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선별해 살해한 사건이었음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조현병 때문’이라며 엉뚱한 대책을 내놨다. ‘여성혐오 살해’라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제대로 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하고 폭력적인 여성혐오의 장면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의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5월10일에는 작가 은하선씨의 강연이 취소됐다. 강연 주최자인 서강대 총학생회가 밝힌 취소 이유는 ‘연사들과 주최 측에 대한 혐오 발언과 백래시, 총학생회 구성원 개개인과 관련인을 향한 폭력을 더 견딜 수 없어서’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4월에는 한 게임업체 원화가가 여성단체의 SNS를 팔로우했다는 이유로 사장으로부터 사상을 검증받고 사과문을 쓴 사건도 있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성차별적인 일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로 사상검증, 불이익, 배제, 해고 등을 경험한 사례를 제보받았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수집된 사례는 총 182건이었고, 욕설 등 폭언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심각한 노동권 침해사례도 14건이나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이유가 너무나 어이없다. “미투를 지지하는 의견을 내거나 여성인권에 대해 말해서”(62건), “카톡프로필을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했거나 이 문구가 들어간 핸드폰케이스나 티셔츠를 입어서”(34건), “SNS에서 페미니즘 글을 RT 또는 마음찍기하거나 여성단체를 팔로우해서”(19건),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었다고”(15건),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거나 홍보한다”(6건)는 등의 이유로 여성들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하”거나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하고 해고되”기도 하고, “독서시간에 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책을 뺏기”고, “동아리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행사 대관을 취소당하는”가 하면, “배지를 떼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내봉사와 예정된 전시가 무산되는” 피해를 입었다. 여성들은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메갈’이라고 낙인찍히고 온갖 욕설과 혐오의 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표현의 자유,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일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정의로서의 페미니즘과 성차별 구조 개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민주주의 과제이고 사회적 정의다. 그럼에도 아직도 ‘메갈’ 프레임을 씌워 여성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지우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이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메갈’ 프레임은, 과거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도구였던 ‘빨갱이’라는 말이 ‘메갈’이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이고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일 뿐이다. ‘메갈’ 프레임은 허구이고 여성혐오이며 폭력이다.

강남역 2주기,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민주주의가 떠도는 말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이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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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드라마 <모래시계>는 대구에서 방송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고의 화제작을 놓칠 리 없는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녹화테이프를 당당하게 유통시켰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이를 통해 작품을 접했다. 불법이지만 드라마 안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불법의 대한민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솔직히 국가권력이 개인의 역사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 끊임없이 상식을 요구해야 한다는 묵직한 감상은 이후 나이가 들어 재방송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고 당시에는 드라마가 나열하는 조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렸다. 학교에는 이정재와 하나도 안 닮은 친구가 검도 목검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대구에서 정동진까지가 기차로 참으로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 고현정.

그 추억만이 이 드라마의 가치는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책에서, 방송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주장을 하는 게 업이지만 자본의 논리에 진격하라는 우주의 기운에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회의감에도 이 노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모래시계>, 그중 광주에서 1980년 5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준 7, 8회 덕분이다. 후배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가 얼떨결에 시민군이 된 태수는 민주주의가 삶의 언어임을 보여주고 계엄군으로 광주를 짓밟는 데 동참한 우석은 훗날 검사생활 내내 이때의 원죄의식에 힘들어하며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태수가 시위에 참여하려는 후배에게 총 든 군인을 상대할 수 없다면서 말리자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야죠. 그 총은 우리가 세금 내서 산 총인데 국민한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야죠. 가만두면 그 자식들이 또 그럴 게 아니오. 요렇게 해도 된다고 할 것 아니오.” 그제야 알았다. 왜 선거에서 전라도는 김대중에게 몰표를 주는지, 왜 해태 타이거즈의 팬들이 잠실구장에서 그렇게도 김대중을 외쳤는지.

