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수험생들은 자신이 따게 될 대학 간판이 앞으로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란 점을 이미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전’의 순간 앞에 그들이 느끼고 있을 중압감을 헤아려 보다 문득 지난 4월 대학 입시개편안을 주제로 열린 한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대화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입시제도에는 한 사회의 철학과 지향점이 응축돼 있기에, 입시를 둘러싼 논쟁은 필연적이게도 입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토론에서 수시와 정시를 놓고 설전을 벌이던 패널들도 결국 마지막에는 ‘인생 역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를 확장해 갔다.

수시를 옹호하는 쪽 패널로 나온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대역전은 고1 때 1~2등급을 못 받다가 나중에 수능 잘 봐서 상위 11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생 역전은 5~6등급 받고 전문대나 (중하위권) 대학에 가서도 공부를 새롭게 해서 원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이 인생 역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률 2%짜리 문제를 맞히기 위해 모두가 올인해야 하는 현실이 바람직한 현상인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왕성하게 공유되고 있는 ‘대충 살자’ 시리즈

그러자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쪽의 패널로 나온 대학교수가 교사의 ‘이상주의’를 질타하며 이렇게 반박했다. “인생의 역전은요, 고등학교 시기에도 가능해야 합니다. 대학 가서도 가능해야 하고, 졸업해서도 가능해야 합니다. 저는 선생님 같은 사고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걱정됩니다. (학생 여러분) 항상 도전하시고요, 꿈을 잃지 마시고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이 사회가 그런 길을 드릴 겁니다.”

두 패널의 대화는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꽤 회자되었는데, 그것은 이들의 대화 내용이 단순히 수시와 정시의 ‘황금비율’ 논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노오력하라, 안되면 더 노오오력하라”로 요약된다. 그는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해도 꿈을 잃지 않고 항상 도전하면 매 순간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전문대에 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역전”이라는 교사의 사고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그러나 ‘노오력지상주의’는 언제나 철저히 승자의 언어로만 쓰여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상위 11개 대학에 합격해 ‘인생 역전’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들 대학의 모집정원이 전체의 11%에 불과하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열에 아홉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 역전’에 기어코 실패하고야 만다는 얘기다.

반면 대학 간판 없이도 모두가 각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자의 주장은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상위 11개 대학을 나와도 예전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일각에서는 ‘학벌붕괴’라고 호들갑을 떠는 상황이니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펼쳐지는 지옥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하는 삶’이 무엇이 됐든 그 기본 전제는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 이렇다 할 대학 간판이 없는 자들에게 “유일한 인생 역전 기회는 (정답률 2%짜리 수능문제만큼이나 바늘구멍인)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란 말이 좌우명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인생 역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탁상공론을 벌일 때, 아무리 ‘노오력’해도 사회가 길을 열어주지 않고 학벌에 비례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 없이는 ‘원하는 삶’을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은 ‘#대충 살자’에 열광한다. SNS상에서는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 ‘대충 살자, 평양에서 조는 최현우(마술사)처럼’ 같은 ‘대충 살자’ 시리즈가 유행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란 책은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충 살자’는 “열심히 해봤지만 안되더라”라는 좌절과 허탈 끝에 나온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삶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려는 슬픈 카르페디엠이다. <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충 살자’는 소수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래서 대다수가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택한 저항의 한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노오력’하라는 채찍질 아니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도 이상적인 당위밖에 얘기해주지 못했던 이 사회는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대안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무도 길을 열어주지 않는 현실 속에 놓여진 청년들, 그리고 몇 년 후 놓여지게 될 지금의 수험생들에게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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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의사협회와 일부 의학계가 반대에 나서고 있다. 공공의대의 경우 없던 의대 정원을 만들어 설립한 것이 아니라 대학 비리와 질 낮은 교육 문제로 폐교된 서남의대의 정원만을 이어받아서 만드는 것이라 의료계의 반대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계층,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생명과 건강에 관한 필수보건의료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예방 가능한 사망에 있어서 지역 간 편차가 너무 크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많은 지역은 분만할 병원이 없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어린이 재활병원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 발생 등 국가 위기 상황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할 훈련된 역학조사관이나 공중보건 전문가는 매우 부족하다. 수도권은 병원도 의사도 넘쳐나는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지고 헌신할 공공보건의료 전문가 양성을 위해 공공의대는 꼭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 선발부터 지역에서 헌신할 인재를 뽑아야 한다. 기존 의과대학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공공보건의료 교과과정을 공공의대에서 교육해야 한다. 졸업 후 의무복무를 거쳐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공중보건의사 제도나 공중보건 장학의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존의 의과대학 교육이 공공보건의료 전문가의 양성에 관한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이 부실할 뿐 아니라 실제 기존의 의과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의 실효성이 매우 미미하다는 증거가 이미 드러난 상태다. 그런데 또다시 그러한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질 수 있는 공공보건의료 전문가를 직접 교육하고 육성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문제를 풀어나갈 동력이 생길 수 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 의대 설치에 막대한 국고가 들어갈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국립중앙의료원을 필두로 충분히 교육실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공병원이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의대가 설립되는 시점에 많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여 현대화된 병원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이보다 더 좋은 교육실습 공간은 없을 것이다. 공공의대의 비용 대부분도 임상교수 확보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립중앙의료원이 교육병원이 될 경우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가 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일방적이다. 이미 공공의대 설립 필요성은 전 정부에서 추진되어왔던 사안이고 수차례 학술 연구와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여러 의견이 반영되어왔으며, 현 야당 역시 유사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해당사자인 전북 지역의 여론도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하고 있다.

공공의대가 지역의 필수보건의료에 헌신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임준 |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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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락 없이 늦는 중학생 딸을 기다리며 서 있던 골목을 얘기했다. 온종일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한숨과 무거운 발걸음이 진득거리던 어두운 골목 끝에 딸이 나타났을 때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아이가 사뿐사뿐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모든 걱정이 사라져서 혼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두 자식을 키우면서 크게 소리 내어 혼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바라볼 뿐. 그는 자신이 한 일이라곤 한눈팔지 않고 잘 바라본 것뿐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크고 더는 자신의 손이 필요 없을 때, 그가 시작한 일은 유적지 문화 해설가였다. 팔각으로 된 외목도리에 서까래를 걸어 지붕을 팔각으로 꾸민 정자에서 봄을 바라보고 돌담을 거닐며 가을을 맞이하던 시절, 그는 바라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얘기하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나이 서른이 넘은 아들이 며칠 전 혼례를 올렸다고 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가족들만 모여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렀다는 그는 신부의 고운 자태를 얘기했다. 며느리가 아들을 데려가 살아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며느리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말에는 죄다 고개를 내저었다. 며느리가 살아온 행적도, 며느리의 직장도 하물며 며느리의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했다. 아직 딱히 연락할 일이 없으니 알 필요가 없었다는 그는 언젠가 며느리가 초대하면 그때야 신혼집에 가볼 거라고 했다. 둘이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자신은 그저 부를 때만 가주면 된다는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이 시어머니는 시쳇말로 ‘시월드’라 부르는 구태의연한 세상을 구축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거리 두기는 무관심이 아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볼 때 그의 거리 두기는 ‘멀리서 바라보기’다. 자식들에게 그랬듯이, 고궁을 알아갈 때 그랬듯이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을 응시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예쁜 모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그들의 모습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거리 두기는 따뜻하고 여유롭다. 나도 그처럼 나이 들고 싶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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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에 인류가 발명한 가장 놀라운 세 가지 제도는 가족·시장·민주주의라고 말하곤 한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먹고살아야 하며, 공동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존재다. 이러한 요구들에 부응해 등장한 사회 제도가 가족·시장·민주주의라는 의미다. 이 세 제도는 사회학·경제학·정치학의 핵심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주목할 것은 이 세 제도에서 고정적 모델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가족·시장·민주주의는 끝없이 변화돼 왔고, 여전히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예컨대, 1인 가구의 증가와 금융시장의 지구화는 전후 시대에 가족과 시장 영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러한 변동이 암시하는 것은, 가족과 시장에 대한 표준화된 모델이 없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일궈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20세기 민주주의의 역사에는 두 가지 ‘결정적 모멘트’가 존재했다. 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파시즘과 싸워 이겼고, 동구사회주의 몰락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도도한 물결을 지켜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과감한 주장을 내놓았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제도다. 평생 민주주의를 탐구한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가 전제정치의 방지, 본질적 권리들, 일반적 자유, 자기 결정, 도덕적 자율성, 인간 개발, 개인적 이익의 보호, 정치적 평등과 같은 소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더하여, 그는 현대 민주주의가 평화의 추구 및 번영이라는 결과까지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달이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때가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앞세운 정치제도가 정말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선사해온 걸까. 21세기가 열린 지 10년이 지난 후, 파커 파머는 우리 시대 정치가 행복이 아니라 비통을 안겨준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정치는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편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기여해야 할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우리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라는 게 그의 우울한 진단이었다.

