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치는 쇼’라고 한다. 정치의 민낯을 들여다보면 진실은 오간 데 없고 대중을 현혹시키는 각종 쇼가 범람하는 게 사실이다. “쇼”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정치인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인데, 최근 들어 부쩍 “쇼”란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과 문재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정상적인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이루어진 이면에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노골적인 색깔론도 펼쳤다.

납득이 잘 안됐는데 같은 당 내에서 반발이 속출하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5%를 뛰어넘는 것을 봐서는 내 판단이 틀리거나 경도된 것 같지는 않다. 홍 대표의 뇌리에 박혀있는 생각과 자신이 정치행위라고 믿고 실천해 온 일들이 타인의 정치행위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형성했다고 보면 무리일까.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1일 (출처:경향신문DB)

백번 양보해 남북이 합작해 ‘쇼’를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쇼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 <쇼쇼쇼>라는 TV 인기 프로가 있었다. 요즘 말로 초호화 버라이어티 쇼였다. 명사회자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의 재치있는 원맨쇼와 코미디언의 콩트, 그리고 유명가수들의 노래가 어우러진 명품 쇼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시골 장터를 떠돌던 유랑 악극단도 보는 이의 애환을 달랬지만 재미와 파격 면에서 <쇼쇼쇼>와 도저히 비교될 수가 없었다.

두 남북 정상을 비롯, 동행한 이들이 11시간59분 동안 판문점을 무대로 펼친 감동의 드라마를 주말 내내 보고 또 봤다. TV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선의와 환한 기운에 온몸이 가뿐해지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쟁의 위협으로 그동안 얼마나 불안해하며 가슴을 졸였던가. 두 정상이 손잡고 북한 땅을 잠시 넘나드는 장면, 봄 햇살을 받은 연초록을 배경으로 평생의 길동무처럼 도보다리에서 다정하게 앉아 환담하는 파격적인 모습은 역사에 길이 남을 평화의 상징이자 통일에의 염원이 구현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정상의 발길이 닿은 곳곳, 물 흐르듯 이어진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진정성을 멋으로 녹여내려는 정성이 역력했다. 회담장의 그림 한 점, 기념식수에 뿌린 백두·한라의 흙 한 삽, 옥류관 냉면 등은 풍성한 얘깃거리와 함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홍 대표에게는 혹세무민하는 ‘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면 홍 대표의 감성과 판단력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반대편 정치인을 깎아내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거나 속였다면 자신감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주사파 운운하는 색깔론은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지겹고 시골 약장수의 호객행위처럼 신선함이 없다. 홍 대표의 발언은 한마디로 흥겨운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다. 평소 정쟁으로 맞설지라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 분야에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8000만명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사안에 남 말 하듯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자란 점이 있다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지혜를 모으는 경쟁에서 야당이 뒤처져서는 안될 것이다.

비핵화 선언이 실속이 없다는 비판도 그렇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닌 듯하지만 맥락을 보면 일종의 억지다. 비유컨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등교시켰더니 당장 90점 이상을 받아오지 않으면 퇴학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래전 남북 여성들의 만남의 장에 몇 차례 참가한 적이 있다. 인적·물적 교류에 앞서 허심탄회한 소통이 전제돼야 하며 그 소통을 위해선 상호존중과 끈질긴 인내심이 절대적임을 절감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위험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우리 안에서 솟아오른다”고 했다.

화창한 봄날 남북의 두 정상이 평화를 향한 2인3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가을의 결실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난만한 꽃들의 대잔치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한여름의 무더위와 때론 태풍까지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동참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 행렬에서 홍 대표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과 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위장쇼”라고 깎아내리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더 멋진 정치쇼로 경쟁해야 한다. 무조건 폄하하기보다 잘한 것을 가려 칭찬하는 용기가 있을 때 적절한 비판이 더 힘을 갖는 법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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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모습을 두고, 어떤 어르신들은 전쟁도 모르고, 그래서 공산당 무서운 줄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라고 비난하지만 그 무슨 서운한 말씀. 이래봬도 나름 독하게 반공교육 받은 세대다.

소식 없던 옆집 삼촌 나타나면 간첩이니 신고하라고 배운 세대이고, 공산당이 싫어요, 외치며 용감하게 죽어간 이승복 어린이의 용기를 가르침 받은 세대이고, 어느 하루는 길에서 조악한 재질의 인쇄물을 주워 집에 가지고 갔다가 당장 버려야 한다고 화들짝 놀라고 두려워하던 엄마의 눈빛을 본 적 있는, 아, 이게 학교에서 말하던 삐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가 이런 걸 주운 자체가 간첩이고 빨갱이라며 등짝을 얻어맞은 적 있는 세대이고, 무찌르자 공산당, 이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며 해 저무는 운동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무줄놀이를 했던 세대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남학생은 학교 운동장에서 군사훈련 받고, 여학생들은 짝꿍 머리에 하얀 붕대 친친 감는, 전시 간호업무에 관한 교육을 받던 세대이다. 반공글짓기와 표어, 포스터를 그리면서 해마다 어떤 문장이 더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지, 어떤 그림이 혐오를 더 드러낼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세대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그날, 그 오랜 시간 동안 상상 너머 폐쇄된 공간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의 근원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에 더 신기하고 벅찬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개인적으로 반공교육의 상징처럼 여기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해돌이의 대모험>이라는 반공 만화영화다. 주인공 해돌이가 납북된 아버지를 찾으러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참상을 알고 아버지를 구출하는 활약상을 그린 이 만화영화를 모르는 내 또래 세대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해돌이의 대모험>을 금호동에서 응봉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던 현대극장에서 봤다. 극장 앞은 영화를 보러 온 동네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이북동포’를 착취하는 붉은 돼지 수령의 모습에 분노하고, 마침내 우리의 주인공이 적들을 무찌르는 순간 다 함께 환호했는데, 그 환호의 순간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 기억은 오류다. 인터넷에서 <해돌이의 대모험>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면 이 작품은 탈북자들과 북한전문 자문위원의 도움을 받아 유례없는 ‘고증’을 거쳤으며, 실사를 활용해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기록과 더불어 반공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돼지나 늑대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북한군을 그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심지어 아버지를 구출하고 적을 무찌르던 주인공은 (꿈이었던 걸로 밝혀지기는 하지만) 쫓기다 사살당한다. 그런 충격적인 장면을 나는 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흥미로운 건 나뿐 아니라 영화를 기억하는 동세대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여전히 그 만화영화 속 북한의 모습을 붉은 돼지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 번도 그들을 인간으로 배운 적도, 생각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어서 인간의 모습일 때도 인간으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모처럼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것 같지만, 가로막힌 철창 너머로 과감히 모습을 드러낸 상대를 두고, 여전히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정치적으로 말이 많다. 우려의 시선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무려 반세기 넘어 폐쇄된 공간에서 핵과 전쟁으로 협박을 일삼던 이들의 화해를 다 믿고 가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선언을 해도 이행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이행의 과정까지는 숙제가 많다는 것을 그 이행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이제까지 앞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잘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작부터 견제가 아니라 응원과 관심일 것이다. (북한에) 두 번을 속으면 바보고, 세 번을 속으면 공범이라고 말한 정치인이 있다던가. 하지만 그 말은 지난 시간 어렵게 이룬 남북협력관계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에 붙여도 맞는 말 같다. 두 번을 깨면 바보고, 세 번을 깨면 (모처럼의 평화체제를 깨고 싶은 이와) 공범이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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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군 당국이 1일부터 동시에 최전방 지역 확성기 철거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한 데 따른 첫 조치다. 남북 정상은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남북이 이처럼 판문점선언 이행에 흔쾌히 나선 것은 후속 조치를 기대하게 한다.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초소 장병들이 1일 경기 파주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설치돼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동시에 확성기를 철수시킨 것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넘어 양측 간 군축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합의 나흘 만에 반세기 넘게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확성기를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더구나 북한은 이달 중 국제 전문가들과 남한 언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 5일에는 북한이 남한 표준시에 맞추는 조치도 취한다.

