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를 어쩔 수 없이 들이마시면서, 농업을 걱정한다. 기후변화 앞에 농업이 위기이다. 감귤이 경기도에서 날 정도로 한국은 아열대 기후로 급격히 변하는 중이다. 고랭지 채소와 배추 생산이 줄고 있다. 농산물 생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논밭에서 밥상에 이르는 농산물 유통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시장인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도 마찬가지다. 1985년 개장할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폭염 속에서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할 현대화된 저장설비가 없다. 대형 선풍기로 버티는 상황이다. 그저 비를 가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기후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개혁이 시급하다. 시민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다. 최소한 공영 도매시장은 폭염과 가뭄 등 기상이변에서도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현대화된 시설을 시급히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유통단계와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농민은 생산의 대가를 누리고, 시민은 누구나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신선한 식품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공영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세운 목적이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의 실상은 안타깝다. 연간 5조5000억원의 농수산물을 유통시키는 공영 가락시장조차 현대화가 표류 중이다. 지난 5월에 무, 배추, 건고추, 마늘 등 채소 유통 현대화 시설 중간 설계를 완료했지만,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경매장에 들어온 채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온시설 공사비를 추가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경매장 정온시설은 기후 변화대응을 위한 핵심적인 농산물 유통시설이다. 그렇지만 애초보다 예산이 증액되었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적정성 재검토 절차’에 착수했다. 그래서 현대화를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화된 농산물 유통은 공공재이다. 99%의 시민,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노출된 대중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농산물 유통 현대화에 쓰는 예산은 대기업에 지원하는 국고 못지않게 사회적 기여도가 높다. 기재부는 ‘하찮은 농산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 농산물 유통의 공익적 기능을 인식해서 재검토 절차를 신속히 마쳐야 한다.

기후변화 시기에 농산물 유통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유통단계는 최대한 짧아야 하고, 신속해야 한다. 수집과 경매 단계에서 농민과 농협이 직접 농산물 도매시장을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농산물유통법은 출하자 농민이 경매 진행 회사에 위탁하여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농협과 같은 조직화된 농민조직이 조합원을 위하여 직접 진행하는 경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출하자 조직의 획기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농산물 분산 단계에서도 거리를 줄여야 한다. 시장에서 농산물을 매입하여 시중에 유통시키는 도매 유통인(중도매인)이 직접 출하자 농민으로부터 매입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지금의 농수산물유통법은 원칙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도매 유통인 사이의 거래도 허용하여, 공영도매시장이 농수산물 유통 개혁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통합 정산 시스템을 도입해서 도매 유통인들이 물건값을 떼일 염려 없이 농산물을 중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공영 도매시장이 농수산물 유통의 중심지가 되고, 다시 이 경제적 가치가 출하자 농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후변화에서는 신뢰에 기반한 유통으로 발전해야 한다. 분산 단계에서 농산물 현물이 굳이 가락시장까지 왔다가 소비지로 다시 운송되는 이유는 도매유통인이 현물을 보고 살지 말지와 입찰 가격을 정하기 때문이다. 출하자에 대한 신뢰를 높여 인터넷 공간에서 농산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가락시장 경매장의 대형 선풍기로는 기후 변화에 대비할 수 없다. 시민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다. 가락시장 현대화, 더 늦추어서는 안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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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우려먹은 이번 정부가 한 게 뭐가 있나.” 국회의원 최연혜의 말이다. KT 통신대란을 꼬집은 말이다. “국가기간시설은 전시나 테러의 1순위 대상이고, 특히 북한의 1순위 타격 대상” 같은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세월호에다 북한 테러까지 들먹이면 그 말을 경청하긴 쉽지 않다. 꼭 언어의 품격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갑자기 교양인이 되어 한 놈만 팬다는 천박한 이야기를 멀리하고, ‘야지·겐세이·뿜빠이’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비판할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각종 범죄를 주도하거나 방조한 잘못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의 의정활동도 신뢰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여전히 사립유치원을 감싸고, 예산심사에선 ‘비정’하기만 했다.

최연혜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우파 정당에 몸담고 있지만, 시작은 달랐다. 자유한국당의 어법을 빌리면 좌파의 돈으로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 유학비용을 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지난해 이맘때 한국의 촛불시민에게 인권상을 줬던 기관이다. 유학생 처지에서야 비용을 댄다면야 좌우를 가릴 형편이 아니지만, 그 다음 행보도 오락가락의 연속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학을 마치고 철도대학 교수로 지내던 최연혜를 전격 발탁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었다. 대통령 인수위와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에도 참여했고, 철도공사 부사장에다 철도대학 총장까지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로 지역구에 출마한 최연혜는 3위로 낙마했지만, 보란듯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자신을 믿어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충성은 대단했다. 철도파업이 일어나자 4356명의 노동자를 한꺼번에 직위해제했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전부였다. 철도공사 사장으로 일하면서 KT처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통한 인건비 줄이기에만 골몰했다. 정규직 숫자를 줄이는 만큼 철도 사고는 잦아졌다. 노조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정권의 신임은 두터워졌고, 2016년 총선에선 비례대표 자리가 주어졌다.

이런 사람의 비판이 집권세력에게 뼈를 깎는 각성의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그냥 흘려버리기 딱 좋은 조건이다. 세월호에 빗댄 대목에선 마음이 상하고, 기회만 되면 반복하는 안보장사엔 말문이 막힌다.

