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약사회가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7월부터 방문약사제도 시범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함을 금할 길 없어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방문약사제도는 국민 건강권과 의사의 처방권에 심각한 침해를 일으킬 소지가 매우 크다.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은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환자 고유의 특성이나 상태 등 일련의 진찰과정을 통해 처방한 것인데, 약사가 임의로 환자의 의약품 투약에 개입한다면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우려가 매우 크다.

또한 약사의 복약지도 시 의사 본연의 업무인 처방에 간섭하여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다분하여 오히려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의사와 약사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혼란만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바로 현행 의약분업제도에 정면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데 있다. 정부는 2000년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의 과잉 투약을 방지하고 불필요한 의약품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의약분업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뜩이나 아픈 환자에게 진찰 후 약국까지 가서 약을 타게 만들어 불편만을 야기하고 매년 약제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셋째, 공단에서도 밝혔다시피, 빅데이터(진료내역)를 기반으로 일부 지역을 선정, 만성질환자 중 약품의 금기, 과다 중복투약 대상자를 선정하여 약사와 동행 방문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및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 청구 과정에서 공단이 취득한 개인의 질환 등이 포함된 건강정보는 일반 개인정보보다 훨씬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정보에 속하기 때문에 수집과 활용에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데, 이를 약사회에 제공하여 비의료인인 약사와 함께 가정에 방문하여 복약지도를 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제102조(정보의 유지 등)를 위배하는 바, 동법 제115조(벌칙)에 의거, 벌금형이나 징역형에 처해야 할 만큼 위중한 사안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공단이 지금 약사회와 방문약사제도를 추진할 시점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로운 이 시점에,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더욱 매진하진 못할망정 국민 건강권, 의사 처방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공단이 진정으로 국민 편익과 재정 절감을 위한다면, 이제 의약분업의 실패를 인정하고 객관성 있는 재평가 작업에 착수하고, 국민이 직접 조제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선택분업의 전격 실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국민선택분업, 즉 국민조제선택제도는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후 약 조제를 의사에게 원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직접 조제하게 하고, 약국조제를 원할 경우에는 원외처방전을 발행하여 약사에게 조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편의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재정도 절감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제도가 바로 선택분업인 것이다. 보건의료정책의 수장인 보건복지부는 관련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고민을 통해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 외부 기고의 내용은 경향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방상혁 |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와 첫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리는 거센 비를 뚫고 햄버거 가게에서 만났다. 아주 오래전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는 햄버거를 오물오물 먹는 초등학교 6학년에게 별 시답잖은 것들을 물었다. 쉬는 시간에는 무얼 하느냐? 점심시간에 배식은 누가 하느냐? 담임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냐? 아이는 콜라를 마시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조용히 해’죠. 아이는 마흔이 넘은 담임선생님의 고초를 이해하고 있었다. 잘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도무지 따르지 않아 힘들어 하신다며 나이든 사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선생님 편히 쉬시라고 애들이 다 화장실 가서 놀아요.”

여자아이들이 화장실 거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화장을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을 마주치고 맞장구를 쳐주는 그 시간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는 뭐가 가장 힘드냐는 물음에 별스러운 게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멋대로 하는 언니는 툭하면 시비를 걸고, 엄마는 언니만 싸고돌며, 친구들은 수시로 변심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지만, 뭐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니냐는 열세 살짜리 아이는 힘들어 하는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해준다고 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

아이가 그 말을 할 때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렸고, 아이의 말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문득 먼 나라에서 왔다는 아이의 엄마가 고마웠다. 그가 바다 건너 낯선 나라까지 온 덕분에 이리 예쁜 아이를 내가 만날 수 있구나. 나는 아이의 엄마가 궁금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아이는 깜깜한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대답했다. 예멘이오.

