政治·학문을 숭상하는 정치)’ 시스템이었다. 세종은 만 21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집현전을 확대하고 세상의 모든 학문을 연구하게 했다.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그의 재위 기간 중에 조선 지식인들은 천문학, 지리학, 언어학, 의약학, 역사학, 농학, 공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라”와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즉 지적으로 자립하려는 의지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학문에 실천성을 부여했다. 세종 연간 국가가 발간한 책만 <칠정산> <팔도지리지> <동국정운> <고려사>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농사직설> 등 온갖 분야 300여종에 달한다. 이 연구 출판 사업들을 토대로 조선은 자립적 지식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세종은 후세에 길이 기억될 빛나는 치세를 이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저마다 집현전의 후예를 표방하는 국책 연구기관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들이 이룬 업적으로 후세에 전해줄 만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비리투성이 국책사업들을 뒷받침하는 연구 보고서나 만들어 학문적 수치를 자초하지 않았던가? 오늘날 한국 학문의 세계적 위상은 어떤가? 경제 규모에서나 군사력에서나 올림픽 순위에서나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있다. 그런데 학문의 순위는 어느 정도인가?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備)”(기미독립선언서 중)하기보다는 지적 종속 상태를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올해는 세종 즉위 600년이다. 여러 기관 단체에서 세종의 업적을 기리는 축제나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세종에게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이제 지난 반세기의 학문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한국 학문을 진정으로 발전·융성시킬 수 있는 새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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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서점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 진행 제안이 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당황은 이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때껏 이런저런 오프라인 행사에서 진행을 맡은 적이 꽤 많지만, 그것은 대부분 일회성 행사였다. 한 차례라는 말에, 한 번이면 된다는 말에 승낙하곤 했다. 실제로 한 차례 행사는 한바탕 웃으며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두 시간쯤 되는 행사가 끝나면 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청중들의 반응이 좋았던 날에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한 번이었기에 집중해서 잘 마칠 수 있었어. 초대 손님과 생각만큼 소통이 잘되지 않은 날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도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한 번이었으니 다행이야. 다음 번과 다음 차례가 언제 또 올지 모르기에 한 번과 한 차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지 않았다.

반면, 팟캐스트 진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지속적인 일이다. 불규칙적으로 업로드되는 방송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확한 일시에 새 에피소드가 제공된다. 성실하게 임하되, 그 성실함이 꾸준해야 하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또한 마음을 합하는 일이다. 게스트 섭외부터 대본 방향에 이르기까지 PD와 작가와 상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청취자들의 피드백에 신경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게스트와 대화를 나눌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자주 만나는 친구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나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람과의 만남 전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할 수는 없어도 어떤 발자국들을 찍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마음을 써야 한다.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더 긴 시간을 들여 그 책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야 한다. 손님을 환대하는 몸가짐과 손님에게 차를 내가는 마음가짐 둘 다 필요하다.

팟캐스트 첫 게스트로 김민정 시인이 나왔다. 시인이자 편집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그는 아픈 와중에도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첫 방송이라 긴장할까 봐 편한 게스트를 섭외해준 제작진에게도 고마웠다. 스튜디오는 좁고, 좁아서 더 덥게 느껴졌다. 녹음이 끝날 때쯤에는 스튜디오 안에 열기가 가득했다. 내가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들었기 때문이다. 시종 웃고 떠들었지만 속으로는 많이 울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머리끝과 발끝에 힘을 주고 있었다.

녹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첫 방송이 무사히 끝나서 개운하기도 했지만 분명 뭔가가 더 있었다. 방송이 끝나면 보통 비우고 났을 때의 개운함이 찾아오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기분은 채우고 났을 때의 개운함에 훨씬 더 가까웠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때의 개운함이 아닌, 누군가의 말을 천천히 듣고 그것을 차분하게 새기고 난 후에 찾아오는 개운함이었다.

듣는 일에서 찾아오는 충만함은 말하는 일에서 얻을 수 있는 홀가분함과 결이 전혀 달랐다. 내가 지금껏 만끽하지 못한 개운함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양념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저런 오프라인 행사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갈 때마다 소금을 치듯 후추를 치듯 순간순간 재치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에 풍덩 빠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펄펄 끓고 익어야 하는 주재료였다. 이는 내가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창하게 말하는 재능은 반짝이지만, 귀 기울여 듣는 태도는 둘 사이에 뭉근한 믿음을 만들어준다.

