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이 힘들다지만 우리 중년들도 똑같이 힘들거든요.” 부모님 세대 앞에서 청년 문제에 대해 강연할 때 받았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양극화된 소득과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자리, 적은 소득에 비해 과하게 지출되는 집세와 대출금, 제도권 정치 안에서 과소 대표되어 발언권조차 없는 현실, 젠더 불평등과 수도권 밖에서 살아가는 지역 청년의 한계까지…. 이쯤이면 충분히 얘기했다 싶었던 강연의 끝에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부단히 힘들다 넋두리를 한 21세기 청년과 21세기에는 중년이 되어버린 20세기 청년이 남아있었다.

청년 문제에 대해 진단하고 정책적 대안을 처방하는 일은 다른 세대의 고통을 배제하며 그로 인한 세대 갈등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겨 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모든 세대의 삶을 관통한다. ‘왜 우리는 양극화된 소득과 일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까’ ‘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이 있는 달팽이와 집이 없는 민달팽이로 나뉘게 될까’ ‘왜 우리는 현재를 위해 미래를 담보로 살아가야 할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두 세대의 고민이 같은 좌표에 찍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지난 세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불평등은 대물림된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민주주의와 정의, 공정성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가치에 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청년 세대에서 익숙하고도 새롭게 고착화되는 중이다.

경직된 공정성이 시대정신이 되고나서부터인 듯하다. 생존을 위해 노력을 인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자라온 청년 세대에게 공정성을 지키는 문제는 선인과 악인을 가를 선명한 잣대가 되었다. 이제는 채용 과정에서 대학 서열이나 병역 여부에 따라 부여되는 가산점의 근거이고, 계약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곤 했다. 시험이라는 절차를 통해 개인의 노력이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여기는 한, 노력의 여하에 따라 금전적, 사회적 대우가 차이나는 것은 불공정한 것도, 불평등한 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오히려 공정성이 불평등을 만든다는 이 시대 역설은, 경쟁이란 민낯을 공정이란 가면으로 감추어 낙오된 나머지를 불평등한 사회에 희생시킨다는 사실로 풀이된다. 여기서 모두가 합의한 것처럼 보이는 경쟁과 그에 어울리려는 공정성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일수록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혀 박탈되는 사회적 약자가 존재한다는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공정성은 평등한 경쟁이 존재할 거라는 신화의 미사여구로 쓰일 뿐이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야속하지만 내 능력 밖의 운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화된 불평등을 내재한 사회에서 소득수준과 학력은 물론이거니와 젠더, 종교, 지역, 장애 여부 등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다.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효하다.

우리는 사회가 조금씩 진일보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무임승차자가 되곤 했다. 나도 몰랐던 순간 이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경쟁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받아왔던 때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 살자고 노력해왔던 사람들의 힘이 모였을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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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이영광(196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통은 처세를 배우려고 하는데 시인은 이를 거부한다. 이미 정해진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을 물리친다. 모든 기정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럴 때면 무인도에 가서 망망대해가 되고, 절해고도가 되겠다고 한다. 재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고, 삶과 겨루며, 길들여지지 않는 섬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가령 우는 일에 무슨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그냥 펑펑 우는 것이지. 시인은 시 ‘촛불’에서 “나는 타오른다/ 나는 일어선다/ 나는 물결친다/ 나는 나아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두둑한 배짱과 겁 없음과 원시림 같은 영혼이 좋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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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는 마하티르 모하맛(92)이 총리로 선출돼 ‘세계 최고령 지도자’로 등극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제바스티안 쿠르츠(31)가 ‘최연소 총리’로 등장했다. ‘올드보이의 귀환’과 ‘파격적 세대교체’로 선명히 대조되는 흐름이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부 예외는 있지만 연금 수령자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지도자들이 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인구가 고령화될수록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평균연령은 28.5세, 오스트리아의 평균연령은 44세이다. 기성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진 선진국에서 노인층까지 변화에 동참하면서 반체제 성향의 젊은 지도자들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고령화된 선진국에서 ‘젊은 리더’의 탄생은 더는 뉴스가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취임 당시 39세),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37),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38),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38),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44) 등 30~40대 지도자들이 넘쳐난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에 도전하는 송영길·이해찬·김진표 의원(왼쪽부터)이 2일 광주문화방송 사옥에서 열린 첫 TV토론회에 앞서 함께 손을 맞잡고 들어올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FT 기준으로 보면 ‘일부 예외’이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헬조선’이라 할 만큼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비등한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작금의 여야 당권 경쟁에서도 ‘올드보이’ 귀환이 완연하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 바른미래당 손학규 상임고문,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 등의 전면 등장을 놓고 ‘말레이시아의 역류’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난세가 새로운 영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난세가 올드보이를 소환하는 한국정치의 역설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이 올드보이에 맞서 “죽은 세포는 물러나야 한다”며 세대교체론을 주창하는 이들도 도긴개긴이다. ‘86세대’들이 10년 넘게 각종 선거와 경선에서 세대교체 주자로 나서는 게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여의도가 가장 세대교체가 지체된 집단임을 확인시킬 뿐이다.

‘젊은 아프리카’에서 늙은 통치자들이 많은 건 민주적 제도의 미비 탓이 크다. 한국 정당에서는기득권 세력이 공천이나 경선 등 제도를 통제함으로써 세대교체의 싹을 잘라내 왔다. 그러니 세대교체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아프리카 수준을 맴돌 수밖에 없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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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헤이더라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있다. 만 24세. 한 이닝당 거의 두 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구원투수다. 지난 7월17일,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던 올스타 게임 당일, 헤이더는 경기를 마친 후 첫 올스타 게임 출전 소감이나 그날의 경기 성적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주의, 여성 혐오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17세 때 트위터에 썼던 글들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게이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증오하는 내용들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션 뉴컴도 올해 깜짝 스타로 떠오른 2년차 신예이다. 지난 7월29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날, 7, 8년 전 그가 쓴 트위터가 유포되었다.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 단어들(nigga, faggot)이 섞여 있었다. 뉴컴은 인생 최고의 경기를 한 후 한 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트레이 터너는 2016년 신인왕 투표에서 2등을 한 24세의 엘리트 유격수다. 올해도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올스타 최종 예비후보로까지 뽑혔다. 그 역시 과거 흑인과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글을 쓴 기록이 드러났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세 선수 모두 팬과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뉴컴은 “깊이 사과한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터너는 “모욕적인 단어와 나의 둔감함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정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소속 구단들도 별도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세 명에게 인종·젠더 감수성 훈련을 받도록 명령했다. 사무국의 ‘사회적 책임과 통합’ 분야 부사장인 빌리 빈(유명한 <머니볼>의 저자 빌리 빈과는 다른 사람이다)이 훈련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태평양 건너의 세 야구선수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던 거의 같은 시간, 우리나라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지칭하면서 “성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이야기한다며 비난했다.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날이 바뀐 후에도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같은 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원내대표의 소신 발언”이라고 두둔했다. 당 대변인은 “(임 소장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이 꼬집힌 데 대해” 반발하는 것이라는 조롱 같은 논평을 발표했다.

