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이 참여하는 ‘민생경제법안 태스크포스(TF)’가 7월31일 본격 가동했다. TF는 규제혁신 관련법과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 지원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인식 아래 여야가 합의해 만든 정책협의체다. 3당 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로 구성된 참석자들은 이날 회의에서 각당이 처리하고 싶은 규제혁신·민생법안들을 모두 제출했고, 6인이 다 한번씩 검토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추진해온 이른바 규제샌드박스 법안 4건에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포함한 ‘규제혁신 5법’,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요청한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이 중점 법안으로 꼽힌다. 여야는 8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매듭짓는다는 입장이다.

시작은 좋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의견이 접근된 법안도 있고, 추가로 더 논의해야 할 법들도 있어 따로 분류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함진규 한국당 정책위의장도 “법안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여야 간 이견이 있으면 조정하면 되고, 이견이 없는 무쟁점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투자를 활성화하고 성장 잠재력을 높이자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여야가 모처럼 의기투합해 만든 협의체인 만큼 기대가 크다.

그동안 국회가 일손을 놓고 있는 사이 우리 경제는 내수와 수출, 고용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9%로 주저앉았고, 취업자 증가폭은 5개월째 10만명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한다고 하지만, 국회가 입법을 통해 뒷받침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1만건에 달한다. 이제는 국회가 경제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규제혁신 등은 더 이상 미룰 과제도 아니거니와 미적거릴 여유도 없다. 후반기 국회는 밤을 새워 일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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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 후보는 며칠 전 기자간담회에서 “친노니 친문이니 하는 것은 언론에서 하는 표현이지 내부에선 잘 못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인 송영길 후보는 31일 한 인터뷰에서 “세 후보 중  가장 친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후보는 친노라고 평가받는다”고 갈라쳤다. 조직폭력배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거취를 둘러싼 김진표 후보와 이 후보 측의 대립을 두고는 “친문 좌장과 친문 실세들의 골육상쟁”이라는 얘기가 버젓이 나온다. ‘100년 정당’을 다짐하는 민주당의 당대표 경선판이 퇴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친문, 진문, 신문, 친노 등속이 공공연히 운위되고 통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지지율 높은 대통령과의 관계를 앞세우는 건, 경선의 승패를 좌우할 친문 당원들을 향한 선거전략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더 친문’과 ‘덜 친문’이 경쟁의 중심이 되고 실제 당락에서의 잣대가 된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계파 논리만을 갖고 집권당 대표를 뽑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집권 중반기를 이끌 여당의 대표가 짊어져야 할 소임은 막중하다. 정권의 성패를 가름할 개혁입법 과제를 수행해야 하고, 2020년 총선 공천을 책임져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자신있게 내세웠던 ‘민주당 정부’는 간데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옅어진 집권당의 위상도 곧추세워야 한다. 집권여당의 지도부 경쟁은 개혁입법 추진, 당·청관계 정립, 대야관계 설정, 경제 회생, 정치개혁, 당의 진로 등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마땅하다. 한데 비전과 정책은 메아리 없는 구호로만 펄럭이고, 실은 ‘누가 대통령과 더 가깝느냐’를 놓고 쟁투하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으니 한참 잘못가고 있다.

반면교사 삼을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인 새누리당은 친박·진박·뼈박·골박·곁박·잔박 등등 온갖 유치찬란한 조어들을 앞세워 충성 경쟁을 벌이다 결국 ‘막장 공천’ 끝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통령과의 관계만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추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게 먼저다. ‘대통령과 잘 통한다’는 것만 앞세울 게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소통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특정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정권과 나라를 책임질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섰다는 점을 몰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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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압박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7월31일 공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미공개 문건 196개를 통해서다. 문건 내용은 엘리트 법관들이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사법행정은 뒷전인 채 공작에 골몰했던 법원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자아낸다.

국회 관련 문건을 살펴보면, 2015년 당시 행정처는 국회 법사위 의원들의 개별적 현안을 분석해 ‘맞춤형’ 설득 방안을 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상고법원 반대론자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을 향해선, 서 의원이 ‘법관 재임용 탈락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변론을 종결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이 거론됐다. 다른 의원들에 대해서도 대법관·고법 부장판사 등 고위법관과 전관 변호사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수도권 외 지역구를 둔 의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고법원 지부’ 설치를 검토하자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언론 관련 문건들에는 ‘기사 거래’ 시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온다. 행정처는 조선일보를 집중 공략 대상으로 설정하고 변호사 상대 설문조사, 좌담회, 내부 필진 칼럼과 외부 기고문 게재 등을 구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 설문조사와 관련해선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광고 등을 게재하며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대금을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일련의 문건이 생산된 이후 조선일보에는 상고법원 도입에 우호적인 기사들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문건은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조선일보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문건의 내용도 심각하지만, 저변에 깔린 인식과 표현도 저열하고 조야하다. 행정처는 상고법원 추진에 무관심한 여론과 관련해 “일반 국민들은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며 “이기적인 국민들 입장에서는 상고법원이 생겼을 경우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상고법원 어젠다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면서 “외부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평소 정의와 인권을 외치던 법관들이 주권자를 깎아내리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전쟁까지 들먹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문건을 작성한 판사들은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

