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 10일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이 기준치 이내라고 발표했다가 5일 만에 기준치를 훨씬 웃돈다는 측정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총리는 “라돈 허용기준치 발표 번복과 관련하여 정부가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국민이 사실 불안해한 것은 ‘방사능 측정치의 번복’이라기보다는 ‘방사능 측정치가 기준치를 훨씬 웃돈다는 것’일 것이다. 라돈침대 피해자가 10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정부는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없었을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제정되어 2012년 7월부터 시행된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생방법)에 따라 가공제품에 의한 일반인의 피폭방사선량은 연간 1m㏜(밀리시버트)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때 1m㏜는 외부피폭선량과 내부피폭선량을 모두 더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가공제품 피폭선량 평가에 라돈에 의한 내부피폭선량을 고려하지 않았고, 모나자이트를 사용한 음이온 스펀지와 음이온 매트리스 제품에 대하여 표면선량만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음이온 제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량이 자연방사선량 수준으로 측정되어 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피폭선량은 무시 가능하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지난달 14일 ‘라돈 내부피폭 기준설정 전문위원회’를 개최하여 라돈, 토론에 의한 내부피폭 측정기준을 확립하고, 이 기준에 따라 평가한 내부피폭선량을 가공제품 피폭선량 평가에 반영하였다. 그 결과 외부피폭선량만을 잴 때와는 달리 기준치를 훨씬 넘는 높은 피폭선량이 측정되었고, 이튿날인 지난달 15일 이러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다.

외부피폭은 병원에서 CT를 찍을 때처럼 방사능이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고 방사선만 우리 몸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피폭은 호흡기나 음식을 통하여 방사능이 우리 몸에 들어오고, 흡수된 방사능은 우리 몸속에서 지속적으로 24시간 방사선을 내보낸다. 이 차이점에 관하여 유럽방사선방호위원회 크리스토퍼 버스비 박사는 외부피폭이 난로 곁에서 불을 쬐는 것이라면, 내부피폭은 불덩이를 삼키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즉 몸속에 방사능이 들어와 계속하여 피폭시키는 내부피폭은 외부피폭에 비하여 훨씬 위험이 크다.

그런데 라돈은 자연방사능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호흡을 통하여 기체 형태로 우리 몸속에 들어와 내부피폭을 시키는 전형적인 방사능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에서 천연방사성핵종 함유물질 흡입 시 내부피폭선량을 결정하는 주요 핵종으로 우라늄 계열과 토륨 계열을 지목하면서 원료물질 취급에 따른 종사자 피폭선량을 평가할 때 내부피폭선량 평가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나자이트를 사용한 음이온 매트리스와 음이온 스펀지에 대해서는 표면선량만을 측정하여 기준치 이하라고 발표한 것이다.

만일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금처럼 외부피폭선량뿐만 아니라 내부피폭선량까지 측정, 발표하였더라면 라돈침대는 제조, 유통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생방법은 인체에 접촉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용이하게 섭취 또는 흡입할 수 있는 장난감, 화장품 제품에는 방사능을 포함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매트리스 같은 침구류 또한 인체에 접촉되어 수면시간 내내 방사능을 흡입하게 된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으므로 당초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매트리스나 매트가 제조, 유통되도록 한 것 자체가 큰 잘못이었다. 그러므로 과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잘못된 라돈침대 방사능 측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하여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취미는 바둑이다. 기력은 아마 4단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은 야당정치인 시절 서봉수 9단과 조훈현 9단의 대국을 자주 복기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바둑애호가 문 대통령은 책 &lt;신의 한 수 인간의 한 수&gt;에 추천사를 남기기도 한다. 2017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은 중국 리커창 총리와 비공개로 바둑을 소재로 환담을 나눈다.

바둑에 위기십결이라는 용어가 있다. 실전에 도움이 될 만한 4자성어를 의미하는데 이는 바둑형세에 따라 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위기십결처럼 모든 바둑기사는 자신만의 위기타개법을 활용한다. 소개하는 프로기사 서봉수는 입단 시절부터 극단적인 실리바둑을 구사했던 인물이다. 그는 학생 시절 동네기원에서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운다. 서봉수는 독학과 내기바둑으로 미래의 프로기사를 꿈꾼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바둑을 지향했다.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바둑, 초반포석이 엉성한 중국바둑이 1980년대 세계 바둑계의 현실이었다. 한국은 모양에 연연하지 않는 실전형 바둑에 전념했다. 그 중심에 서봉수라는 절세의 승부사가 버티고 있었다. 일본 유학파인 조훈현이 천재기사로 이름을 날릴 때 서봉수는 국산바둑의 자존심으로 통했다.