21세기가 열린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비관적 전망의 한가운데는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유럽 극우 정당들의 약진에 이르는 포퓰리즘의 발흥이 놓여 있다.

민주주의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올 한 해 민주주의 담론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책의 하나는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다. 원제목은 ‘국민 대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다. 뭉크는 최근 서구 정치가 ‘포퓰리즘의 모멘트’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가 맞이한 세 번째 모멘트인 셈이다.

뭉크는 1990년대 이후 지배적 정치 패러다임으로 군림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위기는 두 가지 형태를 띤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스트롱맨’이 독재로 나가는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가 하나라면, 테크노크라트의 과두제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민주주의 없는 권리 보장’이 다른 하나다. 내 시선을 잡아끈 건 민주주의 붕괴 경향에 대한 뭉크의 관찰이다. 구체적으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넘어선 혐오, 소셜 미디어에서 강화되는 극단적 진영 논리,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가짜 뉴스에 대한 뭉크의 분석은 우리 사회에도 안겨주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흥미로운 건 뭉크가 한국을 직접 다룬다는 점이다. 뭉크는 한국이 촛불집회를 통해 권위주의로의 후퇴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평가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지도자를 거부하고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게 촛불집회의 원동력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20대 국정전략의 첫 번째도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이다.

내가 품고 있는 물음은 한국 민주주의가, 뭉크의 표현을 빌리면, 현재 위험하지 않은가의 질문이다. 앞서 말한 정치사회 혐오, 극단적인 이분법, 넘치는 가짜 뉴스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정직한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쉽게 붕괴할 것이라고 믿진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언제나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 2년을 맞이하는 현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다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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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견(管見)이라는 말이 있다. 대롱을 통해서 본다는 뜻으로, 주로 자신의 소견이 좁음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이 표현은 장자가 하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의아해하는 공손룡에게 주어진 비유에서 비롯되었다. 공손룡은 논리적 변설에 매우 능해서 수많은 학설들의 허를 찌르며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던 인물이다. 그러나 대롱으로 본 하늘, 송곳으로 짚은 땅만이 전부인 줄 아는 이는 진짜 드넓은 하늘과 땅을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을 듣고 공손룡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늘처럼 전문성이 심화된 시대는 없었다. 같은 학과 내에서도 한두 단계 깊이 들어가면 소통이 힘들 정도로 지식이 세분화되고 있다. 전공 분야 내에서 인정받을 만큼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식이 실용화되거나 대중과 소통되기까지에는 또 간단치 않은 과정이 소요된다. 그러나 오늘처럼 전문성이 무시되는 시대도 없다. 누구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지식정보의 바다가 언제 어디서든 검색창 앞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출처가 세탁되어 떠돌아다니는 정보와 당의정(糖衣錠) 같은 입문서 몇 권만 읽고도 수십 년 한 우물을 판 전문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다. 소통을 소홀히 한 전문가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지식의 중개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대중의 호응에 취해서 전문가를 가볍게 여기는 탓도 있다.

너도나도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다. 그러나 전문성 없이 융합은 있을 수 없다. 적당히 넓고 얕게 연결하고 버무린다고 해서 의미 있는 화학작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식의 절대량이 증대할수록 전문성은 더 깊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남들은 대롱을 가지고 하늘을 보지만 나는 전체를 두루 다 본다고 자부하는 것은 전설의 명의 편작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관건은 태도에 있다. 자신의 지식이 대롱으로 본 하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리고 나와 다른 지점을 짚은 이의 송곳이 얼마나 섬세하게 땅의 진면을 보여주는지를 받아들이는 태도. 수사(修辭)로서의 겸손이 아니라, 서로의 전문성을 열린 마음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융합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지식의 대중화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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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다움을 갈구하는 남성들의 ‘근육질 로망’에 화답한 영화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1980년대 풍미한 홍콩 누아르다. 영화배우 청룽으로 대표되는 코믹 액션물이 유행할 때, 의리와 우정을 진득하게 그린 뒷거리 범죄영화가 출현한 것이다. 시작은 장궈룽, 티렁, 저우룬파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웅본색>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5인방 ‘동룡이’가 4720번 보았다고 한 영화다. 동룡이에게 영웅은 저우룬파다. ‘까만 선글라스, 입에 문 성냥개비, 그리고 오버 핏의 바바리코트.’ 당시 남성들의 마음을 훔쳤던 아이템들이다. 영화에 대한 향수는 2008년, 2016년 재개봉으로 이어졌다.

영화 <영웅본색>의 한 장면.

저우룬파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슬하에 친자도 없다. 그는 홍콩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청소나 채소농장일을 했고 아버지는 석유공장 노동자였다.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길거리에서 어머니가 차를 파는 것을 도왔고, 오후에는 농장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호텔 벨보이, 우편배달부, 카메라 판매원, 택시운전사를 전전하기도 했다. 인생이 바뀐 것은 그가 출연한 지방 텔레비전 연속극 <상해탄>이 인기를 끌면서다. 그리고 1986년 <영웅본색>에 이어 <첩혈쌍웅> <도신> <가을의 동화> <와호장룡> <커리비언의 해적> 등 히트작을 냈고,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빈손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스타다.

저우룬파가 지난 15일 전 재산인 56억홍콩달러(약 8100억원)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달 용돈 800홍콩달러(12만원)를 쓰고, 버스를 이용하면서 절약해 모은 돈이다. 기부 이유를 묻자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영화 <영웅본색>의 한 장면. 영화가 마지막을 향하는 시점에 악당들과의 일전을 벌이기 직전. 생과 사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죽을 가능성이 높다.

“신이 있다고 믿는가.”(티렁)

“믿어. 내가 바로 신이니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신이야.”(저우룬파)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일 수는 있다.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저우룬파처럼.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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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유리.”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시민 홍보자료에 담은 문구이다. 사회복지학계에서 국민연금을 소득재분배 제도라고 평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말 그럴까? 본격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앞두고 꼭 점검해야 할 주제이다.

