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국토 개발을 경험한 사회가 갖는 공통적 특징은 ‘새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로 나타난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도시’의 창궐은 ‘신’(新)이나 ‘뉴’(New)라는 접두사를 무한대로 사용케 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0년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본 대단지 아파트에 충격을 받아 저서 <아파트 공화국>을 쓰면서 아파트가 그 거대함을 어떻게 확장해 나가는지 방식을 이렇게 분석했다.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며 상징”인 한국의 아파트는 동시에 “재화”이고 “어떤 의미에서 투기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이방인의 눈에도 목격된 아파트의 ‘욕망’은 결국 단지 밖 사람들을 배척하는 촉매가 돼 이곳을 섬처럼 고립시켜버리기도 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진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의 주민 안내문을 보면 아파트 안팎의 괴리감이 뚜렷해진다. 이들은 인근에 새로 지어질 청년임대주택을 ‘5평형 빈민아파트’라고 규정하며 ‘아파트 가격 폭락’ ‘아동, 청소년 문제, 불량 우범지역화 우려’에 따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도시의 주거빈곤층이 된 청년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주택에 ‘빈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자 비판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집값은 (어른들이) 폭등시켜 청년들이 주거 안정이 되지 않아 집이라도 구해주려는 것인데…”(@by***), “청년혐오다. 언제부터 청년이 슬럼가를 형성하고 질이 나쁜 존재였나. 자신들의 청년 시절도 그랬나”(@se***). 논란이 커지자 해당 안내문을 떼어냈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까지 되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 건’이라는 제목의 안내문. 페이스북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택배차량의 진입을 금지했다. 택배차에 주민이 치일 뻔한 사고가 발단이 됐다. 단지에는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 차량을 통제한다는 공문이 붙었다. 사실상 집 문 앞까지 접근할 수 없게 된 업체들은 정문에 물건을 놓고 가거나 이곳을 ‘배달불가 지역’으로 지정해 맞대응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통제하고 정문 근처에 주차 후 카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지만 택배 업체들은 아파트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두고 가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갈등을 빚었다.연합뉴스

아파트 측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 택배함에 놓고 가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차고가 높은 택배차량은 지하로 진입할 수 없다. 그러자 “차량을 바꾸면 된다는 주민도 있던데 기사가 자기 차량을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고 배달하는 구조에서 차까지 개조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2500원(택배비)의 갑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또 차 대신 수레로 택배를 가지고 온다면 된다는 주민에 대해선 “안전을 우려해 차량 진입을 막는다면 집 앞까지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불편은 주민들이 감수해야지 불편함은 택배기사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서울 강남 및 동부이촌동, 경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우리 아파트를 싸게 내놓지 마라’ ‘싸게 팔면 매물을 주지 말자’며 부동산 중개업소를 압박하다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일도 일어났다. ‘내 아파트의 품격’을 항한 결연하고 강렬한 욕망이 이제 사회 갈등이 되는 수위에 다다랐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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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에 휩싸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진보야당인 정의당은 김 원장 자진사퇴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50.5%)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금감원장이 도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선 정상적 업무수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야당에서 제기해온 ‘여비서’ 프레임의 폭력성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 원장 문제의 핵심은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간 데 있다. 수행한 보좌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 호도이며 해당 비서에 대한 인권침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제3차 임시금융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지난 5일 김 원장 관련 의혹을 처음 보도하며 ‘여비서와 연구원 직원 4명 동행’이란 부제를 달았다. 5일 오후 인터넷에 출고된 기사는 주제목이 아예 <김기식, 여비서 동반 해외 출장…정치권 “이런 경우 못 봤다”>였다. 해당 기사는 ‘#여비서와 출장’이란 해시태그(게시물 검색을 돕기 위해 # 뒤에 연관 단어를 적는 메타데이터)까지 달았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9일 “해당 비서는 정책비서가 아닌 인턴 신분이었고, 이 인턴은 수행 이후 9급 비서가 되고, 6개월 만에 7급 비서로 승진했다”고 주장했다. 승진 배경에 뭔가 작용한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선 ‘女인턴동반 황제외유 온국민이 분노한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이후 여비서 프레임은 다시 언론으로 넘어갔다. 문화일보는 10일자 초판에 ‘SNS에 올린 女인턴 로마 기념사진’이라는 제목 아래 비서 얼굴이 절반만 모자이크 된 사진을 실었다가 다음 판에 삭제했다.