뒤늦게 공개된 문건들을 보니 현 법원행정처가 왜 그토록 공개를 꺼렸는지 짐작할 만하다. 기존에 제기된 의혹 외에 대국회·언론 로비 시도까지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였을 터다. 안철상 행정처장은 지난 5월 특별조사단장 자격으로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이후 재판거래 의혹을 계속 부인해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를 약속한 뒤에도 검찰의 자료 제출 요구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안 처장이 자료 제출을 지휘하는 사법행정 책임자로 적합한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추가 공개된 문건 내용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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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지낸다고 했다. 목소리도 얼굴도 보이지 않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하는 근황은 담담했다. 신경정신과에 입원해 한 달간 치료를 받았고 휴직 중이라 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였다가 복직했다. 오랜만에 그에게 안부를 물었던 것은 그의 동료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파업 이후 서른 번째 희생자다.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대한문 앞에 빈소를 마련한 7월3일 이래 그는 거의 매일 그곳에 있다. 2012년 4월5일부터 그 이듬해까지 꼬박 1년, 그는 대한문 앞에 처음 마련됐던 분향소 천막에서 사계절을 났다. 사망자 24명의 영정을 분향소에 모셨던 때다. “예전에도 분향소를 찾아왔던 분들이 다시 많이 찾아오세요. 빈소를 찾는 분들이 ‘미안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토록 미안함을 계속 느껴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온전할까 싶습니다.”

조문객들이 뜸할 시간이면 방명록을 들춰보며 그들이 남긴 말을 하나씩 읽어본다는 그는 서른 명이 희생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 사회의 목격자들, 그 고통에 예민했던 사람들의 마음의 안녕을 오히려 내게 물었다.

1970년대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라는 말을 처음으로 개념화한 사회학자 에릭슨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삶의 생체조직을 훼손하는 일격’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 종교갈등으로 인한 인종청소, 내전 등을 거치며 집단 트라우마를 겪은 공동체에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 자살 혹은 생명을 거는 위험한 행동, 여성에 대한 폭력, 수치심과 굴욕감, 전통적 가치의 훼손, 세대 간 갈등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게 이 현상을 연구해온 학자들의 공통된 발견이다. 

정리 해고가 ‘사회적 살인’이라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인한 ‘사회적 살인’을 끊임없이 목격해왔다. 재난을 멈출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목격자가 된 사람들은 단지 공감의 눈물만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무력감과 수치심, 죄책감을 더불어 안게 된다. 

극한의 조난신호가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동안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대한문에 쌍용차 빈소가 마련되던 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빈소 설치를 강력히 저지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망자의 영정을 앞에 두고 “시체팔이 그만하라”며 막말을 퍼붓는, 상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졌다.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상황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부정적 결과인 가치의 붕괴다.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의 확보다. 해고 노동자에 대한 복직이 시작된 2016년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 위해 노력”이라는 노사 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2017년부터 다시 29번째, 30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선별성 없는 복직이 이뤄져야 그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도 안전감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붕괴된 세계관을 회복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언젠가 복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희망 고문’이라 불러왔다. 희망이란 말이 뼈에 새겨지는 고통이 되는 현실을 10년째 살아온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물구나무선 희망이 제자리를 찾을 때, 재난의 목격자들로서 집단 트라우마를 겪던 시민들도 죄책감으로부터 일어나 자신과 타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마종기 시 ‘희망에 대하여’ 중)라는 믿음을 두려움 없이 다시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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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의 죽음에 반응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한 사회의 품격과 문화의 수준을 바닥까지 보여준다.

노회찬 의원의 자살이 야기한 여러 가지 반응과 우리 모습도 실로 깊이 성찰되고 기억될 만하다. 거기에도 ‘헬조선’의 캄캄한 심연과 거기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슬픔과 분노가 병치되어 있다.

