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시애틀 공항에 와 있다. 목적지는 알래스카. 한국에서 출발하는 알래스카행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에 시애틀에서 10시간 정도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경유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곳이 잠 들기 싫을 만큼 매력적인 항구도시 시애틀이라는 사실은 예기치 않게 받은 ‘리본 달린 일요일의 선물상자’ 같은 느낌이다. 안타까운 점은 나의 모든 살아 있는 감각으로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반나절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겠는가?

10년 전 이맘때 나는 그런 행복한 고민 속에서 시애틀을 대표하는 작은 항구에 가서 물고기 요리를 사 먹었고 관광객이 거의 없는 평범한 동네를 산책하며 ‘시애틀에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조금 음미해 보았다.

짧지만 ‘나만의 시애틀’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반나절이었다.

앗, 그런데 나만 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다른 일행들이 선택한 장소는 놀랍게도 스타벅스 1호점이었다! 나도 안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앞에 문을 연 원두만을 판매하던 스타벅스가 커피 하나로 세계적인 주류 문화를 만들었고 그리하여 거대 기업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So What? 기껏해야 그와 관련된 기념품 쪼가리 사는 데 돈을 더 내는 일밖에 없을 것 같은 스타벅스 1호점이 뭐라고, 그 귀한 시간에….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커피숍 테라로사의 로스팅실에서 로스팅을 끝낸 원두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랬던 내가 최근 강릉의 최고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테라로사 1호점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와~, 주말이면 인근에 교통 체증이 일고 관광버스 타고 온 관광객과 함께 줄을 서서 커피를 사는 카페라고 하더니,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와볼 만하구나. 무슨 커피 매장이 웅장한 느낌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네. 그것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적인 도시에 있는….’

언제부터인가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일개 상점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된 채 그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를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 미술관처럼 의미있게 개조되고, 하나의 공연이나 전시인 듯 연출되는가 하면 체험이라는 설렘까지 갖게 하는 상점 그 이상의 제3의 공간들 말이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에서 쇤브룬성 다음 가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월드나 자동차의 모든 걸 체험할 수 있는 VW 아우토슈타트, 뉴욕의 허드슨 호텔, 베니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더블린의 기네스 하우스 같은 곳들이다.

예컨대 테라로사도 바로 그런 곳인데 더욱더 놀라운 건 테라로사는 렌조 피아노나 안도 다다오 같은 유명한 건축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은행원 출신의 바리스타로 알려진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가 직접 설계부터 시공 감독까지 도맡아 해냈다는 것.

게다가 커피 콩 한 알 생산되지 않는 강릉이 느닷없이 ‘커피의 도시’로 재탄생한 것도 알고 보면 테라로사의 공이 크다. 2002년 강릉에 커피 볶는 공장을 먼저 시작한 이후 커피 생두를 로스팅해 팔며 바리스타 교육도 병행했는데 그곳 테라로사에서 배운 문하생들이 잇달아 카페를 창업하면서 강릉이 커피의 고장으로 변신했다고. 게다가 전국 10개 지점에서 일하는 직원 20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아파트 등 사택을 제공하는가 하면 해외 연수 비용에 자녀 대학 학비 문제까지 해결해 주는 커피전문점이라니 스타벅스가 부럽지 않겠구나 싶다.

솔직히 말하면, 아니 김정은 스타일로 말하면 “스타벅스, 이제 안되갔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예전엔 로스팅한 원두 커피 자체가 특별한 고급 음료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조금도 그렇지 않다. 이제 모두들 집에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원두 커피를 즐기고 있고 편의점에서 파는 1200원짜리 원두 커피가 제법 맛있어서 카페 갈 일이 점점 줄고 있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어쩔 수 없이 할리스나 탐앤탐스 같은 매장에서 비싼 커피를 사야만 할 때가 오면 은근히 부아가 날 지경이다. 그러니까 학자금 대출이나 월세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쥐고 마치 명품 핸드백을 차고 다니는 기분을 느끼던 시대는 이제 확실히 끝났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그 정도 수준의 원두나 매장 인테리어 가지고는 가격 대비 가치를 못 느낄뿐더러 유행마저 지났다고 선언해도 좋을 지경이다.