서봉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바둑은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로 이어져 왔다고. 이창호를 제외한 세 명은 1970년대 이전까지 최강으로 군림했던 일본에서 바둑유학을 했던 인물이다. 한국바둑이 일본바둑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시절이었다. 1972년 서봉수는 약관의 나이로 일인자 조남철 8단으로부터 명인전을 가져온다. 2세대 대표기사 김인 역시 서봉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서봉수의 전성기를 가로막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조훈현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세고에와 술꾼 후지사와가 자식처럼 아끼던 제자인 그는 서봉수와 함께 1980년대 한국바둑계를 ‘조서시대’로 양분한다. 승률은 조훈현이 두 판을 이기면 서봉수가 한 판을 이기는 판국이었다. 이후 서봉수는 조훈현과 수백 판의 바둑을 두면서 승부근성을 키운다.

1990년대는 전영선과 조훈현의 제자인 이창호의 시대였다. 그 와중에도 서봉수는 세계바둑대회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발휘한다. 1993년. 바둑상금 규모로 최대 기전이던 응창기배에서 ‘반상의 미학자’라 불리던 오다케 9단을 누르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 경기에 대한 부담으로 불면과 구토를 반복하면서 이뤄낸 국산바둑의 소중한 결실이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서 9단은 1996년 12월부터 1997년 2월까지 열린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중국과 일본 대표선수 9명을 연속으로 무너뜨리고 한국우승을 갈무리한다. 2016년 지지옥션배에서도 9연승이라는 노장투혼을 선보인다. 실리와 전투를 혼합한 바둑을 구사하는 서봉수는 스스로를 기초가 없는 바둑기사라고 소회한다. 권투로 치면 맷집이 좋은 변칙복서의 분위기가 풍기는 프로기사다.

바둑은 강인한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따라서 바둑기사의 전성기는 10대 후반에서 길어야 30대 후반이 고작이다. 젊은 기사의 치밀한 수읽기를 상대하기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50년 세월을 버틴 서봉수류 바둑 또한 변신하고 있다. 그는 이제 승부보다는 바둑 자체를 즐기는 일상을 추구한다. 반상의 승부사는 죽는 날까지 바둑을 두는 게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한다.

어지러운 세월 속에서도 한국바둑은 싱그러운 낭만이 있었다. 연신 장미담배를 피워대던 조훈현 9단. 속기바둑의 대명사 서능욱 9단. 드라마 &lt;응답하라 1988&gt;의 모델이던 이창호 9단. 그들은 한국바둑의 고마운 증인들이다. 어지러운 현대사 속에서도 바둑은 일본과 중국을 압도한다는 자부심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이제는 된장바둑의 길을 열었던 서봉수와 이창호의 뒤를 박정환 9단이 이어가고 있다.

북·미 간의 협상이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서봉수의 투박하지만 치열한 바둑과 흡사한 시국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서 명인의 잡초바둑처럼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기를 염원한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선거가 코앞이다. 도지사 출마한다고 뛰쳐나간 농업계 두 수장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업비서관 말이다. 이 나라에서 농업이 공화국 건국 이래로 우선인 적은 없었다. 유구한 역사다. 우연한 기회에 이번 전국 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과 구청장·시장·군수, 교육감의 선거 자료를 훑어보고 있다. 이런 사람들도 출마를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전과를 자랑하거나 출마 중독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선거는 소중한 나의 한 표를 확인하는 동시에 ‘피선거권’이라는 권리도 있음을 알려준다.공약들을 쭉 보니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 신성장동력, 스마트팜, 6차 산업화, 드론 기술 도입 등은 거의 전국 공통의 낱말들이 되어 있고 농촌농업 공약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당을 떠나 농민수당과 가공센터나 직거래매장 개설 등의 공약도 많다. 이루어지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냥 던져놓은 말들도 많고 후보조차 입에 붙지도 않을 공약들이 많기는 하지만 갱신의 의미로도 중요하다. 지켜지지 않았다면 다시 평가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하다못해 출마를 하려면 체납액이라도 완납해야 하니 세수 증진 효과도 있을 테니까.