북한이 최근 서해·동해 지구 DMZ 남북관리구역을 확대하자고 제의해온 점도 주목된다. DMZ는 정전협정에 따라 무장이 허용되지 않는 지역이지만 실제로는 무기와 장비가 집중 배치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 남북이 지뢰를 제거하고, 감시소초 등을 철수한다면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탈바꿈시키는 일이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수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를 고집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당국이라 해도 전단 살포를 강제로 막기는 어렵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열리고 비핵화를 다룰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 정세를 외면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남북 모두 쓸데없이 상대방을 자극해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이 군사충돌 직전 상황으로 치달았던 과거 사례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려면 비단 당국만이 아니라 민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남북관계 개선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전쟁 위험 해소를 넘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역대 남북 간 합의는 후속 조치 이행과정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더 이상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늦어도 안되고, 서둘러도 안된다. 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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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1일 인터넷판에 “아침신문, 128주년 노동절 기사 꽁꽁 숨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노동절인 이날, 아침에 발행되는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중 1면에 노동절 관련 기사를 실은 곳은 경향신문뿐이라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절을 다룬 “똑같은 일 해도, 그들은 또 해고 1순위”라는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이를 언급하는 것은 경향신문의 ‘노동 감수성’을 과시하려 함이 아니다. 1일자 조간신문들의 1면이 한국 노동의 슬픈 현실을 상징하는 듯해서다.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라는 주제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18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노동절인 1일, 실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여다본다. 삼성의 노조 와해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임원과 협력사 대표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노조 와해 공작인 ‘그린화 작업’을 추진하고, 위장폐업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등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갑질’ 논란을 빚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음료를 뿌리고 유리컵을 던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11월 출범 후 제보받은 직장 내 갑질 가운데 최악의 사례 10가지를 추려 발표했다. 생리휴가를 내면 ‘생리대를 보여달라’ 하고, 전 직원 앞에서 자기 잘못을 말하게 하는 ‘자아비판 인민재판’을 열고, 청소노동자에게 자기 집 청소를 시킨 기막힌 사례들이 줄줄이 공개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세계 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노동이 차별받는 사회, 노동기본권이 짓밟히고 노동자가 쓰다 버리는 물건으로 취급받는 세상을 바로잡자”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모든 성장은 노동자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절규, 대통령의 다짐이 이제 법과 제도로 구현돼야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렵던 혁명적 변화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듯이, 노동자의 슬픈 현실도 혁명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 장시간 노동 해소,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직장 내 성평등 실현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노사정 등 사회경제 주체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문제를 풀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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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돌이켜보면 전국의 학생들이 앞가슴에 쥐를 잡자, 불조심, 원호의 달 따위의 계몽 표어가 적힌 리본을 달아야 했던 시절은 날마다 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쥐약을 나눠줬으며, 쥐꼬리를 많이 가져온 학생에게는 포상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쥐잡기 운동은 한 철이었지만, 쥐를 잡듯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구호는 일 년 열두 달 유효했다. 봄이면 반공 웅변대회를 했고, 수시로 북에서 귀순한 ‘용사’들의 강연을 들어야 했으며, 때때로 북한에서 뿌린 전단(삐라)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때의 아이들 중 하나였던 나는 중학교 때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자꾸 주위를 두리번대는 남자를 간첩으로 확신해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래 지속된 반공 교육의 성과였으므로 포상금에 부풀어 있던 나 자신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내 앞에서 태연하게 자신이 간첩이었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1990년대 말 독일 유학생 부부 간첩 사건, 그 사건은 연일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그 유학생 부부는 독일에 거주하는 간첩과 왕래하면서 진보성향의 한국 잡지를 은밀하게 건넸다고 했다. 그 잡지는 나도 구독하는 잡지였고, 아무나 어디서든 살 수 있었다.

그는 안기부에 끌려가 심문을 받으면서도 영문을 몰랐다고 했다. 고작 잡지 때문이라면 그가 독일에서 친한 사람에게 보여준 건 그 잡지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죄목은 잡지 불법 유통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개월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분단을 빌미로 오랫동안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피해자 중 하나였던 그는 판문점선언이 있던 날 야트막한 콘크리트 분단선 양쪽을 남북 정상이 넘나드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면서 말했다.

“가자, 개마고원으로!”

