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왔던 인공지능 ‘할(HAL) 9000’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컴퓨터는 왜 우주선에 같이 탄 탐사대원들을 죽였죠?

- 자기가 지구 본부에서 받은 명령과 동료들이 서로 모순을 일으켜서죠.

- 어떤 모순이죠?

- 지구에서 알려 준 정보를 탐사대원들에게는 숨겨야 했기 때문이죠.

- 그렇다고 죽이나요?

- 어… 탐사대원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 아니죠. 동면하고 있던 탐사대원들도 죽였는데, 그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도 않았잖아요.

- …

- 자, 이 인공지능이 처한 상황을 우리 정리해봅시다. 처음에 지구에서 출발할 때, 인간 탐사대원들을 도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공유하라고 했고요.

그런데 목적지에 정체불명의 외계 물체가 있다는 사실은 도착 전까지 숨기라고 따로 지령을 내렸단 말이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래서 인공지능이 논리적으로 모순된 상황에 빠진 거예요.

- 그러면 도착 전까지는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 우주 탐사라는 특수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인공지능은 당연히 인간에게 최대한 협조해야 합니다. 필요한 정보 공유는 인공지능이 태어날 때부터 의무사항으로 설정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외계물체의 존재를 모르는 인간 탐사대원들이 탐사 준비하는 걸 보면 인공지능 입장에서 이것저것 지적을 해줘야 하지만, 그러면 숨긴 정보를 알려줄 수밖에 없죠.

이런 논리적 모순을 인공지능 혼자서 안고 고민하다가 극단적인 해결책을 내린 겁니다. 즉, 모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 한 거죠. 자, 이와 비슷한 일이 현실에도 있을까요?

- … 그런 SF를 참고해서 잘 만들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 논리적 모순이라는 상황이 과연 없을까요? 예를 들어 담배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담뱃갑에는 금연 문구가 들어 있죠?

- 네!

- 담배를 만들고 파는 곳에서 금연 캠페인을 한다는 사실을 인공지능에게 어떻게 납득시키죠? 담배를 피우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 …

- 술을 마시면 사고를 쳐도 심신미약이라고 법적으로 좀 봐주게 되어 있죠. 그렇다면 왜 술을 전면 금지하지 않냐고 인공지능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죠?

- 술이나 담배는 기호품이라고 해서 사람이 그걸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잖아요.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죠.

- 인공지능에게는 좋다, 나쁘다란 판단 기준이 없어요. 수학적으로 최적화를 추구할 뿐이죠. 최적화되지 않고 비효율적인 상황이 필요하다는 걸 인공지능에게 어떻게 이해시킬까요?

- …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걸 납득시켜야겠네요.

- 맞아요. 인공지능은 우리 인간이 수학 원리를 바탕으로 만든 거지만, 정작 인간은 그런 원리로 행동하지 않죠. 과연 이런 간극을 그대로 놓아둔 채로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잘 수용될 수 있을까요?

- … 그러면 인공지능에게 적용되는 연산 논리를 다르게 짜야 하지 않을까요? 수학적으로 최적화되도록 하는 게 아닌, 뭔가 다른 기준의 최적화를 따르게 말이에요.

- 그 다른 기준이 뭐가 될 수 있을까요?

- 그건… 연구를 해봐야겠지요.

- 사실은 수학적 원리로 최적화를 추구하도록 해도 몇 가지 변수를 미리 정해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담배나 술을 전면 금지하면 당장 그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직자가 될 테니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하겠지요. 또 기호품을 구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 때문에 범죄율이 올라갈 수도 있고요. 만약에 사회에서 특정 기호품을 영원히 퇴출시키려 한다면 장기간에 걸쳐 비효율이 최소화되는 방법을 계산해내라고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죠.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충분한 데이터, 즉 빅데이터와 충분한 계산용량을 갖춘 인공지능이라면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문제들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인공지능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식의 해결로 끝이 날까요? 인공지능이 어느 날 우리 인간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

