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독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친박근혜계 핵심인사와 접촉하고, 국정 협조를 약속하는 별도 자료까지 건넸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양승태 회동은 이 같은 로비의 결과물일 공산이 크다. 양측의 유착 정황은 사법농단의 핵심인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짙게 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6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 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이 의원에게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할 테니 상고법원 설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 일원인 정호성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 간 독대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며칠 후 기획심의관을 이 의원 사무실에 보내 ‘사법한류를 통해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자료까지 전달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6일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이뤄진 ‘사법농단’ 때문에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가면을 쓰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박근혜·양승태 회동에 주목하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2015년 7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는 대법원이 심리 중이던 ‘발레오만도 노동조합 조직형태 변경 사건’이 등장한다. 문건은 이 사건의 결론에 따라 “향후 노동조합 운영방식 전반에 큰 파급력이 예상”된다고 썼다. 이 문건이 만들어진 직후 청와대 회동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조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높이려 만든 ‘산업별 노조’ 소속 지부·지회를 과거의 ‘기업별 노조’로 쉽게 전환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청와대와 (사전에)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동 성사를 위한 법원의 집요한 로비 행태에 비춰볼 때 그의 발언을 사실로 믿기는 어렵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 관련자들은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게 도리다. 검찰은 재판거래 의혹의 규명을 위해서라도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의 커넥션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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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업계가 낙찰률 인상을 통한 ‘공사비 정상화’와 ‘SOC 확대’를 정부와 정치권에 대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공공공사에서 제값을 받지 못해 적자 공사, 품질 저하, 안전사고 증대, 외국인 노동자 증가, 양질의 일자리 축소, 국민 생활 불편 등이 발생하고, 국가경제와 대외 경쟁력도 약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영리를 추구하는 건설업체들이야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지만, 행정부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동조하고 있다.

우선 건설업계의 ‘공사비가 낮아 적자 공사가 발생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최저가낙찰제가 도입되어 시행되던 2001년에는 등록된 종합건설업체 수가 1만1961개로 1994년(2651개)에 비해 급증했다. 2013년에는 1만921개까지 감소했지만, 2016년 1만1579개로 다시 증가했다. 적자 공사가 지속되었다면, 등록 업체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야 하지만, 정반대 현상을 보였다. 적자 공사에는 입·낙찰 시점까지의 입찰금액 산정 오류, 입찰자의 저가 및 덤핑 투찰, 시공 및 준공 단계의 추가 공사대금 미수령, 시공 오류, 부실 시공에 따른 재시공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따라서 낮은 공사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안전사고 역시 낮은 공사비 때문이 아니라, 시공단계에서의 안전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큰 원인이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안전과 품질, 건설노동자 고용 등을 모두 하도급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원도급업체에 책정해주는 공사비와 상관없이, 하도급업체에 고용된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안전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안전사고가 공사비와 관련되어 있다면, 2013년 10조원이 넘는 해외공사 적자가 발생했을 당시 해외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넘쳐났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 증가 또한 공사비가 낮아서가 아니다. 공사비는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기 때문에, 노임이 과소하게 책정될 가능성도 없고, 외국인 노동자 임금도 반영되지 않는다. 불법취업자 단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불법취업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저임금으로 차액 보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값싼 불법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을 묵인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 국민 혈세의 낭비를 막고, 비정상적인 건설산업 구조를 개선해야 할 책무가 있다. 따라서 건설업계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적자 공사 원인을 포함한 건설산업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부터 해야 한다. 공공공사비의 경우 입·낙찰 단계부터 하도급 구조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누수가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업계의 주장대로 공사비를 인상할 경우, 재정낭비만 가져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시급한 문제는 경쟁력과 효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낙찰가능한 금액으로 입찰해 최저가 하도급으로 내려오는 현재의 쥐어짜기 구조가 아니라, 적정임금을 반영한 시공 가능한 금액으로 입찰하고, 직접 시공하도록 상향식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공사비를 검증해, 재정낭비를 막을 수 있도록 원·하도급 내역서 등 관련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권오인 | 경제정의실천시민 연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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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선(善)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맹자의 성선설이다. 애초에는 착했는데 성장하면서 악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든지 인의예지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잠시라도 가엽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이 생기곤 하고,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몰래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수오지심은 사회가 정당하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근간이 된다. 우리가 흔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수오지심의 발현이다.

