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고독이 자리 잡는 새벽,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보려던 영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선택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영화는 비극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자신의 병세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장의 생활비가 급하기에 구직 수당을 신청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탓에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을 이끌고 구직 활동을 증명하는 일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결국 그는 질병 수당 재심사 소송을 앞두고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울었다. 익숙한 결핍과 죽음이었다. 지하 월세방에 살던 송파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했던 일, 그리고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남 저수지로 뛰어든 두 모녀의 일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관료적인 복지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순간 가장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복지가 비어 있는 자리에 찾아온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컴퓨터를 다룰 수 없을 때 옆집 청년은 다니엘을 도왔고, 그는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미혼모 가정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식료품 지원소로 데려갔다. 그 어떤 복지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의 존엄성을 마침내 사람이 지켜낸 순간이었다. 복지는 제 발로 어려운 사람을 향해 찾아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이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며 환대할 줄 아는 사람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연대의 경험을 어디서 쌓아나갈 수 있는 걸까. 또 서로 환대하는 문화를 어디서 배워나갈 수 있는 걸까. 혼자이길 자처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혼자 밥을 먹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1코노미’의 시대가 열렸다. 이를 뒷받침하듯 서점 진열대에는 고독에 대한 예찬과 조직 안에서 지친 이들을 응원하는 글로 가득하다. 혹자는 이러한 경향을 공동체의 붕괴라며 우려하기도 하지만 이는 존중과 배려가 없는 공동체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에 불과하다. 인권과 다양성의 측면에서 평등과 존중을 받고 타인을 대해본 경험이 축적되어야 우리는 관계안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안전망은 관계가 시작이다.

때로 혼자는 불안하다. 갑자기 큰 사고가 일어나면 어쩌나 싶다. 그때마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으로부터 모든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당장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수입이 불안정할 노후를 위해 연금보험은 물론이거니와 질병과 화재사고, 교통사고에 대비해 각종 보험을 가입하는 일에 익숙해져왔다.

그런 당신을 위해 오늘은 그간 알고 있던 색다른 보험을 추천할까 한다. 돈보다 관계의 가치를 우선하고 싶다면 더욱 그렇다. 부당노동행위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노동조합을, 높은 보증금과 월세로 걱정이 될 때면 주택협동조합을, 어쩔 수 없이 대출이 필요할 때면 대안은행을, 과잉진료를 피해 건강을 챙기고 싶을 때면 의료협동조합에 가입을 해볼 것. 내가 바꿔내고 싶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에 후원할 것을. 단언컨대 이것이 그 어떤 보험보다도 확실하게 내 삶을 보장하는 일이며 가장 쉽게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 약속한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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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6년 만에 장마에 겹쳐 겪게 될 태풍 쁘라삐룬, 이름처럼 낯설고 두렵다. 아파트를 벗어나 처음 살아보는 옥상집에서 겪게 될 태풍이라 더 겁난다.

엊그제 녹색연합에서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감사를 청구했다. 원시림과 다양한 생태가 사는 숲을 누가 어떤 과정으로 스키장을 만들게 되었는지 종합적으로 검증해 달라는 요청이다. 1561m 높이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장으로 쓰이느라 천년원시림이 갈가리 찢겼다. 며칠 반짝 화려했던 스키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토사와 돌무더기가 리프트 승강장 주변까지 밀려 내려왔다. 이 태풍에 스키라인을 타고 그 돌들이 마을로 굴러 내려오지는 않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난 6월13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었다. 압도적으로 여당이 승리하였다. 축배를 들 시간도 없이 태풍소식에 몇몇 자치단체장은 오늘(7월2일) 있을 취임식도 생략한 채 태풍대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다행이긴 한데 유권자들은 압승에 상응할 압도적인 공약을 기다렸다. 당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의 성공이다.