그러니까 이젠 이런 말을 마음껏 외쳐도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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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간과 몰로치는 지역 엘리트들(정치가, 교수, 건축가 등)이 연합해서 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는 순환 양상을 ‘성장기제(growth machine)’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사실 중견은 중견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거대한 사업들에 몸이 얽혀있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이해관계로 포섭하는 방법은 폭력, 공론 형성의 차단과 함께 국가가 위기를 해소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개발 선호 사상에 함몰되지 말고, 개발을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스스로의 다짐들을, 어쩌면 소위 엘리트 연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장기제’를 위해 외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깝다. 바로 광화문광장 이야기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광장은 현재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직·율곡로를, 새문안로 5길을 확장·활용해서 우회시킨다. 역사광장에는 경복궁의 권위를 상징하는 월대와 해태상을 원위치로 복원한다. 둘째, 시민광장으로 확장·개선되는 광화문광장은 ‘태양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와 연계해 태양광 시설을 입혀 친환경 광장으로 조성한다. 셋째, 10차로인 세종대로와 사직·율곡로 일부 구간은 6차로로 축소하며 2021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2009년 8월1일에 완공된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선택’이었다. 2006년 10월 당시 서울시가 광장 조성 장소에 대해 시민, 인터넷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시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579명 중 절반에 가까운 2660명이 “중앙배치안이 좋다”고 답변했다. 현 광화문광장은 시민에 의해 일구어진 촛불집회가 열렸던 ‘기억의 땅’이며, 박원순 시장이 촛불집회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노벨상을 추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조성된 지 1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장에 당선되어, 매년 연말에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이 예산 낭비라고 그렇게 비판하던 박원순 시장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미 막대한 공사비용을 투입하여 정비한 광화문광장에 다시 국민의 혈세 995억원을 낭비하고자 하는 현재 시장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야기된 것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민의와 시민의식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구시대 개발 및 계획 논리와 이론의 대체재로 나타난 소통계획(communicative planning), 참여계획(participatory planning)이 유행한 지도 이미 수십년이 지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이러한 계획 방식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가? 여전히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민의를 이미 수렴하였다. 서울연구원에서 발간된 ‘시민·전문가가 제안하는 광화문광장의 미래와 20개 개선안’ 중 광장 개선의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전체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민 이용 편의와 역사성 회복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 52.7%, 방문객 80.7%, 1000인 서울시민의 78.1%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들여 조사한 여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계획이 어떻게 합리화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계획 과잉은 무분별한 시장주의만큼이나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사회를 위협하기 마련이다. 단지 편향된 시장주의가 자유의 기치 아래 평등을 희생시킨다면 계획과잉은 평등의 기치 아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은 지난 시대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기 위해 머물렀던 옥바라지골목나 재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박원순 시장은 “도시재생을 강조해온 내 임기 안에 역사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며 공사 중단을 지시했었다. 이렇게 역사적 시민사회의 흔적을 중요시 여기는 서울시에서 광화문광장을 또 뜯어내는 것은 서울이 역사 고도(古都)인 것을 알고서도 임기 동안의 치적을 위하여 본인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로 시민사회를 일구어 냈던 ‘기억의 땅’인 광화문광장을 뜯어 고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히며 행정을 하는 것이 민주시장으로서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신현돈 | 광화문포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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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녹물(이물질)이 나오는 주택들에 대해 배관 교체 비용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들이 녹물 해소 대책으로 한결같이 ‘배관을 교체하는 공사’에만 치중하고 있음은 매우 잘못된 행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녹물이 왜 생기고 나오는지부터 정확히 알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위 녹물이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실제 녹물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이 공급되고 있는 배관에는 산소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녹(부식)이 생길 수 없다. 다만 물에 녹아있는 여러 이온들 간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물질이 생기는 것이고, 배관이 열로 인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또는 배관 자체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그 이물질들이 마치 녹물인 것처럼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녹물 해소 대책으로 멀쩡한 배관을 교체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또 다른 저렴한 비용의 차선책을 모색해보는 것도 바람직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배관 세척 방법이다. 즉 기존의 관 내부를 세척함으로써 배관의 수명이 길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수도권 광역상수도관에 대해 이 공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와 같은 세척방법에도 여러 유형이 있으나 저마다의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이제까지 만족할 만한 효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질소세척’ 방식에 대해서만큼은 전향적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2014년 12월 한국폴리텍대학 정송환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통해 ‘질소를 이용한 녹물제거공법’이 기술적·학술적·과학적으로 입증됐고, 국가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서도 그 효능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또한 실증적으로도 입증된 녹물제거공법이 있음을 감안하자면, 전국의 어느 지자체라도 이를 외면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을까 싶다.

<이민세 | 전 영남이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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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직장인은 ‘갑’인 상사들의 횡포에 수모를 당하면서도 ‘을’이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그저 당하고만 있다. 외국 언론도 갑질에 해당하는 번역어를 찾지 못해 ‘gapjil(갑질)’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국제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전문업체에 따르면 갑질 상사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7%가 ‘갑질 상사와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중 상당수가 직장 내에서 상사의 각종 부당한 대우 때문에 인격적 모멸감을 느낀 나머지 퇴사까지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갑질의 유형도 다양하다. 업무와는 무관한 사적인 일을 시키거나, 부하 직원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 버리거나, 심지어 심한 욕설을 쏟아내며 인격을 모독하는 경우도 있다. 욕설 등 언어폭력이나 인격 모독적 조롱을 받은 피해자들은 굴욕감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심한 경우 신경쇠약이나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어 하며, 심지어 2차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갑을 관계와 유사한 기업의 왜곡된 조직구조가 일차적인 원인이 아닐까. 기업 내에 권력화되고 수직적인 분위기와 상명하복식 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직장 내에서 상급자나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약자가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과 갑질 행위를 실효성 있게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상대방의 인격을 상호 존중하는 성숙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갑질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인식 변화와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김은경 | 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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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토요일 오후였다. 세종문화회관 근처까지 온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간신히 내리니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전술’이라는 팻말을 든 시민이 길을 가로막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내건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급히 지나치느라 보지는 못했지만, 십자가 들고, 군복 입은 이도 있을 것이다.  

