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 모 지역 비례대표에 출마한 지인의 이력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소수자들의 작은합창모임 노래선생님.’ 몇 줄의 짧은 이력은 뭇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궤적이라기엔 소박하지만, 구체적이다. 내가 투표할 지역의 공보물을 펼쳐본다. 다수의 후보가 질세라 길게 나열된 학력과 이력으로 신뢰를 홍보한다.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와의 연관성을 부각하여 ‘○○○과/와 함께’라고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리스트가 신뢰를 줄 만한 설명 방식이라니 한숨이 나온다.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될지 구체성을 띠는 공보물을 찾기가 어렵다. 선거운동 기간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해도, 정작 다양한 존재들의 구체적 삶을 만나지는 못한 탓이리라.

발달장애인 참정권 운동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한 발달장애여성은 인상적인 공약에 대해 “페미니즘이랑 혐오, 차별, 성폭력 예방… 우리도 거기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의 민주주의가 나의 존재와 수많은 소수자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대표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 절감했다. 내 존재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유명인의 이름이나 경력으로 채워진 이들에겐 더 이상 투표하고 싶지 않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7기 6·13 지방선거의 주요 관심사로 나는 ‘청소년 참정권, 시건방진 포스터, 발달장애인 참정권,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를 주저 없이 꼽겠다. 비장애·남성·중산층 기득권이 전유했던 ‘정치’를 재구성하는 시간들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서 수혜의 대상으로 호명됐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주체로 등장할 때 준비되지 않은 사회는 불신과 혐오를 보였다. 이 불신이야말로 동료 시민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하는 핵심이다. 어려서, 장애인이라, 여성이라, 학력이 어떠해서, 성소수자라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기준이야말로 차별이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포스터 훼손과 시건방지다는 논평은 주체적인 관점과 의견을 가진 여성에 대한 반감과 혐오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선거연령 하향 촉구 농성을 43일간 국회 앞에서 벌였지만 선거법 개정은 4월 국회에서 무산됐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 청소년이 선거권을 보장받진 못했지만, 운동주체들은 교복 입고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운동을 진행한다. 발달장애인 참정권 운동은 쉬운 선거 공보물과 후보자 얼굴이나 정당 로고가 들어간 쉬운 투표용지, 투표소 내 공적 조력자 배치를 요구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쉽게’를 넘어 동료 시민으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하다는 요청이다.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는 혐오표현 신고센터를 열고, 혐오 없는 선거 만들기 시민선언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하고 있다. 공적 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공보물과 선거운동 과정에서 혐오표현 감시와 모니터링, 혐오 표현 규제 방안 검토, 공직선거에서 혐오 표현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등 후보자 혐오발언 근절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머물러야 할 위치를 이탈해서 공적 공간에 진입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가장 중요한 정치다. 6월13일 밤 개표방송에선 당선자들의 얼굴 일색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대표하지 못하는 나와 수많은 또 다른 나를 떠올릴 것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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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좀 기이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일본 소설이었는데 주인공은 어떤 사적인 계기로 죽은 사람에 대해 잘 애도하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 그래서 구도의 길을 떠나는데 그 구도의 길이란 잘 애도 받지 못한, 혹은 잘못 애도 받은 죽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애도하는 것이었다. 자세한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참 특이하다는 인상만 남은 이 소설의 제목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세월호 사태 때였다. 세월호 사태 이후 수년간 우리는 말 그대로 애도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애도를 방해·억압하였고, 우리는 애도를 완성하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박근혜 정부에 항의하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싸웠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애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 관계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애도한다는 것은 죽어서 이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 자체를, 그 사람이 왜 어떻게 이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갔는가를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기왕의 관계에 생긴 공백을 성찰하는 것, 그 공백을 넘어서기 위한 관계의 조정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매우 과거 지향적인 애도가 사실은 매우 미래 지향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사태 당시 우리 국민은 매우 성숙한 의미에서 ‘애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국민은 300명 가까운 아이들 죽음의 원인이 극단적이라 할 만큼 인간을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만 보았던 한국 산업사회 시스템, 그 시스템의 생명경시에서 비롯된 것임을 성찰하였고, 천만이 넘는 애도의 촛불을 통해 그 비인간적 시스템의 상징적 종언을 의미하는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최근에 나는 <애도하는 사람>이란 소설 제목을 다시 떠올릴 기회가 있었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 간의 논쟁이 치열했던 지역 교육정책 토론회에서였다. 그 지역에서 참여한 청중 중 한 분이 발언권을 얻더니 뜬금없이 “애도하는 기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 갈 때 애도의 기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적게 필요한 사람도 있고 그런 거죠”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여서 대체로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작금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은 말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관계 속에 놓이고, 그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애도하는 것은 죽은 사람만이 아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간은 이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익숙한 관계들을 애도하며, 그 애도의 기간에는 개인과 개인 간에, 집단과 집단 간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애도 기간의 차이는 사회변화 속도가 느릴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변화 속도가 빠를 때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전형적으로 그러할 것이다.

