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있다. 조지 R R 마틴 원작으로 용이 불을 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존 스노(Jon Snow)와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 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를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가에서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 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현대 역학의 주된 접근 방법은 19세기 중반 스노의 활동처럼 희생자 개인의 이력과 접촉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얻는 일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역학 조사관은 메르스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TV에 찍힌 비디오파일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분석했다. 질병 확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이용하는 많은 수학적 모형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 개인이 서로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보여주는 현실적 모형이 없고, 수많은 대중의 이동을 모형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계산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4년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고성능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와 애초 도시계획 용도로 개발한 트랜심스(TranSimS)라는 모형을 활용해 몇백만명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접촉을 모형화한 역학 시뮬레이션 모형 에피심스(EpiSimS)를 개발했다. 에피심스에서는 가상의 병원균을 인구집단에 퍼뜨려 병원균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여러 대응조치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이 퍼지는 과정에 사회 연결망 구조를 포함시키자 질병이 지수적으로 급속히 확산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 확산 중단은 어떤 대응조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대응조치를 발동할 것인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의 형상, 성질, 상태 등의 정보를 사이버세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개념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2018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다. 2014년 말 싱가포르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시작해 도시를 3차원으로 모사한 도시 가상화 모델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2048년 미래 도시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역학 조사를 맡은 존 스노(Joan Snow)는 아마도 의학·보건학 전공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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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지면에 글을 실으며 달았던 직함은 ‘아마추어 창작자’였다. 권위나 전문성이 깃들지 않은 직함을 달고 권위 있는 신문에 글을 싣는 것이 사회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글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댓글의 “역시 아마추어답군요” 같은 구절을 보며 (너무 예상대로라) 웃었던 일과 닿아있다.

개인적인 고민도 반영됐다.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예술활동증명’ 승인을 받았다. 뭔가 ‘공인된’ 예술인이 된 것 같고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인간이 이렇게 권위에 약한 짐승이다…. 권위주의를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알게 된 것은 2014년이다. 당시 나는 소규모 잡지를 기획·편집·발행·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보람은 느꼈지만 돈은 못 벌었다.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다른 매체의 취재를 돕거나 기고를 하는 ‘알바’로 충당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주거비용과 식비로 소비됐다. 다른 데 돈을 쓰기 위해서는 식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계란과 우유, 밥버거와 영양제로 연명하던 중, 바닥에 누워 천장의 새는 물을 보며 내가 빈곤의 그늘 아래 있다고 느꼈다.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재주가 없어서 그런가? 다른 기술을 배우면 좀 나을까? 기술을 새로 배우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이것저것 알아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교육지원바우처 제도를 접했다. 창작을 위한 기술을 배우는 비용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요구하는 예술인의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2012년 ‘월간잉여’ 창간 이래로 쭉 무언가를 만들거나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활동을 했음에도 그랬다. 2016년에 비로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인정하는 예술활동을 해냈다! 남성 중심 영화를 ‘미러링’하는 단편영화를 찍었고, 그것이 영화제에 상영된 것이다.

보람 없게도, 내가 예술활동증명 승인을 받은 해는 더 이상 예술인 교육지원바우처 제도가 시행되지 않을 때였다. 웹사이트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 걸어 그 제도가 왜 사라진지 아느냐고, 다시 시행할 의사는 없냐고 미련 뚝뚝 떨어지는 문의를 했다. 전화 받은 분은 상냥한 음성으로 웹사이트에 안내되지 않은 정책은 잘 모른다는 답변을 주셨다. 웹사이트에는 국공립 미술관 및 공연장에서 30% 내외 관람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패스, 개인 심리상담 비용을 12회 한도로 지원하는 제도(이건 좀 유용할 듯), 가난을 증명하면 받을 수 있는 창작 지원금 등이 안내돼있었다. 내친김에 각 지역 문화재단과 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도 둘러봤다. 제도의 경향성은 대동소이했다. 절대적 빈곤을 증명하거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심사단의 선택을 받은 이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

절대적인 빈곤을 증명하기를 요구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시혜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방향성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 다수가 빈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최종소비지출 대비 문화여가지출 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고, 경제적 부담과 시간 부족으로 여가활동에 불만족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각종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다들 먹고사는 것만으로 빠듯한 것이다.

