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케어가 시행 1년을 맞았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가계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한 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65세 이상 틀니·임플란트 본인부담률 인하(50%→30%), 15세 이하 아동입원 진료비 본인부담률 인하(10~20%→5%), 선택진료비 폐지, 상복부 초음파 및 상급종합·종합병원의 상급병실료(2·3인실) 건강보험 적용 등이 그런 예들이다. 또한 정부는 치료에 필요한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 영역으로 전환하고, 의료기관 손실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하여 수가 보상방안 마련을 추진하는 등 차근차근 세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는 MRI·하복부초음파 급여화가 예정되어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핵심 과제다. 그러나 일부 부작용의 우려가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비급여의 전면 해소에 따라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증가하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어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 청구 건수·비용의 증가에 따른 심사평가의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는 점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즉, 보장성 강화대책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 일차의료의 활성화와 심사평가체계의 개편 등이 선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을 통한 일차의료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네의원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 대형 병원은 중증질환 및 입원진료 관리 중심으로 기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심사평가원은 올 하반기 동네의원을 대상으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과 병·의원 간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 등을 차질없이 준비해나갈 예정이다.

의료인의 전문성,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국민의 적정한 의료 보장을 위한 심사평가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는 것 또한 심사평가원에 주어진 과제다. 이를 위해 심사는 기존의 진료 건별 접근 방식에서 주제별 ‘경향평가심사(경향분석, 중재)’로 대전환이 필요하며, 의료 이용량에 대한 추이·연계분석·예측을 통한 변화감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평가는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질(진료결과)·효율성 등 평가로 재편하고, 경향평가심사 분석지표로 연계·활용할 수 있는 기전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의약계, 학계, 유관기관이 부단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보건의료 생태계를 혁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학적 변화와 함께 바이오·의료분야의 발전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 같은 나라 안팎의 변화 흐름 속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재정비는 불가피한 과제이며, 문재인케어는 그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단기간에 전 국민 건강보장을 실현한 성공 사례로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로 그 성공의 기록을 앞으로도 계속 써나가기 위한 청사진이 이 정부가 추진하는 보장성 강화대책이라면, 관련 당사자들 모두 머리를 맞대고 더욱 치열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소통과 협력이 ‘국민 중심’을 대전제로 이뤄질 때,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 있는 목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 중심’이라는 대전제가 소통과 협력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다.

<김승택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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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부채질하듯 방충망에 붙은 매미 울음만 요란하다. 이렇게 더울 때면 으레 나는 1950년 여름이 떠오른다. 유난히 덥고 가물었던 그해 여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 인민군 부대가 총성도 없이 한바탕 지나가고 이어서 예고 없는 미군 폭격이 거리를 짓부순 다음 그 산촌 마을은 지금까지와 아주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다른 세상에 찾아온 뜻밖의 평온은 북한 체제를 피해 월남한 우리 가족에게는 불안과 위험의 신호였다.

결국 7월 중순쯤, 우리 가족은 필수품 몇 가지만 챙겨서 길을 떠났다. 일행은 일흔 다 되신 할아버지, 마흔 전후의 부모, 아홉 살의 나, 여섯 살과 세 살의 두 동생들, 이렇게 모두 여섯이었다. 우리의 신원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유일한 목적인 데다 제대로 걸음을 걸을 만한 사람은 아버지뿐이었으므로 속도는 한없이 느렸다. 조금 걷다가 주저앉고 조금 더 걷다 잘 곳을 구하곤 했다. 봉화와 영주를 거쳐 예천까지 가는 데 열흘은 걸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얼마나 덥던지! 신작로 양옆으론 잎사귀 늘어뜨린 미루나무만 지친 듯이 서 있고 땡볕을 가려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가다 보면 가끔씩 참외 원두막이 나타났고 그 아래 가마니 위에 싱그럽게 참외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거기 들러 쉴 형편이 못되었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병이 나셨다. 할 수 없이 예천 변두리 어느 집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결국 춘양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무렵이면 가끔 행군하는 인민군 부대와 마주치기도 했다. 적의도 호의도 보이지 않던 소년병들의 삭막한 얼굴이 아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피란 보따리를 둘러메고 낯선 길을 따라 걷던 우리도, 원치 않는 전쟁에 동원되어 사지(死地)를 향해 행군하던 그들도 생각해보면 정체 모를 악귀의 마수에 사로잡힌 포로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가을바람이 불면서 전세가 바뀌어 다행히 우리는 무사하게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선에서는 아직 전투 중이었고 다른 지방에서는 그사이 불행한 일이 많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춘양은 영화 속의 동막골보다 더 평화롭게 6·25를 넘겼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흐른 1980년 여름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내게도 잊지 못할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그해 2월 말, 나는 해직교수 신분을 벗고 영남대에 자리를 얻어 대구로 이사했다. 30년 전의 정처 없는 피란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안정된 생활을 막 시작할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이른바 ‘안개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상황 속에서 12·12부터 5·17까지 전두환 일당의 군사반란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몇 달 전까지 내가 대표로 있던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비롯하여 ‘문학과지성’ ‘뿌리깊은 나무’ 등 170여 개 월간·주간지들이 등록취소 되고, 대학·언론사·정부기관 등에서 숙정(肅正)이라는 이름의 대량 추방이 강행됐으며, 구속된 김대중씨 등에 대한 내란혐의 재판놀음까지 개시되었다.