스스로 자아라는 의식을 지니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이라 한다. 알파고나 왓슨 등 현존하는 모든 인공지능들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전자계산기와 다를 바 없는 ‘약한 인공지능’이다. 그러나 컴퓨터공학이 계속 발전하면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스타 트렉>의 ‘데이터 소령’이나 <A.I.>의 ‘데이비드’처럼 여러 SF에서 묘사되는 강한 인공지능들은 인간을 학습하고 모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충분히 성숙한 강한 인공지능은 언젠가 인간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게 되지 않을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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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김유미는 작가 지망생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공모전에 당선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대했던 문학상에서 다시 낙방하고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아픈 말을 꺼내고 만다. “너 재능 없다고, 인정? 어… 인정.” 그렇게 자신을 규정하고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미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딸 이제 정신차렸구나, 그래 해보고 싶은 거 한 번 해봤으면 됐다. 유미야, 지금 네 나이를 생각해 봐라, 남들은 지금 다 돈 모아서…”하고 문자를 보낸다. 유미는 남자친구에게도 만나면 알려줄 소식이 있다고 전화를 한다. 회사에 복직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이때 우리는 유미가 되기보다는, 유미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 내가 될 것인가를 먼저 상상해보아야 한다. 정신을 차렸다고 기뻐하는 나일지, 열정과 끈기가 없음을 비난하는 나일지, 괜찮다고 안아주는 나일지, 저마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곁에는 유미를 닮은 소중한 이들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이동건 작가의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들> 한 장면

유미를 보면서 나는 얼마 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아내를 응원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 젊은 남자를 떠올렸다. 날마다 지쳐 보이는 아내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시간강사였던 나에게 “어떤 말이 가장 힘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래서 그간 어떤 응원을 해주셨나요, 하고 되묻자 그는 “힘내, 그래도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라고 말해 주었다고 했다. 내가 “저, 죄송하지만 전혀 응원이 안되었을 것 같아요. 그 말은 저도 정말 많이 들었지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거든요” 하고 웃자, 그도 겸연쩍게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젊은 연구자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이야 이제 대학생들조차도 알아서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가장 힘든 건 그 처우에 따른 생계의 곤란함보다도 다른 데 있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일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다.

나의 경우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합친 8학기 동안 적어도 10번 이상은 했던 것 같다. 어쩌면 하나의 발제문을 쓸 때마다 10번씩의 후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감이 있는 무엇에 제대로 한 줄 보태지도 못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워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20대 중반, 그렇게 꾸역꾸역 쓴 발제문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갈 때의 민망함, 발제 후 질의 시간에 받게 되는 비판과 격려들, 그래서 후줄근한 마음, 좋아서든 부끄러워서든 마시게 되는 술 한 잔, 그때의 감정들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내가 쓴 논문을 건네는 것이었다. 별쇄본으로 나온 20여페이지의 볼품없는 그 논문을 내밀고 나면 그래도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 하고 손짓하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멋져, 힘내,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였다. 친구들은 대다수가 회사원이었고 그들은 자신과 나를 동시에 위로하고 싶어 했다. 가끔은 내가 부럽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응원이나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마음이야 고마운 것이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자괴감이 더욱 커졌다.

그 남자에게 “아내에게서 논문을 선물받은 일이 있으신가요”라고 묻자, 그 역시 몇 번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니어서 그냥 받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내가 논문을 건네며 바란 한마디는 사실 명확했다. “논문, 잘 읽었어” 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글이고, 읽는다고 해서 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칠 만한 무엇도 아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나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그것을, 지도교수와 심사위원과 나, 이렇게 세 사람에 더해 당신 한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해서 건네는 것이다.

