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서명해줘요.” 몇 달 전 주말 아침, 집주인이 문을 두드리며 서명을 요청했다.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는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단호하고 분명한 이유 앞에 동거인의 난처한 음성이 들린다. “아, 그러니까… 저는 의견이 다른데요.” 집주인은 의아하다는 듯 재차 생명의 소중함을 설득하다 포기한다. 우물쭈물 거절하는 파트너가 답답해 뛰쳐나가려는데 몇 가지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세입자에 대한 집주인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싶지는 않았다. 안정된 주거에서 안심하고 살 권리와 낙태죄 폐지가 이렇게 맞닥뜨릴 줄이야…. 법적 혼인 여부, 성 경험, 낙태 경험 등을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내 마음엔 불안이 지펴진다.

봄알람, 페미당당, Women on Web 주최로 8월 26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낙태죄 페지에 찬성하는 125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김영민 기자

소중하다는 그 생명은 어떤 생명일까?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립되는 문제로 판단하며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 국가 발전을 위해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으로 피임과 불임 문제에 개입해왔다. 여성이 선택권을 행사해온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익을 위해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가치는 장애인을 비경제적인 인구로 구분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14조 1항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는 장애인의 낙태를 허용하는 근거조항이 되어 여전히 재생산 권리를 통제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은 출산 등록 자체가 어려워 미등록 이주아동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은 채 철저히 제도 밖에 놓여 있다. 미성숙한 존재로 성적 권리를 통제당하는 10대의 임신과 출산은 사회문제화되면서 보수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낙후된 정책으로 이어져왔다. 정상가족 중심의 입양과 출산·양육 정책에서 성소수자, 한부모 가족, 비혼모는 차별을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의 다자녀 출산은 무책임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재생산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잉태와 탄생이고, 낙태는 이를 거스른다고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재생산은 이미 산업화된 의료기술 시장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산전검사, 선택적 임신 같은 의료기술은 장애아를 감별해 태어날 가치가 있는 건강하고 좋은 생명을 ‘선택’하도록 부추긴다. 형법 269조는 낙태의 죄를 여성에게 물음으로써 재생산을 통제해온 국가와 의료권력, 젠더권력, 사회경제적 불평등, 성적 규범, 정상성 등과의 공모를 감춘다.

9월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절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9월29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주최한 낙태죄 폐지 퍼포먼스에 3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함께 활동하는 장애여성 동료들과 퍼포먼스에 참여하면서 형법의 낙태죄 폐지와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이 장애인과 모두의 재생산 권리를 위한 일임을 외쳤다. 어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경합을 멈추고, 국가는 국가 발전과 인구 관리라는 명목으로 여성과 수많은 소수자의 성적 권리를 통제해온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낙태죄 폐지는 생명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생명과 존엄한 삶을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고 있는지를 묻는 정의로운 싸움이다. 형법 269조, 낙태죄를 폐지하라.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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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추석이 지나갔지만 아직 곳곳에 ‘여운’이 남아 있다. 우리집부터 그렇다. 결혼 22년차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추석날 시댁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2년 전 둘째가 추석 전날 태어난 덕분에 한 번 빠진 적이 있고, 추석 당일 회사 당직을 마치고 저녁에 간 일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처음 있는 일이다.