일본을 보면 우리의 10년 후가 보인다고 한다. 전후 오랫동안 고도성장으로 번영을 누린 일본인들은 성장이 아닌 사회를 알지 못했다. 우리도 그러하다. 여전히 성장론, 발전론에 근거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모든 개발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곳이 있었던가. 미세먼지의 공포, 고용 없는 성장, 생산인구 감소, 출산율 급감, 급격한 고령화, 고독사회의 한가운데서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정치의 대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공약은 뒷전이고 정당만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르포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후지요시 마사하루(藤吉雅春)는 어떤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솔깃하였다. 노동자 세대 실수입이 도쿄를 여유있게 제쳐버린 촌마을이 있다니 어딜까. 르포작가답게 취재를 했더니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명당 서점 숫자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노인과 아동 빈곤율 및 실업률은 가장 낮은 마을. 게다가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인 일본의 후쿠이현을 취재하였다. 우리나라 구미만 한 크기로 세계 3대 안경 산지 정도로 알려진 후쿠이현은 일본 내 행복도 평가에서도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지역이다.

<이토록 멋진 마을,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에 따르면 후쿠이현은 ‘일본 내 유럽’이다. 독보적으로 진화해온 후쿠이현이 자랑하는 제조업 대다수는 그저 그런 사양산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이에는 세계 1위 제품 및 기술이 14개, 일본 내 1위가 51개나 있다. 이런 ‘사양산업판 실리콘밸리’를 만든 원동력은 산학협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우리네 지자체도 산학협력을 표방하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후쿠이를 진짜 행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일등공신은 바로 교육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200% 동의한다. 내리 4선을 기록한 후쿠이 시장은 ‘10년 앞을 내다본 수업’을 기초로 삼아 독자적인 학습법을 구축해왔다. 대학입시에 맞춘 수업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고, 잘하는 학생이 조금 못하는 친구를 도와 함께 공부했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했고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하였다. 그래서 후쿠이 출신들은 취업률도 좋지만 이직률도 가장 낮았다.

이런 교육 덕분에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과 일을 그만둬야 하는 노인들을 찾아볼 수 없다. 여성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아이들을 마을이 함께 돌봤다. 시계톱니바퀴처럼 크고 작은 톱니들이 맞물리며 서로가 마을을 지탱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게다가 지역민들 서로 간의 애착 이상으로 외지인을 배척하는 문화 또한 없다. 누구와도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혜를 자연스레 습득했기 때문이다. 

인구 늘려 보겠다고 ‘결혼 안 하면 죄책감’ 느끼게 하겠다는 모 도지사에게 아연실색한다. 도지사가 결정하면 도민은 따르는 존재인가? 대단한 시대착오,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강원도 정선 마을에 후쿠이 같은 지방정부가, 후쿠이 같은 공동체가 있었더라면 평창 아니라 더한 것이 와도 지금 같은 참상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태풍 속에서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은 어떻게 지낼지 그 심란한 마음 한 조각을 새기고 싶다. 가리왕산도 북한의 민둥산도 험한 태풍에 잘 견뎌내길 함께 빌어보자. 이제는 유권자와 당선자가 머리를 맞대 함께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지속 가능, 그 안에서 싹튼다.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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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에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 평화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판문점선언 직후인 5월31일을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회담과 군사당국자회담이 열리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식목사업, 체육 교류 등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 보건의료 고위급회담이다. 이 시점에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어디 있으랴만 남북한 주민의 건강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금요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주관한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발전방향 심포지엄’에서는 놀랄 만한 남북한 보건 문제들이 발표되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 주민 중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95.6명에 달할 뿐 아니라 그중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57.1%나 되고, 결핵 신고 환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펀드의 지원 중단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이는 말라리아도 마찬가지다. 또한 홍역과 같은 질병의 유행도 예상되어 조기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감염성 질환 문제만이 아니다. 박상민 서울대 의대 교수는 북한이 높은 질병 부담에도 불구하고 경제 제재 등으로 보건의료 원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이 되고 있다고 했다. 충분한 기초 약제, 장비를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잠재역량이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질병 부담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한반도의 큰 짐으로 남을 것이다.