유미는 출판사로부터 “이번 공모전에 출품하셨던 작가님의 작품 <내 사랑 뮤즈> 출간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하는 내용의 연락을 받는다. 그의 남자친구 유바비는 그 소식을 듣고 이제 그에 반응하려고 한다. 나는 그가 “축하해 유미야, 나는 너의 글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 계속 너의 글을 읽게 돼서 기뻐. 그리고 책이 나오면 내가 제일 먼저 살게”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유미도, 나도, ‘그’의 아내도,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버텨내고 있는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꼭 듣고 싶은 한마디일 것이다. 힘내라는 말은 사실 공허하다. 대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그의 삶뿐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 나도 여전히 그 말이 가장 (듣)고프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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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당구장의 다이는 반듯한데 왜 우리 학교 제도판은 반듯하지 못한가’라는 건축학과 학생과, ‘영화 실습과제를 찍어서 스크린에 쏘지 못하고 흰 벽에 비추어서 발표한다’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원대 학생들이 등록금 환불 소송을 시작한 게 2013년 7월이다. 그리고 5년 만에 대법원이 학생 42명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원대 학교법인 고운학원과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학생들에게 각 재학기간 1년당 3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최종 확정하였다(대법원 2016다34281호 판결). 이로써 과거 재학했던 학생들도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여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7월 소송 제기 당시 수원대는 학교에 쌓아둔 적립금이 3000억원을 넘었다. 그런데도 등록금 환원율(등록금 중 교육에 쓰는 비용)이 70% 정도에 불과했고,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41%, 학생지원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8.98%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실험실습실은 물이 새고, 실험도구들은 고장 나거나 쓸모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과 이사장은 개인적 목적의 출장에 교비를 사용하기도 했다.

법원은, ‘수원대는 교육법과 교육기본법이 요구하는 교육시설 등의 확보 의무를 다하여 학습자의 학습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이월·적립금을 부당하게 운영하면서 전임교원 확보율과 교육비 환원율,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 등이 모두 대학평가 기준에 미달함은 물론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의 통상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당시의 기대나 예상에 현저히 미달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으므로 그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실한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잠재력 발전 가능성의 손상이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미래 전망의 훼손이며, 이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거나 복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등록금이 비싸다면 교육의 질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 대학들의 교육환경은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이러다보니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학생들의 교육에 사용되어야 할 등록금이 다른 데에 쓰이고 있다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등록금 중 상당 부분을 이월하여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러한 이월·적립금은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될 여지가 크다. 등록금을 받아 교육에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 쓰거나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는 행태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학의 요직에 앉아 있는 설립자 후손이 임의대로 처분하여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실제 교육의 질에 비하여 과도하게 비싸다는 점을 확인해준 최초의 판결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을 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학교의 설립·경영자인 학교법인뿐만 아니라 이사장과 총장에게도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움으로써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사립대학들의 이사장과 총장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영기 변호사·민변 교육청소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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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일부터 8일까지 ‘경력증진 캠프’라 이름하여, 우석대 학생들을 인솔하여 뜨거운 타이완에 갔다. 이번 캠프는 강제연행자 유골문제를 다루는 ‘평화의 디딤돌’과 함께했다. 타이베이에서 이틀간, 장제스(蔣介石) 통치시기의 국가폭력의 현장을 답사하고, 8월5일부터 남부의 핑둥현(屛東縣) 리나리(禮納里) 루카이족 원주민 마을에서 일본과, 타이완의 젊은이와 함께 ‘원주민을 향해 새롭게 아시아를 배운다’라는 주제로 공부했다.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하여 ‘무능·부패’로 낙인찍혀 미국의 지지를 잃어버린 장제스는 1949년에 타이완으로 도주하여 계엄령을 선포했다. 6·25전쟁 발발로 미국의 지지가 회복되어 ‘기사회생’한 장제스는 타이완의 통치기반을 굳히기 위해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1950년대 백색테러)을 벌이고, 계엄을 무기한 연장하여, 국민당 외의 정당 금지(黨禁), 언론통제(報禁)를 실시했다. 이 독재체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의 비호 아래 중국 국토의 0.3%에 지나지 않는 타이완의 국민당정부가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정부로 유엔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차지한 부조리에 많은 나라들이 반발하여, 1971년 유엔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대표권 귀속문제’를 표결에 부친 사건이다. 참석한 128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76표, 반대 35표, 기권 17표가 나와 중화인민공화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5대 상임이사국이 됐고, 타이완은 국가로서의 국제법적 지위를 사실상 박탈당했다. 그 결의안이 제2758호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가지는 합법적 권리의 회복’이다.