그렇다. 이제 스타벅스의 시대는 가고 테라로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무엇보다 비싼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는 토종브랜드라 반갑다. 더 반가운 건 ‘메이드 인 피렌체’처럼 ‘강릉’이라는 지역성으로 더 고급화할 줄 아는 세련된 자기 철학의 힘! 남의 힘 빌릴 거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힘 있고 영향력 있는 거대한 무언가엔 기댈 필요 없다. 그냥 우리 스스로 만들면 된다. 테라로사의 발견에서 그것을 읽는다. 무엇보다 평화와 함께 올 남북의 거대한 경제협력 속에서 우리 모두 저마다의 ‘테라로사’를 일굴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더 많은 지역성과 함께 더 자주 열릴 거라는 기대와 믿음. 그것에 건배!

<김경 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일 발표한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성희롱을 직접 당했다는 피해자가 66명, 가벼운 성추행이 61명이었다. 이어 심한 성추행이 13명, 음란한 전화·문자·e메일을 받은 경우가 19명이었다. 심지어 강간 및 유사강간 피해자도 2명, 강간미수 피해자가 1명 있었다. 150건 이상의 성범죄가 국회에서 저질러진 것이다. 가해자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다. 성범죄 대응에 앞장서도 모자랄 국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각한 것은 성범죄 건수만이 아니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여성이면서 낮은 직급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가해자는 높은 직급의 남성에 집중됐다. 성희롱 가해자에는 국회의원 8명이 포함됐다. 국회 내 성폭력이 위계질서와 권력 관계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희롱이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의원회관 사무실이고, 근무 중이나 퇴근 후를 가리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피해를 당해도 이를 알리지 못하거나 제대로 도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중 42%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도움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쯤 되면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강간·유사강간을 당한 사례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0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강간미수에 대해서도 52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피해사례가 더 많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첫 조사에서 만연한 성차별 구조와 허술한 성폭력 대응 시스템이 드러났다. 그런데 유승희 특위위원장은 “이번 설문은 현황파악을 위한 것이지 가해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게 목표일 수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며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응답했기 때문에 조사와 처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급 보좌직에 여성 채용을 늘리거나 성범죄 신고의무를 신설하는 등 제도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미온적인 대응이다. 국회 내 성범죄가 만연한 조직 문화를 근절하는 과제는 피할 수 없다. 피해 사실이 드러났으면, 가해자를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재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한항공 직원들이 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연다. 노동조합이 아닌 일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총수 일가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잇따른 갑질과 각종 불법·탈법 행위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촛불집회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스톱(STOP)’을 촉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촛불집회는 조 회장 일가의 각종 갑질 행태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온 뒤 만들어진 카카오톡 익명 오픈채팅방에서 추진됐다. 채팅방에는 대한항공 직원 2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검은색 계열 옷에 ‘벤데타 가면’ 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할 예정이다. 회사 측의 불법적 채증과 신분 확인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벤데타 가면’은 영화 &lt;브이 포 벤데타&gt;의 주인공이 쓴 것으로 저항을 의미한다. 직원들을 머슴처럼 다루고 세습경영으로 회사를 망가뜨리려는 총수 일가를 향한 분노는 촛불집회의 구호인 ‘이게 회사냐!’ ‘물러나라 조씨 일가, 지켜낸다 대한항공’ ‘조양호 아웃(OUT)’ 등에 응축돼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게 된 것은 전적으로 조 회장 일가의 책임이 크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총수 일가의 밀수와 탈세 의혹으로 번졌다. 직원들은 증언과 제보를 통해 총수 일가의 불법·탈법 행위를 연일 폭로하고 있다. 특히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은 충격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공사장에서 직원들에게 난동을 부리고,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에게 욕설을 퍼부은 이 이사장의 갑질은 차라리 만행에 가깝다.

