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은 유독 ‘속숨허라(조용히 해라)’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말을 해봐야 도움은커녕 일신의 위협만 받고 가족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4·3 70주년, 3만명의 죽음. 국가권력의 폭압으로 무참히 몰살당했던 그 역사. 70년 동안 그들은 조용했다. 무서워 울지도 못했다. 두려움에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못했다. 옆집의 비극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렇게 ‘호썰 속숨헙써(좀 조용히 해)’라고 했다. 제주 사람은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살암시난 살앗주’, ‘살암시민 살아진다’라고. 조용히 살다 보니 그래도 살게 되었다고.

일주일간의 4·3 해원상생큰굿이 열렸다. 험악한 세상 만나 들로 산으로 굴속으로 바닷속으로 내몰렸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몰아쳤다. 어찌 살아남은 사람조차 산 게 아니었다. 70년 전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오라방과 누이, 아방과 어멍, 서방과 각시, 물애기, 삼촌과 고모님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잘도 곱닥한 우리 애기, 보고정허다.”

살아남은 자의 눈물수건은 흥건하고 제단에는 망자를 위한 저승돈이 쌓인다. 속숨할 일이 아니다. 70년 맺힌 눈물을 더 크게 왈칵 쏟고 비참의 시간을 증언해야 한다. 왜 그랬는지 말하고 밝혀야 해원상생이 가능하지 않은가. 10년 뒤, 4·3 80주년에는 그 할망들이 살아 있을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시인 이종형은 4월의 섬 바람에 대해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묻는다.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에서 온다고 했다.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에서 온다고 했다. 그래서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었다. 제주 4월의 바람을 맞이하는 건 고통스럽다. 제주 중산간 까마귀 떼는 소름 돋는 죽음의 전조다. 다랑쉬오름의 바람, 사려니숲과 거문오름의 봄 야생화, 정방폭포와 서우봉,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 한라산의 절경은 다 학살의 장면과 겹친다. 아름다운 곳마다 학살터였다.

4·3을 겪은 제주 사람과 국민은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4·3평화공원의 추모비는 아무런 글귀가 없는 ‘백비(白碑)’의 상태다. 아직도 4·3의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찾지 못해서다. 4·3은 공산주의자의 폭동이거나 어쩌다 발생할 수 있는 사적인 일이 아니다. 4·3은 ‘사건’이나 ‘사태’, ‘불의’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학살에 대항한 ‘정의로운 저항’, ‘항쟁’으로 기록되어야 올바르다.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를 쓴, 조국에 살아보지 못한 디아스포라, 작가 김석범은 일갈한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찾고 새겨 누워있는 백비를 일으키자고.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숨죽였다. 왜 학살의 피해자가 속숨해야 하는가. 4·3 정명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국가의 역할은 학살의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사죄하며, 4·3의 가해자인 이승만 정권과 미 군정의 행태를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해원상생, 원한을 풀고 더불어 살아갈 일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4주기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4년은 ‘속숨허라’는 4·3 70년의 역사와 닮았다. 우리는 오늘, 4·3과 세월호의 백비에 무어라 쓸 것인가. 세월호 떠오르고 동백꽃 다시 핀다. 그래야 봄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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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으니 좀 가볍게 수수께끼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간 우리 사회에 수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이 파업처럼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파업은 일찍이 없었다. 또 이 파업처럼 정부와 사회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 파업은 단기간에는 그 심각한 결과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해법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그 파괴적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해법을 찾더라도 복구하는 데 장구한 시간이 걸린다. 이 파업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출산파업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은 출산파업이란 말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풍자적 의미로 쓰는 말이니 잠시만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간 한국사회나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관점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일어난 만성적 출산파업에 대한 대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성적으로 지지부진 진행되는 파업이니 그 대응이 급할 것도 없었다. 이미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참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미래적 보고서를 낸 바 있고, 정부의 실세인 경제관료들은 지금도 이 해법을 금과옥조로 신봉하고 있는 중이다. 말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점잖게 하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공장에 출산파업이 일어났으니 대체노동력을 투입해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관점이 이러니 당근으로 주어지는 출산장려책이란 것도 무슨 수당을 찔끔찔끔 주느니 마느니 하는 유의 것이어서 애초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참담한 결과는 현재 50만이 넘는 대학신입생 수가 20년 뒤엔 20만 남짓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위와 같이 한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보는 관점 자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하는 근대 산업국가 패러다임 자체에 있다.

