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1월의 무섭도록 추운 어느 날, 흑인 여성 노예 마거릿 가너가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켄터키 노예 농장을 도망쳐 나왔다. 당시 가너는 임신 중이었다. 노예사냥꾼과 보안관은 즉각 도주 노예들을 뒤쫓았고, 불과 하루 만에 가너와 아이들이 숨은 농가를 둘러쌌다. 가너는 가장 어리고 사랑스러운 두살배기 막내딸의 목을 직접 베었다. 노예로 돌아가게 두느니, 죽음으로 해방시키겠다는 섬찟한 의지의 발로였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죽이고 자살하려던 가너는 추격자 그룹에 의해 제지돼 수감됐다.

이 이야기는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의 소재가 됐다. 사건 이후 십수년이 흘러, 소설 속 시이드는 딸 덴버와 함께 124번지에서 살고 있다. 124번지는 ‘원혼 깃든 집’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거울이 산산조각 나고, 케이크에는 누군지 모를 조그만 손자국이 찍힌다. 두 아들은 124번지를 견디다 못해 진작 도망쳤다. 시이드는 죽은 아기의 영혼이 집에 깃들었다고 믿고 묵묵히 견딘다. 동양에도 서양에도 원혼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시이드는 말한다. “죽었다가 살아오는 건 뭐든지 아픈 법이지.”

<빌러비드>는 복잡한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인다. 흑인 노예들의 끔찍한 역사는 여러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그 기억 중 몇몇은 사실과 다르겠지만, 사실보다 과장된 기억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여기서 모리슨은 ‘재기억’(rememor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시이드는 덴버에게 재기억에 대해 설명한다.

“집이 불타서 터만 남으면, 집은 사라져버리지만, 그 장소는 -그 장소의 잔상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거든. 단순히 내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저밖에, 세상 속에 정말로 남아 있단 말이야. (…) 내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내가 죽어버려도 내가 한 일들, 내가 아는 일들, 내가 목격한 장면들은 여전히 저 바깥에 존재한단 말이야.”

<빌러비드> 속 ‘재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환청이나 환각을 겪으면 자신의 머릿속을 의심하기보단, 다른 사람의 재기억을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과거지사라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누군가의 강렬한 경험이 사라지지 않은 채 머물며 공동체에 전파된다. 그것이 재기억이다.

재기억은 양가적이다. 죽은 아기의 원혼이 깃든 124번지나 임신한 시이드의 몸을 과학 실습의 대상으로 여긴 ‘학교 선생’에 대한 재기억은 파괴적이다. 재기억은 개인의 영역을 넘기에, 이런 재기억은 공동체에 외상을 남긴다. 반면 재기억은 개인과 역사의 진실을 백주에 드러내기도 한다.

4명의 경향신문 기자가 ‘참사 그후’ 시리즈에서 돌아본 세계는 재기억과의 투쟁 중이었다. 대규모 자연재해, 참사, 학살의 기억이 없는 곳은 없었으나, 대응 방식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랐다. 2011년 7월22일, 극우 테러리스트가 정확히 겨냥한 총에 69명의 노르웨이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의 ‘신상’을 털거나, 그가 속한 정당에 책임을 묻는 대신,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무리 민주화된 사회라도 돌출하는 문제적 개인은 있게 마련이지만, 노르웨이 사회는 “최선의 대안은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합의했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선 2004년 쓰나미로 12만명 이상이 사상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같이 ‘유가족’이 됐다. 하지만 반다아체에는 지붕 위로 올라간 어선, 벌판 위의 모스크같이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끔찍한 구조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쓰나미는 아체의 역사”라는 것이 그들의 변이었다. 독재 시절을 미화하는 이들을 추적해 망신 주는 칠레의 ‘푸나’ 시위대, 40여년간 시위를 이어온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 어머니회’는 어떤가. 수도 한복판에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세운 독일도 놀랍다.

해외의 추모와 기억 움직임에서 한국사회를 반추했다. 백혈병을 앓던 23살 딸이 아버지가 모는 택시 뒷자리에서 숨진 것은 2007년이었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딸을 비롯한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해 굴지의 대기업 삼성과 싸웠고, 11년 만에 중재안을 받아들이기 직전이다. KTX 해고 승무원이 정규직으로 복직하기 위해서는 12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여러 사람들의 가슴이 찢어졌고, 누군가는 죽었다.