급기야 소액주주들도 대한항공의 기업가치를 훼손한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해 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해임을 결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조 회장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통렬한 반성과 함께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에 반복해왔던 것처럼 여론의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은 그룹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갈 수밖에 없다.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가며 총수 일가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재벌 기업의 구태를 시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조 회장에게 결단의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8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남북한 여자탁구가 전격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했다. 대한탁구협회는 대회에 참가한 남한 여자대표팀이 북한과의 단체 8강전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경기 없이 4강에 올랐다고 3일 밝혔다. 남북한이 탁구 단일팀을 구성한 것은 19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당시 단일팀 코리아는 중국을 꺾고 단체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번 단일팀은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주선에 따라 현장에서 이뤄졌다. 현지에서 벌어진 국제탁구연맹 재단 창립기념회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펼쳐진 남북연합팀의 시범 경기 도중 바이케르트 회장의 제안으로 남북 대결 없이 단일팀을 구성해 4강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남북이 사전협의 없이, 그것도 현장에서, 선수단끼리 합의한 단일팀이 그대로 성사되었다는 것은 ‘판문점선언’ 이후 완전히 달라진 남북관계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남북한 정상이 협의 없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오간 것과 마찬가지로 민간교류 역시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단일팀 유니폼이나 단일기가 준비되지 않았지만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27년 전 지바대회 때 쌓은 탁구 단일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46일간 합숙훈련 및 대회출전을 통해 현정화·홍차옥·리분희·유순복 등 단일팀 선수들은 작은 통일을 이뤘다. 남북한 선수들은 이후에도 각종 국제대회 때만 되면 친남매처럼 스스럼없이 지냈다. 비록 지바대회 이후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못했지만 46일간 쌓은 단단한 신뢰가 27년 만에 다시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초석이 됐다. 또 탁구가 남북교류의 선봉장을 맡아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탁구 단일팀 구성이 결코 어느날 느닷없이 성사된 ‘깜짝쇼’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 체육이나 문화 교류는 어떤 정치적인 고려나 절차 없이도 남북 양측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이뤄낼 수 있다. 이번 탁구 단일팀을 오는 8월 열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이벤트에서 남북한이 더욱 화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마중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체육 분야뿐 아니라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과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등 문화교류도 더욱 활성화 되길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완벽한 군인이다. 늘 용감하고, 잠들지 않으며, 적을 놓치지 않는다.” 로봇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인 지뢰를 평한 말이죠. 이렇게 효과적인 무기가 또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지뢰 하나를 생산, 설치하는 데 싸게는 3달러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적은 다리를 잃고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요. 196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 1억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어왔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뢰의 공포는 전쟁이 끝나도 쉬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죠. 숨겨진 지뢰 제거에는 하나에 300달러에서 1000달러나 듭니다. 비용이 많이 드니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이 때문에 민간인 희생이 커집니다. 밭을 일구다, 공을 차다 지뢰를 밟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비극임은 물론 경제 개발에 큰 걸림돌이기도 하죠. 지뢰 제거는 그래서 인권의 문제이자 사회 발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심어 놓으면 제거하기 힘든 것은 지뢰뿐 아닙니다. 비 올 때마다 한 뼘씩 솟아나는 대나무도 있고, 날마다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도 있죠. 공포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 공포의 근원에는 좌우 대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친일 세력은 해방과 더불어 몰락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군정의 은혜를 입은 이들은 ‘빨갱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활하죠. 그 공포는 신앙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사활이 달린 문제였으니 필사적으로 전파했죠. 한국전쟁으로 정권을 거의 잃을 뻔했던 이들은 자신도 공포를 마음 깊이 심었습니다. 그 공포가 깊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갔죠.

그래서 이들은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꿨지만, 친미, 반공 말고는 별 사상적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 공포만 지키면 권력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공포 장사는 또 얼마나 쉬웠던가요. 북한은 간간이 도발을 해주었고 필요하면 간첩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서리 치며 입을 닫고 눈을 감았습니다. 유럽에서도 북한 식당 들어가기 겁이 났고, 온라인에서도 종북이란 딱지가 붙을까 눈치를 봤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K팝이 전 세계를 흔들어도 공포는 그렇게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해방부터 이제껏 공포로 연명해온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발언들은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위장평화쇼” “주사파들이 남북관계를 보는 눈”이라는 독설을 이어갔죠. ‘비핵화 논의’가 안되면 무의미하다며 투정부리다 논의가 되자 ‘북핵 폐기’가 아니라 소용없다며 생떼도 썼습니다. 극우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의 정치쇼일 수도 있고 민심을 못 읽는 무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웃을 수만은 없죠. 우리 모두의 공포를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그 공포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서 공포를 극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기와 연대가 당장 해결책은 아니지만, 괴물에 대한 공포만큼은 이기게 해준다는 경험을 말이죠. 공포가 없어지면 괴물도 허수아비일 뿐임도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을 통해 보았습니다.