대학에는 군인들이 진주했고, 교직원들도 교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출입할 수 있었다. 계엄령 확대와 더불어 휴교가 되었으므로 리포트 제출로 학생들 기말성적을 처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광주 사는 문우들을 통해 이미 그곳 소식을 대강 들었던 터였는데, 이제는 가끔 올라가는 서울에서도 참사가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날씨도 여름 같지 않게 썰렁했다.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장마의 뒤끝은 폭우였다. 그러고 나서도 본격적인 더위는 찾아오지 않았다. 단단히 땀 흘릴 각오를 하고 내려온 대구조차 기온이 아침엔 20도, 한낮에도 30도 아래였다. 냉해 때문에 농사 망친다, 피서지에 사람이 없다는 보도가 연일 나왔다. 이래저래 울적해서 책상 앞에 앉아지지 않았고, 해직된 고 이수인 교수(후일 국회의원)의 전화 호출로 툭하면 삼삼오오 시내 술집에 모였다. 1950년과는 전혀 다른 뜻에서의 참담한 여름을 마치 거센 물살을 여럿이 팔짱 끼고 건너듯 겨우 보냈다.

땡볕 내리쬐던 여름도, 냉기 가득했던 또 다른 여름도 어느덧 오래전이다. 그러나 그 여름들의 고난과 위험은 수십 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잠재적인 형태로는 사실상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5·17반란을 흉내 낸 군사쿠데타 음모는 그럭저럭 수습의 가닥을 잡았다고 할 터이니 접어두기로 하고….

정전협정의 조인으로 당장의 전투는 중지되었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다만, 대한민국에 사는 일반인들의 일상은 전쟁의 지속 상태를 잊고 지내도록 생활이 설계되어 있을 뿐이 아니었던가 싶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망각’의 내용물을 만인이 지켜보는 대낮의 밝음 아래 꺼내어 실체를 밝히고 진정한 평화체제를 실현할 때가 되었다. 아니, 늦었다.

엊그제 싱가포르 회의에서의 남·북·미 외교장관 접촉을 통해 또다시 드러났듯이 북한은 종전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비핵화’를 빌미로 종전선언을 미루고 있으며 한국은 어정쩡하나마 상이한 입장들 간의 접점을 모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장면은 사실은 등장인물만 그때그때 교체되었을 뿐, 1953년 이래 미국과 북한 사이에 되풀이되어온 낯익은 ‘밀당’이다.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만 보더라도, 정전협정은 전쟁 당사자 간의 빠른 평화협상을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54년의 제네바 회담 때 국무장관 덜레스가 중국 저우언라이의 요구를 거절한 이래 줄기차게 협상을 회피해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정착에 주도권을 쥔 나라가 미국임에도 그 나라의 주류 정치인과 주요 언론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한반도 안보위기를 북한 탓으로만 돌려왔다. 그게 그들의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이익에 부합해서라는 건 웬만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독판치던 시대는 저물었고 북한이 원하는 것도 다름 아닌 자주와 평화와 번영이다. 그런 세계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정당한 생존의 길 아니겠는가.