국민당은 마지막 보루가 된 타이완에 비로소 눈을 돌려 ‘10대 건설 프로젝트’를 내놓고 중화민국의 ‘타이완화’에 나섰다. 인구의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1945년 이전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본성인(本省人)을 통치의 대상에서 정치의 주체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장제스의 사망(1975년)과 그 아들의 사망(1988년)으로 관료 출신의 본성인 리덩후이가 총통으로 취임하게 되었으며, 38년간 계속되어 온 계엄이 해제되어 민진당이 결성됨으로써 민주화의 열망은 누를 수가 없게 되었다. 국민당이 몰락한 후 2000~2008년 집권한 민진당은 2016년에도 재집권하여, 타이완 정치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본성인은 국민당 독재에 반감과 증오를 쌓아왔는데, 그 감정이 반(反)중국·친일·친미의 타이완 정체성의 특색을 만들었다.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론’을 부정하고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게 되어, 2006년에는 타이완의 이름으로 유엔가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사람과 타이완사람으로 나누어 그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지지자를 결속시키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공들여, 중국혐오를 부추겼다. 이른바 ‘타이완 정체성’ 만들기이다.

오늘날 타이완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약 500년 전쯤부터 타이완의 대안인 후젠에서 건너온 중국인의 자손이 주종을 이루고, 타이완어라고 주장하는 말은 후젠 남부에서 쓰이는 민난어이며 생활풍습도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타이완인이 중국인과 다른 독자적 종족임을 강조하기 위해 타이완인은 수백년 동안 원주민들과 혼혈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종족이 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약 500년 전에 대륙에서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기 전에 원주민은 타이완에 500만명 정도 살았다고 하는데 이주자들에게 토멸되어 산지로 쫓겨나고 지금 겨우 50만명 정도 남았다고 한다.

일제는 광활한 조사사업을 통해서 방대한 타이완 번족(蕃族) 조사자료를 작성하고, 산지에 살며 고유문화를 유지하는 생번(生蕃)과 한인과의 혼혈과 동화가 진행되어 독자성을 상실한 숙번(熟蕃)으로 분류했다. 해방 후 국민당정부는 그들을 각각 고산족 또는 산포(山胞)로 부르고 후자를 핑푸(平 )족이라고 불렀다. 1990년대에 원주민들의 권리운동이 크게 신장하여 스스로 ‘원주민’으로 부를 것을 주장하여 오늘에 이른다. 평지에 살던 원주민은 문화적으로도 소멸되었는데도, 2017년 타이완 국회는 원주민 신분법을 개정하고, 일찍이 침략·약탈의 대상이었으며 문화적으로 소멸한 평지 원주민, 핑푸족을 억지로 독립된 족군(族群)으로 인정했다. 과거에 후젠에서 건너온 농민은 거의가 독신자라서 원주민 여성을 겁탈하거나 약취한 결과 타이완 주민의 70%가 핑푸족의 피를 이어 받았다고 하면서, 그 어두운 성적 약탈의 역사를 마치 이민족 간의 아름다운 융합처럼 미화하고 ‘타이완 정체성 만들기’의 논거로 삼으려 하고 있다.