남북 문제의 절반은 우리 마음속의 공포입니다. 그러니 용기와 남북 연대만 되살릴 수 있다면 문제는 뜻밖에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이 더더욱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만남보다 용기를, 그리고 연대에의 희망을 주었으니까요. 갈 길은 멀고 험합니다. 실패와 실망에도 대비해야죠. 하지만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걷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그 질기고 오래된 공포를 없애는 참에 지뢰도 제거해야겠죠. 한반도에는 100만개도 넘는 지뢰가 묻혀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휴전선 지뢰 제거는 꼭 필요한 일이고 남북 간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고 휴전선 일대가 진정한 평화의 영토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죠. 공포와 지뢰가 없어진 그 땅 너머로 우리의 아이들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웃음을 이어갈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특별히 눈치채지 못한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비핵화가 남북이 아니라 북·미 간의 문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비핵화가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간 문제라고 얘기하면 친북, 종북, 북한 대변인 소리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는 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판문점선언문에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매우 간략하게 나왔어도 사람들은 성공한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다. 이제 사람들은 북한 핵이 북한 내부용이나 남침용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개발되어 왔다는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을 위해서 앞으로 우리는 미국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을 제거하고 그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오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건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가 광적이고 혼란스러운 불량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이고, 또 최고 정책결정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전제다. 왜냐하면 핵전략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제하에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의 핵전략이 방어용이고 억지력을 위한 전략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북한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임을 확인하여야 한다. 만약 북한이 정말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파악되면, 북한에 핵이 필요없는 안보환경을 만들어 주면 북한은 다시 합리적으로 핵개발을 역진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북한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로서 핵개발을 해왔는지를 파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 핵개발 패턴이 다른 정상국가의 핵개발 패턴과 일치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서 확인하는 방법이다. 물론 수집한 관련 데이터도 일관적으로 북한의 정상성과 합리성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판단을 거의 종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 핵개발은 충분한 폭발력을 확보하는 핵실험, 원하는 거리까지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운반수단 실험, 핵탄두의 소형화·다종화·표준화를 통한 대량생산과 2차보복능력 확보 등 기존 핵무기 개발 국가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의 지도부가 얼마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지는 아마도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요원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접 확인했을 것으로 보이며, 또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북한은 여타 정상적인 국가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 의전을 소화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이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무력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 찌르기”라는 발언도 억지력 관련 핵전략을 정확히 이해하는 발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핵을 가질 필요가 없는 외부환경을 만들고 북한 핵과 교환하는 일뿐이다. 사실 핵무기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항상 위협적인 무기는 아니다. 미국의 핵무기나 영국·프랑스의 핵무기, 그리고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우리는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들 국가와 전쟁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국가관계라면 핵무기가 있어도 위협으로 느끼질 않는다. 반면 전쟁상태에 있는 적성국이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면 이는 엄청난 위협이다. 지금 북한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합리적 행위자들 간 비핵화의 첫걸음은 전쟁상태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우호적인 국가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전과 평화, 수교, 신뢰구축은 비핵화의 여정에 필수적인 것이고,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이 문제를 매우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축복을 부여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비핵화의 여정에서 북·미관계가 최소한 미국·베트남 관계 정도로만 발전해도 북한은 확실히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보면 이미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는 막후에서 종전과 관계정상화, 수교, 그리고 비핵화의 여정으로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는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무적 장벽들이 발생할 때마다 정상들이 신속하게 개입하여 효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해결 의지가 임기 초반부터 워낙 강하여 이번엔 정말 될 것 같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버지가 한 달여 전 암수술을 했다. 3년 전에 이어 두 번째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다. 아버지는 지난해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며 안과를 찾아갔다.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눈에 여러 번 주사를 맞았는데, 앞으로도 더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1934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여든다섯. 젊을 때 앓아누운 적이 없다 했으나 세월엔 장사 없는 법이다. 차에 탈 때 아버지는 느릿느릿 몸을 말아 넣는다. 

아버지가 몇 해 전부터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교실에 다닌다. 요즘은 엑셀 프로그램을 배운다. “느그 아버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부터 컴퓨터 배우러 간단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도 엑셀 잘 모르는데, 아버지가….” 팔순 노인이 엑셀을 배워 어디에 쓸까. 가계부를 정리할 것도, 사업계획서를 쓸 것도 아닐 터이다. 그저 세월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그런 생각이 아닐까?

지금 세상은 청장년 시절 아버지가 부대껴온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AI는 물론이고, 사물인터넷, 드론과 가상현실 체험까지 등장했다. 전상진 교수는 &lt;세대 게임&gt;에서 ‘시간의 실향민’이란 표현을 썼다. 변화의 속도에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이 과거 시대에 머물며 실패자로 낙인찍히는데, 이에 맞서 저항하는 노인 등이 ‘시간의 실향민’이라고 했다. 개발독재시대 때만 생각하며 박정희·박근혜를 연호하는 태극기 시위대를 두고 한 말이다. 한데, 이념 성향을 떠나 생각해보면 나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데 가랑이가 찢어지는 ‘시간의 지각생’이다. 1991년 입사했을 때는 원고지에 기사를 썼다. 수화기에 대고 기사를 부르거나 팩시밀리로 보냈다. 지금 기자들은 사건 발생 즉시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를 통해 뉴스를 뿌린다. 앞으로는 동영상 시대란다. 뉴스 제작환경은 천지개벽했다. 나도 눈이 핑핑 도는데 하물며 아버지는?