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새롭게 공개한 북한의 환경 문제 역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일부 남한보다 좋은 환경지표도 있지만 북한의 환경 문제도 도긴개긴이다. 특히 실내공기 오염, 공장지대 대기·수질 오염은 준재난적 상황이며, 남한 주민의 고통인 미세먼지 문제 역시 남북의 공조가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혜원 서울의료원 교수의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어제와 오늘’에 따르면 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은 고장 난 시계처럼 너무 오래 멈추어 있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 부문 고위당국자 회담이 시급히 열려야 한다. 일찍이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 당국자들은 우선적으로, 남북한 ‘감염병 유행과 재난 대비 핫라인’을 설치하고, 결핵·말라리아·홍역·조류독감·구제역 등 감염병 유행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또한 추진하다 중단된 어린이 예방접종 사업, 모자보건 사업 등 보건의료 부문 협력사업 재개도 다루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내 보건의료 담당부서 설치와 재난 대응 공조체계 구축도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교류 활성화에 따른 보건협정 체결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 보건의료협정에는 △남북 간 보건의료 정보 교환방식 △공동방역 협조체계 구축 방향 △상호 왕래자에 대한 의료편의 제공 방식 △남북 보건의료 전문기관 간 교류와 협력방안 △재난이나 응급의료 수요 발생 시 공동 협력방안 △보건의료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공동보조 및 협력에 관한 내용 등을 포함해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가장 안정적인 통로’이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또한 보건의료 부문이 가장 먼저 ‘안전한 길’을 내는 선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돈만 앞서는 남북교류가 되지 않도록 보건의료 부문이 번영과 사회안전망이 함께 달리는 두 개의 레일전략(Two rails strategy)의 견고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

북상 중인 장마전선이 중부지방까지 올라왔다. 평화의 시대가 시작된 만큼, 남북의 공조를 통해 이번만큼은 한반도에서 홍수 피해를 입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른 어떤 문제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양 부족과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린이들과 환자들을 먼저 살려야 한다. 우리가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신영전 | 한양의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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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제가 시행됐다. 지난 2월 말 개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으로 제한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2004년 도입한 주 5일제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삶과 직장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하며 주 52시간 노동제에 그나마 적응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300인 이상 3627개 사업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59%가 주 52시간 노동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견기업들은 아직까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주 52시간 노동제가 안착되지 못한 것은 법 시행 직전에야 부랴부랴 ‘땜질식 대책’을 쏟아낸 정부의 준비 부족과 안이한 대처 탓이 크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주 52시간 가이드라인을 시행 2주 전에 내놓은 데다 노동시간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최장 6개월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시정기간을 주기로 했다. 게다가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확대 방안과 유연근로제 매뉴얼을 지난달 26일에야 공개했다.

특히 최대쟁점으로 부각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현재는 2주 또는 3개월)을 늘리는 문제를 놓고도 당정 간 이견이 노출돼 혼선을 빚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탄력근로제 활용 기업은 3.4%에 불과한 데다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면 노동시간 단축 의미가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동부는 또 게임·IT 업계의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오·남용을 규제하겠다고 밝혀 “노동시간 단축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과 자기계발이 가능해졌다고 반기고 있지만 노동강도가 높아지거나 실질소득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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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7기 지방정부를 이끌어갈 단체장과 광역·기초의회 의원 임기가 1일 시작되면서 의회 구성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할지 우려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지역에서는 집안싸움이 한창이다. 반면 민주당이 원내에 다수 진출한 영남지역에서는 근소하게 우위를 점한 한국당의 독점 욕심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방의회 의석 편중에 따른 부작용은 예견된 바이다. 6·13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광역의회에서 다수당이 됐다. 서울시의회 110석 중 102석, 경기도의회 129석 중 128석을 차지했다. 민주당 소속의 광역단체장도 17명 가운데 14명이고, 그들을 감시 견제할 의회까지 민주당 일색이다. 민주당을 제외하고는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당이 없어 지방정부 견제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반면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독식을 노리고 있다.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한 민주당에 상임위원장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당 후보를 뽑은 민심을 거스르는 일이다. 지방의회가 지방 정부를 견제하지 못할 때 주민이익이 어떻게 무시되는지는 지방자치 6기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일방통행식 도정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전체 55의석 중 새누리당이 50석이었던 경남도의회는 학교급식 중단 등 철저히 홍 지사의 거수기 노릇을 하다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민주당이라고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유권자의 표심을 반영한 결과라 해도 지방의회 독식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소수당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원구성 방안을 찾아야 한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의석이 모자라는 소수정파 의원들도 의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할 필요가 있다. 상임위원장과 같은 의회직을 소수당에 배분해 지방정부를 최대한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부적절한 인사를 다수의 힘으로 요직에 앉히는 횡포를 막아야 한다. 문제 인물보다는 소수정파라도 유능하다면 기회를 주는 것이 지방자치 취지에 부합한다. 의회가 지방정부를 사사건건 발목 잡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도지사를 감시·견제하지 않고 그들과 짬짜미를 하는 것은 더 큰 병폐이다. 그 손해와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몫이다. 민주적인 의회 구성과 운영으로 지방의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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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자영업에 종사한 지 만 12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첫 직장이었던 언론사 기자로 일을 한 것과 엇비슷한 시간이다. 직장인 시절 내 팔자가 이쪽 방면으로 풀려나갈 줄은 몰랐다. 하긴 내가 캐나다에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새로운 직업, 그것도 외국에 살러와서 장사라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다보니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일들이 여럿 있었다. 무엇보다 자영업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이 참 많았다.

