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언젠가 이 나라가 망한다면 나는 그 이유가 언론 때문일 거라 확신한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이 나라가 망한다면 그 과정은 커다란 배가 침몰하는 풍경과 흡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하던 그 배의 마지막 언론… 그러니까 선내 안내방송을 우리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나는 이 나라의 언론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기레기’라는 명사는 그때 한국 언론이 보여준 비굴함과 역겨움의 마땅한 부산물이자, 역사적 기록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명사의 탄생이 늦었을 뿐 기레기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아니, 애초부터 한국의 언론은 왜곡되고 뒤틀린 현대사의 공범이자 앞잡이였다. 국가수반이 야반도주하고 한강인도교를 폭파해버린 1950년 서울에는 ‘안심하고 민생에 전념하라’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고,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도 언론은 침묵했다. 숱한 간첩조작사건은 정부의 지침 그대로 발표되었고 진짜 기자, 진짜 언론인들은 해직되어 투옥을 당하거나 고문당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언론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 나라는 권력과 돈의 잡새 철새 기레기들의 서식지였다. 허문도라는 이름도 떠오른다. 언론통폐합이란 전대미문의 언론학살극도 그래서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굴한 것들이 살아남아 예컨대 ‘땡전 뉴스’ 같은 걸 만들었다. 매일 만들었다. 하도 열심히 만들어서 또 예컨대 ‘참 잘했어요’ 같은 소릴 들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마에 콩콩 도장도 받았을 것이다. 진급을 하고 상전이 되면서 그 비굴한 것들이 또 자신의 하수인을 키웠을 것이다. 족보도 생기고 파벌도 생겼을 것이다. 비굴한 것들이 또 동기간 정은 많아 서로의 치부와 약점은 절대로 들추지 아니했다. 누가 떠들면 매장하고 여론을 갖고 노는 게 일도 아니었다. 보수연 진보연 해대며 정적(政敵)은 있어도 언론의 적은 없어 이보다 좋은 장사가 세상에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 비굴한 것들이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게 된 상황…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코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다. 오랜 세월 정경과 유착하여 만들어 온 대한민국, 자체가 그들의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44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외쳤던 동아투위 해직언론인들의 삶은, 그래서 마치 해방 후 이 땅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다. 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113명의 언론인들은 결국 복직하지 못했고, 투옥과 고문후유증, 생활고 등에 시달리며 빛나는, 그러나 쓸쓸한 생을 마감 중이다. 언젠가 동아투위의 중심이셨던 성유보 선생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작고하시기 얼마 전이었으므로 내겐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인터뷰였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독재가 스스로 물러가지 않듯, 언론도 절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오직 깨어 있는 시민의 힘만이 이를 바꿀 수 있다’고도 말했다. 

40년이 지나도록 끝내 복직하지 못한 진짜 기자의 이 말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우리에게 일러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겨우 정권을 바꿨을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을 우리는 얻었을 뿐, 기레기 울어예는 하늘이 구만리다.

별 희한한 일들이 다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 갑자기 큰 이슈들은 사라지고 느닷없는 프레임이 뉴스를 지배한다거나, 죽기 직전 노망난 늙은이의 벽에 똥칠 같은 뉴스들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10년의 모진 세월을 보내면서, 하지만 시민들도 너무 많은 경험치를 쌓아버렸다.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맘대로 해라. 그 하늘이 장장 구만리라 해도 어느날 어느 순간, 이제 시민들이 기레기 전원을 구조했다는 오보를 트윗으로 날려주겠다. 11시까지 잠 푹 자고 일어나 날려주겠다. 다시 4월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누구도 언론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언론을 찾고, 판단하고, 구할 것이다. 이들이 찾은 언론만이 언론이 될 것이고 뭐, 그게 아니라도 전원 구조 되겠지 뭐.

사실 기레기는 성립될 수 없는 명사이다. 기자라는 명사는 기레기와 가장 거리가 먼 위대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보다 진실을 말하자면 기자의 가장 큰 적이 기레기였고, 기레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기자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비 기자 척결’이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기레기 언론 환경 속에서 끝끝내 자신의 펜을 지키고 있는 진짜 기자들일 것이다.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을 기레기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간 오직 기자들만이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것까지가 성유보 선생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힘과, 진짜 기자들의 힘이 만나는 그 순간이 이 나라의 언론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것이 44년 전 우리가 단 한 사람도 지켜주지 못했던 113명의 언론인들에 대한 역사적 보답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비로소 우리의 언론을 가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판단하기 바란다.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그리고 식별하기 바란다. 누가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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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족이라고 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된 대가족이었다. 집안이 항상 가족들로 북적거려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나는 집에 오면 혼자이다. 언니들이 혼자 사는 장애인 동생을 위해 안부를 묻는 일도 스마트폰이 생기자 전화 대신 카톡으로 바뀌었다. ‘별일 없지?’라고 물으면 ‘그럼’이라고 짧게 대답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미소 이모티콘을 날린다.