따로 있으면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한데 뭉치면 강렬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사물(四物), 태극기·성조기·십자가·군복. 사물은 모두 북한·미국과 관련이 있다. 반공주의·숭미주의에 기반한 개신교, 인공기가 아님을 자랑하는 태극기, 북한을 응징하고 남한을 수호하는 성조기, 북한을 물리치는 힘의 상징 군복. 이 ‘태·성·십·군’ 4자 동맹을 대표하는 건 당연히 성조기다. 성조기는 개신교, 북한 응징, 남한 수호, 힘 모두를 상징한다. 18세기 유럽인이 범선을 타고 남태평양 섬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멜라네시아인들은 화물칸에서 쏟아진 진기한 물건에 경외심을 느꼈다. 멜라네시아인은 그들을 변장한 조상이라고 믿고 반신(半神)으로 모셨다. 태평양에서 흔한 이 ‘화물숭배’는 오늘날 한반도 남쪽에서는 성조기 숭배로 나타난다. 21세기 한국의 샤머니즘이다. 성조기 숭배자에게 우주는 북한과 미국 간 선악의 대결장이다. 그런데 요즘 선악 구도가 흐릿해지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악마가 할 말 같지 않다. 대북 초강경파로 외교안보팀을 재구성한 극우 트럼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김정은과 문재인에 찬사를 보낸다. 천사가 할 말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샤머니즘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제1야당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2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준 이래 자유한국당은 지금까지 불운의 연속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민주당이 특별히 잘한 것이 없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국정 수행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보수세력이 구르고 뛰어봤자 집권세력에 작은 진동도 전해주지 못한다. 둘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2년 뒤의 총선에 희망을 걸고 있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제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 타나 제도에 주둔한 미 공군은 타나인 1000명을 비행장과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했다. 그때 타나인은 자신들이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미군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나인은 대나무로 송신탑을 세우고 활주로를 만들었다. 미군이 한 대로 하면 자신들도 미군처럼 놀라운 것들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또한 대나무를 깎아 모형 전투기·헬멧·소총을 만들어 그걸 성상(聖像)으로 삼았다. 가슴과 등에는 USA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미군 병사 중 한 명인 존 프롬을 메시아로 삼았다. 전쟁은 끝났고 미군은 모두 떠났다. 그러나 이들은 1957년 2월15일 성조기를 게양하고 존 프롬 교를 공식 선포했다. 이후 매년 2월15일 존 프롬의 날 행사를 연다.

이 행사 때는 모조 군복을 입은 노인, 대나무 소총을 든 이, 미군 기념품인 모자·티셔츠·외투를 걸친 이들이 행진을 한다. 이렇게 하면 존 프롬이 돌아와 놀라운 선물을 나눠줄 거라고 믿는다. 한국당도, 기다리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이탈자들이 한국당으로 몰려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래 그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당이 주술에서 깨어나, 지체된 시간을 자각하고 대나무 송신탑이 아닌, 자신들의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면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불과 한두 달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당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다. 김정은·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이봐 세상이 바뀌고 있어, 정신 차려’ 하며 친절하고도 분명한 신호를 보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게 한국의 보수집단이다.

물론 한국당의 비상대비책이 있기는 하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주술사인 드루이드 중의 드루이드가 구원해주기를 빌고 또 비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새로운 샤먼, 드루킹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드루킹이 대나무 소총이라는 걸 깨달을 때는 너무 늦다. 2년 뒤 가속도는 상상할 수 없다. 보수의 성채였던 군은 군비통제로 군살이 빠질 것이고, 냉전에 기반한 법제도는 사라지고 신자유주의·반북주의는 유물로 변하면서 보수의 정신적, 물적 기반이 붕괴될 것이다. 지금 지구인은 문재인·김정은·트럼프라는 강력 엔진 세 개를 장착한 우주선을 타고 다른 지구를 찾아 떠나려 한다. 한국당이 당장 탑승 예약을 하지 않으면 버려진 지구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 존 프롬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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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5월을 풍요의 절기로 보아, 가정의 풍요를 축복하는 달로 삼았다. 덕분에 5월은 각종 축제의 절기이기도 하다. 또한 화창한 봄이 시작되면서 움츠렸던 대지의 만물이 소생하고 동시에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스포츠의 달이기도 하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유년시절이던 1870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모국 프랑스가 쇠퇴하는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다. 20세에 영국으로 유학한 쿠베르탱은 청소년 교육의 중심이 스포츠에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명받는다. 그래서 당시 지식 전수에만 급급했던 프랑스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정부로부터 외면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만들고, 1896년 제1회 올림픽 대회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당시 만들어진 올림픽 정신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Citius, Altius, Fortius)”로 집약된다. 하지만 쿠베르탱은 ‘입상도 중요하지만 참가에 더 뜻이 있다’는 철학을 강조했다. 올림픽이 엘리트 체육에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고 일반 시민들이 즐기는 생활체육으로 발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쿠베르탱의 모국 프랑스에서 우리는 오늘날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학입학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체육이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국어, 수학, 외국어와 똑같은 배점으로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도 한때 체력이 국력이라며 학교 체육을 강조하고 대학입학시험에서 체력장을 치른 적이 있었다. 체육 시간에 축구이건 소프트볼이건 편을 나누고 포지션을 정해서 한바탕 경기를 하고 나면 체력과 단결심을 기르고 책임감과 룰에 승복하는 일종의 준법정신을 배웠을 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스트레스나 입시 부담도 잠시나마 땀으로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체육은 항상 후순위였다.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 순이 전통적인 교육의 가치관이었다. 체육은 무시하고 오로지 학력만 중시한다.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 자율학습으로 대체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늘고 스포츠-레저 등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에서 체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7세기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 의사인 존 로크(J. Locke)는 교육의 우선순위를 지(智)·덕(德)·체(體)가 아닌 체·덕·지로 보았다. 그가 쓴 교육에 관한 책을 보면 전체 24장 가운데 서장(序章)인 제1장이 신체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다. 제2장부터 제19장까지는 습관, 상과 벌, 예절, 가정교육, 부친의 권위, 아이의 기질, 아이의 자유와 버릇없음, 울음, 겁 많음과 잔인한 행동, 호기심, 게으름, 일의 강제, 장난감, 거짓말과 변명, 덕성, 지혜, 예절교육 등을 서술했다. 그런 다음 제20장에 가서야 비로소 ‘학습에 대하여’가 나와 로크는 교육의 우선순위가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에 있음을 밝혔다. (로크의 <교육론>, 박혜원 역)

이 책은 전형적인 귀족 가정의 자녀들을 ‘신사(gentleman)’로 키우기 위한 자녀교육 지침서이지만, 현대 사회의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에도 매우 유효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2002년 서울대 총장이 되었을 때 처음 찾아 읽은 책이 로크의 &lt;교육론&gt;이다. 1690년대에 나온 책을 서울대 총장이 된 직후 읽은 이유는 교육이나 인성의 기본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믿음에서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명제지만 입시지옥, 학벌 사회에 사는 우리 현실에서는 가정과 학교 모두 체육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 한국경제가 외국을 추격할 때 고도성장의 주역은 과감한 투자로 대량 육성한 산업화 맞춤형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미래를 이끌 핵심 역량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 인재들은 어떻게 길러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우수한 교육에 있다.

