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도 한때는 고통의 신정론을 말했었다. 한민족이 겪은 모든 고난이 사실은 한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섭리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함석헌이 ‘성서조선’에 연재한 조선역사가 대표적인 예다. 조선역사는 굴욕과 좌절,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 맡겼던 사명을 망각하자 고난을 주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민족에 재생의 기회가 온 것이니 고난을 일종의 시험으로 받아들이자.

이제 이러한 고통의 신정론을 말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복을 베풀기 위해 고난을 내려주었다는 것으로 변질되어 나타난다.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다가 낙마한 문창극이 2011년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연설은 한국 사회에 주류로 자리 잡은 기독교 집단의 뒤틀린 고통의 신정론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아직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는 게으른 죄 깨끗하게 안된 거야. 분단을 시킨 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 와서 우리한테,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이 정도 살게 되는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함석헌의 고통의 신정론이 신이 부여한 소명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창극의 고통의 신정론은 현재 누리고 있는 행운을 극단적으로 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가난에 허덕거리는 북한 인민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고통의 신정론이 행운의 신정론으로 재빠르게 변신한다.

우리는 종교인이라면 마땅히 초월적 이상에 비추어 현세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행운의 신정론에 빠진 기독교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세를 살아가는 것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 주류 기독교 집단은 자신들이 누리는 행운이 왜 마땅한 것인지 정당화하는 데 온정신이 팔려 있다. 세상이 부조리하거나 악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복을 누리려고만 할 뿐 세상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요만큼도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다.

현세의 삶의 질서와 모순되는 고차원적인 규범적 질서가 없으면 현세를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현세를 넘어서는 더 좋은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현세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모순을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는 일이 벌어진다. 청문회 때마다 노상 나타나는 단골 인물군.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자임하고 말끝마다 법치를 외치면서도 현세에서 온갖 편법을 통해 출세하는 자들. 그러면서도 아무런 모순과 분열을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행보.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소멸.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종교 관념과 실제의 삶 사이에 체계적이고 일관된 관계맺음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상 한국 개신교에는 거의 아무런 터부가 없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신탁을 상징이 아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거나 상가에 가서 영정에 절하지 않는 등의 소극(笑劇)만 빼면.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에게는 주술이 아닌 종교 윤리에 의해서만 행위를 조절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아무것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화할 수 있다. 하나님의 축복의 현시(顯示)인 현세의 성공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그 어떤 터부도 다 깨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세계 최대 장로교회인 명성교회에서 부자 세습이 버젓이 합법화되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라 신앙 고백하기에 바쁜 주류 기독교 집단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기독교는 한때 세습질서의 질곡을 깨트리는 복음이었으나 지금 온 나라에 유사 세습질서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복된 소리를 전혀 전하지 못한다. 고통의 신정론을 되살리는 진정한 복음이 필요한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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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를 설치하고 10일 현판식을 한다. 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기록물 발굴·조사와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학계와 민간 기관에 대한 연구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위안부 피해자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산하에 위안부 연구 기관이 만들어지기는 처음이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거사의 하나다. 일본의 사과·배상을 촉구하는 피해 할머니들의 집회가 26년째 이어지고 ‘평화의 소녀상’ 설치, 영화·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는 국내외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동안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를 주도하고 피해자의 증언집 발간 작업을 수행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노력은 기억되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8일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개막한‘진실과 정의 그리고 기억’전을 둘러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러나 정대협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채록 외에 위안부 문제 전반에 대한 학술 연구·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오랫동안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전쟁 범죄를 도외시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거처인 광주 ‘나눔의집’을 마련할 때도 수수방관했다. 학자들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학자가 일본군 위안부나 근로정신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나 논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내 양심적인 학자들이 군 위안소 설치과정, 위안부 강제 연행 경위와 생활상 등을 속속 밝혀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몇 해 전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명예훼손 논란을 일으킨 것은 학계의 위안부 연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줬다. 일본 우익이 끊임없이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며 사죄를 거부하는 것도 우리의 연구 성과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지해 일본군 전쟁 범죄의 실상을 들어왔다. 현재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28명에 불과하다. 이분들이 떠나기 전에 그들의 삶뿐 아니라 일본의 전쟁범죄, 인권침해의 진실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 김학순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가 과거에 일본이 저질렀던 일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가 위안부 관련자료를 집대성하고,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연구센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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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혐오 논란을 일으킨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자에 대해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선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당시 여성 가해자가 구속되며 빚어진 논란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여성혐오 콘텐츠가 다수 게시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 대한 수사와 대조적이라는 게 반발의 배경이다. 경찰은 편파수사 의혹을 부인했지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적지 않다.