핵폐기와 종전, 평화협정을 지향하는 남북정상회담, 북·미 회담의 급진전은 그간 우리 사회의 관계를 상당 정도 규정해왔던 이념적 대립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 대립을 과거 익숙했던 관계에 대한 애도 기간의 차이로 희석시키고 있다. 남북관계는 갑작스럽게 그 결과가 나타난 것뿐이지 내용적으로는 냉전체제 해소 이후 꾸준히 애도가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국민은 다행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냉전체제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게 긴 소수가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정도이다. 그래도 평화체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 등을 조정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애도기간의 차이로 갈등이 많아질 영역은 일자리와 관련된 문제로 보인다. 산업사회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예컨대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한 고용노동 시스템의 종말을 예언한 프랑스의 기술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주장 등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는 고용노동 시스템이 종말을 고하면 임금을 통한 부의 분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본소득, 기여소득을 통한 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티글레르의 말 그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한 노동 개념의 변화는 사회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20, 30년 안에.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러한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 그러한 전환을 준비하고 갈등을 해소해 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물었을 때 쉽게 떠오르는 것이 대중교육의 새로운 역할, 혹은 본래적 역할이다. 산업화 시대 대중교육의 주된 역할은 산업구조의 변화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공급이라는 직접적인 경제적 효용성에 있었고, 그러한 교육개혁 담론이 위에서 아래로 계몽적인 방식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인공지능 자동화가 급진전되면 대중교육의 경제적 효용성은 직접적인 것에서 간접적인 것으로 바뀌고, 대중교육의 직접적 효용성은 사회적 가치 전환과 형성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전환과 형성 담론은 사라져가는 익숙한 관계를 성찰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애도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계몽은 엘리트주의적이고 강하지만 피상적이고, 애도는 겸손하고 부드럽지만 근원적이다. 교육의 개혁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분들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몽이 아니라 애도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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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정범>은 용산참사 이후 살아남은 철거민들이 어떻게 상처와 싸우며 살아가는지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사람 한 사람 아픔의 종류와 정도,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다.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물음을 생각하느라 당시엔 마음 한쪽에 담아뒀지만, 갈수록 오롯하게 커지는 장면이 있다. 바로 주인공 중 한 분인 김주환씨가 거주하는 옥탑방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2013년 1월 출소한 이후 그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머리에서부터 귀 안으로 벌레가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돼 에프킬러를 뚝뚝 흘러내릴 정도로 귀에 뿌려대곤 했다. 술을 마셔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 밖으로 나가 30분 동안 고함을 지르기도 했으며, 만취 상태에서 택시기사와 싸우고 경찰서에 끌려가 웃통을 벗다가 수갑이 채워지기도 했다.

영화 <공동정범> 스틸 이미지

점점 혼자 사는 옥탑방 안으로 고립되는 그의 주변으로 식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화초를 기르기 시작했다. 화초들은 곧 텔레비전 위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실내를 꽉 채웠고, 창밖 옥상엔 2열, 3열로 줄지어서 자라고 있었다. 그는 화초가 좋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살아 있는 거, 배신 안 하는 거, 이건 내 손만 타면 좋아라 하고 잘 크잖아. 그리고 말을 못해서 좋고. 잠자거나 할 때 조용하게 있고 싶을 때는 정말 좋거든.”