“내게 광주를 알려주는 사람이 왜 없었지?” 내가 진실을 알고 던진 질문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성당의 신부님도, 뉴스나 신문도 15년 전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아는 사람은 말할 수 없어서였을 게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입에도 담기 싫은 더러운 말들이었다.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무장을 했으니 총을 쏠 수밖에’ ‘그래도 전두환 때가 경제는 좋았잖아’ 등등. 하찮은 말들에 죄를 묻지 않으니 나쁜 대통령 9년의 시절에는 북한 개입설까지 주장이랍시고 여기저기서 등장해 여론을 어지럽혔다. 몇 년 전 5월18일에 강의 전 10초 묵념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논쟁 중인 사건을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고 강의평가를 한 적도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논쟁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었는데 이때도 <모래시계>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나는 드라마 한 편이 엄청난 힘을 가졌음을 경험했다. 사소한 대중매체가 내게 엄청난 사실을 알려줬듯이 사소한 나에게도 영향받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작아도 중요한 한 조각으로서의 역할을 내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사회를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내가 마주한 현실을 늘 의심하고 또 나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좋은 역사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바로 <모래시계>였다. 하지만 드라마 외에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슬픈 15년이 있었기에 여전히 광주의 진실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건물에 있는 총알 자국을 보고 ‘이게 총알 자국이야’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다.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했던 ‘누구나 다 아는’ 발포명령자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모두가 <모래시계>처럼 사람에게 다가가 국가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야지만 진실은 규명될 것이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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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봐도, 4·27 남북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처음 명문화한 ‘판문점선언’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은둔했던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들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등 국제사회로 나왔다는 것도 새로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됐다”는 문재인 대통령 만찬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의 말은 단순한 정치적·외교적 수사로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을 본 뒤끝이었기 때문일까. 두 정상이 무슨 대화를 나눴을지가 핵심이겠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두 정상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 호감과 이해가 느껴졌다. 하루 종일 회담을 지켜보며 차곡차곡 쌓였던 긴장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한순간에 풀어졌다.

정상외교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다. 국가 최고책임자 사이의 관계는 물론 공식적인 것이지만, 그 못지않게 인간적 신뢰가 관계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보여준 모습이 진짜라면, “좋은 길동무가 됐다”는 문 대통령 말에 김 위원장도 공감한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낙관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들었다.

정상 간 우정의 중요성은 역사도 증명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등 100년 동안 앙숙으로 지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에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의 신뢰가 깔려 있었다. 1962년 7월8일 두 정상은 프랑스 랭스 대성당의 미사에 함께 참석했고, 드골은 “아데나워 총리와 나는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다짐하기 위해 왔다”고 성당 바닥에 새겼다고 한다. 1963년 1월22일 양국은 우호조약을 맺었다.

회고록 <드골, 희망의 기억>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1962년 중반까지 아데나워와 나는 서로 40여차례나 서한을 교환했다. 우리가 만나기도 15회. … 회담 100시간, 단독형식이 아니면 때로는 우리 장관들을 대동시키기도 했고, 우리 가족들을 동반해서 가기도 했다. … 프랑스의 원수와 독일의 원수는 (랭스 대성당) 라인의 양편에서 우정의 과업으로 영원히 전쟁의 불행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 … 위대한 나의 벗이 서거할 때까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함없는 우정과 한결같은 자세로 계속되었다.”

물론 김 위원장의 비핵화 행보에 대한 비난과 의심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한다. 집권 기간 동안 4차례의 핵 실험, 90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 등 김 위원장이 보여온 행보를 고려하면 이런 의심과 비난들은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고모부와 형을 죽였다는 패륜아 이미지도 섣불리 마음을 열기 어렵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가 어떻든, 비핵화 행보의 의도가 무엇이든,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여줬던 태도는 진심이기를 희망한다. 둘의 관계가 드골과 아데나워 관계 이상으로 인간적인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핵화 과정에서 남북의 이해관계와 주장이 엇갈리더라도, 얼굴을 붉힐 사건이 터지더라도, 인간적 믿음이 깔려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의 핫라인이 늘 분주했으면 좋겠다. 요즘 말로 ‘브로맨스’가 생겨도 좋을 것이다.