이 변화가 어찌 나 혼자에게만 일어났으랴. 요즘 우리 사회는 가족이 있어도 학교나 직장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1인 가정이 많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인 가구가 주된 가구유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라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혼자 하는 생활 패턴이 우리 사회의 경제와 문화를 바꾸어가고 있다.

1인 가구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젊은 층으로 이유 있는 혼족이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독거노인, 독거장애인으로 원치 않게 버려져서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린 혼족이다. 사람들은 독거노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독거노인 가운데에는 한때 중산층으로 멋지게 살았던 분들이 많다.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일을 놓고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며 노년을 편안히 보냈으나 베이비붐 시대 사람들은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큰 재산을 모았지만 그것을 자식들에게 몽땅 물려주고 노년에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를 모시기 어려워진 사회 변화 속에서 독거노인으로 전락한 노인층은 온갖 회한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OECD 국가 가운데 노인자살률 1위라는 가슴 아픈 결과를 낳았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로 몇 달 후에야 죽음이 발견되고 가족과 연결이 되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 처리가 되어 뼛가루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혼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가족과 가족이 살고 있는 가정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가족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공부를 조금 못해서 또는 성격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사회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고, 건강이 나빠서 혹은 장애를 갖고 있어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가족도 있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다 찾아오는 노화로 노인이 된 가족도 있는데 이런 가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끼리 지지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정부의 사회복지제도이다. 가족 단위의 사회적 지원으로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그들이 버림받지 않고 가족이 있는 가정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모든 사회문제는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는 가정의 해체를 부추기고 있다. 국민생활기초수급자가 되려면 부양가족이 없어야 한다. 있어도 서로 연락이 단절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돌봐주는 활동보조서비스제도도 가족은 활동보조인이 될 수 없다. 독거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더 많이 지원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혼자 살아야 한다.

이렇듯 독거생활이 지원 조건이 되자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1인 가구가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가족들과 멀어져 진짜 고독한 독거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독거 상태의 노인이나 장애인을 지역사회 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한두 명이 보살핀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가족이 돌봐줄 수 있도록 사회복지서비스제도가 가족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우리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것이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어려울수록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수록 떨쳐버린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돌봄서비스 비용을 가족에게 지급해서 가정이 직장이 되게 한다면 우리 가정이 좀 더 가정다워지지 않을까 싶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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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스포츠 문화는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으로 청년들이 어울려’ 같이 낭만적으로 서술된다.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라 해도 시민/노동자에 의한 새로운 도시 문화의 형성과 그에 따른 집합적 정서의 강렬한 표출이 여러 도시에서 전개되었다.

북방의 대표적인 항만, 무역, 공업 도시 원산. 이곳에서는 1897년에 6홀 규모의 골프가 시작되었고 그 하늘 위로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1926년 11월18일자 신문을 보면 폭우로 경기가 취소된 줄 모르고 관중들이 ‘우중에 장시간을’ 기다렸으나 주최 측은 ‘하등의 일언반구도 끗(끝)까지 막연’하여 결국 관중들은 원산체육회를 항의 방문까지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항 이후 항만, 정미, 목재, 연초, 제분, 철강 등 근대적인 산업 도시로 탈바꿈한 인천에서 1920년대에 인배회, 율목리팀 같은 자생적 ‘클럽’이 생겨나고 이들이 제물포고교 자리였던 웃터골에서 매해 ‘전인천 축구대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압권은 역시 경평전이다. 경성과 평양은 근세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왔다. 청나라를 통해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대륙 기질의 평양과 한반도의 중심 거점 도시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경성은 축구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경성에는 조선축구단과 경성축구단이 있었다. 1918년 창단되었다가 재정난으로 해산한 불교청년회 팀을 1925년에 재규합한 조선축구단은 경성의 휘문의숙에서 수학하던 통도사와 해인사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공격축구를 전개했다. 이 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일본이나 중국 원정까지 다녔다. 1933년에 창단한 경성축구단은 연희전문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축구단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평양에는 1918년 무오년에 창단했다 하여 ‘무오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였다가 1933년에 재편된 ‘평양축구단’이 있었다. 대성학교, 숭실중학, 숭실전문 출신들의 역사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축구 문화가 활성화되던 때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동래축구단은 김해, 밀양, 마산 등을 돌며 순회 경기도 가졌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대륙을 향한 전쟁을 도모하던 일제는 그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조선의 주요 도시에 사람들이 운집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1931년 11월 함경남도 안변에서 개최 예정이던 축구대회도 시국 불안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1931년 경평전 또한 일제는 대회 자체를 ‘불온’하다고 규정하고 홍보 작업을 한 평양의 구두 공장 노동자 전영택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엄중한 취조를’ 하고 구류를 살게 했다.