자살과 애도 문제에 대한 홍준표 부류 정치인들의 무지는 차치하고, 나에겐 특히 노회찬 의원의 죽음 다음 날 조선일보의 1면 편집이 충격이었다. 이는 고인의 죽음을 그것도 어린 야구 선수들의 사진을 이용하여 능욕했을 뿐 아니라, 슬퍼하는 많은 시민들을 조롱하기도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운영해온 ‘1등 신문’이라 한다. 그들이 가진 높은 학벌과 많은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증오와 조롱에 소용되는가? 또 얼마 전 새삼스럽게 세간에 충격을 준 ‘재기해’ ‘태일해’ 같은 참람한 언어도 기억한다. 자살과 타인의 죽음에 대한 일베나 워마드의 태도는 조선일보 7월24일자 제1면과 얼마나 큰 거리를 갖고 있을까? ‘재기해’ ‘태일해’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우선은 동료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사람의 생과 죽음에 대한 무식, ‘인간성’과 언어의 빈곤들일 것이다. 그런데 점점 보통의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잔인성보다 더 안타깝고도 새로운 것은, 그 모두를 느끼고 알면서도(?) 자극과 공격을 위해 일부러 취하는 위악과 ‘관종’의 황폐한 정신 상태겠다. 그러면 그것은 또 어디서 왔을까? 만약 일베나 워마드의 언동이 이 같은 상태 때문에 분노와 조롱 외에는 눈에 안 뵈는 철없음의 발로라 한다면, 이 사회에는 그보다 더 무자비한 진영 논리와 타인을 향한 적대가 횡행하고 그것이 소위 ‘정치’라는 것으로 돼 있다.

사실 정치이념과 패당은 죽음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애도를 가로막는 현실의 힘이다.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우리는 타자와 ‘적’의 고통에 더 무심·무감각하다. 애도는 하찮은 이념과 물리적 거리 따위에도 영향 받으며, 어떤 죽음은 아예 눈에 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설사 누군가가 보기에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악인이나 ‘적’이라 해도, 죽음 앞에서는, 또 자살 앞에서는 산 자는 멈추고 자제해야 한다. 모든 죽음이 무지막지한 권능으로써 존재함의 허무와 존재자가 걸치는 업보와, 돈과 아파트와, 허명과 학벌의 허망을 가르쳐주지만, 자살은 특히 사회의 비참과 관계의 한계를 증거한다. 도덕적 궁지에서, 고독의 상황에서만, 자살은 발생한다. 생의 모든 순간이 죽어 마땅하게 이뤄진 그런 인간은 없고, 누구도 타인을 향해 ‘재기해’ 따위를 입 밖에 낼 권리가 없다.

우리는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하라’ 같은 성현의 가르침을 지킬 능력이나 ‘적’이나 먼 타인의 영혼마저 연민할 깊이를 못 가진 범속한 인간이기에, 그들의 죽음 앞에서는 그냥 잠시 멈추고 묵례하면 될 듯하다. 침묵이 증오와 비참을 그나마 줄이고, 무엇보다 결국 죽음을 피치 못할 우리 가련한 영혼을 더 비루하게 만들지 않는 방법인 듯하다. 

홀로 결정하고 자기의 몸을 자해해서 선택된 갑작스러운 죽음은 유가족과 친구·이웃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타격과 함께 윤리적 부담을 남긴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잘 애도해야 하는 것은 비탄에 빠진 유족과 친지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1초 1분이라도 멈출 것은 일상의 모든 것이고, 특히 비난·조롱·‘쇼’ 등인 듯하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와 거기 투사된 자아의 전반이 비난·조롱·‘쇼’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재기해’ ‘태일해’ 같은 언어가 이 사회 다음 세대의 입에서 구호로 나오고, 그 나이 되도록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하는 가련한 엘리트들의 헛소리가 대기를 더럽히는 지금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해온 ‘자살공화국’에서 자살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부족하나마 몇 년간 이어진 자살 예방 사업 덕분에 중년·노인 자살률이 조금 진정되고 있다지만,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외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고생들 사이에서는 ‘자해 놀이’라는 것이 SNS를 매개로 유행을 타고 있다 한다. 여전히 경쟁과 등수가 교육을 지배하는 와중에 혐오와 자해의 문화가 겹치는 형국이다.

이제 안일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교육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혐오와 인터넷 문화에 대해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닌가? 들끓는 이 나라에서 부족한 것은 ‘자유’나 ‘경쟁’이 아니라, 연민과 공동체의 윤리 아닌가?

