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용실에 가서 겪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 머리를 깎으러 온 중년 남자는 배가 불룩한 그를 힐끔대다가 큰소리로 떠들어대더란다. 요즘에 미혼모가 많아서 큰일이라는 둥, 어린애들이 행동거지를 조심하지 않는다는 둥, 무책임하다는 둥. 그는 모른 체하다 무책임하다는 말에 뒤를 휙 돌아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그러더란다. 내가 말해봤댔자 어른들이 알아듣겠냐고요.

스스로 학교를 벗어난 그는 세상의 편견과 모멸이 얼마나 단단한지 뻔히 알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가 혼자서 묵묵히 가시 돋친 말들을 받아냈을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몰지각한 어른을 향한 분노는 금방 까부라지고, 그가 겪어내야 할 고달픈 세상살이가 걱정되어서 한숨이 나왔다.

그가 남자를 만나고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펄펄 뛰었던 나는 선뜻 그를 만나지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를 만나기로 한 날, 괜히 허둥대서 챙겨놓은 그림책을 빠트려 전철역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무거운 발을 떼면서 그가 고등학교 들어가 태권도부에 뽑혔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단해진 허벅지를 내밀며 만져보라던 그의 해맑은 웃음이 눈에 선했다. 만나면 뭐라고 입을 떼야 하나, 그럴듯한 말을 수없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맑은 눈을 마주하고 보니 입에 발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그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살이 조금 오른 그의 얼굴은 밝았다. 책도 보고, 초보 엄마 인터넷 카페도 열심히 들락거린다는 그는 출산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아기 손싸개를 만드는 데 바느질이 서툴러서 두 번이나 다시 꿰맸어요.”

나는 그가 내민 손싸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애를 정말 낳겠다고? 몇 달 전 내가 했던 말이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그때 나는 아기를 낳을지 말지 그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별수 없는 어른이었다. 그와 해질 녘까지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가 아기를 낳고도 이렇게 짬 내서 봤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무렴, 그래야지. 짬을 내고말고.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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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까불던 친구가 반장이 되더니 의젓해진다든가, 수줍음 많던 사람이 리더가 되어 남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말하게 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곤 한다. 책임감이 마음가짐의 변화로 이어져 자리에 걸맞은 실력과 행동거지를 갖추려 노력하다 보면 숨어있던 능력이 계발되고 발휘될 수 있다. 여기에, 자리가 부여하는 좀 더 넓은 시야와 정보, 다양한 가용 자원 등을 잘 활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면에 “자리가 사람을 망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렇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도무지 소통을 모르고 독선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공을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 출발했다가 점차 사적인 권력의 화신이 되는 과정에, ‘자리’가 존재한다. 떠받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그들의 대접이 ‘나의 훌륭함’ 때문인지 ‘나의 자리’ 때문인지를 점점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대접받는 것만큼 쉽게 익숙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명 시절의 항우와 유방이 각각 진시황의 성대한 행차를 구경했다. 기운 세기로 유명한 22세의 거구 항우와 가진 것 없이 유쾌하기만 한 시정잡배 유방이 보인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 나도 저 자리쯤은 한번 해봐야 할 텐데.” 그러나 결말은 매우 달랐다. 장수로서 최고의 능력과 과단성을 지닌 항우는 승승장구하여 패왕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결국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반면 그다지 장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유방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오히려 진화한다. 사람 많이 꼬이고 사람 좋아하는 천성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자 적절한 용인술로 빛을 발한 것이다.

권력에 취하면 뇌와 호르몬이 변화되어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실험 보고들이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동일한 조건에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관건은 성찰에 있다. 엄청난 자리를 만들고 지켜낸 유방보다 우리는 공자를 더 높게 기억한다. 내세울 만한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자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기에 공자는 만세의 사표로 살아 있다. 소왕(素王)이라는 자리가 그에게 어울리는 이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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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를 보면 우리끼리 싸우다 나라가 망했다. 임진왜란 전에도 동인, 서인이 엄청 싸웠다. 1000여명이 옥사를 했다. 기축옥사라고 있었는데, 3년 동안 싸우고 나니까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정부(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과거캐기만 해서 보복만 하고 있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훈련을 하는데, 우리는 앉아서 과거만 캐고, 특히 보수세력 궤멸작전만 하고 있다.”

