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黃玹)은 1910년 조선이 망하자 “이 나라가 그래도 500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 망한 즈음에 제 목숨을 내놓는 선비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고 하고는, 죽기 직전 세상을 버리는 마음에 부친 ‘절명시(絶命詩)’ 네 수를 쓰고 자결했다. ‘절명시’ 가운데 한 구절이 이렇다. “가을 등불 아래 천년 역사를 돌아보매,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구나.”

그가 남긴 1864~1910년에 이르는 한 시대의 기록이 저 유명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아름다운 시대는 아니어서 여기에 부패의 기록이 한가득이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조선의 도지사인 관찰사 자리는 10만~20만냥 사이, 괜찮은 지역의 수령은 아무리 싸도 5만냥 아래로 거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주군수는 35만냥에 거래됐다는 기록도 있다.

1냥이란 어느 정도의 가치일까. 경제의 조건과 규모가 다르므로,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1냥이 곧 4만원 또는 7만원까지 설이 구구하다. 김구 선생은 조선 말기에 쌀 한 말이 1냥이었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다. 환산은 까다롭지만 어마어마한 부패의 속살만큼은 능히 짐작하겠다. 우스운 일은, 한 자리 거래가 완료된 직후에라도 몇천냥을 더 내놓는 자가 있으면 먼저 임명된 자가 쫓겨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부임하던 길에 벼슬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자도 있고, 난생처음 동헌에 앉자마자 파직 통고를 받는 자도 있었다. 어느 고을에서는 1년에 네 번이나 사또를 새로 맞이하느라 백성이고 아전이고 죽을 지경이었단다.

중앙은 또 달랐다. 요직은 어차피 민비와 고종의 주변이 독점한다. 그래도 이름만 그럴듯한 명예직은 품계가 높으면 3만냥, 낮으면 수천냥짜리 매물이 있었다. 여기에 공명첩이라고, 이름을 쓰지 않고 주는 임명장 장사를 관아에서 했다. 실제로 관직에 부임하지 않고도 벼슬 이름만 쓰는 것이다. 오늘날 온 한국인이 양반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문서가 공명첩이다. 이것도 남발되니까 이윽고 100냥으로 떨어졌고, 나중에는 담당자한테 술 한잔 사도 발행되었다.

