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대체로 비슷한 평가였다. 10월5일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이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12일),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종합대책 발표(25일).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 이후 정부가 20여일 만에 제도로 응답한 보기 드문 경우다.

‘박용진현상’은 사안 자체부터 인화성이 높았다. 기득권과의 정면 승부였다는 점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유치원 문제는 육아, 교육, 복지를 포괄하는 ‘헬조선 프레임’과 맥이 닿아 있다. 여성들의 삶을 옥죄는 핵심고리이기도 했다. 내 아이를 위해 ‘을’을 자처했던 부모들의 분노는 또 얼마나 컸나. 이런 문제를 다뤄야 할 교육위원회는 유난히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엉켜 있는 상임위다. 민주당 지도부는 박 의원의 문제 제기 후 사흘이 지나서야 입장을 발표했다. 박 의원의 고군분투를 ‘똘끼’ 정치인의 무모한 돌파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슈의 파괴력, 분노의 조직화, 기득권과의 싸움이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정감사 기간 내내 ‘박용진현상’을 들여다봤던 까닭이다. 그 자리엔 정당과 국회의 전환이 꿈틀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박 의원의 첫 자서전 제목은 ‘과감한 전환’이다.

19일 오전 경남도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들은 시민(국민), 정의를 외친다. 정작 이런 소명이 정당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정당의 언어는  ‘계파’ ‘진영’으로 통할 뿐이다. 정당을 배타적 권력 쟁취의 도구로 삼아 온 후과다. 박 의원은 ‘진짜 권력’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등과세 부과를 끌어냈지만 정무위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무계파, 비주류 출신인 죄”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부 주류 쪽 의원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다. 운이 좋았지 뭐”라며 박 의원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다. 

정당은 정권획득을 위한 결사체지만 평소엔 갈등해결을 위한 조정기관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념보다 사회경제적 균열이 정당 정체성을 결정하는 변수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범진보의 맏형을 자처해 온 민주당조차 기득권 앞에선 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의원은 “민주당 소속 진보교육감들도 유치원연합회 위력 앞에 무너지더라. 최근 2년간 아예 감사를 포기한 곳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의원의 질주로 정당이 변하고 있다. 계파와 진영이 난무했던 자리에 시민(정치하는엄마들, 시민감사관 등)들이 올라섰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지만 유권자의 약 30~40%는 투표에 불참한다. 이번을 계기로 이들 중 상당수가 정치 안으로 들어왔을 거라 짐작된다. 사립유치원의 폐원 압박에 공동육아로 대응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정당이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게 된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삶과 밀착된 문제를 해결하면 새 질서가 만들어지고 지지도 받게 된다”는 공식까지 추가된다면 정당정치의 ‘전환’이라 할 만하다. 

정권교체 후에도 국회는 청와대와 행정부에 종속된 ‘반응 정치’로 일관했다. 소득주도성장, 개헌, 최저임금 등 굵직한 현안은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했다. 국회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놓고 추상적 담론 경쟁에 빠졌고, 양당제와 다당제의 선악을 매기느라 바빴다. ‘국회=비생산적’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여의도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국회가 박 의원의 질주로 달라지고 있다. 국회발 의제가 나온 지 20여일 만에 온 나라가 움직였다. 2013년 누리과정이 실시된 이후 교육관료들의 직무유기, 짬짜미 감사 등 묵은 적폐가 민낯을 드러냈다. 국회는 유아교육이라는 공적 가치에 관한 한 대표성을 인정받게 됐다. 촛불 이후 주요 의제에 직접 참여하는 게 낫다는 시민들이 늘었지만, 살다 보면 내 권리를 위임하는 간접 참여도 괜찮겠다는 시민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선거제 개편 논의도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된다면 속도가 빨라질지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국회 정치의 전환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박 의원은 2000년 이후 10여년 동안 진보정당 깃발을 펄럭이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2011년 진보정당 울타리를 넘어 거대 정당 광장으로 건너왔다. 한쪽은 배신자, 또 한쪽은 비주류로 낙인찍었다. 진보정당 시절 모두가 독자집권을 외칠 때 홀로 연립정부를 주장했고, 민주당에 와선 배후세력 없는 설움 속에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늘 “1회초 등판만 하고 내려오는 것 아닌가” 가슴 졸여야 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안되는 삶이란, 생각지도 못한 삶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정치라고 다르겠는가. 진보정당은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하고 있고,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선 역사라며 자랑스러워하지 않나. 박용진, ‘과감한 전환’을 응원한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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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를 친구처럼 여긴 아이, 제제를 만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라임오렌지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알 방도가 없었다. 바나나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나 해야 구경할 수 있었던, 바나나 우유는 목욕탕에 가서 억센 엄마 손에 붙잡혀 온몸이 새빨개지도록 때를 밀린 뒤에야 겨우 얻어먹던 시절이었으니, 라임오렌지 나무는 ‘유니콘’ ‘피닉스’ 같은 상상 속 동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라임오렌지를 봤을 때 제제의 친구 밍기뉴가 레몬을 닮은 평범한 과일이라는 게 조금 실망스러웠다는 기억이, 그가 초등학교 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얘기하는 걸 듣다 보니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독서 토론을 하는데 친구들이 그 책을 가정폭력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독서모임 넛지살롱에서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넛지살롱은 고전을 곱씹어 읽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영민 기자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단박에 작가의 문제의식을 꿰뚫어 보았을까. 우리는 통찰력 있는 그들을 놀라워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 그는 내 딸보다 나이가 적었으므로 우리 둘의 시공간적 간극은 엄청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지 10여분 만에 ‘제제’와 함께 어린 시절로 훌쩍 뛰어넘어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간접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힌다 어쩐다 하지만, 저는 독서의 장점이 감수성을 키워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초등학교 때 장애가 있는 친구를 돕는 아이의 얘기를 그린 동화를 읽은 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책 덕분에 타인과의 공감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는 아동용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최근에 차별에 찬성한다는 요즘 20대를 다룬 책을 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

