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재판 어떻게 판결날 거 같아?

- 글쎄… 아무래도 부모 잘못인 거 같은데.

- 시술을 해도 성공률은 55% 정도라잖아. 그 정도면 부모도 불안해서 안 하겠다고 할 수 있지 않나?

- 아니 그 문제가 아니잖아. 그 부모가 특정 종교 신자라서 자기 아이한테 인공의체 시술은 무조건 거부한다는데.

- 그래? … 하긴 종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예전부터 있었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뇌 기형을 지닌 아이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얼마 못 살고 죽을 운명이었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합성된 뇌신경을 두뇌 일부에 이식해 넣으면 장기 생존이 가능했다. 그전까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증후군이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또 새로운 의학의 기적을 낳은 것이다. 다만 보통 사람과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할지는 아직 임상 사례가 부족해서 더 두고 봐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이 아이의 부모가 합성 뇌신경 시술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주변에서 계속 설득했지만 부모의 입장은 완강했다. 아이의 운명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서 바꾸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특정 종교의 열성 신도였는데, 그 교단에서는 머리 내부, 즉 두뇌에다 뭔가 인공적인 부분을 더하는 행위 일체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신이 주신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거스를 수 없는 그들만의 엄격한 계율 중 하나였다.

마침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그 부모를 신고했고, 결국은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시술을 받지 않으면 곧 사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임에도 부모가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살인죄나 다름없다는 취지였다. 부모는 시술 비용이 부담스러울 만큼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도 않았고, 다른 의학적 치료는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그들의 종교에서 정한 대로 두뇌에 인공적인 부분을 삽입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반대했다.

아이의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주로 부모가 잘못이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합성신경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인간 본래의 존엄성은 흐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번 케이스는 일단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의 흐름이 모이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합성신경 기술, 더 나아가 높은 수준의 사이보그 기술을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철학자와 작가, 사회학자, 과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방송과 지면을 통해 동시다발적인 토론을 이어 갔다. 재판부에서도 비공개 자문회의를 몇 차례 열 정도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판세는 과학기술 그 자체에 대한 찬반 양편으로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한쪽에서는 과학기술이 종교화되고 있다며 맹목적인 과학기술 우선주의를 비판했고, 반대쪽에서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본질을 못 보고 겉모습으로만 재단하는 화물숭배과학(cargo cult science)이나 다름없다고 반격했다. 그러는 와중에 판결 날짜는 시시각각 닥쳐왔다.

과학기술이 역사상 우리에게 준 혜택은 새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의료 복지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전적으로 과학의 발전 덕분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긴 수명을 누리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인류 문화가 갈수록 풍성해진 것은 그로 인한 2차적 효과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종교 및 철학과 유쾌하지 못한 접점을 몇몇 지니고 있다. 신앙이나 가치관 문제로 의학적 조치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 전직 축구선수가 아내 출산 때 무통주사를 거부했다는 얘기, 또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 등등의 논란이 있었다. 범위를 더 넓혀 보면, 시험관아기 시술이나 낙태, 연명치료와 안락사처럼 쉽사리 어느 쪽이 옳은지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다.

의학 분야의 발전이 계속될 경우 빠르면 21세기 중반에는 합성 인체 조직이 실용화되어 SF에서나 보던 사이보그가 현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글자 그대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두뇌에 인공 조직이 들어간다면 인류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물론이고 실제로 신인류의 탄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의 탄생은 언제나 새로운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갈수록 곱씹어봐야 할 명제가 아닐 수 없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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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나온 사람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강의하고 연구하던, 내 청춘을 갈아 넣은 그 공간에서 스스로 나왔다.

‘지방시’라는 줄임말로도 알려진 그 책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 젊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시간강사의 처우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때 언론은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는 젊은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실제로 대학에서 6~8학점의 강의를 하면서 지역의 맥도날드 직영점에서 월 60시간의 물류상하차(메인터넌스) 일을 했다. 단순히 용돈을 벌고자 하거나 관심을 받고자 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서른두 살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계속 강의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내가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비롯한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방편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대학이 보장해 주지 않는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대학에서 쫓겨났다고도 하고, 나에게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는 대학 문을 박차고 당당하게 나왔다고도 한다.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지방시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그때 사용한 ‘309동1201호’라는 가명의 주인이 나(김민섭)라는 사실을 내부 구성원들이 먼저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전처럼 평범한 연구자로서 존재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에만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마음먹기에 따라서 대학 바깥의 누구든 나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얻었다. 그때 나는 대학에서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가혹한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한 선배들이 있었다. 예컨대 유서라든가, 법적공방이라든가 하는 자신의 몸과 삶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SNS 공간에서 고백의 서사를 기록해 나간 거의 최초의 연구자였다. 이것이 대단히 특별하거나 잘난 일이었음을 증명하고픈 것은 아니다. 다만 달라진 시대는 어떻게든 한 공간의 평범한 인물을 추동해냈을 텐데, 무수한 지방시들 중 내가 무작위로 끌어올려졌을 뿐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 주어 고마워” 하고 말하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을 만났다. 덕분에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한 세대의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확신이 언제나 있었고 계속 나를 고백할 용기를 얻었다.