타이완 정체성 세우기의 핵심은 중국사와의 연관성을 극소화하고 타이완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역사교과서 만들기에 있다. 그들은 중국을 대만에 대한 침략자로 묘사하고, 일제를 문명전파와 근대화의 은인으로 묘사하고, 가치 중립을 주장하면서 광복을 전후하여 일제를 일본, 청일전쟁을 일청전쟁, 연대를 일본식으로 명치 몇년으로 부르는 것이 공정하면서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 친일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역사교육은 리덩휘(李登輝)가 총통으로 있던 1997년에 제정된 ‘인식타이완’에서 비롯된다. ‘인식타이완’은 중학교용 지리, 역사, 사회의 교과서인데, 타이완의 독자성을 강조한 역사편이 주목을 받았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일찍이 국민당에 의해 강요된 타이완을 무시한 ‘중국사’에 의한 역사교육의 부당성의 인식이 공유되었는데, 그 반동으로 타이완을 침략하고 식민지 통치를 실시한 침략자인 일제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역사의 왜곡을 가져왔으며, 타이완 민주화운동 속에서 지향해 온 가치와도 충돌하는 것이다. 리덩후이 총통은 일찍이 “나는 스무 살까지 일본인이었다”고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긍정하고, 필리핀 마닐라 시가전에서 일본군인으로 죽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형을 찾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여, 형을 합사해준 일본 천황폐하의 ‘일시동인’(一視同仁: 모두 천황의 아기로서 똑같이 사랑함)에 감읍하기도 했다. 타이완인의 ‘정체성 바로 세우기’에 진정 필요한 것은 이러한 맹목적인 친일성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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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얼마 전 개·고양이 식육금지 집회에 맞불을 놓으러 나온 이들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다보면 참 답이 없는 시빗거리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인식론 차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윤리 의 문제라면 정말 끝이 없다. 개고기 논쟁이 일례다.

얼마 전 털북숭이 한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키우자는 가족들의 잇단 요구를 수년째 거부하며 “진짜 데려오면 물 올려놓고 있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라 설마 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꼬물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무장해제됐다. 3개월이 안된 몰티즈다. 이름은 숍에서 부르던 대로 ‘소다’. 몸무게는 900g대였다. 배내털이 더부룩하다. 생존본능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미처 아이를 키울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 ‘댕댕이’를 통해 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참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는 유모차 앞자리에 서너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뒤칸에는 강아지를 태우고 다녔다. 강아지 나이가 12살이라는데 사람으로 치면 약 70대 어르신이다. 아들과 반려견을 유모차에 함께 태워 밀고 다니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은 채 스스로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 불편했다. 그런 내가 소다가 집에 온 후부터 스스로를 “아빠”로 부르고 있다. 전용 먹이 분배기(디스펜서)도 사고 폐쇄회로(CC)TV까지 들였다. 그렇게 이 녀석은 내게로 와 ‘존재’가 됐다. 오히려 그를 통해 내가 대자연 속 작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스타필드고양의 ‘몰리스’가 소다의 제2의 고향인 셈인데, 불현듯 이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이른바 공장사육의 산물이라면 씁쓸하다. 약 한 달 전 궁금해서 몰리스에 가봤다. 그런데 소다 바로 옆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녀석이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포메라니안 ‘후추’다. 그나마 앞에 있던 포메라니안과 같은 2월10일생이던 몰티즈 ‘설탕’은 새 가족을 만난 모양이다. 포메라니안은 5개월이 돼서 이미 부쩍 커버렸다. 소다를 데려올 당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졸라대던 녀석이었다니, 우리 가족이 됐을 수도 있다. 아직 친구가 쇼윈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다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얼마나 심정이 짠할까 싶다.

16일은 말복이다. 옛 문헌에 보면 이날엔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우리네 문화의 일부로 보인다. 충청 사투리라는 ‘개 혀?’라고 말하는 건 자유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을 ‘야만스럽다’고 비난했다고 해도 인습과 전통을 가를 잣대는 따로 없다. 맞불집회에 나온 팻말이 맞을 수도 있다. 반면, ‘개나 사람이나 존재의 귀함은 동일하다’고 말할 자격 또한 있다. 심지어 종교 차원으로 보자면, 강아지를 키우면서 불교가 친근하게 여겨진다. 윤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산짐승, 들짐승은 물론 풀벌레까지 새삼 귀히 여겨졌다. 지난주에는 2년여 키운 어항 속 버들치를 공릉천에 풀어줬다. 뿌듯하면서도 찡했다.