아…. 나는 더 묻지 못했다. 아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3층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들을 올려다보면서 이방인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날 선 말들이 그들의 귀에 닿지 않기를, 부디 그러기를 빌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2,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만’이라는 부사에 대한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고, 뜻을 보니까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문장을 이어주는 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강씨(32·남)는 올해 1월7일 오전 2시20분께 제주 시내 한 마트 맞은편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피해자 A씨(58·여)에게 다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의 옷과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넘어뜨린 후에도 얼굴과 몸을 수차례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씨는 피해자인 A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였다. 그런 강씨가 환갑에 가까운 여성에게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질러 코뼈를 부러뜨린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씨에게는 비슷한 범죄 전력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엄격한 처벌이 필요할 터였다. 송 판사 역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정도는 돼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러울 텐데, 송 판사가 내린 판결은 놀랍게도 집행유예였다. 송 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했다.” 그러니까 ‘다만’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아찔한 반전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다. 제주도에 가면 마트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지 말자.

또 다른 사례. 대구의 시내버스에 탄 A군(18·남)은 옆에 선 B씨(62·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B씨는 해당 사건으로 얼굴, 머리, 어깨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내 숨졌다. 당시 폭행을 만류하던 C씨(22)도 A군의 구타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의 판결은 이번에도 집행유예였다. “죄질이 나쁜 데다 유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아직 10대에 불과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비기질성 정신병적 장애상태에서 범행한 점, 유족이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숨을 부드럽게 쉬자. A군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다만’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 보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씨(39·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7월, 집에서 여자친구 ㄱ씨(47)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ㄱ씨는 이씨에게 주먹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고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재판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를 등장시킨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러나’는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준다.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처참한 심정, 여자친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인다. … 고심 끝에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러나’를 쓰니까 집행유예란 판결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전처럼 ‘다만’을 썼다면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다음 사례에도 ‘그러나’가 등장한다. 최씨(66·남)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안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물론 이 판결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피고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가 머리를 계속 때리는 등 범행 방법이 무자비하고, 이 때문에 다친 피해자가 피를 많이 흘려 사망할 위험도 컸다. 그러나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도 치료돼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그러나’는 피해자의 빠른 회복력과 더불어 이 판결을 이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사법부는 많은 범죄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다만’과 ‘그러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글쓰기 책을 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다만’과 ‘그러나’의 올바른 용법을 가르쳐 드린다.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 국민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한다고 믿는다. 국민 여론과 배치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사법부

국가에서 세금이 중요한 까닭은 존립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방이 뼈라면 세금은 피와 같다. 피가 부족하면 국가를 지탱할 수 없다. 이 중요한 피는 어디서 수혈해야 하나.

민주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민초들만이 이를 담당했다. 이들의 부담이 너무 커서 혁명이 일어났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776년 미국 독립운동,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등이 모두 세금 때문에 발생했다. 이러한 시민혁명의 결과 세금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걷자고 약속했다. 이것이 근대 법치주의의 역사다.

현대국가의 세금은 법치주의 정신에 터를 잡아 납세자의 소득, 소비, 재산에 기초하여 ‘효율(效率)’과 ‘공평(公平)’이라는 잣대 아래 그들의 담세력(擔稅力·ability to pay)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효율의 다른 말은 세금 인상이 미치는 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정부의 7·6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 중 1주택자에 대해 가급적 세금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은 돋보인다.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1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중한 종합부동산세 부담 시도는 자칫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하위법인 세법이 부당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평이란 담세력이 같은 사람은 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이면서 또한 재산이 많은 자는 적은 자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하여 3주택자에 대해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보다 더 강화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법의 존재 목적 중 하나가 부동산 투기 방지다. 그런데 이번 개편 방안은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측면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다. 투기세력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이들이 부동산시장에서 철수할 때 부담하는 양도소득세 인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장래 투기자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된 종합부동산세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둘러야 한다.

한편,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업무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같은 일을 두 곳에서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전자는 국가가 제공할 복지수준의 정도, 국가의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 소득불균형 해소 방안 등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등 방향성을 제시하고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서 확정하면 될 일이다. 그 뒤 세율 인상 등 세법과 관련된 사항은 기획재정부가 책임지고 하며 이를 국회에 제출해서 국민적 동의를 얻으면 된다. 앞으로 두 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효율적이고 원활한 정책운영이 되었으면 한다.