첫째는 장사를 하면 돈을 잘 벌 것이라는 선입견. 월급쟁이 시절, 때만 되면 통장에 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시 자영업 종사자를 어쩌다 만나면 그들이 주로 밥값을 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돈을 잘 벌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많든 적든 주머니에 현금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은 내가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장사를 시작한 직후에는 하루 매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러다 망하는 게 아닌가’ 싶어 밤잠을 설쳤다. 내성이 생기기는 했으나 장사가 안되는 날이면 요즘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다.

둘째는 시간. 내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조직에 매인 몸이 아니니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12년 넘게 저녁 없는 삶은 물론 아침까지 없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래야 자투리 시간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일요일과 공휴일에 쉴 수 있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옷 가게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서울의 우리가 살던 아파트 옆 작은 슈퍼마켓 주인아저씨를 생각한다. 그이는 새벽 2시까지 매일 문을 열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걸로만 알았지 얼마나 힘든 것인 줄은 몰랐다. 토론토에도 연중 크리스마스 하루만 쉬는 자영업자들이 허다하다.

셋째는 장사꾼의 거짓말이다. 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것이라고들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리이다. 전에는 나도 그 말을 믿었었다. 막상 장사를 하고 보니 밑지고 팔 때도 있다. 옷이고 가방이고 원가로도 나가지 않으면 밑지고 팔아치울 수밖에 없다. 공간을 확보해야 돈 되는 것을 갖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본전이라도 챙기겠다며 마냥 움켜쥐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

장사꾼으로서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도 때로 거짓말을 한다. 천연덕스럽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이를테면 여자 손님이 옷을 입어보고 “어때?” 하고 물으면 무조건 “예쁘다”고 말한다. 내가 파는 물건은 모두 예뻐보이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손님이 옷이 좀 작아서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거 두세 번 입으면 늘어난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거 한두 번 빨면 작아진다”고 말한다. 나도 놀랄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물건을 뒤에서 가져오면서 이렇게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거 단골손님이 요청해서 하나 빼놓은 건데, 너한테 그냥 먼저 줄게.” 특별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면 손님은 기분좋게 믿어준다. 사실은 단골이 주문한 것이 아니라, 단골에게 권하면 살 것 같아서 따로 둔 물건이었다.

