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 교체 문제로 한창 야당과 공방전이 오고가는 중이다. 전임 통계청장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통계를 제출해서 경질되었다는 주장과 통상적인 교체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번 개각의 큰 쟁점이 될 것 같긴 하다. 사실 통계청장이 차관급 인사라는 점에서 살짝 부럽기까지 하다. 얼마나 중한 자리이기에 저렇게 논란을 겪고 있나 싶어서 말이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 하지 않나. 지금 농업계가 딱 ‘무플’ 신세다.

비교적 평화로운 내각 구성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명이다. 평화롭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라 하는 것이 맞지 싶다.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전남도지사에 당선되기까지, 5개월 동안 농식품부의 수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차관들이 남아서 업무 공백을 메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관이 자리를 지키는 것과 아닌 것은 천지 차이다. 장관급에서 논의되어야 할 현안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산의 문제가 걸려 있다. 점점 줄어드는 농업 예산 확보와 제대로 된 집행 요구는 장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장관 자리가 비어 있는 동안 농민들과 농업단체들만 애가 탔다. 현재의 농지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직접지불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쌀 산업에 대한 대책도 누군가 들어줄 대상이 있어야 말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굵직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농정이 농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것이 농민들의 가장 큰 바람이다. 이 열망을 모아 이끌어 갈 ‘키맨’이 절실했다. 하지만 이를 담아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설치 공약도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 같다.

5개월이나 비어 있던 농식품부 장관에 이개호 의원이 얼마 전 임명됐다. 이개호 장관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활동했던 2선의 국회의원 출신이다. 일찌감치 농식품부 장관 하마평에 올랐으며, 무난히 임명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역시나 청문회 통과는 순탄한 편이었다. 논문표절이나 자녀의 취업특혜 의혹, 배우자의 불법건축 같은 사안은 이제 장관 청문회에서는 큰 쟁점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농식품부 장관이어서 그냥 넘어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청문회를 통과한 이개호 장관은 청문회에서 받은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호기롭게 ‘출마하겠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장관 임기도 총선 출마 전까지 1년 남짓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솔직해서 씁쓸했다. 어차피 뒤집힐 말들이 더 많은 자리인데 농민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농식품부를 지키겠다는 말잔치도 안 할 정도로 이 자리가 가벼운가 싶어서 말이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친일 매국노로 나오는 이완익은 외부대신(외교부 장관) 자리를 탐낸다. 그토록 바랐던 외부대신이 아닌, 지금의 농식품부 장관인 ‘농상공부’ 대신 자리에 임명되자 자신이 소작농 출신이어서 무시하는 거냐며 패악질이 더 심해진다. 등청해서 농상공부의 의견을 보태라 하자 “무·배추만 싱싱하면 걱정할 거이 없는 농상공부 대신인데 뭘 보태란 말입네까”라고 응수하며 불참한다. 역사 왜곡 논란이 많은 드라마지만 이 부분만큼은 왜곡 없이 제대로 현실을 반영한 것 같다. 무·배추 값만 싸면 다들 그만이다. 정부 수립 이후 이 나라에서 농업이 중요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올해는 무·배추마저도 싱싱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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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 from a tethered balloon. 1860. ⓒJames Wallace Black

사진 속 도시 풍경은 1860년 미국 보스턴이다. 이제 드론을 띄워 무인 항공촬영을 하고, 구글어스로 항공사진을 볼 수 있는 시대라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하지만 당시 매우 특별했던 장면을 위해 사진가는 작은 열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공중에서 위험천만하게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도시만큼 사진가들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드물다. 실제로 사진의 역사는 도시의 발달과 변화와 관계가 깊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스망화’로 알려진 도시 재설계가 추진되면서 도로 구축과 함께 백화점, 아케이드 등이 건설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유리와 철근 등 새로운 건축 재료와 공법이 개발되면서 고층빌딩이 생겨났다. 이처럼 현대화된 도시와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은 매력적인 촬영 대상이 되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파괴되는 도시의 모습이, 전후에는 도시의 재건 모습에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1960~70년대의 사진가들은 개발 논리로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도시를 비판적으로 관찰하기도 했다. 도시와 사진가 그리고 카메라는 언제나 서로에게 긴밀하게 맞닿아 상대를 비추며 수많은 장면들을 탄생시켰다. 이 순간에도 사진가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도시를 답사하고 해석한 장면을 세상에 내놓는다. 앞으로도 지구상에서 도시가 아예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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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렸다’(시 ‘말’의 부분)

김수영의 시에 죽음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평론가들은 1964년 쓰인 시 ‘말’을 본격 죽음을 파고든 작품으로 본다. 시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부인 김현경씨는 김수영이 책상 달력에 ‘상왕사심(常往死心)’이라는 좌우명을 써놓았다고 증언했다.(<김수영의 연인>)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는 뜻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징집돼 북한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인민군에서 탈출해 서울까지 왔으나 다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만다. 이 와중에 두 동생은 행방불명됐다.

김수영에게 전쟁을 통한 죽음의 공포 체험은 시를 쓰게 하는 원천이었다. 평론가 김종철은 “죽음에 대한 남다른 인식으로 일상의 피상적인 경험의 갈래를 좇아 허우적거리지 않고 여러 경험의 의미를 근본에서 꿰뚫어 볼 수 있게 했다”고 진단했다. 시인 황규관은 <리얼리스트 김수영>(한티재)에서 “죽음을 삶으로 바꾸는 시적 사유를 감행하면서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삶은 죽음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김수영에게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삶을 삶답게 하는 근거였다.

죽음을 통해 생명의지를 노래했던 시인은 1968년 6월1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48세. 그러나 너무도 풋풋하게 젊음과 자유를 노래한 탓인지 그의 죽음은 김소월보다도 더 때이른 요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김수영은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다.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3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다’. 그의 시와 산문 한줄 한줄은 읽는 이를 벌떡 일어나게 한다. 그의 영향력은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학·역사 분야의 학제 간 연구도 활발하다. 작고 50주기를 맞은 올해는 더욱 풍성하다. <김수영 전집> 결정판이 출간됐고 시집 <달나라의 장난> 복각판도 나왔다. 시인이 중퇴한 연세대는 31일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오는 11월에는 학술대회도 열린다. 50주기라지만, 김수영은 살아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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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도가 있다.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잘 모르면서 아는 듯이 썼거나 또는 잘못 알고서도 잘못 아는 줄 모르고 틀리게 쓰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사실관계를 알면서도 자기주장을 위해 사실을 외면하거나 억지 논리로 사실을 감추고 거짓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다. 요즘 여러 언론보도를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언론이 사회 공익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발신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도그마에 빠진 느낌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너지 전환 관련 보도다. 세계적으로 탈원전 운동과 정책이 등장한 배경을 모조리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이 주장하듯 원전이 안전하고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저렴하다면 왜 탈원전 에너지전환이란 거대한 움직임이 등장했을까?

왜 원전에 대한 투자는 정체되어 있는데 신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투자액이 원전과 화석연료 투자액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걸까? ‘반(反)에너지전환’을 편드는 언론은 답해야 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알고도 외면하는 건지.