황현은 중앙의 지존, 곧 민비와 고종을 직접 거론했다. <매천야록>에는 이런 일화도 남아 있다. 민비의 겨레붙이 민영환이 고종을 만나 자기 외삼촌의 군수 자리를 하나 달라고 했다. 고종은 흔쾌히 광양군수를 내놓았다. 민영환이 집에 가 자랑하자 그 어미가 대꾸했다. “임금이 한 자리라도 은혜만으로 내린 적 있었니? 무슨 선심을 썼겠느냐? 이 어미가 진작에 5만냥 갔다 줬다.” ‘벼락감투’라는 말, ‘부지깽이까지 따라간다’, 그러니까 해먹으려는 벼슬아치, 수령이 가는 데라면 그 집 부지깽이까지 따라가 공금을 축낸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뇌물 바치느라고 제 돈 쓴 자들은 ‘투자금’을 어떻게 회수했을까. 뻔하다. 세금을 횡령하고 백성을 쥐어짰다. 세금을 횡령해서 상납금을 올리면 더 좋은 자리로 간다. 이전의 횡령은 장부상 가짜 기록으로 덮고 떠나면 끝이다. 남은 돈으로는 땅을 사 늘렸다. 부패와 부동산은 나란했다. 황현은 이렇게 말했다. “가로채는 것은 모두 공금이므로 국고는 저절로 새어 나가 텅 비었다. 그러나 임금은 국고를 자신이 받은 공물로 여겨 차거나 줄어드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일본의 차관은 이러느라 빈 국고를 파고든 점도 있다. 백성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들고 일어났다. 조선 말기의 민요(民擾)는 이런 식이었다. 1년에 몇 번이고 사또가 갈린다. 갈릴 때마다 지역 살림이 거덜난다. 참다 참다 주민이 일어선다. 일시에 온 고을 사람이 관아로 쳐들어가 사또를 번쩍 들어, 고을 경계선 밖으로 내팽개치는 것이다. 당시 법에 민요 주동자는 목을 베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목숨을 건 봉기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시대가 달라져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선출되는 판이다. 하지만 이들 자리를 중세의 사또쯤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의 묵은 생각과 행동이 중앙과 지역에서 스멀거린다. 이들 자리가 조선 시대 관리가 아님을 인식하지 못한 중앙정당의 횡포, 후보의 줄 서기가 차츰 보인다.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다’고 외친 선비가 우리더러 지나간 시대를 굽어보며 ‘저, 저, 한심한 놈들, 쯧쯧’ 혀만 차라고 절명 직전까지 한 시대를 쓰고 또 썼을까. 민요(民擾) 같은 중세의 말에, 선거라는 현대의 말을 짐짓 붙이고 부쳐본다. 그들이 구태를 선택했다면 시민은 한결 새로워져야겠다. 2018년 6월13일, 그들이 낡고 낡아 바스러질 만큼 시민이 새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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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우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물건이 분실되었습니다. 배달 드론의 신호가 끊긴 것으로 보아 오작동으로 추정됩니다. 동일 제품이 자동으로 재주문되었습니다. 추가 비용은 일절 발생하지 않습니다. 배달에 2일이 소모될 예정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우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메시지를 읽고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그가 주문한 물건은 유기농 채소와 닭고기였다. 다른 물건이라면 신경 쓰지 않고 이틀을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이 똑 떨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신용카드 기한이 사흘 전에 만료되고, 술을 잔뜩 마셔 하루를 그냥 보낸 탓에 뒤늦게 연장하고 보니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다. 부랴부랴 주문했는데 이제는 배달 드론마저 행방불명이라니.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이틀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외출’을 하든지.

배가 고프다못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택배사에 요청 메시지를 보내자 스마트폰의 지도에 드론이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 장소가 떠올랐다. 정우는 투덜거리면서 장비를 챙겼다. 하얀 압축 필터 한 쌍을 콧구멍에 끼우고, 안구 건조를 방지하는 고글을 쓰고, 군용 방독면보다는 조금 가벼운 방진 마스크를 썼다. 미세먼지가 피부에 들러붙지 않도록 팔이 긴 윗도리와 비닐 장갑을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정우는 집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빈틈없이 누렇고 탁했다. 곳곳에 검은 녹색이 감돌았다. 정우를 제외하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관용 전기차 서너 대뿐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장비를 잔뜩 걸치면 우선 멀리 걷기가 힘들었다. 촘촘한 이중 필터와 마스크 때문에 호흡도 편하지 않았다. 노인이나 아이들은 아예 외출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바깥 거리에 사람이 사라진 대신 하늘에는 물류 전반을 책임지는 온갖 드론이 그득했다.

정우는 이십 분쯤 걷다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고글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고는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았다. 모퉁이를 두 번 돌자 추락한 드론 두 대가 보였다. 그 옆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드론을 살피고 있었다. 정우와 비슷한 처지인 게 분명했다. 정우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수화로 말을 걸었다. 마스크에 무선 마이크가 있었지만 번거롭게 상대방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콧구멍이 막힌 채 통화를 하느니 작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배우기 시작한 수화가 훨씬 편했다.

- 그쪽도 택배 드론이 추락했나봐요?

- 우리 드론끼리 충돌한 것 같아요.

- 어느 것인지 확인하셨어요?

- 이제 막 지문을 찍어보려던 참이에요.

하지만 두 사람은 망가진 지문 인식 패널을 보고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결국 끙끙거리며 적재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수화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다음 헤어졌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서울에 고밀도 미세먼지 강습 예상. 최소 지속 시간 30분 예상. 외출자들은 속히 실내로 대피 요망.