과거 월급쟁이 시절에는 장사가 쉽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참 많이도 보인다. 장사꾼들에게 장사 잘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좋은 건물주를 만나는 일이다. 토론토에서 갑질이 심한 건물주는 ‘애니멀’이라 불린다. 터무니없이 구는 건물주는 호랑이만큼이나 무섭다. 그런 건물주를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요즘 장사꾼들이다. 건물주가 갑질을 하면 잠 못 이룬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고 캐나다고 똑같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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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에 들어가면

옥수수밭이 되고 싶어요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졌어

 

아가야, 옥수수밭에

들어가보렴!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어보렴

 

너풀거리는 이파리는

소낙비와 마주하는 7월의

검푸른 영혼일 거야

김명수(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가는 때이다. 7월의 옥수수밭에 가봐야겠다. 옥수수는 치아를 꽉 깨물고 커가고 있을 것이다. 웃을 때에는 튼튼하고 하얀 치아가 잘 드러날 것이다.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고 싶다. 점점 커가는 옥수숫대는 장수처럼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하던가.

바람이 불어올 때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 이파리들이 서걱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옥수수밭을 지나가는 바람을 ‘옥수수바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박용래 시인이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에서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이라고 썼듯이. 옥수수밭에 들어간 바람은 옥수수의 몸놀림과 옥수수의 소리를 내기도 할 것이다. 이승훈 시인이 ‘바람’이라는 시에서 “풀밭에서는/ 풀들의 몸놀림을 한다./ 나뭇가지를 지날 적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낸다”고 썼듯이.

7월에는 날이 불 땐 솥처럼 더욱 더 뜨거워지겠지만 푸른 옥수수밭 생각하면 설레고 청량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너풀거리는 옥수수 이파리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를 떠올리면 갑갑하던 가슴이 풀려서 후련해지기도 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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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핍박받는 이방인을 돕는 걸 자랑스러워했던 아테네인들도 오이디푸스가 변방의 마을 콜로노스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당장 이 나라를 떠나시오. 그대가 우리 도시에 큰 짐을 지우기 전에 말이오.” 오이디푸스에 대한 끔찍한 소문을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테네인들은 재앙에 대해 오이디푸스한테 직접 들은 후에는 그를 받아들였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다가가기를 주저하면서도 그를 보호할 용기를 낸 지도자 테세우스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 또한 한때 ‘이방인’이었으며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한낱 ‘인간’이라고 했다. 이방인을 환대한 주인은 어제 이방인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며, 내일 다시 이방인일 수 있음을 인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개인사처럼 고백한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다. 모든 주인은 한때 손님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정적으로 이방인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방인을 배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일이라는 것.

하지만 한 도시가 이런 풍습으로 높은 평판을 얻었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드문 일인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칭송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리는 이방인은 천사일 수 있지만 강도일 수도 있다. 상황이 확실치 않다면 문을 닫아 거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가 미지의 존재에 대해 희망보다 공포를 크게 느끼도록 진화해온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존재의 밑바닥에서는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경고한다. 문을 함부로 열면 살해될 수 있다고.

그런데도 우리 안의 테세우스는 왜 주저하면서도 용기를 내는가. 우리 존재의 높은 곳에서 또 하나의 경고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문을 닫아 걸면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또한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국에 자기 안의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우리 존재의 일부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프리모 레비가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가 인간절멸수용소인 이유를 가스실에서 찾지 않았다. 가스실로 가기 전 이미 수용자들은 인간 파괴를 겪는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는 사람, 그렇게 다른 사람에 비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유대인을 그런 상황 속으로 몬 독일인들도 마찬가지다. 유대인들을 화장터 땔감 정도로 보는 한에서 그들 역시 자기 안의 인간을 살해당한 사람들이다.

인간절멸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전 레비는 수용소가 비로소 죽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독일군이 환자들을 방치하고 떠난 곳에서 한 사람이 빵 조각을 나누자는 제안을 했을 때였다. 그 전까지 수용소의 불문율은 이런 것이었다. 우선 네 빵을 먹어라.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옆 사람 빵도 먹어라. 생존이 문제 되는 곳이니 윤리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이 말해주는 것은 여기가 사람이 죽는 곳, 즉 인간절멸 장소라는 사실이다. 결국에 이런 수용소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살려낸 것은 내 빵 한 조각을 떼어주는 행동이었다.