연휴가 끝난 후 출근해 명절 인사를 나누다가 슬쩍 “시댁에 안 갔다”고 하자 부서 선후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들 궁금증과 우려의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동안 겪은 수많은 감정들과 답답함, 혼자 되뇐 자기긍정과 부정, 체념과 해탈까지 이 복잡한 것들의 요체가 빚어낸 22년 만의 행동을 몇 마디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올해 추석을 기점으로 사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점이다. 추석 무렵이 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집집마다 달라진 풍경이 비춰졌다. ‘올해 80세 된 아버지가 차례(제사)를 없애고 함께 여행가자고 제안하셨다’ ‘1주일 앞당겨 간단히 성묘하고 연휴 때는 각자 쉬기로 했다’ ‘시어머니가 차례 중단을 선언하셨다’ 등등. 과거 지인의 지인 경우로 금싸라기처럼 전해진 이야기들이 평범한 집안들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소개한 웹툰 작가 ‘서늘한 여름밤’이 주최한 ‘제사 가지 말고 나랑 놀자’ 모임도 눈길을 끌었다. 전통제례 전문가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대개는 추석 차례상의 바른 의미와 그에 따른 간소화의 필요성, 기제사로 잘못 변형된 문제점,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해온 가부장제의 부당함 등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중 특히 “예(禮)란 언어와 같아서 사람들과 소통하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고 만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의 행동은 최근 분위기에 용기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추석 전날, 시댁에서 차례음식 준비를 마치고 분위기를 살피며 얘기를 꺼냈다. “글쎄, 퇴계 이황 17대 종손도 차례를 안 지낸대요. 어른들 모시고 가족이랑 놀러간다고요!!” “전문가들(예를 들면, 성균관 전례위원장)에 따르면 차례는 추석이나 설날에 차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로 기제사와는 달라서 간단히 차와 과일만 올려도 된다니깐요. 우리집처럼 기제사도 밤 12시에 지내는 집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냐고요….”

언제나처럼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 중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저 좋자고 하는 말 아니에요. 어머님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자식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하셔야죠.”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말씀하셨다. “나 있을 때까지 이렇게 할 테니, 나중에 좋을 대로 해라. 앞으로 몇 년을 더 한다고.”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이때 눈치 없이 타이밍을 못 맞춘 남편이 기름을 부었다. “애엄마는 내일 큰애 밥주고 학원에 데려다준 다음 늦게 올 거야(차례상은 못 차리고 설거지하러 온다는 얘기).” 이후 상황은 생략. 추석날 시댁에 가지 않은 것은 전날의 생략된 상황에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엔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센 진통제를 먹고 억지로 갔지만 올핸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내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벽에 악몽까지 꿨다. 양쪽 어깨와 다리까지 수술하고도 맏며느리로 50여년을 제사와 명절 음식을 장만하시는 어머니가 같은 여성으로서 애처로웠다. 누구보다 희생하였으면서도 시대가 바뀌어 변화의 대상이 된 듯한 처지가 죄송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집스러운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난 왜 이렇게 용기가 없나, 당당하지 못할까, 차라리 약 먹고 빨리 갈까….’ 나중엔 돌아가신 친정 부모로 빙의해 “맏며느리인데 어서 가라” “아픈데 가지 마라” 혼자서 널뛰기를 했다. 시간은 흘렀고 점심때가 돼서야 내적 갈등을 끝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사 가지 말고 나랑 놀자’ 모임에 취재라도 갈 것을. 며칠 후 모임 후기를 찾아봤다. 주최자도 놀랐을 만큼 신청자가 몰렸고, 사는 곳과 하는 일이 제각각인 20~40대의 여성들이 추석날 모여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내년도 기약하면서.

추석이 1주일 지났지만 남편과는 그날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그만큼 ‘뒤끝’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추석 여성들의 반란에 (남자)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은 큰 흐름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 자체가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사라지고 있고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도련님’ 등 성차별적인 호칭 문제도 분출되지 않았나. 방향이 맞고 사회현상이 된 만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며느리들이 속좁…(이하 생략).” 시작은 좋았던 남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부디 내년엔 우리 모두 본질에 더 다가서 있기를.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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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녀가 물랑을 잡고 있다