우수한 교육이란 먼저, 스트레스가 과중한 학생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입시과정과 교육과정에서 다양성을 강조하여 창의성을 제고해야 함은 그다음이다.

체력은 타고난다고 하지만 노력에 의해서 향상될 수도 있다.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기도 했다. 내 체력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훨씬 더 생산적인 교수, 훨씬 더 열심히 일하는 총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실제로 세계에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이 가장 잘되어 있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의 교육은 처음에 ‘체육’,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덕육’, 그다음에 또 여유가 있으면 ‘지육’의 순서로 한다. 존 로크 시대는 물론이지만 오늘날에도 영국에서는 일관되게 체육을 강조한다. 영국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크리켓이다. 그러고 나서 공부를 시작한다.

윈저궁 근처에 있는 이튼 칼리지에서는 전통적으로 2·3월 추운 날씨에도 학생들이 반바지·반소매를 입고 진흙 위에서 레슬링을 하였다. 한 번은 이튼 칼리지 선생에게 학생들을 왜 그렇게 힘들게 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그분이 “이래야 인재가 나온다. 19세기 영국의 총리들은 거의 다 이튼 칼리지 출신이었다. 그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했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그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며 신체가 허약한 사람들이 영국의 총리가 되더니 영국이 결국 세계 제1의 자리를 미국에 내주었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의 대답을 했다.

미국도 초·중등 교육이나 대학교육에서 체육을 매우 중시하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체육을 중시한다. 초·중·고에서도 그렇고 대학에서도 그렇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다 그렇다. 대한민국 교육도 이제 지·덕·체를 지양하고 체·덕·지로 가자.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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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4일 국무회의에서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익신고 보상금 한도를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의결했다. 

2015년 10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부패방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부패행위 신고 보상금을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올린 데 이어 공익침해행위 신고 보상금도 동일한 한도로 올린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도 인상이 아니라 비율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간 시행령 개정을 통해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그리고 이번에 30억원으로 한도를 올렸지만 부패방지법은 시행 16년 동안 11억600만원이,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시행 6년 반 동안 3억1000만원이 최고 보상금이었다. 11억600만원 보상금 사례는 공기업인 한전에 기계장치를 납품하는 업체가 수입면장을 허위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가를 부풀려 모두 263억여원을 부당하게 받아간 사실을 내부 직원이 신고해 전액 회수 조치됨에 따라 지급된 경우였다. 

보상대상가액이 263억원인데 보상금은 5%에 못 미치는 11억여원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보상대상가액이 1억원 이하일 때는 보상비율이 30%지만, 금액이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낮아져 40억원 초과 시에는 ‘4억8000만원+40억원 초과금액의 4%’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상대상가액이 커질수록 보상비율을 낮추는 것은 정책 결정자들이 환수 금액이 큰 중대한 신고를 할 때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신고를 할 경우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내부자는 상당히 한정될 수밖에 없고 몇십억원, 몇백억원이 왔다갔다 할 경우 목숨을 걸고 신고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경제 규모에서 보상금 30억원 한도가 가능한 보상대상가액 700억여원의 신고는 원전이나 방산비리와 같은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보상금 한도만 올리는 것은 신고자 보상 확대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상한을 두지 않고 금액과 관계없이 100분의 30을 지급하고 있는 서울특별시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와 역시 한도 없이 15~30%를 지급하는 미국의 ‘부정주장법(False Claims Act)’은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의 경우도 한도를 폐지하고 30% 등 특정 비율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현행처럼 보상대상가액을 기준으로 한 보상금 지급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실질적으로 신고자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도를 폐지하고 정률제로 했을 경우에도, 예를 들어 식품공장에서 불순물을 첨가한다는 사실을 신고했을 때 과태료가 500만원 부과되면 신고자는 이 금액의 30%라 하더라도 150만원을 받게 된다. 내부자가 자신의 한 달 급여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 신고에 나서기는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부패범죄 몰수 금액 중 5% 정도를 공익신고자지원기금으로 만들어 보상과 함께 신고자에 대한 재취업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내부신고자가 호루라기를 불 때 우리 사회는 그의 의로운 행위를 외롭지 않게 보상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지문 |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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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약리학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교수님은 신약 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임상실험에서 후보 약물의 효과가 플라시보 효과보다 더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 플라시보 효과란, 의학적 처치 자체가 아닌, 의학적 처치에 대한 환자의 믿음이 환자의 몸에 치료 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임상실험을 할 때는 실험 참여자를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 집단에는 후보 약물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효과가 없는 가짜 약물을 준다. 이외에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했는데도 두 집단에서 병의 경과가 다르면, 이 차이는 후보 약물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짜 약물을 처방한 집단에서도 증상이 일부 개선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약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플라시보 효과를 줄이는 실험을 고안하고, 플라시보 효과보다 월등한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환자 입장에서 수업을 듣던 내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환자 입장에서야 약물로든, 플라시보 효과로든 낫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플라시보 효과는 공짜가 아닌가! 그래서 교수님께 플라시보 효과를 왜 치료에 이용하지 않느냐고 질문드렸다. 교수님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태연하게 묻는 동양인 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셨다. 환자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 뇌: 몸과 마음의 중간지점

서양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인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시각에서 보면 플라시보 효과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19세기에는 환자의 거짓말이라고 여겼고, 20세기에는 일시적인 심리 효과라고 보았다. 플라시보 효과가 인정되어 원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부터라고 한다.

뇌는 몸의 일부이면서 마음과 긴밀하게 관련된 기관이다. 그래서인지 만성 통증, 우울증, 불안처럼 뇌의 상태와 마음 둘 다에 영향을 받는 질병에는 플라시보 효과가 유난히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플라시보 효과보다 나은 약을 개발하기가 더 어렵다. 오죽했으면 거대 제약회사들이 신경정신질환 치료제의 개발 비중을 줄이는 대신, 유전적 치료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할 정도이다. 프로작과 같은 신경정신질환 치료제의 매출과 수익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제약회사들의 이 같은 결정은 매우 놀랍다.

