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종편 채널에서 2030세대의 통일 및 대북 인식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출연할 일은 평생 없으리라 여긴 채널인지라 머뭇거리며 설명 듣던 것은 잠시다. 일러준 촬영일시는 어차피 내게 무리였기에 마음 편히 거절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일은 나의 통일 및 대북 인식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됐다. 일단 나는 ‘통일’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폭력성을 내재한 단어라고 느낀다. 수십년간 나뉘어 존재했던 것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세가 약한 쪽이 강한 쪽에 흡수되는 양상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무릎 꿇리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안이 덜 폭력적일 것이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최근 회담 전까지 북한 정권은 돌출적이고 호전적인 언행으로 대화를 어렵게 하고, 타국민의 불안을 자극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권력을 쥔 자들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지, 평범한 주민들까지 싸잡아 증오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곳에도 우리처럼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북한’이라고 뭉뚱그려진 대상을 싸잡아 혐오하며 교류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준비된 식민지로 여기며 입맛 다시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유다.

북한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일이 국내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과, 보편 시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노력을 짓밟는 흔한 수법으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이전 정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 풍부한 광물, 토건 사업을 벌일 공간을 생각하면 “통일은 대박”이라는 주장들. 여기에 상대에 대한 문화적 이해, 발붙이고 사는 주민들의 욕망과 권리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지난한 현실의 종식을 기대하게 했다. 북한의 지도자가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일 수 있다는 신뢰, 북한의 지역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당일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대동강맥주, 평양냉면, 개마고원 트레킹 등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나 역시 교역과 관광의 물꼬가 트이고, 북한이 안전한 국가라는 확신을 준다면 평양의 시가지를 구경하고 냉면과 맥주를 먹고 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동네 편의점에서 대동강맥주 4캔을 1만원에 구매할 수 있고, 홍대에 옥류관 분점이 생긴다면 더욱 좋겠다.

이처럼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산가족의 고통 경감과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냉면과 맥주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남한과 북한이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문화적으로 교류하여 일반 시민들도 그곳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내 입장은 밀레니얼세대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세대는 청소년 시기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개인 단위로 국제적 교류를 하는 경험에 익숙해졌기에 세계 시민의 감각을 지닌 동시에 개인주의적이고 리버럴하다고 분석된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정반대의 현실을 목도할 때도 많다. 내 또래에서 집단주의, 전체주의, 인종주의적 사고를 가진 이들의 수가 적지 않음을 발견할 때다. 자기와 다른 존재에게 낙인을 씌우고 재갈을 물리며 존엄을 짓밟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는 청년들은 세대적 분석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내 대북인식도 2030세대 보편의 것이라 말하면 안되갔구나….

그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내 경험과 생각을 발화하는 까닭은, 개개인의 경험과 의견이 충분히 모이고 검토된 뒤에야 어떤 집단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엇보다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계급의 청년과 여성의 진솔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의 욕망과 분노와 환희를, 삶의 배경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을. 북·미 회담 이후 항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우리에게 서로를 더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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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 마사시 다이쇼대학 객원교수는 2017년 발간한 &lt;미래 연표&gt;에서 현재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인 출생아 수의 감소, 고령자의 급증, 사회의 노동력 부족,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서 발생하는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에 ‘고요한 재난’이라고 이름 붙였다. 2016년 일본의 연간 출생아 수는 97만6979명에 그쳐 역대 최초로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고, 1949년 269만663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출생아 수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어 2065년에는 55만7000명, 2115년에는 31만8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일군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17년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전년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고, 출생아 수가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보여주는 합계출산율도 전년(1.17명)보다 0.12명(10.3%) 감소한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2015~2065)’에는 인구 감소 시작 시점이 2032년으로 돼 있지만, 출생아 수가 다시 늘지 않으면 이 시점이 2024년이 될 수 있다고 자체 진단하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출산이 계속되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 사회 전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할 수 없게 되고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젊은 힘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는 급속히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인재가 많을수록 노력하고 경쟁하여 전체 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 혁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음악이나 패션 등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분야는 젊은 세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저출산은 출산·양육 지원뿐 아니라 일자리·주거·청년취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개선이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백가쟁명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무효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이 주최한 ‘2015년 인구총조사 스페셜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던 세계적인 통계전문가이자 얼마 전 고인이 된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했다.

로슬링 교수는 단순한 인구정책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며 페미니즘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과거의 여성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잘해야 하고 가정일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관련된 변화에서 출산율이 반전됐다. 로슬링 교수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전통적인 역할의 파괴다. 육아와 부모 봉양은 아내 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도 있다. 남녀 역할이 유연해질수록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로슬링 교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이나 그 아이들에 대한 낙인이 없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 스웨덴은 2명의 장관이 동성애자이고 주교도 동성애자다. 얼마 전 아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친구 20여명 가운데 2~3명은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동성애자 커플의 아이들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유연해져야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없어지고,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로슬링 교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스웨덴도 50년 전에는 똑같았지만,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어 남자도 살기 좋아졌다. 로슬링 교수는 페미니즘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하여, 최종목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사회에서 다 같이 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역설했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자크 아탈리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도 1998년 발간한 &lt;21세기 사전&gt;이라는 책에서 18세기가 그랬듯 21세기도 여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측했다. 남녀평등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게 될 것이고, 남녀 간 차이뿐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탈리는 여성이야말로 교육, 사회보장제도, 분배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여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권력을 빼앗거나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소설가 조선희가 12년 만에 펴낸 신작 &lt;세 여자&gt;는 1920년대 ‘신여성’이자 ‘마르크스 걸’로 성장해 한국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혁명가’로 기록된 세 여자, 허정숙·주세죽·고명자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임원근·박헌영·김단야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21세기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젠더 혁명가로 인구절벽이라는 ‘고요한 재난’을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남성의 생존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담벼락에서 맨스플레인을 일삼거나 모 정당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젠더 혁명에 동참하는 일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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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검버섯이 생긴 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관자놀이 즈음에 난 검은 자국을 꾹 누르며 물었다. 실로 걱정스러운 표정. 검버섯이 아니라 기미인가? 그러면서 검버섯에 준하는 노화의 기미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화제가 노화와 건강에 대한 것으로 옴팡 넘어가겠군.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리며 설명했다. 이건 그러니까 검버섯이 아니라, 전에 고기를 튀기다가 기름이 튀어서 생긴 화상 자국인데, 이게 안 없어지고 점점…. 사연을 채 다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진심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흉터들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아이고 식당일이라는 게 그렇지, 이거 다 기름 튀고 그래서 생긴 거지? 어쩜 좋니, 잠깐 기다려봐,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치료라도 받는 게 좋겠지만, 당장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이게 커버력이 꽤 괜찮은 제품이라, 이렇게 톡톡톡 두들기고 문지르면, 자 봐 좀 가려졌지? 그러게 뭐한다고 식당은 해가지고 몸 상하고 얼굴 다치고.