피그미족과 함께 수년간 생활을 하며 연구한 인류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의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이다. 피그미족은 그 이상으로 많은 노동을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무척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이 피그미족의 노동시간은 그러나 자연생태계와의 관계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 피그미족이 생활하는 범위 내의 자연생태계가 점차 고갈되어 종족의 지속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만이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이건 이후건 수렵채취생활을 하는 종족들의 노동시간은 15시간 남짓이었다. 맹목적인 축적이 노동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조화가 노동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전통 농경사회까지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우리 고대소설 &lt;흥부전&gt;에서 흥부는 제비 다리도 고쳐주고, 부모와 자식, 형제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자연생태계, 생활생태계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사회의 인물형이다. 이에 반해 놀부는 부의 축적을 위해 생활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근대적 인물형이다. &lt;흥부전&gt;은 흥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존속해온 예외적인 사회이다. 축적 자체를 위해 노동을 하고 맹목적 축적을 위해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결과가 온난화, 미세먼지 같은 심각한 환경 문제이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해체라는 생활생태계의 붕괴이다.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생활생태계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유적 존재로서의 생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것이 산업화가 덜 진전된 못사는 나라가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보다 행복도가 높고 유독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사회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도에서는 실패한 사회이다. 생산성 중심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삶의 질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은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하는 미래사회와도 맞는 방향이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한국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가야 할 생활생태계로 보는 것, 한국인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일꾼으로 보지 않고 생태계를 조화롭게 꾸려나가야 할 주체로 보는 것일 게다.

얼마 전 교육 관련 국책연구원들을 순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남은 것은 답답함과 두려움이었다. 연구원이니 좀 여유를 갖고 앞에서 말한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하고 있겠지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교육부처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중심 산업사회 시스템의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관차의 맹렬한 속도였다. 저렇게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는 기관차가 이미 시야에 들어와 있는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구 절벽에 대비하여 지역의 생활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하고 어떤 시스템을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미래교육생태계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지도에 따라 기관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생활생태계지도를 그리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어려우니 고정된 시스템을 다루는 미래교육생태계지도부터 그리자는 것이다. 교육기관은 지역 생활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니 미래교육생태계지도는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미래생활생태계지도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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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그날, 바다>를 개봉 당일 관람했다. 과학적 관점으로 배의 출항에서 침몰까지의 시간대를 추적해 침몰 원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진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가열차게 탐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김지영, 김어준 이하 제작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침몰한 지 4년, 배를 건져낸 지도 1년의 시간이 흘러버려 더 이상 밝혀낼 것이 없다고 다들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는데 이 영화는 남아 있는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침몰 원인’에 집중함으로써 진실의 강력한 조각을 극적으로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라기보다는 검찰에 제출할 증거자료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의 핵심은 AIS(Auto Identification System)의 항적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과 조작되기 전 원래의 기록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거짓말쯤은 밥 먹듯이 하는 이명박근혜 정부였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으로 일관한 것인가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

생떼 같은 아이들이 300명이나 죽든 말든, 가슴 아파하는 유족과 국민이 진상을 알고 싶어하든 말든 ‘덮어야 한다’는 일념에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적으로 조작하고, 거짓 위에 거짓을 쌓는다면, 이와 같은 일은 대체 어떤 종류의 범죄에 속하는 것일까.

거짓투성이가 민관 합동의 객관적 보고서가 되고, 전문가들의 결론이 되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음모론이 되는 기막힌 사태는 세월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에 따른 폭침이라는 게 정부의 결론이다. 하지만 폭발에 의한 격침이었으면 마땅히 있어야 할 화약 냄새, 이비인후과적 손상, 폭발음, 수중 폭발에 따른 물기둥, 물고기들의 떼죽음, 고열, 화염 등 어떤 것도 관찰되지 않았다.

