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선언’이 발표되자 제1야당은 이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하며, 국회에서 비준할 수 없다면서 어깃장을 놓는다. 이른바 보수계의 지도인사라는 사람들도 덩달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선언 발표 직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88.4%가 이번 선언이 ‘잘됐다’고 평가했고, ‘잘못되었다’는 평가는 7.7%에 불과했다. 또 보수 지지층 81.6%도 판문점선언을 긍정 평가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의 진정성에는 ‘신뢰한다’ 64.5%, ‘신뢰 못한다’ 29.8%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번 선언에 보여준 국민의 높은 신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진정성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문제 대상은 정치다. 평화주의자로서 나치를 피해 영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했던 빈 출신의 유대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다. 그는 프랑스혁명 때 민중의 증오를 한몸에 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담은 전기적 소설을 썼다. 이 작품 속에 “진정성과 정치가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유대인대량학살범으로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악의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한 여성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도 진정성은 정치적 덕목에 결코 속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권모술수의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정치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다고 생각되는 진정성은 그러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진정성은 우선 말한 내용 자체의 진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대신에 말하는 주체의 인격적인 통일성을 전제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의 진정성이 평가되기 때문에 진정성은 의무나 책임 같은 문제를 당연히 제기하게 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율에 이어 거짓은 곧 ‘영혼의 죽음’이며 진리의 근거는 신밖에 없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은 기독교문화권의 진정성 이해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올려 놓은 근대 계몽사상은 진정성을 이성적 존재의 의무로 보았다. 특히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을 요청했던 칸트의 실천이성은 이 같은 진정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했다. 정신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도 알고 선악의 구분도 한다’는 <논어> 속의 가르침이 있다. 인간의 본래적 속성인 수치심에 의거해서 사회관계를 파악한 유교문화권의 진정성에 대한 대표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성의 이러한 규범적인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 사상적 흐름도 있다. 이런 흐름은 진정성의 과도한 정당화는 단지 진정성으로 포장된 힘의 관계를 숨기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못하는 자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며 언어를 매개로 해서 굳어진 관습에 따라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의무’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비슷하게 노자의 무명(無名)사상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 속에 갇혀 있는 시비선악의 판단이나 진정성도 사실은 사회적 명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이나 지적이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치문화 현실을 보다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도 종종 받는다. 기성정치가 표방했던 진정성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를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소용돌이 속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은 더욱 심해졌으며, 살 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주민과 난민의 긴 행렬은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불안과 공포, 선동과 증오가 정치의 주요내용을 채우고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공약을 내세운 극우정당들의 약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차별 테러 등이 지구촌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지킬 수 있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확신을 지닌 많은 투쟁이 지구적 연대 속에서 벌어지고 있고, 깨어난 세계시민들의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지적 노력 역시 활발하다. 진정성에 의거한 정치의 복원을 위한 기획은 그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우리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치에 건 기대나 희망보다는 기피와 멸시, 아니면 체념과 냉소가 지배한 분단체제에서 정치의 진정성이 숨쉴 공간이 과연 있느냐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본다. 적어도 ‘4·19의거’(1960), ‘5·18민주화운동’(1980), ‘6월항쟁’(1987) 그리고 ‘촛불혁명’이 그런 체험공간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내가 우리 땅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건은 4·19의거였고 나머지는 모두 먼 외국땅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특히 눈여겨본 우리의 정치공간은 촛불혁명과 이를 뒤따른 판문점선언이다. 부패와 무능한 정권을 주권자가 평화적인 수단으로 몰아내어 정치에 있어서 진정성을 회복하고, 전쟁의 먹구름도 걷어내면서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밝은 전망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정치적인 것의 함의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70여년을 증오와 불신 속에서 시달려왔던 남과 북이 과연 서로 간에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여전히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김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서 나온, 진정성을 담은 발언이라고 판단한다.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문 대통령도 상대방의 이러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 판문점선언에 서명했다고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한 비방이 서로 오갔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도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상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차세계대전의 재앙을 체험한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정열,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을 꼽았다. 나는 여기에 진정성을 추가하고 싶다. 정치와 가장 인연이 먼 덕목일 수도 있는 진정성을 내가 꼽는 이유는 평화와 번영을 분명히 약속할 수 있는 한반도 땅에 정치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랫동안 불신과 증오, 실망과 냉소를 심어왔기 때문이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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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평가대상 63개국 가운데 29위였고, 그중에서 정부효율성 순위는 2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2014~2016년 사이 중앙정부의 신뢰도는 35개국 중 32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또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하는 2017년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는 180개국 중에서 51위로 100점 만점에 54점이었다. 10년째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투명성과 신뢰도는 정체돼 있었는데 국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식되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

지난해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사회적 가치 중시, 참여와 협력,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혁신전략도 타당해 보인다. 다만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혁신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근 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높은 국정지지율만으로 현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과제를 잘 이행하고 있다 판단하기는 이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부혁신’의 성과는 43개 중앙행정기관과 17개 광역자치단체가 사회적 가치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정책적으로 변화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232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부예산보다도 1.6배나 많은 641조원을 쓰고 있는 338개 공공기관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도적인 변화와 혁신을 하려 노력할 때 이행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제 말로만 하는 정부혁신을 끝내자”란 언론의 지적처럼 중앙정부의 하향식 혁신의 로드맵과 추진계획만으로는 정부혁신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혁신 과제를 계획대로 실천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 더 높은 공공서비스의 강화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혁신은 국민에게 헛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역과 각종 사회공동체에서 참여가 동반되는 사회혁신을 야기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정책환경에 부합하는 정책적, 제도적인 혁신방안을 내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접점에 있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변화와 혁신의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유보할 수 있다.

최근 공공기관의 개별 노동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처우개선과 전환절차에 대한 노사 및 노노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이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효율성과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공공기관의 존립 목적인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근 적극적으로 주요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공공성 회복이라는 혁신의 성과가 조만간 나타나길 기대해 볼 수 있다.

<라영재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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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어떤 당의 후보만 되면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런 지지도는 그 정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당의 급격한 몰락과 10여년 만에 멀쩡한 대통령이 국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좀 잘해달라는 애절한 염원이 지지도로 이어진 것이기에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땀 어린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권력을 낭비해버리지는 않을지 불안하다.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대통령이 탄핵되니 마니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갈 무렵 그 당시 제1야당의 당직자를 사석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대화 중에 현직 광역단체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나왔다. 그의 기반은 시민사회였기에 당내 세력은 약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을 이겨내고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를 두고 “다시 지방선거에 나온다면 염치가 없는 거지. 그 자리를 A도 노리고 B도 노린다는 얘기가 있는데”라는 얘기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방선출직은 당내인사가 돌아가면서 차지하는 자리,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거쳐 가는 자리에 불과하다는 저급한 인식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 4월1일부터 이틀간, 서울의 한 기초지자체의 지역언론에서 그 당의 예비후보 중 누가 그 지자체의 후보로 적당한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결과를 살펴보면, 상위 3인의 지지율은 C 19.1%, D 9.0%, E 8.6%였다. 아직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이 가는 사람을 질문한 결과는 C 21.7%, D 5.6%, E 3.0%였다. 후보가 여섯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C에 대한 지지도가 결코 작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C는 컷오프에서 탈락하여 경선에조차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경선은 D와 E가 치른다.