식물은 생명이다.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위안을 준다. 흙을 밀어내고 움트는 새싹, 자고 일어나면 한 마디씩 자라 있는 모습은 식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을 대면 그 생명감이 내 몸에 옮겨오는 기분이 들었을까. 한때 동지였지만 갈등을 빚고 반목하는 것이 사람이다. 식물은 이런 관계의 불안에서 사람을 해방시킨다. 식물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상처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배신 안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무엇보다 그를 위안해준 것은 식물이 말을 못하는 점이다. 말은 아마 그에게 칼이나 총 아니었을까. 말은 너무나 깊숙하게 인간을 찌른다. 생각을 어지럽히고 의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식물의 세계엔 소리가 없다. 그 대신 새와 벌과 인간이 날아든다. 벽을 보고라도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인간이 말을 걸기 딱 좋은 게 식물이다.

최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이 들려온다.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의 지극한 애정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식물을 반려로 삼는다는 것은 화단을 가꾸는 이상의 무언가가 인간과 식물 사이에 싹트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표도 만들어 옆에 꽂아준다. 매일 한 번 이름을 불러준다. “잘 잤어?” 하고. 생물학적 체계에서 꽃기린은 빨간색 꽃이 피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며, 잘 죽지 않는 기르기 쉬운 화초다. 어떤 꽃기린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동등한 만큼 개체적 차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꽃기린에 이름을 붙여주면 단번에 ‘유일한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내 친구가 함께 계절을 보내며 훌쩍 자란 모습을 보여줄 때 남다른 동질감이 생겨난다.

물과 햇빛, 잘 통하는 공기가 식물이 바라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유지하지 못해 많은 식물을 키우다가 죽인다.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빈 화분이 많이 생긴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매일 식물을 살피는 일이다. 식물은 빛깔과 윤기와 탱탱함으로 말한다. 쭈글쭈글함과 축 처짐과 고개 숙임으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연습이 되어야 식물과 살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은 대화다. 꽃은 벌과의 대화이고, 뿌리는 물과의 대화다. 물을 주고 창을 여닫고 화분 위치를 옮겨놓는 것이 대화다.

과거엔 이런 일이 일도 아니었다. 집과 마을이 자연과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식물들이 섬처럼 자란다. 많은 반려식물이 집집마다 있지만 이것들은 연결돼 있지 않다. 이 연결성이 생명에겐 중요하다. 반려식물이 죽지 않으려면 이웃집에 친구가 생겨야 한다. 서로 만나지 못해도 인간과 인간이 식물을 소재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연결성이 생기고 연결성은 인간의 주의력도 향상시킨다.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식당 같은 곳 담벼락에 나와 있는 화분들의 옹기종기한 모습을 보면 그것을 가꾼 사람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잠깐씩 발길을 멈추곤 한다.

식물과의 대화가 간절했던 김주환씨는 어떻게 지낼까.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전혀 나오는 것이 없다. 그는 잘 살고 있을까. 그의 식물들은 안녕할까. 그의 옥상이 식물들로 가득 차서 ‘공동정범’이었던 그의 동료들이 빨리 억울함을 풀고 삼겹살 파티를 한 번씩 열 수 있는 루프톱 공동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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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의 일이다.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스마트폰도 없었고 일베도 소라넷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강남역 사건 한참 전이었던 만큼 서점에 페미니즘 코너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선거 포스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글귀를 본다는 건 상상조차 못하였던 시절이었으니 지금과는 꽤 다른 시대였나 보다. 여대에서 강의를 할 때였는데 한 학생이 수업용 인터넷 카페에 익명으로 고민을 남겼다. ‘남자 친구가 이상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내용이었다. 상대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찍는 그런 수준의 사진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데 이런 애인을 계속 사귀어야 하느냐는 거다.

음란사이트에 자기 사진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강사에게까지 공유하는 이유는 단칼에 애인과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여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수업시간에 이를 언급하니 다른 여성들의 의견에도 어정쩡한 모습이 있었다. 연인들끼리 신뢰가 있다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낭만적 의견에 나름의 공감대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도, 아니 훨씬 전부터 여성들의 벗은 몸은 포르노로 소비되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디지털 장의사 등의 용어가 낯설었던 만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사진 한 장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온갖 더러운 수식어들이 덕지덕지 붙고, 그래서 이를 해결하려면 돈은 돈대로 들면서 마음은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그런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은 한눈에 판별 가능한 쓰레기이기 때문에 애초에 사귀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기계는 진보했고 ‘더러운 문화’는 진화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인 인터넷 공간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더 과감하게 즐겼다.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몰카’가 등장하고 쓰레기 행동을 하는 일부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여성들은 모든 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신 차린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는 상상으로도 불가능해졌다. 구글 이미지에서 ‘길거리’ ‘일반인’을 검색하면 자신은 찍힌 줄도 모르는 평범한 여성들의 사진이, 혹은 연인들끼리만 알고 있어야 할 수준의 사진이 즐비하다. 그래서일까? 지난주에 한 여대에 특강을 가서 12년 전과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말하니 모두가 박수를 쳤다. “사랑하든 말든 그딴 사진 찍자고 하면 당장 헤어지세요.”

