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알면 세계가 바뀐다.”

도쿄의 오다이바섬에 위치한 미라이칸(정식 명칭 일본과학기술미래관)에 도착한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말이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가 운영하는 이 과학관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우리들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세 주제로 나뉜 상설 전시는 이러한 소개말을 잘 반영한다. 우주, 지구와 생명의 원리를 다루는 과학을 전시한 ‘세계를 탐구하다’, 전 지구에서 수집된 모니터링 정보를 체험할 수 있는 ‘지구와 연결되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다’가 그것이다. 미라이칸에서 과학은 세계와 미래로 가는 통로가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과학관은 실험 도구나 진귀한 동식물의 표본 등을 모으고 선보이는 곳에서, 각 국가의 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경쟁하는 곳으로, 그리고 과학을 만지고 느끼며 체험함으로써 교육하는 곳으로 변모해 왔다. 현대의 과학관은 과거의 조각들을 모으는 곳이자, 가장 앞서나간 현재를 보이는 곳이며, 미래를 앞당겨 체험하는 곳이다.

2001년 문을 연 미라이칸도 관람객의 ‘체험’을 중시한다. 나아가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시도한다. 관람객은 관람료를 지불하고 입장권을 받는 순간부터 질문을 받는다. 필자가 받은 입장권은 “사람은 왜 로봇을 만드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3층의 ‘미래를 만들다’ 전시장 곳곳에서도 전시물은 관람객에게 기술과 인간,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빼닮은 로봇으로 유명한 이시구로 히로시교수의 로봇들은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관람객은 생명체의 신경 회로를 모방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알터’를 마주한다. 외형적으로는 얼굴과 두 손만 인간의 형상을 하고, 금속 뼈대, 전기 회로와 전지가 모두 드러난 채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소 기괴한 움직임과 소리를 낸다. 또 여성의 모습으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복장을 한 ‘오토나로이드’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미리 입력된 알고리즘, 혹은 원격 조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시구로 교수의 로봇들은 관람객에게 기계장치가 인간과 같이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인간됨 혹은 인간과 같음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생각해보기를 요청한다.

50년 뒤 후손들로부터 도착한 다급한 메시지로 시작하는 ‘미래역산사고(Backward from the Future)’ 전시는 지구의 미래를 묻는다. 기후 변화, 물 부족, 언어 다양성 보존, 불평등과 가난 해소 등 지구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하나를 선택한 관람객은 지구의 수명을 늘리는 게임을 한다. 지구 수명을 단축하는 “장해” 점수는 피하고, 지구의 수명을 연장하는 “진보” 점수를 쌓을 수 있는 지구의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이 전시는 시점의 전환과 게임을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의 행동이 지구의 미래를 만드는 것임을 체험하도록 한다.

많은 관람객이 인상 깊은 전시로 꼽는 ‘노벨 Q’는 질문 자체가 전시의 대상이다. 관람객이 인생 동안 생각해보길 바라는 질문 하나를 제시해 달라는 과학관의 요청에 따라 미라이칸을 방문한 2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자필로 적은 질문들이 ‘Q’ 모양을 한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있다. 이들은 각양각색의 필체로 심오하거나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20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아브리코소프는 이렇게 묻는다. “왜 고양이는 항상 발로 떨어지는가?”

전시물을 통해 미라이칸은 관람객에게 ‘미래’를 묻는다. 그리고 미래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국의 과학관도 미래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은 ‘2030미래도시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에 변화할 가정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도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침대에 눕고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도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오래된 상상 속 미래가 이제 정말 실현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립중앙과학관은 2019년 개관을 목표로 가칭 ‘미래기술전시관’ 건립도 준비하고 있다. 전시 주제는 ‘4차산업 기술혁명으로 변화된 미래사회’. ‘미래 이해’ ‘미래 공감’ ‘미래 예측’ ‘미래 준비’의 순서로 연결된 스토리라인을 따라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으로 인해 변화될 미래 사회 모습을 ‘초연결, 초지능, 융합된 미래 일상생활을 구현’함으로써 제시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한 문화예술적 감성을 갖춘 새로운 인재상’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겠다는 계획이다.