사실 식용 논란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반려동물 유기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반려동물 유기는 벌금 30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버리는 행위라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자신이 반려동물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맞는지 솔직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버린 반려동물의 상당수가 식용으로 둔갑한다는 사실 또한 알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다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이 작은 소다를 통해 새삼 세계관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요즘 좀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병역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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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들이 팔자가 가장 좋고 다음은 고양이 순. 우리 동네엔 명물 진돗개 말고도 잡종 ‘암시랑토 안하당개’와 ‘쉬었다 가시랑개’가 있다. 천하대장군 개들이 누워 계시는 골목길. 비켜! 해도 안 비킨다. 아쉬운 내가 비켜서 돌아가야지. 사람 입맛들 고급이 되고, 안방 침대에 모셔진 개들이 늘면서 보신탕집은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수술하고 나온 할매들도 달달한 커피와 양송이 수프를 찾는다. 개들아. 좋은 시절이니만큼 마을을 지켜다오.

소재지 호프집엔 생맥주가 동이 나고 있다. 이쪽 사람들은 ‘거시기’ 하면서 삼행시로 건배를 한다.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미남미녀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대충 생긴 우리들끼리라 그다지 기쁘진 않다. 아이슬란드에선 “스카울!” 바이킹의 후예답게 큰소리로 건배를 나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놀자는 뭐 그런 뜻이겠지.

듣자하니 제주도는 개발 새발, 또다시 나무 학살극. 가장 아름답던 비자림로를 깡그리 밀어버렸다고 한다. 거기다 뻥 뚫린 사차선을 만든다는 계산. 제 정신들인가. 제주도 도지사는 도로아미타불의 그 도인가. 생태와 민주라는 역사의 흐름을 못 읽고 자본의 망나니 춤에 놀아나다보면 신기방기하던 오즈의 마법사라도 ‘오지의 맙소사’가 되고 말 일.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을 다룬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보았다. 북극해,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극해까지 이름도 모르는 섬들. “나는 지도책과 함께 자랐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 이스터 섬과 로빈슨 크루소 섬 정도는 알겠더라.

대서양의 브라바 섬 항구, 선술집에서 울리는 노래란다.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긴 길을.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먼 길을. 상투메로 가는 이 길. 소다데(그리움),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게 편지를 쓰면 나도 답장 쓸 거야. 네가 잊는다면 나도 널 잊을 거야. 소다데,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아몬드나무, 대추야자나무, 코코넛나무 아래서 부르는 노래. 가깝거나 먼 섬들이 모두 암시랑토 안 하고, 쉬었다 갈 만한 섬, ‘소다데’로 남는다면 좋으련만. 거시기 스카울! 그런 날을 위하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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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번역본 <열하일기>(보리)를 읽다보면 “이날 밤 달이 찢어지게 밝았다”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원문을 찾아보니 ‘是夜月益明’이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번역본에는 “이날 밤에는 달이 유난히 밝았다”로 돼 있다. ‘익(益)’자를 각각 ‘찢어지게’와 ‘유난히’로 옮겼다. 북에서 ‘찢어지게’는 ‘몹시 대담하게’라는 의미다.(<조선말대사전>). 남과 북이 나란히 번역한 조선시대 실록을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하다. <리조실록>은 잘 읽히는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전문가를 위한 번역으로 가독성이 낮다.

북한의 고전 번역은 ‘인민대중을 사상적으로 교화시킨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일상어·토속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의역이 많아 원문의 뜻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면 남한의 번역은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래서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직역 위주다.