지원금 제도에도 폐해가 존재한다. 며칠 만에 100억원의 정부예산을 썼다는 지난 정권의 문화교류 행사가 대표적인 예다.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할당한 예산이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만, 큰 예산이 특정 주체에 쏠리는 구조 자체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무엇이 아름다운지 사유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감각과 기술을 익힐 수 있었을지 생각해본다.

결국 예술 복지에 대한 고민은 보편 복지 증진에 대한 바람으로 수렴된다. 한정된 예산이 좀 더 돌봄·교육·의료·주거 등 필수적인 삶의 요소를 보장하고, 보편적인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수당에 쓰일 수 있기를. 정책 기획자와 예산 심의자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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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전쟁의 어느 즈음부터 내가 연루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다툼이랄지 분쟁이랄지 응징이랄지 앙갚음이랄지. 결과적으로 내가 옴팡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도 어렵다. 전쟁의 촉발은 쓰레기였으나, 곰곰 생각해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음식물 쓰레기는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나눠준 전용 수거함에 넣어 자기 집 앞에 놓아두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거의 그만큼의 쓰레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잠시 뒤로 하고. 넉넉하게 두 개를 받아왔다. 그런데 누군가 그 수거함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수거함에 음식물을 그대로 쏟아붓고 가고, 또 어느 날은 냉장고 대청소라도 한 듯 묵은 김치에 곰팡 핀 된장에 비쩍 마른 오이꽁지가 뒤죽박죽, 이걸 다시 일일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니 비용은 비용이거니와 더럽고 치사해서 울화가 치밀었다. 어쩔 수 있나, 내 집 앞에 와 있으니 내 쓰레기인 걸. 울며 겨자를 먹었다. 수거함이 비면 냉큼 안으로 들여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어였다.

이곳 쓰레기 수거일은 화, 목, 일. 쓰레기는 자기 집 앞에 놓아두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동안에는 공원 앞이나 주차장 주변이 자연스럽게 쓰레기정거장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벌금과 엄포의 경고문이 붙으면서 정거장이 폐쇄되었다. 되는 대로 슬며시 쓰레기를 갖다 버리던 사람들이 갈 곳을 잃은 것. 공공연한 정거장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정거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쓰레기 양이 제법 되는 상가 앞이 안성맞춤. 거기에 골목 코너에 있어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금상첨화. 우리 집은 무단투기의 정거장이 되기에 얼마나 좋은가. 괘씸하긴 하지만, 조용한 주택가에 식당을 차려 어수선하게 만든 죄도 있으니, 작은 봉투 정도는 함께 버려주마 마음을 다잡았더랬다.

검은콩두유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사용한 얇은 빗을 최근에 부러뜨렸고, 새카맣게 염색한 파마 머리에(빠진 머리칼을 모아 손가락으로 둘둘 말아 버리는 습관이 있는), 근육통 쿨 파스를 자주 붙이고, 열 알의 종합감기약을 다 먹은, 사람. 짐작이 가는 데가 있지만 파스와 약봉지에 패스. 피자와 감자탕을 시켜 수입맥주를 마시며 그 맥주 캔에 담배꽁초를 버리면서 파티라도 벌였을 사람들. 이놈들 잡히기만 해봐라 괜한 발길질로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뼈다귀를 그대로 담은 치킨 배달박스에서부터, 깨진 유리에 술병에 콜라병에 뜯어진 슬리퍼에, 화장실 휴지통을 비운 것이 분명한 쓰레기에. 내 입이 자꾸 더러워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더미가 도착했으니, 차로 실어다 옮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만큼의 양에, 어디 업소인 것이 분명한 수많은 와인병과 깨진 와인잔들,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쓰레기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쓰레기 수거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쓰레기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수거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단투기로 벌금을 물리겠다 했다고.