며칠 전 점심을 함께한 이부영 전 의원의 말이 귀에 꽂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문 대통령이 뭐라고 한 줄 기억하나. ‘한반도에서 우리의 동의 없이 어느 나라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었어.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 대통령이 ‘우리의 동의 없이’라며,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을 (감히) 가로막고 나선 거야.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선제공격을 곧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고. 아마 김 위원장은 그때부터 문 대통령과 무언의 신뢰를 나누게 됐을 걸세.”

올가을 평양 정상회담은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4·27 회담 때 북측에서 ‘평양냉면’을 공수했으니, 평양 정상회담 때는 남쪽 음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은 어떤가. 잔칫집에 초대받은 이웃사촌이 음식을 보태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문 대통령이 ‘최고’라고 칭찬했던 돼지국밥도 좋을 것 같다. “어렵사리 부산에서부터 돼지국밥을 가져왔습니다. 멀리서 왔습니다. 허이고, 멀다고 하면 안되겠지요. 허허허”라고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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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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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직업환경의학 의사이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있다. 출장검진을 하러 사업장을 방문하면 보통 10분 정도 미리 사업장 유해물질 관리실태를 살펴본다. 지난주에 방문한 사업장은 자동차 부품공장인데 공장 한쪽에 드럼통이 있었고,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드럼통은 화학물질을 나누어 담기 편하도록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선반 작업을 하는 작업자에게 물었다. 무슨 물질인지 알지 못하고 CNC선반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냄새를 맡으면 어지럽다는 얘기를 했지만 건강상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보관된 장소 주변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가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

물질안전보건자료란 화학물질의 특성, 건강상 유해성, 보관방법, 사고 시 대처방법 등이 기재되어 있는 서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화학물질 공급업자가 구입자에게 제공하고 해당 화학물질의 용기에 경고 표지를 부착해야 한다. 해당 화학물질을 제공받은 사업장은 이 자료를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볼 수 있도록 비치하고 보건담당자는 해당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에게 교육도 실시하여야 한다.

200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23세 여성인 황유미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년 후 같은 공정에서 근무하던 이숙영씨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황유미씨가 근무한 공정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했지만 원인 물질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영업비밀이라는 명분으로, 사용된 화학물질의 성분 및 특성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비밀은 산재인정 시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반도체 팹 공정에서 사용하는 어떤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7~17%의 성분이 영업비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업비밀인 성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리도 할 수 없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다루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노출되는지 측정할 수도 없고,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조치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자연유산하거나 암이 발생하더라도 그 원인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영업비밀로 분류할 수 있는 주체는 화학물질을 양도, 제공하는 사업자이고 구체적인 범위는 고용노동부령에 위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령에는 영업비밀로 분류되는 사유를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밝혀야 한다고만 돼있어, 화학물질을 제공하는 사업자가 영업비밀로 판단하면 영업비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해결하고자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최근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반영되었다. 사전심사제도란 화학물질을 양도·제공하는 사업자가 물질을 제조함에 있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 공개될 경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기업이 입증하라는 것이다. 유럽과 캐나다·미국·일본에서 사전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해당국가 다국적기업도 이미 받아들여 사회적으로 정착된 제도이다.