북한의 고전 번역은 국가사업으로 시작됐다.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1950~1960년대 이미 <열하일기> <목민심서> 등 번역서 수십종을 출간했다. 월북한 홍기문·김석형 등의 국학자들이 번역을 이끌었다. 남한은 민간에서 출발해 정부 주도로 옮아갔다. 1965년 설립된 민간 법인 민족문화추진회가 초기 번역사업을 이끌었다. 2007년부터는 이를 모태로 출범한 한국고전번역원이 고전 사업을 지휘한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나온 국역서는 259종 2000여권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우리 고전 번역을 선도했다. 조선 실록 완역도 북한이 먼저였다. 그러나 북한이 번역 후속세대를 기르지 못하면서 1990년대 들어 남한에 추월당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엊그제 북한에 <승정원일기>의 공동 번역을 제안했다. <승정원일기>는 실록과 쌍벽을 이루는 역사고전이다. 실록의 4배나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세계기록유산에도 올라 있다. 번역원이 24년째 <승정원일기>에 매달리고 있으나 실적은 전체의 22%에 불과하다. 오랜 번역 전통을 가진 북한이 참여하면 완역은 크게 앞당겨질 것이다. 번역 과정에서 민족 문화를 공유하며 동질성도 찾게 될 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화답을 기대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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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주장에 탄력이 붙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신임 대표가 선거구제 개편을 당의 최대 과제로 내걸고, 문재인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동의한 이후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해온 정의당은 물론 바른미래당도 협치를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지금이 (선거제도 개편의) 적기”라고 말했다. 정치주체들이 두루 찬성함으로써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호기가 온 셈이다.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한 현행 선거제도가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선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에게 던진 표들이 사표가 되면서 소수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65%인데 80%가 넘는 의석을 가져갔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28%인데 의석점유율은 15%를 밑돌았다. 승자독식의 선거구제가 표의 등가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지역주의에 기댄 거대 양당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성패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달려 있다. 한국당은 최근 태도를 바꿔 선거제도 개편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 당내 영남권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이다. 최근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송영길·이해찬·김진표 의원 모두 “선거제도 개편에는 찬성하지만 개헌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개헌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지금 두 사안을 연계할 이유가 없다.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오히려 개헌보다 더 근본적으로 정치를 개혁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대안에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적대는 것은 무책임하다. 높은 지지율을 믿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해 2020년 4월 총선에서 이득을 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당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 때도 거대정당의 독식을 가능하게 하는 2인 선거구제를 고집했다.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신뢰할 수 있나. 민주당은 개헌 핑계대지 말고 즉각 선거구제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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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3당 원내대표는 8일 올해 편성된 국회 특수활동비는 예정대로 집행하되 사용 뒤엔 반드시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남기도록 해 투명성을 높이는 데 합의했다. 내년부터는 국회 운영위 제도개선소위에서 특활비 개선책이 정해지는 대로 적용키로 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일반예산으로 돌려 양성화한다는 게 큰 얼개다.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조치다.

이런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국회에 특활비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특활비는 공개를 넘어 폐지하라는 것이 시민의 뜻이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받았던 특활비를 반납하고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로는 처음으로 특활비 수령 거부와 반납을 선언했다. 두 당은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입버릇처럼 ‘특권 내려놓기’를 말하면서도 단맛에 익숙해진 습성은 고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게다가 국회 사무처는 20대 국회 전반기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항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특활비를 과감히 없애거나 줄이고 투명화할 것”이라고 했다. 공개 판결에 불복하는 건 투명화 공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에도 항소한들 결론은 뻔한데 왜 또 시간끌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라면 옹졸하기 짝이 없다.

규모로 따지면 연간 60억원 수준인 국회 특활비는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다른 권력기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행정 부처는 지난 10년간 특활비로 4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을 법적 근거 없이 사용했다. 정부는 특활비가 도마에 오르자 올해 예산안을 수립하면서 각 부처 특활비를 지난해보다 17.9% 줄어든 3289억원으로 책정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취지에서 벗어난 특활비 예산을 모두 없애고 필요하다면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활동비로 전환해야 한다. 순기능이 있다 해도 더 이상 ‘눈먼 돈’으로 놔둬선 안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특활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매번 고치는 시늉에 그치고 말았다. 두 전직 대통령은 국정원 특활비를 불법 전달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이제 대통령을 필두로 공직사회는 더 투명하고 깨끗해져야 한다. 비록 등 떠밀려 내놓은 개선책이지만 국회가 먼저 특활비 투명화에 앞장섰다. 이는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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