레비는 이 끔찍한 인간절멸수용소가 “이방인은 적이다”라는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우리 영혼 밑바닥에 대전제로서 이 문장이 자리 잡은 뒤 어느 순간 논리적 전개를 통해 죽음의 수용소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특정한 곳에 있던 특별한 시설이지만 그것을 낳은 문장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아주 흔한 반응이다. 드문 것은 이방인에게 빵 조각을 떼어주는 일이다. 유대인 난민들이 밀려왔을 때 그리고 독일이 그들을 처리할 것을 사실상 강요했을 때, 자기 빵 조각을 떼어주며 거기에 저항했던 유럽 국가도 덴마크와 불가리아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드문 행동에 ‘인간의 가능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일 가능성’이 달려 있다. 우리가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고 우리의 빵을 움켜쥐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존이 있지만 사유가 없고 개인이 있지만 인간이 없다. 나를 떠나 너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즉 내 안에 네 자리를 허용할 수 없다면, ‘일깨움’이라는 말도 불가능하고 ‘함께’라는 말도 불가능하다.

지금 제주에는 수만명이 죽어가는 전쟁통을 가까스로 탈출한 난민들이 와 있다. 불행한 것은 자신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보다 이들이 늦게 도착했다는 것. 이들이 오이디푸스처럼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가 아테네이고 우리가 테세우스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머지않아 위장 난민 여부에 대해 심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심사를 통해 우리도, 이 나라도 심사받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500명 앞에 선 5000만명. 우리의 사유와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이 0.001%를 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를 포기하면 안 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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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에 ‘문어농부(問於農夫)’라는 말이 있다. 세종은 재위 7년이 되던 1425년 7월, 가뭄이 극심해지자 벼농사 형편을 보기 위해 호위군관 한 명만을 거느리고 서문 밖을 나섰다. 실제 민생현장을 둘러보니 상황은 궁궐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세종은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問於農夫). 궁궐로 돌아온 세종은 “금년 벼농사는 모두들 ‘꽤 잘되었다’고 말하였지만, 오늘 다녀와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세종은 직접 현장을 다니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경청했다. 이처럼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행정’은 과거부터 중요한 국정운영의 방법이었다.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행정 운영은 무엇보다 국민이 있는 현장과 밀접해야 한다. 우리는 현장을 도외시한 정책이 ‘탁상공론’이 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은 눈가림식의 대증요법에 그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특권의식 없기로 유명한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민감한 정책 문제에 대해 스스럼없이 토론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은 국민이 원하는 바른 법률과 정책을 만들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정부는 더 자주 현장에 가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전국 10곳에 ‘현장노동청’을 열었는데, 17일 만에 6200여건의 상담·진정·제안이 들어왔다. 이때 들어온 제안의 66%가 정책에 반영했고 진정의 82%를 해결했다. 이러한 현장행정의 성과를 토대로 올해는 2기 현장노동청을 운영한다.