미라이칸이 열린 미래를 제시하고자 했다면, 국립중앙과학관이 보여주고자 하는 미래는 닫혀있다.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전시관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이라고 이야기되는 몇몇 기술에 잠식당한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읊을 수 있게 된 기술들이 과연 ‘미래기술’인지도 의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중심에 기술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술이 주도하는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하고, 예측하고, 준비한다. 우리가 만들어 나갈 미래는 없다.

국립광주과학관의 과학문화전시를 담당하는 조숙경 책임연구원은 저서 <세계의 과학관>에서 “과학 박물관이야말로 미래를 만나는 곳이고 또 미래를 꿈꾸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래를 꿈꾸는 곳이 되려면 과학관은 관람객에게 열린 미래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답을 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닫힌 미래를 전시한 과학관에서는 그저 가까운 미래를 잠깐 만나볼 수 있을 뿐이다.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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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상상한다. 자주 불편해지는 몸 때문에 가뜩이나 없는 돈이 들숨 날숨마다 빠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의욕도 감각도 아이디어도 바닥난 지 오래고, 친구들과 마주 보고 웃고 떠드는 즐거움보다 찌푸린 얼굴로 독백하는 외로움으로 채워지는 미래를 떠올리다 보면, 노인 건물주들이 못 견디게 부러워진다.

큰 건물도 안 바란다. 2~3층짜리 작은 건물 제일 위층에 실거주하고, 다른 공간에는 세입자를 받아 임대료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취미 생활과 몸을 돌보는 여력을 가지는 노년이면 더 바랄 것 있을까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나는 아마 안될 거야. ‘재테크’는커녕 하루하루 생존으로 버거운 사람들이 대다수인 21세기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던 상상이나 마저 해보자. 내가 만약 건물주라면 물가상승률 이상의 월세 인상 따위 하지 않고, 입금을 확인할 때마다 세입자 있는 방향으로 절할 거다.

그저 내게 남는 공간을 빌려줬을 뿐인데, 그곳에서 ‘열일’하며 건물주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든든한 존재라니! 그뿐인가? 세입자의 감각적인 아이디어와 자본을 투여한 인테리어와 근면한 노동으로 불러들인 소비자들은 건물과 거리의 가치를 높인다.

그러나 많은 건물주들은 세입자 고마운 줄 모른다. 세입자들이 자신들이 높인 가치 때문에 있던 곳에서 쫓겨나는 역설에 직면하는 이유다. 물론 어떤 건물주들은 과도하고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며 공생을 도모하기도 하지만(그런 동네는 풍경만 봐도 정겹다), 너무 드문 일이라서 문제다. 대부분의 건물주는 내게 성악설을 믿게 한다.

가장 악질적인 건물주는 세입자 내쫓는 것을 목적으로 임대료를 대폭 올려, 쫓겨나는 세입자가 그나마 다른 곳에 새로이 정착할 수 있게끔 돕는 권리금마저 약탈하는 유형이다. 서촌 궁중족발의 건물주가 대표적이다. 그는 297만원이었던 월세를 1200만 원으로, 3000만원이었던 보증금을 1억원으로 올렸는데, 임대료 상승률이 급격했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것이 동네의 평균 시세를 훨씬 웃돌았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임대료 책정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는 일을 요원하게 하고,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로 쫓겨나면 권리금은 건물주의 몫으로 흡수된다. 이처럼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혈안이 된 궁중족발의 건물주는 약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입자를 강제로 쫓아내기 위해 온갖 폭력을 동원했다. 사장은 용역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내내 불안한 시간을 보냈고, 끝내 용역에 의해 끌려나오며 네 손가락이 절단됐다.

건물주는 그것을 보면서도 조롱하며 비웃었다. 그래서 궁중족발 사장이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한 소식을 접했을 때, ‘그러지는 마시지’라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오죽 억울하면 그랬을까’라는 이해가 교차했다.