그래서 문제다. 야당은 따끔한 야단도 치면서 집권세력이 긴장을 풀지 않도록 비판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야당은 비판자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다. 너무 낡았고 기본적인 애민의식, 애국심도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너나 잘하란 비판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의 요직 진출은 성황이나, 막상 시민사회는 6월 항쟁 이후 가장 심각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시민사회를 과잉 대표했던 자들이 근사한 자리를 꿰차는 동안, 정작 그들의 기반은 허물어져가고 있다. 심지어 집권세력에게 섣부른 비판은 삼가라는 충고나 받는 곤궁한 처지가 되었다. 연일 집권세력의 공격을 받는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집권세력은 오늘도 편안하다. 20년을 넘어 더 오랜 세월도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윤창호의 죽음이 불과 얼마 전인데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을 하고, 경호실의 30대 사무관은 술에 취해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행패를 부린다. 곳곳에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행태는 적폐세력을 꼭 닮았다. 이번엔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사무장까지 챙겼다. 일이야 어차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법이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통신대란으로 서울은 엉망이 되었다. 국가기능이 마비되면서 진짜배기 고통은 약자,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텔레비전까지 모두 먹통이 된 상황은 예리한 칼처럼 약자를 파고들었다. 고통은 새로운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KT의 고객응대업무는 진작 자회사로 분리되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잘못을 대신 감내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권세력은 평온하기만 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고향 일정을 다 마치고 사건 발생 12시간이 넘어서야 현장을 한 번 둘러봤다. 대책회의는 다시 12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리곤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중국 총리도 만나고 여러 도시 책임자들과 교류도 해야겠지만 그건 대구, 충남 등 6명의 시·도지사에게 맡겨도 좋을 일이었다. 서울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잠재적 대권주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시민의 곁을 지키는 시장이라는 기본조차 잊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건전한 비판세력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서울시의회만 하더라도 전체 110명 중 민주당이 102명이다. 야당의 목소리는 애써 귀 기울여도 듣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인가. 민주당은 벌써부터 대선 전초전을 치르고 있다. 친문과 비문을 갈라치는 건 예사고, 대선 예비주자들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집권여당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적폐청산, 개혁입법 통과가 아니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당장의 권력은 물론 미래 권력까지 어떻게 해보겠다는 속셈들이다. 신경쓸 만한 비판세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배부른 집안싸움을 맘껏 벌이는 거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오로지 대통령의 선의와 집권세력의 호시우보에만 기대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여태까지의 정권들이 숱하게 보여주었다. 역대 정권들도 대개 비슷한 경로로 망했다. 철옹성 같은 지지율도 단박에 무너지고,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야유를 보내는 일은 현실정치에선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긴장이 풀어진 정권이 무너지는 건 일도 아니다. 여태껏 누린 지지율, 그 호시절은 어쩌면 적폐세력 때문에 얻은 반사이익일지도 모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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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김홍중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주의자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생존주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경쟁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경쟁은 최종 종착지 없이 계속해서 미래로 연장된다. 셋째,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든 잠재 역량을 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경쟁을 통해 얻는 것은 평범한 안정이다. 다섯째,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과 체제에 기능하는 것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생존주의자의 모습을 청년보다는 오히려 대학에서 본다. 성공을 위해 자기경영하라는 정언명령이 온 나라를 휩쓸던 1990년대 대학은 소위 CEO 총장에 의해 하나둘씩 장악되었다.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를 내야만 하는 CEO 총장은 건물 짓기와 같은 외양 성장에 몰두했다. 대학마다 재정 확충을 위해 등록금을 마구 올렸고, 결국 역풍을 맞았다. 반값 등록금 운동과 같은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 지난 10여년간 등록금을 동결당한 것이다.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선의에서 시작된 등록금 동결은 대학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돈줄이 마른 대학은 국가가 제공하는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무한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어차피 한정된 재원이라 경쟁의 승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작은 거라도 사업을 따내서 당장 도태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사업을 따온다 해도 기뻐할 새도 없다.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중간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군가 중도 탈락하도록 설계된 사업에서 대학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폭탄을 떠안지 않으려고 대학은 잠재역량을 온통 자본으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온갖 제재를 통해 교수에게 연구비를 따오라고 압박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인다. 되도록 신임 교수를 뽑지 않는다. 직원도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학과 행정업무를 장학금 명목으로 대학원생에게 떠넘긴다.

대학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시장 경쟁원리를 도입했다는데, 실제 결과는 참혹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손실을 회피하여 평범한 안정을 누리고자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를 하면 이윤이 나와야 하는데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장기적인 교육 투자를 하지 않고 그저 현재 이대로라도 살아남고자 한다.

마침내 대학은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대학의 구성원 모두 생존주의자가 되어 체제에 복무하느라 바쁘다. 학생은 스펙 쌓고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다. 교수는 매년 반복되는 평가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연구, 교육, 봉사에 애를 쓴다. 이렇듯 무한경쟁에서 소수의 승자를 찬양하는 온통 긍정적인 세상에서 비판적 사유는 생존을 위협할 뿐이다.

대학이 생존주의자로 추락하는 사이 대학무용론이 온 사회로 번져나가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된다며 볼멘소리한다. 그럴수록 국가는 취업률을 지표 삼아 구조조정하겠다며 대학을 겁박한다. 대학은 취업훈련소를 자처하지만 실상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다. 기업이 할 일을 대학이 떠안았으니 애초부터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실용적 쓸모가 없다는 질타만 쏟아진다.

그렇다고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 내용을 창출하려면 연구를 해야 하며, 연구를 하려면 대학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학원은 학위장사로 여윳돈 만드는 창구로 활용되어 왔다. 이제 늦게나마 국가가 대학원도 평가한다고 하니 부랴부랴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차피 돈벌이도 제대로 안되는데 낮은 평가 지표를 맞아 곤란한 처지에 몰리기 전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강좌개설 요건을 강화해서 강좌수를 축소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그 예다. 묻고 싶다. 정녕, 대학을 이렇게 생존주의자로 방치해도 되는가? 도대체 ‘아직 오지 않은 세대’에 어떤 죗값을 치르려고 이러는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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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들이 개인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까지 18년이나 걸렸다는 점이다. 사법부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씨(가운데)와 다른 피해자 유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두 손을 번쩍 들며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법원 2부는 29일 고 박창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낸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양금덕씨 등 5명이 낸 소송에서도 “미쓰비시중공업은 1인당 각 1억~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현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강점기의 구 미쓰비시중공업을 계승했다고 보고 불법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용민의그림마당]2018년11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하지만 승소가 확정된 이날, 이미 고인이 된 상당수 피해자들은 선고 결과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고 박창환씨 등이 소송을 낸 것은 2000년이다. 1심 재판부는 소 제기 7년 만인 2007년 원고 패소 판결을 했고, 이후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2012년 대법원이 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해 2013년 파기환송심에서 미쓰비시 측 책임을 인정했으나, 최종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는 5년이 더 걸렸다. 2012년 제기된 여자근로정신대 사건도 2심 승소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3년 이상 걸렸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의 요구로 선고를 지연시킨 정황이 최근 사법농단 수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현재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배 소송 10여건이 서울과 광주 등의 1·2심 법원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원들은 재판을 서둘러야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을 되새겨야 한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려온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만 사법부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도 거친 언사로 반발만 할 게 아니라 책임있고 이성적인 대응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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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취임 이후 최저인 48.8%로 떨어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9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8.8%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조사 기준으로 9주 연속 하락해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부정 평가는 45.8%에 달했다. 긍정과 부정 평가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3.0%포인트에 불과해 이런 추세라면 긍·부정 평가가 엇갈리는 ‘데드크로스’가 임박한 모양이다. 지지율 하락의 내용을 보면 더 심각하다. 중도층에서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고,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우호적이었던 50대 장년층도 부정평가 우세로 돌아섰다. 지지율 하락세가 구조화되는 조짐마저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지율 하락은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 지지부진한 개혁, 이재명 경기지사를 둘러싼 내부 분열 등이 중첩돼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리얼미터는 “고용과 투자 등 경제지표가 몇 달째 저조하게 이어지며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약화된 것이 지지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적폐청산’을 제도화로 이끄는 개혁 작업이 부진한 데다 노동계와 정부 간 갈등, ‘혜경궁 김씨’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문 대통령을 약하게 지지하던 중도·보수 성향의 주변 지지층 이탈을 초래한 것으로 진단한다. 결국 무엇보다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의 성과 부족이 민심 이반을 추동하는 양상이다. 실제 ‘일자리정부’를 내세웠으나 성과는커녕 고용지표는 날로 악화되고 있고, 양극화는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정권이 정책을 실행하고 개혁을 추진할 힘을 부여받는 토대다. 지지율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부정평가가 더 높아지면 그 추진력이 약해지고, 정책이나 개혁 수행은 더욱 어려워진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가 지지율 50% 붕괴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는 원인으로는 압도적으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꼽힌다. 이제는 무엇보다 경제와 민생을 우선시하고 구체적인 정책 성과를 내야 한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면 한반도 평화 정착과 각종 개혁을 추진해갈 동력도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외양만 부드러웠을 뿐 실은 일방통행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대목은 없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협치의 실종, 소통의 부재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어나는 까닭을 살펴야 한다. 얼마 후면 집권 3년차, 집권 중반기에 진입한다. 대통령 지지율 50% 붕괴는 민심의 경고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정의 자세와 방향을 벼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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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타계 소식을 들은 뒤 오래전 들은 얘기 하나가 떠올랐다. 30여년 전 고인의 강의 시간에 들은 얘기다.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과연 고인이 한 얘기가 맞는지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대학 신입생이던 어린 나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대략 이런 취지였다.

