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장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부석(浮石)이 놓여있다. 부석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낸 용암이 식어 돌처럼 굳어졌지만 물 위에서도 뜰 정도로 가볍다. 흰 부석은 백두산 정상에서 1980년대 말에 내가 직접 주워 온 것이다. 한라산의 검은 부석은 2004년 여름 서울구치소에서 나와서 40여년 만에 찾은 고향 제주도에서 한 친지로부터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다. 백두산의 천지를 찾은 남북 정상이 맞잡은 손을 높이 든 사진을 보면서 두 화산석이 담고 있는 내 삶의 흔적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조종(祖宗)의 산인 백두산에서 시작된 땅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태평양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라산, 이 두 성산(聖山)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는 물리학에서 논의되는 ‘이론적’인 공간은 물론 조형예술에서 문제되는 ‘심미적’인 공간의 근원에도 상징적이며 주술적인 힘을 지닌 ‘신화적’인 공간이 자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백두산과 한라산이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중국인에게는 태산, 일본인에게는 후지산이 그렇다.

그러나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의 지맥으로 연결된 우리 땅은 70년이 넘도록 한가운데가 잘려있다. 휴전선은 우리를 긴장과 적대관계로 내몰고 우리의 자유로운 영혼도 억누르고 있다. 공간은 단순히 인간과 사물을 담고 있는 컨테이너가 아니며,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공간을 규정한다고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은 지적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사회적 공간인 민족공동체의 단절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리적 의미의 국토분단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지대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이번 ‘9월 평양선언’의 첫 번째 항목도 바로 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에 대해 일부 야당과 보수세력은 현정부가 피로써 지킨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비난한다. 경계선은 원래부터 전투적인 개념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는 이 경계선을 남북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3차원의 사회적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 평화지대라는 개념도 성립 가능하다. 이 사회적 공간을 넓히면 넓일수록 평화로 향하는 길은 더욱 탄탄해진다. 우리 땅 전체가 하나의 평화지대가 될 때 우리는 통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번째 항목은 남북은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켜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철도와 도로의 연결 및 이의 현대화,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사업의 정상화에 대해서도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사회는 시간과 공간을 응축(凝縮)하는 정보와 물자의 빠른 흐름을 가능케 하는 네트워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1843년 5월, 독일의 혁명시인 하이네가 파리에서 기관차의 첫 운행을 보면서 이제 공간은 죽었고 시간만이 남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도 1882년 수신사 박영효를 따라 ‘명치유신’의 일본을 둘러보고 남긴 <치도약론(治道略論)>에서 사람의 교류와 물자의 빠른 유통을 보장할 수 있는 도로가 사회개혁에 있어서 지니는 의의를 강조했다. 21세기에 걸맞은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은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상호 연결되는 ‘흐름의 공간’을 확충하면서도 ‘구체적 장소’인 남과 북이 각각 지니고 있는 경제적 구조와 특성을 살려야 한다. 지구화의 정도에 있어서 현재 많은 차이가 있는 남과 북의 경제사회가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남북경협이 너무 속도를 낸다느니, 유엔의 대북 제재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많다고 벌써부터 어깃장을 놓는 세력이 있다. 경의선 철도의 북측 구간을 조사하려던 계획도 ‘유엔사’에 막혀 일단 무산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기형화된 민족경제의 구조를 선순환적인 구조로 전환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북녘 땅에 있는 귀한 부존자원이 수시로 중국에 헐값에 넘어가고 있는 현실을 그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세번째와 네번째 항목은 이산가족의 상봉을 포함한 인도적인 교류와 사회와 문화 분야에 있어서 교류활성화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산가족의 상봉을 속히 정례화하고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세대가 바뀌면서 남북의 친·인척 구성도 많이 변했다. 평창올림픽 때 남북여성하키단일팀의 구성 문제에 대해서 보였던 남쪽 젊은 세대들의 부정적 반응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선언에는 명기되지 않았지만, 미래를 함께 꾸릴 남북의 새로운 세대 간에 상호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 많이 마련해야 한다.

다섯번째 항목인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자는 합의는 이번 선언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 내용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하고 논쟁도 많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혹평하는 측은 특히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폄하한다. 그러나 이번 선언이 남북이 먼저 함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살려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목을 트고, 그동안 부진했던 북·미 간의 핵협상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았는가.