국회 여성 보좌진은 페이스북 익명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한 직원은 “꼭 ‘여비서와 둘이’ ‘출장 다녀와 고속 승진’ 이런 프레임 만들어야 했느냐”며 “이 직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 야당 대표와 공인된 매체가 대놓고 성희롱을 해도 참아내야 하는 직업이 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직원은 “담당 기관 관련 출장을 가도, 승진이 남들보다 조금 빨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물어뜯긴다. 남자 인턴이었으면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를 들었을까?”라고 했다. 제1야당과 보수언론의 저급한 젠더 인식이 한국 정치와 언론을 오염시키고 있다. ‘여비서’를 부각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라. 이는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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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사학재단스캔들로 검찰의 추적대상이 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3월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베내각 지지율은 31%로 급락했으며, 아베의 퇴진을 외치는 집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우파의 아이콘으로 건재하던 노회한 정치가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는 이번에도 상황을 반전시킬 돌파구를 찾아낼까.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아베정치의 탄생배경을 알아보자.

세습문화의 특징은 장인정신에 있다. 조상의 직업을 물려받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인의 삶을 이어간다. 음식, 운동, 예술 분야에서 이러한 세습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베 역시 마찬가지로 삼대로 이어지는 정치가문의 유산을 톡톡히 받은 인물이다. 여기에 세습문화를 자랑스레 여기는 일본의 사회분위기가 맞물려 아베라는 정치거물이 탄생한다.

학생 시절 아베 신조는 유순한 성향을 가졌지만 정치토론에서만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당연히 아베의 자서전에서는 후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토드 로즈의 신간 <평균의 종말>은 사회에서 평균적인 인간의 유효성만을 맹신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복잡성을 평균치에 억지로 짜맞출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아베 신조는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실로 무게가 있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아첨하는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의 길을 쭉 밀고 가는 사람이었다.” 이는 비리사건의 주인공 아베 신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책 &lt;아베 삼대&gt;에 등장하는 그의 친할아버지 아베 간에 대한 지인의 평가이다. 그래서일까. 아베 신조는 반골 평화주의자였던 아베 간에 관한 언급을 아낀다. 정치적 수혜는 입었지만 자신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연유에서다. 중의원을 역임했던 아베 간은 1946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3년 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는 아들 아베 신타로는 신문사 정치기자로 입사한다. 이후 정치인의 딸과 정략결혼하는 아베 신타로. 아버지와 장인의 후광을 업은 아베 신타로는 친한파 정객으로 활동하면서 63세에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한다. 그는 아들 아베 신조를 자신의 정치비서로 전격 채용한다.

그렇다면 세습문화의 단점은 무엇일까. 양지바른 장소에서 바르게 자란 화초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을 동반한 악천후가 닥치면 쉽게 뿌리가 드러나는 한계를 노출한다. 모양 사납게 엉겨붙은 잡초의 성장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서민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정치인의 상당수가 세습정치의 적자가 아니었던가. 대학 졸업 후 직장과 미국 유학생활을 맛본 아베 도련님은 정치가문의 길을 택한다. 문제는 자신의 친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관을 장착했다는 데 있다. 아베가문이라는 이름만으로 정치활동을 손쉽게 시작했다고 치자. 2대가 이뤄놓은 150억원에 달하는 정치후원금도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정치초년병 아베 신조의 백지와 다름없는 뇌구조였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유명정치인일 뿐 정치 자체가 아니었다.

작금의 아베는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던 10년 전의 나약한 정치인이 아니다. 2012년 12월 자민당의 거두로 다시 태어난 아베 신조. 그는 2차대전 패망 후 미국이 관여한 평화주의 헌법을 갈아치우는 데 주력한다. 자민당은 2018년 3월25일 자위대 보유를 명문화하는 문구를 삽입한 개헌안을 당대회에서 표명했다. 대한민국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아베는 억지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는 정치란 최고권력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A급 전범이었던 외조부를 존경한다는 아베 신조. 순혈주의가 유별난 섬나라의 침략 역사. 그들만의 공동체에서는 늘 새로운 희생양이 필요한 것일까. 일본은 아베라는 유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쟁국가로 회귀하려는 미혹에 빠져 있다.