수오지심을 달리 표현하면 ‘창피한 줄 아는’ 마음이고 (불의를) ‘참을 수 있는’ 자세이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웃음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대고 놀리거나 조롱하는 이가 있다면 말려야 마땅하다. 쉽고 당연한 일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과 벨기에의 월드컵 경기에서, 공영방송 해설자는 자신의 반일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이를 “본능을 숨길 수 없었다”고 표현했다. 본능이라는 말로 양해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도 참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해설자의 덕목이다. “불편한 분이 계셨다니 주의하겠다”는 방송사의 어설픈 해명에서도 수오지심은 찾을 수 없다.

배우 정우성씨가 지난달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정씨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우리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난민의 인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다수의 축구팬들은 해설자의 흥분을 두둔하는 눈치다. 통쾌했다는 반응도 있다. 얄미운 일본이 졌으니 고소할 수도 있겠으나,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나아가 정당화하는 것은 ‘창피를 모르는’ 일이다. 혹자는 독일의 탈락을 조소하는 영국 언론을 들먹이기도 하지만, ‘더 선’이나 ‘데일리 메일’ 등의 신문들이 포르노나 진배없는 선정 대중지라는 사실은 무시한다. 공영방송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더 선’은 독일 탈락을 보도하면서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를 썼다. ‘고통’과 ‘기쁨’의 합성어로, ‘다른 이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쌤통 심리’로 번역될 만한 단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대중 스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스타를 욕망하면서도 그들의 몰락을 즐거워하는 이중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샤덴프로이데는 치유나 문제 해결로 연결되지 못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스미스의 지적처럼, 남의 불행을 즐기다가 남의 불행을 바라게 되고, 나아가 그 불행을 직접 유발하려는 의지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샤덴프로이데의 함정이다.

영·독관계나 한·일관계의 역사와 기억이 영국인과 한국인의 정서에 미묘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샤덴프로이데가 수오지심과 만날 때, 최소한 ‘창피한 줄은 알아야’ 한다. “쌤통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스포츠를 전쟁에 비유한다고 해서 전쟁의 윤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뻔뻔스러움을 솔직함이라 정당화하는 것도 창피를 모르는 일이다. 일본의 패배를 조롱하는 것을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심지어 항일정신으로 포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일본 시청자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반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런 지적에 “너 친일파냐?”라고 대꾸하거나 “착한 척 말라”라고 빈정대는 말을 참는 것이 ‘의’의 씨앗이라는 말로 족하다.

사실 ‘애국’이나 ‘민족’으로 ‘의로움’을 덮어버리는 경우는 상당히 잦다. ‘전 지구화’나 ‘다문화주의’ 같은 비교적 추상적인 개념도 평소에는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의미를 띠다가도 예를 들어 ‘반일 정서’와 만나면 심각한 균열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함의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정당한지, 의로운지 대개 인지하고 있고 세상은 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지만 그 신념의 토대가 튼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 국면에서는 그 인지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수오지심을 잃지 않고 발현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이유이다.

난민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요청한 유명 배우에게 “네가 예멘 난민들 데리고 살아라”라고 대꾸하는 것은 또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분쟁 지역의 고아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이야기하면 북한 어린이 복지에는 왜 무심하냐고 소리치고, 기업의 갑질을 고발하면 정치권의 적폐가 더 심각하다고 불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탈락에 감격하며 즐거워하는 해설자의 존재는 방송사의 수정 가능한 실수였다고 치자. 하지만 공영방송이 일본 축구의 패배를 조롱해도 괜찮다고 생각할뿐더러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이들의 존재는 수오지심이 사라져가는 현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수오지심이 없으면 ‘의’가 없고 ‘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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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제22조에 따르면 시·도의원을 뽑을 때 자치 시·구·군에 최소한 1명의 시·도의원은 배정해야 한다.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이라도 최소한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시·도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편차는 4대 1의 범위에서 인정되어왔다. 다만 이 기준은 지난 6월28일 새로운 헌법재판소 결정(2014헌마189)에 의하여 선거구 간의 인구 편차 기준이 최대 3대 1로 더욱 엄격하게 제시되었다. 이 때문에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의원 선거구 개편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새로운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와 효과를 분석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 언론에서 즐겨 쓰는 표현으로 ‘단독’의 느낌이 온다. 지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뤄진 시·도의원 선거구 가운데 기존 4대 1 기준을 중대하고 명백하게 위반한 지역이 있다.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가 그 주인공이다. 