플라시보 효과는 신약 개발의 측면에서는 난관이지만 뇌과학적으로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생각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 있고,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경계통의 질환에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하는 부분과 의학적 처치가 작용하는 부분이 겹치거나 상호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의 원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는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환자가 병원처럼 치료를 암시하는 환경에서 의료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맥락에 있으면 질환이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고, 이런 예상이 증상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맥락과 진통 효과를 연관짓는 학습을 통해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생쥐가 특정한 상자에 있을 때만 진통제를 투여했다. 그 뒤 쥐의 꼬리에 통증을 가하면 쥐는 진통제를 투여받지 않았을 때보다 투여받았을 때 통증에 대한 반응이 약하고, 통증에 관련된 호르몬 분비도 낮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뒤, 연구진은 쥐가 진통제를 투여받았던 상자에서 진통제 대신 생리 식염수를 투여했다. 생리 식염수가 가짜 약물로 작용한 셈이다. 그 뒤 쥐의 꼬리에 통증을 가했더니, 마치 진통제를 투여했을 때처럼 통증 반응도 약하고 통증에 관련된 호르몬의 분비도 적었다. 쥐에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또 플라시보 효과는 약물에 대한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약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보다는, 약물의 전달 과정과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을 때 플라시보 효과가 더 잘 일어난다고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약한 진통제라고 알려진 가짜 약물에 대해서는 약한 플라시보 효과를, 강한 진통제라고 알려진 가짜 약물에 대해서는 강한 플라시보 효과를 보였다. 플라시보 효과의 크기까지 사전 정보에 따라 조절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회적인 맥락과 정보를 해석하고 사건의 결과를 예상하는 전전두엽이 플라시보 효과에 관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보상에 대한 예측과 학습에서 중요한 부위인 줄무늬체가 치료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학습에 기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줄무늬체의 크기나 활동 정도의 개인차는 사람마다 플라시보 효과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지와도 관련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플라시보는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플라시보 효과가 존재하며, 플라시보 효과의 신경 메커니즘은 이제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 몸과 마음: 하나의 불꽃의 두 그림자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는 생각에 익숙하지만, 모든 문화의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몸이 마음의 근간이라고 보고, 몸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마음과 긴밀하게 연관된 뇌는 온몸에 퍼진 신경계를 통해 몸과 상호작용하며, 몸이 주는 에너지와 물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복잡한 것을 작게 나누어서 살피는 것은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면 오히려 혼란을 빚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몸과 마음은, 생명이라는 하나의 불꽃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벽에 비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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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있다. 제목은 ‘중학생이 길에서 생리대를 빌려본다면?’ 말 그대로 중학생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생리대를 빌려보는 실험이다. 물론 실험자와 피실험자 모두 여성이다. 과연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생리대를 빌려줄까? 결과는 놀라우면서도 예상대로였다. 도움을 거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갖고 있지 않아서 빌려주지 못한 사람들을 빼고 다들 흔쾌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리대를 꺼내 건넸다. 심지어 지금 갖고 있는 게 없는데 사줄 테니 같이 편의점에 가자고 말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도움을 건넨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나 역시 한번쯤 난감한 상황을 겪어봤고, 그럴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생리대를 빌려주면서도 그걸 돌려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는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노숙인들도 마찬가지다. 영등포역에는 지난해부터 역사 내 화장실에 생리대 나눔함이 설치되어 있다. 여성 노숙인들이 생리대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어 생리대 하나로 버티거나 화장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예대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여성용품 나눔 캠페인’이다. 나눔함이 비면 누군가가 수시로 채워놓을 뿐 아니라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지만, 개인들의 선의에 기대고 있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2년 전 한 여중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을 대신 썼다는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생리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다행히 청소년복지지원법이 통과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성 청소년에게 보건 위생에 필수적인 물품을 지원할 근거 규정이 마련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생리대 바우처’가 도입되고, 약 15만명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깔창 생리대’부터 ‘생리대 유해성 논란’, 현직 소방관의 ‘피싸개’ 조롱 발언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리대’에 대한 논란이 거셌는데도, 제도적인 보완은 더디기만 하다. 생리대는 검은 비닐에 넣어 보이지 않게 들고 다녀야 할 만큼 생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통념이 여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지원되는 생리대 지원 범위가 경제적 약자들에게까지 넓어져야 한다. 개인의 선의나 일회성 프로젝트 지원이 아니라 복지 영역에서 의식주만큼이나 필수적인 영역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생리대 무상 보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식료품 지원 센터로 음식을 받으러 간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생리대는 없냐고 물으며 난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생리대를 지원받지 못한 케이티는 결국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치다가 걸리고, 그 길로 성매매의 길에 빠져든다. 음식은 지원해주지만 생리대는 지원해주지 않는 복지제도의 허점을 보여준 장면이어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가난한 여성일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데, 여성에게 필요한 지원은 누락되거나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났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마음놓고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속상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영국도 상황이 이런데 북한은 어떨까? 북한 여성들은 가제천으로 된 생리대(위생대)를 주로 써 왔고, 중국산 일회용 생리대도 수입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제천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중국산 화장지를 둘둘 말아 쓰는 경우도 있다니 얼마나 불편할지 뻔하다. “한번 사용하고 버릴 생리대를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살 필요까지는 없다”는 북한 여성들의 인식은 필수품인 생리대조차 사치품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판문점선언이 발표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요즘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나 이산가족 상봉, 공동 문화행사 추진 등 굵직한 이슈도 많지만, 북한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 지원도 교류의 흐름 어딘가에 꼭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에게 선뜻 생리대를 건네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던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우리 정부도 북한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면 어떨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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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말만 하고/ 나는 내 말만 하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되는 벽을 느낄 때”

이해인 시인의 시 ‘내가 외로울 땐’ 중 일부이다. 두 사람 사이에도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 3명 이상이 모인 집단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사회나 학교나 마찬가지다.

학교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사회화를 경험하는 곳이고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배움터로서 중요하다. 그래서 민주적 공동체는 현장의 오랜 화두다.

그러나 학교가 정말 민주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민주적 학교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다. 첫째,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둘째, 권위를 무시하면 진보적이다. 셋째,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 큰 소수가 통한다. 넷째, 의견을 말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다르다.