지방선거인만큼 좌우의 공약보다는 지역 현안에 대한 공약이 많다. 그럼에도 엄연히 정치이니 강렬한 이념 지향이 드러나곤 한다. 특히 교육감 선거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뚜렷한 분리로 치르는 선거다. 하지만 좌우 없이 전국 공통의 공약이 바로 무상급식 전면화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경남도지사로 있을 때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며 무상급식을 엎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가 ‘무상급식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급식문제로 싸워왔던 경남의 시민운동 조직들은 어이없어 하고 있다. 그동안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않던 대구광역시도 올해부터 전면 확대했다. 전국의 모든 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 수준의 공약으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되자 고등학교 무상급식 실시와 친환경 급식 실시, 심지어 ‘1식 5찬’ 공약에 채식을 하는 학생들을 위한 채식 메뉴 공약 등도 내놨다. 노인정 급식의 전면 확대와 공휴일 결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급식문제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본다면 격세지감의 세상일 것이다. 그토록 반대하던 같은 진영의 사람들도 앞다투어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거니 말이다.

1990년대 급식운동 초반만 해도 급식 실시가 목표였고, 이후 위탁이 아닌 공공급식의 위상에 맞게 직영화를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그다음은 무상급식과 친환경 급식의 전면 실시였고, 이제 고등학교 무상급식이 정치 의제가 되었고, 이미 실시하고 있는 지자체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데다 이를 자랑으로 삼는 곳도 많아졌다. 이제 아이들한테 밥을 왜 공짜로 주느냐고, 부모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세상은 변했고 적어도 학교급식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이 채 60㎏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1000명 정도의 재학생이 있는 고등학교에는 끼니마다 120㎏의 쌀을 씻어 안친다. 전국에 학생이 650여만명 있고 교직원들이 50여만명 있다. 농산물 주요 소비처는 단체급식 현장이고, 그래서 가장 먼저 농촌농업 공약에 무상급식 확대가 등장하는 것이다. 지역 정치가 살아남자면 무조건 잘 먹여야 하는 세상이 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선거철이다. 기다랗게 벽보가 붙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손상이나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비닐에 감싸여 있다. 어느새 거리마다 현수막이 즐비하다. 차량 통행이 많은 사거리엔 현수막이 빼곡하다. 건물 한 면에 통째로 붙인 것도 있다. 당 상징 색깔에 후보자들 번호와 이름이 쓰여 있는 점퍼와 모자를 입고 쓴 선거운동원들이 홍보에 열심이다. 번호와 이름이 적힌 어깨띠도 보인다. 인적이 많은 거리에선 후보들 경력이 빼곡히 적힌 명함을 나눠주느라 분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선 집으로 공보물을 보낸다. 화려한 색상의 고급용지로, 웬만한 노트보다 두껍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세워진 채, 또는 거리를 오가며, 후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동차나 휴대용 확성기에선 소음 수준의 로고송이나 유세연설이 흘러나온다. 일상적인 선거철의 익숙한 풍경이다.