자신의 한때 실언을 진심으로 사과한 20대 중반의 야구선수에게 ‘감수성 훈련’을 권유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라면, 자신의 발언이 무슨 잘못인지도 모르는 60대의 공당 대표나 미국 같으면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소신’이라 부르는 교수 출신 비대위원장에게는 어떤 조치가 적절할까. 김성태 원내대표의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진정성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장애학생 특수학교 신설이 추진되자 이 부지에는 국립한방의료원을 설립해야 한다며 교육청과 각을 세워 장애아 학부모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방송토론회에서 최순실씨를 가리켜 태연하게 ‘미천한 여성’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젠더·인종 감수성은 무슨 의미인가?

최근의 메이저리그 사태에 대해, 스포츠평론가 댄 클라크는 “이제 ‘문화’에 대해 질문할 때다. 이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모두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이런 시각을 갖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자면서도 약자를 위한다는 말을 할 것 같은 정치인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성애자를 향해, 여성을 향해, 혹은 장애인이나 노인이나 이주민을 향해 뻔뻔스러운 혐오발언을 하는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자신에게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했던 율리 구리엘에 대해 (격한 비난을 참으면서) 이 사건이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길 원한다”고 밝혀 찬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정곡을 찌른 것은 NBC 뉴스의 빌 베어 기자의 글이었다. “다르빗슈의 대응은 우아하고 품위 있었지만, 모든 혐오의 피해자들이 그처럼 주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진 않다. 만약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화내면 왜 다르빗슈처럼 관대하지 않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고, 특히 편협(한 혐오발언)에 대응하는 적절한 반응이다. 분노는 사회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다르빗슈가 구리엘에게 했던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인종차별 철폐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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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지사가 6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허익범 특별검사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특검은 김 지사를 상대로 ‘드루킹’ 김동원씨(구속 기소)의 댓글조작에 공모한 혐의(컴퓨터장애 등 업무방해)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씨 측에 공직을 대가로 지원을 요청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지난 6월27일 시작된 특검 수사가 40일 만에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김 지사가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사용한 댓글조작을 인지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 김씨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킹크랩 시연회’를 참관하고 댓글조작을 지시·동의·격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김 지사와 김씨의 보안 메신저 ‘시그널’ 대화 내용 등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비밀스러운 불법 활동을 공유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반면 김 지사는 출판사에 간 적은 있지만 매크로 프로그램 구동 광경을 본 기억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김씨가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을 두고도, 대선을 앞두고 접촉한 수많은 문재인 후보 지지그룹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김 지사 소환조사를 통해 명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본다.

그동안 특검 수사는 댓글조작이라는 본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곁가지로 흘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부각시킨 것이 하나의 사례다. 노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특검팀의 책임도 작지 않다. 남은 수사기간 동안 특검이 의혹의 핵심을 파헤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특검은 김 지사는 물론 드루킹 측에 김 지사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 인사청탁과 관련해 도모 변호사를 만난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앞서 사건을 맡았던 검찰과 경찰의 부실수사 여부도 규명해야 할 과제다.

댓글조작은 정상적 여론 형성을 방해해 민주주의 토대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이다. 정치권은 특검 수사와 관련해 논란 소지가 있는 언급을 자제해야 옳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5일 “애초 특검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 드루킹 특검이 정치특검의 오명을 쓰지 않기 바란다”고 했는데, 유력한 당 대표 후보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특검 수사를 차분히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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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어머니 생신이라 가족이 모였다. 바깥에서 외식하고 집에 돌아와 케이크를 자르는 게 평상시의 코스다.

이날은 형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부모님 댁과 가까운 수원역 롯데몰에서 만나 <신과 함께-인과 연>을 보고 냉면을 먹기로 했다. 영화 시작 40분 전에 도착하니 주차장 입구가 차들로 꽉 밀려 있었다. “주차하는 데 1시간 걸립니다”라는 안내 팻말이 보였다. 사람들이 폭염을 피해 몰려왔구나.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시냐 물으니 아버지가 운전해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차들이 밀려 있단다. 영화 시작 40분 전이라 좀 고민이 됐지만 설마 1시간이나 걸리랴 싶어 계속 서행하며 기다렸다.

쇼핑몰의 주차장은 지상이었다. 아니, 아까 지하주차장이라고 했는데…? 규모가 커서 지하에도 지상에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옥상까지 올라가서 차를 대고 시계를 보니 영화 시작 20분 전이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옥상 주차장에 차를 댔다고 말씀드렸다. 옥상은 5층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9층 티켓박스로 오라고 하신다. 아무 의심 없이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까지도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했다.

티켓박스로 향하는데 형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디냐기에 거의 다 왔다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탄식이 들려온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귀를 의심케 했다. 부모님이 산본역 근처 롯데피트인몰에 계시다는 것이 아닌가. 거기도 롯데시네마가 있다. 정리하자면 형네 가족과 우리는 수원역 롯데몰로 왔고 부모님은 산본역 롯데몰로 가신 것이다. 길이 엇갈렸다. 산본역은 형이 사는 동네다. 평소 직장에 나가는 형네 부부를 대신해서 조카들을 돌봐주러 매주 부모님은 산본에 가신다. 얼마 전에 어머니는 조카들과 산본역 롯데시네마에서 <미션임파서블-폴아웃>을 보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영화라고 하니까 그 기억을 믿고 산본역으로 착각하셨던 것이다.

형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연로하신 부모님을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장소를 건성건성 말씀드려 이게 무슨 꼴이냐는 생각에 짜증이 솟았다.

차를 빼서 다시 수원역으로 오시는 중이라는데 영화 시간을 맞추기는 글러먹었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 영화는 저녁 7시였고 그나마 표도 없었다. 결국 영화 관람은 무산되었고, 밥이나 빨리 먹자 싶어 7시에 예약해둔 식당에 전화를 걸어 시간을 당기려고 하니 손님이 많아 안 된다고 한다. 혈압이 올랐다. 구겨진 표정으로 우리는 그냥 집에서 헤쳐 모이기로 했다.