그녀가 검버섯이라 오해했으나 실은 기름에 튄 관자놀이의 화상자국이, 또 사실은 식당을 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십수년 전에 집에서 혼자 탕수육을 해먹다가 생긴 것임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내 몸 곳곳에 난 흉터들을 보고 만지며 안쓰러워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흉터의 내력들이 고만고만해서 굳이 설명을 달 필요는 없었다. 다만 색의 농도를 통해 상처의 시기가 대략 가늠될 뿐이었다. 채 아물지 않은 가장 최근의 상처가 강아지 발톱에 의해 난 것이라는 사실도 굳이 밝히지 않았다. 당신이 보고 있는 그 모든 상처와 흉터가, 당신이 상상한 바대로, 어떤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마음껏 안쓰러워하시라. 내 팔을 보고 약쟁이 환자 팔뚝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니, 무슨 더한 품평이 나올쏘냐. 훈장 단 가슴을 쭉 내밀 듯, 손가락을 쫙 펴고 팔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검버섯 같은 화상자국을 조금쯤 흐리게 만들어 준 그 커버스틱을 내게 선물로 남기고 갔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 밖으로 나와 혼자 걸었다. 뒷짐을 진 채였다. 흉터에 무덤덤해진 사람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흉터투성이 손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시각을 지우자 촉각이 선명해졌다. 검지와 검지에서 이어지는 손바닥 사이로 새롭게 앉은 굳은살이 느껴졌다. 전보다 두툼해진 손바닥 거죽의 느낌도 선명했다. 데였다가 가라앉고 쓸리고 부대끼면서 만들어낸 굳은살. 손바닥이 아니라 발뒤꿈치를 마주 댄 느낌이었다. 그건 좀 서글픈 일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 안다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그래서 무언가를 꼭 손으로 만져보고 느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굳은살 박인 둔감한 손이 되었다는 현실. 내가 만진 누군가의 뺨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은 그의 뺨이 아니라 내 손이 거칠어서 생긴 감촉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순간, 나는 얼른 뒷짐을 풀고 손을 탈탈 털어냈다. 에이, 그래도 장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잡아도 전보다 덜 뜨겁게 느껴지고, 구운 파프리카 껍질도 맨손으로 휙휙 까게 되었으니. 걸음을 돌려 짐짓 명랑하게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두 팔을 휘휘 저으며 뛰듯이 걷다가 문득, 친구에게 손바닥의 굳은살도 만지게 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우유대리점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유 하나를 내밀었다. 새로 출시된, 기간 한정 제품이라고 했다. 오디맛 바나나우유. 맛이나 한번 보라고. 오호 정말 바나나우유가 오디 색이네요. 그렇지? 그 참에 우리는 대리점 앞에 간이 의자를 놓고 나란히 앉아 노닥노닥 수다를 떨었다. 오디맛 바나나우유의 이름에 대해, 인근에 공사 중인 건물에 대해, 공사가 끝나면 더 심각해질 주차난에 대해.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건너편 식당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얼마나 됐지? 일년 반이 넘어가네요. 그거밖에 안됐나? 한 삼년쯤 된 거 같은데. 저는 한 십년쯤 된 거 같아요. 때마침 앞집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도착했다. 대리점 아저씨는 앞집 할아버지에게도 오디맛 우유를 하나 건네주었다. 저기가 생긴 지 이제 일년 반이라네? 대리점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자 옆집 할아버지가 마침 할 말이 많았었다는 듯 먹던 우유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

저 집 차 바꿨대? 털털털털 고물차 끌고 와서 가게를 시작하더니, 훤한 차로 바꿨어 그래. 할아버지는 내가 바로 그 집 주인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상태. 나는 나서지도 못하고 숨지도 못한 채, 속으로 지레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은요, 그 털털털 고물차가 십오년이 되었는데요, 지난번에 운전 중에 갑자기 시동이 꺼지고서는 안 켜져서요, 이러다가 큰 사고 나겠다 싶어서 차를 바꾸긴 바꿔야 했는데요, 중고차를 알아보다가 어쩌구저쩌구, 중고차가 어쩌구 할부금이 어쩌구. 그때 할아버지가 내 속엣말을 차단하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 세상이 좀 그래야지. 가게 열심히 하면 고물차에서 새 차로 바꿀 수 있다. 그래야 좀 살맛이 나지 않겠어? 뭐라도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이 돼야지. 아휴 내가 새 차 뽑은 거 같아.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오며가며 만져본다니까.

화나지 않으세요? 여기 맨날 사람들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주차까지.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그렇게 살지 마. 마음을 그렇게 나쁘게 먹으면 못 쓰는 거야. 사촌이 땅 사면 왜 배가 아파, 같이 기뻐해야지. 그 속담 바꿔야 돼. 사촌이 땅 사면 콩고물이 떨어진다. 콩고물이 아니어도 얼마나 즐거워. 즐거운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나도 즐겁지. 찡찡거리는 사람 옆에 있으면 즐거워? 안 그래? 아가씨도 마음 좋게 먹어야 해. 그래야 성공하는 거야, 알아? 네네, 저도 즐거워요, 저 차 참 멋지네요. 우유대리점 아저씨는 옆에서 그저 허허허 웃었다. 기분이 참말로 좋았다. 아가씨란 말도 듣기 좋았고, 즐거운 사람 옆에서 즐거워지는 느낌도 과연 좋았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가 친구에게 보여준 것과 숨긴 것에 대해. 그 징징거림에 대해. 배 아플까봐 설레발치는 사촌의 마음에 대해.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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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에는 ‘탱킹(tank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탱킹’은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일부러 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력보강에 힘을 쏟지 않는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권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시작됐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유행이다. 몇몇 팀들은 아예 시즌 전 ‘탱킹’ 가능성을 암시한다. “올 시즌, 우리는 성적보다 미래를 고민합니다”라는 말은 ‘탱킹’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위를 떨어뜨린 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겠다는 계산이다.

신인드래프트는, 특히 북미프로스포츠에서 전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고교 혹은 대학 졸업(또는 재학) 선수들을 지명한다.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선수들을 골라나간다. 프로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가치인 ‘전력 균형’을 위한 장치다. 지난해 못한 팀이 더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 탱킹으로 몇 년 참으면 팀의 주축이 될 만한 선수들을 채울 수 있다.

이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몇 년 동안 탱킹 과정을 거쳤고,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휴스턴 역시 중계 시청률 0%라는 오랜 ‘고난의 기간’을 거친 끝에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묶어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5일부터 2019시즌 신인드래프트 행사를 열었다. 수많은 회의를 거쳐 고심 끝에 필요한 선수를 차례로 고른다.