이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양념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잘 들어야 한다. 주의 깊게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그다음 말, 나아가 그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호흡하듯, 함께 산책하듯 상대의 리듬에 맞춰 나가야 한다. 잘 듣는 일이 상대가 하는 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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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교육부 차관이 몇몇 대학 총장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내년도 입시에서 정시 모집인원을 늘려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후 연세대와 몇몇 대학들에서 수시 모집인원을 줄이고 정시 인원을 늘린다는 발표를 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 대학입시 전형방법은 대학들이 결정하는 것이었고, 정부에서는 재정지원 등과 같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뜬금없이 ‘직접 압박’이라는 방법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입시는 최소한 3년 전에는 자신이 지원할 대학과 학과에 대한 전형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해왔고, 이번 정부에 들어서는 그 기간을 6개월 더 늘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3년도 아닌 내년의 입시에 대해 각 대학들의 대교협 통보 마감 하루 전에 차관이 총장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일이 그렇게도 급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이런 절차적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앞으로 2년 뒤부터 시행되는 대학입시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은 과거의 교육과정과는 달리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들도 크게 늘어나고, 교육과정·수업·평가에서 교사들의 재량 범위가 확대된다. 그래서 몇 개의 학교들이 함께 운영하는 연합캠퍼스 수업을 시행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가 하면 조만간 온라인 심화과목이 운영되는 등 학교 현장의 변화가 엄청난 상황이다. 이렇듯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더 이상은 지금과 같은 상대평가 방식의 수능시험만으로는 대학입시를 치르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대학들에서는 정시 모집인원은 일부 늘리지만 동시에 학생부종합전형의 인원도 약간 늘리거나 수시에서 수능 최저등급을 삭제하는 내용을 동시에 발표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절차도 문제이지만 내용적으로도 갑작스러운 압력 행사는 공교육 전반에 걸친 모순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일해 이러한 큰 틀의 변화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교육부 차관의 이번 행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절차와 규정도 무시하고 윗선에서 압력을 가했던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진행되었던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재판정에서 보았던 것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차관 개인의 의지였든, 또 다른 누군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였든 ‘절차와 규정’이라는 정의로운 방법을 무시하면서 공정을 말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교사들이 쓰거나 교사들을 위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는데, 이전에는 무기력한 교육현장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에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의 공유를 위한 책들이 대세다. 학교가 변하고 있고, 그리고 수많은 교사들이 그 변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 것은,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에서도 VIP(대통령) 보고를 위한 사진과 현장 영상부터 보내라고 해경에 독촉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를 연상케 한다.

지금 가는 길이 맞다면 당당하게 설득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가라. 아니라고 생각되면 뒤돌아 가면 된다. 적폐의 시작은 꼼수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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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들은 멀리 외출하거나 할 때 쓰개치마나 장옷, 혹은 삿갓보다 훨씬 커서 상반신을 다 덮는 부녀삿갓을 썼습니다. 쓰개치마는 반가의 여성이, 장옷은 양민 여성이나 기녀가 썼고, 부녀삿갓은 비싼 장옷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난한 여성들이 썼습니다(후기로 갈수록 신분에 따른 쓰개치마와 장옷의 착용 구분은 점차 희미해집니다). 특별한 외출용이니 쓰개치마와 장옷은 혼수로 해 오는 일이 많았고, 혼수품이니 당연히 고급 옷감으로 만들었지요. 오래 입다보니 아껴 입어도 세월을 타서 낡고 바래졌지만, 워낙 좋은 감으로 만든지라 여전히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그래서 나온, 좋은 것은 낡거나 헐어도 어느 정도 제값을 한다는 ‘썩어도 준치’와 같은 속담이 ‘노닥노닥 기워도 마누라 장옷’입니다(‘노닥노닥’은 ‘누덕누덕’의 작은말입니다). 지금은 여기저기 기워야 할 만큼 낡았지만 고왔던 예전 느낌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에는 또 다른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남편이 보고 있는 것은 장옷이 아니라 그것을 깁고 있는 ‘마누라’입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들뜬, 그러나 한숨 숨기며 낡은 장옷을 수선하는 아내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이 속담에 담겨 있습니다. 꽃다웠던 새색시는 혼수로 해 온 장옷이 낡은 그만큼을 늙었습니다. 단장하는 아내의 주름진 얼굴에 그간의 세월과 사랑스러웠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동고동락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 사람, 나 아니면 누가 챙겨’ 측은한 마음이 들겠지요. 그렇게 보니 단장한 그 얼굴이 다시 사랑스럽고 은근하게 예쁩니다.

‘어른’은 혼인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다시 철드는 건, 부부로 함께 헤쳐 온 얼굴에서 애잔한 꽃 그림자를 볼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활에 지쳐 비록 퇴색은 됐다지만 애틋했던 처음 사랑이 아주 가치 없이 사라진 건 아닐 텝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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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는 부쩍부쩍 다가오는데 변변한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수뇌부는 그러거나 말거나 연일 보수결집에 여념이 없다. 후보라도 제대로 내놓고 보수 유권자를 결집한다면 이해라도 되지만, 변변한 후보도 없는데 결집만 열심히 하니 진짜 목적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딴  데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무성하다.