여론조사가 절대적 기준일 수도 없고, 컷오프 과정에서 C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심사과정이 비공개여서 어떤 이유로 C가 탈락하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만약 당의 지지율이 아직도 지지부진했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지역에서 여론조사 결과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C를 경선기회도 주지 않고 쉽게 탈락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여겨진다.

재심을 청구한 C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가 문제가 된 듯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의 정당, 구성원의 충성도를 저울질하여 자리를 내주는 정당, 그래서 공당으로 보기 어려운 당이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은 떡 주듯이 아무에게나 베풀 수 있는 하찮은 자리가 아니다. 주민의 생활개선을 위해서는 대통령보다도 중요한 자리일 수 있다. 그간 사리사욕만 채우는 선출직이 적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어떤 기초지자체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공공매입임대주택이 공급되지 않기도 하였다. 공공매입임대주택의 배정을 요청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권한이 기초단체장에게 있는데, 못사는 사람들이 자기 관할구역에 들어오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주민자치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C는 중간지원조직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치의 확대를 위한 활동을 오랜 기간 지속하여 왔다. 하지만 기초지자체의 협조가 없으면 주민자치의 확대가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초단체장에 도전하기로 다짐했다는 얘기를 2년 전에 들었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했었다. 우리 사회의 정치구조를 고려할 때 당내 기반이 없는 C가 경선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니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장을 꿈꿔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막막할 뿐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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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한반도 정세와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 한·중관계 전망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는 중국 친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나 역시 최근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입장, 그리고 중국 지식계의 시각과 방향에 대한 한·중 토론이 긴요하다고 판단하던 차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중토론이 가능했던 것은 촛불혁명 이후 그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양국 간 축적된 다양한 문제(사드는 물론이고 특히 중·미 간 경제·군사안보적 갈등 속에서 전향적 활로 찾기로 북한의 비핵화 경로 개입 필요성 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이번 회동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왕후이(汪暉) 교수 등은 중국 지식계와 정치사회 전반을 한국 사회의 활기와 접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아울러 한반도-아시아-세계의 전환적 계기를 이끌 새로운 관계상 수립을 위해 한·중 지식계가 지속적으로 사상대화를 할 것을 제의했다.

한국전쟁 이래 가장 위험스러운 전쟁위기 속에서 남북한 주도의 극적 전환으로 남북 정상이 65년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긴 하루의 동행과 평화선언을 이룬 감격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반도 분단체제라는 어둠의 시간들. 나의 기억 속에 그것은 7·4남북공동성명의 충격에서 시작됐다. 흑백 TV 속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에 반공 일체로 혹독하게 훈육되었던 어린 우리는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의 우리 또래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그 46년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다. 분단 모순의 극복과 도전, 굴절의 역사로 점철되었고 이제 발본적 전환이라는 절체절명의 계기를 맞았다. 

혹자는 그 시간성을 “박정희 정부에서 채택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이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남북연합’안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이어졌고, 다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8년 판문점선언까지 46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연속성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4·27선언에 담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과 통일방안이 박정희-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계승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전대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노태우 정권의 남북연합론이 ‘한반도 현실에 부합하는 방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6·15선언 당시 김대중 정부의 ‘남북연합’과 김정일 정권의 ‘낮은 단계 연방제’로 대응하였던 것을 토대로 실현가능한 경로로서 ‘남북연합’론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 핵심은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통해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상호 경제발전의 기초하에 남북 간 경제격차 감소로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체제 간 통일을 준비해가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을 연결하는 남북대륙철도 개통, 환동해권 경제협력벨트와 서해권 경제협력벨트 등 경제네트워크 확장과 이를 토대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남북연합론은 과연 어떤 사회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것인가. 종북프레임의 무력한 보수세력을 안는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미·중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가능한 해결 경로의 모색이라는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지난 46년 동안 남북관계가 모두 국가 수뇌부들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추동되었고 어떠한 사회적 수렴과정이나 민간 주도 통일 경로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정권교체에 따라 남북관계가 부침을 반복해온 지난 역정이 이를 입증한다.

한편 남한에서 냉전의 시간은 곧 권력과 자본의 시간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국가 주도이든, 자본이 주도하든 “더 이상 ‘바깥’은 없는” 자본의 세계화기획 일환일 수 있다. 한반도 분단 문제는 단지 미·소 냉전체제로의 편제로 인한 민족분단만이 아니다. 냉전분단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분단모순을 격화시켜왔다. 따라서 그 모순에 정박된 민중적 삶의 해결, 사회적 해방통일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촛불항쟁이 열어낸 직접적 민주주의의 정치사회공간을 한반도 해방통일의 상(象)과 경로, 다양한 주체를 일구어내는 생산적 논의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진정한 해방통일의 노선을 세우는 사상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세계화, 다원평등과 평화의 세계 구성을 추동해내는 중요한 계기이자 동력이 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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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주최로 지난 4일 열린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로스쿨 전형의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이 나왔다. ‘공익적 법률가 양성을 위한 입학·장학제도 개선’을 주제로 발표한 이재협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해가 갈수록 로스쿨 입학생들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나이가 어리고 (학력·학점 등의) ‘스펙’이 좋은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전형과 정성평가(定性評價)를 확대해 스펙이 좋지 않더라도 잠재력이 충분한 학생들에게 입학의 문호를 지금보다 개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타당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본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다양한 교육적 경험과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법조인으로 키워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법학전문대학원법 26조는 “법학전문대학원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를 입학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며 ‘학생구성의 다양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로스쿨 도입 초기에는 입학생들의 전공이 다양하고 사회 경험을 갖춘 고연령자도 많았으나, 갈수록 대학 학부를 갓 졸업한 ‘고스펙자’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해력과 암기력이 뛰어나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로스쿨 측에서 이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젊은 고스펙자들이 로스쿨을 점령하고, 변호사시험을 더 쉽게 통과하고, 나아가 검사나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더 많이 임용된다면 법조계 풍경은 어떻게 될까. 학력과 경력이 비슷하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해지게 마련이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의 색깔이 획일화할 경우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우려가 생긴다. ‘다른 삶’을 살아온 법률소비자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도 어렵게 된다.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로스쿨의 문호를 더 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로스쿨은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지, 변호사시험 준비를 위한 수험학원이 아니다. 본말이 전도돼서는 곤란하다. 서울대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대학 로스쿨들도 입학전형 방식을 개선하여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법학적성시험(LEET·리트)과 대학 학점 등 정량적 평가지표 외에 사회활동과 경력, 도전정신 등 정성적 평가지표 반영을 확대하거나 별도 전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다양한 법률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법조인 집단의 다양성이 우선 확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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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7일 국회 정상화 협상을 재개했으나 ‘드루킹 특검’ 등과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드루킹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의 ‘24일 동시처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선(先) 특검, 후(後) 추경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당은 지난 3일 남북정상회담 비준 동의안과 추경안 처리를 조건으로 한 민주당의 특검 수용 제안도 거부한 바 있다. 이번엔 비준 동의안이 빠졌으나 역시 퇴짜를 놓았다. 여야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정상화 시한으로 꼽은 8일 오후 2시까지 계속 물밑 조율에 나설 것이라고 하니, 막판 극적 타결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게 됐다.