아직 남은 죽음들이 많다. 또 한 명 해고 노동자의 죽음을 맞아, 염천의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다시 쌍용차 분향소가 차려졌다. 4년이 지나도록 침몰 원인조차 밝히지 못한 세월호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죽음의 물결 앞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 한국사회는 ‘원혼 깃든 집’이 될 것인가. ‘재기억’이 우리 사회를 파괴하도록 둘 것인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할 것인가.

<백승찬 토요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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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거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2007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다. 그는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며 속도나 경쟁보다 더불어 사는 삶, 즉 세계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는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아프리카는 아시아 대륙 다음으로 광활하지만 아직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지역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은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기아와 식량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한 우선조건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농업투자를 제시해 왔다.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는 농업 비중이 높지만 농업 생산성은 극히 낮은 편이다. 아프리카의 농업상황이 우수한 종자나 농업기술을 제공하기 힘들 정도로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현물을 제공하는 일시적인 원조 형태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은 1970년대 ‘통일벼 개발’로 1000년을 이어온 보릿고개에서 벗어났다. 또한 백색혁명으로 불리는 비닐하우스 농업으로 연중 신선한 채소를 생산할 수 있는 농업기술을 발전시켰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기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농업분야의 진보에 주목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우리의 농업·농촌 개발 경험을 세계 여러 나라와 나누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가 당면한 식량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국의 농업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국가에 전수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KOPIA) 센터가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설치된 KOPIA 센터만 20곳에 이른다.

아프리카에는 케냐, 알제리, 에티오피아, 우간다, 세네갈, 짐바브웨 6개국에 KOPIA 센터가 있다. 우리의 우수한 농업기술로 현지의 농업 생산량과 소득을 끌어올리며 빈곤 해결에 발 벗고 나서는 전초기지다. 7일에는 아프리카에서 7번째로 KOPIA 센터가 가나에 개소한다. 이로써 KOPIA 센터가 들어간 국가가 21개로 늘어난다. 가나가 속한 서아프리카의 주식은 쌀이다. 수년간 전문가를 파견하여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우리의 벼 육종기술로 아프리카 현지에 적합한 벼 품종을 개발했다. 개발된 벼 품종은 KOPIA 센터에서 실증시험을 거친 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가나와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이 만드는 해외 협력사업의 좋은 협업 사례이다.

KOPIA 케냐 센터는 바이러스에 강한 씨감자·육계 우량종을 보급하고 재배 및 사육 기술을 전수해왔다. 그 결과 씨감자 생산량 3.9배 증가, 양계농가 소득 3.6배 상승이란 값진 성과로 돌아왔다.

빌 게이츠는 “인간의 위대한 진보는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떻게 불평등을 줄이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얻은 농업발전 경험을 공유해 지구 저편, 소외된 이웃의 가난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지구촌 일원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 지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실천임을 농촌진흥청 KOPIA 센터가 증명하고 있다.

<라승용 |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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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요령 없이 성실하기만 한 남편을 만났던 처녀 시절까지 닿기는 너무 멀까. 그는 자신의 처음을 어디로 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틈틈이 반찬값이나 벌자고 했던 일들을 처음이라 하기에는 번잡할까. 그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아이들을 서넛씩 키우던 시절에 여자들은 너나없이 손을 놀리지 않았다. 미용 기술을 배운 이는 야미로 동네 아줌마들 파마를 말아 솔찬히 돈벌이를 했고, 재봉질 좀 해 본 이는 온종일 커튼이고 옷이고 쌓아놓고 드르륵드르륵 박아댔다. 그는 방에 앉아 한 달 내내 붙이고, 떼고 해봤댔자 유명 메이커 운동화 한 켤레 못 사 신기는 일을 수없이 했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런 일을 번듯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듯 그도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처음을 남편이 십 년 넘게 하던 가게를 접었을 때로 뒀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갈팡질팡하는 남편 대신 그가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남편의 끝이 그의 시작이었다. 그는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식당에 납품을 하기도 했고, 직접 장사를 하기도 했다. 돌을 놓는 바둑판이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가 몸으로 부딪쳐 깨우친 인생의 정석은 없었다. 이쯤이다 싶으면 악수이거나 헛수이기 쉬웠다. 그러니 그에게 인생은 바둑판이 아니라 계단이었다. 아무리 올라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래도 자식들은 잘 자라줬고, 세월은 잘도 흘렀다. 자식들이 밥벌이를 한 뒤에도 그는 일을 쉬지 않았다. 술집 주방에 나가 새벽까지 안주를 만들었으며, 빌딩 청소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부터 동네 아파트 청소일을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우니 좋고 오전에만 하면 되니 안성맞춤이었다.