우선, 연금공단의 이야기는 맞다. 보통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40%라고 소개되지만, 이는 평균소득자 기준이고 계층별로는 누진적이다. 40년을 가입하면 하한소득자(월 30만원)는 자신의 소득 대비 100%를, 상한소득자(월 468만원)는 30%를 받는다.

국민연금의 독특한 급여산식 덕택이다. 국민연금액은 자신의 소득에 연동된 비례급여가 절반,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에 연동된 균등급여가 절반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대체율이 소득에 완전 비례해 계층별로 동일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균등급여로 인해 누진구조를 지닌다. 저소득층일수록 유리한 재분배제도라고 말할 만하다.

이번엔 상반된 이야기. “고소득자일수록 혜택이 크다.” 어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로 밝힌 국민연금의 특징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의뢰한 분석을 보면,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 총액과 받을 연금 총액의 차이, 즉 순혜택은 고소득자일수록 많다. 예를 들어 가입기간이 20년으로 같더라도 100만원 소득자는 6779만원, 국민연금 상한소득자는 8887만원을 더 받는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상황을 감안해 소득별 가입기간을 다르게 가정하면 격차는 훨씬 늘어난다. 10년 가입한 100만원 소득자는 순혜택이 약 3000만원, 40년 가입한 상한소득자는 거의 1억9000만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으로 인해 두 사람의 경제적 처지가 노후에 더 벌어진다.

사실 국민연금에서 역진성 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8월에는 한 시민단체가 내놓은 분석자료가 언론에 보도되자 연금공단은 해명자료를 내고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몰이해”라고 반박했다. 고소득층의 순혜택이 많을 수는 있지만 균등급여가 존재하므로 ‘역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동문서답이다. 급여산식의 누진성을 부정하는 지적이 아니다. 급여 변수만을 보면 국민연금은 분명 재분배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급여에 기여액을 결합해서 계산하면 소득이 높을수록 순혜택이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연금공단은 급여산식의 구조만을 다루고, 다른 쪽은 급여에 보험료까지 조합해 순혜택을 분석한 게 차이이다. 둘 다 객관적 진단이라면, 주목해야 할 건 상반된 평가가 나오게 된 원인이다. 정작 연금공단이 시민들에게 알렸어야 할 내용이다.

낮은 보험료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확정급여형 제도이다. 은퇴 후 받을 연금액이 보험료 수준과 무관하게 정해진다. 아무리 급여산식에 균등급여가 작동하더라도 보험료 수준이 낮으면, 보험료는 완전소득비례이기에 고소득자일수록 납부하는 절대액에서 부담이 줄어들고, 그 결과 순혜택이 커진다. 이에 보험료가 올라야 재정안정화뿐만 아니라 계층 간 순혜택의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국민연금은 OECD 회원국 연금에서 예외적으로 수지불균형을 지니고 있는 제도이다. 연금수리적으로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보험료율은 약 16~18%이지만 현재 9%이다. 서구의 나라들이 대부분 공적연금에서 수지균형을 이룬 반면 한국은 이 나라들과 비교해 수급개시연령이 빠르고 수명 연장으로 수급기간마저 더 긴데도 보험료는 급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더 내고 더 받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 다. 지난번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나온 ‘11%/45%’ 방안은 어떨까? 보험료 수준이 관건이다. 여기서 보험료율 인상 2%포인트는 대체율 인상 5%포인트를 충당하는 재정이다. 여전히 기존 40%체제가 지닌 수지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한다. 현세대 노동시장 중심부 가입자의 이해에 치우친 제안이다.

재분배 제도로 설계되었지만 현실에선 고소득층일수록 유리한 ‘국민연금의 역설’, 어찌해야 할까? 이론적으론 보험료율의 대폭 인상이 해법이다. 하지만 서민 가계가 힘든 상황에서 사실상 실행하기 어렵다. 현행 순혜택 구조에서 대체율 인상이 적절한지, 그에 따른 추가 보험료율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냉엄하게 봐야 하는 이유이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으로 가자.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벼랑으로 내모는 건 곤란하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겐 법정연금으로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있다. 연금 삼총사로 우리의 노후보장을 이야기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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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범대학에서 법학과목을 담당하는지라 학생들에게 ‘법 교수님’이라 불린다. 쑥스럽긴 해도 싫지는 않다. 전국 대학교원 가운데 김 교수님 아닌 분의 절반 이상은 이 교수님일 테지만, 법 교수님이란 별칭을 가진 이는 (법학전공 교원이 한 학과에 한 명인) 사회교육과 아니면 드물 테니 말이다. 

부임한 지 얼마 안돼 학과 엠티 지도교수로 따라갔을 때였다. 학생들과 친해지고픈 조바심에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혼자 게임을 연마했다. 엠티 당일 난 호기롭게 조별 놀이판으로 뛰어들었고, 그 결과 내가 들어간 조마다 흥이 깨졌다. 경직된 포즈로 놀 줄 아는 시늉하던 신입 선생님이 옆 조로 옮겨가면 그제야 침잠된 분위기가 슬며시 되살아났다. 시무룩해진 나는 쪽방에 웅크리고서 다른 교수님들이 돌아가자 하시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몇 계절 지나서였다. 복도를 걷다 저편의 학생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옆에 있던 분이 “아직도 말 안 놓으셨나요?” 물으셨다. 대학원 아닌 학부에서는 학생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말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 조심스레 조언하셨다. 나 역시 고민하던 문제였기에 그 충고가 마음에 남았다.

어떤 관계에서든 반말을 해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서로 존칭하면서도 얼마든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문제는 내 경우 소신을 지키고자 ‘안’ 놓는 게 아니라 용기 없어 ‘못’ 놓는다는 점이었다. 모종의 교육철학으로 경어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일관성을 가져야 맞을진대, ‘~씨’라는 존칭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아동연극 풍의 말투가 되었다: “동환이는 어쩌다 발을 다쳤나요?” “다음 단락은 은희가 읽어볼래요?” “수광이 시험공부 파이팅하세요!”

그리하여 그 학기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결심했다. 말 놓기로. 3학년 지도학생 면담 중에 처음 시도했는데, 예상보다 더 어색하여 대화가 툭툭 끊겼다. “이래야 가까워진대서….” 말끝을 흐리며 양해를 구하자 학생은 “그런 측면이 없지 않죠”라고 답했다. 며칠 후 2학년을 면담하면서는 오늘 말 놓을 거라 어색할 거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러자 학생이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법 교수님이 드디어 말 놓으시려는 것 같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단다. 3학년 선배들한테는 이미 하셨다던데 우리한테는 여전히 용기 못 내시니 면담시간에 네가 좀 도와드리라고 동기들에게 임무를 부여받았다 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덧붙였다. “실수해도 되니까 저한테 연습하세요. 말 놓는 거요.”