대표적으로 인구가 적은 도서지역인 옹진군과 울릉군이 소재한 까닭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인구는 1만명이 조금 넘는다. 말하자면 경북의 도의원 선거구는 최대 인구 4만명을 넘어설 수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경북 도의원 선거구 중 4만명을 넘는 경우는 54개 지역구 중 30개가 넘는다. 인천광역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천 옹진군의 인구는 2만1000명이 조금 넘지만, 인천에서 8만4000명을 넘는 시의원 선거구도 절반이 넘는다.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 시·도의원 선거를 위헌이라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위헌적인 선거구 획정이 용인되어 왔을까? 예전 통계자료 확보가 여의치는 않지만 제7회 지방선거뿐 아니라 제5회와 제6회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해본다. 도대체 국회, 행정안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무엇을 한 것일까?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일단 진상규명은 언론계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공직선거법 제22조에서는 시·도의원 정수에 관한 원칙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을 준수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최대 인구편차 4대 1이라는 기준까지 충족할 방법이 경북과 인천에서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따라서 국회가 했어야 할 일은 공직선거법 제22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일이었는데, 올 초에 국회가 한 일은 공직선거법 제26조에 있는 선거구 획정 작업만 부랴부랴 한 것이다.

국회와 행정안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렇게 일을 그르치고 있는 동안 권력감시 역할을 다했어야 할 시민사회는 무엇을 했던가? 필자 역시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가장 주요한 원인은 선거구 획정 과정이 국회의 밀실협상으로 이뤄져온 관행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지도 않고 있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시·도의원 정수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2조뿐 아니라 선거구 획정에 관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전반적인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어차피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새로운 기준에 의하여 공직선거법 개정은 불가피해졌다. 표의 등가성 및 비례성을 증진하면서도, 지역 대표성을 적절하게 보장하기 위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 

더구나 농촌지역의 인구감소 경향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결정으로 인하여 경기도 연천군·경상남도 의령군·전라북도 장수군 등도 더 이상 1명의 시·도의원을 배출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론의 장이 필요한 셈이지만 국회와 정부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대안은 있겠지만 더 이상 국회와 정부가 선거법 논의를 독점하지 말고, 지역과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 지방선거는 부디 제대로 준비하자.

<김준우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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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가 탱크와 장갑차, 특전사 병력을 동원해 촛불집회 시민 진압 계획을 세웠다는 문건을 보면 이런 군에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맡겨두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여러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위수령 발령→계엄령 선포를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엄군으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특전사 1400명 등 무장병력 4800여명을 동원해 시민을 상대로 발포까지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또 국회가 위수령 폐지 법안을 추진할 것에 대비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제시하는가 하면 보도검열단과 언론대책반을 통한 언론통제 계획도 마련했다. 1979년 신군부가 권력장악을 위해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했던 만행이 떠오르며 절로 몸서리쳐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무사 문건이 작성된 지난해 3월 당시 태극기집회에는 ‘계엄령선포촉구범국민연합’이란 이름이 등장하고 “계엄령이 답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구호와 팻말이 난무했다. 계엄령 계획이 군을 넘어 권부 내 여러 곳과의 교감 아래 진행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문건이 누구의 지시로 작성돼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기무사는 댓글공작과 세월호 유가족 사찰, 시민단체를 사찰해 온 사실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 1년 동안 기무사 개혁 TF를 구성해 부단히 자정 노력을 벌이고 있다며 진정을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TF를 이끌고 있는 현 참모장(소장)은 세월호 사찰과 계엄령 검토 문건에도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니 무슨 개혁이 가능할 것이며, 무엇을 내놓는다고 한들 수긍하는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기무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다짐했지만, 악행은 끊임없이 되풀이돼왔다. 더 이상 기무사 스스로 개혁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해졌다. 지금 군에 고강도 적폐청산이 왜 필요한지 이유도 분명해졌다. 기무사는 당장 해체하거나 해체에 버금가는 대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무도한 계획을 세운 당시 군의 책임자와 관계자들을 모두 발본색원해 엄중처벌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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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한국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의료시스템도 붕괴하여 전염병도 돌았다. 하루는 정부군이 와서 사람을 끌고 갔고 하루는 반군이 나타나서 협조하지 않는 자를 죽였다. 도무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났다. 대사관 업무가 마비되어 비자 발급이 어려웠기에 이들은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중 무사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어느 나라의 작은 섬으로 무작정 향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나라였지만 동계,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유치한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나라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자신들을 내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나라는 난민법도 있는 인권국가가 아닌가. 실낱같은 희망을 지닌 한국인 500명이 인구 5000만명의 어느 나라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살려달라고.