‘국립대를 다니는 여러분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화장실만 봐도 그렇다. 다른 대학에 가봐라. 이렇게 좋은 화장실이 이렇게 많이 있는 대학이 없다. 그러니 여러분은 혜택을 받은 만큼 갚아야 한다.’

고인이 왜 굳이 화장실을 예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사회에서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고. 고인이 말년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난 19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전직 대법관으로는 처음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사법농단’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주인공에겐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의 중학교 담임교사는 그에게 서울의 환일고 야간부를 추천했다. 그를 보살펴줄 독지가도 소개해줬다. 그는 자식이 없던 이 독지가 부부를 양부모로 모시면서 환일고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판사가 됐다. 결혼식 때도 친부모와 함께 양부모를 모셨고,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상가를 지켰을 만큼 양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범죄 피의자가 돼 구속을 눈앞에 두고 있다니.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가 받고 있는 혐의는 많다. 무려 30개에 이른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낼 당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원세훈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판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소송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이라는 대법원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내부정보를 수집하고 일선 법원의 위헌제청 결정을 취소한 혐의도 있다.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소모임, 인터넷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 대한변호사협회 등을 와해시키거나 압박하고 차성안·박노수 등 현직 판사를 사찰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의 범죄 혐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인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개입 등도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법관으로 평생 봉직하는 동안 나름 최선을 다했고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는 동안에도 사심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는 동안 한 일의 결과, 법원은 지금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지난 27일에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70대 남성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통 때라면 개인의 일탈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사건이지만, 지금은 모두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법관은 사회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일반 공무원은 행정고시에 합격해도 5급으로 시작하지만 판사는 임용되면 3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지법 부장판사는 1급, 고법 부장판사는 차관급, 대법관은 장관급으로 대우받는다. 신분도 특별하다. 재판에서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자신의 양심 이외에는 어떠한 외부적 간섭이나 영향도 받지 않도록 보장을 받는다.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징계나 형사상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이 아니면 면직되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이만큼의 대우를 받는다면, 이를 갚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은혜를 베풀어준 양부모를 잊지 않고, 법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법관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증자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을 남겼다. ‘남을 위함에 최선을 다했는가’ ‘벗과 사귐에 있어 신용을 잃지는 않았는가’ ‘스승에게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겼는가’, 이 세 가지를 그는 매일 되돌아봤다고 한다. 공직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공직자가 자기 앞만 챙겨서는 안될 것이다. ‘일일삼성’이 아니라 ‘일일사성’은 해야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일일십성’ ‘일일백성’도 부족할 수 있다. 공직자의 되돌아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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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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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김장철. 이 집 저 집에서 구수한 깨 볶는 냄새. 배춧잎의 새하얀 고갱이 향기가 또 얼마나 다디단지. 나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베짱이. 밭에선 할매들이 배추를 뽑아 다듬고, 나는 소나무를 성탄트리 삼아 별과 방울을 매달았다. 팝스타 스팅은 성탄 캐럴을 한장 냈는데, <겨울밤>이라는 음반. 앨범에는 팬들에게 띄운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녹음실에서 한해 겨울을 보냈어요. 피렌체 북부지방의 찬바람이 매서웠죠. 일곱명의 음악가들과 모직 코트를 껴입고 주방 난로에 둘러앉아 머그잔으로 손을 데웠죠. 녹음기간 11월부터 3월까지 그 지방의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 했어요. 어찌나 추운지 입김이 풀풀 나오고 길은 얼음장이었죠. 나는 어릴 적 깜깜한 새벽에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하면서 자랐어요. 하얗게 쌓인 숫눈길을 걸었죠. 우유배달을 마쳐도 해가 뜨지 않았죠. 우리 집의 유일한 난방장치는 연탄난로였어요. 전등을 끄고 앉아 난로를 혼자 바라보곤 했죠. 붉게 타오르는 연탄과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하염없이 쳐다봤어요.”

나도 연탄난로를 보고 자랐다. 아래층 위층 두개의 연탄을 불구멍이 보이도록 갈아 끼우는 일.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고갤 돌려봐도 별수가 없었다. 콧속으로 매캐한 무엇이 훅 들어오곤 했다. 새벽예배를 위해 교회 난로는 살리고 목사관의 연탄보일러 불씨는 죽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은 아침 내내 추위에 떨었다. 미안했던지 목사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코코아를 컵에 가득 담아 건네시곤 했다. 아버지가 부엌에 나타나서 하신 일은 자신이 즐기시던 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코코아를 타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그 코코아 맛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연탄보다 연탄과 맞바꾼 코코아가 훨씬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케이크도 한조각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울케이크 한조각 주세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제발요. 이 집의 주인과 안주인, 복받으세요.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 모두 무럭무럭 자라길. 마구간의 가축과 문 앞의 개도 열배의 축복이 있길.” 스팅의 캐럴 ‘소울케이크’로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신,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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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친지들에게 거액을 빌린 뒤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래퍼 마이크로닷이 지난 25일부로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채널A의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서 큰 인기를 모은 뒤 다른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던 도중에 터진 ‘불상사’였다. 나 역시 얼마 전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로닷을 보고 호감이 생기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20년 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범죄, 의혹이 터져나온 직후 마이크로닷과 소속사의 대응 등을 전해들은 뒤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이크로닷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연일 연예인 부모를 겨냥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래퍼 ‘도끼’ 어머니의 과거 사기 의혹이 불거졌고, 다음날 도끼가 공식 사과했다. 27일에는 인기 아이돌그룹 마마무의 멤버 휘인의 아버지가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휘인은 당일 저녁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이지만, 원만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닷. 사진 경향DB

사건의 당사자가 된 연예인들은 억울함이 클 것이다. 마이크로닷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여섯살에 불과했다. 성인이 된 뒤 부모가 저지른 범죄를 알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도의적 책임’ 외 법적 책임까지 묻기는 어렵다. 도끼와 휘인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이들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조금이라도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아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을 비롯한 연예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잘해선 안되는 시대구나. 주변 관리에도, 사고 후 수습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나도 그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최근에 만난 종교인들이 생각났다. 종교담당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금이라도 ‘높은’ 종교인들을 볼 기회가 생기면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가지려 하지 않고, 수행길로 들어서려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종교가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요.”