최근엔 이런 보도도 있었다. 베란다 태양광이 번쩍거려서 이웃 간의 ‘광(光)’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베란다 태양광 패널이 주로 설치된 서울에선 2018년 8월 현재 관련 민원이 올해 설치 완료된 3만여 건 중 2건에 불과하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은 저철분 유리를 사용하기에 표면 반사율이 5.1%다. 8~10%인 유리나 플라스틱보다 낮다. 언론이라면 발표된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율이 맞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 되는지, 해외에서는 그런 사례가 있는지 등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러 언론은 태풍 솔릭이 태양광 시설에 큰 피해를 줄 것처럼 불안해했지만, 전국 38만6000여개 시설 중 제주도에서 단 한 건의 사고가 있었을 뿐이다. 지난 8월22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산비탈에 설치됐던 태양광 발전시설이 훼손된 건 기초 토목공사 문제였음에도 태양광 발전 자체 문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장과 왜곡은 곤란한데 말이다.

‘기승전 탈원전’ 보도는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원전 이용률 저하나 전력수급과 전력 요금 문제도, 한전 적자도, 영국 원전시장 우선협상자 지위 해제도, 모두 탈원전 탓으로 몰고 간다. 그간 원전 이용률이 왜 떨어졌나? 비정상을 정상화한 조치 때문이었다. 격납건물 철판 부식, 콘크리트 공극(콘크리트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 등 과거 원전 건설 부실로 생겨난 문제를 보정하기 위해 원전 정비 일수가 증가했다. 지진으로 인해 정지했던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지난 정부에서 강화한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해서 점검기간이 길어지고 재가동에 시일이 소요된 거였다. 원전 납품비리로 투입된 위조 부품을 안전등급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전 적자는 국제연료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봄철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정지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잘 진행되던 원전수출이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문제가 된 게 아니었다. 영국원전 우선협상자 지위를 획득한 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12월이었고, 그 이후 영국 상황이 바뀐 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있지도 않았던 전력대란을 마치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과장하고 탈원전 정책 탓에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새로운 시대적·경제적 조건하에서 기존 산업이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때 산업화 동력을 제공했던 원자력은 이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재생가능에너지시대로의 전환은 더이상 미룰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되는 시대적 대세다. 언론은 이런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혜롭게 대응하기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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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상고·공고라는 명칭이 ‘특성화고’로 변경된 지 10년이다. 구시대적인 어감을 걷어내고 취업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는 전체의 4분의 1로 600여개나 된다. 전국에 3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생활은 인권침해와 차별만이 존재한다. 2016년 5월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곳, 2017년 1월 전주 대기업 콜센터 전화상담을 받던 곳, 2017년 11월 제주도 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작업을 하던 곳. 바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던 곳들이다.

모두 10대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조기취업의 굴레에서 일하다 산재 사고가 난 곳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학생들은 안전교육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터에 내몰렸다. 결국 교육부는 올해 안전한 현장실습 제공이 가능한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교육 문제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현장실습만이 아니다. 바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터에서 비인권적 대우나 차별·침해를 더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실태 토론회를 개최했다. “넌 커피색 스타킹보다는 검은색 스타킹이 잘 어울려” “난 여자를 볼 때 허벅지랑 엉덩이를 제일 먼저 봐”와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장근로수당이나 최저임금 미지급 등 임금체불이 37%나 되었다. 또한 “경력조차 없는 특성화고 졸업생” “너희 특성화고 애들 뽑기 싫다” 같은 발언에서는 차별의 심각성(23%)도 확인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평등권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공간이나 졸업생의 노동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교육청 취업진로부서는 노동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지자체는 학교 내 교육 문제에는 권한이 없다. 노동청은 청소년 문제는 학교의 몫으로 생각하는 눈치다.

오래된 습관은 반복된다. 그건 개인과 조직은 물론 사회도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개인과 조직은 변화와 혁신에 민감하기에 시대의 흐름에 조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는 청소년과 청년노동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노동청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안전노동인권협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인권보호와 취업지원 그리고 보호대책이다. 공공행정조직 간 상호협력을 도출한 첫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가운 것은 ‘노동의 가치 인식과 노동인권 존중 사회’가 조례에 명시된 것이다. 모든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의무화되기 위한 지역 차원의 첫 시작이다. 또한 당사자인 특성화고 노동조합과 시·교육청이 정례적인 논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의 첫 일터의 안전과 교육훈련 여부 등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은 청소년 노동 규정을 법에 명시했다. 우리는 연소근로자 문제가 헌법 32조 5항에 적시되어 있음에도 무시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과 청년을 포괄하는 노동보호법 제정이 논의될 시점이다. 매년 수만명의 특성화고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하지만, 일부 산재 사고만 언론에 드러난 것이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초기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과 성희롱 등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왜 산재 사고를 유독 많이 겪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의 이윤창출 밑바탕에 끊임없이 배출되는 공급처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노동의 가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차별 없는 일터는 그 시작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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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위한 예산이 빠졌다. 고등교육 공약 중에서 큰 의미를 지닌 사업이라서 심각한 파장이 일고 있다. 당장 재론에 부쳐 내년에 시범사업을 할 적절한 예산을 확보해야 마땅하다.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혼선과 난관을 겪는 와중에 교육정책은 국민을 적지 않게 실망시켰다. 대학입시 개편 논의 등에서 교육부는 일관된 개혁 추진력도 부족했고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큰 그림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교육 분야는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과제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터라 강한 정책 의지와 탄탄한 국민적 지지가 긴요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현 정부는 이미 올해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약 1조4000억원 증액하는 등 국가의 보육 책임을 명확히 하며 지난 정권이 저지른 소모적 갈등을 끝냈다. 내년 교육 예산도 여러 항목에 걸쳐 올해보다 총 6조9730억원(10.2%)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고등교육과 관련한 굵직한 공약은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 주요공약은 거점 국립대 집중육성을 비롯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구축, 공영형 사립대의 단계적 확대, 전문대학의 획기적 발전을 포함한 평생·직업교육 혁신으로 간추려진다. 이 중에서 제일 급한 것을 고르라면 공영형 사립대이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과제의 규모에 비해 아직 막연한 구상 차원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공영형 사립대 사업은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상대적으로 소요 재정이 크지 않다. 현재 전문대학 대부분이 사학인 까닭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과제를 하나로 묶어 추진하는 장점도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전체 대학의 80% 이상이 사학인 우리 현실에서 대학 생태계 혁신을 위해 필요불가결하다. 아직 정권 초반기인 내년에 꼭 시작해야 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폐쇄적 사학 운영이 지속되면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 나라 전체가 피해를 본다. 또 이 사업이야말로 지역균형 발전에 기여할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다. 훗날 사업의 성공이 확인되는 단계에서 서울과 수도권 대학 다수도 공영형 사립대로 바뀌면, 사학 위주의 한국 대학이 안고 있던 약점을 극복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공영형 사립대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약 제시 과정에서 나온 “건실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립대”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하다. 이런 사립대라면 어차피 잘해나갈 터인데 재정 지원까지 하면 형평에 어긋나고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고 오해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은 세 가지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수도권이 아닌 지방대학이어야 한다. 둘째,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 민주화와 발전을 위해 싸운 역사와 성과가 있어야 한다. 특히 교수진이 단결하여 자신의 급여를 동결·삭감하는 희생까지 한다면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셋째, 비리사학세력을 쫓아냈거나 무력화하여 이사회, 평의원회, 교수회 등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을 충족하는 대학이라면 최근 대학평가의 자율개선대학 명단에서 탈락한 대학이라도 얼마든지 공영형 사학의 첫 실험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영형 사립대를 위한 법률 제·개정 등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고 재정 효율성도 불투명한데 어떻게 큰돈을 쓰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내년 예산이 크게 증액된 국립대학 육성, 산학협력, 학술연구지원, 전문대학 혁신지원 사업 등에 비해 공영형 사립대가 명분과 재정 효율성에서 뒤떨어진다고 볼 근거는 미약하다.