나도 그 책을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 마주 앉아 책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서 아주 오래 앉아 있고 싶었다. 역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게 독서보다 즐겁다. 책 읽기도, 수다 떨기도 좋은 계절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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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정의를 말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suum cuique)”가 정의의 출발점이라고 하지만, 고도 산업사회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당한 분배의 기준과 방식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의 사안들을 두고 각각의 분야와 사례에 따라 정의를 향해 섬세하게 조율해 가는 과정을 지속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9월 초,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의 합의안이 발표됐다. 2011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법률이 4차례나 유예된 건 여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는데, 이번엔 강사대표, 대학대표 및 국회 추천 전문가 등이 처음으로 합의안을 마련함으로써 이후 국회 의결과 정부 법령 개정 등의 절차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육의 중추를 담당해온 강사들에게 그 역할에 합당한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처우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명분은 너무도 자명하다. 대학의 일원으로서 만시지탄의 부끄러움을 절감한다. 지혜를 모아 반드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는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으며, 그 우려가 대학에서는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안이 완충 장치와 예산 지원 없이 졸속으로 시행될 경우, 많은 강사들이 자리를 잃는 결과가 예상된다. 개정안의 취지와는 달리, 소수가 3년의 시한부 안정을 부여받는 대가로 다수가 그나마 해오던 강의를 빼앗길 공산이 크다. 등록금을 동결하고 교육부의 지원과 규제 시스템에 길들어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로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쌓아놓은 적립금을 풀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매년 나가는 인건비성 경비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강의 수를 줄이고 전임교수 시수를 늘려서 강사를 최소화하는 길로 내몰리는 구조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 이는 학문후속세대 육성과 결부되어 있다. 신규 진입이 어려운 형태의 강사제도가 고착되면 교학상장의 강의를 통해 역량을 키우고 이를 주요 경력으로 삼는 신진 연구자들의 앞길이 막히며, 국내 대학원의 생태계에까지 근본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다.

당사자인 강사들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난 구조 조정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정의는 무엇인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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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국제법상으로 유엔에 가입한 엄연한 국가다. 반면 국내법은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다. 반면 남북관계발전법은 ‘특수관계국’으로 규정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모태다. 고민 끝에 헌법과 보안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교류가 가능해지도록 합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보수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안보를 독점했고, 북한을 협상 상대로 보는 남한의 진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은 보수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북한에 대한 국가성 부정은 보수의 징표가 됐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현상일 뿐이었다. 이면에서 보수와 북한은 적대함으로써 각자의 이익을 취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북한이 남한 선거에 개입한 ‘북풍’, 보수가 총선에서 이기려고 총을 쏴달라고 북한에 부탁한 ‘총풍’을 기억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어 달라고 애걸한 것도 남한 보수정권이었다. 보수는 자생력이 부족한 아이나 다름없었다. 늘 북한을 필요로 했다. 거의 중독 수준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북한을 공개 소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고 공격하면서다. ‘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60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조약은 국가 간에 하는 것인데, 국내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위헌이 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당이 계속 위헌 주장을 하려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물러서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갔다. 헌법재판소에 비준의 효력정치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서를 냈다. 선행 선언인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의 대통령 비준 재가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므로 원인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안위에 관련된 군사합의서는 ‘안전보장에 대한 조약’에 해당하므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의 자가당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먼저 판문점선언을 무조건 거부해 본회의는커녕 상임위 상정조차 못하게 만든 당사자로서 대통령 비준 재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행위의 자가당착이다. 또한 북한의 국가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은 그간 자임해온 보수정당의 전통을 부정했다. 이념적 자가당착이다. 이것은 철칙으로 강조해온 국가보안법과 헌법 3조에 위배되기도 한다. 법적 자가당착이다. 실제로는 북한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정을 전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한국당은 전략적 행동이라고 자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한국당의 처지가 그만큼 궁박해졌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남북관계 발전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체제 구축의 길도 닦이고 있다. 그 바람에 수구·냉전 보수가 활개칠 서식 공간이 매우 좁아졌다. 결정적인 것은 ‘표준국가’ 미국의 대북관 변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응함으로써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에는 ‘마지막 희망’이던 일본 아베 총리마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강력 추진하고 있다. 한국당 내부 균열도 심상치 않다. 경기 연천 강원 철원 등 접경지역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 4명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불합리한 당론보다 지역 민심을 우선시한 결단으로 보인다.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국내외로 이념적 외톨이가 된 한국당이 마지막으로 북한 카드를 꺼내든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 국가성 인정’ 카드는 양날의 칼이다. 정부를 공격하는 데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언제든 제 몸을 찌를 수 있다. 특히 70%가 넘는 지지를 받는 판문점선언을 공격하는 것은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의 유일한 희망은 비핵화협상이 깨지고 북·미와 남북이 대결시대로 회귀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한국당은 국민과 싸우게 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 한국당에 퇴로가 없다는 사실이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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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엔 며느리, 가을볕엔 딸을 밭에 내보낸다’는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자외선이다. 지구 역사 어느 순간 부산물로 산소를 만들어 내는 남세균이 등장하고 덩달아 대기 중 오존층이 형성되면서 생명체에 해로운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게 되었다고 고생물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오존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초기 지구는 어땠을까?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헤센 박사는 처음에는 황을 포함한 기체가, 그 후로는 메탄이 어느 정도 자외선을 차단했으리라고 추정했다.

태양은 다양한 파장을 지닌 전자기파를 송출한다. 우리는 식물이 광합성에 사용하는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을 자외선, 반대로 긴 파장을 가진 파동을 적외선으로 분류한다. 햇살이 비친 벽돌의 따스함은 적외선의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자외선은 단백질이나 유전자 같은 생체고분자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그 빛에 오래 노출된 세포를 죽일 수도 있다. 지구에서 자외선의 이런 위험성은 생명 탄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다. 지금껏 모든 생명체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몇 가지 장치를 진화시켜 왔다. 우선 자외선을 피해 달아나는 회피 행동, 두 번째로, 자외선을 차단하거나 흡수하는 화합물을 만드는 일, 마지막으로 손상된 유전자를 수리하거나 항산화 효소를 합성하는 일 등이다. 모두 생명의 세계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수생 어류나 유충 또는 플랑크톤은 내리쬐는 자외선을 피해 수직으로 하강할 수 있다.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들은 자외선 걱정을 덜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회피 방식이다. 한편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멜라닌 혹은 카로틴과 같은 물질을 만들어 자외선을 차단하거나 손상된 유전자를 수리하는 정교한 도구 또는 항산화 효소를 개발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자외선이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외선은 공기 중 세균이나 바이러스 혹은 기생 생명체를 죽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외선의 이러한 살균 효과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외선은 피부 아래 모세혈관에 흐르는 콜레스테롤을 비타민 D로 변화시킨다. 척추동물의 뼈 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비타민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인간이 자외선을 애써 구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북반구 추운 곳으로 이동하게 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안타깝고 소중한 햇볕, 특히 비타민 D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외선을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무슨 일을 했을까? 간단했다. 바로 멜라닌 생산량을 줄인 것이다.