그날 오후에는 학과대표가 무언가 상의하러 찾아왔다. 이야기를 마치고 연구실 문을 나서던 그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런데 말 놓으시니 훨씬 좋습니다” 했다. 하나도 안 어색하다고, 거리감이 줄었다며 싱긋 웃는 것이었다. 비록 어투는 군복학생의 ‘다나까체’였으나 표정만큼은 그간 본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야트막한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것을 왜 진작 말을 안 놓았을까 싶었다. 그랬더라면 학생들과 더 빨리 가까워졌을 텐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일 내가 첫 학기부터 말을 놓고 엠티 가서 게임도 잘하는 선생님이었더라면 우리 사이에는 허물어질 벽 자체가 부재했을 테다. 벽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 경우, 그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의 기쁨 역시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경직된 경어체를 쓰며 분위기 망쳤다고 의기소침해했던 그 시간들을 아무튼 우리는 함께 보냈다. 우리 사이에 벽을 만들어내었을 어색한 순간들은 ‘관계의 역사’로 차곡차곡 쌓여, 도리어 그 벽을 깨고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는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며 고작 말 놓는 것 갖고 별 생각을 다하는군, 하실지 모르겠다. 수많은 법적 쟁점들이 제기되는 와중에 법 교수님으로서 이런 일화나 끄적거리려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관계의 벽을 만들었던 바로 그 기억들로써 도리어 벽을 헐어내는 경험은 경이로웠다. 훗날 나의 학생들 또한 사회선생님이 되어 그들의 어린 학생들과 그리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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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단계적 제재 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구상은 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에 비해 반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당시 발언에 비해 이번 구상은 적절한 시기의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연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조금만 진지하게 그려본다면 문 대통령의 구상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입구’부터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정도로 비핵화가 진척된 단계에 이르러 ‘당근’을 주자는 구상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문 대통령의 능동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일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경우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선적인 사고다. 북한은 오랜 제재 속에서도 나름의 체제 내구성을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북한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제재의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대해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비핵화의 수단에 불과한 대북 제재를 불변의 목표로 간주하는 듯한 ‘가치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를 앞두고 제재 문제에서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은 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구상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오랜 관성에 길들여진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공론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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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분명 한때 그랬다. 서가에 꽂혀 있기만 해도 아우라를 풍겼다. 소장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 지금도 그런가? 여전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만큼이나 낯설다.

<백과전서>가 궁금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엔 어린이는 <컬러 학습대백과>를, 어른은 <두산종합 백과사전>을 들추어보았다. 요즘엔 <백과전서>에 대해 알고 싶다면 누구나 검색한다. 구글에서 <백과전서>를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위키백과의 <백과전서> 항목이 표시된다. <백과전서>가 사실은 <백과전서 혹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이라는 긴 제목임을 나는 위키백과를 통해 처음 알았다.

위키백과가 2001년에 등장하고 난 이후, 2012년 브리태니커는 15판을 끝으로 종이 출판을 포기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1768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시작한 <브리태니커>를 집필한다. <브리태니커>에 기고한 사람은 4000명이 넘는데, 그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11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막강한 전문가 집단이 모여 만들어내는 <브리태니커>를 위협하는, 아니 이미 압도한 위키백과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들은 익명의 다수이다. 위키백과는 예를 들면 ‘사용자:Jjw’ ‘사용자:거북이’ ‘사용자:Ryuch’ 등의 아이디로만 알려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터넷의 대중이 스마트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익명의 다수인 그들이 궁금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정보 역시 위키백과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키피디언(Wikipedian)’ 혹은 위키백과 사용자라 부른다. 위키백과 사용자는 “위키백과에 새로운 항목을 만들거나 기존의 정보를 고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위키백과를 이용하지만, 위키백과의 편집에 참여하는 사람은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0.25%에 불과한 소수이다. 광고도 없이, 별도의 구독료도 없이 운영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위키백과 사전을 묵묵히 편집하고 또 편집하는 그들의 행동 동기가 궁금했다. 다행히 그들의 이야기를 ‘사용자:Jjw’ ‘사용자:거북이’ ‘사용자:Ryuch’ 혹은 진주완, 정철, 유철이 번갈아 고쳐 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위키백과 사용자가 전문가는 아니다. 그가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의 전문가이든 아니든 여기서는 모두가 한 명의 위키백과 사용자에 불과하다. 10대 초반부터 위키백과를 알게 되었고 2018년 현재 대학생으로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철도 및 교통과 관련된 문서를 주로 편집하고 있는 어떤 위키백과 사용자는 위키백과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밖에서는 어리다고 의견을 내는 것에 많은 제약을 받았는데, 위키백과에서는 나이를 드러내지 않고 활동할 수 있고 10대부터 80대까지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 평가되니까요. 위키백과의 문서가 언론사나 다른 사람의 책, 블로그 등에 인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한때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었던 ‘오타쿠’를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시킨 특정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이른바 ‘덕후’이기도 하다. 한때 쓸모 없는 ‘잉여질’이라고 취급되던 ‘덕질’이 시간 낭비가 아님을 이들은 위키백과를 통해 증명한다. ‘덕질’에 ‘덕질’이 더해져 만들어진 위키백과의 어떤 항목은 그 어떤 세계적 석학이라도 단독으로 저술할 수 없는 넓고 깊은 지식의 범위로 우리를 이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이들이 위키백과에 글을 쓰는 이유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나는 이 글을 쓰면 원고료 명목으로 글과 돈을 맞바꾼다. 물론 약간의 공명심도 기대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돈과 글을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이들은 돈이 아니라 명예를 얻기 위해 글을 쓰고, 새로운 항목 편집을 통해 자기 만족을 얻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위키백과의 항목을 더 풍성하게 만들면서 지식 공유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획득한다. 고작 돈과 바꾸기 위해 끄적이는 나보다 한 단계 위의 경지이다.

이 글을 전적으로 위키백과에 의존해 작성했으니, 원고료를 받으면 위키백과에 기부해야겠다는 겉보기에 착해보이는 심산으로 위키백과의 메인 페이지에 해당되는 대문에 들어가 오른쪽 상단에 있는 위키백과 후원 버튼을 클릭했다. 그랬더니 거기에 이렇게 써 있었다. “금전적 기부가 위키백과를 후원하고 지원하는 유일한 방법만은 아닙니다.” 돈과 무엇을 바꾸는 오래된 못된 습관에 따라 행동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위키백과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위키백과 편집자가 되어 각자의 능력껏 기여하는 일임을 위키백과를 통해 또 배웠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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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감독을 받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으로, 초·중등학교 관련 연구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과 초·중등학교 교원 임용시험 등 시험 출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지난해 7월 발표했다.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가원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 왔다.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구성원과의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업무 담당부서와 부서장 중심으로 상식 밖의 전환 계획을 수립해 밀어붙여 왔다.

당연히 당사자들과 직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정규직 전환 절차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평가원은 수탁과제 수행을 위해 채용된 비정규직의 업무 대부분을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없는 5억원 사업예산 기준을 들이대 작은 수탁과제의 업무를 모두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고, 동일한 수탁사업에 속한 수탁과제들을 모두 개별 사업인 것처럼 간주해 예산 기준에 미달한다며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한 수탁사업 중 상당 부분은 법령에 의해 교육부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위임받아 하는 것인데, 이를 일시·간헐적인 업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예산이 5억원이 넘는 초·중등교사 임용시험 등 대형 수탁사업들에 대해서는 채용된 인원 중 일부만 전환하겠다고 하면서, 전환 대상 업무와 비대상 업무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평가원은 수탁과제 수행과 관련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규모를 막무가내로 토막을 낸 다음, 전환 대상자의 처우 역시 삭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삭감된 처우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하여 실시한 정책이 평가원에서는 오히려 비정규직의 월급을 줄이는 일로 변질된 것이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교육과정평가원지부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전환 절차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평가원 전환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합리적 전환 방안을 제시해 왔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임명된 성기선 원장은 정부 정책을 오도하고 있는 실무진과 부서장들에 대해 기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원장 자신이 예산 지원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비롯해 평가원에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상식 밖의 전환 계획을 폐기하고, 평가원의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재구성해 이들로 하여금 평가원의 정규직 전환 업무를 추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정연준 | 한국교육과정평가원노동조합 쟁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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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에서 라돈의 건강위험 공포가 끊이질 않는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었지만 정부 대응은 달라진 게 없다. 대진침대 매트리스, 까사미아 매트 등에 이어 입주 아파트 실내에서도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허용기준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검출되었지만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이 없다. 의도적으로 방사성물질을 섞어서 만든 제품, 시설 등에서 라돈이 발생되고 있다. 라돈 발생 생활제품이나 시설물 전수조사, 노출 또는 사용 규모 파악 및 건강위험 추적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책조차 볼 수가 없다. 라돈이 일으키는 폐암 등 치명적인 건강위험과 어린아이, 노인, 환자, 임산부 등 민감 집단을 포함한 상당수 시민들의 과다한 라돈 노출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다.