이게 큰 그림이고 그 안에 작은 그림이 하나 더 있다. 그날 가족이 다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아내는 영화를 보기 싫다는 것이다. 대신 영악하게도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근처에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살고 있으니 우리가 영화를 볼 동안 자기는 친구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러닝타임이 140분인데다 40분 일찍 도착했으니 거의 3시간이 확보된다. 친구와 한판 수다를 떨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저녁에 교회에서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친구를 어렵게 불러내 영통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산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내는 친구와 만나서 ‘반갑다’ ‘어떻게 지내니’ 정도만 이야기하고 헤어져야 했다. 나는 복잡한 쇼핑몰을 빠져나와 그 친구가 사는 영통구까지 가서 아내를 데리고 케이크를 사서 다시 부모님 댁으로 오느라 형이나 부모님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문을 여는데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에서 삼겹살이나 굽자고 하신 모양이다. 형이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한 냉면을 포장해와 식탁엔 삼겹살과 냉면과 만두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음식만 보면 즐거워지는 우리 가족은 좀 전의 일은 까맣게 잊고 삼겹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배를 좀 채우고 나자 화제는 다시 ‘산본 사태’로 집중되었다. 가족모임을 산본과 수원으로 양분하지 말고 한곳으로 몰아야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둥, 단톡방을 시급히 개설해야 이런 일이 미연에 방지된다는 둥, 지하로 내려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서로 이상한 걸 몰랐냐는 둥 화제는 끝이 없었다. 웃다가 가만히 조감해보니 엇갈린 약속 하나로 이렇게 즐거워질 수 있는 우리의 소박한 삶이 오롯이 떠올라왔다. 아버지는 영화관에 가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삼겹살에 소주를 드시고 말도 실컷 하셔서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중간에 끊고 구박과 반론과 실소를 던지는 재미에 신명이 난 표정이었다. 신명이 났으니 어쨌든 신과 함께한 저녁이었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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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일본 교육개혁심의회가 논서술형 대학입시 도입을 고리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여 일본 문부성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점점 용두사미가 되는 감이 있어 썩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 야심차게 출발한 일본의 대학입시 개선을 고리로 한 교육개혁이 점점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혁에 대한 저항 등 무언가 거창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입 개선을 고리로 한 교육개혁은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상당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저항은 없었다. 이유는 그런 거창한 것에 있지 않고 공기와도 같아서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디테일에 있었다. 그 디테일이란 일본이 수십만 학생의 논술 답안을 단기간에 이의제기가 어려울 정도의 객관성을 가지고 채점해낼 능력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대학입시는 논술로까지 나가지 못하고 최대 80자에서 120자 정도의 서술형 주관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개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중국의 대입 국가고사는 일본보다는 형편이 나아 보인다. 선다형도 단순 사지선다형이나 오지선다형이 아니라 다양하고, 서술형과 800자 분량의 논술형이 작문 과목의 문항으로 도입되어 있다.

어쨌든 아직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과 일본이 위와 같이 논서술형 대입 국가고사에 관심을 갖고 힘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것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학생들의 역량을 측정하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도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측정해낼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입개혁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측정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대학이나 초·중등학교가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키우고 평가하도록 유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가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측정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디테일 속의 악마는 교육개혁 진전에 전반적 한계로 작용하게 된다.

디테일 속에 숨어 있는 악마는 대입정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외국어고등학교 축소 폐지 문제를 다루는 작은 토론회가 있었다. 정책 제안 설명을 듣다가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학교가 되어버린 외고를 중장기적으로 축소 폐지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책이 그것뿐이라면 외고 문제를 너무 중산층 중심으로만 보는 게 아니냐. 도 단위에 가면 중하위권 아이들이 정말 그 외국어가 좋아서 진학하는 외고도 있다. 또 다문화 아이들의 비중이 2%를 넘어서는데 그 아이들이 다문화 다언어의 장점을 적극 살려나갈 수 있도록 아시아 외고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아이들 중 우수한 아이들을 국가적으로 지원하여 하노이대든 어디든 유학 보내고, 양국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울 필요도 있는 거 아니냐. 그런 적극적 대안도 같이 제시해야 대의명분이 서고, 그래야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외고를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거다.”

기실 나는 근래 1~2년간 다문화의 우수한 아이들이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아시아 외고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지금 다문화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부서는 교육기회보장과인데 전에는 특수교육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국가가 부서의 명칭을 통해 공식적으로 다문화를 장애나 결손으로만 보고 있다니! 사회적 합의 수준이 여기서 몇 걸음만 더 뒤로 가면 내부 인종주의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시아 외고를 세우는 게 다문화 아이들을 귀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삼는, 새로이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상징적 행위들을 통해 사회적 합의 수준이 높아져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알아본 곳은 제주특별자치도의 국제학교 특구였다. 제주도의 국제학교들은 법적으로 5%의 제주도 일반 아이들을 장학생으로 받도록 되어 있는데 제주도 아이들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그 5%를 다문화 아이들에게 돌리면 아시아 국제고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국제학교 특구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주도 아이들도 꺼리는 우리나라 최상층 학부모를 둔 자녀들 속에서의 소외감을 다문화 아이들이 견디는 건 불가능하리라 보였다. 나는 돌아오면서 이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는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근대적 서구 중심주의일 것이다. 서구와 비서구를 문명과 비문명으로 나누는, 아서구(서구의 아류)로서의 한국과 동남아를 문명과 비문명으로 나누는 이 낡은 시각은 사실 인종주의와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그러고 보면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는 결코 사소한 놈이 아니라 미래로의 변화를 가로막는 낡은 통념의 거대한 벽이란 걸 알 수 있다. 이 디테일 속의 악마를 넘어서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싸움이지만 그것이 실력이고, 실력이 쌓이지 않으면 미래를 향한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개혁 논의가 자주 미로에 빠지는 것은 이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와의 지루한 싸움을 피하여 지름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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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종다리’가 지나간 이곳 도쿄는 폭염에 끓고 있다. 나는 한국 기업의 도쿄법인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일본으로 건너 왔다. 대학 1학년 때인 지난해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국비유학생 시험에 운 좋게 합격해 고국의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의 짧은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지 이제 한 달. 하지만 나의 눈과 귀는 밤낮으로 고국의 소식, 특히 ‘통일뉴스’에 쏠려 있다. 한국전쟁 때 실종됐던 미군의 유해 55구가 북한 원산에서 오산을 거쳐 지난 1일 미국 본토로 송환됐으니, ‘종전선언 협상’이 어떻게 진전될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사실상 중독 상태다. 심한 흥분 상태이기도 하다.

1년 전 서울로 출발할 때는 전쟁터로 떠나는 수준의 각오를 해야 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강도를 높여가며 주변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본은 오래전에 잊었던 방공훈련을 실시하는 등 ‘전쟁공포’에 질려 있었다.

서울은 달랐다. 이전 정부에 대한 심판과 과거의 구습을 타파하는 사법적·문화적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홍대앞 밤거리 식당과 주점, 커피숍 등에서 여러 대학에 재학 중인 학도들을 비롯해 수많은 고국의 청년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점이다. 그들은 모든 국가 현안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그에 대한 자신들만의 풍부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들을 수 없는 강의, 발제, 토론이 매일 밤 넘쳐났다. 안암동, 신촌 등지에서도 맛있는 탕수육과 치맥을 곁들인 ‘통일’ ‘남북회담’ 이야기가 밤마다 꽃을 피웠다. 이렇게 높은 정치 참여도는 일찍이 일본의 어느 집단, 사회에서도 경험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수준이었다. 나는 그 하루하루에 깊이 감사했다.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확신에 찬 또래들의 모습에 동화되었다. 그리고 지난겨울, 그들의 분석과 확신은 분명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 시작된 남북한 간 접촉은 강원도 평창에서의 놀라운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진들을 예고편으로, 판문점에서의 ‘손을 맞잡은 남북한 지도자의 휴전선 넘기’,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의 트럼프와 김정은 간 정상회담 등 숨가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그리고 남북. 이 국가들에 대해 분명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하는 기회가 된 나의 서울 유학은 분명 꿈같은 시간이었다.

