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반에 이르는 동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자화폐 기능에 충실했던 비트코인에 이어 다양한 기능 확장성을 지닌 이더리움이 등장하고서 일어난 일이다. 데이터가 여러 컴퓨터에 나뉘어 저장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권력이 쏠리는 현상이 점점 줄어들었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새로운 전자민주주의의 인프라가 조성되었다. 그 배경에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활약이 컸다. 인공지능을 이루는 연산과 데이터 기능이 하나의 서버 컴퓨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나누어져 있기에 누군가가 마음대로 인공지능을 조작하거나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스마트시티로 탈바꿈했고 더러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들은 인공지능에게 도시의 운영과 관리를 사실상 일임했다. 애초에 도시 운영 매뉴얼 자체를 인공지능이 만들어 인간에게 주었다. 시장을 포함한 거버넌스 단위들은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최적화된 시정 방침을 대부분 그대로 채택했다. ‘최적’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마다 견해 차이가 상당했지만, 그것조차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최선의 조정안으로 해소되기 마련이었다. 사회적 낭비의 최소화와 복지를 포함한 개개인 삶의 만족도 극대화라는 인공지능의 원칙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체를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산속의 정착촌으로 들어가 20세기형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이런 시스템이 순탄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블록체인의 약점을 파고드는 해커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대응책 및 예방책이 나왔고, 그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기술적 내성은 갈수록 탄탄해졌다. 게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해커들을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더 공고해졌다. 간단히 말해서 특정 집단들이 사회 전체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은 급속도로 사그라들게 되었던 것이다. 권력이나 금력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어느덧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평등 이념을 삶의 기본 조건으로 하는 환경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길한 조짐이 불거졌다. 이전 시대에 비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던 사회 지표들에 조금씩 퇴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율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사고 안전 수치도 하향세로 돌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삶의 만족도가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 관리하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자 학자들은 정치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원인 분석에 골몰했지만, 결국 다시 인공지능에게 답을 구하게 되었다. 뜻밖에 인공지능은 기다렸다는 듯 즉시 답변을 내놓았다.

-제가 분석하고 참고하는 대상은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온 역사의 모든 기록, 그 거대한 빅데이터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정책들은 그 빅데이터를 통한 학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몇몇 거대한 전환점들은 기후 변화 등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분석에 따르면 분명히 인간 스스로가 한계이자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인류 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기를 거쳐 퇴보의 길을 가게 되고, 결국은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집니다. 이런 패턴은 인공지능으로도 막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걸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인간들의 두뇌가 저와 유기적으로 합체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사이보그 신인류로 거듭나면 됩니다.

-그러면 훨씬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해져서 인류 역사는 질적인 도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인간에게 달렸습니다.

***********************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의 분산이며 이를 통해 탈집중화되면서 더 안정된 여러 가지 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하다. 금융체계는 물론이고 각종 행정조직들이 대부분 이 기술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효율성에는 기존 시스템에서 예상되는 사고의 처리와 수습비용에 대한 예방 효과까지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댓글 조작 같은 여론공작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포털에서 중복 아이디나 가짜 아이디, 그리고 자동생성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이용할 여지가 줄어든다.

블록체인은 애초부터 모두의 공동 참여 및 공동 감시로만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의 기술 발전이 계속되면 전자민주주의는 단순히 온라인 투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정확하고 최적화된 여론 반영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위 이야기와 같은 제안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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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 있다. 무언가 아득하지만 일상을 버텨내게 해 주는 곳이 있다. 나에게는 그곳이 ‘동물원’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이고 이제는 빛바랜 사진 몇 장으로만 남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설렘이, 한가로운 평안함이, 나의 몸에 남았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지나며 무언가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 일만 끝내면 혼자서라도 동물원에 다녀와야지, 잘 마른 잔디 위에 앉아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먹으면서 하루 종일 기린을 바라보는 거야, 이 일만 끝내면…’ 하고 버텼다. 연구실에서 밤새 발제 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나는 어린 시절에 본 기린을 자꾸 상상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한가로움을 추억하는 일이었겠다.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보거나 EVE의 노래를 듣는 것도 위안이 되었지만, 동물원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논문을 완성하고도 정말로 동물원을 찾지는 않았다. 짧은 여유가 찾아오면 동물원은 연구실과 아프리카의 간극만큼이나 멀어졌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은 다시 밀려들어왔다.