북핵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북·미관계의 발전에 달려 있다. 북·미 협상에서 항상 등장하는 ‘네가 먼저!’라는, 상대방을 향한 끈질긴 요구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나면서 많이 약화된 분위기다. 북·미 간에 있는 상호불신의 단단한 매듭이 아직은 풀리지 않았지만 이 역시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9월25일에 뉴욕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었고, 2차 북·미 회담도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더 구체화시키는 2차 북·미 회담이 끝나면 북핵 문제는 분수령을 넘을 수 있고, 북·미관계의 단계적인 정상화의 내용과 시간표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금년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남북은 ‘9월 평양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해서 우리 땅의 평화체제를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백두산에 이어 남북 정상이 한라산에서 다시 맞잡은 손을 높이 드는 장면은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정착의 과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큰 메시지가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코를 빌려 숨 쉴 수 없다’는 폴란드 격언이 있다.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단합된 의지, 열정 그리고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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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지난 6월28일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미세먼지 다량 배출사업장 배출 허용기준 최대 2배 강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석탄화력발전소, 제철업, 석유정제업, 시멘트제조업에 대해 초미세먼지(PM2.5)를 발생시키는 먼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의 배출 허용기준을 최대 2배 강화하여 2019년 1월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전국의 모든 석탄화력발전소의 배출기준을 최대 2배 강화한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강화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엄격한 배출기준을 적용받는 영흥화력에 비해서는 대략 2~4배 느슨해 아쉽다. 현재 영흥화력은 수도권 대기환경개선특별법을 근거로 다른 발전소에 비해 배출기준이 최대 거의 5배까지 엄격하다(배출량이 많은 질소산화물의 경우 배출기준이 70ppm인데 영흥화력은 15ppm). 이는 다른 발전소들도 영흥화력 수준으로 배출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도권에 소재한다고 하여 영흥화력만 배출기준이 유독 엄격한 것은 대기오염물질의 확산 속성을 무시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성숙에 걸맞지 않는 차별적 불합리한 정책이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석탄화력발전소 배출기준을 영흥화력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한 환경부는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에서 현재 수도권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배출총량제를 내년 상반기까지 충청, 동남, 광양만권까지 확대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입법하여 실효성 있게 시행해야 한다. 미세먼지 다량 배출 사업장들은 경제성만 고려할 게 아니라 환경적, 건강적 측면에서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윤리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배출량 감축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충남도는 환경정책기본법 12조를 근거로 작년 6월30일 선제적으로 배출기준을 강화하는 ‘충청남도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기준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그러나 조례의 배출기준은 이번 환경부 배출기준과 비슷하지만 적용 시기는 2021년으로 오히려 2년 늦어 환경부 정책에도 뒤처지는 의미 없는 조례가 되었다.

출처: 경향신문DB

환경부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충남은 지난해 기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전국에서 압도적으로 1위였다. 사업장별 배출량에서 전국 2위인 현대제철, 3위 태안화력, 5위 보령화력, 7위인 당진화력 등이 밀집해 있다. 따라서 조례 제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허용기준을 3~4년 내에 영흥화력 수준으로 강화하고, 제철업과 석유정제업도 강화하도록 조례를 조속히 개정하기를 촉구한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보령화력과 서천화력의 미세먼지 최대영향지점은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 부근이다.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시·도에서도 지역의 배출 특성을 감안하여 주민의 환경권을 지키는 조례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신현기 | 당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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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박명이다. 여기는 백두산의 서파로 오르는 산중 휴게소이다. 하룻밤일지언정 운 좋게 백두산의 주인이 되었다. 별들도 계단처럼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밝기에 따라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중. 마침내 1442개의 계단을 올랐다. 늘 만나는 해이지만 제대로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는 태양이 멀리 자암봉과 쌍무지개봉 사이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움푹 꺼진 천지로 내리닫는 급한 경사에 핀 바위구절초. 가장 먼저 오늘의 햇살에 얼굴을 씻는 생명이다. 해가 뜨면서 세상은 밝아졌다지만 그만큼 세상은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태다. 어둠이 깨진 상태가 지나고 한낮이면 지독한 땡볕에 시달려야 한다. 지금은 온순하기 짝이 없는 햇살이 금세 털이 빳빳한 짐승처럼 돌변해서 세상을 찔러댈 것이다. 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텅 빈 광장에서 햇빛을 쬐었다. 이 무량한 자원은 장엄한 백두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자꾸 손이 오므라졌다. 그냥 흘러 보내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나의 손은 구부러지기가 쉬웠으니 포클레인처럼 햇빛을 어디에서고 움푹 퍼 담는 버릇 하나를 백두산에서 얻었다!