또 예산이 늘어난 사업들과 내용이 중첩되는 경우도 많아 예산 조정의 여지도 크다. 더구나 ‘촛불정부’답게 고등교육의 앞날을 위한 원대한 꿈을 펼쳐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 사업이 미덥지 않다면 개별 대학에 배정된 예산을 당분간 등록금 인하와 교육비 투자에만 쓰도록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공립대 수준의 등록금으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 정권은 ‘반값 등록금’을 위해 국가장학금을 무려 4조원 가까이 늘렸다. 그러나 국가장학금은 소득분위별로 차등지급하는 시혜적 제도라서 특정 소득분위에 속하지 않는 다수 학생은 혜택을 실감하기 어렵고, 학생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은 간접적으로 한계사학의 연명을 돕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마저 있다.

반면에 공영형 사립대의 점진적 확대는 현행의 국가장학금보다 여러모로 더 효과적일 것이 확실하다. 나아가 국가장학금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시범사업 예산을 단 300억~400억원이라도 살려 고등교육 혁신의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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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0일 현 정부 출범 이후 첫 개각을 단행했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포함한 국방·산업통상자원·고용노동·여성가족부 장관 등 5명이 교체됐으니 그 폭은 작지 않다. 여성 장관 비율은 그대로 유지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입각이 6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국정 쇄신 차원에서 이뤄진 개각으로 문책성 경질도 포함됐다. 이번에 교체된 일부 장관들은 오락가락 정책이나 잦은 말실수 등으로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국정운영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개각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인선의 키워드는 ‘심기일전’과 ‘체감’ 두 가지”라며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아 새 마음으로 출발을 하자는 의미와 문재인 정부 1기 때 뿌린 개혁의 씨앗을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가운데)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토론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문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정책 성과를 가시화하겠다는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 내정된 장관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당과 관료 출신 인사로 채워진 것은 내각의 안정화를 꾀하면서 개혁 기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유은혜 교육·정경두 국방·진선미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촛불민심을 바탕으로 한 개혁에 속도를 높이고 지금껏 진행해 온 개혁 과제의 결실을 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산업·노동부 장관에 해당 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출신을 기용한 것은 전문성을 강화해 정책 성과를 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그 면면에서 “뛰어난 소통능력”(유은혜 내정자), “대내외 소통능력 겸비”(성윤모 산업부 장관 내정자),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십”(이재갑 노동부 장관 내정자)을 강조한 것도 정책 성과를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기대가 실렸다고 볼 수 있다. 마침 이날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 소통을 강화하고 치밀한 정책홍보를 다짐한 것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개혁과 한반도 평화 정착 등 산적한 국정현안 외에도 경제·민생의 어려움까지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때일수록 내각은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정책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번 개각이 심기일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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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30일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과거사 판결과 관련한 헌법적 판단을 내렸다.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국가와 화해한 것이므로 별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과 관련해선 판결에 적용된 민주화보상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고문·조작사건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 판결을 두고는 관련법인 민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으나, 관련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통해 해당 판결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법원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처음으로 사법농단 피해 구제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을 헌재가 각하한 것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헌재의 이번 선고는 ‘이진성 소장 체제’의 마지막 선고였다. 앞서 헌재는 이 소장 등 재판관 5명이 다음달 퇴임하는 만큼, 현 체제에서 주요 과거사 관련 사건들을 매듭짓기로 결정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을 넘어 재판 자체를 취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헌재는 법원의 재판을 위헌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헌재법 68조 1항을 합헌으로 보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을 인정할 경우 사법체계가 실질적으로 4심제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로 인해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 상대 손배소에서 패소한 뒤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은 각하했다.

헌재가 ‘뜨거운 감자’인 재판소원을 피해간 점은 한계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경로를 열었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본다. 당장 민주화보상법 및 국가배상 청구권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됐다. 이들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대법원에서 판결이 변경될 경우 실질적으로 ‘재판 취소’의 효과를 갖게 된다. 대법원은 재심 청구를 적극적으로 인용해 과거의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는 게 도리일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드리운 그늘은 크고도 깊다. 과거사 사건 외에도 수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분노하며 책임자 처벌과 피해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잇단 압수수색영장 기각 등에 비춰볼 때, 법원의 수사 협조를 기대하는 일은 이제 무망해 보인다. 국회는 이미 계류 중인 사법농단 관련 특별법안들을 조속히 심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무너진 사법정의를 다시 세우고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책무가 국회에 있다. 정부도 보상·배상을 위한 정책적 조치들을 모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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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벌어진 쌍용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28일 6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경찰 진압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공식 인정했다. 파업 이후 9년. 지난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중 조합원까지 서른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이어지고 난 뒤였다.

각종 대테러장비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테러 현장이 아닌 노동자들의 쟁의 현장에 투입됐다. 더 나아가 경찰은 노사 자율 원칙에 의해 해결해야 할 노동쟁의 현장에서 쌍용차 사측과 노동자들을 함께 진압하는 ‘합동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사측이 고용한 경비용역의 폭력에 눈을 감았던 경찰은 파업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폭력집단’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댓글부대’까지 운영하며 여론전을 벌였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가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쌍용차 진압 보고서 발표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2009년 쌍용차 노조 진압 당시 조립공장 옥상 위에 있던 해고노동자 김선동씨가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나게 됐지만, 해고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가 119명에 이르고,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경찰 장비를 물어내라며 국가가 이들을 상대로 낸 16억7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역시 ‘파업 이후의 삶’을 옥죄고 있다. 

해고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소액을 기부하는 ‘노란봉투 운동’이 이어졌지만, 국가의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아달라며 시민들이 입법청원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손배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여전히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이미 1·2심에서 승소한 상황인 데다 경찰 내부의 반대 여론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위법했음이 확인된 마당에 계속 소송을 이어가는 것은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진상조사위는 “손배소 금액의 90%를 차지하는 헬기·기중기 파손비용을 노조원이 물어내야 한다고 인정한 1·2심에서 헬기를 동원한 진압이 위법했다는 사실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쌍용차 파업 진압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최종 승인했다고 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제기했다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혀 패소한 해고무효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정황도 드러난 상태다. 청와대와 경찰, 기업과 법원까지 공조한 지난 9년의 ‘벼랑 끝 해고자 내몰기’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선 정부와 경찰의 결단이 필요하다.