그럼에도 이 시절에, 요즘의 프로 축구와 같은 특징이 이미 장착되었다. 지역 연고가 뚜렷했으며 스카우트 경쟁도 벌어졌다. 경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식은 1940년대에 평양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서울 팀에서 뛰다가 평양의 어느 팀으로 소속이 바뀐 셈인데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70년 가까이 지속된 ‘분단 체제’는, 오래전 경성 선수가 평양 선수로 이적하여 뛰었다는 사실조차 쉽게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29년을 전후로 하여 수년 동안 전개된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및 ‘정기전’이라는 요소, 즉 단지 ‘식민지 청년들의 울분’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현대 도시의 프로 스포츠 문화’라는 특징을 충분히 실현해 가고 있었다.

1933년 4월,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에서 3회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여 명이 몰렸다. 이때부터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를 전제로 한 라이벌전 성격을 갖게 된다. 당시 신문은 ‘제바닥’(홈) 경성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원래’(遠來·어웨이)의 평양이 이길 것인가라고 썼다. 해방 직후의 시대적인 혼란과 열기는, 1946년 서울에서 열린 경평전을 격렬한 혼란과 열기로 휩싸이게 하였다. 관중 난동이 발생하고 경찰은 공포탄까지 쐈다.

그리고 수십 년이 그냥 흘러버렸다. 1990년 가을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고 2002년 가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으나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다. 이런 이벤트는, 현대 도시의 집합적 열기가 서려 있는 격렬한 축구 정기전이라는 ‘경평전’의 역사성을 잇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상상’이라서 우울하지만 ‘상상’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하여 남한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북한은 체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오가는 거리면서도 ‘상상력의 완전한 고립’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쨌거나 평화 체제의 구축을 향한 발걸음이다. 여러 측면의 남북 교류가 예상되며 그중 첫번째는 역시 스포츠 교류다.

이럴 때에 ‘경평전’의 부활은 의미가 있다.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한반도를 살짝 흔들어대는 문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두 도시가 다시 ‘경평전’으로 서로 왕래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회적인 이벤트로 시작하겠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일회적인 이벤트는 대체로 싱겁다. 공 하나로 짐짓 으르렁대면서도 다 함께 함성을 지르는 풍경이 벌어져야 된다. 그저 우애와 친선의 한마당이 아니라 일단 휘슬이 불리면 이기고 봐야 하는 ‘홈 앤드 어웨이’의 각축전이 펼쳐져야 한다.

경기는 격렬할수록 아름답다. 강슛으로 골이 터지면 미안해할 거 없다. 끝난 후 서로 안으면 된다. 심한 몸싸움으로 넘어지면 가서 일으켜주면 된다. 축구는 축구답게! 그럴수록 다음 경기, 홈 앤드 어웨이가 기다려진다.

이렇게, 중앙정부 차원이든 서울시 차원이든, 살아 펄펄 뛰는 ‘경평전’의 부활을 기필코 이뤄내기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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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의 빛나는 명문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은 법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이를 협의로 구현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조차도 지난한 변태와 확장의 과정을 달려오고 있다.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30년.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의 손으로 선출했던 무능한 지도자를 광장의 정치를 통해 끌어내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엉망진창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지, 아득하고 또 숨이 가쁘다.

그러나 달려갈 곳이 있다는 이 숨가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한편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민주주의는 과정이라 할 만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초창기 ‘1인 1표’의 원칙에서 그 ‘1인’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백인 남성에 국한되어 있었다.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국민의 의미가 계급과 인종, 성별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그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오직 그들만이 ‘인간’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가장 협소하게 민주주의가 실천되던 시대에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그 ‘인간’의 경계를 확장시켜온 것이 노동자 투쟁, 페미니즘, 흑인 민권운동, 그리고 제3세계의 독립운동 등이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역사 굽이굽이마다의 사건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는 2018년 4월16일의 아침. 또 하나의 혁명이 이 땅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이라는 허구적 기준을 철폐하려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8년 3월22일, 국회 앞.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삭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에서 청소년들은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뿐만 아니라 일터, 학교, 가정 등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존중받고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참정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싸움의 의미를 세월호 4주기와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 보자고 요청하는 것은,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때 청소년들은 역설적으로 계속해서 열악한 삶의 조건과 위험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사회’를 살고 있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현대인은 문명이 초래하는 위험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인재는 위험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에서 위험은 평등하게 닥쳐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은 권력과 자원이 분배되는 위계와 질서에 따라 분배된다. 한국 사회의 대형 참사에서 유독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피해자가 많은 이유를 숙고하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 한번 평등하지 않다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안전은 동등한 시민권의 다른 말이기도 한 셈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조건 중의 하나다. 물론 역사적으로 참정권 운동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동등한 권리의 획득만으로 갑자기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100년 전에 참정권을 쟁취했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동등한 권리의 획득은 그 과정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혁명이 하나의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또 한번 민주주의가 힘겹게 스스로의 경계를 밀어내고 조금 더 커진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확장된 민주주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청소년들에게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리라 믿는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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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는 나쁜 놈들의 세계다. 존재하는 것은 온통 나쁜 입시들일 뿐, 착한 입시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핵심요소는 무엇일까. 내신(학생부교과), 수능, 논술고사, 구술면접고사, 학생부비교과 등을 꼽는 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하나같이 나쁜 입시들이다.