지난해 9월20일 자유한국당 대표·최고위원·3선의원 연석회의에서 당시 최고위원이던 이철우 의원이 한 말이다. 옥사(獄事)란 반역·살인 같은 중대 범죄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이 의원이 언급한 기축옥사(己丑獄事)는 조선 선조 때인 1589년(기축년)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다는 고변에서 비롯해 3년여에 걸쳐 동인(東人) 1000여명이 화를 입은 사건을 가리킨다. 동인에 반감이 큰 서인(西人)이 사건을 날조했다는 설, 일부 조작된 부분은 있으나 정여립의 급진적 정치사상이 옥사를 불러일으켰다는 설 등이 아직까지도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9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전용, 다스 소유권 문제, 다스 소송비 삼성 대납 등 관련 의혹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전 미리 작성한 입장문을 측근들에게 맡긴 뒤 기소 시점에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9일 기소 직후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옥사’에 비유했다. 이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에서 “저를 겨냥한 수사가 10개월 이상 계속됐고, 댓글 관련 수사로 조사받은 군인과 국정원 직원 200여명을 제외하고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가히 무술옥사(戊戌獄事)라 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무술년에 수사가 진행됐다는 의미에서 무술옥사란 표현을 쓴 모양이다. 이철우 의원이 그랬듯 ‘정치보복’ ‘보수궤멸’ 프레임으로 선전전을 펼치려는 시도인데, 여론은 싸늘하다. 그토록 억울하면 왜 구치소 방문조사를 거부했느냐는 비판이 더 크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MB가 매를 벌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성명서는 치명적이다. 판사가 MB 팬이었다 해도 정상을 참작하기 어렵다. 자기를 수사해 기소했다고 무술옥사 운운하니, 어느 간 큰 판사가 작량감경(정상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일)의 은전을 베풀겠느냐”고 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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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대 말에 한 국책은행에 고졸로 취직했다. 우리 직장의 정규 채용자 전체가 그러하듯 나 역시 서울에서 당시 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에서 성적 최상위권의 자격으로 입사했다. 남녀차별이 뭔지도 모르고 입사했지만 우리는 ‘여자행원’이라는 2등 직급이었다. 바로 최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말한 그대로이다. 같은 상고 출신이지만 남자들은 ‘행원’이었고 우리는 여자행원이었다. 여자행원은 여자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직급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입사 때부터 ‘남자’ 행원들의 보조적인 업무만 하거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만을 하도록 직무가 주어졌다. 훈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우리는 10년쯤 후에는 진짜 2등 직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우리에게도 노동조합 설립이 허용(?)되면서 여자행원에게 전환고시를 볼 기회를 회사가 할 수 없이 부여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원하던 ‘행원’이 되었지만, 계속 ‘전환행원’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그것은 마치 ‘용(=행원)이 되지 못한 이무기’와 같은, 내부 규정에도 없는 이름의 ‘유사’직급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도 당시 여자행원들의 상승욕구는 지속되어 매년 시험에 응시했고 소수지만 지속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회사에서는 전환과 함께 젖먹이 어린아이를 가진 젊은 전환행원들을 포항, 울산, 구미, 광주 등 가능하면 서울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내면서 퇴직을 종용했으며, 실제 많은 전환행원들이 퇴직했다. 다음 관문인 책임자고시는 전환고시보다 차라리 쉬운 것이었지만 합격해도 승진 발령을 매우 제한적으로 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는 아직까지도 고졸 출신 여성 고위직은 단 한 명도 없다.  최근까지 고과권자 전부가 남성이었고 그들은 소리 없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집단으로 전환행원들의 고과를 빨아들여 남성에게 퍼부어 주었다.

