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고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형사고를 예방하고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년 1000여명에 이르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3%, 국가 예산의 5.4%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인 사망만인율은 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2~3배 수준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안전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접근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직립작업을 시작하여 4시간여만에 완전 직립에 성공, 세월호가 참사 4년여만에 바로섰다. 김기남 기자

필자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이끌어 온 전력산업에 30여년을 몸담아 왔다. 수많은 산업재해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되풀이되는 비극적 사고와 재해를 끊어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성숙한 안전문화의 정착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안전을 바라보는 의식수준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식하는 자기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듀폰사는 1802년 화약회사로 출발해 나일론, 타이벡 등을 개발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듀폰사는 모든 사고는 예방가능하다는 신념에 투철하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듀폰의 창업자 E I 듀폰은 화약공장 인근에 자신의 자택을 지어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폭발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동일시하는 안전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4년 만에 바로 세워진 세월호의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내부 안전조치를 마치는 다음달 10일 이후 미수습자 수색과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4·16가족협의회 제공

다음으로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안전이론에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 치즈는 많은 기포로 인해 구멍이 뚫려 있다. 스위스 치즈를 여러 겹으로 배치했을 때 우연히 구멍이 동시에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안전 측면에서 다양한 요인의 결함이 동시에 발생할 때 재해가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인적, 제도적, 관리적으로 다양한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설계·작업 전·작업 중 등 단계별 안전 매뉴얼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외부전문가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 없는 안전사고의 예방이 가능하다.

끝으로 협력기업에 대한 안전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발전산업 현장은 고소작업, 중량물 및 유해화학물질 취급 등 위험요소가 많은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영세 협력기업 및 일용직 작업자와 같은 안전취약계층에게 발생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안전취약계층을 단순한 하도급 관계가 아닌 상생의 파트너 관계로 생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안전역량 강화를 위해 안전관리비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맞춤형 안전체험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의 위험 발견 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상생의 안전지원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조치를 비용이나 규제로 보는 성장지상주의, 성과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값싼 드라이비트 외장재나 폴리에스테르 천막이 아니었다면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성숙한 안전문화와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 그리고 상생의 안전지원체계 구축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병숙 | 한국서부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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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러시아 소설을 읽기가 참으로 난감했던 이유는 등장 인물의 이름 때문이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한 흑인 복서는 자신이 백인 농장주의 성을 딴 노예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개명한다. 훗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선정된 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다. 작고한 뮤지션 프린스는 한때 자신의 이름을 기호화된 심벌로 개명한 적이 있다. 부를 수는 없고 그릴 수만 있는 이름이었다.       

명사는 ‘쎄다’. 정말 강력하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뉴스는 낙지와 오징어에 관한 것이었다. 명사를 반대로 쓴다는 것, 즉 북한의 낙지가 우리의 오징어고 우리의 낙지는 북한에서 오징어란 사실이다. 먼 훗날 어쩌면 남북 통일의 최후 과제는 낙지와 오징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겐세이, 기스, 오뎅….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쓰이는 일본어들이 많다. 국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명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명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비극도 실은 명사에 대한 몰이해, 명사의 오용과 남용, 명사에 대한 왜곡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한가지 예로 빨갱이란 단어만 놓고봐도 그러하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자유 민주주의. 이거 어쩔 거냐, 이 말이다.