200종이 넘는 인간의 세포 중에서 멜라닌을 만드는 일은 멜라닌세포 담당이다. 피부 상피와 그 아래 진피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멜라닌세포는 합성한 검은색 멜라닌을 수십개에 달하는 주위 피부세포에 전달하기 위해 가지를 뻗고 있다. 적도 지역에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은 멜라닌 생산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피부를 검게 유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멜라닌세포 수가 더 많은 것은 아니다. 어디 살든 사람들은 피부세포 30개당 1개꼴로 멜라닌세포를 갖는다. 고위도에 사는 사람들은 다만 멜라닌을 적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인류의 피부색은 자외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비타민 D를 합성하기 위한 모종의 타협점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현재의 피부색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다만 끈기가 좀 필요하다. 이런 저런 선택을 거쳐 피부색이 바뀌는 데는 100세대, 약 250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에 살던 사람이 호주로, 반대로 나이지리아에 살던 사람이 캐나다로 이주하게 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호주에 사는 노르웨이인은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늘어나고 캐나다의 흑인은 비타민 D 부족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인간의 눈, 털, 귀 혹은 뇌에도 멜라닌 혹은 멜라닌세포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1.7㎡ 면적의 피부에 분포한다. 일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피부에서 멜라닌세포는 면역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참 다재다능한 세포이다. 성인 한 사람이 평균 30개쯤 가지고 있다는 우리 피부의 점(nevus)도 다수의 멜라닌세포로 이루어졌다. 피부 반점은 크기도 각기 다르고 튀어나왔거나 편평한 것도 있어서 그 형태가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 해롭지 않아 건강에 별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점은 멜라닌세포를 가진 모든 포유동물에서 관찰되며 특히 개와 말 그리고 인간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햇볕을 쬐거나 호르몬 양이 변하면 점의 개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가끔은 점이 사라지기도 한다. 생리학자들은 점을 구성하는 멜라닌세포가 피부에서 생겨나 안쪽으로 이동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진피에서 생겨나 밖으로 옮겨왔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쟁을 벌인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얼굴이나 피부의 점을 미용의 적으로 치부하고 모조리 제거하려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은 멜라닌색소 생산 과정이 생명체 역사와 오랜 기간 함께해왔음을 그저 묵묵히 증언할 뿐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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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 두 명이 있다. 둘 다 고교 졸업 후 1988년 한 명은 공무원으로, 한 명은 일반 기업체에 취직을 했다. 둘이 가입한 연금은 각각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이다. 두 연금 모두 30여년의 세월과 함께 많은 개혁과 변화가 있었다. 특히 국민연금은 1988년 가입 당시와 다르게 1969년생 수급연령이 만 65세로 일괄 변경됐다. 그러나 1969년생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한창나이인 47세부터 연금수급이 가능하다.

왜 그럴까?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2000년 12월31일 기준으로 재직기간 20년 미만인 자는 2000년 12월31일 당시 재직기간 20년 미달 기간의 2배를 재직하고 퇴직하면 퇴직 직후 연금 개시가 가능하다.”

1988년 임용된 1969년생 공무원은 2000년 12월31일 기준으로 12년 근무했다. ‘20년 미만 기간’이 8년이니, 2000년 12월 이후 8년의 2배인 16년을 근무하면 연령 상관없이 바로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다. 즉 47세인 2016년 12월31일부터는 퇴직하면 바로 연금을 받는단 얘기다. 1988년부터 가입기간이 28년이니 최소 2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을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여러차례 개혁을 하고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맞췄다고 하지만 여전히 40대부터 근로자 중위소득 이상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만약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공무원 출신 1969년생은 47세부터 33년간 연금을 수급하지만 동갑내기 국민연금 가입자는 15년만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근무상한연령이 60세 미만이거나, 계급 정년이 있거나, 직위가 없어지거나, 정원을 초과하는 인원 등으로 공무원의 법적 정년에 미달해 퇴직하더라도 역시나 즉시 연금이 지급된다. 많은 국민들이 경영난과 구조조정, 각종 해고로 젊은 날에 직장을 떠나더라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공무원연금만의 특혜이다.

군인연금은 더하다. 만 19세에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20년 근무하고 퇴직하면 39세부터 연금수급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공무원연금은 보험료(기여금)를 납입하지 않은 기간의 소득도 포함해 연금을 산정한다. 예컨대 만 23세에 교사로 발령받아 33년을 완납한 55세 교사의 경우 만 62세까지 생애 가장 높은 소득을 얻지만 연금보험료 한 푼 내지 않는다. 반면 퇴직 후 연금을 받을 때 기준소득에는 55세부터 62세까지의 소득이 포함된다. 이 역시 국민연금에는 없는 공무원연금만의 차별적 연금산정 방식이다.

4차 재정추계 발표 이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공무원, 군인 등 특권적인 직역연금 제도가 존속하는 한 국민들은 희생이 따르는 어떠한 개혁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연령에 따른 수급시점 통일, 비기여 기간 소득 연금산정 제외 등 터무니없는 공무원연금 특혜 규정의 즉각적인 개정을 바란다.

<김형모 |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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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유권자가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지지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노예’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며 지적했다. 이는 지난 6·13 지방선거가 끝난 지 4개월여 지난 지금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투표가 끝나면 유권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며 생계에만 관심을 쏟고 정치에는 소원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소가 말한 것처럼 일시적인 주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선거 후 우리가 정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당선인이 후보자였을 때 공약했던 사항을 잘 이행해 나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선인에게 당연한 임무이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챙겨야 할 소중한 권리다. 만약 국민이 약속 이행에 관심이 없다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공약을 찾아보려고 하면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몰라 난감할 수 있다. 이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활용하면 된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우측 하단에 ‘정책공약 알리미’ 칸이 있다. 여기에 들어가 ‘당선인공약’을 클릭하면 대통령의 공약부터 구·시·군의 장의 공약까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선인공약’에서 구·시·군의 장을 선택하면 현 당선인들의 선거 공보, 선거공약서, 5대 공약이 뜬다. 특히 5대 공약의 경우 해당 당선인이 중점적으로 이행해 나가겠다는 것이기에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공약 이행 상황 확인,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되고 나아가 정책선거로의 길이 출발한다. 이를 통해 모두가 언제나 주인인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강동협 | 부산 사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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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만 나오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테러 발생률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의 이유는 다양하다. 과거 테러는 주로 정치적·종교적 이익을 위해 특정인이나 단체 등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현재는 민간인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져 목표가 광범위하고 이유 없는 테러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더 이상 우리나라도 테러 안전국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경찰, 군인 등 해당 기관에만 테러 해결을 일임할 게 아니고, 국민들의 경각심이 크게 요구되고 있다. 대테러에 관한 행동요령 숙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다중이용시설은 테러리스트들이 테러 목표로 삼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만약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던 중 누군가의 이상 행동을 보거나 느낌을 받는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하는 안전불감증을 보여선 안된다. 평소 대피소 및 비상구를 파악해두어야 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위기 상황을 느끼면 그 즉시 112나 관계기관에 신고하는 것이다. 이때 정확한 위치, 피해상황, 현장 분위기 등을 구체적으로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의심 물체나 의심 차량을 발견했다면 절대 손대지 말고 신속하게 대피해야 하며, 엘리베이터 사용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또한 폭발물이 폭발하는 경우라면 즉시 바닥에 엎드리거나 양팔과 팔꿈치를 붙여 가슴을 보호하는 동시에, 귀와 머리를 손으로 감싸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 다음 연속적인 폭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 대기한 후 폭발물의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