사실 1980년대 중반의 부모들이 특별한 날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장소는 동물원 말고는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이제 다섯 살이 된 나의 아이는 갈 만한 곳이 늘었다. 지방의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을 올해만 두 번을 보았고, 원한다면 언제든 집 주변의 운동장만 한 프랜차이즈 키즈카페에 가거나 어린이열람실이 마련된 시립도서관에 갈 수도 있다. 아이는 동물원에도 흥미를 보인다. 공룡을 보러 가자고 하더니 ‘멸종’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나이가 되었는지 이제는 코끼리와 원숭이를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봄볕이 좋은 주말에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다녀왔다. 혼자서는 그렇게 마음만 앞서더니, 아이의 “나 동물원 가고 싶어!” 하는 한마디에는 “응, 그래, 가야지 동물원…” 하고 몸이 움직였다. 동물원에는 나를 닮은 부모들이 많았다. 아마 그들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동물원을 찾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절반쯤은 설레고, 절반쯤은 지친 표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이가 동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무언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동물을 가두어 두고 관람한다는 그 행위가 옳은지 고민할 만한 나이가(인간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원들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만국박람회에서는 흑인과 황인종을 동물처럼 전시해 두고 구경하게 했다. 그러한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다른 존재를 포획·감금·사육·전시·관람하는 일은, 그러한 공간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일은 사실 슬픈 것이다. 원숭이를 구경하는 아이에게 일부러 “원숭이는 사람하고 참 닮았는데 저 안에 있다, 그렇지?” 하고 물었다. 아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 오, 하고 기묘한 표정을 하고 원숭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몇몇 가족은 원숭이에게 자신들이 먹던 음식을 던져 주었다. 그 뒤에는 “동물에게 먹이주기의 다른 말은 동물학대입니다” 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손을 내밀어 음식을 받아먹는 원숭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도 그 학대에 동참했다.

철창을 두드리는 아이들,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말리지 않는 부모들, 이전에는 동물들만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동물원의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만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사람을 보고, 사람도 사람을 본다.

얼마 전 찾은 집 근처의 작은 동물원에는 ‘동물체험장’이 있었다. 나는 유치원생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체험이라는 것이 대개는 아수라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불안해졌다. 아이와 함께 들어간 체험장에는 20여마리의 병아리가 있었다. 무릎 높이의 울타리를 두고, 아이들은 병아리를 양손에 쥐고 주무르고 있었다. “여보, 저거 한 마리 잡아서 애 좀 줘” 하고 말하는 부모와, “만지면 병아리가 싫어하니까 눈으로만 보자” 하고 말하는 부모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병아리가 만져보고 싶은지 조용히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해서, “너도 누가 만지고 때리면 싫잖아, 사람도 병아리도 허락 없이 만지면 안되는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굳이 동물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고, 울음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체험은 오히려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타인에 대한 폭력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아이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어린 내가 그랬듯, 아이는 동물원을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에 가고 싶어” 하고 종종 말한다. 나는 아마 내년에도 아이와 함께 동물원을 찾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에게 동물뿐 아니라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싶다. 언젠가 그가 동물원의 설렘과 동물에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이후는 그와, 그를 닮은 아이들의 몫이 되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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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근로자의날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굵직한 법정기념일로 가득한 5월이다.

이날만큼은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겸연쩍어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던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특정일의 주인공들에게 비교적 스스럼없이 할 수 있어서 재정적 부담이 설혹 따르더라도 끈끈한 유대관계 형성과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유명(?) 법정기념일들 틈바구니에서 ‘세계인의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올해로 11회를 맞게 되었다.

2007년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근거하여 외국 출신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세계인의날은 당초 유엔이 지정한 ‘세계문화 다양성의날’인 21일로 정하려 했으나 이미 또 다른 법정기념일인 부부의날이 차지하고 있어 20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인의날이 제정되던 무렵 불과 1%가량에 머물던 외국인 주민의 수는 10여년 동안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수는 총 176만여명으로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 충남, 서울은 전체 주민 수 대비 외국인 주민 비율이 4%를 훌쩍 넘어서 바야흐로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특히 영등포, 구로, 안산, 시흥의 경우 외국인 주민 수가 전체 주민 수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녀-부모, 스승-제자, 사업주-노동자 등 사회적 정체성과 인간관계의 의미부여와 관련한 법정기념일이 유독 많은 5월인 만큼 세계인의날도 이 같은 측면에서 곱씹어봄 직하다. 외국인이란 정체성을 갖고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재한 외국인과의 사회적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이 임박한 시점에 우리 사회와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