이상은 지난여름 백두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적은 소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0일 후, 나의 시선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문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분은 손으로 천지물을 떠서 입안으로 들여놓기도 하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물맛을 보기 위해 아니 그러고는 못 배겼으리라.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건 앞만 보고, 겉만 보고, 부분만을 본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행위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때 영접한 천지일출이 개인적으로 감격스러운 일이긴 해도 이런 본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맞잡은 손은 다를 수 있다. 부디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으로 두루 원만한 결과를 맺으시기를! 맞잡고 치켜든 두 정상의 손 뒤 어디쯤은 내가 정성스럽게 바라본, 지금도 눈에 밟히는 바위구절초가 있던 자리이다. 장군봉에는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천지의 첫 햇살에 얼굴을 씻으며 웃던 백두산 바위구절초의 근황이 몹시 궁금해졌다. 바위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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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북한 주민 앞에서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대중연설을 했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3차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한 달 이상 내리막길을 걷던 지지율은 10% 이상 급반등해서 60%대를 회복했다. 비판자들은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던 경제정책의 실패를 평화 프레임으로 덮으려 한다고 하고, 지지자들은 역시 문 대통령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느 쪽이 맞을까.

여기서 퀴즈 하나. 세대별로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어느 세대의 지지율을 가장 크게 견인했을까? 고령층은 반공보수가 주된 이념이고 평화 프레임은 젊은층에 잘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답은 60대 이상이다. 지지율 최저점인 9월 2주에 32% 지지율로 가장 박한 점수를 줬던 60대 이상은 3차 정상회담 직후인 9월 3주에는 58% 지지율로 급반등해서 50대보다도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이하 한국갤럽 자료). 지지율 절대값으로만 보면 20~40대가 더 높지만, 정상회담 직전과 직후의 반등률로는 6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높다. 숫자가 속내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미루어 짐작한다면 분단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는 유일한 세대라는 점, 그리고 문 대통령 연설 직전에 있었던 소위 ‘대집단체조’와 같은 국가주의적 스펙터클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 등이 작용했으리라.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 사례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은 상당히 복잡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몹시 단순했다. 고령, 영남, 보수, 새누리당 지지자, 주부 및 무직자면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지지, 그 반대로 갈수록 지지율 급락이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도 앞선 모든 정부처럼 장기적으로는 하락추세이지만, 중간중간 반등하면서 완만하게 하락한다. 올해만 해도 평창올림픽 직전 남북단일팀 논란과 ‘평양올림픽 선동’으로 하락했던 지지율은 올림픽 개막 후 급반등했다. 최저임금 및 부동산 정책 논란으로 하락하던 지지율은 3차 정상회담 이후 또 급반등했다.