라돈은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 폐암 발병의 3~12%가 라돈 때문이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폐암 사망자 중 담배를 피운 적 없는 사람의 23%, 피운 사람의 11%가량이 라돈 노출 때문이라 발표했다. 최근 소아 백혈병을 일으킨다는 연구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신장암, 피부암, 뇌암 등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다.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 등 5개 기관 국정감사에서 송희경의원이 라돈측정기를 들고 질의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우리나라에서만 매우 높은 농도의 라돈을 발생시키는 모나자이트를 의도적으로 넣은 침대, 매트 등 실내 생활제품을 10년 넘게 판매했다.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근거 없는 유사과학을 이용한 제품이었다. 모나자이트에 들어 있는 방사성물질은 정확히 얘기하면 토론(thoron, Rn220)으로 라돈(Rn222)과 원자량이 같은 동위원소이다. 이 물질은 토론 함량이 g당 40~600베크렐(㏃) 정도로 천연 광물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물질은 호흡기 등 침착된 조직에서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 딸 핵종으로 붕괴하면서 내놓는 알파에너지들이 세포 DNA를 파괴함으로써 암 등 건강영향을 일으킨다. 인체 내에서 딸 핵종들이 제거될 시간이 거의 없고 호흡기는 물론 다른 조직에까지 이동해 건강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

모나자이트를 넣어 만든 생활제품은 기업의 의도적 위험 생산이다. 정부는 분명한 건강위험 제품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허가했지만 기업 처벌, 제품 수거, 시민 건강영향 파악 등 대응은 신속히 제대로 해야 한다. 모나자이트가 들어간 생활제품 종류는 물론 그 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모나자이트 사용 제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나자이트를 이용한 음이온 특허제품만 수십만개에 이른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라돈 등 방사성물질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서 노출을 인식할 수 없어 무섭다.

미국, 영국 등 선진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생활 속 라돈 관리 대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생활 속 라돈 관리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자연적으로 라돈이 높게 발생하는 지역 조사, 방사성물질이 들어간 건축 재료와 생활제품 현황 파악과 해결 방안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방사성물질 관리 중심의 대책과는 차원이 다른 전문성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감염과 급성 건강영향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해선 안된다.

라돈 사태는 사회 문제가 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공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대책이 협소하거나 사실상 없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위험으로 내버려 두고 있다. 시민들이 라돈 농도를 측정하고 건강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불안해하고 있다. 얼마나 생활용품 건강위험 참사를 겪어야 예방과 신속한 대응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부 거버넌스를 가질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박동욱 |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환경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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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있었던 서울시 주최 전환도시 국제콘퍼런스와 12일부터 14일까지 계속된 파주 생태문명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두 원로 학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존 B 캅 주니어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코튼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The Living Economies Forum 대표가 그들이다. 이들은 현재의 산업문명 대안으로 생태문명(Ecological Civilization) 담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존 캅은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philosophy of organism)에서 발전한 과정신학(Process theology) 전공자이다. 그에게서 생태문명사상이 싹튼 것은 40대였던 1970년경부터였다. 계기는 1969년 여름 갑자기 찾아왔다고 그는 술회했다. 그때까지는 글로벌 사회에서의 수많은 불의와 그것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면서도, 많은 국가들의 독립을 가능케 하는 글로벌 운동이 그들의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고 한다. 선진국 입장에서는 세계 어디서든지 발전의 과정을 가속화하도록 관대하게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18살이던 아들이 글로벌화 문제에 깊은 인식을 갖고 있어 그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는 그때까지 당연시했던 미국의 사회구조와 개발 패턴이 인류를 전 세계적인 자기파괴로 이끌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 ‘진보’가 이뤄지는 바로 그 방식-산업화된 세계의 경제적 프로그램과 발전 정책-이 모두 지구에서 인간의 삶의 토대를 파괴하는 전체 과정의 부분임을 깨달았다. 인류 생존이란 이슈는 압도적으로 중요해서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했다.

그는 1973년 클레어몬트 과정사상연구소를 설립한 후 생태신학, 더 나아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적용한 생태문명론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을 계속 발전시켜왔다. 그가 주창한 생태문명론은 중국의 학자들과도 깊은 교류를 이어가는 주제가 되었고, 2012년 중국 공산당헌법에 국정과제로 생태문명이 명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데이비드 코튼은 경영학전공자로 활동하다 1970년경부터 20여년간 미국 국제개발처의 경영관리고문 등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국제개발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미국이 개발과 원조를 통해 그 나라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성공을 도울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나 그들의 공동체가 모두 해체되고 삶이 더 악화되는 상황을 직접 겪으며 깊은 회의를 체험했다. 1992년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는 경제구조를 고민하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살아있는 경제(Living Economy)를 표방하는 생태경제사상을 전개하게 된다.

이번에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문명은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며 발전해왔고,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대중, 생명체, 지구를 억압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재화를 창출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생명체를 파괴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자살경제(suicide economy)’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 두 학자의 강의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들이 제안하는 생태문명론에 앞서 그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었다. 그 두 사람은 어떤 경험 또는 예지적 성찰의 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전환시켰고, 그 과정에서 담대한 결단과 치고 나감의 힘을 보여줬다. 

존 캅은 1950년대에 과정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평생 동안 자신의 철학적 기조에서는 단 한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 즉각즉각 응답하며 자신의 삶을 더 깊고 폭넓게 전개시켜왔다. 과정신학에서 생태신학, 다시 존재의 상호관계성에 주목하는 생태문명론으로, 생각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평생에 걸쳐 거침없이 계속 자신을 바꿔나간다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현대 유기체철학의 대가인 화이트헤드라는 큰 돛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존 캅은 그 행운을 삶의 행복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삶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가 하면 행복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 뭔가. 몸과 마음이 쾌적하고 건강한 시공간적 여건에 잘 놓여져 있어 근심과 불만이 사라진 상태가 아닐까 싶다. 존 캅은 깊은 신앙으로부터 우러나는 정신활동으로 신체적 건강도 잘 유지하고 내적 갈등이 없으며 좋은 벗들을 계속 만나가는 풍성한 삶, 행복한 삶의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 코튼에게는 언제나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라는 소개가 따라다닌다. 그 명칭은 그가 세속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정점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50대 중반에 이르러 다른 길을 찾아 삶을 전환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한참 일할 때 인도인 친구에게 “네가 할 일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주류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에게서는 정면에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떠나는 고전적이며 미학적인 삶의 서사가 묻어난다.