내신은 경쟁의 성격이 매우 잔인한 입시다. 경쟁의 대상자가 오로지 학교 친구들이다. 또 주입식 암기식 공부를 유발하는 정도가 매우 심한 입시다. 수능은 전국의 학생을 단일한 시험으로 줄 세우는 획일적 입시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지 못하는 선다형 객관식 시험이다. 문제풀이 학습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입시다. 논술고사와 구술면접고사는 학교수업과의 괴리가 매우 큰 입시다. 학교수업과 크게 동떨어져 사교육을 유발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입시불평등을 가장 크게 심화시키는 입시다. 학생부비교과는 오랫동안 입시의 희생양이었지만 입시의 영역으로 들어온 후엔 교육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그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입시로서의 비교과는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에게 끝없이 위선과 거짓을 강요한다. 또 부모와 학교가 입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교사가 학생의 조력자 역할을 넘어 학생과 함께 뛰는 선수 역할을 한다.

이 나쁜 입시들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가? 지극히 선한 태도로만 일관해 왔다. 나쁜 입시들의 영향력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했다. 내신은 5등급 절대평가를 검토하고 있다. 대선공약은 아니지만 내신 절대평가제가 고교학점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필수요소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수능은 전 과목 9등급 절대평가제가 유력하다. 전 과목 수능 절대평가제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다. 논술고사와 구술면접고사는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논술고사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그리고 구술면접고사는 논술고사와 유사한 성격의 대학별고사다. 논술고사를 폐지해야 한다면 구술면접고사 또한 폐지해야 마땅하다. 비교과는 항목과 분량의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비교과 중 객관성이 그나마 뛰어나고 입시변별력이 큰 수상 항목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하나하나를 따로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교육부는 박수받을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밀어붙이면? 불가능하다. 그래도 강력히 밀어붙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무질서’라는 새로운 문제가 추가될 뿐이다. 입시 무정부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뿐이다.

우리는 나쁜 입시들 중 그 어떤 것(들)에는 반드시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무엇에 내밀어야 할까? 모든 상황을 고려하되 그 결단을 냉혹하게 내리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지난 11일 교육부가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했다.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지나치게 많은 것을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기고 말았다. 프로인 교육부가 결정 못한 것을 아마추어에 불과한 국가교육회의가 제대로 결정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입시정책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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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놓은 길고양이 사료를 비둘기들이 연신 쪼아 먹길래 후여 쫓았더니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가 안 가고 기회만 엿보더군요. 그 굵은 목에 내리깔듯 쳐다보는 모습이 꽤나 거만해 보였습니다. 제가 가면 분명 다시 내려와 눈알 굴리며 굽실굽실 목 흔들고 먹을거리로 다가가겠지요. 흔히 다른 것에 정신 팔려 정작 이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은 건성으로 할 때 하는 말이 ‘마음이 콩밭에 있다’입니다. 이것은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을 줄여서 말하는 것인데, 이 속담도 사실 줄어든 것입니다. 원래는 ‘비둘기 몸은 나무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있다’입니다. 비둘기란 녀석은 유독 다른 새들보다 콩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콩밭을 망쳐놓는 것은 물론이고 갓 파종한 콩알도 귀신같이 파헤쳐 찾아먹습니다.

콩 맛을 안 비둘기라면 가지에 앉아 자나 깨나 콩 생각밖에 안 날 겁니다. 사람 역시 재미 하나에 빠져들면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고스톱에 빠져들면 닭 한 마리만 봐도 자기도 모르게 ‘똥광’을 떠올리고(사실은 닭이 아니라 봉황과 (벽)오동나무입니다), 당구에 처음 재미 들리면 강의실 녹색 칠판이, 누워서 천장이 온통 당구대로 보이며 머릿속에서 저절로 큐대 각도 재듯 말입니다.