<이재훈 | 장흥경찰서 정보경비계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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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은 이들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실시간 온라인으로 본다지만, 나는 아직도 오후 8시 혹은 9시 메인 타임에 TV와 마주하면서 하루 뉴스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하지만 이 여유 속에서도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의 젠더배열 내지 젠더역할을 바라보기가 많이 불편하다. 대개 메인 타임의 뉴스에는 남성과 여성 두 명의 앵커가 등장하여 남성은 좌, 여성은 우에 배치하는 게 하도 고정돼 있어서 공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글을 읽고 쓰는 문화대로 왼편에 남성을 앉히는 것이다.

이런 배치 공식을 깬 것만으로도 신선함을 제공하는 뉴스채널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젠더배열의 전복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물론 정오 혹은 자정뉴스 등 여성앵커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남녀가 함께 나올 때는 남성 먼저 여성 나중의 배열로 앉힌다. 그 다음 공식은 남성이 연장자거나 경력이 많은 앵커라면, 여성은 보다 젊은 후배 앵커라는 오래된 제2 공식이 있다. 그러다보니, 그날의 헤드(첫머리)뉴스는 남성앵커 차지이고 여성앵커는 그것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 제3 공식이다. 어떤 날은 카메라가 한 번도 잡아 주지 않아서 여성앵커가 과연 옆에 앉아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긴 시간을 남성앵커 혼자 주요 뉴스를 진행한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뉴스 관심을 상당히 소진시킬 즈음, 여성앵커가 참을성 있게 등장하여 중요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생활과 관련되거나, ‘여성 문제’ 뉴스 등을 보도한다. 이것이 제4 공식이다. 토론이라도 있다면 거의 남성앵커들의 독무대가 되곤 한다. 여성앵커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가. 지난 6월 지방선거 때도 한 ‘진보적’ 뉴스 프로그램 선거 방송에서 남성들의 주도 속에서 여성앵커의 안타까운 모습이 재현된 적이 있었다. 질문이나 토론의 틈새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여성앵커는 이후 주말뉴스에서 사라졌다. 나를 포함한 여러 시청자들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여성주의 인류학에서는 ‘여성의 교환’이라는 논설이 있다. 이 논설에 따르면,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만이 있고 여자는 교환의 대상이다. 결혼에서 여성은 고구마(신부비용)와 교환되고, 여성은 다른 친족체계로 이동한다. 가족뿐 아니라 법, 정치, 국가와 같은 공적제도 역시 운영하는 자는 남성들이고 여성들은 혜택을 받거나 혹은 받지 못하는 대상들이라는 것. 위에서 말한 ‘공식들’에서, 여성앵커들의 짧은 수명에서, 여성들의 경력, 경륜, 감각은 보잘것없는 것 같아서 나는 서글프게도 여성의 교환론을 떠올리게 된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뿐 아니라 공정성과 공공성, 차별금지의 의무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를 감시하고 실현하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 등을 두었고 그 심의사항에는 인권존중, 양성평등 등이 포함돼 있어 그 역할이 기대된다.

합리성 없이 특정 집단 사람들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이라 한다면, 현재 TV뉴스에서 보여주는 여성역할 배치는 연령, 외모 등이 성별과 교차하여 빚어내는 ‘복합차별’이며, 그 관행이 매우 친근해서 차별로 보이지조차 않는 ‘구조적 차별’이라 할 것이다. 혹자는 이런 대우는 의도적이지 않은 것이고, 그 효과도 치명적이지 않은 ‘먼지’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차별효과가 있다면 관행이라도 차별은 정당화되지 않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평생 매일 먼지를 마시면 폐가 온전키 어렵다고 답하고 싶다.

한국에서 언론과 방송은 오락과 여가, 그리고 다양한 교육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보도를 담당하는 뉴스방송 메시지는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깊은 곳까지 가 닿는다고 본다. 지금은 2018년, 이미 대학진학률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없어졌고, 각종 국가고시와 언론고시에서 여성들이 약진한 지 오래다. 그런데 그 많은 능력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8시 메인 뉴스에서 중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앵커들을 보고 싶다. 젠더평등을 가르치기 전에, 여성이 남성과 함께 있어도 여성이 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래 세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여여, 남남의 동성 앵커들이 함께 진행하는 방송도 보고 싶다(독일 Deutsche Welle에서처럼). 임신한 앵커와 안경 쓴 여성앵커, 그리고 외모와 무관한 여성앵커들이 자기 몸을 울리면서(肉聲) 말하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고 싶다. 이렇게 굳어진 공식을 깬다면, 어쩐지 방송에서 맑은 공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 정신적 폐가 지쳐버린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것을 호흡하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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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한 판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먼 이국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와 후손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확정 판결이 5년이나 미뤄진 것은 유감스럽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판결의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원합의체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임을 전제로 내려진 일본 판결은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2012년 이 사건 첫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제1부도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또 다른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있는지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주권국가로서 지극히 온당한 결론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이다. 2012년 대법원이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이듬해 서울고법은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고 측의 재상고 이후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를 미뤘다. 그사이 피해자 4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선고공판에 나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씨(94)는 “혼자라 슬프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심리 지연 배경은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꾼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뒤늦게 결론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이 사건은 사법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은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속죄해야 옳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강제징용 손배 소송을 심리 중인 법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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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하는 대법원 판결로 한·일관계에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1965년 국교정상화와 양국관계의 근간인 한일청구권협정 및 한일기본조약의 취지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했고, 고노 다로 외무상도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저부터 뒤엎는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일본 정부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사법부 판단이지만 한국이 또다시 ‘과거사의 골대를 옮겼다’고 여길 소지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청구권 교섭과정을 검토한 결과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결론지었고 이후 정부는 이를 유지해왔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파기’ 논란이 일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한국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약속을 뒤집는다’는 비판을 들을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거론하면서 국제 여론전을 펼칠 경우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일본 내에서 또다시 ‘혐한’ 분위기가 고조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게 된 셈이지만 딱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판결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면서도 한·일관계가 외교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총리가 이날 담화에서 “제반 요소를 종합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악화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도 장애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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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고 정부의 사립유치원 대책에 대해 논의했으나 휴업 등 집단행동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육대란’의 우려가 사라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회계비리는 제도 미비 탓”이며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면서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정부의 사립유치원 대책 추진에 난관이 예상된다.