두 학자의 강의를 듣고 돌아가던 차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 꽃, 동물 같은 생명들은 돈 없이 산다. 그런데 사람은 돈 없이는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되어간다. 누가 행복한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더 행복하다면, 자신의 삶의 영역을 개척하고 도약하고 헤쳐나가는 모험, 설레는 미래가 있다는 그것일 터이다. 그런데 점점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스스로 아무리 자존감을 지키고 싶어도 절로 비루해지고 구차해진다. 다른 삶을 개척한다든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삶을 전개시켜나갈 기회도 사회적으로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반복해야 한다. 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속 깊이 우러나오는 자신의 갈망과 현실 사이에 갈등하고 고뇌하면서도 계속 그걸 붙잡고 밀치고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다시 만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은 이 연로한 두 학자의 삶은 내적으로 주어지는 고민과 과제에 정직하라는 교훈을 남긴다. 포기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가다보면 길이 나타난다.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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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심했던 지난 8월14일 85세의 제 어머니가 쓰러졌습니다. 하혈이 너무 심한 데다 쇼크까지 와서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5분도 되지 않아 소방대원들이 달려왔고, 응급조치 후 어머니는 인근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심장에 직접 수혈해야 한다며 동의해 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피를 쏟아서 위험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요. 나중에 의사는 변비가 심해 딱딱해진 대장이 직장에 눌려 혈관이 터졌으며, 하혈이 심하니 머리로 피가 가지 못해 쇼크가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비가 노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아찔했습니다. 한낮에 이런 일이 벌어졌거나 응급조치가 시급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다행히 어머니는 열흘 만에 퇴원을 하셨고, 지금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살고 계십니다. 퇴원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간 어머니에게 의사가 “연세에 비해 건강”하다고 이야기한 덕분이지요. 저는 세금 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골든아워>(흐름출판)는 중증외상 분야 외과 전문의인 이국종이 삶과 죽음의 경계나 다름없는 중증외상센터에서 단 한 생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벌인 사투를 담은 책입니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지만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서 15년 넘게 쌓아온 일들이 사상누각”이었다고 말합니다.

사고로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이기에 환자는 사고 직후 한 시간 이내에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골든아워’입니다. 그러나 “금쪽같은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구급차로 이송 가능하지만 먼 거리는 상황이 다르고, 가깝더라도 차가 막히는 러시아워가 되면 환자들은 길바닥에 묶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헬리콥터로 환자를 옮기는 시스템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일과 2017년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를 살려낸 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 일들을 계기로 중증외상센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이 복지부 캐비닛에 처박혔던 중증외상센터 정책을 끌어내더니, 북한군 병사가 죽어가던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건져낸 셈이었다.”

덕분에 보건복지부의 ‘닥터헬기’ 정책도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의 투명성 정도론 의료계나 정부 모두 이런 사업을 감당할 수 없다. 15년간 나는 그 사실만 확인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병원 측은 비행할 의료진 충원에 난색을 표했다. 나는 병원 측에 더 이상 새로운 헬리콥터 도입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언젠가부터 나는 보직교수들이 중증외상센터가 적자의 주범이자 병원 내 감염의 주범, 병원 구성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헬리콥터 소음의 주범임을 지적할 때마다 해명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러한 사안들이 불만이면 공식적으로 정리해달라 답변했을 뿐이다.”

병원의 적자 타령과 헬리콥터 소음을 싫어하는 민원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이 사업이 좌초되어야 할까요? 그는 “한국에서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침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나는 미국에서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의 세계적 표준과 원칙을 배웠고,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또한 일본의 외상외과 의사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중증외상 판 안쪽에서 뒹구는 나는 침몰을 또렷하게 알았다. 본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중증외상 의료시스템 구축에 필요하다며 다들 자기 이권만을 관철시키려 할 뿐, 정작 중증외상센터가 무엇인지 해외에서 진정성 있게 공부하려는 이들조차 없었다.”

저는 이국종 교수가 어깨가 부서지고, 한쪽 눈이 실명할 정도로 일하고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그의 인생은 감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세계적 표준을 따라가는 ‘최상위 중증외상센터’의 진료기록을 만들어 남기는 일”을 충분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두 권 합쳐 820쪽이나 되는 이 책을 펴냈습니다.

그는 <골든아워>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환자와 내 동료들의 치열한 서사다. 외상으로 고통받다 끝내 세상을 등진 환자들의 안타까운 상황과, 환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싸우다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냉혹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업(業)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가 선 자리를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이라고 했다.

맞습니다. 저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저는 이 책을 제가 속해 있는 출판업계에 빙의해 읽었습니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이나 여론을 의식해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어느 분야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인공지능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교육시스템부터 달라져야 마땅합니다. 교육의 질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은 대학입시입니다. 그런데 대학입시마저 분명한 철학을 갖고 결정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로 결정해 아이들의 미래를 엉망진창으로, 미리 망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골든아워>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소설처럼 읽히며 우리를 한없이 아프게 하는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의료, 교육, 출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것입니다. 제게는 이 책이 올해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감히 강추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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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연애감정에 대한 호소 혹은 미개한 조선 사회에 대한 개탄을 담은 이광수의 <무정>은 청년들에게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요즘 인문학의 트렌드 중 하나는 ‘감정’이다. 이는 근대 계몽이성에 대한 반발이겠으나 희한하게도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서 정동과는 거리가 먼 ‘무심함’을 느끼곤 한다. 감성인문학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무정에 대한 호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분노하라> <미움받을 용기> 같은 감정교육 서적들이 인기를 끄는 것이 어쩌면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방증 아닐까.

물론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하고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떤 실감이나 육체성을 상실한, 말끔한 플라스틱 자아들의 향연과 같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의 자아들은 그림자를 상실한 동화 속 인물처럼 무언가를 제거하고 만들어진 조형의 얼굴들과 흡사하달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쌍방향이지만 어쩐지 어떤 겯고틀고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방향의 외침같이 들린다. 요컨대 말끔한 아바타들의 만남과 접속에는, 김수영식으로 말하자면 ‘하, 그림자가 없다’. 혐오문화 또한 배제의 기율 속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말끔한 제거술이 아닌가. 수많은 페친과 팔로어들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만 각자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희한한 1인 자급자족 시대.

‘소확행’과 ‘워라밸’의 유행에 진입한 젊은 세대들의 감각은 확실히 타인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감정 교류에 있어서 어떤 불편함을 지닌 듯하다. 최근 읽은 소설들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은 ‘보통사람’ 시대에 태어난 1988년생의 이야기이다. 문화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급여에 맞게 최저임금만큼의 최소 노동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인공 직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에도 눈감고 동료와의 점심시간을 피하기 위해 가짜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최소한의 노동은 최소한의 관계와 감정으로 이어지고 그들을 ‘최소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여기에 ‘규옥’이라는 한 문제적 청년이 등장한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에게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자고 설파하고, 이들을 ‘가면, 계란, 공개 항의’와 같은 퍼포먼스로 이끈다. 어찌 보면 이들의 ‘항거’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한 놀이 같지만 작가는 급진적 혁명에 불과한 이러한 반격 말고 무엇이 가능하냐고 묻는 듯하다.

신인작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등장하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한 청년도 이와 유사하다. 기업 회장의 인스타그램 속 자아를 배려하지 못한 대가로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된 젊은 여직원은 회사를 박차고 나가거나 항의하는 대신 그 포인트로 물건을 사서 중고마켓에 되팔아 돈을 만든다.         