두 차례의 반등을 비교해보자. 평창올림픽 때는 2030세대가 급격하게 지지를 철회했다가 빠른 속도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2030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경제정책 논란으로 40대 이상이 지지를 철회하는 동안 그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에 세대별로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50대이다. 지난 14주 동안의 변화를 보면 50대는 최고점인 6월 2주 74% 지지에서 최저점인 9월 1주에는 38% 지지로 반토막이 났다. 회복국면에서도 50% 지지로 회복세가 가장 더디다. 앞서 말했듯이 오히려 60세 이상의 회복세가 가장 빠른 형국이다. 직업별로 보면 주목해야 할 것은 자영업자다. 평창올림픽 때도 이미 최저임금은 논란이 되고 있었지만, 자영업자층은 지지를 그리 많이 철회하지도 않았고 회복세도 비교적 빨랐다. 이번에는 6월 2주 76%에서 9월 1주 32%로 지지율이 가장 많이 빠졌고, 9월 3주 52%로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주부와 더불어 가장 지지가 낮은 집단이다. 두 번의 반등이 있었지만, 첫 번째 반등을 이끈 집단과 두 번째 반등을 이끈 집단은 상당히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지지층을 ‘집토끼’라 부르고 상대 당 지지층을 ‘산토끼’라 부른다고 들었다. 부동층은 ‘들토끼’라고도 한단다. 그런데 장기 추세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원한 집토끼도 산토끼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근 몇 달만 보면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던 2030세대는 집토끼인 셈인데, 그들은 평창올림픽 직전 갑자기 가출해서 산토끼가 되었던 적이 있다. 반면 영원한 산토끼인 줄 알았던 60세 이상은 3차 정상회담 이후 갑자기 집에 들어왔다. 물론 언제 또 나갈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안정적인 집토끼라면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와 학생, 계층별로는 중상층이다(일부의 착각과는 달리 계층별 지지율은 하층에서 꾸준히 가장 낮고 중산층과 상층에서 꾸준히 높다). 그 외의 거의 모든 집단은 집과 산을 번갈아 왔다갔다 한다. 모두가 들토끼인 셈인가.