“주민 민원이 들어왔다면서 이 더위에 신주를 하라(황동에 광 내라는 의미)는 거야. 아파트 소장은 일하는 사람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하라네.”

111년 만의 폭염이 예고된 날 아침, 그는 계단 끄트머리에 댄 황동을 광내면서 계단을 올랐다. 나는 지금껏 숱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빛나는 황동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을 빛낸 이의 땀 흘린 삶을 고마워하지 않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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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1. “이건 기생충이 맞습니다.” 내 말에 A는 당황해했다. “선생님, 다시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아무리 봐도 이건…” 난 A의 말을 잘랐다. “이것 봐요. 기생충은 제가 님보다 더 잘 알잖아요? 제가 맞다면 맞는 겁니다.” A는 알았다고 하며 내 연구실을 나갔다. 그로부터 5년 뒤, 난 학술지에서 ‘기생충과 구별해야 할 음식물들’이란 기고문을 봤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식물의 줄기가 대변으로 나올 경우 기생충과 헷갈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사진에 나온 콩나물이 A가 내게 가져온 물체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알아본 결과 내 진단이 A에게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A를 해고했다.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기생충 감염 전력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 A의 가정은 무너졌고, 그의 자녀들도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정 2. “며칠 정도 걸리겠습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그 사내는 내게 싱싱한 회충알 1만개를 구해달라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리 좋은 목적에 쓰일 것 같진 않았다. 싫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승진에 지장이 있다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매스컴은 B를 비롯한 몇몇 반정부인사들이 다량의 회충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더불어 진보인사들의 위생관이 도마에 올랐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B였지만, 그는 몇 달간 격리된 채 치료를 받는다는 후속기사를 마지막으로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물론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다. 회충은 이제 우리 사회에 없다시피 하며, 있다 해도 약 한 알로 치료되니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많은 이들이 나를 비난할 것이다. 나의 실수에서 비롯된 첫 번째 사례라도 욕을 먹어야 마땅하지만, 두 번째 사례라면 욕을 먹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에게 기득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을 써달라는 당부의 일환이다. 거기엔 전문가들이 최소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지식을 남용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담겨 있다. 전문가들의 범죄가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법부의 만행을 다룬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이제이>에 출연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그 밑에 있는 판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고발한다. 한 사건만 보자. 좌우익 대립이 치열했던 1949년,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경찰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들였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정재식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남편이 걱정된 아내 이외식씨는 첫돌이 막 지난 ‘도곤이’를 등에 업고 20리 길을 걸어 경찰서에 찾아간다. 제발 남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자 경찰은 수감된 사람들이 골짜기로 끌려갔다고 말해준다. 시쳇더미들 사이에서 아내는 죽어있는 남편을 찾고 망연자실한다. 