각기 다른 기사로 뜬 두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진에서는 ‘도와주십시오’ 팻말을 건 후보가 굽실굽실 불쌍한 표정을 짓고, 얼마 뒤 기사 사진에서는 당선 국회의원이 처우개선 좀 해달라 팔 붙든 청소노동자이자 국민에게 목 빳빳이 세우고 눈 내리깔며 ‘감히!’라는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요. 높이 앉은 비둘기가 저 아래 콩알에만 정신 팔렸듯, 국회의원 후보 중에는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삶보다는 금배지가 주는 권력과 돈이란 콩 맛에만 빠진 이도 있을 것입니다. 고고하게 높이 앉아 주워 먹을 콩만 살피는 ‘닭둘기’ 눈에는 저 높은 이상보단 그저 바닥의 콩알만 눈에 들어오겠죠.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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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1995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 국제청년행사였다. 한국대학생 20여명이 초청됐는데 운좋게 거기에 포함됐다. 우리 일행은 행사참여를 위해 자카르타에서 지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비자를 분실했다. 아마도 날치기를 당했던 모양이다. 다른 일행들은 떠나고 룸메이트였던 내가 그와 함께 남았다. 그런데 뭘 아나. 낯선 이국땅. 첫 해외여행.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무슨 일이 있나?”

경상도 사투리가 진했던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자카르타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우리가 쩔쩔매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걱정하지 마라, 한국 대사관 가서 얘기하면 새 비자 금방 내줄끼다. 니들 돈없재?” 그는 택시를 잡은 뒤 불쑥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건네줬다. 당시 돈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연락처 가르쳐 주시면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자 그는 “씰데없는 소리 한다”며 택시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호의가 너무 고마워서였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어른’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아파트에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건’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붙었다. 서울시가 짓는 청년임대주택을 이들은 ‘빈민아파트’라 불렀다. 들리는 얘기로 주민의 70%가량이 여기에 동의한단다.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 들어서는 청년임대주택도 반대가 심하다. 주민들은 여러 이유를 댄다. 지반이 약하고, 교통혼잡이 우려되고, 원래 다른 용도로 쓸 땅이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속내는 ‘집값’ 아닌가.

서울시내 17평짜리 방 두 개 빌라 전세가 2억원이 넘는다. 지방 아파트 한 채 가격이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청년이 이런 돈이 있을 리 없다. 이들이 빈민인가.

대구 경북대 인근에는 ‘경북대기숙사건립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경북대가 짓고 있는 재학생 기숙사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인근에 원룸 공실이 4000여실에 달하는데 민자기숙사가 건립되면 공실이 6000~7000개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근주민의 생계를 무시하고 대형건설사 배만 불리는 기숙사’라는 게 이들의 반대 이유지만 역시 진짜 이유는 아니다. 서울의 한양대, 고려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 서울시내 대학가 원룸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1378만원에 월세 49만원에 달했다. 청년이 돈주머니인가.

강원 양구, 경기 연천 등 접경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 위수지역 폐지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장병들이 외출·외박 때 위수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상권이 죽는단다. 병사들과 부모들은 “위수지역 내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불만이다. 택시비도, PC방 이용료도 서울보다 비싸다고 장병들은 주장한다. 나라 지키러 군에 간 청년장병들이 봉인가.

이 정도면 어른들의 ‘갑질’이라 부를 만하다. 내 재산권, 내 생존권을 위해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겠다는 것 아닌가. 부끄럽고, 참담하다. 따지고 보면 내 아들이거나 한 다리 건너 내 조카일 텐데 말이다. 자기욕심만 채우는 어른들이 존경을 받을 리 없다. 기초연금 증액은 찬성하면서 청년수당 도입은 반대한다. 젊음이 죄인가.

하지만 반전이 있다. 20년쯤 뒤 노인이 된 지금의 기성세대는 결국 지금의 청년들에게 기대야 한다. 그때 가서 ‘우리 좀 부양하라’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설사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할 수도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지금 갈라 버린다면 말이다. 청년을 윽박지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단언컨대 시간은 기성세대의 편이 아니다. 청년의 편이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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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유리식탁에서 1식3찬의 아침을 받는다. 보리를 섞은 쌀밥, 된장을 푼 쑥국에 무깍두기, 머위나물 그리고 고등어 한 토막. 보름달 같은 접시에 골고루 담긴 것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고 먹는다면,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혀가 제대로 맛을 알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 행위를 거룩한 식사(食事)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젓가락 왕복운동과 어금니 저작운동이 연속되는 행동(行動)에 불과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식이라 고향으로 향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주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드니 느낌이 달라진다. 벚나무 가로수가 내 속도에 맞추어 다투어 피어나는 건 아닐 테지만 구천동 지나 덕유산 빼재터널을 지나면서 거창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아예 꽃터널인 곳도 있다. 벚꽃구경 하겠다고 여의도 갈 게 아니네요! 큰형수님이 한마디 던지는데 벌써 오무마을 동청이다. 농사가 아직 본격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시골내음을 흠씬 들이마셨다. 사과향도 조금 섞인 듯 달콤한 벚나무 꽃공기!