한쪽에 나무

한쪽에 노을

발목에서 시작

소녀와 소녀 사이에서 소녀가 뛴다

물랑에 걸려 소녀가 사라진다

소녀와 나무가 물랑을 잡는다

무릎에서 가랑이로 올라가는 물랑

소녀와 나무 사이에서 소녀가 뛴다

물랑에 걸려 소녀가 사라진다

혼자 남은 소녀

나무와 노을이 물랑을 잡는다

허리에서 겨드랑이로 올라가는 물랑

소녀는 나무와 노을 사이에서 뛴다

까르르

물랑에 걸려 소녀가

신영배(197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릴 적에 고무줄을 발목에 걸어 넘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길게 늘인 고무줄을 노래에 맞춰서 넘는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이 잡고 있는 고무줄 위를 아이가 뛴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은 물의 잠잠한 수면 같고, 출렁출렁하는 물결 같고, 고요한 수평선 같다. 고무줄은 무릎 높이에서 허리 높이로, 겨드랑이 높이로 점점 높아진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소녀의 가볍고 날랜 몸도, 까르르 웃는 소리도 점점 높아진다. ‘물랑’이라는 낯선 시어는 시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시 ‘물결을 그리다’에서 “어항 속에 물을 그린다/ 물랑 물랑/ 물을 흔든다/ 물랑 물랑 물랑 물랑”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서, ‘물’ 이미지의 부드럽고, 연하고, 잔뜩 머금은 물기 그것의 상태를 ‘물랑’이라는 시어에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에서는 두 소녀가 잡고 있는 고무줄이 흔들리는 물처럼 탄력이 있게 물결을 이루며 경쾌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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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낡고 헐은 깃발이 전시되어 있다. ‘일장기’와 일본군기인 ‘욱일기’ 아래 ‘축(祝)’이라고 쓰인 깃발은 일제가 침략전쟁에 조선의 청년들을 강제 징집할 때 사용한 ‘장행기(壯行旗)’이다. 전쟁터에 끌려가던 청년들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앞세웠던 깃발이다.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년만장’으로 불렸다. 일제 강점의 피해 당사자·국에게 욱일기는 단순한 깃발이 될 수가 없다.

일본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에 나가며 욱일기를 내걸었다. 식민과 침략으로 한국과 중국, 동남아국가들을 유린할 때 앞에 펄럭였던 것이 욱일기다. 그냥 군대의 깃발이 아니다.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의 고통을 되살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최악의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독일 나치의 당기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 모양)와 같은 ‘전범기’인 셈이다.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는 전후 운명(?)을 달리한다. 하켄크로이츠는 ‘전쟁범죄’의 상징이란 이유로 독일에서는 형법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배로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이내 부활했다. 1954년 창설된 육상자위대는 ‘변형’ 욱일기를 내세웠고, 해상자위대는 아예 과거 일본 해군의 욱일기를 자위함기로 제정했다.

자위대 깃발로 채택된 욱일기는 스포츠 경기에 응원기로 등장하고, 대중문화와 상품 마케팅에 활용되는 등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일본 군국주의 탈색에 욱일기가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상징’은 수용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반성은커녕 식민과 침략의 역사를 뒤집는 일본, 그래서 욱일기는 여전히 ‘전범 깃발’인 것이다. 오는 10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열리는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한 해상자위대 구축함의 참석을 두고 분노가 거세다. 물론 일본으로서는 과거 관함식 때도 욱일기를 달고 참여한 전례와 ‘국제 관례’를 내세울 수 있을 터이다. 분명한 것은, 그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제대로 과거사 청산이 이뤄졌다면, 일본이 “자랑스러워하는” 자위대기가 이리 대접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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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떤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러나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원통하고 미안하고 서글픈 이야기.

주인공은 미얀마에서 온 청년 싼 소티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가족을 부양해왔고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앞둔 듬직한 청년이었다.

며칠 전 그가 죽었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없었다. 병사나 자살도 아니었고, 우연한 사고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어떤 미스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장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고 그 순간을 비디오로 찍은 사람도 있었다. 사실의 차원에서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명백했다.