오리건 주립대 4학년 루크 하임리히는 미국 대학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하임리히는 11승1패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평균자책점이 겨우 0.76밖에 되지 않았다. 150㎞를 넘는 강속구를 쉽게 던졌다. 올해에도 15승1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성적이지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하임리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10대 시절, 6살짜리 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사실이 지난해 여름 알려졌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받지 못했고, 올해 역시 구단들은 하임리히를 외면했다. 하임리히 측은 “당시 재판까지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죄를 인정했을 뿐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구단들은 “어쨌든 유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34라운드 지명 때 코리 한을 지명했다. 한의 지명이 특별했던 것은,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은 미국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지만 애리조나 주립대 1학년 때 개막전에서 2루 슬라이딩을 하다 크게 다쳐 허리 아래를 쓸 수 없게 됐다. 애리조나는 지명 뒤 그를 선수 대신 스카우트 직원으로 채용했다.

5일 열린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때 애틀랜타는 1라운드 지명 발표 자리에 코너스빌 고교 포수 루크 테리를 초대했다. 2살 때 병에 걸려 오른팔을 잃은 테리는 왼손만으로 경기하지만 수준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테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애틀랜타의 1라운드 지명선수로 카터 스튜어트를 호명했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탱킹을 통한 드래프트에서도 ‘무조건 승리’ 대신 ‘리그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유세가 진행 중이다.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 일부러 전력 약화를 노리는 ‘탱킹’이 의심될 정도다. 다만 지금의 ‘탱킹’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채 “이러다 곧 다 죽는다”는 으름장만 놓는다.

프로스포츠에서 희망 없는 탱킹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오랜 팬들조차 다 떠난 텅 빈 그라운드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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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첨벙 개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엔 장바구니 가득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먹을 작정으로다가.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는 아이스크림도 맛보았을까. 물뼉다구라는 옛 이름은 재미있다. 설탕물을 얼려서 먹을 때 물뼉다구라 했다던가. 언젠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바샤미치 거리를 구경했다. 일본은 개항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일본 최초로 가로수길에 가스등이 설치되고 가게에선 아이스크림도 팔았단다. 한 곳에서 벚꽃 아이스크림이란 걸 먹어봤다. 하도 조그만 컵에 담아주어 혀끝만 잠시 얼얼하고 황홀했다. 우리도 개항하면 떠오르는 인천이나 부산으로 아이스크림이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초콜릿, 콜라와 함께 아이스크림은 서양문물을 대표한다. 시골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서울 가면 일부러 찾아가 사먹게 되는데,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촌놈 호강을 해본다.

나 어려서 께끼 장수라고 있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을 홀리던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꼬리로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선 탈래탈래 빈 통으로 고개를 넘어갔지. 여름이면 내내 그를 기다렸다. 폴 세잔의 그림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은 여름에 꼭 맞는 풍경화. 툇마루나 대살을 엮은 평상에서 가족들과 수박이나 참외,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집어먹으며 여름을 났다. 거기다가 께끼라도 하나 입에 물게 되면 전율할 만큼 행복했지.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님을 더 말해 무엇하랴. 녹아 흐를까봐 혀로 살살 단속을 해가면서 께끼를 음미하던 날의 소박한 기쁨. 께끼 장수가 사라진 뒤로 내 소박한 기쁨도 한 가지 사라지고 말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펑펑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시절이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아이스크림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께끼 장수.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던 그를 마중 나가던 아이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골목에서 나던 그 소리. 문득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해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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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독 어려워했던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쌀사다”와 “쌀팔다”이다. “쌀사다”는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꾼다는 뜻이고 “쌀팔다”는 돈을 주고 쌀을 산다는 뜻이다.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이미 나부터도 쓰지 않는 말이 되었으니 내 부모 세대 어른들의 언어에만 남아 거의 폐어가 되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이 말을 많이 들었고 더러 내 입으로 내뱉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데다 종종 “쌀사다”를 돈을 주고 쌀을 산다는 뜻으로 “쌀팔다”를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잘못 쓰기도 했다. 그러니 결국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 시절에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날 가운데 하나가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이었다. 장날이 공휴일과 겹치면 어머니가 나를 시장에 데려가주지 않을까 싶어 잔뜩 기대에 부풀었고 매번은 아니었지만 서너 번에 한 번쯤은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갈 수 있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번 다니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했고 가는 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씩 걸렸으며 비포장 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에 앉아 있노라면 멀미가 나고 기운이 쏙 빠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장 초입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언제 멀미가 났느냐 싶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기름집에서 퍼져 나와 시장의 골목을 물들인 고소한 참기름 냄새부터가 가슴을 간질이는 거였다. 이제 두어 시간만 꾹 참고 어머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면 호떡과 도넛 같은 주전부리부터 시작해 짜장면까지 먹을 수 있을 테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 도착해 어머니와 맨 먼저 들르는 곳은 단골 싸전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쌀자루를 저울에 올려놓고 이 사정 저 사정 다 알던 싸전 주인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마침내 싸전 주인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얼마간의 돈이 건네지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밑졌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돈으로 어머니는 장을 보았고 내게 호떡이나 도넛을 사주었으며 마지막 의식이라도 치르듯 버스 정류장 근처의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는 거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면 아쉬움도 없지 않았으나 포만감 덕에 대체로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 기분이었기에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장바구니를 발치에 두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깃든 우수가 나로서는 기이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서 그 시절에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머니의 머뭇거림들, 양품점이나 미용실이나 화장품 가게처럼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곳들은 들르지 못한 채 오직 가계에 소용되는 물목들을 갖춘 상점들만 다니면서, 그것도 한 푼이라도 더 적게 들고 더 좋은 물건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의 심사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건, 장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그날 구입할 물목들을 헤아리고 비용을 셈한 뒤 필요한 쌀을 사려면 쌀을 얼마나 가져가야 할지를 결정하거나 이번에 쌀사면 다음번에 쌀팔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내게는 그 말이 어리둥절할 만큼 어렵기도 했거니와 그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당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쌀’이라는 말에 쌀의 의미도 있고 돈의 의미도 있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이 말을 한 문장에 아울러서 쓸 수 있으려면 쌀이 곧 돈이고 돈이 곧 쌀이지만 쌀은 돈이 아니고 돈은 쌀이 아니라는 걸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쌀과 돈 앞에서 절망해 본 사람들만이, 쌀과 돈 앞에서 피눈물을 흘려 쌀이 쌀인 동시에 돈이고 돈이 돈인 동시에 쌀임을 너무 잘 알아 잠든 동안에도 잊은 적 없는 사람들만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인 듯하다. 삶이 깃든 모든 언어가 피멍이 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하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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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회 현충일인 6일 호국영령을 기리는 기념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가유공자, 유족, 1만여 시민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국선열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수 없다”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이 마음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이 평범한 하루를 살며 만들어온 역사”라면서 국가유공자뿐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을 지켜낸 의인들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보훈의 개념을 확장하고, 보훈이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에 공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지난해 12월 자살 시도자를 구하다 순직한 정연호 경위의 아들과 부인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의 평화와 풍요는 고귀한 생명을 던져 나라를 지킨 애국선열과 민주 투사, 의인들의 희생 위에 있다.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발전시키는 데 노소가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갈등해왔다. 특히 보수 진영은 공산세력과 맞서 싸운 것을 강조하며 애국이 보수의 전유물인 양 주장해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현충일 기념식의 주제를 ‘(10개 국립묘지에 안장된) 428030(영령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로 정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다. 더 이상 애국과 보훈이 진영 논리에 따라 재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상에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소중히 기리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도 시의적절하다. 시기와 상황을 막론하고 정의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응당 보상받아야 한다. 국가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예우를 강화해야 한다. 보훈 사각지대를 줄이고, 연고가 없는 유공자에 대한 지원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충일 논평에서 한반도 평화를 강조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북핵 불용을 외쳤다. 일부 보수단체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금 한반도는 70년간 지속돼온 남북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초당적 협력으로 평화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 대통합에 앞장서야 한다. 먼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면 누구든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진영과 이념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 이것이 이번 현충일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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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6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좀처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의 지방선거 후보 공약 사이트의 누적 접속자수는 전체 유권자의 1.3%에 불과하다. 아파트 우편함엔 선거공보물이 절반 이상 그대로 꽂혀 있다고 한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온통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는 데다 여론조사 결과 여당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선거 판세도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더 하다. 후보의 인적 사항이나 공약에 무관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출마했는지조차 모르는 유권자들이 허다하다. 정책·인물·이슈 등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이른바 ‘3무’ 양상이 뚜렷해지며 거의 선거 실종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후보들은 유권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네거티브전에 공을 들이고, 혼탁한 진흙탕 싸움은 유권자의 무관심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5일 밤 진행된 경기지사 후보자 2차 토론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여배우 스캔들’ 의혹으로 난타전이 이어졌다. 부산시장·전북지사 선거에선 “암이 재발했다”는 등의 설전이 오가며 공개 건강검진을 받기로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깜깜이 선거’에 진흙탕 비방까지 더해지니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자칫 이번 지방선거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조700억원이다. 경기 김포시 한 해 예산(1조352억원)과 비슷하다. 유권자 1명의 투표를 위해 쓰는 비용은 2만5000원꼴이다. 2014년 지방선거 투표율 56.8%를 적용할 경우 4622억원의 세금이 그냥 버려지는 셈이다. 유권자들이 선거를 외면하면 부도덕하고 무능한 후보들이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 후보 등록자 10명 중 4명은 전과기록이 있다. 전과가 15건에 달하는 후보도 있고, 뇌물·횡령·세금 체납 등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선거 무관심은 이런 사람들에게 곳간을 맡겨 사리사욕을 채우고 세금만 축내게 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걸 막아야 할 책임은 유권자들에게 있다.