경찰은 지난해 2월 워마드에 ‘남자 목욕탕 아동 나체사진’이 올라왔는데도 운영자가 이를 삭제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체포영장에 적용한 법조(法條)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음란물 배포의 ‘방조죄’다. 범죄 혐의가 있는 게시물의 게시자를 넘어 운영자를 직접 처벌하기로 한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게시자를 수사하려는데 (운영자에게) e메일로 연락하자 회신이 없었고 삭제조치도 안돼 방조죄가 성립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베의 경우 “서버가 한국에 있고, 운영진에 압수수색영장을 보내면 (수사 대상자의) 인적사항 회신이 온다”는 이유로 방조죄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등을 규탄하기 위해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법과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콘텐츠가 올라오는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제재하기 위해 운영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은 타당할 수 있다. 초점은 이번에 물의를 빚은 워마드의 게시물과 동일한 수준의 게시물이 다른 커뮤니티에 올라갔을 때도 동일하게 대처했는지 여부다. 성폭력 혐의가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시하는 곳은 일베 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 중 상당수는 워마드보다 오래전부터 비판받아왔다. 경찰은 문제된 사이트·커뮤니티의 운영자들이 매번 삭제조치 등 자정 노력을 하고 수사에 협조적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나.

여성들은 최근 몇 달 동안 불법촬영·유포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계속해왔다. 3차 집회에 등장한 일부 구호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4차 광화문 집회에선 주최 측이 과격한 구호를 사전에 자제토록 했다. 자신들의 열망이 오해받고 시위의 취지가 훼손될까 우려해서다. 워마드 운영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분노하는 배경이다.

경찰은 이번에 통상적 수사절차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여성들은 그 통상적 수사절차가 남성들에게도 함께 적용되는지 묻고 있다. 법 집행은 외관상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공평해야 한다. 경찰은 지금부터라도 여성들의 외침을 경청하고 공권력 행사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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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1988년은 역대 어느 해보다 더운 해라는 점이다. 둘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온실효과가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5년 단위 평균기온이 1950~1980년보다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워싱턴을 비롯한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를 예측했다. 핸슨의 예측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2017년까지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였다.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는 오히려 핸슨의 예측을 웃돌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네이멍구 바우터우 쿠부치 사막의 조림지 대한항공 녹색생태원에서 임직원들이 황사 방지 희망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우터우(중국) _ 이준헌 기자

그로부터 30년. 핸슨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예측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최고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을 넘어섰다.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불리는 400PPM을 넘어선 지 3년 만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손을 떠났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왔다. 8개국 13개 연구기관의 학자들은 지난 6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가 자정작용을 멈춰 온실가스 감축 등 향후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슨 박사도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30년 전 핸슨의 증언을 “침울한 이정표”라고 했다. 한 과학사 연구가는 핸슨을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했다. 핸슨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린 선지자였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핸슨은 대중과의 소통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 반대시위 현장에서 5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과학자를 넘어 시민행동가로서의 소임도 다했다.

2012년 봄에는 ‘내가 기후변화에 대해 반드시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했다. NASA에서 은퇴하기 1년 전에 한 이 강연 동영상은 130여만명이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고 알리고자 했던 핸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온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가 회한의 소회를 밝힌 이유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TED 강연 동영상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가 손주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그를 ‘기후변화 전도사’로 나서게 한 건 미래세대에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핸슨의 역사적인 증언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기후변화는 거대담론이다.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핸슨 같은 선지자의 경고보다 에어컨 전기료 폭탄 문제에 우선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핸슨은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그래서 당신이 있었기에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아직도 대처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핸슨은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기 전날 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면서 다음날 날릴 멋진 문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청문회 뒤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온실효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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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8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한 항구. 국왕 구스타프 2세를 비롯한 시민들이 전함 ‘바사호’의 진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청동 대포가 장착된 ‘바사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의 하나로, 스웨덴의 야망과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항구를 미끄러져 나가던 배는 1㎞ 남짓 항해 후 바람에 흔들거리더니 침몰했다. 상부 갑판에 설치된 청동 대포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 무게로 넘어진 것이다. 선박건조를 서두른 데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바다로 밀어넣었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300년이 훨씬 더 지난 1950년대 초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선체발굴에 뛰어들었다. 그는 굴착기와 구멍뚫기 기계로 해저를 긁거나 파는 방식으로 잔해물을 찾았다. 마침내 1956년 여름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어 검게 변색된 나뭇조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어진 인양작업을 통해 ‘바사호’는 세상으로 나왔다. 소중한 유산은 ‘바사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고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었다.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 사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7일 서울 여의도 신일해양기술(전 신일그룹)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 회사 경영진은 ‘돈스코이호’에 150조원가량의 금괴가 실렸다고 주장하며 미확인 금괴를 담보로 가상통화를 만들어 판매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자신이 꿈꾸었던 최초 북극점 정복을 미국인 RE 피어리에게 빼앗기자 남극점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는 1911년 인류 사상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시베리아 지역 바다를 지나 알래스카를 거쳐 북극에 닿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배를 직접 설계·제작했고 노르웨이 왕비의 이름을 따 ‘마우드호’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말했다. “너(마우드호)는 얼음을 위해 태어났고, 얼음 속에서 일을 해야 하며, 얼음 속에서 평생을 살 것이다.” 1918년 출항한 ‘마우드호’는 얼어붙은 바다와 폭풍에 막혀 끝내 북극에 닿지 못했다. 그리고 1931년 캐나다 케임브리지만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이후 85년간 잠겨 있었다.