이 사건으로 법의 모순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임대차 계약법을 고치자는 외침은 끊임없었지만, 개정안은 좀처럼 통과되지 않았다(건물주 국회의원들이 많아서 그런가?). 이번에야말로 국회는 임차인 보호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장기화하고, 환산보증금의 상한선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끼리의 공생을 북돋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안전망이 좀 더 튼튼해진다면 우리는 생존에 허덕이고 노년을 걱정하며 쫓기듯이 살지 않을 것이고, 무리해서 노후 대비용 부동산을 매입한 뒤 세입자의 고혈을 짜내어 부채를 갚는 행태도 드물어질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이전의 법 때문에 고통받은 이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궁중족발 사장이 둔기로 가한 폭력과 건물주가 오랜 기간 누적한 폭력을 각각 저울의 양쪽에 매달면, 나는 저울이 후자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궁중족발 건물주는 법이 자기편이라 믿었기에 당당하게 폭력을 행사했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며 비웃었다. 그동안 상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던 국회의원들이, 권력자들이 양심이 있다면, 책임감을 느낀다면 부디, 잘못된 법의 피해자의 고통과 불행을 경감시키는 데 힘을 보태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님도 탄원서 써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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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장래희망은 버스차장이었다. 당시 내 눈에 가장 멋져 보였던 존재가 바로 버스차장이었으니까. 뒷문에 매달려 오라이를 외치던, 전대에 손을 넣었다 빼는 것만으로 에누리 없이 정확하게 거스름돈을 꺼내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울고 있던 어린 나에게 버스표 두 장을 쥐여주며 건너편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던, 나의 영웅. 칸이 유난히 많던 묵직한 전대는 얼마나 위엄 있고 전문적이어 보이던지. 촤르르 착, 전대 속에서 벌어지던 마법과도 같은 기술과, 안 계시면 오라이, 버스를 움직이게 하던 궁극의 목소리를, 나는 정말이지 갖고 싶었다.

장래 버스차장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대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동전도 없고 전대도 없으니 호주머니 속에 콩이나 과일 씨 같은 것을 넣고, 촤르르 착, 오십원이요 삼십원이오. 그다음은 조금 난도가 높은 버스에 올라타기 기술. 이동을 시작한 버스 안쪽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으면서 도움닫기, 차문에 안정적으로 매달린 후 최종의 오라이. 그 기술을 연마하기에는 장롱만 한 게 없었다. 문짝 위쪽을 두 손으로 잡고 발을 굴러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올라, 비어져 나온 이불을 발로 꾹꾹 누르며, 오라이. 대문이며 방문이며 장롱이며 매달려 움직일 만한 문에는 다 올라타서, 목청 좋게 오라이. 그렇게 몇 개의 경첩을 망가뜨린 후, 나는 누구보다 멋진 버스차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중, 어쩌다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영화의 전체를 다 본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나이였지만, 우연히 보게 된 &lt;영자의 전성시대&gt;의 한 장면은 나를 극심한 공포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버스차장이 버스에서 떨어질 수도 있구나. 팔을 잃을 수도 있구나. 죽고 싶겠구나. 결국 저렇게 되겠구나. 원더우먼도 범접할 수 없었던 나의 실존하는 액션히어로 버스차장. 그 추락과 몰락. 영화는 영화일 뿐, 영자는 영자일 뿐, 하지만 영자는 버스차장, 버스차장 영자의 끔찍한 이야기, 도대체 저건 무슨 세상이냐. 무섭고 복잡했다. 다만, 버스차장은 내게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고, 되고 싶거나 닮고 싶은 존재도 아니었으므로, 더 이상 기술 따위는 연마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만 명확했다. 그리고 잊어야 했다. 꿈을 버리는 것을 넘어서 버스차장과의 완전한 결별. 외면하고 싶은 존재, 애초부터 없었던 존재. 버스차장은 사라지고 촤르르 착, 오라이만 남겼다. 그것은 이른 아침의 새소리나 먼 데서 들려오는 풍금소리 같은 것.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느냐고. 글쎄요, 어쩌다 보니, 그러게 말이어요. 대답도 아닌 대답을 해오면서 대략의 이유를 대왔다. 무언가를 찾아 나섰는데 헤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통해 새로운 근육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던가. 그저 누군가에게 밥을 해먹이고 싶었다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대답은 궁색해지고, 궁색해질수록 미궁에 빠졌다.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으며, 거기서 나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그래서 찬찬히 되감아 보았다. 식당을 오픈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던 시간과, 메뉴를 위해 요리를 배우던 시간과. 식당을 열겠다고 선언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그래 시작은 계란 프라이였지.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말했듯이, 그것이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십오년간 함께 살던 반려견이 죽었고, 늘 함께 있을 것이라 여겨 무심하게 방치해 두었던 순간들을 후회했고, 한동안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그러다 문득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내가 내민 계란 프라이를 맛있게 먹어주던 순간이 떠올랐고, 그렇게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도록 배려해준 심사가 눈물 나게 고마웠고, 그래서 불현듯 일어나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밥을 해먹여야겠다는 결심이 꼭 식당을 차리겠다는 방향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내 눈에 보인 단 하나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왜 미궁에 빠져 있는가. 누군가 내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어주면 위안이 되겠구나,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밥을 해 먹이면 더 큰 위안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다면서. 누군가는 일부러 찾아와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잘 먹었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해주는데. 그것으로 목표를 이룬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명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물음에 징징거리는 비겁한 자아가 대답한다. 이게 이런 일일 줄은 몰랐다고, 위안을 주고 위안이 되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위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그건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정말 몰랐다고.