경제정책 실패를 평화 프레임으로 덮었다는 비판은 틀렸다. 50대와 자영업자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60대 이상이 돌아왔다. 이제야 안심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지지자도 틀렸다. 집토끼가 별로 없다. 이런 현상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수시로 번갈아가며 집 나가는 토끼를 매번 잡으러 다닐 수 없다는 뜻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할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지점에서 정치 균열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야 한다. 상대가 산에서 들로 내려오기 전에.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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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집값 급등에 대한 대책으로 토지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아서 부동산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토지공개념을 사유재산권 침해, 극단적으로는 공산주의라고 매도하는 주장도 있으나, 여당이나 정부에서 거론되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좀 더 현실화하겠다는 정도이다. 국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토지공개념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쓰이는 것은 ‘토지가치세제’와 ‘토지가치공유제’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토지가치세제는 토지의 소유를 통해 파생된 불로소득을 조세를 통해 환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효적인 토지가치세제의 도입이 도시개발과 주택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밀려 계속 좌절되어왔다. 따라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토지가치세로 마련된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래서 서민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지는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를 살펴보면 보유세를 부과하여 조성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쓰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의 보장도 토지가치세의 적절한 사용처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부동산가격 상승이 소득증가보다 가파른 상황에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민에 대한 소득 보조가 주택임대료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토지가치세는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토지가치공유제는 공동체의 실수요자를 위해 토지를 사용하여 토지를 매개로 한 불로소득의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사유재산 침해라는 엉뚱한 오해를 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유재산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여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일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을 지역공동체에서 일정량 확보하여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 주택가격이 치솟는 것도 막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살펴보면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단순히 주택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새롭게 공급되는 주택에 얼마나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넣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마냥 늘리기 어렵다면 최근 지자체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주택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주택은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실수요자로 구성된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가 소유하는 공유재산이기에 가능하다. 서울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공공의 토지를 일정 기간 빌려주는 토지임대부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공유재산도 늘리고 서민의 주거안정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물론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 활성화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지역공동체의 서민들이 주택건설비를 마련해야 한다. 초기에 투입된 건축비를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야 하는데 현재는 토지의 임대기간이 최장 40년에 불과하여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서구의 사례를 보면 토지의 임대기간이 충분히 길어서 100년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토지를 개인이 아니라 서민들로 구성된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에 빌려주는 방식이기에 장기임대가 공익의 증대로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 이처럼 장기간 임대할 토지를 확보하려면 공공재원이 필요한데 토지가치세를 활용하거나 토지임대부 사업으로 거둬들인 토지임대료를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에 건축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주거나 사회주택에 입주하는 서민들에게 주택보증금을 융자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공급활성화에 중요하다. 사회주택의 활성화를 통해 토지공개념에 대한 오해도 해소하고 시장경제 회복과 소득주도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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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군의날 행사는 여느 때와 달랐다. 기념식은 1일 서울공항에서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봉환 행사로 시작됐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지 68년 만에 돌아온 64위의 용사를 문재인 대통령은 6·25 참전 용사 대표들과 더불어 정중히 맞았다.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본 행사는 오후 6시30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치러졌다. 가급적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5년 주기로 해온 군사퍼레이드는 생략했다. 대신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서울 상공에서 야간 에어쇼를 펼쳤다. 건군 7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날 70주년인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실시된 국군유해 봉환행사에서 68년 만에 돌아온 6·25전쟁 참전 국군 전사자 64위 유해함에 참전기장을 수여하며 묵념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군 유해송환은 이번이 네번째였지만 그 의미와 행사의 격이 달랐다. 북한과 미국이 북한 지역에서 공동으로 발굴한 유해 중 국군 전사자로 판명된 64명의 유해에 문 대통령은 일일이 6·25 참전기장을 수여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전몰자 등 국가 유공자들은 공동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날 남북 군사당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원에서 지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체결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실행에 옮기는 첫 조치였다. 비무장지대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비무장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수 싸이가 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장병들의 환호 속에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일각에서는 이번 국군의날 행사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우리 군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조촐한 기념식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눈치를 보아 행사를 작게 치른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언제 적 군대를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2015년 중국이 전승기념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했을 때 지구촌은 구닥다리 행사라고 비웃었다. 