<염무웅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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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둬선 안된다”고 트럼프를 비판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트럼프도 제임스를 비아냥거리며 마이클 조던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아차, SNS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랬던가. 트럼프는 실수했다. 마이클 조던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마이클 조던은 “난 르브론 제임스를 지지한다”고 즉각 대응했다. 조던은, 자신이 백인 주류 사회로부터 ‘성공한 흑인’으로 선택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호의’를 거절해온 사람이다. 조던처럼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조던은 거부해왔다. 그랬는데, 트럼프가 제임스를 비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들먹거린 것을 조던은 불쾌해한 것이다. 조던은 덧붙였다. “제임스는 지역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르브론 제임스가 설립한 학교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개념의 학교를 준비해왔다. 단지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기부하여 설립하는 자선 학교가 아니라 수업의 체계와 방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학교를 제임스는 상상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가 필요하다고. 개교를 하면서, 제임스는 울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도 그랬다. ‘파벨라’, 즉 판자촌에서 성장한 호나우지뉴는 2006년 12월, 고향 포르투 알레그리에 3만6000여평 규모의 국제 규격 축구장과 다목적 연습장, 2개의 수영장과 4000석 규모의 실내경기장이 있는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설립했다. 학교 안에 병원까지 있고 그 밖의 공동체 시설이 들어섰다. 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호나우지뉴는 기념 슛을 했는데, 자기 평생 가장 의미 있는 킥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두 경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스포츠 문화와 교육 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학생들은 스포츠를 즐기기가 쉽지 않고 장차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진학, 병역, 취업 등과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의 입장이 뒤엉켜 있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칼로 내리쳐서 끊어야 할 텐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의 협회에서 몇 차례 그런 시도를 했으나 무딘 칼날이었고, 그 후의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실타래는 더 엉키고 말았다.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포츠를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 그 내용 자체가 여전히 20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의 교과목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이다. 신체적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서 스포츠에 내재된 역사와 미학과 정서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사회 전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이 의미 있는 행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최근의 일만 복기해보자. 21세기의 다문화와 이민, 난민의 상황들. 이를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통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성공’했다는 게 아니다. 그 ‘성공 신화’와 실제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생생한 교육 자료라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베켄바워, 루메니게, 비어호프, 히츠펠트 같은 독일 축구계의 리더들 그리고 보아텡이나 뮐러 같은 현역 스타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외질 선수의 독일 대표팀 은퇴 사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된다. 국가 부르기가 강요된다면 차라리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지네딘 지단의 사례처럼, 외질의 대표팀 은퇴는 국가와 스포츠,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관계, 이민과 다문화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거나 곧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될 상황을 숙의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스포츠 하기’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읽기’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포츠를 통해서 복잡한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가치와 상충되는 윤리적 난제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이 중요한 사안들을 스포츠 연구자나 전공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선수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미 몸속에 이러한 난제들이 뒤엉켜 있는 그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스스로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의 선수들이, 스포츠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방송까지 진출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참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진짜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난과 차별에 맞서 지단이 싸웠고 호나우지뉴가 눈물을 흘렸으며 제임스가 연대를 하고 있다. 그런 행렬에 우리 선수들, 우리의 스타들도 함께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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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페미니스트의 “페미나치” 운운이나 홍준표의 “괴벨스 정당” 운운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최근 이런 반지성주의적 의미 왜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다 명쾌한 응답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 미국 코미디계의 신성 트레버 노아의 발언에서였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정치 풍자 토크쇼 <데일리쇼>에서 “프랑스 정부와 갈등이 좀 있었다”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계 선수가 다수 포진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승리를 축하하면서 “아프리카가 승리했다”고 던진 농담이 문제가 됐다. 프랑스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주미 프랑스 대사는 트레버 노아에게 항의 편지를 썼고, 이 발언은 개그를 넘어 미국식 다문화주의와 프랑스식 동화주의 사이의 날선 논쟁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대사는 노아의 언급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선수들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축구를 배운, 프랑스 시민입니다. 그들의 다채로운 출신 배경은 프랑스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다. 프랑스 대표팀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4-2로 꺾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파리 _ EPA연합뉴스

노아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들의 다채로운 출신 배경은 사실 프랑스의 식민주의를 반영하는 것이죠. 그들이 (애초에) 왜 프랑스인이 되었나요?”

아프리카계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과거 프랑스 식민지 출신이거나, 프랑스가 노동력 부족으로 곤란을 겪던 시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다. 특히 노동력 부족이 해소되고 실업률이 올라가자 프랑스 정부가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야 할 천덕꾸러기’로 취급했던 것을 생각하면, 틀린 지적은 아니다.

대사는 이어서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국민을 인종과 종교, 출신에 따라서 나누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피부색에서 아프리카를 보는 것은 그들의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태도이며 그것이야말로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이 발언은 시민 내부의 동질성과 평등함, 그리고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프랑스 헌법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인종적, 민족적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차이에 대한 고려 자체가 차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이민자 정책에 있어 동화주의를 추구해 온 것 역시 차이의 소거와 연결되어 있다. 공교육장에서 히잡을 금지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배경 탓이다.

노아 역시 프랑스 정부의 강경한 항의 아래 놓인 맥락을 이해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그 존재를 지운다고 해서 인종과 민족에 대한 현실적인 구분과 차별 역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아가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는 동화주의 아래에서 과연 누가 프랑스인일 수 있는지 질문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흑인이 무직이거나, 범죄자이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을 때 그들을 ‘아프리카 이민자’라고 부릅니다. 반면 그들의 아이들이 월드컵에 출전하여 승리를 안겼을 때, 그들은 ‘프랑스인’이 되죠.”