한국인들은 순진했다. 그 나라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난민 신청자 3만3000여명 중 4%만을 받아들인(세계 190개국 평균은 30%) ‘난민에게 인색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 난민 인정을 기다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등장했다. ‘한국인을 절대로 난민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촛불시위가 곳곳에서 등장했고 인터넷에서는 한국인 500명을 난민 인정하면 자신들의 나라가 한순간에 ‘한국화’가 될 거라고 우려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개고기 먹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할지 끔찍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개도 먹는 사람들이 나중에 고양이도 먹지 않겠냐는 걱정이 넘쳐났다. 한국인들은 답답했다.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도 아니고 요즈음은 개식용이 많이 줄었다고 하소연한들 난민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한국사회의 나쁜 모습을 알려주기 바빴다. 선행학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이 공교육을 파괴할 것이고 부동산 투기에 환장한 그들이 노동의 성실함을 무시하는 풍토를 만들 것을 우려했다. 나이 한 살 차이도 구분하면서 사람 사이에 엄격한 상하관계를 구축하는 폐쇄적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겠냐는 분석도 있었다. 심지어 ‘자국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계란을 던지는 무례한 사람들’을 받아줄 수 없다는 댓글이 최고 추천을 받을 정도였다.

난민 자격심사에 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영향을 끼쳐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그 나라의 지식인들조차 자신들의 해외유학 경험을 증언하며 ‘한국인들이 사실 좀 그렇지’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언론은 한국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걸 마치 대단한 뉴스인 양 다뤘고 월급이 170만원인 일자리를 거절한 걸 중요한 사건처럼 보도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난민 주제에’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뱉었고 이와 비례하여 ‘한국인들은 진짜 난민이 아니다’라며 비난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난민은 노예가 아니지만, 난민에게도 의사결정권이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뉴스에 등장한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닙니다. 다만 안전을 원할 뿐입니다.”

부메랑이 되어 나중에 당해봐야 정신 차릴 거라는 순진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거야 자유다. 하지만 해괴망측한 논리를 표현의 자유랍시고 인정할 순 없다. 지금이 1978년이 아닌 2018년도라면 ‘아무 말 대잔치’를 해서는 안된다. 특정한 나라, 특정한 종교에 대한 혐오는 한국사회에서 성별, 세대별, 지역별, 직업별 차이 없이 드러난다. 이는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한국으로 오지 않는 게 누군가에는 더 존엄한 선택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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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은 바람이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다

나는 새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일찍이 바람을 가르는 스승의 높은 날개에서

사랑과 자유의 높이를 배웠다

 

나의 스승은 나무다

새들이 고요히 날아와 앉는 나무다

나는 일찍이 나무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을 견디는 스승의 푸른 잎새에서

인내와 감사의 깊이를 배웠다

 