한유총의 토론회가 열린 30일은 유아교육 관련 정부부처, 기관, 시민단체 모두가 숨가쁘게 움직인 하루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전 보건복지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 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치원·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관계부처 간담회를 열고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유총의 토론회에서 집단휴업 등을 논의할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는 경고였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날 유치원 비리근절 토론회를 집단행동으로 파행시킨 혐의를 들어 한유총을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에 한유총은 회원 4000여명을 동원한 가운데 정부의 대책을 성토했다.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종합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사립유치원과 관련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비공개로 진행된 한유총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유치원 비리 대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때 집단휴업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토론회 직후 한유총은 집단행동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한유총은 지난 11일 사립유치원 비리가 폭로된 이후 비리 척결 노력을 하기보다는 정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노력에 어깃장을 놓아 왔다. 유치원 회계 투명화를 위한 ‘에듀파인’ 도입을 반대하고 유치원의 사유재산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유치원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심지어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를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한유총은 전체 사립유치원의 70%인 3200여곳을 회원으로 둔 전국 최대 유치원 단체다. 한유총이 ‘집단휴업’ 카드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극한상황은 피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부도 사립유치원 비리 대응이 적절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립유치원 적폐에는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비리는 엄단해야 하지만, 유아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온 사립유치원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사립유치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면 유치원 정상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유총도 집단이기주의만 고집하지 말고 유치원 공공성 강화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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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장래에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을 초등학생 시절 친구 사이에서 종종 주고받았다. 휴전 직후라서 어쩌다 얻어걸린 미군의 ‘레이션 박스’에 들어 있던 껌과 초콜릿의 맛과 향기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 우리 사이에서는 미국이 장래에 살고 싶은 나라 중 단연 첫째로 꼽혔다. 세계지리에 대한 상식이 좀 늘면서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스위스에 대한 동경심도 생겨났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1980년대 중반, 나는 가족과 함께 휴가차 스위스를 찾았다. 마침 제자였던 독일인 여학생이 스위스인 남성과 결혼해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외국인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인 분위기 때문에 먼저 사투리인 ‘스위스식’ 독일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충에 대해서도 들었다. 스위스의 금융시장은 옛날부터 순전히 장물취득장이며 러시아 마피아의 돈과 제3세계의 피 묻은 돈이 들어 있다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자기 나라 스위스를 향한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 동경했던 그 스위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피하고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속성들을 추출해서 사회의 구조와 기능을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구성한다. 그러나 모델을 구성하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객관적인 모델은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릴 때 선망했던 미국을 나는 1970년대 중엽에야 처음으로 찾았다. 역시 땅도 넓고 물자도 풍부하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비교적 자주 미국의 여러 곳을 방문하거나 체류했다. 그러면 미국은 무엇인가? 1830년대 혼란스러웠던 유럽을 떠나 미국을 돌아본 프랑스의 외교관 알렉시 드 토크빌이 남긴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는 부를 추구하는 지나친 욕망을 사회적인 위험으로 여기는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개인주의적 자유가 사회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은 후에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애초부터 다른 국가와 다르다는 ‘미국 예외주의’의 이론적인 근거도 제공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다른 사회나 국가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으로만 이해되면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전용물이 되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의 등장 이후에 미국 보수주의의 중요한 싱크탱크의 하나인 ‘후버연구소’가 펴낸 <새 시대의 미국 예외주의>도 미국 사회가 비록 완전치는 못해도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시대를 확실히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놈 촘스키는 헤게모니를 지향하는 제국은 모두 예외주의를 표방했기에 미국 예외주의도 결코 ‘예외’는 아니라고 지적, 이 개념이 전제하는 미국은 항상 옳다는 신화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비서양사회에서 최초로 산업사회 진입에 성공, 제국주의 길을 걸었다가 패망했다. 그러나 미국의 엄호하에 195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을 누리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인론’이나 ‘일본문화론’은 미국과 서유럽과 다른 일본 사회의 ‘독특성’에서 성공비결을 찾았다. 1967년 여름 서독 유학길에 나의 출생지인 도쿄에 들렀다. 가난과 독재에 찌들었던 서울의 분위기와 달리 모든 것이 정돈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로 나는 친·인척이 많이 살고 있는 일본을 자주 찾았다.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유류파동을 비교적 빨리 극복한 일본은 1980년대에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일본모델’은 전통적인 하청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 등의 ‘주변부’와 현대적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남성 노동자 등의 ‘핵심부’를 우선 분리시키고, 이로 인해 생긴 긴장과 갈등을 기업가족주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나 국가주의 등을 매개로 봉합하는 모델이었다. 자주 노동쟁의를 벌이는 자국의 노동자를 향해 ‘일본 노동자에게서 배우라’고 훈계했지만, 정작 ‘일본모델’을 미국이나 유럽이 도입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거품경제의 위기에 이은 ‘잃어버린 20년’은 일본모델을 사회과학의 논의에서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일본모델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도 자주 언급되었으나 경제규모가 우선 일본보다 작고, 미국과 지구적 패권을 겨루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인해 이에 대한 관심도 역시 시들해졌다.

여기서 나는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로서 헤겔철학의 전문가였고 ‘유럽경제공동체’의 고위관리였던 알렉상드르 코제브(1902~1968)가 ‘탈역사’의 땅으로 지목했던 두 나라, 미국과 일본의 현주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미국의 풍요한 소비생활이 주는 쾌적함, 전통가면극 ‘노(能)’와 ‘이케바나’가 보여주듯이 내용보다 규범화된 형식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의 조화와 안정은 생존투쟁의 무대인 ‘역사’를 벗어나게 했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시 그의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속시킨 불평등, 일본은 ‘후쿠시마’가 불러온 악령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화가 칸딘스키의 조카였던 코제브가 야스퍼스의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나도 그 후에 찾았고, 그때로부터 어언 반세기 넘게 독일생활을 하고 있다.