다시금 스스로 생을 버린 많은 여린 이들과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빈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자살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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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俄館播遷)의 역사 기록은 소략하다. 임금이 궁궐을 1년이나 비워놓고, 집권세력이 교체됐으며, 대한제국을 태동시킨 계기를 마련했던 사건치고는 의아할 정도다. 불과 122년 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실록 등 여러 사료를 종합한 &lt;고종시대사&gt;(1896년 2월11일 조)에는 “이범진 등 친러파의 계획에 의하여 이날 새벽에 군주가 태자와 함께 비밀리 정동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했다”고 되어 있다. 개인 역사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현은 ‘이범진 등이 교자 두 개를 세내어, 왕과 태자를 러시아 공관으로 옮겼다’(&lt;매천야록&gt;)고 했다. 정교는 ‘궁녀의 교자를 타고 건춘문을 빠져나갔다’(&lt;대한계년사&gt;)고 썼다.

한말, 어수선한 시기에 임금이 도망치듯 거처를 옮기다 보니 사관들이 놓친 것일까. 외세에 기댄 떳떳하지 못한 역사여서 소극적이었을까. 어쨌든 고종이 경복궁에서 어떤 경로로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으로 갔는지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건춘문이 아니라 영추문이라는 설도 있다. 작은 단서는 있다. 한말 미국공사관이 제작한 정동 지도에 표기된 ‘King’s road(왕의 길)’가 그것이다. 미국공사관 북쪽 담장을 따라 동서로 그어진 ‘왕의 길’. 문화재청은 지도 속의 이 길을 고종의 파천 길로 추정한다.

문화재청이 아관파천 피신로의 일부를 복원해 ‘고종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1일 공개한다. 8월 한 달간은 시범 개방하며 10월부터는 상시 열린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정동공원까지 모두 120m다. 미국공사관 지도의 ‘왕의 길’과 겹친다. 고종의 길은 옛 덕수궁 부지 안에 있다. 최근까지 미국대사관저 경내에 있던 것을 선원전 복원을 위해 되찾은 덕수궁 터에 새로 길을 닦았다. 복원을 앞둔 덕수궁 옛터에는 1930년대 일본풍의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이 남아 있다. 10월 전에 철거돼 이번 임시 개방 때에만 볼 수 있다. 새 길이 열리면서 덕수궁~돌담길~고종의 길~정동 공원의 코스는 새 명소가 될 것 같다. 도심을 거닐며 궁궐의 정취도 느끼고 역사의 교훈도 새겨보자. 지난해 영국대사관 구간의 덕수궁 돌담길 일부를 되찾은 시민들은 1년 만에 다시 ‘고종의 길’을 선물로 받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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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선에 등용된다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그야 당연히 이름부터 바로잡아야지!”라고 답했다. 공자 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정명(正名)’의 출처다. 정책 하나에 많은 이들의 생사가 오갈 수 있는 것이 정치다. 그 긴박한 현안들을 앞에 두고 기껏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몽상가의 답변이다.

1725년 조덕린이라는 인물이 영조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학문 수양, 인재 선발, 백성 보위에 최선을 다하고, 사심이 아닌 공공의 도리를 실현하라는 등의 열 가지 건의가 담겨 있었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상소문으로 인해 조덕린은 일흔이 다 된 나이에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사후에도 극심한 공격을 당하다가 결국 순조 3년인 1803년에 관작이 추탈되고 말았다. 치열한 정쟁의 살얼음판 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영조에게 ‘정명’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왕에게 왕다워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정통성을 흔드는 의도로 비칠 여지가 있다. 반대파 인사들이 집요하게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정명’은 유가에서 보편적인 사상이지만 현실 권력을 상대로 했을 때는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이름이 정치권력에 의해 부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표방한 정권이 얼마나 불의한 일을 자행했는지 이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그 ‘정의’가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이름임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공자의 답변을 들은 자로가 “어이구, 선생님 정말 실정을 모르시네요”라고 답답해하며 내뱉자, 공자는 말했다. “이름을 바르게 해야 진의가 잘 전달되고, 진의가 통해야 정책이 성사되며, 그런 뒤에 교육문화가 융성하고 형벌이 적절하게 시행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간부가 은퇴 후 대기업 자리를 보장받는 나라, 금융 ‘감독’원이 행정부와 이해당사자들에게 휘둘리는 나라, 사법 독립의 수장 ‘대법원장’이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는 나라다. 실질과 다른 이름들이 대놓고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런 사회에 필요한 것은 용감한 몽상가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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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더위를 식혀주는 장마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시원한 피서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 더위만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빈집털이, 성범죄 등 다양한 범죄들도 늘어난다. 특히 해수욕장 등 피서지에서의 성범죄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범죄들은 평상시보다 7~8월에 20~30% 정도 증가하기 때문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심코 넘기면 안된다. 누구나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그렇다면 피서지 성범죄는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첫째,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피서지에서는 심야에 혼자 돌아다니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음주를 한 경우 성범죄의 표적 1순위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닷가나 계곡 등 낯선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장소에서 늦은 시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둘째, 휴대폰에 가까운 지구대 및 파출소 전화번호를 단축번호로 저장해두거나 112 긴급신고 앱을 다운받아 놓는다. 위급상황 시 신속하게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미리 대처해두어야 한다.