이런 무식하고 기초적인 질문에도 종교인들은 사뭇 진지하게 답을 주신다. 그러나 답변을 듣고 만족스러웠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한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에 가봐라. 고목이 쓰러지는 소리는 온 산을 울린다. 그러나 작은 묘목이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잘못만 크게 부각되기 마련이니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열심히 하다보면 잘될 것’이란 의미로 들렸다. 한 교단의 고위직 종교인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단을 창시한 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된다.” 역시나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로 해석됐다.

답답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연예인도 혼자만 잘해서는 되지 않는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주변에서 잘못을 했으면 함께 수습에 나서야 일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항상 조직을 정비하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없게 단속해야 한다.

만족할 만한 답변은 최근에 한 개신교 목사님에게 들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항상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종교 불황기’에도 그 목사님이 속한 교회는 계속 신도를 늘리고 있다.

물론 교회의 신도수를 늘리는 것이 종교의 본령은 아니다. 교세 확장에만 몰두하다 종교의 본질까지 훼손해버린 사례도 많다. 그래도 그 ‘성장의 이유’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이제 나만 잘해서 되는 시대는 아니기에.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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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시험발사체 발사가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원은 28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한 “시험발사체 엔진이 당초 목표했던 140초 이상 연소했다”고 발표했다.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은 엔진의 연소시간으로 평가하는데, 이번 발사체는 목표 연소시간을 넘어 정상 추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발사체에 장착된 75t급 엔진은 한국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발사체 엔진 기술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발사 성공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1996년 우주발사체를 자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후 20여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발사체의 엔진 관련 기술은 어느 나라든 해외 이전을 꺼리는 핵심 분야다. 이에 한국 연구진은 순수 기술로 이런 난제를 하나씩 풀어가야만 했다. 연구진은 엔진 설계만 20회 넘게 바꾸고, 지상 연소 시험을 100차례 진행하며 엔진 성능의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번 시험발사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 10월 발사예정일을 코앞에 두고 압력감소 현상이 드러나 발사가 연기되기도 했다. 우주발사체는 준비를 철저히 해도 100%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수십만개의 부품이 모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내야만 작동 가능한 고도의 복잡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번 성공은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이 진일보했음을 의미한다.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엔진 시험발사체가 28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59분58초에 발사한 시험발사체의 연소 시간은 목표 시간을 11초 넘긴 151초로 안정적인 성능이 확인됐다. 이 발사체는 ‘누리호’에 쓰일 75t급 액체엔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은 주요 선진국에 수십년 뒤떨어져 있다. 한국 발사체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 위성로켓 시장이 이미 포화돼 한국 발사체가 가격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발사체에 들어갈 자금을 위성체나 다른 우주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주기술 개발은 눈앞의 사업성만을 따질 분야가 아니다. 발사체 개발은 안보 및 달이나 화성 진출 등 우주산업 분야에서 필수적인 핵심기술이다. 개발과정에서 다양한 기술 발전도 기대할 수 있고, 산업의 전후방 효과도 높다.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산업도 없다.

우주발사체가 셔틀로 지구와 우주공간을 오가는 시대다. 화성에 인간의 거주도 추진된다. 우주가 인간의 활동무대가 된 지 오래다. 누리호 발사체 발사는 2021년으로 예정돼 있다. 이번 성공을 시작으로 한국은 우주 개발에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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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예정됐던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논의가 또 불발됐다. 교육위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 3법과 자유한국당의 자체 법안을 함께 논의하려 했으나 한국당이 법안을 내놓지 않은 데다 유치원 3법 논의에 응하지 않으면서 유회됐다. 이 같은 한국당의 지연 전술로 유치원법 개정을 위한 법안소위가 부실하게 운영된 게 이번이 세번째다. 유치원 3법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꼼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16일 (출처:경향신문 DB)

이날 국회 교육위에서 보여준 한국당의 모습은 무책임하고 치졸했다. 한국당 소속 교육위원들은 법안 심사 회의에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병합을 논의키로 했던 한국당 자체 유치원법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출석했다. 법안 제출 시기 등 향후 국회 일정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회 교육위는 12월3일 법안소위를 열어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논의가 이뤄질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음번에도 한국당이 자체 법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사립유치원 개혁법의 연내 통과는 물 건너가게 된다.

한국당은 당초 박용진 의원의 유치원 개혁법에 반대하며 ‘유치원 3법’과 자신들이 만든 법안을 병합 심사해 유치원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법안을 만들기 위한 시간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한 달이 지나도록 법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유치원 개혁법안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당이 사립유치원의 개혁법을 미적대는 것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전방위 로비 탓이다. 한유총은 최근 한국당 의원들에게 ‘유치원 3법’이 헌법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고, 한국당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대체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유총은 국회 로비 이외에도 집회 등 세과시를 통해 ‘유치원 3법’을 저지할 방침이다.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대 집회를 앞두고 소속 유치원들에 ‘학부모 모집 할당량’을 내렸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학부모를 볼모로 한 얄팍한 술수는 더 이상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0.9%가 ‘유치원 3법 조속 통과’를 지지했다. 한국당 지지층에서도 63.2%가 법안에 찬성했다. 한국당과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의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유치원 3법 통과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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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사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사간 곳이 하도 오래된 집이라 수리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원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이젠 구분조차 어려운 문짝에 직접 페인트칠을 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님, 인터넷 이전설치 신청하셨죠?” 통신사 고객상담원이었다.

“네네, 제가 신청한 날짜에 설치가 가능한가요?” 반갑게 받았는데, 그는 곧 전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객님, 이사가신 곳이 저희 통신사와 제휴를 맺은 곳이더라고요. 이참에 다른 상품을 이용하시면 할인 혜택을 더 많이 받으실 수 있어요.”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이전설치 담당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혜택을 받으려면 제휴카드를 새로 발급받으란 거잖아요. 전 이미 다른 제휴카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그런데 그것보다 이게 혜택이 더 커요. 지금 계산을 해보면….”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인데, 끼어들 틈조차 전혀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그에게 나의 인내심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귀찮은 기색을 감추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순도 100%의 짜증 섞인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

“저는 카드를 또 발급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전설치 담당자가 아니면 통화도 어렵고요. 끊겠습니다.”