그동안 ‘사랑해서’ 요구하는 줄 알고 순진하게 허락한 수많은 여성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가. 그 결과 지금의 20대 남성들은 과거보다 훨씬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몸’이 대범하게 유통되는 공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길들여졌다. 아무 생각 없이 여성을 몰래 찍고 공유하는 걸 인정 행위로 여기다 보니 엄마, 누나, 여동생까지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잘(?)하면 상업적 이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유년기 때부터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랑하니까 너의 몸을 찍고 싶어”라는 말은 성립 불가능하다. 디지털 자료는 개인의 각오로 보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만천하에 증명된 세상에서 ‘나만 볼 건데 왜 걱정이야’라는 말 자체가 우습다.

12년간 이 사회가 어느 쪽으로 진화했는지를 진중하게 생각한다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함부로 해석해선 안된다. 진화하는 몰래카메라만큼 작금의 상황은 끔찍하다. 이 객관적인 공포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주말마다 대규모 시위를 열어 거친 언어를 내뱉기도 하고 심지어 상의를 탈의하기까지 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평범할 리 있겠는가.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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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탠디를 신지 말아야 할까. 얼마 전부터 시작된 고민이다. 심플하고 적당히 세련된 디자인, 편안한 착용감, 애프터서비스가 좋아 애용하던 브랜드다. 여름이 되면 탠디 샌들을 구입했고 가을이면 춘추용 구두를 샀다. 20여년 전부터 나름 충성도 높은 단골이었다. 올여름도 더위가 시작되면서 블링블링한 샌들을 사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얼마 전 뜻밖의 뉴스가 들려왔다. 탠디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거였다. 8년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공임 때문이었다. 보통 30년, 길게는 40년간 구두를 만들어온 50~60대 장인들이 받아온 공임은 한 켤레당 6500~7000원에 불과했다. 백화점과 아웃렛 매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반짝 빛나던 예쁜 샌들과 구두들이 비틀어진 관절, 못 박힌 그들의 손과 겹쳐져 떠올랐다. 며칠 전 눈여겨봐둔 아웃렛 매장의 샌들은 20만원 가까운 가격대였다. 싼 것은 10만원 중반대, 30만원대를 호가하는 것들도 있다. 재료비와 유통마진, 영업비 등을 대강 생각해봐도 값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 수긍하기 힘든 공임이다. 실상을 몰랐으면 모를까, 더 이상 맘 편히 샌들을 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신문에 난 칼럼에 눈길이 갔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대한항공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홍 교수는 ‘땅콩회항’에 이어 ‘물컵갑질’에 이르는 회장 일가의 행태로 대한항공의 오랜 고객으로서 이별을 고했다. 더 이상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반세기 가까운 고객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자 압박이다.’ 1972년부터 시작해 46년된 고객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한항공 마일리지만 해도 10만2494점. 그것마저 깨끗이 포기한다고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슬쩍 나의 마일리지를 체크해보니 7만2318점. 포기가 쉽지는 않다. 그나마 샌들은 마일리지가 없어 다행 아닌가. 혼자서 불매를 각오했다.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사면 될 일이다.