아베라는 이름의 유령이 일본 안팎을 떠돈다. 군국주의라는 붉은색 유령이.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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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 싸움의 현장에 갈 적마다 마치 온몸이 불붙는 화살처럼 소리소리 달려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남몰래 흥얼대는 노래가 하나 있다. 얼마 앞서는 쌍용차 노동자 김득중이 “선생님, 이참엔 굶어죽는 싸움으로 결판을 내고야 말겠습니다”라며 돌아간 뒤에도 나는 남몰래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일까. ‘섬집아기’라는 애들 노래지만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내 나이 열여덟, 전쟁이 한창일 적 전선에서 돌아가신 형님의 유해라도 찾겠다며 부산에서 영등포로 가는 기차에 몰래 타긴 했는데 밀양인가부터 기차가 멎고는 가질 않는 거라. 몇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지 눈보라는 치지 꽁꽁 얼붙던 그때 그 숨죽은 그 역 앞마당.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게 있었다. 달걀장수 아줌마가 어린 애를 포대기에 싸서 눈더미 위에 올려놓고 가 그 어린 것이 우는 소리라. 하도 안타까워 뛰어내려 달래주고 있는데 그 달걀장수 아줌마가 고맙다며 달걀 하나를 주는 게 아닌가. 너무나 감격해 막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 어린 꼬마가 아 앙~, 나도 모르게 달걀을 뜯어주니 낼름, 또 주어도 또 낼름, 마침내 다 빼앗기고 나자 내 정신이 돌아오는데 아이구야 고리눈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고것이 예쁘기도 밉기도 한데 마침 꽥~ 그 어린 것이 우는데도 나는 기차를 타고 떠나왔지만 그때부터다. 내 마음엔 탈(병)이 하나 들고 말았다. ‘네 이놈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거짓부리지 마라 이놈’ 그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다. 아내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왔다. “여보, 그 노래 괜찮은데 다시 한 번 불러 봐.” 그래서 익힌 노래가 바로 ‘섬집아기’. 이때부터다. 내 인품이 모자라다 싶을 적엔 늘 그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문화활동가 신유아의 전화다. 콜트콜텍 노동자 싸움에 함께하시자고.

콜트콜텍 노조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2017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천막농성장 앞에 서 있다./정지윤기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서울 광화문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부당해고에 맞서 이들의 싸움은 내년 1월12일이면 4000일이 된다. 국내 최장기 투쟁이다. 정지윤 기자

잘 아시겠지만 콜트콜텍의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금은 오매 200만원. 하지만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일궈 몇 해 만에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아무튼 같이 살자고 노조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를 통째로 인도와 중국으로 빼돌렸으니 그건 무엇일까.

첫째, 역사범죄다. 무슨 말이냐. 우리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경제의 참 알기(주체)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걸 깨우쳤다. 그게 있기에 우리 인류는 영광에 빛나는 건데 콜트콜텍 사장은 그 깨우침을 주관적으로 깨트렸으니 그건 어절씨구 역사 알기(주체)의 말살범죄라, 요만큼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장이란 물건만 만드는 데가 아니다. 노동자의 살티(목숨)의 텃밭이다. 그것을 강제 폐쇄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목숨을 공개적으로 죽인 만행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사회를 짓이긴 침략이라, 어찌해야 할까. 암, 민주정신으로 응징해야 한다.

셋째, 인류문명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발전이다. 그것은 또 어디서 오는가. 아무렴 노동에서 온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바로 콜트콜텍인데 그 공장을 죽이다니, 그것은 곧 인류문명인 예술을 죽이는 반문명이라, 누가 나서야 할까. 바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나서 싸운 지가 어느덧 오늘로 4090일, 그것은 피눈물의 싸움이었지만 거대한 먹괭이(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아직도 실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요만큼도 머뭇대선 안 된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역사, 그 나아감의 심정적 패배라,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라는 노래로 나설 터지만 우리 시민들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아리아리’로 나서자. 이제는 세상을 바닥에서부터 발칵 뒤집는 노래 아리아리로 저 끔찍한 반생명과 맞붙는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하나니, 벗이여 눈물겨운 벗이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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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유명 브랜드들을 접하게 된다. 호기심에 백화점에 들어서면 명품 화장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부분 글로벌 외국 기업의 제품이다. 샤넬, 에스티로더, 랑콤, 디올, 시세이도, 클라란스, 록시탕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국내 백화점에는 미국과 프랑스에 본사를 둔 화장품 4사 브랜드 매장 수만 950개 정도 된다.