한국정당사를 뒤적이면 러시아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머리가 아파온다. 해방 직후부터 우후죽순, 오로지 1946년 발포된 미군정법령(美軍政法令) 제55호에 근거, 당원 수가 3명만 모이면 정당이 성립되던 시기에서 1948년 48개의 정당들이 참가한 제헌국회의원 선거까지…. 오, 이런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를 봤나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가 대체 무엇이냐, 언제 어느 때부터 생긴 이름이냐 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과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봐야 별 시덥잖은 인물일 게 뻔하고, 어쨌거나 한 50년 우리가 습관처럼 보수와 진보라는 명사를 써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저 두 개의 명사는 살아있을 것이다. 36년 전통의 겐세이와 오뎅보다 더 오래, 우리 입에 착착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따지고자 하는 것은 이 중요한 두 개의 명사가 산이나 물같은 공적인 정의가 아니라 ‘자칭’이란 것이다. 그래서 네가 왜 보수며, 그래서 네가 왜 진보냐는 질문이다. 누가 너한테 보수란 이름을 허락했으며 누가 너에게 진보란 이름을 불러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회의 청군과 백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하물며 스스로 핀 꽃이었더냐?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다가와 50년 우겨서 핀 이런 꽃 같은 명사를 봤나….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지지 않는 ‘꽃 같은’ 명사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같은 정치적 함의는 차치하고, 가장 쉽고 근원적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이른바 보수는 새로운 것을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래의 풍습과 가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뜻과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지켜야 할 새로운 가치가 생겼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그것이다.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새로운 역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지난 세월 주적으로 대립해 온 분단체제가 그간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우리의 가치였다면, 이제 그것은 빠르게 소멸해가는 과거의 가치이자 세계관이다.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지킬 것인가, 그 기로에 모두가 서 있다. 다가올 6월13일 지방선거는 어쩌면 최초로, 국민이 그대들의 이름을 다가가 불러 주는 날이 될 것이다.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인 이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국민들이… 지극히 보수적인 국민들이 진정으로 보수라는 이름을 선택하고 불러주는 날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신차려라 민주당. 이제 당신들이 보수다. 다가올 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실은 얼마나 보수적이고, 보수를 갈망해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이제 스스로가 보수임을 선언하면 좋겠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캐시어스 클레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고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든든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 돌이켜보기 바란다. 언제 당신들이 리버럴했고 언제 당신들이 혁명적이었나를. 그러니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같은 고민하지 말고 당당히 보수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나는 바란다. 무엇보다 아직도 진보라 여기며 스스로 퍼질러 앉은 그 널찍한 궁둥짝이 부담스럽다. 제발 자리 좀 옮겨주기 바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당신들 때문에 새 날개가 돋아날 자리가 없다 이 말이다. 그러니 정신차리고 제발 성큼, 견고한 보수로 자리 잡아라.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보다 귀한 보수로 활짝 피어라. 정신차리고 당신들이 보수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이 또한 영영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하는 얘기다. 지켜야 할 가치가 너무나 크고 중요하다. 새로운 보수의 시대를 열자. 꽃보다 보수다.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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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파트너만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및 기자회견 과정에서, 신태용 감독이 한 말이다. 다른 질문들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특유의 ‘어~’ 하는 간투사를 습관적으로 쓰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는데, 이 질문에서는 고개를 들어 특히 강조하였다.

해당 기자의 질문 의도는,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 라인의 전술과 조율에 관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성용 파트너’라는 단어가 활용되었고, 이에 관하여 대표팀 감독으로서 분명한 뜻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저 인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성용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대표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23인 엔트리를 똑같이 대우해줬으면 한다.”

중요한 발언이다. 대표팀을 구성하고 훈련하여 일단 조별리그 3경기 270분 동안 격전을 벌여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설령 그러한 질문이 없다 하더라도, 모처럼 생중계되는 과정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신뢰를 이렇게 선언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 스스로 누누이 밝혔듯이 이번 대표팀 명단은 그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유력했던 선수들 몇몇이 빠졌다. 수비의 핵심인 김진수 선수처럼, 일단 발탁은 했지만 걱정되는 자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를 다른 선수들이 채웠다. 꽤 오랫동안 소속팀의 벤치에 머물고 있는 이청용 선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었고 이에 대하여 신 감독은 몇 차례 비슷한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플랜 A’만 고집할 수는 없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선수들에 대한 신 감독의 마음도 불편했을 것이다. 특별히 김민재, 염기훈, 이창민에 더하여 전술적인 고려에 의해 선발하지 못한 최철순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막판까지 고심하여 최종 명단을 발표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판단과 다른 발언이 필요하다. “선수층이 두꺼운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 이후로는 감독의 입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게 막판에 가서야 승선하게 된 “선수들에게 예의이며 대우”이다.