한 달 넘게 파업에 들어갔던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공임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후 해당 제화업체의 본사에 찾아가 16일간 점거농성을 했다. 그들 대개는 난생처음으로 ‘데모’ ‘농성’이라는 것을 해봤다. 회사는 건물을 폐쇄하며 맞서다가 지난달 10일 저부(신발 밑창)와 갑피(신발 겉가죽)의 공임 단가 각각 1300원 인상을 약속하며 타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제 맘 편히 샌들을 살 수 있으려나 생각하던 차에 알게 됐다. ‘그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서울 성수동에서 일하는 구두장인을 아빠로 뒀다는 딸이 글을 올렸다. ‘몇 달 전부터 아빠께서는 (정당한 공임요구를 위해) 거리로 나가고 있다. 아빠는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나가서 일이 많을 때에는 밤 12시에도 온다.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가지고 오시는 월급이 항상 적으신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공임비 5500원…. 얼마나 불공정한 삶을 사신 분들이 많은지, 최저시급도 안 지켜지는 알바보다 못한 노동자의 삶이 있다….’

성수동에도 유명 브랜드의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역시 낮은 공임과 고용보험 부재, 장시간 노동 관행, 불량제품에 대한 비용 전가, 업체가 고용하는 노동자와 같지만 책임을 떠안는 소사장제(개인사업자) 등 불공정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5일 본드와 가위, 망치를 내려놓고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 중 한 명과 지난 밤 전화통화를 했다. 동료들과 술 한잔을 했다는 이근동씨(61·가명)는 십대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해 47년간 해왔다. 그러는 동안 결혼을 하고 두 딸을 키웠으며, 큰딸은 시집도 보냈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일은 놓았지만 그의 손마디는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듯 아침마다 통증을 일으키며 그를 깨운다.

“성수기인 3~4월, 10~12월 하루 16시간에서 18시간을 일했어요. 본드 냄새가 지독하고 작업환경이 아주 안 좋아요. 그렇게 일해 많이 받으면 300만~320만원까지 벌어요. 일이 없을 때는 50만원, 100만원도 벌지요. 토요일까지 일해서. 나는 갑피 작업을 했어요. 내 딸들은 백화점 가서 사주지 못했지만 길에 다니다가 내가 만든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는데…. 이젠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나요. 기계가 일하는 세상이 된다고 우릴 괄시하는 건지, 구두는 100% 기계로 만들지 못해요. 가죽을 다루니까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죠. 사람 손이(허허).”

꼭 그들이 노동한 만큼, 시간을 들인 만큼, 손마디가 고통받은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내준 만큼, 인생을 내건 만큼. 우리 사회가 수많은 그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줄 수 있을 때, 샌들을 사고 싶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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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오슈

전화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같이 어둑시근한 저녁

수런수런 벙그러지는 웃음소리

불러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주니께 고맙다고

슬래브 지붕 위에 하냥 떨어지는 빗소리

김해자(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해자 시인이 최근에 시집 <해자네 점집>을 펴내면서 ‘시인의 말’에 이렇게 썼다. “사람과 꽃과 나비와 알곡과 대지에 경배하며. 그 모든 계절의 바람과 떨어진 꽃과 주검들이여. (…) 밥과 술 그리고 웃음까지 나눠 먹는 이웃들과 친구들이 이 시들 중 몇 편이라도 듣고 껄껄 웃었으면 좋겠다.” 이 소박하고 진솔한 문장이 시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를 읽은 나의 소회를 대신해도 좋겠다. 푸르죽죽할 때에도 파릇파릇하게 수식해주는 사람, 가꾸어주는 사람이 우리의 곁에, 아랫집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맞들어주는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매일매일 애쓰느라 버거운 우리는 서로서로 맞장구도 쳐주고 달콤한 소리도 하자. 그리고 활짝, 꽃처럼 웃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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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시는 도심개발로 원주민이나 상인이 동네를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기승을 부리자 2006년 ‘파리도시계획’을 내놨다. 파리 전체 도로 길이의 16%인 259㎞를 ‘보호상업 지구’로 지정해 3만여개 상점의 임차인들이 건물주의 횡포로 쫓겨나지 않도록 했다. 파리시는 상가 임대차계약 갱신 기간을 9년으로 정하고, 건물주가 계약을 해지하려면 임차인의 귀책사유를 제시하도록 했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할 때는 임차인에게 우선적으로 입주권을 부여해야 한다.

독일은 민법으로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상가 임대차계약은 10년 이상 보장하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임차인이 원하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임대료 인상폭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60~100% 이내로 제한한다.