파괴된 배에서 눈으로 관찰된 것은 외부 물체와의 충돌 흔적이다. 배가 첫 좌초 이후 표류할 때 또 다른 잠수함이 들이받아 사고를 낸 후 도주했다는 정황 증거가 조사단에 의해 증거로 제출되어 있다. 그런데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선언은 회수되지 않고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직 관심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만 있다.

이제는 정말 세월호와 천안함에 대하여 과학적인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그냥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이미 나온 증거만 상식적으로 귀납해도 큰 윤곽은 그려진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것을 덮으려고 했던 이들을 잡아내고 법적 책임을 지우는 일이다. 이는 내부 양심선언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다.

왜 이렇게 국민이 쉽게 보일까, 속여먹기 좋은 호구로 보일까. ‘바보’가 되어버린 듯하여 괴롭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공인에 대하여 거의 가혹할 정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거짓말, 말 바꾸기가 횡행하고 있다. 여전히 진실이 잠겨 있는 세월호와 천안함 사태, 국가를 이용해 조 단위의 자원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전임 대통령,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재벌 2세의 폭언 등.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요구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도덕적 완벽함’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번 금감원장 사태에서도 그렇듯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이들, 더욱 하자가 많은 이들이 주도가 되어 하자 운운하며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어떻게 도덕의 도자도 모르는 이들이 도덕을 손에 쥐고 무기로 휘두르도록 놔둘 수밖에 없는가.

양심, 진정성, 도덕성 이런 말들은 당분간 의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그래야 덜 괴로울 것 같다. 그 대신 ‘참’과 ‘거짓’을 걸러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우는 사회 시스템을 위한 공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싶다. 거짓은 드러낼 수 있고,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짓은 거짓일 뿐이다. 이렇게 명확한 것을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삼자는 것이다. 법적 처벌을 강화하든, 헌법을 개정할 때 공직자의 거짓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넣든, 거짓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모든 행위에서 하나의 검열 장치로 작동하도록 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상상력을 동원하고 총의를 모았으면 한다. 너무 심한 거짓말에 당하고도 당했나보다 넘기게 되는 그런 사회가 되게 내버려두지 말자.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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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봄이 올까 싶었는데 꽃샘추위가 지나간 전국에는 진한 봄내음이 그득하다. 거리에는 벚꽃, 진달래가 봄바람에 나부끼고 밥상에는 두릅이며 쑥, 냉이 같은 봄나물 향이 물씬 퍼진다. 계절의 변화를 먼저 느끼는 농촌에도 봄이면 백색옷을 입은 배꽃과 분홍빛의 복사꽃 등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곤 한다. 많은 상춘객들이 농촌을 찾아 자연을 느끼고 체험활동을 즐기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경관이 주는 행복과 이로움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지난 3월 발의된 대통령 개헌안에 농업계의 염원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반영되었다. 식량 생산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 경관 및 환경보전, 전통문화 계승 등 162조원에 달하는 공공재적 역할을 수행하는 농업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근래에 농업·농촌의 가치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은 물론이고 국민의 휴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으로서 쾌적한 전원 환경 제공 등으로 커지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67.3%가 농촌을 ‘자연과 전원 환경이 보전되고 휴양에 도움이 되는 곳’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답변했다. 2016년 농촌체험휴양마을 방문객 수가 1000만명으로 전년보다 약 15% 증가했다는 통계청 발표도 이러한 흐름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국민들이 농업의 가치를 느끼고 스스로 농촌을 찾을 수 있도록 농촌 환경을 잘 가꾸는 일이 시급한 시점이다. 스위스도 헌법에 농업의 가치를 보장하고 국가직불금으로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하는 대신 경관 보전 등의 상호준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농촌은 영농 폐비닐 수거율이 66%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까지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실정이다.