유학 중에 통일부 주최로 실시된 콘테스트에서 ‘한국이 통일 역량과 추진력을 유지, 증대하려면 일본을 포함한 지리적 주변 국가와의 긴밀한 협력(북한·중국 모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논문으로 우수상을 받은 것도 국제정치학도로서 짜릿한 기억이다. 며칠 전 서울 친구들과의 SNS 대화를 통해 지난 1년간 남북대화를 평가하면서 한 친구가 ‘DRAMATIC’하다고 쓰자마자 다른 친구가 ‘DYNAMIC’이라고 썼다. 그러자 이 ‘DYNAMIC’이라는 표현에 모두가 ‘엄지척’하고 이모티콘을 쐈다. 한국은 변화,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 수준의 ‘재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임을 다시 한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역동성과 단결성을 되새기며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간다. 몸은 도쿄에 있지만 조국의 위대한 미래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김우중 |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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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에 나는 장학금을 자주 받았다. 그것도 대학원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장학금이었다. 돈 받았다고 연구 성과를 억지로 내야 할 부담이 없으니 누구나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이런 장학금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후원하는 형태가 많아서 수혜자의 조건이 굉장히 선명해야 한다. 학교 관계자나 학과 교수가 해당자를 추천하는 간단한 절차지만 고배를 마신 자를 납득시킬 이유가 로또 당첨자에게 있어야지만 논란이 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바닥에서 최고의 적임자였다. 이유는 내가 힘든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살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서였다. 나는 고시원과 옥탑방에서 5년을 살았고 그 시절 내내 신문배달을 했다. 다른 사람보다 형편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풍기는 상징성이 고만고만한 무리들이 모인 곳에서 군계일학이 되기에 충분했다. 장학금을 추천하는 자가 새벽 2시부터 신문을 배달하고 학교에 와서 강의를 듣는 나를 먼저 떠올리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행운이 자신에게 오길 기대했던 이들은 수군거렸다. 오찬호가 실제로는 나름 중산층 집안인데, 단지 독립심이 강해서 일부러 힘들게 사는 거라는 놀라운 이야기도 부유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내가 뮤지컬을 생애 처음으로 관람하기로 한 날이어서 무척 들떠 있을 때였는데 누군가의 비꼼은 비열했다. “완전 부르주아네. 가난하다면서 장학금은 다 챙겨 먹고 할 거는 다 하고 사네.”

장학금 받는다고 눈치 보고 살아야 하냐고 따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장학금으로 생활의 품격을 넓히는 게 무슨 문제냐고 설명해야 했지만 행동의 반경이 제한되는 게 가난의 자격이라고 믿는 사람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뮤지컬 세계를 직접 눈으로 볼 기회도 포기했다. 그래야만 불평등을 비판하는 ‘노동하는 대학원생’의 성실한 모습이 유지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장학금을 받는 사람답게, 신문배달부답게 살아야지 무탈했다. 그렇게 나는 개인의 문화 향유가 깊어질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서 멀어졌다.

부메랑은 날카롭게 돌아왔다. 시간강사가 되어 ‘대중예술의 이해’라는 강의를 5년간 했는데, 이때 학생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뮤지컬을 다루지 않아서 아쉽다는 거였다. 본 적이 없는데 제대로 접근하기가 쉽겠는가. 강의를 위해 뮤지컬 형태의 영화 &lt;레미제라블&gt;을 꼭 봐야 할 상황이 있었는데 노래만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상황이 너무 낯설어 홀로 집중을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진짜 뮤지컬을 본 것은 신문배달을 그만두고도 12년이 지난 올해 초다. 그것도 열한 살 딸이 <신과 함께>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했기에 가능했다. ‘영화와는 다른 뮤지컬만의 새로운 느낌’, 딸과 나는 이를 경험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서야 노래가 가슴에 꽂히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나와 초등학생 때부터 예술의 추상성에서 구체적으로 감흥을 체험하는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사람의 삶의 질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예술의 궁극적 가치가 다양성의 미학이라는 점을 볼 때, 내 딸은 장학금과 뮤지컬 관람을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진보정치인이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노동자 대변하는 사람인데 가증스럽게도 아내에겐 전용 운전기사가 있다’는 나쁜 기사와 마주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경악스러운 프레임이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얽매여 그 사람을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계속 가난한 상태로 머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노회찬을 좋아한 이유는 추잡한 이미지 공작들 사이에서도 진보의 가치를 유쾌하게 전달했던 그의 입에서 진정한 행복을 상상할 수 있어서였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절도 아닌 2018년도라면 누구나 뮤지컬 관람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첼로를 연주할 줄 아는 그가 원한 세상일 거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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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다국적 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이주민 문제로 갈등을 겪는 여러 나라들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대표팀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할 때도 22명 중 12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이민자와의 갈등 치유와 사회 통합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프랑스가 이후 20년 동안 이민자 문제에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외부인’의 문제에 관한 이성적 논의는 쉽지 않다. 전쟁과 박해를 피하려는 난민들에 대한 얘기는 고사하고 새로운 곳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평범한’ 이민자 문제도 차분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외국인 혐오 분위기가 커졌다. 이른바 ‘원주민 보호주의’로 물들고 있는 시대다. 이건 외부와의 싸움이 아니다. 내전이다.

서울 아주중 학생과 학부모들이 7월 19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이란 난민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같은 학교 친구 샤이엔을 도와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015년 여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난민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행렬이라고 했다. 대다수는 유럽으로 갔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유럽국들 중에서 난민 수용에 가장 관대했다.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해도 시민권을 얻는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의 하류 인생을 산다.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매년 수백건의 이민자와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다.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 반대’ 목청을 높이는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선거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은 70년간 연합해왔는데 지난달 난민을 품으려는 총리와 반대하는 내무장관이 충돌했다. 연정이 깨지기 직전 상황까지 내몰리자 총리가 입장을 굽히면서 가까스로 봉합했다. 난민 문제는 28개국이 모인 유럽연합(EU)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중대 현안으로 부각됐지만 저마다 ‘우리는 안된다’는 식이어서 접점을 찾기가 힘겨워지고 있다. 인도주의적 논리들은 먹혀들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도 난민 문제에 관해선 ‘쇄국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 1만9628명 중에서 인정된 건 20명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다. 보수층에서 외국인들이 흘러들어오면 치안이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본인 고용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도 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보수 정권은 예전부터 “절대로 이민 확대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던 아베가 바뀌었다. 지난 5월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문직은 물론 단순노동직까지 사실상 개방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 4월 건설·농업·간병·조선·숙박 등 5개 분야에서 최장 5년 동안의 취업을 인정하는 새로운 체류 자격을 주기로 했다. 취업 비자로 10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 거주기간 제한을 없애고 가족들을 데려올 자격도 부여한다. 사실상 이민정책을 도입한 셈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총인구는 9년 연속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2040년에는 올해 대비 1500만명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을 적극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남미 칠레도 이주자에 우호적이다.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정책 강화로 진입 문턱이 높아지자 칠레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아이티만 해도 2013년 2000여명에서 2016년 4만9000명, 지난해에는 10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세비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에 기여하고자 입국하는 이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문이 열려 있다”고 했다. 이주자에 대한 칠레의 개방적 태도에는 노동력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칠레 국민의 예상 평균수명은 80.5세다. 은퇴자 1명당 노동인구 비율은 2001년 7.6명이었는데, 2030년에는 그 절반 수준인 3.6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일본·칠레에서 이주자 문제는 정치적·인도적 논리와는 무관하다. 노령화, 그에 따른 일손 부족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견인하고 있다. 경제적 발전 수준과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노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2014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이 향후 50년 동안 3% 경제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각각 5000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추산했다.