최근 불거진 여성차별 채용을 보면서, 나와 동시대를 겪은 선배 여자행원 출신 김영주 장관의 분노의 표현을 보면서, 오랫동안 눌러온 나의 분노가 조용히 분출하고 있다.

<강진숙 | 서울 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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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蘇生)한다는 봄이다. 작년의 잎을 아직 매달고 있는 단풍나무도 새로이 자줏빛 잎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활짝 기지개를 펴는 식물과 달리 어떤 사람들은 봄에 아지랑이처럼 다소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춘곤증이라고 부르고 거기서 벗어나려 애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시나브로 지나 밤의 길이가 11시간 반보다 줄어들면 우리 뇌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적게 만들어낸다. 밤의 길이가 긴 겨울에 멜라토닌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인간도 겨울에는 잠을 더 자는 게 생물학적으로 맞는 것 같다.

지구의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밤낮의 길이는 제각각이라 해도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으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 24시간을 주기로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가 반복된다. 잠이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잠을 잘 때는 먹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소화를 담당하는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하루의 활동 주기를 결정하는 사령부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뇌 시상하부, 시교차상핵이라는 그 이름조차 생소한 곳에 있다. 약 2만개의 신경세포가 여기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망막을 통해 들어온 빛의 세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른 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마주하는 외부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빛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망막에서 색을 감지하는 세포가 450만개인 반면 빛과 어둠을 감지하는 세포가 9000만개에 육박한다는 저 숫자의 엄정한 차이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꽃이 피고 봄이 왔다는 것은 곧 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말이다. 햇볕이 더 강하고 더 오랫동안 내리쬐는 것이다. 이에 반응하여 우리의 신체는 체온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혈관이 확장된다. 5ℓ의 혈액이 돌아다니는 우리 혈관의 길이가 10만㎞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혈관이 아주 조금만 팽창해도 혈압은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뇌로 가는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 따라서 봄이 되면 몸이 나른하고 피곤한 춘곤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낮의 길이에 따라 신체가 반응하는 현상은 시차 적응과 비슷하다. 인간의 몸이 늘어난 햇빛에 적응하는 데 2~3주가 걸리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낮이 길어지면 우리 몸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적게 만드는 대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좀 더 왕성하게 활동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빛을 찾아 나서고 활발하게 세로토닌을 만들어내면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걸리기 쉬운 감염 질환도 피해갈 수 있다.

이렇듯 낮의 길이에 대응하여 행동이나 물질대사를 변화시키는 적응 방식은 동물,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곰팡이, 세균 등 지구상 거의 모든 생명체가 보편적으로 취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밤과 낮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광합성으로 귀결된다. 밤이 되면 식물도 광합성을 멈추고 동물처럼 산소를 소모하며 호흡한다. 밤이 되면 식물이건 동물이건 모두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낸다. 하지만 해가 뜨면 식물과 조류는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전환시키면서 부산물로 산소를 방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소를 감히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을 볼 수는 없겠지만 과거 먼 옛날 산소가 독성 물질이었던 적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생명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얘기다. 따라서 낮에 만들어진 산소를 피하기 위해 세균들이 하루의 활동 주기(circadian rhythm)를 조절하는 ‘최초’의 체계를 발명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실 산소를 피하는 일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천형과도 같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시한 생명체들은 항산화제라는 물질을 만들어냈다. 항산화제에는 비타민 C와 같은 작은 물질이 있는 반면 단백질처럼 커다란 물질도 있다. 퍼록시리독신(peroxiredoxin)이라는 단백질은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과 과일의 단맛을 좋아하는 초파리뿐만 아니라 쥐, 애기장대 등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에 존재하며 빛의 길이에 따라 24시간을 주기로 그 양이 변화한다. 빛과 어둠은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 활동을 제어한다.