노인들이 체감하는 세상의 변화속도는 젊은이보다 더 빠르다. 과학적으로 그렇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느려진다.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몸이 못 따라가니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같이 느낀다.

아버지는 역사를 핏물로 기록하던 시대를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으로 큰형(내게는 큰아버지)을 잃었다. 장자를 잃은 상심으로 드러누운 아버지(할아버지)도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두 번의 군사쿠데타를 지켜봤다. 네 번의 민주주의 혁명을 체험했다. 4·19와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소년·청년·장년·중년·노년까지 그의 몸을 관통한 것이 다 역사였다. 때로는 총으로 쓰이고, 때로는 핏물로 기록되고, 나중에는 촛불로 밝힌 바로 그 역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이다. 어느 순간이 가장 강렬했을까. 자신의 목숨줄만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 위태로웠던 그런 순간들일 것이다. 내가 조금 힘들 때, 희한하게도 어려운 시절 아버지의 초조한 표정이 불쑥 떠오른다. 

아버지는 사업도, 장사도 했다. 한 10년 장사가 잘되다가도 갑자기 어려워지곤 했다. 정치·경제·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림살이만 변하지 않고 편안할 리 없다. 농경제, 경공업, 중화학공업, IT, AI까지 산업구조도 혁명적으로 변해왔는데 이런 구조적 변화를 끝까지 버텨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예전엔 사업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친지들이 쌈짓돈을 추렴해 재기 자금을 보탰으니까. 지금은? 말 꺼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끔 묻는다. “대통령은 어떠냐, 지방선거는?” 그러고는 내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포갰다.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 네 뜻대로….” 내 형제들이 “대학 졸업해도 취직하기는 저희 어릴 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면 아버지는 “내 손주들은 잘될 터이니 걱정 마라” 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아버지의 등에 업혀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문득 내 아이들이 나를 앞질러 가고 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돌아본다. 팔순 넘어서도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아버지. 

‘모든 역사는 현대사’란 말이 있다. 역사는 현재 건재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비틀어 생각하면 자신의 몸으로 역사를 썼던 주인공들인 노인들은 이제 기록자가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 객체가 됐다. 그래도 노인들은 현재의 끈이라도 잡으려 한다. 영어도, 컴퓨터도 배운다. 한데 청장년들은 그들이 걸어왔던 시절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할까. 눈부시게 찬란한 5월. 연초록 새싹도 늙은 가지에서 비어져 나오는구나!

<최병준 문화에디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님께.

저는 북한의 에너지 담당자입니다.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의 판문점선언을 접하고 가슴이 벅차올라 이 편지를 씁니다. 두 분은 선언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저는 이 발표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정했듯이 북한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1994년 제네바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어 미국이 약속한 1000㎿급 경수로 2기만 완공되었어도 에너지 상황은 꽤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북한의 인민은 199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전력을 공급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24개나 돌아가고 있고 한 사람이 소비하는 전기가 우리의 20배나 되는 남한에서는 경수로 2기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경수로는 지금 북한 전역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경수로 건설뿐만 아니라 중유 공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이 포함된 제네바합의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완공 시점으로 못 박은 10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지만, 경수로 건설은 처음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마칠 2000년경 독일을 거쳐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수학여행을 간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독일에서는 지붕에 태양광발전기를 올리고 벌판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이 한창이었고, 코펜하겐 앞바다에는 풍력발전기 20개가 세워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 중에 완공되지 못한 경수로 2기 건설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실패한 이유는 핵을 태양광이나 풍력같이 평화공존에 근본적으로 기여하는 대안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협하는 핵발전으로 대신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에 투입된 2조원 이상의 비용이 아까우니 경수로 2기의 건설을 재개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북한에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널리 퍼뜨리는 일을 남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저는 서해 북방한계선을 따라 풍력발전기를 세우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북방한계선은 길이가 200㎞가 넘습니다. 한계선을 따라서 250m 간격으로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800개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제주도 한경면 앞바다에 건설한 3㎿급 해상 풍력발전기를 그곳에 세운다면, 경수로 2기에 필적하는 2400㎿의 풍력단지가 남북 협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물론 10조원 정도의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수조원을 쏟아붓고 중단한 경수로 사업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비용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용의 조달과 발전단지 운영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 감명을 받은 코펜하겐 해상풍력단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20개 중 절반은 코펜하겐 전력공사 소유이고, 나머지 절반은 코펜하겐 시민 8000명 이상이 참여한 협동조합 소유입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남북한 정부에서는 공동으로 북방한계선 풍력발전공사를 설립하고, 남한의 시민과 북한의 인민은 공동으로 출자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북방한계선 구간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지금까지 남과 북의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분쟁지역이 평화의 구역으로 바뀔 것입니다.