물론 미국의 트럼프 시대가 증명하고 있듯이 어떤 통치 철학도 식민주의의 폭력적인 영향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양성에 대한 미국식 찬양이 곧 차별에 대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노아의 풍자는 ‘동화’와 ‘다문화’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민자 정책 논쟁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한 가지를 제안한다.

“백인들은 말합니다. ‘내가 하면 인종차별이고 트레버 노아가 하면 아프리카 승리에 대한 축하냐?’ 네, 바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전히 흑백 분리주의가 공고할 때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출생 자체가 범죄였던 것이다. 존재가 불법인 삶을 살면서 그는 유머와 해학을 통해 그 딜레마를 설명하고 그와 싸울 언어를 모색해온 사람이다. 프랑스 대사의 염려와 달리, 프랑스 선수들의 피부에서 아프리카를 보는 그의 관점이 오히려 인종차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 되는 것은 이 맥락 속에서다.

어쩌면 맥락이 전부다. 선정적인 언어적 선동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우리 역시 좀 더 맥락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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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들에 대한 한국인의 여론은 수용과 거부로 나뉘어 있다. 젊은층의 경우 거부 의사가 훨씬 많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반대 비율이 낮지 않았으며, 반대 근거는 아랍인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압도적이었다.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 선택 학생 가운데 71.42%, 응시생 수로는 6만6304명이 아랍어 시험을 봤다. 압도적인 쏠림 현상이다. 10년 정도 지났으니 어림잡아 50만명 이상이 아랍어를 공부했을 것이다. 수능 등급을 받기 쉽다는 불순한 동기에도 아랍세계를 언어로 만나는 이들이 늘었다는 부수적 기대 이익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혐오는 굳건하다.

아랍, 혹은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영화와 뉴스, 종교 등을 통해 오랜 기간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실제 경험이 없는 가상의 세계와의 만남으로 구성된다. CNN의 카메라 앵글에 비친 총을 들고 다니는 아랍인 병사들이나 미국 액션영화에서 알지 못할 말을 떠들다 백인 주인공의 총에 맞고 죽어가는 아랍계 테러리스트들 모두 우리가 실제 만나거나 대화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얼마 전 영문학을 전공한 교수가 여성 차별을 근거로 예멘 난민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글까지 썼는데, 그분 역시 논거가 정밀하지 못한 점으로 미뤄 가상의 아랍세계를 탐험한 것으로 보였다. 가상의 오염된 세계를 이해하는 창으로 언어는 유용한 도구인 만큼 학생들이 아랍어를 선택하기 시작했을 때, 반가웠다. 그러나 아랍어를 공부함에도 아랍인들은 수용 불가라는 감정적 혐오가 지배한다면 외국어 교육의 이상은 현실 어디에서 존재하는가. 아랍어는 학생 일부가 공부한다고 쳐도 초등학생 때부터 배워온 인류 평등, 다문화 시대의 개방성은 어디로 갔는가. 아랍인들은 피가 문제이니 절대 안된다는 사람들 역시 시험 문제에서 특정 지역을 혐오하라는 주장에 긍정 표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지식들은 학생들에게 체화되지 못한 채 고교 졸업과 함께 망각 속으로 휘발된 것이다.

구한말에서 한국전쟁 시기까지 수많은 우리 동족이 해외로 나가야 했고, 해당 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고통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제 스파이 혐의로 하룻밤에 만주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카레이스키들이다. 스탈린에게 만주의 고려인들은 소련을 위협하는, 지금 제주 땅에 온 난민과 같았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간 동포들 역시 현지 문화와의 갈등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원년의 풋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속 마을에 남은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처절한 생존 갈등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이 없었다면, 한인학교나 한인방송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바탕에 중동 건설 붐이 있었고, 지금도 많은 기업이 현지에서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타락의 제국’이라는 주술 언어가 젊은 세대를 홀린 현실은 아랍어 선택 6만4000명이라는 통계와 기묘한 이중 나선을 그린다. 미디어에 의한 가상체험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학교 교육은 마술과 싸울 실천적 태도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다문화 시대의 이상은 휴지 조각이 됐다. 예멘 난민에 대한 젊은층의 혐오는 결과와 암기에 매몰된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안타까운 단면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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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사람보다 더위를 많이 탑니다. 소는 영상 25도만 넘어가도 스트레스를 받는다죠. 그래서 새벽같이 나가 서둘러 일하고는 한낮에는 소를 나무 그늘 밑에 매어 둡니다. 그럼에도 햇볕에 지친 소는 여름밤 달빛만 보고도 헐떡거렸다 합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입니다. 아마도 달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밤사이 최저 온도가 25도 이상, 즉 열대야라서 그랬을 거라 짐작됩니다. 옛날엔 온도계가 없어 몰랐겠죠.