비 부슬부슬 내릴 때의 산소는 그 어딘가로 연결되는 장소이다. 무덤은 식물과 곤충들에게도 명당이다. 그늘 하나 없고 통풍과 배수가 잘된다. 또한 물은 이렇게 직방으로 들이쳐 공급된다. 양지꽃, 민들레가 잔디 사이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쉽게도 할미꽃은 없다. 그간 잘 계셨나요? 어머니 보내신 고들빼기, 뽀리뱅이가 무덤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아버지 따라주시는 첨잔인가. 음복하는 제주(祭酒)에 빗물이 섞인다. 두 해 전 꽂아둔 개나리가 이제는 대가족이 되었다. 눈으로 왕창 들어오는 노란 개나리.

외가로 가는 길에 폐교된 지 오래된 허전한 공터에 잠깐 차를 세웠다. 부산으로 전학 가기 전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우람했던 플라타너스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운동장에서 반짝거리던 모래들은 힘을 잃었다. 겨우 발등 높이의 풀이 심심하게 놀고 있다. 애기똥풀, 뚝새풀, 고깔제비꽃. 학교는 없어져도 이름은 남는다. 완대초등학교. 돌담 바깥으로 축축 늘어져 텅 빈 완행버스를 물끄러미 배웅하는 개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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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엔 수도였다. 교민이 많다보니 한국총영사관도 일본에서 가장 크고, 총영사 자리를 두고 이따금 구설이 일었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의 ‘보은인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로 물러난 데 대해 보상 차원에서 자리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재임 8개월 만에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후임도 정해지기 전에 귀국해 또다시 비판여론의 당사자가 됐다.

해외공관장 자리를 정권 창출의 보상수단으로 삼지 않은 정권은 거의 없다. 박근혜 정권 때의 전대주 베트남 대사는 교민에게 “내가 왜 여기 대사로 임명됐는지 나도 의아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전 전 대사는 최순실씨 조카의 베트남 유치원 사업을 도와준 인물로 알려졌다. 압권은 이명박 정부였다. 정권 교체 후 1기 재외 공관장 인사에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5명을 포함시켰다.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댓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 가운데 미국 시민권자도 있었다. 이웅길 미국 애틀랜타 총영사 내정자는 내정 직후에야 국적회복 절차를 밟다가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선거캠프 해외팀장 출신으로 LA총영사가 된 김재수씨는 이 전 대통령의 회사로 드러난 다스가 BBK에 투자한 140억원을 돌려받는 데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그를 총영사로 임명한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는 관측이 나왔다.

오사카 총영사가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댓글조작으로 구속된 김모씨(필명 드루킹)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오사카 총영사 인사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 운영자인 김씨는 일본이 침몰할 것이며, 자신이 오사카 총영사로 부임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황당한 믿음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일본 침몰 시 일본 피난민들을 개성공단에 이주시켜야 하며 그 일을 자신과 카페 회원이 주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야당에서는 김씨가 문재인 정권 창출에 어떤 공을 세웠기에 그 같은 청탁을 할 수 있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이 정부에서도 오사카 총영사를 둘러싼 보은인사 논란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꺼림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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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몇 안되는 비서구 국가들 중 하나다. 비록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기는 해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한국만큼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오용되고 있는 나라도 없는 듯하다. 정치권과 공론장에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무슨 블랙코미디 같다. 약속했던 개헌 논의를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해 오던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자 ‘사회주의’ 개헌안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요란을 떨고, 온갖 추악한 비리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사법적 징치가 자유민주주의를 와해시키려는 정치공작이라고 선동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해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란 그 핵심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하며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민주적 정치체제다. 우리나라에서 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불완전하나마 꽃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부독재에 뿌리를 둔 지금의 한국당 세력은 민주화 이후 늘 우리 정치체제의 자유민주주의적 성격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데 골몰해 왔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그랬다. 끊임없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들이대며 민주주의를 일그러트렸고, 용산참사, 국정원 댓글 공작, 역사교과서 국정화,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하나같이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짓밟는 정치를 일삼았았다. 최근 한국당이 지배하는 충남도의회는 인권조례를 폐기하는 정치적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단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적반하장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숱한 적폐를 낳았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정치적 핵심 특성이다. 우리 헌법에 처음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은 유신헌법에서였다.