‘8일 시한’은 9일로 예정된 정세균 의장의 멕시코 등 순방 일정과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의 임기 만료(10일)를 감안한 것이다. 민주당은 새 원내대표를 11일 선출하지만, 누가 되든 원내대표단을 새로 갖추려면 2주는 걸린다. 그동안 여야 협상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법안 한 건 처리하지 못한 채 문을 닫은 4월 임시국회에 이어 5월에도 빈손으로 끝날 판이다. 청년일자리 지원 등에 쓰일 추경안 등 밀려있는 민생과 경제 현안이 산더미다. 정부가 중소기업 취업 때 소득을 지원해주는 청년 공채 사업에 5만명이 몰렸으나 예산이 바닥나 추경예산 투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국회는 이런 비명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더욱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 국회의원 4명의 의원직 사퇴 시한(5월14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사퇴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4곳에선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국회가 꽉 막힌 것은 정치력 부재와 정치권의 의지 부족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다. 서로 한 걸음 물러서고 절충점을 찾는 것이 정치력이다.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겠다는데 ‘선 특검’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뜻과 진배없다. 특검을 요구하며 시작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은 다수 시민은 물론 다른 야당들한테도 지지를 얻지 못할 만큼 명분이 약하다. 이도 모자라 매일 의원 10명씩 릴레이 단식을 벌인다니 더 할 말이 없다. 드루킹 특검이 최대 선거 전략이라고는 하나 스스로를 고립무원의 곤경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태다. 이대로 지방선거를 치르려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당은 한 걸음 물러나 접점을 찾는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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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마디로 남쪽의 평양냉면집이 대박을 쳤지만 10년 전만 해도 금강산 국제관광특구에서는 ‘평양랭면’의 본맛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특구에는 평양 옥류관의 금강산 분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평양랭면 값은 12달러로 다소 비쌌지만 메밀을 빻아 조리한 면에 소·돼지·꿩고기 육수, 층층이 쌓아올린 고명은 분명 서울의 평양냉면과 다른 맛이었다. 그 평양랭면이 평양냉면으로 잠시 외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남쪽 냉면에 길들여진 관광객들이 심심하고 담백한 북쪽 랭면 맛에 불편함을 토로해 남쪽 냉면 맛에 가깝게 만들어봤다는 것이다. 외도는 짧았고, 2008년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길이 막히면서 평양랭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남북 경협의 맏형 격이자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를 운영했던 현대아산의 소회가 궁금해 전·현직 관계자 몇 명에게 전화를 돌려 소감부터 물었다. “현대아산의 20년 역사에 다시 전환점이 온 것 같습니다. 전반 10년은 희망가를 불렀다면 후반 10년은 희망을 기다리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기다림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요. 금강산 시설물을 마지막으로 본 게 2015년 말이지만 재개에 합의하면 3개월이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2001년인가 북한 군인들이 금강산 온천시설인 온정각에 몰려와 소독을 하느니 하면서 요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왔습니다. 목조건물인 온정각을 보고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며 북한도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해보라는 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북한 일꾼들과 어느 순간부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어요. 우리는 금강산관광을 개혁개방의 첨병으로 여깁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관광객 3000명이 오갔습니다. 북한 일꾼들은 그 모습을 다 눈에 담고 갑니다.” 금강산관광 10년간 총 관광객은 2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외국인은 1만5000명 정도. 당시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인에게 금지된 세계의 절경 5곳 중 첫번째로 금강산을 꼽았다. 해외언론도 금강산의 볼거리, 먹거리 등을 소개했다.

- 피격사건 이후는 어떻게 지냈나요. “잃어버린 10년이지요. 금강산관광 중단 전 1084명의 인력이 현재는 157명으로 줄었습니다. 2500억원 넘던 매출은 반토막 났고요.” 그들은 보수정권에 할 말이 많다. 2009년 8월 현정은 회장이 북한에 머물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총격사고 재발방지, 이산가족 상봉, 백두산 관광 등 5개항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당시 보수진영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혼돈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당국회담에서는 이산상봉을 제외하고 모든 합의내용은 없었던 일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개성공단까지 닫혔다. 당초 이번 판문점선언에는 경제협력이 의제로 잡히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합의문에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경협 기대감은 폭발적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남북이 협력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 시나리오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노동과 토지 결합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협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쏟아진다. 현대아산은 2011년 북한의 일방적인 독점사업권 취소 발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지만 남북 경협이 본격화하면 새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에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것은 남북경협이 한국경제의 출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대아산에 올해는 소떼 방북 20년, 금강산관광 중단 10년 등 시계열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해이다. 남북 정상은 금강산 그림이 걸려 있는 곳에서 회담을 했고, 소떼 방북길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가을에 북한에서 열릴 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희망한 백두산 트레킹이 성사될 수도 있다.

-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평양랭면의 외도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금강산관광 10년의 교훈은 함께 어울리고 서로를 닮아가면서 자연스레 사는 법을 터득한다는 것입니다. 금강산의 희망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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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만큼 확실한 이민 방법은 없다. 거의 모든 국가가 자국민과 결혼한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주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민을 위해 마음에 없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매매혼’이 성행하는 이유다. 1990년 출시된 미국·프랑스 합작영화 <그린카드>는 그린카드 즉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는 프랑스 남성과 미국 여성의 위장결혼을 다뤘다. 위장결혼은 결국 이민국 면담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의 화장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들통이 난다. 둘은 서로 반지를 나눠 끼며 훗날을 기약하지만 현실은 영화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한국의 일부 남성들은 매매혼을 ‘신종 알바’로 생각한다. 사진만 보고 결혼계약서에 서명하면 수백만원을 벌기 때문이다. <그린카드> 주인공과 달리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므로 사랑으로 연결될 리도 없다. 특히 위장결혼을 하는 남성들의 연령대가 20·30대로 낮아지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준다. 중국에서도 위장결혼은 성행하지만 성격은 한국, 미국과 약간 다르다. 이민보다 대도시 거주증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지인은 주택구입을 금지하는 상하이에서 집을 사려고 가짜 결혼을 했던 남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상하이 시민인 여성과 결혼하고 집을 사는 데 성공했지만 해당 여성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이혼을 거부하자 소송까지 벌여야 했다. 그는 결국 수고비로 당초의 3배가 넘는 3400만원을 지불했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주택 구입 외에도 자녀의 출생신고나 차량구입, 철거 등의 문제로 위장 결혼 및 위장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대도시 인구집중과 제도적 결함이 결합해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남미 코스타리카에서도 위장 매매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산호세 검찰이 1000건이 넘는 사례를 조사 중인데, 대부분이 코스타리카를 미국 이민의 경유지로 삼으려는 중국 광둥성 출신이 관여돼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때문에 한 가정에서 엄마와 딸들이 모두 나서 위장 매매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특정국가의 문제로 몰고가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국가간 빈부격차와 이민정책 등 다양한 지구촌 문제가 초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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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카메라로 힘껏 찍어보지만 시간의 강물이 어느 서랍에 처박을지 그 허망한 기억을 어이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야생화에 입문하고 천마산에서 처음 본 꽃들은 아직도 뚜렷하다. 그때의 공책을 뒤적이면 다소 생소한 이름과 함께 이런 간략한 설명이 있다. 좁은 바위틈, 그 깊고 컴컴한 허방을 짚고 자라는 매화말발도리… 기특했다.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중얼거리자고 시작한 꽃산행,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높든 낮든 산행을 끝내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비록 하루 만의 일이지만 산이 배출한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은 또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좋았다.