억울한 죽음이지만, 국가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외식은 빨갱이의 아내라며 가족은 물론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외식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그녀 등에 업혀있던 정도곤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2009년, 과거사위원회는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살해한 그 사건이 국가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은 아내 이외식에게 3억3000만원, 아들 정도곤에게 2억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돈이 잃어버린 50년을 되돌려주기엔 턱없이 적지만, 어이없게도 국가는 항소했다. 2심을 진행할 당시 사법부의 수장은 양승태였다. 손해배상금은 대폭 삭감돼, 이외식 8800만원, 정도곤 약 5000만원이 됐다. 국가는 이마저도 주지 않겠다고 상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정도곤씨의 배상금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했다.” 소위 재판거래 의혹, 즉 양승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내가 이렇게 국가 돈을 절약해 주고 있으니 내 요구도 좀 들어달라’며 꼬리를 흔든 것이다. 이 파렴치한 행각이 드러난 뒤에도 대법관들은 사죄하기는커녕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양승태는 “법과 양심에 어긋난 재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래도 이들에게 기득권의 대우를 해줘야 할까?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심을 이제 거두자. 그리고 최저임금인 시간당 8350원을 주자. 신뢰를 저버린 전문가에겐 그것도 아깝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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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시민의 숲’이라는 공원이 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1988년 이곳에 매헌윤봉길기념관을 건립하고 그 주위를 나라사랑의 장(場)으로 만들려 노력해왔다. 그 결과 공원 안팎에 매헌동상, 매헌교(다리), 매헌숭모비, 매헌역, 매헌초등학교 등이 탄생되었고, 그 일대 새 주소명은 ‘매헌로’로 명명돼 명실상부한 매헌타운이 조성됐다. 당면현안은 부적합한 공원이름을 바로잡는 일이다. 시민들은 ‘시민의 숲’이란 공원 이름을 잘 모르고 양재공원, 양재시민공원, 매헌(윤봉길)공원이라고 멋대로 부르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서울의 모든 공원이 시민의 휴식공간을 위해 조성된 시민의 숲이기에 발생한다. 이처럼 특정 공원의 이름으로 부적합하고 상징성이 없는 ‘시민의 숲’을 윤봉길공원으로 바꾸려 지난 30년간 개명운동을 펼쳐왔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초기 ‘관계 당국은 100년이 안된 인물의 이름을 공공시설에 명명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마침내 윤 의사 탄신 100주년이 되는 2008년 윤봉길공원으로의 개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지역 국회의원이 “윤봉길 의사는 서초구와 연고가 없고, 윤봉길기념관이 특별히 서초구 내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대며 반대해 또다시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8월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솔선해 ‘시민의 숲’을 윤봉길공원으로 개명한다고 발표해 큰 기대를 품었으나 그마저 일회성 공약으로 끝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적인 추세는 공원을 나라사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자국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을 공공시설에 명명한다. 케네디공원, 링컨공원, 간디공원 등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윤봉길 의사가 거사한 홍커우공원은 1988년 루쉰공원으로 바뀌었다. 루쉰은 중국인들이 추앙하는 중국의 문학가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내가 죽거든 하얼빈공원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 땅에 반장해다오”라고 지목했던 하얼빈공원 역시 중국 공산당 영웅 리자오린 장군의 이름을 따서 자오린공원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 부천시가 안중근 의사 동상을 원미구 중동의 중동공원에 세우고 안중근공원으로 바꾸었다.  지금 많은 시민들도 부적합한 공원 이름의 개명에 찬성하고 있어 정부와 서울시가 진지하게 협의한다면 윤봉길공원으로의 개명도 의외로 간단히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다가왔다. 윤 의사 의거는 당시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임시정부를 되살렸다. 임정 수립 10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시민의 숲’공원을 윤봉길공원으로 개명하여 임정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가 그 의미를 담아 명명된 윤봉길공원 원년이 되도록 정부와 서울시의 결단을 촉구한다.