그런데 경총은 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공식의견서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더 이상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이 개정안은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의 건강보호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도 영업비밀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업들이 화학물질을 영업비밀로 하는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다. 하루빨리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해서 노동자와 국민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권리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노동부는 법개정에 그치지 않고 모든 작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비치, 게시, 교육될 수 있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방예원 |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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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의 사직서 처리 시한이 14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경남 김해을)·양승조(충남 천안병)·박남춘(인천 남동구갑), 자유한국당 이철우(경북 김천) 의원의 사직서가 14일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는다면 이들 지역의 보궐선거는 내년 4월에나 가능하다. 국회가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직을 열달 이상 비워두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지역 주민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으로라도 ‘14일 본회의 소집’을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은 본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본회의 자체를 열 수 없도록 실력 행사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꽉 막힌 정국은 여야가 극한 대치를 지속하면서 도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이렇게 장기간 공전한 것은 여당의 책임이 크다. ‘드루킹’ 사태는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검경 수사에 대한 신뢰도 낮은 상태다. 드루킹 특검은 ‘찬성’(54%) 의견이 ‘반대’(24%)보다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과반의 시민이 댓글조작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실 규명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깜도 안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드러누웠다” “빨간 옷 입은 청개구리당” 운운하며 한국당을 비난한 것은 적절치 않다. 여당 대표의 정치적 수준이 실망스럽고, 꽉 막힌 정국을 풀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때마침 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친문계 3선 홍영표 의원이 선출됐다. 홍 원내대표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둘 다 노동계 출신이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성심성의껏 대화하고 타협하겠다”고 했다. 옳은 얘기다. 홍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민주당은 더 이상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특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국회 경색을 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야당도 지난해 대선 전체를 다 털어보겠다는 식으로 뜬금없이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으로 거론하며 특검 수용을 부르짖는 건 지나친 요구다. 그러니 “대선 불복 특검이냐”는 지적을 받고, 정치적 셈법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젠 여야가 한발씩 물러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의원 사직서 처리를 시작으로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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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 자동화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으레 인공지능 자동로봇이 움직이고 있는 산업현장의 변화를 떠올린다. 최대한 생각의 폭을 넓힌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그로 인한 일자리의 소멸과 실업의 증가 정도에 멈추기 마련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자동화의 진전이 교육정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최근의 교육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도 일정 정도는 거기 있다고 하면 모두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할 것이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인공지능 자동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로봇 밀도라는 통계가 있다. 로봇 밀도란 제조업 분야 노동자 1만명 대비 산업로봇 설치 대수를 말한다. 이 로봇 밀도에서 한국은 2016년 현재 631대로 압도적 세계 1위이다. 싱가포르가 2위로 488대, 독일이 3위로 309대, 일본이 4위로 303대, 미국이 7위로 189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 자동화의 급격한 진전이 교육정책 지형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1960년대 이래 김영삼 정부 때까지의 산업사회에서 대중교육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주로 경제 산업계에서 왔다. 산업구조가 중공업 단계로 바뀌었으니 실업계 고등학교를 늘려 숙련 노동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둥, 고도 산업단계로 접어들었으니 대학을 늘려 고급 인력을 많이 공급해줘야 한다는 둥 하는 식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이렇게 산업단계에 맞는 인력 양성에 대한 요구가 국가 교육개혁정책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개혁정책에 범정부 차원의 힘이 실리는 좋은 측면도 있었지만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국민과의 소통이라야 내리먹이기식으로 교육개혁정책을 계몽하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이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경제 산업계의 대중교육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중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해야 할 일들을 인공지능 자동 로봇이 점점 대체해가니 산업계에서는 대중교육에 대해 아쉬울 게 없어졌다.

그나마 경제 산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글로벌 차원에서 노는 영재교육인데 그건 이미 카이스트는 과기정통부, 한국예술종합대학은 문체부, 폴리텍대학은 노동부, 국제학교는 기재부 하는 식으로 대부분 교육부 소관이 아니게 되었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산업구조가 이렇게 바뀌었으니 거기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대중교육을 이렇게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은 대중교육의 입장에서는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하다.

대중교육을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경제 산업계의 요구가 약화되면 대중교육이 경제적 종속을 벗어나 본래의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방향을 틀 수 있으니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벌였던 교육개혁운동인 ‘새 교육 공동체’ 운동은 이러한 지향을 잘 보여준다. ‘새 교육 공동체’는 그 명칭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지역 단위의 교육생태계, 생활생태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었다. 디지털 지식정보화 사회, 인공지능 자동화 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발전 역시 그에 걸맞은 사회적 토대의 구축, 사회적 가치의 실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교육적 지향은 정당한 것이었고, 다소 이른 감이 있어 당시엔 실효를 거두진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혁신학교 운동으로 부활하게 된다.