최근 ‘강사법’이 시행을 앞두고 대학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년 이상 고용 보장, 건강보험 보장,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지급 등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담은 법이다.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아직도 그 시행이 유예되고 있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대학이 시간강사를 해고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누구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시행을 앞두고 많은 내부구성원들이 여기에 저마다의 의견을 더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나온 지 이제 정확히 3년이 된 나도, 전직 지방시로서 굳이 말을 보태고 싶다.

아마 강사법이 시행되든, 다시 유예되든 대학에서는 그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편법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대학은 원래 위법은 잘 저지르지 않아도 온갖 편법을 동원해 온 집단이다. 200명씩 수강하는 대형강의를 편성한다든가, 교양필수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한다든가, 졸업학점을 낮추어 전체 강의의 수를 줄인다든가, 정규직 교수의 책임강의시수를 몇 학점씩 올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시간강사를 이전보다 덜 고용할 것이다. 시간강사 당사자들도, 그 여파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정규직 교수들도 모두 대학의 대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그 이전에 진리의 상아탑이라든가, 지성의 전당이라든가 하는 단어로 스스로를 한껏 포장한 지금의 대학이,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보다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에 더해, 거기에 영합해 그동안 편안하게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정규직들이 조금은 부끄러워해 주기를 바란다. “강사들은 이제 많이 해고될 거야, 우리 학교는 절반을 감축한다고 하더라, 강사법에 찬성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지 고민해 봐” 하고 권위적인 말을 보태고, 교수회의에서 논의된 말들을 생중계하는 대신 자신이 지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학문후속세대가 이제 강의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모 교수는 자신의 대학에서 강사 공채를 할 때 그 후속세대를 위한 쿼터를 넣을 것을 제안하면 되겠고, “비용이 필요하니 현실적인 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모 교수는 그 재원을 마련할 것을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학과 정부에 촉구해야겠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 구조 안에서 착취를 당해온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조롱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에 나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한 문장을 써 두었다. 강사법의 시행 여부보다도, 우선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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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은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을 찾았다.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새만금을 발판으로 삼겠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기술적 잠재량은 43.6GW 규모로 ‘신재생에너지 3020 프로젝트’ 목표의 약 97%에 달한다.

우선 새만금개발청은 2022년까지 내측 공유수면과 노출지 그리고 방조제 외측 해역 등에 민간 자본 10조원을 유치해 2.8GW 규모의 태양광과 1G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이는 원전 4기에 해당하는 대규모 발전설비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계획은 기후변화 대책인 동시에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되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지역민들의 불신이 크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북지역에 허가된 태양광발전 사업 건수는 1만7831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전국 5만2298건의 34%에 달한다. 문제는 태양광 시설의 상당 부분이 외지인의 소유라는 점이다. 특히 새만금에 인접한 김제는 총 3171건의 허가 건수 가운데 2437건(71.8%)이 외지인이 추진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상생은커녕 돈봉투에 지역 민심만 갈가리 찢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불신은 주민 참여로 극복할 수 있다. 에너지를 낚는 어부, 에너지 농사를 짓는 주민, 에너지협동조합의 주주인 국민 등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830개 에너지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덴마크 미델그룬덴 발전단지는 사업 지분의 90%를 주민과 지역단체 등에서 소유하고 있다. 전남 영광에서는 풍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회사가 지역에 환원한 지역발전기금을 기반으로 (주)주민발전을 설립했다. 반대하던 주민들까지 참여해 2MW급 주민태양광발전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해야 한다. 현 태양광발전 시설은 언제든지 개발 여건만 확보되면 그만둘 수도 있는 임시 시설로 볼 수 있다. 발전소 운영기간을 20년으로 한정하지 말고 과거 삼성이 약 20조원을 투자해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던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새만금기본계획에서 사라진 신재생에너지 용지를 복원해야 한다.