슬슬 의문이 든다. 도대체 선거기간 동안 전국에 붙인 벽보는 얼마나 될까? 현수막은 몇 개나 될까? 벽보나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될까? 얼마나 많은 명함이 만들어지고 선거 공보물은 또 얼마나 될까? 후보들 번호와 이름, 구호가 적힌 점퍼나 모자, 어깨띠는 어떻게 할까? 트럭인 유세차량에서 사용하는 경유는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한 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몇 그루나 되고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얼마나 되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얼마나 배출될까?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선거 뒤 현수막 처리에만 30억원이 든다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후보자들이나 정당 입장에선 어떻게든 후보자 얼굴과 공약을 알려 한 표라도 더 얻고 싶겠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적이 있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기후변화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선거문화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걸까?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친환경 공약도 내세우지만 이런 환경에 부담 주는 선거문화가 도리어 국민 삶을 해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공식 선거기간은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로, 선거가 끝나면 용도 폐기되어 버려질, 단 13일 쓰고 버릴, 선거용품과 옷들이 넘쳐난다. 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018년의 선거문화, 20세기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친환경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 이야기도 간간이 들린다. ‘터치포굿’이란 단체가 제공하는 ‘친환경선거 체크리스트’를 실천하는 후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더 많은 후보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하지만 몇몇 후보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 제도 변화로 선거문화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선거공보물, 너무 아깝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이미 ‘우리동네 후보자 찾기’ 기능이 있다. 살고 있는 동네만 넣으면 후보와 공약 모두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손쉬운 사실을 아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우선 이 사실을 널리 알리자. 이 기능만 잘 사용한다면 공보물을 일일이 집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인쇄물이 필요한 시민들도 있다. 그러니 인쇄물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선관위에 신청하도록 하자, 우리 집엔 보내지 말라고. 현수막은 가능한 한 수를 더 제한하자. 사용 후엔 지금처럼 뜻있는 후보들만 새사용업체(업사이클링업체)로 보내고 대부분 매립하거나 소각하게 두지 말고 모두 새사용업체로 보내게 하자. 신발주머니로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신발주머니 사용에 선거와 친환경 선거의 의미, 새사용의 필요를 익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유세차량 운행을 줄이고 소음도 규제기준을 정하자. 차제에 이런 방식도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로고송 듣고 율동 보고 그 후보, 그 정당에 표를 줄까? 유권자는 정책공약을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친환경 선거 만들자  (0) 2018.06.08
수소전기차와 ‘맑은 미래’  (0) 2018.06.01
서해 NLL에 평화의 풍력발전기를  (0) 2018.05.04
일회용품 사용, 이대론 안된다  (0) 2018.04.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앉을 수 없는 노동자, 화장실에서 밥 먹는 노동자. 최근 언론에 기사화된 의자나 휴게실 관련 보도 내용이다. 언뜻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 제목은 ‘이번엔 정말 앉을 수 있을까요’, ‘화장실에서 밥 먹지 않아도 되나요?’였다. 우리 주위 쉴 곳 없는 노동자들의 몇몇 단면이 떠오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대학과 아파트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다. 판매 사원들은 서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경비 노동자들은 비좁고 열악한 곳에서 쉬고 있다.

때마침 지난 4일 정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와 운영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유통 판매직 노동자들의 건강보호 대책이다. 주요 내용에는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한 사업주와 고객 대상 홍보, 건강가이드 보급, 우수사례 공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반기부터는 백화점·면세점을 중심으로 지도·점검 계획도 밝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노동부 발표 내용을 보면 10년 전 시민사회단체 캠페인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2008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판매·계산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이었다. 당시 대형유통업체들은 전국 매장에 의자를 비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터는 변했을까. 마트 의자는 계산대(POS)와 맞지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작업대와 조율되지 않은 의자는 오히려 불편함만 초래했다. 판매사원들은 매장 관리자 눈치 때문에 제대로 의자에 앉지도 못한다.

물론 정부의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에는 나름 구체성도 담겨 있다. 특히 사업장 휴게시설 참고 설치기준은 인상적이다. 휴게시설 설치 위치·규모, 공기·조명·소음 기준, 비품관리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문제는 이런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을 갖지 못하는 권고라는 점이다. 구속력이 담보되지 않는 가이드라인은 의미가 없다.

아직도 건물 청소 노동자 휴게공간을 화장실 바로 옆에 둔 곳도 있다. 일부 병원이나 극장이 위치한 건물에 가보면 대걸레를 빨 수 있는 개수대가 설치된 곳에 휴게실이 있다. 건물 사무실 공간도 부족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 여성화장실 안에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만들어 언론에 뭇매를 맞은 공공기관이 대표적이다. 주위 아파트 경비노동자 휴게공간도 다르지 않다. 일부 입주민들이 리모델링을 하거나 냉난방 비품을 비치해주는 곳도 있지만 일부 사례다. 강남 주공아파트 한 곳을 가보니 경비 사무실이 3.3㎡(1평)도 되지 않았다. 20년도 넘게 일한 경비 노동자 사무실조차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판잣집’ 형태였다.