자작이여

새가 날아오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고 말씀하신 자작나무여

나는 평생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했지만

새는 나의 스승이다

나는 새의 제자다

- 정호승(195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는 것은 없다. 바람과 새와 나무도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바람과 새는 높다. 푸른 하늘로 올라간다. 여름날 분수처럼 위로 세차게 솟는다. 산봉우리보다 구름보다 한층 높은 그 높이에서 지고(至高)한 사랑과 자유를 배운다. 나무는 굳고 단단하다. 새들도 날아와 조용히 의지한다. 그리고 나무는 홀로 견딘다. 모든 고통을 무릅쓰는 수행자처럼. 나무는 거센 폭풍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지처럼 견고한 나무로부터 깊이 뿌리내린 인내와 감사의 자세를 배운다. 바람과 새와 나무는 우리가 지어서 부르는 그 이름 이상이다. 그것 이상으로 높고 깊다. 오늘은 바람과 새와 나무를 생각하고, 그때에 먼 여름산을 한번 바라보자. 딛고 일어서는 여름산을 우러러보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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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편안하게 숙면을 취해야 할 침대에서 문제가 터졌다. 매일 사용하고 있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침대에서 왜 방사능이 나올까?” 무척 궁금할 것이다. 이는 서양식 주거문화 유입 등 아파트 생활문화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출혈경쟁이 심한 침대 제작 업계도 여기에 ‘건강’이라는 콘셉트를 접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가 되는 대진침대는 “숙면과 건강에 좋은 음이온 발생 침대”라 홍보하면서 방사성물질이 함유된 매트리스를 생산했다. 문제는 매트리스에 쓰는 천연석재(모나자이트)를 가루로 만들어 가공하는 과정에서 라돈이라는 방사성물질이 다량 나오게 되는 것이다.

5월 28일 서울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라돈침대 피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라돈침대’ 피해자가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지윤 기자

따라서 침구류뿐 아니라 건강을 빙자한 생활 속 유사 제품들도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라돈은 무색·무취·무미의 가스이므로 사람의 감각기관으로는 감지가 불가능하다. 불활성기체이므로 호흡을 통해 라돈가스를 흡입하면 심각한 폐질환을 유발한다.

원자력법은 우라늄광과 토륨광 등에 대한 사용 허가와 신고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방사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모나자이트 같은 세부 광물에 대해서는 규제 자체가 없다. 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2011년 서울 노원구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들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6월5일 “라돈 침대를 10년 정도 사용했다면 10만명 중 최대 2000명 폐암 사망 추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여 침대 사용자들에 대한 ‘건강영향평가’를 서둘러야 한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침대 공장 노동자, 방사능 원석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일했던 건설노동자, 운송과정에서 노출된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또 오래된 폐매트리스를 수거하여 다른 용도로 분해·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종사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노출도 조사해야 한다. 서둘러 수거하다보니 미처 챙기지 못한 전국 1만8000명의 집배원 노동자들의 건강검진도 이뤄져야 한다.

라돈 침대 사태를 계기로, 대기나 수질 등 환경이 오염됐을 때 피해를 본 사람들을 지칭하는 ‘환경오염 위험인구’의 항목에 ‘유해한 생활용품 사용자’도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 유독 폐질환 환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곱씹어 봐야 한다. 아울러 석면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라돈 침대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환경성 질환 발생 즉시 피해자 현황을 파악하고 상담해주는 ‘생활환경 독성물질 예방센터’ 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엄청난 사태를 발생시킨 기업에 무한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종국 | 경실련 시민안전감시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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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다소 깨는 이름의 이 떠돌이 책방은 다섯 마리 고양이가 운영하는 이동책방이다. 캣왕성이라는 행성에서 지구로 온 달눈, 몬드, 라옹, 들레, 팡이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간절함을 안고 머나먼 태양계의 지구로 날아와 트럭을 개조해서 책을 싣고 떠돌아다닌다. 과연 어떤 사연일까.

캣왕성은 지구와 같은 은하계의 작은 행성이다. 원래는 아폴라라는 큰 별의 일부였지만 대폭발로 떨어져나간 파편 일부가 수억 년이 지나 다시 뭉쳐졌다. 우주 유랑자 유니콘 무리가 우연히 이 신생별에 쉬러 왔다 집단 배뇨를 하고 떠났는데 그 물에서 생명이 잉태되었다. 생명은 점점 복잡화되면서 유니콘에서 뿔과 발굽이 떨어져나가고 눈이 커진 고양이와 흡사한 생명체가 되었다. 이들이 진화하여 문명을 이루면서부터 행성은 캣왕성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캣왕성의 지배자는 캣왕이고 그는 아벨족의 일원이다. 이들은 캣왕성에서 벌어진 생명 연장 실험연구의 마루타였는데 유전자 변형으로 괴물이 되었다. 두뇌가 거대해져 머리가 좋아진 이들은 잔인한 수단으로 캣왕성을 점령해버렸다. 이후 주변 행성 나아가 은하계 전체를 식민 네트워크화하려는 ‘갤럭시 3000’을 가동시킨다.