매화말발도리는 주로 바위를 딛고 살아간다. 바위는 햇빛은 쉬이 섭취하겠지만 비는 저축할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장소이다. 왜 이 나무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 거처를 정한 것일까. 나무는 바위에 초라하게 빌붙기는커녕 아예 바위를 쪼개기도 하면서 악착같이 자란다. 그 기세에 자주 눈길이 가다가 매화말발도리와 비교되는 바위말발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아주 비슷하지만 가지 끝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몸에 뼈 있듯 산에는 바위 있다. 으레 바위는 매화말발도리를 품고 있었다. 바위 앞으로 갈 때마다 바위말발도리가 간절해졌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위말발도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연천의 고대산으로 가는 길. 제2등산로를 오르자 엉거주춤 그러나 아주 편하게 앉아서 이제 오느냐며 반겨주는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거느리고 있는 깨끗하게 흰 꽃을 보는데 감이 왔다. 맛있는 알사탕을 빨아먹겠다는 심정으로 바위로 접근하여, 바위에 이끼처럼 착 달라붙어, 꽃을 관찰하였다… 과연!

매화말발도리는 작년 가지, 바위말발도리는 올해 가지에 꽃을 내놓는다. 새것은 새로워서 좋고 묵은 건 묵어서 더욱 좋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둘을 구별하는 그 결정적이고 우주적인 차이, 바위말발도리의 가지 끝에서 나는 그만… 까무러쳤다. 바위말발도리,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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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모 박물관에서 매입 대상 유물들을 감정하면서 오래된 노트 한 권을 봤다. 1930년께 어떤 프랑스인이 파리에서 출발, 베를린,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하얼빈 등지를 거쳐 서울까지 오면서 여정과 각 역 주변에서 받은 인상을 기록한 노트였다. 페이지마다 기차 탑승권, 수하물 표, 호텔 영수증, 식당 영수증, 공연장 입장권 등이 첨부돼 있었다.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노트의 주인은 80여 년 전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의 한국인들보다 더 현대인이었다. 그는 대륙이 얼마나 큰지, 문화와 문화가 어떻게 연속되며 어떤 지점에서 단절되는지, 자연환경과 주민의 기질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자기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에게 광활한 대지는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였고, 국경선은 사람을 가둬 두는 감옥 담장 같은 선이 아니었다. 그가 기차 안에서, 또는 역 주변에서 만난 독일인, 소련인, 중국인, 일본인, 조선인들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보편 인류’에 대한 성찰도 촉발했다. 그에게 세계는 ‘열린 공간’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899년 9월18일, 한강 남안 노량진에서 인천에 이르는 경인철도가 개통되어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선 정부는 처음 궤간(軌間)을 표준궤(1435㎜)로 정했으나, 러시아의 압력에 밀려 광궤(1524㎜)로 변경했다가 철도 부설 주관사인 경인철도합자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시 표준궤로 환원했다. 철도는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1901년 6월25일, 일본 도쿄에서 경부철도주식회사가 창립되었다. 창립 직후 경부철도의 궤간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조선처럼 낙후한 지역에는 작고 가벼운 차량이면 족하기 때문에 건설비를 줄일 수 있는 협궤가 적당하다는 주장과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궤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논쟁 끝에 한국 철도는 대륙 철도의 일부여야 한다는 주장이 승리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경부철도주식회사의 부설권과 대한제국 서북철도국이 소유했던 경의철도 부설권을 빼앗아 임시군용철도감부에 넘겼다. 임시군용철도감부는 강제동원한 한국인들을 총칼로 위협하여 기록적인 속성공사로 한반도 종관철도를 완성했다. 그러고선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획득한 중국 동북지역 철도망을 한반도 종관철도에 연결시켰다.

중국 동북지역 철도와 연결된 한국 철도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한 수단이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한국인들의 심상 지리 공간은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철도선은 국경선보다 더 선명한 선이었고, 철도선상의 도시들은 지도상의 위치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경성역 매표소에서는 중국의 다롄(大連), 창춘(長春), 선양(瀋陽) 등지로 가는 표를 살 수 있었고, 기차를 한 번만 갈아타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수 있었다. 3000리 강토는 일본에 빼앗겼으나, 한국인들이 의식하는 세계는 10만8000리로 확대되었다.

1945년 8월27일, 북위 38도선을 지나는 도로와 철도 주변에 ‘38선’을 알리는 팻말이 섰다. 남과 북을 잇던 철도는 그대로였으나, 기차 운행은 끊겼다. 6·25전쟁 중에는 한반도의 거의 모든 철도가 이동하는 전선(戰線)을 따라서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를 기해 그 시점의 전선이 휴전선으로 정해졌다. 그 직후부터 남과 북 모두 휴전선을 따라 긴 철책을 세웠다. 비무장지대로 지정된 휴전선 남북 2㎞ 구간에는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었다. 휴전선은 보통사람이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선이 되었다.

철조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놓였다. 해마다 6월이면, 학생들은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극소수의 예외가 있기는 했으나 학생들의 그림은 거의 같았다. 먼저 한반도 모양을 그리고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아래쪽은 파랑, 위쪽은 빨강으로 칠한 뒤 다시 위쪽에 뿔 달린 머리, 날카로운 송곳니, 빨간 눈을 가진 도깨비나 귀신, 또는 괴물을 그렸다. 아래쪽에는 논밭과 공장, 집들과 사람들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상기하자 6·25’나 ‘북괴는 노린다. 우리의 빈틈을’ 같은 글귀를 그려 넣었다. 옛날 사람들은 땅끝에 지옥문이 있다고 믿었으나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휴전선이 지옥문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한반도의 휴전선 북쪽뿐 아니라, 북·중 국경 너머의 대륙도 오랫동안 닫힌 공간이었다. 북한 중공 소련은 한 덩어리로 뭉친 거대한 공산제국이자 악마의 대륙이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가 주는 공포 앞에서, 한국인들은 대륙으로 향하는 마음의 길조차 끊었다. 일제강점기 선조들이 기억했던 수많은 역 이름과 땅 이름들이 휴전 이후에는 한국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유럽 대륙 지도 위에 각 나라와 도시 이름을 써넣을 수 있지만, 유라시아 대륙 횡단 철도 주변에 어떤 나라와 도시들이 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1990년대부터 중국과 러시아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기는 했으나, 지상의 풍경이 소거된 비행기 여행은 광활한 공간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지 못한다.

6·25전쟁 당사국들이 전쟁 종료를 선언해도, 남북 또는 북·미 간에 휴전협정을 대신하여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휴전선은 이름만 바뀔 뿐 바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휴전선 너머에 대한 공포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며,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그어졌던 경계선은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남북 간 합의대로 철도선이 다시 이어진다면, 휴전선을 지옥문으로 여기며 1500리 강토에 갇혀 산 탓에 어쩔 수 없이 좁아졌던 한국인들의 마음도 다시 넓어질 것이다. ‘마음 넓히기’는,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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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른 사람이다. 무르다는 것은 여리다는 것이다. 마음이 여리고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한 사소한 말에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온종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서 칼날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가슴을 움켜쥔다. 생각은 계속해서 알을 낳는다. 그 알을 다 부화시킬 때쯤이면 이미 심신은 녹초가 되어 있다. 도무지 초연해지지 않는다.