미국은 무기를 앞세워 무력을 과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장병들만 고생시키는 거창한 퍼레이드가 군을 위한 기념식이라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증강된 국방비가 퍼레이드보다 안보 증진에 더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행사를 설명하면서 “남북이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강력한 안보가 평화체제 구축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을 향한 적개심 고취와 대결 조장이 아니라 위기 관리 등에 내실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변하는 안보환경의 흐름에 맞춰 국군의날 행사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군사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려면 지속적인 남북 군축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국군의날 행사도 이런 취지에 맞도록 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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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회회담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일 여야 5당 대표와 오찬 모임인 ‘초월회’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회담은 제가 제안을 했고, 9월27일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명의의 동의한다는 답신이 왔다”면서 “11월로 생각하고 있고, 인원은 여야 5당 대표를 포함해 30명 규모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최태복 의장은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하는 문 의장 친서에 대한 답신을 통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 쌍방 의회와 각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북남 의회회담 개최 제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호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9월 평양정상회담 대국민보고에서 “국회회담을 가까운 시일 내에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구체적인 국회회담의 장소와 규모, 의제 등을 조율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여야 5당 대표들이 1일 국회 사랑재 앞마당에서 진행된 ‘초월회’ 오찬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남북 국회회담은 역설적으로 정상회담보다 성사가 더 어려웠다. 1985년 북측의 제안으로 10여차례의 예비회담까지 열었으나 불가침선언 등 의제에 대한 견해차로 본회담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2000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7년, 2008년 남북관계가 변곡점에 처할 때마다 국회회담이 화두에 올랐으나 쟁점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다 흐지부지되었다. 무려 33년 동안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데 그쳤던 남북 국회회담이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흐름과 맞물려 마침내 성사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남북 국회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이 필수다. 보수적이었던 바른미래당은 “국회와 함께한다는 원칙”을 밝히며 전향적 자세로 돌아섰다. 남은 변수는 자유한국당이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부터 반대해온 한국당은 남북 국회회담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마치 남북관계가 악화되기만을 기다리며, 남북 문제에는 계속 방관자로 남아 있겠다는 꼴이다. 과거 한국당의 전신인 보수정당들도 앞장서 추진했던 남북 국회회담이다. 국회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남북 교류의 문을 더 크게 넓히고, 정부 간 협상으로만 진행되어온 남북관계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기회다. 남북 국회회담을 통해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는 과정을 밟게 되면 판문점선언 비준 문제도 풀릴 수 있다. 한국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남북 국회회담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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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인 4명 중 1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1일 발표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사회안전망은 취약해 빈곤과 절망 속에 살고 있는 한국 노인들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인의날을 하루 앞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노인이 바닥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노인의 26.0%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를 걱정하는 노인들도 23.6%나 됐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암울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한국 노인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보면 생계유지의 어려움에도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노인이 28.9%인 것으로 나온다. 가족들이 안된다면 국가라도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국가로부터의 생계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노인도 24.1%에 달한다. 가족도 국가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니 한국의 노인들은 은퇴 후에도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8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70~74세 노인 고용률은 33.1%로 OECD 국가 중 1위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나이제한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노인이 58.6%, 직장에서 보수·업무 등의 차별을 경험했다는 노인은 44.3%에 달했다. 노인과 젊은층 간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의 51.5%가 청장년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청장년의 87.6%는 노인과 대화가 안된다고 했다. 한국의 노인들은 사회 속에서 고립무원의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26년에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소외를 넘어 노인혐오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제대로 된 노후를 보장받는 것은 노인들뿐 아니라 언젠가 노인이 될 국민 모두가 해당되는 문제다. 정부는 노인들이 건강하고 존중받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 확충과 일자리 환경 개선 등의 정책적 노력을 더 해야 한다. 2일은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을 확산하고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겠다며 정부가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노인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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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6일 일본 시각 오전 8시15분, 미군 B29 전폭기가 히로시마 상공 9750m에서 ‘리틀 보이’로 명명된 원자폭탄 하나를 투하했다. 이름은 꼬마였으나,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57초 후, 폭탄은 상공 580m 위치에서 당시까지 인류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섬광을 직접 본 사람들은 즉시 눈이 멀었고, 뒤이어 생명체가 감당할 수 없는 열기에 휩싸였다. 히로시마 인구 25만5000여 명의 30%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즉시, 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의 모든 생명체와 인공물이 완전히 소멸했으며, 11㎢ 이내의 건물 90%가 파괴되었다. 폭발로 생긴 거대한 버섯모양의 먼지구름은 상공 18㎞까지 솟은 뒤 하늘 가득 퍼졌다가 서서히 땅으로 떨어졌다. 이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 중 7만여 명도 반년 안에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 다수도 불치병에 걸려 여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일부 사람의 고통은 유전자를 통해 대를 이어 전해졌다. 사흘 뒤,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원자폭탄 하나가 나가사키에도 떨어져 3만6000여 명이 즉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군도 먼지의 살상력에는 주의하지 않았다.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진주했다. 당연히 두 도시에 살았던 한국인들도 몸에 닿은 먼지가 남은 평생을 얼마나 괴롭힐지 몰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한국인은 7만여 명에 달했고, 그들 중 상당수가 해방 직후 귀국했다. 후쿠시마 인근에서 채취된 수산물이 수입될까봐 걱정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라면 그들이 이웃에 사는 걸 용납하지 않았겠으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는 방사능 낙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피폭된 사람들에겐 이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자기 몸이 왜 아픈지도, 자기 아이가 왜 이상한 병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놀랍게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작년 5월30일부터야 시행되었다.