<윤주 | (사)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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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조각가 프랑수아 르무안(1688~1737)의 작품처럼 ‘진실을 구하는 것은 시간’이다. 진실의 신 베리타스는 무지와 거짓, 기만과 계략의 신들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만나서야 비로소 베리타스는 장막을 벗는다. 하지만 신화와는 달리 역사에서 시간은 신이 아니고 무심히 강물처럼 흘러오지도 않는다. 거짓과 계략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크로노스가 되어야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그들이 몸을 던질수록 시간은 움직였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났다. 역사는 그렇게 진보했다.

지난 6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에서 그런 진실의 순간과 공간을 기억하자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되살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므로 고문살해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민주인권기념관 조성’ 선언과 ‘정부의 적극 지원’ 확약은 너무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럽다. 문 대통령도 강조했듯,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결정은 정부의 일방적인 선언이나 당파적인 숙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심화를 바라는 정치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일이며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이루어낸 결과다. 살해 현장과 야만의 공간을 민주주의의 기억의 장소이자 인권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으로 ‘남영동’은 ‘제2의 역사’가 시작된다. 박종철기념사업회가 강조했듯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독재의 발톱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국가권력의 인권유린은 우리 사회의 중심에서 발생했고 무심한 일상적 삶과 공존했음을 그대로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 처절한 고통과 공포, 기괴함과 당혹함을 어떻게 ‘민주인권기념’으로 승화시킬지에 대해 모두들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 특히 지난 두 권력자들의 역사 유린과 악용을 기억한다면, 정치가들과 권력기관은 역사기념관 건립과 운용에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이 역사를 권력의 전리품이자 노리개로 삼은 것에 대항했다. 부디,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역사정책 결정과 기억문화 창출의 ‘과정’을 보여주자.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의 재현과 기념은 무엇보다 민주적 공공성과 전문성에 기초해야 한다. 다원주의와 개방성에 기초해 장기간의 숙의와 다차원적인 검토 및 비판적 수정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권력이 달라졌으니 역사기념도 좋겠지 하는 식의 막연한 신뢰는 위험하다. 공공역사에 대한 능동적 관심과 참여야말로 민주 시민의 덕목이다.

망각은 수동적 현상이지만 기억은 능동적 실천이다. 망각은 개인적 행위이지만 기억은 상호작용의 결과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은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집단적 논의, 즉 비판적 토론과 사회적 소통 과정을 통해 건립되어야 한다. 건립 과정에서 이견과 논쟁이 있다면 결정을 유보하고 재론하고 재고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박종철과 김근태의 길, 즉 민주주의다. 정치폭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최신 성과, 건축과 조형을 통한 예술적 재현의 멋진 지혜, 민주시민교육의 발전 전망 등이 서로 얽히고 융합하는 특별한 문화공간이 되길 빈다.

이때 국가기관이 겸손해야 한다는 걸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다원주의적 소통과 지혜의 융합을 매개하는 데 중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집단학습을 통한 민주적 토론의 광장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가폭력의 만행과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과거에 대한 것이지만 결국 현재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회적 기억과 전승이라는 ‘두 번째 역사’는 ‘첫 번째 역사’의 단순 재현으로 이뤄질 수 없다.

국가폭력의 ‘기억’ 장소는 비통과 분노를 부른다. 추모와 공감은 폭력 현장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 하지만 엄숙의 무게와 감정의 과잉은 형식적 의례나 의무의 강박을 낳고 다양한 질문과 생기 있는 토론을 막기 쉽다. 이해와 설명을 자극하고 숙고와 토론을 촉진하는 것은 결국 ‘역사’다. 그렇기에 ‘민주인권기념관’은 도덕적인 집단 감성을 창출하는 ‘과거 재현의 공간’을 넘어 성찰적이면서 소통 가능한 민주주의 정치의식의 형성을 돕는 ‘역사광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민주인권기념관’의 방문객들은 과거 폭력의 아픔이나 영웅적 투쟁의 위용에만 갇히지 않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나 민주와 인권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진실을 구하는’ 크로노스들은 그렇게 다시 등장한다. 그것이 ‘죽은 자의 관이 산 자의 심장’이 되는 길이다.

<이동기 | 강릉원주대 교수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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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칼럼에서 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정치변동을 살펴봤다. 정치적 포퓰리즘 시대의 개막이 그 변동의 핵심을 이뤘다. 그렇다면 사회·문화 변동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사회·문화가 갖는 다양성을 고려할 때, 지난 10년 동안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그 변동의 추세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서구사회를 위시해 대다수 나라들을 관통하는 두 가지 경향을 주목할 수 있다.

하나는 ‘지구 문화’가 쇠퇴하고 민족주의가 강화돼 왔다는 점이다. 지구 문화란 1980년대 이후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를 부각시킨 문화적 경향을 지칭한다. 지구 문화의 다른 이름이 ‘미국 문화’였다. 금융위기는 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미국 문화가 누려온 지구적 헤게모니에 타격을 가했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과 세계화에 맞서는 민족주의에 힘을 불어넣었다. 2011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로 시작된 ‘점령(Occupy) 시위’의 확산과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는 포퓰리즘의 부상은 대표적 사례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제위기로부터 촉발된 불만과 불안이 내면화돼 왔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특히 서구의 사회·문화는 1970년대 후반 영국의 ‘불만의 겨울’과 닮아 있었다. 위기의 경제, 무능한 정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빠진 사회가 불만의 겨울이 보여준 풍경이었다.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신자유주의로 가는 전환기의 불확실성과 통제 불가능성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명명한 ‘유동하는 공포’를 유포시켰다. 삶의 위험을 어디서나 만나지만 그 정체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그 결과에 올바로 대응할 수 없다는 불안의 내면화 및 구조화가 유동하는 공포의 중핵을 이뤄 왔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2012년,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 물리학자 주앙 카라사, 언론학자 구스타보 카르도소는 경제위기가 가져온 사회·문화 변동을 ‘여파: 경제위기의 문화’에서 분석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저항은 빈발하고, 포퓰리즘 정책이 분출하며, 방어적 개인주의 문화가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부채질해 왔다. 또, 타자에 대한 적대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사회적 네트워크는 장애에 부딪히고, 정부와 국민 간의 거리가 멀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두려움의 문화가 번져 나가는 동시에 대안적 문화 또한 등장해 왔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요컨대, 불안이 지배하는 문화와 대안을 추구하는 문화가 혼돈스럽게 공존하는 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사회·문화 풍경인 셈이다.