언제나 그렇듯 일회성 이벤트는 언론을 하려하게 장식했다. 그사이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국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앉을 권리’와 ‘쉴 권리’를 논의하는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기업들은 그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다. 정부 발표 내용은 10년 전 그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현수막을 걸고,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가이드를 보급하겠다고 한다. 어디에서 많이 보았던 단골 메뉴들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규칙에는 휴게시설이나 의자 비치 관련 조항이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보니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 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인간중심적으로 배치되어야 함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휴게시설은 작업공간과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의자는 ‘권력’(chairman)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여유를 갖는 안식처다. 권력이 아닌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자와 휴게실은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다. 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해소는 배려가 아닌 제도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의사결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의자에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서’ 있습니까?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실 사회  (0) 2018.06.15
‘이부망천’  (0) 2018.06.12
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0) 2018.06.08
‘빨간 맛’의 배신  (0) 2018.06.05
당위가 무너진 정글, 먼 나라 얘기일까  (0) 2018.06.01
대통령이 여론을 보고서로만 접한다면  (0) 2018.05.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낙연 국무총리가 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청와대가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 논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거나 방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각 부처가 더 적극적으로 임해 달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나서 노동정책 변화에 대해 국민께 설명하라는 주문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둘러싸고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이견이 부각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 내용까지 논란이 되자 내각의 역할을 독려한 것이다. 그동안 내각의 역할과 기강을 강조해온 이 총리의 지적은 타당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시간 단축 등은 당면 최대 현안이다. 경제·산업은 물론 노동·복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데다 시민생활과 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해 세밀한 설계와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현 정부의 대표 정책이다. 시행 과정에서의 진통도 예상된 바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책을 연착륙시키는 책임을 맡은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마땅하다. 시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을 늘리기는커녕 일자리와 임금을 줄인다는 재계나 보수세력의 이견에 대해 장차관으로부터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또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미칠 파장에 이견을 보이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가 정책은 당과 정부와 청와대 3자가 조율해가며 운용한다. 여당이 민심을 들어 정책의 큰 줄기를 잡으면, 정부는 그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실행한다. 청와대가 당과 정부 입장을 조정하고, 당은 국회 입법과정을 책임진다. 그 나머지 시민과 시장의 여론을 듣고, 부정확한 주장을 바로잡는 것이 다 정부가 할 일이다. 내각에 방대한 인력과 조직, 예산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논란은 하나의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주 52시간 노동 시행을 보면 이 말이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민간 기업과 노동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정부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데 외교부와 통일부가 보이지 않고, 미투 운동에서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의 존재감이 없었다. 30년 만에 조성된 개헌 정국에서 정부 개헌안은 법무부 장관이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이 입안을 주도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을 촉구한 것도 여당이 아닌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장관 발언을 청와대가 뒤집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각의 존재를 약화한 것은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다. 청와대가 만기친람하는데 내각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제에 청와대가 아닌 내각이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도록 정부운영 방식을 정상화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내각과 장관 중심의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정부가 오로지 대통령 인기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립대와 마찬가지로 국공립대에도 대학평의원회(이하 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작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후 지난 5월29일부터 시행되었다. 평의원회는 11명 이상으로 구성하며,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 대표, 동문 및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를 포함한다. 단, 특정 구성단위의 평의원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定數)의 2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니, 교수 평의원 숫자 역시 전체 평의원의 절반 이하로 제한된다.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골고루 반영할 기구의 설치라서 촛불혁명과 함께 가는 바람직한 변화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선 사립대가 국공립대보다 먼저 평의원회를 만든 경위부터 영 개운치 않다. 사립대의 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은 2007년 7월이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집권당이 사학 민주화를 위해 개방이사를 도입하는 등 사립학교법을 개정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요한 장기 원외투쟁 끝에 여당을 굴복시키고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성공한 바로 그때였다. 이 과정에서 시행령에 있던 평의원회 규정을 상위 법률로 올리는 대신 학교법인 이사의 4분의 1 이상에 대한 2배수 후보 추천권과 학교법인 감사 1인의 추천권이 평의원회에서 개방이사추천위원회로 넘어가는 등 개악도 뒤따랐다. 결국 사립대 평의원회는 내실을 빼앗긴 꼴이다. 이런 기구를 뒤늦게 국공립대에도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상위법인 고등교육법을 바꾸는 것이 민주화의 뜻있는 진전이라고 보기 힘들다.

지난 4월11일 ‘촛불정부와 사학개혁 과제’라는 국회 토론회에서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평의원회의 문제와 개선 방향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중에서 2015년 7월 대법원이 ‘학교법인 상지학원 이사선임처분취소청구사건’에 대해 “대학의 구성원인 교원, 직원, 학생 등도 원칙적으로 대학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교수회와 총학생회가 이사선임처분을 다툴 법률상의 이익을 가진다”고 판결했음을 지적한 대목은 무척 중요하다. 법원이 교원, 직원, 학생을 대학 자치의 주체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공립대든, 사립대든 현재의 평의원회가 다양한 대학 구성원이 대학 자치의 주체로 활약하게 할 수 있을까? 평의원회의 심의사항으로 대학 발전계획, 학칙의 제·개정 등이 그럴듯하게 법조항에 담겨 있지만, 정작 중요한 예·결산 심의권은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교육과정 운영과 대학 헌장의 제·개정은 자문사항으로 낮춰 규정하고 있다. 학생도 참여하는 평의원회가 학생의 최고 관심사인 교육과정을 자문밖에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대학 헌장 규정은 짐작건대 종교재단의 편협함을 보호할 목적인 듯하다. 참 꼼꼼하고 용의주도하다.