<서른의 반격>이나 <일의 기쁨과 슬픔>의 청년들은 반짝이는 거울 빌딩에 다니고 있지만 네모난 하늘을 품고 있는 판교의 한 게임회사 사옥처럼, 다만 자신의 내부에 광활한 하늘을 가두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압도적인 네모에 갇혀서 각자 조용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용이며 새떼, 열기구, 헬리콥터를 상상한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예를 들면 거북이라든지, 거북이 사진이라든지, 거북이 동영상이라든지”라고 고백하는 판교 여직원은 어쩌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헬조선과 탈조선을 외치던 그들은 그 불가능을 깨닫고 순회하여 이제 소확행에 안착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거대한 꿈과 진정성, 치열함의 강조는 어쩌면 ‘꼰대’의 잔소리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의 무정과 무심함의 기원은 “내가 제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치열하다는 말 (…) 치열하게 살았아요. 나름, 그런데도 이렇다구요. (…) 그러면 이제 좀 그만 치열해도 되잖아요”(<서른의 반격>)라는 항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자유와 정동을 감금한 이 시대의 소확행은 비정한 현실의 랜드마크가 아닐까.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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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 학종은 비판의 대상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다.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악의 입시부담을 주는 전형이라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학종에 대한 분노는 다분히 윤리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학종이 초래한 교육윤리의 타락에 분노하는 것이다.

방금 말한 교육윤리의 타락은 시험문제 유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시험지를 훔치는 일은 명백한 범죄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외적 현상이다.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그보다 더 폭넓게 존재하는 비윤리적 행위들 때문이다. 학원이나 부모가 학생부에 기록될 스펙을 만들어주다시피 하는 일, 학원에서 작성한 것을 그대로 학생부에 기록해 주는 일, 학원에서 써준 자기소개서를 학생이 쓴 것처럼 위장하는 일, 학교가 성적우수자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일…. 이런 것들 때문이다. 이것들은 결코 일부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는 일이다. 얼마 전 만난 내 친구는 학종 컨설팅학원(그 친구의 말로는 스펙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해주며 이렇게 탄식했었다. “와, 그거 완전 사기더라.”

2015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입시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런데 학종으로 인한 교육윤리의 타락이 앞서 말한 것에 국한된다면 학종에 분노하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것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행하는 더 광범위한 비교육적 행위가 존재하는 걸까. 어느 학부모가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던 이런 수준의 일이라면 그렇게 봐야 한다.

“원서 마감은 보름 앞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 부자는 매일 다큐멘터리 한 편씩을 봐야 했다. 그것도 사회성 짙은 문제작 위주였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고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꾸미기 위해서였다. 15일 동안 본 다큐멘터리를 15년에 걸쳐 본 것처럼 위장해…”

이런 정도의 것이라면 우리 주위의 평범한 학부모, 교사, 사교육 종사자,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들은 자그마한 일탈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윤리적 죄책감과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람들이 분노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자신의 부끄러운 경험을 용감하게 밝힌 학부모는 누구일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다. 앞서 인용한 글은 김의겸 대변인이 한겨레신문 기자일 때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담아 쓴 칼럼 “난 이렇게 아들의 ‘스펙 조작’에 가담했다”의 일부다.

스펙을 쌓으려고 억지로 한 일을 고결한 동기에서 한 것처럼 꾸미고, 형식적으로 하고선 충실하게 한 것처럼 위장하고, 남의 힘을 빌려 놓고는 혼자 힘으로 한 것처럼 속이는 행위들은 이제 더 이상 이상한 행위가 아니다. 교육(공교육·사교육·가정교육)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낯익은 행위들이다. 학종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는 성인군자, 대학자, 슈퍼맨이라 할 만한 훌륭한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부와 자소서의 세계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학종은 위선의 입시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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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이 건강해야 이가 바로 섭니다!” 어떤 잇몸약 광고 카피가 이랬지 싶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힘써 공들인 것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탑의 어느 곳에 공을 들인다는 것일까요? 석가탑의 미끈함일까요? 아니면 미륵사지 석탑 같은 웅장함일까요. 답은 첫 문장에 나왔습니다. 탑을 세울 때 먼저 공들이는 부분, 바로 기초입니다.

집 지을 때 땅 파고 콘크리트 부어 기초공사 하듯 탑 세울 때도 지반부터 다졌습니다. 접착제 없이 부재의 하중만으로 견디도록 쌓아 조립하기 때문에 땅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탑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판축(板築) 기법이라 해서 토목공사의 흙막이공법처럼 땅을 깊게 파고 사방에 지지 기둥 박고 두꺼운 나무판들 끼워 흙이 무너지지 않게 버틴 뒤, 그 안에 진흙이나 펄, 잔자갈 같은 입자가 고운 것들을 한 켜씩 섞어 넣고, 밀도를 높이기 위해 아름드리 목재 달구로 쿵쿵 쳐 켜켜이 다지기를 수도 없이 합니다.

이것이 공든 탑의 시작입니다. 안 그러면 스며든 빗물에 땅이 물렁해지고, 얼었다 녹은 지반이 들떠버리니까요. 기계가 없던 옛날에 이런 지반공사를 하자면 인건비 절대 무시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품삯이 아까워 뭘 저리 며칠째 하나 싶어 “탑 세울 석공비도 있는데, 거 대충 하고 끝냅시다” 하기도 했겠죠.

1977년에 시작해 밀어붙이기로 2년6개월 만에 완성한 그렇게 외양은 참 아름다웠던 성수대교가 1994년 10월21일 부실한 공사, 부실한 관리로 상판이 무너졌습니다. 출근, 등굣길 서른둘의 목숨도 같이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부실 공사는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돈이니까요. 사상누각은 모래 위에만 짓는 것이 아닙니다. 대공(大公)이든 소공(小公)이든, 내 소관만 아니면 된다는 철통 위에 가장 먼저 짓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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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청장년 시절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낸 그이들은 이제 늙고 병들었다. 오랜 구금과 고문에 의한 후유증과 암 투병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분단의 현대사가 문신처럼 새겨진 생의 끝에서 그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희미하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꿈이 있어서다. 북녘으로의 귀향, 그 희망의 끈이 없었다면 진즉 스러졌을 터이다. 해도, 야속한 시간은 그이들을 비켜가지 않는다. 같은 길을 걸어온 신념의 동료들은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31년을 복역하고 강제전향 압박을 거부했던 박봉현씨(98)는 지난해 세상을 등졌다. 22년 옥고를 치렀으나 야만의 테러 속에 전향서를 쓴 것을 평생의 치욕으로 아파하던 김동수씨(81)는 지난 8월 눈을 감았다. 남한 땅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던 긴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 ‘귀향’을 기다리는 이들은 18명. 아스라이 잊혀진 존재를 일깨운 <귀향-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정지윤 사진전)에 힘입어, 그이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강담(85) 김교영(91) 김동섭(93) 김영식(85) 류기진(93) 문일승(92) 박순자(87) 박정덕(88) 박종린(85) 박희성(83) 서옥렬(90) 오기태(88) 이광근(73) 이두화(90) 양원진(89) 양희철(84) 최일현(89) 허찬형(89). 생존한 2차 송환 대상자들이다. 이들의 복역기간을 합치면 362년에 이른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지난여름 검은 막 앞에 서거나 앉아 사진을 찍었다. 오랜 수감생활로 몸과 마음이 상했지만 형형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왼쪽부터 서옥렬, 박정덕, 박종린, 류기진씨. 정지윤 기자

어느덧 18년이 흘렀다. 2000년 6·15공동선언에 따라 같은 해 9월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남에서 북으로 분단을 허물며 넘어갔다. 분단과 냉전의 산물인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민족문제 해결의 한 지평을 연 ‘사건’이었다. 한데 예서 또 다른 비극이 잉태한다. 당시 정부는 ‘전향 여부’를 송환 기준으로 삼았다. 1970년대 국가의 살인적 전향공작 앞에서 전향서를 쓴 장기수들은 송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에는 북송을 앞둔 비전향 장기수들을 위한 환영 장면이 나온다. 연단 아래서 북으로 돌아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김영식씨의 그 처연한 표정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 27년을 복역한 김씨는 두 달에 걸친 전향고문을 당한 끝에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내뱉은 ‘네’라는 한마디 때문에 송환 대열에 들지 못했다.