쓰레기, 제대로, 하세요. 그 말이 참 불편하고 억울했다. 여차저차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일단 쓰레기는 우리가 처리하고, 건물주는 방범용 카메라를 추가하고 경고문을 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카메라와 경고문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쨌거나 그 후로 쓰레기가 줄기는 했다.

내가 관여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니. 건물주가 작정하고 CCTV를 들여다봤단다. 우리의 결백을 알리려면 결백하지 않은 누군가를 찾아내서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

며칠 만에 현장을 잡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옆집 할머니였다. 검은콩두유를 좋아하는 근육통 파스의 그 할머니. 건물주는 사진을 캡처해 무단투기로 신고를 했다. 다만 노인이니 벌금은 물리지 말고 계도를 하는 정도로 끝내면 좋겠다고. 어쨌거나 민원이 들어왔으니 할머니에게 벌금을 물리는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할머니는 억울했다. 그깟 쓰레기 좀 버렸다고 신고에 벌금이라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할머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민원전쟁. 쓰레기 수거일이 아닌데 상자들을 밖에 내놨다, 민원(그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위해 일부러 내놓는 거라고요. 할머니도 종종 가져가셨잖아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 민원(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최대한 조심해볼게요). 음식냄새가 집으로 들어온다, 민원(후드는 3층까지 올려서 그쪽 집 반대방향으로 향하게 공사를 했다고요).

온갖 민원이 들고나는 중에 등살이 터진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바로 쓰레기 수거업체 담당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곳은 쓰레기 민원의 메카.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왜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았느냐, 배출일도 아닌데 쓰레기를 밖에 내놨다, 그 집 유리 쓰레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서 냄새가 난다, 등등. 전화가 오고 불려가고 다시 출동하고. 그래서 칼을 뽑았다. 민원이고 뭐고 우린 우리 할 일만 하겠다. 쓰레기 배출 원칙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수거해 가지 않겠다. 종량제봉투에 흙이 들어 있어서 거부. 상자들을 끈으로 묶지 않아서 거부. 상자와 종이를 분리하지 않아서 거부. 플라스틱과 비닐봉지가 섞여 있어서 거부. 부피가 큰 플라스틱을 포대가 아니라 비닐에 넣어서 거부. 유리병 포대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거부. 거부와 거절의 연속.

도리가 없었다. 업체의 말대로 완벽하게 원칙을 지킬 수밖에. 아주 일찍 말고 너무 늦게도 말고, 오후 7시에서 9시 즈음, 일하다가 기회를 봐서 쓰레기 준비 땅. 유리는 찢기지 않는 포대자루에 적당히, 일회용 용기는 깨끗이 씻고 라벨을 떼고, 아차 종이상자는 테이프를 떼어내야지. 버릴 때마다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옆집 할머니의 궁싯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술집이니 식당이니 뭐가 이렇게 많이 생겨서, 동네 시끄럽게,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에이 참. 어쩐지 벌을 서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무릎 꿇고 앉아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벌. 무슨 죄의 벌인지는 확실치 않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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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자랑(자장자장) 웡이 자랑, 금도 자랑 효도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곤밥(쌀밥) 먹엉 자는 소리. 놈의 아기 우는 소리, 고치(같이) 먹엉 우는 소리. 저래 가는 깜동 개야, 우리 아기 재와 두라. 느네 아기 재와 주마, 이래 오는 깜동 개야. 아니 재와주민(안 재워주면), 솔진솔진(날카로운) 촐(풀) 베려당(베어) 손발 꽁꽁 묶엉이네, 지푼지푼(깊디깊은) 천지 소레(물구덩이) 들이쳤다 내쳤다 허켜.”

‘웡이 자랑’이라는 제주도 자장가란다. 노란 뱅애기(병아리)가 꼬꼬꼬 울면서 뛰어가는 제주 유채밭도랑. 아기 무덤 지나면 아방 어멍 무덤, 너머엔 하르방 할망 무덤. 제주 봄날 꽃다운 사람들 아이고게(아이고) 죽고, 하영(너무) 가난한 사람들 아이고게 죽고.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먼바다에서 아깝게 죽고, 원통 분통한 봄날 슬픈 일 견디라고 꽃들은 저리 음쑥듬쑥 피는 걸까. “삼춘. 이디 봅써. 잘도 고우시다예.” 동백나무가 나를 붙잡고 말을 걸어온다. “나도 사랑허주게~게”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어잉.

