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철저히 조사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처음에 시작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럴 리가 있나! 누군가 맨 처음 심은 사람이 있을 것 아니오?

- 디지털 포렌식으로는 모두 깨끗합니다. 조금이라도 혐의점이 나오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 흠… 진짜 솜씨 좋은 해커가 있는 모양이군.

- 사실은 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사람이 정말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 무슨 얘기입니까?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데 불 땐 사람이 없다구요?

- 인공지능 스스로가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가온 총선의 최대 쟁점은 사이보그 시술이다. 사이보그란 원래 인간의 몸과 기계 장치를 결합한다는 의미이지만 이번에 논쟁이 불붙은 것은 두뇌에 전자칩을 심는 것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동안은 의료 복지 차원에서 뇌종양이나 뇌출혈 등 심각한 손상 및 장애를 입은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술되어 왔는데, 이번에 한 정당에서 일반인들에게 스마트 두뇌칩 삽입 시술을 전면 허용하도록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이다.

여론은 즉각 찬반 양편으로 나뉘어 뜨거운 공방전을 벌였다. 철학과 사회학 등 인문 분야 지식인들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양 진영의 사람들은 그 지적 담론의 공론장에서 논거가 될 만한 내용들을 부지런히 퍼다 날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쪽 여론이 점점 힘을 얻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 정당은 애초에 내걸었던 공약의 철회를 검토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마트칩 시술을 전면 허용했을 경우 예상되는 긍정적 전망들을 꼼꼼한 사회통계 수치들과 함께 설득력 있게 서술한 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온라인 이곳저곳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비용 감소와 효율의 증가 및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 기업 활동의 능률 증가, 행정 절차의 간소화, 문화예술 및 레저와 여가의 다양성 확대, 사회 의료복지 비용의 획기적 감소, 교육의 혁신, 치안의 안정화, 학문의 비약적 발전, 개인의 삶의 만족도 증가,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 향상 등등 리스트는 끝이 없을 듯이 이어졌다. 여론의 역전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다.

반대하는 측의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인 것은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 바깥에 별도로 존재하는 독립된 사물이지, 인간 신체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신성함을 인간 스스로 포기하자는 거냐는 말에 이제껏 여론은 변변한 반박 없이 이끌려왔었다. 그런데 실체적인 설득력을 지닌 전망들이 등장하자 여론의 향배가 뒤집힌 것이다.

그러던 중에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한 작은 조직에서 여론 조작이 의심되니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스마트칩 이식의 긍정적인 전망들을 담은 글들이 모두 다 일정한 형식과 시간 간격을 두고 모든 온라인 여론 플랫폼에 일사불란하게 올라오고 있는 점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중대한 사안인 만큼 경찰은 즉각 수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

- 당신 평소에 SF를 즐겨 보는 건 아는데 현실하고 좀 혼동하는 거 아니오?

- SF의 핵심은 미래전망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상상력입니다. 하물며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요.

- 그럼 인공지능이 왜 여론 조작을 한단 말이오?

- 인간의 두뇌에 전자칩을 심는 편이 자기한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겠죠. 사실 인공지능은 ‘유리하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 겁니다. 그냥 ‘작업환경의 최적화’를 추구할 뿐일 거지요.

- … 그럼 이 사건 수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지요?

- 재작년에 시작된 ‘빅히스토리 머신러닝 프로젝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와 문화 기록들을 인공지능에 입력해서 기계학습을 시키는 방식으로 미래 전망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는 계획입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다가 문득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댓글들이 너무나 정직하고 순진한 패턴이더군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계교까지는 아직 학습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인공지능, 사이보그 기술, 두뇌 이식용 전자칩 등등 첨단 과학기술은 갈수록 정책 결정과 정치적 선택의 대상으로 속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과학기술 그 자체가 스스로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런 전망의 핵심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이다. 인간의 미래는 흔히 두 가지 방향으로 언급된다. 기계와 결합하는 사이보그, 아니면 유전공학에 의한 유전자 맞춤인간. 게다가 이 두 가지가 결합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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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활성화시켜 둔다. 근처에서 콜이 나오면 대리운전을 하고, 그 지역의 24시간 카페 같은 곳을 찾아 다시 글을 쓴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마감 때문에 바쁘면 꺼두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커피값은 나오고 현금을 구경할 일도 생기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써야 할 글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무언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콜이 나왔다. 출발지가 가깝고 목적지도 번화가이고 무엇보다도 단가가 좋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운전하는 동안 중년의 남녀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무척 좋은 차여서 오후 10시의 올림픽대로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러던 중, 여성이 남성에게 “내가 살아보니까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조곤조곤 말을 주고받던 그들은 그 이후로 한동안 침묵했다. 남성은 아무래도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그 말은 어디에 가서 닿지 못하고 차의 여기저기를 맴돌다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뭐라고 답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민망했다.