국회의 법률 개정 과정도 허술하다. 2017년 9월26일 제354회 교육문화체육관광소위 제1차 회의록(12~13면)을 보면, 정재룡 수석전문위원이 국립대학법인인 서울대학교와 인천대학교는 각각의 법에 따라 평의원회가 규정되어 구성상 학생이 제외되는 등의 문제 때문에 관련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소위에 나온 교육부 박춘란 차관은 개정안의 기술적 자구 수정만을 제안할 뿐 법률 정비 필요성에 침묵하며, 국회의원들의 토론은 무성의하고 무책임하다. 당사자인 대학 구성원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한, 교육부와 국회는 대학의 민주적 운영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교수의 자치조직인 교수회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교수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하게 규정할 따름이다. 학생회나 노동조합 역시 대학 자치의 주체로 역할을 할 법적 보장이 없으니, 교수, 직원, 학생의 대표가 평의원회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어렵다. 대학 관련 법률의 전면적 정비가 절실하고 불가피하다.

나는 작년 6월22일자 정동칼럼에서 “교수가 대학평의원회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굴욕적인 법률은 정년보장의 혜택을 누리는 정규직 교수들이 교원의 법적 지위조차 없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외면해온 탓”이라고 썼다. 또한 연구와 교육을 책임지는 교수가 대학의 주역이라는 소신 때문에 “평의원회의 과반수, 심지어 3분의 2 이상”을 교수로 채워야 옳다고 했지만, 교수의 ‘갑질’ 근성으로 오해될 이 발언은 철회해야겠다. 교수사회의 각성과 혁신은 교수회와 비정규직 교수의 법적 위상을 확보하는 고등교육 법체계의 전면적 제·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현행법은 평의원회 의장은 “학생이 아닌 평의원 중에서 호선”한다고 말한다. 직원이나 조교는 되는데 학생은 왜 의장을 못하나? 대학 자율에 맡길 일도 꼼꼼하게 간섭하는 법조항들 앞에 그만 머리가 어지럽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기준법 시행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1일부터 노동자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이 근로기준법을 어기면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정부의 세부 시행지침이 없어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기업들은 업종의 특수성과 인력 사정을 고려할 때 특정 업무 종사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아우성이다. 일부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인력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37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 노동제를 시행할 준비가 완료됐다는 기업은 16.1%에 그쳤다.

노동자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업무 중 휴식시간이나 출장, 부서 회식, 거래처와의 술자리 등이 업무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 어디까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과 노동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주무부처로서 뒷짐만 지고 있던 고용노동부는 다음주 ‘근로시간 단축 문답자료집(세부 시행지침)’ 1만5000여부를 사업체에 배포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게 지난 2월 말이다. 지금쯤이면 전국 단위 설명회를 마치고,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4개월 가까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가 근로기준법 시행을 2주일 앞두고 세부 시행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의지마저 의심케 하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돼야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고,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도 뗄 수 있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안착시킬 수 있는 치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시간 혁명’은 물 건너가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진상규명 요구 나선 춘천지법 류영재 판사

무릎을 탁 쳤다. “심판을 못 믿으면 경기는 없는 거다.” 강문대 변호사가 페이스북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비판하며 쓴 표현이다. 심판이 공정하다는 전제에 선수들이 동의하지 못하면, 올림픽도 월드컵도 불가능하다. 난투극으로 점철되고 말 것이기에. 이번 사태는 분쟁의 종결자인 법관이 헌법적 의무인 ‘독립적 심판’을 포기하고 직접 ‘플레이어’로 뛴 것이다. 페어플레이는커녕 최악의 비열한 플레이였다. 법관 직무의 모든 것인 재판을 매개로 ‘딜(deal·거래)’을 시도했다. 과장이 아니다. 2015년 8월 법원행정처(행정처)가 작성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전략’에는 ‘빅딜 카드’란 표현이 등장한다.