판문점선언으로 이런 생각과 제안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수 조용필이 평양공연을 마치고 귀환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는 새벽 4시인데도 20여명의 팬클럽 회원들이 전날 밤부터 플래카드와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필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기다리는 40~50대 원조 오빠부대였다.

서울 지하철 7호선에는 엑소 멤버 시우민의 생일을 기념해 팬클럽의 의뢰로 8량 전체를 시우민 관련 게시물로 도배한 열차가 등장했다. 강남 삼성동 SM타운 코엑스아티움 지하도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팬클럽 광고판이 모든 영역을 점령했다. 엑소의 또 다른 멤버인 세훈은 생일축하 라디오 광고가 중국 팬클럽에 의해 만들어져 하루 2차례씩 12일 동안 방송되었다.

1960년대부터 해외 팝스타들의 한국 내한공연 때마다 열광하던 팬클럽은 1980년대 올림픽을 경유하면서 국내 특정 연예인을 집단적으로 지지하고 좋아하는 조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의 팬클럽은 전국적인 조직망에 체계적인 연락망까지 갖춘 기업형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2000년대 이후 다음웹툰과 네이버웹툰을 중심으로 어느 누구나 자신의 만화작품을 업로드시키면 누리꾼들의 조회수와 댓글의 충성도를 기반으로 정식연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웹툰의 댓글부대는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조직화는 되지 않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한 지지의사와 철저한 작가비판, 작품에 대한 조언 등을 실시간으로 제안하며 신인 작가를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주도적 역할을 장기간 챙기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인 댓글을 주도해온 팬클럽은 항상 기능적으로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가 된 인기 웹툰작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휴재(매주 연재 형식으로 업로드하는 작품을 1주 이상 쉬는 경우)를 한다거나, 스토리의 완성도와 연출의 집중도가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되면 가장 험악한 악플러로 변신하기도 한다. 양날의 검처럼 웹툰의 댓글은 인기 작가의 우울증 원인이 되기도 하고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양한 SNS의 플랫폼에서 모든 의사표현과 상호커뮤니케이션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팬덤은 이제 점차 개인중심적인 사고체계에 더 집착하게 된다. 본인의 판단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의 연속선상에서 스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감정기복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표현의 선도적 리더가 또 다른 충성도 높은 조직을 견인하게 되면 온라인상의 팬덤은 가상적인 네트워크상에서 종교적인 친밀감으로 조직화된다. 기존 가수와 배우 중심의 팬덤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온라인과의 연계 속에서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지켜왔다면, 현재 디지털 콘텐츠와 정치 네트워크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팬덤구조를 모듈식으로 진화시키며 각 조직의 치밀한 긴밀도를 완성해나간다. 그들만의 리그가 팬덤의 진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결국 그러한 팬덤의 충성도가 변질되면 압력단체나 이익단체의 성격으로 흐르게 되고 자신들만의 정의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좀비팬덤으로 점조직화될 수도 있음을 최근 이해하게 되었다.

브룩 실즈와 소피 마르소, 다이앤 레인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이던 소심했던 10대 팬덤은 이제 가수 이문세 노래를 듣고 추억을 호명하며, ‘소녀시대’와 ‘씨스타’의 해체에 서운해하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배우 손예진의 팬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주책일까 고민하는 중년이 된 지금, 예능 프로그램 &lt;투유 프로젝트·슈가맨&gt;의 등불을 마음속에 나도 켜보는 그런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팬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마음의 진솔함이 시작이고 완성이다. 대통령이 잘하면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팬덤의 시작이다. 그런 팬덤을 보고 싶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엔에서는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과 네덜란드,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이 모두 10위권 내에 포진하고 있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대표적인 분권국가라는 것이다. 국가 전체 인구·자본·문화의 대부분이 국토의 11%에 불과한 수도권에 집약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155개국 중 57위에 그쳤다.