<안창남 | 강남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세금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경찰 한 분을 어이없게 잃었다. 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 훈련받고 무장한 경찰마저 중증정신질환자에게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일반 시민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엔 분명 편견의 영향이 있지만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한 경력이 있었고 이미 한 명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전력이 있으며, 퇴원 후 노모와 생활하며 최근 약을 먹지 않으면서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재발과 타해 등을 막을 수 있는 여러 보건복지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 중인 환자의 위험성은 매우 낮지만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상 병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외래치료는 흔하게 자의로 중단된다. 사회가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갖췄는가, 모든 책임을 보호자에게 맡겨놓는가가 운명을 결정한다.

선진국이었다면 이미 타해의 병력이 있는 환자라면, 당연히 외래치료명령제의 대상이 되어 집에서 ‘퇴원 후 사례 관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 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퇴원 후 사례 관리는 입원 병원의 의료진이 집을 찾아가서 상담하고, 약을 거부하면 한 달 이상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건강보험 서비스 항목이다. 이는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2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지역사회 적극적 치료서비스는 중증환자 100명당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 10~15명이 팀을 구성해 방문하여 입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서비스 덕에 중증정신질환의 재발과 입원율은 매우 낮다. 혹시라도 거부하면 지역사회 응급팀이 출동하고, 필요하면 경찰과 연계하여 지정 병원에 입원시켜 안전을 확보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정신장애인이 이런 서비스의 동료 상담가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또한 정신과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처하기 위한 인식 개선 교육도 활발하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듯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명령제는 법조문으로만 존재하고 실행단위가 불명확해 시행 건수가 거의 없다. 중증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는 지역사회에 사례 관리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뿐으로, 이들을 돌볼 사회복지시설이 부족하고 의료진이 고위험군의 가정을 방문하여 투약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의료서비스는 전무하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에도 정신질환의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만 병원과 지역사회의 중간 시설인 중간집에 대한 것 외에는 눈에 띄는 대책이 없고 커뮤니티케어를 지원할 건강보험 개선방안은 언급조차 없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 진입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인식은 높아져왔고,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정신건강전달체계 개선, 자살 예방, 재난 정신건강, 치매 등 4가지가 포함되었다. 한국형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은 전국에서 56만명이 받았고 자살을 줄이기 위한 언론지침을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고 지키려 노력해왔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국가재난트라우마센터도 올해 발족했다. 그런데 유독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대책과 서비스는 별반 변화도, 개선책에 대한 발표도 없다.

미국에서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서비스가 마련된 것은 1970년대 탈수용화가 시작된 이후 중증정신질환과 관련된 충격적 사고를 몇차례 경험한 뒤였다. 중증정신질환자 중 타해를 저지르는 환자는 극히 소수이며 전체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정신질환자를 비난하며 격리하여 결국 이들이 숨게 만들고 치료와 지원을 받는 길을 막을 것인가? 이대로라면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아픈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나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의료, 복지와 함께 국민 안전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백종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경희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경찰 한 분을 어이없게 잃었다. 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 훈련받고 무장한 경찰마저 중증정신질환자에게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일반 시민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엔 분명 편견의 영향이 있지만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한 경력이 있었고 이미 한 명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전력이 있으며, 퇴원 후 노모와 생활하며 최근 약을 먹지 않으면서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재발과 타해 등을 막을 수 있는 여러 보건복지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 중인 환자의 위험성은 매우 낮지만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상 병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외래치료는 흔하게 자의로 중단된다. 사회가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갖췄는가, 모든 책임을 보호자에게 맡겨놓는가가 운명을 결정한다.