당시 그는 오전 일을 마치고 공사장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있었다. 건장한 사람 몇몇이 끈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의 정체를 직감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뒤쪽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식당 창문을 뛰어넘는 순간 추적자의 손이 닿았다. 허공에서 균형이 무너진 그는 의도한 착지점을 벗어나 8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멀쩡했던 아들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가슴을 쥐어뜯은 건 아버지뿐이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사람들에 쫓긴 청년의 사망 사건이 연일 뉴스 머리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경우가 되지 못했다.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다. ‘불법 체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6개월 뒤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비자는 이미 만료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날의 단속과정이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무관심이 덮은 사건에서 이런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친구에게 들었던 불법 체류자 단속 이야기는 정말로 끔찍했다. 그것은 흡사 동물 사냥 같은 것이었다(과거에는 실제로 그물총을 쏜 적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에도 크게 달랐던 것 같지는 않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따르면, 단속 공무원들은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욕설을 퍼부으며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고 한다.

살벌한 풍경에 놀라 누군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누군가는 초식동물처럼 이리저리 뛰었다고 한다. 그 놀란 초식동물 같던 사람들 중 하나가 소티였다.

시신이란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가장 큰 불의다. 하지만 불의한 결과는 원인을 통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는 불법체류자였고 단속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기에 그 결과물인 죽음에도 잘못이 없다.

법적 관점에서만 보면 오히려 문제가 해소되었다. 애초에 없었어야 할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법학으로 다룰 것은 없고 물리학만이 남았다. 청년을 죽게 한 것은 그의 몸무게와 중력가속도, 8m의 높이로 이루어진 물리법칙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십년간 80명 정도가 이런 이 물리법칙 때문에 죽거나 다쳤다.

그렇다면 소티의 죽음에는 아무런 억울함도 없는가. 겨우 스물의 나이에 가난한 부모를 봉양하고 병든 형을 돌보겠다며 이국 만 리를 떠나 온 청년의 죽음에서 우리는 아무런 부당성도 발견할 수 없는가.

나는 여기서 우리 시대의 법과 제도의 부조리를 느낀다.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한다. 범죄가 법적인 타락이라면 불감은 윤리적인 타락이다.

우리는 법적인 정화가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지는 소티의 사례를 세계 곳곳에서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분리된 채로 수용소에 갇혔고(이 중에는 여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을 구조한 선박의 입항이 불허됐으며(바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한 선박만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헝가리에서는 난민을 돕는 시민을 징역에 처하는 법까지 만들어졌다. 사람의 도리를 어겨야만 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두 명의 소티가 있었다.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는 범죄자와 이 땅에서 더없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 사람들은 전자에게 물었다. 왜 법을 어기고 도망쳤느냐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소티가 나쁜 아이였느냐고.

법의 눈으로 보았을 때 소티는 자업자득인 죽음을 맞이했고,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소티는 억울한 채로 눈을 감았다.

소티는 뇌사 상태로 2주간 누워 있었다. 너무나 슬프고 억울했을 아버지는 그의 눈과 간, 신장을 한국인들에게 기증했다. 아무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법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아들의 장기를 내놓았다. 한국사회는 아들의 체류를 불허했지만 그는 아들의 장기를 한국인들에게 남겼다.

그 덕분에 우리 중 누군가는 볼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는 몸의 독성을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든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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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지난 추석 즈음 뉴욕 둘째 누나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모였다. 뉴욕에서 모두가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우리는 누나 집 거실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과 달리 한국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즈음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잠깐 언급되었으나 그것은 내가 꺼낸 다른 화제에 바로 밀렸다.