이른바 ‘독일모델’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할 즈음에 내가 찾았던 서독은 철저한 시장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이나 재벌과 관료체제가 결합된 이익집단 중심으로 운용되었던 일본과 달랐다. 시장과 사회적 화해 가운데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는가에 따른 정책적 갈등은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사회적 연대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통일 이후에도 추구되었고 2009년 말에 발효된 ‘리스본협정’에서도 유럽연합이 지향하는 목표의 하나로서 명기되었다.

‘라인강 자본주의’라고도 불린 사회적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이룩한 번영과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은 누구보다도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미래의 한반도를 위한 한 ‘대안’으로서 독일을 현지에서 배우겠다는 국내의 학자와 정치인 수도 많이 늘었다. 주로 미국과 일본에 경도된 우리의 지식세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배움은 그저 남을 따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건설하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교육은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갈릴레이의 말처럼 사회모델의 구성도 결국 그러한 도움을 주는 수단이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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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모든 이동수단은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의 조작과 운전에 의해 작동한다. 하지만 승강기는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돼 특정인이 아닌 기계장치로 작동하고, 남녀노소 불특정 다수가 상시적으로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안전이 더욱 강조된다.

보유 대수 66만여대로 세계 8위, 연간 신규 설치 대수 4만대 이상으로 세계 3위. 대한민국 승강기 산업의 현주소다. 승강기가 늘어나고 이용객이 많아지면서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승강기 안전사고는 2012년 133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행히 이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13년 88건, 2014년 71건, 2015년 61건, 2016년 44건, 지난해 27건으로 줄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승강기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건물에 설치할 때부터 폐기할 때까지 주요 고장과 사고는 물론 부품교체까지 모든 이력을 국가승강기정보시스템을 통해 관리한다. 안전관리 측면에서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승강기 이용 문화는 이에 미치지 못해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승강기 사고를 원인별로 분석하면 이용자 과실이 가장 많다. 지난해 발생한 27건의 사고도 이용자 과실이 13건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무리 정책과 시스템이 완비돼 있다고 해도 이용자들의 안전의식 수준이 따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안전의식 부재에서 비롯된다.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나 하나쯤 어겨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불러온다.

승강기는 3만개가 넘는 부품들을 현장에서 조립, 설치해 완성품이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 기술을 도입한 첨단 승강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몇몇 나라에서는 경쟁적으로 우주엘리베이터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머지않아 우주선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승강기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2018년 한국국제승강기엑스포’가 11월14일부터 16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주관하는 엑스포는 세계 16개국 160여개 승강기 업체가 참여해 첨단 승강기 기술의 향연을 펼친다.

특히 한국국제승강기엑스포는 승강기 산업에 안전을 접목해 미래형 승강기 산업과 이용객들의 안전이 조화를 이룬 엑스포로 열린다. 또 아시아·태평양승강기협의회 총회와 해외전문가 초청 세미나 등 다양한 국제콘퍼런스가 함께 열려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승강기 전문가들이 대거 엑스포장을 찾는다. 무엇보다 올 엑스포는 ‘승강기 안전 주간’에 열려 승강기 산업과 더불어 승강기 안전을 위한 행사도 마련된다. 엑스포가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국내 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선진 안전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영기 |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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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경하고 온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남대문에 대해 더 잘 안다.”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년 전까지 흔히 돌아다니던 속담이다. 얼핏 보는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속담은 들어서 얻은 정보가 진실인 줄 알고 우기는 사람을 조롱할 때 쓰던 것이다.

인류가 문자 생활을 시작한 지 수천 년이 흘렀지만, 문자 해독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수가 된 지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에게 장거리 여행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장에 가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 일도 17세기 이후에야 가능했다. 200년 전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난 사람은 현대인이 하루에 만나는 사람보다도 적었다. 문자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닫힌 세계’에서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방법은 듣는 것밖에 없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래서 옛날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들은 이야기, 즉 소문(所聞)으로 유통되었다.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과장과 왜곡을 피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이치를 익히 알았기에, 새로 들은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얘기를 들려준 뒤 그 말을 믿으면 바보로 낙인찍어 놀리는 것은 인류의 보편문화였다.

국가권력이 법령이나 정령을 문서로 만들어 공포하는 일은 고대부터 있었으나,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모은 인쇄물이 유포된 것은 15세기 활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였다. 뉴스라는 말이 생긴 것은 17세기 중엽인데, 새로 일어난 사건들이나 새로 밝혀진 사실들이라는 의미보다는 새로 떠도는 소문들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이 뉴스레터나 뉴스페이퍼를 ‘새로 떠도는 소문을 적은 종이’라는 뜻의 신문지(新聞紙)로 번역한 것은 적절했다. 신문은 솔직한 작명(作名)이었으나, 놀라운 마력을 발휘했다. 소문을 귀로 듣는 대신 눈으로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사건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1883년 7월15일, 조선 정부는 통리아문 산하에 박문국을 설치하고 이노우에 가쿠고로 등 일본인 7명을 초빙해 근대적 신문 발간 준비에 착수했다. 같은 해 10월1일 관보와 논설, 국내외 새 소문을 모은 ‘한성순보’ 첫 호가 발행되었다.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던 한성순보는 1884년 갑신정변으로 박문국 시설이 소실됨으로써 일단 종간되었다. 박문국이 재건되어서 신문을 속간한 것은 1886년, 발행 간격을 주 1회로 단축하고 제호도 ‘한성주보’로 변경했다. 그런데 1880년대 초 조선 정부가 의욕적으로 설립했던 신문물 도입 기관들이 대개 그랬던 것처럼, 박문국 역시 재원을 조달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성주보는 운영비 일부를 보충할 목적으로 1886년 2월22일자 제4호의 두 개 면을 독일 상사 세창양행에 내주었다. 해당 지면에는 “덕상(德商) 세창양행 고백”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실렸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였다. 당시에는 정부도 독자도, 심지어 광고를 낸 세창양행도, 자본이 세상에 떠도는 소문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돈을 받고 지면을 팔았음에도 한성주보는 곧 폐간되었다.

1896년 4월7일, ‘신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신문, ‘독립신문’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여기에는 사고(社告) 외에 여섯 건의 상업 광고가 실렸다. 그중 하나인 주지회사의 광고 문안은 “각색 외국 상등 물건을 파는데 값도 비싸지 아니하더라. 각색 담배와 다른 물건이 많이 있더라”였다. 자기 상점을 소개하면서 마치 남의 얘기를 전하듯 “~하더라”체를 썼다. 그런데 당시 기사는 모두 소문을 옮겨 적은 것이었기 때문에 “~하더라”체가 바로 기사체였다. 신문 광고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기사로 변장하는 술수를 부렸던 셈이다.