선진국이었다면 이미 타해의 병력이 있는 환자라면, 당연히 외래치료명령제의 대상이 되어 집에서 ‘퇴원 후 사례 관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 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퇴원 후 사례 관리는 입원 병원의 의료진이 집을 찾아가서 상담하고, 약을 거부하면 한 달 이상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건강보험 서비스 항목이다. 이는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2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지역사회 적극적 치료서비스는 중증환자 100명당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 10~15명이 팀을 구성해 방문하여 입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서비스 덕에 중증정신질환의 재발과 입원율은 매우 낮다. 혹시라도 거부하면 지역사회 응급팀이 출동하고, 필요하면 경찰과 연계하여 지정 병원에 입원시켜 안전을 확보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정신장애인이 이런 서비스의 동료 상담가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또한 정신과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처하기 위한 인식 개선 교육도 활발하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듯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명령제는 법조문으로만 존재하고 실행단위가 불명확해 시행 건수가 거의 없다. 중증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는 지역사회에 사례 관리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뿐으로, 이들을 돌볼 사회복지시설이 부족하고 의료진이 고위험군의 가정을 방문하여 투약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의료서비스는 전무하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에도 정신질환의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만 병원과 지역사회의 중간 시설인 중간집에 대한 것 외에는 눈에 띄는 대책이 없고 커뮤니티케어를 지원할 건강보험 개선방안은 언급조차 없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 진입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인식은 높아져왔고,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정신건강전달체계 개선, 자살 예방, 재난 정신건강, 치매 등 4가지가 포함되었다. 한국형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은 전국에서 56만명이 받았고 자살을 줄이기 위한 언론지침을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고 지키려 노력해왔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국가재난트라우마센터도 올해 발족했다. 그런데 유독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대책과 서비스는 별반 변화도, 개선책에 대한 발표도 없다.

미국에서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서비스가 마련된 것은 1970년대 탈수용화가 시작된 이후 중증정신질환과 관련된 충격적 사고를 몇차례 경험한 뒤였다. 중증정신질환자 중 타해를 저지르는 환자는 극히 소수이며 전체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정신질환자를 비난하며 격리하여 결국 이들이 숨게 만들고 치료와 지원을 받는 길을 막을 것인가? 이대로라면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아픈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나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의료, 복지와 함께 국민 안전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백종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경희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후대의 역사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규정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진보의 시대’의 종언을 알린 게 1980년대 신자유주의였다면, 신자유주의가 연 ‘보수의 시대’의 종언을 고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2008년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 세계사회는 이제 어떤 시대로 나가는 걸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난 10년 동안 대다수 나라에서 유사한 경향이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부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문화적 정체성의 도전이 그것이다. 포퓰리즘이 위기에 처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었고 불평등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경제적 결과였다면, 정체성의 정치는 신보수주의의 가부장제에 대한 문화적 거부였다. 나는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금융위기 이후 사회 변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을 ‘포퓰리즘의 시대’로 파악하는 것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포퓰리즘이 보여주는 힘이다. 오늘날 포퓰리즘은 서구사회는 물론 비서구사회에서 우파와 좌파에 걸쳐 폭넓게 관찰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반이민과 반난민의 정서 및 정책을 무기로 삼는다면,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기성 정치 엘리트의 부패 및 경제 엘리트와의 결탁을 공격한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동맹’ 연정에서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까지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포퓰리즘 정치는 기성 정치의 반대를 넘어서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혼란스러운 공존이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정치적 풍경이다.

둘째, 반엘리트주의가 갖는 힘이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쓴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대의정치의 ‘항구적인 그림자’다. 대의민주주의는 본디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위임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의 위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때 정치의 주체임을 자각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이내 객체임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상당한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국가 의사결정의 복합성은 대의정치로부터의 소외감을 안겨준다.

이런 현실에 착목해 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이분법으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킨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호칭일 따름이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정치의 목표가 엘리트 기득권에 맞서서 인민 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논리보다 정서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게 포퓰리즘 정치의 중핵을 이룬다. 이런 반엘리트주의는 많은 대중에게 강렬한 호소력을 가지며, 이런 호소력은 포퓰리즘의 지구적 부상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쳐 왔다.