“BTS(방탄소년단)가 유엔에서 연설하러 뉴욕에 온대요. SNS 보니까 그날 맨해튼에 차 갖고 나가지 말라던데요. 걔들이 가는 곳곳에 아미가 진을 칠 거라서 길이 더 막힌다고.” 아미가 BTS 팬클럽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미가 뭐야?”라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결혼식장이며 식당을 오가는 자동차 안에서 BTS의 북미 인기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하던 중에 아미를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토론토 옆 도시 해밀턴에서 세 차례 공연하며 암표가 수천달러에 거래된다. 다소 침체된 도시 해밀턴에서는 BTS 공연으로 “도시 경제가 반짝 살아난다”며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놀라워했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에 산 지 28년 된 둘째 자형은 BTS 소식에 밝았다. “요즘 BTS 노래가 이곳 라디오에 자주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아? ‘강남스타일’이 한창 인기 있을 때도 그렇지 않았거든.” 자형은 ROTC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아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아미가 진짜 군대처럼 편제되어 있대. 미국 소도시마다 소대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지. 그 소대원들이 자기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맡아서, BTS 음악을 틀어달라고 계속 공략한다는 거야. 그 때문에 요즘 라디오에서 BTS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는 거고.” 하긴 토론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BTS 노래가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풀렸다. 싸이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북미 어느 도시건 간에 BTS 공연장 앞에서 팬들이 하루 이틀 노숙을 하며 공연을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60년대 학번 큰 자형이 말했다. “예전 비틀스가 미국에 처음 들어올 때하고 똑같네.”

BTS 이야기는 뜻밖에도 대학생인 우리 아이들이나 30대 조카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미의 주축 세력은 ‘강남스타일’이 크게 넓힌 북미 케이팝 영토에 새로 진입한 어린 팬들이어서, 기존 케이팝 팬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2010~2011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로 북미에 본격 상륙한 케이팝은 주로 ‘SM’ ‘YG’ ‘JYP’ 3대 기획사 계보로 이어졌다. 팬들도 그 계보를 충실히 따라갔다.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조카나 우리 아이들은 바로 그 팬층에 속해 있다. 그 전통 팬들이 보기에, BTS의 주력 팬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신세대’ 혹은 ‘신인류’이다. 그들은 아미가 “조금 극성맞다”고 평한다.

조카 한 명이 집안 어른들한테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겠다며 백인 청년을 누나 집에 오게 했다. 그에게 내 형이 질문을 했다. “두 유 노 방탄소년단?” 진짜 궁금해서 그랬는지, 질문거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몇 년 전 미국 고위 관리와의 기자회견장에서 난데없이 “두 유 노 싸이?”라고 했다는 한국 특파원을 패러디한 것인지, 본인 외에는 그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내 형의 질문은 그 자리에 모인 젊은 세대에게 빈축을 샀다. “그런 질문을 왜 해요?” 그런 질문인데도 인사하러 온 청년은 성실하게 답했다. “압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마디 더 했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최대 이슈는 BTS였다. 마침 북미 투어 중인 데다 유엔 연설이 예정되어 있던 뉴욕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북미에서의 BTS 인기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만나 나눈 대화 내용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위 선양’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이들을 능가하는 한국인은 단군 이래 없었지 싶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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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는 시원찮아도 아침에 때맞춰 등교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신통해서 괜히 엉덩이를 토닥이는 아들바보. 달랑거리며 신나게 뛰거나 편안하게 잠든 아이 모습을 볼 때면 가슴께가 시큰해진다. 잠깐 행복해서 콧방울이 움찔하다가 우리 아이 또래의 그때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깊은 한숨이 따라 나온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는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만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대참사였다. 불과 4년여 지났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개시도 하기 전인데 벌써 잊히고 있는 것 같다. 생명과 안전? 그때 그 약속들은 누가 물어갔는지 추석 연휴에 상도유치원 사고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뉴스 보도로만 봐도 너무 이상했다. 유치원 담장 밑까지 후벼 파도록 놔둔 게 놀랍지 않은가. 유치원 옆에는 초등학교까지 있는데 어쩌자고 저리도 심하게 땅을 팠을까 궁금한 나머지 동네를 둘러보았다. 현장에 가까이 가자 지하 특유의 서늘한 냉기가 야트막한 숲의 향기에 섞여 흐르는 듯했다. 31명의 건축주가 건축면적 936.8㎡(283평)에 총면적 4758.68㎡(1439평)의 6층짜리 공동주택을 짓겠다는 안내판 너머 현장은 놀라웠다. 철거된 유치원은 사실상 절벽 위에 있었던 것이다. 수업 중에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고 할 뻔했다.