반면 캣왕성의 평범한 고양이들은 히드라족으로 전락해 이 성의 주식인  끼마(감자와 비슷하지만 열매로 열리는 덩굴식물) 농장에서 착취당한다. 잠이 보약인 고양이들이 잠을 반납한 채 일한다. 1세기가 흐르고 캣왕성의 지배체제를 견딜 수 없게 되자 반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느 날 식민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첨병인 캣왕성 행성정보국이 수상한 정보를 입수한다. 1970년대 지구의 한 나라가 캣왕성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똑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그 부작용을 치료할 해독제까지 개발되어 있었다. 뜻있는 고위층이 아벨족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릴 희망을 보고 이 사실을 흘렸고 우리의 다섯 주인공은 해독제를 찾아 지구로 오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문체부 주관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 사업 중 하나로 진행될 ‘찾아가는 이동책방’의 앞부분 요약이다. 고양이들이 지구에 온 뒤로 엄청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의 해’를 맞아 진행되는 ‘찾아가는 이동책방’의 원래 계획은 트럭에 책을 싣고 서점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뜻은 좋지만 이미 유사한 시도들이 없는 게 아니고 새로움이 부족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처음엔 좀 더 재밌게 만들자는 정도였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방향이 우주로 가버렸다. 우주로 간 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동책방의 이름을 ‘캣왕성 유랑책방’으로 정했고 이동책방의 외관, 내부 디스플레이, 큐레이션 등이 모두 이와 맞물리게 디자인되었다. 책방의 사연이 담긴 스토리북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독자들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를 읽은 독자가 유랑책방을 방문해 모종의 게임에 동참하길 원하고 있다.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일을 진행한 지난 몇 달간 마음이 불안했다. 재미있어 보이긴 해도 한편으로 황당하기도 한 이런 콘셉트에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을까, 스토리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은 잘될까, 부족한 예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하지만 책을 통해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는 하나의 소망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독백으로는 책을 구할 수 없다. 독자의 마음에 뭔가를 물들일 수 있어야 얼룩을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벤트 효과에 가볍게 편승하고 싶지도 않았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 혹은 뛰어넘어야 한다는 책무가 상당하게 작용했다.

위에서 소개한 스토리는 독자의 참여에 따라 후속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독자의 참여(다양한 방식을 마련 중이다)에 따라 이미 쓰인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고양이들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캐릭터를 더욱 사랑스럽게 그리기 위해 고심했다. 한 가지 더 공개하자면 달눈을 비롯한 다섯 마리 고양이들은 캣왕성의 독서클럽 멤버들이다. 바로 이 땅의 수많은 독서모임의 멤버들처럼. 책을 이용해 위기에 빠진 모행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고양이들의 고군분투에 동참할 독자들의 마음이 이 게임이 지속될 수 있는 동력이다. 요즘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하는 장소로 변신 중이다. 이동책방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 이제 오는 27일 오픈과 전국 일주를 앞두고 있다. 자세한 건 조만간 공개된다. 망설임 끝에 열정을 택해 세상에 나오게 된 캣왕성 유랑책방이 목적을 이루고 무사히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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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우리나라 남성들의 삶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능하다는 말의 뜻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 대기업의 임원, 고위공무원 등으로 줄곧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오다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보면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살 줄도 모르고, 배울 줄도 모르기 때문에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어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을 한 기간보다 그렇지 않은 기간이 긴 나는 그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것 봐라. 이제야 백수의 제왕인 내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가를 알겠지?” 하고 놀린다. 그러면 친구들은 주둥이를 댓 발씩 내밀며 “너는 글쟁이니까 그렇지!” 하고 항의한다. 그런데 글쟁이가 아니면 주위의 구체적 사물이나 사람,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인가?