이러한 결집의 방법은 애처롭게도 하나같이 철 지난 레퍼토리들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세력이나 특정 지역을 말려 죽이려고 한다는 유언비어성 협박,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종북좌파 소굴이라는 색깔론. 그중에서도 백미는 지난 3월 말에 발족한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위원회’이다. 사회주의 개헌이라니, 안될 일 아니겠는가. 반드시 저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 위원회는 아직까지 특별한 활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 급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회주의 개헌을 저지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사 2판4판]마이너스의 손 (출처:경향신문DB)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추억. 요즘도 어른들이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 걸핏하면 어린아이들 울음보를 터뜨리던 난감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코웃음치고 넘어가면 될 어리석은 질문에 순진한 아이들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울음보를 터뜨렸고,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어차피 그 질문에 답을 듣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재미만 있으면 되니까.

다시 개헌 이야기로 돌아오자. 필자도 가급적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국회가 발의해야 하는데, 국회는 개헌특위만 만들어놓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개헌은 오랫동안 대다수 국민과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그 필요성을 지적해왔고, 지난 대선에서 모든 주요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약속한 사항이기도 했다. 그런데 국회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러면 대통령이라도 최소한 시도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문 대통령은 새 헌법이 ‘국민헌법’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국민헌법자문특위를 설치했고, 특위는 국민들의 의견을 방대하게 청취했다. 홈페이지 방문 및 의견 제시 52만, 안건 제시 1127건, 16개 시·도 지역순회 간담회, 유관 학계와 시민사회 의견 수렴, 2000명 규모의 전 국민 여론조사, 전국 4대 권역에서 800명이 참여한 숙의형 시민토론회, 160명이 참여한 청소년·청년 토론회가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숙의형 시민토론회이다. 길 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어본다고 가정하자. 대통령중심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중 무엇을 선호하십니까? 세 가지 대표적 정부 형태의 특징과 장단점이 무엇이고 그것이 한국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묻는 꼴이다. 숙의형 시민토론회에서는 개헌의 주요 쟁점별로 상반된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나서서 자신이 지지하는 개헌의 방향을 말하고 그 근거를 설명했다. 시민들은 그 설명을 듣고 스스로 토론했으며, 토론이 모두 끝난 후에 의제별로 자신들의 의견을 결정했다. 생각의 근거를 가지게 된 시민들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옳다면 기꺼이 바꿨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개헌안 발의 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총리의 국회 선출 여부이다. 토론 이전에는 국회 선출 반대가 48.3%(찬성은 40.2%)였는데, 토론 이후에는 반대가 68.3%(찬성은 24.1%)로 달라졌다. 개헌안 마련에 적극 참여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토론회에 만족했다는 응답은 권역별로 97~99%였고, 이런 기회가 마련된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는 응답도 권역별로 모두 95%를 넘었다.

이렇게 마련된 개헌안을 자유한국당은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부르고 있다. 며칠 전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피고인을 ‘공주’라고 부른 것을 보니 그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왕’으로 대접하는 모양이다. 막상 그 왕께서는 순전히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총칼로 개헌을 단행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은 아무것도 안 해놓고, 헌정사상 최초로 방대한 국민이 참여하고, 그렇게 참여한 국민의 97% 이상이 만족한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헌법안을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국민을, 특히 보수성향 국민의 수준을 뭘로 보기에 이런 말장난을 할 용기가 나는 걸까. 어쨌든 자유한국당이 정색하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론 예전 어른들처럼, 대답이 중요한 건 아닐 거다. 나라야 어찌 되건, 그들은 살길만 찾으면 되니까.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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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공연 녹화방송을 보았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강산에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열창하는 모습 사이로 무대에 쓰인 한 문장이 간간이 부각되었다. ‘봄이 온다.’ 우리 쪽의 웬만한 추위보다도 어쩐지 조금 더 추울 것 같은 평양에도 관객들의 박수와 웃음소리에 실려 정녕 봄이 도래하는 듯했다. 가수들이 북상할 때 나는 남하했다. 경주는 봄꽃이 먼저 찾아오는 고장 중의 하나이다. 경주를 나의 꽃고향으로 여기기로 한 이후, 이 천년의 도시를 거치지 않고는 봄의 나라로 입국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기억이 생생하게 퇴적된 토함산이 아니라 단석산을 탐방하기로 했다. 독경소리가 울려퍼지는 아담한 동네를 지나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도착했다. 땅에 납작 엎드려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낸 달맞이꽃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달맞이꽃은 아무도 없는 공중에 저만의 웅장한 세계를 펼칠 것이다. 고단했던 달맞이꽃의 허리춤에 햇빛이 찰랑찰랑 넘친다.