자전거를 탄다. 봄 날씨엔 자전거지. 뜰낭(산딸나무), 굴무기낭(느티나무), 흰꽃이 무더기로 달린 시오기낭(섬개벚나무). 자전거는 보풀을 일듯 꽃눈을 날리면서 동네를 가로지르다가 삼춘들(어르신들) 타령소리에 멈춰 선다. “저 산천에 풀 이파리는 해년마다 푸릇푸릇 젊어나지고, 이내야 몸은 해년마다 소곡소곡 늙어간다.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오! 리틀 포레스트. 삶을 고양시켜주는 자연과 이런 체험. “조그만 동네를 산책할 때, 농부들의 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 놀이터나 공원에 얘들을 데려갈 때, 리틀 야구를 구경할 때, 커피집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길 때. 이처럼 이웃들과 섞이는 경험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무미건조할까.” &lt;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gt;에서 파커 J 파머는 이기와 냉소의 풍조에 휘둘리지 말고, 서로 마음을 쓰다듬자며 호소한다. 할망이 불러주는 자장가, 나무 아래 모인 삼촌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면서 춤춰야 한다. 영악한 세상에 순수한 사람이여! 부디 다치지 말으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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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봉 모양으로 말아접은 뒤 허벅지에 ‘탁’하고 쳐서 가지런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은 속도다. 손목, 팔목을 쓰지 않고 어깨 힘으로 허벅지부터 풍차 돌리듯 빠르게 들어올린 뒤, 목표각에 도달하면 신문을 쥔 손을 놓는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다른 집으로 날아가고, 너무 느리면 날아가던 신문이 펼쳐지면서 쏟아져 내린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 배달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터득했던 기술이다. 잘만 활용하면 3층은 물론 빌라 4층까지도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베란다에 신문을 안착시킬 수 있어서, 체력은 물론 시간 절약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어렵사리 2·3층까지 꾸역꾸역 신문을 던져 넣을 만큼 익숙해졌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빌라 3층에 사는 한 구독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보급소로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놨다. 1면이 반듯하게 펼쳐진 신문이 현관 앞에 놓여 있기를 바라는데, 접힌 흔적이 남은 신문을 받아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신문을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제안도 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 신문을 배달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는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해주냐’며 어린 마음에 꽤나 야속해했던 기억이 난다.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 물품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서 택배 차량 사고가 발생할 뻔한 뒤 택배차의 지상 진입을 막고 정문 근처에 주차한 후 카트로 운반해 배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택배업체들이 난색을 표하며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 두고 가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택배 대란’ 사진 한 장으로 온·오프 세상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한 신도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아서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 택배 상자가 단지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자동차의 지상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만큼 택배 차량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택배 차량에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 카트나 수레에 실어 배송하거나 아예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택배 차량으로 바꿔 배송을 하라는 요구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지상에 아예 차도가 없다. 아이들이 뛰노는 단지 내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량들이 오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일관성이다. 차량 지상 통행 금지라는 해당 아파트 단지의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소방차는 당연히 들어올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도 진출입이 가능하다. 이사 차량과 가전제품 배송차량도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차량에는 예외를 다수 붙여둔 셈이다. 여기에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로 시작하는 단지 내 ‘택배 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은 집값을 염두에 두고 택배 기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단 이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좋은 아파트를 표방하며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면서 이 같은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갖추고 싶은 욕망을 지적할 대목은 없어 보인다. 다만 더 나은 환경이 누군가의 더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문제다. 쾌적하고 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대가로 관리사무소에서 각 가정이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방법이 먼저 떠오른다. 이게 불편하다면 택배비를 조금 더 받는 방법도 있겠다. 많은 택배 회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이 있는 도서·산간지방에 추가 배송비를 받는다고 하니 그 비용을 참조해보면 어떨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무인택배함이나 단지 입구에서 집 앞까지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도 들리니 고려해 볼 만하다.