이에 농협은 오는 4월30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캠페인’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한다. 이를 통해 농촌을 농업인의 삶터이자 전 국민의 쉼터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우선 농촌지역 클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환경위생 전문업체와 제휴하여 팜스테이 마을을 대상으로 클린인증사업을 도입해 올해 20개 마을을 시범인증하는 등 매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농촌마을 담벼락과 건물 외벽에 벽화 그리기 사업을 활성화하고, 주민들과 함께 꽃밭 조성에도 적극 나선다. 하천 주변과 마을을 지속적으로 청소하는 한편, 축사 주변에는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냄새를 제거하고 미관도 살려나갈 계획이다.

필자는 농촌 현장에서 40여년을 보낸 농업인으로서 이제는 농업·농촌이 사회적 보호대상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 공여자로서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농촌을 국민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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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 저만치 조그만 돌멩이가 있습니다

 

돌멩이는 담장 그늘이 외로워서

냉이꽃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굴러오는 중입니다

종달새도 텅 빈 하늘이 외로워서

자꾸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냉이꽃이

냉이꽃이 종달새를 던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유금옥 시인의 동시를 좋아한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한, 대관령 골짜기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걸작이다. 동시 ‘왕산초등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산이 있네/ 우리 학교는 책이 많네/ 우리 학교는 놀이터가 있네/ 우리 학교는 새들도 많네// 우리 학교가 지지배배 웃네”라고 썼다.

시 ‘냉이꽃’에도 아이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나라가 있다. 냉이에게는 흰 꽃들이 잇달아 피었다. 돌멩이는 담장의 그늘에 있으면서 말을 나눌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굴려 냉이꽃 곁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가고 있다. 물론 꽤 오래 걸리겠지만. 높은 하늘을 날던 종달새도 혼자 하는 놀이가 심심해서 땅으로 포르릉 날아 내린다. 그러나 냉이꽃은 다가오는 종달새를 봄 하늘로 되던져 돌려보낸다. 종달새는 솟아오르며,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진 듯 날아간다.

냉이꽃의 마음이 있고, 돌멩이의 마음이 있고, 종달새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그것도 모르는” 일을 하곤 하지만, 이즈음은 외로운 마음들이 한 군데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려는 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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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요청’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여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딱 50분만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찬강연을 해달라면서 ‘약소해서 죄송하다’는 표현과 함께 제안된 강연료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기업 전문강사가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너무 논쟁적인 주제는 피해달라면서 평소 책에서 하던 이야기를 가볍게 언급하면 충분하다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없다. 최저임금으로 하루 8시간씩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을 1시간 만에 벌 수 있다니 어찌 호흡이 가빠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수락을 못했다. 하필 그날이 대학교 개강일이었다. 수업시간인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일정이라 아쉽지만 거절했다. 휴강의 유혹도 있었으나 내가 그래도 대학 교육자라는 사실을 차마 스스로 부정할 순 없었다.

복권 당첨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를 예방하려면 앞으로 대학 강의를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에 75분 강의를 하기 위해 왕복 3시간을 이동한다. 이 짓을 한 달에 여덟 번을 하고 시간당 6만원 기준으로 72만원(세전)을 4개월 동안 받는다. 한 번 강의에 9만원인 셈이다. 과제와 시험을 채점하고 첨삭하여 돌려주는 초과노동은 기본이다. 출결사항을 학교 시스템에 직접 입력하고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과제도 시험도 없는 기업 강연을 1시간만 하면 대학 시간당 강의료의 30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알고 보니 내가 제안받은 금액은 방송에 자주 나오는 스타강사나, 석학 수준의 명사들이 받는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대학 시간강사 월급의 3개월치보다 많았다. 재미난 건 내가 대학에서 받는 시급 6만원은 사립대학 중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

배알이 꼴려서가 아니라 대학이 너무 우습다는 거다. 객관적으로 지식 노동에 대한 단가가 너무 낮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면서 제안하는 고등학교 특강도 30만원 아래로는 강사 초빙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비영리 조직이라 형편이 좋지 않다’는 시민단체에서도 최소 20만원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딱 한 번만 와 달라고 부탁한다.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과외교습을 하면 주 2시간 2회 기준으로 최소 50만원은 받는다. 시간강사와 이들은 진배없다.