통신사의 상술을 욕하며 다시 페인트칠을 이어갔지만, 이상하게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감정이 여과 없이 담긴 내 말투에도 끝까지 하이톤의 발랄함을 유지한 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던 그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그가 나에게 건 전화는 그날 몇번째 통화였을까.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기 전 몇번이나 심호흡을 했을까.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듣고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점잖게 거절당할 수 있을지, 그는 전화를 걸기 전 얼마나 고민했을까.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으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만 선의를 보낸다”는 소설가 C S 루이스의 말처럼, 감정노동자에게 먼저 전화 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나는 정작 일상에서 마주치는 그들을 그동안 얼마큼 성실하게 대해왔던가. 물론 나는 여전히 카드를 더 만들 생각이 없기에 지금 다시 전화를 받더라도 결과는 같겠지만, 그래도 좀 더 따뜻하게 말할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힘든 하루를 보낸 퇴근길 지하철에서 옆 사람과 부딪쳐 연신 사과하자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따뜻하게 돌아온 한마디에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던 누군가의 글이었다. 사람들은 무심코 주고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꼈던 자신의 경험담을 댓글로 달기 시작했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편의점 아르바이트할 때 봉투값 받는다는 이유로 얼굴에 동전을 던진 손님, 빨대 위치를 못 찾으시는 것 같아 가르쳐드렸더니 ‘신경 끄고 너나 잘하라’던 손님들 때문에 유난히 힘든 날이었어요. 그날이 마침 1월1일이었는데 한 손님이 저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힘내세요’라고 말하는데 순간 눈물이 나와서 손님도 저도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저도 피자집 아르바이트하면서 밥 먹다가 홀에 손님이 오셔서 바로 일어났는데, 미안하다고 천천히 만드시라고 할 때 이상하게 울컥….”

“전 몇년 전 일요일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그날도 상담사분이 받으시더라고요. 전화를 끊기 전 상담사분이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하시길래 ‘상담사님도 주말인데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 매뉴얼 말투가 아닌, 떨리는 목소리로 ‘고객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실례가 될까봐 위로나 다른 얘기는 못하고 ‘제가 더 감사해요’라고만 말하고 끊었는데 계속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따뜻한 말 한마디만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는 없다. 콜센터 직원의 실적 압박은 여전할 것이고, 점심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쉽다는 건 말을 건네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에게 선물 같은 일이 아닐까.

며칠 전 새로 이사한 집에 조명을 설치했다. 설치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던 기사분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러 집을 다녀봤는데, 고객님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기분 좋게 해드린 기억이 없어서 “제가 뭘 해드렸는데요?”라고 되물었더니 돌아온 답. “조명을 켜니까 예쁘다고 해주셨잖아요.”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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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일장이 섰다. 장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흰 천막이 줄지어 들어섰다. 맨 먼저 천막을 치는 건 장터 들머리에 붙박이로 자리를 잡는 국밥집이었다. 국밥집은 커다란 솥을 내걸고 돼지 뼈를 고았는데, 솥에서 김이 솟아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퍼질 무렵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른 아침 먼 길을 걸어 장에 온 이들은 해가 중천에 오르기도 전에 벌써 국밥집 의자에 궁둥이를 걸쳤다. 대개 사람들은 서둘러 국밥 한 그릇 떠먹고 자리를 비웠지만, 어떤 이들은 술판을 벌이고 오가는 이들을 불러 앉혔다. 취기가 오른 어른들의 거친 말이 오가고, 낯선 어른들과 붙어 앉아야 하는 자리에 아이들이 낄 틈은 없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갈 적마다 국밥집을 기웃거렸지만, 할머니는 매몰차게 그 앞을 지나쳐버렸다. 결국 나는 그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어 보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처음 시골 장터에서 국밥을 먹을 때 그 국밥집을 떠올렸다. 그 집도 이 맛이었을까?

동네 한 아파트 단지에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서는데, 잔치 국수를 판다는 말을 듣고는 벼르고 별러 찾아갔다. 아파트 한가운데 예닐곱 개의 천막이 쳐 있었다. 국숫집은 천막 한쪽 구석에 김을 뿜어대는 솥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는 플라스틱 탁자 네 개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국숫집 주인은 짧은 커트 머리에, 흰 패딩 조끼를 입은 멋쟁이였다. 그는 능숙하게 국수를 말아 내놓았다.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이미 소문난 집이라 그런지 점심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학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와 국수를 먹었다. 장을 보러 나온 할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지나가던 친구를 불러 국수를 나눠 먹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국수를 먹으면서 쉬지 않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시골 장터 국밥집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나처럼 장터 국숫집을 떠올릴 것이다.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한가운데 따뜻한 김이 품어져 나오던 국숫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다. 아, 나는 여전히 우리 동네 장터 국밥집이 그립다. 먹어보지 못해서 더 그립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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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할아버지랑 싸웠어?

- … 그런 거 아냐.

- 근데 왜 할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안 하셔? 지난주부터 댁에 가도 왔냐, 하시곤 방에만 계시는데?

- 할아버지가 여행 가고 싶으시대. 그런데 거기 가면 다시 못 오실 것 같아서 그래.

- 어디야, 거기가?

- 우주양로원.

- 와…, 나도 거기 알아. 뉴스에서 봤어. 거기 되게 좋던데? 우주랑 지구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지고 시설도 좋고. 그런데 가면 왜 다시 못 오셔?

- 거기에서 살면 저중력 때문에 몸이 점점 약해져서 다시 지구에 오면 견디기가 어려워. 특히 노인분들은 우주양로원에 적응하면 다시는 지구에 내려올 수 없어. 뼈나 근육이 약해져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어.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 … 그럼 할아버지도 거기 가면 다시 못 오시겠네?

- 그래, 그래서 아빠는 할아버지가 거기 안 가셨으면 좋겠어. 너도 할아버지랑 영원히 바이바이하고 싶진 않지?

- 응.

- 아버지, 꼭 가셔야겠어요?

- … 너 솔직히 말해보자. 내가 남은 재산을 다 우주양로원 가는 데 쓰려는 게 못마땅해서 그런 거 아니니?

- 무슨 말씀이세요, 저도 쓰고 살 만큼 재산은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거기에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온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저희들하고 영영 이별해도 상관없으세요?