경찰이 임대료 인상을 놓고 다툼을 벌이다 건물주에게 둔기를 휘두른 서울 종로구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모씨를 9일 구속했다. 아내와 함께 2009년 서촌에 족발집을 연 김씨는 2016년 1월부터 건물주와 갈등을 빚었다.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명목으로 임대 보증금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월세는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4배 넘게 올려 달라고 요구한 게 발단이 됐다. 김씨가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자 건물주는 명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법원 명령으로 건물을 강제 집행하는 과정에서 12차례나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건물주에 대한 김씨의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가 놓여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풍자를 넘어 ‘갓(god)물주의 나라’가 된 한국 사회의 비극이기도 하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기간 5년이 넘으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수십배 올리거나 계약 갱신을 거부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국회에는 임차인의 계약 갱신 청구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2년째 처리되지 않고 있다.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을 번다는 ‘갓물주’들이 법과 제도의 허점을 노려 임차인을 울리는 한국 사회는 ‘갑과 을의 상생(相生)’을 말할 자격이 없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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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립대들은 같은 주 출신 학생과 다른 주에서 온 학생의 등록금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작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에서 캘리포니아 출신 학생은 1만4000달러의 학비를 냈지만, 다른 주 출신자는 4만2000달러를 부담했다. 미국 대학정보 사이트 ‘칼리지 보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미국 주립대들은 같은 주 학생에게는 평균 9970달러, 다른 주 출신 학생에게는 2만5620달러의 학비를 받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자체 격인 각 주정부의 대학교육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공약들이 발표됐다. 지역이 당면한 문제가 많겠지만, 그중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어려움으로 ‘인재 유출’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이번 6·13 지방선거를 계기로 찾아보는 것을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의 대다수 지역은 인재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발전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인재 공동화(空洞化) 증상을 앓고 있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의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지역 대학들이 우수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어야 그 지역의 인재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인재를 수도권 등 다른 곳으로 빼앗기지 않을 전략을 세워야 할 텐데, 주요 정당과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공약들을 뒤져봐도 대학교육 지원과 관련된 공약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여러 후보나 정당들 입장에서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50% 정도의 낮은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각 지자체가 초·중등교육까지는 여러 지원을 하고 있지만, 고등교육인 대학교육 지원은 모두 중앙정부의 일로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정부의 대학교육 지원을 맡고 있는 한국장학재단은 ‘국가장학금’으로 불리는 소득연계 장학금 등을 통해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 재단은 2010년부터 전국 지자체들과 협약하여 학자금대출 이자를 지원하고 있다. 광역 지자체 14곳과 기초 지자체 21곳 등이 참여하여 지난해까지 총 33만여명을 대상으로 학자금대출 이자 212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들 역시 소극적인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6·13 지방선거 이후 지방분권 강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기에 특히 시·도 수준의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자체장들을 중심으로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에서의 대학교육 지원에 나서기를 강력히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미국 주정부의 대학교육 지원을 벤치마킹해 현재 우리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제도와 시너지를 마련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등록금의 절반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학생이 출신 지역 대학에 진학한다면 지자체의 추가 지원을 받아서 아주 적은 학비만을 부담하게 되는 구조를 검토해보자. 우리 지자체가 대학교육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선다면, 지역의 인재들이 그 지역에 남을 확률이 높아지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 이는 우수한 인재를 수도권에 빼앗기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대학들을 건강하게 하는 계기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재정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겠지만 지역 인재에 투자한 결과는 반드시 그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우선은 지방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도 재정 확보를 통해 장기적으로 시행하면 된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치(協治) 구조로 대학교육을 지원해 나간다면, 대학생이 필요한 부분을 적시에 완벽하게 지원하는 ‘완전 등록금 장학지원(Whole care system)’과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지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안양옥 |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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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2차 대규모 집회가 지난 9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지난달 19일 1차 집회 때보다 참가자(주최 측 추산 3만여명)가 더 늘어났고, 일부 참가자들은 삭발을 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불편한 용기’ 주최로 혜화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남자에겐 화장실, 여자에겐 불법촬영장’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 “여성 유죄, 남성 무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편한 용기’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불법촬영 및 유포행위를 보다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사법부에 요구하는 한편 현재 계류 중인 불법촬영 관련 법안을 신속히 입법할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기업 내 여성 고용 50%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남녀 임금격차를 공개하는 법과 성별에 따른 차별임금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하라는 요구도 내놨다. 집회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불평등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대우하고 있으며, 여성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여성들의 주장은 불법촬영 수사만이 아니라 고용, 임금을 포함한 모든 일상을 통해 각성되고 집약된 것이다. 불법촬영 수사는 차별감이라는 화약고에 던진 성냥불이었을 뿐이다.