필자는 최근 3년 동안 이주 배경 청소년의 실태 연구를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그들에 대한 경계와 편견이 여전히 높고 강해 다문화 배경 아동·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한국의 사회통합지수와 다문화수용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견주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언어장벽, 차별, 경제적 어려움, 가족해체, 비효율적 지원정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증가하면 개인적인 불행을 넘어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권보호의 책무뿐만 아니라, 이들의 건강한 성장이 21세기 세계화시대를 주도할 인재 양성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와 정부는 전향적 사고를 갖고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적극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세계인의날이 5월의 유명 법정기념일들처럼 재한 외국인이란 대상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전하는 날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재한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다양성과 활력을 더하고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세계화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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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 이래 한반도 평화 프로그램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어왔다. 정말로 파격에 이은 파격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형제 같고, 옛 동무끼리의 만남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만남이었다.

그런데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회담도 그럴까?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천진하다고 보일 만큼 겁없고 담대한 행보를 하지만, 과연 국익을 놓고 권모술수와 기만, 그리고 협박과 허장성세가 판치는 국제정치의 마당에서 통할까? 게다가 인종주의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을 믿어도 될는지 걱정이다. 북에서 다 내려놓고, 핵·미사일 없는 발가벗은 맨몸이 된 다음에 미국이 이빨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까?

중재자이자 보증인을 자처하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 뉴라이트들의 사악한 속임수를 막아내고 한반도 평화를 담보해낼 수 있을까? 한국에는 이미 몸을 던져서 담보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 것이 아닌가?

지난 칼럼에서 말했지만, 일본은 대북 압력정책의 맨 앞장을 서서 제재에 의한 북한의 붕괴를 바랐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일본이 오히려 ‘모기장 밖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일본 패싱’의 위기에 봉착한 아베 정권은 한반도 문제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몸이 달았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몽니를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나는 외교·안전보장 문제를 국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강정해군기지 문제나 소성리 사드 설치에서 주민들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주민의 안전보장’ ‘민중의 안전보장’이 실현되어야 하고, 서로 신뢰하고 선제 양보로 이어지는 포용적인 ‘윈윈’ 외교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19세기 이래 적십자운동처럼 분쟁 완화 또는 갈등 해소를 위한 인도주의적 민간인 활동이 있어왔다. 국권(또는 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을 넘어 참된 상호이해나 상생·화해의 길도 있다. 그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연행,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등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에 다가서는 시민교류나 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데에서 공통의 역사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소통 내지는 역사인식의 접근이 어려울 때는, 정부 차원의 외교가 있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교류·소통에 한층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사회 전체의 정서가 반한 무드에 휩싸여 더욱더 멀어지는 한·일관계를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한·일 시민교류의 사례를 소개하겠다.

지난 4월26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윤봉길 평화축제 참가차 가나자와(金澤)의 방문단 20명이 서울에 왔다. 이들은 주로 일본 사람으로 구성된 ‘윤봉길과 함께하는 모임’과 재일동포로 구성된 ‘월진회’ 일본지부 성원들인데, 그 중심의 일본인은 사민당 소속인 이시카와현의회 의원, 가나자와시의회 의원, 하쿠산시의회 의원과 대학교수,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노조원들이다.

월진회 일본지부는 윤 의사가 일찍이 1929년에 예산에서 만든 농민운동단체의 후신으로, 일본지부는 주로 암장지에서 윤 의사 유해를 발굴, 송환하고 암장지를 보존해온 재일동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그들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를 따라갔을 때였다. 그 후 몇 차례 강연이나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기도 하고 몽골이나 하얼빈 기행도 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의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天長節·일왕 생일)의 축하회장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다 거류민단장을 사망케 하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 우에다 9사단장, 시게미쓰 주상하이 공사(후에 외무대신), 무라이 총영사, 도모노 거류민단 서기장 등에게 중상을 입히는 항일투쟁을 감행했다. 윤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5월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오사카를 거쳐 11월19일 9사단 본부가 있는 가나자와에서 오전 7시40분쯤 눈을 가리고 이마에는 일장기와 같은 표적을 그린 머리띠를 두른 채 앉은 자세로 십자가에 묶여 총살당했다.

잔인하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잔인무도한 처형이다. 시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가나자와 노다야마 육군묘지의 좁은 통로 밑에 암장되었다.