그와 동시에 거센 바람이 정우의 오른쪽 어깨를 두드렸다. 가시거리는 더욱 짧아졌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우는 상체와 얼굴을 숙여 땅을 보면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기청정기가 만들어 내는 집안의 공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정우의 등과 오른쪽 어깨에 누런 먼지가 빠른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

비영리단체인 미국 건강영향평가협회(US Health Effects Institute·HEI)는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이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오염된 공기란 WHO에서 정한 공기 수준 기준치보다 미세입자가 더 많이 포함된 공기를 가리킨다. 오염도가 가장 높은 공기와 가장 낮은 공기의 차이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한 2016년에 미세먼지가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6000만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발작, 심장마비, 폐암 등 다양하다.

중국이 쓰레기 소각 설비를 자국 동부 연안, 즉 우리나라 서해 방향에 대거 건설한다는 소식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이 글에서 인용한 연구 결과가 절대적인 기준일 수는 없겠지만, 사망자 수를 놓고 볼 때 공기 오염은 흡연, 식습관, 고혈압의 뒤를 이어 건강을 위협하는 4대 원인에 진입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층은 아이들일 것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노출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자연적으로 가라앉고 사라질 때는 지났다. 전 세계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공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은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덮치고 가장 약한 사람부터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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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온몸으로 뛰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달 30일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는 핵 재처리 연구 개발을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하여 이를 연료로 쓰는 고속로라는 원자로를 연구 개발하겠다는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1997년부터 20년간 6700억원의 혈세를 낭비했지만 경제성도 안전성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를 실제 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연료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핵 확산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1층에서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이 담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맞잡은 손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공약하였고, 지난해 국회도 전문가와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조건으로 예산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과기정통부가 구성한 ‘재검토위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일관하였고, 공개토론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 반대의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사업 추진 측의 해명만 거듭된 위원회가 어떻게 ‘재검토’를 할 수 있는가? 재검토위원회는 반대 측 패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만 질의·회신을 한 반면,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는 4차례의 질의·회신을 했다. 찬성 측 패널에게 3차례 추가 질의를 할 때 반대 측 패널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전문가 의견 청취와 청문회도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고 그것도 비공개로 진행되어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검증에 활용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으나 자료 공개는커녕 재검토위원회 진행 과정조차 알려진 바 없다. 과기정통부는 재검토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도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를 강력하게 문제 삼자 겨우 공개하였다.

과기정통부가 내건 ‘객관적인 검토’가 되자면 찬반 양측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토론이 공개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재검토위원회가 내리는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사업 강행을 의도한 이름뿐인 재검토였기에 반대 측 패널은 재검토위원회 해체를 요구했지만 과기정통부는 반대 측 패널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래서야 반대논리를 가진 집단이 어떻게 정부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하반기에 예상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신뢰할 수가 없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역시 시민들이 40년 이상 원전 홍보에만 길들여져 있고, 정보 비대칭으로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미국이 허용할 수 없어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인 데다 한반도 비핵화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또한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을 위해서는 원전보다 엄청나게 많은 방사능을 배출하는 재처리 시설과 최소한 10기 이상의 훨씬 위험한 고속로 원전을 지어야 하는데 어느 지역이 이런 핵 시설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에너지 전환정책에 역행하는 연구 개발에 왜 혈세를 쏟아붓겠다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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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생산직의 교육과 숙련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생산직은 IT산업, 서비스산업과 금융산업 위주로 재편된 수도권에서는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산업화 경제를 이끌었던 ‘산업 역군’이었고, 민주화를 이룰 때 앞장선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대형 사업장의 ‘대기업 귀족노조’라는 이름이거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말썽꾸러기나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피해자로만 등장하게 돼버렸다. 풀어야 할 문제들은 방치되는 중이다.

우선 한국 사회에서 생산직에 대해 미디어가 연출한 장면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울산이나 창원 등 산업도시에서 경기침체나 기업의 위기가 올 때, 가장 먼저 미디어에서 뽑아내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불 꺼진 ○○○”. 불 꺼진 장소는 유흥주점과 식당들이 군집한 유흥가를 의미한다. ‘대기업 귀족노조원’ 남성들이 지금까지 임금을 많이 받아서 흥청망청 살다가 그 꼴이 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역 경기가 왜 술집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안일하고 악랄한 연출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이나 구미의 LG 디스플레이 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미디어는 어려울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도 잊고 끼니도 거른 채 ‘돌관작업’(공기를 줄이기 위한 밤낮없는 작업) 등 고군분투하는 백전노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무시한다. 자격증을 수십개 따고 방송대학을 다니는 노동자의 배움도 무시한다.