- 24시간 아무 때나 입체영상 전화가 가능한데 이별은 무슨 이별. 나이 드니까 몸이 힘들어 이제 죽기 전까지는 저중력 상태에서 좀 편히 살겠다는데 그게 잘못이니? 내 입장에서 좀 생각해 봐라. 나 지구에서 살 만큼 살았잖니. 앞으로 잘해야 10년, 20년인데 이제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 거길 가면 몸과 마음이 다 편할 텐데 굳이 지구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만 할 이유를 모르겠다.

- 우주양로원에 가는 로켓에 탔다가 가속도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있잖아요.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된 게 아니라고요.

- 비행기 사고 난다고 비행기 안 타니? 정말 문제가 있다면 우주양로원 왕복선 운행을 중지했겠지. 네 걱정은 이해한다만 이제 그만 날 놔 줘라. 네가 동의서에 서명을 해줘야 출발수속을 밟을 수가 있어.

- 아빠, 할아버지 가시기로 했어?

- 그래, 하늘나라로 가신단다.

- 정말 다시는 못 돌아오셔?

- 응. 옛날부터 하늘나라는 한번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곳이야….

최근 우주개발을 향한 긍정적 움직임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우주개발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냉전시대에 미국과 옛 소련은 체제 경쟁의 차원에서 강력한 우주개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으로 승부가 갈리자 그 열기는 식고 말았다. 그 뒤로는 인공위성 등 경제적·사회적 실용성이 검증된 일부 분야 외에는 사실상 인류의 우주개발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엊그제 미국의 로봇 우주탐사선 인사이트가 무사히 화성에 착륙했다. 어제는 한국형 로켓엔진을 탑재한 발사체가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산업체 ‘스페이스X’는 재활용 가능한 로켓발사체를 개발했고, 중국은 이미 유인우주선 분야에서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마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으로 일반인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오르는 추세다. 그렇다면 우주개발 르네상스는 다시 오는 것일까?

관건은 역시 우주개발의 경제적 효용성이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좋은 예는 룩셈부르크 모델이다. 인구 60만명에 불과한 소국 룩셈부르크는 소행성 등에서 광물자원을 채굴하는 우주광산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국제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의 우주개발 전략은 우주 진출의 전 과정을 다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주에 나가기 위한 발사체는 미국이나 러시아 등이 보유한 로켓을 빌리면 된다. 그러나 일단 달이나 소행성에 도착하면 그다음에 광물자원을 캐는 기술은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주개발에는 틈새시장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접근이 아니고서는 우주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인공위성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미래에, 이를테면 우주양로원 건설의 선두주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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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지역의 명문여고를 졸업한 아내에게 출신고의 교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일이 있었다. 그는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기억해 냈다. ‘참된 일꾼’은 내가 찾아서 보여주자 곧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 교훈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아니 별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아내가 졸업한 W여고의 교훈 3가지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고이든 남고이든 굳이 그 교훈에 ‘○○한 딸·아들’같이 특정 성별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착한’이라는 형용사는 권장될 만한 것이지만 그것이 여성을 수식하고 나면 그 뜻이 묘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든든한’이라는 형용사가 남성과 어울려 ‘든든한 아들’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면 더욱 한 단어의 훼손이나 오염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 딸은 착해요” “우리 아들은 든든하죠” 등과 같은 익숙한 결합은 단순히 국어사전에 명시된 의미를 넘어서, ‘훈’을 건네는 주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사회적 욕망이기도 하고 가문(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욕망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사회는 착한 딸들에게 많은 순종과 희생을 강요해 왔다. 착함을 강요받은 딸들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받지 못했고 돌봄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났다. 그들은 참된 일꾼이 되어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가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형제의 학비를 보탰다. 1970년대의 이름 없는 어린 여공들은, 자라서 어진 어머니로서 착한 딸과 든든한 아들을 키워내는 역할까지를 도맡았다.

<별들의 고향>(1973)이나 <영자의 전성시대>(1973)의 서사이고, 최근에는 <우리들의 누이>(2018)라는 소설에서도 이 시기의 여성들을 다루었다. 그런 젊은 날의 서사를 가진 여성들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들에게 그만한 빚을 지고서도 여전히 염치없이 그 훈을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하는 데 열심이다.

나는 나의 자녀가 (특히 딸이) 3년 동안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라는 훈을 보며 등교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새겨진 큰 바위를 보는 일도, 그것이 명시된 교가를 부르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그가 착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나와는 달리 어진 부모가 되기를 바라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참된 노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순종하거나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하지 않기를 더욱 바라고, 결혼과 출산을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기를 더욱 바라고,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더욱 바란다. 그러니까 사회적 개인이 아닌 온전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공립여학교의 교훈이나 교가를 직접 찾아보면서, 나의 아내가 졸업한 학교의 사례가 특별한 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성실, 순결, 봉사’라든가 ‘겨레의 참된 어머니가 되자’라든가 ‘여성의 착한 꿈은 여기에서 자라고’와 같은 훈들을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그만 미안해지고 말았다. 별로 이상한 교훈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생명을 다한 줄 알았던 언어들은 학교에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런데 W여고는 몇년 전에 교훈을 바꾸려고 시도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교감으로 재직했던 모 선생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도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라는 교훈이 낡은 것이라 생각해 바꾸고 싶었다. 학생·학부모·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1명이 찬성하고 402명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훈 개정을 위한 공모전을 열기로 했으나 총동문회에서 만장일치로 반대했다는 것이다. 항의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 시기 지역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동문회는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치 않는 학교의 전통”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제는 노년이 되었을 W여고의 초기 졸업생들은 착한 딸로서, 어진 어머니로서, 그리고 참된 일꾼으로서 자신의 삶과 삶의 태도를 형성해 왔을 것이다. 그 언어에 익숙해진 몸은, 그것을 쉽게 ‘전통’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 훈이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익숙해지고 만다.

나는 주변의 훈을 바꿀 것을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다. 교훈뿐만 아니라 사훈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일상공간의 모든 훈을 바꿀 필요가 있다. 순결, 정숙,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래미안캐슬아트빌, 교수마을과 같은 기괴한 언어들이 여전히 이 사회를 포위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되고, 특히 그 언어로 자신의 몸을 형성해 갈 어린 세대들(학생들)에게 전해져서는 안 된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은 누군가를 구속하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우선, 주변의 언어를 전복시켜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 훈들을 바꾸어야 한다. 그에 더해 당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훈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아이들이 여전히 그 훈을 노래하고 교정을 거닐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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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문 화동사범대학(화사대) 전파(傳播)학원에서 지난 16~17일 아시아마르크스주의전파연구소(아마연)의 현판식 및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 행사에는 중국 각지에서 온 내빈 수십명과 대만에서 온 20여명을 비롯해 한국에서 8명, 일본에서 3명이 초청됐다. 지난달 16일 우석대학교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창립 때 아마연의 린저우위앤(林哲元) 교수와 김민정 박사가 와준 것에 대한 답례이자, 동아시아평화연구소의 첫 국제교류사업으로 최자원 박사, 손현주 박사와 함께 방문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한다니…, 괜찮나?(웃음)” 출발을 앞두고 일행 한 명은 이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터부시하던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이 위험한 사상을 ‘전파’한다고 하니 여전히 거부감이 남아 있을 수밖에.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보편화됐다. 반공국가이던 한국에서도 이제는 마르크스주의가 연구 정도에 머무는 한, 크게 문제될 일이 없다. 더구나 소련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현실 변혁의 무기’로써의 위험성을 상실했기에 구태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공·안보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사회주의를 압도할 듯 보였던 자본주의도 몇차례의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모순이 극대화됐다.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드러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더불어 마르크스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는 요즘이다.