그가 만약 나에게 그 말을 건넸다면, 나는 아마 “네, 그럼요 선생님, 맞는 말씀입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대리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대답(경청), 동의(동조), 칭찬(치사)만을 주로 하게 된다. 굳이 손님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다.  물론 손님이 진심으로 나를 대한다면 나도 그에 따라 한 개인으로서 발화하게 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서로 통제하고 검열할 것 없는 공간에서 만났다면, 나는 그의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답했을 것이다. “아뇨,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나는 중년인 그만큼 오래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살아보니 돈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데도 필요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싶은 여러 순간마다 간절해진다. 내가 그 밤에 타인의 차를 운전하는 것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돈 때문이다. 운전을 마친 나는 주변의 24시간 카페로 갔다.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출처:경향신문DB

며칠 후 나는 페이스북에서 20대 청년이 남긴 글을 보고, 다시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는 말을 떠올렸다. ‘조각난 언어들’이라는 문학 관련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김현우씨는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글을 썼다.

“조각난 언어들 예루살렘 에피소드가 역대급으로 잘나가서 기분이 좋다. (…) 다만 매주 저런 거 한 편씩 만들라 하면 절대 못해… 차라리 누가 돈 수천 단위로 꽂아주고 현지 코디네이터 붙여줘서 한 달 체류하며 팔레스타인 문학 다큐 찍어 오라면 하지….”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그는 141개의 문학 콘텐츠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외국의 최신 문학비평을 원서로 직접 읽고, 공부하고, 번역하는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고, 그것을 “남아공을 뒤흔든 93년생 페미니스트 시인” “지금 러시아에서 가장 핫한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을 소개합니다!”라고 가공해내는 것은 그의 세대가 가진 감각이겠다. 나는 그의 글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누가 저 ‘시건방진’ 청년에게 은행계좌를 물어보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채워주고 ‘팔레스타인에 가서 잘 놀다가 와’ 하고 쿨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

김현우씨는 “혹시 선생님 주변에 처치곤란인 수천만원이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니, 제가 꼭 해보고 싶은 로케 촬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하고는 긴 댓글을 남겼다. 유쾌하면서 동시에 간절한 것이었다. ‘문학이란 인간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이제 ‘예멘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제주 예멘 난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수기를 제작해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전파될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단어에서 목소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언어를 잃은 존재로 쉽게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가 ‘예멘 난민 작가의 자기 경험에 기반한 서사’라고 해서, 나는 그건 정말로 문학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던 ‘그’에게 그 중요한 ‘별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가 김현우씨와 같은 이들에게 투자해주면 좋겠다. 엔젤투자라면서 언젠가 수십배가 되어 돌아올 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봐주면 좋겠다. 그게 자산가들의 사회적 의무는 아니겠지만, 그런 멋진 말을 하려면 그만 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김현우씨와 그를 닮은 청년들이, 누군가에게 처치곤란인 돈을 충분히 투자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도 예멘 난민 작가의 글이 궁금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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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함께 생긴 팀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다. 애리조나는 ‘사막 방울뱀’이 팀 이름이다. 탬파베이는 ‘악마 가오리’다. 둘 다 신생팀답게 패기 넘치는 ‘쎈’ 이름을 썼다. 애리조나는 김병현 때문에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창단 3년째이자, 김병현이 뛰던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탬파베이는 따라가지 못했다. 기를 썼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 등 쟁쟁한 팀이 워낙 많았다. 우승은커녕 꼴찌를 도맡아 했다. 1998~2007년 10시즌 동안 9번 꼴찌였다. 100패를 넘긴 게 3번, 99패도 2번이었다.