오래전, 아무것도 모르고, 버스차장이 되겠다고 기술을 연마하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버스차장의 삶이 아니라, 묵직한 전대를 차고 승객의 승하차를 제어하는 사람, 그 전대를 화려한 손놀림으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 촤르르 착 오라이의 근사한 리듬을 획득한 사람, 만원버스 안에 사람들을 욱여넣으면서도 차문에 멋지게 매달릴 줄 아는 사람, 가끔은 곤란에 처한 어린아이에게 몇 장의 버스표나 사탕 같은 것을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매달린 차문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팔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재빨리 장래희망을 버리는 것으로 버스차장이었던 영자의 삶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삶이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는 삶. 과연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나인가.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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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가 깡통을 발로 툭툭 차고 다니자 행인들이 시끄럽다며 쏘아봤다. “나 이사하는 중이라오. 이삿짐 옮기는데 왜들 그러슈.” 참말 간소하게 사는구려. 알짜 땅에다 웅장한 건축물 짓고 사람 불러다 모ㅂ아 ‘사원, 성전’이라 부르고들 있다. 나는 반항심으로 길 떠나는 자들을 위한 ‘순례자학교’를 열었다. 며칠 전엔 순례자들과 동무해서 제주 섬을 걸었다. 예멘 난민을 초대해 농사일을 맡긴 동생의 허브올레 농장에도 갔었다. 올레길을 반기는 푸른 바다도 잠시. 폭우에 휩쓸려온 생활쓰레기가 해변에 수두룩. 혹시 돌고래가 플라스틱 가루며 비닐조각을 먹으면 어떡하지?

태평양 끝머리 하와이 섬. 돌고래의 또 다른 고향. 하와이만큼 꽃이 많이 피고 빽빽한 밀림을 유지하는 섬도 드물 것이다. 바닷가 모래밭엔 바다거북이 흔하지. 인파가 모인 곳엔 훌라춤 파티. 서핑도 하와이가 고향이다. 부서진 카누 조각을 붙들고 파도와 싸우던 청년이 있었지. 멋지게 일어서서 파도 굴을 빠져나오자 그 모습에 반한 인어공주. 청년의 손을 끌고 산호초 궁궐로 사라졌다지.

백인 침략자들은 하와이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를 못 쓰게 했다. 서핑과 훌라춤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선교사들이 그랬지. 영어를 익히면 앞잡이로 세우고, 음식 베풂인 제사상과 풍물놀이조차 금했지. 지금도 금지가 교리인 줄 알고 고분고분 눈치를 본다.