상반된 경향의 기이한 공존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관찰됐다.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등장한, 마누엘 카스텔스가 명명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는 금융위기 이후 사회·문화 변동을 독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는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와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부족주의’의 공존을 강화시켰다. 예를 들어,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개인주의가 증대하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취향에서 사회적 혐오에 이르는 부족주의가 동시에 번성해온 시대가 지난 10년이었다. 과잉화된 연결 속에서 자아는 정작 고독에 유폐되는 모순적 경향은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또 하나의 사회·문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그 일차적 원인을 경제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문화 변동에서 ‘정체성 정치’가 점점 더 중요해져 왔다는 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영향력 상실, 불안의 내면화와 구조화,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의 등장 등은 정체성 정치를 활성화시키고 또 강화시켰다. 사회학자 크레이그 캘훈이 강조하듯, 정체성은 개인에게 의미의 근원을 이룬다. 실존적 자아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정체성 정치는 유동하는 공포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유효한 무기를 제공했다. 금융위기 이후 어느 나라든 목격할 수 있는 포퓰리즘과 페미니즘의 분출은 강요된 세계화로 상실한 국가의 존재와 신보수적 가부장제로 훼손된 여성의 권리를 복구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현재, 지구적 사회·문화는 낙관보다 비관으로 채색돼 있다. 비관의 근원은 사회 시스템의 통제 불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안겨주는 일상화된 불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종언을 고하고 낯선 세계가 열리고 있는데, 인류는 이 새로운 세계를 판독할 지도를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비관주의에 당당히 맞설 출발점은 금융위기 이후 변동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사회·문화 변동을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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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촛불의 시간>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가 “국민이란 말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세요”라고 했더니, 박 후보는 “그것은 전주 시민, 대구 시민 아니에요?”라고 되물었다. 송 교수는 “시민에 대한 역사적 개념이 결여된 것이며, 이 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시민을 국민으로만 간주했다는 데서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는 ‘국민’이 57차례 등장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국가주의 DNA’는 박근혜 그 자체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이다. 피겨선수 김연아를 등장시킨 TV 광고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대한민국이다”라는 강렬한 문구와 음성을 강조한 광고는 ‘국가 마케팅’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국가대표로 뛰니 너는 국가 그 자체라는 영상에는 국가주의 기운이 그득하다. 비난이 쏟아졌다. 한 시민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압권이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로 시작되는 영상은 “당신은 김연아입니다”로 맺는다. 올림픽 때면 등장하는 ‘애국 마케팅’쯤으로 넘어갔을 ‘김연아 광고’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국가주의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삶마저 억압하려드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호명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증폭된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정서를 끌어 문재인 정부를 타격하려는 야심 찬 기획인 성싶다. ‘국가주의’의 적부는 일단 제쳐두고, 김 위원장이 국가주의의 사례로 든 게 좀 뜨악하다. ‘먹방’ 규제, 초·중·고 카페인 식품 판매 금지 등을 내세웠다. 청소년을 유해식품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게 국가주의와 무슨 상관일까. 미국과 유럽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규제책을 펴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규제하고, 설탕에 비만세를 매기고, 술 광고를 제한한다. 이런 걸 국가주의라고 한다면 선진국은 죄다 국가주의 천국이겠다. 국가주의와 같은 정권의 정체 논쟁을 제기하려면 그에 부합하는 정책과 근거들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해서 묻고 싶어진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국가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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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7일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시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은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를 제한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다. 문 대통령은 “그간의 금융산업의 시장구조는 일부가 과점적인 이익을 누리고 혁신적인 참가자들의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핀테크 산업 발전상에 대한 경험담까지 보태면서 “제때에 규제혁신을 이뤄야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고 4차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다”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견도 만만치 않다. ‘문 대통령의 금융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한 시도’라거나 ‘대선공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먼저 은행산업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 정상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은행은 은산분리라는 보호망 안에서 각종 혜택과 기득권을 향유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의 후생은 외면하고 있다. 은행들은 예금에는 싼 이자, 대출에는 비싼 이자를 받으면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다. 그뿐인가. 정작 일자리는 줄이고 혁신적인 서비스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금융소비자들의 후생은 줄고 금융산업도 후퇴할 것이다. 중국의 인터넷은행은 2014년 도입돼 출발은 한국과 비슷했으나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다. 한국은 은산분리로 인터넷전문은행의 자본 확충이 어려워 혁신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새로운 플레이어가 활발하게 움직이면 기존 은행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전·후방의 고용효과를 유발하고 핀테크 등 연관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규제완화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과거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진 규제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긴요하고 정당성을 인정받던 것들이지만 환경변화와 기술진보에 따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규제에 대한 옥석 구분이 필요하다.