광고료가 신문의 주된 수입원이 됨에 따라, 광고는 신문 지면의 핵심 구성요소가 됐다. 신문사들은 광고를 지면 하단에 배치하여 기사와 구별했으나, 이 원칙은 자주 무시되었다. 광고는 계속 기사 흉내를 냈고, 기사보다 더 눈에 잘 띄기 위한 수법들을 개발했다. 그림과 사진을 활용한 것은 기사보다 광고가 먼저였다. 지면 상단의 ‘전면광고’라는 작은 글자를 보지 않고서는 기사와 구별할 수 없는 광고들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광고가 기사를 흉내 냈을 뿐 아니라, 기사도 광고를 닮아갔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뉴스 기사가 ‘사실상의 광고’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가짜뉴스 단속 방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팟캐스트,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가짜뉴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골칫거리다. 역사상 국가권력이 가짜뉴스, 헛소문, 유언비어와 싸우지 않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이긴 적도 거의 없다. 당장 가짜뉴스의 정의(定義)가 문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알리는 것뿐 아니라 사실과 사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왜곡하는 것도 가짜뉴스다.

새벽 3시의 간장게장 골목 사진을 싣고는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자영업이 망해간다’고 쓴 기사나, 최저임금 인상 전에 촬영을 완료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 실패를 두고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영화산업이 망한다’고 쓴 기사도, 다 악의로 가득 찬 가짜뉴스다. 이런 가짜뉴스들이 나름대로 공신력을 확보한 매체들에 버젓이 실리는데, 무슨 수로 다 단속할 수 있겠는가? 신문과 방송이 대중을 계몽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대중 스스로 ‘각성한 상태’로 사는 수밖에 없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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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의 서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는 그림자와 영혼에 관한 여러 가지 우화가 등장한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이며 영혼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이다. 개중 나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는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떠올렸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위트 앤 시니컬은 나에게 장소를 갖게 만들어주었다. 처음 서점에 발을 들이던 순간, 나는 그 공간이 나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느꼈다.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껴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시집을 사고파는 서점을 넘어서, 책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 낭독의 즐거움과 독서의 기쁨을 얻는 장소였다. 무엇보다 시를 읽음으로써 무용한 것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위트 앤 시니컬이 문을 닫는다. 2016년 여름에 문을 연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였지만, 기꺼이 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을 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실감했다. 시집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 좋았다. 시집들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서가 앞에 서서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우연히 동료 시인들을 만나면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쩌다 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돌이켜보면 위트 앤 시니컬은 손님이라기보다는 독자, 아니 친구를 만나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자신이 사람이라고, 그 장소에 속해 있다고, 비로소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소비 이상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장소를 채우는 것은 기둥과 테이블, 의자, 책 등의 물질이지만 비가시적인 것들이 ‘순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시집을 고를 때 떨리는 손끝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매번 각자의 그림자를 끌고 와서 영혼이 충만해져서 돌아갔다.

위트 앤 시니컬이 다시 문을 연다. 신촌 생활이 끝나고 혜화동 생활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이 문득 떠올랐다. 시의 끝부분을 다시 읽는다.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는 누군가 때문에 끝은 마침내 시작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구름이 흘러가고 나면, 다음 시가 쓰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난 후의 나는 그것을 읽기 전의 나와 달라져 있었다. 그것을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그림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영혼이다. 위트 앤 시니컬이 어딘가에서 계속 운영된다는 것은 내게 영혼을 위로할 장소가 ‘아직’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장소에서 나는 그림자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닌 사람임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환대를 넘어 내가 나 자신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시인 허연 형의 문자를 받았다. 형은 문자 메시지의 마지막에 늘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바빠도 영혼 잘 지키고.” 영혼을 지키기 위해 나는 위트 앤 시니컬에 간다. 공사가 한창인 혜화동 현장에는 다음과 같은 배너가 걸려 있다. “1953년에 설립된 동양서림이 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점을 꿈꾸며 새로운 모습을 준비합니다.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30년 이상, 나는 영혼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백년이라니, 말만 들어도 벅차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거기 있다고 해서 절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장소가, 환대가,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끝이 그저 끝이 아니기 위한 노력, 끝끝내 끝을 시작으로 이어 붙이는 마음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다시 벅차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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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 남에 대한 악의 섞인 말은 더욱 그렇다. 한 사람이 남에 대한 말을 할 때, 그 말을 하는 자신과 말을 듣는 사람, 그 말의 대상에게 다 피해를 준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어릴 때 가정과 학교에서 이런 도덕적인 언행에 대해 배우며 자랐고 부모나 교사로서 현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학교 밖이나 안에서 말로 한 사람을 파괴하고 상처 주는 일은 너무 흔하다. “이거 내가 들은 말인데”라며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말이 한 사람 건너 전해지는 순간 그 말은 한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도구가 된다. 

한 보육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신고돼 해당 학부모와 교사가 대화해 사과를 하고 오해를 푼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인터넷 카페에 아동학대한 교사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하면서 교사의 신상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됐다. 해당 교사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직접적으로 모욕적인 일도 겪었다고 한다. 문제가 있으면 당사자들이 적절한 절차를 밟아서 사실관계를 충분히 조사하고 처리하면 될 일이다. 전후 맥락을 생략한 일방적인 시각의 자극적인 글이 인터넷에 오르면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가십거리만 남는다. 한 개인에 대한 비방과 인권침해가 난무한다. 가장 실망스럽고 놀라운 건 특정인의 인격을 무참히 파괴하는 글과 댓글이 달려도 미성년이 아닌 성인들이 있는 그 공간에서 그 상황이 정당한지에 대해 다수가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헤나라는 십대 소녀는 학생들이 만든 소문으로 시작된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아무도 소문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고 헤나에게 공감하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학교에서 전해들은 말로 특정 학생에 대해 비방하고 저격하는 사이버 불링이 일어난다. 설령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당사자 간 해결할 일을 공개적인 모욕을 주기 위해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는 폭력이다. 이럴 때 교사는 가해학생을 불러 일단 가르친다.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이 느꼈을 불안과 상처에 대해 직면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학생이라도 책임져야 할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 미안함, 부끄러움을 느끼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그래도 교사는 계속 학생들이 깨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악의적인 설화에 휩싸인 사람이 겪었을 고통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별일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주변 반응을 접하기도 한다. 자신이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사자는 발이 닿지 않는 늪에 빠진 것같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 같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일일이 이해를 구해야 하는 절박함과 불안을 느낀다.