2017년 낮의 길이와 관련된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가 ‘사이언스 중개 연구’라는 저널에 발표되었다. 낮에 입은 상처가 밤에 다친 상처보다 더 빨리 회복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밤이 아니라 낮에 화상을 입은 사람의 피부가 더 빨리 회복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밤에 화상을 입은 사람의 상처가 회복되는 데 60%나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결과가 나온 까닭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라 해도 가능하면 낮에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곧바로 따라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새겨진 상처도 밝고 꽃이 피는 봄에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을까? 생물학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기 시작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뿐일까? 4월16일이 다가온다. 노란 리본은 가시광선을 감지하는 우리 망막 안의 세포를 따라 뇌에 그 모습을 새긴다.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 바다를 우리는 지긋이 응시할 것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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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0일은 제38회 장애인의날이다. 1981년 장애인의날이 제정된 이후 4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국내에서 장애인을 위한 삶의 여건과 환경은 큰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동수단을 비롯해 생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필자는 뇌병변장애인으로 태어나 60년 세월을 살고 있어 이러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장애인인 필자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큰 변화는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의식 변화이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장애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의식이 비장애인들 사이에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인간은 타인들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을 받을 때 자존감을 느낀다. 신체적 조건이 매우 좋지 않은 장애인이라도 활동보조인이 1 대 1로 매칭되어 일상생활 전반에 대해 돌봄을 받기 때문에 장애라는 제약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전동휠체어 덕분에 이동의 제약을 80% 감소할 수 있어 생활의 지평도 넓어졌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장애인 일자리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인 정부기관·공공기관·기업의 전체 노동자 중 장애인 고용 비율은 2012년 2.35%에서 2016년 2.66%로 5년간 0.31%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8632명으로 2013년 4495명보다 무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더구나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 의무할당량 대신 돈으로 때우는 사례가 최근 4년간 급증하면서 그렇게 쌓인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이 9000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이 같은 열악한 취업 및 노동환경에서 수많은 장애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촉구한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에게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살라고 독려하고 싶다. 정부가 장애인 복지정책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장애인을 둘러싼 힘겨운 현실의 담장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 담장을 스스로 뛰어넘지 않고는 평생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살아생전 얼굴 근육과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곳 본인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 절망의 벽을 넘어섰기에 우주과학계에 위대한 성과물을 남겼다. 바람개비는 바람과의 마찰 없이는 돌지 않는다. 우리 장애인들도 수많은 난관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성심 | 사)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지회 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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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을 화려하게 알려주던 벚꽃이 어느새 하나둘씩 지기 시작했다. 한껏 만개한 벚꽃을 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게 된다. 사람들은 겨울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벚꽃을 보기 위해 서둘러 명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벚꽃 구경 중에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일본이 심어놓은 벚꽃이지만 예쁘긴 하다.” 더 심하게는 “벚나무가 일제의 잔재야. 예쁘긴 하지만 베는 게 맞아”라고 한다.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를 듣고 있는 벚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한 말이다.

4일 맑개 개인 하늘 아래 만개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경복궁과 창경궁에 많은 수의 벚나무를 심었다. 광복 이후에는 이를 여의도로 옮겨 심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진해 등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에 많이 심어졌다. 벚꽃놀이도 우리보다 일본에서 더욱 인기가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상징처럼 사용되어 우리 입장에서는 선입견과 부정적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벚나무는 우리와도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해왔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에 쓰인 목재 중 60%가 벚나무였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벚나무를 군수물자로 관리해왔다는 것이 &lt;세종실록지리지&gt;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군의 주력 무기인 활을 만드는 데 벚나무 껍질인 화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lt;난중일기&gt;에도 이순신 장군이 ‘화피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재임기간 동안 북벌을 외쳤던 효종도 군대 양성을 위해 벚나무를 심을 것을 지시했다. 더구나 2001년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유전자 검사 결과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내년 다시 찾아올 벚꽃을 보게 되면 벚나무가 억울하지 않도록 누구나 선입견 없이 봄의 전령사를 맞이하면 좋겠다.