일부 보수언론에선 계획만 있고 실행되지 않았으니 문제없다고 한다. 실행 여부는 추가 규명이 필요하다. 설사 ‘미수’에 그쳤다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심판이 사익을 위해 특정 팀을 도우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실행은 못했다고 치자. 문제가 없나. 이런 심판들이 다시는 휘슬을 불지 못하도록 하자는 게 시민과 대다수 판사들의 요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 보고서가 나온 뒤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35·사법연수원 40기)를 지난 6일 춘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류 판사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이다. 만화가가 되려고 미대에 갔다가 졸업한 뒤 진로를 바꿨다. 2011년 연수원 수료 때 10등 안에 든 실력파다. 현재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가 지난 6일 강원 춘천의 한 커피숍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 판사는 “사법부가 부끄러운 역사를 숨겨서 국민이 모르고 지나가면 주권행사 영역 일부를 빼앗기는 것”이라며 “은폐는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특조단 보고서 내용을 페이스북에서 설명하고, 방송 인터뷰에도 응하고 있다. 현직 판사로서 쉽지 않은 일일 텐데.

“2015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이었던) 박상옥 대법관이 제청될 때, 박노수 판사가 코트넷(법원 내부망)에 ‘제청을 거둬달라’는 글을 썼다. 답글을 달았더니 법원장께서 부르셨다. 행정처에서 법원장에게 전화해 ‘이게 춘천지법 배석판사들 뜻이냐’고 물어봤다더라. 개인 의견이라 답하고 글을 삭제했다.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됐다. 내가 글을 쓰면 소속 법원과 동료들에게 폐가 되는구나 싶었다. 이후 국가정보원이 경력법관 면접에서 사상검증한 사건이 터졌다. 트라우마가 떠올라 글을 못 올리겠더라. 행정처 아는 분에게 연락해서 전수조사 건의하는 정도의 행동만 했다. 결국 일부가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법원 차원의 공식 항의 입장발표는 없었다. 행정처장 명의의 다섯 줄짜리 내부공지만 떴다. 그때 깨달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역사는 ‘판사들이 침묵했다’고 기록하겠구나. 앞으로는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저 보고 ‘관종(관심종자)이냐’ ‘저러다 정치하겠지’ 하는 시선이 있을 거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확신하에 국민에게 알리는 것뿐이다. 국가의 사법기능은 판사가 수행하지만, 판사의 것이 아니다. 사법기능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가 부끄러운 역사를 숨겨서 국민이 모르고 지나가면, 주권행사 영역 일부를 빼앗기는 것이다. 은폐는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 이번 사태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사법부는 군부독재 시절 정권에 전적으로 협력한 흑역사가 있다. 지금 여러 사건에서 재심이 이뤄지고 있지 않나. 사법부가 정권과 거리를 두는 일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해야 옳다. 그 부분이 정면으로 흔들린 거다. 재판개입이 실제 있었는지를 떠나 재판의 외관상 공정성과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초점은, 사법부가 스스로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협력했다’ ‘협력하겠다’ ‘청와대가 요구 안 들어주면 협력 않겠다’고 한 거다.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났는데, 법원에서 ‘립서비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재판을 그렇게 안 했다’고 한들 국민이 믿겠나.”

- ‘외관의 공정성’이란 무슨 의미이며 왜 중요한가.

“재판은 실체가 공정한 것도 중요하지만 절차의 적법성 등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실체적 공정성이 해(害)하여졌다는 점은 재판부가 양심선언하지 않는 이상 입증이 어렵다. 재판부가 가족이나 지인의 재판을 스스로 회피하는 제도가 있는 것도 외관의 공정성을 위해서다. 판사는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외부에 이야기할 때 신중해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한 판사가 ‘원세훈 1심 판결’을 ‘지록위마’라고 비판했다가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는데 징계 이유가 재판신뢰 하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그 대법원장 휘하 행정처에서, 청와대에 재판을 거래수단·협력수단·홍보수단으로 이야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부는 (실행)했다. 게다가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수장이다. 대법원 재판의 ‘외관의 공정성’이 깨진 것이다. 보고서에서 원세훈 사건(전원합의체 회부 이후 원심 파기),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사건(원심 파기)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사건은 문건이 작성된 시점이 선고 이전이고, 선고 결과가 시나리오와 일치한다. 판사로서는 재판개입이 없었다고 믿고 싶지만, 믿음일 뿐이다. 문건과 결과를 본 국민은 정말 믿기 어려울 거다. 사법부가 이만큼 외관의 공정성을 무너뜨렸으면 실체적 공정성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실제 개입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재판의 정당성은 무너졌다.”