아울러 조력발전에 대한 타당성 검토와 함께 태양광발전 설치 위치도 재고해야 한다. 그간 지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뿐 아니라 새만금의 특성을 활용한 조력발전을 추가해 재생에너지 시설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 주장대로 조력발전 도입을 염두에 둔다면 정부가 구상한 수상 태양광의 위치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새만금 내측에 1000여척의 배가 조업 중인 점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이들을 불법·무면허라는 이유로 강제로 쫓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업권과 관련해 한정면허라도 검토해 어민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

새만금은 어민 모두의 바다였다. 갯벌은 지역민의 삶의 터전이었다. 새만금에 기댄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졌던 그 땅을 재벌과 기관에만 내줄 수 없다. 새만금 해수 유통과 재생에너지를 통한 새만금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새들도 물고기도 떠나고 어민들의 회한만 남은 땅, 갯벌이 메워지고 미세먼지만 날리는 황무지가 된 땅, 여기 새만금에서 재생에너지로 다시 희망을 꿈꾸길 기대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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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시급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전문가 확보였다. 교비로 명품 사고 아파트 관리비 내고, 있지도 않은 ‘가장거래’로 설립자 뒷주머니만 채우는, 일부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립유치원들을 한때 유치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욕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뭐가 문제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희한했다. 생각보다 전문가라 할 만한 이들과 통화하기가 어려웠다. 대학입시나 사학비리, 사교육 문제 등과 관련해선 논리정연함으로 여론몰이를 능숙히 해대는 교육단체들도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했다. 교수들은 입 열기를 조심스러워하거나 피상적 말을 늘어놓았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주기로 한 대학교수는 결국 “못하겠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집단휴업 등으로 어깃장을 놓고, 유리한 입법을 위해선 로비도 서슴지 않는 사립유치원 단체의 영향력이 무서워서였을까 생각했던 것은 순진함이었다. 그보단 유아교육 전문가라 불릴 만한 분들이 의외로(?) 없다는 게 더 정확했다.

아동학을 전공한 어느 분도 “국내엔 유치원 전문가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정책의 방향에 대해 코멘트해줄 만한 전문가라면 “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십년간 초등교육의 귀속 분야로서 유아교육이 다뤄지면서 국가가 맡아야 할 기본 교육에 사인(私人)이라는 시장논리가 자리 잡아 오늘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용민의그림마당]2018년10월26일 (출처:경향신문DB)

사립 초·중·고교와 달리 개인이 임대건물만 있으면 유치원을 차릴 수 있는 현 구조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비롯됐다. 원장 기준에 대한 자격도 남발됐다. 그동안 툭하면 사립유치원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휴업 등으로 실력행사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유력 정치인까지 합세해 정부에 “좀 봐달라”고 개입했다. 사립유치원들의 이기심과 정부의 무관심, 정치권의 부적절한 개입이 ‘형식은 교육기관인데 내용은 자영업’인 형태의 사립유치원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에서 유아교육은 ‘귀찮은 존재’ 정도로 여겨져왔다. 각 교육청의 조직도만 봐도 알 수 있다. 17개 시·도 중 유아교육이 ‘과’ 단위로 조직된 곳은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몇 곳 안된다. 초등교육과 내 유아교육팀으로 분류돼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도 2013년에서야 관련 팀을 유아정책과로 승격했다. 한마디로 유치원은 ‘돈 있으면 보내고 안 보내도 그만’이라는 30~40년 전 시각에서 진일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료조차 “유아교육과로 가게 되면 물먹는 것이란 인식이 많다”고 토로했다.

사회 전체가 유아들의 삶과 권리에 무관심해왔다는 점에서 학부모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발 위주,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내 아이만 불이익받지 않으면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 없어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촉발시킨 실시간 정보공유와 대응은 학부모들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여론 형성을 가능케 하고 있다. 나 하나 달라져서 세상이 바뀔까 하고 심드렁했던 부모들은 이제 아이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선다. 민심 변화는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공립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표는 얻었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들의 표는 얻지 못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내며 인용한 시다. 그가 말한 꽃이 ‘유아교육의 공공성’은 아니었겠지만서도 현재 국민의 꽃은 하나씩 하나씩 피어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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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씨는 심을 땐 구덩이에 쇠똥거름을 담뿍 준다. 발아 시기에는 해충을 이겨내도록 잎사귀에 재를 툭툭 뿌려주지. 가을이면 샛노란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가 어김없이 찾아온다오. ‘검은 재를 뒤집어쓴 소녀’란 뜻의 신데렐라. 호박공주라고 불러도 되겠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왕자님은 언제 만날까.” 아이들은 신데렐라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즐긴다.

계모와 언니들은 착한 신데렐라를 왜 괴롭혔을까. ‘구박을 받았더래요, 불쌍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사랑을 받았더래요, 행복한 신데렐라’… 이런 스토리였다면 얼마나 좋아.