어릴 때에는 이 법석임이 좋았다. 남들과 무리 없이 지내는 것도 무른 나의 성질 덕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름이 꾸준해지면 무르익거나 무르녹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르다는 것이 유연하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체득하기 시작했을 때, 나의 무름은 더 이상 나의 편이 되지 못했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것과 물러서 주저앉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때부터 나는 무르지 않기 위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물러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지냈다. 호탕하게 웃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것이 내가 단단해지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가장(假裝)하고 있었다. 내가 무르다는 사실을 알아챈 누군가가 꼬챙이 같은 말을 깊숙이 찔러 넣기 전에, 나는 선수를 쳤다. 선수를 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날 밤은 유독 길었다. 물러터진 가슴을 움켜쥐고 밤새 앓았다.

4월은 끔찍한 달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셨다. 응급실 옆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는 자세로 밤을 거의 꼬박 새울 때, 병원에 있는 비상구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밤중인데도 비상구 표지판은 굳건하게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제아무리 깜깜해져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빛이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처럼 보였다.

같은 달, 사랑하는 사람들의 암 투병 소식을 들을 때마다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암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멀리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병원에 있다며 전화를 해왔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번 동요된 마음은 쉬 잠잠해지지 않았다. 병에 크고 작음이 있다고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면 절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여전히 나는 무른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다. 산책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걱정하는 마음을 덜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었다. 잠실에서 강남으로, 합정에서 신촌으로, 여의도에서 홍대로 걸었다. 긴 다리를 건넌 뒤에야 그것이 서강대교임을 깨달은 날도 있었다. 무른 나를 인정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첫걸음임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첫걸음을 떼고 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이제야 겨우 단단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단단하다는 것은 외부에서 어떤 힘을 받아도 쉽게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와 똑같이 일하고 밥을 챙겨 먹고 주위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부끼는 데 익숙하고 휩쓸리는 게 자연스러운 내게 단단해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고 동을 지나쳐 구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여기를 지나고 나면, 여기만 건너고 나면 햇볕이 내리쬘 것 같았다. 그 햇볕을 받고 나란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에 있는 허수경 시인이 암과 싸우고 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좋지 않은 일이 겹쳐 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국에서 아픔과 외로움을 홀로 견디고 있을 누나를 떠올리니 가슴이 몹시 쓰라렸다. 정작 누나는 김민정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민정아, 기회가 되면 여기저기 알려줘. 이유는 하나야. 내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

나는 화불단행이라는 사자성어를 지우고 거기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집어넣었다.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다 보면 이 길 끝에 빛이 있을 것이다. 햇볕이 있을 것이다. 수경 누나의 소설 <박하>를 다시 읽는다.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그리고 박하 향기가 날 때쯤 나는, 우리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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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터졌던 어이없는 금융사고가 벌써 잊혀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총자본보다 수십배나 많은 유령 주식이 발행되었고, 그중 1000억원 이상어치가 거래소에서 대량 거래된 사건 말이다. 회사가 30여분 만에 유령 주식을 회수하여 대형 참사는 면했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회사 총자본보다 더 많은 주식이 매각되면서 삼성증권이라는 거대 금융사가 어이없게 부도를 낼 뻔했다.

사건을 복기하면 세월호 참사 판박이다. 우선 담당자 실수로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에게 주당 1000원의 배당금 대신 주당 1000주씩 배당했다. 조금만 신경썼으면 안 했을 실수다. 배당을 받은 직원들은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 1000배나 늘었다. 제정신이라면 이게 착오나 실수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 이 상황을 신고해서 바로잡는 게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개장 전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착오를 알아채기 전에 이 유령 주식들을 재빨리 팔아치워 30분 만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까지 했다. 심지어 일부는 이렇게 유령 주식이 일거에 매도될 경우 폭락하게 될 주식 가격을 이용하여 그 차액으로 이득을 얻어내는 옵션거래까지 시도했다. 회사에 사고 신고는 못할지언정 발각나서 팔아치운 주식을 회수당할 경우를 대비한 헤징까지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 사회는 교육을 탓한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시험을 아무리 잘 쳐도 인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헛것이라며 학교를, 입시를 비난한다. 줄세우기 주입식 경쟁교육 때문에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결과라는 레퍼토리는 안 들어도 뻔하다.

진보성향의 시·도 교육감들이 함께 발표한 4·16 교육선언에서 ‘지식 위주의 줄세우기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중학교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등 ‘창의, 인성교육’을 부르짖었다. 대입에서도 수능 정시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다양한 수시전형 비율이 늘어난 이유다. 공교육 12년의 제일 마지막 단계에 버티고 서 있는 ‘줄세우기 주입식 경쟁교육’의 끝판왕 수능을 그냥 두고서는 어떤 인성 교육도 창의 교육도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사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4·16 교육선언의 내용이 전면화되고 교육개혁의 큰 그림이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수능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강변뿐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국가교육회의는 미래를 향한 교육 개혁이 아니라 과거로 얼마나 돌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주제를 놓고 교사를 쏙 빼놓은 채 여론조사를 한다고 한다. 한목소리로 줄세우기 경쟁교육을 비판했던 진보 언론, 진보 교육감, 민주 진보 정당 관계자들이 앞장서서 줄세우기의 끝판왕인 수능 정시 확대의 목소리를 외쳐대고 있다.

창의·인성 교육이라 불리던 것들이 금수저 교육으로 둔갑하고, 한줄 세우기 경쟁교육이 갑자기 공정한 개천용 교육으로 둔갑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교사더러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고 떼를 쓰는 게 이 나라의 풍토라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 하는 법이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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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만장(氣高萬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세 높기가 만 길이라 하늘도 뚫겠다는 말입니다. 흔히 일이 뜻대로 잘될 때 우쭐대며 뽐내는 것을 뜻하는데, 펄펄 뛰며 머리끝까지 성내는 것도 뜻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모 항공사 임원의 물벼락 욕설 갑질 사건을 통해 기고만장의 두 가지 뜻 모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가 그렇지 못한 이에게 강압적으로 부당한 요구나 행동을 일삼는 것이 신조어 ‘갑(甲)질’입니다. 그리고 갑 중의 갑 ‘슈퍼 갑’이라면 세상 겁날 것 없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를 겁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조상을 박대하면 삼 년에 망하고 일꾼을 박대하면 당일에 망한다.’ 조상 아래 하나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집안은 서서히 콩가루가 됩니다. 그러나 당일 일할 일꾼들에게 주인입네 함부로 굴면 일꾼들이 일 못해준다 드러누워 바로 큰 차질을 빚습니다. 일꾼들은 일감 잃어 손해고 주인은 품삯의 몇 십, 몇 백 곱의 손실을 보아 서로 손해입니다.

사회의 조직과 옷감의 조직(組織)은 같은 한자입니다. 날실에 엮은 씨실이 치밀하지 못하면 쉽게 해지고 터집니다. 비행기 역시 20만 개의 부품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긴밀하게 짜여 있으며 유기적으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동체와 날개, 엔진이 ‘누가 갑이고 몸통인지 알려주겠다’면서 여타의 부속들을 업신여긴다면 얼마 날지도 못하고 몸통도 부속도 갑도 을도 다 같이 추락하고 맙니다.