산업사회 시대 이래 우리 학교에서는 주로 개념적 앎을 가르치고 중요하게 평가해왔다. 할 줄 앎, 배울 줄 앎, 살 줄 앎은 기껏해야 특별한 성향을 갖는 개별 교사가 틈틈이 가르치거나 몇몇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변적인 것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개념적 앎이란 주로 세분화된 분과학문의 지식을 요약한 것이고, 세분된 분과학문의 지식이란 세밀하게 분업화된 산업사회의 노동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결국 산업사회의 학교는 테일러-포드 시스템의 작업벨트에서 세밀하게 분업화된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고, 그런 기준으로 평가하여 학생들을 성공한 유능한 사람과 실패한 무능한 사람으로 나누었던 셈이다.

이러한 교육이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는 농촌 소도시의 학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농촌 소도시의 학교는 꼭 외계에서 날아와 앉아있는 UFO 같다. 교원들은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 8시가 되면 소비행정을 타고 나타났다가 오후 4시 반이 되면 소비행정을 타고 외계로 사라진다. 이 외계인들은 낮 동안 아이들의 두뇌를 만져 그 지역을 떠나 테일러-포드 시스템의 벨트가 있는 외계로 가는 것이 유능하며 성공한 것이고 그 지역에 남는 것은 무능하고 낙오한 것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아이들이 그 지역에 남더라도 자기 삶을 잘 꾸려갈 수 있도록 할 줄 앎, 살 줄 앎, 배울 줄 앎을 가르쳐주는 법은 없다. 그래서 그 지역에 남는 아이들은 자신을 낙오자로 인식하고 그 지역의 삶을 낙오한 삶으로 인식하여 스스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삶이 황폐화되는 것은 학교교육에서 성공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 학교교육을 받고 분업화된 노동구조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 작업벨트상에 있을 때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지만 그 작업벨트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나마 이와 같은 산업사회 교육시스템, 사회시스템은 자본이 국가의 통제 범위 안에 있어 국가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안정적 노동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삶의 황폐화를 최소한의 선에서라도 보완할 수 있는 사회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하다.

얼마 전 모 재벌 디스플레이 회사 사장이 새로 짓는 공장과 관련해서 한 발언이 교육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사장은 이 공장은 전면적으로 인공지능 자동화가 이루어져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 회사는 한국과 무관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는 한국 사람을 고용하지도 않고 한국에 물건을 팔지도 않으니 한국 국민의 삶에 관심 없다는 말이다. 자본이 국가의 통제 범위 안에 있을 때는 자본이 어쩔 수 없이 국민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자본은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고, 국민의 삶에 무관심해졌다. 그에 따라 국가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정적 노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없고, 사회보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미 은퇴한 우리 산업화 세대는 학교에서 할 줄 앎, 살 줄 앎, 배울 줄 앎을 가르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러한 앎에 무관심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안정적 직장을 보장받아 은퇴 이후의 삶이 그렇게 길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세대에겐 학교가 개념적 앎만을 가르치고 할 줄 앎, 살 줄 앎, 배울 줄 앎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 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되어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지고, 조기퇴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할 줄 앎, 살 줄 앎, 배울 줄 앎이 없다면 개인의 삶이 황폐해지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가 와해될 수도 있다. 개념적 앎만이 아니라 할 줄 앎, 살 줄 앎, 배울 줄 앎을 가르치는 학교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교육 패러다임 전환에서 핵심 중 하나는 중앙정부가 부여한 권한에 근거한 학교장의 지도력을 점진적으로 지역사회에 근거한 학교장의 지도력으로 바꾸어 학교가 더 이상 외계에서 날아와 앉은 UFO가 아니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책이 요즈음 활발하게 거론되는 지방분권, 교육자치 분권 정책일 텐데 아직까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자치단체 사이의 권한 배분 논란 수준에 머물러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근래 교육정책들을 보면 대입정책이든, 직업교육정책이든 꼭 소년·소녀 실종사건을 보는 느낌이다. 어떤 정책이든 개념적 앎을 기준으로 상위 10%의 아이들만 있고 나머지 90%의 아이들은 없다. 90%의 아이들은 어디로 갔지? 누가 돌보지? 지방분권, 교육자치 분권 논의가 지역사회에 근거한 새로운 학교장의 지도력 논의로까지 깊어져 이 물음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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