셋째, 탈의실, 공중화장실 등 공공장소 이용 시 불법촬영을 주의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인 만큼 시설물 등 의심이 가는 물건이나 특이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본인의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하고 신속한 신고 자세가 필요하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경우 경계심을 풀지 말고 거부 의사를 확실히 해야 한다.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붐비는 탓에 있을 수 있는 신체접촉에도 불쾌감을 느꼈을 경우 이에 대한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하며,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신속하게 112에 신고해야 한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 모두가 즐겁고 안전한 여름휴가를 보냈으면 한다.

<김수빈 | 장흥경찰서 경무계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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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크나큰 기대와 열망을 품었다. 하나 정부의 정책들이 본격 시작되면서 위기감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19일 ‘의료기기 분야 규제 완화’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체외진단기기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만 받으면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기도 전에 시장 출시가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있다.

첫째, 이번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의 하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왜 갑자기 이러한 정책이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현장에서 정책의 이유로 거론한 김모씨의 체외 소아당뇨 진단기기의 사례도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식약처 인허가와 신의료기술 평가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 체외 소아당뇨 진단기기를 사례로 들면 식약처에서는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기기가 폭발할 위험성은 없는지, 성능은 무엇인지 확인한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의료기술 평가를 직접 수행하여 이 기기가 실제로 혈당을 제대로 측정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기기가 혈당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누군가의 소아당뇨가 악화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셋째, 이번 정책은 ‘문재인 케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를 엄격히 심사해서 의학적 유효성이 없으면 시장에서 퇴출하고 유효성이 있으면 급여화해주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번 규제완화는 의료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를 쓸 수 있게 대거 비급여로 편입시켜주는 정책이다. 만약 이러한 규제완화를 수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의료보장률 70%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재검토가 필요하다.

<김철주 | 인의협 환경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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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또 목격했다. 신호등도 없는 아주 작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자전거가 나뒹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고를 수습 중이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고작 20분 남짓의 출퇴근길이지만 걸핏하면 교통사고를 보게 된다. 세종시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지어진 도시라 안전할 듯싶지만 실상은 다른 도시와 비슷하다. 사고는 결국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수준은 전반적으로 엉망이지만 이 중 가장 엉망인 것은 보행자 안전의 후진성이다. 2016년 한해동안 429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중 보행자는 1662명으로 전체의 40%, OECD 평균 19%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보행자의 통행권이 보장된 횡단보도에서 1085명이나 사망했다는 점이다.

생명존중을 핵심가치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는 교통안전을 국정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역대 정부 또한 교통안전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통안전 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운전문화에는 ‘일단정지’의 개념이 아예 없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언제 어디서 일단정지를 하는지 모른다. 규정이나 교육도 없고 홍보와 단속도 없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의 국가는 다르다. 이들 국가에서 가장 흔한 안전시설물이 ‘일단정지 표지판’이다. 자동차 통행이 많은 도로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이나 아파트 단지 내, 시골농장도로 등 곳곳에 일단정지 표지판이 널려 있다. 이깟 표지판쯤이야 무시하고 살금살금 지나가다가 걸리면 신호위반과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