특히 샤넬은 7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전체 직원이 1100명을 넘는 대기업이다. 샤넬이 국내에 진출한 지는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샤넬의 경영전략은 지탄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인권 침해와 불성실한 노사관계 인식을 지적해야겠다.

10여년간 회사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다. 매장 판매직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2018년 1년차 신입 직원의 통상임금을 확인해보니 월 170만원에 불과했다. 샤넬 매장 직원 10명 중 7명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현재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가 불거져 소송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화점 매장의 노동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실태조사 결과 중 샤넬 내용은 충격적이다. 1주일 51.3시간 근무, 연차휴가 사용일 4.6일, 신입 직원 퇴사율 40%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파도 매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 출근한 경험이 67.8%나 되었다. 최근에는 임신 여성의 단축근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산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1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회사 규정과 업무 수칙은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손톱 길이부터 머리 모양과 색상까지 엄격하게 관리 지침으로 두고 있다. 아침에 메이크업부터 머리 모양까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일찍 출근해야 한다.

기업의 고속 성장 그늘 속에 묵묵히 일했던 여성들. 지금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화점 샤넬 매장에 가면 낯선 복장의 판매원을 접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검은색 유니폼과 짙은 화장의 직원을 접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바로 옆엔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노동조합이 파업 중임을 알리는 팻말이다. 지난 4개월간 노사협상에서 월 6000원, 연간 7만2000원의 차이를 회사가 수용하지 않아 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샤넬이라는 기업이 고작 1년에 1인당 7만원의 비용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샤넬은 연간 매출액이 약 1700억원으로 동종 업계 1위 브랜드다.

최근 파업 기간 중 일부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회사가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이다. 회사는 지난 9일 노조 탈퇴자 소수를 대상으로 호텔에서 임금설명회를 개최했다. 노조 탈퇴자들은 소위 좋은 매장으로 올해 초 인사 이동된 바 있다. 노사 교섭과 파업 중에 흔치 않은 일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에 지배·개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노조가 현장을 확인하고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부당노동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위법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최근 언론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삼성처럼, 샤넬의 ‘노조 와해’ 시나리오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샤넬은 국내 최고의 ㄱ로펌이 법률 대리를 맡고 있기에 이런 추측을 해본다.

자국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공화주의 정신처럼 중시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국민의 헌법적 권리는 무시하는 샤넬의 오만한 태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최근 정부의 헌법 개정안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글로벌 샤넬의 민낯을 보고 있다. 전국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고객님도 응원해주세요”라는 샤넬 노동자들의 팻말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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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리배출을 하고 있고 어딜 가나 종류별로 재활용 쓰레기통이 갖춰져 있어 분리수거가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정책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정책이 폐기물정책이었다. 한국의 폐기물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칭찬하는 모범사례로 꼽혀 왔다. 전국이 일시에 종량제 시행에 들어갔고 제도 시행 후 재활용률이 높아졌으며 분리배출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했다. 201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독일(6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런 나라에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라니!