인공지능 자동화 시대에 경제적 편향을 가지고 대중교육을 보면 대중교육은 그 존재이유가 불분명한데 재원만 많이 들고 늘 소소한 이해관계 충돌로 시끄러워 부담스럽기만 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렇게 되면 대중교육은 계륵이 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중교육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건 이명박 정부에서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중교육을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보아 첨단 산업 시대에 유용한 영재를 선별하기 위한 장치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학교 특목고 자사고 등으로 학교를 서열화하고 본토 발음 영어 바람을 일으킴으로써 유치원까지 이 선별 경쟁에 휩쓸리게 하였다.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는 철저히 짓밟히고 대중교육의 주인이어야 할 70, 80%의 아이들은 버려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중교육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했다는 점에서 거의 적폐에 가깝다. 지금 수능 정시 확대를 호소하며 다니는 학부모들은 사실 이 적폐적 정책의 피해자들이다. 자녀가 특목고 등의 선발에서 탈락하고 일반고에 왔는데 상위권 대학은 압도적 비중의 학종을 통해 주로 특목고생만 뽑아 다시 한번 경쟁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극히 좁은 문이지만 학종을 시도해 보려 하는데 일반고에서도 상위권이 아니라고 학생부를 제대로 기록조차 해주지 않는다. 이제 역전의 기회는 수능 정시뿐인데 비율이 낮아 역시 너무 좁은 문이 되어있다.

이 학부모에게 정말 문제 되는 것이 수능 비율일까? 아니다. 정말 문제 되는 것은 반복된 좌절이고, 반복된 좌절을 겪게 한 조기 선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적폐이다. 지금은 좌절의 반복으로 생긴 한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능 비율을 향해 있는 것일 뿐이다.

대중교육의 위기 속에서 너무도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조기 선별에서 탈락하여 없는 존재 취급을 받으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대중교육을 바로잡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경제 편향에서 벗어나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에 맞게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하고, 위에서 내리먹이는 정책의 골격이 없으니 앞으로의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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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한·일·중 3국 협력에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발원지는 한반도이며 주인공은 한국이다.

지난 9일 제7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개최된 만큼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만큼 성과도 컸다.

첫째, 3국 정상은 4·27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인 ‘판문점선언’을 지지하고 환영하는 특별성명을 채택했다. 3국 정상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특별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독일 통일의 예에서 보듯 북핵 해결,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은 주변국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특별성명의 채택은 의미가 크다.

둘째, 이번 회의는 한·일·중 3국 간 협력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선도로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2008년에는 각국에서 별도의 3국 정상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만큼 3국 정상회의는 탄생부터 우리 외교의 노작(勞作)이었다. 그러나 3국 간 양자 관계의 부침에 따라 정상회의가 매년 열리지 못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그때마다 3국 정상회의를 통해 양자 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셋째,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지도자들은 자유무역협정(FTA),산업협력 등 국가차원의 미래를 위한 협력 문제 이외에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의 실질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폭넓게 논의했다. 3국은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 문제 해결, 3국 간 로밍요금 인하 등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2020년까지 3국 간 인적교류의 규모를 3000만명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하였다.

오늘날의 외교는 국민의 지지와 이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외교가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접하게 연결된 당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도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할 때 국민들이 보내는 성원과 박수가 커질 것이다.

필자는 이번 3국 정상회의 준비를 위한 고위급대표(SOM)로 참석했다. 우리 정부의 신중하지만 과감한 비핵화·평화외교가 3국 협력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처럼,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가 동북아 3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순구 | 외교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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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인 옥류관 냉면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옥류관에서 두어 번 먹어봤는데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칡냉면이라 색이 검고 국물도 시큼했다. 얹어서 나오는 다대기 양념을 풀면 약간 달기까지 했다. 먹어본 분들이 왜 그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난 10년 평양냉면을 먹어본 바에 따르면 그 진미는 역시 메밀로 뽑은 면발과 고기육수에 있다.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남포면옥, 정인면옥, 우래옥, 봉피양 등등 명가라 불리는 식당을 두루 섭렵해봤는데 내 입맛은 을밀대 쪽이다. 을밀대의 특징은 진한 고기육수다. 살얼음이 낀 고기육수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의 그 풍부한 맛이란. 을밀대의 면발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쫄깃하다. 녹말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 평양냉면일수록 메밀 비중을 높인 순면을 강조하는데 순면은 국수가 힘이 없고 툭툭 끊어진다. 나는 녹말 비중이 높은 쫄깃한 면이 더 좋다. 그 이유는 저작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고, 많이 씹어 메밀향이 입안 가득 퍼지기 때문이다. 한참 씹다 보면 콧김으로 메밀향이 밀려나온다.