혹시라도 이도저도 다 싫고 지금처럼 누군가 문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길 바란다면 그건 지하주차장 층고나 택배 회사 이전에 이기심의 문제라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경제부 ㅣ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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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금도 잊히지 않는 분들이 있다. 대학시절 잠깐 얹혀 살았던 친구 자취방의 주인 노부부였다. 그 집에 들어가던 날 나는 예의를 차리기 위해 우선 노부부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주인 노부부의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단아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거실 한가운데 엉거주춤 선 채 꾸벅 인사를 드렸다. 주인 노부부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노려보는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친구에게 들어 은퇴한 교육공무원이라는 건 알았지만 막상 마주 대하고 보니 교육공무원이 아니라 사법공무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노인의 근엄한 얼굴과 그에 못지않게 위엄이 서린 노부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단번에 기가 죽었다.

눈에 거슬리는 짓이라도 했다간 쫓겨날 게 뻔해 보여 단칸방 벽 너머가 노부부의 거실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말소리조차 죽이며 지냈다.

이십대 내내 나는 연례행사처럼 한 해에 한 번씩 편도선염을 앓아 고열에 시달리곤 했는데 그 시절이 이 연례행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던 듯하다. 친구는 학교에 가버렸고 몸살기가 있어 혼자 방에 남았던 나는 점점 열이 올라 온몸이 뜨거워졌다. 그러는 동안 내내 눈을 감고 있었던 이유는 눈을 뜨면 눈앞이 빙빙 돌아 더 어지러운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잠들지는 못하고 눈만 감은 채 열에 시달리는 동안 낮이 깊었고 일상에서 생겨나는 자잘한 소음들이 파도처럼 내 귓가로 다가왔다 멀어지길 되풀이했다. 노부인이 외출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약국이라도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지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잠깐 뒤척이기라도 하면 바닥에 닿거나 쓸린 몸의 어느 부분이나 눌린 팔뚝 따위가 아파서 절로 끙 소리가 났다. 서울살이가 처음이었던 나는 서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게 바로 타향살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결국 혼자라는 생각 탓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나는 다시 몸을 뒤척이다 신음을 냈는데 곧이어 똑, 똑, 똑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벽 너머 저쪽 거실에서 노인이 노크를 한 거였다. 아무래도 조용히 하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속으로 ‘노인네가 귀만 밝아서는’ 하며 투덜대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조금 뒤 다시 똑, 똑, 똑 소리가 들렸다. 무척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두드림이었고 문득 그 소리가 무얼 뜻하는지 깨달았다. 괜찮냐고 묻는 뜻이라는 걸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괜찮다는 의미로 벽을 조심스럽게 세 번 두드렸다.

그날 오후 외출에서 돌아온 노부인이 단칸방을 찾아와 상비약에서 골라온 몇 가지 약을 내게 주었다. 그 약 덕분인지 부었던 편도선도 이틀 사이에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어느 한가했던 오후 나는 방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헤아리다가 벽 너머 거실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신음이었다. 노부인은 외출을 했으니 노인의 신음인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벽을 똑, 똑, 똑 두드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 나는 후닥닥 뛰어나갔다. 노부부 집의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단아하고 정갈한 거실 한가운데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119에 전화를 걸고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치고 노인이 병원으로 실려 가고…. 다행히 노인은 때를 놓치지 않아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며칠 뒤에는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노부인은 아무 말 없이 과일이 든 바구니를 우리 자취방 앞에 놓아두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그 과일을 먹으며 분명 노쇠해진 탓에 귀가 어두웠을 노인이 어떻게 내 신음을 들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고 사람이란 그러니까 그게 누구든 사람이란 다른 어떤 소리보다 고통 받는 타인의 소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설령 귀가 먼다 해도 그 소리는 가슴으로 듣는 것이기에 듣지 못할 수가 없다는 이 신비로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며 살아가는 그이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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