코아 나무로 만든 조그만 기타 우쿨렐레. 우쿠(벼룩)와 렐레(뛴다)가 합해진 말. 다른 해석도 있는데, 우쿠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지. 우쿨렐레를 퉁기며 ‘알로하 오에(사랑해요! 당신)’를 열창. 플루메리아 꽃으로 화환 ‘레이’를 만들어 목에 걸친 이들. 가수 박인희의 ‘알로하오에’를 듣다보면 하와이 수평선이 눈앞에 닿는 듯해.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여 떠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제주도와 하와이. 돌고래의 고향 섬. 과거엔 우리네 남도 섬들이 모두 폴리네시아의 커다란 서클로 연결되었으리라. 섬여행이 즐거운 여름이렷다. 누구나 알로하오에! 어디나 하와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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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 가운데 하나가 등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싸구려 잡화를 팔던 행상이다. 행상이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덩치의 두 배는 되는 등짐을 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학비를 벌던 앳된 대학생들은 이제 없는 듯하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 대학생들이 내 고향 마을 같은 촌구석까지 찾아다니며 행상을 하던 것도 서너 해가 절정이었다. 정말 대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처음 잡화 행상을 보았던 것도 방학 중이었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바지게보다 커다란 등짐을 지고 성큼 마당으로 들어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은 어른이 없었던 터라 등짐 행상은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잡화들-빨래집게, 옷걸이, 바구니, 바가지, 파리채 등등을 교묘하게 쌓고 엮고 매단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행상이 어느 집의 늙수그레한 가장이 아니라 앳된 대학생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채로울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겨우 한 명쯤 있을까 말까 할 만큼 대학생이 귀한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인 밤 마실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얻어 들었다. 내가 보았던 바로 그 대학생 행상들 중에 잡놈들이 있다는 거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돈 될 만한 걸 훔쳐가는 좀도둑 같은 녀석도 있고 대학생 행세를 하는 가짜도 있다는 거였다.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몹쓸 놈들, 썩을 놈들, 호랭이 물어갈 놈들 어쩌구 하며 탄식을 했고 그러면서 한 번씩 나를 힐끔거리기도 했는데 장차 저 녀석도 자라 그런 잡놈이 될 기미가 있는지 탐색이라도 하는 것 같아 괜히 열없고 섬뜩하기도 한 거였다. 나는 속으로 대학생 행상의 정체를 내 손으로 까발린 뒤 내게 씌워진 혐의를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뒤 여전히 무더운 한낮에 대학생 행상이 마당에 들어섰다. 그날은 어머니가 있었던 터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머니가 종종 내게 그러듯이 그 가짜 대학생에게 부지깽이를 휘두를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더운 날 무슨 고생이냐며 차가운 물을 한 그릇 가져다주고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남아도는 게 빨래집게였는데도 그걸 한 줄이나 사주고는 보냈다. 나는 그 행상이 뭐라도 집어가지 않을까 감시하며 눈을 부릅뜬 채 어머니의 이 모든 배신행위를 지켜보았다. 대학생 행상이 가고 난 뒤 나는 어머니를 힐난했다. 대학생 아닐 수도 있다면서? 그러자 어머니는 흔흔히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 아니면 어떠냐? 이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등짐 지고 다니는 젊은인데…….

여전히 입이 댓 발 나왔던 나는 마을 들머리 정자에 갔다가 거기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 행상을 보았다. 그이는 환히 웃으며 몇 살이냐, 몇 학년이냐, 방학숙제는 하고 있냐 시시콜콜 묻고는 안녕하세요를 영어로 해 봐라, 근의 공식을 말해봐라 등등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까지 하더니 앞날이 캄캄해도 용기를 잃으면 안된다는 식의 조언을 하며 알사탕 하나를 쥐여주고 떠나갔다. 어려운 질문 탓이 아니라 내가 그이를 환대하지 않았음에도 그이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해준 까닭에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낯선 사람의 환대를 받았음에도 내 마음은 불편했다. 그처럼 환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자책해서였으리라. 물론 그이가 어머니의 환대를 기억하고 내게 살갑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행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모르지 않았을 테고 가끔은 정말 냉대도 당해보았을 테고 모욕도 받았겠지. 그이에게 건네진 한 대접의 냉수는 그냥 냉수가 아니라 그 모든 의심과 편견을 넘어선 이해와 공감이 담긴 환대의 한 형식이었을 테고 어쩌면 그이 역시 마음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데리다가 언급했던 절대적 환대가 말처럼 쉬우리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환대하지 않는 사람 역시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함을.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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