불교의 윤회설이나 유교의 음양오행설 등 순환론적 시간관에 지배받았던 한국인들에게는 본래 ‘세계의 종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말세(末世)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이는 한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시간개념이었지, 세계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공간개념은 아니었다. 반면 천년 이상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시작과 종말이 있는 역사 시간을 제시했다. 기독교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그날까지만 전개된다. 이들 종교 문화권에서 최후의 심판은 일상적인 근신을 요구하는 공포의 원천이었다.

‘인류 최후의 날’, 또는 ‘지구 종말의 날’에 대한 생각은 제국주의보다 먼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날’에 대한 공포는 종교와 상상의 영역 안에 있었으며, 그런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본 뒤에야, 사람들은 ‘그날’이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릴 존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도. 신은 전지전능하고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존재지만, 인간은 실수투성이에 때로 악하기까지 한 존재다. 핵전쟁과 핵전쟁 이후의 시대를 소재로 삼은 소설과 영화들은, 대개 인류가 실수나 오해로 인해 최후를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원자폭탄은 인류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945년 이후 핵무기는 인류가 섬겨온 어떤 신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신을 숭배하던 과거의 습성 그대로, 핵무기를 기피하기보다는 그 은총을 얻으려고 경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로 나뉘어 있었다면, 현대의 세계는 핵보유국과 미(未)보유국으로 나뉜다. 핵보유국들의 기득권이 국제협약에 의해 강력히 보호된다는 것도 현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은 핵확산금지조약이 공인한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저 나라들의 권리는 형식상 전 세계가 추인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저들 스스로 획득하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방송 전파를 타고 전 세계, 전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겨우 10개월 만의 일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이 역사적 합의가 실현된다면,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 보유했다가 폐기한 사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북한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핵 위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이 사라져도,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에 둘러싸인 땅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듭할 때, 미국과 한국 언론들은 ‘김정은은 핵무기를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들 했지만, 장래에 핵보유국의 군 통수권을 ‘위험한 인물’이 장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한반도’가 아니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날이 사실상 ‘인류 최후의 날’이 될 거라는 사실은 여전히 불변이다. 앞으로 진행될 북한 비핵화 절차에서 인류가 고민하고 참고해야 할 것은, 자기들이 가진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는 핵보유국들을 ‘비핵화’하는 방안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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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농담을 던진다. 무표정한 사람이 웃는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다. 아뿔싸! 농담이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헤어질 때 또다시 인사를 한다. 농담을 수습하다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다음 만남이 있기 전까지는 나는 그에게 객쩍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사이좋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화면을 보며 낄낄거리는 사람도 있고 화면을 잽싸게 두드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다들 각자의 일과로 바쁘다. 갑자기 전동차 안에 전화벨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으로 쏠린다. 머리를 긁적이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다. 마치 30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덩달아 내 걸음도 빨라진다. 늦은 것도 아닌데 쫓기듯 걷고 있다. 자신의 리듬을 잊거나 잃고, 사람들이 떠밀리듯 걷는다. 급기야 계단을 오르다 한 사람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 사람을 피해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른다. 제 갈 길을 가는 여느 사람들이다. 그 사람에게 “괜찮아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따뜻한 사람이다. 부축을 받고 일어난 사람이 출구 밖으로 비틀비틀 사라진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천천히 걷는 사람, 친구와 손잡고 나란히 걷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이 있다. 가을볕이 따가운지 손차양을 만드는 사람도 보인다. 짐을 든 손의 아귀에 힘을 집어넣는 사람, 오늘 뜬 구름의 표정을 헤아리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잃었던 자신의 리듬을 되찾았다. 평온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본다. 살피기 시작한다. 헤아리기 시작한다.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랩톱을 펼치고 열심히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이 보인다. 글을 쓰는 것일까? 무슨 글일까? 무엇이 그를 쓰게 만드는 것일까?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무슨 책일까? 무엇이 그를 읽게 만드는 것일까? 가만히 있는 사람들조차 표정이 풍부하다.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법석인다.

사람들을 만난다.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다. 지난주에 만났던 사람도 있고 어제 연락했던 사람도 있다. 머리 잘랐구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얼마 전에 착수했다는 작업은 잘되어가니, 낯빛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지?…. 서로에게 마음을 쓴다. 서로를 향해 관심을 기울인다. 다들 각자의 마음 씀씀이로 바쁘다. 마음은 닳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누면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이라 사람을 돕고 사람이라 사람을 외면한다. 사람이라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이라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것을 갚기 위해 골몰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라 사람에게 다정하다. 사람이라 사람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진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절망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것도, 지푸라기나 동아줄로 군불을 지피는 것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것도 사람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위기에 처한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것도 사람이다. 하루 안에 위로와 축하를 둘 다 전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자신만의 사연을 어떻게든 기록하려는 것도 사람이다. 그 사연을 통해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을, 지금 함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을 사람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제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어렵다고, 사람에게 실망했다고, 사람이 좋다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있다. 사람은, 사람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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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학교를 그만둔 초등 저학년 연령대 어린이들을 취재하며 알게 된 그들의 상황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를 그만두면 왜 모든 배움과 돌봄은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 돌아가는가. 아이는 왜 고립되어 친구를 그리워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낙오와 도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기란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말고도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나 프로그램을 연결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고 싶다는 곳은 몇 군데 있었지만 그보다 필요한 일은 일단, 각자 흩어져 힘들어하고 있는 학교 밖 어린이 가정을 한데 모으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구나 싶어 급작스레 만남을 제안했다. 숲속공원에서 한적한 평일에 만나자고. 서울, 경기, 강원에서까지, 온라인에 공지한 지 일주일 만에 아홉 가정이 모였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사이 부모들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학교 밖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척 다양했다.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공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어 입학을 하지 않은 가정도 있었다. 교사와의 관계, 혹은 또래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쉬고 있는 가정,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태로 모임에 참석한 가정도 있었다. 대안이 없어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주고 싶어 차츰 학교 밖의 길을 준비해보고자 했다.