빗물로부터 기와 밑 알매흙 보호하고 바람으로부터 위쪽 기와들 든든히 잡아주는 것이 용마루입니다. 이런 용마루가 용 됐다고 들떠 건들거리면 기왓장들은 차례로 아래로 우르르 쏟아져 산산이 조각납니다. 고래 등 같은 집이건 거대 조직이건 전체를 와해(瓦解)시키는 건 늘 자릿값 대신 자리갑(甲) 하는 그 꼭대기입니다. 수키와의 눈웃음과 암키와의 빙그레, 그 하늘색 스마일을 다시 그려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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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라며 당진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도시를 좇아 서울을 삶터로 삼게 되었고, 고향은 언제부턴가 부모님과 옛 친구들이 사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2일 충남도 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대응 활동에 참여하면서 새삼 고향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선거 때마다 신한국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보수 정당이 권력을 차지하던 곳. 정치인들이 만든 지역 발전이란 것은 대부분 도로 확장, 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리는 철도, 주거지 가까이 지나는 송전탑 같은 것들이었다. 1년에 두어 번 고향에 갈 때마다 보는 풍경들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내가 하는 활동들이 연결되어 긍정적인 효과가 미치리라 그저 기대했다. 그리고 4월3일, 충청남도 인권조례 폐지안 재의결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반인권세력의 논리는 지역에서도 한결같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법이라며 ‘정신장애적 사고방식’ ‘정신세계 병든다’는 장애차별적인 표현으로 반동성애를 전면화한다. 이슬람 문화를 충남도가 지원하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며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선동한다. 2016년 충남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충남 이주노동자 수는 전국 4위에 해당한다. 나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와 공장에서 함께 일했고, 결혼 이주한 여성들과 마을일도 함께하신다고 했다. 인권이란 말이 낯설지라도 사람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노동현장과 지역공동체 안에서도 차별은 있다. 그러니 서로를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인권은 중요하다.

나는 인권조례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앞세워 선거 시기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직화될 때 그 영향력은 커진다. 이미 충남뿐 아니라 부산, 충북 증평, 충남 계룡 등 곳곳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인권조례 폐지와 개악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 때도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난무했다.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동성애는 인륜 파괴’라며 경쟁 후보를 비난했다. 소수자 혐오가 공약이 되고 후보자 자격 검증 기준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인 반차별과 평등이 버젓이 무시되어 왔다.

이번 선거는 좀 다르게 만들어 보자. 인권단체들이 다가올 6·13 지방선거에서 반인권 세력의 혐오 표현과 선동에 맞서는 활동을 시작한다. ‘혐오 내리고 인권 올리고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혐오 표현, 선동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응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 참고). 오는 14일 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차별 조장 질의서 대응,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 지방선거 혐오 아웃 신고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것이다. 단체뿐 아니라 개인 참여도 가능하니 나는 어버이날 충남 유권자인 부모님 먼저 참여를 조직해볼 생각이다. 선거 때마다 답답했던 많은 이들이 함께 행동하여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반차별 6·13 지방선거를 만들자!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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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선글라스 쓴 사람을 보면 재미동포를 먼저 떠올렸다. 선글라스를 쓰거나 머리에 인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부티’가 났다. 한국이 중진국 소리 듣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동포는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대접 받았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캐나다에 40년 넘게 산 원로 동포들은 말한다. “예전에는 캐나다 이민 비자를 받으면 고등고시 합격이 부럽지 않았다.” 과거 해외동포라는 용어는 ‘선망’과 동의어였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화한 만큼 해외동포들의 위상도 많이 바뀌었다. 이민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점차 달라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축하한다” “부럽다”는 의례적인 언급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이 있다. “낯선 땅에 적응하느라 고생 많겠다.” 한국이 이제는 세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외동포에 대한 시각이 ‘선망’에서 ‘염려’로 바뀌는 동안,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의 시각도 당연히 변했다. 이제는 한국에 가서 선글라스 끼고 부자 나라 사는 티를 낼 수가 없다. 지금은 부티는커녕 ‘서울 구경 온 촌사람’ 티가 날까 봐 두렵다. 캐나다에서 한국에 들어갈 때면 선물로 가져갈 만한 것을 찾느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국이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편 해외동포의 위상이 딱 그만큼 떨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 내에서 해외동포들의 위상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국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이다. 새로운 나라에 완전히 동화하는 것은 이민 3세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민 1세대는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한 캐나다·미국 사람이 될 수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끊기가 힘들다.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문화 즐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한인들 대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 또한 한국 이야기이다. 특히 세월호 사태와 촛불혁명 등 최근 몇 년 동안 모국에서 격변이 일어났던 까닭에 모국에 대한 해외동포들의 관심은 부쩍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CNN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라도 언급하면 좌불안석이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 만나 한국 정치 이야기하고, 소셜미디어에 한글로 글 쓰고, 토론토 거리에 나가 “박근혜 퇴진하라”며 촛불시위를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우리까지 나서는 것이 오지랖 넓은 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가벼운 자괴감이다. “캐나다에 살면 캐나다 일에나 신경 쓰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자괴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해외동포 입장에서 보자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은 모국 국민들이 느끼지 못하는 중대한 의미를 하나 더 담고 있다.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발표를 이렇게 시작했다. “존경하는 남과 북의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문재인 대통령), “친애하는 북과 남, 해외의 동포 형제자매들”(김정은 국무위원장). 해외에 사는 동포들도 모국 국민들과 똑같이 두 정상으로부터 회담 결과를 이렇게 보고 받은 것이다. 내가 사는 나라와 모국 사이에 끼여 있다는 어정쩡한 느낌, 해외에 살면서 한국 상황에 깊이 관심을 가져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 이런 것들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선언이었다.

1992년 LA폭동 이후 미국에서 한인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펼쳐온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두 정상이 남과 북의 국민과 해외동포를 나란히 언급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판문점선언은 이렇게 또 다른 의미로 700만 해외동포들을 감동시켰다.

두 정상이 “해외동포”를 불러주었을 때, 우리는 꽃이 되었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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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이거 읽고 나서 고기를 안 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편할 것 같은데요. 묘사가 정말 생생해요.” “그래? 나 또 고기 못 먹는 거 아니야. 아예 읽지 말아야겠다(웃음).”

최근 토요일자 ‘책과 삶’ 지면에 <고기로 태어나서>가 소개됐다. 저자가 닭, 돼지, 개 농장에서 실제 노동하며 겪은 일들을 그린 책이다. 고기 생산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아파트 거실에서 반려닭 ‘또래오래’를 키워본 나는 그 일로 2년간 닭을 먹지 않은 경험이 있다. 지난해 영화 <옥자>를 본 뒤에는 8개월가량 육식을 하지 않았다.

책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혀끝의 유혹은 물론 절식에 따른 불편함을 또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치맥 자리에서 썬 양배추와 케첩으로 허기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차돌박이 구이를 노려보며 양념 부추에만 젓가락을 갖다대고 싶지도 않았다. 육식을 하지 않기로 했을 땐, 죄의식 등으로 아예 입맛이 당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윤리나 성찰은 흐려지고 50여년간 다져진 육식의 본능이 꿈틀대 힘들었다.