12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좋게 생각하려고도 했다. 단순하게 최저임금에 비하면 시간당 높은 급여라고 위로하며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강의를 9개(27학점)나 맡아 그저 매달 들어오는 돈을 보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강사 경력은 교수 채용 과정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책 읽고 논문 쓸 시간에 강의나 돌아다녔다는 책임만을 혹독하게 질 뿐이다. 그렇기에 평생 시간강사만 해야 될 운명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사십이 넘어가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여기저기 떠돌기도 어렵다. 대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노동이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지 못하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대학은 시간강사 없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없는 구조다. 기능적으로 시간강사는 대학의 필요한 존재지만 대우는 형편없다. 대학이 교수가 아닌 연구자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이를 증명하다. 강의전담교원이나 연구교수 같은 이름만 그럴싸한 타이틀을 얻고 1~2년 후 해고될 사람들이 받는 급여는 한 달에 250만원 남짓이다. 나 역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직장인처럼 출퇴근하면서 연봉 3000만원을 받고는 가족을 부양할 자신이 없어서 거절한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사회학인지라 나는 강의 때마다 최소 1분은 “내가 이 돈으로 강의해야 하나” 하면서 신세한탄 중이다.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학생들이 학교에 항의해 강사 재위촉이 되든 말든 상관없다. 그 돈은 ‘없어도’ 사람의 생활을 아프게 할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

<오찬호 | 작가·<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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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때는 19세기 말이다. 여러 추정들이 있지만,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카페의 형태를 처음 갖춘 곳으로 알려진 ‘손탁 호텔’의 1층 카페는 1902년에 생겼다. 우리나라의 카페 역사도 10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작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카페 수는 주스·전통차 전문점까지 합해 9만개를 넘는다.

국내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중 부동의 1위는 ‘스타벅스’다. 연간 매출이 1조원 이상이다. 전국에 115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데, 최근 이 중 한 매장이 유독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문을 연 노량진 매장이다. 각종 임용·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몰려있는 이 지역에 유독 스타벅스가 없었다는 것도 이야깃거리였지만, 개장한 매점이 여느 스타벅스와는 다르다는 보도 때문에 더 화제를 모았다. 테이블이 낮고 콘센트가 몇 개 없어서 노트북을 들고 오는 손님들이 오래 앉아 공부할 수 없다는 보도였다. 공시생들이 행여 오래 앉아있을까봐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의혹이 얹어졌다.

스타벅스 로고.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흥분해서 스타벅스 불매운동이라도 벌였을까? 아니다. 이 기사에 대한 대다수 댓글러들의 비난 화살은 스타벅스가 아닌 소위 ‘카공족’, 즉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 해라, 걔네들 때문에 맘놓고 떠들지도 못한다, 넓은 자리 주야장천 차지하니 꼴불견이다, 카페 주인들 화병 나는 것 아느냐 등등.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늘 변했다. 그 시대, 그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며 바뀌었고, 종종 문화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1674년 카페 ‘프로코프’의 탄생은 집 안에만 있던 파리의 여성들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는 ‘공공장소’가 됨으로써 이들의 일상 모습을 바꿨다. 이후 파리의 카페는 지식인들이 모여 철학과 시사를 논하는 공간이 되어 사상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의 다방은 전문 DJ가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던 유흥공간이었고, 같은 시기 역전이나 읍내의 다방은 한복 입은 마담과 짧은 치마의 ‘레지’가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풀어 서비스하던 끈적끈적한 공간이었다.

스타벅스의 조상뻘이 되는 커피전문점은 ‘난다랑’이었다. 1979년 지금의 대학로에 처음 등장한 뒤 이대입구와 이태원에 지점을 열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만 20곳 이상 있었다.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 은은한 음악과 ‘비엔나커피’로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적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던 시기였다. 카페에 책을 들고 들어와 긴 시간 혼자 앉아있는 이는 없었다. 카페도 커피를 팔기보다는 쾌적한 데이트 공간과 유유자적한 시간을 팔았던 시기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 카페는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를 ‘요리’해주는 아담한 카페도 있고, 도서관 이상의 경건함을 과시하는 북카페도 있다. 아저씨, 아줌마 몇몇이 모여 박장대소하며 수다를 떠는 사랑방식 카페도 여전히 건재하다. 카공족의 ‘열공’과 동호회의 뒤풀이와 연인들의 데이트가 공존하는 스타벅스 같은 공간도 있다. “카페는 원래 차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라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제한된 시기, 제한된 공간에서만 참이었다.