상하이의 서점에도 마르크스 탄생 200년을 주제로 한 특설 코너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엥겔스 책은 몇 권 안되고, 주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상하이 중앙도서관에서도 특설 코너를 마련해 공산주의 사상의 전파와 발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교 시절에 읽었던 중국의 계몽주의적 공산당 사상가 아이스치(艾思奇) 관련 전시를 보고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내 청춘시대를 회상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전파 과정을 조명하고, 그 정통이 중국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시장경제화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의 사멸을 예언한 마르크스의 교리와 동떨어져 보이는 원색적인 ‘쩐(錢)’의 세계가 휘황찬란한 황푸강 강변의 야경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변혁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입과 공산당 성립의 역사 속에서 정통성을 내세우고 국민을 통합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를 초대한 화사대 전파학원은 신문과 방송 등 4개 학과가 있는 단과대학이다. 아마연도 이름과 달리 내용에 있어서는 대만의 진보운동과 양안 통일운동의 역사와 현안을 연구하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대만 문제를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고 대만의 각계각층과의 통일전선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아마연의 소장인 뤼신위(呂新雨)는 전파학원장과 겸임이라서 실질적인 책임자는 린저우위앤 교수다. 그는 대만에서 대학을 나와 난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다음 난징의 동남대학 마르크스주의학원에서 교수를 하다가 올해 봄에 화사대로 옮긴 학자다. 그는 젊어서부터 양안의 통일과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만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화사대에서는 그의 이적과 더불어 대만과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연구소로서도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과 민중의 연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고 보았다. 몇 해 전에 타계한 대만 노동당의 거목 린쓰양(林書揚) 선생이나 첸잉쩐(陳映眞) 선생과의 공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독재의 감옥에 갇힌 경험을 바탕으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의 길이야말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간해방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주도하에 ‘제1인터내셔날’이 조직돼 ‘공산당 선언’이 나온 지 170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만국의 자본가들을 전율케 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공산주의는 노예제나 식민지의 굴레 아래 신음해 온 세계의 인민들 속으로 열병처럼 만연됐다. 이상사회의 건설과 인간해방의 사상으로 동아시아 민족해방투쟁의 무기도 됐다. 동아시아에서는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노동계급의 형성이 미숙했으며,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모순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해방투쟁이었다. 바꿔 말해 공산주의의 이상을 가진 열혈 청년들의 현실적 과제는 반제민족해방이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혁명의 지도자 마오쩌둥도 호찌민도 김일성도 그랬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속에서 “우리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위한 공산주의다”라고 했다. 그러한 구체적인 요구에 뒷받침되지 않고 관념적인 공산주의 사상만으로 백두의 눈보라 속에서 그 간난한 항일 투쟁을 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린쓰양 선생은 우주관과 인간관에 있어서 철두철미한 유물론자로 일관하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해방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그의 현실적인 투쟁은 반일, 반미, 반제, 지주·민족통일이라는 대만 정치의 모순을 표적으로 삼았다.

‘역사의 종언’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의 파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 속에서 현실 돌파의 논리와 방법을 찾아내는 유물변증법적 사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근대 이후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불과 총칼로 이 지역의 민중들의 몸에 ‘아시아’라는 소인을 찍고, 채찍으로 ‘유럽 근대’의 규율을 체화시켰다. 동아시아 민중들은 서구(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노예화라는 범죄에 대항해 인간과 민족의 해방이라는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이뤄내고, 제국주의를 붕괴시키며, 인류해방의 전망을 열어나가려고 해왔다. 민족해방 투쟁의 핵심은 자주·자립·주체이며, 한국의 ‘촛불 행동’은 민중이 주권자임을 천명했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과정은 바로 민족주권의 회복을 위한 투쟁과정이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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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으로 소년법 폐지 요구 여론이 다시 빗발치고 있다. 흉포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여론의 엄벌 요구는 정당하고 타당하며,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등의 국민 법 감정을 충족할 수 있는 법률 개정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소년법을 폐지하면 비행초기 단계의 위기청소년들을 교정·교화할 근거가 없어지고, 형사미성년자인 촉법소년에 대해서는 오히려 어떠한 처분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보호처분의 활성화·내실화를 통해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정책이 합리적이다.

극단적인 엄벌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소년원 운영 등 보호처분의 내실화와 관련된 정책은 주목을 받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최근 정부가 민영소년원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대다수 언론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년보호업무의 민간 위탁이라는 중대한 이슈에 무관심했다.

국가의 관리·감독을 벗어난 민영소년원은 예산과 인력 부족에 직면하여 보호소년에 대한 인권친화적인 처우 및 교정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국영소년원 운영의 실패를 민간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소년원은 수용시설이자 교육기관이므로 수용안정과 교육의 내실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한정된 인력 탓에 소년원 학교 담임은 수용관리를 위한 당직근무와 학생 교육을 위해 주 80시간을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인천 한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10대 중학생을 추락 직전 집단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중학생 A군 등 4명이 16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자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부족으로 인한 과밀수용은 보호소년 상호 간 인권침해의 원인이 된다. 소년원은 피해학생 보호는 물론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와 처우과정에서 가해학생의 인권 또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과 인성교육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 소년원 학교이기 때문이다.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보듯 보호처분 집행은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이고, 님비현상으로 인해 시설 확충은 요원하기만 하다. 따라서 민영소년원 도입은 국영소년원의 과밀수용을 일부 해소하고, 소년의 인권보호와 다양한 교육서비스 제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곳도, 돌아가야 할 곳도 결국 사회이므로 소년범에 대한 책임의식은 국가와 민간이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의식의 공유는 소년의 건전한 성장이라는 소년사법의 목적을 지향해야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민간자원 활용이 필요하다.

그간 소년원은 민간 자원봉사자와 종교단체에 교육 참여 기회를 주면서 소년원생에 대한 편견 해소 및 교정교육 효과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다. 더욱이 소년사법 운용을 위한 유엔 최저기준 규칙은 가능한 모든 사회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적극적 수단을 동원하도록 한다.