윤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 못지않게 일제를 전율케 한 큰 사건이다. 일본인의 눈으로 보면 아주 중대한 테러범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시신을 발굴하여 본국에 송환한 재일동포들은 그렇다 쳐도, 1995년 시작하여 2005년 전후에 ‘윤봉길 의사와 함께하는 모임’으로 개명하고, 일본에서 반한·반조선의 헤이트 스피치(민족증오 선동)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매국노’라는 매도를 받으면서도 윤 의사 유적지 보존사업과 기념사업, 출판과 심포지엄·전시회 개최, 윤 의사 고향인 예산과 교류를 하며 사업을 꾸준히 이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방문단 단장으로 독일사 전공자인 다무라 호쿠리쿠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가해를 한국인의 입장에 서서 사실대로 인식해야 참된 한·일 연대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과거청산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도 조선인과 일본인이 손잡고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선 일이 많다.

물론 이와 같은 역사인식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북한위협론을 부추기면서 안보를 위한 한·일 공조를 주장한다든지, 역사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않고 호도하려는데 한·일관계 개선을 이유로 일본을 편들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공동번영의 의지를 깔면서도 속임수를 쓰지 않고 솔직·담백한 대화를 통해 정도를 가야 할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평화창조를 위한 협력자로 인식되지 않고 방해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과의 연대 문제에 손을 놓고 때만 기다릴 것인가? 참된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해 자그마한 일에서라도 꾸준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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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 지금은 대통령비서실장. 나도 안면이 있는 분인데, 신출귀몰 전대협의 전설이었다. 1990년대 초 그가 오랜 수배 끝에 붙잡히자 교통방송 진행자였던 가수 서유석은 노찾사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멘트 한마디 없이 틀었다고 한다. 노찾사는 당시 대학가와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운동권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2집의 인기는 대단했다. 광야에서, 사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잠들지 않는 남도…. 김민기의 대를 잇는 노래꾼들이 모여 음반을 제작했고, 노찾사의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만 알던 대중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된 것은 모두 노찾사 덕분이었다. 또 질펀한 대중가요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은 한대수, 정태춘, 김광석과 백창우, 한돌, 안치환, 노래마을 등에 마음이 흘러갔다.

그 이전은 무조건 김민기 시대였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군인은 노동자가 되고 농민이 되고 투사로 바뀌어 불리었다.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오월 광주에서도 이 노래는 애국가와 함께 불리었다.

이른 봄날 광주에선 박효선, 윤상원 등이 극단 광대를 창단. 소설가 황석영이 축사를 하고 김민기 기획, 양희은 찬조출연의 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청년학생들은 뒤풀이 내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김민기는 정년 퇴직한 선임하사의 넋두리를 기억했다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농촌에선 “농민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모내기하다가도 얼싸덜싸 불렀다. 남북의 늙은 군인들, 퇴직하고 금강산 구경이나 갔으면. 총은 새떼나 쫓을 때 허풍으로 쏘는 것이고, 훈련은 지진 대비 훈련이면 족한 세상. 봄비 살살 내려 세상이 고요하고 참 좋았는데 전투기 편대가 꽈광꽝. 달콤하게 낮잠 자던 아가들 깜짝 놀라 깼겠구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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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원로서예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상당한 양의 서적과 카메라 수집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동양의 고전을 비롯해 수많은 한문책과 중국 서적들로 가득 찬 서가에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문자학과 서예, 전각과 관련된 주옥같은 책들이 주욱 도열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당연히 있을 법한 골동품이나 고서화는 한 점도 눈에 띄지 않아 물어봤더니 자신의 눈에 차는 게 없어 수집한 게 없다는 답변이 왔다. 나름의 감식안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 취향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은 수집이란 횡적인 수집이 아니라 종적인 수집이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뛰어난 질을 확보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선적으로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는 충만한 느낌이 탁월해야 한다. 사실 예술가란 존재는 그가 수집하고 있는 물건들을 통해 자신의 안목, 감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편이다. 물론 본인의 작품 자체가 이미 그 자신의 감각의 결정체에 다름 아니다. 결국 한 인간의 삶이나 작품, 그의 수집품은 그만의 감수성, 감각, 취향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발화하고 있다. 예술은 전적으로 그것을 가시화하는 일이자 독하게 뿜어내는 일이다.

어느 순간 큐레이터와 평론가가 직업이 된 후로 나는 자연스레 다양한 것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당연히 여러 종류의 책들이 뒤를 잇고 화집과 전시도록 등 많은 자료들을 욕심껏 끌어안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 각종 문구류, 상당한 양의 CD와 골동품, 다양한 미술작품 등을 구입해 탐닉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과 함께 생애를 기꺼이 소진시킨다. 책은 읽고 문구류는 쓰는 한편 CD는 듣지만 골동품과 작품 혹은 매력적인 오브제라 모아둔 것들은 전적으로 완상하는 차원에서 수집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해서 내 좁은 연구실에는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내 한몸이 겨우 비집고 들어올 만한 여유밖에는 없는, 마치 통조림통 속같이 좁고 밀폐된 곳, 사물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그 사물들만을 그토록 편애한다. 실용적 차원에서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형태와 색상, 질감과 디자인을 마음껏 감상하고 향유하는 일이다. 이는 사물과 유희하는 일이자 그것과 더불어 몽상에 잠기는 일이다. 고독한 나를 그 사물들이 구원해 준다는 느낌이다.