국정원 경력법관 사상검증 사건
법원 차원 항의조차 없는 것 보고
앞으로 절대 침묵 않겠다고 결심

재판거래 시도만으로 헌법 위반
검찰·특검 가릴 수 있는 처지 아냐
문제 된 판결 ‘재심 특별법’ 공감
문건 다 공개해 ‘날것’ 보게 해야

- 문건을 작성한 행정처 심의관들은 지시에 따른 것뿐인가. ‘탄핵해야 한다’ ‘징계 전이라도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등의 요구가 나온다.

“원칙만 이야기하면, 면책은 불가하다. 모두 10년차 이상 법관이다. 법관은 임관 때부터 독립기관이고 3급 고위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심의관 정도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한다 해도 파면당하지 않는다. 불이익은 보직변경 정도다. 보고서를 보면 (심의관들이) 소극적이지 않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국정원 보고서도 이렇게 잘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가장 걱정되는 건 재판을 경시하는 이분들이 재판 업무를 할 때, 재판 당사자들을 어떻게 대우할까이다.”

- 각 법원 판사회의에서 대체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향후 조치에 대한 생각은.

“우선 전체 410개 문건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특조단 보고서를 볼 때와 문건을 볼 때 느낌이 다르다. 문건을 보니 심각성이 더 느껴진다. 이것만으로도 문건 공개는 의미가 있다. 국민도 직접 날것을 볼 권리가 있다. 사법신뢰를 세우려면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법원은 어떤 요구든 따라야 한다. 검찰 수사냐, 특검 수사냐 가릴 처지가 아니다. 보고서만 봐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은 충분히 수사에 착수할 만한 수준이다. 재판개입 여부 규명은 쉽지 않겠지만, 국민이 바라면 해야 한다. 만약 재판개입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재판의 공정성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다. 개입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법부가 헌법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다. 재판개입만 없으면 괜찮다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김명수 대법원장 휘하 행정처에서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겠다’는 문건 만들고, 그게 공개된다 해도 괜찮다고 할 건가. 문제는, 판결의 정당성은 무너졌지만 효력이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행법상은 구제할 길이 없다.”

- 법조계 일부에선 ‘양승태 헌정유린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고, 판결에 문제가 드러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특별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처분적 법률로서 위헌 시비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5·18특별법 등을 제정한 선례가 있다. 다만 사법부가 이를 제안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 차관급 대우를 받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수사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사법부에 들어오는 전례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우려는 이해한다. 그러나 ‘향후 관련 재판을 담당하게 될 법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판사들 비리를 윤리감사관이 수사의뢰나 고발한 사례가 있다. 그때마다 행정처 영향을 받아서 재판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하는 문제에 대해선 고민이 있다. 대법원 수장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행정처장이나 윤리감사관의 수사의뢰가 개별 재판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납득할 수 없다.”

- 조선일보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프레임’ 짜기를 시도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해왔다. 특조단이 제목만 공개한 문건에 ‘조선일보’가 포함된 사례만 10건이다. 그럼에도 문건 내용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 만들자고 논의할 때, 제가 페이스북에 ‘친구 공개’로 쓴 글이 한국경제와 조선일보에 보도됐다. 기사가 나면서 정치판사로 낙인찍혔다. 조선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을 정치판사로 모는데, 우리법연구회가 와해될 때와 똑같다. 앞으로도 판사들이 법관독립·인권보장을 고민하며 모임을 만들면 조선일보는 정치판사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사법부가 특정 언론에 의해 순치되고, 통제되고, 판사들이 자기검열하는 상황은 불행하다. 더 이상 조선일보가 사법부를 흔들게 놔둬선 안된다.”

류 판사는 2시간여 인터뷰 내내 날카롭고 열정적이었다. 시민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목소리를 낮추곤 힘주어 말했다.

“저도 판사입니다.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는 게 무섭습니다. 저처럼 재판독립을 고민하고 이 사태를 두렵게 생각하는 판사들이 많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만큼 (판사들은) 강하게 나갈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판사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국민이 보기에는, 이번 일을 저지른 판사나 그렇지 않은 판사나 구분하고 싶지 않겠지만…. 박시환 전 대법관이 2003년 사법파동 때 사직서를 제출하며 ‘좋은 재판을 하고 싶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박 전 대법관처럼 좋은 재판을 하고 싶다는 판사들이 다수라고 믿고 있어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법원에 계속 있고 싶어서입니다. 좋은 재판이 가능해야 법원에 계속 남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판사들이 좋은 재판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법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