한국에서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사내 가공 하도급 노동자, 하청 노동자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 거의 모두는 금액의 차이만 있을 뿐 호봉으로 기본급이 결정되는 연공서열제 안에 있다. 연공서열제를 한국보다 먼저 채택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기업들이 연공서열제와 정년보장을 택했던 이유는,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자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으로 잘 알려진 혁신의 체계는 노동자들의 높은 숙련과 학습으로부터 출발했다.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숙련 수준이 올라간다는 전제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작업장 정리부터 세세한 것 하나하나 개선하면서 생산성을 극대화시켰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노조운동의 영향으로 정규직 고용안정이 보장됐다. 제조대기업들은 1990년대 설비 등 대규모 자본재 투자를 했지만, ‘미세작업관리’ 등으로 알려진 생산혁신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노동조합과 회사는 생산성과 고용안정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상생할 수 있었다. 제조대기업의 성공은 성실하게 숙련을 쌓아올린 생산직의 성공이기도 했다.

생산직의 교육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제 제조업 고용을 예전처럼 지키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숙련으로 인건비를 만회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동화로 숙련의 영향이 줄었고, 글로벌 경쟁 속에서 완성품 대공장이 노동자를 예전처럼 많이 고용하기 힘들어졌다. 전체 노동이 줄어든 상황에서 고용이 보장되는 이들을 뺄 수 없으니 하청·하도급 노동자들을 늘렸다 줄였다 하게 된 부분도 적지 않다. 기업들이 이미 국내 생산단가가 맞지 않아 해외 생산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중국·동남아의 인건비는 차치하고 미국의 이민노동과 경쟁하는 것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자들로서는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게 어렵다면, 인접 기술이나 공학을 배우고 익혀서 상위 직무로 배치되거나 다른 기업으로 옮겨야만 한다. 생산직들이 결국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물론 정책의 몫은 더 크다.

아이디어를 많이 주는 나라는 독일일 것 같다. 독일에서 중학교 이후 직업교육과 학문교육으로 진로가 나뉘는 것까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산직 직업교육을 받더라도, 인턴십을 진행하고 취업을 하는 과정 그리고 취업을 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국가와 지방정부가 배움의 체계에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표현으로는 평생교육, 독일의 표현으로는 ‘계속교육’이 이어져 직업 전망과 연결된다. 국가는 기업들과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해 직무 표준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연방직업교육연구소(BIBB)는 산업체가 요구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을 개설하고 국가자격증을 만들어낸다.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직무기술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한다. 더불어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의 편차를 줄이고 직무수준으로 임금을 매길 수 있게 표준화했다. 기술이 있고 배우려는 의욕만 있다면 임금하락 없이 연관된 직무로 부품·소재·장비에 특화된 세계최고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으니 고용불안에 시달릴 이유가 적다. 프랜차이즈 창업이나 자영업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다. 직업교육이 아니라도 시민대학을 다니면서 대학수준의 교육을 받고 학위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안을 보면 생산직의 숙련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담겨있다. 생산직 신입사원들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을 늘리고, 취업연계형 대학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위기의 사업장에 있는 숙련 노동자들이 교육을 통해 역량을 업그레이드해 재취업할 수 있게 돕겠다는 계획도 있다. 생산직 교육과 숙련이라는 문제는 정부도 피할 수 없다고 인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추경예산안의 제조업 관련 대책은 검토되지 않은 채 정국의 대치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에 처한 지역 대학들의 역할 문제도 생산직의 직무교육이라는 질문과 함께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의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이 생산직들에게는 ‘4차산업혁명’ 시기에 필요한 공학과 자연과학 지식을 배우는 직업교육의 장이자, 인문학·사회과학 공부를 할 수 있는 배움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직 직무에 대해 훨씬 더 촘촘한 표준체계와 이에 연계된 고용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평생교육 체제를 재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생산직들이 정말로 배움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끝없이 무언가를 배워야만 하는 사회가 옳은지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조업의 전환 문제를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과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문제로만 환원하는 데에서는 빠져나와야만 한다. 그러기에 한국 경제의 30%를 담당하는 제조업에는 풀어야 할 근본적인 숙제가 너무나 많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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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봄비 오시는 날.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혀끝을 맴돈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꿈같던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 뒤돌아 살아가는 날들.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켰다.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이 궁금해. 혹시 99882314가 아닐까.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고 꼴까닥 죽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렇게 좋은 날 보고 가시지 서두르셨나요. 울 아버지 어머니, 당신 아버지 어머니. 우리라도 오래오래 살아서, 살아남아서 좋은 날 좋은 세상 구경합시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세상이 온통 파릇파릇, 올챙이 떼 웅덩이 가득 헤엄치고 개구리는 마당에서 담박질. 대나무 식구들은 일가친척 수도 없이 모여 살면서도 무엇이 또 아쉬워서 아기 죽순들을 저렇게 ‘다산’하는 것인지. 정말로 우후죽순. 낳고 낳고 또 낳고, 징하게도 많이 낳아 복작거리며 산다. 빽빽한 대숲.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텅 빈 가난에도 허리가 휘는 찬바람에도 견디고 또 견디는 저들. 대나무를 몇 그루 쪄서 울타리를 보수했는데 금세 그 빈자리에 죽순이 불쑥 올라와 있구나. 누구도 못 이긴다.