다신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충분한 정보 없이 쉽게 재단하고 공분하는 문화에서 피해자는 늘 생긴다. 성인들도 이럴진대 학생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균형 잡힌 시각으로 판단하는 엄밀함과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인권감수성이 절실하다. 또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아동복지법이 교사의 흠결을 찾아 공격하는 데 악용되는 현실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에 대한 돌아봄이 필요하다. 학부모와 교사는 자녀와 학생의 성장을 돕는 협업 관계이지 적대 관계가 아니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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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를 많은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살려면 개고생쯤은 참아야 한다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 속담의 본디 뜻은 천하고 힘들게 벌더라도 쓸 때는 훌륭하고 값지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들이 분풀이 욕설에 발길질 당하고도 다시 꼬리쳐 밥 얻어먹듯, 간·쓸개 다 빼놓고 오만 꼴 참아가며 모으고 아끼고 잘 굴려 수십억, 수백억원 자산가가 됩니다. 이 중 다수는 돈의 노예로 전락해 더욱 탐욕스레 돈만 긁어모으겠지만, 모을 만큼 모았으니 이제부터는 베풀고 살련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자가 바로 정승같이 쓰는 분들이지요.

역사적으로도 이런 분들이 꽤 계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 중후기 최고의 부자, 경주 최부잣집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는데 이 집안은 무려 12대나 갑니다. 그 비결은 베풂에 있었습니다. 가훈이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고위직은 탐하지 말라),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등등입니다. 소작으로 들어온 돈의 3분의 1은 빈민구제에 쓰고, 어느 심한 흉년엔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채무자들의 담보문서를 불사르는 결행까지 보입니다. 이렇듯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까닭에 고작 진사 벼슬들만 했어도 최부잣집은 대대로 정승 같은 존경을 받았지요.

얼마 전 과일 팔아 모으고 임대업으로 굴려 만든 수백억원을 학교재단에 기부한 노부부가 화제였습니다. 안정적으로 오래 장사하라고 임대료도 가급적 안 올렸다지요. 돈 있다고 갑질하고 탈세로 상속하는 갑부, 부귀에 공명이라고 정승 노릇까지 해보려 뛰어드는 자, 있는 돈 폼 나게 써보자는 이들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베풀 줄 모르는 자는 가난뱅이만 못한 헌털뱅이입니다. 돈만 많으면 3대에 개털 되고 덕도 많으면 누대에 정승이라고, 속담은 오래도록 말합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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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온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처참하게도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를 알리는 뉴스에 누군가는 교통체증이 먼저 떠오르고, 누군가는 ‘귀족노조’ 운운하며 쥐어박는 소리를 할 뿐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이 문제들은 잠시만 헤아려봐도 우리네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출근길에 들리는 커피숍이나 만원에 4개짜리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편의점의 알바생, 택배를 챙겨주는 경비원, 귀갓길을 동행한 대리기사…. 우리는 이들이 나와 내 가족, 내 아이의 현실이며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때론 그들을 향해 냉담함과 오만함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사회가 잘못을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다음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비정규직 19살 김군의 죽음이 그랬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진 김군 가방에서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급히 끼니를 때우려 했을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제야 세상은 김군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받아들였고,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자 청년 정규직들이 집단 반발했다. 정규직 전환에 ‘합리적 차이’를 두기로 하면서 지난달에야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발은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도 정규직 교사들과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입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고용 특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취업절벽 시대에 채용비리 문제는 일자리 ‘도둑질’로 받아들여져 국민 공분을 일으킬 사안이다.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상징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뿌리뽑아야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자체를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교통공사의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청년들은 다시 묻는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약자는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에는 입사 시험이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자신들과 달리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이 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 법도 하다. 비정규직은 어떤가. 그들은 이 사회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출발선을 기준으로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을 그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부 정규직들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차별만 없앨 수 있을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불안에서 출발한다. 비정규직과 차별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라고 했다. 이는 고용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노동의 비애를 얘기한다. 밥벌이를 위해 낚싯바늘을 삼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차별을 없애고,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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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요란하던 빛이 어둠한테 지고, 세상의 모든 사물도 웅크린 짐승처럼 하나로 묶이기 시작하는 저녁이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물먹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김종삼). 저물다는 말이 참 좋다. 날이 저문다, 라고 말하면 고단했던 하루가 묵직하게 섬돌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다. 사방에서는 꽃도 이미 열매로 저물어 버렸다.

서두르긴 했지만 조령산 깃대봉에 올랐다가 새재 뒤편으로 내려올 땐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준다는 문경의 단풍이 몹시 푸짐했다. 아찔하기도 하지만 무섭도록 아름다운 바위들. 그 한쪽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선 꽃들이 있다. 참으로 갸륵하게 끌어모은 흙무더기마다 꽃이 꽂혀 있다. 저물어가는 이 계절을 담당하는 가는잎향유다. 꽃은 한두 송이가 아니라 길 떠나는 가족처럼 우르르 떼지어 피었다. 모든 꽃들이 훌쩍 사라진 때, 조금 고즈넉한 곳에서 가는잎향유를 보는데 옛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마지막 수업종이 울리면 필통과 공책을 부리나케 책보에 쌌다. 오늘은 우리 동네 ‘회치’가 있는 날이다. 마을 뒷산의 큰 느티나무 그늘에 어른들이 솥을 걸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바위인 ‘내리방석’에서 돼지를 굴러 떨어뜨린다고 했다. 송아지처럼 씩씩거리고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가 채 씹지도 않은 채 넘긴 돼지고기 몇 점. 굵은 소금에 찍지 않아도 단맛이 펄펄 입안에서 장구를 쳤다. 지나간 일은 지금으로부터 옛날로 멀어진 게 아니었다. 앞에서부터 이렇게 불시에 찾아든다. 아직도 안 잊히는 그날의 술렁술렁한 풍경들.

‘가는잎’은 잎이 어디로 간다는 건 아니고 그야말로 가늘다는 뜻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저물어가는 가을에 가는잎향유를 만나려니 그런 뜻만 실리는 건 아니었다. 봄이라는 글자에는 꽃을 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가을에는 어디로 간다는 동작이 마음껏 포함되어 있는 것.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가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흔들리는 가는잎향유 앞에서 송아지처럼 느리고 길게 울고 싶어졌다. 가는잎향유,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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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