이를테면 이승우와 문선민 선수. 회견 중에 신 감독은 “선수들 수준이 두터우면 이 선수 저 선수를 교란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은 오늘 이후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느 감독이든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축구고 그게 인생이다.

아니, 신 감독 스스로 이승우와 문선민에 대한 상당한 판단과 기대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 두 선수는 기성용, 구자철, 권창훈 등으로 구성되는 미드필드 라인에 예기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나이와 경험 부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동국, 이천수, 박주영이 처음 대표팀에 발탁될 때도 그 같은 비판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축구의 세계화 현상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제대로 배워서 이탈리아의 1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문선민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웨덴의 3부리그를 시작으로 하여 1부리그까지 뛴 후, 현재 인천의 중심에 섰다. 신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스웨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니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회심의 카드다.

속도!

금세기 축구의 최대 화두가 바로 속도다. 축구에서 말하는 속도는, 단순한 주파 능력이 아니라 능란한 기어 변속을 뜻한다. 과거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다 보면 결국 지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적으로 말한 ‘스웨덴전 후반 막판 15분’ 같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공간을 향하여 파괴적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 시공간은 겨우 10초 내외 10m 정도다. 우리 팀에는 반드시 그 순간에 그 공간을 침범해버리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미 이근호,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은 공격 진영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맘껏 누비는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왔다. 여기에 이승우 카드까지 더하면, 언제든지 급가속과 급선회가 가능한, 창의적인 속도의 축구가 펼쳐질 수 있다.

신 감독은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러시아에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킨 뒤 귀국해 국민들과 팬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역사의 우연인 듯, 러시아는 반란과 혁명의 나라다. 더욱이 스웨덴과 1차전을 갖는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반란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이며 독일과 맞붙는 3차전의 장소는, 혁명아 레닌이 대학을 다닌 카잔이다. 반란의 작가 고리키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다. 노동을 통하여 끝없는 힘이 솟아난다.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닌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절망이란 “악에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 감독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인용한 대로, 인터넷에서는 더러 고약한 사람들이 ‘3전 3패가 뻔하다’며 마치 축구공이 세모나 네모처럼 생긴 듯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의 공인구 역시 둥글다. 카잔의 혁명가 레닌은 “조직을 달라. 그러면 러시아를 뒤집어엎겠다”고 했다. 신 감독에게도 조직이 주어졌다. 비록 상황은 차선이었으나 그 자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조직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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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3만2035건이다. 그런데 교통안전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는 우리의 두 배가 넘는 53만689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상대적 수치를 비교하면 내용은 정반대가 된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일본이 0.5명이지만 우리나라는 1.9명, 인구 10만명당 사망자는 일본이 3.8명인데 우리나라는 9.1명으로 거꾸로 격차가 확 벌어지게 된다. 이런 착시 현상 때문에 교통사고 관련 통계는 반드시 상대적 수치를 활용하기 마련이다.