닭, 돼지 등을 멀리하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육식 위주로 돌아가는지도 깨달았다. 정동에 자리한 회사 밖에 나와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음식점은 돈가스, 곰탕, 순댓국 가게들이다. 간담회나 저녁 모임에도 미리 주문된 메뉴에는 언제나 몇 점의 고기가 올라왔다. 대체 음식을 요구할 땐 ‘성가신 존재’가 되기 십상이었다. 눈이 예쁜 송아지와 어미소의 정다운 모습을 강조한 광고 사진에는 건강식 한우를 강조한 카피가 쓰여 있는 식이다. 이전엔 그 폭력성을 의식하지 못했다.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한 뒤 자랑스러워하듯 언젠가 완전한 육식포기를 선언하며 ‘육식 보고서’라는 칼럼을 쓰려고 했지만 결국 못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육식은 죄가 없다. <고기로 태어나서>가 말하듯 고기를 만드는 폭력적 시스템, 엄연히 생명인 것을 생명 아닌 것으로만 철저히 소비하는 의식이 문제다.

요즘 낚시 예능 프로그램들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낚시본부> 등 케이블 채널에서는 물론 지상파 예능에서도 낚시는 중요 아이템이 됐다. 이들의 인기는 실제 낚시인구와 낚시용품 판매량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낚시용품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지난해 총 판매량은 2013년에 비해 5배 증가했다고 한다. 낚시광으로 소문난 연예인들은 때아닌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낚시인기는 가까운 데서도 체감됐다. 몇 달 전 남편이 회사 사람들과 인천 덕적도로 낚시를 다녀왔다. 항구는 낚싯배들로 혼잡했고 직장, 친목모임, 가족 단위 사람들로 북적여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문제는 잡아온 물고기들이었다. 다 늦은 밤, 들고온 작은 박스에는 광어와 노래미,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 등 3마리가 담겨 있었다. 처음엔 귀한 자연산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고 속에 불순한 것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졌다. 평소 마트에서 매끈하게 상품화된 물고기에 익숙한 탓이었다. 비늘을 벗기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대가리를 치고 내장을 파내고 몸통을 토막 내며 붉은 피를 씻어내야 했다. 남편이 못한다고 하는 바람에 선글라스와 마스크, 고무장갑을 끼고 겨우 했다. 온몸이 미끄덩하고 경직돼 있는 도마 위 광어와 노래미, 이름 모를 물고기…. 그날 오후 1시까지만 해도 서해바다에서 헤엄쳤던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죽어 있는 것이 전하는 생명력은 오히려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강렬했다. “닭, 돼지, 소, 물고기(원문은 ‘동물’)를 죽이려면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하는 그들의 품속에서 목숨이라는 것을 폭력을 써서 빼앗아야 한다. (중략) 목숨을 빼앗을 때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기로 태어나서> 중)

낚시는 오랜 여가생활 중 하나이며 명상에 비견될 만큼 사람에 따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TV에서 전기충격을 줘 기절시켜야 맛있고 상품손상이 없다며 웃어대는 낚시 장면이나, 소문난 강태공 연예인이 다 못 먹어 냉동실 그득히 쌓여 있는 자연산 물고기를 과시하는 모습, 대형잉어를 토막 쳐 선혈이 낭자한 장면에 사위를 향한 장모의 사랑을 얹히는 방식과 무의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나아가 생계가 아닌 취미로서의 낚시행위에 법적 제한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인간이 생물권에 초래하고 있는 막대한 영향과 변화들을 근거로 ‘인류세’로도 불린다. ‘인간고기’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마음 편히 있지는 말자. 인류세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순전히 인간의 몫일 테니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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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첫째도 둘째도 ‘신뢰’였다.

사실 정상회담의 성패는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떤 면에선 완전한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경제협력 같은 선언 내용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동안 남북이 여러 차례 의미 있는 성과와 합의문을 만들어냈지만, 이행 과정에서 번번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전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신이 쌓였고, 이는 실행 동력을 잃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판문점선언이 국민과 전 세계로부터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어느 때보다 ‘이행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이 높다는 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곳곳에서 풍겨 나온 모습들이 그랬다.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 북측 땅을 밟은 뒤 돌아올 때 많은 이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보다리 벤치 회담. 아무런 소리 없이 30분 동안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아 다정한 형제처럼 진지하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번에는 뭔가 되겠구나’ ‘더 이상 전쟁은 없겠구나’ 하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북한 지도자가 최초로 전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로 ‘철저한 이행’을 약속했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정권교체 위험도’가 적다는 점도 신뢰의 무게를 높였다. 북한 핵실험장 폐쇄 시 대외 공개, 남북 표준시 통일, 확성기 철거,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 등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 후속 조치들도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 이상이 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80%를 넘나든다. 이 또한 커다란 이행 동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두 정상과 판문점선언에 찬사를 쏟아내는 등 연일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의 핵 확산을 막아야 할 핵심 책임자다. 또한 북·미 교류는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이익을 안겨준다. 미국도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결국, 이제는 누구도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남북 합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갖게 한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판문점선언이 낳은 최대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반도를 전쟁 위험 지역에서 북방경제의 새 시대를 열 블루오션으로 바꾸어 놓았다. 북한이 정권의 중심을 군사에서 경제로 옮긴 상황에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북방경제 활성화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분야가 포화 상태로 한계에 도달한 한국 경제에 이보다 좋은 반등점도 없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에도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다줄 신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 한반도가 새로운 경제 모델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준 기회이다.

야당의 협조가 중요해졌다. 자신이 집권했던 시기의 대선 공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는 기존 남북 합의문 정신 실천, 신뢰와 비핵화 진전에 따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 개성공단 국제화와 지하자원 공동 개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교류, 남북 철도(TKR·TSR·TCR) 연결 등이 있다. 야당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실천하지 못한 이 내용들은 판문점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네팔 카트만두 대학에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자문관으로 1년 동안 네팔과 한국 헌법을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자주 했던 질문이 있다. “한국 같은 선진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되어 계속 싸우느냐”는 물음이었다. 구구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창피함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학생들에게 훌륭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종인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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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핀란드가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기본소득 실험’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보수 매체들에서는 “공짜 돈을 나누어주는 복지과잉의 처절한 실패”라는 이념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그것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각종 데이터의 본격적인 수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 최종적인 평가와 판단도 아직 전혀 나온 바가 없다. 이 실험은 본래 끝나기로 한 시점에서 그냥 더 이상 연장되지 않고(이것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 때문이라는 진단은 있다) 정상적으로 종료되는 것뿐, ‘실패’ 때문에 중지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 핀란드의 실험은 사실 ‘기본소득 실험’이 아니었다. 단지 기존의 실업수당이 만들어내는 ‘복지 함정’ 혹은 ‘실업 함정’을 극복하고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대안적인 방식에 대한 실험이었을 뿐이다. 이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는 직장을 잃은 이에게 혹은 극빈 상태에 처한 이들에게 일정한 수당을 지급하게 되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업자·극빈자에게만 지급된다는 조건이 붙어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수급자가 취직하여 소득이 생기면 지급이 중지되도록 되어 있는 게 종래의 제도였다.

얼핏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온당한 이런 제도가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몇 십년간 노동시장에서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 때문이었다.

1970년대 이전의 고전적인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시장의 ‘완전 고용’ 상태가 하나의 규범적인 정상적 상태로 상정되었고, 실업자가 직장을 얻는다면 이는 곧 쉬운 말로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자기 힘으로 번듯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국가에서 수당을 타먹는 삶을 더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 취직하여 수급 자격을 잃는다는 것이 두려울 이유도, 아쉬울 이유도 없다.