눈 내리는 밤, 노란 호박죽을 끓여먹으면 노란 보름달처럼 속이 다스워질 거야. 우린 이토록 정겨운 호박에다가 서양에선 악마 얼굴을 새겨 넣고 촛불을 밝힌다.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되었듯 요샌 핼러윈데이가 젊은이들의 축제. 반짝거리는 유리 구두처럼 환한 쇼윈도. 호박 등불을 밝힌 가게마다 유령 무도회가 밤새 열릴 것만 같아라.

이맘땐 이른 무도 덥썩 캐고 고구마도 풍년. 단감도 살찌게 먹는 시기. 무를 날로 깎아먹으면 방귀를 밤새 뀌게 된다. 일본에서 방귀를 가장 많이 뀌는 사람은 ‘아까끼고 또껴’씨. 천하의 짠돌이 구두쇠 ‘무라까와 쓰지마’와 ‘도나까와 쓰지마’ 형제들은 조선의 홍시 하나 남겨두는 마음, 그 넉넉한 마음을 꼭 배우길. 감나무 꼭대기에 남긴 감들이 주렁주렁. 밭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밭둑에 줄줄이 호박, 이달 하순엔 배추도 캐서 김장을 담그게 될 게다. 싸리울을 넘나들던 산비둘기도 논에 버려진 낱알을 부지런히 쪼아먹으면서 겨울 채비를 서두른다.

별똥 하나가 적막을 긋고 가는 오밤중. 나는 호박이 조르라니 앉아 있는 부엌을 오지게 바라본다. 달빛을 흠뻑 머금은 호박이 스스로 빛을 뿜고 있어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호박마차를 타고 집으로 갈 시간. 눈물은 뚝. 이제는 왕자님과 겨우내내 행복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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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에 대해 거부하는 것과 같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부정된 것이다.”(마틴 루서 킹 <버밍햄 감옥에서의 편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꺼내기도 무참하리만큼 참으로 너무 ‘오래’ 걸렸다. 청춘의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병든 채 해방 조국에 귀국한 이래 일흔세 해가 흘렀다. 일본에서의 법정 싸움까지 포함하면 소송 제기 21년, 국내 소송 기간만 따져도 13년이 걸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소송을 낸 강제동원 피해자 4명 중 3명(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은 ‘제사상 판결문’으로 받아보게 됐다. 이춘식 할아버지(94) 홀로 승소가 확정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할아버지는 강제징용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오랫동안 힘든 법정 싸움을 벌여온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이날에야 알았다. “같이 이렇게 살아서 봤더라면 마음이 안 아플 텐데, 나 혼자라서 눈물 나고 슬프다.” 할아버지의 오열이 ‘지연된 정의’의 책임을 아프게 묻고 있다.

사실 몇 해만 앞서 재판이 이뤄졌어도, “한이 됐던 피멍울을 안은 채” 징한 세상을 하직하는 참혹은 막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 천금 같은 ‘몇 해’를 지연시킨 것이 박근혜 정권의 무도한 국가폭력이다.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 자리를 맞바꿔 거래 대상으로 삼는 바람에 대법원 판결이 지체되었다는 야만이 드러나고 있다.

대법원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무려 5년을 흘려보낸 동안 20여년을 힘들게 싸워온 피해자 할아버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2012년 대법원 판결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신고건수는 15만건에 달했다. 이들 소송 당사자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신규 소송은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다면 정의가 세워진들 무엇하랴. 현재 남아 있는 10여건의 강제징용 재판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이제 지연된 정의라도 하루속히 세워야 한다. 지금도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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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여성들에게 성폭행과 성고문을 자행했다는 정부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10월31일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5·18 직후부터 민간단체 등에서는 계엄군의 성폭행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38년이 지난 지금에야 뒤늦게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에는 여대생, 직장인, 주부는 물론 10대 여고생까지 포함돼 있다.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신부 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도 다수 확인됐다.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다수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연행된 여성들은 수사과정에서 속옷 차림으로 대검으로 위협받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등 성고문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피해자들이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있고, 일부는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다니 피해자들이 수십년 동안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았는지 짐작이 된다.

조사단은 일부 피해 사례의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는 진술과 단서를 확보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해 조사 권한이 없어 더 이상 조사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특히 시간적 제약으로 조사가 마무리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성폭력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5·18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출범하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몫이 됐다. 진상조사위는 당초 지난달 출범 예정이었지만 자유한국당의 조사위원 추천이 늦어지면서 아직 구성도 못하고 있다. 한국당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조속히 조사위원을 선정해야 한다. 정부는 향후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와 보상 등 피해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가해자들을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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