<선명수 | 사회부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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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엄벌주의에 반대한다. 가정폭력·학교폭력 등에 노출된 이들이 모두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범죄자가 강도 높고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환경은 특정 행동이 도출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 범죄자가 되었다면, 그들의 불운을 고려해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줘야 한다고, 사회 시스템으로 교화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론 재판장에서 너무 잔인한 말을 하는 이,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며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를 목격할 때 느껴지는 반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특정 개인을 ‘욕받이’로 쓰면서 분노의 감정을 급하게 소모하다보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양분으로 쓰일 분노가 줄어든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징벌이 필요한 범죄는 있다고 생각한다. 성범죄가 그중 하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악의로 성관계 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하거나, 혹은 아예 업자가 되어 모텔·여성화장실·탈의실 등을 불법촬영한 뒤 유포해 돈을 버는 디지털 성범죄자 및 동조자들에게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 수단이 미비하다는 점에 개탄한다.

나는 목격하고야 말았다. 피해자의 자살 소식을 “유작” 운운하며 농담처럼 전하고 낄낄대는 광경을. 성관계 동영상뿐만 아니라, 여자화장실 불법촬영물마저 “딸감”이라며 유통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이런 영상들이 이미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매일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것이 몇 년 전의 일이다.

불법촬영물로 돈을 쓸어 담아온 이들이 형성한 그물망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불법촬영물 유포자와 웹하드 업체가 ‘3 대 7’로 수익을 나누며 공생해오고 있었다. 웹하드, 필터링 업체, 영상물 삭제 업체는 모두 한통속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 여성의 영상으로 유저들의 유료결제를 유도하고, 그것으로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피해자가 알고 접촉해오면 삭제를 약속하며 돈을 뜯어내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다시 불법촬영물을 올려 또 돈을 벌고, 지워준다며 피해자에게 돈을 거듭 뜯어내고….

절망한 피해자가 스스로 삶을 끝내도 영상은 남는다.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촘촘한 착취의 그물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 98%는 남성이었다. 여성이라면, ‘몰래’ 사용되는 변형 카메라가 사방에 널려 있고 죄의식 없이 ‘몰카’를 소비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성적으로 착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성인이라면 이를 보고도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호기심에 몇 번 본 것까지는 이해해보자. 한국은 모든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니까. 다른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촬영된 영상이든 국내에서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소비한 것조차 그렇다 치고 넘어가보자.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과 영상의 비윤리성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뒤에도 계속 소비해왔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아닐까? 여러 언론사에서 이 주제를 주요하게 다룬 지 오래고, 이 주제를 파헤친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토론 프로그램이 잇따라 방영됐다. 수만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폭염을 견디며 변화를 외쳤던 여름을 건너온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차고 넘치게 주어졌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서명했다. 여성착취 성산업 근절에 넓은 포복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당국은 변형 카메라 신고제 도입과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유포자·웹하드 운영자 그리고 소지자까지 ‘엄벌’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의 신설을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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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대전에는 전화로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는 작은 정류소가 있다. 이 정류소에는 주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데, 전화를 걸어 버스가 언제 있는지, 나의 비행기 스케줄에 맞추어 가려면 몇 시 버스가 적당한지, 혹시 고속도로 교통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지 직원에게 물어보고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공항버스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더 이상 전화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버스 정류소 직원에 따르면 이로써 국내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할 수 있는 버스 정류소는 모두 사라졌다. 그는 그동안 이 정류소가 버스표를 판매하고 버스를 타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전에서 꽤 멀리 떨어진 무주나 공주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하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기도 했고, 본인의 여정과는 무관한 이 정류소로 전화해 어디에서 언제 버스를 타야 목적지로 갈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온라인 예약이 일상이 된 요즘, 이 정류소는 이런 방식의 예약이 도통 어려운 사람들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던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버스 정류소 이야기는 주요 서비스가 고도로 디지털화된 미래도시를 상상하게끔 한다. 전화로 시외버스 표를 예매하던 사람들은 잘 살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2021년 말 입주를 목표로 세종시 5-1지구와 부산시 에코델타시티를 국가시범도시로 지정하고 스마트시티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종시 스마트시티 구상안에 따르면 스마트시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움직임, 시민들의 행동들을 전부 데이터화해,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여 도시인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맞춤형 예측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도시”다.

스마트시티의 ‘스마트’한 성격은 도시 기반시설을 구성하는 기술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스마트시티의 필요조건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기보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구성하는 기술이다. 멋진 기술적 구상들로 가득 차 있는 스마트시티 구상안은 이를 잘 보여준다. 스마트시티의 혁신요소들은 가치, 서비스, 도시 설계, 기술 네 가지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이동시간과 비용의 절감이라는 ‘가치’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 정체가 없는 교통환경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실현되며, 이는 스마트 신호 시스템이나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도시 데이터 분석센터에서 인공지능으로 교통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들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세종 스마트시티 구상안에 빠진 것이 있다면 이곳에 살게 될 사람들이다. 스마트시티에 사는 스마트 시민은 어떤 사람일까? 스마트 시민은 생물학적 몸과 자아, 그리고 데이터로 구성될 것이다. 자아 식별 기술과 보안 기술은 이 셋을 안전하게 엮어 준다. 스마트 시민이 온전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화된 자기 자신이다. 스마트시티의 시민들은 5G 와이파이망과 스마트앱을 사용해 대의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여론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데이터센터가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모아질 것이다. 정치는 더 이상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지난하고 피곤한 과정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이러한 정치적 이상은 중국에서 일부 실현되고 있다. 과학기자 크리스티나 라슨은 지난 20일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실린 ‘데이터가 있는데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가?’라는 기사에서 디지털 기술과 통치를 정교하게 연결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들을 다뤘다. 스마트시티는 이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즉시 무단횡단 모습이 담긴 사진과 얼굴, 주민등록번호가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진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의 행동을 데이터화하고 인공지능 안면인식 기술로 분석한 후 시민들의 개인식별 정보와 연결시켜 얻어낸 정보를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처벌하는 것이다. 중국이 보여주는 ‘대화 대신 데이터’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디지털시티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도시의 생활이 스마트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스마트시티의 시민은 통신비를 충분히 지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17년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1인 가구 통신비 지출은 6만3000원이다. 이 금액은 같은 해 기준 최저 시급 6470원을 받는 1인 가구 구성원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한 달 209시간을 일하고 받는 월급 135만2230원의 약 4.7%이다. 즉 한 달에 약 9.7시간의 노동을 오롯이 통신비로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4인 가구와 중위소득으로 기준을 바꿔 계산해 보아도 한 가구 소득의 4.8%가량이 통신비로 지출된다. 여기에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 단말기 비용까지 더해야 한다. 결국 스마트앱 활용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앱’을 사용할 조건을 갖추는 데에만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다. 여러모로 스마트 시민이 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당장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노인이다. 노인들은 스마트앱과 같은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도 약하지만, 이 기술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소득을 통틀어 최저생계비 미만인 노인은 전체의 55.2%이다. 노인의 절반 이상이 절대적 빈곤상태인 것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이 유지된다면, 그리고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빠르게 고령화된다면 인구의 상당수는 스마트 시민의 조건을 갖출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스마트시티 곳곳에 설치된 혁신적 기술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에는 유토피아가, 국민들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된 중국의 스마트시티는 다소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기술이 약속한 행복이 특히 누구의 행복인지는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스마트시티 속 기술은 시민들이 디지털 앱 활용능력이나 통신비 지불능력처럼 스마트 시민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잘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스마트시티는 ‘스마트’한 것이 아니라 ‘스튜핏’한 것일지도 모른다.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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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물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서려는 참이었다. 바퀴가 고장난 카트는 자꾸 오른쪽으로 향하고, 문밖에 비는 무섭게 쏟아지고, 식사 때를 놓친 터라 마침 허기도 지고 해서, 그냥 시장 근처 분식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꼬치어묵 국물이 좋은 걸 보니 여름이 가긴 간 모양. 폭염에 파리만 날리던 이 집도 슬슬 바빠지겠구나 생각하면서, 어디 브런치 카페에라도 온양 어묵 국물을 커피처럼 홀짝이며, 이쑤시개로 떡볶이 떡을 찍어먹고 있다 보니 옆자리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일부러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일부러 안 듣기도 애매한 위치.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아무리 해도 안되고, 골뱅이가 참, 치킨만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비밀은 말이죠. 조각난 말들을 조합하니 웃음이 나왔다. 씁쓸해졌고 결국 눈물이 조금 났다.