지방선거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직결돼 있다. 자질 없는 후보가 주민 대표가 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살림을 나아지게 해줄 일꾼을 선택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가장 잘 지역을 이끌 인물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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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친구가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집들이를 갔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남향이라 낮에는 볕도 잘 든다고 했다. 친구가 이 뉴타운 아파트에 ‘입성’하면서 얻은 것은 쾌적한 주거환경과 가까워진 통근거리, 아름다운 야경만은 아니다. 이 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수억원이 올랐다. 지금의 내 저축 속도대로라면 15년 넘게 걸려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배가 아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분양가조차 감당할 수 없었으니 그 엄청난 시세차익의 ‘행운’은 애초부터 내 것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저 다시 한번 절감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모으는 길은 역시 아파트밖에 없다는 것을.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와 나의 자산은 이 아파트를 기점으로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틈이 나면 포털사이트에서 아파트 시세를 검색해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지난 10년 동안의 아파트 시세를 보고 있노라니, 앞으로 10년 후에도 내가 서울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새 아파트는 새것이라 비싸고, 오래된 아파트는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덩달아 가격이 상승한다. 호재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아파트는 그렇게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앞으로도 내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가격이 오를 것이다.

어차피 서울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한번 물어나 볼까 싶어 찾아가 본 부동산 중개업자는 오래된 아파트 하나를 추천했다. 그 아파트 주변이 재개발 예정지라 호재도 있다고 했다. 중개업소 벽에 붙은 지도상에서 그 일대의 오래된 빌라와 연립들은 벌써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대신 그 자리에는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 조감도가 그려져 있었다. 마음이 동했다. 재개발이 완료되면 이 아파트 가격도 함께 오르겠지. 혹시 아파트를 사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가 아닐까.

그러나 며칠 후 접한 뉴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던 달콤한 상상에서 나를 번쩍 깨어나게 만들었다. ‘“재개발 날강도” 아침 8시 유서…보상 40만원 장위동의 비극’(한겨레 5월23일자). 뉴타운 사업으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에서 니트 공장을 운영하던 한 세입자는 턱없이 작은 보상금 때문에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재개발 개새끼들 날강도 도둑놈들” 그리고 그 아래 연필로 다시 이렇게 남겼다. “어떻합니까 어떻합니까(어떡합니까 어떡합니까)”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떠오른 얼굴 하나가 있었다. 사실 나는 친구가 아파트를 분양받은 그 뉴타운 사업 때문에 가게를 강제철거당하고 쫓겨난 상가 세입자를 취재한 적이 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한 그는 부서진 가게 건물 잔해 앞에서 수백일 동안 천막 농성을 했다. 오랜 노숙생활 때문인지 수염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재개발 일정을 지연시켰다며 조합 측으로부터 수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당한 상태였다.