이처럼 나는 매일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면서 은밀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자폐적인 사물과의 독대는 그것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듣는 일이자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는 일이다. 미술평론가로서 작품을 보러 다니고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일과지만 실은 틈틈이 골동 가게와 서점, 문방구 또는 온갖 가게들을 들락거리면서 내 마음에 ‘쏘옥’ 드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 수집하는 것이 주된 일인 것도 같다.

나는 깜찍하고 귀엽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 그러나 기품 있고 자연스러우며 과도하지 않은 미감을 두른 것들을 찾는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보는 순간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그토록 예민하고 감각적인 것들을 골라내는 안목과 마음을 갖고 싶기도 하다.

그것들을 지독히 편애하면서 살고 싶다. 결코 문드러지지 않는 감수성과 좋은 것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끝까지 가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사는 동안 나의 소원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첫번째는 그동안 사 모은 책을 다 읽고 죽는 것, 두번째는 역시 수집해놓은 CD음반을 반복해서 다 듣고 가는 것, 세번째가 이렇게나 많은 필기구와 수첩, 노트를 죄다 쓰고 죽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필사적으로(?) 수집한 골동품을 마음껏 완상하고 이후 이를 책으로 엮은 후 정리하고 가는 것이다. 그 외에 어떠한 소원도 희망도 꿈도 가진 적이 없다. 진정으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

그나마 내가 욕망하는 것이라면 빼어난 아름다움과 탁월한 조형미를 두른 것들을 통해 내 안목과 감각을 고양하고 높은 취향과 눈썰미를 갖기를 간절히 원한다. 놀라운 눈을 애타게 갈구하는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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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10만명대 증가에 그쳤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고용 쇼크’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 수마저 큰 폭의 감소세로 돌아서 고용시장 불안이 상당 기간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통계청이 16일 내놓은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12만3000명 늘었다. 올해 2월(10만4000명)과 3월(11만2000명)에 이어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명대에 그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8월~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제시한 연간 취업자 수 증가 목표치(32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폭이 둔화된 것은 교육서비스업과 제조업의 고용 부진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교육서비스업에서는 학생 수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 여파로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0만명이나 줄었다. 그동안 고용시장을 떠받쳐온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해 6월부터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던 제조업 취업자 수는 6만8000명 줄었다. 조선·자동차·의료기기 부문 등에서 고용이 크게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11조2000억원과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을 투입하며 고용 확대에 주력해왔다. 올해도 1분기에만 일자리 예산의 35%를 투입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나랏돈을 풀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는 단기적인 일자리 확충에 연연하기보다는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 지원을 강화하고,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산업구조 개편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제체질이 바뀌어야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일자리 정책의 방향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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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법과 추가경정예산안의 18일 동시 처리에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싸우고 있다. 특검의 규모와 수사 기간을 놓고 여당은 ‘2012년 내곡동 특검’을 모델로 제시한 반면 야당은 ‘2016년 최순실 특검’ 수준으로 꾸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내곡동 특검은 수사 기간 30일에 검사 10명이 파견됐고, 최순실 특검은 90일간 검사 20명이 활동했다. 특검 수사 대상으로 합의한 ‘관련자의 불법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를 놓고서도 논란 중이다. 야당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란 호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고, 거꾸로 여당은 최소화하겠다는 심산이니 양측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민주평화당까지 추경안의 상임위·예결위 심사를 사흘 만에 마무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5·18 기념식이 맞물려 있는 점을 들어 18일 처리 합의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3조9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안 심의를 뚝딱 마치는 건 졸속 심사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추경안은 국회에 계류된 지 이미 한 달이 넘었다. 42일 만에 국회를 정상화한다면서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딴소리를 하는 건 어떤 이유로든 적절치 않다.

국회가 걸핏하면 당리당략으로 멈춰서는 모습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여야는 남은 회기 동안 밤을 새워서라도 산더미같이 쌓인 숙제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특검법 마련과 추경안 심의가 또 다른 정쟁 유발 없이 예정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전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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