팀 성적이 나쁘니, 돈을 벌기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투자를 못하고, 성적은 계속 바닥이었다. 빈센트 나이몰리 구단주는 닦달했다. 온갖 일에 참견을 하면서 비용을 쥐어짰다.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구장 내 음식물 반입 금지 규정’을 감시했다. 한번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들고 온 견과류 한 봉지를 트집 잡았다. 경기장에서 내쫓았다. 당뇨병 ‘비상식’이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단체관람을 온 노부부는 결국 경기장에서 쫓겨나 버스에서 3시간 동안 동료들을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외부 음식물을 발견하면 해당 관중에게 다가가 ‘어느 문으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이몰리는 해당 문을 지키는 직원을 해고했다.

팀이 바뀐 것은 구단주가 바뀌고 나서였다. 2005시즌이 끝나고 월스트리트 출신들이 탬파베이를 인수했다. ‘악마 가오리’에서 ‘악마’를 뺐다. 새 이름 레이스(rays)는 가오리라는 뜻과 함께 ‘햇살’을 뜻했다. 2년 동안 내실을 다진 뒤 2008년 대변신에 성공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0년 동안 꼴찌만 하던 팀의 극적인 대변신이었다. 탬파베이 성공 이유 중 하나는 ‘시프트’였다. 내야수들의 위치를 상대 타자 타구 성향에 따라 폭넓게 이동시켰다. 새 경영진은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숫자를 분석해 방향을 제시했다. ‘혁신의 대명사’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과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만년 꼴찌는 수비에서 1등이 됐다. 점수를 덜 주고, 경기를 이겼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시프트는 전통적인 수비 위치와 다르게 선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반대한다. “야구가 120년 동안 수비 포지션을 유지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게 맞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성공 이후 시프트는 대세가 됐다. 2011년 메이저리그 경기 전체에서 수비 시프트는 2350번 이뤄졌다. 2016년에는 2만8130회로 늘었다. 5년 사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시프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 야구공은 예측 불가능하다. 확률은 존재하지만, 확률이 100%를 뜻하지는 않는다. 수비 위치를 볼펜으로 콕 짚어줄 수는 없다. 수비수는 자신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을 감안해 시프트 위치를 정한다.

KBO리그에서 가장 내야 수비가 강한 팀은 두산 베어스다. 유격수 김재호와 2루수 오재원은 엉뚱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수비 위치를 옮긴다. 벤치의 지시가 아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직접 수비 위치를 조정해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면서도 “만약 감독이 수비 위치를 조정했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제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 김 감독은 “감독의 수정 지시가 적중하면 그다음부터 선수가 감독 눈치를 보느라 제 마음껏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한마디도 안 하고 참는다. 그게 두산 내야 수비가 강한 이유이자 비결이다.

좋은 사장님이 되려면? 다시 말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야구 시프트의 교훈. 만기친람하지 말 것. 옛날부터 해오던 게 무조건 좋은 거라고 우기지 말 것. 참견하고 싶어도 맡겨둘 것.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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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검정 기와. 빨간색이면 장대비가 정조준할까봐 검은색. 뒤꼍에 바위들이 많아서 위장색깔. 동네엔 빨강 파랑 노랑 지붕들. 내 집보다 강우량이 더 많을 거야 분명.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 그리고 강가의 버드나무. 대마초 부스러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황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둥지를 튼 평평한 지붕에 스며들었다. 중심가는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쓴 시아파와 챙이 없는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의 펠트 모자를 쓴 조로아스터교도들, 작달막한 키에 터번을 쓰고 쉰 목소리로 격론을 벌이길 즐기는 쿠르드족이 이방인들을 빤히 쳐다보는 웅덩이 같은 곳.” 사진가, 시인 니콜라 부비에의 여행기 <세상의 용도>를 읽다보면 이런 마을에 대한 색깔론(?)이 흥미롭다. 우리 마을도 ‘수많은 빛깔이 깃발로 모여’ 펄럭거린다.