재개발을 둘러싼 ‘아파트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는 무섭도록 명확하게 편이 갈린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재개발은 누군가를 쫓아내는 ‘크레인’으로도, 나의 노후를 보장해 줄 ‘호재’로도 보일 수 있다. 한때 그 철거 세입자를 취재하며 그의 처지에 함께 분노했던 나는, 막상 그를 쫓아내고 지어진 아파트가 황금알을 낳는 현실을 목도하고 난 후 재개발이란 단어에서 ‘호재’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이 또다시 앞다퉈 재개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나처럼 개발할 ‘내집’이 없는 사람들조차 달콤한 꿈을 꾸게 만드는 마법같은 공약.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는 서울 용산 재개발사업 구역에서 4층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한 걸음에 현장으로 달려가 재개발·재건축을 규제한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자신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 취임 첫날 당장 재개발 도장부터 찍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장위4구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거 세입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어느 후보도 아파트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누군가를 더 열악한 곳으로 밀어내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채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장위7구역에서 용역과 대치하며 끝까지 버티다 쫓겨난 마지막 철거민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떤 분이 묻더라고요. 앞으로 계획이 뭐냐. 저한테는 향후 계획을 세울 여력도, 계획을 세울 아무것도 없는데….” 서울 아현동에서, 용산에서, 장위동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그 후 어디로 갔을까. 늘어만 가는 서울의 아파트 불빛을 보면서, 그곳에서 꺼져간 더 많은 집들의 불빛을 떠올린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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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도 운영사) 간의 통합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 한국교통연구원과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SR 개통으로 철도서비스가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불과 1년 반 정도 운영하고 통합하는 건 섣부르다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이 이미 24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SR 분할운영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철도노조나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코레일-SR 분할을 반대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SR 분할로 코레일의 수입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야기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손실이 코레일에 누적되면 결국 철도 안전과 서비스에 영향을 주면서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레일은 안전과 시설 개선을 위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평균적으로 매년 개량사업으로 2732억원, 차량 구입으로 3701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코레일은 국민들의 교통복지를 위해 고속철도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교차보조하면서 일반철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철도 운영에 따른 적자가 약 1조원에 달하지만 정부로부터 받는 벽지노선 보조금은 전체 적자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러한 비용들에 대해 충분히 지원해줘야 하겠지만 코레일의 사업과 수입 확대로 그러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도 있다. 코레일이 SR을 통합운영하면 분할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으며 현재보다 1일 46회(약 2만9000석) 운행 증대도 가능하므로 전체 수익도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코레일이 공공기관으로서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SR과의 통합운영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과 보수언론들은 SR 분할운영으로 마일리지제 부활, 차내 콘센트 설치, 와이파이 용량 확대 등의 서비스 증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코레일에 막대한 손실을 떠넘기면서까지 얻은 이러한 효과는 말 그대로 소탐대실이다. 2017년 기준으로 SR의 주주배당으로 177억원이 외부로 유출되었는데 이 비용만 내부화하면 이러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코레일과 SR은 80%를 동일 노선에서 운행하고 있고 철도는 일반적으로 역 접근성과 시간 절약 정도가 이용 수요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경쟁의 효과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SR은 열차 운행을 제외한 역 업무, 예·발매 업무, 차량정비 업무, 선로·전기·시설 유지보수 업무 등을 모두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다. SR이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려면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야 하므로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코레일에 위탁한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통합운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복잡한 위탁구조를 지속해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코레일-SR 간의 경쟁 효과는 허울뿐이고 분할로 인한 손실과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분할구조를 지속할 필요가 전혀 없으므로 코레일-SR 통합은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 화해시대에 한국 철도가 대륙철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코레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코레일의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10년 보수정부에서 진행되어온 철도분할 문제를 이제는 말끔히 해소하고 한국 철도의 백년대계를 위해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지 고민했으면 한다.

<이영수 |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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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짜리 조카는 직접 찍은 영상을 종종 유튜브에 올린다. 대개 자신의 학용품이나 인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여섯 살 어린 동생 생일에는 ‘동생의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아 동생의 커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편집해 올리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요즘 애들은 참 재미나게 노는구나 싶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게 키즈 크리에이터고, 커서도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게 꿈이란 말에도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꾸던 시절보다 크리에이티브해졌구나 싶었다.

하지만 며칠 전 1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한다는 동영상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예닐곱 살쯤 되는 여자아이와 그의 아빠였다. 긴 머리를 땋은 가발에 여자 옷을 입은 아빠는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 화장을 했다. 둘 중에서 더 예쁘게 단장을 한 사람이 왕자한테 선택받는다고 말하는 아빠는 능숙하게 화장을 했다. 화장하는 놀이는 대개의 여자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해보는 것이니, 아빠가 참 친절하게 아이 눈높이에 맞춰 놀아 주는구나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아빠의 놀이는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화장품을 홍보하는 돈벌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꿈을 꾸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돈 때문이기도 하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믿는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아이들이 부자를 꿈꾼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이들이 돈벌이로 유튜브에 뛰어들고, 어른들은 버젓이 아이들을 이용하는 게 괜찮은 걸까? 딸에게 왕자한테 선택받으려면 곱게 화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빠를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 때, 지인이 헤어 메이크업 일을 하는 이의 SNS 글을 보내줬다. 그는 더 이상 아동 모델들에게 화장해 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동들에게 성인 여성과 같은 스타일링하는 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실제 화장품 세트가 되어버린 사실이 괴이하다 느껴왔습니다.”

괴이한 일을 괴이하게 볼 수 있으며, 그걸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아직 있었다. 아니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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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그리고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세 곳이 한국연구재단(NRF)으로 통합 출범하는 기념식장에 나는 있었다. 과학과 인문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국가 연구관리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그날의 내 머릿속은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념강연 첫 연사로 나온 한국연구재단 대표는 연구재단 중점사업으로 노벨상 수상자 배출, 세계 순위 100대 대학 2개 이상 만들기, 그리고 인용도 수치가 높은 논문의 양산을 꼽았다. 인문학 지원 축소를 근심하는 많은 청중이 있었지만 한국연구재단 관계자 입에선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흘렀다.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순위에 드는 대학은 배출되지 않았다. 상위 논문의 수만 늘었을 뿐이었다. 유행에 밀린 연구는 지원이 끊겼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같은 거대 연구비를 거머쥐는 연구자는 기업의 인수·합병처럼 연구자들을 자기 집단으로 빨아들였다. 지금까지의 협업관계는 사라지고 하나의 재벌연구그룹이 탄생하였다. 풀뿌리 연구처럼 곳곳에 씨를 뿌리던 소작인 연구 사업은 사업비가 농장 몇 곳에 집중되는 바람에 황폐화되었다.

한국연구재단은 창의적 연구와 글로벌 인재 양성 지원을 미션으로 정했다. 전략목표로 상위 10%에 드는 논문 수 증대, 인적자원 확대, 연구투자 효율 극대화, 그리고 혁신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 창출 5만개를 내세웠다. 인문학을 함께 아우르는 연구재단의 미션에 고독과 자유를 바탕으로 한 지혜와 희망을 전하는 미션이 빠진 것은 극히 유감이다.