상황은 이렇다. 대략 60대 중후반쯤 되는 부부가 그보다 좀 젊은 남자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손을 모은 부부의 자세가 공손하기도 하고 절실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약간 비스듬하게 앉은 남자의 자세는 보다 여유 있고 조금은 으스대는 느낌까지 든다. 부부는 최근에 치킨집을 연 모양인데, 누군가에게 베테랑 치킨집 사장을 소개받아, 이것저것 조언을 듣고 있는 중. 떡볶이와 순대와 어묵을 대접하며. 다음은 내가 들은 그들의 대화 중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

치킨만 튀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잘하겠는데, 누가 골뱅이라도 시키면 심장부터 벌렁거린다니까요. 자꾸 해보셔야 해요, 난 이제 누가 ‘골뱅이 하나요’ 하면 바로 물부터 올려요. 착착착이죠. 면 삶는 동안 다 끝나요, 썰고 무치고. 아! 일단 물부터, 그 생각을 못했네요. 익숙해지실 거예요, 자꾸 하다보면. 번데기는 어쩌죠? 도대체 맛이 안 나요. 다 비결이 있죠. 어떤 비결이오? 다시다 반 스푼, 정확하게 반 스푼, 더 넣어도 안돼요. 다시다는 어떤 거 쓰세요? 저는 C사의 다시다만 써요. 저기 D마트에 가면 대용량 D다시다도 있거든요? 저렴하죠. 그건 맛이 안 나요. 꼭 C사 걸로 쓰세요. 이따 같이 가면 알려드릴게요. 아까 또 뭐 사야 한다고 그랬죠? 앗, 기름종이. 그리고 그거 적어놓으셨죠? Y번데기. 꼭 그거 쓰세요. 한 통에 400원 절약이면 그게 얼마예요. C다시다로 끝납니다. 고맙습니다. 저희가 자꾸 시간을 뺏어서 어쩌죠? 아니에요. 다 물어보세요. 궁금한 건 뭐든.

골뱅이 주문에 심장부터 벌렁거린다는 저 여인. 어디 숨어버리고 싶다고 고백하는 저 여인을 어쩌려나.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주문은 밀려드는데 스테이크는 타고 있고, 수습한다고 종종거리다가 기름에 데고, 오븐 속 가지구이는 속절없이 쪼그라들고, 주문은 더 밀리고 머릿속이 하얘지고 발이 딱 굳어져버리던 순간. 그런데 골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그 말에 내 심장이 아려왔다. 구색을 맞추느라 넣기는 했으나, 먹어만 봤지 만들어본 적 없는 골뱅이와 번데기의 절실함. 그런데 거기에 무슨 비밀특제소스인 양 알려주는 다시다 반 스푼이라니. 번데기라니. 골뱅이 착착착이라니. 도대체 어쩌시려고 그 길에 들어서신 겁니까. 앞으로 어쩌시려고.

주택가에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 100m 남짓의 골목에는 다섯 개의 가게가 있었다. 2년 사이 그 길에 상가로 재건축한 주택이 일곱 채, 그곳에 스무 개 남짓의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미용실, 꽃집, 사진관, 맥줏집, 와인집, 디저트집, 빵집 등 업종도 다양하게. 그중 한 가게는 술집이었다가 카페였다가 한동안 비어 있더니 얼마 전 유명 베트남 커피 체인점이 들어왔다. 스무 개 중 불과 3개월 만에 문을 닫은 가게가 세 곳. ‘임대문의’ 플래카드를 붙여놓은 채 그냥저냥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게가 두 곳. 계약기간까지만 어찌 버티다가 다른 일을 도모하리라 속내를 밝힌 곳이 두 곳이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겠으나 새롭게 실내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두 곳. 어찌보면 핫한 동네 골목의 당연한 모습이자, 그 이면의 음울한 측면이기도 하다.

자영업자 폐업률 수치를 두고 사상 최악이라느니, 입맛대로 인용하고 왜곡하는 언론이 어쩌니저쩌니, 정부의 경제대책 수정이 필요하느니, 근본적인 환경을 바꿔야 하느니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준비도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자영업자의 길에 뛰어든 사람들 탓도 한다. 이 부부는 바로 그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특별히 음식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운 바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가게부터 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영업자 폐업률에 숫자를 더할 것이 분명한 바로 그런 사람들. 어쩌다 그들이 치킨 골뱅이 번데기 호프집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편의점도 아니고 유명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특별한 음식을 내놓는 고유한 음식점도 아닌, 적어도 20~30년 전부터 있어왔던 흔하고 빤한 호프집을 이 시대에 기어이.

내게 조언과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접으라고 끼어들고 싶었다. 뭔가 아는 척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가게가 잘되어서 돈을 벌면 좋고, 안되어서 쫄딱 망하면 그 얘깃거리로 소설을 써서 좋으니, 어찌 되었든 꽃놀이패라 한번 가보시라 했던 내 친구의 말처럼, 아직은 젊고 물러설 자리도 있는데다, 지금도 이 이야기로 원고료를 받기도 하는 자가 아닌가. 어디서 감히. 골뱅이 주문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번데기 통조림 요리에 전전긍긍하는 저 나이든 여인의 선택을, 어쩌면 마지막 투자가 될지도 모를 선택에 무슨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다시다 반 스푼과 400원 싼 번데기 상품정보가 더 절실한 저들에게.