지방분권은 조금 ‘덜’ 행복한 대한민국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처방이다. 중앙에서 획일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그에 따라 지방을 이끌고 가는 국가운영 방식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다만 단순히 지방분권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015년 지방행정연구원 주민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주민이 해당 지역의원, 단체장 및 공무원에 대해서 만족한다는 비율이 30%밖에 되지 않는다. 지자체가 내 지역의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없는 지방분권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분권화 시대를 맞이할 지방자치단체에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주민들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행정역량의 강화이며, 이를 위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평가 제도가 있다. 행정안전부는 2009년부터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자체가 수행하는 국가사무를 평가해 왔다. 전 국민이 지역적 차등 없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의 수준(national minimum)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할 주요 국가사무를 정하고, 이에 대한 지자체의 집행과정 및 결과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기존 평가는 평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시스템이어서 분권화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기존에는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하였고, 지표 수(數) 자체가 많았다. 이로 인해 지자체는 과도하게 경쟁하고, 중앙에서는 지자체의 부담을 의식하여 최종 결과로서 지표 분야별 평가 등급만을 공개했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도 해당 지자체가 어떤 이유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지자체에서는 평가 결과를 업무추진에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가 자체를 중앙의 간섭으로 인식하여 왔다. 분권화 시대에도 이러한 평가방식이 계속 유지된다면 지자체의 역량을 강화하고 주민의 신뢰를 받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권화 시대에 지자체 평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권화 시대의 평가란 ‘주민이 참여’하고 ‘정부는 공개’하는 평가가 되어야 한다. 정부신뢰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행정역량으로 주민에 대한 행정의 개방성(openness)을 들 수 있다. 주민은 평가 정보를 통해 내 지역의 중요한 일을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평가 과정에서 실질적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로 광범위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 지자체, 중앙정부 각자의 역할은 명확하다. 지자체는 주민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지역적 특색이 반영되는 사무를 스스로 지표로 개발하고 이를 스스로 평가하되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중앙에서는 전국적 통일성이 필요한 사무만을 평가 지표로 개발하고, 정보공개 플랫폼을 통해 지자체가 공개한 정보를 주민이 보기 쉽게 비교·분석하는 등 평가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 따라 행정안전부에서는 평가과정을 자동화하고, 평가지표에 대한 지자체 실적을 주민에게 상시 공개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각종 지방행정정보 공개 플랫폼을 평가시스템과 통합하여 관련 각종 통계도 함께 공개한다. 이러한 시스템적 기반 위에서 중앙-지방-주민 간 합리적인 역할배분을 추진할 것이다.

분권화 시대에는 기존과 같이 모든 정보를 중앙에서 독점하는 평가는 지속될 수 없다. 분권의 가치를 담은 평가제도가 필요하다. 향후 발전되어 나갈 지자체 평가제도에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윤종인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와, 진짜 환장하겠네. 아니, 멀쩡한 오토바이가 왜 그냥 자빠져요, 자빠지길! 뭐 제 오토바이가 빈혈이라도 걸렸답디까? 뭐 제 오토바이가 영양실조예요? 뭐뭐, 오토바이 바퀴에 쥐라도 났대요? 쟤네들이 발로 툭 찼으니까 넘어간 거 아니에요!

아니, 제가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경찰 아저씨도 지금 이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들었잖아요? 자기 아들이 그랬으면 대신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해줄 생각을 하셔야지, 오토바이 탓을 하면 어떻게 해요? 오토바이가 말 못한다고, 막 이렇게 오토바이를 몰아붙여도 되는 거예요! 아주머니한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저한텐 가족 같은 애라구요! 제가 쟤 이름도 지어줬어요, 바람돌이!

알았어요, 알았어요. 자, 그러니까 잘 들어보세요… 제가 지난달부터 배달 알바를 시작했거든요. 오토바이를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없는 돈에, 저랑 같이 자취하는 애한테 삼십 만원 빌리고, 저한테 있는 돈 탈탈 털어서 총 칠십 만원에 얘를 중고로 샀단 말이에요. 그러니, 얘가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그냥 제 전 재산인 거예요. 통장에 있는 돈이 은행 밖으로 나와서 밖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제가 얘를 밖에 세워두면 잠이 잘 안 오고 그랬어요. 제가 사는 자취방이 옛날 모텔을 개조한 원룸 건물이거든요. 거기가 월세가 싸서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제 방이 거기 반지하인데… 제가 매일 얘를 끌고 층계를 끙끙 거리면서 내려갔어요. 제 방 앞 복도에 세워놔야 맘이 놓여서요. 계단 내려가느라 제 무르팍이 다 까지고 그래도 행여 얘 기스라도 날까 봐 엄청 맘 졸이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정용이가, 아, 걔는 저랑 같이 자취하는 애인데, 아무튼 정용이가 그래요. 야야, 차라리 네 침대에서 같이 자라, 서로 껴안고 아주 뽀뽀도 하면서…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죠. 자취방 문이 작아서 못 들어오니까 문제지….