이런 착시는 교육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서도 근무했던 통계학자 게르트 보스바흐 박사가 한 토론회에서 겪은 사례다. 독일에서 사회적 위기로 논의되고 있는 인구문제 및 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였는데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가족부 장관은 주정부에서 신규 교사 1000명을 채용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그러자 보스바흐 박사는 베스트팔렌주에는 학교가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했고 당황한 장관이 우물쭈물하자 다른 교수가 공립학교만 7000개쯤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무려 1000명이나 되는 교사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7곳의 학교 중 1곳만 신규 교사를 채용했다’는 의미였으니 장관은 통계 숫자로 공공연히 사람들을 속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한 교육전문가는 “서울대 정시는 100% 수능으로 선발해요. 근데 정시에서는 일반고 출신 합격자가 59.3%예요. 반면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39.2%입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수능이 일반고에 더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는 걸까요?”라고 인터뷰했다. 실제 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시에서 일반고 출신은 510명이 합격했고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불과 337명이 합격했으니 이 숫자만 보면 일반고가 수능전형에서도 월등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주장을 알게 된 몇몇 고등학생들이 자료를 찾아보더니 이런 반박 논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고 학생은 119만3562명이고 특목고는 6만7960명, 자율고는 13만3896명이다. 일반고 학생 수가 특목고와 자율고 학생 수의 여섯 배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고의 수능 경쟁력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서 크게 떨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정시전형 합격자들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169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나마 교육특구 지역을 제외한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수능으로 최상위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도 쉽게 찾아내는 수능시험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들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왜곡된 통계자료와 감성적 논리를 통해서 구성된 주장들이 정부나 국회에서 입시정책을 세우고 법안을 심의하는데 영향을 줄 때 생기게 될 문제를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하다. 물론 정부와 교육청, 정치권이 일반고 교육동아리 학생들보다 나은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참고 자료 독일사례: 게르트 보스바흐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교육전문가 인터뷰: 이기정 <입시의 몰락>, 통계청 e-나라지표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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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있게 설명한다’는 말에서 ‘조리(條理)’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나뭇가지(條)가 뻗어가듯 체계적이며, 앞뒤가 맞게 잘 다듬는(理) 것을 뜻합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모두 아울러야 그 나무를 온전히 알 수 있고, 필요에 맞게 손을 봐야만 누군가에게 쉽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아! 하는 깨달음이 오거나 졸음만 오기도 합니다.

아기가 잘 받아먹지 못한다고 ‘떠먹여줘도 못 먹냐!’며 억지로 숟가락 욱여넣을 부모는 없습니다. 이해 못하는 학동이라면 훈장님은 회초리 대신 차근한 비유를 들어야겠지요.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보다 더 많이, 깊고 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한 자를 가르쳐주려면 천 자를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는 ‘한자(漢字)’, ‘천 자’는 ‘천자문(千字文)’도 뜻합니다. 한자 한 글자를 가르치려면 당연히 천자문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가르침이란 배움의 천 배 노력이라 해도 옳을 것입니다. 한자 천 자를 달달 외웠다고 천자문을 아는 게 아니듯, 많이 암기했다고 원리와 이치를 아는 건 아닐 텝니다. 단순 지식보다 여러 갈래 사이를 풍성하게 타넘으며, 한두 가지로 열을 만드는 창의와 융합이 훨씬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검색 한 번이면 다 나올 걸 여전히 달달 외워 시험을 칩니다. 그리고 어느 학생이 “하늘 천은 왜 검을 현이죠? 하늘은 파랗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그냥 외워!” “시험에 안 나와!” 또는 “진도 나가자!” 같은 실망스럽고 뻔한 답을 듣기도 할 겁니다.

스승의날은 천자문 대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춰 날짜를 잡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 ‘어린 백성’의 등불을 만들고자 잠도 잊은 스승이 어찌 대왕뿐이겠습니까. 하나를 옳게 알려주려 천 번을 생각하는 이들도 대왕님의 그날에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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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탈주범 지강헌은 돈이 권력인 세계를 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국민들이 “유○무죄 무○유죄”를 외치고 있다. 이 기막힌 구호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카가 한 장 올라온다. 대학의 크로키 수업에서 찍힌 누드 사진이었다. 커뮤니티 유저들은 그 사진을 보고 낄낄거리며 피해자를 희롱했다.

2014년까지 이런 정도의 사진은 그저 ‘보고 즐길 수도 있는 포르노’로 여겨졌다. 범죄라는 인식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메갈리아 이후 여성들은 몰카 촬영과 공유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강조하고 ‘디지털 성범죄’ 혹은 ‘불법촬영범죄’로 재명명했다.

더불어서 ‘몰카’가 범죄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청년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의 활동 덕분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인식 속에서 2018년 5월에 벌어진 이 ‘크로키 모델 사건’은 크게 화제가 된다.