애초 이 문구는 독일 기본법(헌법)이 나치 같은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한다는 차원에서 독일의 항구적이고 기본적인 정치적 토대와 원리를 나타내려 도입한 “자유롭고(free)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표현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흔히 이해하듯 사유재산권 보호에 초점을 둔 자유주의적(liberal) 민주주의가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둔 민주적 법치질서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유신헌법 정초자들은 그 기본 정신을 정반대로 뒤집고 표현을 살짝 비틀어 그것이 박정희의 종신 집권을 보장한 독재 체제를 의미하도록 만들고선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며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 거대한 정치적 사기에 놀아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블랙코미디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이 개념에 대한 우리 진보개혁 세력의 태도다. 좁은 의미의 진보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민주당 계열에서도 무슨 이유인지 이 개념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색깔론에 시달려서일까? 이념적 정체성이 진짜 불분명해서일까? 일각에서는 아예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규정에서 ‘자유’를 빼려는 어설픈 시도를 하다 더 심한 이념 공세의 빌미를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과 가치가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의 정치체제로서 근대 이후 전 세계에서 민주공화국이 발전해 온 정치 동학의 어떤 필연적 결과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든 시민의 평등한 존엄성을 실현하려는 열망과 실천이 기본권의 확대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시민들의 민주적 실천의 가능성과 공간을 더 굳건히 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형식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굳이 특정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 특히 지난 촛불혁명만을 잘 반추해 보면 그러한 과정의 필연성과 의미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보는 자유민주주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니, 다름 아닌 진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옹호자를 상징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사기꾼들이 찬탈했던 자유민주주의를 구해내었지만, 아직은 상처투성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한반도의 봄은 분단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 땅에 비로소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우는 게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실현하려면 먼저 툭하면 철 지난 색깔론을 펴는 보수진영의 엉터리 공세부터 단호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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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나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이고 선천적인 요인들로 인해 우리 삶의 큰 줄기가 결정된다. 매 학기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역사 속의 나’라는 주제로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이 과제가 아니라 부탁인 이유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자 누군가의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제가 아니기에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생애를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반추한 짤막한 글을 제출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하나씩 읽고 이들을 학번 대신 존재로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힘겨웠을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대부분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났다. 어떤 학생은 국가 경제 붕괴로 가족이 해체되는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 배 속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누군가는 부채 때문에 갈라선 부모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압류 딱지의 기억을 토로한다. 이들에게 외환위기가 경제적 고민을 상징한다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역사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생애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는 사건은 2014년 4월16일에 겪은 세월호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을 ‘세월호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한 부모당 한두 명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풍요를 누리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에게는 검소함과 경제감각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알바’라 부르는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그가 자신의 시간을 최초로 팔 수 있었던 곳은 유명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안산의 작은 부품 공장이었다. 2013년 당시 최저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이보다 140원을 더 쳐주어 시간당 5000원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외국인 이주 여성은 그보다 못한 시급이었지만, 해고당할까봐 최저임금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2013년 그는 비굴함을 배웠다고 적었다.