포퓰리즘이 부상한 정치적 차원의 요인으로는 ‘민주주의의 탈민주화’ 경향을 들 수 있다.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은 탈민주화의 다섯 가지 경향을 제시한 바 있다. 자본이 정치를 압도하고, 마케팅 전략이 선거를 지배하며, 수익성과 효율성의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합리성에 우선하고, 정치가 법원으로 넘어가며, 세계화가 국가주권을 약화시키는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탈민주화 경향이 민주주의를 ‘텅 빈 기표(記標)’로 만들었다고 브라운은 진단한다. 이 텅 빈 기표에 새로운 기의(記意)를 채우려는 시도가 포퓰리즘의 전략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다. 뮐러가 지적하듯, 반엘리트주의가 모두 포퓰리즘인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의 중요한 특징은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를 모두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만을 ‘진정한 국민’으로 여긴다. 그리고 포퓰리스트 정치가 자신들과 진정한 국민만이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포퓰리즘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된다.

지구적 차원에서 전후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 동력은 ‘자본 대 노동’의 계급 균열과 ‘보수 대 진보’의 이념 균열이었다. 세계화의 진전은 이런 균열들에 ‘민족주의 대 세계주의’라는 균열을 더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균열이 부상함으로써 정치적 적대 구조는 다층화돼 왔다. <포퓰리즘의 세계화>를 발표한 저술가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등장이 정치의 표준적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라고 충고한다. 나는 포퓰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포퓰리즘이 안겨주는 경고와 우리 정치에 던지는 함의에 대해서는 마땅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체크무늬 사냥모자와 망토 달린 코트를 입고, 돋보기와 회중시계를 차고 다니며 파이프를 항상 입에 물고 있는 영국 신사. 의뢰인이나 용의자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속내를 훤히 파악하는 프로파일링 고수. 사건 현장과 증거물을 꼼꼼히 조사해 단서를 찾아내는 과학 수사의 원조 . 영국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넌 도일(1859~1930)이 창조해낸 명탐정 셜록 홈스다. 코넌 도일이 1887년부터 1927년까지 장편 4편과 단편 56편을 통해 선보인 홈스는 사립탐정의 대명사다. 독자들은 그의 명쾌한 추리와 사건 해결에 열광했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영화나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리메이크됐다. 셜록 홈스에 흠뻑 빠졌던 세계의 많은 소년·소녀들은 자신도 그와 같은 명탐정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한국의 청소년들에겐 그 꿈을 이룰 길이 없다. 국내법은 의뢰자의 요청에 따라 사건이나 사고, 정보 등을 조사하는 민간조사원인 탐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탐정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에만 없다. 1850년 세계 최초로 사립탐정 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현재 6만여명이 활약하고 있고, 일본에도 6만여명, 독일에 2만2000여명, 영국에 1만7000여명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한 정보 수집, 기술유출 추적, 보험사기 적발 등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경찰력이 미치기 어려운 문제를 법적 체계 안에서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립탐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그동안 발의된 관련 법안은 법조계 등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헌법재판소가 10일 탐정업을 금지하고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신용정보의 이용과 보호에 관한 법률’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전직 경찰관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최근 몰래카메라 등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사생활 정보를 수집·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탐정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기승을 부리는 불법촬영 범죄가 한국판 셜록 홈스의 출현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김준기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정을 살피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남북 문제 해결과 적폐청산 등 개혁적인 정책에 힘입어 집권 여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이후 드러난 최근의 정부정책 방향은 많은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홍장표 경제수석의 경질, 규제프리존법이나 은산분리 완화 등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재추진, 고용지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 부동산 보유세 제도의 퇴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 방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인도 면담 등 그 증거는 도처에 있습니다. 이런 조짐은 지방선거 이전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저임금법 졸속 통과가 그것입니다. 노동자의 노동서비스에 대한 보상 중 어떤 것을 기본급으로 하고 어떤 것을 별도의 수당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노사가 결정하면 됩니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정책목표 때문에 일부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키는 것을 수긍하더라도, 그것이 최저임금의 실질적 감소를 목표로 하지 않는 한, 감소되는 최소임금만큼은 보전해 주었어야 합니다.