언젠가부터 카페를 점령하기 시작한 카공족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시공간 활용술이 몸에 밴, 그래서 이 시대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마치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듯, 이 시대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게릴라처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가 훌쩍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들 또한 젊었을 때는 음악 들으며 공부한다고 야단맞았을지 모른다.

노량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공부하는 이들이 준비하는 시험도, 그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방식과 모습도 바뀌었다. 싼값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가 많이 생긴 것도 최근의 변화상이다. 그러니 스타벅스가 스터디카페 역할을 거부한다고 비판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넓은 자리를 독차지하거나 잡담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부라리지만 않는다면) 부득부득 거기서 공부하겠다는 이들을 흉볼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노량진 스타벅스가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안에는 시험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공간과 그들을 유혹하는 공간의 괴리, 이를 극복하려는 전술들이 있으며, 옆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과정을 서사화하는 언론이 있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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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하자, 대응책으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중단이 아닌 정상 가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인고도 모르는 채 그 후에도 2차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3차 핵실험, 4차 핵실험 등 꾸준히 남북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서 ‘북핵의 지렛대’가 되어 최소인원 체류, 잠정 중단, 재가동 등을 반복하다가 2016년 2월 ‘전면 중단’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전면 중단의 사유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이 북한 핵개발 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확신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처 보지 못한 개성공단의 진면목이 있다.

개성공단의 공장구역은 우리나라 산업단지 총면적에서 2%가 채 안되고, 입주기업 125개사가 점유한 면적 비중은 1%에도 이르지 않는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남과 북에서 개성공단만큼 내실 있는 알짜배기가 없다. 개성공단은 60대 1의 높은 입주경쟁률을 보였다. 개성공단 첫 생산품인 통일냄비는 세계 명품들도 매장을 잡기 어렵다는 유명 백화점에서 단 하루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또한 단기간에 이룬 높은 공장 가동률과 생산량 증가세 등은 기존 산업단지와 비교할 수 없는 혁혁한 성과였다.

개성공단은 해외생산지에 대한 입지 대안으로서 우리 기업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 임금수준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생산지로부터 본국회귀(리쇼어링)를 결정한 기업들이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대상 업종의 미래 확장성도 높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형 업종, 즉 섬유, 가죽제품, 전기부품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울로부터 60㎞ 떨어진 수도권 지역의 대규모 개성공단 공간은 어떤 산업의 입지조건으로도 매력적이다. 미래 4차 산업시대에서도 삼성동 테헤란밸리, 여의도 금융센터 등과 연계해 생산 테스트베드 및 지원서비스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산업단지의 리모델링은 수시로 일어난다. 과거의 구로공단이 현재의 구로디지털단지가 된 것처럼, 또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처럼 향후에 개성공단 내에 삼성전자 개성사업장이 들어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순수 산업입지로서도 독립적 경제성을 지닌 최고 투자프로젝트라는 것이 개성공단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북한에서 남북협력 경제특구의 성과는 남한에서보다 훨씬 혁혁하다. 남측에서 개성공단 중단의 빌미가 될 정도로 경제적 측면에서 외화가득 성과도 쏠쏠했지만 정치적으로도 3대에 걸친 선대의 유훈사업을 존중하고 계승해나가는 어린 지도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특구이자 남한의 특구이다. 지리적으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지역에 위치하며 북한 법치의 특구이지만 기반시설 건설의 투자 주체나 생산활동은 남한의 기업가와 경제인이 담당한다. 북한특구의 성공 자체가 남한의 성공인 것은 개성공단이 가진 이와 같은 독특한 속성에 기인한다.