2014년 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최저시급은 350원 올라 5210원이었지만,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자체규정이란 명목으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계산되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하게 하려고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등록 지문만은 정시에 찍도록 했다. 복장 규정에 따라 검은색 구두,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자비로 샀다. 3년이 지나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원이 입금되었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당한 업무규정에 맞서 투쟁한 결과였다.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이었지만, 동네 편의점 사장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주정뱅이 아저씨들의 취미가 여자 알바생 괴롭히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주란 사람은 자신과 데이트해주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준다는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2017년의 최저시급은 6470원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엔 호프집, 주말엔 약국에서 알바를 했고, 성실함을 눈여겨본 교수가 일감을 주어 한 주에 3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붓고, 피곤하여 좋아하는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학생이지만 강의시간엔 졸고, 일터에선 억지로 웃으며 버텨야 했다. 2018년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변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4년, 대한민국은 변했는가? 살아남은 세월호의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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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임기 말 민주당 전·현직 의원의 모임 ‘더좋은미래’에 5000만원을 기부한 행위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유권해석했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관행에 대해서도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지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주 청와대가 김 원장에 대해 질의한 4가지 사항 중 상당 부분에서 위법하거나 위법의 여지가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선관위 해석이 나온 직후 김 원장은 사퇴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김 원장에 대한 검증 책임을 들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겨냥한 야당의 사퇴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머리를 만지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선관위가 김 원장의 임기 말 후원금 기부처리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예상했던 바다. 선관위는 김 원장이 이 돈을 기부하기 전 이미 “종전의 범위 내에서 정치자금으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113조에 위반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선관위의 이번 판단은 당시 해석을 재확인한 것뿐이다. 김 원장이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간 것이나 임기 만료 직전 후원금 보좌관 퇴직금 지급 등은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이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 금감원장의 행위가 ‘위법이거나 관행에 비추어 평균 이하’라면 사임하도록 하겠다며 김 원장의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선관위로 미룬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위공직자의 적격 여부는 선관위에 판단을 맡기기보다 문 대통령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며 발탁 인사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이 역시 임명권자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이번 사건으로 고위 공직자 인선 기준은 시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청와대는 향후 더욱 엄격히 고위공직자를 검증해야 한다. 김 원장에 대해 재검증까지 해가며 문제가 없다고 한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은 무겁다. 김 원장이 선관위 해석을 무시하고 기부를 강행했던 것을 걸러내지 못하고, 피감기관이 후원한 해외출장의 문제점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청와대 검증팀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검증에 허점을 드러냈다. 그동안 대통령의 의중만 살폈지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못하지 않았는지 심각히 자성해야 한다. 정치권도 이번에 드러난 의원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한다. 선관위가 위법 내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만큼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을 금지하는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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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16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지현 검사가 안 전 국장의 성추행과 보복 인사 의혹을 공개적으로 고발한 지 70여일 만이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안 전 국장이 2015년 8월 인사에서 수원지검 여주지청 소속이던 서 검사를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전보한 조치를 ‘부당한 인사권 남용’으로 판단한 것이다. 성추행 혐의는 서 검사가 당시 고소하지 않아 기소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앞서 검찰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13일 회의를 열어 ‘안 전 국장을 재판에 회부하고, 구속영장도 청구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후배검사를 성추행하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26일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오고 있다. 경향신문DB

안 전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뿐이다. 검찰은 서 검사의 폭로 이틀 뒤 전담 조사단을 출범시켰다. 법무부 검찰국을 압수수색해 서 검사 관련 인사자료도 확보했다. 그러나 신병처리 및 기소 여부 결정은 계속 미뤘다. 중요 참고인인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 소환조사에도 실패했다. 결국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이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넘기고서야 결론이 났다. 검찰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제 식구 감싸기’에 미련을 못 버렸던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서 검사의 공개 증언은 한국 사회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본격 점화시켰다. 2016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계_내_성폭력’ 운동이 시작됐으나 사회적 반향은 미약했다. ‘현직 검사의 생방송 인터뷰’라는 전대미문의 고발은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와 정치권, 대학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음모·공작 운운하거나 ‘익명 미투’를 폄훼하는 등의 백래시(backlash·반격)도 이어졌지만 미투의 도도한 물결은 멈추지 않았다. 서 검사의 용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최근 성범죄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 입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거대한 흐름에 호응하는, 사법부의 의미 있는 변화다. 서 검사의 용감한 고발이 법원의 단죄로 이어지고, 차별과 폭력의 고리가 끊기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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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더불어민주당 당원 3명이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을 쓰고 추천 수를 올렸다는 ‘댓글조작’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 온라인 지지활동을 대가로 무리한 인사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조작을 벌인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수사당국은 석연치 않은 점들을 낱낱이 밝혀야겠지만, 한국 사회는 이번 사건을 통해 사이버 여론조작에 대해 경각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인터넷의 보급에 따른 사이버 여론 공간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권력이 시민의 사고를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던 독재체제가 종식되고, 사이버 여론 공간이라는 신세계가 등장함으로써 한국의 사이버 민주주의는 꽃을 피웠다. 소수의 정보제공자가 유리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다수의 수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지배하던 불평등한 상황이 평등한 소통관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 다음 아고라에서 시민들은 평등한 주체로서 참여해 토론하고 숙의하는 공론장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사이버 공론장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에 의해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국정원이 댓글 알바를 동원해 사이버 공간의 토론을 훼손하고 왜곡한 것은 국가권력이 공론장 설립 자체를 막던 독재체제 방식보다 더 음험하고 악랄한 범죄였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해 댓글 알바가 평범한 시민인 양 공론장에 침입해 담론형성을 지속적으로 왜곡함으로써 공론장은 신뢰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사이버 여론이란 으레 조작되게 마련’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이번에 적발된 민주당원들처럼 여론조작을 통해 사익을 취하려는 이들도 나타났다. 홍보대행사가 댓글 순위조작을 기획해 기업에 제안하는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이버 공간은 또다시 여론조작 유혹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상대 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가짜뉴스도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 특정 모임·단체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댓글을 달고 공감을 표시하는 행위는 합법적인 의사표현이지만, 건전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론형성 과정이 신뢰를 잃게 되면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이버 여론조작을 뿌리 뽑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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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