<김윤형 | 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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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경제학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한때 진보운동의 이론가로 명망이 높았던 그는 사실 근년에 낸 다른 책들 때문에도 일각에서 부정적인 유명세를 탔었다. 책에서 그는 ‘전공’을 넘어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을 쏟아냈다. 독자들을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책 안의 그는 일종의 봉건의식을 가진 네오 마르크시스트였고, 머릿속 많은 지식만큼 두꺼운 독단과 원한감정이 마음에 차 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나는 그의 말들을 통해 한국 지식인이 흔히 앓는 병통을 재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관된 두 가지 문제의 하나는 자기자신과 타자에 대한 태도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적 전문가와 지식인의 무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편견과 독단이 강해진다. 세상을 해석하는 나름의 틀이나 경험칙(내가 해봐서 아는데…)이 생기면 거기에 만사를 꿰맞춰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편견과 독단은 욕망 때문에 악화된다.

그래서 한국 (남자) 지식인은 참 가련하고도 비루한 존재인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인정이나 ‘매개된 욕망’이 오로지 삶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합당한 보상·인정을 못 받거나 또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면 증상은 불치병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어야 되는데, XX” “내가 저 상을 받아야 하는데, ○○” 같은 의식을 가진 경우 말이다. 성숙은커녕 불안과 분노가 더 강해지니, 타인들도 괴롭히게 된다. 마음공부 없이 지식만 열심히 탐하는 경우엔 삐뚤어지기 십상이고, 공부를 버린 채 권세를 탐하면 곧장 무서운 타락의 길을 갈 수 있다. 청문회장에 나왔던 어떤 폴리페서들이나 ‘표절 괴물’들을 떠올려보라. 골목대장이나 단순 월급쟁이로 나이 드는 경우도 많지만, 그 또한 해악을 끼칠 가능성은 작지 않다.

이런 문제는 공자의 시대에도 흔했던 모양이다. <논어>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가 ‘군자 됨’의 방법론으로 들어있다 한다. 무릎을 치게 하지만, 구태여 전근대적인 군자가 될 필요까진 없겠고, 답은 간단(?)하다. 신중과 겸허를 삶의 방법 자체로 삼고 끝없이 훈습하는 것이다. 늘 자기 말과 생각이 옳은지 회의하며 ‘자신 없어’ 해야 한다. 50대 이상 배우고 가진 자들은 자신 없어야 ‘맨스플레인’과 꼰대됨을 겨우 면할 것이다.