이들 국가에서 일단정지는 교통안전의 핵심으로 운전문화의 근간을 형성한다. 교차로에서의 운전방식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신호가 있든 없든 보통 속도를 약간 줄인 상태에서 우회전한다. 법규를 아주 잘 지키는 일부 운전자만 아주 낮은 속도로 서행한다. 하지만 교통안전 선진국에서는 서행조차 불법이다.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교차로 진입에 앞서 일단정지하여 2~3초간 좌우를 살피고 안전을 확인한 후 우회전한다. 이렇게 운전하니 교통사고 위험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일단정지’ 운전문화는 운전자의 폭주 의지를 무력화해 교통사고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여기저기 설치된 일단정지 표지판에 대응하다 보면 자연스레 속도는 낮아지고 운전을 조심하게 된다. 주차장, 아파트, 학교 등 도로교통법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와 확연히 다른 교통안전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핵심인 ‘일단정지’ 운전문화 정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종합교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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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다. 잠자리가 날고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키 높이 웃자란 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약 3억년 전 데본기에 곤충의 날개가 진화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 최초로 지구 상공을 점령한 곤충은 기세등등하게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전체 동물계의 약 70%를 차지하는 곤충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종에 육박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구의 어디에서도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매미의 옛 이름은 ‘매암’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곧바로 이름이 되었음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소수(素數)를 아는 ‘수학자’ 곤충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미는 홀수년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서식하는 13종의 매미 중에서 참매미와 지지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온다. 왜 그런 독특한 행동을 매미가 진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천적 가설이다. 눈에 보이는 매미를 먹잇감으로 삼는 새나 동물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천적이 소수년, 평년 가릴 것 없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매미의 저런 전략은 하등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먹잇감 경쟁 가설이다. 같은 생태 지위 안에 살아가는 서로 다른 종의 매미들끼리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주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지역에 수명주기가 5년인 매미와 7년인 매미가 산다면 이들 두 매미가 동시에 활동하는 시기는 3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매미 말고도 엄청난 수의 동물과 곤충들이 동일한 공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궁색해진다.

곤충은 어린 시절과 성충일 때 먹잇감이 다르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도 신생아들에게 그들만의 먹잇감을 따로 장만했다. 젖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포유류라고 부르지 않던가? 하지만 식재료만 두고 보았을 때 인간과 매미의 생활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신생아에게 젖을 먹이는 시기는 길어야 3년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기는 젖이 아닌 다른 음식물을 먹는다. 하지만 매미는 성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기껏해야 한 달인 반면 애벌레로 꽤 오랜 시간을 땅 아래에서 지낸다.

성체로서 매미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짝짓기를 하고 나무 껍질 안쪽에 알을 낳는 일이다. 일 년 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와 한 자나 되는 땅속에서 살아간다. 매미 애벌레가 주로 먹는 것은 식물의 뿌리가 흡수한 수액이다. 그 수액을 먹고 몇 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뿌리가 땅에서 흡수한 수액에는 애벌레가 살아갈 영양소가 무척 부족하다. 이에 매미 애벌레가 선택한 전략은 공생체 미생물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이 미생물은 애벌레가 필요한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을 제공하는 대신 식재료와 생활공간을 제공받는다. 이런 연합이 맺어지는 순간 애벌레 숙주와 공생체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2018년 일본 쓰쿠바 대학의 다케마 후카쓰 연구진은 일본에 서식하는 24종의 매미 몸 안에 살아가는 공생체를 연구해서 그 결과를 미 과학원 회보에 게재했다. 술시아(Sulcia)라는 미생물은 24종의 매미 모두에서 발견되었고 매미 몸 안에서 몇 종류의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른 한 종의 미생물 공생체는 일부 매미들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저 공생체가 없는 매미 몸에는 효모와 비슷한 곰팡이 기생 생명체가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매미 생활사에 곰팡이 기생체는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무에서 떨어진 애벌레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동안 이 곰팡이가 침입하기 때문이다. 이 곰팡이는 몇 년을 애벌레와 살다가 성체로 변하기 전에 자실체를 싹 틔우고 포자를 땅에 뿌려댄다. 이것이 고가의 한약재로 쓰이는 동충하초(冬蟲夏草)의 실체이다. 애벌레와 기생체 사이의 줄다리기 결과가 매미의 진화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애벌레는 저 곰팡이를 구슬러서 친구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 기생체들은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유전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다. 그러면 숙주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효소 유전자가 고장 나면 숙주도 공생체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숙주 애벌레는 기생체 곰팡이를 공생체로 돌리는 전략을 개발해 낸 것이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원한 기생체도 없고 영원한 공생체도 없는 것이다. 소임을 다한 공생체는 새로운 공생체로 대체되고 저 효모 비슷한 곰팡이는 애벌레 숙주를 위해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생산하고 있었다. 반면 동충하초는 싹트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무껍질에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진 허물인 선퇴(蟬退)를 남기고 탈바꿈에 성공한 매미는 땅속에서 펼쳐진 곰팡이와의 오랜 투쟁에서 승전보를 쟁취한 자들이다. 크게 울 만한 자격이 넘친다. 더위에 매미 울음마저 지쳐갈 무렵에야 가을이 오려는가? 덥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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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허옇게 백태가 낀 혀를 앞으로 내밀었다. 할머니가 힘껏 앞으로 쭉 빼내려 해도 흐들머들한 혀는 나오다 말고 입술 사이에 반쯤 걸친 채 늘어져 버렸다. 혀를 더 길게 빼보라는 할아버지 성화에 할머니는 침을 한 번 꼴깍 넘기고, 다시 혀를 빼내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이 들어 혀도 오그라든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 조심스럽게 꺼내 할머니 혀에 살짝 올려놓았다. 할머니는 곧장 혀를 집어넣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나는 할머니 혓바닥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봤다. 그것은 청개구리였다. 햇빛에 드러나는 찰나 초록 등이 누런 황금 빛깔로 빛나던 청개구리. 할아버지는 청개구리가 할머니 고질병인 두통을 낫게 할 특효약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청개구리만 보면 자꾸 할머니의 혀가 떠올랐다.