혁신경제라는 이름하에 재추진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도 큰 문제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금융산업정책입니다. 자본적정성 규제를 완화시켜 주어서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중금리 대출시장 개척’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지금의 성과는 전통적인 은행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정보통신기업이 은행을 경영해야 한다고 하지만,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12월에 최종보고서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과 핀테크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고용증대 효과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노동절약적인 ‘비대면 방식의 영업’을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 은행이 어떻게 고용증대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혹자는 은산분리는 2002년 은행법 개정 때 도입된 낡은 규제라고 폄하하면서, 이것을 완화하는 것이 ‘개혁’이고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발목잡기’라고 치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금융감독정책의 대표적 실패사례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정확히 은산분리 규제를 위반했던 위법행위인데, 그 결과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사건에서 정부가 패소할 경우 국민세금이 또 나가야 합니다. 왜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시려 합니까.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권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물론 복잡한 중복규제의 그물을 잘 정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할 당연한 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중복규제의 문제를 별론으로 할 경우,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의 강도는 유럽의 규제와 엇비슷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다만 유럽은 지난 5월부터 종전보다 강화된 개인정보보호 규제(GDPR)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오히려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국제규제의 추세와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정보통신산업의 부흥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으나, 최근 정보기술의 발전은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을 상충관계로 인식하는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어 양자를 모두 충족하는 정보처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호화된 상태에서도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동형암호 기술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첨단을 걷는 분야입니다. 섣부른 규제완화는 이런 암호 기술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점을 왜 외면하십니까.

이번 정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라는 ‘한 번의 값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고, ‘10년 보수정권의 실패’라는 또 다른 반면교사의 혜택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청와대에 포진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께서 보이는 모습은 이 정부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국민을 믿지 않고, 관료와 재벌을 믿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를 가까이하십시오. 그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있습니다. 정당한 반대의 목소리를 권력으로 내치는 자를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지도자의 길이 아니라 독재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믿고 앞으로 가십시오. 국민의 염원만이 바른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늘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탄핵정국 때 국군 기무사령부가 위수령과 계엄 검토 문건을 작성하고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데 대해 독립수사단을 꾸려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인도 국빈방문 중 전날 밤 국내에 있는 청와대 참모진의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발표했다. 군 수사를 위해 독립수사단이 구성되는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 등에 대한 독립수사단 구성을 촉구한 문재인 대통령 특별지시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문 대통령은 비육군, 비기무사 출신 군 검찰관들로 수사단을 구성하고 국방부 장관이 수사 지휘를 하지 않도록 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긴급지시 배경으로 “현 기무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한 이후에도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 사건을 보고받고도 수사할 사안이 아니라며 넉 달을 그냥 보낸 국방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한 것이다. 국방부와 군 상층부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고려해 독립적인 수사단의 설치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드러난 기무사의 행태는 문민통제의 원칙을 따르는 민주주의 체제의 군대 모습이 아니다. 우선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은 평화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엄령 발동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 자체가 그렇다.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도 불법적으로 사찰했다. 시민의 군대를 자임하면서 뒤로는 군사독재 시절의 군대나 할 법한 일을 자행한 것이다. 명백한 반헌법 행위로 단죄가 불가피하다. 군은 그동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거나, 안보 전문집단으로서의 능력을 믿어 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군은 자정 능력은 물론 개혁의 진정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거꾸로 시민을 옥죄려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군인사는 전·현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특히 계엄 검토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령부 관계자들과 당시 군 수뇌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문건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검토한 것일 뿐이라며 되레 문건 유출 과정의 불법성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구세력은 또한 과거 방식대로 안보역량 약화나 이적 행위 운운하며 수사를 물타기하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그 어떤 존재, 어떤 집단도 이런 비논리적 주장으로 군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행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군이 진정 시민의 군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40여일 이어진 ‘국회 부재’ 상태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여야가 어제 원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20대 후반기 국회가 늦게나마 출범하게 됐다. 마지막 쟁점으로 남아 있던 법제사법위원회 문제를, 법사위의 월권적 관행을 일부 수술하는 대신 법사위원장은 자유한국당 몫으로 정리함으로써 타결을 이뤄냈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안마저 체계자구 심사를 무기 삼아 무기한 계류시키는 등 정쟁에 악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법사위 제도 개선을 하기로 한 건 평가할 만하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 등 야당의 리더십 갈등으로 여야 협상이 늦어진 데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느라 국회는 원구성조차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국회가 7월에야 원구성을 한 것은 2002년 16대 후반기 국회 이후 16년 만이다. 그나마 국회의장 공백 속에서 70돌 제헌절 행사를 치르는 낯 뜨거운 장면은 피하게 돼 다행이다.