물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됐을 때 초래할 위험을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몇 해 전 발생한 동양증권 사태가 대표적이다. 규모가 작은 증권사였기에 망정이지 은행이었다면 더 큰 피해를 가져왔을 것이다. 시민단체가 말하는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도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고 은행산업의 문제를 확인했는데 눈감는 것은 더욱 무책임하다. 문 대통령은 어제 “은산분리의 대원칙은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절대로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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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오는 2022년까지의 인권정책 청사진을 담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7일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이번 계획은 인권 보호 대상을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생명·신체를 보호하는 사회 △평등한 사회 △기본적 자유를 누리는 사회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사회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공정한 사회 △인권의식과 인권문화를 높여가는 사회 △인권친화적 기업활동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등 8개 목표, 272개 과제를 담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안전권’ 신설과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적시한 대목이다. 전자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서 제기된 요구를 반영한 것이고, 후자는 사회보장제도 강화 추세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인권정책 과제를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규 과제를 추진하기에 앞서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잊어선 안된다.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밝히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 정신에 따라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법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입법예고됐으나 ‘성적 지향’ 항목 등을 문제 삼은 보수 개신교계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에도 수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 그사이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인권은 크게 악화됐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공적 활동을 하는 시민운동가의 성정체성을 문제 삼고, 이주자와 외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가 일상화하는 터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200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 3차 계획 역시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제정방안 마련’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담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 장기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추진한다. 다만 통과를 자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력한 의지가 있어도 쉽지 않은 판국에 이토록 소극적이어서야 되겠는가. 촛불의 힘으로 세워진 정부답게 소명의식을 갖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촛불은 새로운 정부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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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회의가 7일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전형 비율을 현재보다 늘리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에 제2외국어·한문을 포함시키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다만 수능 비율은 명시하지 않고 대학 자율에 맡기도록 했다. 또 국어·수학·탐구는 상대평가를 유지토록 했다. 1년 동안 공들인 대입 개편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개편 권고안은 개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대입에서 수능 반영 비율을 높이고 상대평가를 유지토록 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를 개편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안배도 엿보이지 않는다. 확고한 교육 철학과 비전에 따라 대입제도를 개편한 게 아니라 그저 여론을 반영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대입 개편 권고안이 정부의 교육공약과 배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은 계층 간 불평등 해소, 학교교육 정상화, 입시경쟁 완화 등으로 모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자사고·외고 폐지 등 고교체제 개편,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등을 내걸었다. 어느 것 하나 수능 전형 확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고교체제 개편만 해도 수능 확대에 유리한 자사고를 폐지하기 쉽지 않을 터이다.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입 개편 권고안에 대해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보수교육단체는 수능 정시 반영 비율이 공론화위원회에서 제시한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진보교육단체는 입시경쟁교육을 강화하고 혁신교육을 무력화하는 안이라고 주장한다. 워낙 반발이 거세 대입 권고안이 이대로 확정된다고 해도 제대로 교육현장에 정착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공은 다시 교육부로 넘어갔다. 교육부는 교육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이달 말 최종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 최종안을 확정짓기까지에는 수능 과목 구조, 고교체제 개편, 성취평가제 등 몇 가지 고려 사항이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수능 전형을 확대하라는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로서는 책임 회피, 철학 부재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마지막 기회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혁신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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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인간을 가장 강력히 바꾸는 제일 간단한 도구는 경험이라고 했다. 경험은 학습의 가장 단순하고 실천적인 과정이다. 공공서비스를 변화시키기 위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서비스 디자인에서도 사용자의 경험(User experience)이 지도의 출발점이자 모든 혁신의 입구라고 한다. 즉 경험은 혁신을 안내하는 기록이다. 정신과 전문의 반데어 콜크를 비롯해 많은 의사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은 몸에 기록되어,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게 한다고 했다. 프랑스 공교육 대안운동가인 프레네는 각성된 머리보다 능숙한 손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함(doing)으로 인해 알게 되는(learning) 학습은 모든 혁신적 교육자나 정책가들의 기본 모토였다. 그래서 경험을 하기 위하여 현장에 나가는 것이다. 공간을 바꾸면, 우리의 뇌는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뇌세포의 배열부터 여러 지각이 바뀐 채로 활동하게 된다. 사무실 안에서 세상을 모두 내다볼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 심마니에게는 보이고 일반 등산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더 훈련된 사람들이 자주 현장에 가야 변화를 마련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개혁가 바자리아는 “갇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신체의 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들만이 아는 공간에 대한 자유와 갈망이 있다”고 했다. 그는 반나치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경험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정신병원 탈시설화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슴에 담게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현장 행정은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옳다. 현장에서 듣게 되는 시민의 육성은 문제의 해답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길을 낼 것이다. 나는 모든 시장과 사업주에게 이런 과정을 바란다. 아마도 삼성 이재용씨는 조업과정에서 백혈병을 유발하는 공장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종이 위에 글자로서. 차라리 그 사업장에서 한 달간 일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항공 조현아씨는 평승무원으로 돌아가서 한 달간 비특권적 차원에서 근무를 해보면 어떨까? 쇼라도 그런 일이 늘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구호를 외치거나 교육받는 것보다 환자 체험에 참여했던 직원들이 더 친절도가 높았다는 연구보고들은 꽤 많다. 이 역할전환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는 동화로 읽은 <왕자와 거지>일 것이다. 왕자가 거지가 되어보았기에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이 낡은 이야기는 정말 가장 극적인 역할전환 체험이다.