최근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 출신 500여명은 한국도 이주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기가 왔음을 보여줬다. ‘세계 공동체 시민’ 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해도, 불가피한 일이라면 어떻게 공존할지 논의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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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낮기온이 40도를 육박하면서 111년 만에 기상관측 역사를 새로 썼다. 

폭염은 흔히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2016년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212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에도 157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한여름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폭염에는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약해져서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은 태풍이나 추위보다 무서운 것이 폭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요즘같이 폭염이 이어지는 날이 계속되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바빠질 수밖에 없다.

[장도리]2018년 8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하루에도 두어 번씩 폭염경보 문자메시지가 연일 울려대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폭염경보 문자가 오면 ‘폭염 떴다!(폭염경보가 발령됐다)’라고 해서 일제히 비상이 걸린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화로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폭염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그나마 전화로 안전이 확인되면 다행이다. 수소문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직접 가정방문을 해서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독거노인가정을 일일이 방문을 하다보면 온몸이 금방 땀으로 흠뻑 젖고 만다. 나이가 젊은 20대의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는 장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회복지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독거노인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밀려오는 불안감이 무더위보다 더 크다고 하니 한여름 사회복지사들의 일상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독거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당연한 직업적 사명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바깥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나 독거노인생활관리사들은 40~50대 여성종사자가 많다. 서비스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 폭염 앞에서는 모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름만 되면 뉴스에서 용광로에서 일하는 제철소 근로자들이나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모르고 지나칠 뻔한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길 수도 있겠다. 소방관들의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폭염에 고생하는 또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줘야 한다. 건설현장 노동자, 집배원이나 택배기사,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도 있다. 그들에게 한여름 폭염의 열기는 용광로와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무더위 휴식시간제’라는 제도를 통해 실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의무가 아닐뿐더러 폭염경보가 뜨면 오히려 더 바빠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휴식하라는 제도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엊그제 뉴스에서 한 아파트 주민들이 무더위에 고생하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아이스박스에 얼음물과 음료수를 넣어 비치해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민들의 작은 관심 덕분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한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택배기사나 또 사회복지사들처럼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바로 존재하지만 근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들이다. 올여름 폭염만큼은 정부에서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적극 대응에 나선다고 한다. 사태수습과 정책수립도 물론 중요하고 이들을 위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투명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를 위해 아이스박스를 내놓은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배려처럼 사회적 관심의 시작은 얼음물 한 사발이면 충분하다.

<송장희 | 제주스마트복지관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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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록적인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져 솟아오르는가 하면 베란다에 내다놓은 달걀이 부화되어 병아리가 태어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대처하라”고 했다. 지자체와 정부 기관들도 폭염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예전처럼 “무더위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극복하자!”고 외치기가 무색하다. 정부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일상적인 생활 속 시민 안전을 외치기 전에 산업현장에 대한 긴급점검을 주문하고 싶다. 특히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단지, 유해성 물질 제조공장, 건설현장, 조선소 등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는 위험한 국가 기간산업 단지들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노후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위험한 파이프 배관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자칫 한 도시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또한 폭염에 대한 지자체의 대책과 정부 대책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산업현장에서는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폭염이 지속된 5일 한강 물총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난지한강시민공원 물놀이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에 가장 곤혹스러운 업종은 수주산업인 조선소 및 건설현장들이다. 정해진 기일이 있으므로 속도전 공사 관행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일용직 형태다 보니 일을 못하면 생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계속되는 폭염에 대한 정부 대책 발표에 현장들이 생색내기식으로 급조한 그늘막 휴게실은 근무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단속 및 점검 대비용일 뿐이다. 이마저도 협소한 소규모 공사현장들은 꿈같은 얘기다. 공사장 지하층은 휴게실 대신 각종 자재들로 꽉 채워져 있다. 철판을 많이 사용하는 조선소 및 밀폐공간 작업장,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많은 건설현장,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공사장은 평균 기온이 5~10도 더 높다. 여기에 더 힘든 노동 강도가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규칙 등)을 보면 휴식 및 휴게 시설 설치, 소금과 음료수 등의 비치 등을 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24조).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처벌과 단속 실적은 전무하다.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가 현실화되게 하기 위한 세부적인 강행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공사금액별, 작업인원별 휴게공간 설치 규정 등 세세한 기준들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하청에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이다. 최근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보면 무더운 낮시간에 1~2시간 더 휴게시간을 보장해 주는 대신 연장근무를 강요하는가 하면, 오전 근무만 시키고 오후엔 귀가 조치를 한다. 물론 일당은 반나절치만 지급한다. 그나마 일부 노조가 있는 현장들은 조출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모두가 휴게시간 없이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급 휴게시간 보장은 꿈같은 얘기다.

보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공사 발주 단계에서 사업주의 악천후에 대한 보건조치를 명시하여 설계가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 둘째,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산업안전에 대한 근로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각 공사비별, 출력인원별 충분한 휴게시설 면적 등 세부지침이 나와야 한다. 넷째, 산업현장은 노동 강도가 더 높으므로 기상청 폭염경보 기준을 분리 적용해야 한다. 참고로 29도만 넘어가도 휴게시간을 30분 더 보장하는 대형 조선소도 있다. 다섯째, 폭염도 자연재난이라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폭염, 한파, 미세먼지 등 산업안전 측면에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정부와 사업주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인력도 자산이다.

<박종국  경실련 시민안전 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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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어서 딱 하나 좋은 건 모기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느 해보다 농작물 병해충도 덜하면 좋을 텐데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있다. 이름은 예쁘지만 행실은 못된 미국선녀벌레는 포도, 감, 복숭아 나무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나무를 바짝 말려놓는다. 기록적인 폭염에 선녀벌레나 꽃매미 같은 돌발외래해충의 창궐 가능성이 높아 방제당국이 드론 방제를 하는 중이다. 먹거리의 세계화는 해충과 동물 전염병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1년 전 살충제 계란 사태가 휩쓸고 간 뒤 ‘비펜트린’ ‘피프로닐’ 같은 어려운 화학용어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비펜트린 성분의 경우 양계에도 허용된 살충제이고, 농업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다이다이’ ‘직격탄’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제초제 이름 중에는 ‘풀초상’이나 ‘확타’ 같은 이름들이 유난히 많다. 복잡한 화학용어 대신에 농약 소비자인 고령의 농민들이 용도를 쉽게 알아보고 기억하기 쉽도록 이름을 짓는다.

농약은 현대 농업의 필요악이다.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려 농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시키지만 그 대가도 크다. 토양과 하천 오염, 생산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소비자들의 농약에 대한 만성적인 불안도 있다. 농약은 병해충 방제부터 종자와 토양 소독, 생육의 촉진과 억제, 착색까지 농사 전반에 쓰인다. 텃밭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농약과 비료 없이 농사 짓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일. 벌레 먹고 못생기고 크기도 작은 수확물이 그 실체다. 하지만 시장에 내어놓는 농산물이야 상품이니 그럴 수 없다. 당연히 농약과 비료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싼값에 예쁜 걸 먹자면 그렇다.