우래옥도 고기육수가 강한데 국물을 내는 고기의 부위가 을밀대와 좀 다른 것 같다. 육향이 좀 낯설다. 을지면옥과 능라도는 내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하드코어다. 국물이 맑고 감칠맛은 깊이 숨겨져 있다. 면도 얇고 잘 끊어진다. 흔히 말하는 무심한 맛이라 하수들에겐 고명하게 다가온다. 옛날 사람들도 순면으로 먹었을까? &lt;음식디미방&gt;을 보면 정제한 메밀의 껍질을 벗겨 불린 녹두와 섞어 갈고 더운 물로 눅게 반죽한다고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시면가루(녹말가루)로 만든 국수가 몇가지 등장한다. 역시 조선시대에도 국수의 쫄깃함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면(누들)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음식 형태이고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나 인류 발달단계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음식 형태다. 고고학 발굴 결과로 보면 우리 민족의 탄수화물 섭취는 낟알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 형태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벼농사가 개시된 청동기시대에 곡물을 증기로 쪄서 먹기 시작했다. 이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사실로 알 수 있다. 시루가 쓰이던 시대에는 쌀을 가루 내어 시루에서 찐 떡, 혹은 쪄낸 떡을 돌확에서 친 떡이 평상시의 음식으로 상용되었다. 그러다가 무쇠솥이 개발돼 주방에 걸리면서 본격적인 밥의 시대가 열린다. 상용음식으로서 떡과 밥의 역전은 시루에서 무쇠솥으로의 용기 변화에서 살펴진다. 국수는 고려, 조선시대에나 와서야 먹기 시작했다. 일상식은 아니고 주로 제례음식이었는데 국수의 면발이 길기 때문에 장수와 해로를 바라는 의미에서 생일상, 잔칫상에 올랐다. 양반들이 고량진미로 술을 마시고 입을 개운하게 해주는 마무리 음식으로도 애용했다. 그러던 국수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한끼 음식으로 거듭났다. 집에서는 라면과 소면을 먹고 밖에 나오면 칼국수나 자장면, 냉면, 파스타 등을 다양하게 사먹는다. 나도 면을 너무 좋아해 하루에 한끼 이상을 면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면이 이처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범박한 추측으로는 촉각과 청각이 한몫하지 않을까 한다. 면은 입술에 닿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밥은 숟가락으로 떠서 혓바닥으로 직행하지만, 면은 혀로 물어 입술을 스치며 빨려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그 미끈한 면발과 입술이 아주 길게 마찰되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빨아들일 때 나는 후루룩 소리는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하여 식욕을 유지시킨다. 마치 꼬리가 달린 것처럼 국수의 끝이 코끝을 때리기도 한다. 밥에 비해 국수는 오감적 차원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음식인 셈이다.

떡이나 밥에 비해 곡물 음식의 후발주자이자 미식의 개척자인 국수는 왜 상용음식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 가끔 내 머리를 스치던 궁금증이다. 우선 국수는 배불리 먹어도 배가 빨리 꺼진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부분의 국수는 밀가루이기 때문에 쌀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소화능력에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먹고 남은 국수를 처리하는 일의 난감함이 클 것이다. 국수든 냉면이든 자장면이든 모든 국수는 불어터진다. 양을 딱 맞게 하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난감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면의 치명적 약점이다.

같은 밀가루라도 빵은 그렇지 않다. 뜯어먹다가 내던져둬도 나 먹어줘 하며 기다린다. 그러니 짧게 피었다 지는 꽃 같은 면은 가정집 식탁의 지배자가 될 운명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면식가들의 더욱 애틋한 사랑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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