아이 둘이 아파트 단지의 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해서 다가가 넘겨다보니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청개구리였다. 아이들은 단박에 그게 청개구리인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청개구리가 팔짝팔짝 뛰어가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이 하나는 청개구리가 뜨거운 시멘트 바닥을 뛰어다니다가 발을 데면 어쩌냐고 걱정했고, 또 다른 아이는 덩치 큰 어른들한테 밟힐까 봐 걱정했다. 걱정 많은 아이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저러고 한참 놀겠구나 하면서 가게에 다녀오다 보니 청개구리를 보던 아이들이 꽃밭 한쪽에 있는 바위 위에 쌓아놓은 돌무더기에 돌을 얹고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행여 아이들이 잘못해서 청개구리가 죽었나 싶어 물어보니 아니었다. 청개구리는 제 갈 길을 갔고, 아이들은 청개구리가 무사하길 빌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돌무더기는 아이들의 소원 탑이었다. 아이 하나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개구리가 오래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해달라고도 했어요!”

다른 아이는 좋은 남자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아이들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웃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청개구리를 보면 아홉 살짜리 두 아이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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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세트피스였다. 세트피스는 공이 정지된 상태에서 약속된 방법과 동작으로 골을 넣기 위해 선수들이 함께 구사하는 것으로, 수비 조직력이 강화되면서 득점 기회가 적어진 현대축구에서는 매우 중요한 공격전술이다. 러시아 월드컵은 역대 최다 세트피스가 나온 대회였다.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와 같은 축구 스타들의 화려한 개인플레이도 볼 만한 것이지만, 순간의 집중력과 짜임새를 갖춘 움직임으로 진행되는 조직적인 팀플레이는 감동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민생정책은 과연 다를까? 월급쟁이나 알바 혹은 자영업자 등으로서 생활을 꾸려야 하는 청년과 중장년, 노년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 또한 다양한 내용과 광범한 층위가 어우러진 정책 패키지여야 하고, 짜임새를 갖춘 조직적인 팀플레이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짜임새를 갖춘 조직적 팀플레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패키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첫걸음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한 건 적절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 하나로는 다양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생활을 개선키 어렵다는 데 있다. 소득 최하위 가계가 주로 노인 가구와 영세자영업자 가구 등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취약계층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노인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이번 정부 대책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은 당초 2021년부터 월 3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대책을 통해 시행 시기가 내년으로 앞당겨졌다. 2022년까지 계획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또한 내년 1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노인과 장애인 수급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의 확대와 자활사업 참가자에 대한 급여 수준도 높아질 예정이다. 저소득층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현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원해 주는 근로장려금의 지급 대상을 확대하고, 지급액을 인상하기로 한 것도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생계가 어려운 시점과 급여를 지급받는 시점이 너무 벌어져 있다는 문제, 지급 시기가 연 1회로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영세자영업자의 생활 개선을 위한 대책들도 제안되었다. 카드수수료, 임대료,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본사 사이의 공정관계 문제들은 영세자영업자의 인건비 지불능력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최저임금의 인상과 동시적으로 다뤄졌어야 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대책은 노인과 영세자영업자 가구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최저임금 인상에 추가해 짜임새 있는 민생정책의 패키지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세트피스에도 키플레이어는 필수적이다. 민생정책의 키플레이어는 누구인가? 당연히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다. 여야 대립과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민생·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발이 묶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가맹사업법, 지역상권상생발전법, 공정거래법 제·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제안된 공정경제의 내용을 채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 역시 국회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제는 국회가 세트피스의 키플레이어로 나서야 한다.