5조원 가까운 예산을 운영하는 한국연구재단 운영의 성패는 사실상 민간인으로 구성된 본부장, 단장, 프로그램 매니저(PM)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연구협회(DFG)의 PM은 내부직원으로만 구성돼 있고, PM이 과제평가를 진행하나 연구비 수혜 최종 결정은 별도의 위원회에서 한다. 공정성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연구재단의 경우 과제평가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평가자와 지원자의 학연과 지연을 고려하다 보니 공정성이 반드시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보완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한국연구재단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자들이 존경받는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도 좋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구재단이 과학적 진보와 인문학적 지혜의 풍요로움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 5조원을 운영하는 조직의 당연한 미션이다.

<엄치용 | 한국기초과학지원 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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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은 대통령도 못 바꾼다고들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입시 정책이 시행돼도, 결국 학벌이나 학력, 또는 직업에 따른 임금 격차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친구 간의 학습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길임을 본능적으로 체감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제 최저임금에 상여금, 식비까지 포함되도록 하는 등 사실상 기존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 공포되었다. 노동계나 시민들은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무엇보다도 교사로서 개정안을 반대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올해 초부터 적용되고 있는 16.4%라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당장 실질적 수준의 최저임금액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향후 관련 정책을 가늠할 신호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이제 공부만 잘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학습과 삶의 병행을 조금이나마 꿈꿀 수 있게 했던 ‘파란 신호등’과 같은 역할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내년에 이대로 시행된다면, 학생들은 이러한 정책 방향을 어떤 신호로 해석하게 될까? 긍정적 변화가 학교 안에서 채 나타나기 전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무색하게 학생들은 과열된 경쟁교육 속에서 허우적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현재 아이들 세계에서는 초·중·고교를 막론하고 그들 간의 서열짓기와 혐오문화가 극심하다. 그 근원 역시 동급생 간의 치열한 성적경쟁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개정안을 공포한 문재인 대통령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집권여당과 보수야당이 합작해서 내놓은 이 법안에 대해서는 역사가 냉정히 평가할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오는 14일에 이 개정안의 헌법 합치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입법부도, 행정부도 깊게 천착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삼권분립의 또 다른 한 축인 사법부를 통해 기사회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실질적 최저임금제가 시행된다는 것은, 적어도 학교 교육에서는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을 타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이광국 | 인천 산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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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3요소’로 꼽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빠의 무관심’이다. 자식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영향력은 매우 중대하다. 그럼에도 ‘무관심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에 빠져,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무관심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잘못된 관심은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성적에 관해 비난하는 것은 좋은 관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관심이란 무엇일까? 이에 관해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필자가 어릴 때부터 화장실에 신문을 꽂아두었다. 그냥 꽂아두는 것이 아니고 항상 사설 면이 보이도록 꽂아뒀다. 자연스럽게 신문에 손이 갔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필자는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신문 구독이 입시를 비롯한 공부에 대단히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신문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강제력을 써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리처드 세일러는 책 <넛지(Nudge)>로 유명한데,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것을 의미한다. 세일러는 ‘부드러운’ 개입이 행동을 유발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화장실에 신문 꽂기와 같은 사소한 관심이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필자가 경향신문을 구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출근 전에 매일 경향신문을 읽는 아버지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최승용 | 서울대 경제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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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1일 일본 남단인 가고시마현에 사는 한 노인이 별세했다. 그 사건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죽기 직전까지 그 노인이 지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 태어난 나비 다지마는 프랑스의 잔 칼망, 미국의 사라 나우스에 이어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말할 것도 없이 생몰 연도가 문서에 기록된 경우만 유효하다. 

나비 다지마는 117년 8개월을, 칼망은 122년 6개월, 나우스는 119년 2개월을 살았다. 모두 여성인 이들은 110년을 넘게 산 초장수(super-centenarian) 인간 집단에 속한다. 가장 오래 살았던 남성은 일본인인 기무라 지무에몬이며 116세를 살았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원전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쓴 수메르의 길가메시를 시작으로 중국의 진시황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꾸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만을 밝힐 수 있었다. 생물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예외도 죽음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도 수명을 늘리기를 꿈꾼다. 구글까지 나서서 500세 수명을 목표로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하고 있다. 보통 쥐의 수명이 2~3년임을 감안하면 30년을 넘게 사는 저 두더지쥐에 과학자들이 현혹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생물학적 한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학과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더 연장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세기 인간의 기대 수명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가했던 눈앞의 증거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수명에 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생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였던 공중 보건과 환경 위생의 개선에 힘입은 바가 컸다.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과학자들은 1968년 이후 41개국의 사망자 기록이 담긴 국제 수명 데이터베이스를 훑어서 인간의 수명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 조사했다. 2016년 네이처에 실린 이들 논문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수는 현재에 가까울수록 증가했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105세까지 산 사람들의 수는 늘었지만 123세까지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100살이 넘은 사람 1000명 중 하나가 110살 문턱을 넘는다고 한다. 오래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실체를 찾아다닌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의 어느 지역을 찾아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돌연변이를 찾아냈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역학 연구 결과는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5세를 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태껏 오래 살았던 사람 20명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인간의 근육에 새겨진 세월의 파괴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인간은 채워진 마개를 연 채 수돗물을 틀어 물을 채우고 있는 욕조에 비유할 수 있다. 수돗물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욕조 안의 물은 소용돌이를 멈추고 마침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 간단없이 공급되는 수돗물을 우리는 업이라고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물질대사라 부른다. 인간은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물질대사를 통해 산소와 버무려 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 효율은 50%를 밑돈다. 열로 소모하는 영양분이 많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그것을 사용한다.