중심부로 갈수록 주변을 잊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변두리 사람들의 삶은 잊혀지기 쉽다. 많은 관료들이 더 어려운 사람들의 삶 속에 더 깊숙이 들어와서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쇼처럼이라도 더 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 이제 다른 시장님이나 지자체 지도자들은 반지하방을 포함한 시민들의 현장에 사무실을 차려보길 권한다.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5위 해리 왕자가 10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것이나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이 한때 응급 헬기 조종사로 취업해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는 인사들이 곱씹어봐야 할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권을 내세우지 않고 시민의 곁에 있을 때 시민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었다는 기분, 즉 사회적 치유가 작동되고 신뢰가 구축된다. 반면 한국인들은 우리 사회가 불평등·불공정·특권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믿는다. 관료, 재벌들이 몸의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권에 따른 경험 외에는 없다. 관용차만 타고 자가용만 타는 시장과 재벌 총수가 마을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의 요금이 얼마인지를 알겠는가? 무더위로 인해 새벽에 깨어나서 허탈감에 차오르는 피곤함을 알겠는가? 

흔히 기획자들은 사용자의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릴 때, 일시적이나마, 그 자신이 사용자가 되는 방법을 취한다. 시장을 가고, 군대를 가고, 현장을 가는 것은 사용자의 시야로 경험을 하여 정말 필요한 것을 찾는 발견과 통찰의 과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서가 아니라 몸의 감각이다. 몸의 감각은 시간과 함께 답을 제시하는 데 가장 솔직해서, 불편감을 비롯한 각종 진실을 가장 빨리 토해낸다. 역할전환 경험과 현장 행정은 혁신과 사회치유의 출발이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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