빗속을 뚫고 가게로 가는 길. 순대 접시를 남자 쪽으로 밀어주며 더 드시라 권하던, 그러면서도 뭔가 놓친 게 없는지 질문을 생각해내려 애를 쓰던 그 여인이 눈에 선했다. 번데기와 다시다 반 스푼을 운운하던 얘기를 듣다보니 문득 오래전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번데기 맛이 떠올랐다. 고깔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신문지와, 거기에 꾹꾹 눌러 담은 번데기. 종이가 터져 손바닥에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던 번데기 국물과, 그 국물 맛이 아쉬워 신문지를 쪽쪽 빨아보기도 했던 ‘찝찌르한’ 번데기의 맛. 심장이 찝찌르하다가, 찌르르 아파왔다. 이게 번데기 맛인가 싶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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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해 냈다.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 경쟁하는 사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자원배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기본 법칙이다. 한국 경제에는 이런 수요·공급의 법칙보다 더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바로 정치다. 정치란 세상사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고, 정치가 경제에 참견하는 것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 경제의 각종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이 급격히 축소됐고, 소득격차는 확대된 걸로 나온다. 투자나 소비, 생산 지표 모두 위축돼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낮췄다. 그런데 지표들에 대한 해석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으로 일자리가 사라졌고, 소득양극화가 벌어지며 성장이 안된다고 한다. 반면 정부는 고용지표 악화는 조선과 자동차산업 등의 구조조정과 경기불황 등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영업자 등의 소득은 줄었으나 임금근로자의 소득이 크게 늘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나고 있다고 한다. 대책은 진단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갈린다. 보수야당·언론은 소득주도성장을 당장 때려치우라 하고,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가속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회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포문을 먼저 연 것은 보수 쪽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으로 수세에 몰린 이후 남북관계 개선으로 설 자리마저 위태위태하던 차에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경제지표 악화가 출현했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는 경제학계에서 오랜 논쟁거리지만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 결론이 내려지진 않은 상태다. 그래도 경제지표만 나쁘게 나오면 최저임금 인상과 연결지으며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린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줬을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실증적으로 확인된 건 없다. 고용이 악화됐으니 소득분배가 나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직 노령층이 대거 편입되는 등 소득조사 대상 표본집단이 크게 바뀌어 과거와 액면 수치만 놓고 비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통계청의 주의 요청은 무시한다. 원하는 답이 나왔으니 과정은 상관하지 않는다. 경제의 기본인 과학적 분석은 없고, 정파적 이익에 따른 정치적 공세만 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의 최저임금은 졸지에 ‘마녀’가 됐다. 보수야당·언론이 정치·사회 문제 등에서 오랫동안 써왔던 ‘낙인찍기’ 프레임 전략이 연상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기업 위주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안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정부를 공격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약화시키고 권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2020년 총선 때까지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는 보수의 프레임은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보수 측이 경제정책을 조롱하며 항복하라는 식으로 나오니 정부도 맞대응을 한다. 양극화를 확대하는 기존의 불평등·불공정하고 불안정한 한국 경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서로 조화를 이뤘을 때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조합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이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생산과 고용이 함께 증가하는 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산업,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성장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혁신적 신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공정경제가 뒷받침해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 이후 현실 경제가 경제 이론에 맞춰 완벽하게 돌아간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이들 정책의 조합은 지금까지 한국에선 제대로 시도해본 적이 없는 미지의 길이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현재 드러나는 경제지표의 악화가 시행착오의 일부일 수도 있다. 시행착오가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원인과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착오를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약점을 내보이고, 더욱더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극단적 정치 공방은 한국 경제의 난국을 돌파할 해법을 찾아낼 합리적인 토론과 협의의 장을 막아 버린다. 한쪽은 비난만 하고, 다른 한쪽은 우리 갈 길만 가겠다고 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속병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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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명박 정부는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에만 정부 저지선인 4%를 훌쩍 뛰어넘더니 3분기에는 4.8%까지 치솟았다.

민심은 들끓었고 장관들은 동분서주했다. 난데없이 물가감시기구를 자처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라는 거창한 조직을 신설, 라면 제조사들과 “왜 비싼 라면을 출시했느냐”며 드잡이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비 안정화 점검단’이라는 걸 꾸려서 원비를 올린 유치원의 리스트를 뽑아 교육청에 통보, 원비 안정화를 ‘당부’했다.

대형외식업체에는 가격 인상 자제를 ‘협조요청’하고, 편승인상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골목식당들의 밥값 인상 억제를 ‘계도’하는 등 갖가지 구식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당부와 요청·계도였지 사실상 값을 올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윽박지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잡는다’는 말에 어폐가 있었던 것이 당시 국제유가·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불안한 물가국면을 겪던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솟던 물가상승률이 갑자기 한국은행이 내놓은 연간 물가상승률 예상한계치인 4.0%에 오차 없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해 11월 구성 품목들을 새로 넣고 빼서 내놓은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 때문으로, 통계청은 “새 지수에 따라 10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라고 공표했다.

통계청은 “국제기준 권고에 따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3년에 등장한 권고를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갑자기 이행한 이유까지 설명해내지는 못했다. 지수 구성은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그 수상한 시점 탓에 꼼수 개편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한참이나 난타당했다.

청와대가 최근 단행한 통계청장 교체 인사가 논란이다. 악화된 고용 통계가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저소득층 소득분배까지 악화됐다는 나쁜 소식 때문에 경질된 것 아니냐는 게 야당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골자다.

여기에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게 심혈을 기울였다”거나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말까지 더해지며 논란은 증폭되는 형국이다.

“통상적인 인사일 뿐”이라며 말을 아끼던 청와대는 파문이 확산되자 “통계청 독립을 훼손할 지시를 내린 적이 전혀 없다”며 부랴부랴 차단에 나섰다. 황 전 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분의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통계청의 최근 생산물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여왔다. 소득분배지표 악화와 관련해 표본추출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며 구체적인 설명과 빠른 대처를 주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여당의 불만이 금시초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는 어쨌든 이번 인사를 ‘통상적인 인사’라고 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애써봐도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차관급 인사를 둘러싼 그 모든 조건과 환경이 ‘지금이 적기’라고 외치고 있어도 시기적으로 정치적인 오해를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기다렸어야 한다. ‘다급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자초한 셈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격언은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이런 정무적 판단조차 고려하지 못하는 수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차관급 인사 하나로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정부라는 의혹의 꼬리표를 하나 더 달게 됐다. 가뜩이나 불리한 소득주도성장 담론에서 상대에게 또 선수를 내준 패착이다.

<이호준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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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개그보다 아재개그가 훨 재미나지. 오도깝스러운 몸짓으로 까불어봐야 이맛전이나 조금 펴질 뿐. 가게 간판이 ‘맥주날드’나 ‘스티브잡술’ 정도 돼야 들어가 볼까 호기심.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김봉준, 박은태, 이윤엽, 최병수, 기독교 선수로 나까지 다섯이 그림전시를 열었는데 제목이 ‘민중미술과 영성’. 쬐끔 거창하다.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민중미’가 빠지고 ‘술과 영성’만 찍혀 있네. 불경하나 틀린 말도 아니다. 민중미술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술을 자셨을까. 기운 빠진 화가들은 짜장면과 짬뽕만 한 젓가락 뜨고 1차에서 굿바이. 순복음교회의 건너편엔 술폭음교회가 있었노라 농을 쳤다. 이젠 이 바닥도 간이 쓸모를 다해 주저앉은 형국인가. 비아그라보다 강력한 ‘웃기그라’를 사용해보았으나 상대방은 입술만 반쯤 벙긋. 무안해서라도 얼른 헤어졌다.