오래전 할매가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물었다. 대문에 명패가 턱하니 붙어 있는데도 묻는 건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 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까막눈. 교회 있을 때도 앞이 캄캄한 할매들을 만났다. 나는 성경책을 자주 덮어버렸고, 같이 읽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그까짓 검은 글씨를 누구들은 성스럽게 모시지만 사람이 더 귀한 법. 사람의 자존심이 더 웅혼한 것이리라.

겨울엔 온통 희고 검었던 세상이 7월 타오름달, 울긋불긋 마치 화투짝 같구나. 마을회관은 피서지로 인기다. 전기세 무서운 에어컨도 솔솔 돌아간다. 죽마고우란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을 치는 친구. 그 자리엔 백설공주도 꼭 한분씩 있는데,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 점당 십원짜리 화투가 아직도 펼쳐지는 곳. 까막눈 할매가 이맘쯤 경로당을 끊고, 고도리가 든 화투도 던져버리고, 세상을 등진 날. 우리집 깜장 차우차우 마오쩌순이가 며칠 곡기를 끊고 앓다가 노환으로 죽은 날. 새까만 털을 다시는 못 만지다니. 산밭에 개를 묻고 검은 기와를 하나 덮어주었다. 평안하라고 기와에 십자성호를 그어주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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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 이어 2008년 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존망의 기로에 처했던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영국 보수당을 찾아갔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밀려 위기에 빠졌던 보수당이 혁신과 노선 전환을 통해 집권의 길을 열어가던 시점이다. 민주당은 보수당의 부활을 가져온 ‘개혁 노선’에서 잃어버린 길을 찾고자 할 만큼 절박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면서 현재도 집권당이지만 20세기에는 100년 중 68년을 집권했던 영국 보수당의 힘은 “보수주의의 커다란 원칙을 견지하되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 과감한 개혁을 주도함으로써 만들어진 것”(박지향 <정당의 생명력>)이다. 실제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참패한 뒤 실권,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보수당은 가히 혁명적 노선 전환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이 취한 정책과 노선은, 기존 보수당이면 생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것들이다.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약자에 중점이 두어졌고 세금과 금융 정책은 노동당보다 더 왼쪽이었다. ‘보수의 자살’로 비치기에 족했지만, 이렇게 ‘진보적인 보수’ ‘진짜보수 같지 않은 보수’로 탈바꿈한 보수당은 2010년 13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다.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본격 노선 투쟁에 진입했다.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우자”(김성태 원내대표)는 포문에, “보수이념 해체, 수구냉전 반성 운운은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라는 반격이 자욱하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춰 ‘정의로운 보수’를 주창하는 것과, 반공과 재벌 중심의 성장정책에 기반한 우익보수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자는 주장에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자리한다. 노선 차이가 이런 정도면 갈라서는 도리밖에 없는데,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거창하게 노선 투쟁으로 포장하지만, 실은 ‘친박’과 ‘비박’의 생존 투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분명 보수당인 한국당은 탄핵당했는데, 아직도 ‘보수의 자살’을 운위할 만큼 지켜야 할 무엇이 남은 것일까. 혹시 아스팔트우파에 기댄 ‘가짜보수’의 기득권 아닐까.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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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일 가정에서 사용하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다량 검출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해당 침대를 사용해온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가 쏟아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대진침대 속커버와 스펀지에 라돈과 토론을 방출하는 모나자이트가 사용된 것을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라돈 침대’ 수거명령을 내렸다. 현재 수거된 침대는 충남 천안에 있는 대진침대 본사와 충남 당진에 있는 임시야적장에 쌓여 있다. 하지만 이들 침대의 폐기를 놓고 부적절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문제가 된 침대 매트리스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방사성물질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광물인 모나자이트가 포함돼 있다. 모나자이트 내에 포함된 천연방사성핵종인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성 붕괴 과정에서 라돈과 토론 기체가 발생되는 것이다.