오늘은 입추. 40도를 넘던 기록적인 폭염이 다소 꺾인 느낌이지만 여전히 한낮 온도는 35도를 육박합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다들 기진맥진해서 전기요금 폭탄이고 뭐고 일단 살고나 보자 아껴둔 에어컨 틀어 숨통을 틉니다. 요금 인하 얘기가 있지만 정부도 사실 국민들이 바라는 게 가정용 전기의 누진제 폐지임을 알긴 알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 자랑하면서 언제까지 관공서 냉방온도 28도에 에어컨 놔두고, 선풍기 더운 바람으로 버티라는 건지요. 누진제 폐지한대도 전기 펑펑 쓰지 못할 참 궁색한 살림들인데요.

국가 발전을 위해 쓸 거 못 쓰며 변기 수조에 벽돌 넣던 시절이 아닙니다. 버티는 데도 도가 있습니다. ‘내년 여름엔 안 이렇겠지’ 당국자는 고갯마루에 소 넘어가듯 애국심이란 죄책감에 기대 슬쩍 넘어갈 생각, 혹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젠 속아 넘어가지도 못합니다. 정말이지 더위 먹어 소가 넘어가게 생겼으니까요.

지금 청와대 청원부터 언론까지 가정용 전기 누진제를 그만 좀 폐지하자는 주장이 폭염보다 뜨겁습니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일 땀범벅도 모자라 또 밤새도록 끈적끈적 자야 하는 걸까요. 우리끼리 더위팔기, 더는 못하겠습니다. 이 여름, 헐떡이며 문 두드리고 당국자 보이자 대뜸 말합니다. “내 더위 사가라!”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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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를 바꾸자, ‘노무현의 꿈’과 ‘노회찬의 꿈’이 강렬히 마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개편할 수만 있다면 권력을 내놓겠다(대연정)는 제안까지 했다.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선거제도 개혁의 열망이 절절히 담겨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새기기를 바라며 주요 대목을 옮긴다. “대연정 제안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그렇지만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렸던 이유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1등만 살아남은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시사 2판4판]인기를 얻고 싶어요 (출처:경향신문DB)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폐해를 몸소 체감한 적이 있다.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는 선거를 완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들었다. 가치와 소신을 지키면 욕을 왕창 얻어먹는 게 현행 선거제도인 꼴이다.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야말로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시작입니다. 그 토대 위에서 공정한 사회도 가능합니다.”(2018년 2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현행 선거제도를 바꿔야 할 이유는 차고넘친다. 1등이 독식하는 무자비한 다수결은 지역구도를 고착시키고 분열과 적대의 정치를 공고히 한다. 거대 기득권 정당을 낳게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정치구조를 낳는다.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표가 사표가 됨으로써 대표성에 심대한 왜곡을 가져온다. 정당득표율과 의석수 사이 현격한 격차가 발생,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약화시킨다.

선거 때마다 이러한 폐해를 노정해온 현행 선거제도의 개편이 번번이 좌절된 것은, 특정 지역에 기대어 과대 대표의 과실을 일방으로 누려온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한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 권역별 연동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역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을 외면해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가 거꾸로 한국당에 재앙이 됐다.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처지가 바뀐 것이다. 이제, 이대로는 다음 총선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선거제도 테이블로 한국당을 끌어낼 터이다.

‘노무현의 꿈’, ‘노회찬의 꿈’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지방선거 결과, 완전히 뒤바뀐 여야의 입지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할 기회를 조성했다. 한국당은 거부하기 어렵게 됐고, 다른 야당들은 모두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개혁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만 결단하면 실로 ‘꿈은 이루어진다’.

한데 민주당이 수상하다. 지방선거를 통해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주판이 달라진 탓이다. 지방선거 결과는 어김없이 과대 대표의 심각성, 사표의 문제 등을 드러냈다. 다만 그 수혜자와 피해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전국 평균 51.4%의 득표율로 지역구 광역의원 82%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대로 가면 2020년 총선에서 승리도 따논 당상인데 굳이 선거제도를 손대느냐, 악마의 속삭임에 흔들릴 만하다.