경찰은 유례없이 발 빠르게 행동했고, 사건 발생 열흘 만에 범인을 잡아 포토라인 앞에 세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언론은 신이 났고, 사람들은 돌을 던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꾼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범죄인지 몰랐던 것을 범죄라고 각성시킨 것은 확실히 페미니즘의 역할이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피해자가 남성이었고, 가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2017년 기준 ‘불법촬영범죄’ 가해자 98%가 남성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좀 특이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지금 국민들은 바로 이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반대의 경우에도 이처럼 기민하고 엄정한 대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야말로 자신의 유능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 이 글을 30만1487명의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쓰고 있다. 이는 2018년 5월14일 오전 9시36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올라온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다. 이 청원에서 국민들은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 이는 페미니즘의 그 유명한 구호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를 문제 삼고,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 노동력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2018년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얼마 전 밝혀진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국민은행은 채용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100명의 서류전형 점수를 높여주었고, KEB하나은행은 합격자 성비를 남성 4 대 여성 1로 맞추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그 결과 여성 커트라인이 남성 커트라인보다 48점이나 높아졌다. 그야말로 성별이 스펙인 셈이다.

이 사건을 보고 “기업이 뽑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는데, 그게 문제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체성이나 신체적 특징 등 한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기회를 박탈하고 선택을 제한하며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을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국가는 법을 만들어 차별 행위를 처벌한다. 하지만 우리는 법도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산다.