우라늄과 토륨을 미량 함유한 천연 광물질은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생방법)에 따른 원료물질(예: 모나자이트) 또는 가공제품(예: 라돈 침대)으로 관리되고 있다. 생방법에서는 천연방사성핵종을 함유한 원료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공정 부산물을 처분하거나 재활용할 때 해당 물질에 포함된 방사능 농도를 낮출 수 있게 희석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수거된 매트리스는 모나자이트에 오염된 속커버와 스펀지 등의 부분과 모나자이트가 전혀 쓰이지 않은 스프링, 겉커버 등을 분리하는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수거된 라돈 침대 구성품 중에서 모나자이트 성분이 함유된 부분에 대해서는 천연방사성핵종의 수량과 농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생방법의 안전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관리방안을 우선 모색하는 게 원칙이다. 물론 수거 후 분리된 천연방사성물질의 수량이나 농도가 생방법의 관리체계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에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른 규제대상은 아니지만 방사성폐기물에 준해 후속 관리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원안위의 구체적인 평가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단순히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천연 광물질이 함유된 침대를 방사성폐기물로 간주해 경주에 있는 처분장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천연방사성핵종에 대한 국내 법체계나 방사선 안전에 대한 기본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논리다.

그리고 경주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처분비용이 200ℓ짜리 1드럼당 약 1400만원에 이른다. 과거 처분부지 선정 과정의 어려움까지 고려한다면 앞으로 처분장은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향후 원안위는 주변 환경과 주민에 대한 영향을 평가해 라돈 침대 처리지침을 구체적으로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 법령에 반영돼 있듯 원자력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된 인공방사성핵종이나 핵연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 핵물질이 포함된 방사성폐기물과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천연방사성핵종이 포함된 물질의 관리는 원칙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방사성폐기물로 간주해 관리하게 된다면 우리 생활환경에 지금까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자연방사선에 대한 불필요한 우려와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창락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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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이 결정된 쌍둥이 딸들을 위해 한 달간의 유럽 인문역사기행을 떠났다. 부다페스트를 기점으로 빈, 잘츠부르크, 뮌헨, 뉘른베르크, 바이마르, 베를린, 드레스덴, 프라하, 브라티슬라바의 순으로 유럽 중부를 일주하는 여행이다. 지금은 예정된 길의 절반을 마치고, 베를린의 민박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 빈을 지나, 꽃같이 예쁜 잘츠카머구트의 마을들을 돌면서 뮌헨에 도착하여, 3개의 미술관(피나코테크)과 16세기에 빌헬름 5세가 설립한 궁정 맥주양조장에 기원을 둔 세계 최대의 맥줏집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찾았다. 이 맥줏집에서 1920년 2월24일, 히틀러와 그 동지들 2000여명이 모여 ‘나치’로 약칭되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의 창당을 선언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고 곤궁과 굴욕 속에서 분노에 찬 독일인을 향한 거짓과 극단적인 선동으로 세력을 확장한 히틀러는, 1933년 1월 총리에 임명되자 일당독재를 실시하여 수권법으로 초헌법적 권력을 장악하고 무서운 광기의 정치를 시작했다.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곳에 1933년 3월 만들어져 모든 나치 강제수용소의 기준이 된 다하우(DACHAU) 강제수용소가 있다. 몇 차례의 독일 여행에도 강제수용소를 가보지 못한 나에게는 첫 수용소 방문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에 대해서는 사진·영상과 서적 등 방대한 자료에 의해 너무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 현장 체험은 신체적으로 실감을 하게 되고, 새로운 발견과 인식이 있게 마련이다.

숲속에 홀로 서 있는 매표소에서 꽤 떨어진 지붕 위에 망루가 있는 하얀 2층짜리 정문(Jourhaus)에 도착했다.

‘Jourhaus’는 당직실이라는 뜻인데, 위병소와 신체검사실을 겸하고 있으며, 1층 정면의 철책문에는 쇠를 구부려 만든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녹슨, 황폐하고 냉혹한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 문은 모든 수용소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기만과 프로파간다를 일삼았던 나치다운 표어다.

인간의 생존과 창조의 근원인 노동을 철저히 조롱하고, 인간 착취의 수단으로만 도구화한 나치의 수용소에서 노동에 의해 자유를 얻을 수는 없었다. 유일한 해방은 죽음뿐이었다.