폐기물 관련 숫자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무려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란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다. 국민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하나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세계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017년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압축된 PET 뭉치. 김영민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폐기물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량’이다. 재이용, 재활용, 자원 회수 이전에 나날이 늘어나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거리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에서는 종이컵 사용이 기본이다. 매장 안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을 닫은 종이컵을, 그것도 마분지 홀더까지 끼워서 쓴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니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실 거니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따로 요청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찬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도 홀더를 끼워 쓴다. 냉장고에 진열된 병 주스를 사도 따로 플라스틱 용기에 얼음을 담아준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매장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비가 올 때면 곳곳에선 일회용 비닐봉지가 으레 사용된다. 보고 버릴 영수증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매번 출력된다. 이제 이런 게 일상이고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회용 컵의 경우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보증금 제도가 2002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010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를 크게 완화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그 사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계도 느슨해졌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1인 가구, 소규모 포장 증가와 택배업체 과다 포장 등의 요소가 맞물리면서 폐기물 배출량은 빠르게 늘었다. 소비자의 세심하지 못한 분리배출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전면 수입 중단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 처리의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예고가 지난해 7월에 있었고 올 1월부터 실제 금지에 들어갔지만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9%가 찬성했다. 보증금제 도입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은 상태다. 기대한 감량과 재활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량이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상품 생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확대·강화하여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용기와 포장재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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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한국 사회의 최고 난제인 대학입시 개편과 저출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른바 ‘서울대 입학 보장 출산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실망감, 교육부란 정부 조직이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제도 발상의 단초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노인 복지, 교육 양극화 해소, 부동산시장 안정 등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제도는 간단하다. 자녀가 없거나 하나·둘인 가정은 해당 사항이 없다. 셋째 이상 낳는 가정에 혜택을 준다. 구체적으로 셋째 아이는 지방 거점 국립대와 ‘인(in)서울’ 대학 입학을 보장한다. 넷째는 연세대나 고려대 입학증을 준다. 다섯째는 서울대 입학을 허가한다. 다음 순서 아이는 취업 부담까지 덜어준다. 여섯째는 의·치대 입학 우선권을 주고, 일곱째는 공무원으로 임용한다. ‘먹튀’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조건이 붙는다. 대학 입학과 공무원 임용 특혜를 받은 사람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 부모를 모시지 않거나 불효를 저지르면 즉시 자격을 박탈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서 선발 방법, 선발 시기, 수능 평가 방법 등에 대해 숙의·공론화하고 그 결과를 제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강윤중 기자

이 제도는 복잡다단한 입시를 단순화했다. 수시와 정시모집 비율을 어떻게 할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절대평가를 도입할지 말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 역대 어떤 입시제도보다 공정하다. 유일한 변수가 부모의 출산 노력이다. 집안의 경제력이 자녀의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도 사라진다. 수십년 쌓인 교육 폐단도 일거에 해소된다. 당장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가 무너진다. 집안의 다섯째들이 주로 다니는 서울대는 부모 봉양 의무를 진 학생들이 ‘실버’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종의 특성화 대학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교육열에 편승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하며 몸집만 불려온 대학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을 인재로 키울 수 있는 교수만이 국립대와 연·고대에 재직할 수 있다. 10대 중·고교생들을 무겁게 짓눌러온 경쟁의 부담이 대학과 교수들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쉽다. 기업의 채용 문화도 달라질 것이다. 특정 대학 출신자에 가산점을 주기 위해 전국의 대학을 13등급으로 구분한 하나은행 같은 곳은 경쟁력이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한다.

새로운 제도하에서 사교육은 의미가 없다. 사교육 시스템이 무너지면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과 목동의 아파트 가격 거품은 저절로 꺼진다. 부동산 값을 억누르기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민들에게 엄포를 놓을 일도 없고, 금융당국이 복잡한 대출 제도를 만들 필요도 없어진다. 김상곤 부총리가 시세보다 낮게 대치동 아파트를 팔았다지만 집값이 폭락하면 결과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가 효과적으로 소비되면 3조9000억원짜리 추가경정예산의 국회 통과에 목을 매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고민도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1.05명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30년 뒤 인구는 절반으로 준다. 장담하건대 정부가 제도 검토 계획만 내비쳐도 출산율이 솟구칠 것이다. 10년쯤 지나면 1950~1960년대 베이비붐 때처럼 5~7명씩 아이를 낳는 가정이 이곳저곳에서 나올 것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시골 마을에도 생기와 활력이 돌고, 입양아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면 버림받고 학대받는 어린 영혼들이 사라질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돈이나 권력보다 부부간의 금실, 형제·자매간 우애, 부모에 대한 효도 등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여러 명의 자녀를 양육하려면 성 평등, 일·가정 양립, 워라밸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가 기쁨인 자녀가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고령화로 인한 노인 부양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행복해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은 다양한 체험 활동과 독서로 즐겁게 지내고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하면 된다.

황당한 얘기라고? 하지만 지난 10여년 출산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수많은 대책을 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예비고사·학력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 등으로 입시 제도를 숱하게 바꿨지만 교육 경쟁은 여전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정책이 반드시 지속 가능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정책 중에서도 예산 부족 등으로 지속성이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다. 인구가 너무 늘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 문제는 그때 닥쳐서 생각하면 된다. 한국의 제도는 대증적 처방과 조변석개가 특징 아니던가.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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