물론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민주당으로선 현행 선거구제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른다. 민의를 현저히 왜곡시키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다음 총선에서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정치에서 2년은 긴 시간이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싹쓸이 승리에 취해,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낡은 정치구조를 객토할 절호의 기회를 차버린다면, 선거개혁은 영영 물 건너간다. 득표율이 의석수와 일치하고, 시민의 의사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 놓아야 민주당이 꿈꾸는 ‘100년 정당’도 가능해진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 행여 목전의 타산에 매몰되어 ‘노무현의 꿈’을 영구히 사장시키는 반동의 역할을 민주당이 맡는다면 그건 너무 희극적이고 동시에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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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의 안온한 배안에서 꼼지락꼼지락할 때, 어머니의 배가 수박만 하게 부풀어 올랐다.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웠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우주를 유영하듯 헤엄치고 자맥질하면서 혼자 놀았다. 보다 못한 부친이 어느 날 ‘이따만한’ 수박 한 덩어리를 사 가지고 오셨다. 리어카에 굴러다니는 수박으로 어머니의 배에 박힌 수박을 빼내기로 한 전법이 통했을까. 신통하게도 그 다음날 새벽 나는 시원하게 세상맛을 구경했다고 한다. 그런대로 더위를 꿋꿋하게 버티고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박을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한 일이 있고난 이후 오십구 년이 지난 오늘 아침의 일이다. 부엌에서 미역국이 설설 끓는 동안 무심코 바깥을 보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나보다 한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지척에서 울어대는 매미를 지우개 보듯 슬쩍 보고는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급히 카메라를 찾아 몇 방을 찍으며 오래 매미를 바라보았다. 혹 매미나라에서 생일축하 사절이라도 보낸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이르던 순간, 매미는 뚝 노래를 멈추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휙 날아갔다.

찜통더위에 입맛도 없어졌다. 수박으로 가볍게 마무리한 뒤, 매미가 훌쩍 공중으로 떠나듯 나는 산으로 떠났다. 경기도 어느 야산으로 해오라비난초를 찾으러 가는 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아주 보기 힘든 난초이다. 비가 한바탕 내릴 것 같더니 더위에 눌려 이내 맥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몇 발짝 움직이지 않았는데 등줄기에 도랑처럼 땀에 후드득 흘러내린다. 드디어 만났다. 야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주 귀한 꽃, 해오라비난초.

이 꽃은 한번 보면 빨려든다. 왜 이런 이름을 가졌는지, 지금 무슨 자세를 취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사방의 공중에서 요란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응원 삼아 이 첩첩산중의 골짜기를 도움닫기로 하여 제 세상을 떠메고 어디로 가려는가, 해오라비난초여. 비상한 모습과 날렵한 동작에 잠시 더위를 잊을 만큼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해오라비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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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한국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온 인생을 바쳤던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내몬 조선일보식 질문이다. 참으로 비수 같은 프레임이었다. 진보라면서 어떻게 부인이 전용 운전기사를 부릴 수 있냐는 시비야 사실 너무 억지스러워 실소하며 넘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이 명백한 정치자금 수수 문제 앞에서 그런 식의 프레임은 고인같이 고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겐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었을 테다. 진짜로 잘못이 커서가 아니라, 평생을 정의와 진보를 위해 싸워 온 정치인으로서 삶 전체가 조롱당하는 걸 피할 수 없으리라고 여겼으리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정의당과 진보정치 전체가 온갖 비열한 비난과 공격에 노출될 게 분명했다. 고인으로선 어떻게든 그런 귀결을 피하고 싶었으리라.

고인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많이들 지적한 대로 고인 같은 정의로운 정치인조차도 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정치자금법을 고치고 소수 진보정당의 정치적 입지를 옥죄는 단순다수결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은 정말 절실하다.

[시사 2판4판]인기를 얻고 싶어요 (출처:경향신문DB)

나는 여기에 덧붙여 고인이 빠졌던 저런 종류의 덫을 우리 진보정치가 어떻게 깨트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성찰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도덕정치’ 전통과 관련이 있다.