농약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높아지자 정부는 농약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 이른바 PLS(Positive List System)를 2019년 1월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생산자들에게 통보했다. PLS는 벼, 토마토, 고추 등 작목별 등록 농약만을 사용해야 한다. 해당 작물에 등록되지 않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1㎏당 일률적으로 0.01ppm까지만 허용한다. 0.01ppm은 국제표준 수영장에 잉크를 한 스푼 반을 희석한 양이다. 문제는 실제로 농약을 다뤄야 하는 농민들이 아직 숙지도 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농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윤작과 간작을 많이 한다. 마늘에 쓰는 농약과 벼에 쓰는 농약이 다르지만 같은 논에서 기르기 때문에 약제 혼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은 면적에 심는 소수의 희귀 작물은 아직 사용이 가능한 농약 목록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인삼처럼 4년 이상 기르는 장기 재배 작물의 경우 PLS 시행 이전에 쓴 농약이 검출될 수도 있다. 또 항공방제는 필연적으로 농지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데 비의도적인 농약 검출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없다. 그래서 농민들이 준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밀어붙이기로 한 것 같다. 권력은 소비자들에게서 나와서일까. 아무리 그래도 농약을 직접 다뤄야 하는 생산자들에 대한 대책은 너무도 미비하다. 농약잔류량 검사를 해서 농민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범죄자 만들기는 더 쉬워졌다. 농약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잔류검사에 걸려들어 친환경 인증 취소를 겪은 농민들의 사례를 들어보길 바란다. PLS는 영어로 ‘Please(제발)’의 약자이기도 하다. 정부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PLS!

<정은정 농촌사회연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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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들은 얘기다. 정부 고위직에 있던 여성의 남편이 현직 법관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가끔 각료와 청와대 참모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식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이 여성 공직자는 다른 ‘싱글’ 여성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남편이 모임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인사 중 누군가와 나중에 법정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다.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는 사법시험·연수원 성적 모두 최상위권인 엘리트였다. 이후 법원행정처를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았다. 법관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윤리적 염결성(廉潔性)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31일 추가 공개된 ‘양승태 법원행정처’ 문건들은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2015년 3월 작성된 ‘법사위원 대응전략’ 문건에서는 국회 법사위원들에 대한 ‘접촉 루트’로 법관들을 지목하고 있다. 김진태 의원의 경우 민일영 대법관과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 홍모·이모·김모 고법부장이 거명됐다. 김도읍 의원의 경우 김모 지법부장, 전해철 의원은 노모·유모 고법부장, 서기호 의원은 이모 판사와 이모 전 판사, 김재경 의원은 김모·임모 고법부장, 이상민 의원은 남모·전모 부장, 서영교 의원은 노모 부장과 박모 변호사(전 판사)가 담당자로 적혀 있다.

2015년 7월 생산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에는 ‘김주현 법무부 차관을 새로운 접촉면으로 정하여 절친인 이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통해 설득 시도’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이어지는 문장이다. ‘But(그러나), 역시 별다른 진척 없고, 추가 설득 여의치 않은 상황.’ 실제 접촉이 이뤄졌으나 성과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입법 과정에서 관련 부처·기관·단체는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부당한 압력이 작용하거나 대가가 오가지 않는 한 문제 될 게 없다. 심판자인 법관은 다르다. 어떤 경우도 청탁을 하거나 신세를 져선 안된다.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언제든 피고인석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 공직자의 남편’ 같은 판사들이 절대다수일 거라 믿는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로비하는 판사들’은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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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야당의 거센 공세 속에 자진사퇴한 것은 11년 전 꼭 이맘때(8월2일)였다. 임명 13일 만이다. 논문 ‘자기표절’이란 신조어와 함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이었고, 청와대 출입기자이던 나 역시 휴가였지만 이튿날부터 출근해야 했다.

그의 낙마는 이미 내리막길이던 노무현 정부를 더욱 급격히 기울게 했다. 이은 가을, 여당(열린우리당)과의 ‘결별’을 예고하는 전조였다. 실상 더 결정적인 건 여당의 이반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비공개 석상에서 “대통령 한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 때려서 잘된 사람 하나도 못 봤다. 이 상황은 권력투쟁”이라고 ‘격노’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당신의 출세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입에 올리지 말아 주시길 당부드린다.”

김 전 부총리가 자신을 낙마시켰던 그 세력(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던진 비판이다. 뇌사상태인 보수의 산소호흡기를 자처한 그에게 ‘기회주의적 변절’의 비수를 꽂은 것이다. 11년 전 낙마 뒤 사석에서 전 의원 같은 당시 ‘청와대 386’들에게 강한 섭섭함을 토로했던 걸 생각하면 현 여권과 김 비대위원장은 참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로 얽힌 셈이다.

2004년 2월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처음 본 김 비대위원장은 정책적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는 주군을 좇는 ‘제자백가’와도 같았다. 당시 그는 정부혁신위원장이었다. 말은 강했고, 자신감도 커 보였다. 보수·진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고, ‘지방분권’ 철학에 꽂힌 ‘정책 기능인’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그에게 그런 주군이었다.

그가 변절한 출세주의자인지, 노무현 정신 일부라도 공유한 계승자인지 논쟁은 중요치 않다. 그건 ‘과거’ 이야기일 뿐이다. 본질은 김병준이란 ‘이종(異種) 인사’가 ‘새 보수’의 길을 설득해 보수 교체의 한 걸음을 뗄 수 있느냐다. 숨만 연장시키는 호흡기 노릇이 아니라, 보수 대수술의 집도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신은 그 미답의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이종교배의 요소일 수 있다. 이종교배는 진화의 시작이 되곤 한다.

실상 ‘보수 혁신’의 해답은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보수 가치에 불어 넣는 것이다. 한국 보수가 철저히 외면해온 핵심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하면서도 정작 ‘자유’를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세운 결과다. ‘자유’를 강조하는 것으로 친일을 묵인했으며, 군사정권의 잔학과 부패를 변명했고, 개인(기업 포함)의 부정한 탐욕을 ‘미화’했다. 보수의 원리는 ‘사적이익 추구 계모임’의 원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김 위원장의 행보와 언어는 주목할 만하다. 강경한 보수·진보를 대변하는 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국근대화, 안보제일주의 같은 1960~1970년대 언어에서 빠져나올 것”을 주문했고, “반공보수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비대위 구성 첫날인 지난달 25일 국립현충원을 찾아서는 방명록에 ‘모두, 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적었다.

당장 내부에선 노선 투쟁을 예고하는 소음들도 들려온다. 초·재선 의원들과의 만남에선 김 위원장의 박정희 비판에 반발하는 목소리들이 삐져나왔다. “우리 당을 노무현당으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당혹감은 그보다 더 폭넓다. 정치권 호사가들은 벌써 “한국당의 내전”(박지원 의원)을 거론하기도 한다.

물론 보수 혁신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반세기 이상 거북 등껍질처럼 굳건한 보수의 왜곡된 인식에 메스를 대는 과정은 지난하다. 그가 그만한 유능함과 일관된 의지를 가졌는지는 의문부호다. 친박과의 투쟁 속에서 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던 ‘유승민의 새 보수’ 실험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채 좌절했다. 유 의원에 비하면 김 비대위원장은 “윗사람 몇 분만 보고 정치해온 사람”일 뿐 정치적 경륜을 증명한 적이 없다.