문제는 산소다. 우리는 폐를 통해 들어온 산소를 다 쓰지 않는다. 그 증거는 적도 부근에서와 극지방 근처에서 정맥에 흐르는 혈액의 색이 다르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적도 부근에서 정맥혈의 색이 더 붉다. 심장으로 돌아오는 적혈구가 산소를 더 많이 싣고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신체가 산소를 적게 소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추운 극지방에서는 산소를 알뜰히 써서 에너지뿐만 아니라 열도 생산해야 살 수 있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네덜란드 상선의 독일 의사 메이어는 열역학 법칙을 고안했다.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가 지닌 에너지는 사람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나머지는 열로 변환되지만 총량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맥의 혈액 색깔에서 추론한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최근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이 호흡한 총량의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간은 이 사용하지 않은 80%의 산소도 덥히기 위해 애를 쓴다. 게다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의 80%는 질소이다. 겨울에 우리는 저 질소도 덥혀서 공기 중으로 헛되이 내보낸다. 물리학자들은 저 헛된 노력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이 담긴 비커에 퍼지는 한 방울의 잉크 입자처럼 인간이 음식을 먹고 욕조의 소용돌이를 돌리는 한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 증가된 엔트로피는 120살 먹은 노인의 피부에 새겨진 주름으로, 또 그들을 굼뜨게 걷게 하는 근육의 퇴화로 이어진다. 하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 한쪽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살아가는 20대의 팔뚝에 펼쳐질 100년의 세월은 또한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낭비되는 산소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입으로 들어가는 ‘수돗물’의 양을 줄일 일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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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쳐나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자리가 4000여개. 등록한 후보는 9300여명에 이른다. 이 모든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과 포스터, 현수막의 문구들, 연일 이어지는 거리 유세와 방송 토론 등에서 수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자신 있게 던지는 희망의 말들만 하나하나 듣노라면 우리 지역의 앞에 펼쳐진 꽃길의 향기에 취해 아찔할 정도다. 그러나 함께 터져 나오는 서로를 향한 부정과 비방의 말들이 다시금 귓전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흔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말만으로 정치인을 판단할 수는 없다. 각종 정보와 이력, 공약의 실현 가능성, 윤리의식 등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말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이다. 아무리 세련된 홍보팀을 거느리고 있다 해도, 부각하고자 하는 초점과 무심코 내뱉는 언사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식견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말을 판단할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먼 옛날 순자(荀子)가 제시한 기준을 소박하게 떠올려 본다. 훌륭한 이의 말은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도 디테일에 충실하다. 겸손하게 제시하는데 조리가 정연하다. 다듬지 않고 말하는데 듣다보면 가지런히 정리된다. 실질에 부합하는 올바른 명칭과 핵심을 드러내는 타당한 표현으로 비전을 밝히는 데에만 힘쓸 뿐, 구차하게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반면 어리석은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말하는데 그마저도 허술하다. 핏대를 세워 거칠게 따지고 들지만 조리는 없다. 끊임없이 말을 해대는데 도무지 정리가 안된다. 거창한 명칭으로 이목을 끌고 현란한 표현을 일삼곤 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비전은 없다. 바닥을 드러내는 데도 핵심은 보이지 않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과욕을 부려 보지만 아무런 실효도 명성도 얻지 못한다. 훌륭한 말은 쉽고 명료하며 안정감이 있지만, 어리석은 말은 그와 반대다.

내일모레면 등록 없이도 사전투표소 어디서나 투표가 가능하다. 투표하지 못할 핑계를 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곱 장 이상의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지역의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미리 찬찬히 살필 일이다. 정치는 말에서 드러나고, 삶은 정치로 좌우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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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론조사가 선거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민정당 국책연구소 부소장 시절 자신과 김행 연구원이 가장 먼저 여론조사 기법을 도입했다고 여러 차례 술회한 바 있다. 그 국책연구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적인 기법을 도입했다 해도 여론조사가 매번 정확할 수는 없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숨어 있는 5%’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것이 대표적이다.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주목받는 것은 기정사실화 효과 때문이다. 특정 후보 지지세가 확인되면 표가 그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투표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그러니 후보들로서는 대세론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깜깜이 기간’ 전에 여론조사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목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설문 방법과 문항 전체를 공개하도록 강제한 것도 문항을 조작하거나 수치를 보정해 지지를 유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 기준을 위반한 여론조사가 118건에 달한다고 한다. 여론조작 의심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지지율 높이기에 나선 후보들의 절박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조작보다 여론조사 기법의 한계가 더 눈에 띈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응답률이 정확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확증편향 심리까지 더해지면 말할 것도 없다. 16대 대선 막판 이회창 캠프에 합류했던 윤여준 전 의원은 “대선 보름 전 승부는 기울어 있었다. 여론조사가 과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 후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5일 “방송사들이 왜곡된 여론조사로 우리 지지층이 아예 투표를 포기하게 하려고 난리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방송 3사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 재·보선이 치러지는 12곳에서 한국당 후보가 전패하는 것으로 나오자 여론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여론조사의 기정사실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방책이다. 드러난 표는 무시하고 숨은 표만 찾는 것은 한국 보수의 전통인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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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쟁위협과 함께 거의 한계점까지 갔던 냉전의 감정(공포·혐오·경멸·증오·우월감)은 불과 4개월 만에 오래된 과거처럼 되고 있다.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친근’과 ‘신뢰’로 급반전했다. ‘세습독재’와 세계 최악이라는 인권 문제는 북에 그대로 있고, 참수부대를 만들자던 늙은 남의 냉전 전사들도 여전히 20%의 지지율을 믿고 악을 쓰는데 말이다.

그러니 저 격렬했던 냉전의 감정과 인식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리라. 여전히 이 사회의 곳곳에 잠재되어 있고, 우리가 앞으로 북녘 사람들과 만나거나 북과 뭔가를 할 때 언제든 쑥 튀어나올 수 있는 어떤 오래된 정신의 기제이다. 그래서 그것을 돌아봐야 한다.

정세의 급변과 거의 같은 속도로 북에 대한 감정과 인식의 대반전이 일어난 것은 아마 역사의 대전환을 기대로써 바라보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70년 이어져온 휴전 상태와 극우·냉전 기생 세력의 지배를 벗어나서 새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이제 남과 북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겨우 한발을 뗐을 뿐이지만, 열망은 ‘냉전 이후’에 대한 장밋빛 상상력과 담론으로 조기 개화하고 있다. 대략 세 갈래로 보인다.

첫째, 탈분단·통일의 전망에 관한 담론. 한동안 거부되거나 잊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다시 당위로서 쉽게 입에 오르는가 하면, ‘양국체제론’이 통일 당위론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둘째, 북한 사회주의의 전망이나 경제개발에 관한 담론. 북한은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지향한다는 말을 천명한 적 없으나, 남의 담론은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하고 있다. 북한체제는 과연 ‘사회주의’로 유지되고 ‘연착륙’할 수 있을지? 북한의 시장화·식민화를 미리 걱정하는 선한 말들도 있고, 북한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설레발도 벌써 나와있다.

셋째, 남북한 경제협력과 ‘공동 번영’의 미래상에 대한 담론. ‘발전의 정체에 빠진 남한’과 ‘가난에 찌든 북한’의 상생이 오직 이 길에 있다는 식의 담론은 이전부터 넘쳐났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3년 전에 나왔다. 그런데 이 담론들에는 남한이 가진 건 오로지 돈이고 북한은 당연히 남한의 자본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좀 이상하고 물질주의적인 전제가 강하게 깔려있다. 결국 통일도 화해도 돈이 만드는 것인가?

넷째, 주한미군 철수라든가 한반도의 영세 중립화 같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미래에 대한 거대담론이다. 이는 보다 이상주의적이며 역사 전체를 시야에 넣고 있지만 아직 현실성은 부족하다.