올해 2월28일 건축허가를 내주었던 동작구청 관계자는 이 건축물이 지하안전영향평가 대상이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애타게 질문하면 구청과 교육청은 담담하게 공문으로 답했다. 9월5일 오전 심각한 균열로 열린 긴급대책회의에 동작구 관계자는 선약이 있다며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설계감리자는 “현재 공사 현장은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했고 7일까지 보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으며 유치원은 수업을 계속했고 9월6일 밤 11시22분경 공사 중 유치원이 기울어졌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깊이 성찰해온 박노자 교수는 최근 <전환의 시대>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지금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이상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앞으로 정권을 보수세력에게 넘겨주지만 않으면 요순시절이 지속될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고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과연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린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착한 임금이 등극하기만 하면 정말 만사가 형통할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태세고,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은 묵시록적인 예언을 하고 있으며, 경제뿐 아니라 인간의 의미 자체가 변할 미래에 대비해 학생들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육 하면 주로 학생들만 생각하는데 실상 정부기관 공무원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출직이 백날 외쳐봐야 아무래도 상수는 공무원이다. 동작구청과 상도유치원 사이의 거리는 1.9킬로미터. 걸어서도 몇분 안 걸리는 거리다. 무슨 더 급한 용무가 있길래 유치원이 무너질 것 같다는 호소를 무시할 수 있었나. 공무원이 그리 나오는데 어느 업자가 긴장하겠나. 유치원이 무너졌으면 어쩔 뻔했나!

선발 기준을 보면 인재상이 보인다. 우리나라 7급·9급 공무원 선발 시험은 공통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와 전공과목을 본다. 5급 행정고시는 상황판단과목을 본다. 2018 기출문제 40문항에 폐기물 관련 1개를 제외하고는 환경, 안전, 생명을 묻는 질문은 단 한개도 없다. 재교육은 어떤가.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국민안전정책과정이 있긴 하다.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담당자 교육인데 공직자의 위기관리대응 등 9시간 강의, 재난유형별 역할 토의 및 액션플랜 등 11시간 참여가 전부다.

2016년 7월 전해철 의원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재난사고에 기업과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공중이용시설 등의 안전관리위반범죄 처벌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이 의결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세월호’ 핵심 공무원들이 줄줄이 해외파견된 것만은 알고 있다.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의 언명대로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획이 일로 전환되지 않는 한 그저 좋은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40도 이상 고온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도 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곧 유례없는 추위와 미세먼지의 계절이 온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일본의 지진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추석즈음 유행했던 질문놀이로 마친다. 공무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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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30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자택,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의 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수사에 착수한 이후 ‘양승태 대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은 처음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범죄 혐의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헌정 사상 최초다. 양 전 대법원장 자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으나,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윗선’ 수사를 끈질기게 차단해온 법원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방어벽에 균열이 시작된 신호로 받아들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압수수색을 당한 3인의 전직 대법관은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인사들이다.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직 중인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법관이 겸임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맡았다. 차·박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권 시절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에 대해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 소송과 부산지역 법조비리 재판에 개입한 의혹 등을 사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들을 지휘하는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이자 ‘정점’이다.

물론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됐다 해도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주요 증거들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법관을 지낸 법률가들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 사실 자체가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검찰은 이번 모멘텀을 놓치지 말고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법원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성할 때다. 100일 넘는 검찰 수사를 통해 다수의 물증과 진술이 축적돼 있는 터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 파묻듯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증거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낮으니, 자택은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유의 언설로 법원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이제 포기해야 옳다. 주권자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법원은 치외법권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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