세발자전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어린 날엔 기운이 셌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하루종일 뛰놀고도 힘이 남아돌았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날마다 행복한 디즈니랜드였다. 이런저런 전시로 서울에 두어주 머물고 있는데 숨도 가쁘고 힘이 많이 달린다. 홍삼캔디라도 먹어야 하나. 사거리에 ‘인력시장’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인력이라 함은 사람의 힘, 사람의 노동력을 가리킴이겠다. 벽에 매대기라도 치게 할라치면 숭굴숭굴하게 생기고 살팍지게 생긴 사내를 하나 낚아와야 한다. 나를 글이나 쓰는 산송장으로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시골생활이 오래라 팔뚝이 굵고 일손도 야무져서 부라퀴라 할 만하다. 인력시장에 나가도 빠질 몸은 아닌데, 도심의 공기는 내 다리를 잡아끌고, 다급한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기운이 빠진다. 밖에 나갈 때는 자르르 빼입고 나가지만 바지라도 걷으면 무릎까지 상처투성이. 산골에 살고 집을 건사하려면 그렇게 된다. 믹스커피에 밥을 말고 재봉틀 발판을 베개 삼아 눕기도 했다는 미싱 노동자에 비하면 설렁설렁 사는 거지만. 솔길을 걷고 가을바람 불면 ‘인력’이 생길까. 인력시장에 팔릴 만큼 힘이 생기진 않더라도, 우리들 조금만 힘을 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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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그린 책 <완당평전>(학고재)을 출간했다. 마땅한 추사 연구의 입문서가 없는 상황에서 독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런데 채 1년이 되지 않아 고서연구가 박철상씨가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을 발표, 책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박씨는 ‘완당’ 당호의 내력, 추사 편액과 주련에 대한 서체, 추사의 시구 번역 등 <완당평전>의 오류를 40여군데나 지적했다.

<완당평전>에 대한 젊은 연구자의 비판은 저명한 미술사학자로, 추사 연구가를 자처하는 유홍준 교수에게 뼈아픈 일이었다. 굴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 교수는 박씨의 지적을 수용하고 그 책을 절판했다. 그러나 추사 연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유 교수는 지난 4월 새롭게 쓴 <추사 김정희>를 내놓았다. 책의 말미에는 “박철상님의 오류에 대한 공개적인 서평은 귀한 지침이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 교수의 신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창비·이하 <산사순례>)에서도 오류가 발견됐다. 이 책 ‘문경 봉암사’편에서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돌아가신 강우방 선생’이라고 쓴 것이다. 원로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원장은 올해 77세로 현재 미술사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창비 측은 “저자인 유홍준 교수와는 관계없이 편집자가 한 실수”라며 책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산사순례>는 유 교수가 새롭게 쓴 저서는 아니다. 출판사가 우리 산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하 <답사기>) 시리즈에서 산사 답사기만을 뽑은 것이다. 1993년 간행된 <답사기> 1권의 ‘문경 봉암사’편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강우방 선생’이라고 되어 있다. 기존 콘텐츠를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유 교수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 교수는 <산사순례>의 서문 ‘산사의 미학’을 새로 썼고, 표지에도 ‘유홍준 지음’이라고 내걸었다. 유 교수는 저자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 있게 해명해야 한다. 출판사 창비는 유명 인사의 명성에 기대어 기존 콘텐츠를 재탕, 삼탕하는 셀럽 마케팅을 재고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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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29일 강남의 한 사립여고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해보니 이 학교 교무부장이 재학생인 두 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당사자와 교장, 교감 등 3명을 중징계하라고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감사 결과 교무부장은 지난해부터 두 딸이 속해 있는 학년의 중간·기말고사 총 6차례 시험지를 검토·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그는 공개된 장소에서 1분밖에 문제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는 고사담당 교사가 자리를 비울 때 장시간 시험문제를 검토한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부장이 시험지를 유출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 측이 시험 출제를 감독하는 교무부장의 두 딸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종전대로 업무를 맡긴 것은 명백한 학업성적관리지침 위반이다. 이 학교에서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니 교장 등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번 감사도 전교 59등과 121등이던 자매가 다음 학기에서 2등과 5등, 문·이과 1등으로 성적이 크게 올라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교장·교감에게 책임을 물어 마땅하다. 정답이 바뀐 시험문제에서 두 딸이 정정 이전의 정답을 적어낸 경우가 11번 있었다는 점도 수상하다. 서술형 문제에서까지 정정 전 정답과 상당히 유사한 답을 써낸 것은 시험문제 유출 의심을 더한다.

교육청이 수사를 의뢰한 만큼 경찰은 시험지 유출 여부를 밝혀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음달 서울시내 전체 중·고교를 대상으로 점검한 뒤 시험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학생과 교직원 부모를 분리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현행 입시 제도와 교육현실이 근본 원인이다. 과도한 내신 경쟁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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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에 갔을 때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자 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니 이제 좀 철이 들겠거니 싶었는데 여태도 담배를 피우냐며 지청구가 이어졌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내 역시 시부모 편을 들며 어찌해 볼 도리가 없노라고 한탄 같은 비난을 덧붙였다. 그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저 놈이 누구 자식인지 모르겠다며 오래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 집안에 술 먹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저 놈 혼자 이기지도 못할 술을 처먹고 부대껴서 바르작거리기 일쑤였다며 끌탕을 하고는 지 아비도 안 피우는 담배를 자식 놈이 뻐끔대는 게 얼마나 불상놈 같은 짓거리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아버지까지 합세하여 속창아리 없는 놈, 뼈가 녹아서 죽어봐야 알지 등등 온갖 악담으로 나를 궁지로 몰았다. 종내 나는 이 지청구들이 담배 끊으라는 애정 어린 충고인지 혹은 묵은 감정을 털어내려는 시도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며느리의 환심 좀 사보려는 당신들의 소심한 작당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참을 그러다 어머니가 당장 끊어라, 죽어도 못 끊겠냐, 그럼 거시기라도 해봐라 하기에, 거시기가 뭔데요 물었더니 거 뭣이냐, 건성으로 피우는 담배, 그거라도 해봐라 하는 거였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전자담배와 같은 단어가 입에 붙지 않았을 테고 설령 그 단어가 혀끝에서 맴돈다 해도 당신이 기억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수월했을 테다. 어머니가 보기에 전자담배는 건성으로 피우는 담배이고 그렇게 성의 없이 대충대충 피우다 보면 결국 담배 자체에도 무심해져 끊게 되지 않겠느냐는 속내까지 담은 표현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이 말이 그려낸 이미지가 너무나 흐뭇해서 전자담배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던 이전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날의 풍경이 들어서고 말았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전유했던 한 단어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재전유했던 거다. 이미지의 재전유는 정치보다 효과적인 문화적 전복이다. 전범기의 경우도 그렇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는 오랜 세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에게는 전범기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욱일기이다. 그들은 한 번 전유한 욱일기의 이미지인 아침에 떠오르는 해, 다시 말해 세계 위에 군림하는 정복자라는 알레고리를 어떤 정치적 공세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비판에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그들의 확고부동한 이미지에 균열을 내는 건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 나는 그런 방식을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다. 커트 보니것 소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에는 항문을 그린 삽화가 있다. 한눈에 보아도 그가 그린 항문은 일제 전범기와 놀라울 만큼 똑같다. 동그란 항문이 있고 항문 주변의 주름살을 표현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선들까지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욱일기의 항문이 조금 더 크다는 것과 항문을 비롯해 항문의 주름살이 새빨갛다는 점뿐이다.