세상은 이들을 주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이들은 ‘적응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있지만 ‘남들도 다 그러니까’ 눈감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익숙하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아니라,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거세하고 한 인간의 고유함을 획일화하는 학교 시스템일 것이다.

그날, ‘친구와 뛰어노는’ 평범한 일에 목이 말랐던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만나 친해지려면 놀이 프로그램이라도 마련해야 하나,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은데 여자아이들이 못 어울리면 어쩌나, 지레 했던 걱정들이 무색했다. 숲속을 뛰어다니고, 모래밭을 뒹굴며 서로의 몸을 파묻는 일에는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필요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들과 얘기 좀 나눠보았냐는 엄마의 말에 한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 한다. “우린 노는 게 대화야.”

매달 만남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나자, 모임의 방향에 대해 부모들은 보태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혼자 하던 고민을 함께 헤쳐 나갈 것에 대해 기대도 크고,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생각하는 배움의 종류와 형태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선뜻 이 모임에 어른들의 말을 얹지는 않기로 했다. 오직 아이들 중심으로 만남을 이어가자고 뜻을 모은 가운데, 아이들은 벌써 언제 다시 만나느냐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들이 일일이 함께 다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어른들은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게 마련이며, 학교를 그만둔 모든 어린이들의 부모가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풀어가야 할 숙제는 많지만, 일단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에 기뻐하며 호기롭게 학교 밖 어린이들의 네트워크는 첫걸음을 뗐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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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없던 시절 여자 친구를 불러내려면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할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동네에 눈이 많으니 으슥한 밤에 만나야 하지만, 벼락같이 뛰어나올 애인 아버지가 안에 있으니 전전긍긍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수법을 씁니다. 언제든 내뺄 준비를 해놓고 창문 아래서 두 손 입에 모아 최대한 뻐꾸기 소리를 냅니다. ‘뻐꾹뻐꾹’ 계속 신호를 날립니다. 뻐꾸기가 밤에도 가끔 울기에 그 집 식구들은 무심히 흘려들을 겁니다. 하지만 몸은 가족과 있으되 귀는 창문에 붙은 아가씨라면 단박에 애인 뻐꾸기란 걸 알아채겠죠. 이제 여자 친구가 몰래 빠져나오기만 하면 미션 클리어. 이성을 꾀어내거나 ‘작업’을 거는 걸 속된 말로 ‘뻐꾸기를 날린다’고 하는데, 이런 은밀한 연애작전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집에 전화가 있던 시절이라도 애인이 때맞춰 전화 받을 공산이 낮고 식구들 눈초리도 있으니 작전이 필요합니다. 미리 통화 가능한 시간과 벨소리 횟수를 정해서 그 시각 그 벨소리 끊어지면 다음 전화를 냉큼 받아 소곤거렸지요. 사실 식구들이 모른 척해주기도 했을 겁니다. 전화기 곁에 붙어 앉아 괜한 딴짓을 하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식구들 몰래 숨죽여 밀어의 통화를 나누던 게 1980년대까지의 야밤 연애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을에 어디서 뻐꾸기 소리가 들리네요. 뻐꾸기는 여름 철새라 떠나고 없을 텐데요. 철없는 뻐꾸기들이 가짜뉴스들을 뻐꾹거려 정보 채널이 좁은 노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합니다. 지난 여름밤 꾀어내던 가짜 뻐꾸기 소리가 이 가을밤에도 통할 거라는 당찮은 수작이죠. 믿을 수 없는 헛된 소문을 ‘가을 뻐꾸기 소리’라고 합니다. 철모르고 가을에도 ‘밤뻐꾸기’ 날리는 가짜 뻐꾸기는 된서리 맞고 얼어 죽거나, 요놈! 하고 덜미 잡혀 다리몽둥이만 부러질 겁니다. 그러니 봐줄 때 그만 울고 여길 뜨세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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