향후 법무부는 민영소년원 운영자 선정에 있어 수탁자의 인력·조직·시설·재정능력 및 공신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적절한 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년원의 담장이 낮아질수록 보호소년에 대한 인권처우 및 교정교육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국영소년원과 민영소년원의 교류와 경쟁은 소년범죄의 재범률 감소와 소년범의 안정적인 사회복귀로 이어져 원활한 사회 재통합에 기여할 것이다.

<최원훈 | 법무부 대전소년원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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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의 겨울 외투 안에서 보온 효과를 주는 날짐승의 깃털은 피부의 변형된 형태로 인간의 손톱이나 침팬지의 털과 그 유래가 별로 다르지 않다. 갓 태어난 새끼만 먹을 수 있도록 젖을 발명해 낸 포유류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털이다. 피부 표면에 단열 효과가 매우 뛰어난 털외투를 두른 것이다. 하지만 털은 몸 안의 열을 외부로 방출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포유류가 덥고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된다.

사람들은 흔히 5000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털이 없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말은 틀렸다. 사실 침팬지나 인간이나 털이 자라나는 모낭의 수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머리에는 약 10만개, 몸통에는 300만~500만개의 모낭이 있다. 거기서 털이 나고 자라고 빠지는 일이 진행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보다 침팬지의 털이 더 굵고 더 시커멓고 길게 자란다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므로 질문은 털이 왜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왜 털이 왜소해졌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이에 다윈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인간이 털을 버렸다고 말했다. 한편 어떤 과학자들은 온도에 민감한 뇌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털을 잃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가 1분을 달리지 못하고 털북숭이 사람과 동물이 태양 아래에서 쉽게 열사병에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적도 근처의 초기 인류에게 효율적으로 열을 식히는 장치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무리지어 동굴에서 살던 인류를 괴롭힌 이(lice)나 벼룩 등, 외부 기생충을 피하기 위해 털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기생충들이 질병을 옮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털을 잃은 인간은 이제 땀샘을 한껏 구비하고 외부로 열을 방출하면서 두 발로 대지 위를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구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럼 인류는 언제 벌거숭이가 되었을까? 몇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약 120만년 전에 두 발로 걷던 인간의 몸에서 털이 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열재 털을 잃은 인간은 밤이나 고위도의 추위를 견디기에 무척 불리했을 것이다. 뭔가 대안이 필요했으리라는 뜻이다. 털이 없어지는 사건을 전후해서 인간이 불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구강 구조를 증거로 내세우며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기가 털을 벗은 시기보다 앞섰으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치아의 크기가 줄고 턱의 힘이 약해지면서 느슨해진 머리뼈 덕분에 신생아 뇌의 크기를 키울 수 있었고 소화 효율이 높아져 인간이 먹는 데 쓰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랭엄은 말했다. 그럴싸하다. 

불 말고 추위에 대한 인간의 적응성을 높일 만한 수단이 또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옷이다. 그러면 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입었을까? 옷의 재료가 동물의 가죽이든 식물의 섬유든 생체 물질은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화석으로 오래 남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인간이 언제부터 옷을 입게 되었는지 알아냈다. 고인류학에 분자생물학 기법이 가미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700만년 전 공통조상으로부터 침팬지와 초기 인류가 분기된 것처럼 옷 솔기에 사는 이도 머릿니와 진화적 작별을 치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종(種, species)으로 살아가리라 작정한 것이었다.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의 데이비드 리드 박사팀은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인 아프리카 사람들이 약 8만3000년에서 17만년 전 사이에 본격적으로 옷을 입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머리에 살던 이가 의복으로 터전을 옮겨 살게 된 역사를 유전체에서 복원한 것이었다. 유전체를 분석하는 과학자들은 여러 생명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매우 잘 보존된 유전자의 염기 혹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하면서 생물 종 사이의 유연관계를 파악한다. 인류가 언제 털을 잃게 됐는지 짐작하게 된 것도 포유동물의 피부와 털의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비교 분석 후 얻은 결론이었다. 털옷을 벗고 불을 지핀 인류는 이윽고 옷을 갖춰 입게 됨으로써 위도나 고도가 높은 곳으로 출정할 준비를 갖췄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류는 섣불리 터전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대대적으로 아프리카를 등지게 된 까닭은 그들이 살던 아프리카 동부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먹을 게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체체파리와 같은 곤충이 매개하는 질병이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약 몇 만 명까지 줄었던 인구는 현재 75억명을 넘어섰다. 털옷을 벗은 인류는 불과 옷을 발명한 데다 난방이 가동되는 콘크리트 벽 안에서 칩거 중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지금도 칼바람이 들이치는 고시원 쪽방에서 난로 하나로 쪽잠을 청하는 이들은 먼 옛날에 잃어버린 인간의 털옷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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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전화를 했다. 시험을 못 봤는데도 점수가 아주 잘 나왔다며 이의 신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잘 안 나온 성적이 아닌, 잘 나온 성적에 이의 신청이라! 나는 문제 해결 방식이 뛰어나 좋은 점수가 나왔을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재시험까지 감수하며 아들은 담당 교수에게 이의 제기를 했지만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이것이 독일 교육이다. 독일에서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는 문제 해결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 독일은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는 교육 철학을 오래전부터 펼쳐왔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 학생들은 휴대전화로 검색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외우는 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생각하는 교육은 학생들의 사고의 빛깔을 다양하게 만든다. 이것이 창의 교육이다. 다른 사람이 해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해답을 만들어내는 교육 방식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싹트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한 학생은 여러 현상들의 본질적 의미를 스스로 밝혀내는 철학적 되새김질을 즐길 수 있다. 독일, 프랑스와 같은 나라가 암기와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까닭을 곰곰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생각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미래 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 인격체로 자랄 수 있도록 이제라도 교육의 길과 방법을 모색하고 손질해 백년 난제를 해결해 보자.

<방운규 | 평택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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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가 말했듯 우리는 ‘AI 극장’ 속에 살고 있다.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그런데 기업의 그런 노력이 매번 향상된 고객 경험을 이끌어낼까?

서비스에서 ‘결정권’은 고객의 특권이다. 택시업계를 떠올려 보면 결정권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잡힌 택시가 담배 연기로 자욱할지라도 타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는 택시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 카카오 택시를 이용하더라도 택시를 고를 수는 없다. 심지어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웠던 택시를 또 탈 수도 있고, 이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비스에 있어서 고객의 소중한 권리인 결정권을, 우리는 인공지능에 얼마나 양보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는 결정권을 위임해야 하는 서비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음악을 찾거나 영화를 찾을 때도 인공지능에 추천을 받고, 이제 곧 운전을 완전히 인공지능에 맡길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고객의 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과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영화를 찾을 때 인공지능의 추천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앞선 택시와 같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고객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불만족이 온전히 서비스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이는 마땅히 향상된 고객 경험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인공지능의 도입은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결정권의 위임’을 초래할 수 있다.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개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박수호 |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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