하지만 요즘의 노동시장은 다르다. 일자리가 생겨봐야 월급 150만원짜리 그것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일자리만 잔뜩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는 게 좋은 선택일까? 그러면 지금 받고 있는 실업수당 등의 각종 복지 혜택 수급 자격이 사라지게 되는데? 총액으로 따져 볼 때 소득이 얼마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더 나은 경력으로 발전되기는커녕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일자리인데? 또 잘리고 나서 다시 복지 수당 신청하면 걸리는 시간과 비용과 그사이에 감수해야 할 위험은 또 얼마인가?

그러니 아주 확실하고 좋은 일자리가 생기기 전에는 웬만한 일자리로는 일을 하려고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지부동의 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선진국에서 큰 문제가 되어왔다. 특히 노키아 파산 이후로 높은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던 핀란드의 신임 보수정권이 사람들이 그러한 적은 보수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도록 하여 실업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실험한 것이 이번에 ‘기본소득 실험’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실험은 원래 보편적 성격을 생명으로 하는 기본소득과는 달리 오로지 실업자들만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새로이 무슨 돈을 지급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선발된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설령 취직하여 추가적인 소득이 생긴다고 해도 기존에 지급하던 실업수당을 끊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뿐이다. 이러한 약속이 주어졌을 때 과연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불안정한 작은 보수의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려 하는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실험은 예정대로 올해로 종료된다. 우리가 정작 생각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이들은 불안정하고 적은 보수의 일자리만 양산되는 것이 최근 노동시장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알아서 경쟁력을 키우든가, 정규직이 되든가 하라는 각자 도생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과 실험을 하고 있는가? 핀란드의 실험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번의 여러 오보는 우리의 무지몽매와 한국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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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실태조사 시행 여부를 두고 절반으로 갈렸다고 한다. 지난달 17일 열린 사법발전위원회 2차 회의의 회의록을 보면,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하는 데는 위원 모두 찬성한 반면, 전관예우 실태를 수치화하는 통계조사에는 10명 중 5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온다. 반대한 위원들은 사법불신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데, 답답할 따름이다. 사법불신이 가중되는 건 문제를 드러내는 대신 감추려고만 드는 불투명성 탓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법관대표회의가 상설기구화된 후 처음 열린 것이다. 이상훈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여러 불신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역대 대법원장 중 취임사에서 전관예우를 직접 언급한 것은 김 대법원장이 처음이다. 대다수 시민이 ‘유전무죄’의 배경에 전관예우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동안 사법부에선 전관예우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의지에 따라 ‘사법제도 개혁 실무준비단’은 전관예우 근절을 4대 개혁과제에 포함시켰다. 사법발전위원회는 이들 개혁과제에 대한 각계 의견을 반영하는 개혁기구로 출범했다. 그런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근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전관예우’라는 용어부터 틀렸다. 예우의 사전적 의미는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함’이다. 전관예우는 전직 법관들에게는 정중한 대우일지 몰라도, 법률소비자 입장에선 부당한 특혜성 거래다. 지난 3월 경향신문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2017년 상고심 수임 사건을 전수조사했더니, 수임 사건 수가 2016년보다 6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와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겐 해당 사건 주심을 맡기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법원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고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대법원장이 전관예우 근절 의지를 공개 천명했는데도 악습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사법발전위원회는 반드시 실태조사를 벌여 전관예우가 사법현실을 어떻게,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물론 법원과 사법발전위원회에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국회는 전관 변호사의 수임료를 공개하는 등의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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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 상당수에 여성들은 입학할 수 없었다. 그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그러한 편견에 굴복하고 말았을까? 그럴 리가. 19세기 중후반부터 생겨난 ‘세븐 시스터스’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명문 여대들이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했다.

영화 <레이디 버드> 스틸 이미지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그들은 먼저 연애를 했다. 1970년에 만들어져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쓴 영화 <러브 스토리>는 당시 남자대학이었던 하버드 학생 라이언 오닐과 여자대학이었던 래드클리프 학생 알리 맥그로 간의 연애를 그리고 있다. 연애 혹은 학업을 통해 자신을 단련한 여성들 중에서 결국 사회적 리더가 배출되었다. 캐서린 헵번과 같은 배우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4번이나 받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고, 드루 길핀 파우스트는 하버드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일본 유학생은 귀국하여 일본에 쓰다주쿠대학(津田塾大學)이라는 여자대학을 세웠다.

그러한 여자대학에서 생애 첫 직장을 얻게 된 것은 내 쇄골에 떨어진 작은 행운이었다. 그곳에는 정말 미숙하지만 에너지가 폭발하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른바 ‘레이디 버드’들. 그래서 당시 30대 한국 남성이 경험할 수 없었던 레이디 버드들의 웃음, 울음, 괴성, 논변, 항변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서가 도서관 지하실의 고서 무더기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19세기 말 졸업생 한 명이 한국을 여행하며 사들인 고서예요. 손주들이 할머니 모교에 기부했죠.” 즉 당시 한국이라는 먼 나라까지 찾아온 서양 여성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여행기를 남긴 이사벨라 비숍만이 아니었다. 에너지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레이디 버드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 선글라스를 끼고 “I want to take issue with that(이의 있소)”라는 말을 즐겨 쓰던 기타리스트 J는 졸업식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대륙을 횡단할 거예요.”

세월이 흘러 나는 그곳을 떠났고, 한국의 남녀공학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중년 남자가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미국 여학생의 대학 진학 전야를 다루었다는 영화 <레이디 버드>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밤이 깊었고, 검토해야 하는 수업자료가 산적해 있었지만, 옛 학생들을 재회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서 동네 극장으로 갔다.

미국 여학생의 좌충우돌 성장기 같은 것은 이 땅에서 인기가 없는 것인지, 관객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하필 혼자 온 여자(대학생?) 옆에 자리가 배정되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레이디 버드>를 혼자 보러 오는 중년 남자는 달리 없는 탓인지, 아니면 무릎이 나온 추리닝을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녀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마치 바바리맨을 보는 것처럼. 억울했다. 항변하고 싶었다. “난 직장에서 당신 같은 사람을 일상적으로 보고 살며, 미국에서는 여자대학이 직장이었다. 그리고 배우 전도연을 닮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왜 날 바바리맨으로 취급하는가. 나를 추리닝맨이라고 하는 건 참을 수 있다. 사…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를 바바리맨으로 간주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난 바바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항변을 포기하고 그냥 영화를 보았다. 중년의 추리닝맨은 남북관계를 고민하느라 많은 것들이 귀찮으니까. 그런데, 내 옆의 그녀가 영화 후반부부터 울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의 갈등이 격화되는 부분에 가서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까지. 직장에서라면 교수의 탈을 쓰고 근엄하게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슬퍼 말아요. 고기를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그러나 동네 극장에서 나는 한갓 추리닝맨에 불과했다. “잘 추스르고 무사히 귀가하길 빌어요”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에는 한국판 레이디 버드라는 <소공녀>를 보러 갔다. 전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이번에는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영화를 보러 갔다. 혼자 이 영화를 보러 온 중년 아저씨 관객은 이번에도 나뿐인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내가 흐느껴 울 것 같은 영화였다. <레이디 버드>에 나온 여학생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불우했기에 결국 노숙자가 되고 만 여자주인공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의연하고 강한 사람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쫓겨나 어디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노숙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서 가서 이 시대의 가장 의연한 캐릭터를 만나 보시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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