바야흐로 봄이 왔구나. 봄기운이 고슬고슬한 땅을 딛고 나아간다. 나무마다 가득한 꽃인가 했더니 꽃만큼이나 예쁜 봄잎들이다. 그중 하나는 이제 막 겨울눈에서 터져나오는 연두색의 잎, 잎, 잎. 몇 해 전 경산의 삼성산에서 보았던 쉬나무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한 편의 시.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문인수, ‘쉬!’)

경산에서 보았을 땐 오줌을 다 눈 노인의 통쾌한 얼굴이더니 경주에서 보는 쉬나무는 봄을 만끽하는 환한 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이쿠, 시원한 봄기운으로 활짝 피어나는 저 노인의 해탈한 표정! 참 조용한 우주 속의 쉬나무, 운향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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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일간지에 ‘여든 살 동생이 스무 살 오빠에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즘 연구과제를 마무리하느라 다른 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뭔가 깊은 사연이 담겨있을 듯한 제목에 끌려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묘비 앞에서 한 할머니가 오열하는 사진에 한동안 눈길을 거두기 어려웠다. “오라방, 올해가 마지막이여.” 고령의 할머니가 내년에 다시 묘소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종조부 두 분이 4·3 때 희생되었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4·3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냥 먼 옛날이야기처럼 넘기려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무심했던 사람이 오열하는 할머니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형제를 잃은 슬픔을 오래도록 안고 사셨을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런 게 ‘공감’일 것 같다.

제러미 리프킨은 800쪽이 넘는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두뇌과학과 아동발달학 분야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인간이 본래 공격적이고 물질적이고 실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래된 믿음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인간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끔 공감을 전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3 특별법 국회 통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4.03 청와대사진기자단

여든 할머니가 스무 살 오빠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던 그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이런 논평을 하였다.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다. 따라서 4월3일을 추념하는 것은 무고한 희생을 당한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를 듣는 순간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 말을 할까 싶어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그날만이라도, 수십만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치 보란 듯이 콜롬비아로 떠났다. 대통령이 없는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경찰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연단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르케스의 발언을 인용하며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당시 이 말을 뉴스로 들었을 때, 자기 나라 국민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참 뻔뻔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간 자칭 보수라고 하는 인사들이 보여준 행동과 말은 그들의 공감 능력을 의심케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청년들을 ‘이태백’이라고 조롱한 인사도 있었고,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적화통일에 대비한 용공세력’이라고 난데없는 비난을 퍼부은 인사도 있었다. 또 어떤 인사는 ‘진보정당은 앞으로도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라는 말에 ‘김일성주의’라고 소리쳐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말이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경찰은 미친개”라는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도 있다. 보수진영이 사회문제에 관해 일반 국민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때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던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도는 20%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과반 이상의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나마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감하는 법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예전의 지지율을 얻기 힘들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보수는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행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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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네 살 난 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주검이 수개월 만에 발견됐다는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한 아파트 4층 집 안방에서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여성은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이 여성이 독극물을 먹고 흉기로 자해한 ‘자살’로 추정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회의실에서 열린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 특별조사 실시 회의’에서 박용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이 각 광역시·도 복지담당 국장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014.3.5 연합뉴스

이 여성은 남편이 지난해 9월 사업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딸에게 매달 지급되는 가정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점검하는 제도를 마련해 2015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단전, 단수, 가스공급 중단, 건강보험료 체납 등 27개 항목의 정보를 토대로 고위험 가구를 발굴해 집중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으로 증평군에서 올해 1월과 3월에 수급대상 122가구를 발견했지만 모녀는 빠져 있었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이 1억원이 넘어 수급요건에 맞지 않았고, 공동주택은 관리비를 체납해도 곧바로 단수·단전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려웠다. 점검 시스템의 체크항목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정밀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복지 시스템의 허점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모녀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주변에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모녀 가구의 수도 사용량이 ‘0’이었고, 우편함에는 연체된 카드대금 등 각종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라곤 하지만 이웃 간의 교류가 없으면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가 한국 주거형태의 다수를 점하게 되는 것과 비례해 공동체 의식은 희박해지고 있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옆집 이웃과 간혹 마주쳐도 눈인사가 고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래층, 위층 가구와 교류는커녕 층간소음으로 다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현관문만 닫으면 절대고독의 세계가 펼쳐진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고령화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어 이웃 간의 교류가 더 절실해지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는 정부나 자치단체에 맡길 문제도 아니다. 증평 모녀의 비극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급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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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