언젠가 어느 독일 학자로부터 왜 한국인들은 매사를 도덕화된 시각에서 접근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우리는 많은 정치적 문제를 곧잘 도덕주의적으로 접근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 특유한 일로 유교, 특히 성리학적 전통의 영향이다. 여기서 정치는 기본적으로 어떤 도덕적 진리의 실현을 지향해야 하고, 정파들은 누가 또는 어떤 세력이 도덕적 올바름을 주장할 가장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두고 권력투쟁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도 ‘수신’과 ‘제가’를 완수한 사람만이 정치를 할 자격을 가졌다. 바로 이런 식의 도덕정치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라고 해서 정치에서 도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독일에서도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이 사소한 잘못 때문에 여론의 압력에 밀려 사퇴한 적이 있었다. 그가 친구의 도움으로 시중보다 싼 이자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는 따위가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그 자체보다는 그가, 사실은 실질적 권력도 별로 없지만, 대통령이라는 공적 지위를 부당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떠올려 보라. 대부분 청문 대상자의 공적 업무 능력이나 공동선에 대한 태도 같은 게 아니라 위장전입에서부터 논문 자기표절이라는 시시콜콜한 혐의까지 개인적인 도덕적 흠결을 따진다.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도덕정치의 전통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멀리는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화운동을 거쳐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에 대한 강렬한 지향은 우리 민주주의의 비옥한 문화적 자양분이었다. 특히 늘 권력과 사회적 기득권에 맞서서 싸워 왔던 진보정치는 이 도덕정치 전통의 정수를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통의 그림자 또한 너무 짙다. 특히 진보정치에 대해서는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진보가 스스로에게 도덕적 완전성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바람에 반대 세력이 너무 손쉽게 이를 역공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기 눈 안의 들보를 숨긴 자들이 진보 인사들의 눈에 있는 티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도 꼼짝없이 말려들고 만다.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조차 없이 비열한 정치적 술수로만 사용되는 ‘비도덕적 도덕주의’가 난무해도 속수무책이다. 이번의 드루킹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건 그냥 약간의 소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을 일을 끝까지 파헤치자고 나섰던 민주당의 어떤 도덕정치적 강박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진보부터 나서 정치에 너무 과민한 도덕주의적 촉수를 갖다 대는 습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정의를 지향하는 도덕적인 정치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요점은 도덕의 초점을 개인이 아니라 공공성과 공동선에 대한 지향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인간적 불완전함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포용적이되, 공적 질서의 원칙에 대해서는 엄정한 새로운 정치도덕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에서 도덕적 우월성보다 더 중요한 다른 가치가 참 많다. 성리학의 시대는 진작 끝났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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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59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해마다 7월31일, 당신이 사형당한 시각인 11시에 맞춰 추모제가 열린다. 그 시각 서울광장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이자 동지였던 고(故) 박정기 선생의 노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7월은 유난히 기억해야 할 죽음이 많다. 여운형 선생이 7월19일, 작가 최인훈 선생과 노회찬 의원이 7월23일, 박정기 선생이 7월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죽산 선생 추모제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일도 거드는 사이가 되었다. 어떤 행사에 꾸준히 나가다 보면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신경림 선생이 죽산의 장례 풍경을 묘사한 작품 ‘그날’에서 “젊은 여자가 혼자서/ 상여 뒤를 따르며 운다”던 젊은 여자는 생전의 죽산을 닮은 따님 조호정 여사였다. 해마다 나오셨지만,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몇 해 전부터는 뵐 수가 없다. 그사이 돌아가신 분들도 꽤 된다.

내가 노회찬 의원과 처음 대면한 곳도 2012년 죽산 추모제 자리에서였다. 조봉암 선생은 이 땅의 민중과 진보정치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진보정치인 중에 당신의 추모제에 직접 찾아온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이승만 독재정권과 투쟁했던 까닭에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분이었기에 엄혹한 시절 “사람들은 가로수와 전봇대 뒤에 숨어서” 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2011년 대법원 재심을 통해 억울한 누명이 풀리고 무죄가 확정되면서 추모 화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이 왔지만, 죽산의 서훈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가로 고초를 겪고, 건국과정에서 제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토지개혁을 한 죽산이지만,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1941년 12월23일자 단신 기사를 문제 삼아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인천 서경정(지금의 중구 내동)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것이다. 당시 죽산의 주소가 부평이었다는 기록, 그런 거금을 낼 형편이 아니었다는 증언과 이만한 인물이 단신 처리되었겠냐는 의문이 있음에도 국가보훈처는 유가족에게 자료를 보완해 제출하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얼마 전 EBS에서 정부의 서훈제도를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건국 이래 우리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수여한 훈장은 총 222명 440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중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파 경찰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고,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의 비호 아래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반민특위 주요 인사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으며, 약산 김원봉 선생을 잔인하게 고문한 노덕술도 세 차례나 훈장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운동가를 학살하고, 해방 후에는 국군으로 변신하여 일본도로 민간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등 참혹한 만행을 저지른 김종원에게 우리 정부가 수여한 훈장은 무려 10여개에 달한다.