<홍경준 |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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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정의당 노회찬 전 원내대표는 서울 마포 단골 횟집을 찾았다. 참모 두어명과 함께한 저녁자리였다. 노 전 원내대표는 웬만하면 사석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날은 달랐다. 진보정치 30여년이 잔 속에서 출렁였다. 누군가 물었다. 노회찬의 꿈은 뭐냐고.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돼야지. 2022년 대선에서 내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2022년 대선 출마요? 여태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당신들이 도와줘야지.” 정권은 교체됐지만 진보정치는 고달팠다. 사표론이 사라졌나 싶더니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엔 2중대론에 시달렸다. 그도 이런저런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노회찬 그에겐 독자적 진보정당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20대 총선 무렵부터는 차세대, 미래를 자주 말하곤 했다. “마들연구소(전 지역구인 서울 노원의 정치학교)를 후배들을 키우는 정치 아카데미로 만들까.” 독자적 진보정당을 넘어 이미 진보적 대중정당까지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가 홀로 외쳤던 과제는 정권교체 후엔 누구나 말하는 과제가 됐다. 그러니 진보는 더 힘겹다.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진보적 대중정당은 고사하고 독자적 진보정당 의지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늘 단단할 줄 알았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 ‘노회찬’으로 만날 줄이야. 소설가 박상륭이 “공문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라고 한 &lt;죽음의 한 연구&gt;가 생각났다. 그의 빈소는 5일장 내내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긴긴 추모 행렬을 지켜봤다.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돈 받은 정치인을 과도하게 미화한다는 비판도 섞여 있다. 추모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시간 이상 줄 지어 기다리다 영정 앞에 국화를 놓았고 밤새 향불을 피웠다. 어떤 사람이었길래, 어떤 정치를 했길래….

그는 답이 아닌 질문이 몸에 뱄다. 정치인의 일반적 유형이 아니다. 성찰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어느 봄날, 함께 식사를 마치고 집회가 한창인 국회 정문 앞을 지나던 길이었다. 그는 혼잣말 하듯 “내가 머리띠 묶고 구호 외쳤을 때 시민들은 나를 응원했을까”라고 물었다. 다른 이에겐 태도 문제였을지 모를 일상의 경건함이 어쩌면 그에겐 평생의 가치관이겠구나 싶었다. 지금까지도 차고 넘치게 흘러나오는 생전 입법활동과 공감능력이 말해준다. 

촌철살인의 말솜씨도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약자들을 존중했고, 기득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 거짓을 말할 일도 없었을 테다. 두 손을 포개고 고개를 떨군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눈물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되도록 힘든 길을 택했다. 신념과 소신도 키우고 넓혀야 무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혁명이 전부였던 시절 진보정당을 세웠다. 진성당원제, 여성할당제 도입은 진보의 의회주의 시도로 평가받았다. 진보의 신뢰가 중요했던 시절, 오히려 진보의 전망(미래)을 택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을 거치며 개량주의자, 분열주의자 비판을 감수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서울 동작을)에도 결국 출마했다. 개인의 희생부터 가르치고, 선배 리더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던 진보정당을 골목길에서 대로변으로 끌고 나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 제도 개혁을 외쳤다. 양당제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무모한 도전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그를 볼 때마다 “영웅적 패배보다 지루한 성공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한 버나드쇼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정치 입문 이후 그의 질문과 그의 길이 향한 곳은 당이었다. 시민들은 진보 울타리의 대중 정치인으로, 동지들은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이 하나둘 떠날 때도 가난한 집(진보정당)을 지켰던 장남으로 그를 기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노 대표(지인들은 대표라고 부른다)는 상당히 완고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완고함으로 지키려 했던 게 분명했으니 유연했다. 

그토록 아꼈던 당이 자신 때문에 망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뒤엔 그에게 다른 결론은 없었을 것이다. 7월23일 A4용지 두 장 23줄짜리 유서에 ‘당’, ‘당원’이란 단어를 7번 썼다. 시민들은 측은지심으로, 동지들은 미안함으로 그를 보냈다.

그와 부인 김지선씨는 몇 해 전 자식처럼 키우던 강아지 ‘하늘이’를 잃었다. 새 강아지를 들여오지 않고 하늘이를 닮은 인형을 샀다고 한다. 인형을 하늘이처럼 그리워했다니. 두 가지 생각이 스친다. 

하나는 그의 마음에 깃든 진보의 가치는 당이 어떤 처지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그 가치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다만 실천하면서 기억할 뿐이라는 것. 땅에서 고달팠던 삶이 하늘에선 빛나는 꿈이길 바란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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