“유○무죄 무○유죄”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이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늘 뭉그적거렸던 경찰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움직인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피해자가 남자여서? 가해자가 여자여서? 혹은 언론의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 ‘남성’이라는 성별이 파워가 되어 공정한 법 집행을 막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요구한다. 동일한 범죄에 동일한 수사와 처벌을.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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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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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한 마리 날아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반도를 엄습했던 전쟁의 공포를 생각해보면 불과 일 년 만에 천지개벽할 소식이 줄을 잇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야당이 선거 전략을 비롯해 당의 정체성까지 고심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당 대표라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2일 창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손팻말 시위를 하던 이들을 보고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고 발언해서 또다시 막말이 화제에 올랐다. 홍 대표의 창원 빨갱이 발언을 접하자 예전에 읽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58년 9월15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왜 국민을 억지로 공산당으로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설이 게재되었던 이유는 당시 삼천포 전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극우 인사 사백삼십팔명이 자유당 중앙당부와 대법원에 “삼천포 오만여 시민 중에 그 팔할(八割)에 해당하는 사만여명이 적색분자”이고, “민의원 이재현씨는 현재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보당원”이며 “삼천포는 불원간 ‘제2의 모스크바’가 될 듯하니 이들을 조치하여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사천시의 일부가 되었지만, 삼천포는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는 조세창(漕稅倉)이 설치되면서 항구로 발전했다. 1931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되었지만, 인근의 사천군, 고성군, 남해군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시 승격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56년 당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정갑주(鄭甲柱)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삼천포를 어렵게 시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8년 5월2일에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이재현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밀려 5827표를 얻는 데 그쳐 2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도대체 삼천포는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 아래 있는 한 도시 시민의 팔할이 공산당이라고 하면 그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행정기관은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사실은 “삼천포 시민들이 자유당의 공천자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보수정치세력이 정권 안보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한마디가 바로 ‘빨갱이’라는 호명이었다. 이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은 고발하기는 쉽고 변호하기는 어려워서 부당한 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언제나 유용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한편으로 남한의 우월성과 체제경쟁 승리를 자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취약하다며 위기의식을 부풀려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모호한 존재들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낸 세월이 70년이다.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란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제 선거에서 패배라도 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은 죄다 빨갱이가 될 판이다. 오늘날 홍준표 대표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진영의 자화상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퇴행을 거듭하여 큰 틀에서나마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덧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조차 진부하게 들리는 시대다. 지난 세기말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한 냉전 해체의 바람이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려 이제야 극동(極東)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수의 참모습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그런 보수가 필요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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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민들이 불안을 느꼈던 위험요소 중 으뜸은 미세먼지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남녀 3839명을 대상으로 각종 위험에 관한 불안수준을 측정했더니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이 가장 높은 3.46점(5점 만점)을 기록했다. ‘경제침체’(3.38점), ‘북핵’(3.26점), ‘고령화’(3.31점), ‘지진’(2.73점)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4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미세먼지 속 마라톤을 중지해야 한다는 기자회견과 함께 미세먼지 속에서 마라톤을 하다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조사가 진행된 2017년은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가 전쟁위기 국면에 빠졌던 해다. 게다가 2016년 경주에 이어 지난해 경북 포항에서도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하는 등 자연재해가 잇달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위기와 빈발하는 지진 등 자연재해보다 미세먼지를 더 심각한 위험요소로 꼽았다. 2016년 이후 미세먼지 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오염원 논쟁 등이 이어지면서 불안감이 확산됐다. 북핵이나 자연재해가 잠재적인 위험요소였다 해도 매일매일 숨 쉴 권리까지 위협하는 미세먼지야말로 가장 심각한 불안요인이라는 절박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2060년 한국의 대기오염 조기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만명당 1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치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늘 중국 탓으로만 돌렸던 미세먼지 책임론이 1~2년의 논쟁 끝에 국내외 복합적인 요인으로 정리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사회시스템도, 시민의식도 부족하다. 여전히 ‘중국발 몇%, 국내요인 몇%’ 등 숫자 타령에 품을 들이고, 마스크 착용과 외부활동 금지 등의 초보적인 대책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어린아이나 노인들에게 미세먼지가 더 위험한지, 혹은 마스크 착용에 따른 산소부족과 호흡곤란이 건강에 더 해로운지 제대로 검증해보지도 않았다. 1년에 단 며칠인 미세먼지 고농도일의 일평균 값을 낮추기보다는 연평균 값, 즉 평상시 농도를 낮추는 것이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6~10배가량 효율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컨대 고농도일의 강제 차량 2부제도 단기대책으로는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평상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만드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204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하겠다는 영국과 프랑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시민들도 당국의 정책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적다 하더라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시민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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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의 재조사 여론이 커지고 있다. 종업원 일부가 JTBC 인터뷰를 통해 “전원이 자유의사로 탈북해 남한에 들어왔다”는 정부 설명을 뒤엎는 증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여종업원 12명을 데리고 온 중국 저장성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씨는 “2014년 말부터 국정원의 정보원이 돼 1년여간 각종 정보를 넘겨오다 들통날 위기에 처해 국정원 직원에게 귀순을 요청했다”며 “그런데 국정원이 ‘종업원까지 다 데리고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북한 식당에서 집단 탈북한 종업원 13명이 서울에 도착해 경기 시흥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이들의 기획탈북설 논란이 제기되자 통일부가 입국 경위 등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널 기다리신다. 무공훈장을 받고 국정원에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 응한 4명의 여종업원은 “지배인이 며칠 전부터 숙소를 다른 데로 옮긴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며 “말레이시아 한국 대사관에 도착해서야 한국에 가는 것을 알았다”며 남한행은 물론 탈북 계획조차 몰랐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여종업원들은 자유의사가 아니라 ‘약취·유인’을 당해 남한에 들어온 셈이다.