역대 대통령의 셀프 서훈도 문제지만, 일개 언론사인 조선일보가 수여하는 청룡봉사상 수상자에게 1계급 특진을 주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 상의 충(忠) 부문 수상자 중 상당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았던 이들이며, 그 가운데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포함되어 있다. 고문조작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뒤에도 조선일보는 수상을 취소하기는커녕 이후 수상자에 대해 보안상 이유를 들어 익명으로 시상하고 있다. 조봉암 묘소 앞 비석에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가 훈장 받자고 독립운동을 하고, 독재와 싸우고, 평화통일을 외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나는 지금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알고 싶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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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6일 국군기무사를 해체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령인 ‘국군기무사령’은 폐지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령부로 바꾼 지 27년 만에 다시 간판을 교체하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기무사령관을 교체한 데 이어 4200명의 기무사 요원을 원 소속인 육·해·공군으로 복귀시킨 바 있다. 다음달 1일까지 인적 청산도 하고 인력도 30%를 감축한다고 한다. 기무사를 개혁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국방부가 밝힌 개혁안은 새 사령부가 기무사 기능을 이어받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 일탈 행위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안·방첩, 군 관련 정보 수집 업무는 그대로 두되 직무범위에서 벗어난 민간인 상대 정보 수집이나 수사 행위 등은 금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부대 규모를 줄이고 인적 청산을 통해 과거 기무사와 완전히 단절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 기무사를 제대로 개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선 기무사의 수사 기능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과거 기무사는 군내 방첩·보안 수사를 하다보니 민간인이 연결돼 있어 수사와 정보 활동이 확대되었다고 해명했다. 민간에 대한 수사를 선언적으로 금지하는 것만으로 민간인 사찰을 완전 차단한다는 보장이 없다.          

장영달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장이 2일 오후 기무사개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개혁위에서 모인 의견 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그동안 기무사의 병폐가 근절되지 않은 데는 역대 권력이 이른바 ‘통수보좌’를 고리로 기무사를 활용한 것이 한 요인이었다. 통수보좌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보좌한다는 명분으로 기무사가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해온 일이다. 그동안 기무사가 정치 댓글을 달고 세월호 유족 등을 사찰하고 계엄문건을 작성한 것이 다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분에서 시작됐다. 개혁안이 새 사령부에 군내 정보 기능을 부여한 것은 통수보좌를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개혁안은 또 기무사개혁위가 폐지하라고 권고한 일선 60단위 기무부대에 대해서도 선별적 폐지를 시사하고 있다.

당초 기무사개혁위는 기무사를 대폭 축소해 국방부 산하 본부급 부대로 두는 방안, 외청급 정부기관으로 하는 방안, 현행 기무사처럼 독립부대로 존치하는 3개 안을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중 마지막 안을 택했다. 그렇다면 기무사의 일탈을 막을 확실한 견제장치를 강구했어야 했다. 민간인 비율을 조금 높이고 부장검사급 감찰실장 한 명 보낸다고 막을 수 있는 기무사의 일탈이 아니다. 기능은 그대로 둔 채 간판만 바꿔단 결과가 지금의 기무사이다. 새 사령부의 통수보좌와 수사 기능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개혁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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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은 이제 딱히 새롭지 않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의혹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기소되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법률 검토를 했다는 보도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양승태 행정처’가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법무참모’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196개(중복파일 제외)를 추가로 공개했다. 이 문건은 국회·언론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보여준다. 사진은 문건과 양 전 대법원장. (출처:경향신문DB)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습격당한 후 행정처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방지법안’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피습 사건을 ‘외로운 늑대의 백주테러’로 규정하고 “현재가 테러방지법 입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또 입법 시 “영장주의 예외, 증거능력 부여 완화, 불시 검문 가능”을 포함해야 하며 “입법 전에라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적극 해석·집행해야 한다”고 적었다.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재판에 회부된 것은 4월1일이다. 행정처는 2015년 6월 ‘박근혜 가면 민형사 책임 검토’라는 문건도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박근혜 가면’이 판매되고 있어 법적 책임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는 관련 사건이 검경에 접수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두 문건 모두 법원과 무관한 사안에 대해 사전 법리 검토를 한 것이다.

양승태 행정처가 정부 부처의 소송서류를 사전에 받아본 정황도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서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건이 발견됐다고 한다. 서울고법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을 하자 고용노동부가 반발해 재항고하며 낸 이유서다. 제목으로 미뤄볼 때 문건 작성일은 2014년 10월7일로 추정된다. 재항고 이유서가 재판부에 제출된 것은 다음날인 10월8일이다. 검찰은 행정처가 서류를 미리 보고 노동부에 법적 조언을 해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행정처가 개별 법관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시민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 하물며 법원에 오지도 않은, 아니 수사기관에 접수되지도 않은 사건에 행정처가 개입했다면 상상을 넘어서는 사태다. 삼권분립 위반을 따지기조차 사치스럽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소송을 도왔다는 의혹 또한 마찬가지다. 행정처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했는지,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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