지난달 19일 집회 이후에 두번째 대규모 집회를 연 이유는 정부의 대응이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대상 범죄를 중대범죄로 다루는 ‘인식의 전환’을 언급했고, 경찰이 불법촬영물 집중 단속에 나섰지만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권력기관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 3일 여성 8명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자 대학생에게 법원이 “짧은 치마로 보이지 않고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것 같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도 기름을 부었다. 집회 성명에서 ‘남성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을 파면하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남성중심의 권력기관이 성평등 문제를 해결할 리가 없다는 근원적인 불신감의 표출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 문제는 이제 북핵 문제나 사회경제적 쟁점 못지않게 폭발력이 큰 의제가 됐다. 여성들에게는 북한 핵보다 불법촬영이 더 위협적인 일상의 공포다. 적당히 관리하는 선에서 무마하려는 태도는 더 큰 분노를 살 뿐이다.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의 외침을 깊게 듣고 새겨 근본적인 변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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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일 이틀간 실시한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결과 전국 평균 투표 참여율이 20.14%로 집계됐다. 4년 전 지방선거 때보다 8.65%포인트 높고, 지난해 19대 대선 사전투표율 26.06%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다는 당초 우려와 달리 많은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낮다. 후보자들의 신상 정보와 공약은 물론 출마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유권자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사전투표 열기를 본투표로 연결시키는 정치권의 노력과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선거 막판에 이르면서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7일 YTN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일자리 있는 사람은 서울로 가지만)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지방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인천으로 온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혼 한번 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고 말했다. 인천과 부천 시민들을 이류시민으로 폄훼하는 망언이다. 정 의원은 대변인에서 물러났지만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당이 10일 윤리위원회를 소집하자 서둘러 탈당한 것도 당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후보자 간 비방과 검증을 빙자한 네거티브 공방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당 김문수,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상대 후보를 찍으면 여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비전과 정책으로 지지를 호소하기는커녕 시민의 선택을 정치공학적 시선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실망스럽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의 여배우 스캔들 의혹을 둔 공방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검증이 중요하다지만 후보들이 그것밖에 따지고 짚은 게 없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유권자의 합리적 사고와 시민의 삶을 결정할 중요한 정책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다. 종국에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부른다. 이런 일을 정치의 중심인 정당과 그 소속 후보들이 주도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배신이나 마찬가지다. 정당과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자중하고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거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유권자들도 막판 선거 혼탁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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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법원장 35명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지난 7일 간담회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에 대해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특별조사단의 결론을 존중하며, 사법부에서 고발·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장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의 문제에 공동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이다. 자중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처지에, 형사조치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나서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사법 신뢰가 더 추락하든 말든 자신들을 포함한 고위법관들만 보신(保身)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안이한 인식, 법 위에 존재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회 회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박광연 기자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재판거래 의혹 제기에 대해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단정 지은 부분이다. 의혹이 제기된 사건 가운데 일부는 문건 작성 시점과 재판 결과 등에 비춰볼 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짙다. 대표적 사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이다. 2015년 2월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을 인정한 항소심 이후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의 ‘전원합의체 회부’ 의중을 파악하고, 증거능력 인정 여부 등 핵심 쟁점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했다. 사건은 이후 전원합의체에 회부됐으며, 대법관 13명은 전원일치로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원심을 파기했다. 문건 내용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사건, 발레오만도 노조 조직형태 변경 사건도 마찬가지다. ‘재판거래 의혹에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법원장들의 주장이야말로 합리적이지 않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가운데)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15년 7월 대선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와 자리에 앉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일선 판사들은 연일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법원노조 지부장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법학전문대학원생 300여명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전국의 변호사들은 오는 11일 시국선언을 할 예정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진상규명 조치를 요구하는 진정을 유엔에 제기했다. 사법부의 ‘초엘리트’라는 법원장들만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8일 사태 수습 방안과 관련해 “원칙적으로 법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심은 이해하나, 사법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김 대법원장은 11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민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사법의 권위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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