네, 네, 본론만 말할게요… 이 배달 일이라는 게요, 몸도 고되지만,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거든요. 콜 받아서 픽업한 후 배달 완료하면 한 건당 삼천 원씩 받아요.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세 건 정도 하는데… 얼핏 보면 최저임금보다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름값도 많이 나오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제하면 그냥 딱 최저임금 버는 거예요. 배달지를 잘 못 찾아서 허탕치는 경우도 많고, 별 거지 같은 걸 다 시키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까 그날도 제가 무슨 건축사무소 삼층까지 돌솥밥 세 그릇을 배달하고 나오는 길이었거든요. 돌솥밥 같은 건 식당에 가서 사먹으면 좀 좋아요? 거 꼭 사무실에 앉아서 그렇게 엄마가 해준 밥 같은 거 먹어야 하는지… 이건 그냥 돌덩이를 나르는 거잖아요? 돌덩이에 있는 밥을 나르는 거니까… 아무튼 제가 그거 배달하고 났더니 좀 진이 빠지더라구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커피 한 잔 사서 나왔더니… 얘네들이… 아주머니 아들하고 걔 친구가… 제 오토바이 위에 앉아서 아주 생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아주 무슨 경주마를 탄 거처럼 엉덩이까지 쳐들고….

 

네, 네, 그건 맞아요. 제가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죠. 가뜩이나 힘도 빠져 있는데, 웬 처음 보는 중삐리 애들이 제 소중한 바람돌이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렇다고 뭐 쌍욕을 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어딜 감히… 뭐 그 정도였죠. 제가 진짜 기가 막혔던 건요, 어른이 그러면 무안해서라도 빨리 내려와야 하잖아요? 하, 그런데 이놈들이 저를 빤히 쳐다보면서 잠깐 한 번 앉아본 거예요, 하면서 낄낄거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둘이 한꺼번에 오토바이에서 훌쩍 뛰어내리다가… 그대로 쿵, 도로 쪽으로 넘어진 거예요… 제가 놀라서 바람돌이한테 뛰어갔는데 이미 미러는 박살이 나고 왼쪽 깜빡이도 깨지고… 내가 이놈의 자식들을 하면서 뒤돌아봤더니… 이놈들은 벌써 저만큼 뛰어 도망가고 있고….

제가요, 이놈들 잡으려고 꼬박 이틀을 학교 앞에 서 있었어요. 그거 아세요, 일도 못하고 꼬박 이틀을 서 있었다구요! 우리 바람돌이 정비소에 맡기고… 이놈들 입고 있었던 교복을 제가 봐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이쪽 도시 학교 전부 다 뒤졌을 거라구요. 증거요? 네, 그럼요. 내가 그런 말 하실까 봐 편의점에서 미리 CCTV도 다 뽑아왔어요. 그런 거 있으니까 이놈들 잡자마자 파출소로 온 거죠. 제가 뭐 배달한다고, 뭐 그렇게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저도 엄연히 대학 나온 사람이라구요! 이거 이거, 이 화면 보시라구요, 아주머니 아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오는 순간 우리 바람돌이 넘어지는 거! 선명하게 보이시죠?

저 이거 그냥 못 넘어가요. 우리 바람돌이 수리비하고 제가 이틀간 일 못하고 공친 거 확실히 보상 안 받으면 오토바이 파손죄로 정식 고소할 거예요. 여기 경찰 아저씨도 있고 하니까… 네…? 얼마요…?

칠, 칠십 만원이요…? 그, 그러니까 칠십 만원으로 합의를 보시자는 거지요…? 뭐… 뭐 그 정도면 되긴 하는데… 우리 바람돌이가 칠십 만원이니까… 네… 네… 그렇게 하면 뭐….

저기 그래도… 애가 사과도 좀 하고… 그래야 앞으로 이런 일도 또 없을 거고… 아니요… 합의는 그렇게 보는 걸로 하는데… 네… 네…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아니요… 아무 불만 없어요. 칠십 만원이면… 정용이한테 빚도 갚을 수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애는 좀 주의시켜 주시는 게… 아니에요… 애 다칠까 봐서요… 네… 그럼….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