실제 과거 그가 설계한 종합부동산세 운명을 보면 경험 부족은 분명하다. “헌법을 바꾸는 정도”의 “불가역적 대책”이라 할 만큼 자신감과 애착을 가졌던 종부세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형해화됐다. 당시 세수를 지방으로 돌려 ‘종부세 지킴이’로 나설 것이라 기대했던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들은 철저히 침묵했다. 2016년 탄핵 정국에서 국무총리 수락 등 불투명한 처신으로 그저 “주목받고 싶어하는 인사”라는 의심도 깊다.

그럼에도 김병준이란 ‘이종 보수’가 어떤 시작이길 바란다. 보수로 하여금 ‘변종’들을 낯설어하지 않게 하고, 그래서 ‘신종 보수’로 진화해 나가는 출발이길 바란다. 다만 보수가 결코 기술이 없어 실패한 게 아니란 점만 새겼으면 한다. 마음이 없는 기술이 실패를 만들어 온 게 보수의 몰락사이기 때문이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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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탈원전 비판 기사와 칼럼, 사설이 부쩍 많이 쏟아졌다. 기록적 폭염이 연일 지속되면서 냉방전력 수요가 늘자 전력 수급 불안을 우려하며 이런 상황을 탈원전정책 탓으로 돌렸다. 탈원전하겠다면서 결국 전력공급이 긴박하게 필요한 순간에 원전에 기대는 건 자가당착으로, 탈원전을 재고하란다.

기사 제목을 보자: <전력수요 예상 초월하자…탈원전 정부, 원전에 SOS> <‘탈원전’ 정부, 폭염 덮치자 “원전 더 돌려라”> <전력수급 문제없다더니…허둥지둥 원전 5기 더 돌린다> <막무가내 탈원전하더니 전력 모자라자 “원전 추가 가동”> <엉터리 예측에 원전 추가 가동…그래도 ‘탈원전’인가> <폭염에 또 원전 가동률 높여야 하는 탈원전 허구성> <탈원전해도 전력대란 없다는 말 믿기 어렵다> <폭염에 원전 재가동한 정부, 민망해진 탈원전정책> <폭염 한방에 전력예비율 위태…원전 없인 감당이 안된다> <‘탈원전 부메랑’…전력수급 비상> <‘탈원전’ 열중하다 폭염에 덴 정부…결국 원전에 기댔다>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결국 전력수요가 늘어나니 여유 있게 전력을 공급하려면 탈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보도, 참으로 무책임하다. 탈원전이 왜 국정과제가 되었는지, 탈원전을 가져온 문제상황이 제대로 해소되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런 비판과 달리 국민 여론은 탈원전에 호의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84.6%가 탈원전·탈석탄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하였다. 국민 한 사람당 월 1만5013원의 전환비용 지불 의사가 있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경제성, 그것도 사회환경비용을 도외시한 불충분한 경제성을 근거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심을 두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격하고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위험에 노출된 지금 상황에서는 환경과 생명, 안전이 중심 가치가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해명자료와 소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산업부는 하계(7월9일~9월14일) 전력수급대책 수립과정에서 원전 가동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 이 계획에 따른 조치들임에도 다수 언론은 탈원전 정책으로 멈춰 있던 원전들을 폭염 때문에 황급히 재가동했다고 비난하였다. 모든 발전소는 최대전력수요 기간에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정비 일정을 조정하는 게 원칙인데도 말이다.

탈원전을 선언했다고 우리가 벌써 탈원전 상황에 들어섰는가?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시설용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문 대통령 재임기간인 2022년까지 신규 원전 4기가 추가되고 2023년에도 신고리 6호기가 추가되어 불과 5년 안에 총 5기(7000㎿)가 가동에 들어간다.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는 없다. 에너지 효율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탈원전은 60년 이상에 걸친 장기 계획이다.

언론은 책임 있는 사회적 공기로서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을 좀 더 여유 있게 하고 원전만이 그런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현재의 전력 수요나 수요 증가가 온당한 것인지, 어디에서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다뤄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다. 지난해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를 보면, 재생가능에너지엔 315조원, 원전엔 4조원이 투자되었다. 더군다나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아무런 답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지진이 빈번해져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당장의 편리와 단기적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을 더 짓고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겠다는 건 경제를 망치고 미래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탈원전의 길, 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갈 것이냐가 문제다.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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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0%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사실은 큰 의미가 없다. 여전히 매우 높은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것도 현실이다.

촛불은 건재하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촛불에 힘입어 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길을 열고 있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벌인 온갖 퇴행을 바로잡고 범죄를 다스리는 중이다. 아직 종전선언은 아슬아슬한 물밑 협상 중이고 계엄령 문건 수사에 대한 군 일각의 반발은 기가 차지만, 촛불의 거대한 힘을 가로막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저임금이나 세제개편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민생 문제에서 큰 물길을 돌리지 못하면 정권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궁핍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에 목마른 이들이 많고, 국민 대다수가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아수라판에 갇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잘 설계된 사회경제정책을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여 순조롭게 집행해도 정책 효과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득권의 저항도 집요하고,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 탓에 크고 작은 이해 갈등이 도처에서 빚어진다. 세계 경제의 동향이 불가항력의 변수가 되기도 한다. 사회경제정책의 성공을 위해 이해당사자 간의 대화와 신뢰 구축이 관건이 되는 이유이다. 지난 5월 국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설령 오랫동안 합의에 실패를 거듭한 문제라고 해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물론 책임있는 집권당이라면 때로 욕을 먹을 짓도 해야 한다. 또 집권당의 기업 친화적인 태도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려면 우선 기업이 건전하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주목하며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대신에 기성의 재벌과 대기업의 위력에 기대는 쪽이라면 얘기는 크게 달라진다. 나아가 여당의 친기업 성향이 저임금 노동자의 곤경에 대한 무관심과 결부된다면 촛불의 뜻과 어긋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 문제가 ‘을과 을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일에도 책임이 크다. 한계선에 놓인 자영업자들을 도울 각종 정책과 민생법안을 외면하는 수구세력을 야무지게 몰아세우지 못했다.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을 제대로 성찰한 집권당이라면 이렇게 심상치 않은 국면을 미리 대비하여 당의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고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의 도움도 받아가며 수구세력의 사실 왜곡과 논리적인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의 약점까지 보완하면서 행정부 견제라는 입법부의 역할도 다할 일이었다.

최근 반갑게도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이 결정되고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도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은 집권층의 해결 의지도 강했지만 대법원이 1, 2심의 해고무효 판결을 무리하게 뒤집은 사안이라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덕도 봤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도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 중인 사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바꿔 말해, 이들 희소식이 정부가 확고한 원칙 위에서 안정된 노동정책을 펴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버린 서른 번째 쌍용차 해고자가 나왔고, 폭염 속에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도 여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달에 ‘대학 시간강사법’이 타결되었다. 당사자인 시간강사들부터 반대한 법 개정안은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를 통과한 후 네 번이나 시행이 유예되며 표류했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올 3월에 교육부가 구성한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가 무려 15회의 논의를 거쳐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아직 미흡한 내용도 많지만, 이 방식이 우리가 갈 길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분담을 요구하며 대학들이 반발할 때 여당이 법안 통과를 어떻게 이루어낼지 못내 불안하다. 지난달 30일에 나온 세법 개정안이 촛불에 어울리는 사회경제정책을 위한 증세와 거리가 멀어 더욱 그러하다.