개성공단 폐쇄는 비단 기업가뿐 아니라 남과 북의 근로자 개인에게 너무 큰 피해를 입혔다. 그들의 일상을 없앤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등등 많은 일들이 개성공단 가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영위됐다. 남한에서 한때 볼 수 있었던, 종로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기 위해 줄지어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광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 시내에서 공단까지 이동수단으로 운행됐던 순환버스들은 공단 내에 방치됐다. 멈춰버린 통근버스처럼, 방치된 순환버스처럼 남과 북 근로자의 삶도 멈추고 버려져서는 안된다.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번쯤 다루어봄직한 주제이다.

<임성훈 |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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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원 3명이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을 쓰고 추천 수를 올렸다는 이른바 댓글조작 사건이 정치쟁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17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기사에 달린 정부 비판성 댓글에 반복적으로 ‘공감’을 클릭해 추천 순위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같은 명령을 반복 수행)을 사용해 ‘문체부 청와대 여당 다 실수하는 거다, 국민들 뿔났다’ ‘땀 흘린 선수들이 무슨 죄냐’는 댓글의 공감 수치를 올렸다고 한다. 여기에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과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을 통해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까지 새롭게 알려져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 의원은 “(이들이) 대선 때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하더니 뒤늦게 무리한 대가를 요구했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감을 품고 악의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면 보수세력이 쓴 것처럼 꾸며질 수 있는 것인지, 보수세력처럼 보인들 그로부터 얻는 게 무엇인지 범행동기부터 의문이다. 또 이들이 일했다는 출판사는 파주출판단지에 8~9년 전 입주했지만 책은 한 권도 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동안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자금은 어디서 나왔으며 배후는 있는지, 이번 범행으로 무슨 이익을 약속받았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다. 이러니 댓글조작 사건의 배후에 정치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청탁 거절에 앙심을 품은 행동이란 분석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악플 수준을 넘어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댓글에 공감, 비공감을 표시하는 장치는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효과도 있지만,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의도적인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악의적인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엔 확실히 뿌리뽑아야 한다.

경찰은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이제 검찰은 이번 사건의 배후 등 진상을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댓글조작을 통해 여론을 왜곡하려는 생각은 꿈도 못 꾸게 해야 한다. 여당이 관련된 일이라고 해서 어영부영 넘어가선 안된다. 야당도 무슨 호재라도 잡은 양 당파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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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4주기를 맞는다. 4년 전 그날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배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고,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탑승객 등 304명이 영영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는 추모객들이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치고, 사람들은 가방과 휴대전화 등에 노란리본을 달고 있다. 완전한 사고수습과 진상규명, 아직 돌아오지 못한 5명의 귀환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희구하는 마음이 리본에 깃들어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자메시지는 109만건이 넘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미안한 생각에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난 12일 개봉된 세월호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는 4일 만에 15만명 넘게 관람했다. 사람들은 4년 전과 다름없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지난 4년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사고수습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3년 가까이 누워 있던 세월호는 참사 1091일 만인 지난해 4월11일 목포 신항부두로 옮겨졌다. 단원고 고창석 교사와 조은화·허다윤 학생, 이영숙씨 유해가 수습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세월호의 선체 직립(直立)작업이 내달 말 이뤄지면 기관실 등에 대한 마지막 수색작업이 가능해진다. 참사 이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과 청해진해운 직원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재난 관리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정부 인사의 잘못은 뒤늦게나마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조지시가 골든타임인 오전 10시17분을 넘겨 이뤄진 사실도 얼마 전에야 확인됐다. 지난달 출범한 ‘2기 특조위’는 의구심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침몰과 늑장구조 원인을 밝혀내는 데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세월호가 남긴 과제, ‘안전한 대한민국’의 염원은 과연 이뤄지고 있는가. 기억과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지난해 말 15명이 숨진 영흥도 해상 선박충돌 사고, 29명이 사망한 제천 화재, 끊이지 않는 건설현장 안전사고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며 생명의 존엄함을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명과 안전이 가장 고귀한 기본권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책무는 살아남은 우리에게 있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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