올 들어 국회는 공전과 개점휴업 상태를 반복하고, 국회 원구성조차 늦어지면서 입법을 비롯해 각종 현안들이 적체되어 있다. 당장 경찰청장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기다리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과 미세먼지특별법, ‘미투’ 관련법, 규제개혁 관련법 등 민생과 경제에 직결된 법안들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부동산 보유세 개편안 등 개혁 안건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회 차원의 대응도 시급하다.

모처럼 타협을 통해 원구성에 합의, 후반기 국회가 출범하게 된 만큼 이제는 민생 법안 처리와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협치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20대 국회는 어느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유효한 이상 여든 야든 단독으로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정 당을 고립시키고 숫자로 밀어붙이려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지리멸렬한 야당이지만 협치의 대상으로 삼아야 개혁 입법의 동력을 살릴 수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정책이나 법안에는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습속을 버려야 한다. 반대와 태업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섭게 확인된 바 있다. 으레 원구성을 이루고 국회가 출범할 때면 다짐하는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 ‘개혁 국회’가 이번만은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특정 여성의 남자친구인 척 행세하며 해당 여성의 사진과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을 함께 인터넷에 올린 남성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심 재판부가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디지털성폭력 범죄자가 재판에 넘겨진다 해도 대부분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아온 관행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서울 혜화역 시위에 여성 수만명이 모이는 등 불법촬영·유포범죄 근절 요구가 확산되자, 법원이 실형 선고를 통해 엄단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이씨는 2016년 3~5월 인터넷 블로그에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인 ㄱ씨의 사진과 함께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 수십장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씨가 ㄱ씨 남자친구와 비슷한 이름으로 블로그를 만드는 바람에 ㄱ씨 주변에선 ‘남자친구가 사진을 찍어 올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ㄱ씨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까지 얻었다. 결국 이씨를 고소했고, 1심은 이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이 같은 범죄는 개인, 특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격적 살인”이라며 1심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인터넷에 한번 유포된 자료는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완전히 삭제됐음을 확인할 수도 없다”면서 “피해자의 삶을 이 사건 범행 전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혜화역 시위’에서 드러난 여성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안전하게,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화장실 벽에 뚫린 구멍을 막기 위해 여성들이 실리콘이나 스티커를 갖고 다니는 사회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불법촬영·유포 등 디지털성폭력은 피해자의 영혼을 갉아먹는 중범죄다. 수사·사법기관은 디지털성폭력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다 현행범으로 체포되고도 벌금 300만원의 약식기소에 그친 사례가 되풀이돼선 안된다. 나아가 국회와 정부는 사회 각 부문에 만연한 성차별 구조를 뿌리 뽑고 평등사회로 갈 수 있도록 입법적·행정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울고 있는 하청업체 직원, 내 자녀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덕수궁 앞 모퉁이에 마련된 오래된 해고노동자의 분향소 위에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그 앞에서 다른 나라 국기를 흔드는, 시끄러운 망국의 마이크 소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리쬐는 햇볕은 뜨거운데, 이제는 더 이상 방문해주는 이도 없는 농성장에서 홀로 있는 노동자의 한낮은 흐르는 땀과 함께 슬픔도 흘러내린다. 호화로운 가옥과 기업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윤에 눈멀어 약국까지 손안에 넣고 천억원이라는 수입을 독차지하는 탐욕이 슬프게 한다. 협력업체에 악독한 업주로 군림하면서, 젊은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새빨간 장미만큼 그대를 사랑해’라는 노래에 만취해 부끄러움을 잊는 재벌에게서 분노만큼이나 큰 슬픔을 느낀다.