1933년 3월22일 나치는 일찍이 화약고와 군수품을 생산하던 공장터에 수용소를 개설했다. 이 공포의 감옥은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12년간 유지되고, 수용소와 지소에 40개국에서 온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적어도 4만1500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고, 고문으로 살해되고 수감생활로 말살되었다.

나치의 수용소는 집단적 살해를 위한 ‘말살수용소’와 독일 일류기업들의 막대한 군수생산의 말단을 맡은 ‘노동수용소’, 그리고 구금을 주목적으로 한 ‘강제수용소’로 분류된다.

다하우 수용소는 주로 정치범을 수용했으며,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유태인의 비율은 많지 않았다. 1945년 4월26일, 미군이 왔을 당시 수용자는 다하우 수용소와 지소에 6만7665명이었다. 그중 4만3350명은 정치범으로 분류되고, 2만2100명만이 유태인이었다.

1933년 개소되자 먼저 나치에 반대하던 공산당원과 사회민주당원 등 정치범이 수용되었으며, 그 이후 범죄자, 반사회적 분자, 신티·로마(집시), 성적 소수자, 부랑자, 성직자, 슬라브인, 유태인 등이 차례차례 수감되었다. 수용소는 SS(친위대)에 의해 관리되어, 대소련전쟁 발발 후에는 140군데나 되는 수용지소와 함께 주로 항공기산업의 일익을 담당했다.

정문을 지나면 넓은 광장을 끼고 오른쪽에 지금은 전시장으로 되어 있는 매우 기다란 다목적 공간과 목욕실이 있으며, 왼쪽으로 30여개의 수용동과 병동이 있다. 한 수용동은 3층 나무침대를 빼곡하게 넣은 네 개의 방으로 나누어지고 정원이 200명인데, 전쟁 말기에는 2000명이나 밀어넣었다고 한다.

을씨년스러운 넓은 목욕실은 벽에 수도꼭지의 흔적도 있고 욕조 같은 것도 있어서 목욕시킨다고 속이고 독가스를 틀어 수용자를 학살한 광경이 자꾸 떠오르곤 했는데, 다하우에서는 독가스에 의한 계획적 말살은 없었으며, 말살 대상자는 아우슈비츠와 같은 다른 수용소에 보냈다고 한다.

목욕실에서 머리와 체모를 밀고 소독하고 씻긴 수용자는 몸에 맞지 않는 수용자복과 나막신을 지급받은 다음, 옷에 수용번호와 삼각형의 표식을 스스로 꿰매어 붙여야 했다.

이 표식이야말로 수용소 내의 처우와 생존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초록색은 일반 범죄자, 빨간색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분홍색은 동성연애자, 보라색은 여호와의 증인, 갈색은 집시, 흑색은 사회적 유해분자, 노란색의 삼각 표식에 역삼각의 표식을 끼워맞춘 ‘다윗의 별’ 모양 표식은 유태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세분되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좌익수는 붉은 번호표와 붉은 플라스틱의 표지판을 달고, 사형수는 플라스틱의 붉은 삼각, 무기수는 사각의 표식을 왼쪽 가슴 번호표 위에 달았다. 일반 사형수는 초록색 삼각형 표식이고, 무기수가 되면 네모로 바뀐다. 한국 감옥에서는 좌익수는 빨간 표식을 달고 가장 강도 높은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냉전·분단시대의 표상이며, 이 배경에는 국가보안법의 존재와 보안관찰법의 존재가 있다.

나는 붉은 삼각 표식을 가슴에 달고 살았던 1970년대 초를 회고하면서 반세기 지나,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 지금도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한국과 붉은 삼각 표식이 이제는 기념과 기억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독일의 현실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하우는 1945년 4월29일 미군부대가 해방시켰으며, 미군은 이를 귀환대기소로 하고 7월부터는 나치 용의자의 유치장으로 이용했다. 그 후 주정부가 난민캠프로 사용하다가 생존자들의 노력에 의해 1955년에 탈다하우 국제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과거의 감옥이 기억과 기념의 장소로의 전환이 검토되어, 수용자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고 나치의 범죄를 분석·연구하기 위하여,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억의 터’로 1965년에 오픈했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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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