울먹이고 외롭던 새. 알을 몇 개 부여안고 빗속에서 애지중지. 아기 새들 눈뜨면 엄마는 진종일 먹이를 물어 날릴 것이다. 나눠 먹으라고 꾸짖으면서 엄한 교육도 마다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다보니 99세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강어귀 물살이 일렁이고 소금쟁이 한 마리 지팡이를 짚으며 물위를 헤엄쳐 다가온다. 예수처럼 누구처럼 물 위를 아슬아슬 걸어오는 평화여! 봄비 세상을 관찰하다가 당신 얼굴을 보았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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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이었으니까 약 석 달 전이다. 인천 선학 빙상경기장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웨덴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장 밖이 시끌시끌했다.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대한애국당 당원 수십명은 차량 앰프 볼륨을 잔뜩 높여두고 욕설 섞인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경호가 삼엄했다.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선수단이 도착했고, 격리나 다름없는 경호 속에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몸을 푸는 모습을 통유리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양쪽 선수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자국 운동화를 신었다. 흰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한쪽에 따로 모였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도, 선수들 마음 사이의 거리도 아직은 좁혀지기 전이었다.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다. 훈련을 마칠 때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취재구역에 선 그들에게 취재진은 “얼마나 가까워졌냐”는 질문을 채근하듯 쏟아냈다. 비슷한 답이 반복됐다. “잘 지내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남과 북 그런 거 없다”. 가끔 날 선 대답이 삐져나오듯 툭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할 일 아니다”. 그럴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했다.