정부는 직접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컨대 아동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을 미성숙하다고 치부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당사자인 아동의 생각을 직접 듣고 존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28일, 전국의 초·중·고생 30여명을 초청하여 ‘아동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이들은 학교생활부터 교통, 환경문제까지 저마다의 생생하고 성숙한 목소리를 냈다. 이날은 필자가 그간 정책을 담당하며 생각하던 것과 아이들이 느끼는 것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한편, 좋은 정책과 서비스라도 다양한 사정으로 현장에서 국민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정부는 필요하다면 농민·자영업자 등 생업에 바쁜 분들이나 노인·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특허청이 수형자를 찾아가서 지식재산권 교육과 상담을 하는 사례, 충남 예산군이 농번기에 농민에게 민원서류를 배달하는 사례 등 찾아가는 현장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팬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이라고 한다. 멤버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활동뿐만 아니라 SNS와 개인방송으로 수요자인 팬들과 꾸준하게 소통해 온 덕분에 팬클럽 ‘아미’는 전 세계에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부의 행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수요자의 상황과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장을 확인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현장행정에 힘써야 한다. 최고의 정부가 되기 위해 ‘문어국민(問於國民)’ 하면서 조금씩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심보균 | 행정안전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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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나고 난 후에 복기하면서 반성을 한다.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평을 받은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도서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전 세계 도서전 감독들의 모임에 출장을 다녀온 터라 걱정이 많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볼로냐, 보고타, 예테보리, 프랑크푸르트, 델리, 파리, 이스탄불, 프라하, 바르샤바, 과달라하라, 타이페이 등 여러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열릴 서울의 도서전을 함께 걱정해 주었다. 도서전을 한 주 앞두고 출장 온 것으로 ‘가장 용감한 감독’에 비공식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용감한 감독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독자들과 출판사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 마련된 ‘여름, 첫 책’ 코너에서 관람객들이 피크닉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세계 각지의 도서전에서 온 감독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의 사정들도 모두 달랐고 배울 것들도 많았다. 테헤란 도서전의 200만 관객에서부터 예테보리 도서전의 10만 남짓한 관객까지 다양한 숫자의 관객들이 자국의 도서전을 찾는다. 물론, 도서전을 찾는 관객 숫자와 도서전 내용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각국 현황과 사정을 듣고 나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게 많았던 도서전은 관람객 숫자가 비교적 적은 예테보리였다. 스칸디나비아, 혹은 노르딕 지역에서 가장 큰 도서전인 예테보리 도서전은 도서관 사서 3명이 시작했다. 이 도서전은 관객 숫자가 아니라 다른 숫자로 기를 죽인다. 작년을 기준으로 400개의 세미나와 4000개의 이벤트가 있었고 2800명의 작가가 도서전을 찾았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세미나가 50개, 이벤트가 300개였다. 몰래 다녀간 작가들이 제법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 숫자는 초라하지 않을까?

서울국제도서전을 준비하면서, ‘세계 4대 도서전’을 꿈꾼다고 이야기했다. 관심을 받아보겠다는 얄팍한 수였지만 진지하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으고 싶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머릿속에 그린 것은 단순히 관객이 많이 찾는 도서전은 아니었다. 국제도서전은 나라 사이의 저작권 거래가 중요하기 때문에 출판사와 전문가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어린이 도서전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볼로냐 도서전에 아이들은 특별한 허락이 없다면 입장할 수 없다. 한번쯤 가 보아야 할 곳으로 출판인들 사이에 손꼽히는 런던 도서전은 전문가들의 바쁜 발길을 제외하면 고요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주말만 일반 관람객을 받는다. 물론, 파리, 이스탄불 등의 도서전은 문을 열기 전부터 문 앞에 가득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그 열기는 저작권 거래를 주로 하는 도서전들이 흉내 낼 수 없다. 과달라하라나 보고타의 도서전은 라틴 사람들의 기질에 맞게 예술 축제를 겸한다. 흥겨운 춤, 노래, 공연과 함께 열흘 정도의 긴 축제를 즐긴다. 내가 상상한 미래의 서울국제도서전은 우리의 조건과 특징을 담고 희망을 실현한 어떤 것이다.

우리의 조건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출판 대국이고 교육과 어린이 책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문학도 점차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출판에 대한 통제가 강하고, 일본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서전을 2년째 열지 못하고 있다. 경제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고 그에 따른 출판의 성장이 두드러진 아시아의 저작권 거래의 중심으로 우리 도서전을 성장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만 모인 조용한 도서전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독자들과 출판사가 한자리에서 여는 축제의 성격도 한층 강화하고 싶다. 수천개 출판사들 중에서 이번에 참여한 출판사 숫자는 10분의 1이 안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여하는 7000개 회사들 중에 독일 국내 출판사 숫자가 3500개나 된다. 더 큰 축제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분야와 책에서 시작한 콘텐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특징을 살린 축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거기에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 독자들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가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에 ‘변신’해서 올해 ‘확장’했다고 순진하게 내년을 낙관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이후는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기원은 구텐베르크가 활자로 책을 찍으면서 생겨난 도서 시장이다. 7000개의 참가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예테보리 도서전을 개최하는 스웨덴 전시회사는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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