수구언론은 한목소리로 거센 비판을 쏟아내고 있고, 정권을 궁지로 몰고 싶은 세력은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며 힘을 내는 형국이다. 집권당의 대표 경선에서부터 세력다툼 대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진지하게 논쟁해야 사회경제정책의 혼선을 막고 시급한 ‘협치’ 실현을 통해 내후년 봄의 총선 승리와 정치판의 일신을 기대할 수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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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아침 서울 최저기온이 30.3도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전날 낮 폭염의 여파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것이다.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서울에서 12일째 이어졌고, 이날은 최저기온이 30도를 넘은 ‘초열대야’ 현상까지 나타났다. 열대야는 부산이 16일째, 여수가 15일째, 광주와 대전은 13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국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불가마나 다름없는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올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폭염의 근본 원인이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는 만큼 이상 고온현상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더위에는 누구나 고통스럽지만 옥탑방이나 지하·반지하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야 하는 취약계층이 가장 힘겹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선풍기나 에어컨 등 냉방기구를 사용해야 하지만 전기료가 무서워 제대로 켜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장애인 가정의 경우 냉방시설뿐 아니라 의료장비도 가동해야 하는데 전기료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통상 에너지에 쓰이는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에너지 빈곤층으로 보는데, 전체의 8%에 달하는 130만가구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여름철 전기료 지원이 2016년 검토됐으나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동안 정부의 에너지 빈곤층 지원은 겨울철에 집중돼 왔다. 냉방보다 난방 연료비 부담이 더 크다고 분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원 자료를 보면 소득 하위 10%의 여름철 에너지 비용은 14~15%에 달해 결코 적지 않다. 올 무더위 속에 온열질환 사망자는 29명에 이른다. 폭염이 재난 상황에 이르면서 전기료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누진제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겨울철에 지급해온 에너지 바우처를 내년에는 여름에도 주는 방안이라고 한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에너지 취약계층 대책이 전기료 지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나마 여름철 바우처 제공도 당장이 아니라 내년에 시행한다니 기가 막힌다. 취약계층은 더울 때 더 덥고 추울 때 더 춥게 생활한다. 전기료 지원을 넘어 주거환경 개선을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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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개혁위원회(위원장 장영달)가 2일 기무사 개혁안을 마련해 국방부에 보고했다. 장 위원장은 이날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개혁안을 전달한 뒤 언론브리핑을 열고 “기무사 요원은 현 인원에서 30% 이상을 감축해서 정예화·전문화해 더 높은 국방의 책임을 다하도록 했다”며 “조직 개편에서 전국 광역시·도 11곳에 배치된 ‘60단위’ 기무부대도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200여명인 기무사 인력은 3000여명으로, 장성도 9명에서 3명 이상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위의 기무사 조직과 인력의 대폭 축소 권고는 당연하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기무사의 규모는 지나치게 크다. 기무부대 고유의 기능인 군내 보안과 대전복 업무를 포함한 방첩 기능을 수행할 조직으로 최소화하는 게 맞다. 기무사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보안·방첩 기능에 대한 애매한 규정을 확대해석해 군 내부와 민간인 동향을 상시적으로 살피도록 놔뒀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정치개입이나 민간인 사찰을 못하게 하려면 관련 기능과 조직 자체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 군 내부도 필요할 때만 살피고 감청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기무사는 조직을 일부 고치는 수준으로는 개혁할 수 없다. 군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기무사가 계엄령 문건 작성 시 비밀장소에서 망에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를 이용한 사실이 2일 추가로 드러났다. 문건을 작성한 뒤에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해 흔적을 지웠다. 계엄령 문건의 당초 제목도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다. 계엄을 실행할 의도가 있었음이 더 분명해졌다. 기무사를 해체 수준으로 재정비해 새 조직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기무사의 불법적 행위를 뒷받침해온 대통령령과 기무사령 등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개혁위의 판단을 지지한다.

국방부는 이날 권고안을 검토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개혁위는 기무사를 대폭 축소한 뒤 지금처럼 독립부대로 두거나 정부의 외청으로 하는 방안, 그리고 국방부 내 본부급 조직으로 격하시키는 방안 등 세 갈래로 대안을 제시했다. 또 대통령이 기무사령관을 독대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이런 취지라면 기무사는 국방부 내 본부로 격하시키는 게 맞다. 군내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본부로 둬야 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기무사 계엄 문건이 실행할 목적으로 작성됐다면 기무사는 해체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한국당은 약속한 대로 기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는 방안에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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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 기사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심각성을 언급하고, 방송은 영세자영업자 생존과 존폐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사 모두 최저임금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불참하고, 10.9% 인상이 부당하다며 정부에 이의제기까지 했다. 노동계 또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포함되자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 논의 과정은 저신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 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사실 협력이란 타인과 함께 상호 이득이 되는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논의는 노사 간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대립된다. 이 때문에 국가는 공동의 과제일수록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거버넌스를 통해 결정해왔다. 특히 노·사·정 3자가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공간이 된다. 이 때문에 논의 의제로는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정책들이 다루어진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최선의 대안적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하는 자본주의 내에서 최적의 규칙을 만들 수는 있다. 독일은 2002년 사회적 대화에서 직업훈련을 받지 않은 청년실업자, 초과노동의 축소,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한, 신기술과 혁신지원을 위한 사회투자 등을 논의했다. 우리도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출범한 것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 대표가 사회적 협약을 체결(1998·2·6)했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심각해졌다. 무엇보다 산업구조조정과 비정규직 고용 등 노동시장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당시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뚜렷한 해법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은 많다. 물론 출산휴가 확대나 교원과 공무원의 단결권 보장과 같은 노동기본권이 한 단계 신장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나마 의미 있는 논의는 주5일제 시행과 같은 노동시간 단축 합의였다. 시간이 흘러 올해 7월 조직 명칭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업 내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은 일상화되었다. 일터에서 쫓겨난 자들은 치킨, 피자, 편의점 등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가족과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의 ‘갑질’과 같은 비인권적 억압에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협력적 이타주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과거 보수정부 시기에는 정부와 기업이 한편이 되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사회적 대화기구를 활용했었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 공안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노사 모두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인력이 파견 공무원(11명)을 제외하면 전문인력 12명과 지원인력 9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년 예산도 41억원(사업비 33억원) 남짓이라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 미래 노동 의제들까지 논의된다고 하니 그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이타적 협력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대화 모델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무엇보다 정부가 지속 가능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이해당사자들에게 참여 동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역의 협력적 노사정 대화 틀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때론 분권적·사회적 대화가 강한 제도적 상호의존성을 발현시킬지도 모른다. 아마도 취약노동자의 사회적 보호 접근성을 높이는 것, 노동시장에서 빈곤과 불안정의 덫 그리고 불편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논의 의제로 시작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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