단일팀은 급조됐다. 정치권이 서둘렀다.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삐걱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막연한 설득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쓰는 말이 달랐다.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한 선수들이 여럿이었다. 영어와 남한 말과 북한 말이 얼음 위에서 자꾸 엉켰다. 전술 회의 때는 통역의 시간이 있지만 쉼없이 움직이는 경기 속 여유는 없다. 급하면 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패스가 빗나갔고, 수비 라인이 정돈되지 못했다. 빈 공간이 생겼고, 자꾸 골을 먹었다. 경기는 다 졌다. 어린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전에서 첫 골을 넣었고, 0-8로 졌던 스위스를 만나 0-2로 잘 싸웠다. 단일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에서 2피리어드 막판까지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마지막 경기를 끝냈을 때 선수들은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신발끼리 모여 있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훈련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셀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것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한 스킨십과 훈련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게 한 것은 함께 먹은 ‘밥’이었다.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일팀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묻는 질문에 랜디 희수 그리핀은 “이틀 전 아침 식사 때 선수촌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다. 다들 맥도날드 앞에 줄 서 있길래 우리도 같이 줄 섰다. 아침 식사인데, 북한 선수들이 맥플러리(아이스크림)를 먹길래 같이 먹었다. 아침으로 맥플러리를”이라며 웃었다. 마지막 회식은 고깃집에서였다.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 별로였단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 오면 옥류관 냉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김희원은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곱빼기로 사준다고 약속했다. 언니들이 진짜 평양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북한 선수들이 버스에 올랐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틈을 메운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냉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직접 면발을 뽑은 ‘평양랭면’은 미식의 단계를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화해와 평화는 당위에 기반한 구호와 선동에서 오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과 랭면이 시작이다. 단일팀이, 스포츠가 찾아 보여준 길이다.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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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슈퍼마켓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반나절 동안 동네를 누볐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힌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중학교 때 단골 빵집에서 여러 개의 빵을 구입하면, 사장님이 하나 정도는 덤으로 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교 시절 학교 부근 극장은 ‘동시상영’으로 영화 두 편을 함께 보여주었는데, 반값에 한 편만 볼 수 있게 해달란 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던 우스운 사건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경험하기 어려울 추억의 편린들이 되어버렸다. 골목상권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그 자리를 대형마트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제과점, 멀티플렉스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점점 생존하기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전통시장과 작은 가게들을 살리고자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일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자를 규제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포츠와 달리 시장경제에서는 체급과 무관하게 모든 선수가 같은 경기장에서 자웅을 겨룬다. 심판이 헤비급 선수에게 체중을 줄이도록 하거나 가끔씩 한 손을 쓰지 못하도록 해도 경량급 선수가 넘어서긴 역부족이다. 경량급 선수의 기술과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낫다. 핵심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자체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골목상권의 부활을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협동조합연합회의 활성화를 제안하고 싶다. 협동조합은 경제적·사회적 약자가 결합하여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법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도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됨으로써 5인 이상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단시일 내에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개별 협동조합들은 시장의 강자와 맞서 경쟁하기 어렵다. 이들이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만 기존의 강자와 대등한 경쟁을 벌여갈 수 있다.

협동조합연합회는 셋 이상의 협동조합이 연합하는 것을 말한다. 유사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업별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이들이 합세해 연합회를 결성해야 협동조합이 대형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조직과 자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또한 연합회는 1차 산업 협동조합이 생산한 제품을 2차 산업 협동조합이 가공하고 3차 산업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조를 만든다.

연합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협동조합을 지역별·산업별로, 횡적·종적으로 촘촘하게 연결시킨다. 가령, 밀생산자·농산물유통업자·판매자·제과점이 같은 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되어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시설·농산물판매점·제과점의 시설을 만드는 건설업자와 내부를 꾸미는 인테리어업자도 연합회에 참여한다. 건설협동조합이 연합회의 구성원들을 위해 주택을 분양할 수도 있다. 연합회에 소속된 소비자에게는 할인혜택을 주고, 연합회 소속 협동조합이 파산할 경우에는 재기할 수 있는 자금 등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연합회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소속 협동조합들을 긴밀하게 연계시켜 준다.

연합회 산하에 있는 협동조합들이 상호 간에 일거리와 인프라를 제공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대표적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는 레가쿱과 컨프코퍼레이티브 등의 협동조합연합회가 협동조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실제 협동조합연합회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이탈리아의 유통협동조합들은 다국적 대형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않다.

협동조합연합회가 활성화할 수 있는 토양을 구축해야 한다. 2014년 법개정으로 연합회의 공제사업을 허용한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정책적 지원으로 연합회가 공제사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연합회는 연합회의 근간이므로, 지자체는 지역연합회의 토대가 단단하게 구축되도록 독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자체 입찰 시 가산점 부여, 지원기금과 교육 등이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다.