아마 보니것이라면 자신의 그림과 욱일기의 차이를 치핵을 앓는 항문과 그렇지 않은 항문이라고 설명했을 듯하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보니것의 그림은 보편적인 항문을 가리키는 듯하고 욱일기의 항문은 항문 자체가 너무 커다랗기 때문에 무언가를 배설하는 구멍이 아니라 외려 배설물을 삼키는 구멍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욱일기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이처럼 항문과 항문 주변의 주름이 새빨갛게 그려진 걸 보면 치질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며 내치핵이 바깥으로 심각하게 탈출하여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인 듯하다. 너무나 오랜 세월 노출되어 괴사가 진행되는 중이니 한시도 지체 말고 병원에 가보시라고. 보니것의 소설을 읽은 뒤로 나는 즐겁다. 내가 재전유한 욱일기는 더 이상 전범기로만 인지되지 않지만 아쉽거나 속상하지는 않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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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비리(경향신문 8월27일자 1면 보도)에 대해 ‘음모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함 전 사장이 재직 중 30대 여성 집 근처에서 상습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사태를 “강원랜드의 치졸한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였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바람직한 시행 방향은? 토론회에 앞서 김성태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된 황인오씨와 관련돼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간첩 전과자를 공기업 상임감사에 앉히려는 정부’라는 제목 아래 황씨가 강원랜드 상임감사 후보 2명에 포함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결국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강원랜드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른 파장을 덮기 위해 경향신문에 함 전 사장의 3년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흘려줬다는 추측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2개월 전 비리 제보를 접하고 추적 취재를 해왔던 기자 입장에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김 원내대표 추측대로라면 강원랜드는 두 달 전부터 조선일보 보도를 예상하고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경향신문에 제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지난 2일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함 전 사장 인터뷰는 조선일보 보도 하루 전인 8월23일 이뤄졌다. 그래도 김 원내대표가 음모론을 고집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함승희 사건’에 묻혀 ‘종북몰이’의 호기를 놓친 한국당 입장에서 음모론을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제1야당 원내대표라면 실체도 불분명한 ‘음모론’의 덫에 빠지기 앞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국민적 공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점은 주문하고 싶다. 매 주말 관용차량을 타고 30대 여성 집을 찾아가 밀회를 즐기고 비서진을 통해 결제를 시키고도 탈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함 전 사장은 한국당 정권이 키운 ‘괴물’이다.

“저희는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할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달 11일 여의도 당사 현판을 철거하면서 한 말이다. 아직도 그 다짐이 유효한지 묻고 싶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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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최근 자동차가 열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방전됐다. 지인에게 산 이 경차는 연식에 비해 상태가 꽤 좋아서 그동안 한번도 나를 속 썩인 적이 없었다. 무선키의 버튼을 누르면 항상 멀리서부터 ‘딸깍’ 하는 경쾌한 소리로 화답하던 자동차가 어느날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라니. 혹시 이렇게 될까봐 시동을 끌 때는 언제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선까지 완전히 뽑아두었는데 말이다.

어디 누전되는 곳이 있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정비소로 끌고 갔는데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던 정비사는 차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배터리는 교체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원인일 리가 없고, 발전기 성능도 정상이었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차인데 처음 방전되고 난 후에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전력을 많이 썼으니 며칠만 세워둬도 다시 방전될 수밖에요. 에어컨 계속 트셨죠? 에어컨이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잡아 먹거든요. 게다가 블랙박스 같은 기기들도 다 켠 채 운행하셨을 테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생각해보니 그랬다.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하다보니 자동차는 주말에만 쓰는 터라 가뜩이나 충전할 수 있는 운행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에어컨은 물론이고 앞뒤로 단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휴대폰 충전까지 전력을 그렇게 많이 썼으니.

정비사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운행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어려우면 한동안은 2~3일에 한번씩 10분 동안만이라도 시동을 켜놓으시든가요. 요새 같은 날씨에 에어컨을 안 틀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전력 사용도 조금 줄이시고요.” 그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에어컨을 단 1초도 끌 수 없었다. 에어컨을 끄면 찜통이 되는 차 안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고통받은 올여름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이제 에어컨은 거부해야 하는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 필수품이 됐다는 깨달음. 올여름 전국의 평균 폭염일수는 31.2일로 1994년을 넘어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열대야는 16.7일 연속 이어졌고, 공식 최고기온이 40도를 돌파하는 등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밤에도 에어컨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든 이런 극단적인 여름 더위가 앞으로는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선풍기의 더운 바람에만 의지하다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노약자들을 생각하면, 저소득층의 정보접근권을 위해 보급된 저가형 스마트폰처럼 당장 보급형 에어컨 개발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올여름은 우리에게 교훈뿐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도 남겼다. 그것은 아마도 방전된 자동차가 나에게 던진 숙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의 배터리 용량이 한정돼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쓰는 전력 공급의 한계는 잘 실감이 되지 않는다. 수요가 느는 만큼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단지 공급을 어떻게 늘릴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만 치환된다. 그러니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탈원전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이는 갚을 수 없는 빚을 내서라도 배터리 용량이 큰 차를 사면 방전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빚을 내 지구도 더 큰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결국 원전은 미래 세대에 갚지 못할 빚만 지우는 셈이다. 게다가 폭염이 가속화되면 원전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독일과 핀란드, 스웨덴 등은 올여름 일부 원전 가동을 일시 중지했다. 폭염으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 원전의 냉각수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여름 폭염이 나에게 남겨준 숙제는 이것이다. 에어컨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에어컨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요즘 정비사의 조언에 따라 오밤중에 주차장에 내려가서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오곤 한다. 두 번이나 방전 사태를 겪고 나니 갑자기 실내등을 켜는 데 들어가는 전력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효과적인 전력 사용 포트폴리오를 짜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 대신 스마트폰 앱을 쓰면 좀 나을까. 야심차게 앞뒤로 달아놓은 블랙박스는 안전한 곳에서는 가능한 꺼둬야겠다. 데일 듯이 덥지 않다면 1시간에 5분 동안만이라도 에어컨 대신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자.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에너지는 한정돼 있는데 에어컨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전력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줄여야만 한다. 밤에도 30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 에어컨을 틀면서, 빨래를 말리기 위해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하는, 그 모든 삶의 패턴을 누리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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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폭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