이 사건은 발표 당시부터 의문투성이였다.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보통 한달 걸리는데 단 이틀 만에 입국한 것이나, 정부가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제시하며 입국사실을 발표한 것을 두고 ‘총선용 기획 탈북’설이 제기됐다. 방송 인터뷰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4일 “북한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을 국가정보원에서 기획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박근혜 정부의 이병호 국가정보원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변은 “선거 승리를 위해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은폐하고 방치한 불법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북한으로 돌아가면 남한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이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묻어두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행위를 알고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정부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종업원들의 거취는 그런 다음 지혜를 모아 해법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해선 안된다. 이 문제는 남북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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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8일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한다’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자 “물가 인상이나 통상마찰 등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있어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GMO 표시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경실련·소비자시민모임·아이쿱생협활동연합회 등 5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GMO 표시 강화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아이쿱생협 회원과 농민들이 지난 4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GMO 표시제 강화’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GMO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GMO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미국은 물론 호주·일본 등도 완전표시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유럽은 수입 농산물에 포함되는 GMO의 비의도적 혼입률을 0.9%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도 GMO 표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2월 ‘유전자변형식품의 표시 기준’을 개정해 GMO 표시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DNA나 단백질 구조가 완전히 파괴된 가공제품은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을 뒀다. 게다가 GMO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Non-GMO’나 ‘GMO-Free(GMO 없음)’ 표시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시민단체들이 식약처가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유명무실한 ‘짝퉁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한국의 GMO 수입량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연간 수입량이 1000만t에 달하고, 200만t이 식용으로 쓰인다. 국민 1인당 연간 40㎏이 넘는 GMO를 먹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 물량의 대부분이 콩·옥수수 등이고, 간장이나 식용유 등의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밥상에 거의 매일 GMO가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O의 인체 유해성 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전성 논란이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미루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시민 의견이 72%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GMO 완전표시제는 원산지 표시제처럼 기본적인 식품 안전표시 제도다.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해서는 늑장 대응보다는 선제적 대응이 낫다는 것을 명심하고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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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역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분열과 적대의 70년을 뒤로하고 항구적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말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분단체제에 기생하여 색깔론 따위로 이득을 얻어 왔던 세력들이 여전히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이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는 내적인 문화적 역량을 가지고 있기는 한지 참으로 걱정이다.

한반도 전체에는 평화체제가 도래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적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이질적인 것들의 상생적 공존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의 문제를 아직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분단체제 때문에 그동안 ‘타자’를 포용하지 못하고 배제하며 혐오하고 적대하기까지 하는 ‘전쟁문화’가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지 이념뿐만 아니라 지역, 계층, 젠더 등을 둘러싸고서도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냉전적 유형의 갈등이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제대로 된 정착을 위해서라도 이런 ‘우리 안의 냉전’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갈등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영원한 본성에 속한다고 해야 하고, 지역, 계층, 젠더 등의 차이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어떤 사회에서든 있을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갈등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갈등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그것이 모두의 공멸이 아니라 상생과 번영으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이다.

마키아벨리의 구분을 빌리자면, 사회적 갈등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만 끝까지 관철시키려 드는 ‘투쟁’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과 관점이 반영된 공동의 삶의 질서를 낳을 수 있는 ‘논쟁’이 될 때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런 논쟁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은 공정성과 상호존중이다. 누구에게든 틀리더라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라 단지 생각과 처지가 다른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공동의 삶의 틀 자체를 깨지 않는 한 그 어떤 이견이나 차이도 존중하고 상대를 폭력적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포용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그런 바탕 위에서만 갈등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제1야당 대표라는 인사가 바로 이런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빨갱이’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배제의 정치를 선동하고 있다. 그런 관용의 규범은 사실 이 당이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적 관용의 체제는 그런 불관용을 선동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불관용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이런 당이 더 이상 설 곳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서술 지침을 놓고 또 케케묵은 이념시비를 걸고 있다. 이렇게 특정 진영이 ‘유일하게 올바르다’고 여기는 역사관만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한다는 발상 역시 그 규범을 부정한다. 이 때문에 진보 쪽에서 또 다른 올바른 역사관을 내세우며 맞서는 것은 옳지 않다. 가령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할지 아니면 건국일로 할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합리적인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독일의 좌우 정치진영이 소모적인 이념 논쟁 너머에서 미래 세대가 올바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정치교육’을 하자면서 이끌어 낸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핵심 원칙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다, 근거는 각기 이러저러하다, 옳고 그름은 학생들이 스스로 따져서 판단하라,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런 ‘논쟁성의 원칙’으로 이제 무의미한 ‘역사전쟁’을 끝내야 한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주의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승자독식의 원리를 따르는 다수결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시간적 제약 등에 따른 실용적 필요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지 그 자체로 민주주의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결주의 너머에서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심층 합의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반공안보체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도록 포용의 원칙 같은 가장 기본적인 다원적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게 했다. 이제 바로 그런 합의를 이룰 때가 되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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