한편,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정부는 연합회의 설립과 활동에 있어서는 규제를 자제하되, 사후적으로 벌칙규정을 통해 연합회에 무임승차해 무위도식하려는 사람들을 강하게 규율해야 한다. 또한 연합회가 카르텔을 통한 가격담합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을 해야 할 것이고, 사유화를 막기 위한 임원 임기의 엄격한 제한도 요구된다. 약자들이 뭉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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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쯤 독일에서 출간되는 현대음악 사전에 ‘코리아’ 항목 원고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별 어려움 없이 쓸 거라 여겨 수락했는데, 요청사항에 북한 현대음악도 들어있어 멈칫 당황했다.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기도 했거니와 ‘코리아’에 북한도 포함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인식했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분단은 다른 한쪽의 존재조차 의식에서 지워버렸던가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폐쇄된 사회, 지척에 놓여있으나 심리적으로는 머나먼 존재였다.

최근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과 남한의 대중예술단이 상호 방문 공연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다른 체제의 이질적인 문화라도 음악을 통해 거리감이 좁혀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음악정치’가 양 진영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남북 간의 그것은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4월 3일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에서 남북 가수들이 ‘우리의 소원’을 함께 부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가수들이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듯이 남한에서 연주되는 북한 음악도 있다. 아리랑 선율을 관현악으로 자유롭게 풀어낸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서울에 온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에서 소개되었고, 2002년 KBS교향악단의 평양 공연에서도 두 악단의 합동 연주로 울려 퍼졌다. 2008년 로린 마젤이 이끈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 2012년 정명훈이 주도한 북한 은하수관현악단과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의 파리 합동 공연에서도 앙코르로 연주되며 널리 알려져, 이제는 우리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도 즐겨 연주하는 곡목이 되었다. 거문고 독주곡 ‘출강’ 역시 남한으로 월경한 북한 창작곡이다. ‘쇠가 나온다’는 뜻의 이 곡은 북한 작곡가 김용실이 1960년대 흥남제련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활력과 고단함을 담아낸 작품으로 1990년대 중반 일본을 통해 남한에 전해졌다 한다. 북한에선 악기개량 후 거문고가 연주되지 않아 오히려 남한에서 거문고 레퍼토리로 정착했다.

민족성과 대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북한 음악에는 순수기악곡보다 성악곡이나 민요 선율을 토대로 한 기악곡이 흔하다. 2012년 은하수관현악단의 파리 공연에서 악장 문경진이 앙코르로 연주한 백고산의 ‘닐리리야’도 그 한 예다. 일제강점기 조선 반도 전체에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고 1950년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에게 배웠으며 이후 북한 바이올린계의 멘토였던 백고산. 그가 남긴 무반주 바이올린 곡들도 우리에게는 관심이 가는 대상이다.

사실 남북한 음악교류의 물꼬를 튼 건 재독 작곡가 윤이상이었다. 그가 1990년 10월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성사시켜 황병기를 단장으로 한 서울전통예술단이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그해 12월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에 왔을 때 북한의 대표적인 개량악기 ‘옥류금’이 소개되어 우리 국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국악과 양악으로 양분된 남한과 달리 북한은 개량된 전통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배합관현악’ 편성이 특징이고, 관현악단 레퍼토리도 서양 클래식보다는 북한 작곡가들의 창작곡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의 음악적 유산이 최근 늘어나는 남한의 서양악기와 국악기 혼합 앙상블 시도에 또 다른 상상력을 제공할지 모를 일이다. 남북 예술교류가 본격화되면 음악가들의 합동 공연도 활발해질 것이다. 교향악단 연주에선 클래식 음악이 주 레퍼토리가 되겠지만, 여러 형태의 앙상블에서 남북이 함께 연주할 만한 좋은 창작곡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매년 가을 평양에서는 윤이상음악회가 열린다. 1998년 남북한의 연주자들이 첫 합동 공연을 가진 이래, 2008년 첼리스트 고봉인의 협연 외엔 어떤 만남도 이어지지 못했다. 올가을에는 남북의 음악가들이 그곳에서 윤이상의 작품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매년 봄 찾아오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관현악단의 연주를 듣게 될 날은 언제일까? 북한의 젊은 연주자들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해 실력을 겨루게 될 날도.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가 정착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이희경 음악학자 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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