첫째 오해는 우리가 다수결 외에 다른 의사결정방법에 익숙지 않고, ‘왜’ ‘무엇’ 때문에 협의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학교에서 하는 의사결정은 학생을 위한 교육적 판단이다. 학생들의 격차는 학교마다 다르다. 그래서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활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한 학급에 20%에 이르는 학교라면 문해력을 우선과제로 설정해서 기초·기본 학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교사들이 같이 고민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때 교사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내세우면 교사의 책무성과 충돌한다.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과 다수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기 힘들다. 먼저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셋째, 넷째 오해는 연결된다.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에 질려왔다. 그래서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때로 정당한 권위 행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또 교사조차도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있다. 회의 때 많은 교사들은 침묵한다. 이때 조직마다 종종 있는, 혼자만의 정의의 가면을 쓰는 소수가 큰 목소리를 낸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견대로 결정되어야 정의롭고 민주적인 학교다. 한 예로, 담당부서에서 학생 공간을 확보해주고자 잘 쓰지 않는 교사 공간을 학생 복지 공간과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해 시행한다. 한 교사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자 교사 공간을 편법으로 사용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민원을 제기한다. 행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지만 담당자는 지친다. 이런 행위는 공동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구성원의 선의를 꺾는다. 이런 일을 겪거나 지켜본 교사들은 다음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정말 학교는 민주적 공동체가 되기 어려울까? 가능하다. 교사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발성이 아니라 과업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적 방법이 결정되면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공감 능력이다. 공감 능력 있는 다수가 서로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옳은 주장을 한다고 옳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겸허와 존중의 자세로 임하면서 옳은 이야기를 하는 좋은 사람의 의견이 소중하다. 의사결정 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나누는 것이 소중하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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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냉수 벌컥벌컥 마시고 크어~ 턱 씻으니 애도 따라 줄줄 흘리며 크어~ 턱 씻는 흉내를 냅니다. 막걸리잔 기울인 뒤 크어~ 내려놓으니 애도 크어~ 하며 물 대접을 막걸리잔인 양 탁 내려놓습니다. 이러면서 언젠가 크어~ 술 마실 자신도 상상해보겠지요.

부모나 어른이 점잖지 못하고 언행을 함부로 하면 아이들도 똑같이 배운다는 속담이 ‘애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입니다. 부모가 젓가락 끝으로 사람 가리키며 얘기하면 자식도 나중에 젓가락으로 남의 눈앞을 찌를 겁니다. 아이와 함께 호호하하 사람 만나고 들어와선 정색하고 그 사람 험담하면 자식은 세상에 믿고 마음 줄 사람 없다 싶어 사람을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대하겠지요.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일정 기간을 보살피는 동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동물의 새끼들은 하나같이 부모의 행동을 따라합니다. 야생에서 살아남은 부모와 똑같이 흉내 내야 자신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런 스펀지 같은 본능은 사람의 아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무엇이든 열심히 어른들을 좇아 하는 게 아이입니다.

유전(遺傳)이란 말은 끼치고 전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부전자전(父傳子傳)이요 ‘그 어미에 그 딸’이라 하듯 부모의 형질과 살아온 방식은 어떻게든 자식에게 전해집니다. 도대체 누굴 닮아 저럴까 하지만 두 사람 유전자로 둘이 키웠는데 과연 그 누구만 닮겠습니까? 어른들이 애 앞에서 친척과 남을 흉보고, 약속을 가벼이 여기며, 배우자끼리 심한 말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꽤 많이 보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순진하고 모르는 척하지만 다 보고 듣고 판단합니다. ‘아, 저렇게 함부로 사는 거구나.’

일상의 부모와 어른들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입니다. 그러니 애들은 따라하지 말라기 전에 어른부터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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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회담,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선언’을 내놓았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완전 해체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비핵화, 평화 체제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판문점선언은 1989년 미소 최고지도자가 세계적인 냉전 해체를 선언한 몰타선언에 버금가는 한반도판 몰타선언이다.

지난해 전쟁위기설에서 1년도 안돼 한반도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양 정상이 40분에 걸쳐 군사분계선 도보다리 벤치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상상도 못한 파격이 일어났다. 남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파격과 반전의 드라마였다.

엄청난 반전은 남·북·미 3국 정상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통 큰 정치인’ 이미지를 선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5월 말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면 중간선거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관계를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

남·북·미 정상의 성격 역시 반전을 이끌어 낸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통 큰 사고를 하면서 자신들이 회담의 판을 주도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신중하고, 우직한 곰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집념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조율하며, 모든 공은 두 사람에게 넘기고 있다. 센 두 사람과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잘하는 한 사람, 세 사람의 어울리는 조합이 한반도 판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판문점 회담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단연코 도보다리에서의 회담, 단독 정상회담이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정상 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전달되고, 문 대통령의 평소 비핵화·평화체제에 대한 의지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다.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것에 문제 제기도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 징검다리, 마중물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그 모든 공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이상의 표현이 나오긴 애초에 어려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내용과 관련해 남북 정상이 사전에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다. 남·북·미가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남·북·미의 입장 차이를 좁히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연내 가능한지 갑론을박이 있다. 1953년 체제를 종식시키는 작업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이다. 남북한과 미·중이 종전을 선언하고 휴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고, 여기서 지속가능한 평화협정 체결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체제 구축 자체는 시간이 걸리지만 종전선언은 연내 가능하다고 본다. 유념해야 할 점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비핵화와 연계가 돼 있기에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 행보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상에 오래 남을 또 하나의 장면은 군사분계선을 김정은 위원장이 혼자 넘어왔다가,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같이 넘어갔다가 같이 손을 잡고 다시 넘어오는 장면이었다. 두 정상은 5㎝ 높이의 군사분계선 콘크리트가 사실상 무력화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제사회를 향해서 이제는 한반도가 전쟁의 공간으로써 또는 긴장의 공간으로써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짐했다. 그야말로 판문점이 대결과 전쟁의 공간이 아니고 이제는 대화와 협력과 교류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 또 남북한 구성원들에게 판문점의 해체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의 허파, 제2의 몰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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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발한 대통령 일행이 자유로를 타고 판문점까지 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공중의 카메라는 건방진 건물들을 납작하게 만드는 한편 아무 걱정 없이 북으로 뻗어나간 숲을 융단처럼 푹신하게 담아내었다. 연두에서 초록까지, 색의 파노라마로 일행을 호위해주는 좌우의 나뭇잎들을 보자니 우리 사람의 일이란 작든 크든 결국 이 식물들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실감했다. 1953년생 소나무를 심고 난 뒤, 남북의 두 정상이 주위를 물리친 채 숲속에서 다정한 도반처럼 말, 표정, 손짓을 섞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보다리 바로 곁에서 빵긋 웃는 건 조팝나무, 바람을 영접하는 건 갈대, 낮말을 알아듣는 건 버드나무이지 않을까.