온갖 독점으로 국가의 부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지위 승계를 위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건드리는, 그 반사회적 배포를 가진 최고의 재벌과 학식 무리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평생을 예쁜 딸 하나 바라보며 살던 필부에게서 직업병으로 딸과 함께 삶 전부를 빼앗아 가놓고도 미안해할 줄 모르는 엘리트들의 야만과 비열이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서 슬픈데, 그들이 어떻게든 우리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려 할 때 참 슬프다. 이제 동네에는 이웃들의 가게, 문방구, 빵집 등 정다운 것은 죄다 없어지고 그 자리를 빼앗은 대기업 분점, 프랜차이즈점, 다국적 기업의 카페로 가득 차서 슬프다. 이웃이 설 자리가 없는 동네에서 지역사회 돌봄과 사회적 우정을 시작하려니 슬프다.

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런 무리들이 저지른 명약관화한 죄들이 무죄로 변신할 때이다. 혹은 증거 없음으로 풀려날 때이다. 최고의 지식인들이 빌붙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어서 슬프다. 지금 도대체 몇 번의 영장이 기각되었단 말인가? 그들이 법에 의한 정의로운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 수많은 날을 거리에서 보냈는데, 정작 우리는 여전히 그 거리에 있고, 그들은 비싼 변호사와 함께 기각된 영장을 찢어 흩뿌리며 와인잔을 부딪치고 있어 슬픔이 목메게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죄를 저질러도, 변함없이 컴백해서 대통령과 국무총리, 고위직 공무원들과 악수를 하고, 불과 몇 %도 안되는 주식으로 기업과 국가 전체에 호령하듯이 행세하는 저들을 보면서 그냥 이 나라가 슬프다.

더욱이 세월이 그리 흐르지도 않아서 기억이 생생한데, 국정교과서 추진 관련자들, 세월호 가족들의 감시자들, 국민을 협박하던 국정원을 포함한 온갖 공작 관련자들, 그 시절 국가의 혼란에 동조하여 수첩놀이하던 그 담당자들이 놀랍게도 징계 하나 받지 않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적폐청산 업무를 명받았다고 했을 때, 찢어지는 슬픔이 가슴을 덮쳤다. ‘월드컵이면, 연예인 스캔들이면,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도 우리 국민은 다 잊어’, 그렇게 말하던 그때 그 부역 공무원이 이 정권에서 내가 함께 일할 동반자라고 하니, 이를 대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슬프다. 영혼을 갖고 사는 많은 이들이 슬프다. 있는 자에 대한 온갖 관대함과 없는 자에 대한 한없는 갑질이 이 나라 온갖 슬픔의 근원이다. 참 오래전부터 ‘이 사회의 비열함은 있는 자들에게서 출발했구나’ 하는 쓸데없고 단순한 통찰이 뼛속 깊이 슬프다.

비열한 사회에서 모멸과 수치를 느끼며, 인간대접 못 받고 눈칫밥 먹으면서 남루해질 때 꼭 살아야 하나 슬프다. 늙고 아프고, 짐 되면 죽는 것이 낫고, 돈 없고 서럽고, 쓸모없으면 죽는 것이 낫고, 공부 못하고 밥, 돈 축내면서, 벌레 취급 당하면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슬프다.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용어에 수긍이 갈 때 슬프다. 사실 더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없는 자가 되어 슬픈데, 나보다 더 없는 자를 슬프게 할 때다. 세입자 내쫓는 빚더미 주인이 슬프고, 난민 반대하는 우리 자신이 슬프다. 끝으로 ‘그래도 힘내자’라고 눈치없이 말하는 당신이 슬프다. 하지만 어쩌랴. 이 슬픔이 우리의 힘이 되어야 한다. 성경 시편의 작가가 말하듯이 이 슬픔이 우리에게 춤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 자손을 위하여 슬픔이 춤이 되게 하는 그날까지 비열의 강을 건너 정의의 땅에 닿을 때까지 반드시 견디어 내자!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