이런 담론들과 상상에는 (혼란에 빠진 조선일보나 자유한국당 외에) 좌우가 따로 없지만, 성급하고 농익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 받을 북한이 어떤 국가로 변할지, 그들의 전략이 무엇인지 아직 가늠할 수도 없고, 한국전쟁이 끝난 한반도를 살아본 사람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뭐가 기다리는지 모르는 미지의 미래로 단지 희망을 품고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탈분단 담론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더 고려되고 보충되어야 할 듯하다. 차분히 준비하고 남북이 같이 내실을 기르지 않으면 혼란과 환멸이 희망을 걷어찰 것이다.

첫째, 모두가 경제 위주로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 당연한 듯 말하지만, 남한 사회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필요성은 이 담론에서 빠져있다. 공동 번영과 탈분단을 위해 변해야 할 것은 북의 사회뿐 아니라 남의 사회체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남한 또한 ‘통일’할 경제적·문화적 역량이 없다. ‘피로사회’와 ‘헬조선’을 북녘으로 확장해서는 안된다.

둘째, 통일에 대한 개념적 합의와 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간 담론장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나 ‘느린 통일’에 대한 합의는 꽤 넓었으나, 현실의 전개는 이를 배반할 수 있다. 또 ‘낮은 단계의 연방제(=국가연합)’가 유효한지, ‘평화체제’로 이행하면 충분한지 재정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셋째, 북한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구체적인 분석에 기반한 담론이 거의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북한사회와 체제, 인민의 이해와 요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몇몇 전문가나 탈북인들이 제공하는 제한된 지식·정보로는 태부족이다.

요컨대 남과 북의 정치·사회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며, ‘한반도 수준’의 새로운 문화정치와 이데올로기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의 주민들에게는 서로의 사회를 사회적 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로 변화시킬 과제가 우선 주어진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아주 두툼한 가이드북이 필요하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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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국 해변에서 위중한 상태로 구조된 돌고래의 배 안에 비닐봉지 80여장이 들어있었다. 비닐의 무게만 8㎏에 달했다. 배 속을 꽉 채운 비닐봉지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돌고래는 결국 폐사하고 말았다. 돌고래는 이미 구조 단계에서 비닐봉지 5장을 토해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봉지를 뒤집어쓴 황새, 면봉을 꼬리로 감은 해마,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고통받는 바다거북이도 있다. 플라스틱이 전 세계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환경의날인 5일을 ‘플라스틱 없는 하루’로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북태평양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주 사이에는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이 생겼다. 당초 예상치의 16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이다. 통제할 사이도 없이 기하급수로 커졌다는 의미다. 약 1조8000억개의 쓰레기 조각이 섬을 형성했고, 그중 99%가 플라스틱 부유물이다. 플라스틱은 전 세계적으로 1초에 2만개가 생산되고, 1년에 4800억병이 판매되며 이 중 500만~1300만t이 바다에 버려진다. 바다생물만 플라스틱의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국에서 잡힌 생선 3분의 1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해산물을 먹는 사람들은 해마다 1만1000여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섭취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생선을 먹은 사람의 몸에 플라스틱이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류는 지금 아주 잘게 다져진 ‘플라스틱 수프’를 먹고 있는 셈이다.

(출처:경향신문 DB)

뒤늦게나마 세계 각국이 플라스틱 남용을 금지하는 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2016년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법을 제정했고, 영국과 스위스 일부, 미국 뉴욕 등 일부, 캐나다 밴쿠버 등이 플라스틱 빨대 등의 사용금지법안을 의결했거나 추진 중이다. 한국 환경부도 지난달 플라스틱 폐기물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재활용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도취된 한국인은 인간과 생태계를 해치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시간은 단 20초에 불과하지만, 그 빨대가 분해되려면 무려 50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지금 이 순간 책상 위를 둘러보라. 일회용 커피잔과 빨대·스틱 등 플라스틱 용품이 쌓여있을 것이다. 장을 볼 때도 장바구니 대신 습관처럼 비닐봉지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없는 하루’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건강한 생명을 위한 첫날 첫걸음이다. 플라스틱 중독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걸 실천하는 일이 그리 힘든 과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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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버린 6월의 오후. 그들은 한국철도공사 건물이 보이는 서울역 앞의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부당해고 4000일,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구호가 천막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2015년 대법원 판결을 받았을 때 우리 심정이 그랬어요. 이건 정치적인 판결이다, 어떻게 1, 2심 판결을 모두 뒤집을 수가 있나. 승복이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그땐 생각만 그랬던 거죠. 정말 우리 판결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2015년 7월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통령 독대를 앞두고 마련한 ‘현안관련 말씀자료’는 박근혜 대통령의 4대 부문 개혁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라 여긴 노동 부문에서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 관계의 정립을 위해 (사법부가) 노력’한 대표적 판례로 ‘KTX 승무원 사건’을 꼽고 있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KTX 승무원들과 한국철도공사 사이에는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근로자 파견 관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6월5일 (출처:경향신문 DB)

KTX 여승무원들이 길고 험난한 법정 싸움에 돌입했을 때 그들이 법에 건 기대는 복직만이 아니었다.

“인정받고 싶었어요.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우리가 옳다는 걸. 우리가 떼써서 우리 자리를 찾은 것이 아니라는 걸 법이 확인해주길 바랐어요.”(전 KTX 여승무원 차미선씨)

KTX 여승무원들이 대법원의 선고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7년. ‘법의 인정(認定)’을 기다리는 그들에게는 초조한 하루하루였지만, 대법원 판결이란 그런 것이었다.

“대법원 재판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되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언제 판결이 나올지 알기 어렵다. 1년이고 2년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중)

베일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알 도리는 없지만, 이기든 지든 결과가 나왔을 때 승복하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주먹’이 아닌 법에 의한 조정을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판결이 공정했으리라는 최소한의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드러낸 사실들은 이 믿음을 송두리째 허무는 것이다.

“판사들은 법정에 들어서는 변호인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판사의 무심한 눈길 하나라도 법정에 선 사람에게는 ‘혹시 판사가 변호사와 무슨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판의 실체뿐만이 아니라 외관이 중요하다는 것, 밖으로 드러나는 것으로서도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건, 판사들이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말이다.”

한 일선 판사는, 판사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외관’의 문제 때문에 특별조사단이 밝혀낸 사실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수사까지 다 해 보아도 문제가 된 판결들이 실체로는 모두 공정했다고 판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미 국민들 앞에 재판의 ‘외관’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재판을 최고 권력에 갖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판사의 영혼을 판 것이다.”

명백한 사실은 구구한 해석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제 국민 누구나 인터넷으로 다 뒤져볼 수 있게 된 대법원의 ‘대외비’ 자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장삼이사들의 법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법은 결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억울함이, 힘없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피해의식이 아님을 무참하게 확인해준다.

희망의 기초가 되어야 할 법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수호해야 할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무너져내렸다.

우리가 딛고 선 발밑이 꺼져버린 이 소리 없는 거대한 붕괴에 정녕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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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