겸허나 겸손은 앎 자체의 방법과 세상사의 풀이 방법으로도 요청된다. 세상은 크고 세상일은 너무 복잡해져 아무리 뛰어나도 개인이나 한 분과는 자기지평을 넘는 문제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 유사 역사학을 신봉하는 석학 과학자 같은 이를 생각해보라. 한국의 참담한 ‘두 문화’ 문제와 분야별 특성도 있다. 어떤 분야의 학자들은 문헌과 실증에 강하지만 철학·예술·기술 등에 무심하다. 일부 사회과학이나 응용학은 미국 편중이 심각하여 외눈박이 상태가 아닌가 싶다.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무지 문제에 대한 해결법은 조금 복잡한 듯하다. 어떤 이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예 말하지 말라고 한다. 개인의 태도로서는 당연하고 옳은 방법일 수 있지만, 저 말을 끝까지 지키면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사회는 전문가주의나 관료 독재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어떤 개인이나 공론장의 시민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해야 할 상황에 곧잘 처한다. 언론인이나 일부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아예 그런 운명을 산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구업이 쌓여가니 때로 이 문제는 차라리 무섭다. 다른 분야의 매우 기본적인 지식을 모르거나, 사태들의 복잡한 정황·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말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칼럼으로 낸 나의 용감 무식한 어떤 견해들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나 지식인들의 놀림감이 됐을지 모른다. 고로 이 글 자체가 하나의 자경문이지만, 그런 일이 바로 당신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성실·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오류의 가능성과 무지를 없앨 수는 없으니, 절망스럽다. 그렇다고 침묵한 채 궁벽한 제 분야에만 갇히거나 상대주의에 빠질 수도 없으니, 고차원의 지혜가 필요하다. 방법은, ‘학문적’ 권위를 얻은 전문적 견해를 존중하되, 분야 간에 이뤄진 대화나 보편적 기율을 통해 의심의 여지나 쟁점을 숙고하는 것이리라. 시민·지식인은 겸허로써 무지와 독단의 권세를 ‘협력 방어’해야 한다. 겸허의 네트워크와 집합지성은 개인으로서는 ‘주화입마’를 예방하고, 사회는 반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넘어 앎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절실한 방법이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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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나의 아가야, 봄이 왔다.” 1915년 4월11일, 독일의 여성 미술가 케테 콜비츠의 일기는 이 한 줄이다. 그 전 해인 1914년 10월30일의 일기도 한 줄로 쓰였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 열 여덟 살이었던 아들은 케테와 남편 카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아이의 입대를 승낙했던 밤, 그녀는 이런 일기를 남겼다. “저녁에는 나와 카를 둘뿐이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들에게 특히 말하고 싶은 제 의견이 있다면 자식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꼭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에 어떤 남자도, 부인 포함 일생 동안 단 한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근데 내 자식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고, 만들 수 있다고 믿거든요?”

성소수자 부모 모임 회원인 이모씨, 전숙경씨, 홍정선씨(왼쪽부터)가 지난 7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목걸이를 걸고 밝게 웃고 있다. 이재덕 기자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가족의 관점에서 다룬 책을 출간하기 위한 스토리 펀딩 프로젝트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이곳에 게시된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케테와 그 남편이 아들을 말릴 수 없었던 밤을 생각했다.

케테 콜비츠의 아들이 참전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성소수자가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것이라 두 아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이든, ‘증오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든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자식을 보며 “내 자식을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벌인다는 점에서 부모들의 모습은 닮았다.

내 자식을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성소수자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태교부터 시작해 대학입시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자식의 결혼에까지 자기 바람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좋은 삶을 살게 해주려는 게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벌이는 악착같은 분투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 결국은 아이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 자식 키우기의 이치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의 부모들이 겪는다는 여섯 단계의 변화과정은 성소수자가 아닌 자녀를 둔 부모들도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 거울로 삼을 만한 지침이다(‘성소수자 부모모임’ 홈페이지 참조).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았을 때 부모의 첫 반응은 ‘충격’이다. 세상이 무너진 것같이 느낀다. 2단계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라는 부정의 단계다. 아이의 바뀐- 사실은 부모만 모르고 있었던- 모습이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도리질을 한다. 3단계는 죄책감이다. 자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죄가 많아서…”라는 한탄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토해내는 신음인가. 4단계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악다구니를 아이에게 쏟아내는 시간이다. 5단계는 결단이다. 아이를 인정할 것인지, 더는 그 문제를 얘기하지 말자며 입을 닫든지, 끊임없이 불화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어렵지만 6단계인 참된 받아들임에 이르는 부모들이 있다. ‘성소수자인 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가 문제다’라는 자각을 갖고 아이 편에 서는 것이다. 한 인간이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네가 너여도 괜찮다’는 부모의 지지보다 더 큰 격려가 있을까.

21년 전 신생아실에서 처음 아이를 받아 안은 뒤 아이를 덮는 겉싸개 하나도 제대로 다시 여미지 못해 쩔쩔매던 순간, 나는 어느 누구도 부모 될 준비가 되어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아이가 아프고 다치고 실패하며 자라가는 과정을 겪어내면서 모든 부모는 서서히 부모로 성장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 옆에 선 성소수자 부모들은 부모 됨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부모가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퍼뜩퍼뜩 내 자신에게 되묻게 하는 그이들에게 감사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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