‘강제전향’ 장기수들의 삶에는 남다른 슬픔과 아픔이 서려 있다. 살인적 폭력으로 빚어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동료들은 견뎌낸 고문을 왜 못 견뎠을까’ 하는 자괴와 형식상으로라도 양심을 포기했다는 치욕, 결국 종이 한 장에 인생이 갈린 분노는 천형처럼 이들을 따라다니며 옥죄었다. ‘사상전향공작’은 유신 독재 정권이 좌익수 전원을 전향시킨다는 기치 아래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잔혹한 고문으로 양심을 짓밟은 만행이다.

김씨 등 장기 구금자들은 2001년 2월 ‘전향 무효 선언 및 송환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강압으로 이뤄진 전향 자체가 무효임을 선언하고, 가족이 있는 북으로 송환을 촉구한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영식씨가 동료들의 손을 잡고 “이제야 인간이 된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강제전향 장기수들의 도저한 아픔을 웅변하는 상징으로 기억된다. 결국 전향 문제는 이후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라고 인정함으로써 해소되었다.

당초 ‘2차 송환’ 대상자는 33명이었다. 1차 송환 당시 신청을 못했거나, 주로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이다. ‘2차 송환’은 노무현 정부까지는 꾸준히 해결이 모색되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동결되면서 논외로 사라졌다. 그들의 존재와 사연은 또다시 잊혀졌다. 그런 사이 여럿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18명만 살아 있다.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면서 실낱같은 희망이 지펴지고 있다. 판문점선언에 담긴 ‘민족 분단으로 발생한 인도적 문제의 시급한 해결’이 희망의 씨앗이다. 비전향 장기수야말로 “외세와 분단, 냉전과 대결 시대의 직접 피해자이며 동시에 민족분열로 발생한 인도적 문제 해결의 우선 대상자들”이기 때문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항구적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장기수 송환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의 길은 활짝 트일 터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늙고 병든 그이들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시민단체들이 무엇보다 고령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까닭이다.

<귀향-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에 소개된 최일현씨(27년 복역)의 남루한 거실 탁자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고이 놓여 있다. 거기에는 아마도 ‘송환’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 국무위원장의 관심과 결단을 바라는 비원이 담겨 있을 게다. 6·15공동선언에서 보듯 ‘송환’ 문제는 남북 정상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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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앞.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불 꺼진 곳이 많았다. 시무룩한 동네의 낯선 간판과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컴컴함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가.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해졌다. 하지만 조마조마해지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마음이 그렇다는 건 하늘이나 어둠 또는 보이지 않는 곳이거나 잡을 수 없는 것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맡긴다는 게 아니겠는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술잔 앞에서 박수도 치다가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마지막 산행이다. 거제도의 등뼈 같은 계룡산과 선자산 가는 길. 개띠라고 한 해를 마감하느라 유독 깡충깡충 저마다 바쁜 시기를 보낸다는 느낌도 든다.

꽃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열매가 승한 시기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어느 돌길에 이르니 편평한 바위에 이끼가 그림처럼 붙어 있다. 누군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표현한 듯 순정한 무늬. 문득 뒤를 돌아보면 거제도와 통영을 두루 아우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정상에 오르니 멀리 부산, 대마도가 보이고 현직 대통령의 생가 마을도 보인다.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거제도는 참 의젓하군! 꽃을 품은 섬이라는 거제에 푹 빠져 하산하는 동안 많은 열매를 보았다. 이 지역의 숭상한 기운을 다 끌어모았는가. 팥배나무, 찔레나무, 윤노리나무, 가막살나무의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열매가 태양의 자식이라 둥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조리 다 빨간 건 아니었다. 그중에 하나는 까맣게 여물어서 눈길을 끈다. 희고 노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꽃은 보았지만 이렇게 그 열매를 보는 건 처음인 인동덩굴이다.

흔히 인동초라고도 불리며 또 한 분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덩굴성 식물로 많은 고비를 지나 숱하게 휘어지고 꺾어지면서 마침내 척, 내놓은 까만 열매. 빨간 열매가 주위를 밝히면서 퍼지는 느낌을 준다면 검은 열매는 주위를 끌어모아 응축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반짝거리는 인동덩굴의 쥐똥처럼 까만 열매 앞에서 대낮인데도 내 마음이 잠깐 조마조마해졌다. 인동덩굴, 인동과의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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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구는 사안들은 주로 형사처벌에 관한 것이다. 특히 2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목숨을 빼앗아간 끔찍한 범죄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동질감과 동정심이 든 사람들은 범죄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분노한다. 응당 같은 값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안감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오래도록 격리시키길 원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응징과 보복의 감정에 기댄 것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을 폐지해 성인처럼 처벌하라고 한다. 곧 형기를 마치게 될 조두순을 더 가두어달라는 청원도 수십만을 넘었다.

중형으로 겁을 주어야 일벌백계가 되고,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도 최근 음주운전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더 엄하고 중한 형벌에 대한 여론, 언론, 정치의 요구가 빗발친다.

왜 엄벌과 강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일까. 흉악 범죄로부터의 불안감 때문이다. 자연재난, 질병, 대형 교통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더해 급증하는 범죄위험은 평화로움을 원하는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사건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자신은 절대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요구한다. 범죄수법에 관한 선정적 보도에 더해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가감 없이 노출시키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응징 욕구는 치솟는다. 범죄자를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악마와 적으로 낙인찍는다.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형벌에 거는 기대는 커진다.

이럴 때 정치는 돈이 적게 드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신속하게 뭔가 하고 있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가 발동돼 입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여론에 즉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정치는 강성화 형사정책을 사회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은 날로 비대화되지만 역으로 과잉범죄화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기도 한다. 입법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어떤 금지행위든 형사처벌 규정을 두어야 실효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형벌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다. 경범죄 처벌, 자전거 음주운전, 자전거 헬멧 미착용, 자동차 안전벨트 미착용이나 심지어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제재의 수단을 투입하려고 한다.

정치권과 입법부가 여론의 풍향에 너무 민감하다. 조문 몇 개만 고치는 단발성 입법 발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의 폭풍만 지나가면 그 법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일단 입법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끝이다. 그러는 사이 법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형사처벌법을 만드는 것에 그치면 그것만으로 범죄가 예방될 리 없다. 처벌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때와 장소를 가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항시성과 일관성, 그리고 공정성이 핵심이다. 어쩌다 단속해서 처벌하거나, 처벌도 들쭉날쭉하면 법에 대한 불신만 생겨 준법의식은 옅어진다.

성범죄의 예를 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특별법 제정, 형법 개정, 신상공개 및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 등 처벌수단을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등 중형주의의 연속이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형도 강화하고 제재수단을 총망라했지만 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고 있다. 범죄자를 가두어 두는 형사정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음주를 포함한 위험운전치사상죄도 그렇다.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다.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사망자의 수가 증가하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느슨하게 적용되니까 오히려 음주운전 사고는 증가추세다. 엄격한 단속과 법적용 및 처벌이 뒤따라야 처벌법의 효과가 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래야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단속, 수사, 처벌이라는 법집행이 총체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야 규범의식과 준법의식이 생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법대로 살면 나만 손해’ 등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입법의 홍수만 겪게 될 뿐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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