한반도의 계절과 정치에 실질적인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하면서 많은 이들이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하나 더 물목을 추가하고 싶었다. 웬만한 술꾼들은 알겠지만 냉면은 안주로도 정말 제격이니 이에 어울리는 들쭉술을 빠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백두산으로 곧장 달려갔다. 야생화에 입문하고 이듬해 떠난 꽃산행. 남에서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겨우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들이 그곳에서는 발에 차일 만큼 흔했다. 그중에서도 파르라니 깎은 듯 푸르디푸른 건 들쭉나무 열매였다. 한 주먹 따서 입에 넣으면 들쭉술의 원액인 듯 볼을 빨갛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던 들쭉나무.

토요일의 임진각은 공기부터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특산물코너로 갔다. 들쭉술 있습니까. 그간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물건을 못 받았어요. 가게 주인은 두 손을 모으며 미안해하면서도 설레는 기대를 감추지 아니했다. 우리 대통령은 다시는 이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셨다. 내 혀끝으로 먼저 북녘과 화끈하게 접촉할 날도 머지않았으리. 들쭉나무는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거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온난화가 진행되자 한라산, 설악산의 꼭대기로 빨치산처럼 피신한 나무이다. 작년 설악산에서 만난 들쭉나무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야무진 꽃을 떠올리며 파주-개마고원-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꽃산행 길도 그려보는 흐뭇한 봄밤! 들쭉나무, 진달래과의 낙엽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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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모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의원의 바쁜 일정은 한동안 계속됐다. 어느 이른 봄, 토요일. 그날은 수행비서의 감기몸살로 내가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아침부터 경기도 부천·구리·안양·안산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을 켰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길 수차례, 계획한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다. 의원은 괜찮다고 위로했다. 주차할 땐 차에서 내려 뒤를 봐준다. 해가 질 무렵 수원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의원은 늦게 끝날 것 같으니, 차키를 자신에게 주고 그냥 가라고 했다. 행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의원과 나는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한참을 대화하다 의원은 내가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데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원은 차를 갓길 옆으로 붙이라고 했다. 나는 차를 세웠다. 의원은 뒷좌석 문을 열어둔 채 밖으로 나왔다. 나도 나오란다. 의원이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의원이 열어둔 뒷좌석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앉았다. 차가 잘 달렸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의원은 자신이 젊었을 때 채소가게 하면서 트럭을 운전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난감했다. 어디까지 이러고 가야 하나…. 결국 의원은 약속 장소까지 나를 모셔다(?) 주었고 술도 함께 마셨다. 술값. 의원이 냈다. 1차 술자리가 마무리됐고 의원은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갔다.

의원과 전라남도 진도군으로 출장을 왔다. 그곳은 외지기도 했지만, 갑자기 온 터라 숙박할 곳을 예약하지 못했다. 일정을 마치고 간 곳은 하룻밤 3만원짜리 시골 모텔이었다. 방 두 개를 잡을 법도 한데 의원은 하나만 잡는다. 곰팡내 나는 좁은 방 그리고 침대 하나. 두 남자가 늦은 밤에 할 일이 뭐 있겠는가. 편의점에서 사 온 캔 맥주를 하나씩 마셨다. 나보고 먼저 씻으란다. 아니나 다를까. 의원은 내가 씻고 있는 동안, 침대와 텔레비전 사이 비좁은 바닥에 자신이 누울 자리를 골라놓고 이불까지 깔았다. 결국 나는 침대에서 잤다. 잘 잤다. 의원이 침대가 불편해서 그런 것인지, 혹시 집에 침대가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봤다. 댁에 침대가 있단다. 하기야 침대를 안 써도 비좁고 냄새나는 바닥에서 자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의원은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공동체에서 전쟁고아, 동네 부랑아들과 먹고 자며 함께 자랐다.

갑질.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임신 중인 직원을 30분간 비를 맞고 서 있게 했단다. 그녀의 자녀들도 회사 직원들에게 수시로 폭언과 행패를 일삼았단다. 이러한 행태가 여기서 끝나겠는가. 그 대기업 사주 일가는 사익 편취 등 비리 의혹이 도마에 올라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소개한 5선 국회의원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 창업주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회사 지분 전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개털이 된 의원은 자기 소유 집 한 채 없는 전세살이였다. 한번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의원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야 자신의 집이 생겼다.

한때 의원이 소유한 차량의 주행거리는 45만㎞였다. 그것도 추정치. 45만㎞에서 계측기가 멈추고도 수개월을 더 탔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보통 영업용 택시는 30만㎞, 자가용 승용차는 20만㎞ 전후에 폐차한다. 지금은 장기임대로 새 차를 타고 다닌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거기엔 그의 아버님이 그에게 가르치시던 글귀가 적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수업료 한 푼 안 내고 월급 받아가며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의원은 아침 일찍 신문을 읽는다. 이 글도 보시겠지. 한마디 할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혼날 게 뻔하다. 당분간 전화 드리지 말아야겠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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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가 남북합의서 체결 비준·공포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는 정치적 절차가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적 절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당이 남북정상회담 비준 입장만 제시하고 드루킹 특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며 비준을 반대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또 판문점선언을 깎아내렸다. 남북관계 진전에 끝없이 제동을 거는 제1야당이 유감스럽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4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판문점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려는 것은 이 합의가 정치 상황에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6·15 정상회담 공동선언 등이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바람에 이행을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진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이다. 또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제도화하려면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다. 예산이 집행되려면 국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북·미 정상이 북핵 문제를 원활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도 국회의 지지는 필요하다. 한마디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은 한국당이 북한과 합의했어도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당은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초당적 대응을 주장했다. 판문점선언은 전 세계가 지지하고 있다. 국내 여론조사 결과 그 지지율이 90% 가까이 나오고 있다. 이런 합의를 제쳐두고 어떤 사안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당이 판문점선언을 비판하는 것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보수표를 결집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유정복 한국당 인천시장 후보는 이런 당 지도부를 향해 정신 차리라고 비판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당에 표를 줄 시민은 없다고 선거 현장을 누비는 후보가 호소한 것이다.

북한은 오는 5일부터 표준시간을 남한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남측도 신속하게 발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당의 요구로 2일부터 5월 국회가 소집돼 있다. 여당은 드루킹 사건이 비준 절차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당은 한반도 대경사에 재 뿌렸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국회 비준에 즉각 동참해야 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국당이 국회 비준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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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