마우드호가 출항 100년 만에 돌아왔다. 귀환 추진단체는 지난 6일(현지시간) “마우드호가 노르웨이 베르겐항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이 단체 대표는 “우리는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아문센의 탐험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됐다는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150조원 금괴를 둘러싼 사기, 협잡, 음모만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전부일까.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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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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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개혁성과였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모두 30건의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어지간한 개혁안은 두루 담아냈다. 2005년 남영동 보안분실(예전의 대공분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던 전국 각지의 보안분실들이 모두 폐쇄된다. 서울만 해도 홍제동, 옥인동, 신정동, 장안동, 신촌 등지에 보안분실이 있다. 정권 차원에서 눈여겨보는 시국사범들이 경찰서가 아닌 분위기부터 살벌한 보안분실에서 잔뜩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상한 일은 앞으론 없게 되었다. 정보분실도 사라진다. 의경들의 노동시간은 최대 주당 4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휴식 기회를 보장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도 가능하게 된다. 영창제도는 이미 사라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경찰관들도 더디지만,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시작한다. 당장 노동조합을 설립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마땅하나, 일단은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한다.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경찰청에서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도 실현한다. 당장 성평등정책관부터 외부 인사를 채용했고, 적극적인 여성 우대 정책을 인사에서부터 펼치고 있다. 여러 경찰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 군대, 국정원, 감옥 등 인권침해와 관련한 논란이 많은 곳에서도 다양한 개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환영할 만하다. 인권분야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경찰개혁위원회가 낸 개혁방안 중에 ‘시민에 의한 민주적 외부 통제기구 신설’이라는 게 있다. 만약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어 경찰이 실질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훨씬 힘센 경찰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의 부작용과 우려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영국(잉글랜드, 웨일스)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 Commission, 독립적 경찰 비리민원조사위원회)를 모델로 시민적·민주적 통제기관을 만들자는 거다. 명칭은 ‘경찰 인권·감찰 옴부즈맨(또는 위원회)’이라고 붙였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는 기구다. 경찰관의 법령 준수 여부를 감찰하고, 위법 부당한 행위가 드러나면 경찰청에 징계를 권고하거나 경찰관의 범죄사실을 직접 수사할 수도 있다.

영국의 IPCC는 법률 개정으로 IOPC(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로 바뀌고 위상과 업무도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경찰과 전혀 다른 독립적 조직이 경찰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경찰의 잘못을 시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아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가 이미 존재한다는 거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인권위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별도의 전담 감시기구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적다는 거다.

인권위의 위상은 어디가 바닥인지 모를 지경으로 추락해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시키고,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데도 인권위 위상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인권위 설립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국가인권기구 설립이라는 그동안의 염원을 현실화했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인권기구는 김대중의 대선 공약이었고, 그 공약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행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과 동시에 조직의 기반을 닦은 인권위는 노무현 정부 때 여러 가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등 인권위가 주도한 쟁점이 많았다. 한마디로 시끌벅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인권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명박 정권은 위상을 추락시킬 방도를 고민했다. 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위원장 등 지도부를 바꿔 위원회 성격을 변화시켜갔다. 정권의 의도대로 인권위의 위상은 추락했고 누구도 인권위를 자신의 인권을 지켜줄 호민관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장 큰 잘못은 2009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6년 동안 인권위원장을 맡은 현병철이 저질렀지만, 지금 위원장인 이성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꼭 현병철과 이성호만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즉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그리고 사무처 직원들도 공범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현병철 체제에 저항한 일부가 있었지만, 임기가 다 끝나갈 때쯤 사임한다든가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다. 그렇게 인권위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인권위가 바뀌었는지 뭘 어떻게 고쳤다는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지난 정권과 달리 비교적 민감한 인권의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도 간혹 있지만, 그건 이미 쟁점화된 사안들에 대한 뒷북이었을 뿐이다. 인권위가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하는 일은 없었다. 설립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공염불만 외우며 진정사건 처리 때문에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온갖 인권문제가 터져 나오는 지금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서 인권위는 지금 악플조차 별로 없는 무플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관료들에겐 무플이 훨씬 좋을 게다. 월급이야 꼬박꼬박 나오는데, 굳이 논란에 휩싸여 일감을 늘릴 일도 감정을 상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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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